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함께 걷는 우리, 더 나은 세상을 그리다"
지난 7월 2일 목요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에 위치한 한양대학교 에리카 컨벤션 3층에서 「2026 경기도공익활동가대회」가 열렸습니다. 오후 1시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이어진 이번 행사는 도내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공익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활동을 소개하고, 그동안의 고민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뜻깊은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행사는 사전부스 체험, 특강, 공연, 평등문화약속문 낭독, 그리고 대화테이블 순서로 진행되었으며, 저는 6기 에디터로서 이 모든 과정을 직접 참여하고 기록했습니다.

1. 다양한 체험이 가득했던 사전부스
행사장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여러 단체가 마련한 사전부스였습니다. 각 단체별로 부스를 운영하며 자신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참가자들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두고 있었습니다. 행사 시작 전부터 많은 활동가들이 부스를 돌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각 단체의 활동을 짧은 시간 안에 접할 수 있었던 사전부스는, 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활동가들 간의 자연스러운 교류의 장이 되어주었습니다.





2. 한양대 에리카 학생 발표 - "공익잇다"
한양대학교 에리카 학생들이 인공지능기초 수업의 IC-PBL 프로젝트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홍보 업무에 AI를 접목한 결과물을 발표했습니다. 대표 서비스 '공익잇다'는 관심 분야나 지역을 입력하면 맞춤형 공익활동을 추천해주는 AI 챗봇입니다. 이 외에도 조별로 콘텐츠 자동생성, 다국어 확산, 숏폼 제작 자동화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포스터로 소개했습니다.

본격적인 식은 사회자의 평등문화약속문 소개로 시작되었습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평등한 관계 속에서 활동해나가겠다는 다짐을 나누는 순서였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오늘 하루 행사가 단순한 프로그램의 나열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식은 사회자의 평등문화약속문 소개로 시작되었습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평등한 관계 속에서 활동해나가겠다는 다짐을 나누는 순서였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오늘 하루 행사가 단순한 프로그램의 나열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4. 지구인수어합창단의 감동적인 무대
강연에 이어 지구인수어합창단의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이주민과 농인 가족이 함께 어우러진 이 합창단은 무대 위에서 수어와 노래를 함께 담아내며 깊은 울림을 전해주었습니다. 여러 수어 경연대회에서 수상 경력을 쌓아온 만큼, 무대 구성과 완성도 모두 남달랐고,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배경을 가진 이들이 하나의 무대에서 마음을 모으는 모습은 이번 행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5. 존중과 연결이 있는 대화테이블
이어서 대화테이블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원형으로 둘러앉아 서클(둘러앉기)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었으며, 진행요원(가디언)의 안내에 따라 짧은 발언으로 돌아가며 이야기를 공유했습니다. 각 테이블에는 대화를 이끄는 질문지가 마련되어 있었고, 참가자들은 경청을 바탕으로 안전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습니다.



6. 나의 테이블 이야기 - "활동가 번아웃과 소진"
저는 이날 여러 대화테이블 중 '활동가 번아웃과 소진'이라는 주제의 테이블에 참여했습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활동가분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겪은 번아웃 경험을 솔직하게 나누어주셨습니다. 기력 저하, 갑작스러운 의욕 상승 후 찾아오는 급격한 침체, 과도한 피로감, 수면 과다 등 다양한 형태의 소진 증상이 공유되었고, 그 원인으로는 과중한 업무량과 행정·회계·공모사업 등 여러 역할을 동시에 맡아야 하는 구조, 낮은 임금과 고용 불안정성 등이 공통적으로 언급되었습니다.

각자의 대응 방법도 다양했습니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거나, 사진 촬영과 같은 취미 활동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거나, 일부러 외부 활동을 만들어 숨 돌릴 틈을 마련하거나, 퇴근 후에는 집에서 일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소진은 스스로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동료들의 세심한 관심과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는 공감대였습니다.
대화 말미에는 조직 차원의 개선 방안도 함께 논의되었습니다. 인원 확충을 통한 업무 부담 완화,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연월차 문화 조성, 개인 상담 비용 지원 확대, 주 4일제 도입(인원 보충 및 급여 유지·인상 포함) 등 실질적인 제안들이 나왔습니다. 특히 한 참가자는 자신이 속한 기관에서 활동가 재충전 사업의 명칭을 바꾸고 개인 상담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례를 소개하며, 이러한 지원이 실제로 활동가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저 혼자만 겪는 어려움이 아니라, 많은 활동가들이 비슷한 고민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것 자체가 소진을 예방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다양한 체험이 있는 사전부스부터 시작해 강연, 공연, 그리고 가장 의미 있었던 대화테이블까지,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알찬 시간이었기에 참여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공익활동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 덕분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씩 더 따뜻하고, 더 살기 좋게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 역시 이번 대회를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보탬이 되는 활동가로 거듭나야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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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0※「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료를 찾을 때 어떠한 사이트를 참고하시나요? 많은 경로들이 있지만 특히 00백과와 00위키 같은 사이트들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로는 접근성이 좋다는 것과 여러 사람들이 수정하면서 최신화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를 통해 사용자는 보다 빠르고 다양하게 정보를 생산하고 취득할 수 있는 효과를 보게 됩니다. 따라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도 ‘공익’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끔 공유 자산을 제작하는 이른바, ‘공익위키’사업을 진행하게 됐는데요. 그 체험 현장인 2026 경기북부 공익위키 콘텐츠 제작 회의에 다녀왔습니다!
우선 ‘공익위키’ 사업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볼까요?
해당 활동은 사회적 협동조합 ‘빠띠’의 협력과 함께 2024년부터 진행됐으며 올해부터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사업으로 이관되며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사업 명칭 그대로 ‘공익’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지역이나 사회의 이슈들을 다루고 여러 공익활동을 기록하며 아카이브한 공익위키를 만들어왔는데요. 이를 통해 시민의 시각으로 지역의 변화를 기록하며 공익활동의 연속성을 다음 세대에게도 넘겨주는 ‘지역 활동 기록의 민주화’, 과거를 저장하는 것만이 아닌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인 ‘활동의 연속성’, 누구나 자료를 수정하고 발전시키는 공공 기록 플랫폼인 ‘공유 자산으로서의 정보’의 가치를 창출해왔습니다.
