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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웹진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노조하면 왜 남성 노동자를 떠올렸지?

    인터뷰가 계속될수록 내 안에 올라오는 질문이었다. 80년대 마산수출자유지역 여공으로 일하다 TC전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조위원장이 된 사람. 16개월의 옥고를 치른 후, 안산과 서울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장, 서울지부장을 역임한 사람. 고등학교 급식조리원들의 연장근로 수당 2.5배 쟁취하고, 서울 초등돌봄전담사 4시간 시간제 노동자들의 차별 시정 소송을 대법원 승소로 이끈 사람. 김정임 님은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한다.”라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여성 노동운동의 역사였다.

     
     / ⓒ인터뷰이 제공
     

    Q 역대급 폭염에 건강하게 활동하며 일하는 일상이 궁금하다.

    현재 요양보호사로 주 5일 일하고 있다. 요즘 퇴근길에 더워서 서점에 들른다. 책 보며 마음을 식히다가 선선할 때 집에 와서 저녁 먹고, 공원 산책하며 운동한다. 한 달에 한 번 수지 에니어그램 강사 모임에 참여하고, 줌(Zoom)을 통해 화상으로 스님과 책을 읽는다. 인사동에서 써클댄스도 추고 친구와 만나 노래방에서 목청껏 노래도 부른다. 8월에는 딸과 사위들 생일에 부모님 제사까지 집안 행사로 바쁘지만 아주 즐겁게 보내고 있다.

     

    Q 요양보호사로 좀 멀리 출퇴근한다고 들었다.

    영등포에서 마곡으로 출근한다. 돌보는 어르신은 69세 파킨슨병으로 요양 등급 2급이다. 출근하면 제일 먼저 식탁과 의자를 깨끗이 닦는다. 파킨슨병 환자는 거동이 불편해 음식을 자꾸 흘리기 때문이다. 나는 식사 수발하고, 목욕시키고, 빨래 청소 음식 조리까지 한다. 가끔 휠체어로 공원산책도 하고 같이 장도 보고, 수명산 도서관에서 큰 글자 유아용 책을 빌려와 읽어드리거나 색칠 공부, 누워서 하는 요가 동작도 함께 한다.

    왕복 출퇴근 시간만 2시간 넘지만, 서로가 잘 맞아 정성으로 마주하고 있다. 예전에 안산에서 서울로 경기도 전역으로 하루 4시간 출퇴근하며 활동하던 경험이 쌓여서 힘든 줄 모르고 한다. 한 달에 120~150만원 4대 보험 빼면 빠듯한데, 큰 빚 없이 자립해서 감사하다.

     

    Q 강사로 활동한다는 수지에니어그램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소개한다면?

    '수지에니어그램'180장의 카드를 가슴과 양팔에 붙였다가 떼어가며 내가 누구인지, 나답게 사는 게 뭔지 참 나를 찾는프로그램이다. 수산나(수지) 선생님이 대안학교 청소녀들을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 시작했는데 전국에 10개 센터와 해외에 2개센터를 두고 있다. 나는 9번 유형인데,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넓은 품과 조용한 힘이 있는 유형이다. 나를 제대로 알면 나다운 삶을 살게 된다. 2018년부터 지인들에게 성당, 학교, 상담실과 집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눔을 하였고 일하는여성아카데미 교육위원으로 강의해 왔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부담 없이 수지에니어그램을 하는 게 꿈이다.

     
     / ⓒ일하는여성 아카데미
     

    Q 청년 시절 마산수출자유지역 노동자로 들어갔고, 그 지역에서 노동 운동한 걸로 안다.

    나는 거제도 출신이고 15녀 중 셋째 딸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며 당연히 대학에 갈 줄 알고 모범생으로 공부했는데, 어머니가 강하게 반대했다. 남동생을 대학 보내야 한다는 이유였다. 울며 싸우다 결국 대학을 포기했다. 인문계 졸업하고 대학 안 가면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동네 친구를 따라 공장에 취업하러 마산으로 갔다.

    고등학교까지 시켜놨더니 왜 공장에 가냐.”

    내가 공장 간다니까 어머니는 울고불고 말리다가 쌀 한 되박을 싸서 보내주셨다. 마산 수출자유지역에 있는 일본계 전자 회사에 들어가 도장 날인 작업을 했다. 나중에는 임금과 환경이 훨씬 좋은 미국계 다국적 기업 ‘TC 전자로 이직해 본격적인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Q 공장 생활 중 삶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다고 했다. ‘아욱실리움 기숙사가톨릭여성회관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가톨릭고등학교에 다닌 인연으로 살레시오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아욱실리움 기숙사에 들어가 공장에 다녔다. 거긴 수녀님들과 함께 매일 새벽미사를 하였고, 1980년 광주 항쟁 비디오도 거기서 처음 볼 수 있었다. 가톨릭 여성회관에서 이경숙 선생님이 진행하는 여성교실강좌를 들었는데, 내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부모님으로부터 받아온 성차별,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로서 '공순이'라 불리며 받아온 차별이 사회 구조적 문제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알게 된 계기였다.

     

    Q 그러다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7~9월 전국적으로 분출한 노동자들의 노동쟁의와 민주화운동) 당시 하루가 다르게 옆 공장들은 노조를 만드는데 우리 회사만 노조가 없었다. 어느 날 과장이 나를 불렀고, 현장분위기가 시끌시끌하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자 조회대 앞에 모아 놓고, 조용히 시키라며 나한테 마이크를 주었다. 내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여러분 어떻게 할까요? 일할까요? 나갈까요?” 뜻밖에도 모두 나가자!”“나가자!”소리쳤다. 순식간에 1,500명이 넘는 여공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임금 인상하라!” “인간답게 살고 싶다!”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열었다.

    회사는 목요일부터 4일간 휴업을 선포했고 우리들은 분임장 60명이 모여 아욱실리움 기숙사에 모여 밤새워 노조를 결성하였다, 월요일 노조 결성보고를 홍보하러 갔다가 회사 간부들에게 잡혀가 빨갱이라는 욕을 먹고 노조 간부였던 친구 2명과 함께 대구새마을연수 보내졌다. 2주후 회사로 복귀하니 60여명을 모아 놓고 노조강제 해산을 하게 했다. 그리고 기술과와 설비과로 부서이동을 당하였다. 온갖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19885월 비밀리에 여성 동지들과 노조를 재창립했다.

     
      / ⓒ인터뷰이 제공
     

    Q 노조를 와해하려는 구사대의 폭력이 대단했을 텐데 어떻게 계속 싸울 수 있었나.

    노조를 재창립하자 회사는 남자 구사대(救社隊, 노동운동 파괴를 목적으로 회사측이 만든 노동자 조직) 300명을 동원해 무자비한 폭행을 저질렀다. 온몸이 멍들고 집단 구타를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 소식이 창원 지역 남성 노동자들에게 전해지면서 지역 전체의 투쟁으로 번졌고, 결국 회사로부터 노조 인정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위장 폐업을 시도했고, 우리는 기계 출고를 막으며 1년 가까이 공장 점거 투쟁을 해야 했다. 198912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공권력이 투입되어 전원 연행되었고, 나는 업무방해 및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1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마산교도소와 원주교도소 독방에서 꼬박 실형을 살고 19915월에 출소했다.

     

    Q 감옥 생활은 어땠나? 감옥에 가기 전과 후를 비교해 달라.

    내가 감옥에 가기 전 농성장에서 동지들과 농성장 사수팀과 재정팀으로 다양한 재정사업을 했다. 볼펜 판매 양말 판매 대학축제 때 김치전 판매도 하고, 서울 본사 대사관 부산 영사관등을 다녔다. 교도소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독서와 편지쓰기였다. 원주교도소 독방에 홀로 수감되어 너무 외롭고 힘들 때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 답장으로 마음을 나누었고, 출소하는 날 원주교도소 정문으로 그와 TC동지들이 대형 버스로 꽃다발과 두부를 들고 찾아왔다. 그도 나처럼 구속된 경험이 있어 노동자의 삶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던 것 같다. 그 후 1992년에 우리는 결혼했고 두 딸을 낳았다.

     

    Q 경남의 여성 노동 활동가가 어떻게 안산시민이 되었나?

    2003년 남편이 서울에서 일하게 되면서 나를 올라오라 했다. 나는 마산창원 여성노동자회에서 일하며 지역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안산여노 회장과 남편이 먼저 만나 아파트 전세를 얻으니 나도 아이들과 함께 이사와서 다음 날부터 안산여성노동자회로 출근했다. 여성 노동자복지센터와 고용평등상담실을 맡았다. 한부모자녀들과 체험학습 등, 실업계고등학교 노동법·최저임금 내 권리찾기 등 강의활동과 직장 내 성희롱예방교육 강사 활동을 하였다.

    특히 직장 내 갑질과 최저임금 위반으로 힘들어하던 청소 노동자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를 노동부 진정으로 처벌받게 하고, 출산·육아휴직 상담, 홈플러스 매대 노동자 상담으로 수많은 여성 노동자를 노조 조합원으로 연결했다. 한양대 안산캠퍼스 청소미화원 조합원들과는 풍물과 민요를 함께 배우고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 ⓒ인터뷰이 제공
     

    Q 그러다 안산을 넘어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장과 서울지부장이 된 건가.

    안산시흥지부, 부천지부. 영양사지회. 사서지회가 주춧돌이 되어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를 창립하였고 나는 안산여노 고용평등상담실 일과 안산시흥지부장를 겸하다 경기지부 조직국장이 되었다. 이후 경기지부장이 되었다. 안산 한양대 청소미화원 조직과 안산 지역 고등학교 급식조리원들의 처우개선 투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중식·석식으로 하루 4시간 넘게 연장근로를 하는데 학교는 2시간만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하였다. ‘연장근로근로기준법이 바뀌는 시점이었다. 조리원들은 억울해하며 어떻게 하면 일한 만큼 댓가를 받을 수 있는지 상담해 왔다. 공동교섭을 요구했으나 경기도 교육청은 사업주가 아니라며 교섭에 임할 수 없다고 했다.

    1년 가까이 고등학교를 돌며 교섭을 벌인 결과 연장근로 수당을 1.5배가 아닌 2.5배로 받는 단체협약을 타결해 냈다. 또한 서울지부장 시절에는 시간제 돌봄전담사들을 조직하여 4시간 시간제 초등돌봄전담사들의 차별 시정 투쟁을 시작하여 지노위 중노위 지법 고법 대법원까지 가서 차별 시정 판정을 받았고 그동안 차별 받았던 것을 보상받았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억울하면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급식 조리원들도 초등돌봄전담사들도 똘똘 뭉쳐 싸운 결과다. 유능한 김재진 노무사님과 공감 변호사님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연대해 준 덕분이다.

     
     / ⓒ인터뷰이 제공
     

    Q 안산여성노동자회에서의 활동과 연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

    안산여노에서 근무할 때 고용평등상담실 상담이 주 업무였다. 직장 내에서 여성노동자가 받는 성차별과 불합리한 차별에 대한 상담전화를 받고 무료 변호사를 선임하여 행위자인 상사가 처벌받고 억울한 노동자가 제 자리로 돌아갈 때 행복했다. 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이 삭감되니 퇴사했다. 그래도 한 달 한 번 뚜뚜(뚜벅뚜벅 걷기)’ 소모임 회원들과 함께 걷고 여행한다. 늘 일에 쫓기고 바빴지만, 페미니즘 토론토임 이프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줌이라 퇴근 후 할 수 있어 좋다. 무디어지기 쉬운 여성 노동과 성평등 이슈를 다양한 연령의 남녀가 함께 책과 영화로 토론한다.

     
     / ⓒ인터뷰이 제공
     

    Q 평생 여성 노동운동을 해왔고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해 싸워왔는데, 중년에 가장 저임금 돌봄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이런 여성의 노동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20대 때는 공장에서 산업역군이라며 착취당하고, 30~40대에는 IMF를 거치며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는데, 60이 된 지금도 최저임금 수준의 돌봄 노동자다. 그동안 대학원도 나오고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등 자격증을 땄지만 중년 여성노동은 여전히 단시간·저임금 비정규직이다. 급식, 청소, 돌봄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 노동임에도 적정임금도 정당한 대우도 거리가 멀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며 그렇게 싸웠는데 딸 세대마저 2년 계약직을 전전하는 걸 볼 땐 마음이 아팠다.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하는 걸 경험했는데, 세상은 여전히 쉽게 바뀌지 않는구나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요즘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평정심을 찾으려 한다.

     

    Q 현재 삶에 어려움, 또는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말해 달라.

