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메뉴열기

공익웹진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뉴스레터 필진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필자의 의견과 관점이 담길 수 있으며 일부 내용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8,000km의 거리감, 스마트폰 화면 너머의 세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켭니다. 화면 속 뉴스는 쉴 새 없이 잔혹한 소식들을 쏟아냅니다. 우크라이나의 무너진 아파트, 가자지구의 울부짖는 어머니, 수단의 끝없는 피난 행렬. 하지만 이내 화면을 쓸어 넘기면 맛집 정보와 지인의 일상 사진이 그 자리를 대체합니다. 참혹한 전쟁의 풍경은 손가락 까딱 한 번에 너무나 쉽게 휘발되고 맙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타인의 고통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고통을 나의 문제로 감각하는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멀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거기 참 안됐네. 빨리 끝냐야 할 텐데...“

     
    미국의 미사일피격으로 사망한 이란 초등학생 175명 장례식(2026.3.4.)

     

    우리가 보내는 안타까움의 시선 뒤에는 항상 은연중에 그곳은 먼 나라 이야기라는 안도감이 숨어 있습니다.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단단한 심리적 방어벽이 우리를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훈의 달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과거의 전쟁을 기억하고 순국선열을 추모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서는 기이할 정도로 무감각합니다.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과연 그곳의 전쟁이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걸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정말로 안전한가? 인류는 지속적으로 평화를 이야기했지만 현실은 왜 전쟁의 연속일까?

     

    2. 남의 전쟁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청구서

    전쟁은 미사일이 폭발하는 영토 안에서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국경이라는 물리적 장벽을 가볍게 뛰어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촘촘한 가닥이 되어 이미 우리의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세계를 뒤흔든 거대한 두 개의 전쟁은 이를 너무나 극명하게 증명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남긴 상흔

    20222월에 일어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글로벌 곡창지대이자 원자재 대국인 두 나라의 충돌은 밀과 옥수수 가격의 폭등으로 우리에게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밀과 옥수수 가격의 폭등은 사료 가격을 상승시켰습니다. 이로인해 도산한 축산 농가가 엄청 늘어났으며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가 도미노처럼 치솟아 마트 매대와 골목길 밥상에 고스란히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전 세계 해바라기유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던 우크라이나의 공급망이 끊기자, 국내 식용유 가격이 무섭게 치솟는 이른바 '식용유 대란'이 현실화되었습니다. 해바라기유 수입 중단은 대두유(콩기름)와 팜유 등 대체재의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폭등시켰고, 이는 고스란히 동네 치킨집 사장님의 한숨과 가정집 장바구니의 비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에너지 자원의 90% 이상을 수입하는 구조 속에서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원유 공급망 차단은 산업 전반의 생산 비용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이는 고스란히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서민들의 실질 소득을 감소시켰고, 사회 전반에 먹고사는 문제의 불안을 심화시켰습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중동 전쟁 위기가 주는 충격

    20262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중동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중동은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심장부이며,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0%를 이 지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 한국 수입 원유의 6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봉쇄는 국내 유가를 상승시켰습니다. 주유소의 기름값 숫자가 바뀔 때마다 서민들의 소비 심리는 얼어붙었고, 해운·조선·해외 건설 산업은 불확실성의 늪에 빠졌습니다. 물가 상승과 금리 고공행진은 자영업자들을 한계 상황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미사일 한 발이 한국의 어느 골목길 식당의 폐업으로 이어지는 이 긴밀한 연결고리, 이것이 바로 남의 전쟁이 우리에게 청구서입니다.

     

    3.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평화

    우리가 경제적 수치와 물가 상승률을 논하는 사이, 전쟁의 현장에 서 있는 당사국 국민들이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전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말살합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자 학생이었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난민이 됩니다. 머리 위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폭격의 공포 속에 밤을 지새우고, 단 한 모금의 깨끗한 물과 한 조각의 빵을 구하기 위해 몇 시간을 줄 서야 합니다. 전력과 가스가 끊긴 겨울, 추위 속에서 아이들은 병들어가고, 병원마저 포격으로 무너져 간단한 치료조차 받지 못해 목숨을 잃습니다. 어제까지 함께 밥을 먹던 가족의 시신을 무너진 잔해 속에서 맨손으로 파내야 하는 비극, 그것이 전쟁을 겪는 인간의 처절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 끔찍한 비극 앞에서 결코 자유로운 관전자일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전쟁이 완전히 끝난 평화 국가가 아니라, 잠시 전쟁을 멈춘 '휴전(Armistice)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우리 역사에는 언제든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었던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가 수없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를 흔든 큰 전쟁위기들

    19681·21 사태와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1968121일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 시도에 이어 123일에는 미 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영해 침범의 이유로 북한군에 나포되면서 한반도는 당장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극한의 군사적 대치 상태에 놓였다.

    1976년 판문점 도끼 사건 - 공동경비구역 판문점에서 미군이 미루나무를 자르려고 하자 북한군은 자신들과 협의하지 않았다고 중단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싸움이 벌어져 미군 2명이 사망한 사건. 미국은 핵 탑재가 가능한 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출격시키는 등 전면전 직전까지 갔다.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과 미국의 영변 핵시설 정밀 폭격 준비로 당시 주한미군 가족들이 철수 계획을 세우고 시민들이 라면과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등 극심한 전쟁 공포가 휩쓸쓸었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 - 한국 해군의 해상 포격 훈련에 대해 북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연평도에 포격을 가해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한 사건. 정전 협정 이후 최초로 대한민국 영토와 민간인을 향해 직접적인 포격이 가해졌다.

    2015년 휴전선 지뢰 사건 - 20158월 비무장지대(DMZ) 수색 중 휴전선에서 지뢰폭발로 우리 군 2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 이로 인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서부전선 포격 도발로 이어졌고,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등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2017년 북·미 전면전 위기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북의 완전 파괴로 화답을 하자, 북이 다시 괌에 대한 미사일 공격으로 응수하면서 전쟁위기가 일촉즉발로 높아진 사건.

     

    이 역사적 사건들이 증명하듯 우리 사회의 평화는 안전한 평화가 아닌 불안전한 평화기반 위에서 반복되는 전쟁위기를 맞으며 살고 있습니다. 대만-중국 전쟁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재무장화도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불안감입니다. 중국-대만 전쟁 시 미군이 개입을 하면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참전할 여지가 높습니다. 이번 이란 전쟁에서 보듯이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자 이란은 미군기지가 있는 중동 8개 나라를 공격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주한미군 기지가 있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풍경은 당장 오늘 밤이라도 이 땅에서 재연될 수 있습니다.

     

    분단과 군사독재문화로 인한 갈등과 혐오의 문화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휴전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오랜 분단 구조가 우리 내부 사회에 심어놓은 갈등과 혐오문화입니다.

    적대적 분단은 우리 사회에 오랜 기간 광범위하게 우리의 인식, 마음을 병들게 했습니다. 색깔론과 종북몰이와 같은 이념갈등은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고,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반인권적, 반민주적 인식을 온 사회에 만연시켰습니다.

    국민의 행복과 권리를 통제하려고 한 12.3내란의 명분도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였습니다. ‘스타벅스를 빨갱이 없는 청정지역으로 만들자는 등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분단을 자양분으로 해서 갈등과 갈라치기가 계속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분단은 우리 사회에 평화감수성을 약화시켰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해 시체팔이를 한다며 낙인을 찍고, 단식농성장 바로 앞에서 폭식투쟁이라는 반인륜적인 행태를 서슴지 않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들을 향해서도 위로와 진상규명 대신 차가운 모욕과 냉소를 퍼부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두고 북한군 개입설과 같은 악의적인 가짜뉴스를 유포하며 역사적 진실과 희생자들의 아픔을 모독하는 행위까지 버젓이 자행됩니다. 이런 행위를 단순히 생각의 차이로 치부할 수 없으며, 자유민주주의 허용 범위로 볼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 모든 야만성은 오랜 시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분단문화''군사독재문화'가 만들어낸 흑백논리의 산물입니다. 휴전선 너머의 군사적 위협을 관리하는 안보 못지않게, 우리 안의 이분법적인 적대감을 거둬내고 사회 내부의 폭력성을 치유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짜 '우리의 평화'입니다.

     

    5.18을 조롱하는 홍보물이 온라인에 퍼지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광주 5.18 모습

     

    4. 평화는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경기평화교육센터

    국가 권력과 군사력의 논리는 언제나 거대한 담론만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 시민사회의 역할은 그 틀 자체를 흔드는 것입니다.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공감의 영역에서, 단절이 아닌 연결로 평화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대한 국제정치를 당장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 곁에 있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사회 내부의 상처와 갈등을 평화적으로 치유해 나갈 평화 감수성의 크기는 교육을 통해 키울 수 있습니다.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경기평화교육센터(이하 센터)는 바로 이러한 믿음 위에서 숨 쉬는 단체입니다. 센터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교육으로 기여하자는 생각으로 지난 2012년에 첫발을 내디딘 시민단체입니다.

