※「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뉴스레터 필진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필자의 의견과 관점이 담길 수 있으며 일부 내용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8,000km의 거리감, 스마트폰 화면 너머의 세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켭니다. 화면 속 뉴스는 쉴 새 없이 잔혹한 소식들을 쏟아냅니다. 우크라이나의 무너진 아파트, 가자지구의 울부짖는 어머니, 수단의 끝없는 피난 행렬. 하지만 이내 화면을 쓸어 넘기면 맛집 정보와 지인의 일상 사진이 그 자리를 대체합니다. 참혹한 전쟁의 풍경은 손가락 까딱 한 번에 너무나 쉽게 휘발되고 맙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타인의 고통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고통을 ‘나의 문제’로 감각하는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멀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거기 참 안됐네. 빨리 끝냐야 할 텐데...“

우리가 보내는 안타까움의 시선 뒤에는 항상 은연중에 ‘그곳은 먼 나라 이야기’라는 안도감이 숨어 있습니다.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단단한 심리적 방어벽이 우리를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훈의 달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과거의 전쟁을 기억하고 순국선열을 추모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서는 기이할 정도로 무감각합니다.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과연 그곳의 전쟁이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걸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정말로 안전한가? 인류는 지속적으로 평화를 이야기했지만 현실은 왜 전쟁의 연속일까?
2. 남의 전쟁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청구서
전쟁은 미사일이 폭발하는 영토 안에서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국경이라는 물리적 장벽을 가볍게 뛰어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촘촘한 가닥이 되어 이미 우리의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세계를 뒤흔든 거대한 두 개의 전쟁은 이를 너무나 극명하게 증명합니다.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남긴 상흔
2022년 2월에 일어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글로벌 곡창지대이자 원자재 대국인 두 나라의 충돌은 밀과 옥수수 가격의 폭등으로 우리에게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밀과 옥수수 가격의 폭등은 사료 가격을 상승시켰습니다. 이로인해 도산한 축산 농가가 엄청 늘어났으며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가 도미노처럼 치솟아 마트 매대와 골목길 밥상에 고스란히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전 세계 해바라기유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던 우크라이나의 공급망이 끊기자, 국내 식용유 가격이 무섭게 치솟는 이른바 '식용유 대란'이 현실화되었습니다. 해바라기유 수입 중단은 대두유(콩기름)와 팜유 등 대체재의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폭등시켰고, 이는 고스란히 동네 치킨집 사장님의 한숨과 가정집 장바구니의 비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에너지 자원의 90% 이상을 수입하는 구조 속에서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원유 공급망 차단은 산업 전반의 생산 비용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이는 고스란히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서민들의 실질 소득을 감소시켰고, 사회 전반에 ‘먹고사는 문제’의 불안을 심화시켰습니다.
○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중동 전쟁 위기가 주는 충격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중동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중동은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심장부이며,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0%를 이 지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 한국 수입 원유의 6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국내 유가를 상승시켰습니다. 주유소의 기름값 숫자가 바뀔 때마다 서민들의 소비 심리는 얼어붙었고, 해운·조선·해외 건설 산업은 불확실성의 늪에 빠졌습니다. 물가 상승과 금리 고공행진은 자영업자들을 한계 상황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미사일 한 발이 한국의 어느 골목길 식당의 폐업으로 이어지는 이 긴밀한 연결고리, 이것이 바로 남의 전쟁이 우리에게 청구서입니다.
3.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평화
우리가 경제적 수치와 물가 상승률을 논하는 사이, 전쟁의 현장에 서 있는 당사국 국민들이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전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말살합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자 학생이었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난민이 됩니다. 머리 위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폭격의 공포 속에 밤을 지새우고, 단 한 모금의 깨끗한 물과 한 조각의 빵을 구하기 위해 몇 시간을 줄 서야 합니다. 전력과 가스가 끊긴 겨울, 추위 속에서 아이들은 병들어가고, 병원마저 포격으로 무너져 간단한 치료조차 받지 못해 목숨을 잃습니다. 어제까지 함께 밥을 먹던 가족의 시신을 무너진 잔해 속에서 맨손으로 파내야 하는 비극, 그것이 전쟁을 겪는 인간의 처절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 끔찍한 비극 앞에서 결코 자유로운 관전자일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전쟁이 완전히 끝난 평화 국가가 아니라, 잠시 전쟁을 멈춘 '휴전(Armistice)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우리 역사에는 언제든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었던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가 수없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를 흔든 큰 전쟁위기들
① 1968년 1·21 사태와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19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 시도에 이어 1월 23일에는 미 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영해 침범의 이유로 북한군에 나포되면서 한반도는 당장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극한의 군사적 대치 상태에 놓였다.
② 1976년 판문점 도끼 사건 - 공동경비구역 판문점에서 미군이 미루나무를 자르려고 하자 북한군은 자신들과 협의하지 않았다고 중단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싸움이 벌어져 미군 2명이 사망한 사건. 미국은 핵 탑재가 가능한 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출격시키는 등 전면전 직전까지 갔다.
③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과 미국의 영변 핵시설 정밀 폭격 준비로 당시 주한미군 가족들이 철수 계획을 세우고 시민들이 라면과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등 극심한 전쟁 공포가 휩쓸쓸었다.
④ 2010년 연평도 포격전 - 한국 해군의 해상 포격 훈련에 대해 북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연평도에 포격을 가해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한 사건. 정전 협정 이후 최초로 대한민국 영토와 민간인을 향해 직접적인 포격이 가해졌다.
⑤ 2015년 휴전선 지뢰 사건 - 2015년 8월 비무장지대(DMZ) 수색 중 휴전선에서 지뢰폭발로 우리 군 2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 이로 인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서부전선 포격 도발로 이어졌고,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등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⑥ 2017년 북·미 전면전 위기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북의 완전 파괴로 화답을 하자, 북이 다시 괌에 대한 미사일 공격으로 응수하면서 전쟁위기가 일촉즉발로 높아진 사건.
이 역사적 사건들이 증명하듯 우리 사회의 평화는 안전한 평화가 아닌 불안전한 평화기반 위에서 반복되는 전쟁위기를 맞으며 살고 있습니다. 대만-중국 전쟁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재무장화도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불안감입니다. 중국-대만 전쟁 시 미군이 개입을 하면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참전할 여지가 높습니다. 이번 이란 전쟁에서 보듯이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자 이란은 미군기지가 있는 중동 8개 나라를 공격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주한미군 기지가 있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풍경은 당장 오늘 밤이라도 이 땅에서 재연될 수 있습니다.
○ 분단과 군사독재문화로 인한 갈등과 혐오의 문화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휴전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오랜 분단 구조가 우리 내부 사회에 심어놓은 갈등과 혐오문화입니다.
적대적 분단은 우리 사회에 오랜 기간 광범위하게 우리의 인식, 마음을 병들게 했습니다. 색깔론과 종북몰이와 같은 이념갈등은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고,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반인권적, 반민주적 인식을 온 사회에 만연시켰습니다.