    남편과의 관계가 숙제로 남아 있다. 동지적으로 잘 살 줄 알았는데 그는 지금 나 말고 다른 곳이 좋다고 멀리 떠나 산다. 내가 오래 가슴에 품어온 버킷리스트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10월에 1617일로 친구들과 함께 다녀오게 됐다. 그리고 곧 태어날 첫 손주 만날 날을 설레며 기다리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할 때 가장 당당하고 에너지 넘쳤던 것처럼, ‘수지 에니어그램이라는 좋은 도구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따뜻한 활동을 마음껏 펼치며 살아가고 싶다.

     / ⓒ인터뷰이 제공

     

     

    여공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장까지
    꿀벌

    조회수 113

    2026-08-13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부천청소년인권공동체 세움 활동가 이계은 님을 만났다.

    이계은 활동가는 대학생 시절 학보사에서 글을 썼다. 어느 날, 시민단체인 부천연대 활동가가 찾아왔다. 청소년 언론학교를 준비하는데 이 활동가가 대학 신문기자로서 자원봉사자로 참여해주길 요청했다. 비청소년인 이계은 활동가 삶에서 청소년을 만날 첫 계기였다. 이계은 활동가는 ‘포로리’라는 별명으로 청소년을 만났다. 포로리는 청소년을 만나며 자신의 꿀꿀했던 청소년 시절을 회고하기 시작했다.

     
      / 2017년 세움 창립 기념식 ⓒ에디터 연두

     

    포로리는 ‘부천청소년IT기자단 놀토’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청소년들과 함께 ‘부천시청소년인권공동체 세움’을 창립했다.

    포로리는 청소년 시절, 삶은 불안정했고 그 불안을 해석할 자기 언어가 없었다. 학교 교사나, 부모, 사회가 규정하는 청소년의 모습만 둥둥 떠다녔다. 그건 지금 청소년들도 비슷하다. 그래서 부천시청소년인권공동체 세움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자기 언어를 갖는 것’이다. 이를 위해 비청소년이 먼저 청소년 이야기를 듣는다. “원래 그래”, “그럴 때야, 괜찮아”라며 이야기를 허투루 넘기지 않고 귀하게 듣는다. 청소년은 말하고 또 말하면서 자기 삶을 자기 언어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기 언어를 가진 세움 청소년들과 비청소년들은 작년에 영화 상영회를 열었다. 11월 3일 학생의날을 기념하며 부천노동영화제에서 한 꼭지로 ‘3학년 2학기’를 상영했다. 상영 후에는 세움 청소년들이 자기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 행사를 진행했다. 포로리는 “청소년은 주인공이 되기 위해 거쳐 가는 시기로 여겨지지만, 토크 행사에서는 그들이 주인공이었고 그들의 삶을 그들의 언어로 타인에게 들려주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 2025년 노동영화제 주관 ⓒ에디터 연두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선 여러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다. 행사를 알리고 장소를 섭외하고 음향과 각종 기기를 만진다. 그런 노력은 보통 유명하거나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 쏠리기 마련이다. 이 행사는 달랐다. 유명하지 않은, 입시를 준비하거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준비해 가는 청소년들이 무대 주인공이 되어 발언권과 관객의 집중을 독점했다. 그것은 관객으로 온 청소년과 비청소년, 그리고 무대에 서 있는 청소년에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기존 사회가 청소년에게 부여하는 위치성에 어긋나는 것이었고, 변화의 씨앗이었다.

    세움에 회원이 늘 북적북적했던 것만은 아니다. 7년 전에는 입시제도의 변화,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점점 모이지 않게 되었다. 입시제도의 변화 측면에서는 학교 밖에서 하는 활동(자원봉사 등)이 입시에 쓸모없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청소년들은 세움을 찾아오지 않았고 양육자 또한 내 자녀가 입시에 도움이 안 되는 세움에 가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새로운 회원들이 등장하지 않았고, 기존 회원들이 학교를 졸업하면서 분위기는 어두워졌다. 포로리는 청소년이 다양한 경험을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입시제도에서 그런 다양성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 세움은 밥 모임을 시작했다. 청소년과 만나는 공간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었다. 밥을 짓고 먹으면서 포로리는 생각했다. 청소년이 자기 힘을 가지려면 사회와 어른으로부터 어떤 정성과 힘을 받아야 하는데, 밥을 주는 것도, 그런 에너지를 주는 방법이다. 그래서 포로리는 더 열심히 밥을 차려 함께 먹었다. 지금은 밥을 같이 차려 먹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공동체 활동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밥은 주문해서 먹는다. 지금 세움은 카메라로 소통하는 사진 모임을 하고 있고, 글로 소통하는 언론학교를 시작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포로리와 함께 걸어온 ‘부천청소년인권공동체 세움’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세움을 지켜온 포로리는 이계은이라는 사람의 일부일 뿐이다. 활동가라는 타이틀 하나로 다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이계은 님은 삶의 여러 자리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깊이 있게 쌓아왔다.

    이계은 님은 본인을 ‘책을 출간했으며 육아를 전담하는 불안정 노동자이자 활자 중독자’로 소개한다. 두 아이를 키우고, 노동인권 강사이며, 자기 언어로 난임 경험을 써 내려간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계은 님은 노동인권을 청소년에게 가르친다. 청소년이 듣고 싶은 수업을 하기 위해 청소년의 언어를 공부하고, 청소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다. 청소년 대상으로 강의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잘 소통하고 싶은 청소년과 교육 현장에서도 계속 만날 수 있기에 덕업일치인 셈이다.

     
      / 노동인권 교육 현장 ⓒ에디터 연두

     

    또한, 난임을 당사자의 언어이자 페미니즘 시각으로 바라보는 에세이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를 출간했다. 이계은 님에게 난임은 삶에서 몸도 마음도 고된 시간이었다. 임신 성공 수기 말고는 난임 당사자의 서러움이나 고통에 관해 참고할 텍스트는 너무 적어서 더 외로웠다. 그 어려움을 풀기 위해 익명성을 두고 블로그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아이를 출산했지만, 난임 시기에 본인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들과 대답, 이런저런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공적인 목소리로 표현하고 싶었다. 난임 시절에 외로웠던 나를 생각하며,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다.

    활동가이자 양육자이고, 작가이자 강사라는 여러 역할을 소화하는 건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이계은 님은 그것을 ‘숨구멍이자 변명거리’라고 표현했다. 양육자로서 자기 욕구와 아이들의 필요가 갈등하고 협상하며 큰 중압감을 느낄 때, 작가 이계은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숨구멍을 가진다. 활동가로서 자기 자신에게 기대하는 성취나 성과를 이룰 수 없을 거라는 꿀꿀한 기분이 들 때면 두 아이의 양육자 이계은이 변명거리가 되어준다.

     
      / 2024년 출간기념북토크, 첫째 아이가 이계은 작가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는 모습 ⓒ에디터 연두

     

    이계은 님은 여러 역할로 벅찰 때 ‘내가 활동가이자 양육자로서 살아가지 않는다면, 과연 내가 쓸 자기 언어가 있었을까?’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서로 시간을 내어달라며 역할끼리 충돌하지만, 그 역할들이 서로 보완과 성장의 기제로 작동한다. 더 나아가 작가 혹은 읽는 사람으로서 부족한 시간임에도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으니까 더 읽고 싶고 더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다층적인 정체성을 가지고서 자기 삶을 글로 표현하는 사람들의 글을 더 찾아서 읽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직장인이면서 작가였던 조지 오웰, 아이 다섯을 키우면서 글을 쓴 박완서의 글처럼 말이다. 이계은 님 또한, 활동가로서 여러 모습의 맥락을 가지고 조율하면서 협상하면서 자신을 완성하고 있는 과정일 것이다.

    이계은 님에게 앞으로의 꿈에 대해 질문했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동지를 만나고 싶다. 좋은 관계를 만난다면 뭐든 활동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활동가로서 대답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곧, 지금 하는 것들을 잘 해내고 싶다는 말이 뒤따랐다. 갈등하면서도, 숨구멍이 되고, 성장을 촉구하는 역할들, 그 자체가 이계은 님의 자기 언어였다.

    이계은 님은 여러 정체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협상하며 자신만의 언어를 쌓아가고 있었다. 단 하나의 직함이나 역할로 정의되지 않는 삶, 그 어지럽고도 치열한 과정 자체가 자기 언어를 만드는 여정임을 깨닫는다.

     

    삶의 수많은 역할 속에서 오늘도 스스로의 언어를 찾기 위해 애쓰는 모든 이들에게,
    이계은 님의 이야기가 작은 숨구멍이자 따뜻한 응원이 되길 바란다.

     

    밥을 짓고 글을 쓰며 자기 언어를 엮어가는 청소년 인권 활동가를 만나다
    연두

    조회수 139

    2026-07-30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도입 기부와 거래 사이, 3의 길

    기부와 소비, 둘 중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영역이 있다. 누군가에게 돈을 보내지만 그 대가로 무언가를 받는다. 마음은 기부자의 것이지만, 손에 쥐는 것은 소비자의 것과 닮았다. 이 어중간한 자리에 보상형 크라우드펀딩이 있다.

     

    한국의 공익 모금 생태계를 둘러보면 익숙한 두 갈래 길이 보인다. 하나는 카카오같이가치나 네이버 해피빈처럼 순수하게 기부금을 모으는 길이다. 후원자는 돈을 보내고, 그 대가로 받는 것은 영수증과 마음의 평안뿐이다. 다른 하나는 텀블벅이다. 이곳에서는 후원이 곧 거래처럼 보인다. 돈을 보내면 에코백이 오고, 책이 오고, 한정판 굿즈가 온다.

     

    그런데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겉보기에 가장 상업적으로 보이는 텀블벅이, 때로는 가장 순수한 기부 플랫폼보다 더 강력하게 공익 프로젝트를 키워내곤 한다.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디자인 프로젝트가 전국적 화제를 모으고, 부상 소방관을 돕기 위해 만든 가방이 입소문을 타고, 작은 사회적기업이 텀블벅 펀딩 하나로 브랜드의 첫발을 뗀다. 보상이라는 거래의 외피를 두른 플랫폼이 어떻게 공익의 동력이 되는지, 그 구조를 들여다본다.

     

    2. 텀블벅이라는 플랫폼 창작의 놀이터에서 시작된 길


     / ⓒ텀블벅
     

    텀블벅은 2011, 국내에 마땅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가 없다는 이유로 직접 만들어진 플랫폼이다. 출발은 예술과 문화였다. 영화, 음악, 출판, 디자인, 게임처럼 창작자가 무언가를 만들고 싶지만 자금이 없을 때, 그 아이디어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미리 돈을 보내고 완성된 결과물을 받는 구조였다.

     

    텀블벅의 성장 곡선은 가파르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누적 후원금 100억 원을 돌파했고, 20158월부터 1년 사이에만 50억 원이 더 쌓이며 빠르게 가속이 붙었다. 이후 성장세는 더 거세졌다. 20239월 기준으로는 5만여 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펀딩에 성공했고, 누적 후원 금액은 3,000억 원을 넘어섰다. 리워드형 크라우드펀딩 업체로는 국내 최초로 누적 후원금 500억 원을 달성한 곳이기도 하다.

     

    이 성장의 비결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로 커뮤니티의 밀집도다. 텀블벅은 초기부터 외형적인 마케팅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30만에서 40만 명에 달하는 회원들의 단단한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성과를 쌓아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 초기 다른 플랫폼들이 마케팅이나 프로젝트 수주 경쟁에 매달리는 동안, 텀블벅은 결제 시스템의 편의성과 예약 결제 방식의 개발에 주력했다. 오직 보상형 펀딩만으로 이런 성과를 냈다는 점이 특히 주목받는 지점이다.

     

    텀블벅의 수수료 구조도 이 플랫폼의 성격을 보여준다. 창작자는 모금이 확정된 날로부터 7영업일 안에 서비스 수수료 5%와 결제 대행 수수료 3%를 제외한 금액을 정산받는다. 다른 보상형 플랫폼인 와디즈가 7~14% 수준의 수수료를 부과해온 것과 비교하면, 텀블벅의 구조는 상대적으로 창작자에게 유리한 편이다.

     

    3. 보상형이라는 설계 '교환'이 공익을 끌어당기는가


     / ⓒ텀블벅

     

    텀블벅의 펀딩 방식이 다른 공익 플랫폼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모금의 목적 그 자체에 있다. 텀블벅 헬프센터는 이 차이를 명확히 규정한다. 텀블벅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개인이나 단체에 전달할 순수 후원금을 모으는 목적의 프로젝트는 진행할 수 없다. 텀블벅의 미션은 어디까지나 창조적인 시도를 위한 자금을 모으는 것이고, 기부금 모금처럼 성격이 다른 프로젝트는 애초에 플랫폼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제약은 역설적으로 텀블벅 공익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만들어낸다. 텀블벅에서 성공하는 공익 프로젝트는 반드시 '무엇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단순히 어려운 이웃을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메시지를 담은 구체적인 창작물, 즉 티셔츠, 가방, , 영상 같은 결과물을 함께 제시해야 펀딩이 가능하다.

