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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3일 월요일 오후,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교육장에는 시민추진위원회 위원들이 모여 앉았다. 'AN전도시에 SAN다' 시민추진위원회 전체회의였다. 이날 가장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은 순서는 특별강연이었다. 강연 제목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강사로는 국회생명안전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용혜인 국회의원이 나섰다.
올해 5월 7일,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으로부터 꼭 12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이 글은 그날 강연에서 짚어준 법의 핵심 내용을 바탕으로, 에디터가 현장에서 느낀 것들을 함께 담아 정리한 기록이다.
솔직히 말하면, 강연을 들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안도감보다는 무게감이었다. 법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반가웠지만, "이제 다 됐다"는 홀가분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 채워야 할 것들이 더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재난안전기본법에는 '피해자'가 없었다
생명안전기본법이 만들어지기 전, 우리나라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 가장 먼저 작동하던 법은 재난안전기본법이었다. 그런데 이 법에는 애초에 '피해자'라는 규정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국가가 재난을 어떻게 대응하고 관리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짜인 법이다 보니, 국가와 각 부처가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만 규정하고 있을 뿐 피해자의 관점은 반영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국가는 자체적인 조사와 수습만 진행했을 뿐, 피해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대형 참사의 피해자들은 회복과 치유의 과정을 거치기는커녕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고 거리에서 한겨울 혹한에 잠을 자야 했다. 심지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이 '반정부 세력'으로 매도되는 일까지 있었다.
이 대목에서 에디터로서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뉴스로 스치듯 봤던 유가족들의 모습, 삭발식, 단식 농성. 그때는 그저 안타까운 뉴스 한 줄이었는데, 그것이 '법에 피해자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구조적인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걸 이번 강연을 통해 처음으로 또렷하게 이해하게 됐다.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제도의 공백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생명안전기본법이 갖는 네 가지 의미

이날 강연에서는 생명안전기본법이 갖는 의미를 크게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국민의 안전권을 법률로 명시함으로써 헌법적 기본권을 확장했다는 점.
둘째, 그동안 흩어져 있던 재난안전 관련 법체계의 상위에 서는 기본법이 만들어졌다는 점.
셋째, 참사 때마다 반복해서 제기됐던 예방 미흡·부실 조사·피해자 방치라는 문제를 해소할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
넷째, 진상규명을 위한 독립조사를 실질화하고 상설화했다는 점. 강연에서는 이 네 번째 대목을 "법의 심장 같은 부분"이라고 표현했다.
네 가지를 순서대로 듣다 보니, 결국 이 법의 뼈대는 '권리'와 '체계'와 '반복 방지'와 '독립성', 이 네 단어로 요약되는 것 같았다. 법 조문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이 네 가지로 정리해 들으니 왜 이 법이 필요했는지가 한결 선명해졌다.
1. 헌법적 기본법의 확장 - 안전을 '권리'로
생명안전기본법 4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등에 관계없이, 일상생활과 노동현장 등에서 안전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받고 안전하게 살 권리를 가진다." 안전이 권리로써 명문화된 것이다.
법안 심사 과정에서는 이 조항의 주어를 두고 논쟁도 있었다고 한다. '국민'이 아니라 '사람'으로 규정해야 실질적이라는 반대 의견이 있었고, 결국 이번 법에서는 '국민'으로 정리됐다. 대신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이 별도로 담겼다.
이 부분을 들으며 에디터로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태원 참사와 화성 아리셀 참사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겪었던 차별적 대응을 이미 우리는 목격한 바 있다. '모든 국민'에서 '모든 사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은, 이 법이 아직 완성형이 아니라 계속 자라야 할 법이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이 권리는 피해자에게는 더욱 구체적으로 확장된다. 신속하게 구조받을 권리, 예방부터 복구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고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차별받지 않고 2차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시신을 인도적으로 인계받을 권리, 생활·의료·심리 지원을 받을 권리, 조사에 참여할 권리, 그리고 기억하고 추모할 권리. 그동안 피해자들이 스스로 짊어져야 했던 부담감을 이제는 국가가 보장해야 할 권리로 바꿔놓은 것이다.
2. 상위 기본법 제정 - 흩어진 법체계의 뼈대를 세우다
두 번째 의미인 '법체계의 상위 기본법'은, 그동안 재난안전 관련 법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이를 하나로 꿸 설계도가 없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생명안전기본법은 바로 그 설계도 역할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법이다.
이 뼈대를 실제로 움직이는 장치로는 대통령 소속의 국민생명안전위원회, 그리고 5년마다 국가가 수립해야 하는 생명안전종합계획이 소개됐다. 안전 정책 전체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두는 동시에, 흩어져 있던 정책과 예산, 교육을 하나로 모아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3. 반복된 문제를 풀 근거 — 안전영향평가와 알 권리

