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안산 다문화 작은 도서관의 폐관과
방치된 모국어 책들이 던지는 질문
1. 그 푸른 대문에 대하여

안산 다문화 작은도서관 입구의 파란 대문. 지금은 문패가 사라졌다.
누군가에게 도서관은 그냥 도서관이다. 책이 있고, 의자가 있고, 조용한 곳. 하지만 안산역 지하보도를 빠져나와 다문화 거리의 소음을 헤치며 걷는다. 다문화 지원센터 지하 1층으로 내려가던 사람들에게, 그 좁고 낮은 공간은 다른 장소였다. 24개국의 언어로 된 책들이 빼곡히 꽂힌 서가 앞에서 그들은, 아마도 처음으로, 자신이 이 도시에 존재한다는 감각을 되찾았을 것이다.
17년이었다. '안산 다문화 작은 도서관'이 이 땅에 뿌리 내린 이주민들의 곁에 있던 시간. 낯선 나라에서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고 돌아온 밤, 모국어로 된 문장 하나가 주는 위로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17년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런데 지난 2월, 그 공간은 공문 한 장과 함께 사라졌다. 협의도 예고도 없었다. 3년간 이 도서관을 운영해 온 박서연 관장은 재위탁 심사를 준비하던 중 폐관을 통보받았다. 청천벽력이라는 표현이 이렇게 정확하게 들어맞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사서 선생님들과 함께 출근해서, 함께 퇴근했다." - 도서관을 이용하던 한 중국인 어머니의 말
이 문장을 읽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한 번도 낯선 땅에서 혼자였던 적이 없는 사람이다. 도서관은 이미 학교였고, 사랑방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었던 장소였다. 그 푸른 대문 안에, 이제 온기가 없다.
2. 산속으로 밀어낸 권리들
안산시 중앙도서관은 대안을 내놓았다. '관산 도서관'으로 서적을 이전하겠다고 했다. 관산 도서관도 원곡동에 속해 있다. 그러나 이주민들이 매일 오가는 다문화 거리와는 다른 세계에 있다. 번화가를 벗어나, 산 쪽으로 치우친 곳. 지도상의 거리가 아니라 심리적 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하루 열두 시간을 일하고 돌아오는 이주민 노동자가 버스를 갈아타고 산기슭의 도서관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대체 누가 진지하게 계산했을까?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다. 안산 중앙도서관 관장은 '상호문화 도서관'으로의 리뉴얼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관산 도서관 담당자들은 그 계획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계획은 계획일뿐, 현장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보다 더 비참한 것은, 수만 권의 모국어책들이 현재, 한구석에 쌓여 있다는 사실이다. 관산 도서관으로 이전할 예산조차 책정되지 않았다. 책들은 그냥 거기 있다. 이주민의 언어로 쓰인 지혜들이, 어둡고 좁은 창고에서, 아무도 없이. 무관심으로 집행될 때 어떤 소멸은 폭력보다 더 모욕적이다.
타 지자체들이 독자적인 다문화 도서관 건물을 짓고, 이주민 지원을 정책의 전면에 내세우는 지금, '다문화 선도 도시'를 자처해 온 안산시의 이 결정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주민은 도시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이지만, 그들의 언어와 문화는 수납되거나 소거되어도 좋은 부수적인 것이라는 선언. 명시되지 않았을 뿐, 그렇게 읽힌다.

안산문화도서관에 있던 수만 권의 모국어책들은 방치된 채로 싸여 있고 책장은 텅 비어있다

폐관된 안산다문화 도서관의 서적들이 이전될 예정인 관산 도서관
3. 이민청을 유치하겠다는 도시의 모순
안산시는 지금 이민청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주민이 많은 도시라는 조건이 유리하게 작동할 것이라 본다. 그 기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민청이라는 건물을 유치하는 데에는 열성이면서, 이주민들의 일상을 지탱하던 작은 도서관 하나는 예산 효율화를 이유로 없애버리는 이 도시가, 진정으로 이주민을 위한 도시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드웨어에는 투자하고 소프트웨어는 삭제한다. 간판은 걸면서 내용은 비운다. 이것은 안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이주민을 대하는 방식의 축소판이다. 그들의 노동은 필요하지만, 그들의 언어와 감정과 기억은 도시의 설계에서 자꾸 뒷전으로 밀린다.
진정한 상호문화도시는 구호에 있지 않다. 그것은 좁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모국어로 된 책을 펼치는 이주민들의 일상을 행정이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드러난다. 지금 그 책들은 창고에 있다. 그 사실이, 이 도시의 현재 좌표를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다.
공간은 폐쇄되었다. 하지만 질문은 폐쇄되지 않는다. 방치된 서가 아래에서, 우리가 묻고 싶은 것은 여전히 살아 있다. 안산시와 이 사회에 묻는다. 당신이 만들고 싶은 도시는 무엇인가. 경제적 지표 위에 세워진 효율의 도시인가, 아니면 낯선 이의 고단함도 품어낼 수 있는 공동체인가. 둘 다 원한다면, 먼저 그 창고 문을 열어야 한다.


폐관된 다문화 작은 도서관 현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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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2※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모르는 이웃과 인사하면서, 마을이 다시 시작됐어요”라는 말로 성남시 마을공동체 초록리더창작소의 엄혜경 활동가 인터뷰를 시작했다.
조용히 지나치던 이웃이 어느 날 인사를 건네고 낯설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웃고, 아이와 어른이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나누게 되었는데 이 작은 변화의 중심에는 한 마을 활동가의 꾸준한 움직임이 있었다.
낯섦에서 시작된 관계
“원래는 아는 사람들끼리만 활동했어요.”
엄혜경 활동가는 처음 마을 공동체는 익숙한 관계에서 출발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새롭게 깨달았다고 했다. 진짜 공동체는 ‘아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이웃’과 함께할 때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도 처음엔 동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 먼저 인사를 건네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같이 하실래요?”라고 말하자 마을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음의 문을 열었고 관계를 이어가는 공동체가 된 것이다.

성남시 마을공동체 초록리더창작소 활동 모습

성남시 마을공동체 초록리더창작소 활동 모습
보람, 사람의 변화에서 오다
엄 활동가는 ‘사람이 달라지는 순간’을 활동의 가장 큰 보람으로 꼽는다. 인사를 나누지 않던 이웃들이 서로 얼굴을 알게 되고 함께 활동하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해지고, 익숙함을 넘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경험 말이다.
“새로운 사람들이 오면서 더 재미있어졌어요. 기존에는 아이디어가 한정적이었는데, 훨씬 다양해졌거든요.”
엄 활동가는 신나 하며 말했다. 공동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결국 ‘사람’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려움, 멈춰버린 참여
하지만 모든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활동을 하며 가장 힘든 순간은 역시 사람들이 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때다.
“행사를 공지해도 사람들이 잘 참여하지 않을 때가 가장 힘들어요.”
그의 말 속에서 깊은 시름이 느껴졌다. 그는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을 때마다 코로나 시절을 연상하게 된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 이후, 마을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축제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지만 코로나 이후로 사람들은 점점 모임을 꺼리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며 아쉬워했다.
“2022년 이후로는 사람들이 모이는 걸 좀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그래서 활동가는 그 변화 속에서 다시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스스로를 위한 변화의 시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변화, 다시 이어지는 연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되고자 하는 노력 덕분에 마을은 다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공동체 인원들과 작년부터 계속 소문을 내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다시 모이기 시작했고 매주 1~2회 꾸준한 만남을 갖게 되었다.
행사를 하고 남은 재료들은 활용한 소규모 활동을 했고 온라인을 통한 지속적인 연결을 갖고 있다. 이러한 작은 시도들이 이어지며 사람들은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내가 움직이면 사람들이 모여요.”
생기가 넘치는 엄 활동가의 목소리에는 '살리는' 모습에서 비롯된 희망과 소망이 담겨 있었다.