     

    이것이 보상형 펀딩의 진짜 힘이다. 후원자는 두 가지 동기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 사회적 가치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과, 손에 쥘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싶은 마음이다. 다만 이 관찰은 '연구 동향 분석' 논문 자체의 결론이라기보다, 참여 동기를 다룬 개별 실증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경향에 가깝다. 실제로 이선희·이상윤(2023)의 국내 크라우드펀딩 연구 동향 분석은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33개 학술지에 실린 204편의 논문을 종류·성과·해외·분야별·기타의 다섯 갈래로 정리한 문헌 고찰로, 국내 크라우드펀딩 연구가 이미 상당한 규모로 축적돼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매력적인 리워드는 그 이타적 동기를 행동으로 옮기게 만드는 마지막 한 걸음의 역할을 한다.

     

    이런 구조적 특징 때문에 텀블벅에서는 '공익 목적과 창작이 결합된 프로젝트'라는 독특한 장르가 형성됐다. 위안부 피해자를 후원하기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 '기억+소녀 나비 티셔츠'가 대표적이다. 단순한 모금이 아니라 티셔츠라는 창작물을 매개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금이 모이는 구조였다.

     

    4. 실제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 메시지가 상품이 될 때


    텀블벅이 직접 개최한 '소셜 임팩트를 위한 텀블벅 크라우드펀딩' 설명회는 이런 공익 프로젝트의 성공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바 있다. 20191월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약 60명의 참석자가 모여 공익적 성격의 크라우드펀딩 노하우를 공유받았다.

     

    이 자리에서 소개된 대표적 사례가 '작은 소녀상' 프로젝트다. 평화의 소녀상을 모티프로 한 이 프로젝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슈에 대한 관심을 전국적으로 환기시킨 성공 사례로 꼽혔다. 또 다른 사례는 '러닝타임30'이다. 부상당한 소방관들을 지원하기 위해 낡은 소방복 원단을 재활용해 가방과 지갑을 만든 이 프로젝트는, 버려질 운명이었던 소방복에 새로운 쓸모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소방관 처우 문제에 대한 공감을 끌어냈다.

     

    비영리 영역에서도 비슷한 구조를 가진 사례가 있다. 사회적기업 마리몬드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그림을 활용한 에코백, 뱃지, 휴대전화 액세서리 등을 리워드로 제공하며 펀딩과 사업을 연계해온 모범 사례로 꼽힌다. 더나은미래의 비영리 모금 콘텐츠 기획 시리즈에서도,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리워드를 갖춘 것이 마리몬드 펀딩의 핵심 성공 요인으로 분석됐다. 순수하게 선의만으로 후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리워드를 받을 수 있는지에 따라 참여 여부를 고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텀블벅에서 성공한 공익 프로젝트들이 사회적 메시지와 매력적인 결과물을 동시에 설계했다는 점이다. 메시지만 있고 갖고 싶은 결과물이 없으면 펀딩으로 이어지기 어렵고, 결과물만 매력적이고 메시지가 빈약하면 화제성을 만들기 어렵다. 이 둘을 함께 설계하는 것이 텀블벅형 공익 펀딩의 핵심 역량이다.

     

    5. 카카오같이가치·해피빈과의 비교 구조가 다른 세 갈래 길


     / ⓒ카카오
     

    한국의 온라인 공익 모금 생태계를 구성하는 세 플랫폼, 텀블벅과 카카오같이가치, 네이버 해피빈을 나란히 놓으면 각자의 설계 철학이 뚜렷이 드러난다.

     

    카카오같이가치는 2007년부터 운영되어온 카카오의 사회공헌 플랫폼이다. 누구나 공익 프로젝트를 위한 모금함을 직접 개설해 모금받을 수 있는 구조이며, 최근에는 일회성 기부를 넘어 매달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매달기부'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같이가치의 독특한 지점은 이용자의 참여 자체가 기부로 이어지는 구조다. 사이버 머니 없이도 댓글, 공감, 공유 같은 참여 행동을 하면 카카오가 대신 건당 100원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후원자가 직접 돈을 내지 않고도 기부에 동참하는 진입장벽 낮은 모델을 운영한다. 모금 수수료는 최종 모금액의 7% 수준이다.

     

    네이버 해피빈은 2005년 국내 최초의 온라인 기부 포털로 시작했다. ''이라는 사이버 화폐를 통해 후원자가 직접 기부에 참여하거나, 기업이 콩을 후원해 네티즌들이 대신 기부할 수 있게 하는 독특한 생태계를 만들었다. 해피빈 안에는 '공감펀딩'이라는 별도의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도 있는데, 사회문제 해결 활동이나 공익적 창작 활동, 소셜벤처 등 공익적 의미가 있는 일이라면 단체와 개인 모두 펀딩을 진행할 수 있다. 다만 일반 모금함 개설은 1년 이상의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증이나 사업자 등록증을 갖춘 단체로 자격이 제한된다.

     

    세 플랫폼의 구조적 차이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자금의 성격이다. 같이가치와 해피빈의 기본 모금함은 순수한 기부금을 모은다. 후원자는 대가 없이 돈을 보낸다. 반면 텀블벅은 구조적으로 '제작비'를 모은다. 후원자가 보내는 돈은 어떤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자금이고, 그 결과물이 후원자에게 돌아간다.

     

    둘째, 참여자의 자격이다. 해피빈의 일반 모금함은 등록된 비영리단체만 개설할 수 있다는 진입장벽이 있다. 텀블벅은 이런 법인격 제한이 상대적으로 느슨해, 개인 창작자도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프로젝트를 직접 시작할 수 있다. 같이가치 역시 누구나 모금함을 개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입장벽이 낮다.

     

    셋째, 참여의 동기 구조다. 같이가치는 참여 행동 자체에 보상을 거는 방식으로 부담 없는 일상적 참여를 유도한다. 해피빈은 신뢰할 수 있는 단체를 통한 전통적 기부 모델에 가깝다. 텀블벅은 결과물에 대한 욕구와 사회적 공감을 동시에 자극하는 구조로, 세 플랫폼 중 가장 적극적인 의사결정과 더 큰 단위의 후원 금액을 끌어내는 경향이 있다.

     

    6. 팬덤과 커뮤니티 강력한 연결이 자금이 되는 메커니즘

    텀블벅이 공익 프로젝트의 스케일업에 유리한 이유 중 하나는 이 플랫폼이 가진 커뮤니티의 성격이다. 텀블벅은 30만에서 40만 명에 달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외부 마케팅이 아니라 플랫폼 자체에 대한 신뢰와 애착으로 모인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올라오면 이 커뮤니티가 자발적으로 반응하고, 그 반응이 다시 입소문으로 확산되는 구조다.

     

    이런 커뮤니티 구조는 공익 프로젝트에 특히 유리하게 작동한다. 일반적인 상업 광고는 낯선 소비자를 설득해야 하지만, 텀블벅의 공익 프로젝트는 이미 사회적 가치에 관심이 많고 새로운 시도를 응원하려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 앞에 놓인다. 창작과 공익이 결합된 메시지는 이 커뮤니티의 정체성과 맞아떨어진다.

     

    여기에 더해 보상형 펀딩 특유의 구전 효과가 있다. 후원자가 받은 리워드는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그 프로젝트에 동참했다는 증거물이 된다. 마리몬드의 에코백을 든 사람, 작은 소녀상 프로젝트의 굿즈를 가진 사람은 일상 속에서 그 메시지를 계속 노출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기부금 영수증은 서랍 속에 남지만, 리워드는 가방에 매달리고 책장에 꽂힌다. 이 가시성의 차이가 공익 메시지의 생애주기를 늘린다.

     

    물론 이런 커뮤니티 기반 모델에는 그늘도 있다. 텀블벅은 20223월 이전까지 결제 실패분에 대한 수수료까지 창작자가 부담해야 하는 불합리한 정책을 운영해 비판을 받은 바 있고, 프로젝트 심사가 상대적으로 느슨해 부실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프로젝트가 섞여 올라온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공익을 표방한 프로젝트라 해도 텀블벅이라는 플랫폼 자체가 모든 프로젝트의 진정성을 보증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후원자와 창작자 모두가 인지해야 할 부분이다.

     

    7. 초기 자금 확보를 넘어 스케일업의 다음 단계

     

    보상형 크라우드펀딩이 공익 프로젝트나 소셜벤처에 줄 수 있는 가치는 단순히 초기 자금을 마련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국내 창업 분야 크라우드펀딩 연구는 창업 분야의 펀딩이 문화예술 프로젝트와 달리 일회성 콘텐츠 제작이 아니라 사업의 개시 자체에 필요한 기반 자금을 모은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 번의 후원금 모집으로 상품이나 서비스 생산의 기반을 다지고 나면, 이후에는 그 사업 수익을 통해 자생적으로 운영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은 후원금은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장기적인 파급 효과를 가진 종잣돈이 될 수 있다.

     

    또한 크라우드펀딩 과정 자체가 시장 검증의 역할을 한다. 이는 연구 차원에서도 뒷받침되는데, 크라우드펀딩이 단순한 자금 조달 수단을 넘어 홍보·마케팅, 테스트 베드, 사회적가치 캠페인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된다는 점은 국내 크라우드펀딩 연구 동향 분석에서도 확인된 특징이다. 실제로 한 브랜드 사례에서는 크라우드펀딩을 단순히 자금 조달 수단으로만 쓰지 않고, 시제품 단계에서부터 수십 명의 후원자로부터 직접 피드백을 받는 소통 창구로 활용해 제품력을 검증받은 사례도 확인된다. 공익 프로젝트와 소셜벤처도 마찬가지다. 펀딩 과정에서 어떤 메시지에 사람들이 반응하는지, 어떤 결과물에 후원이 몰리는지를 통해 이후 사업 방향을 가다듬을 수 있는 살아있는 데이터를 얻게 된다.

     

    다만 모든 텀블벅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목표 금액을 최소 수준으로 설정하고도 후원자를 모으지 못해 실패하는 프로젝트가 적지 않으며,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타겟 후원자층에 대한 이해 부족이 꼽힌다. 공익 프로젝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좋은 취지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취지에 공감할 구체적인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어떤 리워드에 반응할지를 명확히 설계해야 펀딩으로 이어진다.

     

    8.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

    텀블벅의 보상형 크라우드펀딩 모델에서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가 참고할 수 있는 지점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공익 메시지에 '갖고 싶은 형태'를 부여하는 기획력이 필요하다. 작은 소녀상이나 러닝타임30, 마리몬드의 사례가 보여주듯, 좋은 취지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취지를 담을 구체적이고 매력적인 결과물을 함께 설계하는 역량이 펀딩의 성패를 가른다. 경기도 내 공익단체와 소셜벤처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단순한 호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갖고 싶어 할 결과물로 번역하는 기획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둘째, 플랫폼별 특성에 맞는 모금 전략의 분리가 필요하다. 순수한 운영 자금이나 위기 대응 자금이 필요하다면 해피빈이나 같이가치 같은 기부형 플랫폼이, 창작물이나 상품을 매개로 한 사업화 초기 자금이 필요하다면 텀블벅 같은 보상형 플랫폼이 더 적합하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단체들에게 모금 전략을 컨설팅할 때, 이 구조적 차이를 명확히 안내하는 것이 자원의 효율적 배분으로 이어진다.

     

    셋째, 커뮤니티는 모금이 끝난 뒤에도 자산이 된다. 텀블벅의 후원자는 한 번의 거래로 끝나지 않고, 리워드를 통해 프로젝트의 메시지를 일상에서 계속 노출시키는 사람이 된다. 경기도의 공익 프로젝트들도 펀딩 종료를 캠페인의 끝이 아니라 후원자 커뮤니티 형성의 시작으로 바라본다면, 한 번의 펀딩이 장기적인 지지 기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무리 거래의 외피, 연결의 본질

    겉으로 보면 텀블벅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거래다. 돈을 보내고 물건을 받는다. 그러나 그 거래의 안쪽을 들여다보면, 위안부 피해자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다친 소방관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작은 사회적기업의 첫걸음을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보상형 펀딩이 증명하는 것은, 공익과 거래가 반드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잘 설계된 보상은 막연한 선의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다리가 된다. 에코백을 메고, 가방을 들고,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 그것이 모금함에 적힌 숫자보다 더 오래, 더 멀리 메시지를 실어 나른다.