올해 센터가 마련한 목표는 공익위키를 통해 공익활동가의 활동을 기록하고 공익활동을 지식화해 이를 시민과 공유하며 공익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는데요. 예로 ‘경기 공익위키’라는 공간에 시민사회단체들이 경기 지역 기반 공익활동과 이슈를 중심으로 한 기록을 게재하고 경기시민사회 온라인 자료관 ‘톺’과도 연동해 누구나 공익 정보를 읽고 가공할 수 있는 시도를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링크: 공익위키 https://gongikwiki.mixon.io/pages/1033
이와 관련한 2026 경기북부 공익위키 콘텐츠 제작 회의에서는 경기 공익위키에 게재될 예정인 위키 콘텐츠를 실습을 통해 제작해 보기로 하였는데요. 참석하신 경기중북부환경운동연합, 세움공동체, 의정부풀뿌리시민회의 등의 여러 시민 단체별로 모둠을 이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기본적으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 검증된 자료 출처 사용, 독자 연구의 금지 등의 작성 규칙을 만든 후 공유 문서를 기반으로 공익위키 초안 한 편을 작성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나아가 이를 통해 공동작업을 기반으로 작성한 경험과 정보를 모아 위키 문서를 만들어 공익위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의정부 지역의 시민사회운동 발자취를 분야별로 정리하는 것을 달성하는 오늘의 목표도 설정하였습니다.

우선 공익 위키의 주제를 정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예로 모둠별 각 시민 단체의 역사와 변천사 또는 지역 공익 이슈 현장 기록 중 하나를 선택하기로 하였는데요. 대부분의 모둠들이 단체의 역사 및 변천사가 내포된 단체 소개 주제를 선택하였습니다. 구체적인 제목들의 예시를 살펴보자면 꿈이룸교육공동체는 “지구하자! 기후 위기 프로젝트”, 경기중북부환경운동연합은 “청년이 만들어가는 환경운동”, 세움공동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사회”로 설정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주제에 따른 상세 내용을 어떻게 설정할지 고민해 봤는데요. 참고 기준으로 단체별 개요→배경→활동 내용→성과라는 큰 틀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작성하게 된다면 어떠한 하위 항목들이 포함될 수 있는지 예시를 들어주었는데요. 개요에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는가 등의 요약본이 들어갈 수 있고 배경에는 활동 시작의 이유와 지역 상황 등을 서술하는 방식을 추천하였습니다. 활동 내용과 성과에는 각각 활동 날짜·장소·참여 인원 등의 구체적인 사항이 명시되고 성과를 통해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가 포함되는 것을 추천하였습니다.

이를 참고하여 모둠별로 나름의 방식이 들어간 내용을 전개하여 기록하였는데요. 예로 개요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세움공동체는 장애인이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고 지역에서 어울려 사람답게 사는 ‘자립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이라고 밝혔고 경기북부시민자치연구소는 경기북부지역 시민사회 발전과 시민자치를 위한 정책을 연구하고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곳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의정부풀뿌리시민회의는 의정부 지역에 거주하거나 사업장이 있는 사람들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치 실현과 시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지향할 수 있게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서술하였습니다.
배경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미군반환공여지 시민참여위원회는 수십년간 국가 안보를 위해 희생해온 미군 기지 지역의 희생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생태·평화·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공익적 개발’을 지향한다고 소개했습니다. 꿈이룸교육공동체는 전 세계적 기후 위기 현상에 대한 다각적 탐구를 통한 실천적 해결 역량을 함양한다는 내용을 담았고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은 대한민국의 압축적 성장에 따른 사회적 병폐의 원인을 밝히고 미래를 향한 대안을 제시한다는 정보를 기록하였습니다.

활동 내용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경기중북부환경운동연합은 제56회 지구의 날 행사 부스 진행 및 플로깅 등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소개하였습니다. 미군반환공여지 시민참여위원회는 CRC 시민 공론장· CRC 봉사단· 하나로 합창단 등의 활동을 정리하였고 경기북부시민자치연구소는 지역 현안 대응 사업의 예시로 “의정부시 예산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 “주민자치는 어디쯤 와있나?” 주민자치회 긴급 점검 토론회, 다만세의정부(다시 만나는 세상 의정부) 사업 등의 내용을 상세하게 명시하였습니다.
성과 혹은 기대효과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꿈이룸교육공동체는 학생 주도 기후행동 실천 확산, 시민 참여 기반 확장성 확보, 학교·마을 연계 교육 모델 구축 등의 성과를 기록하였습니다. 의정부풀뿌리시민회의는 공익 위키의 역할에도 집중해 시민들이 지역 변화 과정을 기록하면서 ‘지역의 주인’이라는 효능감이 고취되며 지역 민주주의를 강화한다는 관점에서 의의를 두었습니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은 지워진 목소리를 수면 위로 올려 공동의 기억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의미에 주목하였습니다.
추가로 자료 관련 사진과 링크를 삽입하고 출처와 참고 자료를 기재한 뒤 재량껏 다른 글에 댓글도 달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실습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이후 일정으로 지속적인 콘텐츠 보완과 소통을 하기로 하였고 사회적 협동조합 ‘빠띠’와도 공익 위키의 방향성에 대해 의논해 보기로 하였는데요. 다가오는 7월 워크숍에서는 추가 토의를 하며 ‘공익 기록’ 방식에 대해 고민해 보고 관련 강의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도 공익위키를 진행할 계획이니 향후 생성될 양질의 공공 기록물들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아는 게 힘이다.”라는 말이 더욱 와닿는 것은 갈수록 복잡한 세상에서 정보가 하나의 권력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시간 아카이빙을 하며 자료를 취하면 취할수록 마음은 편해졌지만 막상 나에게 오기까지의 경로에 대한 감사함은 놓치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이번 만남은 기록보다 공익위키 속 단어 하나하나에 들어가는 수고와 헌신적인 마음가짐의 가치에 더욱 무게중심을 두었습니다. 십시일반으로 모인 이러한 무형 자산들이 지역을 넘어 우리 사회의 공익활동을 열린 지식 창고로 만들어 누구나 공익과 어우러질 수 있는 세상을 형성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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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92025 시민기록 컨퍼런스에 참석하신 5기 에디터 옐로구피님이 작성하셨습니다.
실타래, 그리고 이야기의 시작.