국민의 행복과 권리를 통제하려고 한 12.3내란의 명분도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였습니다. ‘스타벅스를 빨갱이 없는 청정지역으로 만들자’는 등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분단을 자양분으로 해서 갈등과 갈라치기가 계속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분단은 우리 사회에 평화감수성을 약화시켰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해 ‘시체팔이를 한다’며 낙인을 찍고, 단식농성장 바로 앞에서 ‘폭식투쟁’이라는 반인륜적인 행태를 서슴지 않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들을 향해서도 위로와 진상규명 대신 차가운 모욕과 냉소를 퍼부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두고 ‘북한군 개입설’과 같은 악의적인 가짜뉴스를 유포하며 역사적 진실과 희생자들의 아픔을 모독하는 행위까지 버젓이 자행됩니다. 이런 행위를 단순히 생각의 차이로 치부할 수 없으며, 자유민주주의 허용 범위로 볼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 모든 야만성은 오랜 시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분단문화'와 '군사독재문화'가 만들어낸 흑백논리의 산물입니다. 휴전선 너머의 군사적 위협을 관리하는 안보 못지않게, 우리 안의 이분법적인 적대감을 거둬내고 사회 내부의 폭력성을 치유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짜 '우리의 평화'입니다.


4. 평화는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경기평화교육센터
국가 권력과 군사력의 논리는 언제나 거대한 담론만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 시민사회의 역할은 그 틀 자체를 흔드는 것입니다.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공감의 영역에서, 단절이 아닌 ‘연결’로 평화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대한 국제정치를 당장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 곁에 있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사회 내부의 상처와 갈등을 평화적으로 치유해 나갈 ‘평화 감수성’의 크기는 교육을 통해 키울 수 있습니다.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경기평화교육센터(이하 센터)는 바로 이러한 믿음 위에서 숨 쉬는 단체입니다. 센터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교육으로 기여하자’는 생각으로 지난 2012년에 첫발을 내디딘 시민단체입니다.
분단의 오랜 아픔을 치유하고 무력 충돌의 위기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힘은 결국 평화를 사랑하는 깨어있는 시민과 미래 세대의 의식에서 나온다는 신념으로 달려왔습니다.
▣ 경기평화교육센터 주요 교육 및 시민참여 프로그램
① 미래 세대를 위한 학년별 학생 대상 교육 — 초등·중등 학생들의 평화 감수성을 깨우는 〈그림책을 활용한 평화통일교육〉과 〈놀이로 만나는 평화통일교육〉은 학교 현장에서 가장 뜨거운 호응을 받는 대표 프로그램.
② 시대를 이끌어갈 청년 대상 교육 — 깊이 있는 세미나와 토론을 통해 평화적 시선을 확장하는 〈피스리더〉와 청년 동아리 〈워너피스〉를 통해 사회 곳곳에서 평화의 목소리를 낼 청년 리더 양성.
③ 일상에서 실천하는 시민 교육 — 〈통일 톡투유〉, 〈가족이 함께하는 평화캠프〉, 〈제1기 경기도민 평화학교〉 등을 통해 시민들의 평화 감수성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④ 현장에서 숨 쉬는 평화통일기행 — 파주·김포·강화도 등 접경지역에서의 평화통일기행을 통해 시민들은 분단의 아픔과 평화의 소중함을 눈과 가슴으로 생생하게 느끼기 위한 프로그램.
경기평화교육센터가 펼치는 이 모든 교육의 지향점은 명확합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공감의 언어로 평화감수성을 키우고,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감각을 갖게 하는 데 교육으로 기여하는 것입니다.
5. 나가며: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
로마 시대의 군사 전략가 베게티우스가 남긴 유명한 격언이 있습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오랫동안 이 말은 인류의 안보 논리로 지배해 왔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진실은 다릅니다. 전쟁을 준비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상대방의 불안을 자극하고, 이는 끝없는 군비 경쟁과 ‘안보 딜레마’를 낳아 결국 더 참혹한 전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낡고 위험한 선언을 뒤집어야 합니다.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
평화는 더 큰 미사일 위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고통을 응시하는 공감의 시선, 적대를 멈추려는 단호한 대화, 내 안의 낙인과 혐오를 거둬내는 성찰, 그리고 국경과 이념을 넘어 연대하는 시민사회의 힘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 속 타인의 눈물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 이웃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으로 연결되는 순간 전쟁과 폭력을 막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평화의 감수성’은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경기평화교육센터가 뿌리는 평화교육의 씨앗들이 거대한 세계 평화의 숲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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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9※「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혼자 남겨진 사회, 세대별 사례 탐구를 중심으로 본 현대사회의 외로움 보고서
아무도 몰랐다
냉장고 안에는 오래된 음식이 있었다. 현관 앞에는 며칠치 우유가 쌓여 있었다. 택배 기사가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발견됐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고독사’라는 단어는 특별한 사건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뉴스와 지역사회 현장에서 흔히 접하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혼자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 연락이 끊긴 뒤 며칠 혹은 몇 달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죽음은 이제 특정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는 노년층의 문제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청년과 중장년층에서도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1인가구 증가, 경제적 불안, 인간관계 단절, 디지털 중심 사회 변화는 사람들을 점점 사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고독사는 단순히 혼자 죽는 현상이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관계가 끊어졌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고립사’라는 표현도 함께 사용된다.
고독사와 고립사,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고독사란 무엇인가,
고독사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상태에서 혼자 사망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1인가구에서 많이 발생하지만 반드시 혼자 사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 있어도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면 고독사의 위험은 존재한다.
고독사의 핵심은 단순한 ‘혼자 죽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부재다. 즉 살아 있는 동안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문제로 다뤄진다.
고립사란 무엇인가,
고립사는 사회적 관계와 교류가 거의 없는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다가 발생하는 죽음을 의미한다. 고독사가 결과 중심의 개념이라면 고립사는 그 과정에 초점을 둔 표현이다.
직장을 잃고 사람들과의 연락이 끊기며 사회활동이 중단되고, 결국 건강관리와 생활 유지가 어려워지는 과정 자체가 사회적 고립이다.
즉 고립은 삶의 과정이고, 고독사는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숫자가 말하는 현실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 자료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고독사 위험군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중장년 1인가구의 증가 속도가 매우 가파르다. 2023년 기준 국내 1인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의 약 35%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는 세 가구 중 한 가구 이상이 혼자 사는 시대라는 의미다.
고독사 사망자는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남성 비율이 높으며 50~60대 중장년층 비중이 가장 크다. 최근에는 경제적 불안정과 취업난 속에서 청년층 고립 문제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초고령사회가 본격화되면 노년층 고독사는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왜 사람들은 고립되는가
1) 관계 단절의 시대
과거에는 동네 공동체와 대가족 문화가 존재했다. 이웃 간 왕래가 있었고 서로의 안부를 자연스럽게 확인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개인 중심 구조로 변화했다. 아파트 생활은 익명성이 강해졌고, 사람들은 서로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편리함은 늘었지만 관계는 줄어들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인간관계 단절은 더욱 심화됐다.
2) 경제적 불안
실직과 빈곤 역시 중요한 원인이다. 경제적 어려움은 사람들을 사회관계 밖으로 밀어낸다.
