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1. 환경의 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매년 6월 5일 환경의 날이 돌아오면 뉴스는 어김없이 녹아내리는 빙하와 기록적인 폭염 소식을 전한다. 보는 이는 막막하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막상 "그래서 나는 오늘 무엇을 할 수 있지?"라는 질문 앞에서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환경부 설문에 따르면 국민의 80% 이상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탄소중립 관련 행동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그보다 훨씬 적다. 알고 있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의 간극. 그 간극을 좁히는 것이 기후위기 대응에서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지점이다.
경기도는 이 간극을 '스마트폰'으로 보완을 하고 있다. 거창한 서약이나 별도의 시간 투자 없이도, 이미 매일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앱 하나로 탄소중립 실천을 기록하고, 그 실천이 실질적인 보상으로 돌아오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도내에서 현재 전개 중인 비대면 환경 캠페인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이 구조가 얼마나 구체적이고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2. 실천하면 받는다: 경기도 기후행동 기회소득
경기도가 전개하는 비대면 환경 캠페인의 중심에는 '기후행동 기회소득'이 있다. 이름만 들으면 낯설지만, 개념은 단순하다. 일상에서 탄소를 줄이는 행동을 앱으로 인증하면, 그에 따라 지역화폐를 지급받는다. 만 7세 이상 경기도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1인당 연간 최대 6만 원의 리워드를 받을 수 있다.
참여 방법은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에서 '기후행동 기회소득' 앱을 설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회원가입 후 기후도민 인증을 완료하면 본격적인 실천 기록이 가능해진다. 앱 내에서 인증 가능한 활동은 크게 네 가지 분야로 나뉜다.
첫 번째는 교통 분야다. 앱에 현재 사용 중인 교통카드를 등록하면, 이후 대중교통 이용 내역이 자동으로 조회되어 별도의 인증 절차 없이 리워드가 쌓인다.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것, 지하철로 약속 장소에 가는 것. 그 행동 자체가 곧 실천이고, 실천이 곧 보상이 되는 구조다.
두 번째는 자원순환이다.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할 때 다회용기 가맹점을 선택하고, 이후 용기를 반납하면 이를 인증할 수 있다. 또한 '에코야얼스' 앱과 연동해 고품질 재활용품 수거를 신청하는 방식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 일회용 쓰레기를 줄이는 소비 선택 하나가 기록으로 남는다.
세 번째는 에너지 분야로, 고효율 가전제품을 구매한 뒤 에너지 소비 효율 등급표와 영수증 사진을 앱에 업로드하거나, 가정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한 경우 그 사진을 올려 승인을 받는 방식이다. 큰 결정이 담긴 소비와 설치 행위가 탄소중립 실천으로 공식 인정받는 통로가 생긴 셈이다.
네 번째는 일상 활동이다. 매일 8,000보 걷기, 기후 관련 퀴즈 풀기, 다회용기나 텀블러 할인 카페 이용하기 등 작지만 지속할 수 있는 활동들을 앱 내 기능으로 측정하고 인증한다. 거창한 실천이 아니어도 된다. 하루 8,000보, 어렵지 않다면 어렵지 않은 숫자다.
매월 1일부터 말일까지 쌓인 리워드는 본인 명의로 가입된 경기지역화폐를 통해 익월 25일에 지급된다. 실천의 흔적이 다음 달 지갑 속에 남는다. "환경을 지키는 것이 나에게도 이득"이라는 경험을 반복할수록, 행동은 습관이 된다. 기후행동 기회소득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3. 걷는 것만으로 기부가 된다: 비대면 걸음기부 캠페인

스마트폰 만보기 앱을 켜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의식하지 않고 살다 보면 하루 걸음 수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출근길, 점심 식사 후 산책, 퇴근 후 마트까지의 짧은 걷기. 그 걸음들이 쌓인다. 비대면 걸음기부 캠페인은 이미 걷고 있는 그 걸음 수를 기부로 전환하는 캠페인이다.
구조는 간단하다. 참여자가 빅워크(BigWalk) 등 걸음 기부 모바일 앱을 설치하고 일상에서 걸음을 기록한다. 앱 내 캠페인 페이지에서 자신이 모은 걸음 수를 원하는 만큼 '기부하기' 버튼을 눌러 제출하면, 기업이나 단체에서 미리 마련해둔 기탁금이 그에 비례해 기후위기 취약계층 등에게 전달된다. 돈을 내는 것도,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걷는다. 그것이 기부다.
경기도 내에서는 한국전력공사 경기본부가 임직원을 대상으로 이 캠페인을 시행한 바 있다. 조직 차원의 참여가 이루어지면 단기간에 상당한 걸음 수가 모이고, 그만큼 더 많은 기탁금이 취약계층에게 전달된다. 캠페인 자체가 조직 내 환경 감수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캠페인에서 주목할 점은 참여의 문턱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된다. 돈이 들지 않는다. 특별한 장소에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평소에 걷던 대로 걷되, 앱을 켜두면 된다. 그 낮은 진입장벽이 오히려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 한 번의 거창한 참여보다, 매일의 작은 참여가 훨씬 오래 이어진다.
4. 달리면서 줍는다: 비대면 플로깅 캠페인과 '어스앤런(Earth & Run)'의 유산
'플로깅(Plogging)'이라는 단어가 있다. 스웨덴어로 '줍는다'는 뜻의 'plocka upp'과 영어 '조깅(jogging)'을 합친 신조어로, 달리거나 걸으면서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말한다. 2016년 스웨덴에서 시작된 이 문화는 현재 전 세계 100개국 이상으로 퍼져 나갔다. 운동이 되고, 동네가 깨끗해지고, 환경을 생각하는 계기도 된다. 혼자 해도 되고 여럿이 해도 된다.
국내에서 이 플로깅을 비대면 캠페인 형식으로 가장 먼저 대중화한 것은 그린피스의 '어스앤런(Earth & Run)'이었다. 2020년 시작된 어스앤런은 정해진 날, 정해진 장소에 다 함께 모이지 않아도 됐다. 캠페인 기간 안이라면 본인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달리며 쓰레기를 주우면 됐다. 참여자가 스마트폰으로 활동을 기록하고 인증하는 방식이었다. 2022년 '어스앤런 허니비'를 마지막으로 공식 캠페인은 마무리되었지만, 어스앤런이 남긴 것은 단순한 달리기 이벤트 이상이었다. '장소에 모이지 않아도, 같은 기간에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행동을 함께 한다'는 비대면 환경 캠페인의 문법을 시민들에게 익숙하게 만들었다.
그 문법은 지금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 공동체와 환경 단체들은 온라인 신청 후 각자의 동네에서 플로깅 인증 사진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캠페인을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있다. 공원이어도 좋고, 동네 골목이어도 좋고, 집 근처 천변이어도 좋다. 사진 한 장, 거리 기록 하나가 그날의 참여를 증명한다.
비대면 플로깅 캠페인이 가진 힘은 '분산된 동시성'에 있다. 같은 장소에 모이지 않아도, 같은 기간에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행동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연결감이 생긴다. 수원의 누군가가 광교 호수공원 산책로에서 페트병을 줍고 있을 때, 고양의 누군가는 행주산성 주변을 뛰며 담배꽁초를 집어 든다. 그 각각의 행동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혼자지만 함께인 그 감각이, 비대면 환경 캠페인이 가진 특유의 동력이다.
5. 세 캠페인이 공유하는 설계 원칙
기후행동 기회소득, 걸음기부 캠페인, 그리고 어스앤런이 남긴 비대면 플로깅의 방식. 세 가지 캠페인은 규모도 다르고 방식도 다르지만, 바탕에 깔린 설계 원칙은 닮아 있다.
첫째, 세 캠페인 모두 '이미 하고 있는 것'에서 출발한다. 대중교통을 이미 타고 있다면 교통카드를 등록하면 된다. 이미 걷고 있다면 앱을 켜면 된다. 이미 공원에서 달리고 있다면 쓰레기 봉투를 하나 챙기면 된다. 새로운 행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행동에 의미를 더하는 방식이다.
둘째, 기록이 참여를 완성한다. 세 캠페인 모두 스마트폰 앱을 통한 인증을 공통 요소로 갖는다. 기록되지 않은 실천은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축적되지도 않는다. 앱이 단순한 편의 도구를 넘어 참여의 매개이자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개인의 실천이 데이터로 모이고, 그 데이터가 정책의 근거가 되는 선순환 구조이기도 하다.
셋째, 문턱이 낮다. 연령 제한이 만 7세 이상이라는 것도,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도, 특정 장소에 가야 한다는 조건이 없다는 것도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기후위기 대응이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의 일상 속에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다.
6. 일상이 실천이 되는 도시, 경기도
사실 탄소중립은 개인의 실천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산업 구조의 전환, 에너지 정책의 변화, 국제 협력. 훨씬 큰 차원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개인의 일상 실천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매일 버스를 타며 리워드를 확인하는 사람은, 자신이 오늘도 탄소를 줄이는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안다.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사람은, 운동 이상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감각을 갖는다. 걸음 수를 기부한 사람은, 평범한 하루에도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느낀다. 그 감각들이 쌓이면, 기후위기는 더 이상 뉴스 속의 추상적인 재앙이 아니라 내 삶과 연결된 구체적인 현실이 된다.
경기도의 비대면 환경 캠페인들은 그 연결을 만들어내는 시도다. 앱 하나로 버스 탑승이 실천이 되고, 걸음이 기부가 되고, 달리기가 정화 활동이 된다. 큰 결심이 필요 없다. 거창한 선언도 필요 없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열고, 오늘 하루 내가 이미 한 것들을 기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참여 방법 한눈에 보기
경기도 기후행동 기회소득플레이스토어 또는 앱스토어 → '기후행동 기회소득' 앱 설치 → 회원가입 및 기후도민 인증 → 교통카드 등록, 자원순환·에너지·일상 활동 인증 → 익월 25일 경기지역화폐로 리워드 수령
비대면 걸음기부 캠페인'빅워크(BigWalk)' 앱 설치 → 일상에서 걷기 → 앱 내 캠페인 페이지에서 걸음 수 기부하기
비대면 플로깅 캠페인 (지역 단체 주관) 지역 환경 단체 또는 공동체 캠페인 신청 → 캠페인 기간 내 원하는 시간·장소에서 달리기 및 플로깅 → 인증 사진 공유 및 활동 기록
오늘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
기후위기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문제가 너무 크고, 나는 너무 작다는 감각. 그러나 변화는 항상 작은 것들의 합산이었다. 한 사람이 버스를 타는 것, 한 명이 더 걷는 것, 한 번의 달리기에 봉투 하나를 챙기는 것. 그것들이 모이는 방식을 경기도의 비대면 환경 캠페인들은 만들어가고 있다.
환경의 날은 하루지만, 지구는 365일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오늘, 앱을 하나 설치해보는 것에서 시작해도 좋다. 그것이 가장 작은, 그리고 실제로 가능한 첫걸음이다.
참고 자료
경기도 기후행동 기회소득 공식 안내 : https://www.gg.go.kr(경기도 환경국 기후변화대응과)
빅워크(BigWalk)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bigwalk.co.kr
그린피스 어스앤런 캠페인 아카이브 (2020~2022, 활동 종료) : https://www.greenpeace.org/korea/make-a-change/
경기도자원봉사센터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ggvc.or.kr
환경부 (2023). 2023 국민 기후변화 인식 조사 결과. 환경부 보도자료.
한국환경공단 (2024). 탄소중립 생활 실천 안내서. K-e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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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1※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우리는 흔히 ‘공익(公益)’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 떠올리는 풍경이 있습니다. 세련된 회의실, 정갈하게 인쇄된 브로슈어, 혹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비장한 표정의 활동가들. 하지만 인간의 자잘한 발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싶은 저에게, 공익은 종종 엉뚱한 곳에서 낡은 슬리퍼를 신은 채 발견되곤 합니다. 이를테면, 안산의 어느 버스 정류장 앞, 조잡하게 쓰인 ‘커트+염색 만원’이라는 입간판 같은 곳에서 말이죠. 제가 발견한, 세상에서 가장 싸고 가장 향기로운 어느 미용실의 이야기를 만원의 공익으로 재구성했습니다.