세 번째 의미인 '반복되는 문제 해소'는 크게 두 가지 제도로 구체화된다.
하나는 안전영향평가다. 정부와 지자체가 새로운 법령이나 정책·사업을 추진할 때, 그것이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분석·평가하도록 하는 제도다. 새로운 규제를 풀거나 사업을 벌일 때 안전이 뒷전으로 밀리지 않도록 하는 예방장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피해자의 알 권리 보장이다. 앞으로 피해자들은 조사 결과와 판결문, 사고 원인과 재발 방지 대책, 유해 물질 정보까지 요청할 수 있고, 요청받은 국가나 기업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반드시 응해야 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성분 정보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감춰졌던 일,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둘러싼 문서 목록 하나 공개되기까지 12년이 걸렸던 일이 그 배경으로 언급됐다.
이 대목을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보를 '요청해서 받아내는 것'과 '당연히 받는 것' 사이에는 결과만 놓고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피해자가 감당해야 했던 시간과 싸움의 무게가 있다. 이 법이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국가 쪽으로 옮겨놓았다는 점에서,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변화라고 느꼈다.
4. 독립조사기구, 법의 '심장'
네 번째 의미인 독립조사의 실질화·상설화는 국무총리 산하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 설치로 구체화됐다. 사고 조사, 정책 개선 권고, 그리고 권고 이행 여부 점검까지 이 위원회가 맡는다.
조사기구를 상설화하고 민간 출신 상임위원을 확보하는 것이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가장 첨예했던 쟁점이었다고 한다.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그때그때 조사위원회를 새로 꾸리면, 매번 처음부터 사람을 모으고 자료를 다시 모으느라 조사가 지연되고, 결국 조사위원의 전문성과 연속성이 이어지지 않아 '셀프 조사' 비판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동안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겪었던 한계였다.
여기에 더해 조사가 끝난 뒤 권고사항이 실제로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조항도 새로 담겼다. 어렵게 조사하고 권고안을 만들어도 이행 여부를 아무도 확인하지 않으면 그 노력과 시간이 무의미해진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또 하나 눈에 띈 조항은 지역과 추모, 공동체 회복에 관한 내용이다. 추모시설 조성이나 기록 사업 등을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하도록 명시한 것인데, 그동안 정부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회복'이라는 영역이 국가의 의무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느꼈다.
12년, 발의와 폐기를 거듭한 시간
법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심사조차 받아보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 다시 공동발의로 힘을 모았지만, 이번에도 국회 안에서 순탄하게 논의가 진전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결국 국회 안에서 스스로 길을 연 것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앞두고 유가족과 시민들이 다시 목소리를 낸 것이 계기가 되어 4월 29일 법안소위를 통과하고 5월 7일 본회의에서 최종 가결됐다.
12년이라는 시간은 강연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 초등학교 5, 6학년이 될 만큼의 시간"이라고 표현됐다. 이 표현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법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 아이가 그만큼 자랄 시간이 걸렸다는 것,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버텨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이번 법 통과로 유가족분들이 조금은 위안을 받으셨을 거라 생각하지만, 동시에 그 위안이 12년의 기다림에 비하면 너무 늦게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법 통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법이 통과된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이 강연 내내 반복됐다. 실제로 남은 과제는 적지 않다.
첫째는 시행령 제정이다. 피해자의 범위, 조사위원회 구성, 안전사고의 정의처럼 법의 실제 알맹이를 결정할 핵심 내용들이 대통령령에 위임돼 있다. 방향에 대한 의견은 주고받았지만, 실제 시행령이 어떻게 나올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둘째는 안전약자의 범위 확대다. 청소년이나 미등록 외국인처럼 더 취약한 사람들까지 폭넓게 포괄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이 다듬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셋째는 통합 컨트롤타워 문제다. 분산된 재난 조사를 한데 모아 결과와 사후 대책까지 통으로 점검하는 역할을 이번 법에 담고 싶었지만, 다른 부처들의 반발로 온전히 반영되지 못했고 앞으로의 개정 과제로 남았다고 한다.
이 부분을 들으며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법이 모든 것을 한 번에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강연자 스스로 숨기지 않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12년 만에 어렵게 만든 법이니만큼 앞으로 더 탄탄하게 다듬어가야 한다는 과제가, 오히려 이 법이 살아있는 법이라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무대는 이제 지역, 안산이 먼저다
법은 국가 전체를 규율하는 법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작동하려면 지역의 조례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리고 그 무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역으로 안산이 꼽혔다.
사업을 추진할 때 피해자와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담겼다. 곧 조성될 4·16생명안전공원, 그리고 안전도시 시민추진위원회가 앞으로 만들어갈 추모·회복 사업들이 이 법의 지원 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안산시 실정에 맞는 조례를 연구해 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이어졌다.
법과 조례가 있어도 이를 운영할 주체가 없으면 그저 종이에 적힌 글씨에 불과하다는 말도 나왔다. 지역에서 안전 거버넌스를 세우고 시민들의 안전 역량을 키우는 일이 중요한 과제이며, 안산에서는 이미 시민추진위원회가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 대목에서 에디터로서 드는 생각은 이렇다. 법과 시행령은 국회와 정부의 몫이지만, 그 법을 지역에서 실제로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일은 결국 우리 몫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더해져 이 법이 세상에 나온 만큼, 안산에서 먼저 이 법이 잘 시행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질의응답 — 시행령 일정과 예산, 그리고 남은 쟁점

