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말이 제 질문에 답처럼 들립니다. 에디터 두 번째 글쓰기에서, 질문에 멈춰 섰거든요. “공익 에디터 글쓰기는 평소의 내 글쓰기랑 뭐가 다르지?”에서 “공익과 공익 아닌 것의 경계는 뭐지?”로 갔다가 “내가 이걸 쓰는 게 맞나?”까지. 4.16합창단 이야기라서 더 어려운가 봅니다. 제가 별 존재감은 없지만 4.16합창단원이라고 밝히기로 했습니다. “수고했어 오늘도” 노래의 힘에 기대어 글을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46, S12, A15, T8, B7” 이건 무슨 암호일까요? 3월 24일(월) 저녁 7:30-10:00, 4.16합창단의 정기연습 기록입니다. 안산에 있는 4.16가족협의회 강당에서, 소프라노12, 알토15, 테너8, 베이스7, 지휘자, 반주자, 영상 담당 그리고 사회복지사, 참여자가 46명이란 뜻이죠. 한쪽 벽면 가득 250명의 ‘별이 된 아이들’ 사진이 노란 걸개로 걸린 컨테이너 강당 연습실입니다.
4.16합창단은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떠나보낸 유가족과 생존한 아이들의 가족 그리고 시민 단원으로 구성된 합창단입니다. 2014년 12월 작은 노래모임을 시작할 때, “자식 잃고 뭐가 좋다고 노래하냐”던 분들이 11년 차 합창단이 되었습니다. 3월 말 현재 통산 456회 공연으로.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고 알리며, 사회적 참사와 아픔이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정기연습 시간은 매주 월요일 저녁입니다.
합창 연습은 ‘먹방’ 후에 시작합니다. 준비된 저녁밥은 김밥과 라면이지만, 오늘은 단원의 모친상 답례떡, 신입단원이 쏜 곱창 순대볶음과 어묵 그리고 준우 맘의 쌀 과자 등이 더해집니다. 박미리 지휘자가 연습 시작을 알리네요.
“맛있게 드셨죠? 떡 두 봉지씩 챙기신 거죠? 하나만 드시면 안 된대요.”
키득키득 누군가는 떡 한 봉지 더 챙겨 오고, 지휘자는 덧붙입니다.
“오늘 연습으로 4회 공연이 이어지는 거 아시죠? 대구 공연 주최 측 요청곡이 <돌덩이>인데 아직 신청 인원이 좀... 계속 더 힘 모아 주세요. 그리고 공연 때 원하는 신입단원은 악보 들고 하셔도 된다고 다시 말씀드려요.”
첫 곡은 <수고했어 오늘도>입니다. 세월호 참사 11주기를 맞는 유가족들과 시민들을 따뜻하게 토닥이는 노래입니다. 이어서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기쁨에게>, <포카레카레아나>, <돌덩이>, <조율>을 부릅니다.