‘실타래처럼 얽혔다’라는 말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됩니다. 하지만 홀로 떨어져 있는 실이 홀로 있지 않고 하나로 뭉쳐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실타래가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실 한 올, 한 올은 손끝을 지나며 방향을 틀고 때로는 얽히면서 다시 이어지죠. 이 실은 한 줄의 기록일 수도, 사람일 수도, 오래된 사건일 수도, 오래된 사건 혹은 잊힌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2025 시민기록 컨퍼런스의 현장은 그런 실들에 주목하고 이들이 얽혀 만든 실타래에 주목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2025 시민기록 컨퍼런스가 진행된 경기상상캠퍼스 전경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2025년 11월 8일 토요일 경기상상캠퍼스 멀티벙커로 시민기록자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올해 시민기록 컨퍼런스의 부제는 ‘깁다, 엮다, 잣다, 잇다’였습니다. 기록 속에 담긴 마음을 꿰매고, 함께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엮고, 진동하는 사유를 잣고, 각자의 결을 맞대어서 잇는 이 모든 과정의 끝에 있는 기록에 관해 다 함께 사유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날의 컨퍼런스는 실타래를 풀고 다시 묶는 여정이었는데요. 그 매듭을 꿰는 바늘이자 매개는 바로 ‘공익(公益)’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익이란 단어는, 사전 속에서는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만 남고 말죠. 그리고 그 정의만으로는 흩어진 것을 잇고, 찢어진 것을 기워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는 그 정의의 바깥에서, 몸으로 공익을 잇는 사람들, ‘시민기록자(에디터)’들이 모였습니다!
우리 에디터들은 세월호의 노래를 기록하고, 만세길의 발걸음을 담으며, 영케어러의 하루를 글로 남기고, 이주민의 언어를 번역하며, 기후 정의 행진과 시민 햇빛 발전소, 전세사기 대응까지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하였습니다. 에디터들이 포착한 현실은 때로는 처절했고 어떤 때는 생동감이 넘쳤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1기부터 5기까지의 에디터들이 남겨온 기록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는데요. 그간 에디터들이 모아온 세상의 목소리를 엮고 이어서, 세상과 유리되지 않은 숨 쉬는 기록을 만들기 위하여, 오늘의 자리가 마련된 것이랍니다.
마음을 깁다 - 전시 체험 부스
경기상상캠퍼스는 완연한 가을이었습니다. 더운 여름에 고통받으며 가을을 그리워하던 때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인 가을 풍경이 펼쳐져 있었는데요. 상상캠퍼스의 잔디밭과 건물 사이에 참가자들이 시민기록자들의 활동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와 참여형 부스가 운영되었습니다. 먼저 기록자들의 실제 필체를 따라 원고 속 문장을 직접 써볼 수 있는 ‘필사 체험’과 타자기로 엽서를 직접 완성할 수 있는 ‘타자기 엽서 체험’ 부스가 운영되었습니다. 타자기는 최근에는 만나보기 힘든 물건이다 보니 ‘타닥타닥’ 타자기 소리를 직접 들어보면서 가을의 낭만과 함께 신기한 기분을 느껴보려는 참가자들이 많았습니다.
타자기 엽서 체험을 해보고 있는 참가자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왼),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오)
귀로 듣는 기록물 전시 체험 중인 참가자들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왼),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오)
한쪽에서는 헤드셋을 착용하고 자리에 앉아 기사를 귀로 감상하고 있는 참가자들이 보였습니다. 원고를 글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에디터들의 음성으로 느껴볼 수 있는 기록 전시 방식이었습니다. ‘심지’ 에디터를 비롯한 3인의 에디터가 자신의 기록물을 직접 녹음하여 귀로 들을 수 있는 전시를 마련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신기한 체험은 ‘챗봇과 대화하면서 글쓰기’였는데요. 최근에는 AI가 아주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죠. 그래서 AI와 나누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나만의 기록집이 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준비되었습니다. AI가 어떻게 기록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체험해 볼 수 있어서 아주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실뜨기 놀이 체험 부스 현장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다음으로는 추억의 ‘실뜨기 놀이’ 부스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추억을 되새겨보는 참가자들도, 어른들에게 실뜨기 놀이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도 즐겁게 부스 체험을 이어 나갔습니다.
‘단어 교환소(우드 버닝)’ 체험 현장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단어 교환소(우드 버닝)’ 부스에서는 나무 조각 위에 불로 그림을 새기며 ‘기록의 흔적’을 남기는 체험이 진행되었습니다. 뜨거운 인두펜의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나무에서 나는 향은 마치 한 해의 기억을 조심스레 새기는 의식 같았답니다. 그리고 이 부스의 이름이 단어 교환소인 이유! 그건 바로 내가 새긴 글귀를 내가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앞선 사람이 새긴 글귀를 내가 가져가고 나의 기록은 뒷사람을 위해 남겨두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록을 내가 이어받아 보관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오늘의 주제이기도 한 ‘잇다’를 직접 체험하는 것만 같았답니다.
닉네임 상상도 부스 체험 현장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마지막 부스는 ‘닉네임 상상도(아날로그 감성 그림 그리기)’였습니다. 에디터들의 개성 있는 닉네임을 부스 참가자들이 그림으로 그리는 활동이었습니다. 하나의 단어도 누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결과물을 낸다는 사실이 정말로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부스 체험을 즐긴 참가자들은 본격적으로 1부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시간은 원고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함께 토크쇼를 진행하는 시간이었답니다.
생각을 잣다 - 1부: 원고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공연이 있는 토크쇼!
개회사를 하고 있는 유명화 센터장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유명화 센터장님의 개회사가 본격적인 행사의 출발을 알렸습니다.
