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도입 — 은퇴 이후, 남자들은 어디로 가는가
한 남자가 있다. 평생 일했고, 가정을 부양했고, 직장에서 인정받았다. 그런데 은퇴하는 순간, 그를 규정하던 모든 것이 사라진다. 매일 나가던 일터가 없어지고, 동료들과의 관계가 끊기고, 사회적 역할이 증발한다. 아내는 이미 자기만의 관계망을 갖고 있지만, 그에게는 함께 시간을 보낼 친구가 별로 없다. 감정을 털어놓는 데 익숙하지 않고, 도움을 청하는 법도 배운 적이 없다. 그렇게 그는 집 안에서, 혹은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서서히 고립된다.
이것은 특정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중년과 노년의 남성들이 공통으로 겪는 현실이다.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자신의 건강과 안녕에 관심을 덜 두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많은 남성이 여성보다 건강하지 못하고, 술을 더 많이 마시고, 고립과 외로움, 우울에 더 취약하다.
호주에서 시작된 '멘즈 셰드(Men's Shed)'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놀랍도록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해법이었다. 남자들에게 갈 곳(somewhere to go), 할 일(something to do), 이야기 나눌 사람(someone to talk to)을 제공한다는 철학에서 출발한 이 운동은, 목공과 수리 같은 활동을 함께 하는 작업 공간을 통해 고립된 남성들을 다시 관계망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이 모델은 호주를 넘어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뉴질랜드 등 전 세계로 퍼졌다.
'남자들은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야기한다(Men don't talk face to face, they talk shoulder to shoulder)'. 멘즈 셰드의 이 슬로건은, 이 운동이 남성의 심리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주 앉아 "네 문제가 뭐냐"고 묻는 대신, 나란히 서서 함께 무언가를 만들며 자연스럽게 마음을 여는 방식이다. 한국이 지금 직면한 중장년 남성 고립 문제에, 이 오래된 창고의 지혜는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2. 탄생 — 한 아버지의 우울에서 시작된 아이디어
멘즈 셰드의 개념은 호주의 전통적인 '뒷마당 창고(backyard shed)' 문화에서 왔다. 많은 호주 남성들이 집 뒤편 창고에서 혼자 목공을 하거나 물건을 고치며 시간을 보내는 문화가 있었는데, 이 개인적인 공간을 공동체의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 멘즈 셰드였다.
멘즈 셰드 운동의 뿌리를 찾아가면, 한 여성과 그녀의 아버지에게 닿는다. 흔히 세계 최초의 멘즈 셰드로 인정받는 것은 1993년 호주 남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굴와(Goolwa)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노인들을 위한 활동 센터 '헤리티지 클럽(Heritage Club)'의 코디네이터였던 맥신 체이슬링(Maxine Chaseling)이 그 주인공이다.

체이슬링이 멘즈 셰드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계기는 개인적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를 겪은 후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우울증에 빠지고 집 안에 갇힌 듯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였다. 노인 복지 분야에서 오래 일해온 그녀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걸쳐 노년학, 남성 건강, 그리고 남성을 위한 서비스의 부재에 관해 여러 학회에서 발표해왔다. 남성들이 은퇴 이후 갈 곳도, 할 일도, 이야기 나눌 사람도 잃어버린다는 문제의식이 그 바탕에 있었다.
이후 '멘즈 셰드'라는 이름을 단 첫 공간은 1998년 7월 26일 호주 빅토리아주 통갈라(Tongala)에서 문을 열었다. 설립자 딕 맥고완(Dick McGowan)의 이름을 따 '딕 맥고완 멘즈 셰드'로 불렸다. 어느 것이 '진짜 최초'인지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지만, 중요한 것은 1990년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와 빅토리아의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남자들의 작업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혼자 하던 일을 여럿이 함께 하게 되면서, 창고는 고립의 장소에서 연결의 장소로 바뀌었다.
3. 확산 — 호주에서 전 세계로

멘즈 셰드는 호주 전역으로 빠르게 퍼졌다. 특히 농촌과 원주민 공동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2007년에는 호주멘즈셰드협회(Australian Men's Shed Association, AMSA)가 설립되어 새로운 셰드의 설립을 돕고 기존 셰드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호주 정부도 멘즈 셰드가 남성 건강과 안녕에 기여하는 가치를 인정하고 재정 지원에 나섰다. 오늘날 AMSA는 호주 전역 1,300개가 넘는 셰드를 지원하는 전국 조직으로 성장했다.
호주에서의 성공은 전 세계로 영감을 주었다. 아일랜드멘즈셰드협회(IMSA)가 2011년 설립됐고, 영국멘즈셰드협회(UKMSA)와 뉴질랜드의 멘즈셰드협회가 2013년, 스코틀랜드멘즈셰드협회(SMSA)가 2015년, 미국멘즈셰드협회가 2017년, 남아프리카공화국멘즈셰드협회가 2022년에 차례로 설립됐다.
멘즈 셰드 운동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배리 골딩(Barry Golding) 교수의 집계에 따르면, 2015년 5월 기준 전 세계에 1,416개의 멘즈 셰드가 있었다. 이 가운데 호주에 933개, 아일랜드섬 전역에 273개, 영국(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에 148개, 뉴질랜드에 57개가 분포했다. 이후로도 덴마크, 스웨덴, 캐나다 등으로 계속 확산되어, 이 운동은 명실상부한 국제적 흐름이 됐다.
특히 아일랜드는 이 운동을 국가 차원의 정책으로 받아들인 대표적인 사례다. 아일랜드는 2008~2013년 국가 남성 건강 정책(National Men's Health Policy)에서 멘즈 셰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장려했다. 시민운동으로 시작된 것이 국가 보건 정책의 일부로 격상된 것이다.
4. 영국의 사례 — 고립 대응의 최전선

멘즈 셰드가 가장 활발하게 뿌리내린 나라 중 하나가 영국이다. 영국멘즈셰드협회(UKMSA)는 2013년 설립 당시 영국 내 셰드가 30개에 불과했지만, 2024년 3월 기준으로 그 수가 1,100개를 넘어섰다. 매주 3만 3천 명 이상의 남성과 여성이 멘즈 셰드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UKMSA는 앞으로 8년 안에 셰드 수를 2,400개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영국에서 멘즈 셰드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 효과가 구체적인 데이터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셰더(Shedder, 멘즈 셰드 이용자를 부르는 말) 1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셰드에 오기 전 자신을 외롭다고 묘사한 사람이 44%였는데, 셰드에 가입한 후에는 이 수치가 단 3%로 크게 떨어졌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였다. 아일랜드와 영국 협회의 조사에서는 셰더의 96% 이상이 셰드에 가입한 후 덜 외롭다고 느끼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답했다.
더 극적인 것은 생명과 관련된 수치다. UKMSA의 2023년 건강·안녕 조사에 따르면, 셰드 리더의 39%가 자신의 셰드가 최소 한 명 이상의 회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막았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남성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인 영국에서, 멘즈 셰드가 실질적인 자살 예방 기능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멘즈 셰드는 다양한 특화된 형태로도 발전했다. 호스피스 안의 멘즈 셰드, 치매나 기억 장애가 있는 남성을 위한 '메모리 셰드(Memory Shed)', 뇌졸중 회복을 돕는 셰드 등이 그것이다. 또한 영국에서는 멘즈 셰드가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의 한 형태로 활용된다. 의사가 외롭거나 우울한 환자에게 약 대신 지역 멘즈 셰드 참여를 '처방'하는 방식이다. 국립보건연구원(NIHR)의 보고서는 멘즈 셰드를 사회적 처방에 관여하는 대표적인 지역사회 조직으로 꼽았다.
5. 왜 효과가 있는가 — '나란히'의 심리학
멘즈 셰드가 다른 복지 프로그램과 구별되는 지점은 접근 방식의 철학에 있다. 핵심은 '건강'이나 '치료'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남성들은 "당신은 외롭습니다", "정신 건강 상담을 받으세요"라는 직접적인 접근에 거부감을 느낀다. 특히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약함으로 여기도록 사회화된 세대일수록 그렇다. 멘즈 셰드는 이 벽을 우회한다. 이곳은 '외로운 남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무언가를 함께 만드는 작업장'이다. 참여자는 우울증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의자를 고치거나 새집을 만들거나 자전거를 수리하러 온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고, 관계가 형성되고, 서로의 삶을 나누게 된다.
이것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라는 슬로건의 진짜 의미다. 남성들은 마주 앉아 눈을 맞추며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하지만, 같은 작업대 앞에 나란히 서서 손을 움직이며 이야기하는 것은 편안해한다. 작업이라는 공통의 목적이 있기에 대화의 부담이 줄고, 침묵도 어색하지 않다. 무언가를 함께 만든다는 성취감은 상실했던 효능감과 자존감을 회복시킨다.
배리 골딩 교수는 2014년 이런 남성 특유의 학습·소통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셰다고지(shedagogy)'라는 용어를 만들기도 했다. 일부 남성들이 선호하는, 함께 무언가를 하면서 배우고 소통하는 독특한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이 운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멘즈 셰드의 건강 효과에 관한 근거가 대체로 소규모 표본의 자기 보고에 의존하고 있어, 검증된 건강 지표를 활용한 정량적 연구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이 운동이 전통적 남성성을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멘즈 셰드가 고립된 남성들에게 사회적 연결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6. 한국의 현실 — 5060 남성이라는 사각지대