416합창단 공연 모습 (출처: 416합창단)
<별 기억식>
3월 26일: 독학으로 배운 피아노로 교회에서 거의 모든 예배 때 반주를 한, 음악 심리치료사가 꿈인 양온유(2반)
3월 28일:새로운 것을 배우는 걸 좋아하고 마술사가 되고 싶은 김용진(4반)/ 책임감이 강하고 친구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치즈케이크를 좋아하는 구태민(6반)/ 기타도 잘 치고 손재주가 좋아 프라모델도 능숙하게 조립하고, 자동차 공학박사를 꿈꾸는 안주현(8반)
3월 29일: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모든 것이었던 외동딸, 웃으면 입술 끝에 주름이 생겨서 별명이 '주름'인 김주희(10반)
3월 31일:"음악은 소울이 가장 중요하지!"라며 언제나 음악과 함께하는 '츤데레' 강승묵(4반)
4월 2일:성당에 갈 때나 시장을 볼 때, 언제 어디서나 엄마랑 다니고 무엇이든 엄마와 함께하는 엄마의 동반자 '반자' 권지혜(10반)
4월 3일:섬세하고 다정하면서도 듬직한 성품으로 엄마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는 아들, 자동차 디자이너가 꿈인 정휘범(4반)/ 직장 다니는 엄마를 늘 걱정하고 위로하는 아들, 작가, 만화가, 기타리스트, 천문학자 등 꿈이 많은 이준우(7반)
4월 4일: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행복을 주는 아들, 부모님이 하시는 음식점에서 모든 음식의 간을 도맡아 볼 정도라 별명이 ‘간쟁이’인 강혁(4반)
4월 5일:엄마와 걸음걸이까지 닮은 일 번 친구, ‘태권 소년’, ‘단원구 장동건’ 조봉석(8반)
4월 6일:잔소리 할 일 없이 키운 ‘실거운(슬거운)딸’, 단 한 번도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는 딸, 간호사가 되는 것이 꿈인 권민경(9반)
연습 1부와 2부 사이엔 중간 휴식이 있고 ‘별 기억식’이 있습니다. 다음 월요일에 연습이 없으니 3월 24일~4월 6일 사이에 생일이 든 아이들의 이름을 알토 뿅뿅이 하나하나 호명합니다. “3월 26일입니다. 독학으로 배운 피아노로 교회에서 거의 모든 예배 때 반주를 한, 음악 심리치료사가 꿈인 2반 양온유”에서 시작해 “9반 권민경”까지. 지휘 없이 피아노 반주와 함께 ‘잊지 않을게’를 부를 때 오늘도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납니다.
출처: 4.16연대, 4.16재단
416합창단 두 번째 앨범 기획공연 사진 (출처: 416합창단)
길 위의 합창단
5년 전 제가 4.16합창단에 처음 들어온 그날도 ‘잊지 않을게’를 불렀습니다. 별이 된 아이들 이름을 부를 때, 부모님과 인사할 때, 목소리가 자꾸 막히고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그런 목으로 계속 노래하는 신기한 합창단이었습니다.
3월 26일(수) 3시 안산마음건강센터 개소식 장소는 햇빛 부신 마당입니다. 합창단은 2시 현장 리허설 후 대기실에서 오색 스카프를 두르고 또 연습합니다. 수없이 부르고 월요일에 연습했지만 오늘은 29명(S5, A11, T4, B7)이 호흡을 맞춥니다. “수고했어 오늘도”와 “기쁨에게”로 4.16합창단은 마음을 전합니다. 지난 10년간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과 안산 지역사회의 치유를 위해 수고한 안산마음건강센터와 거기 모인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공연 후 합창단은 서둘러 자리를 뜹니다. 저녁 6시 30분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 공간에서 4.16기억문화제를 합니다. 리허설 시간 5시 30분까지 차로 전철로, 속속 모여든 단원은 낮 공연보다 많은 37명입니다. 초연곡인 ‘포카레카레아나Pocarecareana’, ‘기쁨에게’ 그리고 ‘돌덩이’를 잘 불렀습니다. 여기서 3월 31일(월)엔 스텔라데이지호 8주기 추모로 또 모일 겁니다.
4월의 5개 공연 중 저는 대구 ‘여정남 열사 50주기 대동한마당’에 마음이 쓰입니다. 장거리에다 3월 말 현재 갈 수 있는 단원이 22명인데 알토가 저를 포함해 4명입니다. 평소 가장 수가 많은 알토가 무슨 일일까요? 행사 주최 측에서 요청한 곡이 <돌덩이>. 길고 에너지 넘치는, 알토가 특히 어려운 곡입니다. 잘하는 동료들에게 기대어 가기엔 4명이 너무 적지 않나요? 후엔 9일(수) 연세대 채플, 12일(토) 11주기 서울집중문화제, 그리고 16일(수)에 안산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에서 노래합니다. 멀리 실상사로 가 ‘선지식과 함께 걷는 순례길’에서 노래하면 4월이 갑니다. ‘길 위의 합창단’입니다.