성남시 마을공동체 초록리더창작소 활동 모습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활동하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에피소드를 묻자 엄 활동가는 마을 축제에서의 세대 간 협력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할머니들과 아이들이 같은 옷을 입고 함께 악기를 연주했어요.”
같은 조끼를 입고, 같은 리듬을 맞추며 세대가 하나 되는 순간. 그 장면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마을이 하나 되는 경험’이었다. 이 말을 하는 말소리에는 생기가 넘쳤다.
공동체의 힘, 갈등보다 신뢰
의외로 이 공동체에는 큰 갈등이 없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서로 크게 부딪히는 일이 없어요. 사람들이 대체로 온화하고, 신뢰가 있어요.”
빠르게 밀어붙이는 리더십보다는 천천히 함께 가는 방식. 그래서 더 오래 지속되는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기록이 한 활동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 마을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남기를 바란다.
한 줄 기록
“마을은 사람이 만들고, 관계가 이어갈 때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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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2※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디지털 시대, 공익활동의 새로운 흐름
스마트폰 하나로 은행 업무를 보고, 장을 보고, 심지어 투표 정보를 확인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막상 "우리 동네 가로등이 고장 났을 때 어디에 신고해야 하지?", "내 지역 국회의원에게 의견을 전달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시민들이 자신의 일상과 직결된 문제를 공적 영역에 전달하는 일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높은 문턱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개념이 바로 '시빅테크Civic Tech'다. 시빅테크란 시민의 민주적 참여와 공공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분야를 가리킨다. 단순히 정부가 전자민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과는 다르다. 시빅테크의 핵심은 기술이 '정부의 도구'가 아니라 '시민의 도구'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시민이 먼저 문제를 인식하고, 기술을 통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며, 그 결과로 공공 기관을 움직이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이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역사와 영향력을 가진 단체가 바로 영국의 ‘마이소사이어티mySociety’다. 2003년 설립 이후 20여 년간 영국 시민들이 지역 문제를 신고하고, 국회의원에게 편지를 보내고, 정부 기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일을 기술로 쉽게 만들어온 이 비영리단체의 이야기는, 공익활동 생태계를 키우고자 하는 한국 시민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영국 마이소사이어티(mySociety) 홈페이지 mysociety.org
마이소사이어티의 설립 배경과 철학
마이소사이어티는 영국 기반의 등록 자선단체로, 원래 이름은 'UK Citizens Online Democracy 영국 시민 온라인 민주주의'였다. 1996년 UKCODUK Citizens Online Democracy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 단체는 2003년 마이소사이어티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온라인 기술을 활용해 시민들이 시민 참여의 첫걸음을 내딛도록 돕는 선구적인 비영리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설립자 톰 스타인버그Tom Steinberg는 당시 동거인이었던 제임스 크랩트리James Crabtree와의 협업에서 영감을 받았다. 크랩트리가 온라인 민주주의 저널
마이소사이어티의 비전은 '사람들이 정보를 갖추고, 연결되며, 자신의 공동체와 세상의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공정한 사회'이며, 미션은 '민주적 참여의 장벽을 허무는 디지털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마이소사이어티가 '최소한의 기술'을 철학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화려한 인터페이스보다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단순함을 추구했고, 사용자가 우편번호 하나만 입력해도 자신의 지역 의원이 누구인지, 어느 기관에 신고해야 하는지 바로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기술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임을 처음부터 분명히 한 것이다. 현재 마이소사이어티는 민주주의, 투명성, 기후, 커뮤니티라는 네 가지 실천 영역에서 40개국 이상의 시민들을 돕고 있다.
지역 문제를 지도 위에 올리다 : 픽스마이스트리트(FixMyStreet)
마이소사이어티의 플랫폼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2007년에 시작된 '픽스마이스트리트'다. 이름 그대로 '내 거리를 고쳐라'는 뜻이다. 작동 방식은 간단하다. 시민이 스마트폰이나 웹사이트에서 우편번호나 현 위치를 입력하면 지도가 열린다. 거기서 문제가 있는 지점을 핀으로 표시하고, 파손된 도로, 고장 난 가로등, 방치된 쓰레기 등 문제 유형을 선택한 뒤 사진과 설명을 첨부해 제출하면 끝이다. 시스템은 해당 지점이 어느 지방의회 관할인지 자동으로 판단해 담당 기관에 신고를 전달한다. 시민은 자신이 어느 구청에 전화해야 하는지 알 필요도 없다. 신고 이후 처리 과정도 공개적으로 추적할 수 있어, 같은 문제를 공유하는 주민들이 함께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픽스마이스트리트는 2007년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자신의 주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왔다. 픽스마이스트리트는 2024~2025년 뉴스픽 하우스 정치기술상에서 '시민들이 지역 인프라 문제를 관련 기관에 직접 신고할 수 있게 해주는 시빅 리포팅 도구'로 평가받으며 실시간 공공 참여를 지원하고 투명성을 높이며 일상적인 지역사회 참여를 강화하는 공로로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이 플랫폼의 코드는 오픈소스로 공개되어 있어, 다른 나라의 단체나 개인이 자국 상황에 맞게 변형해 사용할 수 있다. 크로아티아의 NGO GongGrađani organizirano nadgledaju glasanje이 'Popravi.to(고쳐라)'라는 이름으로 자국판 서비스를 만든 것처럼, 현재 픽스마이스트리트 플랫폼은 전 세계 여러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다. 2018년 한 해에만 마이소사이어티의 영국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이 900만 명을 넘었다.

영국 마이소사이어티가 운영하는 공익활동 플랫폼 중 하나인 픽스마이스트리트 fixmystreet.com
권력에게 말 걸기 : 라이트투뎀(WriteToThem)과 왓두데이노(WhatDoTheyKnow)
'픽스마이스트리트'가 지역 환경 문제를 다룬다면, '라이트투뎀'과 '왓두데이노'는 시민과 권력 사이의 소통 방식 자체를 바꾼다.
'라이트투뎀'은 시민이 자신의 우편번호를 입력하면 해당 지역구의 하원의원, 상원의원, 지방의회 의원 등을 자동으로 찾아주고, 그 자리에서 바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수신자의 이메일 주소를 찾을 필요도 없고, 어떤 의원이 자신의 지역을 담당하는지 미리 알 필요도 없다. 라이트투뎀은 영국 전역의 시민들이 우편번호를 입력해 자신의 선출직 대표자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하는 서비스로, 많은 구성원과 많은 대표자 사이의 소통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독보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라이트투뎀' 이용자의 절반 이상은 선출직 대표에게 처음 연락해본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에 참여 경험이 없던 사람들이 이 플랫폼을 통해 처음으로 민주주의에 참여했다는 의미다. 단순히 기존 참여자를 돕는 것을 넘어, 참여의 문턱 자체를 낮춘 것이다.
'왓두데이노'는 영국의 정보공개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에 따라 시민이 공공기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이다. 청구 양식이나 법적 지식 없이도, 원하는 기관을 선택하고 원하는 내용을 입력해 제출하면 된다. 모든 청구 내용과 기관의 답변은 공개적으로 기록되어 누구나 열람할 수 있고, 같은 내용의 청구가 중복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방지된다. 왓두데이노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보공개 청구는 영국 중앙정부에 제출되는 전체 청구의 15~20%를 차지하며, 45,000개 이상의 공공기관이 등록되어 있고 80만 건 이상의 청구가 이 서비스를 통해 이루어졌다.
2023~2024년에는 약 12만 건의 정보공개 청구가 왓두데이노를 통해 제출되었으며, 이는 전년 대비 3% 증가한 수치다. 또한, 라이트투뎀 서비스의 한 활용 사례로, 기후 및 생물다양성 입법을 위한 초당적 지지를 끌어내려는 'Zero Hour' 캠페인이 라이트투뎀 도구를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통합해 지지자들이 각자의 지역 대표자에게 직접 연락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두 플랫폼이 공유하는 공통점은 '출발점은 시민'이라는 원칙이다. 정부가 원하는 방식으로 민원을 접수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방식으로 소통을 시작할 수 있다.
한국 현황과 비교 : 정부 주도와 시민 주도의 차이
한국에도 유사한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신문고와 청와대 국민청원이다. 국민신문고는 행정 민원을 온라인으로 접수하는 정부 운영 시스템으로, 전국 어느 기관에나 민원을 넣을 수 있는 단일 창구로 기능한다. 편의성 측면에서는 큰 진전이었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한계도 드러난다. 답변까지 몇 주에서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많고, 관료적 검토 과정을 거쳐 나온 답변은 형식적 내용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도입된 제도로, 30일 안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에 대해 정부 관계자가 직접 답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시민의 관심을 정치적 의제로 전환하는 힘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연구자들이 지적한 문제점도 있었다. 법적 근거 결여로 인한 폐쇄적 운영, 권력집중 및 권력남용의 통로로 악용, 일부 세력의 다중 투표 등을 통한 여론 왜곡 가능성, 부실한 답변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결국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사실상 폐지되었다.
마이소사이어티의 플랫폼들과 한국의 이러한 시도들 사이에는 구조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의 경우 대부분 '정부가 문을 열면 시민이 들어가는' 방식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폐지된 것이 대표적이다. 플랫폼의 존속 자체가 권력의 결정에 달려 있다. 반면 마이소사이어티의 플랫폼들은 민간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며, 코드를 오픈소스로 공개해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서비스가 지속되고 다른 곳에서 복제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한 픽스마이스트리트는 시민이 문제를 제기하면 자동으로 해당 기관이 통보되는 구조라, 시민이 '어디에 말해야 하는지'를 알 필요가 없다. 반면 국민신문고는 어느 기관에 민원을 넣어야 하는지 시민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차이도 있다.
물론 제도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시민이 출발점인 설계'와 '지속 가능한 독립적 운영'이라는 두 가지 원칙에서 한국의 공익 디지털 생태계가 배울 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
마이소사이어티의 사례는 경기도 공익활동 단체와 활동가들에게도 여러 질문을 던진다.
첫째, 기술은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마이소사이어티의 성공은 복잡한 기술이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는 단순함'에서 비롯됐다. 우편번호 하나, 지도 위의 핀 하나로 시작하는 설계는 IT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한다. 경기도의 31개 시·군에서 다양한 공익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활동들이 시민들에게 어떻게 닿고 있는지, 참여의 첫 문은 얼마나 낮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둘째, 공공 데이터와 오픈소스의 힘을 활용해야 한다. 마이소사이어티는 플랫폼 코드를 공개해 크로아티아, 그리스 등 여러 나라가 자국 버전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경기도의 공익활동 데이터와 자원도 공개적으로 공유될 때 더 큰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아카이브 에디터들이 기록하는 공익활동 콘텐츠가 단순히 홈페이지에 게시되는 것을 넘어 더 넓은 공익 생태계와 연결되는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지속 가능성은 독립성에서 나온다. 마이소사이어티는 보조금과 상업적 서비스를 결합해 재정적 독립성을 유지한다.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의 공익활동 지원 구조에서도 이런 지속 가능성의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된다. 단기 프로젝트 방식의 지원을 넘어 공익활동의 생태계 자체를 키우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넷째, 참여의 기록이 곧 민주주의의 기반이다. 왓두데이노가 80만 건 이상의 정보공개 청구를 공개 기록으로 남겨온 것처럼, 시민의 참여와 목소리가 기록되고 축적될 때 그것은 개인의 행위를 넘어 사회적 자원이 된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아카이브 에디터 활동이 추구하는 바도 같은 맥락에 있다. 기록은 단순한 홍보가 아니라, 공익활동이 사회 속에 뿌리를 내리는 방식이다.
마무리 : 기술보다 중요한 것
마이소사이어티가 20년 넘게 영향력을 유지해온 비결은 기술이 아니다. 물론 플랫폼은 잘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시민은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이 설계에 반영되었다.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시민, 의원에게 편지를 보내는 시민, 동네 도로를 사진으로 찍어 신고하는 시민 — 이 모든 행위가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마이소사이어티는 그 작은 행위들이 모이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데이터로 증명해왔다.
경기도에서 공익활동을 이어가는 단체와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다. 한 편의 기사가, 한 번의 취재가, 한 장의 사진이 혼자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쌓이고 연결될 때 그것은 공익활동 생태계의 토양이 된다. 마이소사이어티의 사례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살아있는 증거 중 하나다.