시행령은 언제쯤 완성되나. 시행령 제정 기한을 정한 조항이 있는지, 언제쯤 완성된 법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법이 지난 5월 공포되었고 심사 과정에서 시행령의 방향까지 함께 논의했지만 강연 시점까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나온 시행령안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사위원회 구성에 시민사회 몫이 있나. 특정 참사를 다루는 한시적 조사기구라면 피해자 대표 추천 몫을 두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조사기구는 상설로 운영되는 성격이라 추천 대상을 특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다만 재난안전 분야에서 활동해온 시민사회와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인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예산은 충분히 확보될 수 있나. 상설 조사기구 운영에 필요한 예산은 일반회계에서 편성되는 것이라 확보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본다는 답이 나왔다. 유가족과 시민사회가 세월호 참사 12주기 이전 제정을 요청했던 이유 중 하나도 각 부처의 예산 편성 시점과 맞물려 있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중대재해처벌법과의 관계는.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이미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생명안전기본법이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사례를 짚어가며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질문들을 듣고 있자니,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이 단순히 강연을 '듣는' 입장이 아니라 이미 이 법을 '어떻게 써먹을지'를 고민하는 입장이라는 게 느껴졌다. 시행령, 예산, 안전약자 범위처럼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질문들이 이어졌다는 것 자체가, 안산이 이 법을 그저 뉴스로 흘려보내지 않고 있다는 증거로 보였다.
나오며 — 에디터의 생각
강연을 들으며 내내 든 생각은, 12년 만에 만들어진 법인 만큼 앞으로 잘 만들어지고 잘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법 제정으로 유가족분들은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으셨을 테지만, 정작 시행령을 채우고 지역 조례로 구체화하는,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가 더 크게 남아 있다는 느낌이 강연 내내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겨우 결실을 맺은 법인 만큼, 앞으로는 더 탄탄한 법으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이 법이 통과되기까지 유가족과 시민사회, 그리고 국회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더해졌다는 것을 이번 강연을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안산에서 먼저 이 법이 잘 시행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법은 국회가 만들었지만, 그 법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일은 결국 지역에서, 우리 손으로 해나가야 할 몫이다. 이번 시민추진위원회 전체회의가 그 시작점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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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1※「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산(安山). 사람들은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안 산다, 안 산다' 하면서도 결국 사는 곳이 안산이라고.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뭔가 씁쓸한 진실이 담겨 있다. 집값이 싸서, 공장이 가까워서, 달리 갈 데가 없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모여든 사람들이 만든 도시. 그러나 나는 이 이름을 다르게 읽고 싶다. 안전하게(安全하게) 산다. 안전하게 살고 싶어서 모인 사람들의 도시. 그것이 안산이어야 한다, 그래서 5월 9일의 행진은 말하고 있었다.