     

    경기도의 31개 시·군에서 활동하는 공익단체와 소셜벤처들에게도 같은 질문이 던져진다. 우리의 메시지를, 사람들이 매일 손에 들고 다니고 싶어 할 무언가로 만들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다음 세대의 공익 펀딩 사례를 만들어낼 것이다.

     
    / 공익활동 펀딩 안내서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텀블벅 보상형 크라우드펀딩과 공익 프로젝트 스케일업 전략
    엄프로

    조회수 263

    2026-06-30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문화도시, 유네스코도시가 되기 위해 문화 활성화에 이바지해온 경기도 부천시


    안녕하세요. 2026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Hana입니다.

    학창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거주하는 동안 부천에 거주하면서 가장 많이 봤던 문구는 바로 <문화도시>였습니다. 이에 맞게 부천시에서는 전국의 영화-만화 산업의 진흥을 위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만화축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까지 3대 축제를 중심으로 문화 산업을 활성화했으며 지역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진행해왔습니다. (시민들이 주역이 되는 축제 다락, 미디어를 활용해 문화-예술 범위를 확장하는 시민미디어교육 및 축제 등) 이처럼 부천시 내에서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 덕분에 부천시는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유네스코 창의도시는 문학, 공예 및 민속예술, 미디어아트, 영화, 디자인, 음식, 음악, 건축까지 총 8개 분야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주요 전략으로 창의성을 반영하는 도시를 지정하는 유네스코의 사업을 의미합니다. 그중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는 이러한 도시의 영향을 통해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성공하는 것이 목표이며 전 세계 중 6개 대륙, 44개 국가, 63개 도시가 지정되어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고, 광범위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부천시의 경우, 동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가입했다는 점, 세계에서는 21번째로 지정되었다는 점, 그리고 평화와 인권 존중에 초점을 두어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을 추구한다는 걸 인정받았다는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 부천시와 부천문화재단에서 관련 산업만 잘 진행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적극적-열정적으로 참여하기에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문화도시, 유네스코도시로 알려진 부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부천악기은행>

    그리고 여러 사업들 중 부천문화재단에서는 2026년에 새로운 문화-예술 사업으로 <부천악기은행>을 시작했습니다. 부천악기은행은 경기도 부천시 시민(경기도 부천에 주소를 두고 있거나 소재 학교 및 직장에서 근무하는 경우)이라면 누구나 악기를 통해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공공 대여 서비스입니다. 이에 따라 악기를 처음 시작하고 배우고 싶은 입문자나 초보자 중심의 시민들이 부담 없이 저렴하게 악기를 대여하여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악기는 꾸준히, 조심히 관리해야 하기에 일반 시민들이 관리하기 쉽지 않으며 가격도 비싸기에 일반 국민들이 악기를 이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악기를 활용한 예술 분야가 확대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이를 고려해 악기 구입이 부담스러운 시민 및 청소년들을 위해 공공에서 악기를 확보하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끔 하여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경기도 부천시의 음악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부천문화재단 차원에서 부천악기은행 서비스를 준비했습니다.

     

    <부천악기은행 악기 대여, 적절한 규칙을 통해 원활한 이용을 돕는다.>


     

    부천악기은행은 저렴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으로 다양한 악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2026년을 기준으로 타악기/건반악기/현악기/타악기/국악기를 대여하고 있는데, 부천악기은행은 음악을 처음 시작하려는 초보자들과 입문자들이 부담 없이 다룰 수 있는 대중적인 악기들 중심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현악기, 타악기, 국악기 등 다채로운 종류가 마련되어 있어, 처음 악기를 접하는 시민들도 본인의 취향에 맞는 악기를 폭넓게 선택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피아노처럼 이동이 어려운 무거운 악기는 대여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대여한 악기는 1개월(30) 이용 기간을 중심으로 대여 가격을 매기며 기존 가격 외에 대여한 악기는 1개월(30) 이용 기간을 기준으로 저렴한 대여료가 책정됩니다. 그래도 취약계층을 고려해 부천악기은행에서도 이용요금 감면 혜택과 정확한 환불기준을 정해두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증빙서류를 제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장애인, 노인 등에게 대여료의 50%를 감면하는 혜택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만료일까지 반납하지 않을 경우에는 연체료를 부과하며 악기 파손 및 관리에 대여자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조)


     

    1인당 1개의 악기를 대여할 수 있으며, 기본 대여 기간 1개월에서 시작해 연장을 통해 최대 6개월까지 대여가 가능합니다. 다만, 해당 악기에 대기자가 있을 경우에는 연장이 불가하므로 장기 대여를 계획 중이시라면 대기 현황과 대여 규칙을 미리 확인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무엇보다 악기 재고가 없을 경우에는 대여 기간 연장이 불가하다는 점도 참고해주세요.) 또한, 부천악기은행 신청 홈페이지에서 사용 희망일을 기준으로 최소 2일 전, 최대 14일 전까지 온라인으로 예약신청이 가능합니다. (부천시 통합회원으로 가입한 이후에 부천악기은행 온라인 서비스 이용 가능)

     

    부천악기은행 이용 정보: 주소(복사골문화센터(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장말로 107, 4(상동))), 운영시간(화요일~토요일(일요일 및 월요일과 법정 공휴일에는 휴무), 오전 10~오후 5(, 통상적인 점심시간 오전 12~오후 1시에는 업무가 중단되며 점심시간 이후부터 다시 대여-반납 등 업무를 진행합니다.))

     

    부천악기은행은 방치되고, 버려지는 악기의 새 삶을 부여하는 데에 이바지한다.


    부천악기은행이 있는 복사골문화센터 4층에는 <당신의 나눔이 누군가의 첫 연주가 됩니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문장처럼 부천악기은행을 운영하는 주체는 바로 시민 개인, 단체가 된다는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악기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기타를 배우기 위해 구매하였으나, 바빠지고, 관심이 떨어지면서 어느 순간에는 기타를 쓰지 않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중고로 판매할까 생각해봤지만, 시중에 좋은 제품들이 많고, 다른 중고 물품들과 비교해도 크게 메리트가 없을 것으로 보여 결국에는 버렸습니다.

     

    이를 고려해 부천악기은행에서는 가정, 학교, 단체 등에서 사용하지 않는 악기를 기증받아 공공 자원으로 순환합니다. 기증자의 관점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아 많은 공간을 뺏기는 단점, 관리하지 않을 경우에는 나중에 악기를 사용할 때,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단점보다 지속적인 관리를 확실하게 보장받고, 저렴한 가격에 대여하는 부천악기은행으로 기증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부천악기은행에서는 공공이 관리한다는 관점에서 악기 자체는 개인 및 단체에게서 기증받고, 부천악기은행에 기증한 악기들을 관리-대여하고 있습니다. , 연주가 불가능할 정도의 악기는 기증받지 않고 있으므로 기증 이후에 악기가 원활하게 활용될 수 있는 상태인지 미리 확인하시는 게 중요합니다.

     

    악기 기증자에게는 기증 증서를 발급하고, 복사골문화센터 4층 벽면에 있는 부천악기은행 명예의 전당에 기증 악기 목록 및 이름 기재 혜택을 제공합니다. 이 기재를 통해 악기 공공 기여를 인증할 수 있습니다. (기부자 명단은 부천악기은행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 공공자산으로 편입된 이후에는 기증한 악기를 반환할 수 없으니, 신중하게 생각하고 기증해주세요.)

     

    부천악기은행에서 예술 및 기술을 나누는 활동도 같이 진행합니다.


     

    부천악기은행은 단순히 악기를 대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술을 나누는 교육 활동도 진행합니다. 그 시작은 이달의 악기 워크숍으로 무료로 진행하여 교육생의 부담을 덜어주고, 새로운 악기를 연주해본다는 점에서 문화-예술에 관한 인식을 확대하는 장점이 있으며 경기도 부천시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역시 문화를 나누는 주체가 되므로 서로의 니즈를 충족하는 win-win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부천악기은행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맺은 <부천악기은행 파트너스>


     

    지난 330, 부천악기은행 개소식을 알림과 동시에 시민의 음악 시작을 위해 경기도 부천시에서 활동하는 여러 기관이 모여 <부천악기은행 파트너스>를 결성했습니다. (여기서 <부천악기은행 파트너스>(1) 악기 관리, 교육, 공연 등 실제 사업 운영에 함께하는 실행 파트너 실무협력단 (2) 악기 기증 및 후원을 통해 사업 기반을 지원하는 후원 파트너 기부후원단 (3) 음악교육, 문화 활동에 참여해 문화복지 확산을 함께 만드는 참여 파트너 문화나눔단으로 구성됩니다.)

     

    부천악기은행 개소식을 진행할 때, <부천악기은행 파트너스>의 역할을 체감할 수 있었는데, 악기대여자들은 현장에서 기타, 바이올린, 가야금을 대여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실무자들은 부천악기은행이 가져올 장점을 현장에서 알기 쉽게 소개했습니다. 이후에 부천악기은행에 마련된 데스크, 악기보관실, 악기교육실 공간을 둘러보면서 피드백과 의견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특히 악기보관실에 직접 다녀갔을 때는 악기 보관을 위해 항온항습기를 상시로 가동하는 모습을 통해 악기 관리에 필수불가결인 존재, 공기 질을 크게 신경 쓰는 점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부천악기은행 파트너스>를 통해 부천시립예술단 아드리앙 페뤼숑 상임지휘자가 홍보대사를 맡아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부천시 내 협력 지정악기사, 관내 대학교수, 협회 관계자 등이 지닌 풍부한 실무 경험과 전문 자문을 바탕으로 한층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운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사골문화센터의 경우, 공간 자체가 배리어프리가 보장되어 있기에 누구나 악기를 대여할 수 있다는 장점도 돋보입니다. 복사골문화센터는 복사골스포츠센터, 부천문화재단, 부천시청소년센터 및 부천여성청소년재단 등 여러 기관이 입주하며 경기도 부천시 시민들의 이용률이 높은 생활 공간인데, 부천문화재단이 있는 4층의 유휴 공간을 활용했다는 점, 해당 공간이 엘리베이터 및 경사로가 잘 갖춰졌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공간에 부천악기은행을 마련한 덕분에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부천악기은행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악기은행의 활성화는 문화-예술 활성화라는 공익적 목적을 입증하였다.


    한편, 부천문화재단 부천악기은행이 개설되기 이전에 경기도 화성시에서는 이미 2022년에 화성시 악기은행을 오픈했고, 경기도 오산시에서는 2019년에 전국 최초 악기 전문 도서관이자, 대여가 가능한 시설로 소리울도서관을 시작했으며 경기도 성남시에서는 2016년부터 악기도서관 악기랑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각각 시작한 시기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시민 및 생활권자(학교, 직업 등)들에게 악기를 저렴한 가격에 대여한다는 점을 통해 지역에서 문화를 활성화하려고 합니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악기은행이라는 공공 차원에서 대여하는 공익적인 사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시에서는 제주월드컵경기장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서귀포시 악기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서울시에서는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 및 송파구(사업명: 뮤직스튜디오)에서 악기공유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육 목적으로 제한되긴 하지만, 경상남도교육청 예술교육원 해봄/경상북도교육청문화원 악기뱅크 카테고리/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악기지원센터 및 잠자는 악기 깨우기(학교별 안 쓰는 악기를 이관하는 사업), 서울특별시교육청 체육건강예술교육과 예술교육팀 악기공유마당 사업에서도 대여를 진행합니다.

     

    , 부천문화재단에서 해당 사업을 새롭게 실시했다는 점은 방치되는 악기를 나누는 환경적인 측면, 그리고 이를 활용해 문화를 나눈다는 공익적인 역할 및 영향력이 이미 입증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아직 해당 문화가 활성화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파주시, 수원시 등 문화재단 내에서 공간과 함께 악기를 이용할 수는 있겠으나, 외부에서 활용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기에 지자체마다 상황이 조금씩 다른 점이 원인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모두 공통적으로 지역 내에 문화예술을 활성화하기 위해 악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연주하며 문화의 주체가 되려는 방향, 이를 지원하는 것을 통해 문화의 주체가 되고, 다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양질의 문화 확산으로 이어가기를 희망합니다.