1장. 만원이라는 비현실, 추억이라는 현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손바닥만 한 입간판에 씌어 있는 네 글자. ‘커트+염색 만원’. 처음엔 뭔가 잘못 읽은 줄 알았다. 2층을 올려다보니 '김량현 헤이클럽'이라는 간판이 창문에 붙어 있었다. 창문에도 ‘커트+염색 만원’ 문구가 크게 쓰여 있었다.
요즘 세상에 ‘만원’의 가치는 어디쯤 와 있을까. 카페에 앉아 쌉싸름한 아메리카노 한 잔에 조각 케이크 하나를 더하면 가볍게 만원을 넘어선다. 내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는 비용은 동네 미용실에서도 어느덧 만 원권 지폐 한 장을 더 요구하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커트와 염색 합쳐서 만원’이라니. 이건 자본주의의 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종의 유쾌한 도발이다.
그 낡은 입간판을 보는 순간, 내 안의 오래된 서랍 하나가 삐걱거리며 열렸다. 고등학교 시절, 동인천 대한서림 사거리에 있던 미용 기술학교. 주말이면 미용을 배우는 학생들이 실습 겸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머리를 깎아줬다. 어머니에게 이발비를 받아 싼 맛으로 이발하고, 남은 돈으로 만화책을 봤던 얄팍한 추억이 살아났다. 때로는 고등학생인 나보다 어린 학원생이 손을 바들거리며 가위를 들었다. 가끔은 쥐가 파먹은 듯 삐죽거리는 머리를 보며 속상해하기도 했지만, 뒤에서 쓱 가위를 뺏어 들고 능숙하게 수습해 주던 선생님의 손길이 있어 안심했던 시간이었다. ‘커트+염색 만원’이면 아마 그때와 비슷할 듯 속으로 웃음이 비죽 새어 나왔다.
나는 그 ‘비현실적인 가격’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설령 머리를 망친다 한들 어떠랴. 내가 카메라 불빛을 받는 연예인도 아니고, 머리카락이란 결국 자라나기 마련인 유한한 세포 뭉치일 뿐인데. 호기심이라는 유치한 연료를 채우고, 나는 2층 계단을 올랐다.

2장. 미용실의 외피를 두른 기묘한 대피소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잠시 공간의 좌표를 잃었다. 그곳은 미용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순수한 창고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온전한 살림집도 아니었다. 미용 도구와 정체불명의 살림살이들이 기묘한 동거를 나누는 공간 한가운데, 낡은 미용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초현실적인 풍경에 압도되어 슬그머니 발을 빼려던 찰나, 사장님이 튀어나왔다.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그러나 눈빛만큼은 지독하게 해맑은 얼굴로.
“머리 깎으러 오셨어요?”
“아, 아니에요. 지나가다 궁금해서… 다음에 올게요.”
“평일 오전이라 한산하지, 주말엔 장난 아닙니다. 아무도 없을 때 깎고 가세요.”
그의 자연스러운 호객에는 묘한 자력이 있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덩그러니 놓인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의자 위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개 두 마리였다.
“미용실에 개가 있네요?”
“저 칸막이 뒤에 네 마리 더 있어요. 총 여섯 마리죠. 개 좋아하세요?”
“아니요… 겁이 많아서 동물은 다 무서워합니다.”
내 고백에 사장님은 호탕하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요 녀석들은 손님만 오면 알아서 창가 지정석으로 가요. 안 짖어요.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자기들이 알아서 그러네. 신기하죠?”
공간에 가득한 미약한 개 내음과 비염이 있는 내 코의 긴장감 속에서, 그렇게 기묘한 이발이 시작되었다.


3장. 안산에서 가장 싸고,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가위질 소리 사이로 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가격으로 운영이 돼요?”
사장의 대답은 단순했다.
“저는 강아지 밥값만 벌면 돼요.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딱 필요한 만큼만 벌죠.”
그는 이전에 본오동에서 미용실을 할 땐 커트와 염색에 6천 원을 받았다고 했다. 국회의원도 단골이었고, 직원도 둘이나 뒀던 ‘잘나가는 원장님’이었다. 혼자 이곳으로 옮겨오며 가격을 ‘인상’한 게 고작 만원이란다. 이야기 도중, 사장님이 갑자기 창문으로 돌진하더니 창밖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엄마! 그거 열무야? 맛있겠다! 나도 줄 거지? 땡큐! 그럼, 내일 9시에 와요, 파마하게! 나 지금 일하는 중이야!”
돌아선 그의 얼굴엔 멋쩍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동네 어르신인데 파마할 때가 지났는데도 안 보이시길래, 언제 지나가나 창밖을 매일 살폈단다.
“여기로 이사 온 후부터는 혼자라 파마는 안 하는데, 80세 이상 할머니들만 아침 일찍 해드려요. 우리 가게는 80세 이상이면 파마든 커트든 염색이든 다 무료거든. 폐지 줍는 어르신들도 오시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공짜 손님만 치러요.”
“그럼, 강아지 밥값은요?”
내가 걱정스레 묻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대신 주말에 손님이 많아요. 평일엔 택시 기사님들이 오시고. 강아지 밥값은 충분합니다.”

4장.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의 무게
염색약이 머리카락에 스며드는 긴 시간 동안, 나는 한 남자의 행복론을 들었다. 강아지들과 살다 보니 아무리 청소해도 개 냄새가 나고, 그게 미안해서 손님들에게 비싸게 돈을 못 받겠다는 남자. 어르신들을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서 가위를 쥔 손에 차마 돈을 쥐지 못하겠다는 남자. 저녁 6시에 문을 닫고 청소를 끝낸 뒤, 창밖을 보며 소주 한 잔을 기울일 때 세상 부러운 것이 없다는 남자. 머리가 끝났다. 거울 속 내 모습은 꽤 단정했고, 마음은 그보다 훨씬 더 묵직해져 있었다.
“고맙습니다. 여기 만 원이 참 부끄럽네요.”
지갑을 열려는데 사장님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이왕이면 계좌이체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보통은 세금이나 탈세를 떠올리며 의아해할 타이밍이다. 하지만 그의 다음 대답은 내 세속적인 짐작을 기분 좋게 무너뜨렸다.
“다음에 오실 땐 현금 주시고요, 오늘 처음이잖아요. 첫 손님은 계좌이체로 받으면 고마우신 손님 이름이 찍히니까. 이름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래요.”
“싸게 머리 깎은 내가 더 고마운데요.”
“아니에요. 나한테는 우리 애들 밥값 주시는 고마운 분입니다. 이름은 알고 있어야죠.”
타인의 이름을 기억하겠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상거래를 넘어, 당신과 나 사이에 하나의 유대를 맺겠다는 선언이었다. 만 원짜리 한 장에 이름의 기억을 덤으로 주는 미용실이라니. 이 얼마나 위트있고, 다정한 경영 방식인가.
5장. 창밖의 소주 한 잔, 우리가 잊었던 공익
그 후로 종종 나는 그 2층 창가를 바라본다. 어떤 날은 사장님이 홀로 창밖을 보며 쓸쓸히, 그러나 유연하게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고, 또 어떤 날은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시끌벅적하게 잔을 부딪치고 있다. 그 풍경을 보며 나는 ‘공익’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다시 쓴다. 공익은 멀리 있지 않다. 거창한 사회 운동이나 대단한 기부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버려진 유기견들을 거두어 제 식구로 키워내고, 지나가는 동네 노인의 안부를 창문 너머로 소리 높여 물으며,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의 머리를 대가 없이 다듬어주는 것. 그리고 나를 찾아온 낯선 손님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는 것.
비염이 있는 나에게 그 미용실은 코끝이 간지러운, 그리 녹록지 않은 공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만간 그곳의 문을 다시 열 것 같다. 이미 그 남자의 따뜻한 가위질에 중독되어 버렸으니까. 행복이 만 원짜리 한 장으로 거래되는 그 이상한 미용실은, 오늘도 안산의 한구석에서 세상을 아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구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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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9※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기업과 공익단체가 만날 때, 지역은 달라진다"
2026년 5월 7일 오후 2시, 안양시공익활동지원센터 대회의실. 경기도 곳곳에서 온 기업인과 공익활동가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웠다.
이윤 을 추구하는 기업과 사회문제 해결을 꿈꾸는 단체가 한자리에 앉는다는 것, 언뜻 어색하게 들릴 수 있는 조합이지만, 이날 현장에서 그 어색함은 찾아 볼 수 없었다. 2026년 1기업-1단체 공익파트너십 협력사업 협약식 자리에 는 총 18개 기업과 10개 단체, 30여 명의 관계자가 모여 올해의 협력을 공식적으로 약속했다.

