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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웹진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1. 손 안의 기술이 세계를 바꾸는 시대

    "이 앱 하나면 됩니다." 시각장애인 제이슨 뮬러가 냉장고 문을 열며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댄다. 화면 너머 어딘가의 자원봉사자가 실시간으로 말한다. "왼쪽 두 번째 칸에 우유가 있고, 유통기한은 내일까지예요." 통화 시간은 채 2분이 되지 않는다. 기술이 만들어낸 이 짧은 연결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꾼다.

     

    같은 시각, 아마존 열대우림 깊은 곳에서는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낡은 스마트폰이 24시간 숲의 소리를 듣고 있다. 멀리서 전기톱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인공지능은 0.5초 만에 그것을 감지하고 현지 감시단에게 알림을 보낸다. 불법 벌목꾼이 나무를 쓰러뜨리기 전에 단속 인력이 현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2007년 케냐. 선거 폭력이 번져나가던 나이로비의 한 카페에서 블로거와 인권활동가들이 모여 노트북을 펼쳤다. 언론이 통제되고 구호 단체들이 어디에 도움이 필요한지 파악조차 못하던 그 순간, 시민들이 보내오는 문자메시지 한 통 한 통이 구글 지도 위에 점으로 찍히기 시작했다. 그 지도는 세계가 케냐의 실상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던 창이 되었다.

     

    세 가지 이야기는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문제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디지털 기술이 더 이상 대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적은 자원으로도 기술이 사람을 연결하고 사회적 난제를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샤히디(Ushahidi), 레인포레스트 커넥션(Rainforest Connection), 비 마이 아이즈(Be My Eyes).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조금씩 고쳐온 이 세 단체의 이야기는 경기도의 공익활동 생태계에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2. 시민의 증언이 지도를 그리다: 우샤히디(Ushahidi)


    출처 : 경향신문 라이프 증언한다! SNS로 만드는 협력적인 세상 우샤히디‘ 2011.02.05.

     

    200712, 케냐 대통령 선거 결과가 발표되던 날 나이로비는 불길에 휩싸였다. 선거 부정 논란이 번지며 부족 간 유혈 충돌이 시작됐고, 두 달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1,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60만 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 그러나 정작 세계는 그 참상의 규모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정부의 언론 통제와 국제 취재진 접근 제한 속에서 피해 지역의 실상은 철저히 가려졌다.

     

    출처 : 전자신문 오리 오콜로 우샤히디 창업자 2011.09.21.

     

    이때 나이로비의 인권변호사 오리 오콜로(Ory Okolloh)가 자신의 블로그에 한 가지 제안을 올렸다. "누군가 아는 사람이 있다면, 피해 상황을 지도 위에 표시해주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 글을 본 에릭 허스만(Erik Hersman), 줄리아나 로탁(Juliana Rotich), 데이비드 코비아(David Kobia)72시간 만에 플랫폼을 개발했다. 그것이 우샤히디의 시작이었다. 스와힐리어로 '증언'을 뜻하는 그 이름처럼, 플랫폼의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시민들의 목소리였다.

     

    작동 방식은 단순했다. 시민이 문자메시지, 이메일, 웹사이트를 통해 현장 상황을 제보한다. 폭력 발생 지점, 화재 위치, 구호 요청 지역 등이 담긴 그 정보들은 구글 지도 위에 실시간으로 점으로 표시된다. 스마트폰이 없어도 됐다. 인터넷이 없어도 됐다. 구형 피처폰으로 짧은 문자 한 통을 보내는 것만으로 누군가는 지도 위의 증언자가 될 수 있었다.

     

    케냐 사태 이후 우샤히디의 가능성을 알아본 국제사회의 반응은 빨랐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당시, 우샤히디 플랫폼은 미국 터프츠대학교 학생들과 해외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몇 시간 만에 아이티 현지 버전으로 배포되었다. 생존자들이 보내오는 문자메시지는 영어와 크리올어 통역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분류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도는 미 해병대와 구호 단체들이 구조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 실질적으로 활용되었다. 기존의 구호 체계가 마비되는 최악의 상황에서, 시민들의 집단지성이 만든 지도가 생명줄이 된 것이다.

     

    우샤히디의 역할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에서도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진 초기, 우샤히디 플랫폼에는 단 일주일 만에 200개 이상의 코로나19 관련 지도가 새로 개설되었다. 스페인에서는 'Frena La Curva(곡선을 꺾어라)'라는 프로젝트가 우샤히디를 기반으로 운영되며 봉쇄령 속에서 식료품·의료 자원이 필요한 시민과 이를 제공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를 연결했고, 이 모델은 스페인어권 23개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케냐에서는 'Map Kibera' 프로젝트가 우샤히디 플랫폼을 활용해 빈민가의 코로나19 확산 경로와 구호 자원 현황을 지도화했으며, 이는 케냐 정부가 손 씻기 시설 설치 위치를 결정하는 공식 자료로 활용되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 130개국 이상에서 1,800개가 넘는 배포 사례가 만들어졌다. 위기 때마다 거버넌트 체계가 미처 닿지 못하는 곳을 시민의 집단지성이 채워온 것이다.

     

    우샤히디의 진정한 혁신은 코드를 오픈소스로 공개한 데 있다. 누구든 내려받아 어디에든 적용할 수 있다. 지진이 나도, 선거 부정이 벌어져도, 홍수가 와도. 현재 우샤히디 플랫폼은 160개국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수십만 건의 위기 데이터를 집약해왔다. 대규모 예산도, 거대 조직도 필요 없었다. 시민들이 '지금 여기'에서 겪고 있는 것을 직접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커뮤니티 매핑의 힘은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확인되었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메르스맵'은 감염 경로와 환자 발생 병원을 지도 위에 실시간으로 표시했다. 정부의 공식 발표가 늦어지는 상황에서 방문자가 500만 명을 넘어설 만큼 시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정보 창구가 되었다.

    2020년 코로나19 초기에는 마스크 재고 부족 사태 속에서 시민들이 직접 마스크 판매처와 재고 현황을 공유하는 '마스크 시민지도'가 자발적으로 운영되었고, 서울시는 선별진료소·확진자 동선·클린존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코로나19 서울지도'를 운영해 시민 정보 접근성을 높였다. 장애인 접근성 분야에서도 커뮤니티 매핑은 뚜렷한 성과를 남겼다.

    비영리 사단법인 커뮤니티매핑센터(대표 임완수)가 운영하는 '베프지도'는 휠체어 사용자, 임산부, 노약자 등 교통약자를 위해 엘리베이터·경사로 유무와 출입문 형태 등 공공·문화시설의 접근 정보를 시민이 직접 수집·공유하는 플랫폼이다. 2016년 국민대학교 학생 158명이 3일 만에 3,000건 이상의 데이터를 입력해 '장벽 없는 세상' 지도를 완성한 사례는, 전문가가 아닌 시민의 참여만으로도 사회적 약자의 이동권 문제를 가시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018년에는 평창 동계 패럴림픽 관람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지도가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기술과 시민 참여가 만나는 방식은 각 나라마다 다르지만, 커뮤니티 매핑이 가진 가능성은 국경을 넘어 동일하게 작동한다.

     

    3. 버려진 스마트폰이 숲을 지킨다: 레인포레스트 커넥션(Rainforest Connection)

     

     

     

    지구 산소의 20%를 생산하고, 지구상 생물종의 절반 이상이 서식하는 열대우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불법 벌목은 그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문제는 열대우림의 규모다.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 우림, 콩고 분지, 아마존. 수백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숲을 인력으로 감시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출처 뉴욕타임즈 “ Topher White installing a solar-powered listening unit in a rainforest on the Indonesian island of Sumatra in July. 2019.10.20.

     

    구글 출신 엔지니어이자 음악가인 토퍼 화이트(Topher White)2012년 보르네오 긴팔원숭이 보호 프로젝트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현지 감시단 바로 곁에서 불법 벌목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울창한 숲은 소리마저 흡수했고, 전기톱 소리는 불과 몇 백 미터 거리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화이트는 문득 생각했다. 귀가 없는 게 문제라면, 귀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레인포레스트 커넥션(RFCx)이 개발한 해법은 역발상에서 나왔다. 버려지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작은 태양광 패널을 연결해, 이른바 '가디언(Guardian)'이라 불리는 기기를 만든다. 이 기기를 나무 꼭대기, 빛이 잘 드는 곳에 설치하면 된다. 가디언은 24시간 주변의 소리를 녹음하고, 오디오 데이터를 클라우드 서버로 전송한다. 그리고 클라우드에서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소리를 분석한다. 전기톱 특유의 고주파 진동, 벌목 트럭의 엔진음,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 AI는 수만 건의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 소리들을 자연음에서 걸러낸다. 이상 징후가 감지되는 순간, 현지 보호구역 감시단의 스마트폰에 알림이 전송된다.

     

    실제 효과는 통계로 나타났다. RFCx가 가디언을 설치한 인도네시아 숲 구역에서 불법 벌목 활동이 배포 후 첫 해에 급격히 감소했다는 현지 파트너 기관의 보고가 이어졌다. 페루, 가봉, 카메룬, 브라질 등에서도 유사한 성과가 보고되고 있다. 현재 RFCx의 기술은 전 세계 40개국 이상에서 배포되어, 수백만 헥타르의 열대우림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기술의 정교함만이 아니다. 폐스마트폰을 재활용한다는 발상은 이미 존재하는 자원의 가치를 새롭게 본 것이다. 전 세계에서 매년 수억 대의 스마트폰이 버려진다. RFCx는 그 안에 여전히 작동하는 마이크와 프로세서가 있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전자 폐기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역설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4. 130초의 자원봉사: 비 마이 아이즈(Be My Eyes)

     
     

    덴마크의 은퇴한 장인(匠人) 한스 요르겐 빌헬름센(Hans Jørgen Wiberg)은 스물다섯 살에 시력을 잃었다. 수십 년을 시각장애인으로 살면서,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작은 좌절을 경험했다. 냉장고 속 음식이 언제까지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지금 입고 있는 셔츠 색깔이 무엇인지, 처음 가는 길에서 방향을 잃었을 때. 불편함 자체보다 더 힘든 것은 그때마다 주변 사람에게 부탁하는 미안함이었다.

     

    2012, 그는 한 컨퍼런스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나를 잠깐 도와줄 수 있는 눈이 전 세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 눈과 내가 연결될 수만 있다면." 3년의 개발 끝에 2015년 출시된 비 마이 아이즈(Be My Eyes)는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앱의 작동 방식은 명쾌하다. 시각장애인 사용자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 앱을 열고 요청 버튼을 누른다. 동시에 전 세계에 등록된 자원봉사자들의 스마트폰에 알림이 울린다. 먼저 응답한 자원봉사자와 화상 통화가 연결되고, 자원봉사자는 상대방 스마트폰 카메라가 보여주는 화면을 통해 상황을 설명한다. "지금 손에 든 약통에 '하루 세 번, 식후 30'이라고 쓰여 있어요." 통화는 보통 1~2분이면 끝난다. 언어 장벽을 고려해 150개 이상의 언어별 자원봉사자 풀이 운영된다.

     

    수치는 이 앱이 얼마나 빠르게 세계를 연결했는지 보여준다. 출시 직후 단 몇 주 만에 전 세계 10만 명 이상의 자원봉사자가 등록했다. 현재는 시각장애인 사용자와 자원봉사자를 합쳐 전 세계 600만 명 이상이 150개국에서 이 앱을 사용하고 있다. 자원봉사자 대 시각장애인 사용자 비율이 수십 대 일에 달하기 때문에, 요청이 들어오면 평균 수 초 안에 연결이 이루어진다.

     

    비 마이 아이즈가 공익활동의 관점에서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마이크로 볼런티어링(Micro-volunteering)'이라는 개념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자원봉사는 시간을, 장소를, 그리고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요구했다. 매주 토요일 오전, 특정 센터에 나와, 정해진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비 마이 아이즈는 그 전제를 완전히 해체했다.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점심시간 10분의 여유 시간에, 잠들기 전 침대에서도 자원봉사는 가능하다. '의미 있는 일'이 반드시 거창한 헌신을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 앱은 수백만 명에게 경험으로 가르쳐주었다.

     

    2023년 비 마이 아이즈는 기능을 한 단계 확장했다. 앱 내에 GPT-4 기반의 AI 어시스턴트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자원봉사자가 없는 시간대에도, 혹은 자원봉사자에게 말하기 어려운 내용(: 의료 정보 확인, 은행 서류 읽기)을 처리할 때 AI가 대신 응답할 수 있게 됐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 자원봉사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것이다.

     

    5. 세 가지 사례가 공유하는 것

    우샤히디, 레인포레스트 커넥션, 비 마이 아이즈. 이 세 단체를 나란히 놓고 보면 몇 가지 공통된 설계 원칙이 눈에 띈다.

     

    첫째, 세 곳 모두 '있는 것으로 시작했다'. 우샤히디는 이미 모든 사람 손에 들려 있는 피처폰의 문자메시지 기능을 활용했다. 레인포레스트 커넥션은 매립지로 향하던 폐스마트폰을 주웠다. 비 마이 아이즈는 이미 전 세계 수십억 명이 갖고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와 마이크를 도구로 삼았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투자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의 용도를 다시 상상하는 것이 혁신의 출발점이었다.

