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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웹진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도입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배고픔

     

    학교 급식이 끝나면 어디로 가는가. 방과 후 혼자 집에 돌아가는 아이, 냉장고를 열어도 먹을 것이 없는 아이,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로 저녁을 때우는 아이. 빈곤은 반드시 남루한 외모로 나타나지 않는다. 교복을 입고, 스마트폰을 들고, 학교에 나타나지만,

    급식 외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빈곤' 속에 있다.

    2010년대 초 일본 도쿄 오타구(大田区)의 작은 야채 가게 주인 곤도 히로코(近藤博子)는 인근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홀어머니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어 식사를 챙겨줄 수 없는 아이가 있는데, 학교 급식 외에는 바나나 한 개로 하루를 버틴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이면 교감이 직접 집으로 마중을 나가 학교에서 주먹밥을 먹인 다음 점심 급식으로 연결한다고 했다.

     
      /ⓒPexels
     

    곤도 씨는 충격을 받았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졌다. 20128, 그녀는 자신의 야채 가게 한 켠에 '아이가 혼자 들어와도 괜찮은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아 '어린이 식당(こども食堂)'이라는 이름의 공간을 열었다. 밥 한 끼를 같이 먹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25, 일본 전역의 어린이 식당 수는 12,602개소에 달한다. 전국 공립 소학교 수의 약 70%에 해당하는 숫자다.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가 어떻게 일본 사회 전체로 퍼져나갔는지, 그리고 그 경험이 한국의 아동 돌봄 공백 문제에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지를 이 글에서 살펴본다.

     

    2. 탄생과 확산 한 야채 가게에서 전국으로

    곤도 히로코가 운영한 '기분내키는 대로 야채가게 단단(気まぐれ八百屋だんだん)'은 처음부터 특별한 공간이었다. 무농약 야채를 판매하는 이 가게는 점점 지역 주민들의 교류 공간이 됐고, 아이들의 학습 지원 공간이 됐으며, 어른들의 재학습 공간으로 발전해갔다. 그 연장선에서 20128'단단 어린이 식당(だんだんこども食堂)'이 탄생했다.

     
      /ⓒPexels
     

    '어린이 식당'이라는 이름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도쿄 도시마구(豊島区)에서 아동 지원 활동을 하던 NPO법인 '도시마 어린이 WAKUWAKU 네트워크'의 구리바야시 지에코(栗林知絵子)가 이 개념을 받아들여 자신의 지역에 어린이 식당을 열었고,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됐다. 2015년에는 도시마구와 인정 NPO법인 도시마 어린이 WAKUWAKU 네트워크가 중심이 되어 '1회 어린이 식당 서밋'이 열렸고, 전국에서 약 200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확산 속도는 놀라웠다. 2016년에는 전국 300여 개, 2018년에는 2,286, 2019년에는 3,718, 2020년에는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4,960개로 증가했다. 그리고 2024년에는 마침내 10,000개를 돌파해 10,867개에 달했고, 2025년 확정값으로는 12,602개소로 집계됐다. 운영 주체는 NPO법인, 지역 주민 그룹, 종교 단체, 기업, 개인 자원봉사자 등 다양하다. 개설 비용은 보통 수십만 엔 정도이며, 월 운영 비용도 수만 엔 수준으로 시작할 수 있다. 진입장벽을 낮게 유지하는 것이 급속한 확산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무엇이 이 운동을 이렇게 빠르게 퍼뜨렸을까.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 일본 사회에서 아동 빈곤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일본의 아동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높은 수준으로, 사회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둘째, 참여의 문턱이 매우 낮았다. 특별한 자격이나 자본 없이도 이웃의 마음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었다. 셋째, SNS를 통해 정보가 빠르게 공유됐다. '어린이 식당 만들기 강좌' 같은 실용적 정보가 퍼지며 따라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3. 어린이 식당은 무엇인가 두 개의 축

    어린이 식당을 단순한 급식 지원 시설로 보면 그 본질을 놓친다. 인정 NPO법인 전국 어린이 식당 지원센터 무스비에(むすびえ)의 정의에 따르면, 어린이 식당에는 두 개의 큰 축이 있다. 하나는 '아동 빈곤 대책'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 교류 거점'이다.

    이 두 축의 공존이 중요하다. 만약 어린이 식당이 순수하게 빈곤 아동을 위한 시설로만 규정된다면, 이용 아동에게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어린이 식당이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누구든지 올 수 있는 곳'이라는 포용성이다. 어려운 가정의 아이도,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지역 주민 누구나 와서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다. 특정 자격 요건 없이 열려 있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아이도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올 수 있다.

    실제로 2024년 무스비에의 조사에서 전체 어린이 식당의 71.7%'연령이나 속성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 가능'이라고 답했다. 어린이 식당은 어린이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지역 전체가 함께하는 공동체의 식탁인 것이다.

    메뉴는 대체로 단순하고 따뜻하다. 카레, 된장국, 야채 볶음, 주먹밥 같은 가정식이 중심이다. 요리를 하는 것은 동네 아주머니, 퇴직한 요리사, 가정주부, 학생 자원봉사자들이다. 음식값은 무료 또는 100~300(우리 돈으로 약 800~2,500) 수준이다. 같은 식탁에 앉아 함께 먹고, 이야기 나누고, 숙제를 함께 하는 것이 핵심이다.

     

    4. 전국 지원 네트워크 무스비에가 만드는 생태계

    어린이 식당이 단순한 개별 활동의 집합을 넘어 사회적 운동으로 성장한 데는 전국 지원 네트워크 '무스비에'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2018년 설립된 무스비에는 '어린이 식당이 전국 어디에나 있고 모두가 안심하고 갈 수 있는 장소가 되도록 환경을 정비한다'는 미션을 가진 인정 NPO법인이다. 이사장은 오랫동안 빈곤 문제에 관여해온 사회운동가 유아사 마코토(湯浅誠). 무스비에는 매년 전국 어린이 식당 수를 조사·발표하고, 운영 노하우를 공유하며, 지역 네트워크 단체들이 연결되도록 돕는다.

      /ⓒPexels
     

    무스비에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지역 네트워크'의 중요성이다. 개별 어린이 식당들이 혼자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지역 내 식당들이 연결되어 정보를 공유하고 상호 지원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지속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치바현의 사례에서는 지역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업과의 협력도 활발하다. 편의점 체인, 식품 기업, 지역 슈퍼마켓들이 식재료를 기부하고, 기업 직원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방식의 협력이 자리 잡았다. 정부도 움직였다. 일본 내각부는 어린이 식당을 아동 빈곤 대책의 일환으로 인정하고, 지방 정부를 통한 재정 지원을 확대해왔다. 시작은 민간이었지만, 정부와 기업이 뒤에서 받쳐주는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5. 한국의 현실 급식카드와 지역아동센터의 한계

    한국에도 결식 아동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있다. 크게 두 가지 축이다. 하나는 아동급식카드(급식 지원 카드)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아동센터다.

    아동급식카드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한부모 가정 등 18세 미만 취약계층 아동들의 결식 예방과 영양 개선을 위해 음식점 등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가 발급하는 카드다. 제도 자체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20266월 국무조정실과 보건복지부가 공동으로 발표한 운영 실태 조사 결과는 제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2024년 기준 충전됐지만 사용되지 못하고 소멸된 금액이 약 171억 원으로 전체 충전금의 7.8%에 달했다. 충전금의 10%도 사용하지 않은 아동이 4,800여 명에 달했다. 카드 사용 시 아이가 느끼는 낙인감, 사용 방법 미숙지, 일부 부모의 부적정 사용 등이 원인으로 확인됐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카드가 '밥 한 끼'만 해결한다는 점이다. 아이가 혼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계산하는 경험, 식당에서 혼자 앉아 밥을 먹는 경험은, 배를 채울 수는 있지만 따뜻함과 연결을 주지는 못한다.

    지역아동센터는 돌봄 공백을 메우는 또 하나의 축이다. 2023년 기준 전국에 4,200여 개소가 운영되며 약 10만 명의 아동이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아동센터는 자격 요건을 갖춘 아동을 대상으로 하고, 운영 시간이 제한적이며, 공간과 인력 부족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일반 아이들도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기능하기 어렵다. 일본 어린이 식당의 '누구든 올 수 있다'는 포용성이 한국 지역아동센터에는 구조적으로 내재되어 있지 않다.

     

    6. 무엇이 다른가 제도 대 문화

    일본 어린이 식당과 한국의 아동 급식 지원 체계를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제도 대 문화'의 차이다.

    한국의 접근 방식은 본질적으로 제도적이다. 누가 지원 대상인지, 얼마를 지원할지, 어떤 방식으로 지급할지를 정부가 정하고 시민은 수혜자로서 그 제도에 접근한다. 제도는 효율적이고 확장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낙인의 문제, 사각지대의 문제, 따뜻한 관계의 부재 문제를 제도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일본 어린이 식당의 접근 방식은 본질적으로 문화적이다. 이웃이 이웃을 챙기는 것, 동네 어른이 아이의 밥을 함께 먹어주는 것이 기반이다. 제도가 없어도, 보조금이 없어도, 마음이 있으면 내일 당장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모이면서 문화가 만들어진다.

     
      /ⓒPexels
     

    두 가지 접근이 상호 보완적일 수 있다는 것이 일본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일본도 처음에는 민간 문화 운동으로 시작됐지만, 이후 정부의 재정 지원이 뒷받침되면서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도 아동급식카드 같은 제도적 지원을 유지하면서, 그 위에 이웃이 함께 밥을 먹는 문화를 더하는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다.

    낙인 문제 해결의 측면에서도 어린이 식당 방식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취약계층 아동'이 아니라 '누구나 올 수 있는 동네 밥상'으로 프레이밍을 바꾸면,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손을 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7.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

    일본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비슷한 움직임이 이미 우리 곁에서도 시작되고 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서 자라난 '어릔이식당 작은숲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서는 지역사회의 자발적인 에너지가 모여 '어릔이식당 작은숲'이라는 이름의 공동체 식탁이 열리고 있다. 202411월부터 매달 한 번씩 문을 여는 이 식당은, 어느 한 기관이 운영하는 곳이 아니다.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를 중심으로 15년간 다져온 '꿈마을공동체' 지역 교회와 성당, 주민자치회, 작은 도서관, 학교, 복지관, 마을협동조합 등 20여 개 단체가 느슨하게 연결된 지역 네트워크 가 돌아가면서 식당을 열고 있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각 단체가 1년에 한두 번만 담당하면 된다.

