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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웹진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ESG로 피어나는 생명의 터전

    경기도 의왕 포일습지, 민관협력으로 맹꽁이의 귀환을 준비하다

    식목일을 맞은 202643일 오후, 의왕시 포일동의 한 습지 일원이 이례적인 활기로 가득찼습니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현대로템, 의왕시청 환경과, 한국환경보전원, 시민환경단체 자연의 벗관계자 분들이 참여했습니다.

     

    식목일 참여자 사진

    포일습지 자연환경복원 및 생물다양성 증진사업 겸 ESG 환경실천 행사'로 열린 이날 행사는 민간기업의 사회적 책임경영과 지자체의 환경복원정책이 맞닿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이번 사업은 현대로템이 추진하는 ESG 사회공헌 캠페인 블루리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됐습니다.블루리본은 수소 에너지의 상징인 블루와 생태계 복원의 의미를 담은 리본(Re-BORN)’을 결합한 개념으로, 미래 산업과 자연 환경의 공존을 지향하는 기업 철학이 반영된 프로젝트입니다. 단순한 환경 정화 활동을 넘어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고 생물 다양성을 회복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포일습지는 과거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던 공간이었으나, 도시 개발과 환경 변화로 인해 점차 기능이 약화되었습니다. 습지는 물을 저장하고 정화하는 역할뿐 아니라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로서 중요한 생태적 가치를 지니지만, 관리 부재와 오염으로 인해 점점 그 역할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지역사회와 기업, 환경단체가 협력하여 복원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본격적인 식목에 앞서 진행된 에코플로깅활동은 참여자들에게 환경 보호의 의미를 몸소 체험하게 했습니다. 습지 주변 곳곳에 방치된 폐기물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자연 회복의 시작이 정화라는걸 몸으로 알게 됩니다. 참여자들은 이후 직접 삽을 들고 나무를 심고, 흙을 고르고, 묘목의 뿌리를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한 뒤, 다시 단단히 다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생태 복원의 중요성을 체감했습니다.

    현대로템은 이날 행사를 통해 포일습지를 지속가능한 환경 랜드마크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이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리와 지속적인 복원 활동을 통해 지역 생태계를 회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고, 기업이 지역사회와 협력해 환경 문제 해결에 나서는 ESG 경영의 좋은 사례로 평가될 것입니다.

    의왕시는 지난 202579일 시청 소회의실에서 현대로템과 한국환경보전원과 '자연환경복원 및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의왕시는 행정적 지원을 뒷받침하고, 한국환경보전원은 전문적 자문을 지원하고, 자연의벗은 시민 참여 기반의 활동을 담당하며 각자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지역 주민에게 새로운 생태 교육의 장을 제공하고,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자연교실과 시민들에게는 휴식과 공존의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묘목이 자라 숲을 이루듯, 이번 복원 사업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를 더할 것이고, 사라진 습지에 다시 초록을 심는 일. 포일습지에서 시작된 이 작은 변화가 지속가능한 환경을 향한 더 큰 움직임으로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포일습지
     

    맹꽁이(학명: Kaloula borealis)는 여름 장마기에 맞춰 번식하는 양서류로, 오염에 매우 민감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습지의 수질 오염이 심하면 알이 자라지 못하고, 농약이나 폐수의 영향으로 개체가 급감합니다. 따라서 맹꽁이가 서식하는 곳은 오염이 적고 생태균형이 잘 유지된 지역으로 평가됩니다

    환경단체들은 맹꽁이를 일종의 도시생태계 건강지표종으로 분류합니다.

    , 포일습지에 다시 맹꽁이가 돌아온다면 이는 단순히 한 종의 복원이 아니라, 그 생태계가 지닌 물·식물·곤충·조류 등 다양한 생명의 순환이 복원되었다는 상징입니다.

     

    시민참여형 학습장으로서의 생태학습장

    포일습지는 단순한 서식지 복원이 아닌 시민 참여형 학습장으로 개발 중입니다. 의왕시는 관내 학교와 협력해 맹꽁이 생태교실’, ‘도시생태 모니터링 체험’, ‘수질 변화 관찰 수업등 체험형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 같은 교육활동은 자연보전의 세대 간 인식 차이를 줄이고, 장기적으로 지역 전체의 환경의식을 높이는 사회적 효과로 이어집니다.

     

    ② '시민참여형 관리모델의 필요성

    포일습지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맹꽁이 서식지 복원과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맹꽁이는 수질과 환경 변화에 민감해 습지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종입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생태복원은 조성보다 사후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습지는 수질·식생·기온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향후 시민참여를 넓히려면 일회성 행사보다 정기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의왕시 환경과가 주관하는 공공일자리 사업이나 포일습지 지킴이단’, 가족 참여형 생태탐방, 학교 연계 관찰수업, 계절별 정화활동 같은 방식이 있으면 참여의 문턱이 낮아집니다. 여기에 생태DB나 스마트 모니터링이 더해지면, 시민의 참여가 기록과 데이터로 축적되어 더 신뢰도 높은 복원 관리가 가능합니다.

    또한 복원 성과를 주민들에게 주기적으로 알리는 소통도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변화, 예를 들면 새로 자란 식생, 돌아온 곤충, 관찰된 양서류 같은 정보를 공유하면 우리 동네 이야기가 되고 나의 삶에 반영이 됩니다. 관심은 보여주는 방식에 따라 커지고, 참여는 보이는 성과가 있을 때 더 오래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시민의 관심이 단순한 응원을 넘어 생태 감시와 기록으로 이어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주민들이 수질 변화, 식생 변화, 생물 출현 여부를 함께 살피고 공유한다면 복원 사업의 지속성은 훨씬 높아질 수 있습니다. 포일습지는 그런 의미에서 시민이 생태 회복의 결과를 함께 확인하는 열린 현장으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시민기반 ESG 생태관리 모델은 투명성, 지역 사회를 향한 진정성, 그리고 협력을 통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주민 스스로가 환경복원의 주체가 되면서 기업의 공시 자료 너머에 있는 실제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시민들이 알 수 있고 이해관계자의 거버넌스를 통해 지역 사회의 필요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어서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끄는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생태DB(디지털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스마트 모니터링 체계의 단계적으로 도입도 지속가능한 생태계 보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겠습니다.

     

    복원 이후의 과학적 관리와 습지의 사회·문화적 가치 확산

    일반적으로 복원을 위한 관리로 3단계 관리시스템으로 운영이 됩니다.

    (1) 기초 모니터링 단계 수질, 식생변화, 생물 출현 종수 조사

    (2) 안정화 단계 맹꽁이 번식 밀도 및 알 산란지 확인

    (3) 지속 관리단계계절별 식생 순환 맞춤 

     

    한국환경보전원은 인공지능(AI) 기반의 생태음향 장비를 도입해 맹꽁이의 울음소리를 자동 인식·분석하는 ‘AI 음향 모니터링 시스템을 검토 중입니다. 이러한 데이터 기반 관리가 도입되면, 생태변화를 계량적으로 기록하여 효율적 유지관리가 가능해진다고 합니다.

    습지는 생물의 서식지이자 시민의 휴식처, 나아가 도시문화공간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지닙니다. 향후 습지 내 둘레길 및 생태전시 공간을 조성해 문화·교육·관광이 결합된 ESG 생태공원 형태로 발전시킨다면 이는 단순한 환경보전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 속에서 지속가능성을 체험하는 생활 속 ESG’의 구체적인 모델이 됩니다.

    포일습지는 지금 막 첫 단추를 끼운 단계입니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서 보여준 민관의 협력, 시민의 참여, 기업의 ESG 실천, 그리고 생명에 대한 존중은 이미 도시의 미래를 바꾸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습지의 물길은 느리게 흐르지만, 그 속에 자연의 회복력과 사람의 의지가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포일습지의 변화는 도시 한복판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회복 실험이며, 나아가 우리 사회가 환경과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의 증거입니다.

    맹꽁이의 울음이 다시 퍼질 그날, 포일습지는 단순한 자연복원지가 아닌 ESG 실천의 상징이자 세대를 잇는 생태교육의 장이 되어 있을 것이며, 꾸준한 관심과 참여가 이어질 때 포일습지는 앞으로 시민이 자주 찾고, 배우고, 돌보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복원은 한 번의 조성으로 끝나지 않으며,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가 있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습지로 지역 주민, 학교, 봉사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관리 체계가 자리 잡을 때, 진정한 생태 회복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ESG로 피어나는 생명의 터전
    럭비공

    조회수 127

    2026-04-23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대한민국 연극제 경기도대회 포스터)

    # 대한민국 연극제와 지방 연극 그리고 지방 배우

    1. 배우라는 이름을 확인하는 자리

    지방의 배우들에게 대한민국 연극제가 무엇이냐고 인터뷰를 했다.

    "연극제는 봄입니다. 일 년을 버티게 해주는 봄이요."

    "저한테는 꿈의 무대예요. 그 무대에 한 번 더 서고 싶어서, 나머지 시간을 견디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 연극제가 있어서, 나는 생활인이 아닌 연극배우라는 자존감을 확인합니다."

    이 말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된 구조가 보인다. 연극제는 목적지가 아니라 이유다. 그 무대에 서기 위해 나머지 계절을 견딘다. 카페 앞치마를 두르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고, 낮에는 대사를 외우면서. '생활인'으로 보내는 364일을 버티게 해주는 것이, 단 하루의 그 봄이다.

    이 말들이 아름답게 들리면서도 어딘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그 간절함의 크기가 현실의 열악함과 정확히 비례하기 때문이다. 꿈의 무대라는 말은, 그만큼 평소의 무대가 꿈처럼 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글은 대한민국 연극제를 비판하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 축제가 지방 배우들에게 갖는 의미가 진지하고 무겁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글이다.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만 제대로 된 요구를 할 수 있다.

     

    (연습장면, 비루한 연습실)

    2.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무게

    1977'대한민국 연극제'로 시작해 '전국지방연극제', '전국연극제'를 거쳐 다시 현재의 이름을 되찾은 이 행사는, 국내 연극계에서 가장 큰 규모와 권위를 자랑하는 경연의 장이다. 전국 16개 시·도의 극단들이 예선을 거쳐 한자리에 모인다.

    그런데 명칭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흔적이 있다. 한때 이름에 버젓이 들어 있던 '지방'이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행정적으로는 '전국'이라는 말이 더 포괄적이고 격조 있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에서 지방이 지워지는 동안, 지방의 현실도 조금씩 의제에서 멀어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결정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축제가 진정으로 대한민국 전역의 연극인들에게 공평한 무대를 보장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면, 이름값을 하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극단 유혹)

    3. 두 달의 연습, 하루의 무대

    지방 연극의 현실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숫자다.

    안산의 한 극단은 연극제 참가를 위해 두 달간 주 6, 하루 최대 10시간씩 연습에 매진했다. 300시간이 넘는다. 배우들은 대사를 외우고 동선을 조율하고 감정을 쌓아올렸다. 그리고 단 하루 공연을 마친 뒤 손에 쥔 출연료는 40만 원 남짓. 편의점 아르바이트 일주일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이 숫자가 불편한 이유는, 숫자 자체가 냉정하기 때문이다. 열정을 수치로 환산하면 이렇게 된다. 공연이 끝난 날 밤, 로비에서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웃던 배우가 집에 돌아가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장면을, 우리는 너무 쉽게 외면해 왔다.

    물론 배우들도 안다. 연극이 처음부터 돈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의 대가가 없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정당한 임금을 포기해야 한다는 논리는, 위로처럼 들리지만 실은 구조적 방치의 다른 이름이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빛나는 것과, 무대 밖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서로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


    (무대연습)

    4. 예산표의 구조

    공연 예산을 짜다 보면 항목들의 위계가 눈에 보인다.

    '극장 대관비, 무대 제작비, 조명·음향 감독비' 이 항목들은 협의의 여지가 적다. 전문 기술직의 노동이고, 그 가치는 이미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예산표의 마지막 줄, 배우 출연료에 이르면 종종 이런 말이 나온다.

    "배우들은 이해해 줄 거예요. 다들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은 비용으로 계산되고, 무대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은 열정으로 계산된다. 공연 포스터에는 배우의 얼굴이 가장 크게 실리지만, 예산표에서 배우의 몫은 가장 얇다. 이것이 예산 부족의 문제만은 아니다. 배우의 노동을 '조정 가능한 항목'으로 인식해 온 오랜 관행의 문제다.

    지방에서는 이 구조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서울이라면 최소한 관객이라도 모인다. 지방에서는 홍보 비용도, 관객 동원도, 극장 대관료도 모두 극단이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자체마다 문화예술 지원금의 편차가 크고, 어떤 지역은 연극제 참가 자체를 재정 문제로 포기한다. 지원을 받지 못하면 참여할 수 없는 구조에서, '전국' 연극제는 사실상 '여건이 되는 지역의 연극제'가 된다.