     

    둘째, '문제의 당사자'가 설계 과정에 있었다. 우샤히디는 직접 폭력 사태를 목격한 케냐인 활동가가 만들었다. 레인포레스트 커넥션은 실제 열대우림 감시의 한계를 몸으로 겪은 자원봉사자가 시작했다. 비 마이 아이즈는 시각장애인 당사자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이 단체들이 실제로 작동하는 이유는, 만드는 사람들이 문제의 무게를 직접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세 곳 모두 '연결'을 기술의 핵심으로 삼았다. 복잡한 알고리즘이나 거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울 수 있는 사람 혹은 자원을 연결하는 것. 그 연결의 속도와 정확도를 높이는 데 기술이 동원되었다. 기술이 목적이 아니라 통로인 것이다.

     

    6.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


     

    이 세 가지 해외 사례는 경기도에서 공익활동을 이어가는 단체와 활동가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경기도 내 31개 시·군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공익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활동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시민들에게 얼마나 낮은 문턱으로 닿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우샤히디의 사례는 기술이 시민의 집단적 경험을 가시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기도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지역 문제들, 예를 들어 복지 사각지대, 환경 오염, 소외 계층의 이동 불편 등이 시민들의 참여로 지도 위에 실시간으로 기록된다면 어떨까. 예산이나 전담 인력이 없어도, 이미 시민들의 손 안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그것은 가능하다.

     

    레인포레스트 커넥션은 '버려지는 것의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도 시사점을 준다. 공익활동 현장에는 이미 많은 자원이 있다. 다만 그것이 연결되지 않고 흩어져 있을 뿐이다. 경기도 내 활동 단체들이 보유한 데이터, 네트워크, 경험이 공개되고 공유될 때 그것은 다른 단체들의 자원이 될 수 있다.

    비 마이 아이즈의 마이크로 볼런티어링 개념은, 자원봉사와 시민 참여의 문턱을 낮추는 데 직접적인 힌트를 준다. '하루를 내야 할 수 있다'고 알려진 자원봉사는 바쁜 현대인에게 높은 장벽이다. 그러나 '출퇴근길 1'으로 가능한 참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경기도 공익활동 역시 참여의 단위를 잘게 쪼개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기술은 만능이 아니다. 우샤히디가 케냐 사태를 해결하지 못했고, 레인포레스트 커넥션이 불법 벌목 자체를 없애지는 못했다. 비 마이 아이즈가 시각장애인 인프라 전반을 개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세 단체는 기술을 통해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했고, '닿지 않던 곳에 닿게' 했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조금씩 달라졌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간절함

    세 사례의 창업자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기술자이기 이전에 문제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이었다. 오리 오콜로는 자신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막고 싶었다. 토퍼 화이트는 자신이 직접 본 숲의 파괴 앞에서 무력하고 싶지 않았다. 한스 요르겐 빌헬름센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매일 경험하는 작은 불편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 절실함이 기술을 불러들였고, 기술은 그 절실함에 응답했다.

     

    경기도에서 활동하는 공익단체와 활동가들도 그런 절실함을 가진 사람들이다. 디지털 전환(DX)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기술 도입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라는 질문이다. 누구의 문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느냐가 먼저다.

     

    우샤히디의 지도는 지금도 세계 어딘가의 재난 현장에서 켜지고 있다. 열대우림 나무 꼭대기의 가디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소리를 듣고 있다. 누군가의 스마트폰에는 방금 종료된 130초짜리 화상 통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공익활동은 그렇게, 작고 구체적인 연결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참고 자료

    Ushahidi 공식 홈페이지 - About : https://www.ushahidi.com/about/

    Ushahidi - Haiti Crisis Mapping (2010) 활동 기록 : https://www.ushahidi.com/case-studies/

    Rainforest Connection 공식 홈페이지 : https://rfcx.org/

    Rainforest Connection - How It Works : https://rfcx.org/technology

    Be My Eyes 공식 홈페이지 - About : https://www.bemyeyes.com/about

    Be My Eyes - Impact Report (2023) : https://www.bemyeyes.com/impact

    Meier, P. (2011). New Information Technologies and Their Impact on the Humanitarian Sector. International Review of the Red Cross, 93(884).

    White, T. (2014). Using Machine Learning to Listen for Illegal Logging. Guardian Tech Accelerator Report.

    한국정보화진흥원 (2020). 해외 시빅테크 사례 연구 및 국내 적용 방안. NIA 연구보고서.

     
    기술이 세상을 고친다: 디지털 혁신으로 사회적 난제를 돌파한 글로벌 공익 플랫폼 3선
    엄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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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11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우리는 흔히 공익(公益)’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 떠올리는 풍경이 있습니다. 세련된 회의실, 정갈하게 인쇄된 브로슈어, 혹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비장한 표정의 활동가들. 하지만 인간의 자잘한 발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싶은 저에게, 공익은 종종 엉뚱한 곳에서 낡은 슬리퍼를 신은 채 발견되곤 합니다. 이를테면, 안산의 어느 버스 정류장 앞, 조잡하게 쓰인 커트+염색 만원이라는 입간판 같은 곳에서 말이죠. 제가 발견한, 세상에서 가장 싸고 가장 향기로운 어느 미용실의 이야기를 만원의 공익으로 재구성했습니다.

     


     
     

     

    1. 만원이라는 비현실, 추억이라는 현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손바닥만 한 입간판에 씌어 있는 네 글자. ‘커트+염색 만원’. 처음엔 뭔가 잘못 읽은 줄 알았다. 2층을 올려다보니 '김량현 헤이클럽'이라는 간판이 창문에 붙어 있었다. 창문에도 커트+염색 만원문구가 크게 쓰여 있었다.

     

    요즘 세상에 만원의 가치는 어디쯤 와 있을까. 카페에 앉아 쌉싸름한 아메리카노 한 잔에 조각 케이크 하나를 더하면 가볍게 만원을 넘어선다. 내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는 비용은 동네 미용실에서도 어느덧 만 원권 지폐 한 장을 더 요구하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커트와 염색 합쳐서 만원이라니. 이건 자본주의의 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종의 유쾌한 도발이다.

     

    그 낡은 입간판을 보는 순간, 내 안의 오래된 서랍 하나가 삐걱거리며 열렸다. 고등학교 시절, 동인천 대한서림 사거리에 있던 미용 기술학교. 주말이면 미용을 배우는 학생들이 실습 겸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머리를 깎아줬다. 어머니에게 이발비를 받아 싼 맛으로 이발하고, 남은 돈으로 만화책을 봤던 얄팍한 추억이 살아났다. 때로는 고등학생인 나보다 어린 학원생이 손을 바들거리며 가위를 들었다. 가끔은 쥐가 파먹은 듯 삐죽거리는 머리를 보며 속상해하기도 했지만, 뒤에서 쓱 가위를 뺏어 들고 능숙하게 수습해 주던 선생님의 손길이 있어 안심했던 시간이었다. ‘커트+염색 만원이면 아마 그때와 비슷할 듯 속으로 웃음이 비죽 새어 나왔다.

     

    나는 그 비현실적인 가격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설령 머리를 망친다 한들 어떠랴. 내가 카메라 불빛을 받는 연예인도 아니고, 머리카락이란 결국 자라나기 마련인 유한한 세포 뭉치일 뿐인데. 호기심이라는 유치한 연료를 채우고, 나는 2층 계단을 올랐다.

     


     

     

    2. 미용실의 외피를 두른 기묘한 대피소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잠시 공간의 좌표를 잃었다. 그곳은 미용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순수한 창고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온전한 살림집도 아니었다. 미용 도구와 정체불명의 살림살이들이 기묘한 동거를 나누는 공간 한가운데, 낡은 미용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초현실적인 풍경에 압도되어 슬그머니 발을 빼려던 찰나, 사장님이 튀어나왔다.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그러나 눈빛만큼은 지독하게 해맑은 얼굴로.

    머리 깎으러 오셨어요?”

    , 아니에요. 지나가다 궁금해서다음에 올게요.”

    평일 오전이라 한산하지, 주말엔 장난 아닙니다. 아무도 없을 때 깎고 가세요.”

    그의 자연스러운 호객에는 묘한 자력이 있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덩그러니 놓인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의자 위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개 두 마리였다.

    미용실에 개가 있네요?”

    저 칸막이 뒤에 네 마리 더 있어요. 총 여섯 마리죠. 개 좋아하세요?”

    아니요겁이 많아서 동물은 다 무서워합니다.”

    내 고백에 사장님은 호탕하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요 녀석들은 손님만 오면 알아서 창가 지정석으로 가요. 안 짖어요.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자기들이 알아서 그러네. 신기하죠?”

    공간에 가득한 미약한 개 내음과 비염이 있는 내 코의 긴장감 속에서, 그렇게 기묘한 이발이 시작되었다.

     


     
     
     

    3. 안산에서 가장 싸고,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가위질 소리 사이로 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가격으로 운영이 돼요?”

    사장의 대답은 단순했다.

    저는 강아지 밥값만 벌면 돼요.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딱 필요한 만큼만 벌죠.”

    그는 이전에 본오동에서 미용실을 할 땐 커트와 염색에 6천 원을 받았다고 했다. 국회의원도 단골이었고, 직원도 둘이나 뒀던 잘나가는 원장님이었다. 혼자 이곳으로 옮겨오며 가격을 인상한 게 고작 만원이란다. 이야기 도중, 사장님이 갑자기 창문으로 돌진하더니 창밖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엄마! 그거 열무야? 맛있겠다! 나도 줄 거지? 땡큐! 그럼, 내일 9시에 와요, 파마하게! 나 지금 일하는 중이야!”

     

    돌아선 그의 얼굴엔 멋쩍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동네 어르신인데 파마할 때가 지났는데도 안 보이시길래, 언제 지나가나 창밖을 매일 살폈단다.

    여기로 이사 온 후부터는 혼자라 파마는 안 하는데, 80세 이상 할머니들만 아침 일찍 해드려요. 우리 가게는 80세 이상이면 파마든 커트든 염색이든 다 무료거든. 폐지 줍는 어르신들도 오시고어떤 날은 하루 종일 공짜 손님만 치러요.”

    그럼, 강아지 밥값은요?”

    내가 걱정스레 묻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대신 주말에 손님이 많아요. 평일엔 택시 기사님들이 오시고. 강아지 밥값은 충분합니다.”

     
     
     
     
     

    4.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의 무게

     

    염색약이 머리카락에 스며드는 긴 시간 동안, 나는 한 남자의 행복론을 들었다. 강아지들과 살다 보니 아무리 청소해도 개 냄새가 나고, 그게 미안해서 손님들에게 비싸게 돈을 못 받겠다는 남자. 어르신들을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서 가위를 쥔 손에 차마 돈을 쥐지 못하겠다는 남자. 저녁 6시에 문을 닫고 청소를 끝낸 뒤, 창밖을 보며 소주 한 잔을 기울일 때 세상 부러운 것이 없다는 남자. 머리가 끝났다. 거울 속 내 모습은 꽤 단정했고, 마음은 그보다 훨씬 더 묵직해져 있었다.

    고맙습니다. 여기 만 원이 참 부끄럽네요.”

    지갑을 열려는데 사장님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이왕이면 계좌이체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보통은 세금이나 탈세를 떠올리며 의아해할 타이밍이다. 하지만 그의 다음 대답은 내 세속적인 짐작을 기분 좋게 무너뜨렸다.

    다음에 오실 땐 현금 주시고요, 오늘 처음이잖아요. 첫 손님은 계좌이체로 받으면 고마우신 손님 이름이 찍히니까. 이름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래요.”

    싸게 머리 깎은 내가 더 고마운데요.”

    아니에요. 나한테는 우리 애들 밥값 주시는 고마운 분입니다. 이름은 알고 있어야죠.”

     

    타인의 이름을 기억하겠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상거래를 넘어, 당신과 나 사이에 하나의 유대를 맺겠다는 선언이었다. 만 원짜리 한 장에 이름의 기억을 덤으로 주는 미용실이라니. 이 얼마나 위트있고, 다정한 경영 방식인가.

     

    5. 창밖의 소주 한 잔, 우리가 잊었던 공익

    그 후로 종종 나는 그 2층 창가를 바라본다. 어떤 날은 사장님이 홀로 창밖을 보며 쓸쓸히, 그러나 유연하게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고, 또 어떤 날은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시끌벅적하게 잔을 부딪치고 있다. 그 풍경을 보며 나는 공익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다시 쓴다. 공익은 멀리 있지 않다. 거창한 사회 운동이나 대단한 기부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버려진 유기견들을 거두어 제 식구로 키워내고, 지나가는 동네 노인의 안부를 창문 너머로 소리 높여 물으며,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의 머리를 대가 없이 다듬어주는 것. 그리고 나를 찾아온 낯선 손님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는 것.

     

    비염이 있는 나에게 그 미용실은 코끝이 간지러운, 그리 녹록지 않은 공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만간 그곳의 문을 다시 열 것 같다. 이미 그 남자의 따뜻한 가위질에 중독되어 버렸으니까. 행복이 만 원짜리 한 장으로 거래되는 그 이상한 미용실은, 오늘도 안산의 한구석에서 세상을 아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구원하고 있다.