    분단의 오랜 아픔을 치유하고 무력 충돌의 위기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힘은 결국 평화를 사랑하는 깨어있는 시민과 미래 세대의 의식에서 나온다는 신념으로 달려왔습니다.

     

    경기평화교육센터 주요 교육 및 시민참여 프로그램

    미래 세대를 위한 학년별 학생 대상 교육 초등·중등 학생들의 평화 감수성을 깨우는 그림책을 활용한 평화통일교육놀이로 만나는 평화통일교육은 학교 현장에서 가장 뜨거운 호응을 받는 대표 프로그램.

    시대를 이끌어갈 청년 대상 교육 깊이 있는 세미나와 토론을 통해 평화적 시선을 확장하는 피스리더와 청년 동아리 워너피스를 통해 사회 곳곳에서 평화의 목소리를 낼 청년 리더 양성.

    일상에서 실천하는 시민 교육 통일 톡투유, 가족이 함께하는 평화캠프, 1기 경기도민 평화학교등을 통해 시민들의 평화 감수성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현장에서 숨 쉬는 평화통일기행 파주·김포·강화도 등 접경지역에서의 평화통일기행을 통해 시민들은 분단의 아픔과 평화의 소중함을 눈과 가슴으로 생생하게 느끼기 위한 프로그램.

     

    경기평화교육센터가 펼치는 이 모든 교육의 지향점은 명확합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공감의 언어로 평화감수성을 키우고,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감각을 갖게 하는 데 교육으로 기여하는 것입니다.

     

    5. 나가며: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

    로마 시대의 군사 전략가 베게티우스가 남긴 유명한 격언이 있습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오랫동안 이 말은 인류의 안보 논리로 지배해 왔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진실은 다릅니다. 전쟁을 준비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상대방의 불안을 자극하고, 이는 끝없는 군비 경쟁과 안보 딜레마를 낳아 결국 더 참혹한 전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낡고 위험한 선언을 뒤집어야 합니다.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

    평화는 더 큰 미사일 위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고통을 응시하는 공감의 시선, 적대를 멈추려는 단호한 대화, 내 안의 낙인과 혐오를 거둬내는 성찰, 그리고 국경과 이념을 넘어 연대하는 시민사회의 힘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 속 타인의 눈물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 이웃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으로 연결되는 순간 전쟁과 폭력을 막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평화의 감수성은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경기평화교육센터가 뿌리는 평화교육의 씨앗들이 거대한 세계 평화의 숲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기 경기도민 평화학교 7(2026.5.26.)
     
     
    남의 전쟁이 우리의 문제가 되는 순간
    경기평화교육센터 안영욱 사무처장

    조회수 195

    2026-05-29
  • ● 광복 80주년의 의미

    2025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이 일제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난 지 정확히 80주년
    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광복절은 단순한 국가 기념일을 넘어, 억압과 폭력 속에서
    도 자유와 독립을 갈망한 민중의 피와 눈물의 역사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과 함께 찾아온 해방은 한국인들에게 단순한 정치적 독립
    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는 순간이었습니다. 특히 올해 80주년은 더
    욱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은 전쟁, 분단, 산업화, 민주화라는
    험난한 길을 걸어왔지만, 여전히 역사 왜곡과 분단의 상처는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렇기에 80주년은 과거를 단순히 기념하는 차원을 넘어, 앞으로 우리가 어떤 나
    라를 만들어갈 것인가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주 간
    과되었던 주제가 바로 여성 독립운동가입니다. 남성 중심의 역사 서술 속에서 여
    성들의 역할은 종종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총을 들고 싸우거
    나, 첩보 활동에 나서거나, 해외에서 외교 활동을 이어가는 등 결코 작은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가정과 사회의 억압적 관습을 깨고 독립운동에 헌신
    한 여성들의 행보는 오늘날 성평등과 인권의 시각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우리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다시금 조명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들은 역사의 공백 속에 묻힌 존재가 아니라, 독립의 완성을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 여성 독립운동가의 역사적 역할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직접적 무장 투쟁에 참여한 여성들입니다. 대표적으로 남자현 지사는 만주와 중국
    에서 항일 무장투쟁에 참여하며 일본 군인 암살과 폭탄 투척 계획을 주도했습니
    다. 그녀는 "내 몸이 썩어 없어져도 조선 독립의 밑거름이 된다면 영광"이라며 생
    을 바쳤습니다. 둘째, 문화·교육 활동을 통해 민족 의식을 고취한 여성들입니다.

    김마리아, 박인덕 등은 여성 교육 운동을 통해 식민지 상황 속에서도 민족의 미래
    를 이끌 차세대를 키우려 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여성에게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는 혁명적 의미를 가졌습니다.셋째, 국제
    무대에서 외교적 활동을 벌인 여성들입니다.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의 상징적 인
    물로 남았다면, 그 외에도 독립운동을 국제사회에 알린 여성들이 존재했습니다. 김알렉산드라(고려인 독립운동가)는 러시아 혁명과 연계해 활동했고, 정정화 지사
    는 임시정부의 자금을 전달하며 항일 외교의 실질적 지원을 했습니다. 이렇듯 여
    성 독립운동가들은 단순한 보조적 역할을 넘어, 독립운동 전선의 다양한 층위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들의 헌신은 총칼 앞의 용맹뿐 아니라, 문화·교육·외
    교 전선에서 ‘조국의 독립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몫’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 유관순 (1902~1920)

    유관순은 충청남도 천안 병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하며 어려
    서부터 교육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습니다. 당시 조선은 일제 식민 지배
    로 민족의 자존심이 짓밟히던 상황이었고, 유관순 역시 어린 나이부터 나라 잃은
    설움을 체감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유중권, 어머니 이소제와 함께 기독교 신앙을
    지켰으며, 이는 이후 독립운동에 나서는 데 정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1915년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한 유관순은 신여성으로 성장하며 민족 문제에도
    관심을 키웠습니다. 특히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이화학당 동급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고종 황제의 서거가 전국적 분노를 불러일으
    킨 가운데, 유관순은 “나라를 되찾는 데 여성도 앞장서야 한다”는 신념으로 행동
    에 나섰습니다.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시위에 참여한 그는 이후
    고향으로 내려가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이 시위에는 수천 명의
    군중이 모였으며, 일본 헌병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수십 명이 사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관순의 부모 역시 일본군의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비극 속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만세를 외쳤습니다. 체포된 유관순은 서대
    문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감옥에서도 그는 동료 수감자들을 이끌며 독립 의지
    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1920년 3·1운동 1주년을 맞아 옥중 만세운동을 벌였고, 일
    본 간수들에게 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결국 1920년 9월, 만 18세의 나이로 순
    국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죽음은 전국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본

    당국은 장례조차 통제했지만, 민중들은 그녀를 ‘대한의 딸’, ‘조선의 잔다르크’라
    부르며 기렸습니다. 그녀는 비록 짧은 생애를 살았으나, 3·1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하며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았습니다. ● 남자현 (1872~1933)

    남자현은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났습니다. 19세기 말 조선은 외세의 침략으로
    혼란스러웠으며, 그는 어려서부터 강한 애국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일찍 결혼했
    으나 남편을 병으로 잃고 홀로 아들을 키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국권 침탈
    이 본격화되자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독립운동에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남자현은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을 지원하는 활동에 나섰습니다. 그는 식량과 자금을 마련해
    전달하는 것은 물론, 직접 무기를 다루며 항일 무장투쟁에도 뛰어들었습니다. 당
    시 여성으로서 무기를 들고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지만, 그는 “나라 없는 여성에게는 가정도, 삶도 없다”며 투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
    본군 고관 암살을 계획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1932년에는 하얼빈에서 일본의
    대사와 관리들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체포되었습니다. 체포 후 일본 경찰의 가혹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동지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감옥에서 단식을 이어간 끝에 1933년 옥중에서 순국했습니다. 남자현
    지사의 투쟁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첫째, 여성으로서 ‘직접 무장투
    쟁’에 나섰다는 점입니다. 이는 독립운동이 단지 남성의 몫이 아니었음을 증명했
    습니다. 둘째, 그는 조국 독립을 위해 자신의 삶을 철저히 희생했으며, 심지어 자
    녀에게조차 “나는 조국을 위해 살다 갈 것이다”라는 신념을 남겼습니다. 남자현
    지사는 비록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못했으나, 실제로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의 생애는 여성 독립운동가의 저항 정신을 대표하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 정정화 (1900~1991)

    정정화는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받으며
    새로운 사상을 접했고,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당
    시 많은 여성들이 거리 시위에 참여했으나, 정정화는 단순한 시위 참여에 머물지
    않고 임시정부와의 연결 고리를 자처했습니다. 1920년대 그는 중국 상하이로 건