    (무대연습)

    5. 서울이 참여한 이후

    대한민국 연극제에 서울과 경기도가 참여하게 된 것은 의미 있는 변화였다. 수도권의 활발한 연극 활동이 이 무대에 합류함으로써 경연의 수준이 높아졌고, '전국'이라는 이름에 실질이 생겼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생긴 새로운 불균형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현재 서울·경기 지역 예선에는 20여 개 이상의 팀이 참가하지만, 본선 진출 티켓은 다른 지방 광역시와 동일하게 1장이다. 수십 개 극단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수도권과, 극단 수 자체가 적어 예선 경쟁이 낮은 지방이 같은 조건으로 출전권을 나눠 갖는 방식이 형평성에 맞는지는 논의해볼 문제다.

    이것은 서울을 견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역의 규모와 여건을 반영한 탄력적인 진출 구조가 오히려 전체적인 경연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공정한 경쟁은 동일한 조건이 아니라 적절한 조건에서 나온다.


    (인터뷰: 안산시 연극협회 지부장 성정선)

    6. 지방 연극이 말라가면

    지방 연극이 위기라는 말은 오래된 이야기라 식상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오래됐다는 것이 덜 심각하다는 뜻은 아니다.

    지방 배우들이 무대를 떠나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진로가 바뀌는 일이 아니다. 그 배우가 무대에 올리던 이야기들이 함께 사라진다. 안산 공단 노동자의 이야기, 충청도 어느 마을의 기억, 남해 어촌의 계절들. 이런 이야기들은 서울의 극장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땅의 언어와 속도와 냄새를 가진 사람들이 그 땅에서 살아가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연극은 항상 지역에서 자랐다. 그리스의 광장에서, 중세 유럽의 마을 광장에서, 조선 시대의 난장에서. 연극이 지역을 잃으면, 연극은 무언가 근본적인 것을 잃는다. 지방 연극은 한국 연극의 변방이 아니라 토양이다.


    (배우, 스텝, 연출)

    7. 대한민국 연극제가 할 수 있는 것들

    대한민국 연극제가 지방 연극 생태계를 혼자 책임질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연극 경연이 무엇을 제도화하느냐는, 업계 전체에 신호를 보내는 일이다.

    몇 가지를 제안한다.

    출연료의 최저 기준을 만드는 것이 첫걸음이다. 공적 지원금을 받아 올리는 공연이라면, 배우의 노동에 최소한의 대가를 보장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지원금이 무대 장치에만 쓰이고 배우에게는 돌아오지 않는 구조만큼은 막을 수 있다.

    본선 진출 작품의 순회 공연도 검토할 만하다. 단 하루의 공연으로 끝나는 현재 시스템은 두 달의 준비에 비해 너무 짧은 무대를 준다. 본선 작품들이 인근 지역 소도시를 돌며 공연할 수 있다면, 배우들은 더 많은 출연 기회를 얻고 지역 관객들은 좋은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연습 공간과 공연장 접근성도 빼놓을 수 없다. 대관료가 부담스러워 공연을 못 올리는 상황이 없도록, 공공 극장의 지역 극단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연극제의 지속성을 위해, 지자체 재정이나 단체장의 의지에 좌우되지 않는 국비 지원 비중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행사라면, 국가가 그 이름에 걸맞은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

     

    (무대를 기다리며)

    8. 연습실 문 앞에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대한민국 연극제가 있어서 자신이 배우라는 사실을 확인한다고 했던 그 배우. 그 말 속에는 감동이 있지만, 동시에 질문도 있다. 왜 배우는 연극제가 있을 때만 배우일 수 있는가. 연극제가 없는 나머지 364일은 무엇인가.

    이 축제가 진정으로 지방 연극인들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자리가 되려면, 그 자존감이 단 하루의 무대에서만 확인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연습실 문을 여는 매일이 배우로서의 하루여야 한다. 오디션을 기다리는 시간도, 아르바이트와 연습을 병행하는 고된 날들도.

    그러기 위해서는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열정은 이미 충분하다. 지방의 배우들은 이미 오래, 너무 오래 충분히 헌신해 왔다. 이제는 그 헌신이 지속 가능한 삶과 충돌하지 않도록, 제도가 뒷받침해야 할 차례다.

    대한민국 연극제는 그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아니, 되어야 한다. 이 나라 연극의 가장 권위 있는 자리가, 가장 먼저 그 이름에 책임을 지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대한민국 연극제 현장 자료와 한겨레신문 비정규직 연극인 윤희웅의 노동 수기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말의 폭력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대한민국 연극제와 지방 연극 그리고 지방 배우
    윤작가

    조회수 94

    2026-04-23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봄이 오면 유독 마음이 무거워지는 날이 있습니다.

    416일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저만의 이야기가 아닐 거예요.

    그런데 올해는 달랐습니다. 눈물만이 기억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함께 손을 맞잡고 꽃을 접고, 영상을 보고, 길을 걸으며 새삼 느꼈습니다. 기억하는 방법은 이렇게도 다양하더라고요.

     

    [416생명안전교육원 내 조형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자리한 경기도교육청 4.16생명안전교육원을 소개합니다.

    4.16생명안전교육원이란?

    4.16생명안전교육원은 2014416,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250, 교사 11명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교육과 희망으로 이어가기 위해 설립된 경기도교육청 직속기관입니다.


    [416생명안전교육원 기억관 외부 모습]
     

    교육원은 크게 기억관(기억교실)과 미래희망관으로 구성됩니다.

    두 공간은 같은 건물 안에 함께 있어, 한 번의 방문으로 기억에서 희망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추모와 교육, 전시, 프로그램이 사계절 내내 운영되며, 누구나 무료로 방문할 수 있습니다.

     

    기억관 - 그날의 교실이 그대로

    단원고 4.16기억교실

    기억관은 교육원 별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층 사월홀, 2층과 3층에 걸쳐 10개의 기억교실과 교무실이 운영됩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과 선생님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책상, 의자, 교실 문, 칠판, 사물함까지 그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있습니다.

    교실 안에 들어서면 발걸음이 절로 조심스러워집니다. 비어있는 의자,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 그리고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있는 아이들의 흔적.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그 공간에 서 있으면, 무언가가 가슴을 조용히 두드립니다.

    국가지정기록물 제14202112, 세월호 참사 관련 기록물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되었습니다.

     
    [416생명안전교육원 기억관 1층 내부 모습]

    1층 사월홀 - 기억을 만나는 첫 번째 공간

    기억교실을 오르기 전, 1층 사월홀에서는 먼저 영상을 시청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기억을 샌드아트로 풀어낸 영상은 단원고 학생들이 교실을 떠나기까지의 긴 여정, 교실 이전 협의 과정, 그리고 기억교실이 지금의 자리에 놓이기까지의 이야기를 조용하지만 강하게 전달합니다.

    2014415, 제주도 수학여행을 앞두고 설레어 하던 아이들의 모습. 그다음 날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 416. 학생들의 제적 처리를 둘러싼 유가족과 교육청의 갈등, 교실 존치를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싸움, 그리고 끝내 교실을 지켜낸 이야기까지. 영상을 보는 내내 마음이 여러 번 흔들렸습니다.

    "기억교실이 존재한다는 건, 그 아이들이 아직도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뜻이야."

    영상 속 한 문장이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416생명안전교육원 기억관 1층 사월홀 영상시청]
     

    기억과 약속의 길 - 매달 함께 걷는 순례

    기억관 1층 사월홀에서 영상을 시청한 뒤, 기억교실을 방문하고, 그 이후에는 기억과 약속의 길 순례가 이어집니다. 이 프로그램은 4.16기억저장소와 경기도교육청 4.16생명안전교육원이 함께 20147월부터 매달 진행해온 시민 순례 프로그램입니다.

    단원고 아이들이 걸었던 등굣길, 산책길, 학원을 오가던 골목길을 함께 걸으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을 나눕니다. 유가족 어머님들로 구성된 가족운영위원이 직접 안내와 해설을 맡아 진행합니다.

     
    [416생명안전교육원 기억관 2층 기억교실복도 통로]
     

    기억과 약속의 길 -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오후 / 기억관 1층 사월홀 집결 (사전 확인 권장)

    > 문의 : 4.16기억저장소 031-410-0416

     

    미래희망관 - 기억이 희망으로 피어나는 전시 공간

    미래희망관은 기억관과 함께 교육원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매달 새로운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 공간으로, 세월호 참사와 기억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들이 조용하고도 깊게 관람객에게 말을 건넵니다.

     
    [416생명안전교육원 미래희망관 1층 전시]
     

    20264월에는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기념한 2부작 기획전 , 기억에서 희망으로가 진행 중입니다.

    전시 1 봄을 닮은 그대의 시간, 열두 해의 세월

    > 작가 : 이종구 / 단원고 학생 반별 회화 13

    > 전시 기간 : 2026. 4. 1.() ~ 4. 29.()

    > 전시 장소 : 4.16생명안전교육원 미래희망관 1(안산시 단원구 적금로 134)

    > 관람 시간 : 평일 09:00~18:00 | 주말·공휴일 휴관 | 무료

    > 문의 : 031-229-7662

     
    [416생명안전교육원 미래희망관 1층 전시]
     

    전시 2 세월의 생명들 - 열두 해를 지나 희망을 보다

    > 작가 : 이구영 / 아크릴 회화 19

    > 전시 기간 : 2026. 4. 1.() ~ 5. 21.()

    > 전시 장소 : 4.16기억전시관 3(안산시 단원구 인현중앙길 38)

    > 관람 시간 : ~09:00~18:00 | ··공휴일 휴관 | 무료

    > 문의 : 031-411-7372

     
    [416생명안전교육원 미래희망관 1층 전시 및 416기억전시관 전시안내표]
     

    함께하는 손길 - 소안지 봉사활동

    4.16생명안전교육원의 각종 행사와 프로그램에는 지역 단체들의 따뜻한 손길이 함께합니다. 그 중 소안지(소소한 일상 속 안전지킴이)는 생명안전 교육 단체로, 지역 주민에게 안전과 환경교육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3월에는 4월을 기억하는 꽃 만들기 봉사를, 4월에는 기억식을 앞두고 다양한 체험 부스 사전 준비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기억식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함께 손을 움직이다 보면 슬픔이 조금씩 연대의 온기로 바뀌는 걸 느낍니다.

    기억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닙니다. 꽃을 접고, 부스를 준비하고, 그 길을 함께 걷는 것. 그 작은 손길 하나하나가 모두 기억입니다.

     
    [416생명안전교육원에서 3월 기억식을 준비하는 꽃 만들기 봉사활동 소안지팀]
     

    제가 방문한 날도 마침 4.16 러닝크루 '다시 봄' 특별 행사가 열렸습니다.

    함께 달리고, 함께 웃고, 함께 이름을 기억하는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내내 마음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픔을 기억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오히려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느낀 순간이었어요. 이런 방식의 추모가 있구나, 이래서 사람들이 해마다 이곳을 찾아오는구나 싶었습니다.

     
    [416생명안전교육원 외부에서 진행된 러닝크루 다시봄 행사진행모습]
     

    416, 세월호 참사 12주기 기억식 당일에도 러닝크루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가장 슬픈 날에도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기억은 이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기억하는 방법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함께 달리는 것도, 번호를 등에 달고 그 길을 걷는 것도 기억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하게 밝혀주기도 한다는 것을 이날 느꼈습니다.

     

    [416생명안전교육원 외부에서 진행된 러닝크루 다시봄 행사진행모습]

     

    "우리는 별이 되어 사라진 게 아니라, 은하수를 만들어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걸 기억해 줘."

    기억교실에서 들려온 영상 속 한 마디입니다.

    4.16생명안전교육원은 그 은하수를 함께 지켜가는 공간입니다. 봄날, 한 번 그 길을 걸어보세요.

     

    방문 안내

    > 4.16생명안전교육원 (기억관 + 미래희망관) : 경기 안산시 단원구 적금로 134

    > 기억과 약속의 길 :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오후 / 기억관 1층 사월홀

    > 운영 문의 : 031-414-0416 / 전시 문의 : 031-229-7662

    > 관람료 : 무료

     


    기억이 희망이 되는 공간 - 경기도교육청 4.16생명안전교육원
    안산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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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21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길을 따라온 게 아니라 휠체어와 함께 길을 만들며 여기까지 왔어요.” 

    그의 이야기는 이 한 문장에서 시작한다. 늦게 시작한 공부와 일, 아이를 키우며 멈춰야 했던 시간, 그리고 다시 장애인 활동가로 살기까지, 그는 휠체어로 스스로 길을 내며 살아왔다.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총괄팀장이자 동료상담가 조은상 활동가를 소개한다.


    = ‘동료상담가’라는 말이 생소한 분들을 위해 소개부터 부탁해요.