     

     
    김량현 헤어클럽 - 김량현 사장
     
     
     
    만원의 공익
    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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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09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2030 여성이 있다면, 사람들은 있는 집 딸이라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 로스쿨생 중 압도적으로 가난해서 국가장학금으로 공부해 변호사 시험 합격증을 받은 사람이 있다.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이 대포통장 사기 사건이었고, 진흙탕 바닥이 인생의 길을 가르쳐 주었단다.

    안산의 새내기 법조인, 정민지 변호사의 꿈과 포부를 들어보자.

     

    Q 시간 내 줘서 고맙다. 자기소개부터 부탁한다.

    나는 대한민국 30대 여성이고 한 달 전에 제15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까, 즐거운 상상 속에 지내고 있다. 목회자 부모의 세 자녀 중,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낀 외딸이다. 부모가 나를 고명딸이라며 떠받들어 키우지도 않았고, 오빠랑 연년생이라 쌍둥이처럼 자랐다. 그래서인지 태어난 순서로는 장녀가 아닌데, 현실에서는 ‘K-장녀로 자랐다. 진짜 장녀들이랑 만나면 말이 되게 잘 통하더라. 나 또한 나를 항상 큰딸로 정체화한다.

     

    Q 살면서 지금처럼 신나고 여유 있는 시기가 없었을 거 같다. 축하합니다.

    맞다. 대한변협이 하는 합격자 연수를 들으면서, ‘의식적으로천천히, 내가 가고 싶은 일자리를 찾아보려 한다. 안산시 공무원 3년 하고 2021년 로스쿨에 진학했으니, 지금 5년 만에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려 한다. 공무원은 대학 졸업하고 당장 돈을 벌어야 해서 시작했었지만, 이제는 돌고 돌아 내가 하고 싶은 거, 해야 하는 일, 살고 싶은 삶을 찾았다. 아무 데나 들어가서 대충 시작하기 싫어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찾고 있다. 굉장히 설레고 기대된다.

     

    Q 안산시 9급 일반 행정직으로 3년 일하고 그만두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가정형편 상 취준생으로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어서, 졸업 전에 합격해 놓고 졸업과 함께 일했다. 공무원으로 일하며 내 길을 찾아볼 작정이었다. 민원 업무든 행정사무든 일은 잘 해냈지만 조직 문화가 힘들었다. “이제 공무원 됐으니, 시집만 잘 가면 된다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다. 어린 여성이라고 친절, 애교, 미소 같은 태도 요구를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남자 상사랑 있을 땐 전문 직업인이 아니라 위안을 줘야 할 거 같은, 내가 너무 대상화되는 위치에 놓이더라. 그때마다 뻔뻔하게 받아칠 짬밥이랄까 요령이랄까, 그게 없어서 미치겠더라.

     

    내 능력에 비해 너무 소박한 보상과 인정만 주어지는 현실에 회의감이 컸다. 누군가의 권력과 위계에 따르기보다 내 목소리를 내며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싶었다. 2019년 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다큐 영화 를 보고 강하게 깨달았다. ‘저런 법조인이 되자. 그러면 내 능력을 발휘하고 합당한 보상을 받으며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겠다.’ 그날 탈출을 결심했다.

     

    Q 청소년기부터 변호사를 꿈꾼 건 아니었나 보다.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하다.

    초등학교 통지표에 용모 단정하고 질서를 잘 지키나 의사 표현이 부족함이라고 적힌 소심한 모범생이었는데, 신기하게 운동할 땐 날아다녔다. 아빠가 형제들이랑 차별 없이 축구, 야구, 배구, 농구에 자전거까지 다 가르쳐줬다. 우리집에서 유일한 사교육으로 수영, 태권도도 배웠다. 덕분에, 나는 운동선수가 될까 한 적도 있다. 몸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는 독보적인 아이였다. 그러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운동선수가 될 사람은 이미 여기 없어야 한다고 툭 던지는 말에 나는 늦었구나싶어 마음을 접고 공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교 비평준화 시절 안산 동산고에 진학했다. 입학하자마자 바닥을 치는 성적에 충격을 받았다. 가장 어려웠던 건 수학이었는데, 1년 내내 슬럼프였다. 1학년을 마친 후 어떻게든 수학을 정복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부모의 교육철학과 경제적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학원이나 과외 없이 공부했던 나에게 선택지는, ‘자기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하기그것뿐이었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겨울방학 내내 수학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고2 첫 모의고사에서 수학을 반타작했다. 좌절감에 울고 있는 나에게 아빠는 공부를 똑바로 안 한 거다라며 비수를 꽂았다. 그 말에 오기가 생겼는지 나는 계속 밀고 나갔다. 지난한 자기 싸움 끝에 수학을 가장 잘하는 과목으로 만들며 정시로 서울의 한 사범대에 합격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는 공부 맛을 청소년기에 익힌 셈이다.

     

    Q 대학 생활과 청소년기 공부는 달랐을 거 같다. 자기 길 찾기는 어땠나?

    모범생으로만 살아서인지, 대학에서 스스로 길을 뚫는 게 무서웠다. 등록금은 국가 장학금으로 해결됐지만 용돈은 벌어 써야 했다. 안산에서 2시간 통학하며 공부하고 알바하느라 늘 시간이 부족했다. 4학년 앞두고, 진로도 안 잡히고, 학점도 별로고, 휴학하고 돈을 좀 벌며 길을 찾고자 했다. 마침, 월급 200만 원에 물류창고 알바 공고가 뜨더라.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엄마가 간암 수술 후 퇴사해 요양 중이었고, 아빠는 투잡을 뛰며 목회했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완벽한 결과를 내놓고 싶다는 강박에 쫓기고 있었다.

     

    돈에 혹하고, 출입증 등록용이라는 말에 속아, 체크카드와 통장과 비밀번호를 넘겨주고 말았다. 이상하다 싶었을 땐 이미 내 통장이 보이스피싱 대포통장으로 쓰인 후더라. 나도 모르는 사람들 이름으로 수백만 원씩 돈이 들어왔다 빠진 기록을 다음 날 확인했다. 가해자 신분이 되어 버렸다. 빨간 줄이 그어질 대형 사고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 바닥을 경험했다. 이 사건으로 전혀 계획에 없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면서 내 인생의 방향이 급선회했다.

     

    Q 대포통장 사건이, 정민지라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줬나?

    그전까지는 보이스피싱 뉴스를 보면, 사람들이 조심성이 없어서 당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궁지에 몰려 휘말리고 보니, 내 뜻대로 안 되는 삶의 영역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요양 중이던 엄마가 내 소식을 듣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소통이 부재해서 일어난 문제라고 하더라. 혼자 완벽하게 잘하고 결과만 짜잔!~” 보여주려 하지 말고 못난 모습도 나눠야 함을 깨달았다. 통장이 정지되고, 경찰조사를 받고, 검찰에서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결정을 받기까지 반년을 보내며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인생 바닥에 던져질 때 현실을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그 바닥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Q 공무원을 그만두고 로스쿨에 도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나도 로스쿨은 돈스쿨이지 내가 어떻게 가라고 생각했었다. 3년 학비와 생활비 하면 억 단위가 든다. 나는 로스쿨생 중 압도적으로 가난했다. 소득 분위 장학금을 신청할 때 부모 재산이 들어가는데, 우리 부모는 수입과 재산이 바닥이었다. 엄마는 간암 수술 후 퇴사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공부하느라 고정 수입이 없었고, 아빠도 미자립 교회의 투잡 목사였다. 그런데 이 사정들이 역설적으로 완벽히 증명되면서 나는 3년 내내 전액 국가 장학금으로 공부했다. “엄마 아빠 가난한 김에 제대로 가난해서 고맙다.”라고 농담을 즐길 정도였다.

     

    Q 로스쿨 학생들도 사교육(학원 인터넷 강의) 한다고 들었다.

      변호사 시험 시장의 현실 이야기와 자기 주도적 공부 과정도 들려달라.

    로스쿨은 변호사 시험(변시) 통과를 위한 입시 학원으로 전락했다고들 한다. 대부분 사법시험 출신이거나 학계에만 있던 교수들 강의에 대한 만족도가 학원보다는 낮았다. 대다수 학생이 수업 시간에 뒤에 앉아 대형 학원 인터넷 강의(인강)를 듣거나 학원 교재를 보는 게 현실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고집스럽게 교수님 강의와 책을 붙잡고 독학을 밀고 나갔다. 인강에 쓸 돈도 없거니와, 처음부터 하나하나 스스로 해나가는 공부가 나에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령이란 걸 모르니 법의 1부터 100까지가 다 중요해 보여서 공부 분량이 살인적일 수밖에 없다. 삼수 때까지도 이 방법이 맞나?” 수없이 의심하며 두려움을 늘 끼고 공부했다. 독학 합격은 보편적인 레퍼런스가 없으니, 스스로 실험하고 시도하며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해야 했다. 시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도 완전히 자신할 수 없었는데,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Q 그 억눌린 멘탈을 어떻게 붙잡아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시험 점수가 안 나오면 흔들리다가도 결국 내가 해야 끝나는 싸움이라며 크게 울고 금방 일상으로 돌아왔다. 특히 부모님과 교회 공동체와 토론 모임에서 내 취약함과 어려움을 나눴다. 가족이 무조건적인 안전 기지였다. 그리고 삼수 중에도 매월 3개의 페미니즘 토론 모임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법조계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라, 공부하다 보면 ? 이게 말이 돼?’ 싶은 판례가 많더라. 그런 판례로 쌓인 스트레스를 토론 모임에서 거지 같은 법리들이다!”라고 소리 지르고 날카로운 성평등의 칼을 벼렸다. 멀리 보는 자기주도적 공부였다.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아무래도 나의 엄마다. 내가 속한 여성단체 회원이고 내가 참여하는 토론 모임들의 모임장이기도 하다. 앞에서 말한 영화를 모녀가 같이 보고 토론했다. 엄마는 너도 저런 길을 갈 수 있다라며, 영화를 내 현실로 끌어와 주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책 읽고 질문하고 글 쓰는 사람이다., 작가요 활동가로 사는 여성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엄마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자원이다.

     

    Q 수험생들에게, 꿈을 찾아 도전하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노하우가 있다면.

       2030 여성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도 추천해 달라.

    수험생들에겐 내가 왜 이 힘든 길을 가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절대 놓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답 찾기 공부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겠다는 배짱을 가지길 바란다. 비혼 여성으로서 한국 사회를 보면 숨이 막힐 때가 많다. 여전히 이성애적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고집하는 사회다. 2030 여성들이 쉽게 비혼을 선택하는 것 같지만, 그 깊은 고뇌를 사회가 모르는 거 같다. 소수자가 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엄청난 용기를 내는 거다. 가부장제 구조는 여성을 주체가 아니라 인구수를 채울 애 낳는 도구로 취급하는 거 같다, 젊은 여성들이 출산과 자아실현 중 하나를 강제 포기해야 하니 여성 우울을 겪는다. 국가는 다양한 생활동반자를 법적 가족으로 확장해야 한다. 비혼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해명하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재생산권을 보장해야 한다. 법조인이자 페미니스트로서 내 과제이자 살고 싶은 세상이다.

     

    이 맥락에서 역사 속 금기를 깨고 주체적으로 길을 개척한 여성 서사를 생생하게 복원해 낸 역사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 붉은 궁,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추천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정민지 변호사의 미래 설계와 포부를 이야기해 달라.

    실제 법조 생태계에서 기득권의 목소리를 더 키우는 데 법률 기술이 쓰이는 게 보이더라. 나는 침묵 당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이크로 일조하고 싶다. 좋은 동료들과 연대해서 누구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안전한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싶다.

    그리고 부모님께 말하는 포부가 있다. 두 분은 젊은 날부터 사람들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약한 데로 가서 힘을 나누며 사느라 평생 가난하다. 내가 돈을 벌면 건물을 지어서, 한쪽에는 엄마가 집필하고 책을 공유하는 사랑방이자 작가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다. 다른 한쪽에는 아빠가 돈 걱정 없이 소신을 펼치는 목회 공간을, 그 위에 내 변호사 사무실을 갖고 싶다. 지역에서 여성단체와 연대하는 변호사로 살 것이다.

     

    나아가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갈 주체적인 실험으로서, 나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다정한 파트너를 만나 내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확장의 경험도 기꺼이 해보고 싶다. 5년 후, 10년 후 내가 이 포부대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세상이 꼭 검증해 주길 바란다.

     
    진흙탕 바닥이 가르쳐준 것들— 안산의 새내기 법조인, 정민지 변호사 인터뷰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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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20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인생의 절반을 살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지금까지는 가족을 위해, 직장을 위해 달려왔는데, 이제 남은 시간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은퇴를 앞두거나 이미 새로운 일상을 맞이한 중장년층에게 이 질문은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런 분들을 만나러 화성으로 향했습니다.

     

    4월 한 달 동안 화성 중장년 행복 캠퍼스를 두 차례 직접 방문해 수업 현장을 취재했는데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보려 합니다. 캠퍼스가 어떤 곳인지, 어떤 프로그램들이 운영되는지, 그리고 제가 직접 들어가 본 향기로운 인생 향수 수업이 수강생들에게 어떤 의미인지까지 함께 나눠볼게요.

     
     
    [화성시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 강의 장소 입구 배너]
     

    1. 화성 중장년 행복캠퍼스, 어떤 곳인가요?