    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임시정부가 운영되는 데 가장 큰
    문제는 자금난이었는데, 정정화는 국내에서 모은 독립운동 자금을 중국으로 전달
    하는 위험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일본 경찰의 감시가 삼엄했지만, 그는 어린 딸을
    데리고 위장해 국경을 넘나들며 자금을 전달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심부름’이 아
    니라 임시정부 존립의 핵심을 떠받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정정화는 임시정부 요
    인들의 가족을 돌보는 역할도 했습니다. 그녀는 독립운동가의 아내라는 위치에 머
    물지 않고, 스스로 ‘운동가’로서의 자각을 갖고 행동했습니다. 실제로 훗날 회고록
    『장강일기』에서 “나는 독립운동가의 아내가 아니라, 나 자신이 독립운동가였다”고
    밝힌 것은 여성 독립운동의 주체성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광복 이후에도 정정화
    는 독립운동가 가족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광복 후 혼란스러운
    시국 속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잊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이들의 공적을 알
    리기 위해 기록을 남겼습니다. 1991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우리의 독립운동은 끝나지 않았다”는 정신을 간직했습니다. 정정화 지사의 삶은
    여성의 역할이 단순히 보조적이라는 편견을 넘어섰습니다. 그녀는 독립운동의 현
    장에서 자금·외교·생활 전반을 지탱한 보이지 않는 중심축이었으며, 여성 독립운
    동가의 대표적 상징으로 평가됩니다. ● 김마리아 (1892~1944)

    김마리아는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났습니다. 기독교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서
    양식 교육을 받으며 민족 의식을 키웠습니다.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그는 여성
    으로서 할 수 있는 길을 찾다가 교육과 계몽을 통한 독립운동을 결심했습니다. 일
    본 유학 시절, 그는 기독교계와 학생운동을 통해 민족 문제를 접했고, 점차 정치
    적 투쟁으로 방향을 확장했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그는 도쿄 유학생 시위
    에 적극 가담했습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했으나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귀국한 김마리아는 국내 여성들을 규합해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를 조직했습니다. 이 단체는 여성들의 조직적 항일운동을 주도하며, 독
    립군 자금 모금과 애국계몽 활동을 펼쳤습니다. 여성들이 단순한 가정의 역할을
    넘어 독립운동의 주체로 나선 상징적 사례였습니다. 1920년대 이후 김마리아는
    상하이 임시정부와도 연계했습니다. 해외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여성 교육과
    독립운동을 병행했으며, 미국에서도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미주 지역 교포
    사회와 기독교계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제적으로 조선의 독립을 알렸습니다. 그러

    나 그의 삶은 끊임없는 탄압 속에서 이어졌습니다. 일본 경찰은 그를 “위험 인물” 로 분류했고, 체포와 감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건강이 악화되어 광복을 보
    지 못한 채 1944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마리아는 독립운동사에서 여성 지도자
    로 평가됩니다. 그는 무장투쟁 대신 교육과 조직, 국제 외교 활동을 통해 독립운
    동의 기반을 확장했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고, 사회적 역할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해방 이후 여성운동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평가됩니다. ● 윤희순 (1860~1935)

    윤희순은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를 온몸으로 겪은 여
    성 독립운동가였습니다. 그는 일찍이 유학자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가 전통적인 여
    성의 삶을 살았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습니다. 특히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을미사변 이후, 그는 의병운동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습니다. 윤희순은 단순히 의병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병가와 격문
    을 지어 민중의 저항 의지를 고취했습니다. 그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문학적 수단을 항일운동의 무기로 삼았으며, 이는 일종의 ‘문화적 무장투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시와 노래는 남성 의병들에게 전해지며 투쟁 의지를 불태우
    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윤희순은 직접 의병을 모집하고, 군수품과 자금을 조달
    했습니다.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부상자들을 간호하며 후방 지원에도 헌신했습니
    다. 그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자리가 부엌과 가정에 한정되었던 시대를 넘
    어, ‘의병장과 같은 여성’으로 활동했습니다. 1907년 정미의병 이후 일제가 무력
    진압을 강화하자 윤희순은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만주 지
    역에서도 의병 잔여 세력을 규합하며 항일 투쟁을 지속했지만, 일제의 끊임없는
    탄압 속에서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다. 1935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내가
    죽어도 조선은 반드시 독립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윤희순은
    여성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최초의 의병 여성 지도자로 평가되며, 후대에 ‘의병장
    할머니’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 오늘날 여성 독립운동가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여성 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공로를 기리는 차원이 아닙니
    다. 이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역사 정의의 문제입니다. 첫째, 역사적 균형의 회복

    입니다. 그동안 독립운동 서술은 남성 중심적이었고, 여성의 활동은 부차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여성 독립운동
    가를 다시 조명하는 것은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작업입니다. 둘째, 성평등의 관점
    에서 본 재조명입니다. 여성들은 식민지 상황뿐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 구조라는
    이중 억압 속에서도 싸워야 했습니다. 이들의 투쟁은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라, 여성 해방의 기초를 닦은 운동이기도 했습니다. 셋째, 청년 세대에게 주는 교훈입
    니다. 오늘날 자유와 민주주의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일은 현재 세대가 누리는 권리와 자유의 뿌리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는 단순히 기념식에 머무르지 말고, 기억의 확장을 해야 합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불러내고, 그들의 이야
    기를 교육과 문화 속에서 계승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의 완성이라 할 수 있
    습니다.

    여자라서 더 잔혹하게 죽었다, 그러나 끝까지 싸웠다
    주야

    조회수 89

    2025-08-20
  • 2025 평화통일교육 활성화 워크숍 현장취재기
    “통일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다” 파주에서 열린 평화통일교육 워크숍이 2025년 6월 21일부터 22일까지, 경기
    도 파주 홍원연수원에서 「2025 평화통일교육 활성화를 위한 워크숍」과
    DMZ 일대 탐방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워크숍은 경기도평화통일교육단체
    협의회가 주최하고 평화통일교육 전국네트워크가 후원했습니다. 전국에서 온
    평화통일교육 활동가, 교사, 연구자 약 85명이 모여 광복 80년·분단 80년의
    의미를 되새기며 평화와 통일교육의 방향을 논의했습니다.

    [사진 1]

    통일교육의 새로운 전환 과제

    첫날은 이창희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외래교수가 발제를 맡았습니다. 주제는

    “광복 80주년 대통령 탄핵과 6.3 조기대선”으로, 통일교육 전환의 필요성을
    짚었습니다. 이교수는 세 가지 과제를 강조했습니다. 민주주의의 회복력, 시민이 참여하
    는 평화 프로세스, 사회적 합의가 그것입니다. 이어진 토론에서 김병현 공주
    교육대학교 교수는 “한반도의 위기 관리”를 키워드로 국제정세와 연계한 교
    육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임상순 평택대학교 교수는 대학 내 통일교육의
    필요성을 짚으며, 대학이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차승주 강원
    대학교 통일강원연구원 객원연구원은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통일교육을 재구
    성해야 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질의 응답 시간에 교사들은 현실적인 어려움도 토로했습니다. 교과서 중심 수업 구조, 정치적 민감성, 교사 안전 문제 등이 대표적인 사례
    였습니다. 참가자들은 통일교육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예비 평화시민 훈
    련’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습니다.

    교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평화교육

    참가자들은 10개 그룹으로 나눠 모둠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가장 먼저 나온
    질문은 “왜 통일교육이 잘 안 될까?”였습니다. 원인으로는 청소년 세대의 탈
    정치화, 낡은 이념 프레임, 교사의 부담이 언급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요?

    참가자들은 프로젝트형 수업, 모의 회담, 글쓰기, 시청각 자료 활용, 국내외
    비교학습을 제안했습니다. 현장 교사들은 수업 적용 방안도 나눴습니다. 초
    등학교는 감성 중심 콘텐츠, 중학교는 DMZ 생태와 전쟁 기억, 고등학교는
    민주시민교육과 연계한 체험 수업, 대학은 플랫폼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통
    일교육은 시험문제가 아니라 생활 속 평화하기다.”라는 말이 많은 공감을 얻
    었습니다. 분단의 땅을 걸으며 느낀 평화

    둘째 날은 DMZ 일대를 직접 탐방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됐습니다. 현장에서
    참가자들은 전쟁과 분단의 흔적을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먼저 북한군 묘지를
    참관했습니다. 이곳은 6·25 전쟁 당시 전사한 북한군과 중공군의 유해가 안
    장된 곳입니다. 참가자들은 “적군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울렸다”라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올랐습니다. 맑은 날씨 덕분에 북한 개풍군 마
    을이 맨눈으로 보였습니다. 참가자들은 망원경으로 북녘을 관찰하며 “분단된
    현실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라는 감정을 나눴습니다.