     

     

    <출처>

    https://schoolart.sen.go.kr/musicshare/fus/html/cont0030v.do

    https://www.songpa.go.kr/learn/youth/campus/instrum_lib_rental_list.do

    https://www.nakwon-communityart.or.kr/bbs/music02

    https://chsl.cne.go.kr/msi/cntntsService.do?menuId=MNU_0000000000002024

    https://yeyak.jne.kr/yeyak/main.do?sysId=yeyak

    https://www.gbe.kr/edushare/main.do

    https://artcenter.gne.go.kr/ins/in/ins/requestList.do?mi=11633

    https://service.gne.go.kr/yeyak/tl/tlList.do?insttId=artcenter#none

    https://blog.naver.com/seogwipo-si/223390621039

    https://ilibr.snart.or.kr/

    https://gnews.gg.go.kr/news/news_detail.do?number=202204111500478574C049&s_code=C049

    https://www.gggongik.or.kr/page/archive/archiveinfo_detail.php?board_idx=2348

    http://bucheoncityofliterature.or.kr/site/homepage/menu/viewMenu?menuid=023003001

    https://www.bcf.or.kr/base/contents/view?contentsNo=186&menuLevel=3&menuNo=162

    https://www.bcf.or.kr/bmib/main/view


    안 쓰는 악기, 부천악기은행을 통해 나누어 우리 주위로 확산한 문화
    HANA

    조회수 287

    2026-06-29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2030 여성이 있다면, 사람들은 있는 집 딸이라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 로스쿨생 중 압도적으로 가난해서 국가장학금으로 공부해 변호사 시험 합격증을 받은 사람이 있다.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이 대포통장 사기 사건이었고, 진흙탕 바닥이 인생의 길을 가르쳐 주었단다.
    안산의 새내기 법조인, 정민지 변호사의 꿈과 포부를 들어보자.

     


     

    Q 시간 내 줘서 고맙다. 자기소개부터 부탁한다.

    나는 대한민국 30대 여성이고 한 달 전에 제15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까, 즐거운 상상 속에 지내고 있다. 목회자 부모의 세 자녀 중,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낀 외딸이다. 부모가 나를 고명딸이라며 떠받들어 키우지도 않았고, 오빠랑 연년생이라 쌍둥이처럼 자랐다. 그래서인지 태어난 순서로는 장녀가 아닌데, 현실에서는 ‘K-장녀로 자랐다. 진짜 장녀들이랑 만나면 말이 되게 잘 통하더라. 나 또한 나를 항상 큰딸로 정체화한다.

     

    Q 살면서 지금처럼 신나고 여유 있는 시기가 없었을 거 같다. 축하합니다.

    맞다. 대한변협이 하는 합격자 연수를 들으면서, ‘의식적으로천천히, 내가 가고 싶은 일자리를 찾아보려 한다. 안산시 공무원 3년 하고 2021년 로스쿨에 진학했으니, 지금 5년 만에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려 한다. 공무원은 대학 졸업하고 당장 돈을 벌어야 해서 시작했었지만, 이제는 돌고 돌아 내가 하고 싶은 거, 해야 하는 일, 살고 싶은 삶을 찾았다. 아무 데나 들어가서 대충 시작하기 싫어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찾고 있다. 굉장히 설레고 기대된다.

     

    Q 안산시 9급 일반 행정직으로 3년 일하고 그만두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가정형편 상 취준생으로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어서, 졸업 전에 합격해 놓고 졸업과 함께 일했다. 공무원으로 일하며 내 길을 찾아볼 작정이었다. 민원 업무든 행정사무든 일은 잘 해냈지만 조직 문화가 힘들었다. “이제 공무원 됐으니, 시집만 잘 가면 된다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다. 어린 여성이라고 친절, 애교, 미소 같은 태도 요구를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남자 상사랑 있을 땐 전문 직업인이 아니라 위안을 줘야 할 거 같은, 내가 너무 대상화되는 위치에 놓이더라. 그때마다 뻔뻔하게 받아칠 짬밥이랄까 요령이랄까, 그게 없어서 미치겠더라.

    내 능력에 비해 너무 소박한 보상과 인정만 주어지는 현실에 회의감이 컸다. 누군가의 권력과 위계에 따르기보다 내 목소리를 내며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싶었다. 2019년 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다큐 영화 를 보고 강하게 깨달았다. ‘저런 법조인이 되자. 그러면 내 능력을 발휘하고 합당한 보상을 받으며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겠다.’ 그날 탈출을 결심했다.

     

    Q 청소년기부터 변호사를 꿈꾼 건 아니었나 보다.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하다.

    초등학교 통지표에 용모 단정하고 질서를 잘 지키나 의사 표현이 부족함이라고 적힌 소심한 모범생이었는데, 신기하게 운동할 땐 날아다녔다. 아빠가 형제들이랑 차별 없이 축구, 야구, 배구, 농구에 자전거까지 다 가르쳐줬다. 우리집에서 유일한 사교육으로 수영, 태권도도 배웠다. 덕분에, 나는 운동선수가 될까 한 적도 있다. 몸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는 독보적인 아이였다. 그러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운동선수가 될 사람은 이미 여기 없어야 한다고 툭 던지는 말에 나는 늦었구나싶어 마음을 접고 공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교 비평준화 시절 안산 동산고에 진학했다. 입학하자마자 바닥을 치는 성적에 충격을 받았다. 가장 어려웠던 건 수학이었는데, 1년 내내 슬럼프였다. 1학년을 마친 후 어떻게든 수학을 정복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부모의 교육철학과 경제적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학원이나 과외 없이 공부했던 나에게 선택지는, ‘자기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하기그것뿐이었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겨울방학 내내 수학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고2 첫 모의고사에서 수학을 반타작했다. 좌절감에 울고 있는 나에게 아빠는 공부를 똑바로 안 한 거다라며 비수를 꽂았다. 그 말에 오기가 생겼는지 나는 계속 밀고 나갔다. 지난한 자기 싸움 끝에 수학을 가장 잘하는 과목으로 만들며 정시로 서울의 한 사범대에 합격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는 공부 맛을 청소년기에 익힌 셈이다.

     

    Q 대학 생활과 청소년기 공부는 달랐을 거 같다. 자기 길 찾기는 어땠나?

    모범생으로만 살아서인지, 대학에서 스스로 길을 뚫는 게 무서웠다. 등록금은 국가 장학금으로 해결됐지만 용돈은 벌어 써야 했다. 안산에서 2시간 통학하며 공부하고 알바하느라 늘 시간이 부족했다. 4학년 앞두고, 진로도 안 잡히고, 학점도 별로고, 휴학하고 돈을 좀 벌며 길을 찾고자 했다. 마침, 월급 200만 원에 물류창고 알바 공고가 뜨더라.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엄마가 간암 수술 후 퇴사해 요양 중이었고, 아빠는 투잡을 뛰며 목회했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완벽한 결과를 내놓고 싶다는 강박에 쫓기고 있었다.

    돈에 혹하고, 출입증 등록용이라는 말에 속아, 체크카드와 통장과 비밀번호를 넘겨주고 말았다. 이상하다 싶었을 땐 이미 내 통장이 보이스피싱 대포통장으로 쓰인 후더라. 나도 모르는 사람들 이름으로 수백만 원씩 돈이 들어왔다 빠진 기록을 다음 날 확인했다. 가해자 신분이 되어 버렸다. 빨간 줄이 그어질 대형 사고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 바닥을 경험했다. 이 사건으로 전혀 계획에 없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면서 내 인생의 방향이 급선회했다.

     

    Q 대포통장 사건이, 정민지라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줬나?

    그전까지는 보이스피싱 뉴스를 보면, 사람들이 조심성이 없어서 당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궁지에 몰려 휘말리고 보니, 내 뜻대로 안 되는 삶의 영역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요양 중이던 엄마가 내 소식을 듣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소통이 부재해서 일어난 문제라고 하더라. 혼자 완벽하게 잘하고 결과만 짜잔!~” 보여주려 하지 말고 못난 모습도 나눠야 함을 깨달았다. 통장이 정지되고, 경찰조사를 받고, 검찰에서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결정을 받기까지 반년을 보내며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인생 바닥에 던져질 때 현실을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그 바닥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Q 공무원을 그만두고 로스쿨에 도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나도 로스쿨은 돈스쿨이지 내가 어떻게 가라고 생각했었다. 3년 학비와 생활비 하면 억 단위가 든다. 나는 로스쿨생 중 압도적으로 가난했다. 소득 분위 장학금을 신청할 때 부모 재산이 들어가는데, 우리 부모는 수입과 재산이 바닥이었다. 엄마는 간암 수술 후 퇴사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공부하느라 고정 수입이 없었고, 아빠도 미자립 교회의 투잡 목사였다. 그런데 이 사정들이 역설적으로 완벽히 증명되면서 나는 3년 내내 전액 국가 장학금으로 공부했다. “엄마 아빠 가난한 김에 제대로 가난해서 고맙다.”라고 농담을 즐길 정도였다.

     

    Q 로스쿨 학생들도 사교육(학원 인터넷 강의) 한다고 들었다. 변호사 시험 시장의 현실 이야기와 자기 주도적 공부 과정도 들려달라.

    로스쿨은 변호사 시험(변시) 통과를 위한 입시 학원으로 전락했다고들 한다. 대부분 사법시험 출신이거나 학계에만 있던 교수들 강의에 대한 만족도가 학원보다는 낮았다. 대다수 학생이 수업 시간에 뒤에 앉아 대형 학원 인터넷 강의(인강)를 듣거나 학원 교재를 보는 게 현실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고집스럽게 교수님 강의와 책을 붙잡고 독학을 밀고 나갔다. 인강에 쓸 돈도 없거니와, 처음부터 하나하나 스스로 해나가는 공부가 나에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령이란 걸 모르니 법의 1부터 100까지가 다 중요해 보여서 공부 분량이 살인적일 수밖에 없다. 삼수 때까지도 이 방법이 맞나?” 수없이 의심하며 두려움을 늘 끼고 공부했다. 독학 합격은 보편적인 레퍼런스가 없으니, 스스로 실험하고 시도하며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해야 했다. 시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도 완전히 자신할 수 없었는데,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Q 그 억눌린 멘탈을 어떻게 붙잡아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시험 점수가 안 나오면 흔들리다가도 결국 내가 해야 끝나는 싸움이라며 크게 울고 금방 일상으로 돌아왔다. 특히 부모님과 교회 공동체와 토론 모임에서 내 취약함과 어려움을 나눴다. 가족이 무조건적인 안전 기지였다. 그리고 삼수 중에도 매월 3개의 페미니즘 토론 모임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법조계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라, 공부하다 보면 ? 이게 말이 돼?’ 싶은 판례가 많더라. 그런 판례로 쌓인 스트레스를 토론 모임에서 거지 같은 법리들이다!”라고 소리 지르고 날카로운 성평등의 칼을 벼렸다. 멀리 보는 자기주도적 공부였다.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아무래도 나의 엄마다. 내가 속한 여성단체 회원이고 내가 참여하는 토론 모임들의 모임장이기도 하다. 앞에서 말한 영화 를 모녀가 같이 보고 토론했다. 엄마는 너도 저런 길을 갈 수 있다라며, 영화를 내 현실로 끌어와 주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책 읽고 질문하고 글 쓰는 사람이다., 작가요 활동가로 사는 여성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엄마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자원이다.

     

    Q 수험생들에게, 꿈을 찾아 도전하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노하우가 있다면. 2030 여성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도 추천해 달라.

    수험생들에겐 내가 왜 이 힘든 길을 가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절대 놓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답 찾기 공부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겠다는 배짱을 가지길 바란다. 비혼 여성으로서 한국 사회를 보면 숨이 막힐 때가 많다. 여전히 이성애적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고집하는 사회다. 2030 여성들이 쉽게 비혼을 선택하는 것 같지만, 그 깊은 고뇌를 사회가 모르는 거 같다. 소수자가 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엄청난 용기를 내는 거다. 가부장제 구조는 여성을 주체가 아니라 인구수를 채울 애 낳는 도구로 취급하는 거 같다, 젊은 여성들이 출산과 자아실현 중 하나를 강제 포기해야 하니 여성 우울을 겪는다. 국가는 다양한 생활동반자를 법적 가족으로 확장해야 한다. 비혼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해명하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재생산권을 보장해야 한다. 법조인이자 페미니스트로서 내 과제이자 살고 싶은 세상이다.

    이 맥락에서 역사 속 금기를 깨고 주체적으로 길을 개척한 여성 서사를 생생하게 복원해 낸 역사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 붉은 궁,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추천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정민지 변호사의 미래 설계와 포부를 이야기해 달라.

    실제 법조 생태계에서 기득권의 목소리를 더 키우는 데 법률 기술이 쓰이는 게 보이더라. 나는 침묵 당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이크로 일조하고 싶다. 좋은 동료들과 연대해서 누구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안전한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싶다.

    그리고 부모님께 말하는 포부가 있다. 두 분은 젊은 날부터 사람들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약한 데로 가서 힘을 나누며 사느라 평생 가난하다. 내가 돈을 벌면 건물을 지어서, 한쪽에는 엄마가 집필하고 책을 공유하는 사랑방이자 작가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다. 다른 한쪽에는 아빠가 돈 걱정 없이 소신을 펼치는 목회 공간을, 그 위에 내 변호사 사무실을 갖고 싶다. 지역에서 여성단체와 연대하는 변호사로 살 것이다.

