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우리는 흔히 ‘공익(公益)’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 떠올리는 풍경이 있습니다. 세련된 회의실, 정갈하게 인쇄된 브로슈어, 혹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비장한 표정의 활동가들. 하지만 인간의 자잘한 발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싶은 저에게, 공익은 종종 엉뚱한 곳에서 낡은 슬리퍼를 신은 채 발견되곤 합니다. 이를테면, 안산의 어느 버스 정류장 앞, 조잡하게 쓰인 ‘커트+염색 만원’이라는 입간판 같은 곳에서 말이죠. 제가 발견한, 세상에서 가장 싸고 가장 향기로운 어느 미용실의 이야기를 만원의 공익으로 재구성했습니다.

1장. 만원이라는 비현실, 추억이라는 현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손바닥만 한 입간판에 씌어 있는 네 글자. ‘커트+염색 만원’. 처음엔 뭔가 잘못 읽은 줄 알았다. 2층을 올려다보니 '김량현 헤이클럽'이라는 간판이 창문에 붙어 있었다. 창문에도 ‘커트+염색 만원’ 문구가 크게 쓰여 있었다.
요즘 세상에 ‘만원’의 가치는 어디쯤 와 있을까. 카페에 앉아 쌉싸름한 아메리카노 한 잔에 조각 케이크 하나를 더하면 가볍게 만원을 넘어선다. 내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는 비용은 동네 미용실에서도 어느덧 만 원권 지폐 한 장을 더 요구하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커트와 염색 합쳐서 만원’이라니. 이건 자본주의의 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종의 유쾌한 도발이다.
그 낡은 입간판을 보는 순간, 내 안의 오래된 서랍 하나가 삐걱거리며 열렸다. 고등학교 시절, 동인천 대한서림 사거리에 있던 미용 기술학교. 주말이면 미용을 배우는 학생들이 실습 겸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머리를 깎아줬다. 어머니에게 이발비를 받아 싼 맛으로 이발하고, 남은 돈으로 만화책을 봤던 얄팍한 추억이 살아났다. 때로는 고등학생인 나보다 어린 학원생이 손을 바들거리며 가위를 들었다. 가끔은 쥐가 파먹은 듯 삐죽거리는 머리를 보며 속상해하기도 했지만, 뒤에서 쓱 가위를 뺏어 들고 능숙하게 수습해 주던 선생님의 손길이 있어 안심했던 시간이었다. ‘커트+염색 만원’이면 아마 그때와 비슷할 듯 속으로 웃음이 비죽 새어 나왔다.
나는 그 ‘비현실적인 가격’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설령 머리를 망친다 한들 어떠랴. 내가 카메라 불빛을 받는 연예인도 아니고, 머리카락이란 결국 자라나기 마련인 유한한 세포 뭉치일 뿐인데. 호기심이라는 유치한 연료를 채우고, 나는 2층 계단을 올랐다.

2장. 미용실의 외피를 두른 기묘한 대피소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잠시 공간의 좌표를 잃었다. 그곳은 미용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순수한 창고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온전한 살림집도 아니었다. 미용 도구와 정체불명의 살림살이들이 기묘한 동거를 나누는 공간 한가운데, 낡은 미용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초현실적인 풍경에 압도되어 슬그머니 발을 빼려던 찰나, 사장님이 튀어나왔다.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그러나 눈빛만큼은 지독하게 해맑은 얼굴로.
“머리 깎으러 오셨어요?”
“아, 아니에요. 지나가다 궁금해서… 다음에 올게요.”
“평일 오전이라 한산하지, 주말엔 장난 아닙니다. 아무도 없을 때 깎고 가세요.”
그의 자연스러운 호객에는 묘한 자력이 있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덩그러니 놓인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의자 위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개 두 마리였다.
“미용실에 개가 있네요?”
“저 칸막이 뒤에 네 마리 더 있어요. 총 여섯 마리죠. 개 좋아하세요?”
“아니요… 겁이 많아서 동물은 다 무서워합니다.”
내 고백에 사장님은 호탕하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요 녀석들은 손님만 오면 알아서 창가 지정석으로 가요. 안 짖어요.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자기들이 알아서 그러네. 신기하죠?”
공간에 가득한 미약한 개 내음과 비염이 있는 내 코의 긴장감 속에서, 그렇게 기묘한 이발이 시작되었다.


3장. 안산에서 가장 싸고,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가위질 소리 사이로 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가격으로 운영이 돼요?”
사장의 대답은 단순했다.
“저는 강아지 밥값만 벌면 돼요.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딱 필요한 만큼만 벌죠.”
그는 이전에 본오동에서 미용실을 할 땐 커트와 염색에 6천 원을 받았다고 했다. 국회의원도 단골이었고, 직원도 둘이나 뒀던 ‘잘나가는 원장님’이었다. 혼자 이곳으로 옮겨오며 가격을 ‘인상’한 게 고작 만원이란다. 이야기 도중, 사장님이 갑자기 창문으로 돌진하더니 창밖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엄마! 그거 열무야? 맛있겠다! 나도 줄 거지? 땡큐! 그럼, 내일 9시에 와요, 파마하게! 나 지금 일하는 중이야!”
돌아선 그의 얼굴엔 멋쩍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동네 어르신인데 파마할 때가 지났는데도 안 보이시길래, 언제 지나가나 창밖을 매일 살폈단다.
“여기로 이사 온 후부터는 혼자라 파마는 안 하는데, 80세 이상 할머니들만 아침 일찍 해드려요. 우리 가게는 80세 이상이면 파마든 커트든 염색이든 다 무료거든. 폐지 줍는 어르신들도 오시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공짜 손님만 치러요.”
“그럼, 강아지 밥값은요?”
내가 걱정스레 묻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대신 주말에 손님이 많아요. 평일엔 택시 기사님들이 오시고. 강아지 밥값은 충분합니다.”

