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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진실 : 안산은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

작성자: 윤작가 / 날짜: 2026-04-02 / 조회수: 27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안산 다문화 작은 도서관의 폐관과 
방치된 모국어 책들이 던지는 질문



1. 그 푸른 대문에 대하여

 
안산 다문화 작은도서관 입구의 파란 대문. 지금은 문패가 사라졌다. 


누군가에게 도서관은 그냥 도서관이다. 책이 있고, 의자가 있고, 조용한 곳. 하지만 안산역 지하보도를 빠져나와 다문화 거리의 소음을 헤치며 걷는다. 다문화 지원센터 지하 1층으로 내려가던 사람들에게, 그 좁고 낮은 공간은 다른 장소였다. 24개국의 언어로 된 책들이 빼곡히 꽂힌 서가 앞에서 그들은, 아마도 처음으로, 자신이 이 도시에 존재한다는 감각을 되찾았을 것이다.

17년이었다. '안산 다문화 작은 도서관'이 이 땅에 뿌리 내린 이주민들의 곁에 있던 시간. 낯선 나라에서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고 돌아온 밤, 모국어로 된 문장 하나가 주는 위로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17년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런데 지난 2월, 그 공간은 공문 한 장과 함께 사라졌다. 협의도 예고도 없었다. 3년간 이 도서관을 운영해 온 박서연 관장은 재위탁 심사를 준비하던 중 폐관을 통보받았다. 청천벽력이라는 표현이 이렇게 정확하게 들어맞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사서 선생님들과 함께 출근해서, 함께 퇴근했다." - 도서관을 이용하던 한 중국인 어머니의 말

이 문장을 읽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한 번도 낯선 땅에서 혼자였던 적이 없는 사람이다. 도서관은 이미 학교였고, 사랑방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었던 장소였다. 그 푸른 대문 안에, 이제 온기가 없다.

 

2. 산속으로 밀어낸 권리들

안산시 중앙도서관은 대안을 내놓았다. '관산 도서관'으로 서적을 이전하겠다고 했다. 관산 도서관도 원곡동에 속해 있다. 그러나 이주민들이 매일 오가는 다문화 거리와는 다른 세계에 있다. 번화가를 벗어나, 산 쪽으로 치우친 곳. 지도상의 거리가 아니라 심리적 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하루 열두 시간을 일하고 돌아오는 이주민 노동자가 버스를 갈아타고 산기슭의 도서관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대체 누가 진지하게 계산했을까?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다. 안산 중앙도서관 관장은 '상호문화 도서관'으로의 리뉴얼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관산 도서관 담당자들은 그 계획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계획은 계획일뿐, 현장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보다 더 비참한 것은, 수만 권의 모국어책들이 현재, 한구석에 쌓여 있다는 사실이다. 관산 도서관으로 이전할 예산조차 책정되지 않았다. 책들은 그냥 거기 있다. 이주민의 언어로 쓰인 지혜들이, 어둡고 좁은 창고에서, 아무도 없이. 무관심으로 집행될 때 어떤 소멸은 폭력보다 더 모욕적이다. 

타 지자체들이 독자적인 다문화 도서관 건물을 짓고, 이주민 지원을 정책의 전면에 내세우는 지금, '다문화 선도 도시'를 자처해 온 안산시의 이 결정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주민은 도시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이지만, 그들의 언어와 문화는 수납되거나 소거되어도 좋은 부수적인 것이라는 선언. 명시되지 않았을 뿐, 그렇게 읽힌다.


 
안산문화도서관에 있던 수만 권의 모국어책들은 방치된 채로 싸여 있고 책장은 텅 비어있다


폐관된 안산다문화 도서관의 서적들이 이전될 예정인 관산 도서관 


3. 이민청을 유치하겠다는 도시의 모순

안산시는 지금 이민청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주민이 많은 도시라는 조건이 유리하게 작동할 것이라 본다. 그 기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민청이라는 건물을 유치하는 데에는 열성이면서, 이주민들의 일상을 지탱하던 작은 도서관 하나는 예산 효율화를 이유로 없애버리는 이 도시가, 진정으로 이주민을 위한 도시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드웨어에는 투자하고 소프트웨어는 삭제한다. 간판은 걸면서 내용은 비운다. 이것은 안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이주민을 대하는 방식의 축소판이다. 그들의 노동은 필요하지만, 그들의 언어와 감정과 기억은 도시의 설계에서 자꾸 뒷전으로 밀린다.

진정한 상호문화도시는 구호에 있지 않다. 그것은 좁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모국어로 된 책을 펼치는 이주민들의 일상을 행정이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드러난다. 지금 그 책들은 창고에 있다. 그 사실이, 이 도시의 현재 좌표를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다.

공간은 폐쇄되었다. 하지만 질문은 폐쇄되지 않는다. 방치된 서가 아래에서, 우리가 묻고 싶은 것은 여전히 살아 있다. 안산시와 이 사회에 묻는다. 당신이 만들고 싶은 도시는 무엇인가. 경제적 지표 위에 세워진 효율의 도시인가, 아니면 낯선 이의 고단함도 품어낼 수 있는 공동체인가. 둘 다 원한다면, 먼저 그 창고 문을 열어야 한다.




폐관된 다문화 작은 도서관 현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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