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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웹진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뉴스레터 필진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필자의 의견과 관점이 담길 수 있으며 일부 내용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8,000km의 거리감, 스마트폰 화면 너머의 세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켭니다. 화면 속 뉴스는 쉴 새 없이 잔혹한 소식들을 쏟아냅니다. 우크라이나의 무너진 아파트, 가자지구의 울부짖는 어머니, 수단의 끝없는 피난 행렬. 하지만 이내 화면을 쓸어 넘기면 맛집 정보와 지인의 일상 사진이 그 자리를 대체합니다. 참혹한 전쟁의 풍경은 손가락 까딱 한 번에 너무나 쉽게 휘발되고 맙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타인의 고통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고통을 나의 문제로 감각하는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멀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거기 참 안됐네. 빨리 끝냐야 할 텐데...“

     
    미국의 미사일피격으로 사망한 이란 초등학생 175명 장례식(2026.3.4.)

     

    우리가 보내는 안타까움의 시선 뒤에는 항상 은연중에 그곳은 먼 나라 이야기라는 안도감이 숨어 있습니다.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단단한 심리적 방어벽이 우리를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훈의 달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과거의 전쟁을 기억하고 순국선열을 추모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서는 기이할 정도로 무감각합니다.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과연 그곳의 전쟁이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걸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정말로 안전한가? 인류는 지속적으로 평화를 이야기했지만 현실은 왜 전쟁의 연속일까?

     

    2. 남의 전쟁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청구서

    전쟁은 미사일이 폭발하는 영토 안에서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국경이라는 물리적 장벽을 가볍게 뛰어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촘촘한 가닥이 되어 이미 우리의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세계를 뒤흔든 거대한 두 개의 전쟁은 이를 너무나 극명하게 증명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남긴 상흔

    20222월에 일어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글로벌 곡창지대이자 원자재 대국인 두 나라의 충돌은 밀과 옥수수 가격의 폭등으로 우리에게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밀과 옥수수 가격의 폭등은 사료 가격을 상승시켰습니다. 이로인해 도산한 축산 농가가 엄청 늘어났으며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가 도미노처럼 치솟아 마트 매대와 골목길 밥상에 고스란히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전 세계 해바라기유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던 우크라이나의 공급망이 끊기자, 국내 식용유 가격이 무섭게 치솟는 이른바 '식용유 대란'이 현실화되었습니다. 해바라기유 수입 중단은 대두유(콩기름)와 팜유 등 대체재의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폭등시켰고, 이는 고스란히 동네 치킨집 사장님의 한숨과 가정집 장바구니의 비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에너지 자원의 90% 이상을 수입하는 구조 속에서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원유 공급망 차단은 산업 전반의 생산 비용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이는 고스란히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서민들의 실질 소득을 감소시켰고, 사회 전반에 먹고사는 문제의 불안을 심화시켰습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중동 전쟁 위기가 주는 충격

    20262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중동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중동은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심장부이며,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0%를 이 지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 한국 수입 원유의 6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봉쇄는 국내 유가를 상승시켰습니다. 주유소의 기름값 숫자가 바뀔 때마다 서민들의 소비 심리는 얼어붙었고, 해운·조선·해외 건설 산업은 불확실성의 늪에 빠졌습니다. 물가 상승과 금리 고공행진은 자영업자들을 한계 상황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미사일 한 발이 한국의 어느 골목길 식당의 폐업으로 이어지는 이 긴밀한 연결고리, 이것이 바로 남의 전쟁이 우리에게 청구서입니다.

     

    3.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평화

    우리가 경제적 수치와 물가 상승률을 논하는 사이, 전쟁의 현장에 서 있는 당사국 국민들이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전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말살합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자 학생이었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난민이 됩니다. 머리 위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폭격의 공포 속에 밤을 지새우고, 단 한 모금의 깨끗한 물과 한 조각의 빵을 구하기 위해 몇 시간을 줄 서야 합니다. 전력과 가스가 끊긴 겨울, 추위 속에서 아이들은 병들어가고, 병원마저 포격으로 무너져 간단한 치료조차 받지 못해 목숨을 잃습니다. 어제까지 함께 밥을 먹던 가족의 시신을 무너진 잔해 속에서 맨손으로 파내야 하는 비극, 그것이 전쟁을 겪는 인간의 처절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 끔찍한 비극 앞에서 결코 자유로운 관전자일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전쟁이 완전히 끝난 평화 국가가 아니라, 잠시 전쟁을 멈춘 '휴전(Armistice)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우리 역사에는 언제든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었던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가 수없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를 흔든 큰 전쟁위기들

    19681·21 사태와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1968121일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 시도에 이어 123일에는 미 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영해 침범의 이유로 북한군에 나포되면서 한반도는 당장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극한의 군사적 대치 상태에 놓였다.