오후 세 시, 두 갈래의 물줄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원고 앞 원고잔 공원 입구에서 한 줄기가, 중앙동 월드코아 광장에서 또 한 줄기. 바람이 조금 불었지만, 따뜻한 봄볕이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깃발을 들고 있었다. 깃발이란 원래 선언이다. 내가 여기 있다는, 내가 이것을 원한다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라퍼커션의 드럼 소리가 먼저였다. 타악기의 진동은 공기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슴팍을 두드리고,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무릎을 움직이게 한다. 사람들이 걸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이윽고 자연스럽게, 마침내는 즐겁게. 선두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배치가 아니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안전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 한마디 없이 그 줄 세움이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 뒤로 시민들이 이어졌고, 후미에는 노동자들이 든든하게 받쳤다. 안산시청 앞에서 두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그것은 이미 강이었다.

나는 깃발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손으로 만든 깃발, 글씨를 써넣은 깃발, 그림을 그려 넣은 깃발. 깃발 컨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은 일동 지역아동센터가 만든 '우산 깃발'이었다. 우산. 비바람으로부터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그 단순하고 완벽한 상징. 어른들이 수십 장의 기획안과 정책 문서로 표현하려 했던 것을 우산 하나로 해냈다.

안전이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비가 올 때 곁에 우산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혼자 비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산업단지에서 일하다 다친 이주노동자에게 말이 통하는 안내가 있다는 것. 노후 건물에 혼자 사는 노인에게 누군가의 시선이 닿는다는 것. 장애인이 휠체어를 밀며 이 도시의 어느 골목이든 막힘없이 갈 수 있다는 것. 이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걸었다.

며칠 전, 조용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일이 있었다.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꼭 12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12년. 그 긴 시간 동안 유가족들은 거리에 섰고, 시민들은 광장에 모였고, 활동가들은 국회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법이란 선언이다. 이제 안전은 국가가 베푸는 혜택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할 권리라고 이 나라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늦었다. 그러나 왔다. 그리고 온 것들은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안산은 희생자 250명이 학교에 다녔고, 골목에서 뛰어놀았다. 10년 넘는 세월 동안 안산은 세월호의 도시였다. 슬픔의 도시, 기억의 도시. 그러나 안산 시민들은 슬픔에 머물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물었다. "세월호 이후 안산은 정말 안전해졌는가." 기억이 기억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고. 질문은 행동이 되었고, 행동은 130개의 지역 주체가 모인 시민추진위원회가 되었다. '304개의 노란 테이블' 시민대토론회가 되었고, 마침내 다섯 가지의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 되었다. 이제 안산은 세월호의 도시가 아니라, 안전의 도시로 거듭나려 한다. 슬픔을 동력 삼아, 변화를 향해.


안산문화광장 물의광장. 시장 후보들이 나란히 섰다. 더불어민주당 천영미 후보, 국민의힘 이민근 후보, 조국혁신당 조안호 후보, 진보당 홍연아 후보. 서로 다른 정당,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섰다. 이주민 대표가 앞으로 나왔다. 언어가 달라도, 국적이 달라도, 이 도시에서 일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똑같이 안전해야 한다고. 장애인 대표가 나왔다. 도시의 턱을 없애달라고, 경사로와 점자블록이 방치되지 않는 도시를 만들어달라고. 노동자 대표가 나왔다. 산업단지에서 매년 반복되는 사고를, 더 이상 개인의 불운으로 처리하지 말아달라고. 시민 대표가 나왔다. 이 모든 요구가 선거철 공약이 아니라, 임기 내내 지켜야 할 약속이 되어달라고.