    화성 중장년 행복캠퍼스는 말 그대로 중장년층을 위한 전용 배움터입니다. 단순한 문화센터나 취미 교실과는 결이 다릅니다. 이곳은 은퇴 전후의 중장년이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성공적인 노후 생활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공간이에요. 

    캠퍼스가 내세우는 비전은 이렇습니다.

    중장년과 함께 건강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기 위해, 위기를 행복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

    이 한 문장에 이곳의 철학이 담겨 있어요. 중장년기를 위기나 쇠퇴의 시간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출발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실제로 캠퍼스는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세 가지 전략적 추진 과제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생 2막의 새 출발, 둘째는 평생 배움, 셋째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원 인프라 구축입니다.

     
     
    [화성시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 강의장 곳곳에 붙어 있는 홍보지]
     

    구체적인 사업 구조를 보면 더 명확하게 이해가 됩니다.

    캠퍼스는 크게 네 가지 축으로 운영되는데요, 교육과정 동아리 활동 사회공헌팀 일자리 연계 및 인큐베이팅 순으로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교육으로 시작하지만, 배움이 끝나도 관계와 활동은 계속 이어지는 구조예요.

    이 흐름 속에서 개인의 성장이 지역사회 기여로 자연스럽게 확장됩니다.

     

    공간도 중장년 전용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동아리실과 휴게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서, 수업이 끝난 후에도 수강생들이 자유롭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활동을 이어갈 수 있어요.

    재취업 및 창업 지원, 공유 사무실 운영, 코칭·심리 검사·집단 상담 등의 종합 상담 서비스도 함께 운영되고 있습니다.

     
     
    [화성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 홈페이지 포토갤리러]
     

    2025년 한 해 동안의 운영 성과를 보면 이 캠퍼스가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정규 교육과정 31개를 운영했고, 인문·교육 특강과 야간 과정도 운영했습니다. 커뮤니티 동아리 활동은 19개 팀에서 94, 사회공헌팀은 18개 팀에서 193회의 활동을 수행했어요. 이 숫자들은 단순한 실적이 아닙니다. 그 뒤에는 각자의 이유로 이곳 문을 두드린 수백 명의 중장년이 있습니다.

     

    2. 2026년 상반기 17개 프로그램과 사회공헌 활동

    2026년에는 경기도와 화성 특례시의 지원이 더욱 확대되면서 상반기에만 17개 교육과정이 개설되었습니다. 정원 262명으로 계획했지만 신청자가 넘쳐 317명으로 확정되었을 만큼 관심이 뜨거웠어요. 이 중 처음 참여하는 신규 수강생이 179명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습니다. 그만큼 새롭게 문을 두드리는 분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분들 한 명 한 명이 새로운 출발을 결심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화성시 배이비부머 행복캠퍼스 개강식 당일 프로그램소개 시간]
     

    17개 과정의 이름을 보면 그 다양함에 먼저 놀라게 됩니다.

    행복 육아 영상, 웰라이프 플래너, 예비 부모를 위한 행복 지수, 행복한 옷·가구 만들기, AI로 말하는 직장인의 비밀, 아는 만큼 보이는 현대미술, 부스트 자격 과정, AI로 여는 디지털 추억 앨범, 코치 인증 자격 과정, 사주 명리, 시니어 브레인 음악 놀이 지도사(2), 어반 스케치, 꽃차 소믈리에 양성 과정, 향기로운 인생 향수, 화성형 혁신 통합 돌봄 리더 양성 과정, 목조각 예술, 그리고 시민 전문가 소양 과정까지입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예술과 기술, 자격증과 취미가 고루 섞여 있어요.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든, 어떤 삶을 꿈꾸든 자신에게 맞는 문을 찾을 수 있는 구성입니다.

     

    교육과정이 끝난 후에는 동아리 활동으로 이어집니다. 같은 과정을 함께 들은 수강생들이 자연스럽게 모임을 만들고, 캠퍼스에서는 활동비와 전용 공간을 지원해줍니다. 그리고 이 동아리 활동이 사회공헌팀으로 발전하는 구조예요. 취미에서 시작해 이웃을 돕는 활동가로 성장하는 과정, 그것이 이 캠퍼스가 설계한 흐름입니다.

     

    [화성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 홈페이지 사회공헌 소개 영상자료 ]
     

    2025년 기준으로 운영된 18개 사회공헌팀의 활동 분야는 정말 폭넓습니다. 돌봄 및 복지 분야에서는 화성형 혁신 통합 돌봄 리더 양성 과정 수료자들이 지역사회 돌봄 체계 강화를 위해 활동합니다. 생명 존중 분야에서는 생명지킴이(게이트키퍼) 교육을 수료한 분들이 화성시 자살예방센터와 협력해 이웃의 위험 신호를 파악하고 전문 서비스와 연결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시니어 교육 지도 분야에서는 시니어 브레인 음악 놀이 지도사, 꽃차 소믈리에, 웰라이프 플래너 등 전문 자격을 취득한 분들이 지역사회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화성시 배이비부머 강의장 내부에 걸린 사회공헌소개액자]
     

    디지털 및 AI 활용 분야에서는 AI로 여는 디지털 추억 앨범 수료자들이 디지털 역량을 활용한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고, 문화 예술 및 공예 분야에서는 어반 스케치, 목조각 예술, 향기로운 인생 향수 수료자들이 재능을 지역사회와 나눕니다. 특히 반려견 관련 공모사업인 '가치로운 비'처럼 독특한 사회공헌 모델이 발굴되어 운영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배움이 멈추는 게 아니라, 배운 것이 이웃에게 흘러가는 구조. 화성 중장년 행복캠퍼스가 추구하는 진짜 목표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3. "향기로운 인생 향수" 수업 현장 속으로

    제가 직접 참여해 취재한 과정은 17개 중 향기로운 인생 향수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향수를 만드는 수업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천연 성분을 활용한 비누와 입욕제를 만들며 내 몸을 직접 돌보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기술이 나중에 사회공헌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취미 수업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었어요.

     
     
    [화성시 배이비부머 향기로운인생수업 강의장 내부 입욕제실습]
     

    첫 번째 방문 입욕제 만들기

    강의실 문을 여니 책상 위에 파란 그릇, 유리 비커, 작은 저울, 투명한 비닐봉지 가득 담긴 흰 가루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수강생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강사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었어요.

    이날의 주제는 천연 입욕제, 흔히 배쓰봄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수업은 만들기 전에 입욕의 효능부터 짚어주는 것으로 시작됐어요. 반신욕은 15, 족욕은 42도 이하의 물에 발을 담그며 15분이 적당합니다. 핵심은 뜨거운 온도 자체가 아니라 온도 차를 이용해 몸의 순환을 돕는 원리예요. 하부와 말단 부위를 따뜻하게 하면 따뜻한 기운이 위로 올라가 순환이 일어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꾸준히 반복하면 3주쯤 지나면서 등 쪽으로 온기가 퍼지는 걸 느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운동하기 어려운 분들에게 특히 권장하는 방법이고, 일주일에 두세 번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재료는 베이킹 소다, 구연산, 옥수수 전분을 기본으로, 호호바 오일, 글리세린·비타민히알루론산 혼합 보습제, 정수기 물이 들어갑니다. 여기에 한방 약재를 선택해 더할 수 있어요. 황금(黃芩)은 항균·미백 효능이, 정향(丁香)은 강력한 항균·살균력이, 감초(甘草)는 피부를 진정시키는 효능이 있습니다. 수강생들은 본인의 피부 상태와 목적에 맞는 약재를 직접 골랐어요. 자신을 위해, 또는 가족을 위해 고르는 그 선택 하나하나가 이미 배움의 과정이었습니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강의실 안에는 은은한 아로마 향이 퍼졌습니다. 페퍼민트, 라벤더, 레몬, 유칼립투스 등 각기 다른 향을 직접 맡아보고, 오늘 만들 입욕제에 넣을 향을 고르는 시간도 있었어요. 같은 재료라도 어떤 향을 고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의 제품이 완성된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내 취향이자 내 몸의 필요를 반영한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화성시 배이비부머 향기로운인생수업 강의장 내부 천연비누실습]
     

    두 번째 방문 MP 비누 만들기

    두 번째 방문에서는 MP(Melt & Pour) 비누 만들기가 진행됐습니다. 비누 베이스를 녹여 색과 향, 기능성 성분을 더해 굳히는 방식으로, 비누 제조법 중 가장 접근성이 높은 방법입니다. 유치원생도 도전할 수 있다는 강사님의 말에 수강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어요.

    이날 배운 재료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노란색의 핵심 성분인 토코트리에놀은 파의 씨눈에서 추출한 천연 항산화제로, 피부 재생과 여드름 케어에 효과적입니다. 화이트 비누 베이스에는 동백기름과 시어버터가 혼합되어 보습 효과가 뛰어나고, 파란색 계열에는 쪽(藍草)에서 추출한 인디고 색소가, 빨간색 계열에는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충(Cochineal)의 천연 색소가 활용됩니다. 자연에서 이렇게 다양한 색과 효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화성시 배이비부머 향기로운인생수업 강의장 내부 강사님 강의중]

     

    수업 중간에 강사님이 꺼낸 이야기가 강의실을 잠시 조용하게 만들었습니다. 조개는 몸속에 들어온 이물질로 진주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였어요. "우리도 삶에서 받은 상처를 어떤 보석으로 만들어갈 것인지 생각해 보세요." 비누를 만들면서 나온 말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누구에게나 다르게 가닿았을 것 같은 문장이었습니다. 인생을 오래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더 특별하게 울렸겠죠.

     

    4. 수업 이후, 이들이 꿈꾸는 활동들

    수강생들과 짧게 이야기를 나눠보니 등록 이유가 저마다 달랐습니다. 오래전부터 천연 제품에 관심이 있었던 분, 건강이 안 좋아진 뒤 내 몸을 직접 챙겨보고 싶어진 분, 은퇴 후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던 분, 자녀에게 직접 만든 것을 주고 싶었던 분까지요. 시작은 각자 달랐지만, 몇 주를 함께 배우다 보니 공통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제 건강을 위해 시작했는데, 이제는 요양원 어르신들께 직접 만든 비누를 드리고 싶어졌어요. 그게 진짜 사회공헌인 것 같아요."

    "내가 이걸 배워서 가족한테 더 나아가 지역에 도움이 되는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제 꿈이에요."

     

    앞으로 동아리를 결성해 정기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논의 중이라고 했어요. 개인의 관심으로 시작한 배움이 지역사회를 향한 나눔으로 확장되는 과정, 그것이 이 캠퍼스가 처음부터 그려온 그림이기도 합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강의실 게시판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 문구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함께 따뜻한 나눔으로 발전해 나가자!"

     


    [화성시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 강의장 외부 벽면에 액자]
     

    화성 중장년 행복캠퍼스는 그 문장을 매일 조금씩 실현해가는 공간이었어요. 배움이 동아리로, 동아리가 사회공헌으로, 사회공헌이 일자리로 이어지는 이 선순환 구조가 중장년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고 있었습니다. 은퇴 이후가 막막하게 느껴지신다면, 혹은 뭔가 새롭게 시작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화성 중장년 행복캠퍼스의 17개 문 중 하나를 두드려보세요. 향기는 이미 그 안에서 시작되고 있으니까요.

     
     
    화성 중장년 행복캠퍼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
    안산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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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20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마이크 앞에 선 사람들

    수요일 오후, 수원공동체라디오 스튜디오 안에 시민 한 명이 앉아 있다.

    방송 경력도 없고, 유명인도 아니다. 그냥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다. 마이크 앞에서 잠깐 숨을 고르더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래된 수원 통닭거리 이야기, 어릴 적 팔달문 근처를 뛰어다니던 기억, 요즘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골목 가게 사장님의 말.

    그 목소리가 96.3MHz를 타고 수원 전역으로 흘러나간다.

     

    스마트폰과 유튜브, 짧은 영상 콘텐츠가 일상이 된 시대다. 정보는 빠르게 소비되고 사람들의 관심은 끊임없이 이동한다.

    그 속에서 라디오는 오래된 매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있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마음을 전할 수 있고, 화려한 영상이 없어도 사람의 일상과 감정을 연결할 수 있다.

    특히 지역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전할 수 있는 매체가 바로 공동체라디오다.

     

    경기도 수원시에 시민이 직접 참여해 지역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송국이 있다.

    수원공동체라디오 SoneFM.

    어린이와 청소년, 시니어, 마을활동가, 자영업자, 문화예술인 등 다양한 시민이 방송 제작에 참여한다.

    누군가는 직접 원고를 쓰고, 누군가는 인터뷰를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음악을 선곡하고 오디오 편집을 배운다.

    시민의 삶이 그대로 방송 콘텐츠가 되는 곳이다.

     

    이번 취재에서는 수원공동체라디오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수원의 첫 공동체라디오, SoneFM의 시작

    수원공동체라디오 SoneFM은 수원의 첫 공동체라디오 방송이다.

    2021년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FM 96.3MHz 주파수 허가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됐다.

    같은 해 수원마을공동체미디어사회적협동조합이 설립되었고, 시민이 참여하는 지역 미디어 플랫폼 구축이 추진됐다.

    공동체라디오는 상업성과 청취율 중심의 일반 방송과는 방향이 다르다.