    1976년 판문점 도끼 사건 - 공동경비구역 판문점에서 미군이 미루나무를 자르려고 하자 북한군은 자신들과 협의하지 않았다고 중단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싸움이 벌어져 미군 2명이 사망한 사건. 미국은 핵 탑재가 가능한 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출격시키는 등 전면전 직전까지 갔다.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과 미국의 영변 핵시설 정밀 폭격 준비로 당시 주한미군 가족들이 철수 계획을 세우고 시민들이 라면과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등 극심한 전쟁 공포가 휩쓸쓸었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 - 한국 해군의 해상 포격 훈련에 대해 북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연평도에 포격을 가해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한 사건. 정전 협정 이후 최초로 대한민국 영토와 민간인을 향해 직접적인 포격이 가해졌다.

    2015년 휴전선 지뢰 사건 - 20158월 비무장지대(DMZ) 수색 중 휴전선에서 지뢰폭발로 우리 군 2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 이로 인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서부전선 포격 도발로 이어졌고,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등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2017년 북·미 전면전 위기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북의 완전 파괴로 화답을 하자, 북이 다시 괌에 대한 미사일 공격으로 응수하면서 전쟁위기가 일촉즉발로 높아진 사건.

     

    이 역사적 사건들이 증명하듯 우리 사회의 평화는 안전한 평화가 아닌 불안전한 평화기반 위에서 반복되는 전쟁위기를 맞으며 살고 있습니다. 대만-중국 전쟁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재무장화도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불안감입니다. 중국-대만 전쟁 시 미군이 개입을 하면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참전할 여지가 높습니다. 이번 이란 전쟁에서 보듯이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자 이란은 미군기지가 있는 중동 8개 나라를 공격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주한미군 기지가 있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풍경은 당장 오늘 밤이라도 이 땅에서 재연될 수 있습니다.

     

    분단과 군사독재문화로 인한 갈등과 혐오의 문화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휴전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오랜 분단 구조가 우리 내부 사회에 심어놓은 갈등과 혐오문화입니다.

    적대적 분단은 우리 사회에 오랜 기간 광범위하게 우리의 인식, 마음을 병들게 했습니다. 색깔론과 종북몰이와 같은 이념갈등은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고,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반인권적, 반민주적 인식을 온 사회에 만연시켰습니다.

    국민의 행복과 권리를 통제하려고 한 12.3내란의 명분도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였습니다. ‘스타벅스를 빨갱이 없는 청정지역으로 만들자는 등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분단을 자양분으로 해서 갈등과 갈라치기가 계속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분단은 우리 사회에 평화감수성을 약화시켰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해 시체팔이를 한다며 낙인을 찍고, 단식농성장 바로 앞에서 폭식투쟁이라는 반인륜적인 행태를 서슴지 않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들을 향해서도 위로와 진상규명 대신 차가운 모욕과 냉소를 퍼부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두고 북한군 개입설과 같은 악의적인 가짜뉴스를 유포하며 역사적 진실과 희생자들의 아픔을 모독하는 행위까지 버젓이 자행됩니다. 이런 행위를 단순히 생각의 차이로 치부할 수 없으며, 자유민주주의 허용 범위로 볼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 모든 야만성은 오랜 시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분단문화''군사독재문화'가 만들어낸 흑백논리의 산물입니다. 휴전선 너머의 군사적 위협을 관리하는 안보 못지않게, 우리 안의 이분법적인 적대감을 거둬내고 사회 내부의 폭력성을 치유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짜 '우리의 평화'입니다.