보건복지부가 2025년 11월 발표한 '2024년도 고독사 발생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고독사 사망자는 3,924명으로 공식 통계가 있는 201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263명(7.2%) 증가한 수치다. 이 통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 바로 중장년 남성의 취약성이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 3,205명(81.7%)으로 여성(605명, 15.4%)의 5배 이상이었다. 연령대별로는 60대가 1,271명(32.4%), 50대가 1,197명(30.5%)으로 5060 중장년층이 가장 많았다. 70대(497명, 12.7%)보다 오히려 50대와 60대의 고독사가 더 많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성별과 연령을 종합하면 60대 남성(1,089명, 27.8%)과 50대 남성(1,028명, 26.2%)이 고독사에 가장 취약한 집단으로 나타났다. 50~69세 남성이 전체 고독사의 절반이 넘는 54%를 차지했다.
이 수치들이 그리는 그림은 명확하다. 실업이나 은퇴, 이혼이나 사별로 인한 관계 단절을 겪은 중장년 남성이 사회적 고립의 가장 큰 위험군이라는 것이다. 고독사 현장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가족(26.6%)이 아니라 임대인이나 경비원(43.1%)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는 사실은, 이들이 얼마나 깊이 고립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정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6년부터 고독사 예방 사업 대상을 사회적 고립 위험군으로 확대하고, 특히 실업·사회적 관계 단절 문제를 겪는 50~60대 중장년을 대상으로 일자리 정보 제공을 통한 취업 지원과 함께 '중장년 자조모임' 등 사회관계망 형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국의 멘즈 셰드 경험이 중요한 참고가 된다.
7. 무엇을 배울 것인가 — 한국형 멘즈 셰드의 조건
멘즈 셰드 모델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할 수는 없다. 문화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핵심 원리에서 배울 점은 분명하다.
첫째, '활동'을 앞세우고 '치료'를 숨겨야 한다. 한국의 중장년 남성들에게 "고립 위험군이니 자조모임에 나오세요"라는 접근은 낙인처럼 느껴질 수 있다. 멘즈 셰드처럼 목공, 자전거 수리, 텃밭 가꾸기, 전자기기 수리 같은 구체적이고 매력적인 활동을 전면에 내세우고, 사회적 연결은 그 부산물로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하는 설계가 효과적이다.
둘째, '나란히'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상담실이 아니라, 함께 손을 움직이며 곁눈질로 대화할 수 있는 작업 공간이 필요하다. 한국의 중장년 남성들 역시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무언가를 함께 만드는 과정이 대화의 매개가 될 수 있다.
셋째, 지역 공간과 연결해야 한다. 멘즈 셰드는 거창한 시설이 아니라 동네의 작은 창고나 공터에서 시작됐다. 한국에도 활용도가 낮은 주민센터, 경로당, 유휴 공공시설이 많다. 이런 공간을 중장년 남성들의 '작업장'으로 전환하는 것은 큰 예산 없이도 시도할 수 있다.
넷째, 남성의 강점을 자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은퇴한 중장년 남성들은 평생 쌓아온 기술과 경험을 갖고 있다. 목수, 전기 기술자, 엔지니어, 회계사 등 다양한 전문성이 있다. 멘즈 셰드는 이들의 기술을 지역사회를 위한 자원으로 전환한다. 고장 난 물건을 고쳐주거나, 지역 행사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거나, 젊은 세대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도움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기여하는 주체가 될 때, 잃어버렸던 효능감이 회복된다.
8.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
멘즈 셰드 사례에서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가 참고할 만한 점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고립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가 설계로 풀어야 할 과제다. 멘즈 셰드는 "외로우면 나와서 어울리라"고 개인에게 요구하는 대신, 어울릴 수밖에 없는 구조와 공간을 만들었다. 경기도의 중장년 고립 문제도 개인의 의지에 맡기기보다, 참여의 장벽을 낮춘 구체적인 공간과 활동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 31개 시·군의 유휴 공간을 활용한 '작업장형 커뮤니티'는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모델이다.
둘째, 시민단체와 행정의 협력이 지속 가능성을 만든다. 멘즈 셰드는 풀뿌리 시민운동으로 시작됐지만, 호주·아일랜드·영국 정부의 정책적 인정과 재정 지원을 통해 전국적 규모로 성장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같은 중간지원조직이 지역의 자발적 모임과 행정 자원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때, 작은 시도가 지속 가능한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셋째, 남성 고립이라는 '보이지 않는 공익 과제'를 발굴해야 한다. 아동, 청소년, 여성, 노인에 대한 공익활동에 비해 중장년 남성의 고립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해온 사각지대다. 그러나 고독사 통계가 보여주듯 이는 시급한 사회 문제다. 아카이브 에디터들이 이런 사각지대의 공익 이슈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것 자체가, 사회가 미처 보지 못한 문제에 빛을 비추는 공익활동이다.
마무리 — 창고 문을 열며
맥신 체이슬링이 우울증에 빠진 아버지를 보며 떠올린 작은 아이디어는, 30년이 지나 전 세계 수천 개의 창고로 퍼졌다. 그 창고들 안에서, 갈 곳을 잃었던 남자들이 다시 갈 곳을 찾았고, 할 일을 잃었던 이들이 다시 할 일을 찾았으며,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던 이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야기할 친구를 찾았다.
멘즈 셰드의 성공은 거창한 이론이나 막대한 예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남성들이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들이 편안해하는 방식으로 다가간 데서 나왔다. 마주 보지 않고 나란히, 감정을 캐묻지 않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면서 말이다.
한국의 5060 중장년 남성들이 매년 수천 명씩 홀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거창한 복지 제도가 아니라, 목요일 오후에 나가서 함께 톱질하고 커피 한잔 나눌 수 있는 작은 창고 하나일지도 모른다. 경기도의 어느 동네에서, 그런 창고의 문이 열리는 상상을 해본다. 공익은 때로 가장 소박한 공간에서 시작된다.
<참고 자료>
- UK Men's Sheds Association(UKMSA) 공식 홈페이지 : https://menssheds.org.uk/
- UKMSA — Press and Media information(2024년 3월 기준 통계) : https://menssheds.org.uk/media/
- UK Men's Sheds 통합 디렉토리(4개국 협회 안내) : https://ukmensheds.co.uk/
- Scottish Men's Sheds Association — 사회적 고립·외로움 대응 브리핑 보고서 : https://scottishmsa.org.uk/briefing-report-how-mens-sheds-are-addressing-male-social-isolation-and-loneliness/
- UK Parliament — UKMSA가 제출한 남성 정신건강 관련 서면 증거(IMH0034) : https://committees.parliament.uk/writtenevidence/124266/html/
- PMC(미국국립보건원) — Men's Sheds: A conceptual exploration of the causal pathways for health and well-being :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6772158/
- Ipsos — UK Men's Sheds Association 의뢰 남성 정신건강 조사 : https://www.ipsos.com/en-uk/ipsos-survey-uk-mens-sheds-association
- Australian Historical Studies — The Men's Shed Movement in Australia(Boucher & Robinson, 2021) : https://www.tandfonline.com/doi/full/10.1080/1031461X.2021.1901946
- The Missing Library — The Men's Shed Movement(배리 골딩 연구 소개) : https://themissinglibrary.com.au/the-mens-shed-movement/
- 보건복지부 — 2024년 고독사 발생 실태조사 보도자료 : https://www.mohw.go.kr/board.es?mid=a10503010100&bid=0027&act=view&list_no=1488039
- 머니투데이 — 작년 고독사 3924명…수도권 5060 중장년 남성 취약 : https://www.mt.co.kr/policy/2025/11/28/2025112720032322415
- 한국헬스경제신문 — 고독사는 왜 중장년 남성에 많을까 : https://www.healtheconomy.co.kr/news/article.html?no=34216
- 뉴스웍스 — 작년 고독사 사망자 3661명…5060 남성 취약 : https://www.newswork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9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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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0※「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혼자 사는 삶이 알려준 연결의 가치
최근 혼자 살게 되면서 새삼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혼자 사는 삶은 생각보다 편안했지만, 생각보다 쉽게 고립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보금자리는 햇살이 잘 들고 조용했습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은 분명 큰 장점이었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쉬는 시간은 그 자체로 만족스러웠고, 혼자만의 공간은 삶에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혼자 사는 삶의 또 다른 얼굴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음식을 먹었을 때, 인상 깊은 책을 읽었을 때,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을 때 그 감정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문득 크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새를 관찰하는 취미를 통해 이러한 감정을 더욱 자주 느끼게 되었습니다. 계절이 바뀌며 찾아오는 새들을 관찰하는 일은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름다운 장면을 마주하고도 그것을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외로움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 찾아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혼자 사는 것이 곧 외로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관계를 맺고 감정을 나눌 기회가 줄어들수록 사회적 고립의 가능성은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개인의 외로움은 개인만의 문제일까, 아니면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일까.
∙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
대한민국은 지금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라는 사회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이미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가구 형태로 자리 잡았으며, 청년층부터 노년층까지 전 세대에 걸쳐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 역시 중요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개인의 성격이나 생활 방식의 문제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지역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공공의 과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회적 고립은 정신건강뿐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관계가 단절된 삶은 우울감과 무기력을 키울 수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도 적절한 지원을 받기 어렵게 만듭니다.
경기도 역시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마을공동체 활동과 다양한 주민 모임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복지서비스 제공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 외로움은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서로를 돌보는 일은 오늘날 공익활동이 주목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 해외 사례가 보여주는 작은 공동체의 힘
해외 여러 나라 역시 사회적 고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의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 제도입니다. 영국은 외로움을 국가적 과제로 인식하고 의료기관을 찾은 주민들에게 약물치료뿐 아니라 산책 모임, 독서 모임, 자원봉사 활동 등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연계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 형성이 건강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한 것입니다.
일본 역시 고령 1인 가구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마을 카페와 공동 식사 공간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특별한 목적 없이 들러 차를 마시고 안부를 나누는 이러한 공간은 외로움을 예방하는 지역사회의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 사례가 보여주는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사회적 고립을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거대한 시설이나 복잡한 제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작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 있다는 점입니다.
∙ 공익활동이 만들어가는 느슨하지만 단단한 연결
해외 사례는 우리 지역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외로움과 고립을 해결하는 일은 거창한 사업보다 일상 속 만남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역 곳곳에서는 걷기 모임, 독서 모임, 환경보전 활동, 탐조 활동, 생활문화 동아리 등 다양한 주민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취미생활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저 역시 새를 관찰하는 활동을 하며 자연이 사람을 연결하는 힘을 경험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즐기던 취미였지만,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관찰한 내용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오늘은 어떤 새를 보셨나요?”라는 짧은 인사 한마디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함께 책을 읽고, 악기를 배우고,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은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정서적 지지망 역할을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경험은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소속감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거대한 조직보다 생활권 안에서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작은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모임은 참여자들의 정서적 안전망이 될 뿐 아니라 지역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공익활동의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연결
공익활동은 반드시 거대한 사업이나 제도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함께 걷고, 관심사를 나누는 작은 만남 속에서도 공익은 충분히 실현될 수 있습니다.
특히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시대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은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중요한 공공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소소한 마을 모임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첫걸음이 될 수 있고, 작은 대화 한마디가 고립된 일상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외로움은 누군가의 약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의 기회가 부족할 때 생겨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공익활동은 사람을 돕는 일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는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공간이 아니라 더 많은 관계일지 모릅니다. 작은 마을 모임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작은 연결이 쌓여갈 때, 우리는 더욱 따뜻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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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0※「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명과 이동의 불편 속에 살아가는 노령 참전 어르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조용한 방 안에서도 멈추지 않는 소리
“귀에서 계속 소리가 납니다.”
어르신은 창문을 닫고 잠시 말을 멈췄다.
주변은 조용했다.
하지만 어르신의 귀에는 조용하지 않았다.
‘삐—’
‘웅—’
누군가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하루 종일 이어진다.
밤에도,
식사할 때도,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도.
젊은 시절 전쟁터에서 들었던 폭음과 긴장 속의 시간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몸 어딘가에 남아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이다.
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참전을 기억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념하고만 있는가.
살아남은 이후의 시간
전쟁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전장을 떠올린다.
그러나 전쟁은 총성과 함께 끝나지 않는다.
그 후의 삶으로 이어진다.
특히 고령의 참전 어르신들에게 남은 것은 훈장보다 더 긴 시간의 신체적 변화일 수 있다.
청력 저하,
이명,
관절 기능 저하,
보행 어려움,
만성 통증,
사회적 고립.
이 문제는 하나씩 따로 오지 않는다.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면 외출이 줄고,
외출이 줄면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고,
움직임이 줄면 건강이 더 악화된다.
이동권 문제는 결국 삶의 문제로 연결된다.