    나아가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갈 주체적인 실험으로서, 나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다정한 파트너를 만나 내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확장의 경험도 기꺼이 해보고 싶다. 5년 후, 10년 후 내가 이 포부대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세상이 꼭 검증해 주길 바란다.

     
     
    진흙탕 바닥이 가르쳐준 것들: 안산의 새내기 법조인, 정민지변호사 인터뷰
    꿀벌

    조회수 232

    2026-05-20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웃의 손을 놓지 않는 든든하고 다정한 배경”, 내 이름은 춤추는 나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사람으로 살다가 안산에 정주한 사람이 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어서 찐 안산 사람이 되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잇는 기억과 약속의 길시민 안내자이며 발달장애인 바리스타들의 직무 지도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슴에 별을 품고 사는 사람으로 춤추는 나무’. 4월이라 더 바쁜 고명선 활동가를 소개한다.

    Q 자신을 춤추는 나무라고 소개하는데, 어떤 의미인가?

    20대 때부터 상담소에서 닉네임으로 나무를 썼다. 내 주변엔 뿌리 깊은 나무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이미 너무 많더라. 나는 그들 사이에서 그저 이웃들과 바람이 가는 대로 춤추며 살고 싶었다. 거창한 존재보다 주변과 어우러지는 사람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Q 춤추는 나무로 매일 출근하는 일부터 소개해 달라.

    안산의 한 카페에서 성인 발달장애인 바리스타 6명 곁에서 직무지도원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 바리스타들이 샷 추출이나 음료 제조 실력은 정말 뛰어나다. 다만 숫자 계산, 재고 파악, 그리고 동료 간의 의사소통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속도에 맞춰 호흡하며 일상을 나누고 지역사회 안에서 당당한 직업인으로 살아가도록 곁을 지키는 다정한 이웃이 되는 일이다.


    Q 장애인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와 이전의 이력이 궁금하다.

    대학 시절, 집안에만 갇혀 지내는 재가장애인들에게 책을 배달하며 장애인 인권에 눈을 떴다. 이후 장애여성공감상담원으로 일했고, ‘성공회 나눔의집에서 어린이와 어르신을 돌보고 성인장애인들과 함께 일했다. 장애인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활동의 뿌리가 됐다.

    Q 서울 사람이 어떻게 안산의 시민 활동가가 되었나?

    결혼하면서 안산에 왔다. 세 아이 엄마로서, 2014416일 도서관에서 강의를 듣다가 세월호 소식을 접했다.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믿고 큰 걱정 안 했다가, 저녁에야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세월호가 가라앉는 화면을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에 발만 동동 굴렀다. 다음 날, 당시 초등학생이던 큰아이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무작정 단원고로 달려갔다. 수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아이들이 돌아오기만을 비는 밤이었다. 운동장에 교복 입은 학생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다. 여러 번 촛불을 들었지만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던 그 촛불이 제일 간절했다. 그 이후 화랑유원지, 안산문화광장, 광화문광장에서 나는 계속 촛불을 들었다.

    Q 시민안내자로서 걷는 기억과 약속의 길은 무엇인가?

    참사 직후부터 정부합동분향소와 단원고 교실을 찾아가는 기억과 약속의 길이 있었다. 나는 20174.16기억저장소 ‘4.16 민주시민교육에서 알게 되었다. 부모님의 해설을 들으며 걷는 고잔동에서 별이 된 아이들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9년부터다. 수료생들과 함께 누가 오든 안 오든, 우리끼리라도 한 달 한 번은 꼭 이 길을 걷자고 다짐했다. 4.16기억교실에 모여서 단원고 추모조형물, 4.16기억전시관, 고잔동 마을의 골목골목을 지나 4.16생명안전공원 부지까지, 2~3시간을 시민들과 걷고 있다.

     

    지난 7년여 동안 이 길을 지키며 느낀 건 기억의 힘이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이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어떤 날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때론 눈이 내리기도 했지만 모두 노란 우산을 쓰고 끝까지 걸었다. 걷는다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기억공간에서 서로의 기억을 꺼내고, 어떻게 기억하고 약속할까 이야기했다. 태풍 때 한 번 취소된 거 말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이 길을 걷는 행위 자체가 4.16 이전과 이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다짐이라고 본다.

     

    Q ‘기억과 약속의 길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의례가 있다고 들었다.

    매번 출발을 4.16기억교실에서 한다. 3월엔 3, 4월엔 4반 이런 식이다. 교실에 모여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출석시간이 있다. 시민 안내자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그 아이 자리에 앉은 시민이 !”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아이들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고 그들의 삶과 꿈을 기억하는 시간이다. 기억과 약속의 길은 함께 기억하고 약속하는 연대를 길이다.

     

    Q 춤추는 나무는 별을 품은 사람들(이하 별품사’)도 만들었다고 들었다.

    2018년경 4.16 안산시민연대에서 별을 품은 이웃이라는 마을별 세월호 모임을 제안했다. 그때 나는 '함께크는여성울림'에서 상근 활동가로 피켓팅과 서명전 등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활동가들과 고민하다가 울림 사람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여 활동하고 마음을 나누자라며 회원들을 모아 소모임 별품사로 의기투합했다.

     

    대단한 목표보다 그저 참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별이 된 아이들을 우리 가슴에 품고 살아가자는 뜻이었다. 별품사 첫 활동이 별이 된 단원고 아이들의 약전 읽기였다. 4.16 단원고 약전, 짧은 그리고 영원한11권으로 시작해 1010권까지, 그리고 선생님들과 일반인들 이야기 2권으로 책이 12권이다. 책을 펼쳐 아이들 이름을 부르고 이야기하는 게 처음엔 우느라 너무 어려웠다. 아이들의 꿈, 좋아했던 음식을 이야기했고 아이가 좋아한 음악을 모임에서 함께 들었다. 아이와 부모님들의 일상을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우리는 많이 울고 또 웃었다. 약전 전권을 2년에 걸쳐 완독 토론한 후 아이들 모두에게 편지를 썼다. 그 결과물로 250편의 편지 모음집 잊지 않을게 행동할게를 펴내 기억교실 각 반에 갖다 두었다.

     

    별품사는 세월호의 진실과 별이 된 아이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공부방이자 사랑방역할을 하고 있다. 세월호 관련 영화나 연극을 관람하고 기억식 등 관련 행사에 참여해 왔다. 세월호 공방 어머니들을 모셔 와 꽃누르미와 퀼트로 소품을 만들며 아이들 이야기를 들었다. 416 희망 목공소에 가서 아버지들과 목공 실습도 했다. 올해는 별품사 새 회원들과 함께 약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3월에는 약전에 빠진 아이 중 1반 문지성 이야기를 어머니 안명미 님을 모셔서 생생히 듣는 시간도 가졌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유가족들 곁에서 안산의 한 귀퉁이를 지키는 온기가 되려고 한다.

     

    Q 그 외에도 매달 피케팅과 생명 안전 공원 예배에 참여하지 않나.

    피켓을 드는 것은 시민들에게 참사의 진실을 알리며 잊지 말자고 호소하는 직접적인 소통 창구다. 매월 둘째 수요일 530분 광화문광장에서 기억공간 지키기 집중 피케팅을 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의 차가운 시선이나 인제 그만 좀 해라”, “지겹지도 않냐?”라는 말이 비수처럼 꽂힐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피켓을 놓지 않은 건, 다시는 어떤 참사도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고, 밝혀지지 않은 진상규명에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매달 첫 일요일 오후 5, 공사가 진행 중인 거친 흙바닥 위에서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노래한다. 예배에서 별이 된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시간이 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는 그 시간이 소중하다. 이름을 부르며 아이들이 모두 안산으로 돌아올 걸 믿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엄마아빠 마음이다. 4.16 생명 안전 공원은 별이 된 아이들의 봉안당을 포함해서 모든 시민이 찾아와 머무는 열린 공간이 될 것이다.

     

    Q 생명 안전 공원 건립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공원 부지 앞에서 반대하는 분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 “너희 때문에 경제가 망했다라며 화를 내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분들이 느끼는 불안은 우리 때문이 아니라 사회 구조 전반의 불안정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깃을 눈앞의 노란 리본으로 정해버린 거다. 생명 안전 공원은 특정 누군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참사를 성찰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다짐하는 공간이다. 그분들과도 결국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Q. 세월호 참사 이후 내 삶에 일어난 변화가 있다면?

    배우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마누라가 바빠져서 얼굴 보기 힘들다라더라. 그래서 참사 이전에도 세 아이 엄마로 늘 바빴거든?” 농담해 줬다. 첫째 변화는, 내가 안산이라는 도시에 뿌리를 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학교도 다녔기에 결혼하고 살게 된 안산이 늘 낯설었다. 그런데 참사가 터졌다. 어느 순간 차마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할 수 없더라. 그렇게 비로소 안산에 정주하는 진짜 안산 사람이 됐다.

    둘째는, 참사 이후 그분들이 겪는 사회적 고립과 혐오를 보면서, “이분들 또한 우리 이웃으로서 존중받으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함께 숨 쉬어야 하듯, 세월호 가족들도 우리 공동체 안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분들이 외롭지 않게 안산이라는 공동체의 품을 넓히는 것이 내 활동의 동력이자 철학이다.

    Q 세월호 가족들 곁에서 특별히 배운 점이 있다면?

    10주기 때 유류품 기록작업을 함께했다. 아이들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기록하며 부모님들이 들려주시는 목소리를 듣고, 다시는 어떤 참사가 일어나면 안 된다는 걸 느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감히 그 마음 다 안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함부로 공감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게 됐다. 나는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어 주는 이웃이 되기로 했다. 슬플 때 함께 울고 기쁠 때 함께 웃고!

     

    Q 4.16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는 소회는 어떤가?

    생명 안전 공원이 계획대로 차질 없이 건립되어 흩어져 있는 우리 아이들이 비로소 안산이라는 집으로 평안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공사 부지를 지날 때마다 지난 10년여의 갈등과 눈물, 그리고 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그곳은 단순히 희생자를 추모하는 무거운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들이 언제든 찾아와 산책하고,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일상을 나누고, 생명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희망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돌아오는 그날, 안산이 비로소 참사의 아픔을 딛고 생명과 안전을 상징하는 새로운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다.

     

    Q 춤추는 나무의 남은 꿈도 나눠달라.

    내 곁에서 함께 일하는 발달장애인 동료들의 속도,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다정한 이웃이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서로 연결된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살린다. 4.16 이전과 이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첫 마음을 잊지 않고 끝까지 함께 걸어가고 싶다.

     
     
    “이웃의 손을 놓지 않는 든든하고 다정한 배경”, 내 이름은 춤추는 나무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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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9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 317일 화요일 오후 2시 안산 지역 시민사회, 사회적경제, 문화예술, 마을, 노동, 청년, 장애인, 이주민 단체 등 130개 단체가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마다 활동하는 영역도 다루는 이야기도 달랐지만, 이들이 이날 모인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모두가 안전한 도시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 질문 하나를 붙들고 지난 1년을 준비해 온 안산 시민사회가, 마침내 시민추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범을 선언하는 날이었습니다.

    20144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12년이 흘렀습니다. ‘4.16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고 다짐해 왔던 말들이, 실행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 날인 거죠. 저 역시 안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AN전도시에 SAN시민추진위원회 출범식에 다녀온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 시민주진위원회 전체회의 및 출범식 장소 입구 포스터 사진 ⓒ에디터 안산사라

     

     / 4.16안산시민연대 공동대표 김은호 공동추진위원장 진행 모습 ⓒ에디터 안산사라

     

    전체회의 : 지난 1년의 여정을 돌아보다

    본격적인 출범식에 앞서 전체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에서는 지난 1년간의 추진 경과와 2026년 주요 활동 계획이 공유됐어요. 회의를 이끈 김은호 4.16안산시민연대 공동대표이자 공동추진위원장은 이렇게 운을 뗐습니다.

    “2024, 우리는 안산을 생명과 안전의 도시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담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생명안전도시 안산 만들기 프로젝트가 작년부터 시작되었고, 지난 1년의 여정은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여정1. 여덟 번의 포럼이 쌓아올린 공통의 언어

    그중 20258월부터 10월까지 총 8회에 진행된 안산생명안전포럼은이 모든 준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1위험사회의 이해와 시민의 안전한 권리로 시작한 포럼은 2강에서 안전권이 헌법과 국제 인권 규범에 근거한 사회적·국가적 책임임을 짚었고, 3강에서는 광주 5·18 사례를 통해 회복적 도시 모델의 가능성을 탐색했습니다. “기억은 과거를 묻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반복되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광주가 인권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약속을 제도와 문화로 확장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4강은 경주 지진 사례를 통해 마을이 곧 매뉴얼이라는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재난 발생 후 가장 중요한 것은 훌륭한 매뉴얼이 아니라 서로의 얼굴을 아는 관계다.”