    [사진 11~14]

    사람의 이야기로 본 통일

    서울 A중학교 교사는 “통일은 학생들에게 딱딱했는데, 오늘 현장을 걸으며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라는 걸 느꼈다”라고 말했습니다. 경북지부 교육활동가
    는 “북한군 묘지를 방문한 경험은 강렬했다. 단순히 적이 아닌 인간의 죽음
    이 주는 메시지가 컸다”라고 전했습니다. 대학생 봉사단 참가자는 “통일전망
    대에서 북쪽 마을을 보며 역사적 문제를 본 것같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평화통일교육을 위한 실천 방향

    이번 워크숍은 우리들에게 몇 가지 과제를 남겼습니다. 첫째, 교과서 중심을
    넘어 경험 기반 학습으로 전환해야 하며, 역사, 지리, 윤리, 시민교육을 융합
    하는 방식의 필요성입니다. 둘째, 청소년 참여형 콘텐츠를 제작하여 영상, 연
    극, 프로젝트 수업 등을 통해 학생들이 직접 통일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며, 교육부와 교육청의 재정 지원과 연수 강화였습니다. 넷째, 현장과 연계한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을 확대하여, DMZ 탐방을 정규화하고, 평화도서관과 통일마을 같은 지역 자원과 협업하는 대안이었습니다. 통일은 과정 속에서 자란다

    이번 2025 평화통일교육 활성화 워크숍은 분단을 정치적 언어가 아닌 사람
    의 언어로 이야기한 자리였습니다. 북한군 무명묘 앞에 서 있었던 순간, 오

    두산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 마을을 바라본 순간, 참가자들은 통일이란
    결국 사람과 일상에서 출발한다는 메시지를 확인했습니다.

    “통일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다.”
    이 작은 발걸음이 교실 속에서, 또 시민들의 삶 속에서 평화를 키우는 또 다
    른 전환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2025 평화통일교육 활성화를 위한 워크숍
    럭비공

    조회수 75

    2025-07-19
  • 전쟁 넘어 평화로 — 거대한 분열의 장막과 차가운 대결의 벽을 넘어, 경기도 골목마다 다정한 상생과 연대의 푸른 숲을 일구어내는 감동의 여정

    대치의 상처와 쉴 새 없는 불안의 소용돌이 뒤편에서, 굳건한 평화의 손길로 일상을 빚어내고 찬란한 연대의 내일을 마주하는 눈부신 발자취

    저마다의 자리에서 묵묵히 경기도 접경 지역과 구석구석의 일상을 지켜내며 평온을 염원해 온 수많은 시민들과 공익활동가들. 끊임없는 갈등과 대립의 그늘 속에서 “한반도의 오랜 상처를 딛고 진정한 평화와 공존의 길로 나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깊은 울림의 질문 앞에 섰다. 방관과 포기의 장막을 걷어내고, 묵묵히 두 손을 모아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촘촘한 연대의 그물망을 엮어 온 ‘전쟁 넘어 평화로’ 기획의 눈부신 발자취를 깊이 들여다보다.

    "우리는 과연 ‘거대한 분단과 전쟁의 위기는 평범한 도민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거대한 정치적 문제일 뿐, 우리가 손을 잡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평화 활동가들, 그리고 공익활동가들이 손을 맞잡으며 저마다의 진심으로 평화와 상생의 품을 엮어내는 ‘전쟁의 그림자를 걷어내며 꽃피우는 평화 자치의 품’을 어떻게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풀뿌리 평화 자치와 상호 존중적 공존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경기도 전역에 지속 가능한 상생과 생명의 숲을 깊이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전쟁 넘어 평화로’가 품은 3가지 핵심 과제와 비전

    1. 방관과 포기의 장막을 허무는 ‘풀뿌리 평화 감수성 및 자발적 연대 생태계 구축’

      • 분단과 대립의 현실을 당연한 숙명으로 여기던 낡한 관행에서 벗어나, 경기도민과 공익활동가들이 동네 골목과 평화의 마당에서부터 직접 일상의 불안을 나누고 작은 평화의 실천을 모아가는 자발적 생태계 다지기.

      • "진정한 평화 자치의 완성은 거창한 통일 선언이나 외교적 합의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골목 작은 모임방에 모여 앉아 이웃들과 손을 잡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평화의 온기를 나누는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2. 고립을 넘어 온기를 잇는 ‘시민 참여형 공감 감수성 및 연대 강화’

      • 접경 지역의 긴장과 일상 속 갈등이 주는 피로감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지혜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 창출.

      • "혼자서 거대한 대결의 벽과 마주하면 막막하고 두렵지만, 경기도 도민들이 손을 잡고 함께 평화를 외치면 그 어떤 냉소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3.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연대의 그물망으로 잇는 ‘상생 평화 네트워크’

      •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다양한 평화 및 시민 커뮤니티들과 도민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모든 이의 안전과 평화적 권리가 올바르게 존중받는 상향식 민주주의와 시민 자치 실현.

      • "모든 도민과 이웃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공생의 무대" 완성.

    현장의 온기로 채워졌던 뜨거웠던 고백과 교감의 시간들

    도내 각지에서 모인 평화 활동가들과 따스한 공존을 염원하는 수많은 도민이 한자리에 모여 '전쟁 넘어 평화로' 나아가는 길의 의미를 되새기고, 경기도를 진정한 '어떤 도민도 불안에 떨지 않는 평화와 자치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았던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온기로 가득 채웠다.

    • 참가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뉴스 속 끊이지 않는 갈등 소식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이웃들과 손을 잡고 '우리가 먼저 일상에서 작은 평화의 씨앗을 뿌리자'며 마음을 모으니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진짜 따뜻한 온기가 내 손끝에서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참가자들의 뭉클한 순간들.

    • 경기도형 평화 자치 도시 확산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동네마다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평화의 가치를 나누고 일상의 대화를 이어가는 '우리동네 평화 사랑방'을 상설화하자", "시민들의 반짝이는 에너지를 모아 더 큰 연대의 망을 만드는 '경기 평화공존 연대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꾸리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가 마주한 대결의 벽과 불안의 파고가 때로는 높고 매섭다 할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평화의 물줄기가 모여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란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손길로 그려가는 경기도의 찬란한 내일

    세상을 바꾸고 진정한 시민 자치와 공생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힘은 차가운 안보 통계 데이터나 거창한 정부의 외교 정책 보고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 경기도의 좁은 모임방과 골목길에서 이웃들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우리의 정직한 위로와 다정한 연대로 경기도의 찬란한 평화 역사를 활짝 밝힌다"며 따스한 온기를 건네는 평범한 시민들과 공익활동가들의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연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방관과 포기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에 평화와 상생의 숲을 영원히 일구어가는 공익활동가들과 도민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도 곳곳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온기들이,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기도의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전쟁 넘어 평화로,
    레지스타

    조회수 1943

    2025-06-20
  • 2025년 6월 15일은 6·15남북공동선언 25주년이었습니다. 지난 2000년 김대
    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발표한 6·15남북공동선언은 한반도
    분단 장벽을 허물고, 전쟁 없는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열어나갈 수 있는 이정
    표라 불려 왔습니다.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후, 민간 차원에서 통일운동을 펼쳐나가기 위해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그 흐름에 발맞추어
    2005년 안산에도 지역본부가 꾸려졌습니다. 그 이듬해부터 코로나19 등 특별
    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 매년 꾸준히 안산에서 시민이 함께하는 ‘통일걷
    기대회’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올해에도 25주년을 맞아 6월 14일(토) 안산문화광장 물의광장에서 '16회 안
    산시민 통일걷기대회'가 열렸습니다. 무더위가 시작된 날씨에도 8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성황리에 진행되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민들의 관심을 확
    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안산시민 통일걷기대회'는 안산평화연대가 주최하
    고 안산희망재단의 후원으로 열렸습니다.

    ‘전쟁, 분단, 내란을 넘어! 평화로, 통일로, 새로운 세상으로!’라는 기조로 진
    행된 '안산시민 통일걷기대회'는 준비 과정에서부터 시민들의 참여가 이어졌
    는데요. 대회 준비 과정에 <문턱 캠페인 OO넘어 OO으로>를 열어 각자의 삶
    에 어떤 ‘문턱’이 있는지 문장으로 공모 받았습니다. 또 일상에서 ‘평화’ 글씨
    를 발견해 사진으로 찍어 보낼 수 있도록 해 행사 당일 현장에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통일걷기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모금도 진행해 시민
    들의 힘으로 만들어가기도 했습니다.

    '16회 안산시민 통일걷기대회'는 사전 기념식과 행진, 문화제로 이어졌는데
    먼저 기념식에서 대회를 주최한 안산평화연대 강신하 상임공동대표(한겨레평
    화통일포럼 이사장)가 무대에 올라 대회사로 시민들을 맞이했습니다.

    “최근 새 정부가 들어서며 남쪽의 대북 적대정책의 일환이었던 대북 확성기
    를 멈추었고 이에 북이 바로 호응하며 대남 확성기를 멈췄습니다.”
    “평화는 힘과 적대가 아니라, 먼저 내미는 손과 상대에 대한 존중에서 나오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분단 80년의 세월을 극복하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지향하는 관계로 복원
    되길 바랍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모아 힘차게 행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강신하 상임공동대표는 현재 상황이 쉽지 않지만, 평화의 의미를 강조하며 새
    로운 세상을 향해 함께 하자고 호소했습니다.