현장 메모
“병원 한 번 다녀오면 하루가 끝나요”
오전 8시 40분.
한 어르신이 집 문을 나선다.
천천히 계단 손잡이를 짚는다.
잠시 멈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시 숨을 고른다.
목적지는 병원이다.
왕복 이동시간 약 세 시간.
진료 시간은 10분 남짓.
하지만 어르신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진료가 아니라 이동이다.
버스 시간 확인.
승하차.
대기.
귀가.
하루 일정 대부분이 이동에 쓰인다.
그리고 다음 예약을 고민한다.
“몸이 힘든 것도 힘든데 자꾸 밖에 나가기 어렵게 돼요.”
그 말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점점 좁아지는 생활반경을 의미했다.
오전 10시 17분, 11시17분
복지기관 셔틀을 기다리는 어르신.
“오늘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요.”
그 말 속에는 이동의 피로뿐 아니라 생활의 축소가 담겨 있었다.
복지는 있는데 닿지 않는 사람들
현재 다양한 복지서비스가 존재한다.
하지만 실제 이용률과 체감은 다르다.
왜일까.
첫째, 정보 접근의 어려움
둘째, 신청 과정의 복잡성
셋째, 이동의 부담
넷째, 도움 요청에 대한 심리적 부담
특히 고령층은 디지털 환경 변화 속에서 더욱 멀어진다.
앱 예약,
온라인 신청,
전자 안내.
제도가 있어도 닿지 못하면 복지가 아니다.
지역 복지 관계자가 말하는 현장의 과제
Q. 가장 필요한 변화는 무엇입니까.
A. 서비스 확대보다 전달 방식 변화가 필요합니다.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복지가 아니라 찾아가는 복지가 되어야 합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인가요.
A. 이동지원, 동행지원, 통합 안내, 방문 상담입니다. 특히 고령 보훈대상자는 건강·복지·교통이 함께 연결되어야 합니다.
공익적 해결은 가능한가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시도되고 있다.
문제는 규모와 지속성이다.
다음과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① 찾아가는 보훈·복지 통합서비스: 한 번 방문으로 건강 상담, 복지 안내, 생활 지원, 이동 상담까지 함께 연결.
② 이동권 지원 확대: 병원 동행 서비스, 생활 이동 차량, 예약 지원, 근거리 순환 이동체계 구축
③ 청각 건강 관리 체계: 정기 청력 확인, 이명 상담, 생활 적응 교육, 보청기·보조기기 접근 개선
④ 지역 안전망 구축: 통장, 주민, 복지관, 자원봉사, 병원을 연결하는 공동체 네트워크.
우리 동네가 실천할 수 있는 다섯 가지
□ 보훈 어르신 이동 동행단 운영
□ 세대공감 방문 인터뷰
□ 디지털 안내 지원
□ 건강·복지 통합상담
□ 생활 불편 신고 창구 확대
전쟁은 끝났지만 공동체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긴 시간을 견디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질문받고 있다.
그분들이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무엇을 준비했는가.
보훈은 기억의 의식이 아니라 삶의 조건이다.
이동할 수 있는 권리.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권리.
그 권리가 보장될 때,
비로소 감사는 현실이 된다.
그리고 그때,
보훈은 과거를 기념하는 일이 아니게 된다.
현재를 책임지는 일이다.
현충일 추모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364일도 중요하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이 병원을 갈 수 있는지,
혼자 생활하지 않는지,
필요한 정보를 받을 수 있는지.
그 질문이 보훈의 시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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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9※「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아파트는 어떻게 마을이 될 수 있었을까?
30여 년 전인 1990년대 후반부터 시민사회에서는 아파트를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생활 공동체'로 바라보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특히 1998년 한 시민단체가 아파트공동체연구소를 설립해 아파트 분쟁 중재, 임대아파트 주민 권리 확대, 주민자치조직 활성화, 공동체 프로그램 개발 등에 나서며 이웃 간 단절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모델을 모색했다. 당시만 해도 아파트는 관리와 소유의 대상일 뿐 '마을'로 인식되지 않았지만, 시민사회는 꾸준히 아파트 공동체의 가능성을 제기해 왔다.
특히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임차인이라는 이유로 관리비 내역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고, 입주자대표회의와 같은 주민자치조직을 구성할 권리도 보장받지 못했다. 그러나 시민사회와 주민들의 노력 끝에 2000년 1월 임대주택법이 개정되면서 임차인대표회의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관리규약의 제·개정, 관리비 운영, 공용시설 유지·보수 등에 대해 임대사업자와 협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위스테이별내
경기도 남양주에 조성된 국내 최초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으로, 현재 491세대 약 1,400명의 주민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단순한 아파트를 넘어 주민들이 직접 공동체를 만들고 운영하는 ‘마을형 주거 모델’을 실현하며 주목받아 왔다.
단지 내에는 6개의 협동조합과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운영되고 있으며, 30여 개 동아리에서 300여 명의 주민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한 주민들의 재능과 시간을 나누는 활동화폐 ‘별’을 운영하며 공동체 경제를 실험하고 있다.
위스테이별내는 공동육아와 돌봄, 주민자치와 사회적경제가 어우러진 새로운 주거 공동체 모델로 평가받으며 한국 사회의 대안적 주거 문화를 제시하고 있다.

지난 6월 8일, 서울 명동의 커뮤니티 공간 '동네마실'에서 열린 『아파트는 어떻게 마을이 되었나』 북토크 현장을 찾으며 자연스럽게 30여 년 전 아파트 공동체를 꿈꾸던 사람들의 고민이 떠올랐다. 그들이 상상했던 공동체의 모습이 오늘날 위스테이별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당시의 문제의식과 실천들이 20여 년의 시간을 거쳐 협동조합형 주거 모델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위스테이별내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주거 실험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져 온 아파트 공동체 운동과 주민자치의 흐름 위에서 탄생한 결과물처럼 보였다. 과연 위스테이별내 주민들과 협동조합은 어떻게 아파트를 공동체로, 마을로 만들어 왔을까?
"8년 임대 아파트인데 의무 임대 종료 기간이 28년까지 2년 정도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조합이 만들어지고 입주하기 전까지 약 3년, 그리고 입주해서 지금까지 약 6년. 그 9년의 시간 동안 아파트 곳곳에서 마을을 만들며 살아왔습니다. 그 기억과 기록들을 이제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인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이 그간의 공동체 활동을 기록한 단행본 『아파트는 어떻게 마을이 되었나』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의 시작이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상우 상임이사는 "이 자리는 엄숙한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왔는지 편하게 대화하며 나누는 축제"라며 행사의 문을 열었다.

이날 행사는 단순한 출판 기념회를 넘어, 수직적이고 단절된 공간으로 여겨지던 아파트가 어떻게 수평적이고 연결된 '마을'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자리였다. 40여 명의 주민 작가들이 직접 써 내려간 360페이지 분량의 생생한 기록은, 주거 불안 시대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공동체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절박함과 자부심이 빚어낸 10년의 기록
위스테이별내 사회적협동조합 김경환 이사장은 환영사를 통해 책을 출간하게 된 두 가지 이유를 밝혔다.

첫째는 '절박함'이었다.
"우리는 의무 임대 기간 8년 종료를 2년 정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토록 많은 성과를 내고 수직적 구조의 아파트에서도 수평적 마을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음에도, 이런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이 있었습니다. 이런 아파트를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지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둘째는 '자부심'과 '책임감'이었다.
김 이사장은 "우리는 대한민국 최초의 협동조합 공동체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많은 시행착오와 모범 사례를 갖고 있다"며, "이 사회적 자산을 묻혀두기 아까워 또 다른 위스테이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지침서이자 매뉴얼로 이 책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책은 기획부터 원고 작성, 편집까지 모든 과정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다. 491세대 1,400여 명의 주민 중 300여명이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로 참여하고 있으며, 그중 40여 명이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냈다.
변호사에서 주거 혁신가로, 양동수 대표가 말하는 '시작’

이날 북토크의 첫 번째 토크 세션 '시작의 이야기'에는 위스테이 모델을 설계한 사회혁신기업 '더함'의 양동수 대표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로펌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한국 사회의 가장 구조적인 문제인 금융과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겠다는 절박함에서 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난민, 이주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돕다 보니, 한국 사회가 점점 각자도생의 사회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 전체가 점점 더 어려워지겠구나 싶었죠. 해외 사례를 보니 공동체 토지 신탁(CLT) 같은 좋은 제도가 많았지만 한국 법체계에서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임대주택 관련 법이 바뀌는 것을 보고, 일반 건설사가 아닌 사회적 경제 주체가 관여하면 훨씬 좋은 방안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양 대표는 위스테이별내 부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를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당시엔 허허벌판이었지만 뒤로 보이는 불암산과 청명한 날씨가 너무 좋았습니다. 여기서 뭔가를 하면 정말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그는 이후 국토부, LH와 협의하며 사회적 협동조합 방식, 지분 구조 설계, 커뮤니티 공간 확보 등 위스테이만의 독특한 시스템을 구축해 나갔다.
형제 아파트의 연대, 그리고 주거 중립성의 실현
이날 자리에는 위스테이별내의 '형제 아파트'라 불리는 고양시 위스테이지축 사회적협동조합의 전승욱 이사장도 참석해 축하를 전했다. 전 이사장은 "별내가 2년 먼저 시작하며 겪은 어려움과 시행착오, 이를 풀어가는 방법들이 책에 잘 정리되어 있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며, "집이 돈이 아니라 삶을 지켜주는 공간이자 이웃과 연결되는 플랫폼으로서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행사의 깊이를 더한 것은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隨處作住)'의 최경호 소장의 미니 강연이었다. 최 소장은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주거 문제, 특히 청년 세대의 '임대 세대화' 현상을 지적하며 위스테이 모델의 사회적 의미를 짚었다. 그는 현재 한국 사회의 주거 사다리가 끊어진 상황에서, 임대와 자가 사이의 이분법을 깨는 '주거 중립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30년, 40년을 저축해도 살 수 없는 집값을 빚내서 사게 하는 구조는 결국 다음 세대의 진입 장벽만 높일 뿐입니다. 임대와 자가 사이에 큰 구분이 없는 상황, 즉 '주거 중립성'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협동조합을 통해 간접 소유하면서도 임대차 관계를 맺는 위스테이가 바로 그 대안적 영역입니다."