4장.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의 무게
염색약이 머리카락에 스며드는 긴 시간 동안, 나는 한 남자의 행복론을 들었다. 강아지들과 살다 보니 아무리 청소해도 개 냄새가 나고, 그게 미안해서 손님들에게 비싸게 돈을 못 받겠다는 남자. 어르신들을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서 가위를 쥔 손에 차마 돈을 쥐지 못하겠다는 남자. 저녁 6시에 문을 닫고 청소를 끝낸 뒤, 창밖을 보며 소주 한 잔을 기울일 때 세상 부러운 것이 없다는 남자. 머리가 끝났다. 거울 속 내 모습은 꽤 단정했고, 마음은 그보다 훨씬 더 묵직해져 있었다.
“고맙습니다. 여기 만 원이 참 부끄럽네요.”
지갑을 열려는데 사장님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이왕이면 계좌이체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보통은 세금이나 탈세를 떠올리며 의아해할 타이밍이다. 하지만 그의 다음 대답은 내 세속적인 짐작을 기분 좋게 무너뜨렸다.
“다음에 오실 땐 현금 주시고요, 오늘 처음이잖아요. 첫 손님은 계좌이체로 받으면 고마우신 손님 이름이 찍히니까. 이름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래요.”
“싸게 머리 깎은 내가 더 고마운데요.”
“아니에요. 나한테는 우리 애들 밥값 주시는 고마운 분입니다. 이름은 알고 있어야죠.”
타인의 이름을 기억하겠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상거래를 넘어, 당신과 나 사이에 하나의 유대를 맺겠다는 선언이었다. 만 원짜리 한 장에 이름의 기억을 덤으로 주는 미용실이라니. 이 얼마나 위트있고, 다정한 경영 방식인가.
5장. 창밖의 소주 한 잔, 우리가 잊었던 공익
그 후로 종종 나는 그 2층 창가를 바라본다. 어떤 날은 사장님이 홀로 창밖을 보며 쓸쓸히, 그러나 유연하게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고, 또 어떤 날은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시끌벅적하게 잔을 부딪치고 있다. 그 풍경을 보며 나는 ‘공익’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다시 쓴다. 공익은 멀리 있지 않다. 거창한 사회 운동이나 대단한 기부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버려진 유기견들을 거두어 제 식구로 키워내고, 지나가는 동네 노인의 안부를 창문 너머로 소리 높여 물으며,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의 머리를 대가 없이 다듬어주는 것. 그리고 나를 찾아온 낯선 손님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는 것.
비염이 있는 나에게 그 미용실은 코끝이 간지러운, 그리 녹록지 않은 공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만간 그곳의 문을 다시 열 것 같다. 이미 그 남자의 따뜻한 가위질에 중독되어 버렸으니까. 행복이 만 원짜리 한 장으로 거래되는 그 이상한 미용실은, 오늘도 안산의 한구석에서 세상을 아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구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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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9※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길을 따라온 게 아니라 휠체어와 함께 길을 만들며 여기까지 왔어요.”
그의 이야기는 이 한 문장에서 시작한다. 늦게 시작한 공부와 일, 아이를 키우며 멈춰야 했던 시간, 그리고 다시 장애인 활동가로 살기까지, 그는 휠체어로 스스로 길을 내며 살아왔다.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총괄팀장이자 동료상담가 조은상 활동가를 소개한다.
= ‘동료상담가’라는 말이 생소한 분들을 위해 소개부터 부탁해요.
- 저는 안산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IL’)에서 동료상담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장애인이라고 하면 도움과 서비스를 ‘받는 사람’을 상상하잖아요. 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의 정신은 장애인을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바라보는데요, 장애인 당사자가 또 다른 장애인 동료와 하는 상담이죠. 단순히 ‘비슷한 처지끼리 하는 대화’가 아니라, 기존의 전문가 중심 상담 모델로부터 해방된 고도의 정치·사회적 치유와 임파워먼트Empowerment 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정신과 의사나 사회복지사가 장애인을 진단과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상담이죠. 동료상담은 그런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로부터의 해방된 평등한 관계 모델이라 할 수 있어요. 장애인 스스로가 자기 삶의 전문가라고 선언하는 거죠. 자격증의 권위가 아니라 장애를 안고 살아온 ‘생존의 역사’ 자체가 상담의 강력한 도구죠. 상담의 목표 역시 상담가가 아니라 내담자 스스로 ‘자기결정권’으로 설정하고요.
동료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가 대등한 관계로 진행해요. 한쪽이 가르치거나 답을 주는 게 아니라, “나도 그랬다”는 공감을 서로 나누는 거죠. 이 모든 과정이 자립생활 모델과 결합해요. 내면의 힘을 길러서 결국 시설이나 집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살아가게 하는 힘. 더 나아가 개인의 변화를 넘어, 사회의 책임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동력이 되고요.
= 와~ 자립생활센터가 어떤 곳인지도 소개해 주셔야겠어요.
장애인복지관과 비교해 볼게요. 이전엔 서비스를 받거나 이용하러, 즉 이용자로서 장애인복지관을 드나들었어요. IL센터에서는 장애인이 행동의 주체가 돼요. 이용 시설이 아니라 장애인이 직접 일하고 활동하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움직이는 단체죠. 환경과 사회를 장애물이 없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사회 변혁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을 돕는 것을 넘어서 사회를 바꾸는 일이에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삶의 운동이자 삶의 일부예요.
IL의 가장 기본 정신이 권리옹호, 자기결정권과 자기선택권인데요. 어디서 살지,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와 같은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부터 인생의 큰 항로까지,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고자 해요. 거기엔 실패할 권리도 포함돼 있고요. ‘장애인을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 장애인이 없어서는 안 된다’라는 당사자주의고요. 소장부터 내부의 주요 의사결정자들까지 센터 인력의 과반수가 장애 당사자인 것도 그 때문이고요.
장애가 있다고 사회와 격리된 시설에서 살아야 할까요? IL은 비장애인과 똑같이 지역사회 안에서 어우러져 사는 것을 지향해요. 물리적 건물만이 아니라 교육·노동·문화생활 등 모든 사회적 기회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죠. 장애인이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을 문제로 보는 사회적 장벽Social Barrier’이 문제라고 보는 겁니다. 이 운동의 핵심은 개인의 재활이나 극복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있는 거죠.
= 어쩌다 이렇게 엄청난 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을까요?
- 처음엔 아는 언니 따라왔죠. 사진 동아리 ‘포커스휠’에 나가면서도 별로 적극적인 회원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센터에서 동료상담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고 동료상담을 진행해본 게 첫 출발이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센터활동도 하게 되고 그러다가 집단동료상담 리더 교육을 받으면서 생각이 크게 바뀌었어요. 제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죠. 내가 ‘불쌍하고 불행한’ 장애인이 아니라, 사회적 차별과 구조적 모순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거죠. 장애인 동료상담가들이 당당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전에는 직업을 갖기 위해 자격증도 따고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면 센터 활동과 동료상담을 하면서 왜 자립생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는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금까지 센터에서 간사부터 팀장, 센터장까지 경험했고, 지금은 상록수IL센터 총괄팀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IL센터이지만 일에 집중하다 보면 가끔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갈등이 생길 때도 있어요. 그래서 현장의 동료들을 만나면서,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계속 스스로 돌아보게 돼요.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업무 회의 사진제공 조은상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사무실 책상 앞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IL센터 활동 동료상담 사진제공 조은상
= 공부를 늦게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장녀로 태어나 돌 무렵에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걷지 못하게 됐어요. 동생이 셋이었으니 넉넉지 않은 형편에 부모님은 저만 집중해서 돌보기 어려웠을 거예요. 입학할 나이가 됐지만 학교까지 이동하는 것도 어려웠고, 동생들을 희생시킬 순 없지 않냐는 말을 듣고 자랐어요. 그럴 때마다 부모님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아무 말 못 하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집에서 가정교사를 통해 조금씩 공부했지만 늘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책을 읽었어요.
20대에 직업 훈련원에서 옷 만드는 기술을 배워 취업을 하고 보니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20대 후반에 검정고시를 시작했어요. 결혼하고 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힘들다는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느낌이 더 컸어요. 방송대 교육학과를 계속 장학금 받으며 졸업했어요.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했어요. 서로 과제를 알려주고 시험 정보를 나누면서 함께했던 경험이 컸어요. 그때 공부는 혼자보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는 것이라는 걸 느꼈어요.
= 장애 여성으로서 전에 하신 일과 사회생활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어요?
- 장애인이라고 하면 부모가 희생하거나 당사자가 희생하거나 그런 구조잖아요. 공부 기회를 놓치고 사회에 나갔기 때문에 저는 더 열심히 배우고 일했어요. 장애인기능대회가 있었는데 나가서 금메달을 땄어요. 이제 세계 대회를 나갈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연습했고 프라하 세계 장애인 기능대회 나갈 티켓도 땄어요. 그런데 저한테 기술 가르쳐준 선생님들이 그렇게까지 할 거 있냐고 반대하시더라고요. 처음부터 하지 말라고 하든지, 장애인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구나, 상처를 많이 받았죠. 튀지 않고 착한 장애인이길 원했던 것 같아요.
제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도 그랬어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작업장이었는데, 수녀님들이 제 결혼을 걱정하고 반대했어요. 부모님도 심하게 반대해서 5년을 미루다 결혼했어요. 동료상담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비슷했어요. 장애 여성은 교육, 결혼, 출산, 일 등 여러 선택에서 뒤로 밀리고 편견의 대상이에요. 직장에 다닌다고 하면 놀라고, 집이 깨끗하다고 놀라고,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놀라요. 장애인은 돌봄을 받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해요. 저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 평범함이 오히려 특별한 일이 되는 느낌이 있어요.
= 비장애인 여성도 두려워하는 결혼인데 참 씩씩하게 사셨어요. 아이 낳고 키우며, 또 워킹맘으로 살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 30대 후반에 아이를 가졌을 때도 일을 쉬지 않았어요. 배가 불러서 운전하기 힘든데 사장님이 나와서 같이 밥이라도 먹자며 부르셨어요. 당시엔 생소했던 강아지 옷 만드는 일이었는데 일이 많아서 새벽 7시에 출근해서 야근까지 하는 날이 많았어요. 한번은 폭설이 내려 청계 터널에서 2시간을 갇혀 있었는데, 다음 날 보니 타이어가 터져 있더라고요. 저는 천주교 신자인데 아이랑 저랑 정말 주님이 살려주셨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결혼할 때도 그랬어요. 장애인이 어떻게 살 거냐, 아이는 어떻게 키울 거냐. 저도 아이는 낳지 말자 생각했었죠. 일을 계속하고 싶었고 양육에 자신도 없었죠. 어느 날 밤늦게 퇴근하면서, 일만 하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갖기로 했어요. 임신과 출산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이동도 어렵고 병원 가는 것도 힘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일을 할 수 없었어요. 맡길 곳이 없어서 제가 아이를 돌보게 되었어요.