    - 저는 안산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IL’)에서 동료상담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장애인이라고 하면 도움과 서비스를 ‘받는 사람’을 상상하잖아요. 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의 정신은 장애인을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바라보는데요, 장애인 당사자가 또 다른 장애인 동료와 하는 상담이죠. 단순히 ‘비슷한 처지끼리 하는 대화’가 아니라, 기존의 전문가 중심 상담 모델로부터 해방된 고도의 정치·사회적 치유와 임파워먼트
    Empowerment 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정신과 의사나 사회복지사가 장애인을 진단과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상담이죠. 동료상담은 그런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로부터의 해방된 평등한 관계 모델이라 할 수 있어요. 장애인 스스로가 자기 삶의 전문가라고 선언하는 거죠. 자격증의 권위가 아니라 장애를 안고 살아온 ‘생존의 역사’ 자체가 상담의 강력한 도구죠. 상담의 목표 역시 상담가가 아니라 내담자 스스로 ‘자기결정권’으로 설정하고요.

    동료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가 대등한 관계로 진행해요. 한쪽이 가르치거나 답을 주는 게 아니라, “나도 그랬다”는 공감을 서로 나누는 거죠. 이 모든 과정이 자립생활 모델과 결합해요. 내면의 힘을 길러서 결국 시설이나 집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살아가게 하는 힘. 더 나아가 개인의 변화를 넘어, 사회의 책임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동력이 되고요.


    = 와~ 자립생활센터가 어떤 곳인지도 소개해 주셔야겠어요.
     

    장애인복지관과 비교해 볼게요. 이전엔 서비스를 받거나 이용하러, 즉 이용자로서 장애인복지관을 드나들었어요. IL센터에서는 장애인이 행동의 주체가 돼요. 이용 시설이 아니라 장애인이 직접 일하고 활동하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움직이는 단체죠. 환경과 사회를 장애물이 없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사회 변혁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을 돕는 것을 넘어서 사회를 바꾸는 일이에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삶의 운동이자 삶의 일부예요.

    IL의 가장 기본 정신이 권리옹호, 자기결정권과 자기선택권인데요. 어디서 살지,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와 같은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부터 인생의 큰 항로까지,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고자 해요. 거기엔 실패할 권리도 포함돼 있고요. ‘장애인을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 장애인이 없어서는 안 된다’라는 당사자주의고요. 소장부터 내부의 주요 의사결정자들까지 센터 인력의 과반수가 장애 당사자인 것도 그 때문이고요.

    장애가 있다고 사회와 격리된 시설에서 살아야 할까요? IL은 비장애인과 똑같이 지역사회 안에서 어우러져 사는 것을 지향해요. 물리적 건물만이 아니라 교육·노동·문화생활 등 모든 사회적 기회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죠. 장애인이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을 문제로 보는 사회적 장벽Social Barrier’이 문제라고 보는 겁니다. 이 운동의 핵심은 개인의 재활이나 극복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있는 거죠.


    = 어쩌다 이렇게 엄청난 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을까요?

    - 처음엔 아는 언니 따라왔죠. 사진 동아리 ‘포커스휠’에 나가면서도 별로 적극적인 회원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센터에서 동료상담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고 동료상담을 진행해본 게 첫 출발이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센터활동도 하게 되고 그러다가 집단동료상담 리더 교육을 받으면서 생각이 크게 바뀌었어요. 제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죠. 내가 ‘불쌍하고 불행한’ 장애인이 아니라, 사회적 차별과 구조적 모순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거죠. 장애인 동료상담가들이 당당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전에는 직업을 갖기 위해 자격증도 따고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면 센터 활동과 동료상담을 하면서 왜 자립생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는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금까지 센터에서 간사부터 팀장, 센터장까지 경험했고, 지금은 상록수IL센터 총괄팀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IL센터이지만 일에 집중하다 보면 가끔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갈등이 생길 때도 있어요. 그래서 현장의 동료들을 만나면서,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계속 스스로 돌아보게 돼요.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업무 회의 사진제공 조은상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사무실 책상 앞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IL센터 활동 동료상담 사진제공 조은상



    = 공부를 늦게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장녀로 태어나 돌 무렵에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걷지 못하게 됐어요. 동생이 셋이었으니 넉넉지 않은 형편에 부모님은 저만 집중해서 돌보기 어려웠을 거예요. 입학할 나이가 됐지만 학교까지 이동하는 것도 어려웠고, 동생들을 희생시킬 순 없지 않냐는 말을 듣고 자랐어요. 그럴 때마다 부모님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아무 말 못 하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집에서 가정교사를 통해 조금씩 공부했지만 늘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책을 읽었어요. 

    20대에 직업 훈련원에서 옷 만드는 기술을 배워 취업을 하고 보니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20대 후반에 검정고시를 시작했어요. 결혼하고 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힘들다는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느낌이 더 컸어요. 방송대 교육학과를 계속 장학금 받으며 졸업했어요.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했어요. 서로 과제를 알려주고 시험 정보를 나누면서 함께했던 경험이 컸어요. 그때 공부는 혼자보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는 것이라는 걸 느꼈어요. 
     

    = 장애 여성으로서 전에 하신 일과 사회생활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어요?

    - 장애인이라고 하면 부모가 희생하거나 당사자가 희생하거나 그런 구조잖아요. 공부 기회를 놓치고 사회에 나갔기 때문에 저는 더 열심히 배우고 일했어요. 장애인기능대회가 있었는데 나가서 금메달을 땄어요. 이제 세계 대회를 나갈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연습했고 프라하 세계 장애인 기능대회 나갈 티켓도 땄어요. 그런데 저한테 기술 가르쳐준 선생님들이 그렇게까지 할 거 있냐고 반대하시더라고요. 처음부터 하지 말라고 하든지, 장애인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구나, 상처를 많이 받았죠. 튀지 않고 착한 장애인이길 원했던 것 같아요.

    제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도 그랬어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작업장이었는데, 수녀님들이 제 결혼을 걱정하고 반대했어요. 부모님도 심하게 반대해서 5년을 미루다 결혼했어요. 동료상담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비슷했어요. 장애 여성은 교육, 결혼, 출산, 일 등 여러 선택에서 뒤로 밀리고 편견의 대상이에요. 직장에 다닌다고 하면 놀라고, 집이 깨끗하다고 놀라고,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놀라요. 장애인은 돌봄을 받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해요. 저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 평범함이 오히려 특별한 일이 되는 느낌이 있어요.


    = 비장애인 여성도 두려워하는 결혼인데 참 씩씩하게 사셨어요. 아이 낳고 키우며, 또 워킹맘으로 살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 30대 후반에 아이를 가졌을 때도 일을 쉬지 않았어요. 배가 불러서 운전하기 힘든데 사장님이 나와서 같이 밥이라도 먹자며 부르셨어요. 당시엔 생소했던 강아지 옷 만드는 일이었는데 일이 많아서 새벽 7시에 출근해서 야근까지 하는 날이 많았어요. 한번은 폭설이 내려 청계 터널에서 2시간을 갇혀 있었는데, 다음 날 보니 타이어가 터져 있더라고요. 저는 천주교 신자인데 아이랑 저랑 정말 주님이 살려주셨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결혼할 때도 그랬어요. 장애인이 어떻게 살 거냐, 아이는 어떻게 키울 거냐. 저도 아이는 낳지 말자 생각했었죠. 일을 계속하고 싶었고 양육에 자신도 없었죠. 어느 날 밤늦게 퇴근하면서, 일만 하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갖기로 했어요. 임신과 출산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이동도 어렵고 병원 가는 것도 힘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일을 할 수 없었어요. 맡길 곳이 없어서 제가 아이를 돌보게 되었어요.


    안산의 리프트 택시 사진제공 조은상


    상록수 센터에서 진행된 안산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 ‘착한 장애인’이라는 기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 가족 안에서 화목하게 살기 위해서는 많이 참아야 했어요. 장애인이기도 하고 여성이라는 점이 겹치면 어떨까요? 장애인 여성은 더 많이 참고 더 많이 양보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어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존엄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자존감은 많이 낮아져 있었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남들보다 사회생활도 그렇고 뭐든 다 늦었으니까 나는 더 빨리 잘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생각이었어요. 이걸 ‘맏딸 콤플렉스’라고 하죠? 부모님한테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고, 장애인이라 못한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딱딱 다 잘 해내려고 했어요. 하지만 10년 IL 활동을 하며 조금씩 달라졌어요.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서로 힘들게 하잖아요. 이제는 못 하는 건 못 한다고 말해요. 어머니에게도 이번에는 못 간다고 말하게 되었어요. 그럴 힘이 생겼죠. 


    =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아이를 키우다가 어느 순간 다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한 언니가 등록금을 내줄 테니 공부를 꼭 하라고 말했어요.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버지도 응원해 주셨어요. 마흔 넘어 다시 공부할 때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셨어요. 엄마가 보내준 김치 통 사이에 아버지가 학비에 보태라고 몰래 30만 원이 든 봉투를 넣어두셨는데, 김칫국물에 젖은 그 봉투를 보고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지금도 나요.


    =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나 삶의 전환점이 있었나요?
     

    - 2014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저를 많이 도와주던 언니도 돌아가시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였어요. 그 시기에 세월호 참사도 있었고요. 솔직히 우울함도 있었어요. 제가 사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 사건이 너무 크게 다가왔어요. 그냥 뉴스에 나오는 사건이 아니라 내 아이의 일처럼 느껴졌죠. 앞으로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이래도 되는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힘든 시기를 통과하며 지역에서 하는 집회나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됐어요. 큰 역할은 아니지만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연대하고 같이 있는 사람,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4.16시민대학 사진제공 조은상


    세월호참사 10주기 4160인 합창에 참여하고 사진제공 조은상


    안산시민연대 촛불문화제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 장애인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라고 보십니까?

    - 일은 삶을 바꾸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센터에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일자리에 참여하는 분이 “내가 번 돈으로 가족들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사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라던 말을 잊을 수 없어요. 큰 변화라고 느꼈어요. 일하고 돈을 벌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게 장애인의 삶의 위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살게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중증 장애인에게 일자리는 단순한 수입 이상의 의미를 가져요. 사회의 구성원으로 지역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가 더 커요.

    그래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라 불러요. 시혜적 성격을 거부하고, 이동권, 탈시설, 교육 등 장애인 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날이죠. 올해도 3월 26일에 청와대 앞에서 <22회 3.26 전국장애인대회 및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식>을 열었어요. 최옥란 열사 기일에 열린 22회 3.26 대회였죠. 효자동 복지센터 인근에서 출발해서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하고 집회와 열사들을 기리는 추모제도 진행했어요. 많은 활동가들이 각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전국에서 모여요. 



    3.26 전국장애인대회 사진제공 비마이너



    장애인 권리 보장 다이인(
    die-in) 행동 사진제공 조은상


    장애인 접근권 보장 기자회견 참여 중 발언 사진제공 조은상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삭발 투쟁 사진제공 조은상 


    = 앞으로의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 지금까지 활동하고 또 아이를 기르면서 앞만 보고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앞으론 어떻게 살지? 이런 고민이 들었어요. 앞만 보고 가지 말고 소소하게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과 차도 마시고 서로를 지지하고 나누면서 사는 삶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요. IL센터의 활동가로, 동료상담가로 목소리를 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면서 살아야죠.

    돌아보면 누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온 게 아니라 그때그때 부딪히며 길을 만들어 온 것 같아요. 앞으로도 큰 계획보다는 지금처럼 살 것 같아요. 필요한 자리에 가 있고 연대하며 살고 싶어요.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살았다 싶어요. 앞으로도 휠체어와 함께 제가 길을 만들며 살아갈 것 같아요.
     


    “휠체어와 함께 길을 만들며 여기까지 왔어요.”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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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6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공익활동의 지속 가능성 문제 : 재원을 어디서 만드는가

    공익활동을 지속하는 데 있어 가장 현실적인 장벽 중 하나는 재원이다.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단체가 아무리 좋은 뜻을 갖고 있어도, 사람을 고용하고 공간을 유지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많은 공익활동단체들이 정부 보조금과 위탁사업에 의존하는 구조 속에서, 예산이 삭감되거나 사업이 중단되면 단체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반복된다.

    한국의 공익 생태계에서 이 문제는 오래된 숙제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기부금 총액은 16.8조 원으로 증가했지만, 개인 기부금 증가폭은 크게 둔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기부참여율과 평균기부금액 역시 2021년 61.2%, 32만 4,000원에서 2023년 59.8%, 26만 2,000원으로 모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부의 구조다. 한국의 기부는 전국 단위 대형 모금 단체나 특정 구호·복지 기관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사는 지역의 공익활동을 위해, 내 이웃들의 필요를 위해 지역 차원에서 자원을 모으고 운용하는 구조는 아직 취약하다. 


    110년 전, 이러한 문제를 이미 생각하고 해결책을 만들어낸 사람이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변호사이자 은행가였던 프레더릭 해리스 고프Frederick Harris Goff다. 그가 1914년 세운 클리블랜드 파운데이션은 오늘날 '커뮤니티 파운데이션Community Foundation'이라는 글로벌 운동의 출발점이 됐다.
     