직장을 잃으면 인간관계도 함께 끊기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실패에 대한 자존감 하락은 스스로 사회와 거리를 두게 만든다.
특히 중장년 남성층은 은퇴 이후 관계망이 급격히 줄어드는 특징이 있다.
3) 디지털 사회의 역설
스마트폰과 SNS는 연결의 도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깊은 외로움을 만들기도 한다.
온라인에서는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실제로 대화할 사람은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노년층은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회적 소외를 경험하기도 한다.
4) 가족 구조의 변화
비혼 증가와 이혼, 1인가구 확대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예전에는 가족이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했지만 현재는 가족 내부에서도 관계 단절이 늘어나고 있다.
“연락하지 않는 가족”은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돌봄 관계는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고독사의 현장 사례(출처.한국장례협회)
사례 1 – 은퇴 후 혼자가 된 중년 남성
수도권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6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수개월 전 직장을 잃은 뒤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다. 가족과의 왕래도 거의 없었다.
주민들은 “조용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했지만 정작 그의 일상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발견 당시 집 안에는 배달 음식 용기와 약봉지가 쌓여 있었다.
사례 2 – 청년 고립의 그림자
취업 준비를 하던 20대 청년은 장기간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며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 원룸생활을 하였으며, 체납고지서와 이력서, 빈통장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숨진 뒤 2주가 경과한 후에 발견되었다..
청년 고립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불안과 우울, 사회적 단절이 지속되면 심각한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례 3 – 혼자 남겨진 노년 여성
남편 사별 이후 홀로 생활하던 80대 여성은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외출이 줄었다. 동네 복지사의 방문이 끊긴 뒤 점차 사회와 단절됐다.
이웃들은 가끔 보던 모습이 사라졌지만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몇 주 뒤 관리비 연체 문제로 집을 찾은 관계자에 의해 발견됐다. 마지막으로 그의 이름을 부른 사람은 누구였을까..
‘고독력’ – 혼자 견디는 힘이 아니라 연결을 유지하는 힘.
세 사람의 이야기에서 공통점이 있다. 고립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조금씩,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진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수 있을까. 최근 심리학과 사회학에서는 ‘고독력’이라는 표현이 주목받고 있다. 고독력은 단순히 혼자 견디는 힘이 아니다. 외로움을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혼자 있는 시간을 삶의 균형 속에서 활용하는 능력이다. 현대사회에서 혼자 사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고립되지 않는 것이다.
혼자 살아도 사회와 연결되어 있고,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세대별 고독력 키우기
1. 청소년·청년 세대 - 디지털 관계를 넘어 실제 관계 만들기
청년층은 온라인 소통에 익숙하지만 실제 인간관계 경험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청년 고립은 "혼자 있기 좋아서"가 아니라 "관계를 시작하기 어려워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모임 참여, 독서모임 및 동호회 활동, 봉사활동 참여, 공동체 프로젝트 경험 등 만나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2. 중장년 세대 - 일 외의 관계망 만들기
중장년층은 직장을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해온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은퇴 이후 관계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고립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준비가 필요하다. 취미 공동체 만들기, 지역 활동 참여, 평생학습 프로그램 참여, 걷기 모임, 문화모임 참여 등 특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혼자 버티려는 태도는 오히려 위험을 키울 수 있다.
3. 노년 세대 – 작은 연결을 꾸준히 유지하기
노년층은 건강 악화와 이동 제한으로 인해 쉽게 고립된다. 매일 한 번 전화하기, 경로당 및 복지관 이용, 마을 프로그램 참여, 라디오와 공동체 활동 참여, 디지털 교육 받기처럼 작은 연결이라도 꾸준히 유지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노년층에게는 “누군가 자신의 안부를 기억하고 있다”는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
공동체 회복이 필요한 시대
고독사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하는 공동체 과제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은 안부 확인 서비스와 AI 돌봄, 반려식물 사업, 주민 관계망 사업 등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은 사람의 관심과 연결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하는 일, 동네 가게에서 안부를 묻는 일,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하는 작은 행동들이 관계를 이어주는 시작이 된다.
최근 공동체라디오와 마을미디어 활동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의 목소리는 관계를 만든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다시 사회와 연결된다.
특히 시니어와 1인가구에게 공동체 미디어 활동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활력과 사회적 관계 회복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혼자 살아도 혼자 남지 않기 위해
현대사회에서 외로움은 특별한 감정이 아니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의 감정이다.
하지만 외로움이 단절이 되고, 단절이 고립이 되며, 결국 삶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고독력을 키운다는 것은 혼자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돌보고, 타인과 연결되며,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혼자 살아가는 시대일수록 더 필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은 연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연결은 제도가 아니라 “잘 지내세요?”라는 짧은 안부 한마디에서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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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7
고립의 소용돌이 뒤편에서, 굳건한 배웅의 손길로 마지막 존엄을 빚어내고 찬란한 연대의 내일을 마주하는 눈부신 발자취
저마다의 자리에서 묵묵히 경기도 구석구석의 소외된 이웃들을 살피며 생명의 온기를 지켜내어 온 수많은 시민들과 공익활동가들. 가족의 부재나 경제적 빈곤이라는 이유로 삶의 마지막 순간마저 홀로 방치되는 '무연고 사망'의 참담한 현실 앞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인간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깊은 울림의 질문 앞에 섰다. 방관과 외면의 장막을 걷어내고, 묵묵히 두 손을 모아 서로의 쓸쓸한 등 뒤를 보듬으며 촘촘한 연대의 그물망을 엮어 온 ‘누가 이들을 ‘무연고자’라 부르는가… 죽음마저 외롭게 만드는 사회’ 기획의 눈부신 발자취를 깊이 들여다보다.
"우리는 과연 ‘홀로 살아내다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이들의 고립과 죽음은 개인이 감당해야 할 불가피한 숙명일 뿐,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손을 잡고 그 마지막 길을 다정하게 배웅하며 존엄을 지켜줄 수는 없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복지 활동가들, 그리고 공익활동가들이 손을 맞잡으며 저마다의 진심으로 평화와 상생의 품을 엮어내는 ‘고립의 벽을 허물며 꽃피우는 생명 자치의 품’을 어떻게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풀뿌리 복지 자치와 상호 존중적 돌봄 안전망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경기도 전역에 지속 가능한 상생과 평화의 숲을 깊이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방관과 외면의 장막을 허무는 ‘풀뿌리 돌봄 감수성 및 자발적 안전생태계 구축’
이웃의 고립과 외로움을 남의 일로 여기며 무심히 지나치던 낡한 관행에서 벗어나, 경기도민과 공익활동가들이 동네 골목과 돌봄의 마당에서부터 직접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고독사를 예방하는 자발적 생태계 다지기.
"진정한 돌봄 자치의 완성은 거창한 복지 정책 선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네 작은 모임방에 모여 앉아 이웃들과 손을 잡고 '우리는 누구나 홀로 방치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며 서로의 손을 꼭 쥐어주는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고립을 넘어 온기를 잇는 ‘시민 참여형 공감 감수성 및 연대 강화’
현대 사회가 낳은 극심한 단절과 무연고의 아픔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지혜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 창출.