안산의 리프트 택시 사진제공 조은상

상록수 센터에서 진행된 안산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 ‘착한 장애인’이라는 기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 가족 안에서 화목하게 살기 위해서는 많이 참아야 했어요. 장애인이기도 하고 여성이라는 점이 겹치면 어떨까요? 장애인 여성은 더 많이 참고 더 많이 양보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어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존엄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자존감은 많이 낮아져 있었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남들보다 사회생활도 그렇고 뭐든 다 늦었으니까 나는 더 빨리 잘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생각이었어요. 이걸 ‘맏딸 콤플렉스’라고 하죠? 부모님한테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고, 장애인이라 못한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딱딱 다 잘 해내려고 했어요. 하지만 10년 IL 활동을 하며 조금씩 달라졌어요.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서로 힘들게 하잖아요. 이제는 못 하는 건 못 한다고 말해요. 어머니에게도 이번에는 못 간다고 말하게 되었어요. 그럴 힘이 생겼죠.
=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아이를 키우다가 어느 순간 다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한 언니가 등록금을 내줄 테니 공부를 꼭 하라고 말했어요.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버지도 응원해 주셨어요. 마흔 넘어 다시 공부할 때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셨어요. 엄마가 보내준 김치 통 사이에 아버지가 학비에 보태라고 몰래 30만 원이 든 봉투를 넣어두셨는데, 김칫국물에 젖은 그 봉투를 보고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지금도 나요.
=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나 삶의 전환점이 있었나요?
- 2014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저를 많이 도와주던 언니도 돌아가시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였어요. 그 시기에 세월호 참사도 있었고요. 솔직히 우울함도 있었어요. 제가 사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 사건이 너무 크게 다가왔어요. 그냥 뉴스에 나오는 사건이 아니라 내 아이의 일처럼 느껴졌죠. 앞으로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이래도 되는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힘든 시기를 통과하며 지역에서 하는 집회나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됐어요. 큰 역할은 아니지만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연대하고 같이 있는 사람,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4.16시민대학 사진제공 조은상

세월호참사 10주기 4160인 합창에 참여하고 사진제공 조은상

안산시민연대 촛불문화제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 장애인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라고 보십니까?
- 일은 삶을 바꾸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센터에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일자리에 참여하는 분이 “내가 번 돈으로 가족들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사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라던 말을 잊을 수 없어요. 큰 변화라고 느꼈어요. 일하고 돈을 벌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게 장애인의 삶의 위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살게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중증 장애인에게 일자리는 단순한 수입 이상의 의미를 가져요. 사회의 구성원으로 지역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가 더 커요.
그래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라 불러요. 시혜적 성격을 거부하고, 이동권, 탈시설, 교육 등 장애인 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날이죠. 올해도 3월 26일에 청와대 앞에서 <22회 3.26 전국장애인대회 및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식>을 열었어요. 최옥란 열사 기일에 열린 22회 3.26 대회였죠. 효자동 복지센터 인근에서 출발해서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하고 집회와 열사들을 기리는 추모제도 진행했어요. 많은 활동가들이 각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전국에서 모여요.

3.26 전국장애인대회 사진제공 비마이너

장애인 권리 보장 다이인(die-in) 행동 사진제공 조은상

장애인 접근권 보장 기자회견 참여 중 발언 사진제공 조은상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삭발 투쟁 사진제공 조은상
= 앞으로의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 지금까지 활동하고 또 아이를 기르면서 앞만 보고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앞으론 어떻게 살지? 이런 고민이 들었어요. 앞만 보고 가지 말고 소소하게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과 차도 마시고 서로를 지지하고 나누면서 사는 삶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요. IL센터의 활동가로, 동료상담가로 목소리를 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면서 살아야죠.
돌아보면 누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온 게 아니라 그때그때 부딪히며 길을 만들어 온 것 같아요. 앞으로도 큰 계획보다는 지금처럼 살 것 같아요. 필요한 자리에 가 있고 연대하며 살고 싶어요.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살았다 싶어요. 앞으로도 휠체어와 함께 제가 길을 만들며 살아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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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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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7
2024년 8월 26일(월) 오후 14시부터 17시까지 4기 아카이브 에디터 3차 정기회의 및 공익활동 시민기록자양성교육이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실습으로 진행된 ‘시민기록자양성교육 4차’ 강연의 주제는 “숏폼 제작-구구절절 노잼설명 콘텐츠 너머 공익으로 후킹하기”로 소프트콘컴퍼니 고승혁 대표 강의로 진행되었습니다. 3차 정기회의는 동료 에디터들과 공익웹진 기획과정을 공유하고 공익활동 시민기록컨퍼런스 기획에 ‘참여 주체가 기획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라고 하는 방향성을 갖고 에디터가 직접 기획하는 시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시민기록자 양성교육 강의를 진행하신 고승혁 대표는 정치부 기자를 시작하여 점점 짧은 영상으로 바뀌는 콘텐츠를 다루는 미디어 역사의 전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자신을 “100년을 달린 미디어 시간 여행자”라고 소개했습니다. 40부 신문 발행본을 다수의 사람들이 돌려서 보던 시대, 원고 40~80매 원고를 매일 썼던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의 대중들은 50초 짜리 영상도 잘 보지 않는 것이 현실이죠.




“대중은 글을 읽지 않는다. 대중이 어떻게 글을 읽게 할 것인가? 이 질문 자체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라는 강사님의 말이 아마 이 강연의 핵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 누가 뉴스를 보는가?”
“현재 방송하는 뉴스앵커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누가 신문 사설과 장문의 글을 읽는가?”
‘달리기’와 ‘축구’ 각자의 매력은 있지만 어떤 스포츠가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을까요? 또한 고양이, 강아지, 아기가 나오는 미디어콘텐츠는 특히나 현대인들에게 인기 많은 콘텐츠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재미'와 '대중들의 관심'만을 쫓을 수는 없습니다. 유머와 센스와 함께 생생한 정보를 담아내는 것이 관건입니다.
21세기 매체 중 단연 인터넷을 활용한 짧고 집약된 매체는 규모와 성장 면에서 타의 미디어를 압도하고 있지만 “짧으면서 논리와 의미를 담아내는 멘트는 없다”라는 강사님의 말처럼 ‘재미’속에 ‘의미’를 담기 위한 방법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작성하려고 하는 현실의 사회문제를 다룬 ‘공익’에 대한 주제를 어떻게 풀어가야할까요?
고승혁 강사님은 이를 보완할 방법으로 숏폼콘텐츠를 활용한 ‘후킹’1)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공익적인 의미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영화, 드라마, 대중적인 밈, 적합한 노래가사를 저작권에 저촉되지 않게 활용하거나 ‘리스티클’2), ‘랭킹’을 통해 후킹할 수 있는 썸네일 제작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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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킹 : 사전적으로는 ‘낚아채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나 광고 마케팅 영역에서는 소비자의 관심을 즉각적으로 끌어당기기 위한 요소나 전략을 의미합니다. 기억에 남는 메시지나 이미지 등으로 구성됩니다. 2) 리스티클 : 목록이라는 뜻의 「리스트(list)」와 기사라는 뜻의 「아티클(article)」을 합쳐 만든 신조어로 특정 주제에 관한 정보를 순서대로 나열하는 방식의 기사를 가리킨다.(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리스티클’의 예로는 “내가 00하는 5가지 방법!” ‘랭킹’의 예로는 “00에서 인기있는 5순위 공개!” 등과 같이 대중들이 지나치지 않고 멈출 수 있는 문장예시도 공유되었습니다. 이후 에디터의 공익웹진으로 숏폼 시나리오 구성하는 실습시간을 가졌는데 감탄사를 자아낼만한 아이디어도 나와 추후 제작될 숏폼도 기대가 됐습니다.
이번 강의시간은 공익웹진을 담아내는 예쁜 그릇을 만드는 방법을 풍성하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공익활동을 확산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의미’와 ‘재미’를 잡는 ‘후킹’이 가능할지 더욱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어서 4기 에디터 3차 정기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상반기 에디터분들의 웹진 발행물이 무려 총 101건, 누적 조회수는 34,442건을 달성했다고 합니다. 에디터가 도민들에게 나누고 싶은 공익활동이 잘 전달되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하반기에는 공익단체 활동이 많아 현장취재 에디터님들이 더욱 바빠지실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만큼 다양한 공익활동 현장의 정보를 볼 수 있게 된다는 기대도 커집니다.
공유안건으로는 ‘에디터 활동 점검, 상반기 활동에 대한 자가진단(잘된점, 어려운 점, 개선점 등)과 작성 예정 중인 콘텐츠 주제 공유 및 피드백’이 있었습니다. 3개 분임별로 진행된 이번 시간은 동료 에디터의 고민을 함께 고민하여 걱정을 덜어내기도 하고 본인의 강점을 찾아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응원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논의안건으로는 시민기록컨퍼런스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공익활동 기록활동가가 주체로 참여하는 행사인 만큼 에디터가 직접 방향성과 세부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시간을 가졌기에 더욱 의미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행사제목, 기록활동가 네트워크 방법 및 공익웹진을 참여자에게 재밌게 공유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습니다. 4기 에디터분들의 깊은 고민이 담긴 기획 내용을 바탕으로 시민기록컨퍼런스 프로그램이 더욱 탄탄하게 구성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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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0
‘6.15 공동선언실천 경기중부본부’에서 40여 명의 회원이
‘통일 힐링 걷기’의 일환으로
교동도(강화도 소재) 평화기행을 하였다.
‘6.15 공동선언실천 경기중부본부’는 안양,군포,의왕 지역 시민이
평화와 통일 열망을 담아내고자 하는 기치로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선언이 제대로 이행되어 한반도 평화와 남북공동 번영 및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로
지역주민과 정당, 종교, 시민사회단체가 폭넓게 참여하는 조직이다.