카드뉴스 제작 6기 아카이브 에디터 남철우(디어)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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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1※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중간지원조직의 역할
현대 사회는 기후 위기, 디지털 격차, 지역사회 해체 및 급격한 고령화 등 기존의 공공 행정 시스템만으로는 온전히 대응하기 어려운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난제들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를 토대로 이뤄지는 공익활동은 사회적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높이는 핵심적인 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는 경기도민과 공익단체들의 활동을 증진하고 지원하기 위해 경기도와 시민사회가 협력하여 설립한 중간지원조직으로서 ‘공익활동으로 연결된 생동하는 경기시민사회’를 구축하는 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활동하고 있는 6기 아카이브 에디터들의 시민 기록 활동은 단순히 공익 활동 현장의 이벤트를 스케치하는 수준을 넘어, 공익활동의 사회적 가치를 가시화하고 데이터화 함으로써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주요한 지적 자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본 글에서는 미국, 영국 및 북유럽의 선진적인 공익활동 지원 모델을 통해 이를 경기도 31개 시·군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전략적 시사점을 도출해 보고자 합니다.

이미지 제작 6기 아카이브 에디터 남철우(디어)
미국 아쇼카의 시스템 체인지 모델
공익활동 패러다임을 단순한 ‘시혜적 복지’에서 ‘사회적 혁신’으로 전환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의 아쇼카Ashoka를 들 수 있습니다. 1980년 빌 드레이튼에 의해 설립된 아쇼카는 ‘Everyone a Changemaker 모두가 체인지메이커’라는 비전 아래, 전 세계적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회적 기업가들을 발굴하여 지원했습니다.
이들의 핵심 전략은 ‘아쇼카 펠로우Ashoka Fellow’ 시스템입니다. 선정된 활동가들에게는 최대 3년간의 활동 지원금Stipend이 제공되는데, 이는 단순한 생활비 보조를 넘어 활동가가 경제적 제약 없이 사회적 난제 해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실질적인 임팩트 투자입니다. 지원금 규모는 선정된 개인의 필요와 지역별 물가 수준을 고려하여 유동적으로 조정되며, 이를 통해 활동가는 시스템 차원의 변화를 끌어내는 데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경기도공익활동센터의 미션인 '활동가의 사회적 가치 실현 지원'이 단기적인 프로젝트성 예산 지원을 넘어, 활동가가 혁신가로서 지속가능하게 성장할 수 있는 장기 인프라 구축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검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경기도 역시 이러한 혁신가 발굴 및 육성 시스템을 하나의 참고 모델로 삼아, 도내 숨은 공익 인재들이 전문적인 사회 혁신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사회적 임팩트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지 제작 6기 아카이브 에디터 남철우(디어)
경계를 넘는 연대와 리더십 : 영국 ‘코먼 퍼포즈’
코먼 퍼포즈Common Purpose는 공익활동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리더십’과 ‘영역 간 연대’에 집중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지원 조직입니다. 이들은 공공기관, 영리 기업, 시민사회라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리더들을 연결하여 지역사회의 복합적인 난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경계를 넘는 리더십Crossing Boundaries Leadership’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코먼 퍼포즈 활동에서 주목할 점은 협력의 모든 과정을 치밀하게 기록하고 공유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모든 서사를 아카이빙하여 대중에 공개합니다. 이러한 기록 방식은 다른 지역 사회나 단체들이 유사한 문제를 겪을 때 시행착오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지식 자산Knowledge Asset’으로 활용됩니다.
이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아카이브 에디터들이 생산하는 콘텐츠가 단순한 기록을 넘어, 공익활동의 지적 토대를 다지는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경기도 31개 시·군이 가진 각기 다른 현안을 고려할 때, 이러한 협력 모델의 아카이빙은 앞으로 주목해볼 만한 과제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제작 6기 아카이브 에디터 남철우(디어)
디지털 아카이빙과 포용적 참여: 북유럽의 오픈 데이터 플랫폼 사례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디지털 기술을 공익활동에 적극적으로 접목하여 포용성과 투명성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스웨덴의 시민 참여형 오픈소스 플랫폼 협동조합인 디지뎀Digidem Lab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공공데이터를 시민사회에 전면 개방하고, 시민들이 직접 공익 정보를 생성하고 공유할 수 있는 오픈 아카이빙 플랫폼을 구축하여 운영합니다.
누구나 차별 없이 정보에 접근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러한 환경은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핵심 가치인 ‘다양성 존중’과 ‘차별 없는 참여’를 기술적으로 뒷받침하는 수단이 됩니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라, 시민들이 실시간으로 공익 이슈를 인지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행동 촉발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에디터가 센터 홍보채널인 홈페이지 공익웹진,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발신하는 정보들은 이러한 디지털 생태계의 혈관과 같은 역할을 수행합니다. 지리적으로 넓고 인구 밀도가 높은 경기도의 특성상 북부와 남부를 유기적으로 잇는 디지털 네트워크와 아카이빙의 강화는 생동하는 시민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지 제작 6기 아카이브 에디터 남철우(디어)
사회적 책임을 기록하는 공익활동의 등대
해외 사례를 통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역할에의 시사점은 크게 세 가지 전략적 축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기록의 전문성과 서사적 가치 부여입니다. 단순한 행사 스케치를 넘어, 공익활동이 창출하는 사회적 임팩트를 정교한 논리와 감동적인 서사로 담아내는 전문적인 아카이빙이 필요합니다. 둘째, 네트워크의 거점화 및 지식 공유의 활성화입니다. 에디터는 도내 활동가들을 연결하는 허브로서, 지역 간의 우수 사례가 선순환될 수 있도록 정보를 유통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합니다. 셋째, 포용적 참여를 이끄는 다각적 콘텐츠 생산입니다. 텍스트 위주의 원고뿐만 아니라 인포그래픽, 카드뉴스 등 도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포맷을 활용하여 공익활동의 문턱을 낮춰야 합니다.
저는 지난 수년간 200회 이상 대외활동에 참여하며 ‘기록되지 않은 활동은 기억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제를 선정한 배경 역시 경기도의 역동적인 공익활동이 해외 선진 시스템을 참고하여 더욱 강력한 사회적 자본으로 축적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6기 아카이브 에디터는 이러한 전략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시민기록자’로서, 경기도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증명하고 기록하는 활동을 해나갈 예정입니다.
결국 공익활동의 본질은 시민이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는 데 있으며, 그 변화의 궤적을 기록하는 행위는 곧 시민사회의 역사를 쓰는 숭고한 일입니다. 해외의 혁신적인 조직들이 증명했듯, 철저한 기록과 투명한 정보 공유는 시민의 신뢰를 구축하고 활동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유일한 길입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와 아카이브 에디터들이 함께 구축해 나가는 공익활동 아카이브는 단순한 기록의 집합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가 될 것입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6기 아카이브 에디터들은 올 한 해 동안 현장의 뜨거운 숨결을 정교하게 기록할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공익활동이 모든 도민의 일상이 되고, 시민의 참여와 지지가 확장되는 생동하는 경기 시민사회를 앞당기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고 문헌
Ashoka Official Website (ashoka.org) - 'Fellowship Selection Process & Stipend'
Common Purpose UK (commonpurpose.org) - 'Crossing Boundaries Leadership'
Digidem Lab Sweden (digidemlab.org) - 'Open Source Participation Platfo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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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1※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2026년 3월 24일 화요일 오후 2시,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4.16생명안전교육원 미래희망관 4층 민주홀을 찾았습니다. 이날 열린 ‘4.16생명안전 웨비나 4차’는 <기후 위기와 재난, 모두의 안전을 묻다>라는 주제로 오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현장과 4.16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안산에서 오랫동안 안전교육 활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이 웨비나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질문 앞에 다시 서는 일이었습니다. 기후 위기가 만들어내는 재난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동네,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되고 있었습니다.