    지역 주민이 직접 방송을 제작하고 지역 현안을 이야기하며, 마을의 문화와 삶을 기록하는 데 목적이 있다.

    , 시민이 단순한 청취자가 아니라 콘텐츠 생산자로 참여하는 방송이다.

     

    수원공동체라디오 역시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출발했다. 초기에는 방송 장비 구축과 스튜디오 마련, 방송 제작 교육 등 기반을 만드는 과정과 함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방송 교육 프로그램과 미디어 교육도 함께 진행되며 공동체 미디어의 토대를 다져나갔다.

     

    2022년에는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FM 개국 이전 단계였지만 시민들은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방송에 참여할 수 있었다.

    마을 소식, 지역 인터뷰, 음악 프로그램, 생활 정보 등이 하나둘 만들어지면서 지역 주민과의 연결도 점차 확대됐다.

     

    그리고 2023714, 수원공동체라디오는 FM 96.3MHz 정식 개국을 알렸다.

    시민들이 직접 만든 목소리가 실제 전파를 통해 수원 전역에 송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방송 개국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지역 주민 스스로 지역의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공공미디어가 등장한 순간이기도 했다.

    현재 수원공동체라디오는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방송 내용은 지역 정보와 생활문화, 음악, 상권 홍보, 재난방송, 마을 소식 등 시민 생활과 밀접한 주제로 구성된다.

     
     
      
     

    마이크 앞에 서는 법을 가르친다 방송활동가 양성 교육

    수원공동체라디오는 단순히 방송만 송출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 미디어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사진 속 방송활동가 10기 모집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기적으로 시민 대상 방송 제작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방송활동가 과정은 56일부터 617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2시부터 4시까지 운영되며,

    방송 기획부터 대본 작성, 라이브 방송 실습, 오디오 편집까지 실제 방송 제작 과정을 체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교육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차시 방송 기획, 2차시 방송 대본 작성, 3·4차시 라이브 방송 실습, 5차시 오디오 편집, 6차시 콘텐츠 제작과 수료식. 6주 동안 아무것도 모르던 시민이 실제 방송을 만들어 내보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교육은 단순한 기술 전달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방송 제작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일상과 경험을 콘텐츠로 바라보게 된다. 평범한 골목길 이야기, 오래된 시장의 풍경, 지역의 작은 가게, 주민들의 삶과 추억이 방송 소재가 된다. 거창한 뉴스보다 더 깊은 공감과 지역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공동체라디오의 교육은 단순한 기술 전달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방송 제작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일상과 경험을 콘텐츠로 바라보게 된다.

    실제로 방송활동가 교육에 참여한 시민들 가운데는 이후 시민PD로 활동하거나 지역 행사와 마을 기록 활동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마이크 앞에 처음 앉던 날의 긴장이, 어느새 지역을 기록하는 힘이 된다.

     

    목소리 - 지역을 기록하는 또 하나의 방식

    수원공동체라디오는 단순한 오디오 방송이 아니다. 지역을 기록하는 또 하나의 아카이브 역할을 하고 있다.

    대도시에서는 빠른 개발과 변화 속에서 오래된 마을의 기억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쉽게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공동체라디오는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긴다.

    누군가는 동네 오래된 시장 이야기를 전하고, 누군가는 어린 시절 수원의 모습을 기억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현재의 마을 문제와 변화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콘텐츠는 시간이 지나면 지역의 역사 자료이자 공동체 기록으로 남는다.

    특히 수원은 화성과 전통시장, 오래된 주거지와 신도시가 공존하는 도시다. 전통과 현대가 함께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세대와 문화가 섞여 있다. 공동체라디오는 이러한 수원의 복합적인 모습을 시민의 목소리로 담아낸다.

     

    지역 예술인과 소상공인들에게도 방송은 중요한 홍보 창구가 된다. 공연 정보와 지역 문화행사, 작은 가게 이야기 등이 방송을 통해 소개되면서 지역경제와 문화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는 상업 방송에서 쉽게 다루지 않는 지역 밀착형 콘텐츠라는 점에서 공동체라디오만의 가치다.

     

    사람 냄새 나는 방송이 필요하다.

    오늘날 미디어 환경은 거대 플랫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사람들은 전국 단위, 글로벌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소비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이야기와 이웃의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공동체라디오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역성과 공공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볼수 있다.

    수원공동체라디오 역시 시민이 직접 지역 이야기를 만들고 공유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단순한 취미 방송이 아니라 주민 참여 민주주의와 공동체 문화 형성의 과정이기도 하다.

    세대별 의미도 다르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소외되기 쉬운 시니어 세대에게 공동체라디오는 새로운 소통 공간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활용이 익숙하지 않은 세대도 라디오라는 친숙한 매체를 통해 지역사회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도 공동체라디오는 중요한 경험이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콘텐츠로 만들고 사람들과 공유하는 과정은 표현력과 소통 능력을 키워준다.

    무엇보다 공동체라디오는 사람을 중심에 둔 방송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보다 사람의 일상과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방송이기 때문이다.

     
      
     

     

    96.3MHz ‘누구나 함께하는 라디오를 향하여

    사진 속 문구처럼 수원공동체라디오 SoneFM‘96.3MHz, 누구나 함께하는 라디오를 지향하고 있다.

    이 문장에는 공동체라디오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다. 방송은 특정 전문가나 유명인만의 영역이 아니라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수원공동체라디오는 지역 주민들에게 열린 공간이 되고 있다. 시민들은 방송 교육을 받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지역사회에 전하고 있다.

    또한 공동체라디오는 지역 네트워크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공동체 활동가와 시민단체, 문화예술인, 소상공인 등이 방송을 통해 연결되며 새로운 협력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공동체라디오는 단순한 FM 방송을 넘어 팟캐스트와 유튜브, 온라인 스트리밍 등 다양한 플랫폼과 연계될 가능성도 크다. 지역 기반 콘텐츠가 디지털 플랫폼과 결합하면 더 많은 시민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을공동체 활동가와 시민단체, 문화예술인, 소상공인 등이 방송을 통해 연결되며 새로운 협력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라디오가 단순한 기술이나 플랫폼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직접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공감하는 과정 자체가 공동체라디오의 가장 큰 가치라는 것이다.

     

    모두의 목소리를 담아, 연결하는 소리

    수원공동체라디오 SoneFM은 단순한 지역 방송국이 아니다. 시민의 일상과 지역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공동체 플랫폼이다.

    특히 시민이 직접 방송 제작에 참여하고, 다양한 세대가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공동체라디오는 지역사회 소통의 중요한 모델이 되고 있다.

    수원공동체라디오 SoneFM96.3MHz 전파에는 단순한 방송 신호만이 아니라 수원 시민들의 삶과 기억,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사람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한 힘을 가진다.

    그 목소리가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전파가 닿는곳 마다 공동체는 조금 더 가까워진다.

     
    시민이 만드는 방송, 수원공동체라디오 SoneFM
    럭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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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20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혼자 남겨진 사회

    세대별 사례 탐구를 중심으로 본 현대사회의 외로움 보고서

     

    아무도 몰랐다

    냉장고 안에는 오래된 음식이 있었다. 현관 앞에는 며칠치 우유가 쌓여 있었다. 택배 기사가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발견됐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고독사라는 단어는 특별한 사건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뉴스와 지역사회 현장에서 흔히 접하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혼자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 연락이 끊긴 뒤 며칠 혹은 몇 달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죽음은 이제 특정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는 노년층의 문제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청년과 중장년층에서도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1인가구 증가, 경제적 불안, 인간관계 단절, 디지털 중심 사회 변화는 사람들을 점점 사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고독사는 단순히 혼자 죽는 현상이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관계가 끊어졌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고립사라는 표현도 함께 사용된다.

     

    고독사와 고립사,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고독사란 무엇인가

    고독사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상태에서 혼자 사망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1인가구에서 많이 발생하지만 반드시 혼자 사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 있어도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면 고독사의 위험은 존재한다.

    고독사의 핵심은 단순한 혼자 죽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부재다. 즉 살아 있는 동안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문제로 다뤄진다.

     

    고립사란 무엇인가

    고립사는 사회적 관계와 교류가 거의 없는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다가 발생하는 죽음을 의미한다. 고독사가 결과 중심의 개념이라면 고립사는 그 과정에 초점을 둔 표현이다.

    직장을 잃고 사람들과의 연락이 끊기며 사회활동이 중단되고, 결국 건강관리와 생활 유지가 어려워지는 과정 자체가 사회적 고립이다.

    즉 고립은 삶의 과정이고, 고독사는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숫자가 말하는 현실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 자료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고독사 위험군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중장년 1인가구의 증가 속도가 매우 가파르다. 2023년 기준 국내 1인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의 약 35%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는 세 가구 중 한 가구 이상이 혼자 사는 시대라는 의미다.

    고독사 사망자는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남성 비율이 높으며 50~60대 중장년층 비중이 가장 크다. 최근에는 경제적 불안정과 취업난 속에서 청년층 고립 문제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초고령사회가 본격화되면 노년층 고독사는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왜 사람들은 고립되는가

    1) 관계 단절의 시대

    과거에는 동네 공동체와 대가족 문화가 존재했다. 이웃 간 왕래가 있었고 서로의 안부를 자연스럽게 확인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개인 중심 구조로 변화했다. 아파트 생활은 익명성이 강해졌고, 사람들은 서로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편리함은 늘었지만 관계는 줄어들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인간관계 단절은 더욱 심화됐다.

     

    2) 경제적 불안

    실직과 빈곤 역시 중요한 원인이다. 경제적 어려움은 사람들을 사회관계 밖으로 밀어낸다.

    직장을 잃으면 인간관계도 함께 끊기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실패에 대한 자존감 하락은 스스로 사회와 거리를 두게 만든다.

    특히 중장년 남성층은 은퇴 이후 관계망이 급격히 줄어드는 특징이 있다.

     

    3) 디지털 사회의 역설

    스마트폰과 SNS는 연결의 도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깊은 외로움을 만들기도 한다.

    온라인에서는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실제로 대화할 사람은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노년층은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회적 소외를 경험하기도 한다.

     

    4) 가족 구조의 변화

    비혼 증가와 이혼, 1인가구 확대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예전에는 가족이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했지만 현재는 가족 내부에서도 관계 단절이 늘어나고 있다.

    연락하지 않는 가족은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돌봄 관계는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고독사의 현장 사례(출처.한국장례협회)

    사례 1 은퇴 후 혼자가 된 중년 남성

    수도권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6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수개월 전 직장을 잃은 뒤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다. 가족과의 왕래도 거의 없었다.

    주민들은 조용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했지만 정작 그의 일상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발견 당시 집 안에는 배달 음식 용기와 약봉지가 쌓여 있었다.

     

    사례 2 청년 고립의 그림자

    취업 준비를 하던 20대 청년은 장기간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며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

    원룸생활을 하였으며, 체납고지서와 이력서, 빈통장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숨진 뒤 2주가 경과한 후에 발견되었다..

    청년 고립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불안과 우울, 사회적 단절이 지속되면 심각한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례 3 – 혼자 남겨진 노년 여성

    남편 사별 이후 홀로 생활하던 80대 여성은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외출이 줄었다.

    동네 복지사의 방문이 끊긴 뒤 점차 사회와 단절됐다.

    이웃들은 가끔 보던 모습이 사라졌지만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몇 주 뒤 관리비 연체 문제로 집을 찾은 관계자에 의해 발견됐다.

    마지막으로 그의 이름을 부른 사람은 누구였을까..

     

    고독력혼자 견디는 힘이 아니라 연결을 유지하는 힘.

    세 사람의 이야기에서 공통점이 있다.

    고립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조금씩,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진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수 있을까.

    최근 심리학과 사회학에서는 고독력이라는 표현이 주목받고 있다. 고독력은 단순히 혼자 견디는 힘이 아니다.

    외로움을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혼자 있는 시간을 삶의 균형 속에서 활용하는 능력이다.

    현대사회에서 혼자 사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고립되지 않는 것이다.

    혼자 살아도 사회와 연결되어 있고,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세대별 고독력 키우기

    청소년·청년 세대 - 디지털 관계를 넘어 실제 관계 만들기

    청년층은 온라인 소통에 익숙하지만 실제 인간관계 경험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청년 고립은 "혼자 있기 좋아서"가 아니라 "관계를 시작하기 어려워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모임 참여, 독서모임 및 동호회 활동, 봉사활동 참여, 공동체 프로젝트 경험 등 만나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② 중장년 세대 - 일 외의 관계망 만들기

    중장년층은 직장을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해온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은퇴 이후 관계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고립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준비가 필요하다.

    취미 공동체 만들기, 지역 활동 참여, 평생학습 프로그램 참여,

    걷기 모임, 문화모임 참여 등 특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혼자 버티려는 태도는 오히려 위험을 키울 수 있다.

     

    ③ 노년 세대 작은 연결을 꾸준히 유지하기

    노년층은 건강 악화와 이동 제한으로 인해 쉽게 고립된다.

    매일 한 번 전화하기, 경로당 및 복지관 이용, 마을 프로그램 참여,

    라디오와 공동체 활동 참여, 디지털 교육 받기처럼 작은 연결이라도 꾸준히 유지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노년층에게는 누군가 자신의 안부를 기억하고 있다는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

     

    공동체 회복이 필요한 시대

    고독사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하는 공동체 과제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은 안부 확인 서비스와 AI 돌봄, 반려식물 사업, 주민 관계망 사업 등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은 사람의 관심과 연결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하는 일, 동네 가게에서 안부를 묻는 일,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하는 작은 행동들이 관계를 이어주는 시작이 된다.