‘통일 힐링 걷기’의 주목적은 반전 자주평화이다.
매년 4월에 시작하여 연중 계속 행사가 진행된다.
주요내용은 두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는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매주 6만보를 걷고 평화 인증샷을 공유하며, 두 번째로는 매월 넷째 주 토요일 오전에 다 같이 모여서 걷기를 정례화 하고 있다.
척박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未知(미지 : 알지 못하는)의
마을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삶의 소소한 기쁨이자 나를 재충전하여
주는 원동력이다.
금번 행선지는 강화도 서북단에 위치한 교동도이며,
교동도는 한국전쟁(1950.6.25)때
황해도 연백지방 주민 다수가 피난 온 곳이다.
교동도는 고려시대 때부터 왕족의 유배지였다.
고려 21대 희종 등 무려 다섯 분의 왕이 유배되기도 하였다.
조선의 10대 나이의 왕, 연산군의 유배지이기도 하다.
교동도 역사기행의 백미는 맛집이 모여있는 “대룡시장”이다.
1950~1953년 전쟁 중에 피난 오신 황해도 연백지방 분들이
고향의 시장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시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식당, 다방, 상점, 이발관, 양복점, 방앗간, 철물점 등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꽤 정겹다.
이곳에 오면 꼭 맛보아야 한다는 연백지방의 아픈 사연이 담긴
“강아지떡”은 별미라고 한다.
쌀을 강제 수탈 당하던 일제 강점기 때에, 강아지 모양으로
만들어 몰래 마을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교동도는 수도권역 최고의 볼거리가 있는 여행지라고 정평이 나있다.
맑은 날이면 황해도 연백땅이 보여 실향민들을 눈물짓게 한다.
유유히 흐르는 강을 끼고 남한과 북한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분단의 아픔을 모르는 갈매기가 되었으면...
정겨운 4월의 훈풍을 온몸으로 느끼며, 애써 슬픔을 감추고
오늘도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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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7
“강아지가 세상을 구한다!” 2023년 기준으로 국내 약 30%의 가구가 반려동물 을 양육1)하고 있는 요즘, 강아지들은 사람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데요:) 이름만 들어도 사랑스러운 강아지! 이러한 감성은 단순히 양육한다는 보호자의 태도에서 바라보는 관점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인간의 생존과 보호를 위해 도우미 임무를 수행하는 강아지들도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걸 알고 계시는가요?
이번 웹진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여러 도우미견에 대해 알아보면서 이들을 위한 지원에 관해서도 고찰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아가 강아지가 세상을 구한다는 말이 사실임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합니다.

▶에디터의 강아지 '초코'
도우미견이라고 하면 대부분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보행을 돕는 시각장애인 안내견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안내견 이외에도 많은 도우미견이 활동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국내에서는 안내견을 포함해 총 4종류의 다양한 장애인 도우미견이 있습니다.2) 예로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지체장애인 도우미견, 치료 도우미견이 있습니다. 이들은 도우미견 양성이 시작된 1992년부터 교육기관에서 훈련을 통해 양성되며 올해까지 총분양 두수가 561마리가 된다고 합니다.3) 종류별로는 시각 271마리, 청각 134마리, 지체 142마리, 치료 14마리 규모라고 합니다.4)
평소 우리가 알던 바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도우미견들 처지에서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서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따라서 지금부터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도우미견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시각장애인 안내견입니다.

▶골든 리트리버 안내견
- 출처: 삼성화재안내견학교5)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안전하게 안내하고 항상 이들의 옆에 상주해 독립된 삶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6) 안내견의 기원은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시력을 잃은 군인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시각장애인 도우미견 양성’이라는 목적으로 1916년 독일 몰덴부르크에서 시각장애인 도우미견 학교를 개설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합니다.7) 주로 훈련이 쉽고 성실한 래브라도 레트리버와 온순하고 지능이 높은 골든레트리버가 많이 양성된다고 합니다.
둘째.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입니다.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은 청각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소음을 듣는 것을 도와주는 임무를 수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전자 소리, 비상벨 소리, 누군가 부르는 소리 등을 인지하고 보호자에게 신호를 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이삭 도우미 개 학교에서 청각장애인 도우미 개를 최초로 훈련한 것이 그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8) 주로 명량하고 호기심이 강한 종 즉, 푸들과 슈나우저 등과 같은 소형 개들이 자주 양성된다고 합니다.9)
셋째. 지체장애인 도우미견입니다.
지체장애인 도우미견은 거동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의 활동을 보조해주는 임무를 수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떨어진 물건 주워오기, 긴급한 상황에 구조 요청 버튼을 눌러 구조 신호 보내기, 신체를 일으키거나 지탱하는 것을 도와주기 등의 직무를 수행합니다.10) 지체장애인 도우미견의 역사는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안내견의 역사와 출발을 같이 한 후 분화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로 양성되는 품종으로는 골든레트리버와 래브라도레트리버 혹은 재가 지체장애인 경우에는 코카스파니엘 등 소형 개가 주로 양성된다고 합니다.