1기업-1단체 전체 기업 및 단체 소개
경기도 전역으로 뻗어나간 공익의 물결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주관하는 '1기업-1단체 공익파트너십 협력사업' 은 경기도 내 기업과 공익활동단체를 직접 연결해 지역사회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협력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업이다. 단체별 최대 500 만 원의 사업비를 지원하며, 신규 및 연속 참여 단체 모두 동일한 규모로 지원받는다. 환경보전, 자원순환, 이주민 통합, 공동체 회복, 생물다양성 보 전 등 지역이 안고 있는 다양한 공익 의제를 다루며, 기업의 ESG 경영을 실질적으로 유도하고 지역사회의 상생발전 방안을 마련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2024년에는 5개 기업과 5개 단체가 참여했고, 2025년에는 14개 기업과 10개 단체로 규모가 커졌다. 그리고 올해 2026년, 이 사업은 드디어 경기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신규 지원 기업과 연속 참여 기업이 함께 어우러진 18개 기업, 신규 5개 단체와 연속 5개 단체를 포함한 10개 단체가 이번 협 약의 주역이다. 협약 이후 오는 10월 31일까지 각 팀이 자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며, 11월 중에는 성과를 공유하고 관계망을 넓히는 '오픈파트너스데이'가 예정되어 있다.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혼자 걸으면 길이 없지만, 함께 걸으면 길이 된다"
협약식의 문을 연 것은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유명화 센터장의 개회인사 였다.
"공익활동을 하는 단체와 기업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 남은 문제들은 어느 한 주체가 나 선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체도, 기업도, 시민도 함께 만나야 비로소 실마리가 보이고, 시너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유명화 센터장은 센터 가 이 사업을 단순한 일회성 행사가 아닌, 지속 가능한 구조로 키워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함께하는 기업과 단체에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 주고 싶습니다. 아직 충분하지 않지만, 정책이 더 넓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경기도에서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과 나눠주셨으면 합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날 협약식에 참석한 기업인과 단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의미 있는 자리에 함께하게 되어 기쁘 다"는 분위기가 공통적으로 흘렀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유명화 센터장 인사말
10개 팀 협력 사업 소개
협약식은 각 팀의 소개 시간을 중심으로 활기차게 이어졌다. 18개 기업과 10개 단체는 총 10개 팀으로 구성되어 각각의 공익사업을 추진한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팀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어보았다.
왕숙천 생물다양성 지킴이 팀은 남양주환경운동연합과 (주)빙그레가 함께 한다.
왕숙천의 생태계를 모니터링하고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활동으 로, 플로킹(걷기 정화 활동)과 시민 교육을 병행해 지역 하천의 생태 가치 를 주민들과 함께 확인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번 사업을 통해 지자체와의 협력 경로도 모색한다고 밝혔다.
탄천 생물다양성 프로젝트는 사단법인 성남환경운동연합과 (주)인베랩, 카카오(판교아지트)가 손을 잡았다.
탄천을 따라 소규모 서식지 조성, 생태교란 식물 관리, 하천 정화 활동을 추진하며 시민 참여 기반의 생태 보전 활동을 이어간다. 특히 정량적인 성과를 통해 탄천 생태 회복의 실질적인 변 화를 도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봉사활동으로 만들어가는 '이음 고리' 프로젝트는 사회적협동조합 내비두(비두)와 감동크린협동조합, 원예협동조합 푸름채움, 호원새마을금고 세 기업이 함께한다. 사회적협동조합 내비두는 고립과 은둔 상태의 청년·중장년 을 심리적으로 지원하고, 이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와 다시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단체다. 원예협동조합 푸름채움은 치유와 관계 형성에 중점을 둔 플렌테리어·원예 프로그램을 활용해 협력사업을 채워나간다. 고립된 이들이 단순히 도움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봉사하고 일을 경험하는 주체가 되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라온과 함께 폐자원을 새자원으로! 팀은 안양라온봉사단과 사회적기업 (주)다숲, 에이치엠더블유(주), 오슬로가 협력한다.
버려지는 폐현수막, 폐섬유, 병뚜껑 등을 새로운 자원으로 변환하는 자원순환 체험 활동과 탄소중립 실천 캠페인을 운영한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쓰레기가 새로운 가치로 이어지는 선순환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인상 깊었다.
가치를 입다, 자립을 돕다: 로컬 상생 옷장 프로젝트는 안코사회적협동조합 과 주식회사 위더스타운이 추진한다.
자원순환을 기반으로 한 ESG 캠페인 을 통해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지역 연계형 순환경제 모델을 구축하는 활동이다. 위더스타운은 다양한 사회 공익 활동에 참여해 온 기업으로, 청년 네트워크와 연계해 새로운 공익 무대를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회통합을 위한 이주민과 함께 성장하기는 의정부이주노동자센터와 김하늘컴퍼니가 손잡은 팀이다.
캄보디아, 네팔, 미얀마, 인도네시아 공동체와 함께 노동자 법 교육, 워크숍, 인식 개선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김하늘컴퍼니 대표는 직접 캄보디아 공동체에서 활동하며 이주민이 사업의 수혜자가 아닌 주체적 참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을 전했다.
일하는 식탁? 밥 먹는 식탁! (직장인 청년 소셜다이닝)은 프로젝트 산장과 강경푸드, 스무살이협동조합이 함께한다.
혼밥과 고립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청년 직장인들을 위해 소셜다이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관계망을 형성하는 활동이다. 강경불고기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강경푸드는 지난해에도 같은 사업에 참여해 고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경험한 바 있으며, 올 해는 더욱 체계적인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문산천 생물다양성 보전 파트너십 프로젝트는 DMZ생물다양성연구소와 파주도시공사의 협력으로 이뤄진다.
파주 문산천 일대의 생물다양성 가치를 시민에게 알리고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기 위한 시민 참여형 환경보전 활동이 중심이다. 파주도시공사는 연속 참여를 통해 도시 개발 기업으로서의 ESG 실천을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이날 협약식에서 유독 눈길을 끈 팀이 있었다.
바로 코스탈 주식회사와 사단법인 트루의 플라스틱 장난감 업사이클을 통한 기업 ESG활동 팀이다.
올 해로 3년 연속 파트너십을 이어가는 이 팀은, 단순한 캠페인을 넘어 지역 내 지속 가능한 환경 공익의 구체적인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파주시에 기반을 둔 코스탈 주식회사는 전기·전력용 비철금속 소재와 가공 제품을 생산하는 강소기업이다. 파트너 단체 사단법인 트루는 고양시를 기 반으로 매년 20만 점 이상의 폐장난감을 재활용하고 '장난감학교 쓸모' 환 경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국내 대표 플라스틱 업사이클 전문 단체로, 장난감 환경윤리헌장 제정과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입법화 추진 등 정 책적 변화까지 이끌고 있다.
한편 공유공존공공을위한연구소와 소우주 주식회사, 생생아쿠아, 주식회사 예성아름터가 함께하는 남양주 옹달샘 프로젝트는 지역 상점들을 거점으로 시민 누구나 텀블러만 있으면 자유롭게 물을 마실 수 있는 공공급수 공간 을 확충하는 사업이다.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일상 속 친환경 생활을 실천하는 시민 참여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핵심 목표다.