"혼자서 거대한 고립의 벽과 쓸쓸함의 파고와 마주하면 숨이 막히고 버겁지만, 경기도 도민들이 손을 잡고 함께 연대를 외치면 그 어떤 어둠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존엄의 그물망으로 잇는 ‘상생 돌봄 네트워크’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다양한 복지 및 시민 커뮤니티들과 도민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모든 이의 삶과 마지막 길이 차별 없이 존중받는 상향식 민주주의와 시민 자치 실현.
"모든 도민과 이웃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공생의 무대" 완성.
도내 각지에서 모인 복지 활동가들과 따스한 연대를 염원하는 수많은 도민이 한자리에 모여 무연고 사망과 사회적 고립의 현실을 직시하고, 경기도를 진정한 '어떤 이의 쓸쓸한 죽음도 방치되지 않는 평화와 자치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았던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온기로 가득 채웠다.
참가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주변을 둘러보면 언제 고립될지 모르는 이웃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간 무관심했던 제 자신을 돌아보며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이웃들과 손을 잡고 '우리가 서로의 든든한 가족이 되어 마지막 길까지 따스하게 배웅하자'며 마음을 모으니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진짜 따뜻한 온기가 내 손끝에서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참가자들의 뭉클한 순간들.
경기도형 돌봄 자치 도시 확산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동네마다 주민들과 복지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홀로 사는 이웃들의 안부를 살피고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는 '우리동네 온기 사랑방'을 상설화하자", "시민들의 반짝이는 에너지를 모아 더 큰 돌봄의 망을 만드는 '경기 생명존엄 연대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꾸리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가 마주한 무관심의 벽과 고립의 파고가 때로는 높고 매섭다 할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연대의 물줄기가 모여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란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세상을 바꾸고 진정한 시민 자치와 공생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힘은 차가운 복지 통계 데이터나 거창한 정부의 무연고자 공영장례 지원 정책 보고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 경기도의 좁은 모임방과 골목길에서 이웃들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우리의 정직한 관심과 다정한 연대로 경기도의 찬란한 존엄 역사를 활짝 밝힌다"며 따스한 온기를 건네는 평범한 시민들과 복지 활동가들의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연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방관과 외면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에 평화와 존엄의 숲을 영원히 일구어가는 공익활동가들과 도민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도 곳곳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온기들이,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기도의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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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6● 무연고자의 정의 및 현황
무연고자는 일반적으로 연고자가 존재하지 않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연고
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를 모두 포함하여 정의합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무연고 시신의 범위를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는 경우” 로 규정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의 지침에서는 여기에 “연고자가 있음에도 불구하
고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를 추가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법과 행정 지침은 현실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는 사망자의 상황을 반영하
고자 범위를 확대해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무연고자’라는 단어에 고립되고 외로
운 삶을 떠올립니다. 실제로 ‘무연고 사망자’라는 표현은 개인의 삶을 단순히 ‘연
결된 사람이 없는 사람’으로 오해하게 만들고, 고인의 복잡하고 다면적인 삶의 맥
락을 지워버립니다. 그러나 실제로 무연고 사망자의 다수는 고립된 상태에서 죽음
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적 인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로 장
례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무연고 사망자의 약 70% 이상은 ‘연고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신 인수
를 거부하거나 기피한 경우’로 분류됩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고립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 가족 간 단절, 법적 책임 회피 등의 현실적 문제들
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2020년 기준으로 시신 인수를 거부한 연
고자는 약 2,200명 수준이었지만, 2023년에는 약 4,000명 이상으로 급증하였으며, 그 비율 또한 74.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통계는 단지 숫자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에서 고령화와 빈곤, 가족 해체가 죽음의 양상에까지 영향
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보건복지
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에는 1,025명이었던 무연고 사망자 수는 2023
년 기준으로 5,415명을 넘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불과 10년 만에 약 5배 가
까이 증가한 수치이며, 그 배경에는 고령화 사회의 가속화, 급속한 1인 가구 증
가, 전통적인 가족 구조의 해체, 사회적 고립 등의 다양한 요인이 자리하고 있습
니다. 연령별 분포를 살펴보면, 무연고 사망자 가운데 70세 이상 고령층이 약
41.5%, 60대가 약 31.5%를 차지하고 있으며, 50대 이하의 중장년층도 상당수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성별로는 남성이 약 74%로 여성을 크게 웃돌고 있습니다. 이
러한 통계는 특히 노년기에 이르러 사회적 관계가 끊기고, 경제적 기반이 없는 이
들이 쉽게 무연고자로 전락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무연고 사망자 수는 지역별
로도 편차가 존재합니다. 경기도는 수도권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인구 규모, 급속
한 도시화로 인해 무연고 사망자가 많은 지역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8년 경기도의 무연고 사망자 수는 466명, 2019년에는 615명, 2020년에는 681
명으로 증가세를 보였으며, 이후에도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처럼 무연고 사망자는 단순히 고립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복합적인 구조적 문제의 결과이며, 이제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보편적
인 삶의 마지막 장면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연고자의 증가는 단지 장례 문제
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복지체계와 공동체의 책임, 그리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문제입니다. ● 무연고자의 주요 특징
무연고자의 특징은 단순히 ‘연고자가 없는 사람’이라는 단어로는 설명하기 어렵
습니다. 이들은 연령적, 경제적, 사회적, 제도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무
연고’라는 분류에 이르게 된 사람들입니다. 특히 이들의 삶의 배경과 죽음의 과정
을 살펴보면,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들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첫 번째로, 무연고자의 연령 분포는 명확히 고령층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보건복
지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무연고 사망자 중 60세 이상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특히 70세 이상 고령자는 4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60대와 70대가 중심
을 이루고 있으며, 80대 이상도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고령화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고령자들은 은퇴 후 정기적인 소득원이 끊기고, 배우자의 사망이나 자녀와의 관계 단절 등으로 인해 돌봄의 범위가 급격히 좁아
지게 됩니다. 특히 1인 가구로 노후를 보내는 이들은 육체적·정서적 고립 상태에
놓이기 쉬워 무연고자로 분류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경제적 빈곤은 무연고자가 되는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입니다. 무연
고 사망자의 가족이나 연고자가 존재하더라도, 장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가 다수를 차지합니다. 실제로 2023년 기준 무연고 사망자
의 약 74%는 가족이 있음에도 경제적 사정 등으로 장례를 포기한 사례였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이 2015년에 발표한 장례비용 관련 자료에 따르면 평균 장례비는
1,380만 원에 달하며, 이는 중산층 이하 가정에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조의금 등으로 일부 충당이 가능하더라도, 초기 비용과 급작스러운 사망의 경우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은 장례 참여를 포기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세 번째로, 사회적 고립 역시 무연고자 발생의 중대한 배경입니다. 특히 도시화
가 급속히 진행된 이후 공동체 기반이 무너지고, 이웃과의 교류가 줄어든 것이 결
정적인 원인 중 하나입니다. 1인 가구로 살아가는 노인들 중에는 가족은 물론 이
웃과도 단절된 채 지내는 경우가 많으며, 병원이나 요양시설, 고시원, 쪽방 등에서
홀로 숨을 거두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은 평소부터 돌봄의 사
각지대에 있었고, 사망 이후에도 아무도 그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고립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공동체 전체의 돌봄 시스템이 약화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네 번째로는 법적·제도적 한계가 있습니다. 현행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나 관련