     

    5.18을 조롱하는 홍보물이 온라인에 퍼지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광주 5.18 모습

     

    4. 평화는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경기평화교육센터

    국가 권력과 군사력의 논리는 언제나 거대한 담론만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 시민사회의 역할은 그 틀 자체를 흔드는 것입니다.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공감의 영역에서, 단절이 아닌 연결로 평화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대한 국제정치를 당장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 곁에 있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사회 내부의 상처와 갈등을 평화적으로 치유해 나갈 평화 감수성의 크기는 교육을 통해 키울 수 있습니다.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경기평화교육센터(이하 센터)는 바로 이러한 믿음 위에서 숨 쉬는 단체입니다. 센터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교육으로 기여하자는 생각으로 지난 2012년에 첫발을 내디딘 시민단체입니다.

    분단의 오랜 아픔을 치유하고 무력 충돌의 위기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힘은 결국 평화를 사랑하는 깨어있는 시민과 미래 세대의 의식에서 나온다는 신념으로 달려왔습니다.

     

    경기평화교육센터 주요 교육 및 시민참여 프로그램

    미래 세대를 위한 학년별 학생 대상 교육 초등·중등 학생들의 평화 감수성을 깨우는 그림책을 활용한 평화통일교육놀이로 만나는 평화통일교육은 학교 현장에서 가장 뜨거운 호응을 받는 대표 프로그램.

    시대를 이끌어갈 청년 대상 교육 깊이 있는 세미나와 토론을 통해 평화적 시선을 확장하는 피스리더와 청년 동아리 워너피스를 통해 사회 곳곳에서 평화의 목소리를 낼 청년 리더 양성.

    일상에서 실천하는 시민 교육 통일 톡투유, 가족이 함께하는 평화캠프, 1기 경기도민 평화학교등을 통해 시민들의 평화 감수성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현장에서 숨 쉬는 평화통일기행 파주·김포·강화도 등 접경지역에서의 평화통일기행을 통해 시민들은 분단의 아픔과 평화의 소중함을 눈과 가슴으로 생생하게 느끼기 위한 프로그램.

     

    경기평화교육센터가 펼치는 이 모든 교육의 지향점은 명확합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공감의 언어로 평화감수성을 키우고,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감각을 갖게 하는 데 교육으로 기여하는 것입니다.

     

    5. 나가며: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

    로마 시대의 군사 전략가 베게티우스가 남긴 유명한 격언이 있습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오랫동안 이 말은 인류의 안보 논리로 지배해 왔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진실은 다릅니다. 전쟁을 준비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상대방의 불안을 자극하고, 이는 끝없는 군비 경쟁과 안보 딜레마를 낳아 결국 더 참혹한 전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낡고 위험한 선언을 뒤집어야 합니다.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

    평화는 더 큰 미사일 위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고통을 응시하는 공감의 시선, 적대를 멈추려는 단호한 대화, 내 안의 낙인과 혐오를 거둬내는 성찰, 그리고 국경과 이념을 넘어 연대하는 시민사회의 힘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 속 타인의 눈물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 이웃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으로 연결되는 순간 전쟁과 폭력을 막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평화의 감수성은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경기평화교육센터가 뿌리는 평화교육의 씨앗들이 거대한 세계 평화의 숲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기 경기도민 평화학교 7(2026.5.26.)
     
     
    남의 전쟁이 우리의 문제가 되는 순간
    경기평화교육센터 안영욱 사무처장

    조회수 195

    2026-05-29
  • 지난 4월 21일 안산에는 아주 특별한 생일잔치가 있었다. 풀뿌리 여성단체이
    자 전국에 하나뿐인 ‘함께크는여성울림’의 창립 10주년을 축하하는 좌담회였
    다. 안산 고잔동의 울림 교육장이 “세상을 향한 큰 울림 함께 걸어온 10년
    이야기” 꽃으로 가득했다. 김혜정(우공) 전 대표와 조창아(짱아) 신임 대표의
    육성으로 여성단체 ‘울림’을 들어보자