다섯 가지였다.
1. 도시 비전 및 행정계획 수립: 4.16 정신을 계승한 중장기 안전 전략 마련
2. 「시민안전센터」 설치: 시민과 소통하며 일상 속 안전 교육을 전담할 기구 마련
3. 안전투자 적극 확대: 재난관리기금 조성 비율 상향 및 안전 인프라 예산 증액
4. 「안전영향평가」 제도화: 취약계층의 관점에서 정책의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점검
5. 전담 행정조직 확대: 분산된 안전 부서를 통합하고 민관 협력 거버넌스 내실화
생명·안전 가치를 담은 도시 비전 및 행정계획 수립. 시민안전센터 설치. 안전 예산과 재난관리기금의 적극적 확대. 안전영향평가 제도화. 생명·안전 전담 행정조직 확대와 민관협력 거버넌스 강화. 어렵지 않은 말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실제 예산이 되고, 조례가 되고, 담당 부서가 생기고, 취약계층의 목소리가 정책 설계 단계부터 반영되는 일은, 누군가 끊임없이 요구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걸었다. 그래서 전달했다.
정치인의 약속이란 언제나 유효기간이 불분명하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광장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이주민과 장애인과 노동자의 손에서 직접 건네받은 요구안을 들고 한 약속은 조금 다르다. 증인이 있는 약속은 그 무게가 다르다. 이날 광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그 약속의 증인이다.

행진이 끝나고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깃발은 접혔고, 드럼 소리는 멎었고, 광장은 다시 평범한 광장이 되었다. 그러나 무언가가 달라졌다. 그것은 도시의 표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변화다. 함께 걸었다는 사실, 같은 방향을 향했다는 기억, 우리가 원하는 것을 큰 소리로 말했다는 경험. 이런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도시란 무엇인가. 건물과 도로와 행정구역의 합산이 아니다.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갖는 책임감의 총합이다. 내 옆집 사람이 오늘 안전한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무사히 집에 돌아가는지, 이주민 아이가 아플 때 말이 통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이것을 묻고, 따지고, 바꾸려는 사람들이 함께 걸었던 5월 9일의 안산은, 그래서 잠깐 더 나은 도시였다.
안전하게 산다. 그래서 안산이다. 함께 걸었던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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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6※「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17일 화요일 오후 2시 안산 지역 시민사회, 사회적경제, 문화예술, 마을, 노동, 청년, 장애인, 이주민 단체 등 130개 단체가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마다 활동하는 영역도 다루는 이야기도 달랐지만, 이들이 이날 모인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모두가 안전한 도시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 질문 하나를 붙들고 지난 1년을 준비해 온 안산 시민사회가, 마침내 시민추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범을 선언하는 날이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12년이 흘렀습니다. ‘4.16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고 다짐해 왔던 말들이, 실행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 날인 거죠. 저 역시 안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AN전도시에 SAN다’ 시민추진위원회 출범식에 다녀온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전체회의 : 지난 1년의 여정을 돌아보다
본격적인 출범식에 앞서 전체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에서는 지난 1년간의 추진 경과와 2026년 주요 활동 계획이 공유됐어요. 회의를 이끈 김은호 4.16안산시민연대 공동대표이자 공동추진위원장은 이렇게 운을 뗐습니다.
“2024년, 우리는 안산을 생명과 안전의 도시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담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생명안전도시 안산 만들기 프로젝트가 작년부터 시작되었고, 지난 1년의 여정은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여정1. 여덟 번의 포럼이 쌓아올린 공통의 언어
그중 2025년 8월부터 10월까지 총 8회에 진행된 ‘안산생명안전포럼은’ 이 모든 준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1강 ‘위험사회의 이해와 시민의 안전한 권리’로 시작한 포럼은 2강에서 안전권이 헌법과 국제 인권 규범에 근거한 사회적·국가적 책임임을 짚었고, 3강에서는 광주 5·18 사례를 통해 회복적 도시 모델의 가능성을 탐색했습니다. “기억은 과거를 묻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반복되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광주가 인권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약속을 제도와 문화로 확장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4강은 경주 지진 사례를 통해 ‘마을이 곧 매뉴얼’이라는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재난 발생 후 가장 중요한 것은 훌륭한 매뉴얼이 아니라 서로의 얼굴을 아는 관계다.”
5강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시 재난·안전 분야 실태 연구 용역 결과가 발표되었죠. 결론은 냉정했습니다. “안산시는 생명안전도시를 만들어갈 충분한 역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세권 중심의 고밀도 복합 개발에 집중하면서 생명과 안전이 외면되고 있다.”
6강에서는 거버넌스 전략을 논했습니다. “작더라도 시민이 직접 정책을 이야기하는 경험을 쌓으면, 그것이 행정의 방향을 바꾼다.” 7강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 시민사회 활동에 대한 성찰적 진단이었어요. “우리는 쉽게 연결되어 있지만, 뭘 할 수 있는 힘은 약해졌다”는 뼈아픈 자기 점검이었죠.
그리고 마지막 재난과 안전에 관한 지역사회 커뮤니티의 역할을 다룬 8강까지, 총 여덟 번에 걸친 포럼은 안산 시민들의 공통 언어를 만들어냈어요. 그것은 바로 안전은 특정 사고에 대응하는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조건이라는 것,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와 도시의 책임이라는 것, 그리고 시민 참여 없이 지속가능한 안전 정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정2. 아홉 번의 워크숍이 연결한 다양한 목소리