416생명안전교육원에 부착된 안내포스터
기후 위기로 인한 한국 사회의 재난 경험
첫 번째 발표는 녹색전환연구소 황정화 연구원이 맡아주셨습니다. 스크린 가득 펼쳐진 자료에는 충격적인 통계가 담겨 있었습니다. 기상특보 발령 현황을 보면 2010년과 2024년을 비교할 때 경보와 주의보 모두 급격히 증가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폭염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온열 환자 수는 2024년 3,704명에서 2025년 4,460명으로 1년 만에 크게 늘었습니다.
또한 1910년부터 100년간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1.9도 상승했지만, 최근 10년 만에 0.9도 오르면서 기온 상승이 빠르게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제기되었습니다. 2025년 여름 평균 기온은 25.7도, 평균 최고 기온은 30.7도로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한 해로 기록되었습니다.

'기후 위기로 인한 한국 사회의 재난 경험'을 주제로 발제하는 황정화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황정화 연구원은 지금의 재난은 단지 불운이 아니라 기후 변화가 원인이며, 이는 이미 확정적인 사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목표로 해야 할 방향을 이렇게 제시했습니다.
“재난을 운 좋게 피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재난을 당하고도 회복할 수 있는 사회를 목표로 해야 합니다.”
재난 이후 심리 회복과 관계 회복, 두 가지 모두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말도 인상 깊었습니다. 강릉의 산불 피해 사례를 인용하며, 보상과 재기를 이뤄냈어도 마을과 이웃이 사라진 상실감이 회복을 가로막는다는 이야기는 자리에 앉은 모든 이의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연대하고 연결될 수 있다는 경험, 피해자를 수동적인 지원 대상이 아닌 회복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 기후 재난 대응의 핵심 원칙이라는 발표였습니다.
폭염과 재난, 더위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두 번째 발표는 환경정의 활동가 김명철 선생님이 맡아주셨습니다. 기후 위기 당사자들을 직접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발표였습니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온열 질환 추정 사망자 29명 중 70%가 어르신과 장애 당사자였습니다. 신체적, 생물학적 취약성뿐 아니라 경제적 취약성과 주거 취약성이 복합적으로 겹칠수록 피해가 커진다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폭염과 재난, 더위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주제로 발표하는 김명철 환경정의 활동가
발표에서 소개된 사례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실제 삶의 이야기였습니다. 고시원 거주자는 복도에 에어컨이 한 대 있지만 온도 조절 권한은 관리자에게만 있었습니다. 시원한 공기를 쐬려면 방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러면 사생활이 침해되기 때문에 결국 더위에 그대로 노출된 채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발달장애 당사자는 낮에는 지하철에서, 밤에는 공원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이분에게 가장 필요한 대책이 무엇이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옥상 탈출’이었습니다.
동자동 쪽방에 거주하는 어르신은 에어컨도 없이 여름을 버티면서, 공공임대주택 신청 대기 번호가 260번 대였다고 하셨습니다. 2년이 지났어도 겨우 몇 십번 대로 내려갔을 뿐이었습니다. 어르신이 바라는 집은 “욕실이 있는 집”이었습니다. 결코 과한 바람이 아닌데도 현실에서는 너무 멀었습니다.
쪽방촌 주민들의 연간 탄소 발자국은 3.98톤으로 한국인 평균 12.7톤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기후 위기를 만든 책임은 훨씬 작은데, 피해는 훨씬 크게 받는 불균형이 숫자로 드러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에너지 바우처 정책, 무더위 쉼터 정책 등의 한계도 짚었습니다. 지원 제도가 있어도 모르거나, 지원금이 초과될까봐 에어컨을 켜지 않고, 대피소까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은 이용조차 어렵습니다. 또한 관련 정보가 발달장애 당사자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형식으로 전달되어 실질적으로 무용지물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알아보는 '재난 속 지역공동체'
세 번째는 2023년 7월 15일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현장에서 활동해온 김혜란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의 발표였습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극한 호우 속에서 미호강 인근 제방이 무너지며 약 6톤의 강물이 430미터 지하차도로 유입되어 14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당한 참사였습니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발생한 명백한 인재였습니다.
충북도의 지하차도 침수 통제 기준은 50cm, 청주시는 30cm였는데 서울·부산의 10~15cm와 비교하면 매우 느슨한 기준이었습니다. 미호강 폭 확장 계획이 오랫동안 지연되다 급하게 추진되면서 안전을 무시하고 제방 절개가 먼저 이루어진 점도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충북도와 청주시의 재난안전본부가 각자 따로 대응하며 정보 공유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드러났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충북도는 당시 3년 연속 재난안전 평가 우수 기관이었습니다. 형식적인 훈련과 현실 대응 사이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이었습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알아보는 재난 속 지역 공동체 구축 방안'에 대해 발표 중인 김혜란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
참사 4일 만에 충북 시민사회, 노동단체, 진보 정당이 결집해 시민대책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4.16재단이 피해자 권리 교육을 지원했고,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위와도 연대했습니다. 시민 주도의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지역 자원을 총동원해 사고 경위를 밝혔고, 이는 2025년 국회 국정조사로 이어졌습니다. 국정조사 결과보고서에는 재난 대응 체계 전면 개편, 피해자 중심의 회복과 배상이라는 대안이 담겼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록 최고 책임자인 충북도지사는 불기소 처분 상태이며, 충북도의회는 추모 조형물 예산을 삭감하고 ‘혐오 시설’이라는 말로 2차 가해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합동 분향소는 아직도 청주시청 좁은 별관에 머물러 있습니다.
경북 산불로 알아보는 재난 속 시민사회의 역할
마지막으로 4.16재단 부설 재난피해자권리센터의 김서린 활동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2025년 3월 20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무려 10일간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과 경남 산청·하동·울산 등 10개 시군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총 10만 3,879헥타르의 산림이 소실되어 1987년 산불 피해 통계 작성 이래 단일 산불 중 최대 규모로 기록되었습니다. 사망자 31명, 총 이재민 3,509명, 피해액 1조 818억 원으로 2022년 동해안 산불의 4.51배에 달하는 규모였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만 약 366만 톤 이산화탄소 환산량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재난피해자권리센터는 산불 직후 성명을 내고, 피해 실태 조사, 시민사회 간담회, 주민 간담회, 언론 보도 모니터링, 토론회를 체계적으로 이어나갔습니다. 임시 대피소에서 원불교 단체가 식사를 배급하고, ‘덕 프라미스’라는 단체가 비누 받침대를 제공하는 등 국가가 채우지 못한 빈틈을 시민사회가 채우는 모습이 현장 곳곳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안동에서 열린 주민 간담회에는 5개 피해 지역 주민 40명이 모였습니다. 지역별 주민대책위원회는 있었지만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이 자리가 서로를 연결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실태 조사 결과에서는 고령 피해자 지원 체계 미비, 임시 주택의 사생활 침해, 재난 심리 회복 체계 부족, 피해 주민의 권리 보장 부재 등이 핵심 과제로 도출되었습니다.
새로 조성될 마을에 대해 피해 주민들이 바라는 모습을 물었을 때, “에너지 자립 마을”, “공동체가 활발한 마을”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더 나은 공동체를 꿈꾸는 목소리가 남아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경북 산불로 알아보는 재난 속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 발제한 김서린 4.16재단 부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활동가
이날 웨비나에서 네 명의 발표가 가리키는 방향은 모두 하나였습니다. 기후 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오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아프고, 홀로인 사람에게 더 깊이, 더 오래 남습니다. 그래서 재난 앞에 서는 일은 곧 불평등의 문제를 마주하는 일입니다.
4.16 이후 안산에서 안전교육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서 다시 다짐하게 됩니다. 안전은 지식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혼자 아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웃이 안전한지, 내 마을이 괜찮은지, 함께 묻고 함께 행동하는 것이 진짜 안전의 시작이라는 것을 오늘 이 자리가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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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1※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지난 3월 17일 화요일 오후 2시 안산 지역 시민사회, 사회적경제, 문화예술, 마을, 노동, 청년, 장애인, 이주민 단체 등 130개 단체가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마다 활동하는 영역도 다루는 이야기도 달랐지만, 이들이 이날 모인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모두가 안전한 도시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 질문 하나를 붙들고 지난 1년을 준비해 온 안산 시민사회가, 마침내 시민추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범을 선언하는 날이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12년이 흘렀습니다. ‘4.16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고 다짐해 왔던 말들이, 실행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 날인 거죠. 안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AN전도시에SAN다>