    이 식당의 이름이 '어릔이식당'으로 표기되는 것은 오타가 아니다. '어린이''어른'의 만남을 중의적으로 담은 것이다. 마을 기업 '나눔과이음'이 알록달록한 비빔밥을 준비하면, '한살림 북서울노원지구'는 주먹밥을 만들고, 수공예 작가 모임 '마디상회'는 라탄 바구니와 꽃병으로 식탁을 꾸민다. 중고생 청소년들은 손님으로도 오지만, 테이블 메니저로서 동생들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말을 건네는 역할도 맡는다. 소박한 한 끼지만,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이 운동의 핵심 키워드는 일본에서 온 개념인 '이바쇼(居場所)'. 직역하면 '있을 곳'이지만, 그 안에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있어도 되는 곳, 평가받지 않는 곳,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말로는 '안식처', '비빌 언덕'에 가깝다. 어린이 식당은 밥을 주는 곳이 아니라, 이바쇼를 경험하는 곳이다.

    '어릔이식당 작은숲'의 에너지는 공릉동을 넘어 확산되고 있다. 20251016일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에서 열린 '어린이 식당 활동가 대회'에는 서울, 경기뿐 아니라 제주, 부산, 대구, 광주, 충북 등 전국에서 85명이 모였다. 복지관 사회복지사, 청소년센터 직원, 협동조합 구성원, 학부모 등 다양한 이들이 '어린이 식당'이라는 화두 하나로 연결됐다. 노원구에서는 상계동 청소년센터, 경춘선숲길 작은 도서관, 중계동 어린이도서관 근처 공간으로 점점 자리가 늘어나고 있다.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세 가지 시사점

    이 흐름에서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가 참고할 수 있는 점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낮은 진입장벽이 운동을 만든다. 어린이 식당이 12년 만에 12,000개소를 넘어선 비결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릉동 사례도 마찬가지다.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는 작은 싱크대 하나로 식당을 운영하고, 한 달에 한 번만 2층 로비를 어린이 식당으로 변신시킨다. 경기도 31개 시·군의 주민센터, 도서관, 복지관, 교회, 아파트 커뮤니티센터 등 이미 존재하는 공간 어디든 충분한 조건이 된다. "하고 싶은 사람들이,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는 것이 이 운동의 출발점이다.

    둘째, 포용적 설계가 낙인을 없앤다. 아동급식카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낙인감이다. 카드를 꺼내는 순간 '지원 대상'임이 드러나는 구조가 사용을 꺼리게 만든다. 반면 어린이 식당은 누구나 오는 곳이기 때문에 낙인이 없다. 공릉동 어린이식당도 이 원칙을 그대로 따른다. 저소득을 증명할 필요가 없고, 자원봉사로 참여할 기회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무스비에는 이를 어린이 식당 운영의 5대 원칙 중 하나인 '포용성'으로 명시한다. 경기도의 먹거리 지원 정책을 설계할 때, '지원 대상'을 별도로 분리하기보다 지역 주민 전체가 참여하는 포용적 공간을 만드는 방향이 낙인 문제 해결에 효과적일 수 있다.

    셋째, 기록과 네트워크가 운동을 키운다. 무스비에가 매년 전국 어린이 식당 수를 조사·발표하고, 지역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온 것이 운동의 지속적 성장에 결정적이었다. 2025년 전국 활동가 대회가 보여주듯, 지금 한국에서도 어린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거나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 있다. 경기도는 이 흐름을 받아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경기도 내 먹거리 돌봄 공익활동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유사한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면, 작은 시도들이 더 큰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곤도 히로코는 어린이 식당을 시작하며 거창한 사회 변혁을 꿈꾸지 않았다. "동네 아이가 바나나 한 개로 하루를 버틴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을 뿐이다. "아주머니들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가게 한 켠에 밥상을 펼쳤다.

    그 밥상이 12년이 지나 12,000개가 됐다. 전국 소학교 수의 70%에 달하는 숫자다. 매주 혹은 매달 문을 여는 그 밥상 앞에 앉아, 아이들은 밥 한 끼를 먹고,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동네에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경기도 어느 동네에서도 그런 밥상이 열릴 수 있다.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마음이 있고, 공간이 있고, 함께 할 이웃이 있으면 된다. 가장 오래된 공동체의 방식, 함께 밥 먹기가 가장 새로운 공익활동의 형태가 되는 것이다. 공익은 언제나 밥 한 끼처럼 따뜻하고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된다.

     

    마무리 밥 한 끼의 힘

    곤도 히로코는 어린이 식당을 시작하며 거창한 사회 변혁을 꿈꾸지 않았다. "동네 아이가 바나나 한 개로 하루를 버틴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을 뿐이다. "아주머니들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가게 한 켠에 밥상을 펼쳤다.

    그 밥상이 12년이 지나 12,000개가 됐다. 전국 소학교 수의 70%에 달하는 숫자다. 매주 혹은 매달 문을 여는 그 밥상 앞에 앉아, 아이들은 밥 한 끼를 먹고,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동네에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서울 공릉동의 어릔이식당 작은숲이 보여주듯, 그 밥상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차려지기 시작했다. 경기도 어느 동네에서도 그런 밥상이 열릴 수 있다.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마음이 있고, 공간이 있고, 함께 할 이웃이 있으면 된다.

    가장 오래된 공동체의 방식, 함께 밥 먹기가 가장 새로운 공익활동의 형태가 되는 것이다.
    공익은 언제나 밥 한 끼처럼 따뜻하고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된다.

     


     

    참고 자료

    [출처 1] 무스비에 2025년도 전국 어린이 식당 수 조사(확정값, 12,602개소) : https://musubie.org/news/press/30036

    [출처 2] 무스비에 2024년도 전국 어린이 식당 수 조사(확정값, 10,867개소) : https://musubie.org/news/press/11208

    [출처 3] 무스비에 2024년 어린이 식당 10,000개소 돌파 보도자료 : https://musubie.org/news/press/10825

    [출처 4] 무스비에 2023년도 전국 어린이 식당 수 조사(확정값, 9,132개소) : https://musubie.org/news/8560/

    [출처 5] 무스비에 조사·연구 사업 페이지 : https://musubie.org/project/research/

    [출처 6] 무스비에 202410,000개소 돌파 의의 보고서 PDF :
    https://musubie.org/wp/wp-content/uploads/2026/01/2024_kashosu_otsutaeshitaikoto.pdf

    [출처 7] 인정 NPO법인 카타리바 어린이 식당의 현황과 과제 : https://www.katariba.or.jp/news/2017/11/02/9882/

    [출처 8] 오리카네 라보 어린이 식당이란? 역할과 취지 소개 : https://www.orikane.co.jp/orikanelab/18584/

    [출처 9] 고단샤 코크리코 이름 붙인 사람 곤도 히로코 씨 인터뷰 : https://cocreco.kodansha.co.jp/cocreco/general/life/pHNqE

    [출처 10] 닛케이 우먼 어린이 식당 1호 탄생 이야기 : https://woman.nikkei.com/atcl/column/23/013000056/112000032/

    [출처 11] 이노베이션홀딩스 CSR 곤도 히로코 씨 인터뷰 : https://www.ihd.co.jp/wp/csr/news/202502032573

    [출처 12] 무스비에 10주년 사이트 지역에 뿌리 내리는 어린이 식당 : https://ks10th.musubie.org/interview/16

    [출처 13] 보건복지부 결식아동 급식카드 운영실태 조사결과 발표(2026.06.24.) :
    https://mohw.go.kr/board.es?act=view&bid=0027&cg_code=&list_no=1490994&mid=a10503010100

    [출처 14] 정책브리핑 결식아동 급식카드 운영실태 조사결과 :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56767842

    [출처 15] 대한급식신문 관리 사각 드러난 결식아동 급식카드 : https://www.f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367

    [출처 16] 국가정보포털 아동급식지원 현황 통계 : https://www.index.go.kr/unity/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707

    [출처 17] 공공데이터포털 보건복지부 지역아동센터 현황 2023: https://www.data.go.kr/data/15004404/fileData.do

    [출처 18]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아카이브 어린이 식당, 관계 회복을 위한 가장 따뜻한 초대 :
    https://www.gggongik.or.kr/page/archive/archiveinfo_detail.php?board_idx=13098
     
     
    일본 '어린이 식당' 운동이 한국 아동 돌봄 공백에 주는 시사점
    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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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20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노조하면 왜 남성 노동자를 떠올렸지?

    인터뷰가 계속될수록 내 안에 올라오는 질문이었다. 80년대 마산수출자유지역 여공으로 일하다 TC전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조위원장이 된 사람. 16개월의 옥고를 치른 후, 안산과 서울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장, 서울지부장을 역임한 사람. 고등학교 급식조리원들의 연장근로 수당 2.5배 쟁취하고, 서울 초등돌봄전담사 4시간 시간제 노동자들의 차별 시정 소송을 대법원 승소로 이끈 사람. 김정임 님은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한다.”라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여성 노동운동의 역사였다.

     
     / ⓒ인터뷰이 제공
     

    Q 역대급 폭염에 건강하게 활동하며 일하는 일상이 궁금하다.

    현재 요양보호사로 주 5일 일하고 있다. 요즘 퇴근길에 더워서 서점에 들른다. 책 보며 마음을 식히다가 선선할 때 집에 와서 저녁 먹고, 공원 산책하며 운동한다. 한 달에 한 번 수지 에니어그램 강사 모임에 참여하고, 줌(Zoom)을 통해 화상으로 스님과 책을 읽는다. 인사동에서 써클댄스도 추고 친구와 만나 노래방에서 목청껏 노래도 부른다. 8월에는 딸과 사위들 생일에 부모님 제사까지 집안 행사로 바쁘지만 아주 즐겁게 보내고 있다.

     

    Q 요양보호사로 좀 멀리 출퇴근한다고 들었다.