"협동조합을 통해 간접 소유하면서도 임대차 관계를 맺는 위스테이는 소유이면서도 소유가 아니고, 임대인이면서도 임대가 아닌 제3의 영역입니다. 이런 모델이 많아져야 임대로 살든 자가로 살든 큰 차이가 없는 사회가 됩니다. 또한, 위스테이처럼 다양한 평형이 섞여 있어야 노후에도 평생 살던 동네를 떠나지 않고 그 안에서 이사하며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가 가능해집니다.”
최 소장은 특히 '커뮤니티 시행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건축물만 짓는 시행사가 아니라, 갈등을 조율하고 공동체를 활성화할 수 있는 마을 활동가와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위스테이별내가 보여준 9년의 기록은 바로 그 커뮤니티 시행의 성공적인 사례입니다.”라며 위스테이별내가 커뮤니티 공간을 단지 외부와 나누고, 다양한 평형을 섞어 세대 간, 계층 간 어울림을 만들어낸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는 아파트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지역 사회와 호흡하는 진정한 의미의 마을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파트, 다시 마을을 꿈꾸다


북토크 현장은 주민 작가들이 자신들의 얼굴이 새겨진 도장을 찍어주며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는 따뜻한 풍경으로 가득 찼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등 다양한 주거 공동체 관계자들도 참석해 연대의 뜻을 밝혔다.
행사를 진행한 이상우 상임이사는 "위스테이별내의 아파트 공동체가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만의 섬으로 고립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청년과 시니어가 함께 어우러지고, 지역 사회와 소통하며 계속해서 흐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때로는 서툴고 때로는 치열했던 우리들의 이야기, 그 속에는 내 집을 넘어서 우리 마을을 고민했던 진심이 녹아 있습니다."
김경환 이사장의 말처럼, 『아파트는 어떻게 마을이 되었나』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이웃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콘크리트 숲 속에서도 온기 넘치는 마을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다.
의무 임대 기간 종료라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위스테이별내 주민들은 여전히 함께 밥을 먹고, 신문을 만들고, 책을 펴내며 마을을 가꾸고 있다. 이들의 치열하고도 따뜻한 기록이 앞으로 대한민국 주거 문화에 어떤 변화의 씨앗을 틔울지 기대해 본다.
『아파트는 어떻게 마을이 되었나』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이웃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콘크리트 숲 속에서도 온기 넘치는 마을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다. 의무 임대 기간 종료라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위스테이별내 주민들은 여전히 함께 밥을 먹고, 신문을 만들고, 책을 펴내며 마을을 가꾸고 있다. 이들의 치열하고도 따뜻한 기록이 대한민국 주거 문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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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6
1. 광교산 자락의 야학에서 만난 1987년
1987년 6월을 떠올리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내게는 광교산 자락의 야학 교실, 퇴근 시간에 맞추어 하나둘 들어오던 학생들의 얼굴, 수업이 끝난 뒤 함께 먹던 떡볶이와 라면, 그리고 막걸리잔을 사이에 두고 나누던 어설프지만 진지했던 시국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나는 1987년 2월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되어 군에 입대한 처지였으니, 제대 후에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막연한 시절이었다. 시대는 무거웠고, 내 앞날도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후배의 소개로 수원 광교산 자락에 있던 제일야학(현재는 [수원제일평생학교]라는 이름으로 인계동에서 수업을 계속하고 있다)에서 교사로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야학 교사 활동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아니, 흥미롭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곳은 학교이면서 일터였고, 교실이면서 세상과 연결된 작은 창이었다. 수업은 저녁 6시에 시작했지만, 그 시간에 맞추어 등교하는 학생은 절반 정도였다. 나머지는 수업 중간에 들어오거나, 때로는 수업이 다 끝난 뒤에야 모습을 보였다. 낮 동안 공장에서, 가게에서, 사무실에서 일하고 온 학생들이었다. 피곤한 얼굴로 들어와도 책상 앞에 앉으면 눈빛이 달라졌다. 늦었다고 나무랄 수는 없었다. 그들이 학교에 늦은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들에게 배움의 시간을 충분히 허락하지 않은 것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근처 분식집에 들렀다. 떡볶이와 라면, 조금 나이가 많은 학생들과는 막걸리도 마시면서 시국 이야기, 더 살기 좋은 미래 이야기, 노동자의 삶과 노동, 노동조합 등에 대한 생각도 나누었다. 나는 그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내가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책에서 배운 민주주의가 아니라, 삶으로 겪는 불평등과 억울함 속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워가고 있었다.

수원제일평생학교
2. 수원의 거리에서 마주친 야학 학생들
그해 6월, 거리는 생기를 찾은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6월항쟁은 한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된 전국적 ‘시민항쟁’이었다. 1987년 6월 10일을 기점으로 대통령직선제 개헌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이어졌고, 결국 6·29선언과 직선제 개헌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역사는 교과서의 몇 줄 문장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그 역사는 거리의 먼지와 최루탄 냄새, 흩어졌다 다시 모이던 발걸음, 낯선 사람과 눈을 맞추며 느꼈던 이상한 용기 속에 있다.
수원에서도 거리의 움직임을 활발했다. 어느 날은 팔달문에서 시작한 시위가 수원역 방향으로 이어졌고, 어느 날은 중동파출소 앞에서 출발해 아주대 방향으로 행진이 이어졌다. 대학생들이 앞에 있었고, 시민들이 그들을 지켜주었다. 서로를 잘 알지 못했지만, 그날 거리에서는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독재를 끝내야 한다는 것, 국민이 주권자라는 것, 더는 침묵할 수 없다는 것. 그 마음만은 분명했다.
그런 거리에서 가끔 야학 학생들을 마주쳤을 때 나는 반가웠고 대견했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하던 민주주의가 교실 밖 거리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걱정도 되었다. 학생들의 수업은 어쩌나, 혹시 다치지는 않을까, 일터에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그래서 나는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꾸짖기도 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조금도 기가 죽지 않고 말했다. “선생님이 늘 말씀하셨던 민주시민의 역할을 하려고 나왔습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 말 앞에서 나는 선생이 아니었다. 우리는 함께 배우는 시민이었다. 교학상장이라는 말이 그날처럼 선명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내가 가르쳤다고 생각했던 말이 그들의 발걸음으로 되돌아와 나를 가르쳤다. 민주주의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며, 시민은 누가 임명해주는 자격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자리라는 것을.
시위가 마무리된 뒤 그들과 함께한 뒷풀이 자리는 어느 때보다 즐겁고 행복했다. 우리는 여전히 가난했고, 불안했고, 앞날을 알 수 없었지만, 그날만큼은 우리가 역사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확신과 함께 우리가 사는 이 도시의 거리도 민주주의의 무대가 되고 야학의 학생들도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함께 확인했다.
3. 2024년 12월 3일, 민주주의는 다시 질문이 되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직선제를 얻었고, 선거를 치렀고, 지방자치를 부활시켰고, 여러 차례 평화적 정권교체를 경험했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되었고, 절차가 되었고, 일상의 언어가 되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완성되었을까?
2024년 12월 3일의 밤은 그 질문에 다시 답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했다.
계엄, 군, 국회, 포고, 통제라는 단어들이 한밤중에 다시 등장했을 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결코 자동으로 유지되는 체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 밤과 그 이후의 광장에서 우리가 본 것은 두려움만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다시 모였다. 예전의 거리에서 손수건과 유인물과 결연한 다짐으로 어깨를 맞댄 스크럼이 있었다면, 2024년 이후의 광장에는 형형색색의 빛과 노래와 새로운 언어가 있었다. 나는 그 빛 속에서 1987년 거리의 시민들을 보았다.
응원봉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시대 시민들이 자기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표현하는 언어였다. 누군가는 분노를 품고 나왔고, 누군가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나왔고, 누군가는 친구와 함께, 가족과 함께, 혹은 혼자 광장에 섰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 올린 빛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헌법을 지키자는 것, 권력은 국민 위에 설 수 없다는 것,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시도 앞에서 시민이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
6월 민주항생 사진으로 본 역사 앞에서
4. 달라진 광장, 달라지지 않은 시민의 민주의식
1987년의 거리와 2024년의 광장은 닮았고, 또 달랐다. 달라진 것은 많다. 1987년의 우리는 군사독재를 끝내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언론은 통제되었고, 집회는 폭력적으로 탄압받았고, 거리에는 온통 최루탄 가스와 매케한 냄새가 짙었고 정보는 사람을 통해 전해졌다.
2024년의 시민들은 스마트폰으로 소식을 확인했고, 온라인에서 서로를 불러냈고, 각자의 방식으로 광장을 만들었다. 청년과 여성 시민들이 보여준 주체성과 창조적 표현력은 한국 민주주의가 새로운 세대의 언어를 얻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권력은 여전히 시민의 감시를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탱크와 총칼만은 아니다. 때로는 음모론이, 때로는 냉소가, 때로는 무관심이, 때로는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체념이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기념일의 언어로만 말하면서, 정작 일상의 권한과 책임은 나누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시민사회의 언어는 다음세대에게 닿고 있는가. 우리가 민주주의를 기억하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민주주의를 새롭게 만드는 일에는 둔감해진 것은 아닌가. 늘 자신에게 묻고, 가끔은 상대방에게 슬쩍슬쩍 던져보는 질문들이다.
5. 광장의 열기를 일상의 민주주의로 옮기는 일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는다. 언제나 미래를 향해 열려있고, 창조적 실천을 통해 만들어가는 미래진행형이다. 완성되었다고 믿는 순간, 민주주의는 약해진다. 민주주의는 늘 다시 배워야 하고, 되돌아보며 점검해보아야 하며, 다시 만들어야 가야 한다. 1987년의 성취가 오늘의 민주주의를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듯, 2024년 광장의 뜨거움도 내일의 민주주의를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광장의 에너지는 뜨겁지만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구호는 높지만 일상은 복잡하다. 분노는 사람을 모이게 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것은 결국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열정과 창의력이다.
여기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시작된다. 시민사회는 광장의 열기를 일상의 변화로 전환해야 한다. 거리에서 확인한 주권자의 힘을 지역의 공론장, 마을의 의제, 생활 속 공익활동으로 이어가야 한다. 민주주의의 근육은 교육에서, 대화에서, 감시에서, 참여에서 자란다.