시민주진위원회 전체회의 및 출범식 장소 입구 포스터사진

4.16안산시민연대 공동대표 김은호 공동추진위원장 진행모습
전체회의 : 지난 1년의 여정을 돌아보다
출범식에 앞서 먼저 전체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에서는 지난 1년간의 추진 경과와 2026년 주요 활동 계획이 공유됐어요. 회의를 이끈 김은호 4.16안산시민연대 공동대표이자 공동추진위원장은 이렇게 운을 뗐습니다.
“2024년, 우리는 안산을 생명과 안전의 도시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담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생명안전도시 안산 만들기 프로젝트가 작년부터 시작되었고, 지난 1년의 여정은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여덟 번의 포럼이 쌓아올린 공통의 언어
그중 2025년 8월부터 10월까지 총 8회에 진행된 ‘안산생명안전포럼은’ 이 모든 준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1강 ‘위험사회의 이해와 시민의 안전한 권리’로 시작한 포럼은 2강에서 안전권이 헌법과 국제 인권 규범에 근거한 사회적·국가적 책임임을 짚었고, 3강에서는 광주 5·18 사례를 통해 회복적 도시 모델의 가능성을 탐색했습니다. “기억은 과거를 묻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반복되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광주가 인권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약속을 제도와 문화로 확장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4강은 경주 지진 사례를 통해 ‘마을이 곧 매뉴얼’이라는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재난 발생 후 가장 중요한 것은 훌륭한 매뉴얼이 아니라 서로의 얼굴을 아는 관계다.”
5강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시 재난·안전 분야 실태 연구 용역 결과가 발표되었죠. 결론은 냉정했습니다. “안산시는 생명안전도시를 만들어갈 충분한 역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세권 중심의 고밀도 복합 개발에 집중하면서 생명과 안전이 외면되고 있다.”
6강에서는 거버넌스 전략을 논했습니다. “작더라도 시민이 직접 정책을 이야기하는 경험을 쌓으면, 그것이 행정의 방향을 바꾼다.” 7강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 시민사회 활동에 대한 성찰적 진단이었어요. 우리는 쉽게 연결되어 있지만, 뭘 할 수 있는 힘은 약해졌다는 뼈아픈 자기 점검이었죠.
그리고 마지막 재난과 안전에 관한 지역사회 커뮤니티의 역할을 다룬 8강까지, 총 여덟 번에 걸친 포럼은 안산 시민들의 공통 언어를 만들어냈어요. 그것은 바로 안전은 특정 사고에 대응하는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조건이라는 것,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와 도시의 책임이라는 것, 그리고 시민 참여 없이 지속가능한 안전 정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홉 번의 워크숍이 연결한 다양한 목소리
포럼 다음에는 전체 비전 수립 워크숍 2회, 노동·마을·이주민·여성·청년·청소년·장애인 7개 부문 워크숍을 합해 총 9회 워크숍이 이어졌고, 150여 명이 참여해 각자의 경험으로 도시 안전을 이야기했어요. 포럼이 공통의 언어를 만드는 자리였다면, 워크숍은 그 언어를 각 부문의 현장으로 가져간 과정이었습니다. "나의 안전이 도시의 안전"이라는 인식이 확장되고, 서로 다른 부문의 주체들이 연결되면서 비로소 이번 출범이 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여기에 지역 23곳, 30회에 걸친 '찾아가는 사업 설명회'를 통해 100명 이상의 활동가들이 공감대를 함께 형성한 것도 빼놓을 수 없어요. 이 모든 과정이 쌓여, 130개 단체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죠.

지난 1월 30일 열린 2차 워크숍 현장사진
정식 출범 : 다른 목소리, 하나의 결론
이번 출범식에서 가장 핵심적인 순서는 ‘안전약자 릴레이 발언’이었어요. 청년,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를 대표하는 네 명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 자신이 살아온 현장의 이야기를 꺼내놓았습니다.
가장 먼저 청년 대표로 나선 영화감독 김윤정 씨가 2014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처음 광장에 나섰던 기억을 꺼내 놓았어요. 당시 친구를 잃은 많은 또래들이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25시 광장’에 모였고, 그 역시 처음 그곳에서 목소리를 냈다고 했습니다. 스물여섯이 됐을 때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고, 스물여덟이 됐을 때는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가 일어났어요.
“왜 우리는 삶의 시간을 지나올 때마다 또 하나의 참사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는 걸까요. 참사는 한순간에 일어나지만, 그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불안은 우리의 일상 속에 계속 존재합니다. 안전은 구조입니다. 누구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위험을 말할 수 있는지, 책임지는 시스템이 있는지 그 구조가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안전해질 수 있습니다.”
안산나무를심는장애인야학 교장 김선영 씨는 장애인의 일상에서 안전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구체적으로 전했습니다. 저상버스가 언제 올지 몰라 불안과 초조함으로 기다리는 시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집 밖을 나올 수도,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 재난 매뉴얼 속에 장애인은 빠져 있는 현실까지. 청각장애인은 대피 안내 방송을 들을 수 없고, 시각장애인은 누군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화재나 붕괴 사고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어요.
“장애인 안전은 복지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입니다. 사고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문제입니다.”

청년,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 대표 4인의 ‘안전약자 릴레이 발언’
와이즈우멘협회 대표 도르카스 씨는 이주민의 목소리를 전해주었어요. 안산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지역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위험한 노동 환경과 정보 비대칭으로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생명과 안전은 국적을 넘어 모든 사람의 권리입니다. 위기 상황이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모든 이주민이 차별 없이 예방, 지원, 구조, 보상 체계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안산지회장 황순화 씨는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의 현실을 전했습니다. 2025년 3월 기준, 185명이 결원인 상황에서 만성적인 인력 부족은 학교 급식 노동 현장에서 산재 사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기도교육청 조사에 따르면 검진 대상 중 폐결절 등 이상 소견을 보인 급식실 노동자는 3,981명에 달했고, 폐암으로 15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200여 명이 폐암 의심 진단을 받았다고 해요.
“노동자가 아프고 떠나는 급식실에서 안전한 급식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안전은 사고가 난 뒤에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라 사고가 나기 전에 지켜야 할 권리입니다.”
네 사람의 상황과 이야기는 각자 달랐지만 결론은 하나로 모였어요. 안전은 개인이 알아서 챙겨야 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지자체가 구조적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라는 것. 그리고 그 구조를 바꾸는 힘은 바로 시민의 참여에서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출범 선언문 : 함께 외친 세 마디

공동선언문 읽는 모습
이어서 출범 선언문 낭독이 이어졌어요. 공동추진위원장들이 함께 단상에 올라 선언문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됐어요.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묻습니다. 생명과 안전은 이 사회에서 어디에 놓여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그 질문 앞에서 다짐했습니다. ‘4.16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적 재난과 일상의 위험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기억은 남아 있지만 변화는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선언문의 핵심 다짐은 세 가지였습니다. ▲ 생명과 안전을 도시 운영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세우겠다 ▲ 위험이 집중되는 사람들의 삶을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겠다, ▲ 시민의 참여가 도시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도록 하겠다.
선언문 낭독이 끝나자 회의장은 한 목소리로 물들었습니다. "함께 만드는 변화, 모두가 안전한 도시, AN전도시에 SAN다!" 박수와 함께 울려 퍼진 세 마디차 출범식의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2026 활동 계획 : 기억이 정책이 될 때까지
시민추진위원회가 올해 추진하는 활동은 크게 네 단계로 구성됩니다.
첫째, 시민 공론 형성이에요. 가장 먼저 3월 17일부터 4월 5일까지 ‘생명안전도시 안산 시민 설문조사’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는데, 목표는 안산 시민 1,000명 이상입니다. 전체 회의에서 위성태 사무국장은 “130개 단체가 각각 10명씩만 조직해도 1,300명이 됩니다. 천 명, 2천 명, 만 명까지 한번 우리의 실력대로 해봅시다.”라고 독려했고, 현장에서 웃음과 박수가 터졌습니다.
4월 11일에는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아 안산문화광장에서 '304개의 노란 테이블' 시민 대토론회가 열립니다. 304는 희생자의 수이자, 시민 1,000명이 직접 둘러앉아 정책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테이블의 수이기도 합니다.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시민이 직접 논의하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입니다.
둘째, 시민 참여 확대예요. 5월 한 달간 온·오프라인 캠페인을 벌이고, 5월 9일 오후 3시에는 안산문화광장에서 생명·안전 시민대행진 ‘노란 빛 동행’이 펼쳐질 예정이라고 해요. 시민들과 함께 거리로 나가 안산의 안전을 우리 사회 전체의 의제로 만드는 자리기도 합니다.
셋째, 정책·제도 변화 추진입니다. 시민 공론의 결과를 생명 안전 정책 요구안으로 정리해 6·3 지방선거 출마 후보와 정당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전체 회의에서 정책 협약 무용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시민추진위원회 측은 “약속해놓고 당선되면 아무것도 안 지키더라는 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행을 관철하기 위한 후속 액션까지 철저하게 준비하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넷째, 시민 참여 거버넌스 구축입니다. 올해 하반기 8월부터 11월까지 시민 참여 안전 모니터링 활동을 진행하는데요, 교육 4회와 워크숍 1회로 역량을 키운 뒤, 법·조례·위원회·현장을 시믿늘이 직접 점검하고 모니터링합니다. “모니터링 → 시민공론 → 정책 요구 → 캠페인”의 선순환 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시민추진위원회의 주요활동 방향을 논의하는 공동추진위원장 14인