    영등포에서 마곡으로 출근한다. 돌보는 어르신은 69세 파킨슨병으로 요양 등급 2급이다. 출근하면 제일 먼저 식탁과 의자를 깨끗이 닦는다. 파킨슨병 환자는 거동이 불편해 음식을 자꾸 흘리기 때문이다. 나는 식사 수발하고, 목욕시키고, 빨래 청소 음식 조리까지 한다. 가끔 휠체어로 공원산책도 하고 같이 장도 보고, 수명산 도서관에서 큰 글자 유아용 책을 빌려와 읽어드리거나 색칠 공부, 누워서 하는 요가 동작도 함께 한다.

    왕복 출퇴근 시간만 2시간 넘지만, 서로가 잘 맞아 정성으로 마주하고 있다. 예전에 안산에서 서울로 경기도 전역으로 하루 4시간 출퇴근하며 활동하던 경험이 쌓여서 힘든 줄 모르고 한다. 한 달에 120~150만원 4대 보험 빼면 빠듯한데, 큰 빚 없이 자립해서 감사하다.

     

    Q 강사로 활동한다는 수지에니어그램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소개한다면?

    '수지에니어그램'180장의 카드를 가슴과 양팔에 붙였다가 떼어가며 내가 누구인지, 나답게 사는 게 뭔지 참 나를 찾는프로그램이다. 수산나(수지) 선생님이 대안학교 청소녀들을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 시작했는데 전국에 10개 센터와 해외에 2개센터를 두고 있다. 나는 9번 유형인데,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넓은 품과 조용한 힘이 있는 유형이다. 나를 제대로 알면 나다운 삶을 살게 된다. 2018년부터 지인들에게 성당, 학교, 상담실과 집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눔을 하였고 일하는여성아카데미 교육위원으로 강의해 왔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부담 없이 수지에니어그램을 하는 게 꿈이다.

     
     / ⓒ일하는여성 아카데미
     

    Q 청년 시절 마산수출자유지역 노동자로 들어갔고, 그 지역에서 노동 운동한 걸로 안다.

    나는 거제도 출신이고 15녀 중 셋째 딸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며 당연히 대학에 갈 줄 알고 모범생으로 공부했는데, 어머니가 강하게 반대했다. 남동생을 대학 보내야 한다는 이유였다. 울며 싸우다 결국 대학을 포기했다. 인문계 졸업하고 대학 안 가면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동네 친구를 따라 공장에 취업하러 마산으로 갔다.

    고등학교까지 시켜놨더니 왜 공장에 가냐.”

    내가 공장 간다니까 어머니는 울고불고 말리다가 쌀 한 되박을 싸서 보내주셨다. 마산 수출자유지역에 있는 일본계 전자 회사에 들어가 도장 날인 작업을 했다. 나중에는 임금과 환경이 훨씬 좋은 미국계 다국적 기업 ‘TC 전자로 이직해 본격적인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Q 공장 생활 중 삶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다고 했다. ‘아욱실리움 기숙사가톨릭여성회관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가톨릭고등학교에 다닌 인연으로 살레시오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아욱실리움 기숙사에 들어가 공장에 다녔다. 거긴 수녀님들과 함께 매일 새벽미사를 하였고, 1980년 광주 항쟁 비디오도 거기서 처음 볼 수 있었다. 가톨릭 여성회관에서 이경숙 선생님이 진행하는 여성교실강좌를 들었는데, 내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부모님으로부터 받아온 성차별,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로서 '공순이'라 불리며 받아온 차별이 사회 구조적 문제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알게 된 계기였다.

     

    Q 그러다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7~9월 전국적으로 분출한 노동자들의 노동쟁의와 민주화운동) 당시 하루가 다르게 옆 공장들은 노조를 만드는데 우리 회사만 노조가 없었다. 어느 날 과장이 나를 불렀고, 현장분위기가 시끌시끌하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자 조회대 앞에 모아 놓고, 조용히 시키라며 나한테 마이크를 주었다. 내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여러분 어떻게 할까요? 일할까요? 나갈까요?” 뜻밖에도 모두 나가자!”“나가자!”소리쳤다. 순식간에 1,500명이 넘는 여공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임금 인상하라!” “인간답게 살고 싶다!”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열었다.

    회사는 목요일부터 4일간 휴업을 선포했고 우리들은 분임장 60명이 모여 아욱실리움 기숙사에 모여 밤새워 노조를 결성하였다, 월요일 노조 결성보고를 홍보하러 갔다가 회사 간부들에게 잡혀가 빨갱이라는 욕을 먹고 노조 간부였던 친구 2명과 함께 대구새마을연수 보내졌다. 2주후 회사로 복귀하니 60여명을 모아 놓고 노조강제 해산을 하게 했다. 그리고 기술과와 설비과로 부서이동을 당하였다. 온갖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19885월 비밀리에 여성 동지들과 노조를 재창립했다.

     
      / ⓒ인터뷰이 제공
     

    Q 노조를 와해하려는 구사대의 폭력이 대단했을 텐데 어떻게 계속 싸울 수 있었나.

    노조를 재창립하자 회사는 남자 구사대(救社隊, 노동운동 파괴를 목적으로 회사측이 만든 노동자 조직) 300명을 동원해 무자비한 폭행을 저질렀다. 온몸이 멍들고 집단 구타를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 소식이 창원 지역 남성 노동자들에게 전해지면서 지역 전체의 투쟁으로 번졌고, 결국 회사로부터 노조 인정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위장 폐업을 시도했고, 우리는 기계 출고를 막으며 1년 가까이 공장 점거 투쟁을 해야 했다. 198912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공권력이 투입되어 전원 연행되었고, 나는 업무방해 및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1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마산교도소와 원주교도소 독방에서 꼬박 실형을 살고 19915월에 출소했다.

     

    Q 감옥 생활은 어땠나? 감옥에 가기 전과 후를 비교해 달라.

    내가 감옥에 가기 전 농성장에서 동지들과 농성장 사수팀과 재정팀으로 다양한 재정사업을 했다. 볼펜 판매 양말 판매 대학축제 때 김치전 판매도 하고, 서울 본사 대사관 부산 영사관등을 다녔다. 교도소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독서와 편지쓰기였다. 원주교도소 독방에 홀로 수감되어 너무 외롭고 힘들 때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 답장으로 마음을 나누었고, 출소하는 날 원주교도소 정문으로 그와 TC동지들이 대형 버스로 꽃다발과 두부를 들고 찾아왔다. 그도 나처럼 구속된 경험이 있어 노동자의 삶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던 것 같다. 그 후 1992년에 우리는 결혼했고 두 딸을 낳았다.

     

    Q 경남의 여성 노동 활동가가 어떻게 안산시민이 되었나?

    2003년 남편이 서울에서 일하게 되면서 나를 올라오라 했다. 나는 마산창원 여성노동자회에서 일하며 지역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안산여노 회장과 남편이 먼저 만나 아파트 전세를 얻으니 나도 아이들과 함께 이사와서 다음 날부터 안산여성노동자회로 출근했다. 여성 노동자복지센터와 고용평등상담실을 맡았다. 한부모자녀들과 체험학습 등, 실업계고등학교 노동법·최저임금 내 권리찾기 등 강의활동과 직장 내 성희롱예방교육 강사 활동을 하였다.

    특히 직장 내 갑질과 최저임금 위반으로 힘들어하던 청소 노동자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를 노동부 진정으로 처벌받게 하고, 출산·육아휴직 상담, 홈플러스 매대 노동자 상담으로 수많은 여성 노동자를 노조 조합원으로 연결했다. 한양대 안산캠퍼스 청소미화원 조합원들과는 풍물과 민요를 함께 배우고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 ⓒ인터뷰이 제공
     

    Q 그러다 안산을 넘어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장과 서울지부장이 된 건가.

    안산시흥지부, 부천지부. 영양사지회. 사서지회가 주춧돌이 되어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를 창립하였고 나는 안산여노 고용평등상담실 일과 안산시흥지부장를 겸하다 경기지부 조직국장이 되었다. 이후 경기지부장이 되었다. 안산 한양대 청소미화원 조직과 안산 지역 고등학교 급식조리원들의 처우개선 투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중식·석식으로 하루 4시간 넘게 연장근로를 하는데 학교는 2시간만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하였다. ‘연장근로근로기준법이 바뀌는 시점이었다. 조리원들은 억울해하며 어떻게 하면 일한 만큼 댓가를 받을 수 있는지 상담해 왔다. 공동교섭을 요구했으나 경기도 교육청은 사업주가 아니라며 교섭에 임할 수 없다고 했다.

    1년 가까이 고등학교를 돌며 교섭을 벌인 결과 연장근로 수당을 1.5배가 아닌 2.5배로 받는 단체협약을 타결해 냈다. 또한 서울지부장 시절에는 시간제 돌봄전담사들을 조직하여 4시간 시간제 초등돌봄전담사들의 차별 시정 투쟁을 시작하여 지노위 중노위 지법 고법 대법원까지 가서 차별 시정 판정을 받았고 그동안 차별 받았던 것을 보상받았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억울하면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급식 조리원들도 초등돌봄전담사들도 똘똘 뭉쳐 싸운 결과다. 유능한 김재진 노무사님과 공감 변호사님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연대해 준 덕분이다.

     
     / ⓒ인터뷰이 제공
     

    Q 안산여성노동자회에서의 활동과 연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

    안산여노에서 근무할 때 고용평등상담실 상담이 주 업무였다. 직장 내에서 여성노동자가 받는 성차별과 불합리한 차별에 대한 상담전화를 받고 무료 변호사를 선임하여 행위자인 상사가 처벌받고 억울한 노동자가 제 자리로 돌아갈 때 행복했다. 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이 삭감되니 퇴사했다. 그래도 한 달 한 번 뚜뚜(뚜벅뚜벅 걷기)’ 소모임 회원들과 함께 걷고 여행한다. 늘 일에 쫓기고 바빴지만, 페미니즘 토론토임 이프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줌이라 퇴근 후 할 수 있어 좋다. 무디어지기 쉬운 여성 노동과 성평등 이슈를 다양한 연령의 남녀가 함께 책과 영화로 토론한다.