    자기소개부터 부탁한다. 우공: 10년간 울림 활동가이자 2년의 전임 대표 자리를 벗어나서 회원으로
    살기 시작한 지 2개월째인 우공이라고 한다. 아직 정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
    어서 완전히 활동가의 탈을 벗지 못했지만 어쨌든 마음은 자유로운 개인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짱아: 나는 지난 2년간 울림의 이사였다가 올해 대표이사까지 맡게 돼 막중
    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내가 대표를 맡기 전후로 내란 불법 계엄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에 덕분에 활동가로 갑자기 성장한 대표라고 소개하겠다. 울림이 뭐지? ‘함께크는여성울림’을 소개해 달라. 우공: 안산에만 있지만 회원이 다른 지역과 해외에도 있는 전국구 여성단체
    다. 일상의 차별과 성 역할에 갇혀 살던 여성들이 모여 떠들고 설치고 자유롭
    게 말하는 안전한 공간이자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지역의 작은 배움
    터다. 이름 그대로 나만 잘 나가는 게 아니라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곳
    이고 더 큰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다. 짱아: 온오프라인으로 모이는 13개의 회원 소모임이 활발하다. 성평등 가치를
    담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운영, 지역사회의 인권 관련 현안, 세월호 참사 등
    안산의 민주시민 단체와 연대 활동한다. 12.3 계엄의 밤 이후 123일 동안 ‘비상행동’과 함께 윤석열 파면을 끌어냈다. 올해 4월 울림 10주년 기념 자료
    집을 펴내고 좌담회를 비롯한 기념 사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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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 ‘함께크는여성울림’의 창립 과정이 궁금하다. 우공: 여성단체 활동 경험이 있는 세 사람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2014년
    부터 사회적 기업 등 여성 공동체 설립을 위한 공부를 했다. 지인들과 발기인
    을 모으고 돈을 모아 2015년 2월에 안산에서 74명으로 창립총회를 하고 4월
    에 법인설립을 완료했다. 돈이 없어서 페인트칠 벽지 등 실내장식을 회원들이
    손으로 다 했다. 목재로 된 글자 하나까지 발로 뛰어 찾아서 ‘함께크는여성울
    림’ 현판을 달았다. 당시 안산에 여성노동자회와 YWCA 두 여성단체가 있었다. 차별점이 뭔가?
    우공: 여성노동자회는 일하는 여성들이 중심에 있고 YWCA는 기독교적 이념
    에 기초해 평화운동, 청년운동을 함께하는 좀 더 포괄적인 여성공익 운동단체
    다. 각각 엄청난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생활 중심형 여성단체”를 만
    들고자 했다. 여성취업률이 꾸준히 늘어나고는 있지만 단시간 시간제 노동과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전업주부도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지역을 기반으로
    사적 공간에 있는 여성들이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공적 활동과 연결되는 통
    로가 필요했다. 한마디로 울림은 일상에 밀착된 여성운동 단체다. 지금은 회원이 얼마나 되나? 많이 들고났을 거 같다. 우공: 현재 200명쯤 된다. 한 해 보통 30명씩은 들어왔지만 나가는 사람도
    많아 생각보다 증가 속도가 느렸다. 그리고 초창기에 “도와주세요”, 읍소해서
    100명 채워준 이들이 시간이 가면서 떠나갔다. 사돈의 팔촌 회원들 빼면 한
    50명으로 시작해 10주년에 200명까지 왔다. 상당수 회원들이 기존 회원의 소
    개로 오니, 울림은 회원들이 함께 키운 단체가 맞다. 두 분 삶에 울림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는 울림의 장점을 자랑해 달라. 짱아: 가장 든든하고 신뢰하는 여성들의 집합체다. 울림을 빼면 나를 설명할
    수 없을 거 같다. 울림 활동 7년을 통해 인간에 대한 신뢰가 커졌다. ‘성평등
    한 민주사회 실현을 위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생활 중심형 여성운동’이라는
    모토 그대로였다. “울림이 뭐 하는 곳인 줄도 모르고 좋은 사람 따라왔다가
    배우게 되고 실천으로 연결됐다.” 이런 고백 많이 들었다. 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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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개 회원 소모임을 자랑하고 싶다. 페미니즘모임, 4.16세월호참사기억모임, 걷기인증모임, 산행모임, 글쓰기및합평모임, 영어모임, 그림모임, 우쿨렐레모