민주주의의 미래 강의사진
6. 기억을 살아 있는 언어로 바꾸는 시민사회
몇 가지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첫째, 시민사회는 기억을 살아 있는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 6월항쟁을 기념하는 일은 ”우리는 위대했다”는 회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1987년의 거리가 오늘의 청소년과 청년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말해야 한다. 야학 학생들이 “민주시민의 역할을 하려고 나왔다”고 말했던 것처럼, 민주주의는 역사 교과목의 한 단원이 아니라, 내가 일하는 곳과 사는 동네와 사용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매일 부딪히는 삶의 방식이고 습관이어야 한다.
둘째, 시민사회는 민주주의를 지역의 문제로 옮겨와야 한다. 민주주의는 시청과 도청, 구청과 군청, 주민자치회와 학교운영위원회, 복지관과 공원, 마을버스 노선과 보행로, 청년 주거와 돌봄 정책 속에 있다.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묻는 일, 우리 동네 조례가 누구의 삶을 바꾸는지 살피는 일, 지역일꾼의 공천과 선거가 얼마나 공정한지 감시하는 일이 민주주의의 근육을 키우는 활동이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가장 가까운 얼굴이다. 시민사회는 지역에서 좋은 후보를 키우고, 지방의회를 감시하고, 주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넓혀야 한다. 지방자치의 퇴보를 비판만 하지 말고 실천적인 대안을 마련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
셋째, 시민사회는 극단화에 맞서되 시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혐오와 음모론, 폭력적 선동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헌정질서를 부정하거나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시도에는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시민사회는 왜 어떤 사람들이 극단적 주장에 흔들리는지도 살펴야 한다. 불안정한 삶, 고립, 불평등, 지역의 소외, 정치에 대한 불신은 극단주의가 자라는 토양이 된다. 민주주의는 단호함과 포용을 함께 필요로 한다. 파괴적 선동에는 선을 긋되, 불안한 시민을 민주주의의 언어 안으로 다시 초대하는 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시민사회는 다음세대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우리는 청년에게 참여하라고 말하면서, 이미 정해진 회의의 말석만 내어주지는 않았는가. 새로운 방식의 표현을 가볍게 여기거나, 낯선 정치 감각을 미숙함으로만 판단하지는 않았는가. 2024년의 광장은 다음세대가 민주주의를 모르는 세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알고 있었고, 다른 언어로 표현했으며, 다른 감각으로 광장을 만들었다.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은 그들과 함께 배우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계승은 기억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다. 권한을 나누는 것이다.
7. 다시, 제일야학의 학생들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 제일야학의 학생들을 떠올린다. 늦은 시간에 교실로 들어오던 학생들, 수업이 끝난 뒤 분식집에 모여 앉던 학생들,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민주시민의 역할을 하려고 나왔다”고 말하던 학생들. 그들은 내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함께 배우고 서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이었다. 민주주의는 상호 학습과 실천의 과정이다. 때로는 젊은 세대가 오래된 세대를 가르치고, 거리의 시민이 제도를 가르치며, 광장의 빛이 정치의 어둠을 가르친다.
1987년의 거리와 2024년의 광장으로 이어지는 사이 한국 민주주의는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고, 멈칫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후퇴의 위험 앞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시민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다시 나타났다.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노래를 부르고, 다른 도구를 들었지만, 시민은 다시 광장을 만들었다. 우리가 이어가야 할 것은 과거의 형식이니 기억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주의의 방식과 감각이다.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느끼는 감각, 권력이 국민 위에 설 수 없다고 말하는 감각, 나와 다른 사람의 권리도 함께 지켜야 한다는 감각, 내 삶의 문제를 공동의 의제로 바꾸는 감각. 그 감각이 세대를 건너 이어질 때 민주주의는 살아 있다.

수원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정기총회 사진
8.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기에 희망이다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는다. 이 말은 절망의 문장이 아니다. 오히려 희망의 문장이다.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참여할 수 있고, 다음세대가 새롭게 만들 수 있으며,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광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시민들이 다시 외로운 개인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시민사회는 곁에 있어야 한다. 분노가 냉소로 식지 않도록, 참여가 일상의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기억이 다음세대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도록, 지역 곳곳에 민주주의의 작은 교실과 공론장과 실천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거대한 순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야학의 교실에도 있었고, 수원의 거리에도 있었고, 2024년의 광장에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가 사는 동네, 일터, 학교, 온라인 공간, 시민단체의 작은 회의실 안에 있다. 그곳에서 민주주의는 오늘도 묻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무엇을 이어갈 것인가. 그리고 다음세대와 함께 어떤 민주주의를 새로 만들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일, 그것이 6월항쟁을 기념하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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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9
기억하는 사람이 되자.
다산인권센터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사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화성에 위치한 접착제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폭발사고 였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고 곧바로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현장에는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고, 심하게 구겨진 건물들은 사고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사고로 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많은 노동자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사고 소식은 며칠 동안 주요 뉴스로 다뤄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지역의 동료들과 함께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화성시와 노동청 등 관계 기관을 찾아다니며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사건의 내용과 활동을 정리해 진상규명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지막 기록을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왜 사건이 발생했는지, 무엇이 잘못되어 생명을 잃었는지, 우리 사회는 어떤 책임을 함께 져야 하는지, 성찰의 마음으로 어떤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지. 사건을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남겨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마음 하나로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쉽게 누군가의 삶이 잊혀지지 않도록, 이 세상을 살다 간 어느 누군가의 오늘이 기억되도록, 기억하는 사람이 되자.”
그것이 제가 공익활동을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아마, 공익활동을 하는 활동가에게는 저의 시간처럼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사명감으로, 누군가는 즐거움, 호기심으로, 누군가는 분노로, 누군가는 변화의 상상으로. 저마다의 이유로 공익활동가가 되고, 세상의 변화에 힘을 보태는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꿀벌’이 없다면 지구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렇게 공익활동에 뛰어든 사람들, 저는 가끔 공익활동가의 존재가 ‘꿀벌’ 같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곳곳을 날아다니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존재 말이죠.
살펴보면 우리 사회 곳곳을 변화시키는 모든 현장에는 공익활동가가 있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뛰어가는 것이 활동가들입니다.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찾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활동가들의 몫이었습니다. 주요한 사안에 대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방향을 잡고, 어떤 대안을 만들어갈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법, 제도의 변화는 활동가들의 고민 끝에서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작은 목소리에 가장 먼저 귀 기울이는 사람들도 활동가들이었습니다. 주목되지 않는 이야기, 목소리에 스피커를 대고 세상을 향해 외쳐왔습니다. 소수자와 취약계층, 약자의 권리가 우리 사회 모두의 목소리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왔습니다.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는 마음, 그것이 세상을 움직여 온 힘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 그것도 활동가들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거리에서, 법과 제도를 만드는 현장에서, 노동의 존엄을 지키는 자리에서, 생명과 안전 사회를 만드는 현장 곳곳에서 공익활동가들은 꿀벌처럼 분주히 날아다니며 세상을 이어나갔습니다.
하지만, 꿀벌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세상이 가끔 망각하는 것처럼, 공익활동가가 얼마나 중요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이 사회가 눈여겨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공익활동이 처한 지속가능성, 실존하는 어려움 등은 사회 공동의 고민이기보다 활동가들의 몫으로만 남겨지고 있습니다.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의 어려움과 고민을 활동가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두어도 괜찮을까요?
기후 위기로 인해 꿀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지구의 삶도 위태로워질 것이라 과학자들은 예상합니다. 우리 사회 꿀벌인 공익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익활동 지속가능하지 않다면 우리 사회는 과연 더 나아갈 수 있을까요?

경기도의 변화에도 ‘늘’ 공익활동가가 있습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2024년부터 공익활동가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익활동’ 주간이 아닌 ‘공익활동가’ 주간인 것은 활동가들의 삶과 가치에 좀 더 주목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공익활동가 주간의 시작은 ‘공익활동’을 이어온 ‘공익활동가’들의 사회적 성과와 가치를 인정하고, 공익활동가를 지지·응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을 촉진하는 등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026년 공익활동가 주간은 활동의 고민을 풀어나가는 공론장, 쉼을 위한 캠프, 공익활동가 사진전, 응원 밥상, 교류의 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경기도에서도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 공익활동가 주간이 진행됩니다. 경기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과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공동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5월 29일, 2026년 경기공익활동가 주간을 준비하는 추진위원회 발대식이 열렸습니다. 본격적으로 경기지역 공익활동가들을 연결하는 여정의 시작입니다. 경기도는 31개 시·군으로 구성되어 있고, 산업 분포와 위치 에 따라 지역 특색도 다양합니다. 그만큼 공익활동가들의 활동 분야도, 활동에 대한 고민도, 활동가들의 숫자와 역량도 다양합니다. 이 다름과 차이를 엮어, 공동의 고민을 모색하는 자리로 공익활동가 주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활동가 주간의 주요 프로그램인 공익활동가대회에서 활동하며 겪는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장과 강연, 따뜻한 밥 한 끼를 통해 연대를 나누는 활동가의 식탁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최근 유행인 노래 <소문의 낙원> 가사처럼, 지친 활동가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낙원이 될 시간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손절 가득한 세상에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 ‘공익활동가’
최근 <손절사회>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깊어지는 신자유주의 속에서 인간관계가 손익의 계산이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불편하거나, 상처 주는 관계를 쉽게 정리하고 끊어내는 소위 ‘손절’이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언젠가부터 우리는 자신의 이익과 편리를 우선하며 불편과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을 멀리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게 좀 더 나를 위하는 길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래서 더 외롭고, 고립되고, 상처받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공익활동은 상처 난 시대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로 다시 잇는 일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기억해달라고 외치고, 잊혀져 가는 사건과 사람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다시 꺼내 놓는 일, 이윤과 효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랑, 책임과 연대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일. 그 위로는 공익활동가들의 손길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익활동가의 존재가 더욱 중요합니다. 세상에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이 더 든든하고 안전하게 자기 일을 하며, 자기 길을 갈 수 있도록. 공익활동가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존중, 제도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2026년 세 번째를 맞는 공익활동가 주간을 통해 이러한 고민들이 더 많이 나누어지기를, 우리 사회가 공익활동가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이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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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9※「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장(場)이 사라진 시대, 시민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나”
경기사회포럼, 민선 9기 앞두고 시민사회 역할과 공론장 회복 논의
6.3 지방선거 이후 출범할 민선 9기를 앞두고, 시민사회가 처한 현실과 지방정치의 역할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경기시민연구소 울림’ 주최로 지난 5월 18일(월) 오후 7시 경기도여성비전센터에서 열린 경기사회포럼에서는 단순한 지방자치 논의를 넘어 오늘날 시민사회가 처한 구조적 위기를 성공회대학교 김찬호교수를 초빙하여 깊이 있게 성찰하는 자리를 가졌다.