포럼 이후에는 전체 비전 수립 워크숍 2회, 노동·마을·이주민·여성·청년·청소년·장애인 7개 부문 워크숍을 합해 총 9회 워크숍이 이어졌고, 150여 명이 참여해 각자의 경험으로 도시 안전을 이야기했어요. 포럼이 공통의 언어를 만드는 자리였다면, 워크숍은 그 언어를 각 부문의 현장으로 가져간 과정이었습니다. "나의 안전이 도시의 안전"이라는 인식이 확장되고, 서로 다른 부문의 주체들이 연결되면서 비로소 이번 출범이 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여기에 지역 23곳, 30회에 걸친 '찾아가는 사업 설명회'를 통해 100명 이상의 활동가들이 공감대를 함께 형성한 것도 빼놓을 수 없어요. 이 모든 과정이 쌓여, 130개 단체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죠.
정식 출범 : 다른 목소리, 하나의 결론
이어진 출범식에서 가장 핵심적인 순서는 ‘안전약자 릴레이 발언’이었어요. 청년,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를 대표하는 네 명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 자신이 살아온 현장의 이야기를 꺼내놓았습니다.
가장 먼저 청년 대표로 나선 영화감독 김윤정 씨가 2014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처음 광장에 나섰던 기억을 꺼내 놓았어요. 당시 친구를 잃은 많은 또래들이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25시 광장’에 모였고, 그 역시 처음 그곳에서 목소리를 냈다고 했습니다. 스물여섯이 됐을 때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고, 스물여덟이 됐을 때는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가 일어났어요.
“왜 우리는 삶의 시간을 지나올 때마다 또 하나의 참사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는 걸까요. 참사는 한순간에 일어나지만, 그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불안은 우리의 일상 속에 계속 존재합니다. 안전은 구조입니다. 누구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위험을 말할 수 있는지, 책임지는 시스템이 있는지 그 구조가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안전해질 수 있습니다.”
안산나무를심는장애인야학 교장 김선영 씨는 장애인의 일상에서 안전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구체적으로 전했습니다. 저상버스가 언제 올지 몰라 불안과 초조함으로 기다리는 시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집 밖을 나올 수도,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 재난 매뉴얼 속에 장애인은 빠져 있는 현실까지. 청각장애인은 대피 안내 방송을 들을 수 없고, 시각장애인은 누군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화재나 붕괴 사고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어요.
“장애인 안전은 복지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입니다. 사고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문제입니다.”
와이즈우멘협회 대표 도르카스 씨는 이주민의 목소리를 전해주었어요. 안산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지역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위험한 노동 환경과 정보 비대칭으로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생명과 안전은 국적을 넘어 모든 사람의 권리입니다. 위기 상황이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모든 이주민이 차별 없이 예방, 지원, 구조, 보상 체계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안산지회장 황순화 씨는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의 현실을 전했습니다. 2025년 3월 기준, 185명이 결원인 상황에서 만성적인 인력 부족은 학교 급식 노동 현장에서 산재 사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기도교육청 조사에 따르면 검진 대상 중 폐결절 등 이상 소견을 보인 급식실 노동자는 3,981명에 달했고, 폐암으로 15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200여 명이 폐암 의심 진단을 받았다고 해요.
“노동자가 아프고 떠나는 급식실에서 안전한 급식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안전은 사고가 난 뒤에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라 사고가 나기 전에 지켜야 할 권리입니다.”
네 사람의 상황과 이야기는 각자 달랐지만 결론은 하나로 모였어요. 안전은 개인이 알아서 챙겨야 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지자체가 구조적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라는 것. 그리고 그 구조를 바꾸는 힘은 바로 시민의 참여에서 온다는 것.
출범 선언문 : 함께 외친 세 마디