    최근 공동체라디오와 마을미디어 활동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의 목소리는 관계를 만든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다시 사회와 연결된다.

    특히 시니어와 1인가구에게 공동체 미디어 활동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활력과 사회적 관계 회복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혼자 살아도 혼자 남지 않기 위해

    현대사회에서 외로움은 특별한 감정이 아니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의 감정이다.

    하지만 외로움이 단절이 되고, 단절이 고립이 되며, 결국 삶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고독력을 키운다는 것은 혼자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돌보고, 타인과 연결되며,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혼자 살아가는 시대일수록 더 필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은 연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연결은 제도가 아니라 잘 지내세요?”라는 짧은 안부 한마디에서 시작될 수 있다.

     
     
    고독사와 고립사, 그리고 ‘고독력’이라는 새로운 삶의 힘
    럭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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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20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1. ‘가짜 뉴스라는 말 올바른 신호를 놓치게 할 수도 있다!

    202658일 금요일 오후 2, 경기도여성비전센터 206호에 6기 아카이브 에디터들이 3월에 있었던 발대식 및 양성 교육 이후 다시 모였습니다. 이날 역량강화 교육은 수원에 있는 경기도여성비전센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2차 역량강화 교육이 이루어진 경기도여성비전센터
     
    발대식 이후 이어진 두 번째 역량 강화 교육인 만큼, 이날의 자리는 앞으로의 활동을 구체화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이날의 핵심은 아카이브 에디터로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읽고, 어떤 방식으로 기록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정환 대표님을 소개하고 있는 이상화 팀장님
     
    이날의 교육은 이정환 슬로우 뉴스 대표님의 강의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분야에서 유명하셔서 모시기 쉽지 않은 분이지만,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아카이브 에디터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한달음에 달려와 주셨답니다.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 신호와 소음이 뒤섞인 세상에서 진실을 말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에는 최근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진실하고 필요한 정보에 대해, 그리고 그런 정보를 생산해야 하는 책임을 맡고 있는 아카이브 에디터로서의 우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가짜 뉴스'라는 말이 오히려 진실을 가릴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많은 정보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새로운 뉴스가 쏟아지고, SNS와 여러 플랫폼을 통해 수많은 말들이 빠르게 흘러갑니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이 빠르게 확산한 이후에는 정보의 생산과 유통 속도가 더 빨라졌고, 그만큼 무엇이 믿을 만한 정보인지 판단하는 일도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 모든 정보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아니죠. 어떤 것은 우리에게 절실한 신호가 되고, 어떤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신호를 가리는 소음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요? 또 공익활동을 기록하는 사람은 어떤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이날 강의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이정환 대표님
     
    강의의 중심에는 가짜 뉴스와 허위조작 정보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정환 대표님은 가짜 뉴스라는 표현이 오히려 진짜 뉴스에 대한 불신을 퍼뜨리고, 진짜와 거짓을 구분하는 일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흔히 우리는 사실이 아닌 정보를 통틀어 가짜 뉴스라고 부르지만, 이 말이 너무 쉽게 사용될 때 오히려 모든 뉴스에 대한 냉소와 불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정환 대표님은 가짜 뉴스의 정의를 허위 사실임을 알면서도 독자를 오도하거나 이익을 취하기 위해, 그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꾸며 언론 보도 형식으로 유포한 허위 정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저는 가짜 뉴스라는 용어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뉴스의 신뢰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가짜 뉴스의 정확한 의미를 다시 확인하면서, 진실한 정보를 생산하고 수용하기 위해서는 용어를 정확히 이해하는 일부터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허위 조작 정보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더 쉽고 빠르게 확산됩니다. 누구나 만들 수 있고, 누구나 퍼뜨릴 수 있으며, 때로는 사실처럼 보이도록 매우 정교하게 가공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거짓말을 처벌하기는 어렵죠. 거짓말을 없애는 일을 법의 심판에만 맡길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금지할 것인가에만 기대지 않고, ‘우리가 어떤 태도로 정보를 읽고 판단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더욱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2. 사실과 맥락사이, 에디터의 자리
     
    강의 중반부에서는 정보 생산자로서 어떻게 자신의 시각을 비판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 그 방법에 대한 실마리를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정환 대표님은 사실과 사실이 연결되는 맥락을 보아야 한다는 것, 내가 언제든지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열린 사고를 유지할 것, 내가 지닌 생각과 다른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해야만 사실이 편집되는 방식과 그 의도를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놓인 자리, 사실이 연결되는 방식, 그 사실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읽을 때 비로서 어떤 정보가 맞다 혹은 틀리다로만 판단하는 것을 넘어선 총체적 정보 인식과 생산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이날 느꼈습니다.
     
    아카이브 에디터로서 이 대목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장의 분위기가 좋았다는 감상, 참여자들이 열심히 활동했다는 인상, 프로그램이 의미 있었다는 판단은 물론 소중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글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왜 그 활동이 마련되었는지, 어떤 문제의식이 그 자리에 있었는지, 그 활동이 앞으로 어떤 질문을 남기는지까지 살피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또한 아카이브 에디터는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옮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들은 말, 본 장면, 받은 인상을 어떻게 정리하고 전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죠. 행사장에서 오간 말과 장면을 기록하더라도, 그것을 어떤 문장으로 배열하고 어떤 맥락 속에 놓느냐에 따라 글의 의미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떤 사건이나 활동을 일선에서 지켜볼 때, 일명 첫인상에 매몰되어 단편적인 인상만으로 글을 쓰는 태도도 주의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고, 출처와 맥락을 살피며, 불확실한 것은 단정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정보의 왜곡이 일어나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기록은 바로 이 균형에서 시작되니까요.
     

     
    강의를 경청하고 있는 아카이브 에디터들
     
    이날 강의의 핵심어는 신호와 소음이었습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그중에서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구분하는 일이라는 것이죠. 이정환 대표님은 꼭 필요한 신호를 찾기 위해서는 좋은 책, 좋은 친구, 좋은 토론, 그리고 좋은 언론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좋은 언론은 단지 전문 기자만의 영역에 한정된 말이 아닙니다. 공익활동의 현장을 기록하고 시민사회 안의 이야기를 전하는 아카이브 에디터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죠. 또 누군가에게는 함께 생각할 질문을 건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쓰는 글은 단순히 활동을 소개하는 문장이 아니라, 독자와 공익활동 현장을 연결하는 작은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3. 나의 화살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요?
     
    강의의 마지막에는 롱펠로의 시 화살과 노래가 언급되었습니다. 화살을 쏘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찾지 못했고, 노래를 불렀지만 사라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난 뒤 화살은 나무에 박혀 있었고 노래는 친구의 마음에 남아 있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정환 대표님은 이 시와 메시지를 만들고 글을 쓰는 사람들의 고민을 연결했습니다.
     
    나의 노래가, 나의 글이 어디로 전달될 것인가. 나의 화살을 어디에 쏠 것인가. 사실 화살을 아무 데나 쏘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가서 쏴야 되고요. 그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식들을 고민하셔야 됩니다.”
     
     
    좋은 강의를 해주신 이정환 대표님과 아카이브 에디터들
     
    이 말은 이날 강의의 마지막 질문처럼 남았습니다. 기록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닿아야 하는지, 어떤 마음에 남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일은 앞으로의 활동에서도 계속 이어질 질문이었습니다. 아카이브 에디터로서의 활동이 이 질문에 대한 진실한 답이자, 새로운 질문이 될 수 있도록 활동해야겠다고 다짐했답니다.
     
    3. 우리가 던지게 될 질문을 기대해 주세요!
     
    이번 2차 역량강화 교육은 공익활동의 현장을 기록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태도를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무엇을 볼 것인가, 어떻게 읽을 것인가, 어떤 질문을 남길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을 어떻게 더 많은 사람에게 닿게 할 것인가. 이날의 강의는 이 모든 질문을 차근차근 열어 보였습니다.
     
    좋은 기록은 좋은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좋은 질문은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데서 출발하고, 출처와 맥락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며, 사건 너머의 구조를 보려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좋은 기록은 결국 사람에게 닿아야 합니다. 읽히지 않는 메시지는 힘을 얻기 어렵고, 도달하지 못한 이야기는 변화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6기 아카이브 에디터들의 활동은 이제 본격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경기도 곳곳의 공익활동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장면을 기록하게 되겠죠. 아카이브 에디터들은 그 기록들이 단지 소식으로만 머물지 않고, 누군가에게 질문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참여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신호와 소음이 뒤섞인 세상에서 진실을 향해 묻고, 읽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함께 기록을 공유하는 여러분들도, 다음 아카이브 에디터들이 던지는 질문을 기대해 주세요!
     
     
    신호와 소음 사이에서 진실을 묻다: 6기 아카이브 에디터 2차 역량강화교육
    옐로 구피

    조회수 326

    2026-05-15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1. 버려지는 음식과 굶는 사람이 같은 도시에 산다

    2002년 겨울,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사는 샤크와 클라라 시스 부부는 슈퍼마켓 뒷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팔리지 않아 버려지는 식품들을 모아, 끼니를 잇지 못하는 이웃 30가구에 나눠주기 위해서였다. 거창한 계획이 아니었다. 버려지는 것이 아깝고, 굶는 이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작은 시작은 전국 179개 거점과 500개 이상의 배급 포인트를 갖춘 시민 주도 공익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매주 155,000명 이상이 이 네트워크를 통해 식품을 받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운영하는 것은 약 11,000명의 무보수 자원봉사자들이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규모 때문이 아니다. 세계 10대 농업 수출국이자 세계 최고 수준의 농업 기술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동시에 수십만 명이 식품 지원 없이는 한 주를 버티지 못하는 현실이 공존한다는 역설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설에 맞선 방식이 정부 정책이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 연대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나라이면서, 결식 아동·독거 노인·저소득층의 먹거리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음식은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함께 먹는다는 것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음식을 나누는 방식이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단순한 구호 활동이 지역 공동체를 잇는 공익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

     

    2. 로테르담의 한 부부에서 시작된 이야기

    세계 최초의 푸드뱅크는 1967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탄생했다. 존 반 헹겔이라는 자원봉사자가 지역 교회 급식소에서 일하다가 슈퍼마켓에서 버려지는 멀쩡한 식품들을 모아 가난한 가정에 나눠주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였다. 그의 아이디어는 미국 전역으로 퍼졌고,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1984년 프랑스에서 최초의 유럽 푸드뱅크가 열렸다. 벨기에가 1986년 뒤를 이었다.

    네덜란드는 상대적으로 늦었다. 2002, 샤크와 클라라 시스 부부가 네덜란드 최초의 푸드뱅크를 설립했다. 두 사람은 사업 실패로 직접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후, 과잉 생산된 식품과 빈곤층의 식품 부족이라는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싶었다. 이들이 세운 비영리단체 '마이너스플러스(MinusPlus)'는 처음에 30가구에 식품을 전달하는 작은 프로젝트였다.

    초기에는 기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다 200211, 지역 신문에 기사 하나가 실리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다음 날부터 전화가 폭주했다. 차량, 창고, 로고 디자인 지원이 쏟아졌고, 도움을 원하는 가정과 식품을 기부하겠다는 기업이 동시에 몰려왔다. 20032월에는 TV 뉴스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로테르담의 작은 실험은 빠르게 확산됐다.

    20059월 전국에 22개였던 푸드뱅크는 불과 석 달 만인 12월에 40개를 넘어섰다. 2008년 경제 위기를 계기로 전국 단위 재단 '스티흐팅 푸드뱅크 네덜란드(Stichting Voedselbanken Nederland)'가 결성됐고, 2013년에는 '네덜란드 푸드뱅크 연합(Vereniging van Nederlandse Voedselbanken, VNV)'으로 재편되어 공식 전국 조직으로 자리잡았다.

     

    3. 구조와 운영방식 - 시민이 만들고 시민이 운영한다.

    오늘날 네덜란드 푸드뱅크 네트워크의 가장 큰 특징은 CEO부터 식품 포장 담당자, 배송 기사까지 모든 역할이 무보수 자원봉사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전국적으로 약 11,000명의 자원봉사자가 이 거대한 조직을 움직인다.

    운영 방식은 단순하고 효율적이다. 매주 월요일부터 수요일 사이, 자원봉사자들이 슈퍼마켓·식품 제조사·유통 업체를 돌며 판매하지 못하는 잉여 식품을 수거한다. 유통 기한이 임박했거나 포장이 손상됐지만 식품으로서는 문제가 없는 것들이다. 목요일에는 수거한 식품을 가정별 꾸러미로 포장하고, 금요일에는 이용자들이 직접 방문해 꾸러미를 가져가거나 거동이 어려운 경우 배달을 받는다. 로테르담 지부의 경우 주당 약 80,000kg의 식품을 처리하며 6,700가구를 지원한다.

    식품 공급의 안정성은 오랜 협력 관계 덕분에 가능해졌다. 푸드뱅크 연합은 알버트 하인(Albert Heijn), 점보(Jumbo), 리들(Lidl), 알디(Aldi) 등 주요 슈퍼마켓 체인과 장기 계약을 맺어 정기적으로 잉여 식품을 공급받는다. 네덜란드 정부도 2018'음식 낭비 제로(United Against Food Waste)' 캠페인을 통해, 기업이 잉여 식품을 기부할 경우 법인세를 전액 공제해주는 제도적 지원을 도입했다.