▶지체장애인 도우미견 ‘달리’
- 출처: 서울신문11)
넷째. 치료 도우미견입니다.
치료 도우미견은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지속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을 제공함으로써 사회화 능력과 정서적인 안정, 나아가 치료와 재활을 위한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12) 현대 치료 도우미견의 역사는 18세기 말, 정신장애인 수용시설이었던 영국의 요크 수용소에서 정신장애인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동물을 활용하였는데 이 치료법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13) 주로 양성되는 품종으로는 온순하고 적응력이 좋은 골든레트리버, 래브라도레트리버가 양성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국내 도우미견의 종류에 대해서 흥미롭게 알아보았는데요. 현실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만큼 이에 걸맞은 지원과 복지가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문제점을 세 가지로 추려보았습니다.
첫째. 교육기관(프로그램)의 부재입니다.
국내에서 운영되는 장애인 도우미견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은 총 3곳에 불과합니다. 예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와 도우미견협회, 경기도 도우미견 나눔센터가 있습니다. 3곳의 훈련소에서 기존에 분양된 약 570마리를 넘어 앞으로도 늘어날 수요를 감당할 도우미견을 양성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반대되는 해외사례를 보면 일본은 29곳, 미국은 80곳의 훈련 기관이 존재한다고 합니다.14) 또한 양성되는 도우미견의 종류도 노인보조견, 치료탐지견, 범죄자들의 교화를 돕는 도우미견처럼 다양하게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보면 우리나라의 제한된 도우미견의 종류와 교육프로그램의 부재로 인한 피해가 상당수 발생할 수밖에 없음을 우려하게 됩니다.
둘째. 교육 인력의 부재입니다.
국내에서 운영되는 도우미견을 양성하기 위한 훈련사들의 인력은 매우 부족합니다. 예로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의 경우 사무국장을 포함해 4명의 훈련사만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한 사람당 50마리의 강아지들을 양성하는 한계에 부딪힙니다. 또한 도우미견 한 마리를 양성하는 데에는 평균 5000만 원가량이 들지만, 협회가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연간 예산은 보건복지부 9500여 만원, 경기도 1억여 원을 합쳐 약 2억여 원 정도입니다. 이렇다 보니 도우미견의 활발한 인재(?) 양성이 이루어질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될 수밖에 없습니다.15)
셋째. 도우미견에 대한 인식 부족입니다.
안내견의 식당 출입, 마트 출입 거부에 대한 문제는 여러 미디어에서 쉽게 접하게 되는 소식입니다. 저도 살면서 외부에서 퍼피워킹을 포함한 도우미견의 바깥출입을 목격한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정부의 지원, 시민들의 캠페인 등도 도우미견의 양성과 공존을 위한 중요한 요소들이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의 도우미견에 대한 인식 제고가 제일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 도우미견에 대한 인식과 권리 향상을 위한 캠페인을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국회의원 김예지의 안내견 조이가 국회 본회의장 출입을 거부당하면서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회의 진행에 방해가 되는 물건이나 음식물의 반입을 금지' 한다는 국회법에 따라서 발생한 일이었는데요.16) 이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의 장애인 보호 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내는 규탄 시위를 벌였습니다.17)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 안내견의 국회 출입은 가능하다는 국회 내부 지침이 마련되면서 안내견에 대한 인식 제고와 권리를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시민들은 지원과 기부활동을 합니다.
시민들은 도우미견을 위한 자발적인 지원과 기부활동을 합니다. 예로 도우미견 훈련 기관을 지원하거나 자발적으로 강아지들을 양육하고 도우미견 훈련을 시키는 퍼피 워킹에 참여하는 활동을 진행합니다. 이러한 활동은 자원봉사자 모집, 기부 모금 등을 통해 이루어지며 보다 많은 사람이 도우미견 양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시너지 효과를 냅니다.
셋째. 도우미견과 관련한 커뮤니티를 만듭니다.
장애인 도우미견에 대한 이해와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관련 커뮤니티를 만듭니다. 커뮤니티 내에서는 회원들이 보조견의 품종 연구와 일상 혹은 관리법 등의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을 서로 교류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강아지들이 어떠한 노력과 체계 속에서 도우미견으로 거듭나게 되는지 체감할 수 있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고 상호발전해가는 문화를 만드는 데 큰 일조를 하게 됩니다.
문득 글을 쓰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코가 10년 동안 나에게 줬던 기쁨과 위로들을 너무 간과했었던 것 같아." 강아지가 주는 행복과 헌신의 가치가 이토록 크다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끼며 우리 사회도 모든 생명체가 서로 사랑하며 상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소망해봅니다. 감사합니다.
※관련사이트
-삼성화재안내견학교 (자원봉사/분양 신청): 삼성화재안내견학교 (guidedog.co.kr)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자원봉사/분양 신청):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helpdog.org)
-반려마루 화성(구 도우미견나눔센터): 반려마루 화성(구 도우미견나눔센터) - 입양센터 - 시설정보 - 경기도 동물보호복지 플랫폼 (gg.go.kr)
-은퇴검역탐지견 민간입양: 국가를 위해 봉사한 탐지견들도 우리의 도우미견입니다! 검역탐지견 입양 공지사항 (qia.go.kr)
[출처자료]
1) 출처: 수의사신문 데일리벳 https://www.dailyvet.co.kr/news/policy/206485
2) 출처: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http://www.helpdog.org/sub/kind.php#dog
3) 출처: 서울신문 https://www.seoul.co.kr/news/plan/social/2021/04/26/20210426016002
4) 출처: 서울신문 https://www.seoul.co.kr/news/plan/social/2021/04/26/20210426016002
5) 출처: 삼성화재안내견학교 https://www.guidedog.co.kr/kor/social/guideBreeds.do
6) 출처: 삼성화재안내견학교 https://www.guidedog.co.kr/kor/social/guidedog.do
7) 출처: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http://www.helpdog.org/sub/kind.php#dog
8) 출처: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http://www.helpdog.org/sub/kind.php#dog
9) 출처: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http://www.helpdog.org/sub/kind.php#dog
10) 출처: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http://www.helpdog.org/sub/kind.php#dog
11) 출처: 서울신문 https://www.seoul.co.kr/news/plan/social/2021/04/26/20210426016002
12) 출처: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http://www.helpdog.org/sub/kind.php#dog
13) 출처: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http://www.helpdog.org/sub/kind.php#dog
14) 문단 전체 출처: 서울 신문 https://www.seoul.co.kr/news/plan/social/2021/04/26/20210426016002
15) 문단 전체 출처: 서울 신문 https://www.seoul.co.kr/news/plan/social/2021/04/26/20210426016002
16) 출처: 파이낸셜뉴스 "김예지 안내견, 국회출입 검토?…이게 허락받을 일인가" - 파이낸셜뉴스 (fnnews.com)
17) 출처: 파이낸셜뉴스 "김예지 안내견, 국회출입 검토?…이게 허락받을 일인가" - 파이낸셜뉴스 (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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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6
안녕하세요~ 3기 아카이브 에디터 심지입니다. 요즘 급격한 기후변화로 날씨를 보며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해요. 기후위기로 인한 스트레스로 우울을 겪는 '기후우울'인데요. 이번 글은 기후변화로 촉발된 기후우울증에 대해 알아보면서, 자연과 교감하는 활동을 치료로서 처방하는 해외 사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기후우울은 2017년 미국 심리학회에서 정의한 우울장애예요. 기후위기에 따른 정신건강 위험 징후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후위기가 촉발하는 정서적 고통, 자연재해 트라우마 등의 스트레스 반응, 면역체계 약화와 오염된 물과 공기로 인한 질환 등 신체화 증상, 급변하는 날씨에 따른 우울감,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 이전 세대에 대한 반감 등 우울하고 불안한 심리, 재해로 인한 이주 및 생계 수단 상실 등 관계 결속력 약화가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2년 6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신건강 지원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정책브리핑을 발표하며 기후우울증의 심각성을 경고했습니다.
“기후변화는 정신건강과 웰빙에 심각한 위협이 됩니다. 급변하는 기후를 보며 인류는 슬픔, 두려움, 절망, 무력감과 같은 감정을 강렬하게 경험합니다. 이런 고통이 신체화돼 심혈관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 암과 같은 병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정신건강 지원 체계를 갖춘 기후행동이 필요합니다.”
기후위기 소식을 더 자주 접하는 젊은 세대, 농부와 같이 기후와 밀접한 직업군은 스트레스와 우울이 더 크다고 해요. 또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특히 저위도 국가에 집중되고 있지만 대부분은 저소득 국가로, 국민들의 정신건강복지가 미흡한 상태입니다. 상대적으로 심리치료가 활성화된 선진국에서도 주요 정책에 기후변화에 따른 우울증 치료 포함시킨 국가는 드문데요. 2021년 WHO가 95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가 보건 및 기후변화 계획에 정신건강 및 심리·사회적 지원을 포함시킨 국가는 9개국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정신건강 분야 신조어들도 생겨났습니다. 신조어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와 관련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 환경불안(Eco-anxiety): 환경적인 파멸에 대한 만성적 두려움 상태. 2017년 미국심리학회(APA)가 규정한 용어
- 기후슬픔(Climate grief), 생태슬픔(Ecological grief): 기후변화 징후가 나타날수록 통제력을 잃고 젊은층에 우울감이 퍼지는 상태
- 솔라스탤지어(Solastalgia): 안락(solace)과 고통(algia)의 합성어. 환경변화가 초래한 실존적 고통을 뜻함. 호주 환경철학자 글렌 알브레히트가 만든 말.
- 외상전스트레스장애(Pre Traumatic Stress Disorder): 기후변화를 막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서 기인한 무력감을 느끼는 기후염려증
(자료: 세계보건기구(WHO) 정책브리핑)

영국에서는 기후변화와 정신건강의 상호작용을 인식하고, 자연 환경과의 접촉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활용하는 "자연 처방"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정책은 의료진이 환자들에게 자연 환경과의 접촉을 권유하고, 자연 공원, 정원, 숲 등에서의 활동을 통해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영국의 자연처방전 달력 활동 예시>
1월 : 밖으로 나가서 조용히 3분 동안 소리를 들어보세요.
2월 : 까마귀를 관찰해보세요.
3월 : 강아지와 산책하세요.
4월 : 나무 위에 난 싹을 찾아서 표면 질감을 느껴보세요.
5월 : 데이지 화환을 만들어보세요. 풀 속으로 당신의 얼굴을 가까이 해보세요.
6월 : 땅에 앉아서 눈을 감고 새소리를 들어보세요.
7월 : 민들레 꽃을 이용해서 음식을 만들어 보아요.
8월 : 새소리를 듣고 따라해 보세요, 새와 대화를 해보세요.
9월 : 가을의 파도와 물이끼를 느껴보세요.
10월 : 걱정과 고민을 돌에 적어서 바다로 던져보세요.
11월 : 조랑말과 교감해 보세요.
12월 : 겨울철의 새를 관찰해보세요.
-출처: 박수진 김건우(2021:7)