     
     / ⓒ인터뷰이 제공
     

    Q 평생 여성 노동운동을 해왔고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해 싸워왔는데, 중년에 가장 저임금 돌봄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이런 여성의 노동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20대 때는 공장에서 산업역군이라며 착취당하고, 30~40대에는 IMF를 거치며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는데, 60이 된 지금도 최저임금 수준의 돌봄 노동자다. 그동안 대학원도 나오고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등 자격증을 땄지만 중년 여성노동은 여전히 단시간·저임금 비정규직이다. 급식, 청소, 돌봄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 노동임에도 적정임금도 정당한 대우도 거리가 멀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며 그렇게 싸웠는데 딸 세대마저 2년 계약직을 전전하는 걸 볼 땐 마음이 아팠다.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하는 걸 경험했는데, 세상은 여전히 쉽게 바뀌지 않는구나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요즘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평정심을 찾으려 한다.

     

    Q 현재 삶에 어려움, 또는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말해 달라.

    남편과의 관계가 숙제로 남아 있다. 동지적으로 잘 살 줄 알았는데 그는 지금 나 말고 다른 곳이 좋다고 멀리 떠나 산다. 내가 오래 가슴에 품어온 버킷리스트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10월에 1617일로 친구들과 함께 다녀오게 됐다. 그리고 곧 태어날 첫 손주 만날 날을 설레며 기다리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할 때 가장 당당하고 에너지 넘쳤던 것처럼, ‘수지 에니어그램이라는 좋은 도구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따뜻한 활동을 마음껏 펼치며 살아가고 싶다.

     / ⓒ인터뷰이 제공

     

     

    여공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장까지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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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13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잘 나가던 은행원이 현모양처꿈을 안고 결혼했다. 남편의 잇따른 사업 실패와 채무, 도박으로 결혼생활은 18년 만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생계형 한부모 여성노동자는 닥치는대로 일했다. 식당 아줌마, 공장 노동자, 국민건강보험 전화상담사를 거쳐 지금도 비정규직 일자리로 먹고산다. “이혼 10년을 살아내니 내 삶에 눈이 뜨였다라 고백하는 이문옥 님을 소개한다.

    여성에게 일과 가정이란 무엇인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들어보자.

     

    Q 현재 행정복지센터 비정규직 직원이다. 맡은 일이 무엇인가?

    안산시의 7개월짜리 계약직 디딤돌일자리로 행정복지센터에서 일상생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독거 어르신들을 방문해 안부와 일상의 문제들을 돕고, 사무실에선 행정 보조도 한다. 3월부터 시작했으니 어느새 6개월째다. 안산에서 두 딸을 키우며 쉬지 않고 일해온 30년 차 일하는 엄마. 최근 몇 년은 계약직으로 일하고, 끝나면 또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일을 찾아서 일한다. 며칠 전 국세청 홈택스에 들어갔다가 체납관리단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해 뒀다.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일자리라 내 조건에 맞더라.

     
      / ⓒ인터뷰이 제공
     

    Q 1996년까진 일 잘하는 여성 은행원이었다. 좋은 보수의 일자리를 버리고 서울에서 안산으로 오게 된 계기는 결혼이었나?

    결혼을 앞두고 은행에서 퇴사해야 했다. 당시 내 월급이 200만 원이 넘었다. 여상 졸업하고 입사해서 2년 만에 주임 달고, 3년 만에 계장 달 만큼 진급도 빨랐다. 하지만 은행 일이라는 게 현금을 직접 다루고, 매일 마감 시간에 맞춰 정산하니까 항상 팽팽한 긴장 속에 살았다.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라는 중압감에 시달리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위장병으로 병원 가기 일쑤였다.

    <고용보험법>도 없던 시절이라 여성은 결혼하면 퇴사하는 게 규정이었다. 언니들 중엔 비밀리에 결혼하고 쉬쉬하며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8년 경력자로 과장 시험을 앞두고 결혼 날짜가 잡혔다. 그때는 현모양처가 되는 게 여자의 행복인 줄 알았다. 모아놓은 돈으로 신랑을 도왔다.

     
      / ⓒ인터뷰이 제공
     

    Q 낯선 안산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는데, 현모양처 할만하던가?

    주산 부기 타자 학원 선생 소개로 그의 동생을 만났다. 선생을 믿고 만났는데, 막상 보니 결혼 준비에 대책이 없더라. 5남매의 막내지만 집에서 도움이 없었다. 첫 단추부터 싸했지만 내가 참고 노력하면 되겠지!’ 하고 내 돈을 꿔주며 결혼했다. 안산에서 남편이 빵 배달 대리점을 시작했다. 100% 현금거래라 저녁마다 현금을 셀 땐 금방 돈을 벌 것처럼 보였다.

    총판으로 사업을 넓히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사업 자금이 부족하니까 내 돈 천만 원에, 8년 부은 국민연금 환급금까지 다 깨서 대줘야 했다. 하지만 그는 밤마다 도박과 게임에 빠져들더라. 현금이 줄고, 거래처 미수금이 쌓이는데, 확인해 보면 이미 돈을 당겨쓰고 날려버린 상태더라. 내 명의로 은행 대출, 보험약관 대출, 사채와 카드까지 메꾸다가 결국 마지막 벼랑에 몰리더라.

     

    Q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빚더미에 이혼이라니, 쉬운 결정 아니었을 거 같다.

    2012년부터 내가 이혼을 요구했지만 2014년에야 끝났다. 결정적인 계기는 우리 큰애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한부모 가정이며 저소득층 자녀장학금과 급식비 지원 안내문을 보냈다. 내가 딱 깨달았다. ‘, 내가 남편 울타리를 못 버리면 빚에 쫓기다가 아이들의 미래까지 망치겠구나.’ 서류상으로라도 깨끗하게 정리해야 애들 공부를 시키겠더라.

    남편은 서류 정리를 안 해주려 버텼다. 내가 법원에 가서 서류 사인만 해주면 우리 생활엔 아무 변화 없게 해주겠다”, 설득했다. 법원 상담관한테 이렇게 어려운 상황인데 처리해 주는 게 맞다라는 말을 듣고서야 서명하더라. 4주간의 숙려기간 후 서류가 정리되던 날, 서운함이나 슬픔은 1%도 없었다. ‘, 이제 드디어 이 지옥 같은 늪에서 벗어났구나!’ 엄청난 해방감만 느꼈다.

     
      / ⓒ인터뷰이 제공
     

    Q 애 둘 딸린 이혼녀로서 새출발할 때, 마음이 여유가 없었을 거 같다.

    애 둘 데리고 나와서 바로 동사무소에 찾아갔다. “내가 애 둘이랑 살길이 뭐냐?” 물었더니 LH 임대주택을 가르쳐 주더라. 바로 신청했는데 떨어졌다. 다른 조건은 다 똑같은데 청약저축이 없어서 가점을 못 받았다더라. 기가 막히고 서러워서 직원한테 그랬다. “청약저축에 넣을 돈 있었으면 애들 생활비에 다 보탰지, 이런 게 있는 줄 알고도 안 넣었겠냐.”

    그길로 은행으로 달려가 청약저축 제일 적게 넣는 금액이 얼마냐?” 물었다. 매달 2만 원씩 차곡차곡 부었다. 1년 남짓 지나 다시 LH 공고가 떴다. 아이 둘 손잡고 임대주택 후보지를 직접 둘러본 후, 교통과 편의시설이 좋은 중앙동으로 정했다. 마침내 당첨 통보를 받고 집 문을 열었을 때,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한부모로 기초생활수급 주거 급여 대상이 되었다.

     

    Q 한부모 여성 가장으로서 생계를 홀로 책임지며 걸어온 길에 박수를 보낸다. 노동자로서 해온 일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노동의 역사를 약술해 보자.

    홀로서기 본격 시작은 식당 아줌마였다. 아는 동생이 쌈밥집을 열며 도와달라 했다. 남들은 10분 만에 하는 쪽파 한 단을 나는 눈물 흘리며 2시간 다듬었다. 하루 12시간 노동하고 한달 150만 원, 눈물이 나더라. 1년 하니 온몸이 만신창이로 골병이 들었다.

    핸드폰 부품 공장에서 3년 가까이 일했다. 시급 4,860원을 받으며 주야간 잔업에 주말 특근까지, 어떨 땐 24시간 근무로 뼈가 부서져라 일했다. 일이 끊기면 용역 과장한테 주말 알바를 받아내고, 큰애까지 알바를 시켰다. 요양보호사 교육원을 거쳐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상담원을 하다, 비정규직 병원동행 매니저, 일상생활 매니저까지 이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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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국민건강보험 상담 일은 어떻게 하게 됐나? 일하던 중, 100일 만에 1,000명의 조합원을 모아 노동조합을 세우고 역사를 쓴 비밀이 뭐였나?

    국민건강보험 상담원으로 들어가니, 간접고용 용역업체 구조가 참 야속했다. 1년마다 용역이 바뀌면 퇴직금을 정산해 버려서 경력이 다 끊기고, 화장실 갈 시간조차 제대로 없는 열악한 조건이었다. “용역업체 중간 착취 말고 공단에서 직접 고용해라. 우리도 인간답게 일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슴속에서 끓어올랐다.

    2019년에 뜻있는 동료들과 결의하고, 100일 동안 비밀 작전으로 조합원을 모았다. 10주 만에 1,000명의 조합원을 조직해 창립총회를 열었다. 대의원 선거로 내가 부위원장이 되었다.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지만 사측과의 충돌은 심했다. 조합원들의 단결과 투쟁으로 휴가와 생리휴가를 자유롭게 쓰고, 눈치 안 보고 화장실 갈 수 있는 기본권리를 쟁취해 냈다. 동료들이 나를 두고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조의 역사적 인물이라 불러줄 때, 보람을 느꼈다.

     

    Q 노조활동을 통해 안산여성노동자회로 연결된 건가? 여성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과 삶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을 거 같다.

    처음엔 노동조합자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일할 때 팩스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안내문이 들어왔길래, 강의 들으러 간 게 안산여성노동자회와의 첫 인연이었다. 교육 후 수강생들과 후속 모임으로 책 모임을 만들고,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며 토론한 게, 지금 10년 차 페미니즘 토론모임 이프의 시작이었다.