“저희가 여기서 행사를 하자고 결정하면서 에디터들이 이 공간을 어떻게 기획하고 꾸밀지가 참 기대됐습니다. 그런데 어제 미리 와서 보니, 저희가 5기까지 진행되어 오는 과정, 노력, 역량의 성장이 다 담겨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타래라는 말을 들으면 각자 실타래라는 말에서 느끼는 느낌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실타래를 깁고 엮고, 잣고 잇기도 하니까요. 이 네 가지 표현들이 그동안 우리 에디터들이 해온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은 글을 쓴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부분이에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활동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 매우 멋진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익활동지원센터가 공익 활동의 다양한 부분들을 기록으로 남기면 그 기록은 현장을 남기는 의미뿐만 아니라, 공익활동 활성화의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 행사는 5기 에디터들이 8월부터 기획을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낸 것이 여기에 이렇게 구현이 잘 되어 기쁩니다. 이런 공간에서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성장했는지 또 앞으로는 어떻게 성장할지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 주시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푸른 잎이었던 에디터들이 이제 단풍나무의 빛깔처럼 각자만의 색깔로 피어나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오늘 많은 얘기들을 나누고 또 하나의 역사와 기록을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구인 수어 합창단의 공연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센터장님의 개회사 뒤에는 이번 컨퍼런스를 더욱 뭉클하게 만든 특별한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바로 지구인 수어 합창단의 공연이었는데요. 이들은 수어로 노래하는 팀으로, 언어의 경계를 넘어 마음으로 소통하는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이 무대의 주인공들은 5기 에디터 윤 작가님의 글, '손으로 노래하는 지구인들' 속 주인공들이기도 했습니다. 이 공연은 노래의 새로운 정의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몸과 눈으로 부르는 노래를 감상하니 이날의 자리가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공연을 마친 후, 본격적인 토크쇼가 시작되었습니다. 토크쇼의 주인공이 될 기록 속 주인공들은 5기 에디터 두 분(윤 작가님, 꿀벌님)과 그 기록 속의 주인공 두 분(전연 단장님, 얼쑤 활동가님)이었습니다.
1부 토크쇼 진행 현장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지구인 수어 합창단의 단장인 전연 님은 중국에서 오셔서 안산에서 다문화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에디터 ‘윤작가’와의 인연을 통해 글의 주인공이 된 전연 단장님은 한국에 처음 오셨을 때의 어려움과 수어를 배우게 된 계기를 솔직하게 들려주셨답니다.
“한국어도 못하는 외국인들이 왜 한국 수어를 배우는지 많이 질문해 주십니다. 처음에 제가 한국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어요. 문화도, 언어도 달라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그때 안산시 외국인 지원본부에 한국어를 배우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었어요. 그때 우연히 안산 작은 다문화 도서관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도서관에 중국어책이 있더라고요. 그 책장을 보았을 때, 처음으로 이 땅에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도서관의 여러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고 수어 수업을 들은 것은 아주 우연이었어요. 그런데 그 수어는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연 단장님이 겪었던 이국땅에서의 어려움과 외로움은 새로운 따뜻함을 찾아 나서는 원동력이 되었고 결국 수어가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기회가 되어 주었다고 하는데요.
“저는 수어를 배우기 전에 청각 장애인분들이 저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수업을 하면서 서로가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이주 여성들은 한국말이 서툴러서 마음에 있는 말을 다 전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는데, 이런 것이 청각 장애인분들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말하지 않아도 눈빛과 손짓으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수어를 통해 배웠습니다. 같은 언어를 통해야만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더라고요. 언어를 진심으로 느낀 그 마음의 울림이야말로 진짜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장님이 생각하는 소통에 대해 들으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소통과 협력이 아니라 표면적인 관계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기록이 기록 대상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대상과의 진정한 소통이 필수적인데요. 진정한 소통의 본질이 비단 말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단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토크쇼의 다른 주인공인 얼쑤 활동가님은 안산 YWCA, 환경운동연합 등에서 44년째 활동하고 계시는 '찐찐 안산 시민'이십니다. 꿀벌 에디터님은 4.16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활동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얼쑤 활동가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워낙 광폭으로 활동하는 시민 활동가라서 어디 가나 계신 분"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토크쇼를 통해서 얼쑤님의 헌신적인 공익 활동 방식에 관해서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자그마치 26개의 단체를 후원하면서도 나중에 자신의 수입이 줄어들 것에 대비하여 8개 단체에 평생 회비를 납부했다는 얼쑤 활동가의 행보는 최선을 다해 공익을 위해 헌신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게 만들었습니다.
함께 토크쇼에 참여한 꿀벌 에디터님의 이야기 중에서는 글쓰기를 ‘침묵에 길들여진 여성’으로서 자신을 깨는 하나의 방식임을 역설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자기 해소 과정으로서의 글쓰기에 관해 들으면서 많은 참가자가 기록과 기록자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금 곱씹게 되었답니다.
서사를 엮다 - 2부: 실타래를 만들며 소감을 공유하기
2부에서는 '지금, 우리 이야기'라는 주제로 모든 참석자가 함께하는 '실타래 엮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사회자가 던진 실타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에게 실타래를 굴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물리적인 실타래가 얽히면서 참가자들의 이야기와 마음도 함께 연결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행사의 주요 키워드인 ‘실타래’를 통해 행사의 의미를 살려낸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실타래를 옮겨 가면서 참가자들에게 기록에 관한 생각을 들어보고 있는 의미 있는 현장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실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기록에 대한 참가자들의 이야기가 쌓여갔습니다. 유명화 센터장님은 이 자리에서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나누셨습니다. 과거 권위적이고 평가 중심으로 여겨졌던 '기록'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이 많았지만, 에디터들의 활동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셨습니다. 센터장님은 이러한 '말랑말랑한' 기록의 힘이 공익 활동의 영역을 더 넓힐 수 있음을 강조하며, 자신도 다시금 기록 활동에 열정을 쏟아보겠다는 다짐을 전하셨습니다. 전시 기획에 참여하신 한 분은 에디터들의 글을 접한 소감을 나누며 깊은 통찰을 주셨습니다. 그는 에디터들을 '삶으로서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며, 이들의 '진실 말하기'가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어떤 때는 물러나거나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도 그것들이 어느 지점에는 나선형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믿는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시민 기록 활동이 당장 눈에 띄지 않더라도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나선형의 진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인식하고 있다면 잠깐의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힘이 될 수 있겠죠.
또한, 기록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이야기들도 이어졌습니다. 한 에디터는 구술 기록 작업을 하며 제대로 된 기록이 부재한 상황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례를 본 경험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활자 권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기록이라는 게 글을 쓸 수 있고 글로 남길 수 있는 사람들의 권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옛날 기지촌 할머니나 이런 분들을 보면 자기 얘기를 남길 수가 없었죠. 국가가 남긴 기록은 그분들의 역사를 대신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그런데 이런 기록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동두천에는 쌓아 두었던 공공 기록물이 홍수로 인해 소실되어 1950년대 자료는 없고 이런 일도 있었어요. 이런 일들을 보면서 누구의 기록을 어떻게 남길까, 또 이런 기록을 어떻게 잘 보존할까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기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 이것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힘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잊곤 하는데 이 말을 들으면서 우리가 지금 맡고 있는 기록이 먼 미래에는 참 절실한 자료가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록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이기도 하고 기록자인 내가 사라져도 세상에서 오래 살아남을 테니까요.