자연처방의 또 다른 사례로는 미국 뉴멕시코 주의 산책로 처방이 있습니다. 산책로 활용 처방 프로그램을 통해 건강한 생활 습관을 형성하도록 하며, 처방된 산책로에서 걷거나 휠체어를 타는 등 신체 활동량을 증진시키도록 제안합니다. 지역별 산책로 종류를 단계별로 구분하여 처방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엘버키키의 단계별 산책로 종류 예시>
- 1단계: 헤리티지 힐스 공원 - 낮은 단계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운동 코트, 놀이터, 벤치 등이 조성되어 있음.
- 2단계: 필 차콘 공원 - 운동 코트, 가로수길, 조형 예술 공간, 시야가 트인 넓은 공간 등이 조성되어 있음.
- 3단계: 산체스 농장 공터 - 정원과 습지가 있고, 자전거 도로가 형성되어 있으며 반려견과 함께 산책할 수 있음.
이상으로 기후우울과 자연처방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았는데요. 우리나라도 해외사례를 참고하여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다양한 기후행동 중에 기후우울과 관련된 정신건강 지원을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국립산림과학원이 치유의 숲 조성모델을 개발하고, 다양한 질환에 따른 산림치유 효과 연구 등 산림치유 정책발전을 위한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각 지역의 가까운 공원과 아름다운 산림자원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건강한 연결성을 확대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참고문헌
박수진 김건우(2021). 산림자원을 활용한 의료연계 서비스 국외사례. 국제산립정책토픽 제104호. 국립산립과학원.
서울신문(2022.6.7.) WHO “기후변화에 절망·무력감 심각… 정신건강 지원 체계 서둘러야”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6080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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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8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2년 9월 13~26일, 전국 20~64세에 해당하는 국민 5천 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패널조사인 ‘2022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를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 거주지에서 반려동물을 직접 양육하고 있는 가구 비율은 25.4%로 나타났습니다. 2022년 공개된 반려동물 양육 가구 비율(25.4%)과 우리나라 가구(세대) 및 가구원(세대원) 수를 고려하여 판단해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양육인구는 602만 가구이고, 반려동물을 양육하고 있는 인구는 1,306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가 하나의 가족 형태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의 76.5%는 ‘개’를 기르고 있고, ‘고양이’를 기른다는 응답은 27.0%였습니다. (복수 응답 허용) 3위는 물고기(7.3%), 4위는 햄스터(1.5%)였습니다. 반려동물로 양육되고 있는 개, 고양이 수는 약 800만 마리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2021년 대비 반려견은 약 5.2%, 반려묘는 약 12.7% 증가했습니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현재 두 마리의 고양이를 양육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저를 칭할 때 항상 ‘언니’라고 할 정도로 저에게는 두 명(마리)의 여동생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필자도 반려동물 양육을 하고 있기에 반려동물 관련 제도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가구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생기는 부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반려동물을 입양하여 키우던 사람들이 변심하여 반려동물을 학대하거나 비용 부담으로 인해 파양이나 유기하는 등 반려동물 양육에 끝까지 책임을 지지 않는 것입니다. 개의 경우 목줄을 제대로 하지 않아 사람을 공격하는 맹견 문제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유기동물의 발생 원인이 되는 동물생산업의 단속 강화가 필요합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너무 느슨하고 단속이 심하지 않아 인가되지 않은 강아지, 고양이 공장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곳에서는 강아지들이 상당히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이러한 무분별한 동물생산이 유기동물 발생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동물 학대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및 인수 보호제도가 필요합니다. 현행 실정법에 따르면 동물은 법적으로 물건으로 취급받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동물보호법이 제 힘을 발휘하기 힘듭니다. 현재는 동물을 학대하거나 심지어 동물이 굶어 죽더라도 주인이라는 명목하에 조치가 어렵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헌법에 동물권을 직접 명시하고, 민법에서도 동물을 물건이 아닌 하나의 생명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동물 학대자를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강력하게 처벌함으로써 경종을 울려야 합니다.
반려동물, 특히 반려견에 대한 등록세를 부과하여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반려동물이 정당한 권리를 얻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반려동물 양육 선진국으로 불리는 독일에서는 반려견이 세금을 내고 당당하게 사회의 일원으로 보장받기 때문에 반려동물에 대한 시민의식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세금 부과로 반려동물이 법적·제도적으로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출처 : 픽사베이
반려동물 양육 가구 수가 증가하는 만큼 2023년부터 정부가 동물보호를 ‘복지’체계로 개편하며, 적극적으로 동물복지 개선에 나서고 있습니다. 2023년부터 기존에 존재하던 ‘동물보호법’에 대한 연구용역을 실시하여 2024년에는 ‘동물복지법’ 체계로 개편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개편된 동물복지법에는 '법상 용어 정비', '돌봄 의무 강화', '동물 학대 범위 확대', '무분별한 생산 및 판매 제한'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3년 4월부터는 반려동물에게 적합한 양육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 행위도 학대에 포함됩니다. 이를테면, 반려동물에게 최소한의 사육공간 및 먹이 제공 등 소유자의 사육·관리 의무를 위반해 반려동물이 사망한 경우, 동물 학대 혐의를 적용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합니다. 운영 기준이 없어 애니멀호더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민간동물 보호시설에 신고제를 도입하여, 체계적인 운영 및 지원이 이뤄지도록 합니다. 보호자가 사육을 포기한 동물을 지자체가 인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유기동물 발생을 예방합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동물실험 시행기관에 실험동물의 건강을 점검하는 전임 수의사 배치가 강제되며, 동물 수입, 판매, 장묘업 등 반려동물과 관련한 업종이 허가제로 전환하는 등 각종 규제의 도입을 통해 법률 위반 행위를 예방할 수 있을 전망입니다.
경기도는 2023년 3월부터 ‘2023 동물보호·복지정책 추진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1인 가구, 저소득 계층, 중증 장애인 및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족이 양육하는 반려동물을 대상으로 하여 의료, 돌봄, 장례비 등을 지원하는 경기도만의 정책이라고 합니다. 다만, 자부담으로 4만 원을 지급해야 하는 조건입니다. 경기도는 올 한 해 동안 800마리의 반려동물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지원을 받고자 하는 반려인은 해당 시·군에 신청서를 내고 동물병원, 위탁시설, 동물장례시설 등에서 서비스를 받은 뒤 20만 원을 우선 지출하고 결제영수증 등 증빙서류를 시군에 제출하면 16만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출처 : 경기도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가구가 새로운 가족의 형태로서 늘어나고 있는 만큼 사람과 반려동물이 효과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각종 정책과 법안의 마련이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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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0
● 분단의 길에서 평화를 찾다!
올해는 정전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반도 전역에 전쟁의 광기가 지나가고, 이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었어도 우리가 기억하는 한국전쟁은 전투의 승리와 업적에 치중되어왔다.
그러나 종전이 아닌 정전협정으로 70년이 지난 현재에도 한반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불씨를 품고 있으며 이러한 오랜 분단 상황은 남북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남남갈등으로 인해 우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많은 문제를 품고 있다.
분단 상황이 우리 사회에 가져오게 된 부정적인 영향은 비단 국방비 증가나 군대문제 등 외형적으로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종북’ ‘빨갱이’라는 금기를 만들어 우리의 상상력과 행동을 통제해왔다.
우리 사회에 ‘금기’가 통용될 수 있었던 배경엔 한국전쟁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마을에서 오랫동안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던 이웃, 친척, 가족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이 반복적으로 바뀌면서 점점 더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함에 서로에 대한 분노와 혐오가 더 심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이번 웹진에 전쟁의 상흔과 당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나눌 첫 번째 장소는 서쪽 바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섬 강화도이다. 특히 강화도는 지리적인 특징으로 한국전쟁뿐 아니라 고려 때부터 외침으로 이골이 난 지역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아름다운 섬 강화도, 염하로 스며든 섬사람들의 눈물!
강화도는 낙조가 참 아름다운 곳이다.
강화대교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붉게 물든 노을을 보고 있자니 돌아본 강화도의 역사가 다시 떠올라 나의 눈 또한 붉어진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백제가 싸웠고, 고려 시대에는 몽골의 침입으로 수도였던 개성을 버리고 왕과 지배층이 이곳으로 피란을 오면서 강화 사람들의 수난과 희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오면 병인양요, 신미양요와 같이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과 일제강점기의 시작을 알리는 운요호 사건이 발발하면서 강화 주민의 희생은 더욱 커졌다.
그 후, 한국전쟁을 겪으며 강화도는 외국의 군대가 침략했을 때 함께 무기를 들었던 사람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죽이며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려본 하늘은 마치 시대를 가리지 않고 몰아친 잔인한 역사 속 사람들의 비명을 연상케 하는 붉은 색으로 물들어있다.
<강화도>