    여성노동자회 활동을 통해 세상과 노동을 보는 눈이 180도 달라졌다. “내가 겪는 부조리와 차별이 내 개인 탓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2023년부터 안산여성노동자회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여성들이 존엄하고 평등하게 일하는 세상을 위해 작은 힘을 보탠다.

    특히 안산여성노동자회 회원 소모임 '뚜뚜(뚜벅뚜벅 걷기)'의 모임지기로서 한달에 한번 회원들과 함께 뚜벅뚜벅 걷고 여행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

     / ⓒ인터뷰이 제공

     

    Q 한부모 여성 노동자로 살아오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전남편과의 관계는 깨끗이 정리됐다. 그러나 이혼 후 홀로서기로 힘들 때 일로 연결되어 오랫동안 마음 쓰던 인연이 있었다. 나는 그의 일을 봐주고 그는 경제적으로 나를 좀 도와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가 자기 맘대로 전화해서 내게 요구하고 자기 말만 하는 등 이기적인 태도를 보였다. 예전의 나라면 속 끓이며 끌려다녔을 텐데, 아주 단호하게 선을 긋고 관계를 정리했다.

    남의 기분이나 사정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의 주도권을 딱 쥐고 나니, 가슴이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시원하더라. 타인이나 부모, 자식이나 남편에게 의지하려 했던 마음을 완전히 털어내고, 내 힘으로 바로 서는 것이 진짜 해방이고 자립이라는 것을 배웠다.

     

    Q 박봉의 일용직·계약직 노동을 전전하면서도 마침내 여성노동운동에 헌신하기까지, 살아온 과정에 큰 박수를 보낸다. 문옥 님만의 노동과 삶의 철학이 있다면?

    비록 내가 매달 큰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사글세 걱정하며 사는 것도 아니다. 은행원 시절부터 몸에 밴 절제된 생활 습관이 있어서 헛돈을 쓰지 않으니까, 적은 수입으로도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가끔 생각한다. 은행 입사 동기 남자들은 퇴직하기까지 은행원인데 여직원은 왜 퇴사하게 했을까? 나는 왜 지금까지 계약직을 전전할까? 이게 바로 사회 구조적인 불평등이더라.

    그럼에도 내 손으로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해서 두 딸을 키워낸 건 내 자부심이다. 얼마 전 알고 지내던 70대 언니가 사기를 당해 힘들게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형편도 박봉이지만 푹푹 찌는 더운 날 시원한 음식이라도 한 그릇 사드시라고 10만 원을 송금했다. 내 가슴이 시키는 대로, 적지만 힘든 이웃에게 베풀 수 있게 마음이 넉넉해진 게 감사하고 뿌듯했다.

     

    Q 엄마로서, 딸들과의 관계도 궁금하다. 험난했던 노동과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란 두 딸에게 지금 전하고 싶은 마음은 무엇인가?

    두 딸은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보석이자 버팀목이다. 빚더미 속에서 이혼하고, 식당에서 공장에서 고생하는 걸 본 아이들이라선지 참 바르게 자라주었다. 한때 둘째 아이와 오해가 생기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졸업 무렵 둘이 떠난 대부도 여행을 잊을 수 없다. “엄마가 먹고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버텨온 시간을 전했을 때 아이가 엄마 고생 많이 했구나 몰랐어라며 이해해 주었다.

    아이들에겐 늘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지만, 당당하게 일하고 불의에 맞서 노조로 싸운 엄마를 본 게 아이들에게 어떤 역경이 와도 스스로 일어서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

     

    Q “이혼 후 10년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내 삶에 눈이 열렸다라고 했다. 여성의 삶에서 참 의미있는 말이다. 앞으로 꿈꾸는 삶과도 연결된 말로 들린다.

    결혼생활 후반 10년간 결혼의 문제를 처절히 인식했다. 이혼 후 홀로서기 10년을 버텨내며,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열렸다. 전에는 부모나 남편을 의지했고 아이들을 중심으로 살았다. ‘현모양처말고, ‘이문옥자체가 삶의 주인이 되었다. 그 누구를 의지하거나 매이지 않게 되었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고, 세상을 보는 눈이 점점 너그러워지고 연대하게 됐다.

    큰 욕심은 없다. 적십자 봉사회(고잔1 봉사회), 안산-유기농먹거리와 건강개선지원사업 반찬도시락 참여, 노란리본 희곡산책 낭독극에 참여하며, 프롭테라피와 줌바 댄스도 한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며 봉사하고 연대하며 살고 싶다. 내 힘으로 일해 내 삶을 책임지며, 이웃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 노동자 이문옥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것이다.

     

     

    현모양처는 잊어라, 내 이름은 한부모 여성노동자
    꿀벌

    조회수 370

    2026-08-13
  • 데이트 폭력은 스토킹에서부터 신체적 폭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
    며, 최근 사례들은 그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기도 성남에서는 아
    파트 보안 직원이 거주 여성을 지속적으로 스토킹하다 결국 구속된 사건이 있었
    습니다. 경찰은 초기에 체포영장이 두 차례나 기각되자 프로파일러의 분석을 통해
    재범 위험성과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제시했고, 이를 근거로 법원이 영장
    을 발부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스토킹 행위라도 재범 가능성이 높을 경우 적극적
    인 사법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또 다른 사건으로는 태권도 선수
    인 30대 남성이 연인 관계에 있던 여성을 집요하게 통제하다가 술자리 말다툼 중
    뒷덜미를 잡아당기고, 신고를 막기 위해 휴대전화를 빼앗아 던진 뒤 얼굴에 발차
    기까지 가한 사례가 있습니다. 피해자는 안와골절로 수술까지 받아야 했고, 평소
    에도 위치 추적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감시와 집 비밀번호를 몰래 알아내 무단 침
    입을 당하는 등 지속적인 공포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스토킹과 데이트 폭
    력은 피해자의 안전과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 중대한 범죄
    로 비화할 위험이 높습니다. 결국 두 사건은 데이트 폭력이 단순한 연인 간 갈등
    이나 일시적 다툼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범죄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
    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
    련과 더불어, 경찰과 법원이 조기 개입하여 재범을 차단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시
    급합니다. (출처 : https://www.insight.co.kr/news/516126,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5/08/19/M2GHFGOHDVEBF
    JHTEVDJCUQFUQ/?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
    aver-news)

    ● 데이트 폭력이란 무엇인가?

    데이트 폭력은 흔히 단순한 연인 간 다툼이나 갈등으로 오해되기 쉽지만, 사실상
    연애 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포괄하는 심각한 범죄 행위입니다.

    데이트라는 이름 때문에 사소한 갈등처럼 치부되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신체적
    폭행, 언어적 모욕, 정서적 괴롭힘, 경제적 착취, 성적 강요, 그리고 스토킹이나
    감금과 같은 위협적 행위까지 포함됩니다. 우선 신체적 폭력은 가장 눈에 띄는 형태로, 밀치기·뺨 때리기·머리채를 잡는 행
    위 등 직접적인 신체적 공격이 이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데이트 폭력은 이보다 훨
    씬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집니다. 예를 들어 언어적·정서적 폭력의 경우, 반복적
    인 욕설이나 고성, 모욕적인 언행을 통해 상대방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정신적으
    로 위축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네 잘못이야”라고 문제의 원인을 일방적으로
    전가하거나, 지속적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행위도 심리적 폭력의 일환입니다. 경
    제적 폭력 역시 연애 관계에서 빈번히 발생합니다. 상대방의 경제 활동을 제한하
    거나, 금전 사용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심지어 돈을 갈취하거나 경제적 의존 상태
    를 악용하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피해자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결국 가해자에게 종속되도록 하는 위험한 수단이 됩니다. 더 나아가 성적
    폭력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연인 관계라는 이유로 동의 없는 스킨십이나 성관계를
    강요하는 것은 명백히 성범죄에 해당합니다. 사귀는 사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의
    사에 반하는 신체 접촉은 ‘강제추행’이나 ‘강간’으로 처벌될 수 있으며, 실제 법원
    판례에서도 이를 엄격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디지털 폭력이 점차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피해자의 휴대폰을 무단으로 확인하거나 위치정보를 추적하
    고, 사적인 사진이나 영상을 빌미로 협박하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딥페이
    크 기술을 악용해 피해자의 얼굴을 합성한 불법 영상물을 제작·유포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어 사회적으로 큰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데이트 폭력이 더욱 심각한 이유는 피해자가 이러한 폭력 상황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관계 때문에 거부 의사를 드러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니까 참아야 한다”는 왜곡된 정서나, “헤어지자”는 말을 꺼낼 때
    발생할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피해자의 침묵을 불러옵니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데이트 폭력은 일반적인 폭력 범죄보다 은폐율이 높고, 신고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다수 존재합니다. 가해자의 성별은 남녀를 가리지 않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대체로 남성이 가해자,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피해자들은 20~30대가 주를 이루며, 연애

    관계 속에서 상대방에게 의존하거나 신뢰를 보낸 상태에서 폭력에 노출되는 경우
    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심리적 충격과 배신감이 일반적인 폭행 사건보다 훨씬 크
    고, 장기적인 정신적 후유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결국 데이트 폭력이란 연인 간 갈등의 수준을 넘어선, 관계의 친밀성과 의존성을
    악용한 권력형 폭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다툼으로 축소하거나 ‘사
    적인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되며, 사회적으로 명백한 범죄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만 피해자가 안전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반복적인 가해
    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 데이트 폭력이 미치는 악영향

