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하는 사람이 되자.
다산인권센터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사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화성에 위치한 접착제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폭발사고 였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고 곧바로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현장에는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고, 심하게 구겨진 건물들은 사고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사고로 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많은 노동자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사고 소식은 며칠 동안 주요 뉴스로 다뤄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지역의 동료들과 함께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화성시와 노동청 등 관계 기관을 찾아다니며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사건의 내용과 활동을 정리해 진상규명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지막 기록을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왜 사건이 발생했는지, 무엇이 잘못되어 생명을 잃었는지, 우리 사회는 어떤 책임을 함께 져야 하는지, 성찰의 마음으로 어떤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지. 사건을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남겨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마음 하나로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쉽게 누군가의 삶이 잊혀지지 않도록, 이 세상을 살다 간 어느 누군가의 오늘이 기억되도록, 기억하는 사람이 되자.”
그것이 제가 공익활동을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아마, 공익활동을 하는 활동가에게는 저의 시간처럼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사명감으로, 누군가는 즐거움, 호기심으로, 누군가는 분노로, 누군가는 변화의 상상으로. 저마다의 이유로 공익활동가가 되고, 세상의 변화에 힘을 보태는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꿀벌’이 없다면 지구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렇게 공익활동에 뛰어든 사람들, 저는 가끔 공익활동가의 존재가 ‘꿀벌’ 같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곳곳을 날아다니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존재 말이죠.
살펴보면 우리 사회 곳곳을 변화시키는 모든 현장에는 공익활동가가 있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뛰어가는 것이 활동가들입니다.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찾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활동가들의 몫이었습니다. 주요한 사안에 대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방향을 잡고, 어떤 대안을 만들어갈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법, 제도의 변화는 활동가들의 고민 끝에서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작은 목소리에 가장 먼저 귀 기울이는 사람들도 활동가들이었습니다. 주목되지 않는 이야기, 목소리에 스피커를 대고 세상을 향해 외쳐왔습니다. 소수자와 취약계층, 약자의 권리가 우리 사회 모두의 목소리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왔습니다.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는 마음, 그것이 세상을 움직여 온 힘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 그것도 활동가들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거리에서, 법과 제도를 만드는 현장에서, 노동의 존엄을 지키는 자리에서, 생명과 안전 사회를 만드는 현장 곳곳에서 공익활동가들은 꿀벌처럼 분주히 날아다니며 세상을 이어나갔습니다.
하지만, 꿀벌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세상이 가끔 망각하는 것처럼, 공익활동가가 얼마나 중요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이 사회가 눈여겨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공익활동이 처한 지속가능성, 실존하는 어려움 등은 사회 공동의 고민이기보다 활동가들의 몫으로만 남겨지고 있습니다.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의 어려움과 고민을 활동가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두어도 괜찮을까요?
기후 위기로 인해 꿀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지구의 삶도 위태로워질 것이라 과학자들은 예상합니다. 우리 사회 꿀벌인 공익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익활동 지속가능하지 않다면 우리 사회는 과연 더 나아갈 수 있을까요?
경기도의 변화에도 ‘늘’ 공익활동가가 있습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2024년부터 공익활동가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익활동’ 주간이 아닌 ‘공익활동가’ 주간인 것은 활동가들의 삶과 가치에 좀 더 주목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공익활동가 주간의 시작은 ‘공익활동’을 이어온 ‘공익활동가’들의 사회적 성과와 가치를 인정하고, 공익활동가를 지지·응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을 촉진하는 등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026년 공익활동가 주간은 활동의 고민을 풀어나가는 공론장, 쉼을 위한 캠프, 공익활동가 사진전, 응원 밥상, 교류의 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경기도에서도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 공익활동가 주간이 진행됩니다. 경기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과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공동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5월 29일, 2026년 경기공익활동가 주간을 준비하는 추진위원회 발대식이 열렸습니다. 본격적으로 경기지역 공익활동가들을 연결하는 여정의 시작입니다. 경기도는 31개 시·군으로 구성되어 있고, 산업 분포와 위치 에 따라 지역 특색도 다양합니다. 그만큼 공익활동가들의 활동 분야도, 활동에 대한 고민도, 활동가들의 숫자와 역량도 다양합니다. 이 다름과 차이를 엮어, 공동의 고민을 모색하는 자리로 공익활동가 주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활동가 주간의 주요 프로그램인 공익활동가대회에서 활동하며 겪는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장과 강연, 따뜻한 밥 한 끼를 통해 연대를 나누는 활동가의 식탁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최근 유행인 노래 <소문의 낙원> 가사처럼, 지친 활동가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낙원이 될 시간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손절 가득한 세상에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 ‘공익활동가’
최근 <손절사회>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깊어지는 신자유주의 속에서 인간관계가 손익의 계산이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불편하거나, 상처 주는 관계를 쉽게 정리하고 끊어내는 소위 ‘손절’이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언젠가부터 우리는 자신의 이익과 편리를 우선하며 불편과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을 멀리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게 좀 더 나를 위하는 길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래서 더 외롭고, 고립되고, 상처받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공익활동은 상처 난 시대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로 다시 잇는 일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기억해달라고 외치고, 잊혀져 가는 사건과 사람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다시 꺼내 놓는 일, 이윤과 효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랑, 책임과 연대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일. 그 위로는 공익활동가들의 손길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익활동가의 존재가 더욱 중요합니다. 세상에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이 더 든든하고 안전하게 자기 일을 하며, 자기 길을 갈 수 있도록. 공익활동가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존중, 제도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2026년 세 번째를 맞는 공익활동가 주간을 통해 이러한 고민들이 더 많이 나누어지기를, 우리 사회가 공익활동가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이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