    임, 환경모임 등 여성의 관심사만큼이다 다양하다. 홈페이지제작모임, 코딩모
    임 등 IT관련 관심도 늘고 있다. 정치 성향 상관없이 관심 분야로 모여 놀며
    배우며 활동한다. 소모임에서 어울려 회의나 여성대회 등 큰 행사에 참여하기
    도 하고 연대 집회로도 연결된다. 나도 처음 울림에 발을 들인 건 활동가들의
    인성이 좋아 보여서였다.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별을 품은 사람
    들’에서 세월호 기억확동을 하며 내적 외적으로 성장을 경험했다. 우공: 개성 넘치고 재능 있고 멋진 여성들이 울림의 자랑이다. 울림은 여성들
    이 서로 연결되는 만남의 장이자 사랑방이다. 사람이 연결되면 거기에 재미난
    이야기와 다양한 정보가 오가고 활동을 만들어내고 참여와 연대도 이루어진
    다. 아쉬움은 내가 이슈 파이팅 활동에 많이 참여하지 못한 점이다. 연대체들
    과 좀 더 적극적으로 했으면 울림도 나도 더 확장될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다. 이제 새 대표가 잘해줄 거라 믿는다. 각자 여성운동에 몸을 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우공: 나는 좀 늦게 발을 들인 편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세 딸 중 둘째로 남자가 없는 집에서 자라 그런지 여자라고 차별받은 경험은
    많지 않았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에 몸담았지만, 당시 여성운동에는 별 매력을
    못 느껴 안타깝게도 페미니즘 세계를 모르고 20대를 지나쳤다. 그런데 결혼
    한 지 일주일도 안 돼 가부장의 세계에 들어왔다는 걸 바로 느끼게 되면서
    성차별에 대한 감각이 살아났다. 아이 낳고 바로 일을 시작했는데 재미가 없
    고 무의미해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더라. 직업상담사 자격을 따고 1년간 봉사했다. 경력 중단 여성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과 현실의 괴리가 컸고, 여성들과 상담하다 보니 직
    장 내 성희롱과 가정폭력 얘기를 많이 듣게 되더라. 야, 여성에게는 취업보다
    폭력 문제가 더 심각하구나, 깨닫고 관련 공부를 하게 됐다. 30대 후반 본격
    적으로 여성운동 판에 들어간 게 안양여성의전화였다. 젠더폭력에 대응하는
    상담도 중요하지만, 성차별 세상을 바꾸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싶어 사무국 일을 주로 했다. 그때 처음으로 안산에도 이런 단체가 있으면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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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겠다 생각했고 결국 뜻 맞는 활동가들과 울림을 만들 수 있었다. 짱아: 2018년에 김혜정 사무국장을 만나게 되면서 울림에 가입했지만 별 활
    동은 없었다. 순천에서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안산으로 돌아오면서 글쓰기 소
    모임을 만들어서 울림 활동가들과 더 가까워졌다. 울림 3년 차에 이혼했다. 나 혼자 사는 집에 울림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와 차 마시고 밥 먹고 술도 마
    시며 외로움을 덜어 주었다. 그러다 소모임 ‘별을 품은 사람들’에 들어가면서
    이전에 피하던 세월호 참사에 대해 마주하게 됐다. 그때까진 내 슬픔이 가장
    컸는데 생각의 전환이 오더라. 외로워서 슬프고 남편이 떠나서 슬프고, 그런
    슬픔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지더라. 그러니까 내 슬픔에 매몰됐을 땐 해결
    되지 않더니 다른 아픔에 동참하니까 내 슬픔이 작아지고 연대가 주는 위로
    가 아주 크게 다가왔다. 도망치지 않고 슬픔의 한가운데에 서는 법을 배운 거
    같다. 그러다 울림 이사 제안도 수락했고 대표이사 제의도 수락하지 않았나, 지금 생각하니 그렇다. 계엄 사태 한 달쯤 지났을 때 대표이사 투표가 있었다. 시국이 내가 빨리 대
    답하게 했다. 우리 사회 어떡하지, 울림 어떡하지, 모두 내 문제로 다가왔다. 새로 시작한 생업을 하며 대표이사를 맡고 매주 광화문 집회에도 나갔다. 그
    때 절박하게 느꼈다. 정치와 내 삶이 따로 있지 않구나. 내 삶을 뒤흔드는 게
    정치구나, 내란 시기에 날마다 그런 각성을 했다. 내가 실천을 조금이라도 하
    지 않으면 정말 우리나라 전체 이 선박이 좌초되는 건데, 내가 지금까지 사회
    가 어떻게 돌아가든 내가 할 게 없다 생각하고 내버려뒀구나, 부끄러웠다. 개
    인적인 상황 국가적인 상황 울림의 상황이 다 하나로 연결됐다. 울림의 신임 대표로서 취임 2개월의 소회가 궁금하다. 짱아: 2월 6일에 취임했지만, 작년 12월에 이미 대표이사 투표가 있었고 내