시민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준비 되었던 활동안내 자료
맺음말 : 현장을 기록하며
이날 전체회의에서 나온 한 마디가 오래 머릿 속을 맴돌았습니다. “우리는 쉽게 연결되어 있지만, 뭘 할 수 있는 힘은 약해졌다.” 130개 단체가 모였음에도, 연결이 실행의 힘으로 전환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솔직한 성찰이었습니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 12주기이자, 안산시 승격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거기에 6·3 지방선거까지 맞물린 해이기도 하지요. “역사적인 도시 전환의 분기점이 돼야 한다”는 말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안산은 세월호 참사의 가장 큰 피해를 경험한 도시입니다. 그 아픔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도시의 정책과 구조를 실제로 바꾸어 내는 것, 그것이 시민추진위원회 스스로가 부여한 역할입니다. 취재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면서, 안산의 이번 실험이 경기도, 나아가 대한민국의 다른 도시에서도 롤모델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워크숍 참가자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안산에서 진짜 안전한 도시, 생명의 도시가 탄생한다면, 아마 세계적인 롤모델이 되지 않을까요.” 기억이 정책이 되고, 정책이 일상이 되는 날을 향한 안산 130개 단체의 발걸음이 시작됐습니다.

<AN전도시에SAN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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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1※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요즘처럼 마음까지 차가워지는 날에는, 이상하게도 오래 머무는 이야기 하나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일명 ‘왕사남’으로 불리는 이 작품이 저에겐 그런 영화였습니다. 처음에는 역사 속 왕의 이야기쯤으로 생각했는데, 보고 나니 마음에 오래 남는 건 왕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권력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단순히 이야기가 재미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매년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에 ‘공익이란 무엇일까’, ‘공공성이란 어디에서 시작될까.’ 묻게 됩니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결국 이런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약한 사람의 존엄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
영화 속에서 공익은 거창한 말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장면들 속에 숨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는 마음, 규정만 들이밀지 않고 함께 방법을 찾아보려는 노력. 이런 것들이 쌓여서 공공성이 되고, 그 공공성이 공동체를 지탱한다는 걸 영화는 조용히 보여줍니다.
공익이란, 약한 사람 곁에 머무는 일
정태식 경북대 인문학술원 교수의 말처럼, 타인의 존엄을 지키는 책임이야말로 공익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공익’이라는 말은 보통 법이나 제도, 행정 같은 단어와 함께 떠오르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실 공익은 그보다 더 앞서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 약한 이의 말을 귀찮아하지 않고 끝까지 듣는 자세, 이해하지 못해도 다시 설명해 주는 마음. 이런 것들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금세 차가워집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특히 마음에 남는 건, 힘을 잃은 존재를 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왕이라는 이름을 가졌어도 실제로는 가장 약한 자리에 놓인 사람. 그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외면할 수도 있고, 그저 예를 갖춘 채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함께 밥을 먹고, 말을 건네고, 곁을 지키는 일.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힘이라는 걸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공익도 결국 그런 것 같습니다. 법과 직책만으로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설명하고, 설득하고, 책임을 나누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살아 움직입니다. 현장에서 민원을 응대하는 사람, 아이를 돌보는 교사, 환자를 살피는 의료진, 어르신의 손을 잡아 주는 복지 현장 종사자들. 이분들이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 갈 때 공공성은 비로소 숨을 쉽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에는 늘 현실적인 조건이 따라붙습니다.
인력이 부족하면 누군가의 사정을 끝까지 듣기 어렵고,
예산이 부족하면 필요한 도움을 지속하기 어렵고,
연대가 약하면 결국 모두가 지쳐버립니다.
그래서 공익은 이상만으로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하고,
서로를 지켜 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셋이 함께할 때만 공동체는 약한 사람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공익은 멀리 있는 거대한 개념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만드는 아주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 작은 행동은 대부분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는 것 말입니다.
“괜찮으세요?”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제가 다시 설명해드릴게요.”
“혼자 두지 않을게요.”
이런 말들이야말로 사람을 살립니다. 때로는 히터보다 더 따뜻하고, 난방보다 더 깊게 마음을 녹입니다. 몸은 금세 추위를 느끼지만, 마음은 말 한마디에 오랫동안 온기를 기억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서 공익이라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공익이라는 말을 들으면 제도, 정책, 행정, 복지 같은 단어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물론 그런 것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먼저 사람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어떤 표정으로 말을 건네는지, 어떤 마음으로 기다려 주는지, 어떤 태도로 약한 사람을 대하는지. 공공성은 결국 그런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말 한마디가 히터보다 따뜻하다
특히 이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었다는 사실은 더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한동안 한국 영화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왕과 사는 남자」는 다시 한번 사람들의 마음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단순히 숫자의 성공이 아니라, 한국 영화가 다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준 작품 같아서 반가웠습니다. 재미만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고, 스쳐 지나가는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그런 영화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다는 건 참 고마운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래 ‘강한 사람’의 이야기만 보아 왔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왕과 사는 남자>는 약한 사람 곁에 머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마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공익은 결국 강한 사람이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 덜 외로워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걸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단지 좋은 사극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추운 시대에 사람의 온기를 다시 떠올리게 해 준 영화였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말들을 듣고, 또 너무 많은 말을 하며 지냅니다. 그중에서 정말 오래 남는 말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말은 이상하게도 오래 남습니다. 내 편이 되어 주는 말, 내 처지를 알아주는 말,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말.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선명하게 남은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말 한마디가 히터보다 따뜻하다” - 유튜브 <내 이름은 춘복이> 쇼츠에서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공익과 공공성의 본질을 아주 잘 담고 있는 말 같습니다. 공동체는 결국 말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상처받고,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니 공공성은 제도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따뜻한 말과 행동 속에서 완성된다고 믿게 됩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그걸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보여 준 작품이었습니다. 역사의 비극을 다루면서도 끝내 사람의 온도를 잃지 않았고, 권력의 이야기 같지만 결국은 존엄의 이야기였으며, 멀리 있는 공익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 옆 사람의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아마 그래서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보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다시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때 한 번 더 조심하게 되는 영화. 그런 영화가 천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은 참 반갑고, 또 희망적입니다.
한국 영화가 힘든 시기를 지나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준 작품, 그리고 우리에게 “사람을 살리는 건 결국 따뜻한 말과 마음”이라는 사실을 다시 알려 준 작품. 저에게 <왕과 사는 남자>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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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미래를 내버려 두지 말자"
기술과 데이터,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요즘처럼 AI라는 단어가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시대에, 공익활동 현장도 이제 더 이상 기술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공익활동이라고 하면 사람을 만나고, 손을 잡고, 현장을 뛰어다니는 일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그 현장을 어떻게 기록하고, 어떤 데이터를 남기고, 그 데이터를 통해 어떻게 다시 사람을 위한 변화로 연결할 것인가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익활동이 갑자기 기술 중심의 세계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기술과 데이터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점에서 지난 3월 24일,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포럼은 참 의미 있는 자리였습니다. 임팩트얼라이언스, 계단뿌셔클럽, 녹색전환연구소 등 각계 활동가들이 모여, 기술과 데이터를 공익활동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 약 3시간 동안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큰 메시지였습니다.
포럼의 제목이기도 했던 “미래를 내버려 두지 말자”는 말은, 단순히 기술을 빨리 배우자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공익활동 현장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누가 서 있어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공익활동은 늘 그렇듯, 가장 먼저 현실을 마주합니다. 사람들의 삶이 달라지고, 사회문제가 복잡해지고, 기존의 방식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쌓여 가는 자리에 늘 공익활동 현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포럼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기술 이야기를 하면서도 결국 사람 이야기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24일,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미래를 내버려 두지 않는 법 : 기술·데이터 활용 공익활동의 방향과 사례' 포럼
건강한 데이터를 만드는 조건은 ‘시민성’
기조 발제를 맡은 임팩트얼라이언스의 박정웅 팀장은 AI가 학습하는 텍스트의 기반이 점점 고갈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데이터는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 AI가 학습할 수 있는 충분하고도 건강한 데이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뜻입니다. 특히 한국어 데이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앞으로 공익활동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데이터의 가치가 훨씬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이 말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공익활동 현장은 마냥 ‘좋은 일’을 하는 곳으로만 비치기 쉽지만, 사실은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고 새로운 증거를 쌓아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목소리, 변화의 과정, 실패와 시행착오, 반복되는 문제와 해결의 흔적들이 모두 데이터가 됩니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나중에 정책을 바꾸고, 제도를 개선하고, 더 나은 공공서비스를 만드는 근거가 됩니다. 즉, 공익활동은 단순한 실천을 넘어,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록의 장이기도 한 셈입니다.
박정웅 팀장이 강조한 또 하나의 메시지는 건강한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소수의 뛰어난 개인이 아니라 ‘시민성’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이 말이 참 마음에 남았습니다. 데이터를 잘 다루는 몇몇 전문가만으로는 공익활동의 세계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현장에 있는 많은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각자의 경험을 나누고, 서로 다른 시선을 모을 때 더 건강한 데이터가 만들어집니다.
공익활동의 데이터는 어디선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경험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데이터가 숫자만이 아니라 삶을 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삶을 바탕으로 기술이 작동할 때 비로소 공익적 의미가 생깁니다.
AI, 기술 아닌 언어로 받아들이자
이날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부분 중 하나는 AI를 바라보는 관점이었습니다. 보통 우리는 AI를 떠올리면 ‘기술을 잘해야 한다’, ‘남보다 더 빨리 익혀야 한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부터 느끼기 쉽습니다. 그런데 박정웅 팀장은 AI를 기술(skill)로만 보지 말고 언어로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표현이 참 좋았습니다. 기술로만 보면 늘 경쟁이 생기고,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으로 나뉘기 쉽습니다. 하지만 언어로 생각하면 조금 다릅니다. 언어는 배우고 익히고 자주 쓰면서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누구나 서툴 수 있고, 누구나 배워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AI는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라, 공익활동 현장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새로운 언어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말은 “우리는 AI를 잘하는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고, 전문가와 현장 사이를 원활하게 이어줄 통역사가 되는 것이 핵심”이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이 말은 공익활동의 본질과도 닿아 있습니다. 공익활동은 늘 사람과 사람 사이, 제도와 현장 사이, 말과 삶 사이를 연결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AI 시대의 공익활동가에게 필요한 것도 결국 기술 자체를 뽐내는 일이 아니라, 그 기술이 현장에 어떻게 번역되고 적용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능력일 것입니다. 기술은 어렵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언어로 바꿔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살아 움직입니다.
박정웅 팀장은 또 데이터와 기술 활용의 핵심은 결국 ‘증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분도 매우 현실적이었습니다. 공익활동은 많은 경우 좋은 의도와 열정으로 시작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왜 이 문제가 중요한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어떤 지원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익활동 현장에서의 데이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변화의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숫자를 보면 움직이고, 사례를 보면 이해하며, 근거를 보면 설득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일과 그 결과를 텍스트로 남기고, 데이터로 정리하고, 필요하면 공공과 민간이 함께 데이터셋을 구축하는 일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은 결국 상향 평준화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차이는 어디에서 생길까요? 바로 어떤 현장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생성하고, 개방하고, 축적하느냐에서 차이가 생긴다는 말이 깊게 남았습니다.