    ‘죽은 손의 자선’과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의 등장  

    고프는 자선적 기부금이 시대에 뒤떨어진 취소 불가능한 유언장에 묶여버리는 이른바 '죽은 손dead hand' 문제를 없애고자 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기부를 하면 그 돈을 설립자 의도에 따라 특정 목적에만 쓰도록 묶이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흘러 사회가 변해도 기부금은 낡은 목적에 고정된 채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고프는 이것을 '죽은 손의 자선'이라 부르며, 지역 사회가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금 구조를 고안했다.

    클리블랜드 파운데이션의 기부는 특정 사업이 아닌 파운데이션에 투자함으로써 시간이 흘러도 세대를 넘어 지역사회 변화와 필요에 부응하게 하는 것이 핵심 원칙이다. 커뮤니티 파운데이션 모델은 이후 미국 전역에 빠르게 퍼져나갔으며, 클리블랜드 파운데이션 설립 5년 만에 시카고, 보스턴, 밀워키, 미니애폴리스, 버팔로 등에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이 생겨났다. 

    오늘날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의 정의는 명확하다. 특정 지역의 사회적 개선을 주된 목적으로 기부금을 통합 투자하고 지원금을 지급하는 시민사회의 도구 역할을 하는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은 현재 전 세계 약 1,700개가 존재하며, 그중 700개 이상이 미국에 있다. 미국 재단 협의회
    Council on Foundations가 집계한 2023년 데이터에 따르면, 참여 커뮤니티 파운데이션들은 1,52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160억 달러 이상의 기부를 받고, 190억 달러에 가까운 보조금을 지급했다고 알려진다. 


    이러한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이 다른 재단과 구별되는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특정 개인이나 가족이 아닌 지역사회 전체를 위해 설립된다. 둘째, 다양한 기부자들의 기금을 통합 운용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 셋째, 기금의 사용 방향은 지역사회 리더십이 결정한다. 정부 보조금도 아니고, 대기업의 단발성 사회공헌도 아니다. 지역이 스스로 자산을 키우고 지역을 위해 사용하는 구조인 것이다.


    기부를 설계하는 방식 : 기부자 조언 기금(DAF)

    커뮤니티 파운데이션 운영에서 빠질 수 없는 개념이 바로 '기부자 조언 기금DAF, Donor-Advised Fund'이다. DAF는 기부자가 재단에 기금을 납입하면 즉시 세금 혜택을 받고, 이후 원하는 시점에 지원할 단체와 금액을 추천하는 방식을 말한다. 재단이 자금을 운용하고, 기부자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반영하며 기부를 이어갈 수 있다. 이 구조는 단순히 편리한 것을 넘어, 기부를 '일회성 행위'에서 '지속적 관계'로 전환 시킨다. 기부자는 재단과 파트너가 되어 지역사회 현안을 이해하고, 자신의 기부가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 추적한다. 기부가 재산 이전이 아니라 시민적 실천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미국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의 기부자 조언 기금 자산은 2022년 기준 전체 자산의 약 36%를 차지하는데, 이는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이 운용하는 자산의 상당 부분이 기부자들의 적극적 참여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테크 기부문화의 허브 : 실리콘밸리 커뮤니티 파운데이션(SVCF)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의 현대적 성공 사례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또 다른 사례는 실리콘밸리 커뮤니티 파운데이션SVCF, Silicon Valley Community Foundation이다. SVCF는 캘리포니아 산마테오와 산타클라라 카운티를 핵심 지역으로 삼아 운영되며, 구글, 애플, 메타 같은 세계적 테크 기업들과 그 기업에서 부를 일군 개인들이 밀집한 실리콘밸리의 자원을 지역 공익에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실리콘밸리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은 2023년 기준 8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며 정치적인 좌우를 가리지 않는 기금 지원 조직이다. 규모도 인상적이다. 2023년 SVCF는 5,500개 이상의 비영리단체와 지역사회 조직에 총 45억 8,000만 달러(약 6조 원)의 보조금을 지급했으며, 이 중 31억 달러는 베이 에어리어 10개 카운티의 단체들을 직접 지원했다. 이는 캘리포니아주 어떤 단체보다 많은 금액이다. SVCF는 미국에서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기부 재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게이츠 재단과 달리 SVCF는 특정 지역에 집중하는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SVCF의 핵심 지원 분야는 금융 안정성, 영유아 발달, 주거 문제다. 실리콘밸리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중 하나이지만, 동시에 극심한 주거 불안정과 소득 격차 문제를 안고 있다. SVCF는 이 모순에 정면으로 대응하기 위해 설립됐다. 2024년 SVCF는 지역사회 행동 보조금 프로그램을 통해 산마테오와 산타클라라 카운티에서 역사적으로 차별받고 자원 접근이 제한되어 있던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는 115개 비영리단체를 지원했다. 예술·문화, 환경 보호, 지역 언론, 보건 서비스, 사회 운동 등 다양한 분야가 포함되었다.

    DAF를 통한 기부 방식도 특징적이다. SVCF가 보유한 DAF 가운데 상당수는 잔액이 25,000달러 이하로, 거액 자산가가 아니어도 참여할 수 있는 비교적 개방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또한 SVCF는 기부자들이 2년 이상 지급 추천을 하지 않을 경우 해당 자금을 지역 공익 기금으로 전환하는 정책도 운영하며, 기금이 실제로 지역에 흘러가도록 적극 관리한다.


    데이터 기반의 백 년 지원 : 뉴욕 커뮤니티 트러스트(NYCT) 

    또 다른 사례로는 1924년 설립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커뮤니티 파운데이션 중 하나인 뉴욕 커뮤니티 트러스트NYCT, The New York Community Trust를 들 수 있다. 뉴욕시, 롱아일랜드, 웨스트체스터를 주요 지원 지역으로 삼아 100년 가까이 운영되어온 이 재단은 규모와 역사 모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2024년 뉴욕 커뮤니티 트러스트는 10,546개 단체에 총 2억 390만 달러(약 2,700억 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단순히 많은 금액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다. 지원받는 단체 수가 1만여 개라는 것은 뉴욕의 수많은 소규모 비영리단체들이 이 재단을 통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NYCT의 특징은 데이터와 연구에 기반한 지원 방식이다. 교육, 주거, 이민자 지원, 환경, 보건, 장애인 서비스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뉴욕시의 현안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어느 분야에 자원이 부족한지 파악해 전략적으로 지원한다. 모든 지원 내역과 수혜 단체 정보는 공개되어 투명성을 보장한다.

    NYCT의 2024년 연간보고서가 집중한 주제는 '돌봄 노동자'였는데, 보육을 위한 운동, 24시간 교대근무 종료 캠페인 등 돌봄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피지원 단체들의 활동을 조명하며, 더 접근 가능하고 공정한 지역 사회를 위한 핵심 의제로 다루었다. 매년 다른 주제를 설정해 지역사회의 핵심 현안을 공론화하는 방식은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이 단순한 자금 전달자를 넘어 지역 공론장의 설계자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NYCT의 지원 철학은 개별 수혜자 지원을 넘어 시스템 변화, 정책 영향, 분야 전체의 개선을 지향한다. 즉 근본 원인을 다루고 확장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사업을 우선시한다. 


    한국의 기부 문화, 무엇이 다르고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미국의 커뮤니티 파운데이션 모델과 한국의 기부 생태계를 비교하면 몇 가지 구조적 차이가 드러난다.

    먼저 규모와 지역성의 차이다. 미국에는 약 900개의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이 있으며, 이들은 연간 148억 달러 이상을 지원하고 1,127억 달러 이상의 자선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각 파운데이션은 자신이 속한 지역을 위해 특화된 방식으로 운영된다. 반면 한국의 공익 기부는 전국 단위 대형 단체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지역 단위에서 자산을 형성하고 지역 필요에 맞게 운용하는 구조는 아직 부족한 단계다.

    둘째, 세제 구조의 차이다. 미국의 DAF 시스템은 기부자가 기금을 납입하는 즉시 세금 혜택을 받고, 이후 여러 해에 걸쳐 나눠서 지원할 수 있다. 이 구조는 특히 주식이나 부동산 등 비현금 자산의 기부를 촉진한다. 반면 한국의 세제 지원 구조는 기부 즉시 사용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아, 장기적 자산 형성과 운용을 지원하는 커뮤니티 파운데이션 모델이 뿌리내리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하지만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에도 지역 기부문화를 활성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BTS 멤버 제이홉이 고향인 광주 북구에 동참하면서 사회적 관심을 끌었던 고향사랑기부제가 바로 그것이다. 2023년부터 본격 시행된 고향사랑기부제는 기부자가 특정 지자체에 기부하면 세액공제와 답례품을 받는 방식으로, 지역 자원의 지역 환류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다만 기금의 운용 방식, 지역 시민사회와의 연계, 장기적 자산 형성 측면에서는 아직 커뮤니티 파운데이션 모델과 격차가 크다.


    지역이 만든 기금, 지역으로 흐른다

    미국의 커뮤니티 파운데이션 모델에서 한국의 공익활동 생태계가 참고할 수 있는 점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성이 기부의 동력이 된다. SVCF가 실리콘밸리 거주자들의 거대한 기부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은 "내 이웃의 문제를 내가 해결한다"는 지역적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생산되는 공익활동 콘텐츠와 정보가 지역 주민들의 기부 동기와 연결될 때, 더 강한 지역 기부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투명성과 데이터가 신뢰를 만든다. NYCT가 매년 어디에 얼마를 지원했는지 전체 목록을 공개하는 것처럼, 공익 자원의 흐름이 투명하게 공개될 때 기부자의 신뢰가 높아진다. 한국에서 기부 문화 저평가의 주요 이유로 '기부금 횡령·유용 사례가 많아서'(54%)와 '기부 기관의 신뢰도가 낮아서'(51%)가 꼽혔다. 이 신뢰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데이터 기반의 투명한 공개다.


    셋째, 기부 참여의 문턱을 낮추되 기금의 지속성을 높인다. SVCF의 DAF 기금 중 3분의 1 이상이 25,000달러 이하의 소규모라는 것은, 부자만의 기부가 아님을 보여준다. 소액이라도 지역 공익을 위한 기부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그 기금이 장기적으로 지역 내에서 운용되도록 설계하는 것이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의 핵심이다.
     

    1914년 프레더릭 고프가 클리블랜드에서 시작한 작은 아이디어는 110년이 지나 전 세계 1,700개의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으로 자랐다. 그 아이디어의 핵심은 간단하다. 지역의 자산이 지역을 위해 쓰일 때, 그리고 그것이 세대를 넘어 지속될 때, 공익 생태계가 자생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공익활동 생태계가 정부 보조금 의존 구조를 넘어서려면, 지역 사회 내에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자원 흐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참고 자료
    클리블랜드 파운데이션 공식 홈페이지 
    지역이 스스로 키우는 공익-미국 커뮤니티 파운데이션 모델 
    디어

    조회수 222

    2026-04-13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공익활동, 혼자서는 지속되지 않는다

    경기도 어느 시·군의 작은 공익활동 단체를 상상해 보자. 환경, 아동, 복지, 문화 등 각자의 분야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모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마주치는 현실은 이상과 다를 때가 많다. 단체를 법인으로 등록하는 절차는 복잡하고, 보조금 신청서 작성은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며, 회원 모집과 홍보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같은 고민을 나눌 동료나 단체를 찾기 어렵다. 공익에 뜻은 있지만 그것을 지속시킬 자원과 구조가 부족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중간지원조직'이다. 중간지원조직은 공익활동 단체와 행정, 기업, 시민 사이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허브 역할을 한다. 이 중간지원조직의 생태계가 가장 체계적으로 발달한 나라 중 하나가 일본이다. 

    일본 내각부(2022) 정의에 따르면 중간지원조직이란 "다원적 사회에서 공생과 협동이라는 목표를 향해, 지역사회와 NPO의 변화와 필요를 파악하고 인재·자금·정보 등의 자원 제공자와 NPO를 연결하며, 넓은 의미에서 각종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을 조율하는 조직"이다. 요약하자면 'NPO를 지원하는 NPO'다.

    1990년대 후반부터 약 30년에 걸쳐 전국 단위와 지역 단위의 지원 구조를 촘촘하게 구축해 온 일본의 경험은, 현재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를 포함해 여러 행정구역 단위의 공익활동 중간지원조직 생태계를 키워가고 있는 한국에 여러 시사점을 전한다.