    800여 명의 시민들은 기념식에 참여한 후 안산문화광장에서 중앙역 인근과
    고잔동 일부 약 3km를 행진하며 남북 대결이 아닌 대화, 전쟁이 아닌 평화
    가 필요함을 외쳤습니다, 1시간 정도 행진 과정에서 시민들이 신청한 음악을
    틀고, 단일기와 다양한 메시지가 담긴 부채 등을 흔들며 함께 걸었습니다. 행진을 마치고 다시 안산문화광장 물의광장에서 모인 시민들이 참여한 문화
    제로 이어졌습니다. 615공동선언의 의미를 담은 다양한 공연이 이어지고, ‘평

    화통일’의 제시어로 쓴 시민들의 4행시를 시상이 이어졌습니다. 또 통일걷기
    대회에 참여한 시민들과 함께 나누는 경품 추첨도 이어져 즐거운 시간을 가
    지기도 했습니다. 평 화로운 우리나라
    화 사한 우리나라
    통 일까지 되면
    일 등 우리나라

    평 생 싸우지 말자
    화 해하면서 살자
    통 일이 빨리 되었으면 해요
    일 년 중 아이들과 오늘 다 걸은거 같아요

    다시 광장으로 돌아온 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안산평화연대 김미숙 상임공
    동대표(안산YWCA 회장)가 무대에 올라 환영사를 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는 수많은 시민들의 열망과 이를 이루기
    위한 각계각층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분단 체제를 극복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도한 세력에 의해 자행된 불법계엄과 내란에 맞섰던 시민들의 ‘빛
    의 혁명’을 보며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 더 평화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내란을 이겨낸 시민들의 힘으로 분단 세력, 내란 세력을 청산하고 평화로운
    사회, 자주로운 사회, 우리 시민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갑시다.”

    '안산시민 통일걷기대회' 현장에서 만난 한 참가자(안산시 반월동)가 소감을
    전해줬는데요.

    “비상계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남북 긴장 상태를 악용해 무력 충돌
    을 유도했다는 것을 보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빌미로 어떻게 그럴 수가 있
    나 하며 분노했어요.”
    “그래서 더더욱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로운 한반도 통일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렇게 시민들이 참여하는 통일행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편, 이번 '안산시민 통일걷기대회'은 ‘안산평화연대’가 주최했는데요. 지난
    20년 동안 안산 지역에서 평화와 통일, 남북의 교류와 협력을 위한 다양한
    사업과 평화통일 실천을 전개해 온 6.15안산본부가 안산평화연대로 조직 전
    환을 한 것입니다. 안산평화연대는 ‘6.15안산본부’의 성과를 계승하고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는 포부로 지난 4월 11일 출범했습니다. 출범 후 두 달
    만에 '16회 안산시민 통일걷기대회'를 추진한 것입니다. 안산평화연대 김현주 사무국장은 “이번 안산시민 통일걷기대회를 통해 한반
    도의 자주와 평화, 통일을 위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내고 평화 행진을 함
    께 만들어 나가고자 준비했습니다. 또 분단 80년을 맞는 올해 시민들과 함께
    분단의 시대를 넘어 평화의 시대, 새로운 시대를 상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취지를 밝혔습니다. 우리는 분단을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분단은 현재까지 우리 사회
    의 제도, 사고방식, 언론, 교육 속에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안산시민 통
    일걷기대회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듯 일상에서의 평화 실천이야말로 변화의
    동력이 될 것입니다. 이번 16회 안산시민 통일걷기대회의 제목인 “전쟁, 분
    단, 내란을 넘어! 평화로, 통일로, 새로운 세상으로!”를 다시금 되뇌어 봅니
    다.

    전쟁 넘어 평화로, '안산시민 통일걷기대회'
    레지스타

    조회수 65

    2025-06-19
  •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한 말이다. 5.18민주화운동 이야기인
    《소년이 온다》를 쓸 때 그와 함께 한 질문이라 했다. 그 책을 쓰는 동안만의
    질문이었을까. 지난 5월 17일(토) 광주의 5.18전야제를 다녀오는 동안 내게도
    살아 있는 질문이었다. 과거가 현재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현장을 보
    았기 때문이다. 45년 전의 광주가 오늘 대한민국을 구하고 있었다. 총칼이 아
    니라 노래와 시로, 춤과 연극으로 연대하는 민주주의 대축제였다. 부끄러운 고백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1980년 5월에 나는 대구에 사는
    여고 2학년이었다. 당시 TV 화면에 나오는 광주는 ‘폭도’와 ‘빨갱이’의 도시
    였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광주는 두려운 ‘벽’이었다. 독재와 냉전 시대 교육
    에 길든 아이가 광주의 진실을 마주하기까지는 20년이 더 걸려야 했다. 제45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로 올해도 광주를 다녀오는 복을 누렸다. 개
    인으로서가 아니라 4.16합창단으로서 ‘민주주의 대합창’ 공연에 서는 덕분이
    었다. 구묘역 신묘역을 방문하고 5.18민중항쟁기념행사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전야제도 즐길 수 있었다. 올해는 18일 밤까지 1박 2일로 확대 진행된 전야
    제를 하루만 보고 돌아온 게 아쉽다. 5.18 민주 광장, 동구 금남로 1~3가 차
    없는 거리, 동구 중앙로 일대는 시민 참여 부스 물결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
    곡’이 울려 퍼질 때마다 누구라도 목청껏 함께 부르는 축제였다. 다시 만난 소년, 아! 오월이여
    17일(토) 오전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추모식부터 소개하고 싶다. 안
    산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해 구묘역을 들르고 신묘역에 도착했을 땐 5·18민주
    유공자유족회가 주최 주관하는 추모식은 끝나고 있었다. 식전 공연으로 놀이
    패와 장애인예술단의 공연이 있었고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에 대한 전통 제

    - 2 -

    례 의식을 마친 전통 한복을 입은 분들을 볼 수 있었다. 2부 순서인 국민의
    례로 시작하는 추모식(10시 30분)은 내빈 소개, 추모사, 유가족 대표의 인사
    가 있었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헌화와 분향이 있었다. 추모식에서 가장 소개하고 싶은 순서는 ‘다시 만난 소년, 아 오월이여!’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5·18민주화운동 추모시 낭송 퍼포먼스’였다. 광주시낭송협
    회 사람들이 5·18 광주 추모시를 모아서 한 편 한 편 낭송하는 공연이었다. 오월 광주를 추모하되 시와 음악으로, 피로 쓴 민중항쟁의 역사가 노래와 시
    로 살아나는 시간이었다. 이창병의 ‘망월동에서’ 첫 자락을 보자. “광주 금남로에서/ 이 나라 최후의
    거리마다 쓰러진 넋들의 통곡은/ 우리들의 침묵 속에 깊이 가라앉아 있습니
    다.” 고정희는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라고 읊었다. 김준태의 ‘오 광주
    여! 우리나라 십자가여!’는 광주일보(구 전남일보) 1980년 6월 2일 자 조간 1
    면에 실렸던 시다. 계엄 당국의 검열에 기자들이 사표로 저항한 그 시였다. 다시 만난 소년, 아! 오월이여/ 광주시낭송협회/ 추모식에서 낭송된 시 맛보기
    길을 가다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허공중에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 것이다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꽃 떼들도 나비들도 흩어져버린 광주여. 호남이여.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너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도시
    아아, 광주여 광주여 광주여 광주여.
    ‘민족의 십자가여’ /김준태

    동호야!
    죽은 친구의 등허리를 껴안고 우정을 포개고 죽은 소년
    억울한 주검을 나르던 열여섯에게 민주란 무엇이었을까
    어젯밤 나누어 삼킨 주먹밥 한 덩어리
    마지막 눈물처럼 가슴에 퍼부었겠지
    주먹밥처럼 꼭 끌어안고
    죽음도 떼어놓지 못한 밀도로
    어린 친구들은 하늘에서도 주먹밥이 되었을까
    -‘주먹밥의 밀도’ /전숙
    네가 오리고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 3 -