공익활동 현장에서 기술·데이터 활용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결국 사람과 현장에 답이 있다
이어진 사례 발표에서는 실제 현장에서 기술과 데이터가 어떻게 사람과 연결되는지 더 생생하게 다뤄졌습니다. 먼저 ‘계단뿌셔클럽’의 박수빈 대표는 이동약자의 이동권 문제를 시민 참여형 데이터 수집으로 풀어가는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사실 이동권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이지만,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계단 하나, 턱 하나, 경사로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큰 장벽이 됩니다. 이런 문제를 시민이 직접 기록하고, 함께 공유하고, 해결 방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매우 뜻깊습니다. 단순히 데이터를 모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참여자들이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아닌 “함께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갖도록 커뮤니티를 설계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말은 결국 공익활동의 핵심이 참여자들의 세계를 넓히는 데 있다는 뜻처럼 들렸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던 일에 참여하면, 그 순간 나의 세계도 함께 넓어집니다. 공익활동은 바로 그런 확장의 경험을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녹색전환연구소의 고이지선 팀장이 소개한 ‘1.5℃ 계산기’ 역시 기억에 남았습니다. 개인의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시민들의 일상과 탄소 문제를 연결해 보여주는 도구라는 점에서 굉장히 직관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녹색전환연구소가 원래 기술이나 데이터에 익숙한 조직이 아니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데이터가 부족한데 가능할까 고민했지만, 해보니 되더라는 말은 많은 공익활동가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을 것 같습니다. 기술에 겁먹지 말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공익활동 전반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결국 도구는 도구일 뿐입니다. 중요한 건 그 도구를 통해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하는 질문입니다.
질의응답에서 나온 “사람과 현장에 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AI를 쓴다”는 말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AI를 쓰는 이유가 편리함 그 자체가 아니라, 결국 사람을 만나고 현장에 머무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공익활동의 진짜 변화는 늘 현장에서 시작됩니다. 책상 앞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같이 고민하고, 함께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생깁니다. 그렇다면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업무를 AI로 줄이고, 그 시간만큼 사람을 더 만나고 현장을 더 깊게 보는 것은 오히려 공익활동의 본질에 가까운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기술·데이터 활용한 공익활동으로 소개된 '녹색전환연구소' 사례
기술과 데이터가 공익활동이 만날 때
이번 포럼이 특별했던 이유는, AI가 공익활동의 위기라는 식의 비관으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기술과 데이터가 공익활동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다는 점을 함께 확인한 자리였습니다. 물론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잘못 쓰이면 사람을 더 배제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방향으로 쓰느냐입니다. 그리고 그 방향을 정하는 것은 결국 현장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현장을 아는 사람, 사람의 사정을 아는 사람, 제도와 삶 사이의 간격을 경험해 본 사람들만이 기술을 공익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공익에서 기술과 데이터 활용은 결코 기술 만능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각기 다른 상황과 조건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계단 하나가 장애가 되고, 어떤 사람은 긴 설명이 필요하고, 어떤 사람은 숫자보다 먼저 마음의 안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공익활동에서 기술과 데이터는 사람을 다 같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 다른 조건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도구여야 합니다. 그 이해가 있을 때 비로소 데이터는 살아 있고, 기술은 따뜻하며, 공익활동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AI 시대에 공익활동 현장이 고민해야 할 것은 단순합니다. 기술을 얼마나 빨리 배우느냐보다, 그 기술을 통해 누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가.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쌓느냐보다, 그 데이터가 누구의 삶을 바꾸는 근거가 되는가. 그리고 AI를 얼마나 잘 쓰느냐보다, 그 시간과 에너지를 사람과 현장에 얼마나 더 쓸 수 있게 되느냐. 그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는 현장이야말로, AI 시대에도 가장 인간적인 공익활동 현장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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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부천 보육교사의 비극과 ‘쉴 권리’
젊은 20대 돌봄 노동자는 독감 확진 후에도 출근했다. 그리고 사망했다. 경기도 부천, 한 사립유치원 교사에게 벌어진 일이다. 그는 1월 27일 B형 독감 확진을 받고도 사흘간 근무한 후 1월 30일 오후 조퇴했다. 그 후 31일에 입원한 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2월 14일에 20대 돌봄 노동자는 사망했다. 사인은 B형 독감으로 인한 연쇄 구균 독성쇼크 증후군과 패혈성 쇼크로 알려졌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황당하고 원망스럽다. 밥 먹고 살려고 일하는 건데, 아픈 몸을 제때 돌보지 못하고 출근해야 하는 상황은 모순적이다. 일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걸까? 인간은 목적 그 자체여야 한다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파본 노동자라면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회사 업무에 차질이 생길 때, 회사에 눈치가 보였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출근을 못 한 만큼 소득이 감소할 것이라는 걱정, 나를 대신해 업무를 떠맡을 동료에 대한 미안함, 해고라는 두려움. 이 셋 중 하나 이상을 경험한다.
병가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의무 사항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업무와 관련없는 질병이나 부상은 무급으로 허용되나, 회사 규정에 따라 유급으로 처리할 수도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소득 감소에 따른 생계유지 어려움을 예상해 아픈 몸을 일으켜 회사로 출근한다. 카드값과 월세, 자녀 학원비, 부모 요양비 등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술이나 입원 등으로 출근조차 하지 못하면 소득 감소로 인한 타격은 고스란히 노동자 개인의 몫이 된다. 비상금 대출을 알아보거나 지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아프면 쉴 권리 보장 3법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5년 9월, 49개 시민사회노동단체가 모여 아프면 쉴 권리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을 출범했다. 공동행동의 주된 목적은 제대로 된 상병수당 제도화의 실현이다. 공동행동은 2024년 7월, 이수진 의원(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아프면 쉴 권리 보장 3법' 발의 기자회견을 했는데, 3법이라고 하면 「국민건강보험법」,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개정을 의미한다.
개정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건강보험 가입자나 피부양자가 질병 또는 부상으로 소득에 손실이 있는 경우 상병급여를 지급하고, 지급액을 최저임금 이상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상병급여(또는 상병수당)란 업무 외 질병·부상으로 일을 못 할 때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2022년부터 시범 사업을 운영하였으며 2025년 하반기부터 정식으로 도입될 예정이었으나 2027년으로 연기되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질병휴가를 연간 60일 범위에서 유급으로 보장하고, 평균임금 해당 금액을 지급하도록 하되 국가가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근로자에게 질병휴가급여를 직접 지원하여 사용자의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국제노동기구(ILO)는 '사회보장 최저기준에 관한 조약'을 통해 유급질병휴가를 법률로 보장하도록 각 국가에 권고해왔으나 우리나라는 이를 보편적 공적 제도로 도입하지 않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은 업무상 재해 인정과 산재 요양급여 결정하기 전에 「국민건강보험법」상 상병급여를 노동자에게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산재 요양급여 결정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아프면 쉴 권리 보장 3법’은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노동자가 소득 감소라는 생계 위협을 겪지 않을 수 있도록 보호한다. 개정안을 읽으면서 필자에겐, “아프면 걱정하지 말고 쉬어라. 소득을 유지할 수 있게 하겠다.”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이수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2024년 11월 14일 상임위원회에 처음 법안이 소개되었고 소위원회로 넘어갔으나, 2026년 현재까지 계류 중이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쉬겠다” 말할 수 있는 환경부터 보장돼야