    자원봉사 원년 1995년, 일본 NPO 생태계의 출발점

    일본의 NPO 생태계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데는 하나의 결정적인 사건이 있다. 1995년 1월 17일 새벽, 일본 효고현 남부에서 발생한 규모 7.3의 대지진, 한신·아와지 대지진이다. 사망자 6,434명이라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낸 이 재난에서, 지진 직후 피해 지역에서 이재민을 지원하는 자원봉사에 참여한 사람은 하루 평균 2만 명이 넘었으며 3개월간 연인원 117만 명에 이른다. 현지에 직접 방문하지 않더라도 헌혈이나 기부, 물자 지원 등 후방 지원에 자원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최대 16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1995년은 일본에서 '자원봉사 원년'으로 불린다. 수십만 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일본 사회는 처음으로 시민사회의 힘을 실감했다. 그리고 동시에 한계도 드러났다. 자원봉사자들의 열의는 넘쳤지만 이들을 조직하고 연결할 구조가 없었다는 점이다. 자원은 넘치는데 배분이 안 되고, 현장마다 중복 지원이 발생하는가 하면 사각지대가 생기기도 했다. 시민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그것을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졌다.

    일본 정부는 비영리단체를 손쉽게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1997년에 '특정비영리활동 촉진법(NPO법)'을 제정했는데, 이는 일본의 시민사회와 비영리 섹터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NPO법 제정 이전에는 일본의 소규모 시민단체들은 법인격을 취득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1980년대 중반부터 대거 등장한 소규모 풀뿌리 시민단체들은 기존의 공익법인제도의 틀 내에서는 법인격을 부여받기가 쉽지 않아 임의단체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조직 기반이 약하고, 인지도나 사회적 신용도가 낮아 공익활동에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NPO법 제정으로 이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법인격을 취득한 단체는 은행 계좌를 법인 명의로 개설하고, 계약의 주체가 되며, 사회적 신용도를 얻을 수 있었다. NPO법의 제정·시행을 계기로 그동안 임의단체로 활동해 왔던 시민단체들이 대거 법인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NPO법 시행 이후 일본의 NPO법인 수는 꾸준히 늘어 현재 수만 개에 달하는 생태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중간지원조직의 구조 : 전국 단위와 지역 단위의 촘촘한 네트워크

    NPO법 제정과 함께 일본 전역에서 중간지원조직도 빠르게 증가했다. 중간지원조직의 설립 시기를 조사한 결과, 1995년 이후에 설립된 것이 전체의 82%를 차지했으며, 특히 민설·민영 형태의 중간지원조직은 그 비율이 92%에 달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NPO법 제정이 중간지원조직 확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보여준다. 일본의 중간지원조직 구조는 크게 두 층위로 나뉜다.

     

    - 전국 단위 : 일본NPO센터

    일본NPO센터는 1996년 11월 NPO 관계자들의 협력으로 설립되었으며, 1999년 특정비영리활동법인, 2011년에는 인정특정비영리활동법인*으로 인정받았다. 정보 교류, 인재 개발, 조사·연구, 정책 제언 등의 활동을 통해 NPO의 기반을 강화하고, 기업·행정과의 파트너십 구축을 목표로 한다.

    일본NPO센터는 분야와 법인격의 유무에 상관없이 NPO 등 민간비영리 섹터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데 힘쓰며, 각종 연수와 네트워킹 기회 제공, IT 지원, 자금 중개 프로그램 등을 통해 활동을 뒷받침한다. 기업을 대상으로는 NPO와의 협동 사업을 제안하고 상담하는 창구 역할도 한다.


    NPO 법인중에서 운영조직 및 사업활동이 적정하고, 공익의. 증진에 기여가큰 법인으로, 관할기관 (도도부현・정령시)으로부터 인정을받은 NPO
     

    - 지역 단위: 도도부현 NPO지원센터 네트워크

    일본NPO센터는 전국 도도부현별로 NPO지원센터 목록을 관리하고 있으며, 각 지역의 지원조직과 지원시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각 지역 센터는 NPO의 조직 상담에 대응할 수 있는 상근 스태프를 두고, 분야를 가리지 않는 종합 지원을 원칙으로 한다.

    중간지원조직의 형태는 NPO, 타운 매니지먼트 기관 등 제3섹터적인 것, 자치체 내부에 설치된 것, 사회복지협의회가 설치한 것 등 다양하다. 공설
    公設 및 민설民設 양쪽의 형태가 있으며, 공설 중에는 민영(운영을 NPO법인 등 민간에 위탁하는) 형태도 있어 '공설민영' 형태가 증가하는 추세다. 

    중간지원조직의 주요 기능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상담과 정보 제공이다. 법인 설립부터 보조금 신청, 회계 처리까지 단체가 필요로 하는 실무적 지식을 지원한다. 둘째는 역량 강화 교육이다. 단체 운영, 모금, 홍보 등 다양한 주제의 연수를 제공한다. 셋째는 자원 연계다. 기업의 사회공헌 자금이나 재단 보조금을 NPO와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넷째는 네트워크 구축이다. 단체들이 서로 만나고 협력할 수 있는 장을 만든다.


    일본NPO지원센터의 구체적 활동 : NPO서포트센터와 협동 모델

    일본의 중간지원조직 가운데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례는 NPO서포트센터다. NPO서포트센터는 1993년에 설립되어 일본 최초의 민간에 의한 NPO 지원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설립 당시는 NPO라는 개념이 '발견'되어 이입되기 시작한 시기로, 버블 붕괴, 한신·아와지 대지진, 지하철 사린 사건 등으로 상징되는 저성장과 혼미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 가운데서 선구자들은 NPO의 가능성에 목소리를 높여 NPO법이라는 기반을 만들었다. 

    NPO서포트센터는 도쿄 중앙구와 협력해 '협동스테이션 중앙을 운영하며, 행정과 NPO의 실질적 협동을 위한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모델에서 핵심은 행정이 공간과 일정 재원을 제공하지만 운영의 주도권은 민간 NPO가 갖는다는 점이다. 행정 주도로 운영될 경우 나타나는 경직성 문제를 최소화하면서도 공공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일본NPO센터가 행정과의 협동을 정의할 때 "이종·이질의 조직이 공통의 사회적 목적을 위해 각자의 자원과 특성을 모아 대등한 입장에서 협력하여 함께 일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협동이 공동 의존이나 유착 관계가 되지 않도록 정보 공개를 철저히 하고 사업마다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원칙은 매우 중요하다. 행정으로부터 지원을 받되 독립성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중간지원조직의 존재 의의이기 때문이다. 일본NPO센터는 행정과 협동하는 NPO가 갖춰야 할 자세로 "행정에 의존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독립할 것"을 핵심 덕목으로 꼽는다.




    국내 중간지원조직과의 공통점 및 차이점   

    필자가 6기 아카이브 에디터로 활동 중인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는 경기도민과 공익단체들의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증진하기 위해 경기도와 시민사회가 함께 설립한 중간지원조직으로, 일본의 중간지원조직 구조와 비교할 때 몇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이 드러난다. 유사점으로는 먼저 행정과 시민사회의 협력 구조가 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도 경기도의 지원 아래 운영되면서도 시민사회의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구조를 갖고 있다. 공익활동 단체 지원, 네트워크 구축, 콘텐츠 아카이빙 등 일본 중간지원조직의 주요 기능과 상당 부분 겹친다. 양성교육 프로그램 운영, 정기회의를 통한 네트워크 구축, 공익매거진 발간 등은 일본 지역 센터들의 활동과 흡사하다.

    차이점에서는 역사의 두께가 가장 크다. 일본의 중간지원조직 생태계는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1998년 NPO법 제정을 출발점으로 삼아 약 30년의 축적을 가지고 있다. 전국 단위에 일본NPO센터가 있고, 47개 도도부현에 각각 지역 지원 조직이 있으며, 더 아래로는 시·구·정·촌 단위의 자원봉사센터와 협동 거점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 이후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었고,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도 그 흐름 위에서 성장하고 있지만 역사의 두께 면에서는 아직 차이가 있다.

    또한 일본은 NPO법이라는 명확한 법적 근거 위에 전체 생태계가 세워져 있어, 어느 지역에 어떤 종류의 지원 조직이 있는지 체계적으로 파악된다. 한국은 공익 관련 법인 형태가 분산되어 있고, 중간지원조직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법적 근거가 상대적으로 덜 명확하다.

    기업 연계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일본은 기업의 사회공헌(CSR·CSV) 활동과 NPO를 연결하는 매개 기능이 중간지원조직의 중요한 역할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 자원이 공익활동 생태계에 흘러드는 구조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반면, 한국은 이 연계가 아직 초기 단계인 경우가 많다.


    일본 사례가 보여주는 중간지원조직의 세 가지 원칙

    일본의 사례에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를 비롯한 국내 중간지원조직 생태계가 참고할 만한 점을 세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째, 법적 기반이 생태계를 안정시킨다. 일본 NPO 생태계의 폭발적 성장은 1998년 NPO법 제정 이후에 일어났다. 법인격 취득이 쉬워지자 단체들이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그 위에서 중간지원조직도 자라날 수 있었다. 한국도 공익활동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방향의 논의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단체 등록, 세제 혜택, 보고 의무 등 법·제도적 환경이 공익활동의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둘째, 지역 밀착성이 핵심이다. 일본의 중간지원조직은 전국 단위와 지역 단위가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전국 단위 센터가 정책 제언과 정보 허브 역할을 한다면, 지역 센터는 실제로 단체들의 현장과 맞닿아 개별 상담, 역량강화 교육, 지역 네트워크 구축을 담당한다. 경기도는 31개 시·군이라는 방대한 지역을 아우르는 만큼, 남부센터와 북부센터 체계를 기반으로 지역별 밀착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독립성을 지켜야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이 살아난다. 일본의 중간지원조직들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이 '행정 의존 탈피'다. 재정 지원을 받되, 공익활동 현장의 목소리를 행정에 전달하는 정책 제언 기능, 단체들이 서로 연대하는 네트워크 기능을 유지하려면 운영의 자율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도 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생태계 전체의 신뢰를 높이는 길이다.


    일본의 NPO 중간지원조직 생태계와 국내 중간지원조직 생태계를 비교하면 역사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1995년 대지진을 계기로 자원봉사의 원년을 선언하고, 1998년 NPO법을 제정하고, 그 위에서 30년에 걸쳐 촘촘한 지원 구조를 쌓아온 일본과, 공익활동의 제도화가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된 한국의 차이는 단순히 따라잡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방향은 같다. 공익활동이 혼자서는 지속될 수 없다는 인식, 그것을 지원할 중간지원조직이 필요하다는 인식, 그리고 그 중간지원조직이 행정과 시민 사이를 '진짜 다리'로 연결해야 한다는 인식은 일본과 한국이 공유하고 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아카이브 에디터와 함께 공익활동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쌓아가는 것도 그 방향의 일부다. 30년 전 일본의 시민들이 대지진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보여준 시민사회의 힘처럼, 오늘 경기도의 공익활동을 기록하는 한 줄, 한 줄이 미래의 생태계를 위한 토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카드뉴스 제작 6기 아카이브 에디터 남철우(디어) 


    참고 자료
    일본NPO센터 공식 홈페이지 https://www.jnpoc.ne.jp/
    내각부 - 중간지원조직의 현황과 과제에 관한 조사 보고(2002) 
    https://www.npo-homepage.go.jp/uploads/h13b-2.pdf
    NPO CROSS - "중간지원조직이란 무엇인가" https://npocross.net/1881/
    복지타임즈 -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재해 지원 시스템 구축" https://www.bokj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865
    민병로 (2010). 일본 시민 사회의 구조와 법인화 - NPO법인 제도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10(2), 125-160.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469758


    시민사회를 잇는 다리 : 일본 NPO법과 중간지원조직
    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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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3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사람으로 살다가 안산에 정주한 사람이 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어서 찐 안산 사람이 되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잇는 ‘기억과 약속의 길’ 시민 안내자이며 발달장애인 바리스타들의 직무 지도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슴에 ‘별을 품고 사는 사람’으로 ‘춤추는 나무’. 4월이라 더 바쁜 고명선 활동가를 소개한다.
     

    자신을 ‘춤추는 나무’라고 소개하는데, 어떤 의미인가?
    20대 때부터 상담소에서 닉네임으로 ‘나무’를 썼다. 내 주변엔 뿌리 깊은 나무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이미 너무 많더라. 나는 그들 사이에서 그저 이웃들과 바람이 가는 대로 춤추며 살고 싶었다. 거창한 존재보다 주변과 어우러지는 사람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춤추는 나무로 매일 출근하는 일부터 소개해 달라.
    안산의 한 카페에서 성인 발달장애인 바리스타 6명 곁에서 ‘직무지도원’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 바리스타들이 샷 추출이나 음료 제조 실력은 정말 뛰어나다. 다만 숫자 계산, 재고 파악, 그리고 동료 간의 의사소통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속도에 맞춰 호흡하며 일상을 나누고 지역사회 안에서 당당한 직업인으로 살아가도록 곁을 지키는 ‘다정한 이웃’이 되는 일이다. 