    “우리는 사람이 개처럼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하지
    만 신문에는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45년 전 전남일보 기자들의 그 절규가
    시로 다시 살아나는 시간이었다. “끝나지 않는 오월 다시 찾은 민주주의 당신
    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80년 오월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날을 잊지 않겠습
    니다.” 시와 노래로 하는 기억의 다짐이었다. 민주주의 대축제 대합창
    3부로 구성된 민주주의 대축제 5·18전야제는 지정남 배우가 진행했다. 1부 ‘오월광주 환영대회’는 오월길맞이굿을 시작으로 금남로에 집결하는 수만 명
    의 민주 평화 대행진 대열을 노래와 춤으로 환영하는 행사였다. 2부는 ‘민주
    주의 축제’로 뮤지컬과 노래로 꾸며지고 3부는 ‘빛의 콘서트’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비롯한 노래밴드들의 무대였다. 전야제 중앙무대는 금남로 4가역
    교차로에 설치되고 양방향으로 여러 개의 대형 스크린이 있었다. 내가 416합창단으로 참여하는 ‘민주주의 대합창’ 공연은 17일(토) 오후 3시반
    에 시작했다. 5.18민주광장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였다. 서울 부산 안산 광주
    등에서 온 7개 시민합창단이 개별 공연으로 두 곡씩 부른 후 대합창단으로
    함께 두 곡을 불렀다. 광주는 광주였다. 7개 합창단 중 푸른솔합창단, 1987합
    창단, 광주흥사단합창단 3개가 광주 소재 합창단이었다. 푸른솔합창단(광주): 2015년 6월 ‘합창’을 통해 민주 인권 평화로 상징되는 ‘광주정신’을 전달하
    고, ‘광주공동체’의 희망을 노래하고자 창단했다. 2017년, 2018년 창작 뮤지컬 ‘빛의 결혼식-임
    을 위한 행진곡’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615시민합창단(서울): 2009년 8.15행사 공연을 시작으로, 민족의 역사와 겨레의 삶에 수많은 아
    픔을 안긴 분단장벽을 허물고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의 새 세상을 열어가기 위해 창단했다. 1987합창단(광주): 광주 전남의 1980년 5.18민중항쟁의 불꽃을 1987년 6월 항쟁의 횃불로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헌법을 쟁취한 그 뜻을 노래와 합창으로 계승하고자 2018년 창단했다. 광주흥사단합창단(광주): 1913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창립한 민족운동단체 흥사단. 독립운동, 대
    한민국의 민주화, 청소년 계몽, 육성운동으로 2017년 3월 창단, 형화와 자유를 노래한다. 박종철합창단)부산):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와 6월 항쟁의 정신을 기리고, 시민문화운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2016년 8월 16일 창단했다. 416합창단(경기안산):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 일반 시민으로 2014년 창단됐다. 소외와 불의, 불평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에 함께 한다. 이소선합창단(서울):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의 영결식을 계기로 2011년 결성된 노동자 합
    창단이다. 서울시로부터 2020년 전문예술단체로 지정받았다.

    - 4 -

    민주주의 대합창에서 불려진 노래 제목을 소개해 본다. 아, 민주정부/ 무궁화
    / 다시 만난 세계/ 타는 목마름으로/ 죽창가/ 깍지손 평화/ 그날이 오면/
    죽순밭에서/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개벽/ 껍데기는
    가라/ 인간의 노래/ 돌덩이/ 오월의 노래2/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전체 합창단이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주출전가’를 불렀다. 전야제 2부 순서를 연 뮤지컬 <봄의 겨울, 겨울의 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80년 봄과 2025년의 겨울이 중첩되는 판타지 스토리의 뮤지컬. 공연은 “계엄이 계엄이 계엄이 계엄이 계엄이 선포됐다.”를 반복해 부르면서
    시작했다. 이어서 “2024년 12월 3일 도시를 통제하고 국회를 해산하고 수많
    은 사람들을 붙잡아 가두겠다고 계엄령이 선포됐다.”라는 가사는 45년 광주
    와 현재의 서울을 관통하는 ‘계엄’을 보여 주었다.

    “응 엄마, 나? 여의도 가는 길.”
    “응 여보. 걱정말게. 서울 다 와 부렀어. 아 어치게 가만히 있나. 국회 앞에
    탱크가 처들어와부렀다는디!”
    이어서 노래한다.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거리에는 탱크부대가. 상상해 본 적
    없어. 이런 세상이 다시 올 거란 걸.”

    그랬다. 45년 전의 그 계엄령 세상이 21세기에 다시 올 줄은 나도 상상하지
    못했다. “추운 겨울이 더욱 추워질지도 모른다,”라고 노래하면 “안 돼! 우리
    가 만든 나라”라고 화답했다. “어떻게 가만히 있어. 학교에서 배웠는데. 나도
    다 알아. 이거 5·18 때랑 똑같은 거잖아. 우리도 광주 사람들처럼 나서야 되
    는 거잖아.”라고 젊은 여성이 외치면 “어쩌면 다시 봄이 오지 않을지 모른다” 라고 노래했다. 현재와 과거를 노래와 춤으로 연결해 주었다. 1980년 오월이
    2024년 12월이고, 광주의 영령이 오늘의 우리를 구했음을. 가수 이은미가 작곡가 김형석이 해석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광주에
    서 사람들과 같이 부르고 싶었단다. ‘서른 즈음에’, ‘가슴이 뛴다’ 그리고 ‘애
    인 있어요’를 열창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라서일까, 시종 가슴 뭉클하고 눈
    물을 멈출 수 없었다. 작곡가 김종률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존경,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찬사 그리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 5 -

    담아” 작곡했다고 했다. 5·18전야제 브로셔의 글을 옮겨 본다. 민주항쟁의 연원 오월광주로 연어처럼 몰려오는 민주시민들. 고향 집 부모의 마음으로 뜨겁게 환
    영하는 오월 광주 공동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금남로에서 새로운 세계를 전망하다. 항쟁의 연원 5·18: 계엄의 밤, 장갑차 앞을 맨 몸으로 가로막은 시민들의 용기는 광주 시민군의 헌
    신이었습니다. 남태령의 새벽, 고립된 농민들을 끝내 지켜낸 연대의 마음은 오월 어머니들의 사랑이
    었습니다. 한남동의 눈보라를 맞으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던 낭만은 민주대성회의 횃불이었습니다. 승리의 약속 5·18: 오월의 기억으로 내란과 맞서 싸우고 있는 국민들이 민주주의 승리의 염원을
    안고 광주로 달려올 것이며, 광주 공동체가 고향 집 부모의 마음으로 뜨겁게 환영할 것입니다. 서로에게 감사를 표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내란청산과 민주승리를 약속하는 축제를 펼칩니다. 미래의 표상 5·18: 5·18은 미래의 표상으로 승화할 것입니다.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민주국가, 국가
    주권이 실현되는 자주국가는 오월 광주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입니다. 계급과 계층, 성별과 세대를
    넘어 누구나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존중하는 대동세상을 오월 광주가 먼저 체험했던 미래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그리고 ‘5.18헌법’ 5·18전야제 시민참여 부스의 인상을 정리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올해도 45년
    전 오월의 ‘주먹밥’이 있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와 사랑의 밥을 3개나
    받아먹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모델이 된 독일 기자 한스 패터를 기리는
    초록 택시와 운전자가 있었다. 그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어 제시하면 광주의
    소주 ‘잎새주’ 샘플 한 병 받을 수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로 간 택시운전
    사”라는 문구와 초록 택시가 라벨로 붙어 있는.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이라 불리는 광주인권상을 아는가? 5·18기념재단이
    2000년부터 인권과 평화를 위해 기여한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수여하는 상이
    다. 올해 수상자는 동남아시아에서 군사폭력과 인권침해에 맞서 생존자 보호, 진실 규명, 평화 구축 활동을 펼쳐온 인권 단체 ‘아시아 정의와 권리(Asia
    Justice and Rights, AJAR)’다. 특별상은 필리핀 코르딜레라 지역에서 34년
    간 예술을 통해 인권과 공동체 권리를 옹호해 온 ‘DKK문화동맹’이 받았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인 고 문재학 열사를 비롯한 민주
    유공자들의 묘비를 찾아보자. 구묘역에도 신묘역에도 너무나 어리고 젊은 얼
    굴들을 보라. “5·18정신 계승 민주유공자법 제정하라”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 유족·가족에 대한 교육지원, 취업지원, 의료지원, 대부, 양로지원, 양육지
    원 및 그 밖의 지원”이나 “국가와 지자체는 각종 기념·추모 사업을 실시하고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시설물이나 교양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라.

    - 6 -

    “5·18 정신 헌법전문 수록”이라 적힌 부채를 보았다. 홍보 부스에서 “청원 참
    여” 유인물이 배포되고 있었다. 5·18정신을 국가가 책임지고 헌법에 새겨야
    한다는 요지였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광주의 희생과 단호한 투쟁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지켜졌다. 12·3 불법 계엄의 국민 승리가 바로 오월광주
    의 승리”라며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통해 대한민국을 지켜온 힘이 국
    민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새기겠다"라고 말했다. 5·18 정신을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현재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
    하여....

    수록 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과 불의에 항거한 4.19와 5.18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
    명에 입각하여....