공동행동 출범식에서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이 “우선 쉬겠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1고 말한 것처럼, ‘아프면 쉴 권리’는 월급 보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유급병가나 유급휴가가 있더라도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 인력이 없어, 나의 휴식이 곧 동료의 독박 노동으로 이어지는 환경에 놓인 노동자들이다. 인력 공백을 개별 노동자의 희생으로 메우는 구조는 노동자를 제때 쉴 수 없게 한다. 내가 휴식을 가질 때, 내 업무로 인해 옆자리 동료가 야근해야 하는 상황인 게 눈앞에 뻔히 펼쳐진다면 무리해서라도 출근하게 된다. 동료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전라북도 보육교사 근로환경 실태 및 지원방안 연구」(2018)2에 따르면 어린이집 내 휴가 사용에 대한 분위기는 자유롭지 않으며(63.9%) 그 이유로는 '동료가 힘들어진다'(34.9%)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이미 1인분의 업무를 하고 있는 동료에게 전가할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만약 모든 직원이 평소 70~90%의 업무량만 맡는다면 어떨까? 소프트웨어 개발과 프로젝트 매니저로 20년 넘는 경력을 가진 톰 디마르코는 그의 저서『SLACK』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100% 가동률을 목표로 하는 조직은 역설적으로 가장 비효율적인 조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직원이 1인분의 업무량을 갖고 있다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을 때 시스템이 마비되거나 동료들의 과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조직이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남은 자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돌봄 종사자는, 자신의 업무 공백으로 인해 동료뿐만 아니라 돌봄의 대상 또한 희생될 처지에 놓인다. 「경상남도 사회서비스 종사자 처우개선 연구Ⅱ-돌봄노동자를 중심으로」(2020)3를 살펴보면, 연차유급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기관 이용자들에 대한 서비스 공백에 대한 우려’(28.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보육교사 역시 “보육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15일간의 유급휴가를 여름과 방학기간에 몰아 쓸 수 있을 뿐 개인의 사정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려운 구조”가 견고하다는 것을 알 수있다.
이러한 노동 환경에서 노동자는 아프면 안 된다. 상상해 보자.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온몸이 아프다. 출근은커녕 몸도 일으키기 어렵다. 당신은 직장 상사에게 뭐라고 말할 것인가? “안녕하세요. 부장님. 제가 몸이 너무 아파서요. 죄송하지만 오늘 출근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다. 아픈 것은 잘못이 된다.
질병이나 부상이 있는 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비단 노동 환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쉽게 아픈 몸을 지워버린다. 건강하고 효율적인 몸만을 기본값으로 여기며, 그렇지 않을 때는 개인 관리의 부족으로 떠넘긴다. 건강은 선이고, 질병이나 부상은 악이 된다. 그러나, 질병은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노동 현장이 질병을 포용하기 위해선 사회가 먼저 질병이 있는 몸도 시민으로 인정하고 사회 정책과 제도를 수립하여야 한다. 그리하였을 때, 노동 현장에서도 안 아픈 상태로 복귀할 때까지만 유예해 주는 방식이 아닌 아픈 몸을 가친 채로도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B형 독감 판정 후에, 20대 교사가 부담 없이 원장과 동료에게 “독감에 걸렸습니다. 병가를 내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원장과 동료는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고 오세요”는 진심 어린 걱정과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지 않기를 소망한다.
1 “‘아프면 쉴 권리 공동행동’ 출범... 상병수당 제도화 촉구”, <오마이뉴스>, 2025.09.10.,
2 이주연, 「전라북도 보육교사 근로환경 실태 및 지원방안 연구」, 정책연구 2018-11, 전북연구원, 2018, 여성정책연구소, 158쪽
3 임채영, 염동문, 박해긍, 「경상남도 사회서비스 종사자 처우개선 연구∥-돌봄노동자 중심으로」, 연구보고서 2020-2, 경상남도사회서비스원,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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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두루미와 함께 머문 겨울, 공존을 배우는 시간
올겨울 저는 연천 왕징면 북삼리에 있는 나룻배마을을 찾았습니다. 두루미가 머문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시간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연천의 겨울 논은 조용했습니다. 수확이 끝난 들판에는 사람의 발길도 드물고,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만 길게 남았습니다. 비어 있는 풍경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에 어느 순간 흰 점들이 하나둘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두루미였습니다. 멀리서 보면 정지한 풍경처럼 보이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다른 움직임이 보입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고, 천천히 발을 옮기고, 서로 간격을 유지한 채 논 위를 걷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람도 저절로 속도를 늦추게 됩니다.
처음에는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싶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더 선명하게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누가 막은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그 자리에서 멈춰 서게 됐습니다. 두루미가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피는 순간, 사람도 함께 숨을 죽이게 됩니다. 아무도 “가까이 가지 마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 공간에는 이미 지켜야 할 거리와 태도가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두루미를 보는 일이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생태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더 가까이 보는 일이 아니라, 그 존재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머무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두루미는 사람의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소리, 빠른 걸음, 가까이 다가오는 발걸음 하나에도 날아오르거나 자리를 옮기고는 합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두루미들은 연천을 더 이상 안전한 장소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의 행동은 단순한 예절을 넘어 서식 환경을 지키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두루미 축제가 열리는 경기도 연천 나룻배마을
지역의 생태를 보존한다는 것의 의미
연천 나룻배마을에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약 4개월 동안 두루미가 머물렀고, 올해는 약 1,000마리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 시기 동안 약 2,000명의 방문객도 이곳을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풍경은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관광지의 모습과는 조금 다릅니다. 사람들은 두루미를 ‘보러 온다’기보다, 조용히 기다리고 같은 공간 안에 잠시 머뭅니다. 누군가는 카메라를 들고 한참을 서 있고, 누군가는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없이 논을 바라봅니다. 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바람 소리와 두루미가 날아오를 때 스치는 깃털 소리만 공간을 채웁니다.
이 풍경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두루미가 머물 수 있도록 논을 관리하고, 먹이를 준비하고, 사람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도록 살피는 손길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사는 아니지만, 이런 보이지 않는 돌봄이 생태 현장의 질서를 만듭니다. 성과를 내세우기 위한 일이라기보다, 잠시 이곳을 지나는 생명이 안전하게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 두는 일에 가깝습니다.
이 지점에서 두루미가 머무는 겨울 논은 단순한 자연 풍경을 넘어섭니다. 이곳은 사람과 야생이 어떤 거리를 두고 함께 존재할 수 있는지 묻는 현장이 됩니다. 우리는 자연을 흔히 더 가까이 보고, 더 많이 기록하고, 더 선명하게 남기는 대상으로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오히려 덜 다가가는 태도, 오래 기다리는 태도, 조용히 물러서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보는 방식이 달라질 때 관계도 달라진다는 것을 이 겨울 논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생물다양성은 거창한 말처럼 들릴 때가 많지만, 현장에서는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생명이 이곳을 안전하다고 느끼고 다시 찾아오는가, 그 조건을 사람이 얼마나 해치지 않고 지켜낼 수 있는가의 문제처럼 보입니다. 두루미가 아무 곳에나 내려앉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마을이 아직 자연과 연결된 조건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그 조건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냅니다. 지역의 생태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용 방식과 태도 속에서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DMZ 접경지에서 겨울 철새 두루미를 만날 수 있다
두루미가 인간에게 남기고 간 질문
그래서 이곳에서의 경험은 두루미를 가까이서 본 기억보다, 조용히 기다렸던 시간으로 더 오래 남습니다. 조금 물러서 있었던 거리, 서로를 의식하며 조심했던 태도, 무엇인가를 하기보다 함부로 하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감각이 기억에 남습니다. 자연을 ‘이용하는 법’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던 셈입니다.
내년에는 평일 방문도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더 많은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라기보다, 이곳의 시간을 조금 더 천천히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향이라고 합니다. 방문객 수는 약 5,000명 정도 예상한다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이곳을 어떤 태도로 만나고 돌아가느냐일 것입니다. 많이 보는 것보다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끝나면 두루미는 떠나고 마을은 다시 조용해집니다. 하지만 이곳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에게 나룻배마을은 이전과 같은 장소로 남지 않습니다. 두루미가 머물다 간 자리에는 질문이 남기 때문입니다.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줄여야 할까. 생태를 지킨다는 말은 얼마나 거창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답은 멀리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조금 덜 가까이 가는 일, 조금 더 기다리는 일, 조금 더 조용히 머무는 일. 공존은 특별한 선언보다 이런 작은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룻배마을의 겨울은 그렇게 두루미를 보는 시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 되고 있었습니다.

두루미는 인간에게 자연을 이용하는 법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존재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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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