    지원 대상은 명확한 기준을 갖는다.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이고, 임대료·의료비·채무 상환 등 의무 지출을 제외한 가처분 소득이 거의 없는 가구다. 지원은 원칙적으로 일시적이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자립을 돕는다는 철학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각 지역 푸드뱅크는 채무 상담·취업 연계·지역 복지 서비스 등 다른 공익 기관들과 긴밀히 협력해 이용자의 자립을 지원한다.

    세계 10대 농업 수출국 중 하나인 네덜란드. 좁은 국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농업 기술로 막대한 식품을 생산하는 이 나라에서, 동시에 수십만 명이 식품 지원 없이는 한 주를 버티지 못하는 현실이 공존한다. 풍요와 결핍이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이 역설은 비단 네덜란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4. 공동체 - 음식너머에서 만나는 사람들

    네덜란드 푸드뱅크 운동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식품 지원 그 너머의 기능이다. 연구자들은 푸드뱅크가 단순한 식품 재분배 기관을 넘어, 빈곤과 고립 속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고 강조한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만나고, 자원봉사자와 이용자가 관계를 형성하며, 지역 사회의 유대가 생겨난다.

     

    5. 음식 너머의 공동체 - 나눔이 만드는 사회적 연결

    네덜란드 푸드뱅크 운동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식품 지원 자체를 넘어선 공동체적 기능이다. 연구자들은 푸드뱅크가 단순한 식품 재분배 기관을 넘어, 빈곤과 고립 속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와 연결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만나고, 자원봉사자와 이용자가 관계를 형성하며, 지역 사회의 유대가 만들어진다.

    암스테르담의 푸드뱅크 지부는 주당 1,300가구에 약 5유로(7,000)의 비용으로 식품 꾸러미를 전달한다. 저렴한 비용으로 대규모 지원이 가능한 이유는 자원봉사 기반 운영 구조와 기업의 잉여 식품 기부 시스템 덕분이다.

    이 흐름은 푸드뱅크 밖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식품 나눔 운동은 푸드뱅크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붜르트뷔크(BuurtBuik, 동네 배)' 같은 이니셔티브는 슈퍼마켓과 레스토랑의 잉여 식품으로 지역 주민이 함께 무료 식사를 만들어 나누는 방식으로, 음식 나눔이 동시에 고립과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장이 된다.

    '테이스트 비포 유 웨이스트(Taste Before You Waste)'2012년 설립된 단체로 음식 낭비 방지와 공동체 형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암스테르담, 위트레흐트 등에서 매주 '낭비 없는 저녁 식사(Wasteless Dinner)'를 열어 버려질 뻔한 식품으로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며 음식 낭비에 대한 인식을 높인다. 헤이그에서 활동하는 '버르스 앤 브레이(Vers & Vrij)'는 지역 레스토랑의 남은 음식을 도시 곳곳의 공용 냉장고 26개에 채워두는 방식으로 누구나 필요한 만큼 가져갈 수 있게 한다. 신뢰와 연대를 원칙으로 운영되며, 각 냉장고는 월 약 250명에게 식품을 제공한다.

    이 모든 이니셔티브들이 공통으로 지향하는 것이 있다. 식품 낭비를 줄이는 환경적 목표와 빈곤층을 지원하는 사회적 목표, 그리고 이웃 간의 연결을 만드는 공동체적 목표가 하나로 묶인다는 점이다. 음식은 그 모든 목표를 동시에 실현하는 매개가 된다.

     

    6. 수치로 보는 현황 - 성장의 이면에 있는 과제

    2026년 초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네덜란드 푸드뱅크 이용자 수는 전년도 144,750명에서 7.5% 증가한 155,600명으로 늘었다. 연합 측은 보충 연금이 없는 고령자, 자영업자, 저임금 근로자 등 새로운 계층이 점점 더 식품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2년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요금 급등이 겹치면서 20224분기 이용자가 전 분기 대비 30% 급증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2022년 한 해 동안 네덜란드 푸드뱅크 네트워크는 총 4,000만 킬로그램의 식품을 190,000명에게 배분했다. 이는 동시에 엄청난 양의 음식물 낭비를 막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푸드뱅크의 성장 자체가 역설적인 측면도 있다. 연합 측은 이 지원이 어디까지나 임시적이어야 하며, 복지 국가가 충분한 안전망을 갖추고 있다면 장기 이용자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용자의 9%가 최대 허용 기간인 3년 내내 푸드뱅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풍요로운 사회에서도 구조적 빈곤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푸드뱅크 연합은 단순한 식품 배분에 그치지 않고, 네덜란드 정부에 빈곤 정책 개선을 촉구하는 정책 제언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친다. 2026년 초에는 의회 원내교섭단체 대표들에게 서한을 보내 노동 참여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취약 계층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강화하라고 요구했다. 시민 주도 공익단체가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다.

     

    7. 한국 푸드뱅크와의 비교 -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한국에도 푸드뱅크가 있다. 1998IMF 경제 위기 직후 노숙인과 결식 아동 급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한국 푸드뱅크는, 현재 전국 푸드뱅크 1개소, 광역 17개소, 기초 푸드뱅크 297개소, 기초 푸드마켓 131개소 등 총 450여 개소가 운영 중이다. 2022년 기준 월평균 약 41만 명이 이용하고, 한 해 약 1,517억 원 상당의 식품이 지원됐다.

    구조적으로 보면 한국 푸드뱅크는 보건복지부의 지도·감독 아래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위탁 운영하는 반관반민 체계다. 광역 자치단체와 기초 자치단체의 행정 체계 안에서 작동하며, 정부 예산이 운영의 핵심 재원이 된다.

    네덜란드 푸드뱅크와의 차이가 여기서 드러난다. 네덜란드 모델은 완전한 시민 주도 자원봉사 체계로 운영되며, 운영 비용의 상당 부분을 기업 후원과 자원봉사로 충당한다. 정부가 세제 혜택 등 제도적 지원을 하지만, 운영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시민 자원봉사 조직이다. 반면 한국 모델은 정부 보조금과 행정 체계에 의존하는 구조가 강하다. 이로 인해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민 자발성과 지역 밀착성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측면도 있다.

    또 다른 차이는 네트워크의 성격이다. 네덜란드의 각 지역 푸드뱅크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면서도 연합 조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역별 필요와 특성에 맞게 운영 방식을 조정할 자율성이 있으며, 지역 기업, 교회, 지역 단체와의 협력 관계를 각자 구축한다. 한국의 경우 전국 단위 물류 체계와 행정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지만, 지역 단위의 자발적 공동체 형성 기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차이는 함께 먹는다는 경험의 유무다. 네덜란드의 붜르트뷔크나 테이스트 비포 유 웨이스트처럼 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나누는 과정에서 이웃과 연결되는 경험은 한국의 지원에서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한국의 경우 공동체 식사 문화가 사라지는 추세와 함께, 먹거리 지원이 '물건을 전달하는 행위'에 머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운영방식의 차이가 아니다.

     

    8.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

    네덜란드 푸드뱅크 운동에서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가 참고할 수 있는 점은 세 가지다.

    첫째, 음식은 공익활동의 강력한 접점이다. 먹거리는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누구나 공감하며, 가장 일상적인 방식으로 공익에 참여하게 만든다.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농산물 잉여 문제와 저소득층 먹거리 지원 문제는 동시에 존재한다. 지역 농산물 잉여를 취약 계층에 연결하는 방식, 지역 기업과 식품업체의 잉여 물품을 지역 내에서 순환시키는 구조 설계는 충분히 가능한 과제다.

    둘째, 자원봉사가 공익 생태계의 뼈대가 된다. 네덜란드 푸드뱅크가 전국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핵심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11,000명의 자원봉사자가 이 모든 것을 운영한다. 공익활동의 지속 가능성은 재정만큼이나 사람의 참여에 달려 있다. 자원봉사자 참여를 공익활동의 중심에 놓고, 그 경험이 의미 있게 기록되고 공유될 때 생태계는 자생력을 갖는다.

    셋째, 나눔은 고립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급격한 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로 인해 사회적 고립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붜르트뷔크처럼, 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나누는 활동이 이웃 간 연결을 만들고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식은 경기도의 다양한 시·군에서도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먹거리 복지가 단순한 지원을 넘어 공동체 형성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마무리 - 음식 한 꾸러미가 만드는 세계

    2002년 로테르담의 샤크와 클라라 시스 부부는 한 달에 30가구에 식품을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시작한 운동은 매주 155,000명 이상을 먹이고, 수천만 킬로그램의 음식이 쓰레기가 되는 것을 막으며, 수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지역 공동체를 잇는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이 성장은 거창한 계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 버려지는 음식이 아깝다는 생각으로, 가능한 것부터 시작한 것이었다. 경기도 곳곳에서 공익활동을 이어가는 단체들과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변화는 종종 가장 일상적인 것, 가장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된다. 음식 한 꾸러미, 이웃의 밥 한 끼, 함께하는 식사 한 번이 공동체를 잇는 씨앗이 될 수 있다.

     

    참고 자료

    Voedselbank Rotterdam 공식 홈페이지 역사 : https://voedselbank.nl/20jaar/verhaal/lesje-geschiedenis

    Canon Sociaal Werk Nederland 2002년 푸드뱅크 로테르담 : https://mobile.canonsociaalwerk.eu/nl/details.php?cps=47

    IsGeschiedenis 푸드뱅크의 역사 : https://isgeschiedenis.nl/nieuws/de-geschiedenis-van-de-voedselbank

    IamExpat 네덜란드 푸드뱅크 : https://www.iamexpat.nl/expat-info/dutch-news/food-banks-netherlands

    Leiden International Centre 네덜란드의 푸드뱅크 : https://www.leideninternationalcentre.nl/get-advice/blogs/food-banks-in-the-netherlands

    Food Bank Limburg South 일반 정보 : https://www.voedselbanklimburg-zuid.nl/en/algemene-info/

    NL Times 2026년 푸드뱅크 이용자 증가 : https://nltimes.nl/2026/03/09/food-bank-use-netherlands-jumps-75-155600-amid-rising-cost-living

    NL Times 2023년 이용자 안정화 : https://nltimes.nl/2023/03/06/number-people-requiring-food-bank-help-stabilized

    PMC Food insecurity and the covid pandemic: uneven impacts for food bank systems in Europe :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9628314/

    BuurtBuik Amsterdamian 소개 : https://amsterdamian.com/see/photos/food-waste-initiatives-netherlands/

    Taste Before You Waste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tastebeforeyouwaste.org/

    전국푸드뱅크 공식 홈페이지 - 기관 소개 : https://www.foodbank1377.org/introduce/foodbank.do

    한국사회복지협의회 복지넷 - 푸드뱅크 사업 소개 : https://www.bokji.net/ssn/bin/08.bokji

     

    음식으로 잇는 지역 공동체-네덜란드 푸드뱅크(Voedselbank) 운동이 한국 공익활동에 주는 시사점
    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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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1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출처: 경기페미행동

     

    한국 근대 최초의 여성주의자 나혜석 동상이 있는 수원 나혜석 거리.

    426일 일요일, 이곳에 10년 전 강남역을 기억하는 후배 페미니스트들이 모였다.

     

    젠더폭력해결페미니스트연대, 경기페미행동, 부천새시대여성회, 평화와자치를열어가는부천연대, 경기여성연합단체가 공동 주최한 이 행사는 강남역! 다시! 추모를 딛고 행동하라! 여성폭력 다이인(die-in)1)이다. 특히, 경기페미행동과 부천새시대여성회, 평화와자치를열어가는 부천연대는 젠더폭력해결페미니스트연대 경기권역의 이름으로 캠페인과 경기 여성폭력 다이인을 주최하고 있다. 1차 경기 여성폭력 다이인은 부천에서 열었으며, 2차 경기 여성폭력 다이인(die-in)은 지금 이곳, 수원에서 열리고 있다.

     

    젠더폭력해결페미니스트연대는 제주, 대구, 서울, 강원 등 전국을 순회하며 여성폭력 다이인(die-in)을 진행하고 있으며, 수원이 13차이다. 이들은 강남역을 이야기한다. 벌써, 10년도 지난 강남역 그 사건이다. 범인은 강남역 근처 화장실에 숨어 6명의 남성을 보낸 뒤에 일곱 번째로 들어온 여성을 살해했다. 범행동기는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였고, 범인은 여자라서 죽였다라고 자백했지만, 수사기관은 여성혐오 범죄로 명명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2)에 따르면 혐오범죄란, 편견을 동기로 한 범죄행위를 뜻한다. 혐오표현이나 차별과 달리 혐오범죄는 살인, 폭력, 방화 등 기존의 범죄를 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혐오범죄를 규제하는 방법은 가중처벌하는 것이다. 소위 묻지마 살인이었으면 일반 살인죄이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을 이유로 살인했다면 혐오살인죄에 해당하여 중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는 혐오범죄법이 없어서 판사 개개인의 재량에 따라 양형에서 가중 사유로 고려하는 수준이다.