    5강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시 재난·안전 분야 실태 연구 용역 결과가 발표되었죠. 결론은 냉정했습니다. “안산시는 생명안전도시를 만들어갈 충분한 역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세권 중심의 고밀도 복합 개발에 집중하면서 생명과 안전이 외면되고 있다.”

    6강에서는 거버넌스 전략을 논했습니다. “작더라도 시민이 직접 정책을 이야기하는 경험을 쌓으면, 그것이 행정의 방향을 바꾼다.” 7강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 시민사회 활동에 대한 성찰적 진단이었어요. “우리는 쉽게 연결되어 있지만, 뭘 할 수 있는 힘은 약해졌다는 뼈아픈 자기 점검이었죠.

    그리고 마지막 재난과 안전에 관한 지역사회 커뮤니티의 역할을 다룬 8강까지, 총 여덟 번에 걸친 포럼은 안산 시민들의 공통 언어를 만들어냈어요. 그것은 바로 안전은 특정 사고에 대응하는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조건이라는 것,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와 도시의 책임이라는 것, 그리고 시민 참여 없이 지속가능한 안전 정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정2. 아홉 번의 워크숍이 연결한 다양한 목소리

     
      / 1302차워크숍 현장 사진 ⓒ에디터 안산사라

     

    포럼 이후에는 전체 비전 수립 워크숍 2, 노동·마을·이주민·여성·청년·청소년·장애인 7개 부문 워크숍을 합해 총 9회 워크숍이 이어졌고, 150여 명이 참여해 각자의 경험으로 도시 안전을 이야기했어요. 포럼이 공통의 언어를 만드는 자리였다면, 워크숍은 그 언어를 각 부문의 현장으로 가져간 과정이었습니다. "나의 안전이 도시의 안전"이라는 인식이 확장되고, 서로 다른 부문의 주체들이 연결되면서 비로소 이번 출범이 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여기에 지역 23, 30회에 걸친 '찾아가는 사업 설명회'를 통해 100명 이상의 활동가들이 공감대를 함께 형성한 것도 빼놓을 수 없어요. 이 모든 과정이 쌓여, 130개 단체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죠.

     

    정식 출범 : 다른 목소리, 하나의 결론

    이어진 출범식에서 가장 핵심적인 순서는 안전약자 릴레이 발언이었어요. 청년,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를 대표하는 네 명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 자신이 살아온 현장의 이야기를 꺼내놓았습니다.

    가장 먼저 청년 대표로 나선 영화감독 김윤정 씨가 2014, 고등학생 신분으로 처음 광장에 나섰던 기억을 꺼내 놓았어요. 당시 친구를 잃은 많은 또래들이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25시 광장에 모였고, 그 역시 처음 그곳에서 목소리를 냈다고 했습니다. 스물여섯이 됐을 때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고, 스물여덟이 됐을 때는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가 일어났어요.

    왜 우리는 삶의 시간을 지나올 때마다 또 하나의 참사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는 걸까요. 참사는 한순간에 일어나지만, 그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불안은 우리의 일상 속에 계속 존재합니다. 안전은 구조입니다. 누구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위험을 말할 수 있는지, 책임지는 시스템이 있는지 그 구조가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안전해질 수 있습니다.”

    안산나무를심는장애인야학 교장 김선영 씨는 장애인의 일상에서 안전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구체적으로 전했습니다. 저상버스가 언제 올지 몰라 불안과 초조함으로 기다리는 시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집 밖을 나올 수도,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 재난 매뉴얼 속에 장애인은 빠져 있는 현실까지. 청각장애인은 대피 안내 방송을 들을 수 없고, 시각장애인은 누군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화재나 붕괴 사고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어요.

    장애인 안전은 복지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입니다. 사고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문제입니다.”

    와이즈우멘협회 대표 도르카스 씨는 이주민의 목소리를 전해주었어요. 안산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지역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위험한 노동 환경과 정보 비대칭으로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생명과 안전은 국적을 넘어 모든 사람의 권리입니다. 위기 상황이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모든 이주민이 차별 없이 예방, 지원, 구조, 보상 체계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안산지회장 황순화 씨는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의 현실을 전했습니다. 20253월 기준, 185명이 결원인 상황에서 만성적인 인력 부족은 학교 급식 노동 현장에서 산재 사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기도교육청 조사에 따르면 검진 대상 중 폐결절 등 이상 소견을 보인 급식실 노동자는 3,981명에 달했고, 폐암으로 15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200여 명이 폐암 의심 진단을 받았다고 해요.

    노동자가 아프고 떠나는 급식실에서 안전한 급식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안전은 사고가 난 뒤에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라 사고가 나기 전에 지켜야 할 권리입니다.”

    네 사람의 상황과 이야기는 각자 달랐지만 결론은 하나로 모였어요. 안전은 개인이 알아서 챙겨야 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지자체가 구조적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라는 것. 그리고 그 구조를 바꾸는 힘은 바로 시민의 참여에서 온다는 것.

     

    출범 선언문 : 함께 외친 세 마디

     
      / 공동선언문 읽는 모습 ⓒ에디터 안산사라

     

    이어서 출범 선언문 낭독이 이어졌어요. 공동추진위원장들이 함께 단상에 올라 선언문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됐어요.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묻습니다. 생명과 안전은 이 사회에서 어디에 놓여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그 질문 앞에서 다짐했습니다. ‘4.16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적 재난과 일상의 위험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기억은 남아 있지만 변화는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선언문의 핵심 다짐은 세 가지였습니다. 생명과 안전을 도시 운영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세우겠다, 위험이 집중되는 사람들의 삶을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겠다, 시민의 참여가 도시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도록 하겠다.

    함께 만드는 변화! 모두가 안전한 도시! AN전도시에 SAN!” 낭독이 끝나자 박수와 함께 울려 퍼진 슬로건은 출범식의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2026 활동 계획 : 기억이 정책이 될 때까지

    / 공동추진위원장 14인이 주요활동 방향을 논의하는 사진 ⓒ에디터 안산사라
     

    / 시민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준비 되었던 활동안내 자료 ⓒ에디터 안산사라

     

    시민추진위원회가 올해 추진하는 활동은 크게 네 단계로 구성됩니다.

    첫째, 시민 공론 형성이에요. 가장 먼저 317일부터 45일까지 생명안전도시 안산 시민 설문조사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는데, 목표는 안산 시민 1,000명 이상입니다. 전체 회의에서 위성태 사무국장은 “130개 단체가 각각 10명씩만 조직해도 1,300명이 됩니다. 천 명, 2천 명, 만 명까지 한번 우리의 실력대로 해봅시다.”라고 독려했고, 현장에서 웃음과 박수가 터졌습니다.

    411일에는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아 안산문화광장에서 '304개의 노란 테이블' 시민 대토론회가 열립니다. 304는 희생자의 수이자, 시민 1,000명이 직접 둘러앉아 정책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테이블의 수이기도 합니다.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시민이 직접 논의하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입니다.

    둘째, 시민 참여 확대예요. 5월 한 달간 온·오프라인 캠페인을 벌이고, 59일 오후 3시에는 안산문화광장에서 생명·안전 시민대행진 노란 빛 동행이 펼쳐질 예정이라고 해요. 시민들과 함께 거리로 나가 안산의 안전을 우리 사회 전체의 의제로 만드는 자리기도 합니다.

    셋째, 정책·제도 변화 추진입니다. 시민 공론의 결과를 생명 안전 정책 요구안으로 정리해 6·3 지방선거 출마 후보와 정당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전체 회의에서 정책 협약 무용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시민추진위원회 측은 약속해놓고 당선되면 아무것도 안 지키더라는 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행을 관철하기 위한 후속 액션까지 철저하게 준비하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넷째, 시민 참여 거버넌스 구축입니다. 올해 하반기 8월부터 11월까지 시민 참여 안전 모니터링 활동을 진행하는데요, 교육 4회와 워크숍 1회로 역량을 키운 뒤, ·조례·위원회·현장을 시믿늘이 직접 점검하고 모니터링합니다. “모니터링 시민공론 정책 요구 캠페인의 선순환 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맺음말 : 현장을 기록하며

    이날 전체회의에서 나온 한 마디가 오래 머릿 속을 맴돌았습니다. “우리는 쉽게 연결되어 있지만, 뭘 할 수 있는 힘은 약해졌다.” 130개 단체가 모였음에도, 연결이 실행의 힘으로 전환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솔직한 성찰이었습니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 12주기이자, 안산시 승격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거기에 6·3 지방선거까지 맞물린 해이기도 하지요. “역사적인 도시 전환의 분기점이 돼야 한다는 말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안산은 세월호 참사의 가장 큰 피해를 경험한 도시입니다. 그 아픔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도시의 정책과 구조를 실제로 바꾸어 내는 것, 그것이 시민추진위원회 스스로가 부여한 역할입니다. 취재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면서, 안산의 이번 실험이 경기도, 나아가 대한민국의 다른 도시에서도 롤모델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워크숍 참가자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안산에서 진짜 안전한 도시, 생명의 도시가 탄생한다면, 아마 세계적인 롤모델이 되지 않을까요.”

    기억이 정책이 되고, 정책이 일상이 되는 날을 향한 안산 130개 단체의 발걸음이 시작됐습니다.

     
     
    기억을 넘어 정책으로, 안산이 움직인다
    안산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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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1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요즘처럼 마음까지 차가워지는 날에는, 이상하게도 오래 머무는 이야기

    하나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흔히 왕사남이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그런 영화였습니다. 처음에는 역사 속 왕의 이야기쯤으로 생각했는데, 보고 나니 마음에 오래 남는 건 왕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권력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단순히 이야기가 재미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매년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에

    공익이란 무엇일까. 공공성이란 어디에서 시작될까.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결국 이런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약한 사람의 존엄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

     

    영화 속에서 공익은 거창한 말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장면들 속에 숨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는 마음, 규정만 들이밀지 않고 함께 방법을 찾아보려는 노력. 이런 것들이 쌓여서 공공성이 되고, 그 공공성이 공동체를 지탱한다는 걸 영화는 조용히 보여줍니다.

    정태식 경북대 인문학술원 교수의 말처럼, 타인의 존엄을 지키는 책임이야말로 공익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공익이라는 말은 보통 법이나 제도, 행정 같은 단어와 함께 떠오르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실 공익은 그보다 더 앞서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 약한 이의 말을 귀찮아하지 않고 끝까지 듣는 자세, 이해하지 못해도 다시 설명해 주는 마음. 이런 것들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금세 차가워집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특히 마음에 남는 건, 힘을 잃은 존재를 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왕이라는 이름을 가졌어도 실제로는 가장 약한 자리에 놓인 사람. 그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외면할 수도 있고, 그저 예를 갖춘 채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함께 밥을 먹고, 말을 건네고, 곁을 지키는 일.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힘이라는 걸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공익도 결국 그런 것 같습니다.

    법과 직책만으로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설명하고, 설득하고, 책임을 나누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살아 움직입니다.

    현장에서 민원을 응대하는 사람, 아이를 돌보는 교사, 환자를 살피는 의료진, 어르신의 손을 잡아 주는 복지 현장 종사자들. 이분들이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 갈 때 공공성은

    비로소 숨을 쉽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에는 늘 현실적인 조건이 따라붙습니다.

    인력이 부족하면 누군가의 사정을 끝까지 듣기 어렵고,

    예산이 부족하면 필요한 도움을 지속하기 어렵고,

    연대가 약하면 결국 모두가 지쳐버립니다.

    그래서 공익은 이상만으로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하고,

    서로를 지켜 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셋이 함께할 때만 공동체는 약한 사람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공익은 멀리 있는 거대한 개념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만드는 아주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 작은 행동은 대부분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는 것 말입니다.

     

    괜찮으세요?”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제가 다시 설명드릴게요.”

    혼자 두지 않을게요.”

     

    이런 말들이야말로 사람을 살립니다.

    때로는 히터보다 더 따뜻하고, 난방보다 더 깊게 마음을 녹입니다.

    몸은 금세 추위를 느끼지만, 마음은 말 한마디에 오랫동안 온기를 기억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서 공익이라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공익이라는 말을 들으면 제도, 정책, 행정, 복지 같은 단어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물론 그것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먼저 사람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어떤 표정으로 말을 건네는지, 어떤 마음으로 기다려 주는지, 어떤 태도로 약한 사람을 대하는지.