지침에서는 연고자의 범위를 부모, 자녀, 배우자, 형제자매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하며, 사실혼 배우자, 오랜 친구, 며
느리나 사위 등 실질적 관계가 법적 관계를 대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법적으로 연고자가 아니기 때문에 시신 인수나 장례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10년 이상 함께 살아온 사실혼 배우자가 있어도, 그 관계
를 증명할 법적 문서가 없다면 장례 절차에 참여조차 하지 못하고, 행정적으로는
‘무연고자’로 분류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러한 제도적 제한은 단지 형식적인
문제가 아니라, 고인의 삶과 관계를 부정하고, 남겨진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기는 원인이 됩니다. 결국 무연고자로 분류되는 많은 사례들은 진정한 ‘무연고’ 가 아닌, 법과 제도의 한계, 사회적 구조의 문제, 경제적 불평등이 만들어낸 행정
상의 ‘무연고’일 뿐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무연고자 문제를 단순한 장례 문제로 국
한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이는 고령화, 빈곤, 가족 해체, 사회적 단절
이라는 사회 구조 전반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며,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위한 제
도적 보완과 공동체적 인식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경기도의 공영장례 정책
경기도는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장례 절차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이들의 죽음
이 외롭고 소외된 방식으로 마무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
례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의 주요 목적은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
를 통해 사망자의 존엄을 지키고, 위생상 위해 요소를 방지하며, 지역사회 구성원
으로서의 책임을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지원 대상은 경기도 내에서 사망한 무연
고자로 한정되며,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거나,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하
거나 기피한 자’가 모두 포함됩니다. 이는 단순히 혈연이 없다는 개념을 넘어, 현
실적으로 관계가 단절되었거나, 경제적·법적 사유로 인해 가족이 시신을 인수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포괄하고 있습니다. 경기도는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 절차에 필요
한 비용을 시·군 보조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1인당 최대 160만 원까지 장례
비를 지원합니다. 이 비용에는 장례식장 사용료, 염습, 수의, 입관, 운구, 화장 또
는 매장, 위패 설치, 추모의식 등의 기본적인 장례 절차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
히 일부 시군에서는 여건이 허락되는 경우, 조문객을 위한 간소한 빈소를 마련하
거나, 지역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시민참여형 공영장례를 시범적으로 추진하고
있기도 합니다. 공영장례의 신청은 온라인 또는 관계 기관의 협조를 통해 이루어
집니다. 일반적으로 병원, 요양기관, 경찰서, 사회복지기관, 장례업체 등에서 무연
고 사망자를 확인한 후 관할 지자체에 장례 지원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
다. 이후 지자체가 대상 여부를 판단하고, 협약을 맺은 장례업체를 통해 장례가
집행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실질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가
장 큰 문제는 ‘유족의 배제’입니다.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되면, 가족이 시신 인수
를 거부하는 순간부터 모든 장례 절차의 주체가 장례업체와 지자체로 넘어가게
되며, 유족은 더 이상 장례에 개입할 수 없게 됩니다. 시신 처리 위임서를 제출한
유족에게 장례 일정이나 진행 상황이 통보되지 않아, 고인의 마지막을 지켜볼 기
회조차 박탈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인간적인 상실감과 죄책감을 더욱 깊게
만들며, 제도적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경기도만의 상황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에서는 ‘나눔
과나눔’이라는 시민단체와 협력하여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에 일반 시민들이
조문할 수 있도록 빈소를 개방하고 있으며, 고인을 기억하는 기록도 함께 남기고
있습니다. 부산의 경우도 ‘반빈곤센터’와 같은 단체가 공영장례에 참여하고, 사별
자를 위한 애도 공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들 지역은 단순히 행정 절차로서의
장례를 넘어,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공동체적 장례문화’로 발전하고 있는 사례입니
다. 반면 경기도는 제도적 토대는 마련되어 있지만, 서울이나 부산처럼 전용 빈소
를 운영하거나 시민 참여를 장려하는 구조는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공영장례의 신청과 집행이 대부분 장례업체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장례의
공공성과 인간적 의미가 희석될 위험도 있습니다. 일부 장례업체는 공영장례를
‘사진만 찍고 곧바로 처리하는 형식적 절차’로 운영하며, 고인을 추모할 최소한의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
서 경기도는 앞으로 공영장례 제도의 실질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 제도 개선에 나
서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유족에게 장례 일정을 안내하고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 시민들이 조문할 수 있는 공간 마련, 장례업체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그리
고 공영장례 운영 전담 조직의 설치 등이 필요합니다. 장례는 단순한 시신 처리
과정이 아니라, 고인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중요한 의식
이라는 점에서, 행정 효율보다 인간 존엄에 무게를 두는 접근이 절실합니다. ● 공영장례의 사회적 의미와 향후 과제
공영장례는 단순히 고인의 장례 절차를 국가나 지자체가 대신해주는 것에 그치
지 않습니다. 이는 사회가 마지막까지 한 개인의 삶과 죽음을 책임지고, 그의 존
재를 잊지 않겠다는 공동체의 의지를 보여주는 실천입니다. 무연고 사망자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애도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
고 있으며, 공영장례는 이러한 변화의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공영장례의 의미가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제도적 과제가 남아 있습
니다. 첫째, 공영장례의 대상자, 절차, 일정 등에 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어
야 하며, 유족이나 지인, 시민이 장례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보 제공 체계가 강화
되어야 합니다. 현재는 시신 처리 위임서를 작성한 유족조차 장례 일정을 알지 못
하는 일이 많아, 애도할 기회조차 잃고 있습니다. 둘째, 장례업체 중심의 획일적인
집행 구조를 개선하고, 유족이나 시민사회가 장례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편해야 합니다. 무연고 사망자라고 해도 고인을 애도할 사람이 존재하
며, 이들의 참여를 막는 현 체계는 장례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셋째, 부
고 알림 시스템 구축도 시급합니다. 시민이 자발적으로 조문하고 참여할 수 있도
록 하기 위해서는 장례 일정, 장소, 고인의 기본 정보 등이 공개되는 것이 필요합
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별빛버스’나 온라인 추모 공간을 운영하고 있으나, 전국
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영장례는 고인을 기억하는 사회적 의식의 장이며, 살아 있는 우리 모두가 언젠
가는 맞이하게 될 죽음의 형태를 미리 고민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경기도는 단
순히 비용을 지원하는 행정 차원을 넘어, 공영장례를 통해 ‘삶의 마지막을 존중하
는 지역사회’라는 가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무연고 사망자라는 단어가 더 이상 외
로움의 상징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마지막까지 함께한 존재로 기억되기를 바랍
니다. 이러한 전환이야말로 공영장례의 궁극적인 사회적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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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9● 광복 80주년의 의미
2025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이 일제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난 지 정확히 80주년
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광복절은 단순한 국가 기념일을 넘어, 억압과 폭력 속에서
도 자유와 독립을 갈망한 민중의 피와 눈물의 역사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과 함께 찾아온 해방은 한국인들에게 단순한 정치적 독립
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는 순간이었습니다. 특히 올해 80주년은 더
욱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은 전쟁, 분단, 산업화, 민주화라는
험난한 길을 걸어왔지만, 여전히 역사 왜곡과 분단의 상처는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렇기에 80주년은 과거를 단순히 기념하는 차원을 넘어, 앞으로 우리가 어떤 나
라를 만들어갈 것인가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주 간
과되었던 주제가 바로 여성 독립운동가입니다. 남성 중심의 역사 서술 속에서 여
성들의 역할은 종종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총을 들고 싸우거
나, 첩보 활동에 나서거나, 해외에서 외교 활동을 이어가는 등 결코 작은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가정과 사회의 억압적 관습을 깨고 독립운동에 헌신
한 여성들의 행보는 오늘날 성평등과 인권의 시각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우리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다시금 조명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들은 역사의 공백 속에 묻힌 존재가 아니라, 독립의 완성을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 여성 독립운동가의 역사적 역할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직접적 무장 투쟁에 참여한 여성들입니다. 대표적으로 남자현 지사는 만주와 중국
에서 항일 무장투쟁에 참여하며 일본 군인 암살과 폭탄 투척 계획을 주도했습니
다. 그녀는 "내 몸이 썩어 없어져도 조선 독립의 밑거름이 된다면 영광"이라며 생
을 바쳤습니다. 둘째, 문화·교육 활동을 통해 민족 의식을 고취한 여성들입니다.