김하늘 컴퍼니 라온

코스탈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기업과 공익단체가 함께 만드는 사회적 가치: 박주원 이사 강연
협약식을 마친 후에는 박주원 지속가능경영재단 ESG협력담당 이사의 강연이 이어졌다. 강연 주제는 '기업과 공익단체가 함께 만드는 사회적 가치'였다. 강연에서는 ESG가 단순한 기업 홍보 수단이 아닌, 지역사회와의 진정한 연대를 통해 실현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난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특히 기업과 공익단체의 협업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에게 성장의 기회가 되는 지, 실제 사례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풀어냈다. 이날 강연은 협약식에 참석 한 기업인과 단체 관계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더 나은 역할을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이 선언이 아니라 현장의 언어로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박주원 이사 강연
기업이 바뀌면, 지역이 달라진다
이날 안양시공익활동지원센터 대회의실은 경기도 곳곳의 변화가 모여든 출발점이었다. 1기업-1단체 공익파트너십 협력사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환경, 생물다양성, 자원순환, 이주민 통합, 청년 고립, 지역 공동체 등 다양한 공익 의제가 기업과 단체의 협력 속에서 지역 현장의 언어로 풀려나가고 있다. ESG가 보고서 속 숫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살아 숨 쉬는 실천이 될 때, 기업과 공익단체 모두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사업은 매년 증명해 왔다. 오는 10월, 이 18개 기업과 10개 단체가 어떤 결실을 가지고 다시 모이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지금 이 봄날의 약속들이 경기도 곳곳 에서 조용하지만 확실한 변화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1기업-1단체 단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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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9
1. 광교산 자락의 야학에서 만난 1987년
1987년 6월을 떠올리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내게는 광교산 자락의 야학 교실, 퇴근 시간에 맞추어 하나둘 들어오던 학생들의 얼굴, 수업이 끝난 뒤 함께 먹던 떡볶이와 라면, 그리고 막걸리잔을 사이에 두고 나누던 어설프지만 진지했던 시국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나는 1987년 2월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되어 군에 입대한 처지였으니, 제대 후에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막연한 시절이었다. 시대는 무거웠고, 내 앞날도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후배의 소개로 수원 광교산 자락에 있던 제일야학(현재는 [수원제일평생학교]라는 이름으로 인계동에서 수업을 계속하고 있다)에서 교사로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야학 교사 활동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아니, 흥미롭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곳은 학교이면서 일터였고, 교실이면서 세상과 연결된 작은 창이었다. 수업은 저녁 6시에 시작했지만, 그 시간에 맞추어 등교하는 학생은 절반 정도였다. 나머지는 수업 중간에 들어오거나, 때로는 수업이 다 끝난 뒤에야 모습을 보였다. 낮 동안 공장에서, 가게에서, 사무실에서 일하고 온 학생들이었다. 피곤한 얼굴로 들어와도 책상 앞에 앉으면 눈빛이 달라졌다. 늦었다고 나무랄 수는 없었다. 그들이 학교에 늦은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들에게 배움의 시간을 충분히 허락하지 않은 것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근처 분식집에 들렀다. 떡볶이와 라면, 조금 나이가 많은 학생들과는 막걸리도 마시면서 시국 이야기, 더 살기 좋은 미래 이야기, 노동자의 삶과 노동, 노동조합 등에 대한 생각도 나누었다. 나는 그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내가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책에서 배운 민주주의가 아니라, 삶으로 겪는 불평등과 억울함 속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워가고 있었다.
2. 수원의 거리에서 마주친 야학 학생들
그해 6월, 거리는 생기를 찾은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6월항쟁은 한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된 전국적 ‘시민항쟁’이었다. 1987년 6월 10일을 기점으로 대통령직선제 개헌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이어졌고, 결국 6·29선언과 직선제 개헌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역사는 교과서의 몇 줄 문장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그 역사는 거리의 먼지와 최루탄 냄새, 흩어졌다 다시 모이던 발걸음, 낯선 사람과 눈을 맞추며 느꼈던 이상한 용기 속에 있다.
수원에서도 거리의 움직임을 활발했다. 어느 날은 팔달문에서 시작한 시위가 수원역 방향으로 이어졌고, 어느 날은 중동파출소 앞에서 출발해 아주대 방향으로 행진이 이어졌다. 대학생들이 앞에 있었고, 시민들이 그들을 지켜주었다. 서로를 잘 알지 못했지만, 그날 거리에서는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독재를 끝내야 한다는 것, 국민이 주권자라는 것, 더는 침묵할 수 없다는 것. 그 마음만은 분명했다.
그런 거리에서 가끔 야학 학생들을 마주쳤을 때 나는 반가웠고 대견했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하던 민주주의가 교실 밖 거리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걱정도 되었다. 학생들의 수업은 어쩌나, 혹시 다치지는 않을까, 일터에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그래서 나는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꾸짖기도 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조금도 기가 죽지 않고 말했다. “선생님이 늘 말씀하셨던 민주시민의 역할을 하려고 나왔습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 말 앞에서 나는 선생이 아니었다. 우리는 함께 배우는 시민이었다. 교학상장이라는 말이 그날처럼 선명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내가 가르쳤다고 생각했던 말이 그들의 발걸음으로 되돌아와 나를 가르쳤다. 민주주의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며, 시민은 누가 임명해주는 자격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자리라는 것을.
시위가 마무리된 뒤 그들과 함께한 뒷풀이 자리는 어느 때보다 즐겁고 행복했다. 우리는 여전히 가난했고, 불안했고, 앞날을 알 수 없었지만, 그날만큼은 우리가 역사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확신과 함께 우리가 사는 이 도시의 거리도 민주주의의 무대가 되고 야학의 학생들도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함께 확인했다.
3. 2024년 12월 3일, 민주주의는 다시 질문이 되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직선제를 얻었고, 선거를 치렀고, 지방자치를 부활시켰고, 여러 차례 평화적 정권교체를 경험했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되었고, 절차가 되었고, 일상의 언어가 되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완성되었을까?
2024년 12월 3일의 밤은 그 질문에 다시 답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했다.
계엄, 군, 국회, 포고, 통제라는 단어들이 한밤중에 다시 등장했을 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결코 자동으로 유지되는 체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 밤과 그 이후의 광장에서 우리가 본 것은 두려움만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다시 모였다. 예전의 거리에서 손수건과 유인물과 결연한 다짐으로 어깨를 맞댄 스크럼이 있었다면, 2024년 이후의 광장에는 형형색색의 빛과 노래와 새로운 언어가 있었다. 나는 그 빛 속에서 1987년 거리의 시민들을 보았다.
응원봉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시대 시민들이 자기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표현하는 언어였다. 누군가는 분노를 품고 나왔고, 누군가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나왔고, 누군가는 친구와 함께, 가족과 함께, 혹은 혼자 광장에 섰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 올린 빛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헌법을 지키자는 것, 권력은 국민 위에 설 수 없다는 것,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시도 앞에서 시민이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
4. 달라진 광장, 달라지지 않은 시민의 민주의식
1987년의 거리와 2024년의 광장은 닮았고, 또 달랐다. 달라진 것은 많다. 1987년의 우리는 군사독재를 끝내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언론은 통제되었고, 집회는 폭력적으로 탄압받았고, 거리에는 온통 최루탄 가스와 매케한 냄새가 짙었고 정보는 사람을 통해 전해졌다.
2024년의 시민들은 스마트폰으로 소식을 확인했고, 온라인에서 서로를 불러냈고, 각자의 방식으로 광장을 만들었다. 청년과 여성 시민들이 보여준 주체성과 창조적 표현력은 한국 민주주의가 새로운 세대의 언어를 얻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권력은 여전히 시민의 감시를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탱크와 총칼만은 아니다. 때로는 음모론이, 때로는 냉소가, 때로는 무관심이, 때로는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체념이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기념일의 언어로만 말하면서, 정작 일상의 권한과 책임은 나누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시민사회의 언어는 다음세대에게 닿고 있는가. 우리가 민주주의를 기억하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민주주의를 새롭게 만드는 일에는 둔감해진 것은 아닌가. 늘 자신에게 묻고, 가끔은 상대방에게 슬쩍슬쩍 던져보는 질문들이다.
5. 광장의 열기를 일상의 민주주의로 옮기는 일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는다. 언제나 미래를 향해 열려있고, 창조적 실천을 통해 만들어가는 미래진행형이다. 완성되었다고 믿는 순간, 민주주의는 약해진다. 민주주의는 늘 다시 배워야 하고, 되돌아보며 점검해보아야 하며, 다시 만들어야 가야 한다. 1987년의 성취가 오늘의 민주주의를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듯, 2024년 광장의 뜨거움도 내일의 민주주의를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광장의 에너지는 뜨겁지만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구호는 높지만 일상은 복잡하다. 분노는 사람을 모이게 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것은 결국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열정과 창의력이다.
여기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시작된다. 시민사회는 광장의 열기를 일상의 변화로 전환해야 한다. 거리에서 확인한 주권자의 힘을 지역의 공론장, 마을의 의제, 생활 속 공익활동으로 이어가야 한다. 민주주의의 근육은 교육에서, 대화에서, 감시에서, 참여에서 자란다.
6. 기억을 살아 있는 언어로 바꾸는 시민사회
몇 가지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첫째, 시민사회는 기억을 살아 있는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 6월항쟁을 기념하는 일은 ”우리는 위대했다”는 회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1987년의 거리가 오늘의 청소년과 청년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말해야 한다. 야학 학생들이 “민주시민의 역할을 하려고 나왔다”고 말했던 것처럼, 민주주의는 역사 교과목의 한 단원이 아니라, 내가 일하는 곳과 사는 동네와 사용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매일 부딪히는 삶의 방식이고 습관이어야 한다.
둘째, 시민사회는 민주주의를 지역의 문제로 옮겨와야 한다. 민주주의는 시청과 도청, 구청과 군청, 주민자치회와 학교운영위원회, 복지관과 공원, 마을버스 노선과 보행로, 청년 주거와 돌봄 정책 속에 있다.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묻는 일, 우리 동네 조례가 누구의 삶을 바꾸는지 살피는 일, 지역일꾼의 공천과 선거가 얼마나 공정한지 감시하는 일이 민주주의의 근육을 키우는 활동이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가장 가까운 얼굴이다. 시민사회는 지역에서 좋은 후보를 키우고, 지방의회를 감시하고, 주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넓혀야 한다. 지방자치의 퇴보를 비판만 하지 말고 실천적인 대안을 마련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
셋째, 시민사회는 극단화에 맞서되 시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혐오와 음모론, 폭력적 선동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헌정질서를 부정하거나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시도에는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시민사회는 왜 어떤 사람들이 극단적 주장에 흔들리는지도 살펴야 한다. 불안정한 삶, 고립, 불평등, 지역의 소외, 정치에 대한 불신은 극단주의가 자라는 토양이 된다. 민주주의는 단호함과 포용을 함께 필요로 한다. 파괴적 선동에는 선을 긋되, 불안한 시민을 민주주의의 언어 안으로 다시 초대하는 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시민사회는 다음세대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우리는 청년에게 참여하라고 말하면서, 이미 정해진 회의의 말석만 내어주지는 않았는가. 새로운 방식의 표현을 가볍게 여기거나, 낯선 정치 감각을 미숙함으로만 판단하지는 않았는가. 2024년의 광장은 다음세대가 민주주의를 모르는 세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알고 있었고, 다른 언어로 표현했으며, 다른 감각으로 광장을 만들었다.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은 그들과 함께 배우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계승은 기억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다. 권한을 나누는 것이다.
7. 다시, 제일야학의 학생들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 제일야학의 학생들을 떠올린다. 늦은 시간에 교실로 들어오던 학생들, 수업이 끝난 뒤 분식집에 모여 앉던 학생들,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민주시민의 역할을 하려고 나왔다”고 말하던 학생들. 그들은 내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함께 배우고 서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이었다. 민주주의는 상호 학습과 실천의 과정이다. 때로는 젊은 세대가 오래된 세대를 가르치고, 거리의 시민이 제도를 가르치며, 광장의 빛이 정치의 어둠을 가르친다.
1987년의 거리와 2024년의 광장으로 이어지는 사이 한국 민주주의는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고, 멈칫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후퇴의 위험 앞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시민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다시 나타났다.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노래를 부르고, 다른 도구를 들었지만, 시민은 다시 광장을 만들었다. 우리가 이어가야 할 것은 과거의 형식이니 기억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주의의 방식과 감각이다.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느끼는 감각, 권력이 국민 위에 설 수 없다고 말하는 감각, 나와 다른 사람의 권리도 함께 지켜야 한다는 감각, 내 삶의 문제를 공동의 의제로 바꾸는 감각. 그 감각이 세대를 건너 이어질 때 민주주의는 살아 있다.
8.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기에 희망이다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는다. 이 말은 절망의 문장이 아니다. 오히려 희망의 문장이다.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참여할 수 있고, 다음세대가 새롭게 만들 수 있으며,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광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시민들이 다시 외로운 개인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시민사회는 곁에 있어야 한다. 분노가 냉소로 식지 않도록, 참여가 일상의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기억이 다음세대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도록, 지역 곳곳에 민주주의의 작은 교실과 공론장과 실천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거대한 순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야학의 교실에도 있었고, 수원의 거리에도 있었고, 2024년의 광장에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가 사는 동네, 일터, 학교, 온라인 공간, 시민단체의 작은 회의실 안에 있다. 그곳에서 민주주의는 오늘도 묻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무엇을 이어갈 것인가. 그리고 다음세대와 함께 어떤 민주주의를 새로 만들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일, 그것이 6월항쟁을 기념하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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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7※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2030 여성이 있다면, 사람들은 ‘있는 집 딸’이라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 로스쿨생 중 압도적으로 가난해서 국가장학금으로 공부해 변호사 시험 합격증을 받은 사람이 있다.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이 “대포통장 사기 사건”이었고, 그 ‘진흙탕 바닥’이 인생의 길을 가르쳐 주었단다.
안산의 새내기 법조인, 정민지 변호사의 꿈과 포부를 들어보자.
Q 시간 내 줘서 고맙다. 자기소개부터 부탁한다.
나는 대한민국 30대 여성이고 한 달 전에 제15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까, 즐거운 상상 속에 지내고 있다. 목회자 부모의 세 자녀 중,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낀 외딸이다. 부모가 나를 고명딸이라며 떠받들어 키우지도 않았고, 오빠랑 연년생이라 쌍둥이처럼 자랐다. 그래서인지 태어난 순서로는 장녀가 아닌데, 현실에서는 ‘K-장녀’로 자랐다. 진짜 장녀들이랑 만나면 말이 되게 잘 통하더라. 나 또한 나를 항상 큰딸로 정체화한다.
Q 살면서 지금처럼 신나고 여유 있는 시기가 없었을 거 같다. 축하합니다.
맞다. 대한변협이 하는 합격자 연수를 들으면서, ‘의식적으로’ 천천히, 내가 가고 싶은 일자리를 찾아보려 한다. 안산시 공무원 3년 하고 2021년 로스쿨에 진학했으니, 지금 5년 만에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려 한다. 공무원은 대학 졸업하고 당장 돈을 벌어야 해서 시작했었지만, 이제는 돌고 돌아 내가 하고 싶은 거, 해야 하는 일, 살고 싶은 삶을 찾았다. 아무 데나 들어가서 대충 시작하기 싫어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찾고 있다. 굉장히 설레고 기대된다.
Q 안산시 9급 일반 행정직으로 3년 일하고 그만두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가정형편 상 취준생으로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어서, 졸업 전에 합격해 놓고 졸업과 함께 일했다. 공무원으로 일하며 내 길을 찾아볼 작정이었다. 민원 업무든 행정사무든 일은 잘 해냈지만 조직 문화가 힘들었다. “이제 공무원 됐으니, 시집만 잘 가면 된다”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다. 어린 여성이라고 친절, 애교, 미소 같은 태도 요구를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남자 상사랑 있을 땐 전문 직업인이 아니라 위안을 줘야 할 거 같은, 내가 너무 ‘대상화’되는 위치에 놓이더라. 그때마다 뻔뻔하게 받아칠 짬밥이랄까 요령이랄까, 그게 없어서 미치겠더라.
내 능력에 비해 너무 소박한 보상과 인정만 주어지는 현실에 회의감이 컸다. 누군가의 권력과 위계에 따르기보다 내 목소리를 내며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싶었다. 2019년 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다큐 영화
Q 청소년기부터 변호사를 꿈꾼 건 아니었나 보다.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하다.