    마음의 결정은 아마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다음에 한 것 같다. 돌봄으로부터
    자유로워서 가능했다. 그때 활동가들이 10주년 기념 자료집을 준비하고 쓰고
    있었다. 그 작업을 도우면서 이 힘든 일을 왜 하느냐고 조심스레 문제를 제기
    했다. 울림 10년 역사를 네 명의 활동가가 책으로 엮기엔 역부족이라 생각했
    다. 그만큼 부담이 컸다. 그러나 자료집 초고를 읽다 보니 지난 10년의 사람
    들과 역사를 다시 보게 됐다. 그 수고 덕에 내가 안정적으로 5대 대표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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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받을 수 있었다. 책임을 맡고 보니 전에 안 보이던 게 많이 보여서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보
    냈다. 일단 대외적으로는 연대 활동에 대표가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활
    동가 풀이 크지 않아서 지속적으로 나갈 사람이 적은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항상 시의적절하게 매듭할 거 매듭짓고 자료 정리 잘해준 활동가들이 새삼
    고맙더라. 며칠 전 꿈을 꿀 정도였다. 내가 앞으로 2년간 일을 하고도 흩어놓
    고 쓸려가게 만들지 않을지 걱정돼서였다. 생업과 울림 활동을 병행하며 일상
    을 살아내려니 마음 관리도 잘하려 하고 있다. 파면 전전주에 한 회원이 처음으로 집회 참여를 한 후 들려준 소감이 생각난
    다. 원래 “저는 광장 그런 데는 안 나가요.”라던 분인데 내가 지나는 말로 같
    이 가자 그랬다. 울림은 누구도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분이 탄핵 광
    장에 다녀온 후엔 “민주주의를 바라는 이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 함께한 시민
    들의 모습에 감동했다. 역사의 현장에 있게 해 줘서 감사하다”라고 고백했다. 이게 함께하는 재미다. 창립 맴버로서 전임 대표직을 마치는 소감은 어떤가?
    우공: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성평등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없다. 울림도
    마찬가지다.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많다. 그래서 책임을 내려놓는 게 마냥 편
    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나는 믿음이 있었다. 내가 물러나도 계속 함께 하는
    활동가들이 있고 임원을 비롯해 적극적인 회원들이 있다. 또 새 대표가 엄청
    적극적으로 해 나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언젠가 넘어야 하고 이제는 넘어
    가는 걸 시도해 봐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적기였다. 내 선택이 옳았고 울림도
    잘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창립 위원들이 돌아가며 대표를 해 왔는데 이제 다음 세대로 대표 이
    전이 되고 임원진들이 바뀌고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10년을 탈
    없이 잘 왔다. “울림이 있어 좋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보면 보람을 느낀다. 10주년 앞두고 몇 차례 비전 워크숍을 하며 우리 단체의 미래를 걱정하는 임
    원들이 많아진 걸 보았다. 이사진 중심으로 역할 배분도 되고 공동 운영 마인
    드도 생겼다. 조창아 대표가 사람을 포용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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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마음을 모아주고 있는 게 느껴진다. 성공적으로 잘 가고 있는 것 같
    다. 향후 10년 울림의 비전과 과제가 있다면?
    짱아: 탄핵 광장에 나온 2030 여성들에게서 감동과 자극을 많이 받았다. 그
    분들과 연대하는 페미니스트 단체 울림으로 계속 성장하고 싶다. 근데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한다고 가다 보면 사람들을 놓칠 수 있더라. 오히려 사람
    들과 하루하루 함께 걷다 보면 길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지금까지 그랬듯 함
    께 이야기 나누고 함께 공부하고 글 쓰고 하는 그 자체가 울림의 존재 이유
    가 되지 않을까. 앞으로의 도전과 과제는 교육과 홍보, 재정 확충, 세대 간
    연대 등이 있다. 운영진과 회원들의 페미니스트 역량 강화도 과제겠다. 현재
    로선 울림 자체가 내 꿈이다. 울림이 있다는 자체가 내 기쁨이다.