    데이트 폭력은 피해자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도 심각한 파장을 미칩니다. 먼저 개인적 차원에서 피해자는 신체적 상처뿐 아니
    라 장기적인 정신적 후유증을 겪게 됩니다. 폭행으로 인한 골절, 상처, 흉터 등
    신체적 피해는 눈에 보이는 상처이지만, 더 큰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상처입니다. 지속적인 폭언, 협박, 감시와 같은 정서적 폭력은 피해자의 자존감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며, 불안 장애,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이어지
    기도 합니다. 특히 가해자가 가까운 연인이기 때문에 신뢰와 애정의 배신감이 동
    반되어, 피해자는 대인관계 전반에 대한 불신과 공포를 가지게 되고 이후 정상적
    인 사회생활과 인간관계 형성에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경제적 악영향도 큽니다. 일부 가해자는 피해자의 재정 활동을 통제하거나 금전
    을 갈취함으로써 피해자를 경제적으로 종속시키기도 합니다. 피해자는 치료비, 변
    호사 비용 등으로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떠안으며, 직장 생활에도 집중하지 못
    해 경력 단절이나 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자립 기반을 잃고, 결국 가해자에게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회적 차원에서도 데이트 폭력은 여러 문제를 낳습니다. 피해자가 신고를 주저
    하거나 고소를 취하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범죄가 은폐되고, 이는 가해자의 재범
    으로 이어질 위험성을 높입니다. 실제로 많은 데이트 폭력 사건이 심각한 살인이
    나 강력 범죄로 비화하는 경우가 있어 사회적 안전을 위협합니다. 또한 피해자가

    학업이나 직장에서 이탈하면서 사회적 생산성 저하가 발생하고, 의료·사법·복지
    등 국가 자원이 추가로 소모되는 부정적 효과도 큽니다. 무엇보다도 데이트 폭력
    을 단순한 연인 간 갈등으로 치부하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은 피해자에게 2차 피
    해를 주고, 폭력이 용인되는 분위기를 조성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킵니다. 결국 데이트 폭력은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파괴하고, 경제적 자립을 약화
    시키며, 사회적 비용과 불안을 증가시키는 복합적 범죄입니다. 단순한 사적 문제
    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 강화, 사회적
    인식 개선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 데이트 폭력의 실태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 데이트 폭력은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며 심각한 사
    회문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약 7만 건이던 신고
    건수가 2023년에는 7만7천여 건으로 늘었고, 2024년에는 8만8천 건을 넘어 불과
    2년 사이 1만 건 이상 폭증했습니다. 특히 단순한 폭행 수준을 넘어 성폭력이나
    감금, 협박을 동반한 범죄의 증가세가 두드러지며, 피해의 양상이 갈수록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가해자는 주로 2030대 남성이 다수를 차지하고, 피해자는 2030대
    여성이 많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교제 폭력이 두드러진다는 특징을 보입니
    다. 그러나 문제는 신체적 폭행에서 그치지 않고 디지털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피해자의 스마트폰 위치를 추적하거나, 사적인 사진과
    영상을 빌미로 협박하는 방식이 빈번히 활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딥페이크 기술
    을 악용해 성적 영상물을 제작·유포하겠다고 위협하는 사례까지 나타나 사회적 불
    안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피해자들은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
    해자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나 주변의 시선, 혹은 관계 유지에 대한 압박 때문에
    폭력 피해를 숨기고 참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 법제도의 미비점도 문제
    를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데이트 폭력은 가정폭력처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피해자는 일반 폭력 사건과 동일한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이 때
    문에 경찰이나 법원으로부터 신속한 보호조치를 받기 어렵고, 반의사불벌죄가 적
    용되는 경우 피해자가 처벌 의사를 철회하면 사건이 무마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많은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회유나 협박에 의해 끝내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가 적
    지 않습니다. 결국 데이트 폭력은 단순히 연인 간의 갈등을 넘어선 구조적 범죄이며,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특수성이 존재합니다. 통계에 드러난 수치만 보더라도 그
    심각성이 충분히 확인되지만, 신고되지 않은 은폐된 피해 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
    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따라서 데이트 폭력을 개인 간 사적인 문제로
    축소하지 않고, 사회 전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 경기도의 대응

    경기도는 최근 급증하는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
    해 피해자 안전망 강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보호가 미
    흡하다는 사회적 비판이 잇따르자, 경기도는 지자체 차원에서 선제적이고 구체적
    인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안심 패키지 지원사업’과 ‘바로희망팀 운영’ 은 대표적인 대응 사례로 꼽힙니다. 먼저 수원시는 여성 1인 가구와 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여성안심 패키지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성들이 집 안에서조차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
    을 최소화하기 위한 생활 밀착형 지원책입니다. 지원 물품에는 창문 잠금장치와
    휴대용 비상벨, 안심경보기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상황에 따라 스마트 도어벨이
    나 홈카메라 중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스마트 도어벨은 방문자가 초인종
    을 누르면 실시간으로 스마트폰 화면에 영상이 전송되어 신원을 확인할 수 있고, 홈카메라는 집 내부를 원격으로 확인할 수 있어 침입이나 위협 상황에 즉각 대응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러한 장치는 단순한 방범 효과를 넘어, 여성들이 “혼자
    사는 집”이라는 이유로 겪는 구조적 불안을 완화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실제로
    지원사업은 우선순위를 설정해 범죄 피해자, 저소득 여성 1인 가구, 한부모 가정
    등 사회적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제공되고 있어, 실질적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집중 지원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편, 안성시는 ‘바로희망팀’을 신설하여 가정폭력, 성폭력, 스토킹, 데이트 폭력

    사건을 전담 처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했습니다. 기존에는 피해자들이 사건 발생 직
    후 경찰, 상담 기관, 법률 지원 센터 등 여러 기관을 일일이 찾아가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심리적 부담과 시간적 지연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바로희망팀
    은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한 장소에서 상담, 안전 점검, 법률 상담, 복지
    자원 연결, 심리 지원, 심지어 생계와 일자리 지원까지 제공하는 원스톱
    (one-stop)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팀 구성에도 전문성이 강화되어 있어, 경찰관이
    현장 치안을 담당하고, 전문 상담사가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을 돕고, 변호사가 법
    적 절차를 안내함으로써 피해자 보호와 권리 보장을 동시에 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경기도의 대응은 단순히 범죄 발생 후 사후 지원에 머무르지 않고, 범죄
    예방과 피해 최소화라는 이중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여성
    안심 패키지는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여 범죄 발생 가능성을 낮추고, 바로희망팀은
    범죄 발생 이후 신속하고 통합적인 대응으로 2차 피해를 막는 역할을 합니다. 두
    정책 모두 피해자들이 여러 기관을 전전하지 않고도 즉각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
    도록 설계되어, 심리적 안정과 제도적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궁극적으로 경기도의 대응은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을 단순히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 안전과 직결된 사회 범죄로 인식하고, 이를 지자체 차원에서 적극
    적으로 개입해 해결하려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피해
    자들이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동시에, 향후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중요한 정책적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사랑의 탈을 쓴 폭력, 경기도가 움직였다
    주야

    조회수 92

    2025-08-19
  • 땀 흘리는 도시, 안산

    안산은 땀 흘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입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불이 켜
    진 공장들, 쉼 없이 돌아가는 일터들이 밀집해 있고, 저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
    속에서도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삶의 안전망이 필요하고, 서로를 보듬는 손길이 절실한 곳이기도 하지요. 누군가는 오늘도 혼자서 무너져가는 집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고, 누군가는 아이
    손을 잡고 차가운 방에서 내일을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2015년 3월 22일, 한 알의 씨앗

    바로 그런 고민에서 시작된 단체가 있습니다. 이름도 마음도 따뜻한 곳, '사단법
    인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제회 좋은 이웃'입니다. 어느 날 좋은 이웃 회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언제까지 단순히 '요구하는 존재'로만 머물러야 할까요? 우리도
    스스로 나누고 실천하는 주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시 창립을 함께한 김태환 님의 이 말이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노동자 봉
    사단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습
    니다. 준비모임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특별한 것 없었습니다. 미용사, 전기 기
    술자, 페인트공, 배관공... 화려한 재능이라기보다는 삶에서 익힌 '직업'의 손기술들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삶에서 익힌 이 기술들이

    - 2 -

    누군가에겐 삶을 다시 세우는 소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2016년 4월, 첫 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단체가 바로 '따숲네'입니다. 이름처
    럼, 따뜻한 숲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저는 참여할 생각이 없었어요. 지금은 따숲네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미향 님도 처음엔 거리를 두고 있었습
    니다.

    "봉사는 시간과 돈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로 생각했죠. 저는 그럴 여유가 없었
    어요. 마음도 몸도 바쁘게 살고 있었거든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일상. 남을 도울 여유 같은 건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걸려 온 한 통의 전화가 그녀의 삶을 바꿔놓았습니
    다. 어르신 염색 좀 도와줄 수 있겠냐는 부탁이었어요. 오래된 미용사 자격증이
    있었거든요. 한 번쯤은 괜찮겠지, 하고 갔죠. 그날, 그녀는 오랫동안 방치된 머리
    카락으로 인해 움츠러들어 있던 할머니의 모습을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정
    리해 드린 후 거울을 보며 환하게 웃는 할머니의 얼굴 또한 봤습니다. 그 모습에
    오히려 제가 행복해졌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다음 달도, 그다음 달도... 어느새 계속 함께하고 있더라고요."

    - 3 -

    봉사는 여유가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녀는 그렇게 깨달았습니다.

    봉사의 숨은 뿌리들. 현재 따숲네에는 약 55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며, 모두 월 1만 원의 회비를 내고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여유롭지 않은 생활을 하지만, 이 작은 마음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운영비는 회비와 각종 지원 사업, 노동조합과 지역단체의 기부금으로 마련됩니다. 고대병원, 삼화페인트, 서안산 로터리클럽 등에서 정기적으로 후원과 봉사를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예전엔 당근마켓을 뒤져가며 물품을 구했어요. 싼 가전, 헌 가구를 수리해서 썼
    죠. 요즘은 좀 여유가 생겨 가구당 100~150만 원 정도는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
    매해 드립니다."

    1년에 8번, 여름(7, 8월) 과 겨울(12, 1월) 을 제외한 시기에 봉사가 이루어집니
    다. 지금까지 누적 80여 회. 정기적으로 모이는 봉사자 수는 평균 15명 정도. 따
    숲네 회원들 외에도 4.16 가족, 청년 조직 마니또, 삼화페인트 직원 등 다양한 사
    람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 4 -

    도배, 장판은 뜻을 함께하는 사장님이 비용을 최소화해 도와주고, 전기, 청소, 정
    리, 정돈은 회원들이 직접 나섭니다. 상황에 따라 가전과 가구를 새로 들여놓기도
    합니다.