<제10회 경기사회포럼 ‘시민사회의 지방권력 활용법’>
“고립의 시대”… 시민사회도 예외 아니다.
‘시민사회의 지방 권력 활용법’이란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 김찬호교수는 현재의 한국 사회를 ‘복합 재난 시대’라고 진단했다. 저성장과 인구 감소, 불평등과 고립, 미디어 환경 변화와 공동체 해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과거 시민운동의 방식만으로는 현실 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강연에 나선 김찬호 교수>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고립’에 대한 분석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은 더욱 관계 맺는 것을 어려워하고, 청년 세대일수록 대면 관계를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심화되었다는 설명이다. 대학 강의실은 스마트폰을 보느라 조용해졌고, 동네 이웃과는 인사조차 어색해졌다.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사람이 없다.”라는 응답 비율은 한국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라는 통계도 언급됐다.
김찬호 교수는 이를 단순한 개인 성향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로 바라봤다. 빈곤, 학업 중단, 열악한 주거, 사업 실패, 일자리 불안, 가족 해체, 정신건강 악화 등이 서로 얽히며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 사회를 분석한 『손절사회』와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을 인용하며, 사람들은 점점 더 안전하고 불쾌하지 않은 관계만 추구하지만, 그 결과 타인과의 마찰을 견디는 힘 자체를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場)의 상실”… 시민운동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이번 강연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장(場)의 상실’이었다.
김찬호 교수는 “예전에는 마을과 학교, 시민단체 같은 공동체 안에서 관계가 형성되고 갈등도 완충됐지만, 지금은 관계의 장(場)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 번 관계가 틀어지면 회복할 중간 지대가 없고, 결국 손절로 이어지는 사회가 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더불어 이 변화가 시민사회에도 치명적 영향을 주고 있다.
한때 사회 변화를 이끄는 주체였던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대학, 언론 등 기존 공적 영역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반면, 개인화된 소비자와 네티즌 중심 사회가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시민사회 역시 기존의 조직 중심 활동만으로는 주민들을 연결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포럼 참석자들이 강연 내용에 집중하고 있다.>
“시민운동 방식도 변화가 필요하다.”
포럼에서는 주민 삶의 변화에 비해 행정 시스템은 여전히 표준화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주민들의 삶은 점점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지만, 행정은 여전히 동일한 기준과 절차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현장과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김찬호 교수는 “앞으로 시민사회가 주민들의 삶 속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이야기와 경험의 형태로 공유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정책 제안을 넘어 문화와 예술,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의 시민운동이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대표 사례로 소개된 것은 서울 마포구 발달장애 청년 허브 ‘사부작’이었다. 주민들은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마을 살이를 이어가며 실제 삶의 모델을 만들었고, 주민들에게 필요한 조례를 제안할 때도 춤과 문화예술 퍼포먼스로 조례 제정을 촉구했다. 딱딱하고 어려운 정책 제안이 아니라 ‘재미있고 감동적인 경험’으로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낸 사례다.
또 다른 사례로는 부산 사하구의 워킹맘들이 출근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아이가 아팠을 때 필요한 ‘출근 전 어린이병원’,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함께 놀 수 있는 ‘노원구의 통합놀이터 조성’, 빈집을 매입해 생활 SOC로 활용하는 부산 사례 등이 소개됐다. 모두 주민들의 실제 생활 문제에서 출발해 조례와 정책으로 이어진 사례들이다.
지역 언론과 공론장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충북 옥천의 옥천신문 사례를 언급하며, “지역 의회와 행정을 꾸준히 감시하고 기록하는 언론의 역할이 지방자치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특히 “다음 선거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청소년과 미래세대의 삶, 노후 인프라 문제, 장기적인 공동체 회복 같은 의제가 단기 성과 중심 정치 속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희망은 방향이다.”
강연 말미에는 ‘희망’에 대한 메시지도 전했다.
김찬호 교수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바츨라프 하벨의 말을 인용하며, 희망은 결과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영혼의 방향성’이라고 강조했다. 성공 가능성이 높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고 선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어 고(故) 김근태 의원의 “희망을 의심할 줄 아는 진지함”이라는 말을 소개하며, 시민사회가 냉소를 넘어 다시 공론장과 공동체를 복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냉소는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시민사회의 역할은 바로 그 냉소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2025년 11월 20일 출범한 경기사회포럼은 경기지역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대안과 담론을 모색하는 자리를 격월로 진행하고 있다.>
이번 포럼은 시민사회가 단지 행정을 견제하거나 정책을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해체되는 관계와 공론장을 어떻게 다시 복원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답은 어쩌면 거창한 구호보다, 작은 연결과 경험, 지역 안에서 다시 사람을 만나게 하는 ‘장(場)’을 복원하는 일에서 시작될지 모른다.
포럼 참가자들은 “장(場)이 사라지는 시대에 이런 공론장 자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라며, 지역 안에서 사람들을 다시 연결하는 다양한 시도와 학습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으며 마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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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4※「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업과 공익단체가 만날 때, 지역은 달라진다"
2026년 5월 7일 오후 2시, 안양시공익활동지원센터 대회의실.
경기도 곳곳에서 온 기업인과 공익활동가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웠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사회문제 해결을 꿈꾸는 단체가 한자리에 앉는다는 것, 언뜻 어색하게 들릴 수 있는 조합이지만, 이날 현장에서 그 어색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2026년 1기업-1단체 공익파트너십 협력사업 협약식 자리에는 총 18개 기업과 10개 단체, 30여 명의 관계자가 모여 올해의 협력을 공식적으로 약속했다.

경기도 전역으로 뻗어나간 공익의 물결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주관하는 '1기업-1단체 공익파트너십 협력사업'은 경기도 내 기업과 공익활동단체를 직접 연결해 지역사회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협력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업이다. 단체별 최대 500만 원의 사업비를 지원하며, 신규 및 연속 참여 단체 모두 동일한 규모로 지원받는다. 환경보전, 자원순환, 이주민 통합, 공동체 회복, 생물다양성 보전 등 지역이 안고 있는 다양한 공익 의제를 다루며, 기업의 ESG 경영을 실질적으로 유도하고 지역사회의 상생발전 방안을 마련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2024년에는 5개 기업과 5개 단체가 참여했고, 2025년에는 14개 기업과 10개 단체로 규모가 커졌다. 그리고 올해 2026년, 이 사업은 드디어 경기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신규 지원 기업과 연속 참여 기업이 함께 어우러진 18개 기업, 신규 5개 단체와 연속 5개 단체를 포함한 10개 단체가 이번 협약의 주역이다. 협약 이후 오는 10월 31일까지 각 팀이 자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며, 11월 중에는 성과를 공유하고 관계망을 넓히는 '오픈파트너스데이'가 예정되어 있다.

"혼자 걸으면 길이 없지만, 함께 걸으면 길이 된다"
협약식의 문을 연 것은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유명화 센터장의 개회인사였다. "공익활동을 하는 단체와 기업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 남은 문제들은 어느 한 주체가 나선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체도, 기업도, 시민도 함께 만나야 비로소 실마리가 보이고, 시너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유 센터장은 센터가 이 사업을 단순한 일회성 행사가 아닌, 지속 가능한 구조로 키워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함께하는 기업과 단체에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습니다. 아직 충분하지 않지만, 정책이 더 넓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경기도에서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과 나눠주셨으면 합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날 협약식에 참석한 기업인과 단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의미 있는 자리에 함께하게 되어 기쁘다"는 분위기가 공통적으로 흘렀다.

10개 팀 협력 사업 소개
협약식은 각 팀의 소개 시간을 중심으로 활기차게 이어졌다. 18개 기업과 10개 단체는 총 10개 팀으로 구성되어 각각의 공익사업을 추진한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팀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어보았다.
왕숙천 생물다양성 지킴이 팀은 남양주환경운동연합과 (주)빙그레가 함께한다. 왕숙천의 생태계를 모니터링하고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활동으로, 플로킹(걷기 정화 활동)과 시민 교육을 병행해 지역 하천의 생태 가치를 주민들과 함께 확인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번 사업을 통해 지자체와의 협력 경로도 모색한다고 밝혔다.
탄천 생물다양성 프로젝트는 사단법인 성남환경운동연합과 (주)인베랩, 카카오(판교아지트)가 손을 잡았다. 탄천을 따라 소규모 서식지 조성, 생태교란 식물 관리, 하천 정화 활동을 추진하며 시민 참여 기반의 생태 보전 활동을 이어간다. 특히 정량적인 성과를 통해 탄천 생태 회복의 실질적인 변화를 도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봉사활동으로 만들어가는 '이음 고리' 프로젝트는 사회적협동조합 내비두(비두)와 감동크린협동조합, 원예협동조합 푸름채움, 호원새마을금고 세 기업이 함께한다. 사회적협동조합 내비두는 고립과 은둔 상태의 청년·중장년을 심리적으로 지원하고, 이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와 다시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단체다. 원예협동조합 푸름채움은 치유와 관계 형성에 중점을 둔 플렌테리어·원예 프로그램을 활용해 협력사업을 채워나간다. 고립된 이들이 단순히 도움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봉사하고 일을 경험하는 주체가 되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라온과 함께 폐자원을 새자원으로! 팀은 안양라온봉사단과 사회적기업 (주)다숲, 에이치엠더블유(주), 오슬로가 협력한다. 버려지는 폐현수막, 폐섬유, 병뚜껑 등을 새로운 자원으로 변환하는 자원순환 체험 활동과 탄소중립 실천 캠페인을 운영한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쓰레기가 새로운 가치로 이어지는 선순환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인상 깊었다.
가치를 입다, 자립을 돕다: 로컬 상생 옷장 프로젝트는 안코사회적협동조합과 주식회사 위더스타운이 추진한다. 자원순환을 기반으로 한 ESG 캠페인을 통해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지역 연계형 순환경제 모델을 구축하는 활동이다. 위더스타운은 다양한 사회 공익 활동에 참여해 온 기업으로, 청년 네트워크와 연계해 새로운 공익 무대를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회통합을 위한 이주민과 함께 성장하기는 의정부이주노동자센터와 김하늘컴퍼니가 손잡은 팀이다. 캄보디아, 네팔, 미얀마, 인도네시아 공동체와 함께 노동자 법 교육, 워크숍, 인식 개선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김하늘컴퍼니 대표는 직접 캄보디아 공동체에서 활동하며 이주민이 사업의 수혜자가 아닌 주체적 참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을 전했다.
일하는 식탁? 밥 먹는 식탁! (직장인 청년 소셜다이닝)은 프로젝트 산장과 강경푸드, 스무살이협동조합이 함께한다. 혼밥과 고립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청년 직장인들을 위해 소셜다이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관계망을 형성하는 활동이다. 강경불고기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강경푸드는 지난해에도 같은 사업에 참여해 고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경험한 바 있으며, 올해는 더욱 체계적인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문산천 생물다양성 보전 파트너십 프로젝트는 DMZ생물다양성연구소와 파주도시공사의 협력으로 이뤄진다. 파주 문산천 일대의 생물다양성 가치를 시민에게 알리고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기 위한 시민 참여형 환경보전 활동이 중심이다. 파주도시공사는 연속 참여를 통해 도시 개발 기업으로서의 ESG 실천을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이날 협약식에서 유독 눈길을 끈 팀이 있었다. 바로 코스탈 주식회사와 사단법인 트루의 플라스틱 장난감 업사이클을 통한 기업 ESG활동 팀이다. 올해로 3년 연속 파트너십을 이어가는 이 팀은, 단순한 캠페인을 넘어 지역 내 지속 가능한 환경 공익의 구체적인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파주시에 기반을 둔 코스탈 주식회사는 전기·전력용 비철금속 소재와 가공 제품을 생산하는 강소기업이다. 파트너 단체 사단법인 트루는 고양시를 기반으로 매년 20만 점 이상의 폐장난감을 재활용하고 '장난감학교 쓸모'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국내 대표 플라스틱 업사이클 전문 단체로, 장난감 환경윤리헌장 제정과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입법화 추진 등 정책적 변화까지 이끌고 있다.
한편 공유공존공공을위한연구소와 소우주 주식회사, 생생아쿠아, 주식회사 예성아름터가 함께하는 남양주 옹달샘 프로젝트는 지역 상점들을 거점으로 시민 누구나 텀블러만 있으면 자유롭게 물을 마실 수 있는 공공급수 공간을 확충하는 사업이다.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일상 속 친환경 생활을 실천하는 시민 참여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핵심 목표다.