사람을 잇다.
이번 제5회 시민 기록 컨퍼런스 ‘실타래’는 단순한 기록의 공유를 넘어, 우리 시대의 진정한 공익 활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선사한 자리였습니다. 물리적인 실타래가 얽히고설키며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듯, 각자의 자리에서 써 내려간 시민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서로를 만나고 엮이며 거대한 ‘연대의 실타래’를 완성했습니다. 이는 컨퍼런스의 이름처럼 각자의 이야기가 “결국은 하나의 큰 흐름이 된다는 뜻”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실타래'라는 이름처럼, 우리의 삶은 단순히 각자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감싸안고 엮어지는 하나의 공동 운명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에디터와 그 삶의 주인공이 만나 서로의 존재를 빛나게 했듯이, 기록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사소한 발걸음이 이웃의 삶과 사회 변화의 큰 그림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민 기록이 가진 근원적인 힘입니다.
이제 컨퍼런스는 막을 내렸지만, 우리 안의 기록자 정신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기록은 우리가 더 이상 타인의 역사를 읽는 방관자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진실한 삶을 기록하여 타인에게 마음의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존재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다짐입니다. 필사에서 AI에 이르는 기록의 진화처럼, 우리의 소통 방식 역시 단순한 정보의 전달을 넘어선 깊은 공감의 영역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 오늘도 단단한 발걸음을 내딛겠지요.
경기도 공익활동 지원센터가 시작하고 이어가고 있는 기록의 역사는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큰 뿌듯함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각자가 잡고 있는 기록의 끈을 놓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계속 엮어 나간다면, 우리는 분명 더 따뜻하고 의미 있는 공동체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겠죠? 손으로 노래하고, 삶으로서의 작업을 이어가는 모든 기록자들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하며, 끝없이 이어질 다음 페이지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남기는 퍼포먼스!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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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7실타래, 그리고 이야기의 시작.
‘실타래처럼 얽혔다’라는 말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됩니다. 하지만 홀
로 떨어져 있는 실이 홀로 있지 않고 하나로 뭉쳐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실
타래가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실 한 올, 한 올은 손끝을 지나며 방향을 틀고 때
로는 얽히면서 다시 이어지죠. 이 실은 한 줄의 기록일 수도, 사람일 수도, 오래
된 사건일 수도, 오래된 사건 혹은 잊힌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2025 시민기록
컨퍼런스의 현장은 그런 실들에 주목하고 이들이 얽혀 만든 실타래에 주목해 보
는 시간이었습니다.
[1-1~1-2. 2025 시민기록 컨퍼런스가 진행된 경기상상캠퍼스 전경]
2025년 11월 8일 토요일 경기상상캠퍼스 멀티벙커로 시민기록자들이 속속들이 모
여들었습니다. 올해 시민기록 컨퍼런스의 부제는 ‘깁다, 엮다, 잣다, 잇다’였습니다. 기록 속에 담긴 마음을 꿰매고, 함께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엮고, 진동하는 사유
를 잣고, 각자의 결을 맞대어서 잇는 이 모든 과정의 끝에 있는 기록에 관해 다
함께 사유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날의 컨퍼런스는 실타
래를 풀고 다시 묶는 여정이었는데요. 그 매듭을 꿰는 바늘이자 매개는 바로 ‘공
익(公益)’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익이란 단어는, 사전 속에서는 ‘사회 전체의 이익’ 으로만 남고 말죠. 그리고 그 정의만으로는 흩어진 것을 잇고, 찢어진 것을 기워
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는 그 정의의 바깥에서, 몸으로 공익을 잇는
사람들, ‘시민기록자(에디터)’들이 모였습니다!
우리 에디터들은 세월호의 노래를 기록하고, 만세길의 발걸음을 담으며, 영케어러
의 하루를 글로 남기고, 이주민의 언어를 번역하며, 기후 정의 행진과 시민 햇빛
발전소, 전세사기 대응까지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하였습니다. 에디터들이 포착한 현실은 때로는 처절했고 어떤 때는 생
동감이 넘쳤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1기부터 5기까지의 에디터들이 남겨온 기록들
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는데요. 그간 에디터들이 모아온 세상의 목소리를 엮고
- 2 -
이어서, 세상과 유리되지 않은 숨 쉬는 기록을 만들기 위하여, 오늘의 자리가 마
련된 것이랍니다. 마음을 깊다 - 전시 체험 부스
경기상상캠퍼스는 완연한 가을이었습니다. 더운 여름에 고통받으며 가을을 그리워
하던 때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인 가을 풍경이 펼쳐져 있었는데요. 상상
캠퍼스의 잔디밭과 건물 사이에 참가자들이 시민기록자들의 활동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와 참여형 부스가 운영되었습니다. 먼저 기록자들의
실제 필체를 따라 원고 속 문장을 직접 써볼 수 있는 ‘필사 체험’과 타자기로 엽
서를 직접 완성할 수 있는 ‘타자기 엽서 체험’ 부스가 운영되었습니다. 타자기는
최근에는 만나보기 힘든 물건이다 보니 ‘타닥타닥’ 타자기 소리를 직접 들어보면
서 가을의 낭만과 함께 신기한 기분을 느껴보려는 참가자들이 많았습니다.
[2-1. 타자기 엽서 체험을 해보고 있는 참가자]
[2-2~2-3. 귀로 듣는 기록물 전시 체험 중인 참가자들]
한쪽에서는 헤드셋을 착용하고 자리에 앉아 기사를 귀로 감상하고 있는 참가자들
이 보였습니다. 원고를 글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에디터들의 음성으로 느껴볼 수
있는 기록 전시 방식이었습니다. ‘심지’ 에디터를 비롯한 3인의 에디터가 자신의
기록물을 직접 녹음하여 귀로 들을 수 있는 전시를 마련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신기한 체험은 ‘챗봇과 대화하면서 글쓰기’였는데요. 최근에는 AI가 아주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죠. 그래서 AI와 나누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나만의 기록집
이 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준비되었습니다. AI가 어떻게 기록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체험해 볼 수 있어서 아주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3. 실뜨기 놀이 체험 부스 현장]
다음으로는 추억의 ‘실뜨기 놀이’ 부스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추억을 되새겨보는
참가자들도, 어른들에게 실뜨기 놀이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도 즐겁게 부스 체험을
이어 나갔습니다.