     


    기억교실에서 '기억과 약속의 길'이 시작된다 사진 제공 4.16기억저장소


    춤추는나무는 걷기를 좋아한다 사진 제공 고명선

     

    장애인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와 이전의 이력이 궁금하다.
    대학 시절, 집안에만 갇혀 지내는 재가장애인들에게 책을 배달하며 장애인 인권에 눈을 떴다. 이후 ‘장애여성공감’ 상담원으로 일했고, ‘성공회 나눔의집’에서 어린이와 어르신을 돌보고 성인장애인들과 함께 일했다. 장애인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활동의 뿌리가 됐다. 

     

    서울 사람이 어떻게 안산의 시민 활동가가 되었나?  
    결혼하면서 안산에 왔다. 세 아이 엄마로서, 2014년 4월 16일 도서관에서 강의를 듣다가 세월호 소식을 접했다.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믿고 큰 걱정 안 했다가, 저녁에야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세월호가 가라앉는 화면을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에 발만 동동 굴렀다. 다음 날, 당시 초등학생이던 큰아이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무작정 단원고로 달려갔다. 수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아이들이 돌아오기만을 비는 밤이었다. 운동장에 교복 입은 학생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다. 여러 번 촛불을 들었지만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던 그 촛불이 제일 간절했다. 그 이후 화랑유원지, 안산문화광장, 광화문광장에서 나는 계속 촛불을 들었다. 



    기억과약속의길 시민안내자로 활동하는 '춤추는 나무' 모습 사진 제공 고명선
     

    시민안내자로서 걷는 ‘기억과 약속의 길’은 무엇인가?
    참사 직후부터 정부합동분향소와 단원고 교실을 찾아가는 ‘기억과 약속의 길’이 있었다. 나는 2017년 4.16기억저장소 ‘4.16 민주시민교육’에서 알게 되었다. 부모님의 해설을 들으며 걷는 고잔동에서 별이 된 아이들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9년부터다. 수료생들과 함께 “누가 오든 안 오든, 우리끼리라도 한 달 한 번은 꼭 이 길을 걷자”고 다짐했다. 4.16기억교실에 모여서 단원고 추모조형물, 4.16기억전시관, 고잔동 마을의 골목골목을 지나 4.16생명안전공원 부지까지, 2~3시간을 시민들과 걷고 있다. 

    지난 7년여 동안 이 길을 지키며 느낀 건 ‘기억의 힘’이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이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어떤 날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때론 눈이 내리기도 했지만 모두 노란 우산을 쓰고 끝까지 걸었다. 걷는다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기억공간에서 서로의 기억을 꺼내고, 어떻게 기억하고 약속할까 이야기했다. 태풍 때 한 번 취소된 거 말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이 길을 걷는 행위 자체가 4.16 이전과 이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다짐이라고 본다. 
     


    기억교실 영상실에서 7반 허재강 어머니 양옥자 님(좌)과 1반 한고운 어머니 윤명순 님(우)과 함께 사진 제공 4.16기억저장소


    가만히 있지 않겠다, 뭐라도 함께 해야 했다 사진 제공 고명선

     

    ‘기억과 약속의 길’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의례가 있다고 들었다.
    매번 출발을 4.16기억교실에서 한다. 3월엔 3반, 4월엔 4반 이런 식이다. 교실에 모여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출석’ 시간이 있다. 시민 안내자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그 아이 자리에 앉은 시민이 “네!”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아이들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고 그들의 삶과 꿈을 기억하는 시간이다. 기억과 약속의 길은 함께 기억하고 약속하는 연대의 길이다. 

    춤추는 나무는 별을 품은 사람들(이하 ‘별품사’)도 만들었다고 들었다. 
    2018년경 4.16 안산시민연대에서 ‘별을 품은 이웃’이라는 마을별 세월호 모임을 제안했다. 그때 나는 '함께크는여성울림'에서 상근 활동가로 피켓팅과 서명전 등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활동가들과 고민하다가 “울림 사람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여 활동하고 마음을 나누자”라며 회원들을 모아 소모임 ‘별품사’로 의기투합했다. 

     


    '별품사'는 단원고 약전부터 함께 읽었다 사진 제공 고명선


    세월호 꽃누르미 공방의 5반 큰 건우 어머니 김미나 님 (좌) 4반 정차웅 어머니 김연실 님(우)과 함께 사진 제공 고명선
     

    대단한 목표보다 그저 참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별이 된 아이들을 우리 가슴에 품고 살아가자는 뜻이었다. 별품사 첫 활동이 별이 된 단원고 아이들의 약전 읽기였다. 《4.16 단원고 약전, 짧은 그리고 영원한》은 1반 1권으로 시작해 10반 10권까지, 그리고 선생님들과 일반인들 이야기 2권으로 책이 12권이다. 책을 펼쳐 아이들 이름을 부르고 이야기하는 게 처음엔 우느라 너무 어려웠다. 아이들의 꿈, 좋아했던 음식을 이야기했고 아이가 좋아한 음악을 모임에서 함께 들었다. 아이와 부모님들의 일상을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우리는 많이 울고 또 웃었다. 약전 전권을 2년에 걸쳐 완독 토론한 후 아이들 모두에게 편지를 썼다. 그 결과물로 250편의 편지 모음집 《잊지 않을게 행동할게》를 펴내 기억교실 각 반에 갖다 두었다. 

    별품사는 세월호의 진실과 별이 된 아이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공부방’이자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세월호 관련 영화나 연극을 관람하고 기억식 등 관련 행사에 참여해 왔다. 세월호 공방 어머니들을 모셔 와 꽃누르미와 다양한 기억 물품을 만들며 아이들 이야기를 들었다. 416 희망 목공소에 가서 아버지들과 목공 실습도 했다. 올해는 별품사 새 회원들과 함께 약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3월에는 약전에 빠진 아이 중 1반 문지성 이야기를 어머니 안명미 님을 모셔서 생생히 듣는 시간도 가졌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유가족들 곁에서 안산의 한 귀퉁이를 지키는 온기가 되려고 한다. 


    약전에 빠진 1반 문지성 어머니 안명미 님(정면 우)과 함께 사진 제공 고명선


    별품사가 엮은 284쪽 짜리 편지집 사진 제공 고명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목소리를 내며 사진 제공 고명선

     

    그 외에도 매달 피케팅과 생명 안전 공원 예배에 참여하지 않나.
    피켓을 드는 것은 시민들에게 참사의 진실을 알리며 잊지 말자고 호소하는 직접적인 소통 창구다. 매월 둘째 수요일 5시 30분 광화문광장에서 ‘기억공간 지키기 집중 피케팅’을 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의 차가운 시선이나 “인제 그만 좀 해라”, “지겹지도 않냐?”라는 말이 비수처럼 꽂힐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피켓을 놓지 않은 건, 다시는 어떤 참사도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고, 밝혀지지 않은 진상규명에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매달 첫 일요일 오후 5시, 공사가 진행 중인 거친 흙바닥 위에서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노래한다. 예배에서 별이 된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시간이 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는 그 시간이 소중하다. 이름을 부르며 아이들이 모두 안산으로 돌아올 걸 믿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엄마아빠 마음이다. 4.16 생명 안전 공원은 별이 된 아이들의 봉안당을 포함해서 모든 시민이 찾아와 머무는 열린 공간이 될 것이다. 

     


    생명안전공원 예배 사진 제공 고명선

     

    생명 안전 공원 건립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공원 부지 앞에서 반대하는 분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 “너희 때문에 경제가 망했다”라며 화를 내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분들이 느끼는 불안은 우리 때문이 아니라 사회 구조 전반의 불안정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깃을 눈앞의 노란 리본으로 정해버린 거다. 생명 안전 공원은 특정 누군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참사를 성찰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다짐하는 공간이다. 그분들과도 결국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내 삶에 일어난 변화가 있다면?
    배우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마누라가 바빠져서 얼굴 보기 힘들다”라더라. 그래서 “참사 이전에도 세 아이 엄마로 늘 바빴거든?” 농담해 줬다. 첫째 변화는, 내가 안산이라는 도시에 뿌리를 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학교도 다녔기에 결혼하고 살게 된 안산이 늘 낯설었다. 그런데 참사가 터졌다. 어느 순간 차마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할 수 없더라. 그렇게 비로소 안산에 정주하는 진짜 ‘안산 사람’이 됐다. 

    둘째는, 참사 이후 그분들이 겪는 사회적 고립과 혐오를 보면서, “이분들 또한 우리 이웃으로서 존중받으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함께 숨 쉬어야 하듯, 세월호 가족들도 우리 공동체 안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분들이 외롭지 않게 안산이라는 공동체의 품을 넓히는 것이 내 활동의 동력이자 철학이다. 



    별품사와 6반 신호성 어머니 정부자 님(앞줄 가운데)과 함께 사진 제공 고명선


    세월호 가족들 곁에서 특별히 배운 점이 있다면?
    10주기 때 ‘유류품 기록’ 작업을 함께했다. 아이들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기록하며 부모님들이 들려주시는 목소리를 듣고, 다시는 어떤 참사가 일어나면 안 된다는 걸 느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감히 “그 마음 다 안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함부로 ‘공감’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게 됐다. 나는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어 주는 이웃’이 되기로 했다. 슬플 때 함께 울고 기쁠 때 함께 웃고!

    4.16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는 소회는 어떤가?
    생명 안전 공원이 계획대로 차질 없이 건립되어 흩어져 있는 우리 아이들이 비로소 안산이라는 집으로 평안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공사 부지를 지날 때마다 지난 10년여의 갈등과 눈물, 그리고 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그곳은 단순히 희생자를 추모하는 무거운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들이 언제든 찾아와 산책하고,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일상을 나누고, 생명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희망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돌아오는 그날, 안산이 비로소 참사의 아픔을 딛고 생명과 안전을 상징하는 새로운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다. 

    춤추는 나무의 남은 꿈도 나눠달라.
    내 곁에서 함께 일하는 발달장애인 동료들의 속도,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다정한 이웃’이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서로 연결된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살린다. 4.16 이전과 이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첫 마음을 잊지 않고 끝까지 함께 걸어가고 싶다. 

     


    생명안전공원이 완공돼도 계속 다정한 이웃으로 사진 제공 고명선


    “이웃의 손을 놓지 않는 든든하고 다정한 배경”, 내 이름은 춤추는 나무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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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0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 안산의 밤, 평화를 묻다
    2026년 4월 2일, 안산 중앙동 월드코아 광장에서

     

    차가운 아스팔트에 누운 사람들

    4월의 안산은 아직 춥다. 바람이 몰아치는 중앙동 월드코아 앞 광장, 그 바닥에 사람들이 눕기 시작했다. 스스로 선택해서,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팔을 벌리고, 그대로 멈췄다. 다잉 퍼포먼스. 죽음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행위. 이란에서, 베네수엘라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집어삼킨 이름들.

    지나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바라봤다. 어떤 이는 그냥 걸어갔다. 그것도 하나의 대답이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 앞에서 얼마나 자주 그냥 걸어가는가. 전쟁은 멀리 있고, 뉴스는 흘러가고, 오늘도 밥을 먹어야 한다. 그 무심함이 세계를 지금 이 꼴로 만들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안산평화연대와 안산민중행동이 이번 집회를 열었다. '미국의 침략전쟁 규탄, 파병 반대, 긴급평화촛불'. 이름이 길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우리 아이들을 전쟁터로 보내지 말라는 것. 이렇게 말하면 너무 감상적인가. 그러나 감상적인 것과 옳은 것이 반드시 다른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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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6기 아카이브 에디터 윤작가 


    미친 운전자를 끌어내려야 할 때

    한겨레평화통일포럼의 강신하 씨가 여는 말을 맡았다. 그는 트럼프가 말하는 '힘에 의한 평화'가 일제강점기 이토 히로부미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평화를 외치면서 자국 이익을 위해 국제법을 위반하고, 베네수엘라를 침공하고, 이란을 침공하고, 이제 쿠바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 그 말을 듣는 동안 나는 그 논리의 익숙함이 오히려 섬뜩하게 느껴졌다.

    “미친 운전자는 운전석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그는 2차 대전 말기, 히틀러에 의해 순교한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말을 인용하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날 세계는 인터넷과 무역 등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한 사람의 광인이 그 연결망 전체를 고통에 빠뜨리고 있으며, 세계 시민이 연대하여 트럼프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트럼프는 지구를 떠나라."

    구호는 과격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연료처럼 쓰는 모든 방식에 대한 거부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외쳤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 2026년 4월 2일, 안산 중앙동 월드코아 광장에서 열린 긴급평화촛불 여는말을 하고 있는 강신하 (사)한겨레평화통일포럼 이사장 
    사진 제공 6기 아카이브 에디터 윤작가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다음 차례는 어디인가

    첫 번째 자유발언자는 지금 이 순간의 전쟁을 이야기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략전쟁이 한 달을 넘겼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그런데 트럼프는 오늘도 '극도로 강력한 타격'을 언급했다. 다른 나라의 주권과 그 나라 국민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태도로 일관한 것이다. 발언자는 이번 전쟁이 기울어가는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의 발악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를 겨냥한 우크라이나 전쟁, 베네수엘라 침공, 쿠바 겨냥, 이란 침공. 그다음은 어디인가. 결국 미국이 패권을 지키려면 최후의 경쟁자는 중국이다. 불타는 서남아시아의 모습이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광장은 잠시 조용해졌다.