    공공성은 결국 그런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었다는 사실은 더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한동안 한국영화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왕과 사는 남자는 다시 한 번 사람들의 마음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단순히 숫자의 성공이 아니라, 한국영화가 다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준 작품 같아서 반가웠습니다.

    재미만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고, 스쳐 지나가는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그런 영화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다는 건 참 고마운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래 강한 사람의 이야기만 보아 왔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왕과 사는 남자는 약한 사람 곁에 머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마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공익은 결국 강한 사람이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 덜 외로워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걸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단지 좋은 사극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추운 시대에 사람의 온기를 다시 떠올리게 해 준 영화였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말들을 듣고,

    또 너무 많은 말을 하며 지냅니다.

    그중에서 정말 오래 남는 말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말은 이상하게도 오래 남습니다.

    내 편이 되어 주는 말, 내 처지를 알아주는 말,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말.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선명하게 남은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숏츠 춘복TV, “말 한마디가 히터보다 따뜻하다는 걸 다시 생각했슴니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공익과 공공성의 본질을 아주 잘 담고 있는 말 같습니다.

    공동체는 결국 말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상처받고,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니 공공성은 제도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따뜻한 말과 행동 속에서 완성된다고 믿게 됩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그걸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보여 준 작품이었습니다.

    역사의 비극을 다루면서도 끝내 사람의 온도를 잃지 않았고, 권력의 이야기 같지만 결국은 존엄의 이야기였으며, 멀리 있는 공익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 옆 사람의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아마 그래서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보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다시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때 한 번 더 조심하게 되는 영화.

    그런 영화가 천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은 참 반갑고,

    또 희망적입니다.

     

    한국영화가 힘든 시기를 지나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준 작품,

    그리고 우리에게 사람을 살리는 건 결국 따뜻한 말과 마음이라는 사실을 다시 알려 준 작품.

    저에게 왕과 사는 남자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영화 <왕사남>에서 공익을 묻다
    럭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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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31
  • 평화는 O하다 : ‘나’, ‘너’ 그리고 ‘우리’에게 평화는 무엇인가요? — 거대한 불안의 장막과 차가운 갈등의 벽을 넘어, 경기도 골목마다 다정한 온기와 연대의 푸른 숲을 일구어내는 감동의 여정

     각자도생의 그늘과 쉴 새 없는 경쟁의 소용돌이 뒤편에서, 굳건한 마음의 손길로 평화를 빚어내고 찬란한 공존의 내일을 마주하는 눈부신 발자취

    저마다의 자리에서 묵묵히 경기도 구석구석의 일상을 지켜내며 진정한 안식과 조화를 염원해 온 수많은 도민들과 공익활동가들. 팍팍한 현실과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 앞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나’, ‘너’ 그리고 ‘우리’에게 평화란 과연 어떤 의미로 피어나는가”라는 깊은 울림의 질문 앞에 섰다. 방관과 무관심의 장막을 걷어내고, 묵묵히 두 손을 모아 서로의 숨결을 보듬으며 촘촘한 연대의 그물망을 엮어 온 ‘평화는 O하다 : ‘나’, ‘너’ 그리고 ‘우리’에게 평화는 무엇인가요?’ 이야기 속 진솔한 발자취를 깊이 들여다보다.

    "우리는 과연 ‘우리 사회가 겪는 갈등과 마음의 상처는 개인이 알아서 견뎌내야 할 숙명일 뿐, 평범한 이웃들과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손을 잡고 일상 속에서 평화의 빈칸을 채워나갈 수는 없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도민들, 그리고 공익활동지원센터가 손을 맞잡으며 저마다의 진심으로 평화와 상생의 품을 엮어내는 ‘저마다의 온기로 채워가며 꽃피우는 평화 자치의 품’을 어떻게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풀뿌리 평화 감수성과 상호 존중적 관계 생태계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경기도 전역에 지속 가능한 상생과 치유의 숲을 깊이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평화는 O하다 : ‘나’, ‘너’ 그리고 ‘우리’에게 평화는 무엇인가요?’가 품은 3가지 핵심 과제와 비전

    1. 방관과 무관심의 장막을 허무는 ‘풀뿌리 평화 감수성 및 자발적 대화 생태계 구축’

      • 평화를 멀리 떨어진 거대한 담론으로 여기거나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던 낡한 관행에서 벗어나, 경기도민과 이웃들이 골목의 마당에서부터 직접 ‘나’, ‘너’, ‘우리’의 언어로 평화를 정의하고 나누는 자발적 생태계 다지기.

      • "진정한 평화 자치의 완성은 거창한 평화 선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네의 작은 모임방에 모여 앉아 서로의 눈을 맞추고 '내 안의 평화가 곧 너의 평화이며, 우리의 평화가 세상을 바꾼다'며 마음을 나누는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2. 고립을 넘어 온기를 잇는 ‘시민 참여형 관계 공감 및 연대 강화’

      •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외와 단절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지혜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 창출.

      • "혼자서 거대한 불안의 벽과 갈등의 파고에 마주하면 숨이 차고 시리지만, 경기도 도민들이 손을 잡고 함께 평화의 온기를 나누면 그 어떤 냉담함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3.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환대의 그물망으로 잇는 ‘상생 평화 네트워크’

      •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다양한 커뮤니티들과 도민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모든 이의 존엄과 평화로운 삶이 차별 없이 보장되는 상향식 민주주의와 시민 자치 실현.

      • "모든 도민과 이웃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공생의 무대" 완성.

    현장의 온기로 채워졌던 뜨거웠던 나눔과 교감의 시간들

    도내 각지에서 모인 도민들과 따스한 공존을 염원하는 수많은 이웃이 한자리에 모여 '나', '너', '우리'에게 평화가 무엇인지 스스로의 언어로 정의내리고 뜨거운 열기를 나누고, 경기도를 진정한 '어떤 이의 마음도 외롭게 방치되지 않는 평화와 자치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았던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온기로 가득 채웠다.

    • 참가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세상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느라 내 마음의 평화를 돌보지 못했는데,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이웃들과 손을 잡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것이 곧 진짜 평화다'며 마음을 모으니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진짜 따뜻한 온기가 내 손끝에서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참가자들의 뭉클한 순간들.

    • 경기도형 평화 자치 도시 확산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동네마다 주민들과 이웃들이 함께 모여 평화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대화하는 '우리동네 평화 사랑방'을 상설화하자", "시민들의 반짝이는 에너지를 모아 더 큰 환대의 망을 만드는 '경기 평화상생 연대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꾸리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가 마주한 갈등의 벽과 불안의 파고가 때로는 높고 매섭다 할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평화의 물줄기가 모여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란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손길로 그려가는 경기도의 찬란한 내일

    세상을 바꾸고 진정한 시민 자치와 공생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힘은 차가운 갈등 지표 통계 데이터나 거창한 정부의 행정 보고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 경기도의 좁은 모임방과 현장에서 이웃들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우리의 정직한 마음과 다정한 연대로 경기도의 찬란한 평화 역사를 활짝 밝힌다"며 따스한 온기를 건네는 평범한 시민들과 활동가들의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연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방관과 무관심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에 평화와 치유의 숲을 영원히 일구어가는 공익활동가들과 도민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도 곳곳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온기들이,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기도의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평화는 O하다 : ‘나’, ‘너’ 그리고 ‘우리’에게 평화는 무엇인가요?
    레지스타

    조회수 1146

    2025-12-01
  •  

    미디어로 지역을 읽다-함미모 이상하 대표 인터뷰 — 거대한 무관심의 장막과 차가운 단절의 벽을 넘어, 경기도 골목마다 다정한 시선과 연대의 푸른 숲을 일구어내는 감동의 여정

    무표정과 쉴 새 없는 지역 소외의 소용돌이 뒤편에서, 굳건한 미디어의 손길로 진실을 기록하고 찬란한 연대의 내일을 빚어내는 눈부신 발자취를 마주하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묵묵히 경기도 구석구석의 골목 소식을 전하며 지역 공동체의 숨결을 지켜내어 온 수많은 미디어 활동가들과 시민들. 중앙 중심의 낡은 정보 독점 구조와 지역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미디어를 통해 지역의 진짜 삶을 읽어내고 소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깊은 울림의 질문 앞에 섰다. 방관과 외면의 장막을 깨부수고, 묵묵히 두 손을 모아 서로의 목소리를 보듬으며 촘촘한 연대의 그물망을 엮어 온 ‘미디어로 지역을 읽다 - 함미모 이상하 대표 인터뷰’의 눈부신 발자취를 깊이 들여다보다.

    "우리는 과연 ‘지역의 소식이나 풀뿌리 미디어 활동은 소수의 관심 있는 이들만이 즐기는 사소한 기록일 뿐, 도민 전체의 삶을 바꾸는 거대한 힘이 될 수 없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함미모(함께하는 미디어 모임) 이상하 대표, 그리고 공익활동가들이 손을 맞잡으며 저마다의 진심으로 평화와 상생의 품을 엮어내는 ‘지역 미디어를 통해 꽃피우는 소통 자치의 품’을 어떻게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풀뿌리 미디어 자치와 상호 존중적 기록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경기도 전역에 지속 가능한 상생과 공감의 숲을 깊이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미디어로 지역을 읽다-함미모 이상하 대표 인터뷰’가 품은 3가지 핵심 과제와 비전

    1. 방관과 외면의 장막을 허무는 ‘풀뿌리 지역 기록 및 자발적 미디어 생태계 구축’

      • 대중매체의 무관심 속에서 지역의 이야기가 소외되던 낡한 관행에서 벗어나, 경기도민과 미디어 활동가들이 동네 골목과 삶의 현장에서부터 직접 카메라를 들고 이웃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자발적 생태계 다지기.

      • "진정한 미디어 자치의 완성은 거창한 언론 보도의 선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골목 작은 모임방에 모여 앉아 이웃들과 손을 잡고 우리 동네의 소소하지만 진솔한 이야기를 기록하며 서로의 삶을 깊이 나누는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2. 고립을 넘어 온기를 잇는 ‘시민 참여형 소통 감수성 및 연대 강화’

      • 지역 간의 정보 격차와 소통의 단절을 개인이나 지역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지혜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 창출.

      • "혼자서 거대한 중앙 중심 미디어의 벽과 마주하면 막막하고 외롭지만, 경기도 도민들이 손을 잡고 함께 지역의 목소리를 기록하면 그 어떤 소외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3.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기록의 그물망으로 잇는 ‘상생 미디어 네트워크’

      •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다양한 미디어 커뮤니티들과 도민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모든 이의 표현의 자유와 지역 소식이 차별 없이 존중받는 상향식 민주주의와 시민 자치 실현.

      • "모든 도민과 이웃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공생의 무대" 완성.

    현장의 온기로 채워졌던 뜨거웠던 인터뷰와 교감의 시간들

    도내 각지에서 모인 미디어 활동가들과 지역의 참된 소식을 염원하는 수많은 도민이 한자리에 모여 이상하 대표가 들려주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경기도를 진정한 '어떤 이의 이야기 소리도 소외되지 않는 평화와 소통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았던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온기로 가득 채웠다.

    • 참가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질 수 있을까 의문이었는데, 이상하 대표의 인터뷰와 함미모의 활동을 접하며 이웃들과 손을 잡고 '우리 손으로 직접 우리 동네의 진실한 역사를 기록하자'며 마음을 모으니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진짜 따뜻한 온기가 내 손끝에서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참가자들의 뭉클한 순간들.

    • 경기도형 미디어 자치 도시 확산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동네마다 주민들과 미디어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지역의 소식을 나누고 영상을 제작하는 '우리동네 미디어 사랑방'을 상설화하자", "시민들의 반짝이는 에너지를 모아 더 큰 소통의 망을 만드는 '경기 지역미디어 연대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꾸리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가 마주한 정보 격차의 벽과 무관심의 파고가 때로는 높고 매섭다 할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기록의 물줄기가 모여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란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손길로 그려가는 경기도의 찬란한 내일

    세상을 바꾸고 진정한 시민 자치와 공생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힘은 차가운 언론 통계 데이터나 거창한 정부의 미디어 진흥 보고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 경기도의 좁은 편집실과 골목길에서 이웃들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우리의 정직한 기록과 다정한 연대로 경기도의 찬란한 소통 역사를 활짝 밝힌다"며 따스한 온기를 건네는 평범한 시민들과 미디어 활동가들의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연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방관과 외면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에 평화와 기록의 숲을 영원히 일구어가는 공익활동가들과 도민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도 곳곳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온기들이,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기도의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미디어로 지역을 읽다-함미모 이상하 대표 인터뷰
    럭비공

    조회수 1556

    2025-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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