초등학교 통지표에 ‘용모 단정하고 질서를 잘 지키나 의사 표현이 부족함’이라고 적힌 소심한 모범생이었는데, 신기하게 운동할 땐 날아다녔다. 아빠가 형제들이랑 차별 없이 축구, 야구, 배구, 농구에 자전거까지 다 가르쳐줬다. 우리집에서 유일한 사교육으로 수영, 태권도도 배웠다. 덕분에, 나는 운동선수가 될까 한 적도 있다. 몸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는 독보적인 아이였다. 그러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운동선수가 될 사람은 이미 여기 없어야 한다고 툭 던지는 말에 ‘나는 늦었구나’ 싶어 마음을 접고 공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교 비평준화 시절 안산 동산고에 진학했다. 입학하자마자 바닥을 치는 성적에 충격을 받았다. 가장 어려웠던 건 수학이었는데, 1년 내내 슬럼프였다. 1학년을 마친 후 어떻게든 수학을 정복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부모의 교육철학과 경제적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학원이나 과외 없이 공부했던 나에게 선택지는, ‘자기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하기’ 그것뿐이었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겨울방학 내내 수학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고2 첫 모의고사에서 수학을 반타작했다. 좌절감에 울고 있는 나에게 아빠는 “공부를 똑바로 안 한 거다”라며 비수를 꽂았다. 그 말에 오기가 생겼는지 나는 계속 밀고 나갔다. 지난한 자기 싸움 끝에 수학을 가장 잘하는 과목으로 만들며 정시로 서울의 한 사범대에 합격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는 공부 맛을 청소년기에 익힌 셈이다.
Q 대학 생활과 청소년기 공부는 달랐을 거 같다. 자기 길 찾기는 어땠나?
모범생으로만 살아서인지, 대학에서 스스로 길을 뚫는 게 무서웠다. 등록금은 국가 장학금으로 해결됐지만 용돈은 벌어 써야 했다. 안산에서 2시간 통학하며 공부하고 알바하느라 늘 시간이 부족했다. 4학년 앞두고, 진로도 안 잡히고, 학점도 별로고, 휴학하고 돈을 좀 벌며 길을 찾고자 했다. 마침, 월급 200만 원에 물류창고 알바 공고가 뜨더라.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엄마가 간암 수술 후 퇴사해 요양 중이었고, 아빠는 투잡을 뛰며 목회했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완벽한 결과를 내놓고 싶다는 강박에 쫓기고 있었다.
돈에 혹하고, 출입증 등록용이라는 말에 속아, 체크카드와 통장과 비밀번호를 넘겨주고 말았다. 이상하다 싶었을 땐 이미 내 통장이 보이스피싱 대포통장으로 쓰인 후더라. 나도 모르는 사람들 이름으로 수백만 원씩 돈이 들어왔다 빠진 기록을 다음 날 확인했다. 가해자 신분이 되어 버렸다. 빨간 줄이 그어질 대형 사고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 바닥을 경험했다. 이 사건으로 전혀 계획에 없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면서 내 인생의 방향이 급선회했다.
Q 대포통장 사건이, 정민지라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줬나?
그전까지는 보이스피싱 뉴스를 보면, 사람들이 조심성이 없어서 당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궁지에 몰려 휘말리고 보니, 내 뜻대로 안 되는 삶의 영역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요양 중이던 엄마가 내 소식을 듣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소통이 부재해서 일어난 문제”라고 하더라. 혼자 완벽하게 잘하고 결과만 “짜잔!~” 보여주려 하지 말고 못난 모습도 나눠야 함을 깨달았다. 통장이 정지되고, 경찰조사를 받고, 검찰에서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결정을 받기까지 반년을 보내며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인생 바닥에 던져질 때 현실을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그 바닥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Q 공무원을 그만두고 로스쿨에 도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나도 “로스쿨은 돈스쿨이지 내가 어떻게 가”라고 생각했었다. 3년 학비와 생활비 하면 억 단위가 든다. 나는 로스쿨생 중 압도적으로 가난했다. 소득 분위 장학금을 신청할 때 부모 재산이 들어가는데, 우리 부모는 수입과 재산이 바닥이었다. 엄마는 간암 수술 후 퇴사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공부하느라 고정 수입이 없었고, 아빠도 미자립 교회의 투잡 목사였다. 그런데 이 사정들이 역설적으로 완벽히 증명되면서 나는 3년 내내 전액 국가 장학금으로 공부했다. “엄마 아빠 가난한 김에 제대로 가난해서 고맙다.”라고 농담을 즐길 정도였다.
Q 로스쿨 학생들도 사교육(학원 인터넷 강의) 한다고 들었다.
변호사 시험 시장의 현실 이야기와 자기 주도적 공부 과정도 들려달라.
로스쿨은 변호사 시험(변시) 통과를 위한 ‘입시 학원’으로 전락했다고들 한다. 대부분 사법시험 출신이거나 학계에만 있던 교수들 강의에 대한 만족도가 학원보다는 낮았다. 대다수 학생이 수업 시간에 뒤에 앉아 대형 학원 인터넷 강의(인강)를 듣거나 학원 교재를 보는 게 현실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고집스럽게 교수님 강의와 책을 붙잡고 독학을 밀고 나갔다. 인강에 쓸 돈도 없거니와, 처음부터 하나하나 스스로 해나가는 공부가 나에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령이란 걸 모르니 법의 1부터 100까지가 다 중요해 보여서 공부 분량이 살인적일 수밖에 없다. 삼수 때까지도 “이 방법이 맞나?” 수없이 의심하며 두려움을 늘 끼고 공부했다. 독학 합격은 보편적인 레퍼런스가 없으니, 스스로 실험하고 시도하며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해야 했다. 시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도 완전히 자신할 수 없었는데,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Q 그 억눌린 멘탈을 어떻게 붙잡아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시험 점수가 안 나오면 흔들리다가도 “결국 내가 해야 끝나는 싸움”이라며 크게 울고 금방 일상으로 돌아왔다. 특히 부모님과 교회 공동체와 토론 모임에서 내 취약함과 어려움을 나눴다. 가족이 무조건적인 안전 기지였다. 그리고 삼수 중에도 매월 3개의 ‘페미니즘 토론 모임’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법조계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라, 공부하다 보면 ‘엥? 이게 말이 돼?’ 싶은 판례가 많더라. 그런 판례로 쌓인 스트레스를 토론 모임에서 “거지 같은 법리들이다!”라고 소리 지르고 날카로운 성평등의 칼을 벼렸다. 멀리 보는 자기주도적 공부였다.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아무래도 나의 엄마다. 내가 속한 여성단체 회원이고 내가 참여하는 토론 모임들의 모임장이기도 하다. 앞에서 말한 영화를 모녀가 같이 보고 토론했다. 엄마는 “너도 저런 길을 갈 수 있다”라며, 영화를 내 현실로 끌어와 주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책 읽고 질문하고 글 쓰는 사람이다., 작가요 활동가로 사는 여성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엄마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자원이다.
Q 수험생들에게, 꿈을 찾아 도전하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노하우가 있다면.
2030 여성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도 추천해 달라.
수험생들에겐 “내가 왜 이 힘든 길을 가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절대 놓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답 찾기 공부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겠다는 배짱을 가지길 바란다. 비혼 여성으로서 한국 사회를 보면 숨이 막힐 때가 많다. 여전히 ‘이성애적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고집하는 사회다. 2030 여성들이 쉽게 비혼을 선택하는 것 같지만, 그 깊은 고뇌를 사회가 모르는 거 같다. 소수자가 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엄청난 용기를 내는 거다. 가부장제 구조는 여성을 주체가 아니라 인구수를 채울 ‘애 낳는 도구’로 취급하는 거 같다, 젊은 여성들이 출산과 자아실현 중 하나를 강제 포기해야 하니 ‘여성 우울’을 겪는다. 국가는 다양한 생활동반자를 법적 가족으로 확장해야 한다. 비혼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해명하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재생산권을 보장해야 한다. 법조인이자 페미니스트로서 내 과제이자 살고 싶은 세상이다.
이 맥락에서 역사 속 금기를 깨고 주체적으로 길을 개척한 여성 서사를 생생하게 복원해 낸 역사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 《붉은 궁》,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추천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정민지 변호사의 미래 설계와 포부를 이야기해 달라.
실제 법조 생태계에서 기득권의 목소리를 더 키우는 데 법률 기술이 쓰이는 게 보이더라. 나는 침묵 당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이크로 일조하고 싶다. 좋은 동료들과 연대해서 누구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안전한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싶다.
그리고 부모님께 말하는 포부가 있다. 두 분은 젊은 날부터 사람들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약한 데로 가서 힘을 나누며 사느라 평생 가난하다. 내가 돈을 벌면 건물을 지어서, 한쪽에는 엄마가 집필하고 책을 공유하는 사랑방이자 ‘작가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다. 다른 한쪽에는 아빠가 돈 걱정 없이 소신을 펼치는 목회 공간을, 그 위에 내 ‘변호사 사무실’을 갖고 싶다. 지역에서 여성단체와 연대하는 변호사로 살 것이다.
나아가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갈 주체적인 실험으로서, 나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다정한 파트너를 만나 내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확장의 경험도 기꺼이 해보고 싶다. 5년 후, 10년 후 내가 이 포부대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세상이 꼭 검증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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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0※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혼자 남겨진 사회
세대별 사례 탐구를 중심으로 본 현대사회의 외로움 보고서
아무도 몰랐다
냉장고 안에는 오래된 음식이 있었다. 현관 앞에는 며칠치 우유가 쌓여 있었다. 택배 기사가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발견됐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고독사’라는 단어는 특별한 사건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뉴스와 지역사회 현장에서 흔히 접하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혼자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 연락이 끊긴 뒤 며칠 혹은 몇 달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죽음은 이제 특정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는 노년층의 문제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청년과 중장년층에서도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1인가구 증가, 경제적 불안, 인간관계 단절, 디지털 중심 사회 변화는 사람들을 점점 사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고독사는 단순히 혼자 죽는 현상이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관계가 끊어졌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고립사’라는 표현도 함께 사용된다.
고독사와 고립사,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고독사란 무엇인가
고독사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상태에서 혼자 사망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1인가구에서 많이 발생하지만 반드시 혼자 사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 있어도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면 고독사의 위험은 존재한다.
고독사의 핵심은 단순한 ‘혼자 죽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부재다. 즉 살아 있는 동안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문제로 다뤄진다.
고립사란 무엇인가
고립사는 사회적 관계와 교류가 거의 없는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다가 발생하는 죽음을 의미한다. 고독사가 결과 중심의 개념이라면 고립사는 그 과정에 초점을 둔 표현이다.
직장을 잃고 사람들과의 연락이 끊기며 사회활동이 중단되고, 결국 건강관리와 생활 유지가 어려워지는 과정 자체가 사회적 고립이다.
즉 고립은 삶의 과정이고, 고독사는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숫자가 말하는 현실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 자료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고독사 위험군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중장년 1인가구의 증가 속도가 매우 가파르다. 2023년 기준 국내 1인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의 약 35%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는 세 가구 중 한 가구 이상이 혼자 사는 시대라는 의미다.
고독사 사망자는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남성 비율이 높으며 50~60대 중장년층 비중이 가장 크다. 최근에는 경제적 불안정과 취업난 속에서 청년층 고립 문제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초고령사회가 본격화되면 노년층 고독사는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왜 사람들은 고립되는가
1) 관계 단절의 시대
과거에는 동네 공동체와 대가족 문화가 존재했다. 이웃 간 왕래가 있었고 서로의 안부를 자연스럽게 확인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개인 중심 구조로 변화했다. 아파트 생활은 익명성이 강해졌고, 사람들은 서로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편리함은 늘었지만 관계는 줄어들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인간관계 단절은 더욱 심화됐다.
2) 경제적 불안
실직과 빈곤 역시 중요한 원인이다. 경제적 어려움은 사람들을 사회관계 밖으로 밀어낸다.
직장을 잃으면 인간관계도 함께 끊기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실패에 대한 자존감 하락은 스스로 사회와 거리를 두게 만든다.
특히 중장년 남성층은 은퇴 이후 관계망이 급격히 줄어드는 특징이 있다.
3) 디지털 사회의 역설
스마트폰과 SNS는 연결의 도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깊은 외로움을 만들기도 한다.
온라인에서는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실제로 대화할 사람은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노년층은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회적 소외를 경험하기도 한다.
4) 가족 구조의 변화
비혼 증가와 이혼, 1인가구 확대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예전에는 가족이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했지만 현재는 가족 내부에서도 관계 단절이 늘어나고 있다.
“연락하지 않는 가족”은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돌봄 관계는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고독사의 현장 사례(출처.한국장례협회)
사례 1 – 은퇴 후 혼자가 된 중년 남성
수도권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6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수개월 전 직장을 잃은 뒤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다. 가족과의 왕래도 거의 없었다.
주민들은 “조용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했지만 정작 그의 일상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발견 당시 집 안에는 배달 음식 용기와 약봉지가 쌓여 있었다.
사례 2 – 청년 고립의 그림자
취업 준비를 하던 20대 청년은 장기간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며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
원룸생활을 하였으며, 체납고지서와 이력서, 빈통장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숨진 뒤 2주가 경과한 후에 발견되었다..
청년 고립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불안과 우울, 사회적 단절이 지속되면 심각한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례 3 – 혼자 남겨진 노년 여성
남편 사별 이후 홀로 생활하던 80대 여성은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외출이 줄었다.
동네 복지사의 방문이 끊긴 뒤 점차 사회와 단절됐다.
이웃들은 가끔 보던 모습이 사라졌지만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몇 주 뒤 관리비 연체 문제로 집을 찾은 관계자에 의해 발견됐다.
마지막으로 그의 이름을 부른 사람은 누구였을까..
‘고독력’ – 혼자 견디는 힘이 아니라 연결을 유지하는 힘.
세 사람의 이야기에서 공통점이 있다.
고립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조금씩,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진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수 있을까.
최근 심리학과 사회학에서는 ‘고독력’이라는 표현이 주목받고 있다. 고독력은 단순히 혼자 견디는 힘이 아니다.
외로움을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혼자 있는 시간을 삶의 균형 속에서 활용하는 능력이다.
현대사회에서 혼자 사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고립되지 않는 것이다.
혼자 살아도 사회와 연결되어 있고,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세대별 고독력 키우기
① 청소년·청년 세대 - 디지털 관계를 넘어 실제 관계 만들기
청년층은 온라인 소통에 익숙하지만 실제 인간관계 경험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청년 고립은 "혼자 있기 좋아서"가 아니라 "관계를 시작하기 어려워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모임 참여, 독서모임 및 동호회 활동, 봉사활동 참여, 공동체 프로젝트 경험 등 만나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② 중장년 세대 - 일 외의 관계망 만들기
중장년층은 직장을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해온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은퇴 이후 관계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고립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준비가 필요하다.
취미 공동체 만들기, 지역 활동 참여, 평생학습 프로그램 참여,
걷기 모임, 문화모임 참여 등 특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혼자 버티려는 태도는 오히려 위험을 키울 수 있다.
③ 노년 세대 – 작은 연결을 꾸준히 유지하기
노년층은 건강 악화와 이동 제한으로 인해 쉽게 고립된다.
매일 한 번 전화하기, 경로당 및 복지관 이용, 마을 프로그램 참여,
라디오와 공동체 활동 참여, 디지털 교육 받기처럼 작은 연결이라도 꾸준히 유지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노년층에게는 “누군가 자신의 안부를 기억하고 있다”는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
공동체 회복이 필요한 시대
고독사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하는 공동체 과제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은 안부 확인 서비스와 AI 돌봄, 반려식물 사업, 주민 관계망 사업 등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은 사람의 관심과 연결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하는 일, 동네 가게에서 안부를 묻는 일,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하는 작은 행동들이 관계를 이어주는 시작이 된다.
최근 공동체라디오와 마을미디어 활동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의 목소리는 관계를 만든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다시 사회와 연결된다.
특히 시니어와 1인가구에게 공동체 미디어 활동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활력과 사회적 관계 회복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혼자 살아도 혼자 남지 않기 위해
현대사회에서 외로움은 특별한 감정이 아니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의 감정이다.
하지만 외로움이 단절이 되고, 단절이 고립이 되며, 결국 삶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고독력을 키운다는 것은 혼자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돌보고, 타인과 연결되며,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혼자 살아가는 시대일수록 더 필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은 연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연결은 제도가 아니라 “잘 지내세요?”라는 짧은 안부 한마디에서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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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0※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행사 포스터
안전하게 산다, 그래서 안산이다
안산(安山). 사람들은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안 산다, 안 산다' 하면서도 결국 사는 곳이 안산이라고.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뭔가 씁쓸한 진실이 담겨 있다. 집값이 싸서, 공장이 가까워서, 달리 갈 데가 없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모여든 사람들이 만든 도시. 그러나 나는 이 이름을 다르게 읽고 싶다. 안전하게(安全하게) 산다. 안전하게 살고 싶어서 모인 사람들의 도시. 그것이 안산이어야 한다, 그래서 5월 9일의 행진은 말하고 있었다.