    "돈으로 주세요"라는 말.

    "우리의 진심을 믿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사진만 찍고 가는 거 아니냐?', ' 형식적으로 왔다가 대충하고 가는 거 아니냐?'라며 차라리 돈으로 달라는 경우도
    많았죠.“

    세상에 차가운 바람이 많이 불어서, 따뜻한 손길마저 의심하게 된 사람들이 있죠. 그것이 봉사자들에게는 가장 큰 상처였습니다. 혼자 사는 어르신의 집을 찾았다
    가, 독립한 자녀의 반대로 하루 전날 취소된 적도 많습니다. 경계의 눈빛. 의심의
    말투. 하지만 봉사자들은 그 모든 것을 견디고, 결국은 바꿔냅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다해, 손을 보태면... 그들의 표정이 달라져요. 고마
    움, 안도, 환함. 그걸 보면 우리도 변해요. 그게 봉사의 기쁨이에요."
    의심이 신뢰로, 경계가 감사로, 차가움이 따뜻함으로 바뀌는 순간들. 그 순간들이
    따숲네 사람들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 5 -


    "우리가 진짜 보고 싶은 건, 아이들의 웃음이에요"

    대상자는 드림스타트, 장애인단체, 동사무소 등에서 소개받습니다. 요즘은 한부모
    가정이 많아졌습니다. 대부분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고, 청소와 정리는 엄
    두조차 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아이들이에요. 보살핌을 받아야 할 시기에 방치되어 있죠. 건강도, 정서도 위험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따숲네는 단순히 집을 고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젊은 봉사자들이
    아이들과 놀아주고, 멘토가 되기도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이 달라집니다.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요. 그 웃음소리가 우리가 진짜 보고 싶은 거예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면, 엄마의 얼굴도 조금씩 밝아집니다. 그렇게 한 가정
    이 조금씩 회복되어 갑니다.

    - 6 -

    기억에 남는 집.

    "시각 장애인의 집이었어요. 집 전체에 곰팡이가 가득했죠. 보이지 않으니, 본인도
    몰랐던 거예요." 그 집에 들어선 순간, 봉사자들은 말을 잃었습니다. 시각 장애인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실감했습니다.

    "도배, 장판을 새로 하고 화장실을 청소하는데 냄새가..., 말 그대로 전쟁이었죠. 바퀴벌레가 떼로 몰려다니는 집도 있었어요. 소리 지르고 도망치며 청소했어요. 그 집들은 이제 깨끗하게 변했답니다.“

    나는 그,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땀과 정성이 담겨있는지, 신미향 회장의 상기된
    표정을 보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 7 -

    따숲네가 바라는 것.

    "기부와 봉사, 저도 처음엔 여유 있는 사람들이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더
    군요. 마음이 있는 사람이 하는 거예요.“

    신미향 회장 역시 한 부모로 아이를 키웠고, 한때 전구 하나 못 갈아 어둠 속에
    서 살던 날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땐 누가 전구 하나만 갈아줬으면 좋겠다, 그랬거든요. 지금은 따숲네가 전구를 갈아드려요. 봉사가 끝난 뒤에도 연락해 주
    시면 언제든지 달려갑니다."

    자신이 받고 싶었던 작은 도움을, 이제는 누군가에게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따
    숲네의 가장 큰 바람은 젊은 사람들의 참여입니다.

    "살기 어려워서겠지요. 그래도 한 번만 용기 내어 오셨으면 좋겠어요. 매달 아니
    어도 괜찮아요. 시간 날 때, 마음 동할 때 오시면 됩니다. 부담 없이 오셔서, 따뜻
    한 숨결을 함께 나눠주세요."

    - 8 -

    따뜻한 숲이 되다. 이름 없는 손길들이 모여 만든 숲. 그곳에선 오늘도, 조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
    습니다. 무너져가는 집이 따뜻한 보금자리로 바뀌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다시
    희망을 품게 되고, 혼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변화의 이름은 바로 '따숲네'입니다. 따뜻한 숲처럼, 지친 사람들에게 쉼을 주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절
    망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 그곳에서 오늘도 누군가는 전구를 갈아주고, 누군가는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누
    군가는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봉사는 여유가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따숲네 회원들은 삶으로 보여주
    고 있습니다. 따뜻한 숲, 따숲네. 그곳에서 오늘도 사랑이 자라고 있습니다.

    따숲네, 따뜻한 숨결을 나누는 사람들.
    윤작가

    조회수 69

    2025-07-08
  • ● 영 케어러란 누구인가?
    영 케어러(Young Carer)란 가족 내에서 질병, 장애, 정신질환, 노화 등으로 인해
    자립이 어려운 구성원을 돌보는 역할을 수행하는 아동·청소년 또는 청년을 말합니
    다. 일반적으로 만 18세 이하를 기준으로 하며, 경우에 따라 만 25세 이하의 청
    년까지 포함되기도 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일상적인 가족의 일원으로서 돕는 수준
    을 넘어, 실제로 성인이 담당해야 할 간병, 가사노동, 감정적 지지, 생계 보조 등
    의 책임을 실질적으로 떠맡고 있습니다. 영 케어러가 수행하는 돌봄의 범위는 매
    우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신체적으로 거동이 어려운 부모나 조부모를 부축하거
    나, 약을 챙겨주고 병원에 동행하는 일은 물론, 식사 준비, 청소, 세탁 등의 가사
    노동까지 맡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장애가 있는 동생을 돌보거나, 우울증이나
    중독 증세를 앓는 가족 구성원을 정서적으로 지지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처럼 영 케어러는 또래와는 다른 무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주변에 알리기 어려워하며, 오히려 '가족이니까 당연하다'는 사회적
    시선 속에 침묵을 강요받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책임은 아동·청소년기라는 생애주
    기의 특성과 맞지 않아 학업을 포기하게 하거나, 또래 관계 형성에 제약을 주고, 자아 정체성 발달을 방해하는 등 다층적인 문제를 야기합니다. ● 한국 내 영 케어러의 실태
    (출처 :
    https://www.chosun.com/economy/economy_general/2024/10/21/4OYLKRK7LNBT
    TH5W6WN3SI3VUM/)
    한국에서는 아직 영 케어러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가 존재하지 않고, 관련 통계
    또한 극히 제한적입니다. 공식적인 전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 규모조차 제
    대로 파악되지 않은 채, 대부분의 영 케어러는 비가시적인 상태로 존재하고 있습
    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연구에서는 청소년의 약 2~3%가 영 케어러로 추
    정되고 있으며,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등 돌봄 취약 가정에서 더 높은
    비율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조사 결과도 나와 있습니다. 2023년 김지선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부연구위원이 발표한 ‘가족 돌봄 청년 기초 연구’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만 9세에서 18세 사이의 영 케어러는 총 7만885명으로, 해당 연령대 인구의 약
    3.5%에 해당합니다. 이는 국내 최초로 실시된 영 케어러 규모 추산 결과로, 지금
    까지 은폐되어 있던 청소년 돌봄자의 존재를 드러낸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이 추산은 기초생활수급 가구 중 장애인, 중증 질환자, 70세 이상 노인이 있는 가
    구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생계 책임을 지는 소년·소녀 가장, 알코올 중독자나 치
    매 환자 가족을 간병하는 경우도 포함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10대 영 케어러는 부모나 조부모의 질환·중독 문제를 대신
    떠안고, 생계비 마련부터 간병, 가사노동까지 전방위적인 책임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정작 본인의 학업이나 진로 탐색, 또래 관계 형성 등 청소년기에 반드
    시 필요한 성장 과정은 희생되기 쉽습니다. 학교생활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중도
    포기하게 되는 사례도 적지 않으며, 결국 이들은 사회적 안전망 바깥에서 ‘미래를
    저당 잡힌 청소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영 케어러라는 용어는 1980년대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부모 등에게 무보수
    로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청소년'으로 정의됩니다. 영국, 호주 등은 이들을 독립된
    사회정책 대상으로 인정하고, 생계비 지원, 돌봄 서비스 제공, 교육 지원 등을 통
    해 국가적 차원의 보호 조치를 시행 중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영 케어러를
    위한 정부 차원의 공식 추산이나 체계적인 지원책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입
    니다. 실제로 국제 학계에서는 한국의 영 케어러 대응 수준을 총 7단계 중 최하
    위인 7단계, 즉 ‘무반응 국가’로 분류하고 있어 제도적 공백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내 영 케어러는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숨겨진 집단’, ‘잊힌 최전선’으로
    남아 있으며, 제도적 보호 없이 가족 내 돌봄 부담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들을 사회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실질적 정책 개입과 지원 체계 마련을 논의해
    야 할 시점입니다. ● 영 케어러가 겪는 어려움
    영 케어러가 감당해야 하는 부담은 단순히 육체적인 노동에 그치지 않고, 삶의 전
    반에 걸쳐 복합적인 문제로 나타납니다. 첫째, 이들은 돌봄 책임으로 인해 정상적
    인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아침 일찍 가족의 간병을 마치고 등
    교해야 하거나, 병원 동행, 가사노동 등의 이유로 결석과 지각이 반복되며, 심지어