출처 :강화군 홈페이지
<광성보>

출처 :강화군 홈페이지
1871년 미군은 개항을 요구하며 조선을 침략하였는데 이를 ‘신미양요’라고 한다. 신미양요는 미국이 1866년 통상을 이유로 막무가내 대동강에 정박했던 미국의 제너럴셔먼호를 평양 백성들이 불태운 사건의 책임을 묻고 통상을 요구하며 일으켰다. 미군은 초지진과 덕진진을 공격한 후 광성보로 향했고, 광성보에는 어재연이 이끄는 조선 수비병이 약 600명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보다 월등히 앞선 대포 등 무기에 의해 어재연, 어재순 장군을 비롯한 조선군과 강화 백성은 목숨을 잃었다.
당시 미군의 기록을 보면 광성보에서 전사한 미군은 3명, 부상자는 10명이었고, 조선군은 전사자가 350명, 부상자는 50명으로 되어 있다. 강한 물살이 흐르는 천혜의 자연 요새인 광성보도 서양의 신식 무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을까?
미군의 총알을 막아보고자 무명천을 여러 겹 덧댄 방탄조끼인 ‘면갑’을 입고, 솜을 덧대서 전투에 임했지만 더운 초여름 날씨에 ‘면갑’은 무겁고 불에 잘 타서 오히려 전투력을 떨어뜨렸다.
많은 병사와 백성들은 섬을 지키기 위해 물 속에서, 불 속에서 싸우다 죽어갔으며 섬 해안가에 널린 시체들은 수습하기도 전에 강한 물살에 쓸려 고향의 바다와 강이 아닌 낯선 곳을 떠돌다 사라졌을 것이다.
광성보 안으로 들어가면 당시 미군이 사용한 총포가 전시되어 있다. 그들의 무기를 보고 조선군의 무기를 생각해보면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막막한 마음을 안고 돈대로 걷다 보면 ‘쌍충비’가 보인다. ‘쌍충비’는 전투에서 순절한 수장인 어재순, 어재연 형제와 그나마 시체를 찾은 59명의 병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비이다.

쌍충비각 / 수자기 (출처 : 강화군 홈페이지)
내가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신미양요’는 외세의 침략에 끝까지 항쟁한 자랑스러운 역사였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찾아본 ‘신미양요’는 피눈물 나는 슬픔의 역사였다. 우선 사상자 수만 봐도 그러하고 수장인 어재연 장군을 상징하는 깃발인 ‘수자기’는 미국이 승리의 기념하기 위해 전리품으로 약탈해갔다. 이후 수자기는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있다가 2007년 10년 임대 형식으로 13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현재는 강화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수자기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강화를 지켜냈던 백성들은 비명과 함께 사라지고 궁궐 안의 모리배들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백성들의 희생은 안중에도 없었다. 용두돈대로 향하는 길에서 내려다보는 염하는 작은 섬들 사이로 세차게 흐르며 빼어난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추억도 만들기 아까운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갔을 그들이 다시 떠오른다.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그때와 달라진 게 있을까?
<한국전쟁 중 강화지역 민간인 희생자 추모비>

온수리 산 16
장소명이 아닌 지번을 검색해야 찾아갈 수 있는 곳,
변변한 안내판조차 보이지 않는 곳,
여기는 한국전쟁 중 강화지역에서 학살당한 1천여 명의 민간인 희생자 가운데 신원이 밝혀진 430여 명 중 323명의 비석이 있는 곳이다. 희생자들은 1951년 ‘강화향토방위군’이라는 군인, 경찰 신분도 아닌 민간무장 단체에 의해 강화의 모든 지역에서 학살당했다.
이들이 죽임을 당한 이유는 인민군에 부역을 했거나 월북한 사람의 가족이거나 잠재적으로 북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된 사람들을 예방적인 차원에서 죽인 것이다. 그들은 재판도 없이, 최소한의 인권이라는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 추모 공간을 찬찬히 둘러보면 여성과 아이들의 비석이 자주 눈에 띈다.
그런데 비석에는 희생자 이름이 아닌 ‘000의 처, 000의 자’처럼 남성과의 관계로 표기되어 있다. 강화도에서의 학살은 1951년이 처음은 아니다. 전 해인 1950년에는 인민군에 의해 친일파, 지주, 기독교인이 죽임을 당했다. 명분은 있었지만 분명 억울한 죽음도 존재했을 것이다.
인민군이 후퇴하고 미군과 국군이 1951년 1월 강화도에 들어오면서 주민들에 가해진 폭력과 학살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강화주민들의 불안과 공포, 적개심은 미군이나 타지의 사람들이 아닌 강화도에서 오랫동안 함께 이웃으로 살아왔던 사람들로 인해 더욱 커졌다.
혹시 ‘손가락 총살’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일명 ‘빨갱이’를 억지로 찾아내야 할 때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이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또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대상을 검지로 슬며시 가리키면 가족이 몰살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1950년~1951년 겨울, 이렇듯 이성을 잃어버린 듯 광기가 강화를 지배하던 시절.
아름다운 강화의 드넓은 갯벌과 나룻가에서는 서로 죽고 죽이는 사냥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은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권력 지향적이기 때문에 항상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무자비한 폭력의 위기에 처해 있으므로 안전과 물질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형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굳이 홉스의 생각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우리가 세금을 내고, 법이라는 강력한 통제를 따르는 것은 ‘국가’라는 공동체로부터 안전과 행복을 담보할 수 있다는 기대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국가가 이러한 공동체 구성원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폭력의 주체가 돼버린다면 이는 ‘리바이어던’의 또 다른 존재인 혼돈과 무질서의 괴물일 뿐이다.
<교동도>
교동도지도 / 대륭시장(출처 : 강화군 홈페이지)
강화도에서 북쪽으로 좀 더 올라가면 북한과의 거리가 불과 2.6km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섬 ‘교동도’가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은 전쟁이 끝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에 교동도에 자리를 잡았다.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면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모여 살 줄 알았던 피난민들은 70년이 지나면서 실향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리고 실향민의 집성촌이 형성되면서 ‘대륭시장’이라는 시장이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1970년대를 연상하게 하는 이발소, 신발가게, 음식점 등 상점이 있고 시장 곳곳에 제비집과 제비를 보호하자는 포스터와 글을 자주 보게 된다. 그 이유는 고향 연백군에서 날아오는 제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륭시장의 명물인 ‘강아지떡’은 일제강점기 이북에서 즐겨 먹던 인절미와 같은 떡인데 일본이 인절미를 못 먹게 하자 ‘강아지떡’라고 하며 먹었다고 한다.
정겨운 시장 풍경과 달리 교동도는 민간인통제구역선 안에 위치하여 신분증을 필히 소지하고 ‘임시출입 및 단기 체류 신청서’를 작성해야만 출입할 수 있다.

망향대에서 바라보는 북의 연백평야(출처 : 강화군 홈페이지)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갈 수 없는 고향,
그리운 사람을 기억에 묻고 망향대에서 바라보는 이북의 땅, 연백
70년이 넘는 분단의 시간은 사람과 추억을 사라지게 한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하루에도 몇 번이 오갔을 물길과 육지길.
만선을 기원하는 뱃사람의 노동요와 탁주 한 사발의 후한 인심이 북적대던 해안가는 실향민들의 나이만큼 노쇠했으며 녹슨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다.
팔십이 다 된 노인은 멀리 보이는 북쪽의 고향 집을 향해 ‘엄마’를 연신 불러본다.
육지와 달리 휴전선이 없는 바닷길.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경계선은 노인의 마음으로만 엄마를 불러보게 한다.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고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풍요로운 한강하구에서 남과 북의 사람들은 가족의 상봉과 만선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이산의 아픔은 언제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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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7
평택 새내기의 평택 사람탐구 1편
통미마을 공장, 통미작은도서관 박명진 대표를 만나다.