두갈래의 물줄기
오후 세 시, 두 갈래의 물줄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원고 앞 원고잔 공원 입구에서 한 줄기가, 중앙동 월드코아 광장에서 또 한 줄기. 바람이 조금 불었지만, 따뜻한 봄볕이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깃발을 들고 있었다. 깃발이란 원래 선언이다. 내가 여기 있다는, 내가 이것을 원한다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라퍼커션의 드럼 소리가 먼저였다. 타악기의 진동은 공기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슴팍을 두드리고,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무릎을 움직이게 한다. 사람들이 걸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이윽고 자연스럽게, 마침내는 즐겁게.
선두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배치가 아니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안전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 한마디 없이 그 줄 세움이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 뒤로 시민들이 이어졌고, 후미에는 노동자들이 든든하게 받쳤다. 안산시청 앞에서 두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그것은 이미 강이었다.

행진
우산 하나의 힘
나는 깃발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손으로 만든 깃발, 글씨를 써넣은 깃발, 그림을 그려 넣은 깃발. 깃발 컨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은 일동 지역아동센터가 만든 '우산 깃발'이었다. 우산. 비바람으로부터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그 단순하고 완벽한 상징. 어른들이 수십 장의 기획안과 정책 문서로 표현하려 했던 것을 우산 하나로 해냈다.

안전이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비가 올 때 곁에 우산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혼자 비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산업단지에서 일하다 다친 이주노동자에게 말이 통하는 안내가 있다는 것. 노후 건물에 혼자 사는 노인에게 누군가의 시선이 닿는다는 것. 장애인이 휠체어를 밀며 이 도시의 어느 골목이든 막힘없이 갈 수 있다는 것.
이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걸었다.


안산은 희생자 250명이 학교에 다녔고, 골목에서 뛰어놀았다. 10년 넘는 세월 동안 안산은 세월호의 도시였다. 슬픔의 도시, 기억의 도시. 그러나 안산 시민들은 슬픔에 머물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물었다. "세월호 이후 안산은 정말 안전해졌는가." 기억이 기억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고. 질문은 행동이 되었고, 행동은 130개의 지역 주체가 모인 시민추진위원회가 되었다. '304개의 노란 테이블' 시민대토론회가 되었고, 마침내 다섯 가지의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 되었다.
이제 안산은 세월호의 도시가 아니라, 안전의 도시로 거듭나려 한다. 슬픔을 동력 삼아, 변화를 향해.
조용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일이 있었다. 시민 누구나 안전사고 위험으로부터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받고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인 '안전권'을명문화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강화하는「생명안전기본법」이 2026년 5월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꼭 12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12년. 그 긴 시간 동안 유가족들은 거리에 섰고, 시민들은 광장에 모였고, 활동가들은 국회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법이란 선언이다. 이제 안전은 국가가 베푸는 혜택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할 권리라고 이 나라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늦었다. 그러나 왔다. 그리고 온 것들은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가 모두 약속의 증인이다
안산문화광장 물의광장. 시장 후보들이 나란히 섰다. 더불어 민주당 천영미 후보, 국민의힘 이민근 후보, 조국혁신당 조안호 후보, 진보당 홍연아 후보. 서로 다른 정당,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섰다.
이주민 대표가 앞으로 나왔다. 언어가 달라도, 국적이 달라도, 이 도시에서 일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똑같이 안전해야 한다고. 장애인 대표가 나왔다. 도시의 턱을 없애달라고, 경사로와 점자블록이 방치되지 않는 도시를 만들어달라고. 노동자 대표가 나왔다. 산업단지에서 매년 반복되는 사고를, 더 이상 개인의 불운으로 처리하지 말아달라고. 시민 대표가 나왔다. 이 모든 요구가 선거철 공약이 아니라, 임기 내내 지켜야 할 약속이 되어달라고.