김마리아, 박인덕 등은 여성 교육 운동을 통해 식민지 상황 속에서도 민족의 미래
를 이끌 차세대를 키우려 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여성에게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는 혁명적 의미를 가졌습니다.셋째, 국제
무대에서 외교적 활동을 벌인 여성들입니다.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의 상징적 인
물로 남았다면, 그 외에도 독립운동을 국제사회에 알린 여성들이 존재했습니다. 김알렉산드라(고려인 독립운동가)는 러시아 혁명과 연계해 활동했고, 정정화 지사
는 임시정부의 자금을 전달하며 항일 외교의 실질적 지원을 했습니다. 이렇듯 여
성 독립운동가들은 단순한 보조적 역할을 넘어, 독립운동 전선의 다양한 층위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들의 헌신은 총칼 앞의 용맹뿐 아니라, 문화·교육·외
교 전선에서 ‘조국의 독립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몫’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 유관순 (1902~1920)
유관순은 충청남도 천안 병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하며 어려
서부터 교육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습니다. 당시 조선은 일제 식민 지배
로 민족의 자존심이 짓밟히던 상황이었고, 유관순 역시 어린 나이부터 나라 잃은
설움을 체감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유중권, 어머니 이소제와 함께 기독교 신앙을
지켰으며, 이는 이후 독립운동에 나서는 데 정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1915년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한 유관순은 신여성으로 성장하며 민족 문제에도
관심을 키웠습니다. 특히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이화학당 동급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고종 황제의 서거가 전국적 분노를 불러일으
킨 가운데, 유관순은 “나라를 되찾는 데 여성도 앞장서야 한다”는 신념으로 행동
에 나섰습니다.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시위에 참여한 그는 이후
고향으로 내려가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이 시위에는 수천 명의
군중이 모였으며, 일본 헌병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수십 명이 사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관순의 부모 역시 일본군의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비극 속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만세를 외쳤습니다. 체포된 유관순은 서대
문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감옥에서도 그는 동료 수감자들을 이끌며 독립 의지
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1920년 3·1운동 1주년을 맞아 옥중 만세운동을 벌였고, 일
본 간수들에게 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결국 1920년 9월, 만 18세의 나이로 순
국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죽음은 전국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본
당국은 장례조차 통제했지만, 민중들은 그녀를 ‘대한의 딸’, ‘조선의 잔다르크’라
부르며 기렸습니다. 그녀는 비록 짧은 생애를 살았으나, 3·1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하며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았습니다. ● 남자현 (1872~1933)
남자현은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났습니다. 19세기 말 조선은 외세의 침략으로
혼란스러웠으며, 그는 어려서부터 강한 애국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일찍 결혼했
으나 남편을 병으로 잃고 홀로 아들을 키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국권 침탈
이 본격화되자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독립운동에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남자현은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을 지원하는 활동에 나섰습니다. 그는 식량과 자금을 마련해
전달하는 것은 물론, 직접 무기를 다루며 항일 무장투쟁에도 뛰어들었습니다. 당
시 여성으로서 무기를 들고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지만, 그는 “나라 없는 여성에게는 가정도, 삶도 없다”며 투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
본군 고관 암살을 계획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1932년에는 하얼빈에서 일본의
대사와 관리들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체포되었습니다. 체포 후 일본 경찰의 가혹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동지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감옥에서 단식을 이어간 끝에 1933년 옥중에서 순국했습니다. 남자현
지사의 투쟁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첫째, 여성으로서 ‘직접 무장투
쟁’에 나섰다는 점입니다. 이는 독립운동이 단지 남성의 몫이 아니었음을 증명했
습니다. 둘째, 그는 조국 독립을 위해 자신의 삶을 철저히 희생했으며, 심지어 자
녀에게조차 “나는 조국을 위해 살다 갈 것이다”라는 신념을 남겼습니다. 남자현
지사는 비록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못했으나, 실제로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의 생애는 여성 독립운동가의 저항 정신을 대표하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 정정화 (1900~1991)
정정화는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받으며
새로운 사상을 접했고,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당
시 많은 여성들이 거리 시위에 참여했으나, 정정화는 단순한 시위 참여에 머물지
않고 임시정부와의 연결 고리를 자처했습니다. 1920년대 그는 중국 상하이로 건
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임시정부가 운영되는 데 가장 큰
문제는 자금난이었는데, 정정화는 국내에서 모은 독립운동 자금을 중국으로 전달
하는 위험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일본 경찰의 감시가 삼엄했지만, 그는 어린 딸을
데리고 위장해 국경을 넘나들며 자금을 전달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심부름’이 아
니라 임시정부 존립의 핵심을 떠받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정정화는 임시정부 요
인들의 가족을 돌보는 역할도 했습니다. 그녀는 독립운동가의 아내라는 위치에 머
물지 않고, 스스로 ‘운동가’로서의 자각을 갖고 행동했습니다. 실제로 훗날 회고록
『장강일기』에서 “나는 독립운동가의 아내가 아니라, 나 자신이 독립운동가였다”고
밝힌 것은 여성 독립운동의 주체성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광복 이후에도 정정화
는 독립운동가 가족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광복 후 혼란스러운
시국 속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잊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이들의 공적을 알
리기 위해 기록을 남겼습니다. 1991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우리의 독립운동은 끝나지 않았다”는 정신을 간직했습니다. 정정화 지사의 삶은
여성의 역할이 단순히 보조적이라는 편견을 넘어섰습니다. 그녀는 독립운동의 현
장에서 자금·외교·생활 전반을 지탱한 보이지 않는 중심축이었으며, 여성 독립운
동가의 대표적 상징으로 평가됩니다. ● 김마리아 (1892~1944)
김마리아는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났습니다. 기독교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서
양식 교육을 받으며 민족 의식을 키웠습니다.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그는 여성
으로서 할 수 있는 길을 찾다가 교육과 계몽을 통한 독립운동을 결심했습니다. 일
본 유학 시절, 그는 기독교계와 학생운동을 통해 민족 문제를 접했고, 점차 정치
적 투쟁으로 방향을 확장했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그는 도쿄 유학생 시위
에 적극 가담했습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했으나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귀국한 김마리아는 국내 여성들을 규합해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를 조직했습니다. 이 단체는 여성들의 조직적 항일운동을 주도하며, 독
립군 자금 모금과 애국계몽 활동을 펼쳤습니다. 여성들이 단순한 가정의 역할을
넘어 독립운동의 주체로 나선 상징적 사례였습니다. 1920년대 이후 김마리아는
상하이 임시정부와도 연계했습니다. 해외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여성 교육과
독립운동을 병행했으며, 미국에서도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미주 지역 교포
사회와 기독교계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제적으로 조선의 독립을 알렸습니다. 그러