    뒤이어 발언자가 짚은 것은 한국 정부의 태도였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규탄하는 서방 공동성명에 이재명 정부가 동참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불법 침공과 민간인 학살에는 침묵하던 나라들이 이란의 자위적 조치에는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했다. 그 성명에 한국도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리고 작년 관세협상 팩트시트에 담긴 이른바 ‘동맹 현대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 미국 무기 구매, 주한미군 현금 지원-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한미 연합훈련 프리덤 실드FS·Freedom Shield가 대북 작전에서 대중국 작전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읽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이런 합의를 했다면 강한 비판을 받았을 것이며, 민주당이라고 해서 나라의 안보와 국익을 파는 행위에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발언자의 말이 맞다. 여야가 한통속으로 미국의 압박에 끌려다니는 상황에서, 비판의 목소리는 정파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 이라크 파병으로 김선일 씨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 시민이 나서야 한다. 민중의 힘으로 정부를 견제하고 국익과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 


    3대의 병역, 그리고 기록되지 않은 이름들

    두 번째 발언자는 국립영천호국원에 잠든 한 아버지의 딸로서 그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6·25 전쟁 당시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 날짜를 잡아놓은 상태에서 보국대로 끌려간 아버지는 1951년 이승만의 긴급 명령으로 강제 동원된 민간인 부대, '지게 부대'에서 총도 군복도 없이 지게와 맨손으로 물자를 날랐다고 한다. 굶주림과 질병, 가혹한 폭격 속에서 아버지는 다시 영덕에서 제주도로 끌려갔고, 넉 달간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모두들 전사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냈다. 전사 통지서를 기다리며 눈물로 살았던 할머니와 고모들, 예비 신랑이 전사했다는 소문에 고통받던 어머니, 그 충격으로 석 달 만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까지. 휴전 후 아버지는 살아 돌아와 두 사람은 결혼했지만,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 했다고 한다. 또 전쟁이 일어날까, 또 끌려가진 않을까. 가슴이 벌렁거리는 삶.



    긴급평화촛불 두번째 발언자의 모습 사진 제공 6기 아카이브 에디터 윤작가 
     

    그의 오빠는 10·26사태와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군부 시절 32개월간 군생활을 하며 소식을 닿지 않아 어머니는 밤새 울며 기도했다고 한다. 남동생은 노태우 정부 시절 27개월 포병으로 복무했고, 무거운 장비를 들다가 허리를 다쳐 지금도 후유증이 있다. 

    그의 큰아들은 박근혜 정부의 북풍 몰이 속에 군대에 갔다. 작은아들은 최전방 GPGuard Post, 감시초소에서 복무하는 동안 시국 뉴스에 심장이 벌렁거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미국에서 일하는 큰 아들은 배낭여행으로 이란을 몇 번 다녀온 것이 문제가 되어 비자를 받으러 왔다가 5개월간 발이 묶였다. 아버지부터 오빠, 남동생, 아들까지 3대가 '병역명문가'로 검색된다. 참전용사요, 숨은 영웅이라지만 뒤집어 말하면 3대에 걸친 전쟁 피해자다.

    그는 호주 시드니 안작 메모리얼Anzac Memorial에서 본 동상 이야기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전사한 군인 한 명을 여성 세 명이 어깨로 받치고 서 있는 동상. 어머니, 아내, 딸. 그 앞에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전쟁은 결코 남성들만의 일이 아니다. 그 무게와 고통을 온몸으로 감당하는 건 결국 수많은 여성이다. 국가는 그 여성들을 영웅이라 부르지 않는다. 기록하지도, 기억하지도 않는다. 두번째 발언자는 말했다. 3대 병역명문가 말고, 3대 평화명문가의 역사를 쓰고 싶다고, 우리 아들딸들에게 물려줄 가장 좋은 선물은 평화라고.


    휘파람과 촛불 - 광장이 끝나도 남는 것

    집회의 마지막 순서로 휘파람의 노래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구호 대신 노래. 주먹 대신 촛불. 어떤 이는 눈을 감고 들었고, 어떤 이는 옆 사람 어깨에 살짝 기댔다. 분노와 슬픔이 잠시 다른 형태를 취하는 시간이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노래는 끊어지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흩어졌고, 광장은 다시 그냥 광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무언가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 도시에 있다는 확인.

    작은 불꽃들이 가까이 모여 있으면 쉽게 꺼지지 않는다. 오늘 밤 안산의 광장이 그것을 보여줬다. 우리 아버지가 겪은 비극을 손자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의 아픔을 손녀들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차가운 4월의 밤에 촛불을 들었다. 그 불꽃은 오늘도 꺼지지 않는다.
     


    사진 제공 6기 아카이브 에디터 윤작가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 안산의 밤, 평화를 묻다
    윤작가

    조회수 270

    2026-04-07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디지털 시대, 공익활동의 새로운 흐름

    스마트폰 하나로 은행 업무를 보고, 장을 보고, 심지어 투표 정보를 확인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막상 "우리 동네 가로등이 고장 났을 때 어디에 신고해야 하지?", "내 지역 국회의원에게 의견을 전달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시민들이 자신의 일상과 직결된 문제를 공적 영역에 전달하는 일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높은 문턱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개념이 바로 '시빅테크
    Civic Tech'다. 시빅테크란 시민의 민주적 참여와 공공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분야를 가리킨다. 단순히 정부가 전자민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과는 다르다. 시빅테크의 핵심은 기술이 '정부의 도구'가 아니라 '시민의 도구'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시민이 먼저 문제를 인식하고, 기술을 통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며, 그 결과로 공공 기관을 움직이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이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역사와 영향력을 가진 단체가 바로 영국의 ‘마이소사이어티mySociety’다. 2003년 설립 이후 20여 년간 영국 시민들이 지역 문제를 신고하고, 국회의원에게 편지를 보내고, 정부 기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일을 기술로 쉽게 만들어온 이 비영리단체의 이야기는, 공익활동 생태계를 키우고자 하는 한국 시민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영국 마이소사이어티(mySociety) 홈페이지 mysociety.org


    마이소사이어티의 설립 배경과 철학

    마이소사이어티는 영국 기반의 등록 자선단체로, 원래 이름은 'UK Citizens Online Democracy 영국 시민 온라인 민주주의'였다. 1996년 UKCODUK Citizens Online Democracy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 단체는 2003년 마이소사이어티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온라인 기술을 활용해 시민들이 시민 참여의 첫걸음을 내딛도록 돕는 선구적인 비영리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설립자 톰 스타인버그
    Tom Steinberg는 당시 동거인이었던 제임스 크랩트리James Crabtree와의 협업에서 영감을 받았다. 크랩트리가 온라인 민주주의 저널
    에 기고한 글 "시빅 해킹: 전자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의제 Civic Hacking: A New Agenda for E-Democracy"가 마이소사이어티 설립의 직접적인 씨앗이 되었다. 이 글은 정부 바깥에서 시민 사회를 직접 강화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담고 있었다. 2004년 25만 파운드의 초기 보조금을 받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마이소사이어티는, 이후 영국을 넘어 전 세계 시빅테크 생태계의 기준점이 되었다.


    마이소사이어티의 비전은 '사람들이 정보를 갖추고, 연결되며, 자신의 공동체와 세상의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공정한 사회'이며, 미션은 '민주적 참여의 장벽을 허무는 디지털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마이소사이어티가 '최소한의 기술'을 철학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화려한 인터페이스보다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단순함을 추구했고, 사용자가 우편번호 하나만 입력해도 자신의 지역 의원이 누구인지, 어느 기관에 신고해야 하는지 바로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기술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임을 처음부터 분명히 한 것이다. 현재 마이소사이어티는 민주주의, 투명성, 기후, 커뮤니티라는 네 가지 실천 영역에서 40개국 이상의 시민들을 돕고 있다.



    지역 문제를 지도 위에 올리다 : 픽스마이스트리트(FixMyStreet) 

    마이소사이어티의 플랫폼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2007년에 시작된 '픽스마이스트리트'다. 이름 그대로 '내 거리를 고쳐라'는 뜻이다. 작동 방식은 간단하다. 시민이 스마트폰이나 웹사이트에서 우편번호나 현 위치를 입력하면 지도가 열린다. 거기서 문제가 있는 지점을 핀으로 표시하고, 파손된 도로, 고장 난 가로등, 방치된 쓰레기 등 문제 유형을 선택한 뒤 사진과 설명을 첨부해 제출하면 끝이다. 시스템은 해당 지점이 어느 지방의회 관할인지 자동으로 판단해 담당 기관에 신고를 전달한다. 시민은 자신이 어느 구청에 전화해야 하는지 알 필요도 없다. 신고 이후 처리 과정도 공개적으로 추적할 수 있어, 같은 문제를 공유하는 주민들이 함께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픽스마이스트리트는 2007년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자신의 주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왔다. 픽스마이스트리트는 2024~2025년 뉴스픽 하우스 정치기술상에서 '시민들이 지역 인프라 문제를 관련 기관에 직접 신고할 수 있게 해주는 시빅 리포팅 도구'로 평가받으며 실시간 공공 참여를 지원하고 투명성을 높이며 일상적인 지역사회 참여를 강화하는 공로로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이 플랫폼의 코드는 오픈소스로 공개되어 있어, 다른 나라의 단체나 개인이 자국 상황에 맞게 변형해 사용할 수 있다. 크로아티아의 NGO Gong
    Građani organizirano nadgledaju glasanje이 'Popravi.to(고쳐라)'라는 이름으로 자국판 서비스를 만든 것처럼, 현재 픽스마이스트리트 플랫폼은 전 세계 여러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다. 2018년 한 해에만 마이소사이어티의 영국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이 900만 명을 넘었다.



    영국 마이소사이어티가 운영하는 공익활동 플랫폼 중 하나인 픽스마이스트리트 fixmystreet.com


    권력에게 말 걸기 : 라이트투뎀(WriteToThem)과 왓두데이노(WhatDoTheyKnow) 

    '픽스마이스트리트'가 지역 환경 문제를 다룬다면, '라이트투뎀'과 '왓두데이노'는 시민과 권력 사이의 소통 방식 자체를 바꾼다.

    '라이트투뎀'은 시민이 자신의 우편번호를 입력하면 해당 지역구의 하원의원, 상원의원, 지방의회 의원 등을 자동으로 찾아주고, 그 자리에서 바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수신자의 이메일 주소를 찾을 필요도 없고, 어떤 의원이 자신의 지역을 담당하는지 미리 알 필요도 없다. 라이트투뎀은 영국 전역의 시민들이 우편번호를 입력해 자신의 선출직 대표자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하는 서비스로, 많은 구성원과 많은 대표자 사이의 소통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독보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라이트투뎀' 이용자의 절반 이상은 선출직 대표에게 처음 연락해본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에 참여 경험이 없던 사람들이 이 플랫폼을 통해 처음으로 민주주의에 참여했다는 의미다. 단순히 기존 참여자를 돕는 것을 넘어, 참여의 문턱 자체를 낮춘 것이다.

    '왓두데이노'는 영국의 정보공개법
    Freedom of Information Act에 따라 시민이 공공기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이다. 청구 양식이나 법적 지식 없이도, 원하는 기관을 선택하고 원하는 내용을 입력해 제출하면 된다. 모든 청구 내용과 기관의 답변은 공개적으로 기록되어 누구나 열람할 수 있고, 같은 내용의 청구가 중복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방지된다. 왓두데이노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보공개 청구는 영국 중앙정부에 제출되는 전체 청구의 15~20%를 차지하며, 45,000개 이상의 공공기관이 등록되어 있고 80만 건 이상의 청구가 이 서비스를 통해 이루어졌다.

    2023~2024년에는 약 12만 건의 정보공개 청구가 왓두데이노를 통해 제출되었으며, 이는 전년 대비 3% 증가한 수치다. 또한, 라이트투뎀 서비스의 한 활용 사례로, 기후 및 생물다양성 입법을 위한 초당적 지지를 끌어내려는 'Zero Hour' 캠페인이 라이트투뎀 도구를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통합해 지지자들이 각자의 지역 대표자에게 직접 연락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두 플랫폼이 공유하는 공통점은 '출발점은 시민'이라는 원칙이다. 정부가 원하는 방식으로 민원을 접수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방식으로 소통을 시작할 수 있다.