     

    한가지 더 살펴볼 것은, UN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선언3)에 등장하는 젠더기반폭력’(여성에 대한 폭력)이란 단어이다. 이 선언에서 젠더기반폭력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역사적으로 불평등한 권력 관계의 표명이며, 여성에 대한 폭력이 남성과 비교하여 여성을 종속적인 지위에 놓이도록 강제하는 중요한 사회적 메커니즘의 하나로 인식하도록 돕는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직후, 사람들은 강남역으로 모여서 포스트잇을 붙였다. 포스트잇이 벽을 가득채웠다. 서울세이프ON: 성평등아카이브는 강남역살인사건의 추모 포스트잇을 분석했다4). 세 단어로 이어진 문구 중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가 가장 많은 유형이었고, 그다음으로 주세요유형으로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라는 메시지다.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살해되었고, 나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의미이다.


    출처: 여기모아 홈페이지(강남역 살인사건, 등록번호 F0001)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마주한 시민들이 매년 거리로 나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국가를 향해 여성혐오범죄를 인정하고, 여성혐오범죄에 관한 통계를 만들고, 여성혐오범죄 근절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출처: 불꽃페미액션

    출처: 서울여성회

     

    2차 경기 여성폭력 다이인은 시민에게 말 걸기로 행사를 시작했다. 2~3명이 한 조가 되어 피켓과 서명부를 들고 흩어졌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여성폭력 해결을 위한 선언에 함께 해주세요라며 말을 걸었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국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고 있는 사회를 설명하며 선언 참여를 독려했다.


    출처: 경기페미행동
     

    이후, 나혜석 동상 앞 여성폭력 STOP’ 피켓을 든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첫 발언자로 나선 심지선 경기페미행동 대표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죽어야 했던 그녀는 또 다른 나입니다.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겠습니다라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이어 그는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개인의 피해 경험 말하기가 아니라고 강조하며 사회구조적 성차별의 문제임을, 내 탓이 아님을 각성한 전국의 3,500여 명이 넘는 선언자들과 함께 외치는 집단의 목소리라고 힘주어 말했다.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이동희 경기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성 살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폭력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여성 일상을 파괴하는 사이 국가와 사회는 여전히 뒤늦게 움직이게 된다는 것조차 알고 있습니다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지 않는 사회, 살아남았다는 말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 그날까지 우리는 계속 말하고, 계속 모일 것이라며 연대를 약속했다.

     

    정새봄 경기페미행동 활동가는 젠더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을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 문화에서 찾았다. 정 활동가는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여성이라는 특정한 삶을 강요받습니다. 부모님은 제게 세상을 향해 싸우는 법이나 단호하게 안 돼라고 말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이 폭력의 진짜 이름은 여성에 대한 길들이기라고 규정하며,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순결, 거절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 그리고 죽음 직전까지도 친절해야 한다는 그 지독한 강요가 지금의 젠더 폭력을 이 사회에 뿌리 깊게 박아 넣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 사회와 기술 발전 이면에 숨겨진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종민 한신대학교 민중가요 중앙노래패 보라성 노래전수팀장은 대학은 안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회는 이를 다루지 않으려 합니다. 심지어 학생들마저 자꾸 알려지면 대학 입학률이 떨어질 것이라며 덮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라며 씁쓸한 현실을 지적했다. 더불어 그는, “기술자는 사용자에게, 사용자는 기술에 책임을 미루는 식으로 책임을 외주화하고 있다며 비판하며, “이런 여성혐오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10년 전의 강남역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다.


    출처: 경기페미행동
     

    이후 참여자들은 저항의 의미로 다이인(Die-in)을 진행했다. 다이인(Die-in)에 참여한 한 시민은 차가운 바닥에 누워 여성폭력으로 희생된 이름을 떠올렸다.’”고 소감을 전했다. 땅에 쓰러져 침묵하는 이들의 행동은 역설적으로 그 어떤 외침보다 크고 날카롭게,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고 있었다.

     

    1) 다이인(die-in)이란 시위 참가자들이 죽은 것처럼 땅에 쓰러지는 시민불복종 행동의 일환이다. 주로 공권력이나 정책에 의한 생명권 침해를 고발할 때 사용되며,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1970년대 환경 운동 현장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비폭력 저항의 이론가 진 샤프(Gene Sharp)가 정립한 비폭력 투쟁 방법론의 현대적 변용으로 평가받는다.

    살아남았다는 말이 필요 없는 사회로 - 수원서 열린 여성폭력 다이인(Die-in)
    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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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30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대한민국 연극제 경기도대회 포스터)

    # 대한민국 연극제와 지방 연극 그리고 지방 배우

    1. 배우라는 이름을 확인하는 자리

    지방의 배우들에게 대한민국 연극제가 무엇이냐고 인터뷰를 했다.

    "연극제는 봄입니다. 일 년을 버티게 해주는 봄이요."

    "저한테는 꿈의 무대예요. 그 무대에 한 번 더 서고 싶어서, 나머지 시간을 견디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 연극제가 있어서, 나는 생활인이 아닌 연극배우라는 자존감을 확인합니다."

    이 말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된 구조가 보인다. 연극제는 목적지가 아니라 이유다. 그 무대에 서기 위해 나머지 계절을 견딘다. 카페 앞치마를 두르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고, 낮에는 대사를 외우면서. '생활인'으로 보내는 364일을 버티게 해주는 것이, 단 하루의 그 봄이다.

    이 말들이 아름답게 들리면서도 어딘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그 간절함의 크기가 현실의 열악함과 정확히 비례하기 때문이다. 꿈의 무대라는 말은, 그만큼 평소의 무대가 꿈처럼 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글은 대한민국 연극제를 비판하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 축제가 지방 배우들에게 갖는 의미가 진지하고 무겁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글이다.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만 제대로 된 요구를 할 수 있다.

     

    (연습장면, 비루한 연습실)

    2.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무게

    1977'대한민국 연극제'로 시작해 '전국지방연극제', '전국연극제'를 거쳐 다시 현재의 이름을 되찾은 이 행사는, 국내 연극계에서 가장 큰 규모와 권위를 자랑하는 경연의 장이다. 전국 16개 시·도의 극단들이 예선을 거쳐 한자리에 모인다.

    그런데 명칭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흔적이 있다. 한때 이름에 버젓이 들어 있던 '지방'이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행정적으로는 '전국'이라는 말이 더 포괄적이고 격조 있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에서 지방이 지워지는 동안, 지방의 현실도 조금씩 의제에서 멀어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결정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축제가 진정으로 대한민국 전역의 연극인들에게 공평한 무대를 보장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면, 이름값을 하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극단 유혹)

    3. 두 달의 연습, 하루의 무대

    지방 연극의 현실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숫자다.

    안산의 한 극단은 연극제 참가를 위해 두 달간 주 6, 하루 최대 10시간씩 연습에 매진했다. 300시간이 넘는다. 배우들은 대사를 외우고 동선을 조율하고 감정을 쌓아올렸다. 그리고 단 하루 공연을 마친 뒤 손에 쥔 출연료는 40만 원 남짓. 편의점 아르바이트 일주일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이 숫자가 불편한 이유는, 숫자 자체가 냉정하기 때문이다. 열정을 수치로 환산하면 이렇게 된다. 공연이 끝난 날 밤, 로비에서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웃던 배우가 집에 돌아가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장면을, 우리는 너무 쉽게 외면해 왔다.

    물론 배우들도 안다. 연극이 처음부터 돈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의 대가가 없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정당한 임금을 포기해야 한다는 논리는, 위로처럼 들리지만 실은 구조적 방치의 다른 이름이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빛나는 것과, 무대 밖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서로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


    (무대연습)

    4. 예산표의 구조

    공연 예산을 짜다 보면 항목들의 위계가 눈에 보인다.

    '극장 대관비, 무대 제작비, 조명·음향 감독비' 이 항목들은 협의의 여지가 적다. 전문 기술직의 노동이고, 그 가치는 이미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예산표의 마지막 줄, 배우 출연료에 이르면 종종 이런 말이 나온다.

    "배우들은 이해해 줄 거예요. 다들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은 비용으로 계산되고, 무대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은 열정으로 계산된다. 공연 포스터에는 배우의 얼굴이 가장 크게 실리지만, 예산표에서 배우의 몫은 가장 얇다. 이것이 예산 부족의 문제만은 아니다. 배우의 노동을 '조정 가능한 항목'으로 인식해 온 오랜 관행의 문제다.

    지방에서는 이 구조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서울이라면 최소한 관객이라도 모인다. 지방에서는 홍보 비용도, 관객 동원도, 극장 대관료도 모두 극단이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자체마다 문화예술 지원금의 편차가 크고, 어떤 지역은 연극제 참가 자체를 재정 문제로 포기한다. 지원을 받지 못하면 참여할 수 없는 구조에서, '전국' 연극제는 사실상 '여건이 되는 지역의 연극제'가 된다.


    (무대연습)

    5. 서울이 참여한 이후

    대한민국 연극제에 서울과 경기도가 참여하게 된 것은 의미 있는 변화였다. 수도권의 활발한 연극 활동이 이 무대에 합류함으로써 경연의 수준이 높아졌고, '전국'이라는 이름에 실질이 생겼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생긴 새로운 불균형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현재 서울·경기 지역 예선에는 20여 개 이상의 팀이 참가하지만, 본선 진출 티켓은 다른 지방 광역시와 동일하게 1장이다. 수십 개 극단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수도권과, 극단 수 자체가 적어 예선 경쟁이 낮은 지방이 같은 조건으로 출전권을 나눠 갖는 방식이 형평성에 맞는지는 논의해볼 문제다.

    이것은 서울을 견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역의 규모와 여건을 반영한 탄력적인 진출 구조가 오히려 전체적인 경연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공정한 경쟁은 동일한 조건이 아니라 적절한 조건에서 나온다.


    (인터뷰: 안산시 연극협회 지부장 성정선)

    6. 지방 연극이 말라가면

    지방 연극이 위기라는 말은 오래된 이야기라 식상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오래됐다는 것이 덜 심각하다는 뜻은 아니다.

    지방 배우들이 무대를 떠나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진로가 바뀌는 일이 아니다. 그 배우가 무대에 올리던 이야기들이 함께 사라진다. 안산 공단 노동자의 이야기, 충청도 어느 마을의 기억, 남해 어촌의 계절들. 이런 이야기들은 서울의 극장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땅의 언어와 속도와 냄새를 가진 사람들이 그 땅에서 살아가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연극은 항상 지역에서 자랐다. 그리스의 광장에서, 중세 유럽의 마을 광장에서, 조선 시대의 난장에서. 연극이 지역을 잃으면, 연극은 무언가 근본적인 것을 잃는다. 지방 연극은 한국 연극의 변방이 아니라 토양이다.


    (배우, 스텝, 연출)

    7. 대한민국 연극제가 할 수 있는 것들

    대한민국 연극제가 지방 연극 생태계를 혼자 책임질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연극 경연이 무엇을 제도화하느냐는, 업계 전체에 신호를 보내는 일이다.

    몇 가지를 제안한다.

    출연료의 최저 기준을 만드는 것이 첫걸음이다. 공적 지원금을 받아 올리는 공연이라면, 배우의 노동에 최소한의 대가를 보장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지원금이 무대 장치에만 쓰이고 배우에게는 돌아오지 않는 구조만큼은 막을 수 있다.

    본선 진출 작품의 순회 공연도 검토할 만하다. 단 하루의 공연으로 끝나는 현재 시스템은 두 달의 준비에 비해 너무 짧은 무대를 준다. 본선 작품들이 인근 지역 소도시를 돌며 공연할 수 있다면, 배우들은 더 많은 출연 기회를 얻고 지역 관객들은 좋은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연습 공간과 공연장 접근성도 빼놓을 수 없다. 대관료가 부담스러워 공연을 못 올리는 상황이 없도록, 공공 극장의 지역 극단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연극제의 지속성을 위해, 지자체 재정이나 단체장의 의지에 좌우되지 않는 국비 지원 비중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행사라면, 국가가 그 이름에 걸맞은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

     

    (무대를 기다리며)

    8. 연습실 문 앞에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대한민국 연극제가 있어서 자신이 배우라는 사실을 확인한다고 했던 그 배우. 그 말 속에는 감동이 있지만, 동시에 질문도 있다. 왜 배우는 연극제가 있을 때만 배우일 수 있는가. 연극제가 없는 나머지 364일은 무엇인가.

    이 축제가 진정으로 지방 연극인들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자리가 되려면, 그 자존감이 단 하루의 무대에서만 확인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연습실 문을 여는 매일이 배우로서의 하루여야 한다. 오디션을 기다리는 시간도, 아르바이트와 연습을 병행하는 고된 날들도.

    그러기 위해서는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열정은 이미 충분하다. 지방의 배우들은 이미 오래, 너무 오래 충분히 헌신해 왔다. 이제는 그 헌신이 지속 가능한 삶과 충돌하지 않도록, 제도가 뒷받침해야 할 차례다.

    대한민국 연극제는 그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아니, 되어야 한다. 이 나라 연극의 가장 권위 있는 자리가, 가장 먼저 그 이름에 책임을 지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대한민국 연극제 현장 자료와 한겨레신문 비정규직 연극인 윤희웅의 노동 수기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말의 폭력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대한민국 연극제와 지방 연극 그리고 지방 배우
    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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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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