나 그의 삶은 끊임없는 탄압 속에서 이어졌습니다. 일본 경찰은 그를 “위험 인물” 로 분류했고, 체포와 감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건강이 악화되어 광복을 보
지 못한 채 1944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마리아는 독립운동사에서 여성 지도자
로 평가됩니다. 그는 무장투쟁 대신 교육과 조직, 국제 외교 활동을 통해 독립운
동의 기반을 확장했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고, 사회적 역할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해방 이후 여성운동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평가됩니다. ● 윤희순 (1860~1935)
윤희순은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를 온몸으로 겪은 여
성 독립운동가였습니다. 그는 일찍이 유학자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가 전통적인 여
성의 삶을 살았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습니다. 특히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을미사변 이후, 그는 의병운동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습니다. 윤희순은 단순히 의병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병가와 격문
을 지어 민중의 저항 의지를 고취했습니다. 그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문학적 수단을 항일운동의 무기로 삼았으며, 이는 일종의 ‘문화적 무장투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시와 노래는 남성 의병들에게 전해지며 투쟁 의지를 불태우
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윤희순은 직접 의병을 모집하고, 군수품과 자금을 조달
했습니다.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부상자들을 간호하며 후방 지원에도 헌신했습니
다. 그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자리가 부엌과 가정에 한정되었던 시대를 넘
어, ‘의병장과 같은 여성’으로 활동했습니다. 1907년 정미의병 이후 일제가 무력
진압을 강화하자 윤희순은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만주 지
역에서도 의병 잔여 세력을 규합하며 항일 투쟁을 지속했지만, 일제의 끊임없는
탄압 속에서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다. 1935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내가
죽어도 조선은 반드시 독립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윤희순은
여성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최초의 의병 여성 지도자로 평가되며, 후대에 ‘의병장
할머니’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 오늘날 여성 독립운동가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여성 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공로를 기리는 차원이 아닙니
다. 이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역사 정의의 문제입니다. 첫째, 역사적 균형의 회복
입니다. 그동안 독립운동 서술은 남성 중심적이었고, 여성의 활동은 부차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여성 독립운동
가를 다시 조명하는 것은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작업입니다. 둘째, 성평등의 관점
에서 본 재조명입니다. 여성들은 식민지 상황뿐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 구조라는
이중 억압 속에서도 싸워야 했습니다. 이들의 투쟁은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라, 여성 해방의 기초를 닦은 운동이기도 했습니다. 셋째, 청년 세대에게 주는 교훈입
니다. 오늘날 자유와 민주주의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일은 현재 세대가 누리는 권리와 자유의 뿌리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는 단순히 기념식에 머무르지 말고, 기억의 확장을 해야 합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불러내고, 그들의 이야
기를 교육과 문화 속에서 계승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의 완성이라 할 수 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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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0눈부신 경제 성장과 화려한 도심의 야경 뒤편, 대한민국은 오늘날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장 심각한 사회적 위기 중 하나와 마주하고 있다. 그것 바로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채 홀로 세상을 떠나 뒤늦게 발견되는 ‘고독사’의 비극이다.
"우리가 매일 바쁘게 스쳐 지나가는 이 다정한 도시의 골목길에서, 어째서 누군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도 찾지 않는 차가운 방에 홀로 방치되어야 했을까?"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관계의 단절, 그리고 1인 가구의 급증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밀려드는 고독사의 묵직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막기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과 지역 사회의 연대 방안을 깊이 조명한다.
단절된 관계를 잇고 이웃의 안부를 살피는 ‘사회적 고립 가구 발굴 및 돌봄망 구축’
수도세·전기세 장기 체납 정보, 관리비 미납 이력 등 위기 징후 데이터를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로 선제적으로 포착하고, 통장·반장 및 지역 주민들이 직접 방문해 안부를 묻는 촘촘한 인적 안전망 가동.
"혼자 살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일상 속의 환대.
단순한 생계 지원을 넘어, 마음의 문을 여는 ‘통합 심리 상담 및 커뮤니티 공간’
경제적 지원에만 그치지 않고, 은둔 및 고립 청년과 중장년, 그리고 독거 어르신들이 동네 복지관이나 작은 도서관에 모여 함께 밥을 먹고 취미를 나누며 사회적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거점 확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작은 통로"를 열어주는 따뜻한 심리적 치유 프로그램.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고 유품 정리를 지원하는 ‘공공의 책임 강화’
고독사 발생 시 유족의 부재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방치되던 장례 절차와 유품 정리를 지자체가 공공의 책임으로 지원하고, 고인이 살아온 삶을 쓸쓸하지 않게 배웅하는 조례와 제도적 기반 안착.
"태어날 때 존중받았듯, 떠날 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도록" 보장하는 복지 국가의 마침표.
고독사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경기도 내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모인 현장 활동가들과 도민들의 모임은, 깊은 안타까움과 함께 실천적 다짐을 나누는 뜨거운 온기로 가득했다.
현장 돌봄 활동가들의 진솔한 증언 세션: "반찬을 배달하러 문을 두드렸을 때 아무 소리가 나지 않던 그 순간의 서늘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웃의 작은 관심만이 유일한 방패입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돌봄 활동가들의 뭉클한 순간들.
경기도형 고독사 예방 정책을 짚어보는 브레인스토밍: "단순히 물품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이웃들이 서로를 매일 살피는 '동네 지킴이 톡방'이나 '소모임 커뮤니티'를 의무적으로 활성화해야 한다"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도민들의 진지한 눈빛들.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어떤 이도 차갑고 외롭게 방치되지 않도록, 경기도 구석구석에 촘촘한 안부의 그늘을 만들고 모든 도민이 존중받는 공정하고 다정한 내일을 위해 끝까지 함께 걷겠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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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6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경기도의 공익활동지원금을 받는 78개 단체 중 5개 단체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런 글을 작성하는 이유는 어떤 단체들이 경기도민의 공익을 위해 애쓰고 있는지를 소개함과 동시에, 비영리민간단체들을 운영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보조금을 받을 법한 사업이 어떤 것인지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경기도에는 2000개가 넘는 비영리 민간단체가 있는데, 보조금을 받고 있는 단체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검증을 마친 단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합니다. 오늘은 1) 허지혜컴퍼니 2) 사단법인탑교육문화원 3) 사단법인 돌보미연대 4) 수리산자연학교 등 네 개 단체를 살피겠습니다.