    는 학업을 포기하게 되는 사례도 발생합니다. 이는 결국 학력 단절, 진로 제한, 취업 기회의 박탈로 이어지며 장기적으로 사회적 계층 고착을 초래할 수 있습니
    다. 둘째, 정서적·심리적 부담과 사회적 고립 또한 심각한 문제입니다. 또래와는
    다른 책임감과 부담 속에서 성장한 영 케어러는 우울, 불안, 죄책감, 분노 등 다
    양한 정신건강 문제에 노출됩니다. 친구와의 관계를 맺을 여유가 없고, 여가 생활
    역시 단절되어 고립감을 느끼기 쉬우며,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가족을
    배신하는 행위’로 여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더불어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아르
    바이트나 부업을 병행하는 등 경제적 책임까지 떠맡는 경우도 있어, 청소년이 감
    당하기에는 과도한 짐을 지고 살아가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영 케
    어러는 교육, 정서, 사회, 경제 등 전 영역에서 다층적인 어려움을 경험하며, 그에
    따른 종합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 국내 제도적 변화와 정책 동향
    (출처 : https://www.law.go.kr/lsInfoP.do?lsiSeq=270215&viewCls=lsRvsDocInfoR
    #)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영 케어러와 같은 위기 청년·아동에 대한 제도적 대응 필
    요성이 제기되면서, 국가 차원의 입법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2025년 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가족돌봄 등 위기 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의결
    하였으며, 이는 위기 상황에 놓인 아동과 청년에 대한 종합적 지원 체계를 법제화
    한 최초의 시도입니다. 이 법안의 제정 목적은 사회적 고립이나 돌봄 과부하 등으
    로 삶의 질이 저하된 청년과 아동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의 보장과 사회참여를 가능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활력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이 법안은 우선 ‘가족돌봄 아동·청년’을 34세 이하로서 돌봄이 필요한 가족에게
    간호, 간병, 일상생활 지원 등의 무보수 도움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으
    며, 병역의무 이행자에 대해서는 그 기간을 연령에 가산하여 포함할 수 있도록 규
    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립·은둔 아동·청년’은 타인과의 교류가 극히 제한되거나
    상당 기간 동안 좁은 거주공간에 머물며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으로 정의함으로
    써, 다양한 위기 양상을 포괄하려는 의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제도적 운영 측면에서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아동정책조정위원회 및 청년정책조정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5년마다 ‘위기 아동·청년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며, 3년
    마다 전국 단위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표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단발적 지원이 아닌, 중장기적 정책 설계와 집행이 가능해집니다. 지원
    체계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위탁·지정한 기관·단체가 전담하며, 실태조사나 본인
    신청을 통해 발굴된 위기 청년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각각의 사례에 맞춘
    맞춤형 사례관리 계획을 수립하여 사회보장급여를 연계·지원합니다. 사례관리 종
    료 시까지 지속적인 관리가 의무화된 점은 큰 특징입니다. 구체적인 지원 항목으
    로는 심리상담, 건강관리, 학업 연계, 취업 준비, 주거 안정 지원뿐 아니라, ‘가족
    돌봄 아동·청년 특별지원’, ‘고립·은둔 청년 맞춤형 프로그램’ 등이 포함되어 있습
    니다. 특히 자기 돌봄을 위한 시간과 비용까지 국가가 지원할 수 있도록 근거가
    마련된 점은 기존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보건복지부장관이 위기아동·청년 정책센터를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
    며, 모범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을 ‘전문지원기관’으로 인증하는 체계도
    함께 도입됩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는 정책의 실효성과 현장성과를 동시에 확보
    하려는 것으로, 향후 실행 과정에서의 평가와 개선이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법안은 단순한 복지 확장의 의미를 넘어, 그동안 ‘가정 내 문제’로 은폐되어
    온 영 케어러의 삶을 사회의 책임으로 전환시키는 기점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만 향후 실제 법 집행 시 충분한 예산 확보, 전문 인력 배치, 지역 간 형평성
    등의 문제가 뒷받침되어야만 제도의 목적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 해외의 영 케어러 지원 사례
    영 케어러 문제는 이미 해외 여러 나라에서 사회적 이슈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각
    국은 제도적 대응과 복지 지원을 통해 체계적인 보호에 나서고 있습니다. 영국은
    2014년 ‘아동 및 가족법(Children and Families Act)’을 제정하여 영 케어러를 공
    식적으로 법에 명시하고, 지방정부에 실태 파악 및 지원 의무를 부여하였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영국 내 많은 학교에서는 ‘Young Carers in Schools’라는 전국 단
    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교사가 영 케어러를 조기에 인지하고 학업·정서·생활지
    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습니다. 또한 ‘Care Advice Line’과 같은 전용
    상담 창구를 통해 이들에게 심리적 상담과 정보 제공을 하고 있습니다. 호주는
    ‘Carer Gateway’라는 국가 차원의 온라인 플랫폼과 ‘Young Carers Network’를
    구축하여, 영 케어러가 본인의 상황을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필요한 서비스에 접
    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호주는 이 외에도 청소년 돌봄자를 대상으로 한
    수당과 학업 보조금,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 학교와의 협력 서비스 등 다양한 재
    정적·교육적 지원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2020년부터 후생노동성과 문부과

    학성이 공동으로 영 케어러 실태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보건·복지· 의료·교육을 아우르는 연계 시스템을 바탕으로 학교 교직원, 지역 복지 담당자, 병원 등이 협력하여 조기 발굴과 사례 관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은 지
    방자치단체별 전담창구를 설치하고, 영 케어러를 위한 상담, 지역 사회 자원 연계, 단기 돌봄 지원 등 다양한 맞춤형 서비스를 지역 실정에 맞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영국, 호주, 일본은 제도적 정의뿐 아니라 교육, 상담, 경제 지원, 지역 기
    반 연계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이고 실질적인 정책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이
    향후 영 케어러 정책을 설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참고 사례로 작용할 수 있습니
    다. 영 케어러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보이지 않는 돌봄 노동자’로 존재하고 있습
    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가족의 간병과 가사노동, 정서적 지원까지 맡
    으며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이들은, 공식적인 복지 체계나 제도에서조차 인식되지
    못한 채 긴 시간 침묵 속에서 고립되어 왔습니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돌봄의
    책임을 가족, 특히 여성과 아동에게 전가해왔고, 영 케어러 문제 또한 그 연장선
    상에서 개인의 책임이나 ‘효(孝)’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하지
    만 돌봄이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책임이라는 인식 전환이 이루어
    지지 않는 한, 이들의 인권은 계속해서 침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 케어러는 단지 가족을 돕는 아이들이 아니라, 국가의 공적 돌봄 시스템이 부
    재하거나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구조적 취약계층입니다. 이들은 학업, 진로, 친구 관계, 자기 돌봄 등 청소년기에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빼앗기고 있
    으며, 그로 인해 성인이 되어도 교육·고용·건강 등 다방면에서 장기적인 손실을
    겪을 위험이 큽니다. 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위한 조기 발
    견 시스템, 정서적·경제적 지원, 교육 연계, 법적 보호 체계가 마련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돌봄의 공공성을 확대하여 아동·청소년이 가족의 돌봄 공백을 메우
    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국가와 사회는 이제라도 영 케어러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들의 권리 회복
    과 자립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나서야 할 시점입니다. 아동과 청소년은 미래
    의 주체이기 이전에 현재의 권리 주체이며, 이들의 삶을 책임지는 것은 복지국가
    로서의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지금 이들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우리 사회
    가 얼마나 포용적이고 책임 있는 공동체인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입니다.

    내가 엄마를 돌본다고요?... 교복 입은 간병인들의 비밀
    주야

    조회수 79

    2025-05-10
  • [기획] 미혼모·미혼부, 한부모로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 - 편견과 차별의 시선을 넘어, 눈물 어린 땀방울로 아이의 손을 잡고 찬란한 가족의 봄을 일구어내는 위대한 연대의 발걸음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공익웹진

    세상의 굳은 편견을 이겨내며, 홀로 아이의 온전한 우주가 되어주는 이들

    대한민국에서 누군가의 엄마,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책임과 헌신을 요구하는 일이다. 하물며 사회적 편견의 눈총과 경제적 불안정, 그리고 제도적 사각지대의 차가운 벽을 온몸으로 마주하며 홀로 아이를 키워내야 하는 미혼모, 미혼부, 그리고 한부모들의 삶은 얼마나 고되고 외롭고 단단한 싸움일까.

    "우리는 과연 이들이 당당하게 이웃과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공정한 품을 내어주고 있는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차별의 장벽 뒤로 이들을 밀어내고 있는가?" 혈연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넘어, 오직 사랑과 헌신으로 아이의 찬란한 유년기를 빚어내는 한부모들의 눈물겨운 일상과 이들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연대의 필요성을 깊이 조명한다.

    미혼모·미혼부, 한부모의 양육이 우리에게 건네는 3가지 묵직한 화두와 과제

    1.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시선을 깨고,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온전히 인정하기

      • 전통적인 부모의 형태가 아니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회적 낙인과 편견을 거두고, 모든 형태의 사랑과 양육이 동등하게 존중받는 평등한 문화 조성.

      • "가족의 가치는 형태의 완벽함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진정한 사랑과 책임에서 완성된다"는 포용의 철학.

    2. 생계와 돌봄의 이중고를 잠재우는 촘촘한 경제적·제도적 지원 체계

      • 홀로 아이를 키우며 일자리와 육식을 병행해야 하는 버거운 현실 속에서 양육비 이행 확보, 주거 지원, 그리고 긴급 돌봄 서비스 확충 등 실효성 있는 국가와 지자체의 공공 안전망 강화.

      • "아이 키우는 일이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 형벌이 되지 않도록" 돕는 든든한 공익의 디딤돌.

    3. 고립의 방을 나와 서로의 의지가 되어주는 한부모 자조모임과 연대의 숲

      • "나만 이렇게 힘들고 외로운 게 아니구나"라는 깊은 공감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육아 노하우와 고민을 나누며 당당한 사회의 주체로 일어설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 확대.

      •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키우는 경기도"를 향한 따뜻한 발걸음.

    현장의 온기로 채워졌던 뜨거웠던 공감과 교감의 시간들

    미혼모, 미혼부, 그리고 한부모들이 모여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아이들과 함께 환하게 웃음 짓던 소통의 현장은, 그 어떤 자리보다 뜨거운 인간애와 생명의 온기로 가득 채워졌다.

    • 한부모 당사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양육 나눔 세션: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숨죽여 눈물 흘릴 때가 많았지만, 이곳에서 내 아이의 손을 잡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동료들을 만나 비로소 진짜 가족의 힘을 배웠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부모들의 뭉클한 순간들.

    • 한부모 가정을 위한 경기도형 정책 브레인스토밍: "양육비 채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강력한 법적 제재와 더불어,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뛰어놀 수 있는 '한부모 친화적 동네 문화'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어떤 시선과 편견이 찾아와도 미혼모·미혼부와 한부모 가정이 소외되지 않고,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모든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품 안에서 차별 없이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위해 끝까지 함께 걷겠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미혼모·미혼부, 한부모로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
    주야

    조회수 13087

    20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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