    한국 현황과 비교 : 정부 주도와 시민 주도의 차이

    한국에도 유사한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신문고와 청와대 국민청원이다. 국민신문고는 행정 민원을 온라인으로 접수하는 정부 운영 시스템으로, 전국 어느 기관에나 민원을 넣을 수 있는 단일 창구로 기능한다. 편의성 측면에서는 큰 진전이었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한계도 드러난다. 답변까지 몇 주에서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많고, 관료적 검토 과정을 거쳐 나온 답변은 형식적 내용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도입된 제도로, 30일 안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에 대해 정부 관계자가 직접 답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시민의 관심을 정치적 의제로 전환하는 힘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연구자들이 지적한 문제점도 있었다. 법적 근거 결여로 인한 폐쇄적 운영, 권력집중 및 권력남용의 통로로 악용, 일부 세력의 다중 투표 등을 통한 여론 왜곡 가능성, 부실한 답변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결국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사실상 폐지되었다.

    마이소사이어티의 플랫폼들과 한국의 이러한 시도들 사이에는 구조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의 경우 대부분 '정부가 문을 열면 시민이 들어가는' 방식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폐지된 것이 대표적이다. 플랫폼의 존속 자체가 권력의 결정에 달려 있다. 반면 마이소사이어티의 플랫폼들은 민간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며, 코드를 오픈소스로 공개해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서비스가 지속되고 다른 곳에서 복제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한 픽스마이스트리트는 시민이 문제를 제기하면 자동으로 해당 기관이 통보되는 구조라, 시민이 '어디에 말해야 하는지'를 알 필요가 없다. 반면 국민신문고는 어느 기관에 민원을 넣어야 하는지 시민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차이도 있다.

    물론 제도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시민이 출발점인 설계'와 '지속 가능한 독립적 운영'이라는 두 가지 원칙에서 한국의 공익 디지털 생태계가 배울 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

    마이소사이어티의 사례는 경기도 공익활동 단체와 활동가들에게도 여러 질문을 던진다.

    첫째, 기술은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마이소사이어티의 성공은 복잡한 기술이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는 단순함'에서 비롯됐다. 우편번호 하나, 지도 위의 핀 하나로 시작하는 설계는 IT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한다. 경기도의 31개 시·군에서 다양한 공익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활동들이 시민들에게 어떻게 닿고 있는지, 참여의 첫 문은 얼마나 낮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둘째, 공공 데이터와 오픈소스의 힘을 활용해야 한다. 마이소사이어티는 플랫폼 코드를 공개해 크로아티아, 그리스 등 여러 나라가 자국 버전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경기도의 공익활동 데이터와 자원도 공개적으로 공유될 때 더 큰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아카이브 에디터들이 기록하는 공익활동 콘텐츠가 단순히 홈페이지에 게시되는 것을 넘어 더 넓은 공익 생태계와 연결되는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지속 가능성은 독립성에서 나온다. 마이소사이어티는 보조금과 상업적 서비스를 결합해 재정적 독립성을 유지한다.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의 공익활동 지원 구조에서도 이런 지속 가능성의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된다. 단기 프로젝트 방식의 지원을 넘어 공익활동의 생태계 자체를 키우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넷째, 참여의 기록이 곧 민주주의의 기반이다. 왓두데이노가 80만 건 이상의 정보공개 청구를 공개 기록으로 남겨온 것처럼, 시민의 참여와 목소리가 기록되고 축적될 때 그것은 개인의 행위를 넘어 사회적 자원이 된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아카이브 에디터 활동이 추구하는 바도 같은 맥락에 있다. 기록은 단순한 홍보가 아니라, 공익활동이 사회 속에 뿌리를 내리는 방식이다.



    마무리 : 기술보다 중요한 것

    마이소사이어티가 20년 넘게 영향력을 유지해온 비결은 기술이 아니다. 물론 플랫폼은 잘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시민은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이 설계에 반영되었다.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시민, 의원에게 편지를 보내는 시민, 동네 도로를 사진으로 찍어 신고하는 시민 — 이 모든 행위가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마이소사이어티는 그 작은 행위들이 모이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데이터로 증명해왔다.

    경기도에서 공익활동을 이어가는 단체와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다. 한 편의 기사가, 한 번의 취재가, 한 장의 사진이 혼자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쌓이고 연결될 때 그것은 공익활동 생태계의 토양이 된다. 마이소사이어티의 사례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살아있는 증거 중 하나다.




    카드뉴스 제작 6기 아카이브 에디터 남철우(디어) 


     

    참고 자료

    • mySociety 공식 홈페이지 - About : https://www.mysociety.org/about/
    • mySociety 공식 홈페이지 - History :https://www.mysociety.org/about/history/
    • mySociety Year in Review 2022 : https://2022.mysociety.org/
    • mySociety - New report: WriteToThem Insights (2025.12.11.) : https://www.mysociety.org/2025/12/11/new-report-writetothem-insights/
    • mySociety - Statement from mySociety regarding misuse of FixMyStreet data (2024.02.06.) : https://www.mysociety.org/2024/02/06/statement-from-mysociety-regarding-misuse-of-fixmystreet-data/
    • SocietyWorks - FixMyStreet celebrated in Newspeak House Political Technology Awards : https://www.societyworks.org/category/fixmystreet-com/
    • Civic Tech Guide - mySociety : https://directory.civictech.guide/listing/mysociety
    • Escher, T. (2011). WriteToThem.com Analysis of users and usage for UK Citizens Online Democracy. Oxford Internet Institute. https://www.mysociety.org/files/2011/06/WriteToThem_research_report-2011-Tobias-Escher.pdf9. 이성우 외 (2021). 새로운 국민소통 플랫폼으로서 청와대 국민청원 현황과 법제도적 개선방안을 중심으로. 법과정책. 

     


    시민이 정부를 움직인다 : 영국 마이소사이어티 사례로 본 공익활동 플랫폼의 가능성
    디어

    조회수 338

    2026-04-01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중간지원조직의 역할 

    현대 사회는 기후 위기, 디지털 격차, 지역사회 해체 및 급격한 고령화 등 기존의 공공 행정 시스템만으로는 온전히 대응하기 어려운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난제들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를 토대로 이뤄지는 공익활동은 사회적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높이는 핵심적인 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는 경기도민과 공익단체들의 활동을 증진하고 지원하기 위해 경기도와 시민사회가 협력하여 설립한 중간지원조직으로서 ‘공익활동으로 연결된 생동하는 경기시민사회’를 구축하는 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활동하고 있는 6기 아카이브 에디터들의 시민 기록 활동은 단순히 공익 활동 현장의 이벤트를 스케치하는 수준을 넘어, 공익활동의 사회적 가치를 가시화하고 데이터화 함으로써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주요한 지적 자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본 글에서는 미국, 영국 및 북유럽의 선진적인 공익활동 지원 모델을 통해 이를 경기도 31개 시·군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전략적 시사점을 도출해 보고자 합니다. 




    이미지 제작 6기 아카이브 에디터 남철우(디어) 


    미국 아쇼카의 시스템 체인지 모델

    공익활동 패러다임을 단순한 ‘시혜적 복지’에서 ‘사회적 혁신’으로 전환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의 아쇼카Ashoka를 들 수 있습니다. 1980년 빌 드레이튼에 의해 설립된 아쇼카는 ‘Everyone a Changemaker 모두가 체인지메이커’라는 비전 아래, 전 세계적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회적 기업가들을 발굴하여 지원했습니다. 

    이들의 핵심 전략은 ‘아쇼카 펠로우
    Ashoka Fellow’ 시스템입니다. 선정된 활동가들에게는 최대 3년간의 활동 지원금Stipend이 제공되는데, 이는 단순한 생활비 보조를 넘어 활동가가 경제적 제약 없이 사회적 난제 해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실질적인 임팩트 투자입니다. 지원금 규모는 선정된 개인의 필요와 지역별 물가 수준을 고려하여 유동적으로 조정되며, 이를 통해 활동가는 시스템 차원의 변화를 끌어내는 데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경기도공익활동센터의 미션인 '활동가의 사회적 가치 실현 지원'이 단기적인 프로젝트성 예산 지원을 넘어, 활동가가 혁신가로서 지속가능하게 성장할 수 있는 장기 인프라 구축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검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경기도 역시 이러한 혁신가 발굴 및 육성 시스템을 하나의 참고 모델로 삼아, 도내 숨은 공익 인재들이 전문적인 사회 혁신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사회적 임팩트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지 제작 6기 아카이브 에디터 남철우(디어) 


    경계를 넘는 연대와 리더십 : 영국 ‘코먼 퍼포즈’

    코먼 퍼포즈Common Purpose는 공익활동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리더십’과 ‘영역 간 연대’에 집중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지원 조직입니다. 이들은 공공기관, 영리 기업, 시민사회라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리더들을 연결하여 지역사회의 복합적인 난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경계를 넘는 리더십Crossing Boundaries Leadership’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코먼 퍼포즈 활동에서 주목할 점은 협력의 모든 과정을 치밀하게 기록하고 공유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모든 서사를 아카이빙하여 대중에 공개합니다. 이러한 기록 방식은 다른 지역 사회나 단체들이 유사한 문제를 겪을 때 시행착오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지식 자산
    Knowledge Asset’으로 활용됩니다.

    이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아카이브 에디터들이 생산하는 콘텐츠가 단순한 기록을 넘어, 공익활동의 지적 토대를 다지는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경기도 31개 시·군이 가진 각기 다른 현안을 고려할 때, 이러한 협력 모델의 아카이빙은 앞으로 주목해볼 만한 과제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제작 6기 아카이브 에디터 남철우(디어) 


    디지털 아카이빙과 포용적 참여: 북유럽의 오픈 데이터 플랫폼 사례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디지털 기술을 공익활동에 적극적으로 접목하여 포용성과 투명성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스웨덴의 시민 참여형 오픈소스 플랫폼 협동조합인 디지뎀Digidem Lab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공공데이터를 시민사회에 전면 개방하고, 시민들이 직접 공익 정보를 생성하고 공유할 수 있는 오픈 아카이빙 플랫폼을 구축하여 운영합니다.

    누구나 차별 없이 정보에 접근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러한 환경은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핵심 가치인 ‘다양성 존중’과 ‘차별 없는 참여’를 기술적으로 뒷받침하는 수단이 됩니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라, 시민들이 실시간으로 공익 이슈를 인지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행동 촉발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에디터가 센터 홍보채널인 홈페이지 공익웹진,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발신하는 정보들은 이러한 디지털 생태계의 혈관과 같은 역할을 수행합니다. 지리적으로 넓고 인구 밀도가 높은 경기도의 특성상 북부와 남부를 유기적으로 잇는 디지털 네트워크와 아카이빙의 강화는 생동하는 시민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지 제작 6기 아카이브 에디터 남철우(디어) 


    사회적 책임을 기록하는 공익활동의 등대

    해외 사례를 통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역할에의 시사점은 크게 세 가지 전략적 축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기록의 전문성과 서사적 가치 부여입니다. 단순한 행사 스케치를 넘어, 공익활동이 창출하는 사회적 임팩트를 정교한 논리와 감동적인 서사로 담아내는 전문적인 아카이빙이 필요합니다. 둘째, 네트워크의 거점화 및 지식 공유의 활성화입니다. 에디터는 도내 활동가들을 연결하는 허브로서, 지역 간의 우수 사례가 선순환될 수 있도록 정보를 유통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합니다. 셋째, 포용적 참여를 이끄는 다각적 콘텐츠 생산입니다. 텍스트 위주의 원고뿐만 아니라 인포그래픽, 카드뉴스 등 도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포맷을 활용하여 공익활동의 문턱을 낮춰야 합니다.

    저는 지난 수년간 200회 이상 대외활동에 참여하며 ‘기록되지 않은 활동은 기억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제를 선정한 배경 역시 경기도의 역동적인 공익활동이 해외 선진 시스템을 참고하여 더욱 강력한 사회적 자본으로 축적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6기 아카이브 에디터는 이러한 전략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시민기록자’로서, 경기도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증명하고 기록하는 활동을 해나갈 예정입니다. 

    결국 공익활동의 본질은 시민이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는 데 있으며, 그 변화의 궤적을 기록하는 행위는 곧 시민사회의 역사를 쓰는 숭고한 일입니다. 해외의 혁신적인 조직들이 증명했듯, 철저한 기록과 투명한 정보 공유는 시민의 신뢰를 구축하고 활동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유일한 길입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와 아카이브 에디터들이 함께 구축해 나가는 공익활동 아카이브는 단순한 기록의 집합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가 될 것입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6기 아카이브 에디터들은 올 한 해 동안 현장의 뜨거운 숨결을 정교하게 기록할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공익활동이 모든 도민의 일상이 되고, 시민의 참여와 지지가 확장되는 생동하는 경기 시민사회를 앞당기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고 문헌
    Ashoka Official Website (ashoka.org) - 'Fellowship Selection Process & Stipend' 
    Common Purpose UK (commonpurpose.org) - 'Crossing Boundaries Leadership' 
    Digidem Lab Sweden (digidemlab.org) - 'Open Source Participation Platforms'

     


    기록되지 않은 활동은 기억되지 않는다 : 해외 사례로 본 공익 아카이브에의 시사점
    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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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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