요구안은 다섯 가지였다.
1. 도시 비전 및 행정계획 수립 - 4.16 정신을 계승한 중장기 안전 전략 마련
2. 「시민안전센터」 설치 - 시민과 소통하며 일상 속 안전 교육을 전담할 기구 마련
3. 안전투자 적극 확대 - 재난관리기금 조성 비율 상향 및 안전 인프라 예산 증액
4. 「안전영향평가」 제도화 - 취약계층의 관점에서 정책의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점검
5. 전담 행정조직 확대 - 분산된 안전 부서를 통합하고 민관 협력 거버넌스 내실화
생명·안전 가치를 담은 도시 비전 및 행정계획 수립. 시민안전센터 설치. 안전 예산과 재난관리기금의 적극적 확대. 안전영향평가 제도화. 생명·안전 전담 행정조직 확대와 민관협력 거버넌스 강화. 어렵지 않은 말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실제 예산이 되고, 조례가 되고, 담당 부서가 생기고, 취약계층의 목소리가 정책 설계 단계부터 반영되는 일은, 누군가 끊임없이 요구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걸었다. 그래서 전달했다.
정치인의 약속이란 언제나 유효기간이 불분명하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광장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이주민과 장애인과 노동자의 손에서 직접 건네받은 요구안을 들고 한 약속은 조금 다르다. 증인이 있는 약속은 그 무게가 다르다. 이날 광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그 약속의 증인이다.

몸은 기억한다
행진이 끝나고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깃발은 접혔고, 드럼 소리는 멎었고, 광장은 다시 평범한 광장이 되었다. 그러나 무언가가 달라졌다. 그것은 도시의 표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변화다.
함께 걸었다는 사실, 같은 방향을 향했다는 기억, 우리가 원하는 것을 큰 소리로 말했다는 경험. 이런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도시란 무엇인가. 건물과 도로와 행정구역의 합산이 아니다.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갖는 책임감의 총합이다. 내 옆집 사람이 오늘 안전한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무사히 집에 돌아가는지, 이주민 아이가 아플 때 말이 통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이것을 묻고, 따지고, 바꾸려는 사람들이 함께 걸었던 5월 9일의 안산은, 그래서 잠깐 더 나은 도시였다.
안전하게 산다. 그래서 안산이다. 함께 걸었던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다.

*2026년 5월, 안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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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3※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변화, 아이들의 삶에 닿다 - 스시히로미 이형락 대표의 일상 속 공익 실천
“그 아이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아이의 ‘첫 초밥’이 제가 만든 것이라면,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익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우리는 공익을 이야기할 때 종종 거창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현장이나 조직화된 캠페인, 혹은 이름이 알려진 활동가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면 공익은 어딘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조금 다른 곳에서 시작됩니다. 의정부의 한 초밥집, 그리고 그곳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는 한 사람의 실천입니다.
스시히로미를 운영하고 있는 이형락 대표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저는 그냥 초밥집 하는 사람입니다.”
짧은 말이지만, 그 안에는 삶의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가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음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준비하고 만들어 아이들에게 건네는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처음, 그냥 지나칠수 없었습니다.
이 활동은 특별한 계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개인적인 기억에서 출발했습니다.
“저도 어릴 때는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시골에서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서울에 와 보니까 다르더라고요.”
그는 장사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초밥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아이들’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아원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구조적인 이유로 지속적인 활동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지역아동센터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고, 그 선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계획보다 마음이 먼저였다는 점입니다. 한 번의 마음이 반복되면서 지금의 활동이 만들어졌습니다.

음식이 아니라 경험을 줍니다.
이형락 대표의 활동에서 눈에 띄는 점은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아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모자를 씌워주고, 직접 초밥을 만들어 보게 하며 ‘1일 요리사’ 상장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돈은 금방 사라집니다. 그런데 경험은 남습니다.”
현재는 여건상 체험을 줄이고 식사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남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해본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그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자기 것을 먹지 않고 할머니께 가져다드리겠다고 싸 가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그는 결핍이 아니라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런 아이를 보면 잘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익활동은 단순히 주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따뜻한 마음을 발견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3년 넘게 활동을 이어오는 이유를 묻자 그는 담담하게 답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초밥 한 접시는 하루, 이틀의 추억이 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웃는 모습은 제 마음속 오래도록 따뜻한 행복으로 남습니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자신에게 더 깊이 남는다고 합니다. 그는 이 감정을 '중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못 갔을 때 미안할 뿐입니다."
실제로 그는 봉사 일정을 먼저 정하고 나머지 일정을 맞추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공익활동이 삶의 일부가 된 것이 아니라, 삶의 기준이 된 모습입니다.

혼자 잘났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형락 대표는 자신의 활동을 개인의 선행으로 보지 않습니다.
“제가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가게 손님들이 함께하는 일입니다.”
손님들이 지불한 금액의 일부가 아이들에게 전달되고, 직원들과 함께 준비하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이 활동은 자연스럽게 공동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같이 하는 거지, 혼자 잘났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 말에는 공익이 개인이 아닌 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그에게 공익의 의미를 묻자 그는 간단하게 답했습니다.
“자기 만족입니다. 그게 아니면 못 합니다.”
공익은 의무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느껴야 이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의 말은 공익활동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자영업자 역시 공익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영업자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미 세금을 내고,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는 현실적인 조건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장사가 잘 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여유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공익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유지되지 않고, 현실과 구조가 함께해야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실천을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초밥 한 접시가 향하는 곳
아이들을 만나온 시간은 이형락 대표의 시선을 조금씩 넓혔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더 많아졌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특히 그는 최근 탈북민에 대한 고민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탈북민분들도 혼자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라도 도와보고 싶습니다.”
이 생각은 별도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온 나눔 속에서 자연스럽게 확장된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초밥을 만들어 주던 경험이 ‘누구를 더 도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그 시선이 더 넓은 사회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즉, 초밥 나눔은 하나의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을 향해 손을 뻗습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는가
이형락 대표는 거창한 변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매달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는가.”
공익은 어쩌면 거창한 일이 아니라, 오래 이어지는 작은 실천일지도 모릅니다. 초밥 한 접시가 세상을 바꾸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 접시가 누군가의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이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 아이의 첫 초밥이 제가 만든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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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1※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평범한 일상이 권리가 되는 안산을 꿈꾸며
안산시 장애인권리보장 정책실현 시민대토론회를 다녀와서
2026년 4월 29일 |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

[ 토론회 순서 ]
좌 장 권달주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센터장)
발 제 안산시 장애인 정책의 현재와 대안
김병태 ((사)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안산시지부 지부장)
사례① 장애인 이동권은 삶이다 — 오성현 (상록수IL센터 동료상담가)
사례② 장애인 학습권 보장하라 — 임영채 (경기IL센터협의회 안산시지부 동료상담가)
사례③ 우리도 일하며 살고 싶어요 — 김문경 (상록수IL센터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 노동자)
사례④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멋에 산다 — 임현수 (전국장애인탈시설연대 경기지부장)
토론① 안산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역할 — 이재민
토론② 장애인 평생교육 — 김선영 (안산나무를심는장애인야학 교장)
토론③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 조례의 필요성 — 조은소리
토론④ 안산시 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과제 — 전유리
토론⑤ 발달장애인 지원 정책, 이동권의 행정 장벽 철폐와 주거 선택권의 확장 — 김정아
토론⑥ 장애인건강보건관리종합계획의 의의와 한계, 안산 지역에서의 실천 과제 — 팔도
종합토론 질의·응답

우리나라에서 휠체어가 다니기 가장 좋은 곳은 어디일까?
정답은 공항이다.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 때문에 공항 바닥은 반질반질하다. 턱도 없다. 경사로도 있다. 엘리베이터가 아주 넉넉하다. 모든 이동 동선이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이건 휠체어 타는 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캐리어를 끄는 비장애인이 불편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씁쓸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오래도록 이런 세계에서 살아왔다.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진 편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조건이 되는 세계. 그러나 그 '다른 누군가'는 처음부터 설계의 이유가 아니었던 세계.
4월 29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안산시 장애인권리보장 정책실현 시민대토론회'는 그 씁쓸함에 정면으로 맞서는 자리였다. 회의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얼굴에는 오래 참아온 사람들 특유의 조용한 단단함이 있었다.

발제를 맡은 김병태 지부장이 첫 말을 꺼냈다. "장애인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헌법과 UN 장애인권리협약이 보장하는 당당한 권리의 주체입니다." 안산에 살아가는 3만 2천여 명의 장애인 시민들이 예산의 효율성이라는 벽 앞에서 더 이상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토론회는 그 선언을 네 개의 삶으로 증명해 보였다. 이동, 배움, 노동, 탈시설. 각각의 이야기는 달랐지만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왜 이것들이 아직도 권리가 아닌가.
로또가 된 외출
이동권 사례를 발표한 오성현 님의 말은 그 선언을 삶의 언어로 번역해주었다.
"어쩌다 시간에 맞게 딱 콜이 잡히는 날에는 정말 로또라도 맞은 것처럼 기분 좋은 날입니다."
하모니콜. 안산시의 특별교통수단이다. 관내 평균 대기시간 28분, 관외 38분. 출퇴근 시간대에는 최대 2시간을 기다린다. 하루 이용 횟수는 4번으로 제한되어 있다. 눈비가 오면 더 오래 기다린다. 오성현 님은 퇴근도 못 한 채 휠체어에서 잠이 든 날이 있다고 했다.
비장애인에게 이동은 그냥 나가는 것이다. 장애인에게 이동은 계획이고, 기다림이고, 운이다. 같은 도시에 살면서, 같은 시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는 이 말을 들으며 한 친구가 떠올랐다. 수어 교실에서 만난 전동휠체어를 탄 그 친구. 회사에 농인 동료가 생겨 수어를 배우러 온다고 했다. 저녁 7시 수업인데 그는 항상 5시, 6시에 와 있었다. 궁금해서 물었더니 오후 4시에 퇴근하자마자 하모니콜을 부른다고 했다. 퇴근 시간대에는 콜이 잘 안 잡힌다고. 저녁도 거른 채 빵 하나로 끼니를 때우며 일찍 오는 게 낫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갈 때는?
9시에는 콜이 더 안 잡힌다고 했다. 밤 11시에 콜이 잡혀서 집에 간 적도 있다고. 추운 겨울, 온기 하나 없는 복지관 입구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러면 일찍 가지, 라고 내가 말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어렵게 왔는데 수업은 다 듣고 가고 싶어요."
추석에는 혼자 전철을 타고 수원 스타필드에 다녀왔다고 했다. 처음으로 혼자 나들이를 한 것이다. 사람이 너무 많아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쳤다. 전동휠체어는 무거워서 아무도 들어줄 수 없다. 보도 턱에 막혀 집으로 돌아간 날도 많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발제에서는 차량 1대당 운전원 2.5명 확보와 일일 16시간 운행 전면 보장, 수도권 즉시콜 시스템 도입, 와상장애인 전용 특별교통수단 도입이 요구됐다. 또한 모든 버스정류장과 보도의 배리어프리 전수조사, 소규모 상업시설 경사로 설치 비용 전액 지원도 제안됐다. 이것들은 요청이 아니라 권리다. 공항 바닥이 반질반질한 것처럼, 당연해야 할 것들이다.