- 3 -
[4-1~4-3. ‘단어 교환소(우드 버닝)’ 체험 현장]
‘단어 교환소(우드 버닝)’ 부스에서는 나무 조각 위에 불로 그림을 새기며 ‘기록의
흔적’을 남기는 체험이 진행되었습니다. 뜨거운 인두펜의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와 나무에서 나는 향은 마치 한 해의 기억을 조심스레 새기는 의식 같았답니다. 그리고 이 부스의 이름이 단어 교환소인 이유! 그건 바로 내가 새긴 글귀를 내가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앞선 사람이 새긴 글귀를 내가 가져가고 나의 기록은 뒷사
람을 위해 남겨두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록을 내가
이어받아 보관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오늘의 주제이기도 한 ‘잇다’를 직접 체험하
는 것만 같았답니다.
[5-1~5-2. 닉네임 상상도 부스 체험 현장]
마지막 부스는 ‘닉네임 상상도(아날로그 감성 그림그리기)’였습니다. 에디터들의
개성 있는 닉네임을 부스 참가자들이 그림으로 그리는 활동이었습니다. 하나의 단
어도 누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결과물을 낸다는 사실이
정말로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부스 체험을 즐긴 참가자들은 본격적으로 1부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시간은
원고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함께 토크쇼를 진행하는 시간이었답니다. 생각을 잣다 - 1부: 원고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공연이 있는 토크쇼!
[6-1. 개회사를 하고 있는 유명화 센터장]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유명화 센터장님의 개회사가 본격적인 행사의 출발을
알렸습니다.
“저희가 여기서 행사를 하자고 결정하면서 에디터들이 이 공간을 어떻게 기획하
고 꾸밀지가 참 기대됐습니다. 그런데 어제 미리 와서 보니, 저희가 5기까지 진행
되어 오는 과정, 노력, 역량의 성장이 다 담겨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실타래라는 말을 들으면 각자 실타래라는 말에서 느끼는 느낌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실타래를 깁고 엮고, 잣고 잇기도 하니까요. 이 네 가지 표현들이
- 4 -
그동안 우리 에디터들이 해온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은 글을 쓴다
는 것이 매우 어려운 부분이에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활동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 매우 멋진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익활동지원센터가 공익 활동
의 다양한 부분들을 기록으로 남기면 그 기록은 현장을 남기는 의미뿐만 아니라, 공익활동 활성화의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 행사는 5기 에디터들이 8월부터 기획을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낸 것이 여기에 이렇게 구현이 잘 되어 기쁩
니다. 이런 공간에서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성장했는지 또 앞으로는 어떻게 성장
할지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 주시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
면 좋겠습니다. 푸른 단풍이었던 에디터들이 이제 단풍나무의 빛깔처럼 각자만의 색깔로 피어나
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오늘 많은 얘기들을 나누고 또 하나의 역사와 기록을 남
겼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6-2~6-3. 지구인 수어 합창단의 공연]
센터장님의 개회사 뒤에는 이번 컨퍼런스를 더욱 뭉클하게 만든 특별한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바로 지구인 수어 합창단의 공연이었는데요. 이들은 수어로 노래하
는 팀으로, 언어의 경계를 넘어 마음으로 소통하는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였습니
다. 이 무대의 주인공들은 5기 에디터 윤 작가님의 글, '손으로 노래하는 지구인
들' 속 주인공들이기도 했습니다. 이 공연은 노래의 새로운 정의를 깨닫게 해주었
습니다. 몸과 눈으로 부르는 노래를 감상하니 이날의 자리가 더욱 따뜻하게 느껴
졌습니다. 공연을 마친 후, 본격적인 토크쇼가 시작되었습니다. 토크쇼의 주인공이
될 기록 속 주인공들은 5기 에디터 두 분(윤 작가님, 꿀벌님)과 그 기록 속의 주
인공 두 분(전연 단장님, 얼쑤 활동가님)이었습니다.
[7-1~7-2. 1부 토크쇼 진행 현장]
지구인 수어 합창단의 단장인 전연님은 중국에서 오셔서 안산에서 다문화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에디터 ‘윤작가’와의 인연을 통해 글의 주인공이 된 전연 단장님은
한국에 처음 오셨을 때의 어려움과 수어를 배우게 된 계기를 솔직하게 들려주셨
답니다.
- 5 -
“한국어도 못하는 외국인들이 왜 한국 수어를 배우는지 많이 질문해주십니다. 처
음에 제가 한국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어요. 문화도, 언어도 달라서 어떻
게 표현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그때 안산시 외국인 지원본부에 한국어를 배우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었어요. 그때 우연히
안산 작은 다문화 도서관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도서관에 중국어책이 있더
라고요. 그 책장을 보았을 때, 처음으로 이 땅에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느낌
을 받았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도서관의 여러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고 수어
수업을 들은 것은 아주 우연이었어요. 그런데 그 수어는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
니다.”
전연 단장님이 겪었던 이국땅에서의 어려움과 외로움은 새로운 따뜻함을 찾아 나
서는 원동력이 되었고 결국 수어가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기회가 되어 주었다고 하는데요.
