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한 부모로 산다는 건
아이를 낳아서 키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2022년 4월 28일 보건복지부(복지부)가 발표한 ‘2021년도 보육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한 달 평균 양육비는 97만 6,000원으로 가구 평균소득의 19.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달에 100만 원 가까이 양육비로 지출하는 셈입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 아이를 온전한 인간으로 양육하는 것은 아이의 교육, 양육 환경, 정서 등 모든 것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부모보다도 유독 육아에서 어려움을 겪는 부모가 있습니다. 바로 미혼모, 미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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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는 혼인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출산하여 어머니가 된 여성을 말합니다. 반대로 남성이 혼인하지 않은 상태로 아이를 키우는 경우는 미혼부라고 합니다. 미망인, 이혼자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은 혼인, 결혼했다가 이혼이나 사별로 인해 혼자(독신)가 된 이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혼인을 아예 하지 않은 채로 아이를 낳기도 하는데 청소년 미혼모가 주로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미혼모·미혼부는 대다수가 육아와 일의 양립에서 어려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적 편견과 싸워야 합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2017년 발표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16~44세의 성관계 경험이 있는 여성 2,006명 중 약 70%가량가 “임신과 낙태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걱정이나 두려움을 느낀 적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이러한 답변이 미혼모·미혼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인 셈입니다.
미혼모가 아이를 기를 수 없다고 판단하여 낙태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낙태는 법적 문제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낙태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 분분합니다. 인터넷에 ‘낙태’에 관해 검색만 해보더라도 낙태죄가 폐지되었으니 여성이 단독으로 수술을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밝히는 의사부터 ‘모자보건법’에 의거한 수술만이 가능하다고 제한 조항을 다는 의사도 있습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가 헌법정신에 위배된 법률’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3명이 즉시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단순위헌’ 의견을, 4명은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유예기간을 둔 뒤 해당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습니다. 낙태죄가 헌법정신에 어긋나지 않으므로 존속해야 한다고 밝힌 ‘합헌’ 의견은 2명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유예기간을 두고 2020년 12월 31일까지만 낙태죄를 유효하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2021년부터는 낙태 수술 허용 범위인 모자보건법만 남게 되고, 낙태로 인한 처벌 규정(형법)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미혼모는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아이를 낳을지 선택할 수 있을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낙태죄로 인한 처벌 폐지 이후 모자보건법 개정은 여전히 모호한 상황입니다. 모자보건법상 수술 허용 범위가 남아 있지만, 그 이상의 범위에서 수술이 이뤄지더라도 처벌되지는 않는 모호한 상황이 지속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낙태 수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논의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2021년 2월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서 권덕철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낙태에 관한 건강보험법을 언급한 바 있으나 준비 계획을 수립하겠다는데 멈춰있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기본법은 고사하고 아직도 ‘불법이냐 합법이냐’에 관한 논쟁조차 끝나지 않은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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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하지 않고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도 미혼모·미혼부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2017년 말 기준 한부모가족복지시설은 전국에 129개소 뿐입니다. 동시 수용 가능 인원은 10명이 채 되지 않는 곳이 많고, 인력 또한 부족합니다. 게다가 미혼모·미혼부는 개인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아동양육비를 받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병원 외에서 출산하는 경우 출생신고부터 진행되는 각종 행정절차에서부터 발목을 잡습니다. 청소년 미혼모의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미혼모들은 관련 서류에 쓰여 있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미혼모·미혼부가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조건 자체도 매우 까다롭습니다. 한부모가족지원법은 한부모가족으로 양육비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을 중위소득 52% 이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마저도 아동복지법에 따른 가정위탁양육보조금을 받는 경우는 지원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미혼부의 경우 출생신고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칙적으로 친모만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보니, 미혼부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습니다. 지난 2015년 미혼부의 출생신고도 가능하게 한 개정안이 나왔지만, 적용이 까다로워서 아직도 많은 미혼부가 아이 출생신고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결국, 지난 2023년 3월 헌법재판소가 관련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단했음에도 법 개정 시한이 아직 2년이나 남아 있습니다. 결국 ‘미등록 아동’으로 살아가게 되는 아이는 예방 접종은 물론, 병원 접수나 건강보험도 적용될 수 없습니다.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갈 수 없다는 문제도 발생합니다. 미혼부가 아이를 출생 신고하기 위해서는 자녀 생모의 이름, 생모의 등록기준지와 주민등록번호를 몰라야 한다는 조건이 있으나, ‘모른다’라는 기준이 모호하여 입증을 위한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에 대한 판단 기준이 재판부마다 다르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는 데만 길게는 4~5년이 걸립니다.
국가에서는 미혼모·미혼부를 지원하기 위한 각종 복지 정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이혼‧사별 또는 미혼의 임신 여성 및 출산 후(6개월 미만) 지원을 필요로 하는 여성’은 기본생활을 1년에서 1년 6개월까지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기본생활 지원이란 숙식 무료 제공을 비롯하여 분만 의료 혜택이 있습니다. 분만 의료 혜택은 의료급여 대상자로 관리하거나 지역 내 병원, 보건소 등을 지정하여 산전, 분만, 산후에 필요한 검진하는 것 등이 포함됩니다. ‘3세 미만의 영유아를 양육하는 미혼모’나 ‘출산 후 해당 아동을 양육하지 아니하는 미혼모’의 경우에도 공동생활 지원을 각각 2~3년과 2년~2년 6개월씩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공동생활 지원에는 컴퓨터, 기계자수, 홈패션, 양재, 미용 등 직업교육 프로그램 시행과 기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정하는 경비를 지원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미혼부의 경우 아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대한법률구조공단(☎132), 한국가정법률상담소(☎1644-7077), 한부모가족 상담 전화 ☎1644-6621(ARS 2번 연결)에서 유전자 검사비 지원, 친생자 출생신고를 위한 확인 절차 법률상담 및 소송(신청)대리 등 법률구조를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혼부 자녀에게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 보육료 및 양육수당을 지원합니다.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경우에도 사회복지 전산 관리번호를 부여받은 아동은 지원 자격을 갖춘 것으로 인정하여 지원하는 것입니다.
경기도에서는 청소년 한부모 자립 지원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청소년 한부모가 스스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자녀 양육 환경을 조성하고 조기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지원대상은 한부모가족 중 모 또는 부의 연령이 만24세 이하이고,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 60% 이하인 청소년 한부모가족입니다. 청소년 한부모 자립 지원은 주민등록소재지 관할 읍·면·동 주민센터에 연중 신청이 가능합니다. 지원내용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출처 : 경기도의회 / https://www.gg.go.kr/contents/contents.do?ciIdx=652&menuId=2367
경기도 안산시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는 미혼모·부 자녀 지원 거점기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혼모·부가 자녀를 스스로 양육하고자 하면 초기 위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아동 양육은 물론 자립에 이르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지원대상은 시설입소자(보장시설수급자)를 제외한 만3세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는 미혼모 또는 미혼부 가구 중 소득이 기준 중위소득 72% 이하인 가구입니다.
한국의 출산율이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습니다. 각종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도록 낮아지는 출산율로 인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내용이 보도됩니다. 임신과 출산을 말로만 장려할 것이 아니라 한부모로 아이를 양육하는 미혼모·미혼부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이 수립되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