임영채 님이 조용하게 말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데, 우리에게 배움은 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안산에서 장애인이 교육받을 수 있는 공간은 '안산나무를심는장애인야학' 단 한 곳뿐이다. 장애 성인의 54.4%가 중졸 이하의 학력에 머물러 있다.
배움이 닫히면 지역사회로 나가는 문도 함께 닫힌다. 장애인 평생교육지원센터 신설과 문해교육 기본교육과정 지원, 이것은 교육부의 일이 아니라 안산시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다.
권리중심맞춤형공공일자리에서 일하는 김문경 님의 말은 달랐다. 이전 직장에서 그는 늘 눈치를 봐야 했다. 낮은 임금과 비장애인 중심의 환경 속에서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존엄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실현하는 중요한 기반입니다."
토론에서는 안산형 권리중심 맞춤형 공공일자리 조례 제정이 제안됐다. 최중증장애인 100명 고용, 12개월 근로계약, 3년 위탁 보장. 숫자들이지만 그 안에는 사람이 있다.
얼마 전, 수어 통역을 했던 농인 이야기가 생각났다. 공공일자리 주차요금 징수 업무에 농인이 지원했다. 주차장을 오가며 요금을 받는 일이다. 요즘은 카드로 결제하니 말이 필요 없다. 카드 받고, 계산하고, 인사하면 끝이다.
그런데 안 된다고 했다.
수어 통역을 통해 일단 해보고 문제가 생기면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무조건 안 된다고 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안 된다고 했다. 말이 안 들리면 일을 못 한다는, 설명되지 않는 논리. 농인은 말을 못 듣는 게 아니라 다르게 소통할 뿐인데.
공항 바닥이 반질반질한 건 설계의 문제다. 농인이 주차요금을 못 받는다는 건 상상력의 문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너무 많은 곳에서 상상하기를 멈추어 있다.

임현수 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그는 어릴 적 경기도 광주의 '향림원'이라는 시설에서 살았다. 2013년 2월의 어느 밤, 선생님이 장애인 동료들을 벽에 세우고 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역시 빗자루와 글루건 심으로 발바닥과 손바닥을 맞고 발이 부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2015년 다른 시설로 옮겨졌지만 폭력의 그림자는 그대로였다. 시설 밖으로 나가 살고 싶다고 말했을 때, 원장은 욕을 하며 탈시설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마침내 2024년 10월 2일, 그는 세상으로 나왔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제가 결정하고 제가 책임지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매일 느낍니다."
탈시설 5개년 로드맵, 지원주택 조례 제정,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자립생활센터 역량 강화. 이것들이 실현될 때, 임현수 님 같은 사람이 10년을 더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토론회 마지막, 지방선거 후보자가 물었다. 탈시설 비율이 몇 퍼센트냐고. 담당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시설에 있는 사람이 정확히 몇 명인지, 자립을 원하는 사람은 몇 명인지 통계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몇 퍼센트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숫자가 없다는 것은 존재를 세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지 않은 것은 보지 않은 것이다. 보지 않은 것은 없는 것으로 취급한 것이다.

토론회를 끝까지 들어보며 작년에도 했던 말들이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아마, 내년에도 반복될 것이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는 말들이 구호로만 머무는 한.
하지만 멈출 수 없다. 왜냐하면 언젠가 이 질문들이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늘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더 행복하게 살 것인가'로.
공항 바닥이 반질반질한 건 캐리어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처음부터 휠체어를 위해 설계된 도시가 생겨날 것이다. 그 도시에서는 장애인 이동이 로또가 아닌 당연한 일상이 될 것이다. 농인이 주차요금을 받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거창한 미래가 아니다. 그냥 평범한 일상이다. 그 평범함이 모든 사람에게 권리가 되는 안산을, 나는 오늘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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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1※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소리가 비워진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
- 수어 연극 〈영지〉 4기를 보고
2026년 5월 3일 / 모두 예술 극장

모두예술극장 입구
1. 걱정하는 자의 입장
나는 수어통역사다. 동시에 수어로 노래하는 지구인수어공연단의 대표이기도 하고, 극단 유혹에서 무대에 서는 현직 배우이자 작가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하면, 연극도 알고 수어도 안다. 그러니까 이 감상문은 순진한 관객의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하고, 비교하고, 납득하고, 다시 의심한 사람의 기록이다.
수어연극 〈영지〉 4기를 예약했을 때, 내 안에는 기대보다 걱정이 먼저 앉았다. 농인 배우들이 몸을 쓰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건 걱정이 아니었다. 걱정은 다른 곳에 있었다. 대사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까? 수어를 언어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아름다운 춤으로 소비해버리지는 않을까?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질문 하나. 연극이란 장르가 어디까지 수어로 가능할까?
이 질문들을 품고 나는 5월 3일 충정로 모두예술극장으로 향했다. 마치 면접관처럼. 아니, 정확히는 오랜 친구의 첫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처럼 -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90퍼센트지만 그래도 냉정하게 보겠다는 그 마음.

'단지'라는 부사 하나가 이렇게 묵직할 수 있다니. 나는 그 말을 한참 씹었다.

공연 시작 전 무대


출처 국립극단 홈페이지
4. 수어는 언어다 -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증명했다.
막이 오르자 내 눈은 바빠졌다. 수어통역사의 눈은 손을 먼저 쫓는다. 그런데 이 배우들의 몸은 손에서 멈추지 않았다. 손이 말하는 동안 얼굴이 함께 말했고, 몸 전체가 문장이 되었다.
농인 배우들은 판토마임에 가까운 신체 언어와 수어시(手語詩), 즉 수어문학의 형식을 능숙하게 활용했다. 그것은 수어가 단순한 손동작의 나열이 아니라 고유한 문법과 문학성을 가진 언어라는 사실을 몸으로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수어예술감독 이미선님이 인터뷰에서 말한 그대로였다. '나비가 날다'는 문장 하나도 손의 모양과 움직임으로 나비의 섬세한 날갯짓을 다채롭게 형상화할 수 있다고. 이론으로 알고 있던 것을 눈앞에서 보았다.
주인공 영지 역의 박지영 배우는 압도적이었다. 3년 전 이 작품에서 수어 통역을 맡았던 그가, 이번에는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다. 11살 아이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뿜어내는 그를 보면서, 나는 배우로서도 혀를 내둘렀다. 단 1분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 연습실에서 플랭크와 복근 운동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효정 역의 이소별 배우도 인상적이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낯익은 얼굴이었지만, 무대 위에서 그는 달랐다. 순종적이던 효정이 영지를 만나며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을 수어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물 밖으로 나온 어린 물고기가 나에게도 투명 다리가 있었어 하고 외치는 장면'은 수어 특유의 표현력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소리가 없어도 목이 메었다.
조명도 놀라웠다. 모두예술극장의 첨단 조명 장치들이 수어 연기와 맞물리면서 무대를 빛나고 화려하고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시각 언어가 주언어인 무대에서 조명은 단순한 분위기 연출이 아니라 언어의 일부가 된다. 연출이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웃음도 있었다. 어른이 아이를 꾸짖는 장면에서, 영지는 시선을 살짝 피했다가 억울한 듯 다시 눈을 치켜떴다. 청인 아이라면 고개를 숙이겠지만, 농인은 시선을 피하면 대화가 끊긴다. 그 불가피한 눈맞춤이 반항처럼 보이는 농문화 특유의 개그 코드. 농인 관객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나도 웃었다. 이쪽 세계를 아는 사람의 웃음으로.

출처 국립극단 홈페이지
5. 게으른 해설사, 그리고 베리어 프리는 누구의 것인가
한 가지 내내 마음에 걸린 것이 있었다. '게으른 해설사'였다.
수어 연극이라는 본질을 지키면서도 청인 관객을 완전히 내버려둘 수 없다는 현실적 고민이 낳은 존재, 소리꾼 신유진이 무대 한 켠에서 판소리로 간간이 해설을 얹었다. 그것이 나쁘지 않았다. 않았고, 판소리 특유의 질감이 수어 연기와 묘하게 어울렸다. 연출이 적절한 수위를 찾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계속 생각했다. 만약 해설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동안 농인들이 청인의 세계에서 느껴왔던 그 답답함을, 청인 관객들이 잠깐이라도 체감해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언어를 모른 채로 그 세계에 던져지는 경험. 그래도 맥락이 읽히고, 감정이 전해지고, 어느 순간 손짓이 언어로 보이기 시작하는 그 경험. 그것이 사실 이 공연이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 아닐까.
하지만 나도 안다. 돈을 내고 온 관객에게 '장애 체험'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는, 예술가가 평생 씨름해야 할 질문이다. 이번 공연은 그 질문에 나름의 답을 찾았다. 나는 그 답에 80점쯤 주겠다. 나머지 20점은 다음 기수를 위해 남겨두겠다.
그 20점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공연 후 '예술가와의 대화'에서 영지 역의 박지영 배우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지금까지의 베리어프리는 청인 중심이었다. 비장애인이 만든 세계에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방식이었다. 이제는 달라야 한다. 배우도 스태프도 장애인이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베리어프리다.
나는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어통역사로서, 수어 공연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무대에 서는 배우로서 - 세 겹의 마음으로.
6. 여기까지, 그리고 아직 더
〈영지〉는 '장애인도 볼 수 있는 연극'이 아니다. 농인이 주인공인 연극이다. 수어가 장식이 아니라 언어인 무대다. 그리고 그 무대를 보러 온 청인 관객들은, 처음으로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본다. 그 낯섦이 이 공연의 진짜 선물이다.
나는 반짝이는 손들의 박수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소리 없이 흔들리는 두 손이 객석을 가득 채우던 그 순간, 연극이 어디까지 수어로 가능하냐는 내 질문에 무대가 조용히 답했다. 여기까지. 그리고 아직 더 남아 있다고.

관객과의 대화(사회자, 작가-허선혜, 연출-김미란, 악마선생-하재성, 수어통역사)

(수어감독-이미선, 영지-박지영, 소희-금예지, 효정-이소별, 악마선생-양지은, 우지양)
*수어연극 〈영지〉 4기는
2026년 4월 30일부터 5월 10일까지 모두예술극장에서 공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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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