나는 화성 동탄에서 다년간 마을활동가로 살다가 2달 전, 평택으로 이사 온 평택 새내기이다. 생경하기만 한 평택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틈나면 강아지와 함께 평택을 탐방했다. 2달 남짓 살아 본 평택 새내기의 눈에 비친 평택은 한마디로 흥미로운 동네였다. 한쪽엔 현대의 도시가 대부분 그렇듯, 공장에서 찍어내듯 천편일률적으로 아파트와 상가로 구성된 동네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길 하나 건넜을 뿐인데 어릴 적 살았던 추억 속 고향의 모습을 간직한 동네까지 평택이라는 지역의 확장과 변천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매력적인 것은, 사방으로 가로지르는 자연하천과 크고 작은 공원들이 연결되어 있어 사람과 동·식물의 쉼터가 일상의 삶과 아주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하나 더 찾는다면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볼 수 없었던 오래된 전통시장인 통복시장이라는 보물 같은 장소가 있었다. 그렇다면 신구가 공존하는 평택에서 살아가고 평택을 살만한 동네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누구부터 만나야 할까? 마침 화성 마을넷 대표님이 평택 하면 통미작은도서관 박명진 대표를 만나보라고 소개한다. 지금부터 평택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가는 첫 번째 이웃을 만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Q> 안녕하세요. 평택에 이사 온 지 2달 된 마을활동가 김영희라고 합니다. 평택을 살만한 마을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궁금해서 선생님을 제일 먼저 찾아뵈었습니다. 귀한 시간을 허락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선생님은 언제부터 평택에서 사셨을까요?
A> 통미에 2010년에 왔어요. 선교로 잠깐 중국 연길에 있었는데, 2008년에 외환위기도 오고 마음도 힘들어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돌아와 갈 곳이 없었는데, 마침 여기 교회에 남편이 목사로 부임하게 되었어요. 저희는 교회를 개척할 심정이었으니까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때 교인이 총 4가정이었어요. 전도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이 네 명을 저희에게 주셨나 봐요.
Q> 통미마을 공장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배우자인 목사님이 작년까지는 사회적협동조합 공장의 초대 이사장으로 활동하셨어요. 하던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이 겸직이 어려워서 이사장을 변경하되었고, 조합원들의 추천으로 제가 이사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 전부터 제가 실권이었던 것 같은데 자연스럽게 대표직을 맡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초기에 목사님 주도보다는 제 주도로 진행되는 것이 많아져서 두 사람이 내부적으로 의견이 나뉘기도 했어요. 결국, 가정의 편안함이 우선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둘의 결정과 화합이 핵심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외부적인 영향으로 펼쳐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10여 년을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셨는데, 주변에 사람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A>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만, 처음에는 같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했어요. 저도 엄마니까 아이들과 함께하는 활동으로 학교를 중심으로 학부모회, 학교운영위원도 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그 시점에 통미에 사는 이웃들이 많이 떠나기도 했고요. 여기 블록만 보면 아이 엄마들이 없어요. 우리 애들만 다니는 것 같았어요. 도서관에 방문한 아이들과 엄마들은 프로그램만 하고 가고 남지 않는 거죠. 여기 거주하지 않으니까! 처음엔 그런 부분에 딜레마와 고민이 많았어요.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마을에 대한 제 나름의 정리를 하게 되었어요.
특히 통미는 아파트가 아니니까 활동할 수 있는 엄마들이 쉽게 모여지지 않았어요. 제가 마음을 주고 같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많이 찾지 못했어요. 결국, 가장 큰 나의 파트너는 저의 남편이라는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그 후부터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생기더라구요. 그래도 늘 함께할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아요. 뒤돌아보면 사람이 답이고, 필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만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꼭, 그 사람이 가까이에만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Q> 대표님이 생각하는 현대의 마을공동체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A> 제 나름 정리된 생각인데, 현대에는 예전과 같은 마을은 없고, 마을의 개념이 물리적 공간으로 한정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최근 신공동체를 이야기하는데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해당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정도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게 마을이 아닐까요? 물론 마을공동체의 물리적 거점은 중요하고 필요하죠. 전혀 실체가 없는 상황에서 마을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나마 지역에서 섬처럼 있는 통미작은도서관이 거점 공간이 되어주고 유지하고,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이라 이름을 붙여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아요.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찾아오고, 같이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Q> 통미작은도서관과 최근에는 예비사회적기업 통미마을 공장으로 장애인 자립지원 카페까지 운영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언제부터, 어떻게 이 일을 하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A> 마을공동체를 하다 보니 자생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어요. 공간이 있고, 목회자로서 자립도 고민하면서 선한 사회적협동조합을 처음부터 고민했어요. 저희가 사회복지를 전공하기도 했고, 평택에 오기 전 인천에서 지역아동센터와 다양한 복지 관련된 일을 접하고 운영했었는데 밖에서 뭔가를 끌어와야 하는 상황, 대상을 구분 짓는 것들이 불편했어요. 복지에 한계를 느꼈고, 보편적 복지에 더 마음이 가더라구요. 저 역시 수혜대상자로 그 위치에 있었을 때 자존감 상실이라는 어려움을 겪었었구요.
저는 작은 도서관의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활동이 잘 맞았고, 그쪽이 매력적이었어요. 하지만 즐거움만으로는 작은도서관을 유지할 수 없더라구요. 둘 중 한 명은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목사님이 생업에 나가게 되었고, 여기는 자체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목사님이 사회운동을 했던 사람이라 협동조합이나 사회복지에 열려있어서 초반부터 협동조합을 시작했는데, 쉽지는 않았어요. 청년들과 카페를 했다가 한 달 만에 접기도 했죠. 그런 경험과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협동조합을 창립하게 되었어요.
처음엔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이 탄탄하지 않은 상태라 어려웠고, 함께할 사람들을 찾았던 것 같아요. 2020년 지역에 학교 선생님, 지역작가와 예술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시지만 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끼시는 열두 분과 사회적협동조합을 창립했어요. 사람을 모으기만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경기도 마을종합지원사업에 운이 좋게 선정되었어요. 개인적으로 사업 이전에 커뮤니티가 더 단단하게 구성되어서 커뮤니티 안에서 사업의 필요성을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커뮤니티를 다지고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결과 발달장애인 자립 지원 카페를 오픈하게 되었고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발달장애인 친구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게 되었으니 나름의 목적으로 잘 가고 있네요.

Q> 경기도의 마을종합지원사업이 어떤 도움이 되셨을까요?
A>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시대의 필요와 지원 방향이 같이 가줘야 적절한 필요를 충족하고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지원사업은 소모적인 성격이 강하고 정산에서도 0원으로 마무리되어야 했다면, 마을종합지원사업은 다시 생산해내고 축적해내는 것을 가능하게 했어요. 지속적인 지원과 사람에 대한 투자가 있어서 지금의 모습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활동가가 활동하는데 금전적인 것이 중요한 가치와 보상 기준은 아니지만,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충분한 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지원 방향도 이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프로그램의 동원자가 아닌 주체로서 설 수 있게 하려면 사람에게 투자해서 사람을 남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중 사업이 그런 부분에 있어서 훌륭한 지원사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다 보면, 힘든 일도 있으셨을 텐데 대표님은 어떠셨어요?
A> 작은 도서관이 보통 자기의 콘텐츠로 수업하는 방식을 택하잖아요. 저는 우연히 지원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옆에 있는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기획했었어요. 솔직히 종교적 가치관이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프로그램 속에서 사람을 연결하고, 만나게 하고, 깊은 관계로 마음을 나누고, 여행도 가고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상대가 자신의 잇속 만을 챙기는 것 같고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생각이 들면 그 순간부터 의도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차갑게 마음이 닫히더라구요. 그런 순간들을 몇 번은 마주쳤던 것 같아요. 결국, 그 모든 것이 상대적이겠지만요. 그런 것에 소진되고 탈진되는 것 같아요.
Q> 최근에 대표님의 고민거리가 있다면 뭘까요?
A> 최근에 나는 무엇으로 공동체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 내 안에 있는 가치와 내가 할 수 있고, 잘하는 게 뭔지 찾아가는 시간인 것 같아요. 제가 다른 분들을 초빙할 때처럼 나를 부르려고 할 때 뭘로 부를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서글픈 일이었죠. 그걸 찾아가는 과정으로
사회과학을 다시 공부하면서 논문을 통해 사회를 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난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이었구나. 상식으로 나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구나, 돌이켜 보게 되었어요. 모든 지식과 앎이 한정되지 않고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 게 많고 단편적 시야를 깨우치는 과정인 것 같아요. 배움이 제 몸을 통과해 나오고, 통과해 나오는 제 언어로 저의 것으로 재정립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제 삶의 변곡점이 지금 같은데, 배움과 논문으로 제가 정리되고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Q> 사람들이 함께 하고 싶은 박명진 대표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A>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명분이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요. 최근에 착한 소비라는 말이 있죠. 소비에도 의미와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자고 하는 일에는 명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통미마을 공장이 망하지는 않겠죠?
통미작은도서관 사서님은 저에게 시대의 흐름을 앞서 읽는다고 하더라구요. 그의 말처럼 작은도서관도 마을공동체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머물러 있지 않고 색깔을 바꿔왔던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대표님이 앞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알려주신다면?
A> 제가 관계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청년들 모두가 자립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청년으로 넘어가면서 자립의지가 커지고 자립에 관심을 가지면서 혼자 사는 연습을 합니다. 훌륭하죠. 그런 고민에서 주거의 안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 여기는 땅값이 저렴하고 주택가이기도 하니까 공동매입해서 리모델링을 할 수 있게 국토부의 지원을 받아서 그 친구들의 자립을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 시간 남짓의 짧은 대화로 마을활동가이자 사회적 기업가인 박명진 대표를 다 담아내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녀가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지역사회와 자신의 삶을 그려가는지 엿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박명진 대표님의 개인적 성장과 발달장애인 청년들의 자립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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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