“저는 수어를 배우기 전에 청각 장애인분들이 저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수업을 하면서 서로가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
았습니다. 특히 이주 여성들은 한국말이 서툴러서 마음에 있는 말을 다 전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는데, 이런 것이 청각 장애인분들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말
하지 않아도 눈빛과 손짓으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수어를 통해 배웠습니
다. 같은 언어를 통해야만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더라고요. 언어를
진심으로 느낀 그 마음의 울림이야말로 진짜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장님이 생각하는 소통에 대해서 들으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소통
과 협력이 아니라 표면적인 관계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
니다. 사실, 기록이 기록 대상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대상과의 진정
한 소통이 필수적인데요. 진정한 소통의 본질이 비단 말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단
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토크쇼의 다른 주인공인 얼쑤 활동가님은 안산 YWCA, 환경운동연합 등에서 44
년째 활동하고 계시는 '찐찐 안산 시민'이십니다. 꿀벌 에디터님은 4.16 세월호 참
사를 계기로 활동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얼쑤 활동가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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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광폭으로 활동하는 시민 활동가라서 어디 가나 계신 분"이라고 소개하셨습
니다. 토크쇼를 통해서 얼쑤님의 헌신적인 공익 활동 방식에 관해서도 설명해 주
셨습니다. 자그마치 26개의 단체를 후원하면서도 나중에 자신의 수입이 줄어들 것
에 대비하여 8개 단체에 평생 회비를 납부했다는 얼쑤 활동가의 행보는 최선을
다해 공익을 위해 헌신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게 만들었습니다. 함께 토크쇼에 참여한 꿀벌 에디터님의 이야기 중에서는 글쓰기를 ‘침묵에 길들여
진 여성’으로서 자신을 깨는 하나의 방식임을 역설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
다. 자기 해소 과정으로서의 글쓰기에 관해 들으면서 많은 참가자가 기록과 기록
자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금 곱씹게 되었답니다. 서사를 엮다 - 2부: 실타래를 만들며 소감을 공유하기
2부에서는 '지금, 우리 이야기'라는 주제로 모든 참석자가 함께하는 '실타래 엮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사회자가 던진 실타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에게 실타래를 굴려주는 방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물리적인 실타래가 얽히면서 참가자들의 이야기와 마음도
함께 연결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행사의 주요 키워드인 ‘실타래’를 통해 행사의 의
미를 살려낸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8-1~8-4. 실타래를 옮겨 가면서 참가자들에게 기록에 관한 생각을 들어보고 있
는 의미 있는 현장]
실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기록에 대한 참가자들의 이야기가 쌓여갔습니다. 유
명화 센터장님은 이 자리에서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나누셨습니다. 과거 권위적이고 평가받았던 '기록'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이 많았지만, 에디터들의
활동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셨습니다. 센터장님은 이러한 '말랑말랑한' 기록
의 힘이 공익 활동의 영역을 더 넓힐 수 있음을 강조하며, 자신도 다시금 기록
활동에 열정을 쏟아보겠다는 다짐을 전하셨습니다. 전시 기획에 참여하신 한 분은
에디터들의 글을 접한 소감을 나누며 깊은 통찰을 주셨습니다. 그는 에디터들을 ' 삶으로서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며, 이들의 '진실 말하기'가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어떤 때는 물러나거나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
도 그것들이 어느 지점에는 나선형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믿는다는 희망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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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도 했습니다. 시민 기록 활동이 당장 눈에 띄지 않더라도 세상을 조금씩 변화
시키는 나선형의 진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인식하고 있다면 잠깐의 어려움을 이
겨나가는 힘이 될 수 있겠죠. 또한, 기록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이야기들도 이어졌습니다. 한 에디터는 구술 기
록 작업을 하며 제대로 된 기록이 부재한 상황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례를 본 경
험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활자 권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기록이라는 게 글을 쓸 수 있고 글로 남길 수
있는 사람들의 권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옛날 기지촌 할머니나 이런 분
들을 보면 자기 얘기를 남길 수가 없었죠. 국가가 남긴 기록은 그분들의 역사를
대신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그런데 이런 기록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된 지 얼마 되
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동두천에는 쌓아 두었던 공공 기록물이 홍수로 인해 소실
되어 1950년대 자료는 없고 이런 일도 있었어요. 이런 일들을 보면서 누구의 기
록을 어떻게 남길까, 또 이런 기록을 어떻게 잘 보존할까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기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 이것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누군가에게는 절
실한 힘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잊곤 하는데 이 말을 들으면서 우리가 지금 맡고
있는 기록이 먼 미래에는 참 절실한 자료가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록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이기도 하고 기록자
인 내가 사라져도 세상에서 오래 살아남을 테니까요. 사람을 잇다. 이번 제5회 시민 기록 컨퍼런스 ‘실타래’는 단순한 기록의 공유를 넘어, 우리 시
대의 진정한 공익 활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선사한 자리였습니다. 물리적인 실타래가 얽히고설키며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듯, 각자의 자리에
서 써 내려간 시민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서로를 만나고 엮이며 거대한 ‘연대의 실
타래’를 완성했습니다. 이는 컨퍼런스의 이름처럼 각자의 이야기가 “결국은 하나
의 큰 흐름이 된다는 뜻”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실타래'라는 이름처럼, 우리의 삶은 단순히 각자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감싸안고 엮어지는 하나의 공동 운명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에디터와 그 삶의 주
인공이 만나 서로의 존재를 빛나게 했듯이, 기록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홀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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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사소한 발걸음이 이웃의 삶과 사회 변화의 큰 그림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민 기록이 가진 근원
적인 힘입니다. 이제 컨퍼런스는 막을 내렸지만, 우리 안의 기록자 정신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
니다. 기록은 우리가 더 이상 타인의 역사를 읽는 방관자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진실한 삶을 기록하여 타인에게 마음의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존재로 다시 태어
날 것이라는 다짐입니다. 필사에서 AI에 이르는 기록의 진화처럼, 우리의 소통 방
식 역시 단순한 정보의 전달을 넘어선 깊은 공감의 영역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
오늘도 단단한 발걸음을 내딛겠지요. 경기도 공익활동 지원센터가 시작하고 이어가고 있는 기록의 역사는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큰 뿌듯함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각자가 잡고 있는 기록의
끈을 놓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계속 엮어 나간다면, 우리는
분명 더 따뜻하고 의미 있는 공동체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겠죠? 손으로
노래하고, 삶으로서의 작업을 이어가는 모든 기록자들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
하며, 끝없이 이어질 다음 페이지를 기대합니다.
[9.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남기는 퍼포먼스!]