허지혜컴퍼니
허지혜컴퍼니는 ‘문화예술을 통한 다양한 캠페인활동, 재능 기부, 장애인 지원활동 등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 앞장서는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 이라고 단체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랜선으로 찾아가는 교과서 미술 음악회’라는 제목으로 990만원의 지원사업비를 수령했습니다.
이 단체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청각장애 아동들에게 소리 꽃 선물하기’, 청년 장애 예술가와 함께하는 ‘원더풀 프로젝트’, ‘문화체육 관광부와 함께하는 “Overcome Together” Challenge 참여 캠페인’, SBS 뉴스와 함께하는 ‘제 21대 총선거 투표 참여 캠페인’, 외교부와 함께하는 글로벌 문화꿈나무 ‘캄보디아 아리랑’, 하나금융그룹과 함께하는 ‘뉴욕 사회적기업탐방 연수 참가’, 경기도 일자리재단과 함께하는 ‘찾아가는 문화공연 런치콘서트’,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함께하는 ‘베트남 사회적기업탐방 연수 참가’ 등 다양한 공익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영리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이 단체는 ‘관객의 니즈, 상황, 목적에 맞춰 창작 및 기획’하여 ‘관객 맞춤형 공연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 핀란드 대한민국 대사관 비대면 공연, 안양문화재단 예술활동프로젝트, 충남문화재단 지역문화예술특성화 사업 등 활발한 예술기획 및 공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악과 서양악기의 퓨전이 강점인 이 단체는 음악교육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청소년국악관현악단’, ‘치매예방교육음악회’, ‘아동교육음악회’, ‘악기체험’ 등 다양한 음악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교육청과 함께 평택 청소년 국립관현악단은 운영하고, 어르신들을 위한 치매예방 음악회 ‘그럴 때 마다’, 유아 국악교육 콘서트들도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멋진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는 이 단체는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단법인 탑교육문화원
이 단체는 경기도교육청에 등록된 사단법인입니다. 이 법인은 ‘미래 사회에 필요한 과학적 지식 함양과 혁신 인재 양성’을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단체는 4차산업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과학기술 체험학습을 주 사업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경기도는 ‘도민과 함께하는 AI SW 교육생태계조성’으로 1162만원을 지원했습니다.
이 단체는 2012년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경기도청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비영리 민간단체도 같은 년도에 설립하고 경기도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2017년부터 VR, 코딩, 드론, 빅데이터, 3D 프린팅 등 4차산업시대와 관련된 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2019년에는 이동형가상현실(VR)체험 버스가 ‘ICT규제샌드박스 실증을 위한 규제특례’로 지정되었습니다. 실증을 위한 규제특례”란 규제로 인해 정보통신 및 정보통신융합 신기술·서비스 사업의 시행이 불가능한 경우,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시험·검증을 임시로 허용해주는 서비스를 말합니다.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 제38조의2 참조).
단체가 예시로 제공한 교육프로그램은 체험과 심화과정으로 나뉘어 집니다. 체험에서는 과목에 따라 가상현실, 3D 프린팅, SW 코딩, 드론코딩, 빅데이터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및 컨텐츠를 제작하게 됩니다. 2~4교시 동안 교육이 진행됩니다. 심화과정은 2교시로 구성된 수업을 5~20회동안 진행합니다.
특별한 것은 VR(가상현실)버스입니다. 이 버스는 VR을 체험할 수 있는 의자 및 영상장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냉난방 장치도 완비되어 있어 계절과 관계없이 최신 기술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줍니다. 하루 최대 1300명의 체험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탑교육문화원의 교육이 신선했던 것은 공익사업이 사회적약자 및 환경개선, 북한돕기 등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익활동과는 크게 달랐기 때문입니다. 4차산업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함으로 도민들에게 공익을 제공하는 것은 참 혁신적으로 보였습니다.
사단법인 돌보미연대
돌보미연대는 2010년 사단법인으로 등록이 되었고, 2019년 경기도에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하였고, 경기도 공영장례지원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2008년 밀알적십자 외 240명의 단원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고, 2009년 경기도의 1365 무한돌보미 사업을 담당했습니다. 이 사업은 돌봄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결연을 하는 단체입니다. 경기도에서 의료비, 생계비, 학자금 등 갑작스러운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상시 자원봉사 돌봄 관리시스템을 갖추는 사업입니다.
돌보미연대는 떡국, 김치 등 음식나눔, 고독사 방지용 희망콜 설치 사업등 활발한 사업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경기도 공영장례지원 콜센터’로 1628만 5천원의 지원금을 받았습니다.
공영 장례서비스는 무연고 사망자들을 위한 장례를 치루어 주는 것으로, 단체 홈페이지에 따르면 ‘인간적인 환송과 사회공동체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입니다. 장례를 치루어 줄 수 있는 가족과 지인들이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간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예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는 도민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업을 진행한다고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이 단체는 공영장례와 더불어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웰다잉 서비스’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경기도에서도 추진하고 있는 사업입니다.
수리산자연학교(군포)
수리산은 안양과 안산에 걸쳐 있는 산으로, 지역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산입니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지만, 수리터널, 수암터널 및 제1외곽순환고속도로 등 많은 고속도로들이 지나고 있는 위협을 받고 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수리산 자연학교는 이런 위기의식 속에서 생겨났습니다.
군포 산본신도시에 입주했던 단체의 대표출신 이금순씨는 환경영향평가등이 생략된 채 주민들의 동의여부도 묻지 않은 소각장 건립 반대운동을 하며 단체가 시작되었다고 중앙일보 인터뷰를 통해 밝혔습니다. 3년 간 투쟁하며 소각장 위치가 옮겨지게 되었고 그간 산을 공부하며 자연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자연학교에서는 월례기행, 생태지도자교육, 토요생태기행, 책가방 없는 날, 교사연수, 시청 환경학교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단체는 자원봉사를 하는 주부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단체활동이 주안점은 지역에서 생태교육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주부들은 최소 1년간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 현장에 나가서 생태교육을 하게 됩니다. 1천여 종의 동식물 및 곤충이 살고 있는 수리산을 잘 보존하고 싶은 것이 이 단체가 바라는 바입니다.
이 단체는 ‘생태마을을 위한 환경교육 및 보전활동’으로 850만 2천원을 수령했습니다.
나가며
이번 포스팅은 지면관계상 4개 단체를 소개했습니다. 경기도에 훌륭한 공익사업을 하는 단체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며 기쁘게 글을 적었습니다. 앞으로 두 번 더 경기도에 있는 공익단체들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모든 단체를 소개하고 싶지만 능력이 닿는 범위인 15~20여개 남짓의 보조금을 수령하는 단체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13961189
http://www.ansan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210
http://dolbomi.dothome.co.kr/bbs/link.php?bo_table=notice&wr_id=36&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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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