출처: 에디터 직접촬영
출처: 416합창단
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오색 스카프를 두르고
“10년 동안 길 위에서 노래를 불렀다. 아픈 사람들과 손잡고 걸어가는 동행이었고 모난 세상을 향한 우리의 외침이었다.”
작년 10월 4.16합창단 두 번째 앨범 기획공연 ‘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노래할게’를 여는 프롤로그였습니다. ‘길 위의 합창단’의 목에 5색 스카프가 처음 등장한 무대였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됐지만 아픈 마음과 연대해서 온 세상을 향해 노래하는 합창단이니까요. 재난 참사가 반복되니 마음 아픈 사람들이 늘어나고 리본 색깔도 늘어나는 현실. 연대와 동행의 5색 스카프를 제작해 두르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노랑,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의 주황,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초록, 이태원 참사의 보라 그리고 아리셀 참사의 하늘색. 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노래할게, 오색 스카프를 두르고.
416합창단 두 번째 앨범 기획공연 [너의 볕에 닿을 때까지 노래할게] / 출처: 416합창단 유튜브
두 번째 앨범은 4.16합창단을 위한 창작곡을 포함한 CD와 음원으로 나와 있습니다. 창작곡 <너>는 태어나던 날부터 18살 수학여행 가는 날까지의 아이 인생을 노래합니다. 봄날, 두 개의 세계, 푸르다고 말하지 마세요, 종이연, 노래여 우리의 삶이여, 그날처럼 오늘도, 돌덩이,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그리움을 담은 노래 사이에 부모님들의 육성 편지 “너-하늘로 가는 우체통”도 담겨있습니다. 첫 앨범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2020)은 4.16합창단 6년의 이야기는 책으로, 노래는 CD로, 북 CD란 거 아시죠?
“예은아, '노래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요.' 1학년 일기장 속 너의 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너의 마음을 담아서 외칠게, 노래할게, 바꿔낼게, 멈추지 않을게. 그리고 안산으로 꼭 데려올게. 사랑해, 예은아.”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3반 유예은 양의 엄마, 소프라노 단원 박은희 님의 육성 편지입니다. 한 매체 인터뷰에서 예은 엄마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못한 말을 하려고,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걸어온 길 같아요. 그래서 애들이 원하는 게 뭘까 늘 궁리하면서 살았어요. 세월호는 한국 사회에 선명한 선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과 다른 세상을 만드는 기준점이 되어야 해요.”
“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오색 스카프를 두르고 노래하는 합창단입니다.
출처: 4.16합창단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제게 세월호 참사는 “침몰하는 배에서 먼저 탈출하는 선장과 선원들”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으로 들립니다. 그해에 우리 집 셋째가 세월호 아이들과 학교만 다른 고2였거든요. 그 봄에 저는 몸이 심하게 아팠고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가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병이 도져서 죽을 거 같았습니다.
몸이 더 아플까 봐, 살고 싶어서 세월호 기억활동에 참여하다 4.16합창단에 들어왔습니다. 짝꿍과 함께 활동하며 늙어가자 했습니다. 노래는 존재감 없지만, 가만히 있진 말자, 곁에 있는 건 할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합창단 활동 5년이 됐지만 여전히 노래는 자신이 없어서 동료들에게 묻어가는 알토입니다. 참사 11주기를 맞으며, “수고했어 오늘도”가 특별하게 와닿습니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싸워온 분들의 실망을 알기 때문입니다. 땀과 눈물 어린 얼굴들이 떠오르고 별이 된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수고했어 오늘도, 노래합니다.
작게 열어둔 문틈 사이로/ 슬픔보다 더 큰 외로움이 다가와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빛이 있다고 분명 있다고/ 믿었던 길마저 흐릿해져 점점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수고했어 수고했어 오늘도/
라라 라 라 라 라 라 라라 라....
(‘수고했어, 오늘도’ - 옥상달빛 노래 가사 중)
'4.16생명안전공원' 함께 하는 노래! [다함께 만들어요] 뮤직비디오 / 출처: 4.16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