    민주주의 대축제 5.18 전야제를 다녀와서
    꿀벌

    조회수 83

    2025-05-20
  •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통일’의 문제는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주제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모두가 알고 있고, 대통령 선
    거에서도 항상 통일 정책은 중요하게 거론됩니다. 하지만 분단 된 지 80여
    년이 가까워지고, 현재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세대는 분단된 대한민국만 경험
    하다 보니 남과 북이 하나 되는 통일의 문제는 사실 멀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매년 실시하고 있는 「통일의식 조사
    (2023)」 결과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43.8%나 됩니다, 이는
    정기 조사를 시작한 2007년 이래 최저치라고 합니다. 반면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조사 이래 최고치인 29.8%까지 상승했다고 합니다. 분단을 논하며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평화’의 문제입니다. 1950년 동
    족상잔의 한국전쟁을 겪은 후 현재까지 남북 간의 전쟁 상태는 공식적으로
    종식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엄밀히 말하면
    언제 전쟁이 다시 개시될지 모르는 그런 상황인 것입니다. 외국 군대인 주한
    미군이 아직 주둔하고 있으며, 남과 북의 접경 지역을 비롯해 한반도 곳곳에
    서 끊임없이 전쟁 훈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단지 남과 북 사이의 대
    결만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전반의 대결 구도, 그 한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가 놓여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평화’의 문제는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정기적으로 꾸준히 시민을 대상으로 평화 통일
    을 주제로 아카데미를 진행하는 비영리 공익 단체가 있습니다. 경기도 안산에
    서 20년이 넘게 지속적으로 ‘평화통일 지도자과정’을 진행해 오고 있는 사단
    법인 한겨레평화통일포럼입니다. 지난 4월 17일 제40기 평화통일 지도자과정
    을 시작한 (사)한겨레평화통일포럼을 찾아가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알아
    봤습니다.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제40기 평화통일 지도자과정 입학
    식에는 (사)한겨레평화통일포럼 강신하 이사장·이천환 상임대표를 비롯해 동
    문, 40기 입학생 등 7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입학식은 (사)한겨레평화통일포럼 동문들과 입학생들을 맞이하는 강신하 이사

    장의 환영 인사말로 시작됐습니다. 강 이사장은 "국가보안법에 의해 북에 대
    한 왜곡된 정보만 알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번 평화통일 지도자
    과정 강의를 통해 북을 제대로 알고 통일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평화통일이 아닌 멸공통일을 추구했던
    지난 정부의 논리를 넘어, 헌법에 근거한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해 곰곰이 생
    각해 보면 좋겠습니다."라며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이천환 상임대표는 "한국전쟁이라는 어마어마한 역사적 과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참사를 후대들에게 물려주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
    다.“라며 ”좋은 강의 듣고, 서로 토론하며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배움의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지도자과정의 취지를 설
    명했습니다.

    이어 입학식의 주요한 순서로 40기 입학생 한 명 한 명 서로 소개하고 기대
    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입학생들은 “솔직히 평소 통일에 관해 관심
    을 가지지 못했는데, 강사진을 보니 기대됩니다.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지인의 추천을 받아 큰 고민 없이 참여했는데, 그 마음

    이 지도자과정을 수료할 때는 소중한 경험으로 바뀌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는 등의 소감을 전했습니다. 평화통일 지도자과정 40기는 입학식을 시작으로 6월 26일까지 매주 다양한
    분야의 전문 강사를 초청해 강연을 진행하며, 접경지역인 연천·동두천 현장
    기행을 통해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시간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재봉 원광대
    명예교수, 김진향 前)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 장창준 한신대학교 교수, 김태형 심리학자, 최현진 평화통일기행 전문 해설사, 김누리 중앙대학교 교
    수, 진천규 통일TV 대표, 신대광 지역사교육연구소 소장, 손미희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공동대표가 나서 평화통일에 대한 강의를 진행합
    니다. 이번에 40기를 시작한 평화통일 지도자과정은 (사)한겨레평화통일포럼이 창립
    한 이후 연 2회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매 기수마다 40~5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11주간 진행되는 과정을 마치면 총동문회에 소속되고, (사)한겨레평화통일포럼 회원으로 가입해 시민이 주축이 되는 평화통일 운동
    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안산 지역에서 역사성을 지닌 시민 교육 프로그램 ‘평화통일 지도자과정’을
    주최하고 있는 (사)한겨레평화통일포럼은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이후 평화통일의 흐름에서 창립했습니다.

    (사)한겨레평화통일포럼 김현주 사무국장은 “평화통일에 대한 인식을 넓혀가
    고, 평화통일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정책사업 등을 실천하는 단
    체로 시민들과 함께 통일운동을 만들어 가는 곳입니다.”라고 소개했습니다. 이어 “(사)한겨레평화통일포럼이 진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교육 사업인 평화통
    일 지도자과정은 평화통일 문제를 비롯해 국내외 정세, 남북의 역사·경제·문
    화 등을 주제로 강연을 듣고 비전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입니다.”라고 설명했습
    니다.

    ※ 파일명 : (제출월일)제목_이름(활동명) / 사진파일 별도첨부
    ※ 경기천년바탕 Regular, 글자크기 13p(본문), 줄 간격 160%, 상하여백 15, 좌우여백 25, 머리말·꼬리말 15, 300단어 기준 양식에 벗어난
    자료를 받았을 시 기준에 따라 수정하여 원고료 지급범위를 정함. ※ 1매에 27행을 기준으로 30%(8행)미만 작성된 매수는 지급매수로 산정하지 않으며 이미지는 홈페이지 업로드 크기와 별도로 센터
    양식 기준 최대 10행으로 취급
    (사)한겨레평화통일포럼은 평화통일 지도자과정 외에도 ‘남북경제교류협력아
    카데미’, ‘백두산-단둥 평화번영탐방’, ‘청소년 평화통일교육’, ‘고려인·새터민· 다문화 아이들과 함께하는 문화 체험’, ‘이북 영화상영’, ‘인문학 기행’, ‘평화
    통일 관련 정책활동’(토론회, 심포지움, 기자회견 등) 등 다양한 평화통일 관
    련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조금은 멀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평화’와 ‘통일’은 반드시 생각해 보고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입니다. 더불어
    시민으로서 평화통일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기 위한 다양한 시민운동에 참
    여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는 6월 15일은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25주년입니다. 25년간 남북 관계는 수없이 부침을 거듭하고 있고, 오히
    려 분단이 더 고착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번 더 평화통일에 대해
    생각해 보는 6월이 되기를 바랍니다.

    평화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시민 교육, ‘평화통일 지도자과정’
    레지스타

    조회수 77

    2025-05-17
  • [기획] 대남오물풍선 살포로 인한 위기와 그 해결책 — 거대한 불안과 대결의 장막을 넘어, 경기도 접경지마다 다정한 평화와 일상의 푸른 숲을 일구어내는 감동의 여정

    접경지의 긴장과 쉴 새 없는 안보 위기의 그늘 뒤편에서, 일상의 평화를 지켜내고 다정한 상생의 내일을 빚어내는 눈부신 발자취를 마주하다

    끝없는 남북 대치와 대남 오물풍선 살포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접경지역 주민들이 겪어야 했던 극심한 불안과 일상의 위협. 냉소와 대결의 장막을 깨부수고, 묵묵히 평화의 손길을 내밀며 안전하고 살기 좋은 지역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손을 잡고 걸어온 이들의 눈부신 발자취를 깊이 들여다보다.

    "우리는 과연 ‘접경지의 위험은 어쩔 수 없는 국가 안보의 문제일 뿐’이라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평화 활동가들, 그리고 공익활동가들이 손을 맞잡으며 저마다의 진심으로 평화와 상생의 품을 엮어내는 ‘오물풍선 위기를 넘어 평화를 꽃피우는 자치의 품’을 어떻게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풀뿌리 평화 안보 자치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경기도 전역에 상생과 안전의 자치 숲을 깊이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대남오물풍선 살포로 인한 위기와 그 해결책’이 품은 3가지 핵심 과제와 비전

    1. 방관과 불안의 장막을 허무는 ‘풀뿌리 평화 안보 옹호 및 일상 회복 생태계 구축’

      •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과 오물풍선 위협을 무력하게 방치하거나 각자도생으로 버티던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 경기도민과 공익활동가들이 동네 골목과 일상에서부터 평화의 해법을 모색하는 자발적 생태계 다지기.

      • "진정한 평화 자치의 완성은 거창한 정부의 안보 성명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접경지 골목 작은 공간에서 이웃들이 손을 잡고 서로의 안전을 살피며 차분하게 일상을 지켜내는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2. 고립을 넘어 온기를 잇는 ‘시민 참여형 평화 감수성 및 연대 강화’

      • 접경지역 주민들이 겪는 고립된 공포와 불안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서로를 돌보는 지혜로운 공론장 창출.

      • "혼자서 거대한 안보 위기의 벽과 마주하면 막막하고 두렵지만, 경기도 도민들이 손을 잡고 평화의 목소리를 내면 그 어떤 갈등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3.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안전의 그물망으로 잇는 ‘상생 평화 네트워크’

      •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평화·인권 단체들과 도민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모든 이가 안전하게 숨 쉴 수 있는 상향식 평화 민주주의 실현.

      • "모든 도민과 이웃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공생의 무대" 완성.

    현장의 온기로 채워졌던 뜨거웠던 토론과 교감의 시간들

    도내 각지에서 모인 평화 활동가들과 접경지역 주민들, 그리고 안전한 경기도를 염원하는 수많은 도민이 한자리에 모여 오물풍선 사태로 인한 위기를 냉철하게 진단하고, 경기도를 진정한 '모든 생명이 안심하는 평화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았던 공론장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온기로 가득 채웠다.

    • 참가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머리 위에 날아드는 오물풍선 소식에 매일 밤 불안과 공포로 잠을 설쳤는데,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이웃들과 함께 서로를 위로하고 '우리의 일상은 우리가 평화로 지켜내자'며 손을 맞잡으니 비로소 든든한 용기가 피어나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도민들의 뭉클한 순간들.