기업과 공익단체가 함께 만드는 사회적 가치: 박주원 이사 강연
협약식을 마친 후에는 박주원 지속가능경영재단 ESG협력담당 이사의 강연이 이어졌다. 강연 주제는 '기업과 공익단체가 함께 만드는 사회적 가치'였다. 강연에서는 ESG가 단순한 기업 홍보 수단이 아닌, 지역사회와의 진정한 연대를 통해 실현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난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특히 기업과 공익단체의 협업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에게 성장의 기회가 되는지, 실제 사례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풀어냈다. 이날 강연은 협약식에 참석한 기업인과 단체 관계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더 나은 역할을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이 선언이 아니라 현장의 언어로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기업이 바뀌면, 지역이 달라진다
이날 안양시공익활동지원센터 대회의실은 경기도 곳곳의 변화가 모여든 출발점이었다. 1기업-1단체 공익파트너십 협력사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환경, 생물다양성, 자원순환, 이주민 통합, 청년 고립, 지역 공동체 등 다양한 공익 의제가 기업과 단체의 협력 속에서 지역 현장의 언어로 풀려나가고 있다. ESG가 보고서 속 숫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살아 숨 쉬는 실천이 될 때, 기업과 공익단체 모두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사업은 매년 증명해 왔다. 오는 10월, 이 18개 기업과 10개 단체가 어떤 결실을 가지고 다시 모이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지금 이 봄날의 약속들이 경기도 곳곳에서 조용하지만 확실한 변화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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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0※「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산초지종합사회복지관 온마을 네트워크 자원봉사단 이야기
1. '온마을'이라는 이름에 담긴 뜻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자리한 안산초지종합사회복지관은 지역 주민의 삶과 오랫동안 함께해온 복지기관입니다. 어르신 돌봄, 아동·청소년 교육, 가족 상담 등 다양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지역사회 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는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데 꾸준히 힘을 쏟아온 곳이기도 합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초지복지관은 2026년 봄, 지역 주민 스스로가 기획자이자 실행자가 되어 시니어를 위한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는 자원봉사 모델을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바로 '온마을 네트워크'입니다.
'온마을'이라는 이름 안에는 두 가지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온 마을 사람이 함께한다는 뜻, 그리고 온기로 가득 찬 마을을 만들겠다는 뜻. 이 두 가지가 겹쳐진 이름처럼, 온마을 네트워크는 마을 안의 사람들이 서로를 살피고 돌보는 공동체의 모습을 꿈꾸며 출발했습니다.
이 글은 그 온마을 네트워크의 주민기획단 다섯 명이 어떻게 모였고, 어떤 마음으로 어르신 곁에 서 있는지를 기록한 현장 이야기입니다.

2. 2026년 3월, 다섯 명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초지복지관은 2026년 2월~3월, 시니어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분을 찾는 주민기획단모집을 시작했습니다. 나이도, 직업도, 살아온 방식도 서로 다른 다섯 명의 사람이 이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이들은 대학생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성인 봉사자까지 연령대가 폭넓습니다. 복지 관련 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 지역사회 활동 경험이 풍부한 중장년 봉사자, 아이를 키우는 주부, 재능을 나누고 싶은 직장인까지. 서로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이들은 단순한 봉사자 모임이 아닌, 하나의 팀으로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초지복지관과 함께 준비 기간을 거치면서, 각자의 강점을 나누고 역할을 분담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기획을 담당하는 사람, 홍보를 맡는 사람, 현장 진행을 이끄는 사람, 물품 준비와 기록을 책임지는 사람.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기로 약속했습니다.
이것이 온마을 네트워크가 단순한 봉사 모임을 넘어 체계적인 팀 운영 방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역할을 찾고 채워나가는 방식. 그 안에서 봉사자들은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빠르게 신뢰를 쌓아갔습니다.

3. 어르신을 위한 세 가지 선물 — 음악, 두뇌, 손끝
온마을 네트워크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됩니다.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활동이 아니라, 어르신의 몸과 마음과 손끝을 모두 살피는 통합적인 돌봄 프로그램입니다.
첫 번째는 음악을 활용한 신체활동 시간입니다.
노래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리듬에 맞게 박수를 치거나 간단한 동작을 따라 하는 이 시간은, 어르신들이 가장 즐겁게 참여하는 순서이기도 합니다. 음악은 기억을 깨우고, 감정을 움직이며, 몸을 자연스럽게 활성화시킵니다. 치매 예방과 우울감 해소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봉사자들은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동작의 난이도를 조율하고, 친숙한 옛 노래와 트로트 곡을 함께 선정하는 등 매번 세심하게 준비합니다.
어르신들은 음악이 흐르는 순간부터 표정이 달라집니다. 쑥스럽게 앉아 계시던 분도 노래가 시작되면 어느새 몸을 흔들고 손을 두드리십니다. 이 짧은 순간이 쌓여 활동의 즐거움이 되고, 다음 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힘이 됩니다.

두 번째는 두뇌를 자극하는 퀴즈 타임입니다.
상식 퀴즈, 단어 맞추기, 그림 연상 퀴즈, 간단한 계산 문제 등 다양한 형식의 문제들을 통해 어르신들이 두뇌를 활발히 사용하도록 돕는 시간입니다. 뇌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는 경험이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의학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봉사자들은 너무 어렵지도, 너무 단순하지도 않은 적절한 난이도의 퀴즈를 매 회 새롭게 준비하며 어르신들의 집중력과 성취감을 동시에 높이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소근육을 활용하는 만들기 시간입니다.
손을 사용해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활동은 소근육 발달과 집중력 향상에 효과적이며, 완성된 작품을 보는 성취감은 어르신들의 정서적 안정에도 크게 기여합니다. 봉사자들은 재료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꼼꼼하게 챙기며, 어르신이 손을 움직이기 어려운 부분에서는 나란히 앉아 함께 작업합니다. 이 시간이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어르신과 봉사자가 나란히 앉아 손을 맞대는 교감의 시간이 되도록 늘 신경 씁니다.

이 세 가지 프로그램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몸을 깨우고, 두뇌를 자극하고, 손끝으로 표현하는 흐름이 하나의 활동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어르신들은 한 시간 남짓의 프로그램 안에서 몸과 마음이 함께 활기를 찾게 됩니다.
4. 스승의 날, 양말목 카네이션으로 전한 마음
스승의 날을 앞두고 진행된 양말목 카네이션 만들기 시간이었습니다.
양말목 공예는 버려지는 양말 자투리 천, 즉 '양말목'을 활용하여 꽃이나 소품 등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공예입니다. 버리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친환경 활동으로, 만들기가 어렵지 않으면서도 결과물이 아름다워 어르신들에게도 인기가 높습니다.
봉사자들은 어르신들을 생각하며 함께 양말목으로 카네이션을 직접 만들고, 그것을 인생의 선배님이자 인생의 스승님인 어르신들께 선물로 드리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꽃 한 송이를 두 손으로 받아 드신 어르신 몇 분은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이 카네이션 하나가 단순한 공예 작품이 아니라, 곁에 있어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의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나한테 주는 거예요? 참 예쁘다... 고마워요."
꽃을 받아 드신 어르신의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어르신들은 그저 받기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직접 손으로 행운을 뜻하는 네잎클로바를 만들며세대와 세대가 마음을 나누는 진짜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양말목 클로바만들기는 만들기 프로그램이기도 했지만, 환경 상식을 전하는 에코 활동이기도 했습니다. 버려지는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업사이클링의 의미를 어르신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환경에 대한 인식을 일상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5. 활동을 넘어 — 환경 상식과 따뜻한 안부 인사
온마을 네트워크 활동이 다른 봉사 프로그램과 구별되는 지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매 회 활동 안에 환경 관련 상식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분리배출 방법, 일상 속 에너지 절약 습관, 친환경 소재 이야기 등 생활 밀착형 환경 정보를 짧은 코너로 구성해 어르신들과 함께 나눕니다. 어렵고 딱딱한 환경 교육이 아니라, 우리 동네 이야기처럼 친근하게 전달하는 방식이어서 어르신들의 반응도 좋습니다. 환경이라는 주제가 봉사 활동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방식, 온마을 네트워크만의 특색 있는 접근입니다.
또한 봉사자들은 활동 시간 안에서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와 일상을 자연스럽게 살핍니다. "요즘 잘 주무세요?",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으세요?", "지난주엔 외출도 하셨어요?" 이런 일상적인 말 한마디가 어르신들에게는 진심 어린 돌봄으로 느껴집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될 위험이 높은 노인 1인 가구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봉사자의 존재 자체가 안심의 이유가 됩니다. 온마을 네트워크는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프로그램 운영을 넘어, 지역사회 내 시니어 돌봄의 촘촘한 연결망 역할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6. 2회 만에 느낀 감동 — 만족도와 보람
온마을 네트워크는 한 달에 걸친 준비 기간을 거쳐 202년 봄, 첫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 총 2회의 정규 활동이 진행되었습니다. 아직 시작 단계임에도 활동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기다려지는 날이 생겼다"고 하십니다. 봉사자들은 "이런 보람은 처음"이라고 말합니다. 준비하고, 진행하고, 마무리하고, 다음 회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봉사자들 사이의 팀워크도 눈에 띄게 탄탄해졌습니다.
참여 어르신들의 반응도 대단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앉아 계시던 분이 시간이 지날수록 먼저 손을 들어 답을 외치시고, 옆 어르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만들기 작업에 열중하시는 모습. 그 변화가 봉사자들에게 가장 큰 보람이 됩니다.
온마을 네트워크는 202년 11월까지 월 2회 정기 활동을 이어갑니다. 앞으로 더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고, 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마을의 온기를 더해나갈 예정입니다.
봉사자들은 한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이 활동이 어르신들에게만 선물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삶을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고. 봉사란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받는 것임을 온마을 네트워크는 매 회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7. 다섯 명의 이야기 —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사람들
온마을 네트워크를 이끄는 다섯 명의 봉사자는 저마다의 이유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활동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 다섯 명의 이야기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모두가 받는 봉사가 아닌, 함께 성장하는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삶의 지혜를 배우고, 팀원들과 기획하며 협력하는 법을 익히고, 낯선 어르신께 먼저 말을 건네며 용기를 키웁니다.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가 이 젊은 봉사자들에게는 살아있는 교과서가 됩니다.