이어서 출범 선언문 낭독이 이어졌어요. 공동추진위원장들이 함께 단상에 올라 선언문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됐어요.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묻습니다. 생명과 안전은 이 사회에서 어디에 놓여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그 질문 앞에서 다짐했습니다. ‘4.16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적 재난과 일상의 위험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기억은 남아 있지만 변화는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선언문의 핵심 다짐은 세 가지였습니다. ▲ 생명과 안전을 도시 운영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세우겠다, ▲ 위험이 집중되는 사람들의 삶을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겠다, ▲ 시민의 참여가 도시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도록 하겠다.
“함께 만드는 변화! 모두가 안전한 도시! AN전도시에 SAN다!” 낭독이 끝나자 박수와 함께 울려 퍼진 슬로건은 출범식의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2026 활동 계획 : 기억이 정책이 될 때까지


시민추진위원회가 올해 추진하는 활동은 크게 네 단계로 구성됩니다.
첫째, 시민 공론 형성이에요. 가장 먼저 3월 17일부터 4월 5일까지 ‘생명안전도시 안산 시민 설문조사’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는데, 목표는 안산 시민 1,000명 이상입니다. 전체 회의에서 위성태 사무국장은 “130개 단체가 각각 10명씩만 조직해도 1,300명이 됩니다. 천 명, 2천 명, 만 명까지 한번 우리의 실력대로 해봅시다.”라고 독려했고, 현장에서 웃음과 박수가 터졌습니다.
4월 11일에는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아 안산문화광장에서 '304개의 노란 테이블' 시민 대토론회가 열립니다. 304는 희생자의 수이자, 시민 1,000명이 직접 둘러앉아 정책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테이블의 수이기도 합니다.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시민이 직접 논의하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입니다.
둘째, 시민 참여 확대예요. 5월 한 달간 온·오프라인 캠페인을 벌이고, 5월 9일 오후 3시에는 안산문화광장에서 생명·안전 시민대행진 ‘노란 빛 동행’이 펼쳐질 예정이라고 해요. 시민들과 함께 거리로 나가 안산의 안전을 우리 사회 전체의 의제로 만드는 자리기도 합니다.
셋째, 정책·제도 변화 추진입니다. 시민 공론의 결과를 생명 안전 정책 요구안으로 정리해 6·3 지방선거 출마 후보와 정당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전체 회의에서 정책 협약 무용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시민추진위원회 측은 “약속해놓고 당선되면 아무것도 안 지키더라는 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행을 관철하기 위한 후속 액션까지 철저하게 준비하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넷째, 시민 참여 거버넌스 구축입니다. 올해 하반기 8월부터 11월까지 시민 참여 안전 모니터링 활동을 진행하는데요, 교육 4회와 워크숍 1회로 역량을 키운 뒤, 법·조례·위원회·현장을 시믿늘이 직접 점검하고 모니터링합니다. “모니터링 → 시민공론 → 정책 요구 → 캠페인”의 선순환 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맺음말 : 현장을 기록하며
이날 전체회의에서 나온 한 마디가 오래 머릿 속을 맴돌았습니다. “우리는 쉽게 연결되어 있지만, 뭘 할 수 있는 힘은 약해졌다.” 130개 단체가 모였음에도, 연결이 실행의 힘으로 전환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솔직한 성찰이었습니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 12주기이자, 안산시 승격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거기에 6·3 지방선거까지 맞물린 해이기도 하지요. “역사적인 도시 전환의 분기점이 돼야 한다”는 말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안산은 세월호 참사의 가장 큰 피해를 경험한 도시입니다. 그 아픔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도시의 정책과 구조를 실제로 바꾸어 내는 것, 그것이 시민추진위원회 스스로가 부여한 역할입니다. 취재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면서, 안산의 이번 실험이 경기도, 나아가 대한민국의 다른 도시에서도 롤모델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워크숍 참가자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안산에서 진짜 안전한 도시, 생명의 도시가 탄생한다면, 아마 세계적인 롤모델이 되지 않을까요.”
기억이 정책이 되고, 정책이 일상이 되는 날을 향한 안산 130개 단체의 발걸음이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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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