    생활 밀착형 여성단체 ‘함께크는여성울림’ 이야기
    꿀벌

    조회수 75

    2025-05-07
  • 거대한 철조망과 지뢰밭의 그늘, 그 너머에서 피어나는 평화의 간절한 노래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DMZ)와 수십 년간 군사적 긴장감이 맴돌던 최전선 접경지역. 경기도는 대한민국에서 분단의 아픔과 냉전의 상흔을 가장 가까이에서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아픈 역사의 땅이자, 동시에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평화를 갈구해 온 생명의 터전이다.

    "우리는 과연 매일 마주하는 분단의 장벽을 당연한 대립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니면 그 차가운 철조망을 허물고 평화와 상생의 길을 열어갈 지혜와 용기를 품고 있는가?" 접경지역의 주민들과 평화 활동가들이 일상 속에서 실천해 온 풀뿌리 평화 운동의 궤적을 조명하고, 분단의 아픔을 넘어 공존의 내일로 나아가는 ‘분단의 길에서 평화를 찾다! 경기도공익활동’의 뜨거운 현장을 깊이 들여다본다.

    경기도의 평화 활동이 품은 3가지 핵심 과제와 비전

    1. 대립과 긴장의 철책을 넘어, 생태와 평화의 보물창고로 거듭나는 DMZ

      • 오랜 세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역설적으로 가장 원시적인 생태계가 보존된 DMZ와 접경지역을 파괴와 대치가 아닌 ‘생태 평화의 거점’으로 되살리기.

      • "총칼이 머물던 자리에 푸른 생명이 숨 쉬고, 남과 북이 자연 안에서 하나 되는" 초록빛 상상력.

    2. 접경지역 주민들의 일상적 불안을 치유하고 연대를 엮어내는 ‘풀뿌리 평화 공론장’

      • 군사훈련의 소음과 재산권 제한, 그리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서 살아온 접경지역 도민들의 상처를 보듬고, 이들이 평화 운동의 주체로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판 만들기.

      • "분단의 고통을 가장 깊이 겪은 이들이 곧 평화의 가장 강력한 메신저가 된다"는 진리.

    3. 지방정부와 시민사회가 손잡고 일상에서 실천하는 ‘시민 평화 자치’

      • 거대 외교 담론에만 머무는 평화가 아니라, 동네 골목에서부터 평화 교육을 열고 남북 교류의 작은 조각들을 맞춰가는 경기도민들의 자발적 연대와 실천.

      • "모든 도민이 일상에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공정하고 안전한 평화 공동체" 완성.

    현장의 온기로 채워졌던 뜨거웠던 순례와 교감의 시간들

    경기도 내 접경지역을 직접 찾아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고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던 평화 순례와 토론의 현장은, 깊은 울림과 함께 평화를 향한 뜨거운 의지로 가득 채웠다.

    • 접경지역 주민들의 진솔한 삶의 애환 및 평화 나눔 세션: "매일 눈앞에 철책을 보며 살아오면서도 평화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함께 모여 손을 잡고 평화를 노래하니 비로소 진짜 내 땅이라는 실감이 납니다"라며 눈시울을붉히던 주민들의 뭉클한 순간들.

    • 경기도형 평화 통일 정책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파주, 연천, 김포 등 접경지역을 잇는 '평화 누리 자전거 길'을 만들어 시민들이 직접 평화의 발자취를 밟게 하자", "주민들이 주도하는 '마을 평화 학교'를 열어 다음 세대에 평화의 가치를 전하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나누던 반짝이는 눈빛들.

    •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분단의 장벽이 높고 거셀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평화의 불꽃이 온 누리를 밝혀 모든 도민이 차별과 대립 없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란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분단의 길에서 평화를 찾다!
    봉봉맘

    조회수 4609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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