8. 공익의 관점에서 — 온마을 네트워크가 중요한 이유
초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지역사회 기반의 시니어 돌봄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국가와 지방정부의 공식 복지 서비스만으로는 모든 어르신의 일상적 필요를 채우기 어렵습니다. 이웃이 이웃을 살피고, 마을이 마을의 구성원을 돌보는 공동체 돌봄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온마을 네트워크는 바로 그 빈자리를 채우는 실천입니다. 시설이나 제도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연결로 만들어지는 돌봄. 전문 복지사가 아닌 마을 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프로그램. 이것이 가진 힘은 친숙함과 지속성에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낯선 전문가보다 익숙한 이웃에게 더 마음을 엽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봉사자 자신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성장합니다. 온마을 네트워크는 어르신과 봉사자 모두에게 "내가 이 마을의 주인이자 구성원"임을 실감하게 해주는 공익적 실천입니다.
화려한 인프라나 큰 예산 없이도, 사람의 마음과 시간이 모이면 지역사회가 달라진다는 것을 온마을 네트워크는 매 회 직접 증명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모여 따뜻한 마을이 됩니다
안산초지종합사회복지관 온마을 네트워크의 이야기는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2026년 11월, 마지막 회 활동이 끝나는 날까지 다섯 명의 봉사자들은 매달 두 번씩 어르신들의 곁에 설 것입니다. 음악과 함께 몸을 움직이고, 퀴즈로 두뇌를 깨우고, 손끝으로 무언가를 함께 만들며, 그 안에서 삶의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어르신들의 웃음 속에, 눈가의 눈물 속에, 그리고 "다음에 또 오지요?" 라는 한 마디 속에 이 활동의 모든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의 마음이 모여 더 따뜻한 마을이 되길 바랍니다.“

마을은 결국 사람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곳에 공동체가 생깁니다.
안산초지종합복지관에서 시작된 온마을 네트워크의 이야기가, 경기도 곳곳의 더 많은 마을로 퍼져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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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8※「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혼자 남겨진 사회, 세대별 사례 탐구를 중심으로 본 현대사회의 외로움 보고서
아무도 몰랐다
냉장고 안에는 오래된 음식이 있었다. 현관 앞에는 며칠치 우유가 쌓여 있었다. 택배 기사가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발견됐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고독사’라는 단어는 특별한 사건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뉴스와 지역사회 현장에서 흔히 접하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혼자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 연락이 끊긴 뒤 며칠 혹은 몇 달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죽음은 이제 특정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는 노년층의 문제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청년과 중장년층에서도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1인가구 증가, 경제적 불안, 인간관계 단절, 디지털 중심 사회 변화는 사람들을 점점 사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고독사는 단순히 혼자 죽는 현상이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관계가 끊어졌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고립사’라는 표현도 함께 사용된다.
고독사와 고립사,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고독사란 무엇인가,
고독사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상태에서 혼자 사망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1인가구에서 많이 발생하지만 반드시 혼자 사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 있어도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면 고독사의 위험은 존재한다.
고독사의 핵심은 단순한 ‘혼자 죽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부재다. 즉 살아 있는 동안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문제로 다뤄진다.
고립사란 무엇인가,
고립사는 사회적 관계와 교류가 거의 없는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다가 발생하는 죽음을 의미한다. 고독사가 결과 중심의 개념이라면 고립사는 그 과정에 초점을 둔 표현이다.
직장을 잃고 사람들과의 연락이 끊기며 사회활동이 중단되고, 결국 건강관리와 생활 유지가 어려워지는 과정 자체가 사회적 고립이다.
즉 고립은 삶의 과정이고, 고독사는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숫자가 말하는 현실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 자료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고독사 위험군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중장년 1인가구의 증가 속도가 매우 가파르다. 2023년 기준 국내 1인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의 약 35%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는 세 가구 중 한 가구 이상이 혼자 사는 시대라는 의미다.
고독사 사망자는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남성 비율이 높으며 50~60대 중장년층 비중이 가장 크다. 최근에는 경제적 불안정과 취업난 속에서 청년층 고립 문제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초고령사회가 본격화되면 노년층 고독사는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왜 사람들은 고립되는가
1) 관계 단절의 시대
과거에는 동네 공동체와 대가족 문화가 존재했다. 이웃 간 왕래가 있었고 서로의 안부를 자연스럽게 확인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개인 중심 구조로 변화했다. 아파트 생활은 익명성이 강해졌고, 사람들은 서로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편리함은 늘었지만 관계는 줄어들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인간관계 단절은 더욱 심화됐다.
2) 경제적 불안
실직과 빈곤 역시 중요한 원인이다. 경제적 어려움은 사람들을 사회관계 밖으로 밀어낸다.
직장을 잃으면 인간관계도 함께 끊기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실패에 대한 자존감 하락은 스스로 사회와 거리를 두게 만든다.
특히 중장년 남성층은 은퇴 이후 관계망이 급격히 줄어드는 특징이 있다.
3) 디지털 사회의 역설
스마트폰과 SNS는 연결의 도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깊은 외로움을 만들기도 한다.
온라인에서는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실제로 대화할 사람은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노년층은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회적 소외를 경험하기도 한다.
4) 가족 구조의 변화
비혼 증가와 이혼, 1인가구 확대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예전에는 가족이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했지만 현재는 가족 내부에서도 관계 단절이 늘어나고 있다.
“연락하지 않는 가족”은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돌봄 관계는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고독사의 현장 사례(출처.한국장례협회)
사례 1 – 은퇴 후 혼자가 된 중년 남성
수도권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6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수개월 전 직장을 잃은 뒤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다. 가족과의 왕래도 거의 없었다.
주민들은 “조용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했지만 정작 그의 일상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발견 당시 집 안에는 배달 음식 용기와 약봉지가 쌓여 있었다.
사례 2 – 청년 고립의 그림자
취업 준비를 하던 20대 청년은 장기간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며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 원룸생활을 하였으며, 체납고지서와 이력서, 빈통장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숨진 뒤 2주가 경과한 후에 발견되었다..
청년 고립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불안과 우울, 사회적 단절이 지속되면 심각한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례 3 – 혼자 남겨진 노년 여성
남편 사별 이후 홀로 생활하던 80대 여성은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외출이 줄었다. 동네 복지사의 방문이 끊긴 뒤 점차 사회와 단절됐다.
이웃들은 가끔 보던 모습이 사라졌지만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몇 주 뒤 관리비 연체 문제로 집을 찾은 관계자에 의해 발견됐다. 마지막으로 그의 이름을 부른 사람은 누구였을까..
‘고독력’ – 혼자 견디는 힘이 아니라 연결을 유지하는 힘.
세 사람의 이야기에서 공통점이 있다. 고립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조금씩,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진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수 있을까. 최근 심리학과 사회학에서는 ‘고독력’이라는 표현이 주목받고 있다. 고독력은 단순히 혼자 견디는 힘이 아니다. 외로움을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혼자 있는 시간을 삶의 균형 속에서 활용하는 능력이다. 현대사회에서 혼자 사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고립되지 않는 것이다.
혼자 살아도 사회와 연결되어 있고,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세대별 고독력 키우기
1. 청소년·청년 세대 - 디지털 관계를 넘어 실제 관계 만들기
청년층은 온라인 소통에 익숙하지만 실제 인간관계 경험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청년 고립은 "혼자 있기 좋아서"가 아니라 "관계를 시작하기 어려워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모임 참여, 독서모임 및 동호회 활동, 봉사활동 참여, 공동체 프로젝트 경험 등 만나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2. 중장년 세대 - 일 외의 관계망 만들기
중장년층은 직장을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해온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은퇴 이후 관계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고립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준비가 필요하다. 취미 공동체 만들기, 지역 활동 참여, 평생학습 프로그램 참여, 걷기 모임, 문화모임 참여 등 특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혼자 버티려는 태도는 오히려 위험을 키울 수 있다.
3. 노년 세대 – 작은 연결을 꾸준히 유지하기
노년층은 건강 악화와 이동 제한으로 인해 쉽게 고립된다. 매일 한 번 전화하기, 경로당 및 복지관 이용, 마을 프로그램 참여, 라디오와 공동체 활동 참여, 디지털 교육 받기처럼 작은 연결이라도 꾸준히 유지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노년층에게는 “누군가 자신의 안부를 기억하고 있다”는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
공동체 회복이 필요한 시대
고독사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하는 공동체 과제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은 안부 확인 서비스와 AI 돌봄, 반려식물 사업, 주민 관계망 사업 등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은 사람의 관심과 연결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하는 일, 동네 가게에서 안부를 묻는 일,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하는 작은 행동들이 관계를 이어주는 시작이 된다.
최근 공동체라디오와 마을미디어 활동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의 목소리는 관계를 만든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다시 사회와 연결된다.
특히 시니어와 1인가구에게 공동체 미디어 활동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활력과 사회적 관계 회복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혼자 살아도 혼자 남지 않기 위해
현대사회에서 외로움은 특별한 감정이 아니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의 감정이다.
하지만 외로움이 단절이 되고, 단절이 고립이 되며, 결국 삶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고독력을 키운다는 것은 혼자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돌보고, 타인과 연결되며,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혼자 살아가는 시대일수록 더 필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은 연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연결은 제도가 아니라 “잘 지내세요?”라는 짧은 안부 한마디에서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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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