    [기획]대남오물풍선 살포로 인한 위기와 그 해결책
    평화누리 상임대표 이바다

    조회수 3893

    2024-08-26
  • [기획] 교동도 역사기행의 短想(단상) — 거대한 망각의 장막과 차가운 철책의 벽을 넘어, 경기도 골목마다 다정한 기억과 평화의 푸른 숲을 일구어내는 감동의 여정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공익웹진

    차가운 철책의 섬과 쉴 새 없이 밀려오는 분단의 그늘 뒤편에서, 역사와 평화의 숨결을 마주하다

    서해의 찬 바람 속에서 오랜 세월 유배와 실향의 아픔을 품어온 역사 품은 섬, 교동도. 팽배한 대결과 단절의 장막 너머로 묵묵히 평화의 염원을 간직해 온 이 서글프고도 아름다운 땅에서, 과거의 상처를 보듬고 새로운 상생의 내일을 그려보는 ‘교동도 역사기행의 단상’의 눈부신 발자취를 깊이 들여다보다.

    "우리는 과연 ‘분단과 실향의 아픔은 그저 멀고 무거운 역사일 뿐’이라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역사 기행의 발걸음을 함께한 공익활동가들이 손을 맞잡으며 저마다의 진심으로 평화와 공생의 품을 엮어내는 ‘교동도 역사기행이 전하는 평화와 연대의 품’을 어떻게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풀뿌리 역사 감수성과 평화 자치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경기도 전역에 기억과 상생의 자치 숲을 깊이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교동도 역사기행의 短想’이 품은 3가지 핵심 과제와 비전

    1. 방관과 분단의 장막을 허무는 ‘풀뿌리 역사 아카이빙 및 평화 생태계 다지기’

      • 일방적인 안보 논리와 단절의 구조에서 벗어나, 경기도민과 공익활동가들이 동네 골목과 일상에서부터 교동도의 실향 아픔과 평화의 가치를 함께 나누는 자발적 생태계 다지기.

      • "진정한 평화 자치의 완성은 거창한 통일 외교 선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동도의 좁은 골목과 실향민의 흔적 앞에서 이웃과 손을 잡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2. 고립을 넘어 온기를 잇는 ‘시민 참여형 역사 감수성 및 연대 강화’

      • 역사적 상처와 분단의 고통을 개인의 기억으로 치부하지 않고,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평화의 대안을 세우는 지혜로운 공론장 창출.

      • "혼자서 거대한 역사적 아픔의 무게를 마주하면 막막하고 두렵지만, 경기도 도민들이 손을 잡고 함께 걸어나가면 그 어떤 철책의 벽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3.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기억의 그물망으로 잇는 ‘상생 평화 네트워크’

      •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공익단체들과 도민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모든 이가 소외되지 않는 상향식 평화 민주주의 실현.

      • "모든 도민과 이웃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공생의 무대" 완성.

    현장의 온기로 채워졌던 뜨거웠던 기행과 교감의 시간들

    도내 각지에서 모인 역사 기행 참가자들과 평화 활동가들, 그리고 더 나은 내일을 염원하는 수많은 도민이 한자리에 모여 교동도의 다정한 풍경 속에서 아픔을 나누고, 경기도를 진정한 '평화와 기억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았던 공론장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온기로 가득 채웠다.

    • 참가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교동도의 차가운 철책선과 실향민들의 애환을 마주하며 분단의 아픔이 늘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는데,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이웃들과 함께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평화의 의미를 나누니 비로소 내 삶의 터전에서부터 진짜 평화의 희망이 피어나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도민들의 뭉클한 순간들.

    • 경기도형 평화 자치 도시 확산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동네마다 주민들과 함께 교동도 기행의 감상을 나누고 평화의 지혜를 이야기하는 '우리동네 평화 기행 사랑방'을 상설화하자", "역사 속 평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서로를 돕는 '경기 평화 연대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꾸리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가 마주한 분단의 장벽과 시대적 냉소의 파고가 때로는 높고 거셀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평화의 손길들이 모여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란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손길로 그려가는 경기도의 찬란한 내일

    세상을 바꾸고 진정한 평화 자치와 공생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힘은 차가운 정전협정 문서나 거창한 정치적 외교 선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 교동도의 좁은 골목길과 경기도의 일상에서 이웃의 손을 먼저 잡고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언제나 평화를 원한다"며 따스한 온기를 건네는 평범한 시민들과 공익활동가들의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연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방관과 단절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에 평화와 기억의 숲을 영원히 일구어가는 공익활동가들과 도민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도 곳곳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온기들이,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기도의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교동도 역사기행의 短想(단상 : 길지 않은 생각)
    아모스

    조회수 3097

    2024-06-07
  • [현장스케치] 경기북부 공익활동 관계망 구축 FGI - 의정부 1 — 차가운 지역 격차와 단절의 장막을 넘어, 의정부 골목마다 다정한 연대와 협력의 푸른 숲을 일구어내는 감동의 여정

    거대한 서울 집중의 그늘 속에서, 경기북부 공익의 뿌리를 다시 묻다

    수많은 역사적 상흔과 남북 분단의 최전선이라는 특수성, 그리고 상대적인 인프라 부족 속에서도 묵묵히 지역 사회를 지켜온 경기북부의 중심도시 의정부. 그 눈부신 잠재력의 등 뒤에서, 흩어져 있던 공익활동가들이 저마다 고립된 채 한계에 부딪혀야 했던 오늘의 씁쓸한 풍경.

    "우리는 과연 ‘남북 분단과 수도권 격차’라는 차가운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북부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활동가들이 서로의 손을 굳게 잡으며 지속 가능한 연대의 그물망을 빚어낼 수 있는 ‘공익활동 관계망 구축 FGI(초점집단면접)’의 다정한 품을 어떻게 넓혀갈 수 있을김?" 의정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모으고, 경기북부 공익 생태계의 단단한 지평을 열어가는 감동적인 공론장의 기록을 깊이 조명한다.

    ‘경기북부 공익활동 관계망 구축 FGI’가 품은 3가지 핵심 과제와 비전

    1. 고립된 현장의 목소리를 촘촘히 엮어내는 ‘경기북부 맞춤형 관계망 구축’

      • 의정부를 비롯한 경기북부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풀뿌리 단체와 소모임들이 서로 존재를 확인하고, 정보와 자원을 나누며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상생의 네트워크 마련.

      • "진정한 지역 자치의 완성은 중앙이나 남부 중심의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경기북부 현장의 목소리에서부터 스스로 피어나는 자발적 연대에 있다"는 철학 실천.

    2. 현장의 고충을 진솔하게 나누며 대안을 모색하는 ‘FGI 기반의 심층 공론장’

      • 형식적인 회의를 넘어, 활동가들이 마주한 재정적·구조적 어려움과 협력의 갈증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실효성 있는 광역·기초 연대 방안을 브레인스토밍하기.

      • "혼자서 고민하면 막막한 벽이지만, 의정부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면 새로운 길을 여는 든든한 날개가 된다"는 통찰.

    3.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균형과 평화의 온기로 잇는 ‘광역 자치 생태계’

      • 경기북부와 남부의 격차를 좁히고,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와 31개 시·군 센터가 평등하게 손을 잡고 기후, 인권, 돌봄 등의 과제를 함께 돌파하는 공생의 무대 완성.

      •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의 실현."

    현장의 온기로 채워졌던 뜨거웠던 FGI와 교감의 시간들

    의정부 지역의 다양한 공익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저마다의 가슴속 이야기를 풀어놓고, 우리가 왜 다시 단단하게 손을 잡아야 하는지 깊은 울림을 나누었던 FGI 현장은 뜨거운 공감과 진솔한 눈물로 가득 채웠다.

    • 참가자들의 진솔한 현장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그동안 경기북부라는 지리적 한계 속에서 우리끼리 고군분투하느라 지칠 때가 많았는데, 오늘 이렇게 모여 서로의 고충을 나누고 의정부에서부터 튼튼한 관계망을 만들자고 손을 맞잡으니 비로소 든든한 동반자가 생긴 것 같아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뭉클한 감회를 나누던 활동가들의 순간들.

    • 경기북부 공익 연대 확산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의정부 내 공익단체들과 소모임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소통하는 '의정부 공익 수다방 및 네트워킹 데이'를 상설화하자", "경기북부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연대 플랫폼을 튼튼하게 가꾸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가 마주한 지역적 격차와 구조적 한계가 때로는 높고 거셀지라도, 의정부와 경기북부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연대의 불꽃이 온 누리를 밝혀 모든 도민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함께 웃을 수 있는 찬란한 내일을 끝까지 함께 달리겠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손길로 그려가는 의정부와 경기도의 찬란한 내일

    세상을 바꾸고 진정한 자치와 연대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힘은 차가운 행정 지침이나 거창한 지역 발전 계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의정부의 좁은 회의실에 모여 앉아 서로의 눈을 맞추고 오늘 하루 성실하게 땀 흘리는 평범한 활동가들의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연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단절과 소외의 장막을 걷어내고 의정부와 경기북부 구석구석에 평화와 협력의 숲을 일구어가는 공익활동가들과 도민들, 그리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의정부와 경기도 곳곳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온기들이,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기도의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현장스케치]경기북부 공익활동 관계망 구축 FGI - 의정부 1
    참비움

    조회수 4049

    2023-10-10
<<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