조회수 106
2025-11-16민주주의, 기후위기, 불평등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어. 존엄하게, 평등하게, 모두를 위해서
세상을 바꿔나가자
기후정의를 외치자
불평등을 끝내자
우리 삶을 바꾸자
기후정의로 광장을 잇자
‘기후정의송’의 노랫말 일부입니다. 추석 연휴에 무료로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추적〉을 다시 보다가 이 노랫말이 훅 떠올랐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
17년 추적기인 영화 속 녹조 강물에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존재들이 함께 보였거
든요. 불평등세상은 서로 연결돼 신음하고 있었어요. 존엄하게, 평등하게, 모두를
위해서, 세상을 바꾸자. 그래, “기후정의로 광장을 잇자”, 9월 27일 동십자각 앞, 기후정의 행진 스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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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잇자, 모두를 위한 기후정의
네팔어, 따갈로그어, 러시아어, 몽골어, 미얀마어, 방글라데시어, 베트남어, 스리랑
카어, 아랍어, 영어, 우즈벡어, 인도네시아어, 일본어, 중국어-간체, 중국어-번체, 캄보디아어, 태국어. 9.27기후정의 행진 포스터와 6대 요구안이 이렇게 많은 다국어로 만들어졌다는군
요. 기후 위기와 민주주의 불평등이 연결된 문제이듯 이 땅에 사는 사람들도 언어
와 국적을 넘어 서로 연결돼 있으니까요. 9월 27일(토) 12시 반, 동십자각 앞에서
부터 시청 앞까지 대로는 다양한 부스와 사전 대회 장소로 열렸습니다. 청년, 노
동자, 농민이 기후정의에 목소리를 보탰고, 650단체 3만여 명이 함께 행진했습니
다. 생수 제공은 없고 수어 통역은 있었습니다. 시민들의 손엔 개인 텀블러와 헌 상자
종이로 만든 손피켓이 들려 있었고요. 416합창단을 비롯한 8개 시민합창단이 연
합으로 합창했습니다. 12.3 내란을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내던 광장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와 미얀마의 민중가요를 번안한 노래 “우리의 하루”였습니다. 미얀마와
대한민국 시민들을 이어주는 노래죠. 음악에 맞춰 행진하던 시민들은 사이렌이 울
릴 때 종각역에서 ‘다이인(die-in)’으로 드러누웠습니다. 지구 위 모든 존재가 고
통받는다는 의미의 퍼포먼스였습니다. 고통을 가중시키는 ‘올해의 기후정의 걸림돌’이 선정되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원자력안전위원회, 국토교통부, 오세훈 서울시장, 몬산토 바이엘, 이스라엘 정부
등입니다. 탄소중립기본계획 후퇴, 탈화석연료 전환 지연, AI·반도체 산업 확대, 기후재난 불평등 심화 등의 이유였습니다. 2025년은 2035년 국가 탄소배출 감축
목표(NDC) 설정의 '기후 골든타임'이지만,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후퇴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는 기후정의에 걸림돌이 되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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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은 기후정의다, 부스 스케치
“동물 해방 없이 기후정의 없다.”
“No! 어업 No! 육식, 물살이도 살고 싶어요.”
“No! 축산업, 동물은 우리의 친구.”
“Go Vegan, 우리를 먹지 말아요.”
“육식=기후위기, 전체 온실가스의 51%. STOP!”
927 기후정의 행진 참여 단체 중 ‘기후위기 비건행동’이 내는 목소리입니다. “비건
(Vegan)- 건강, 동물, 지구를 구한다!”는 외침이 간판 현수막이네요. 포스터마다
물살이 그림에, 돼지도 보이고 닭도 있습니다. 그 뒤 탁자 위엔 “비건은 사랑입니
다”라는 홍보물이 놓여 있고 활동가들이 미소 띤 얼굴로 기념품도 나눠줍니다. 조
금 더 살펴볼까요?
비건(Vegan, Veganism)이란 유동적인 채식주의도 있지만 완전한 채식주의를 추
구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환경이나 동물권 등 신념을 동기로 육식을 거부하며
동물 유래 성분이 쓰인 제품 사용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동물을 착취하
지도 잡아먹지도 말자, 채식은 건강이고 경제요 생태요 자비요 평화라고 봅니다. 마음을 바꾸고 음식도 삶도 바꾸는 “대안적인 삶”이죠. 생명을 죽이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단백질 때문에 동물을 죽인다고요? 비건은 채식이 단백질과 비
타민 미네랄 섬유소의 보고라고 합니다. 육식과 축산업은 탄소배출과 지구온난화, 물부족 식량부족의 주범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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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은 사랑입니다” 홍보물엔 비건인들의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올림픽 육상 4
관왕 칼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운동선수로 성공하는 데 육류 단백질이
불필요함을 깨달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비건 채식을 시작한 그해에 육상선
수로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티벳 인권운동가 달라이 라마는 조용하
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삶은 인간만큼이나 말없는 생명체들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사람이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두려워하며, 죽음이 아닌 생명을 원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그러하다.”
저도 고백해 봅니다. 올해 10년 차 비건이거든요. 기후정의 때문에 시작한 건 아
니고, 11년 전 암수술이 계기가 됐어요. 단식 등 자연치유를 하다가 채식이 좋아
진 경우였습니다. 동물성 식품을 끊고 채식만 하니 제 몸이 점점 가볍고 건강해졌
습니다. 평생 가족력 B형간염 보유자였는데 항체가 생겼습니다. 감기몸살을 달고
살던 몸이 지난 10년간 피곤을 모르는, 감기도 안 걸리는 몸이 되었고요. 기후위
기 대안적 삶으로 비건만한 게 있을까요?
기후정의 광장에서 제 마음이 자꾸만 동물들에게 향했겠죠? 동물 머리 탈을 쓰고
동물 인형의 몸으로 행진하는 사람들. 사람들 사이에서 행진하는 노란 도롱뇽. 커
다란 검은 머리의 곰과 말도 여러 명 있고 부리가 길고 다리가 긴 새들도 멋졌습
니다. 광장 곳곳에서 만나는 돼지 소 닭 물살이를 그림도 계속 말을 걸더군요. 기
후정의 평등 약속문에도 동물들이 나왔으니까요.
“발언과 대화에서 반말과 비속어를 쓰지 않고. 여성·성소수자·장애인·청소년·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와 비인간동물을 차별하거나 대상화하지 않습니다.”
기후정의란 결국 비인간동물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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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민주주의, 결국 정치다
9월 24일 제80차 유엔총회에서 한 이재명 대통령의 기조연설을 기억합니다. “내
란의 어둠에 맞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뤄낸 빛의 혁명”을 언급하며 민주주의 회
복과 국제 평화와 공존을 강조했습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통해 에너지 대전환도 언급되었죠. “올해 안으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를 제출하겠다”라며 2040년 탈석탄을 공약했지만 기후 당사자들의 참여와 논의가
배제되었다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민주주의와 평화 없이 기후위기 해결은 불가능하다.”
광장의 목소리를 한마디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국제적 기준에 못 미치는 재생에너
지 전환, 민영화로 이어질 가능성, 정의로운 공공재생에너지 전환, 이 모든 건 정
치를 빼곤 이야기할 수 없겠죠. 모든 불평등이 연결돼 있다고 기후송이 아무리 노
래한들, 정치가 일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일까요. 정치하는 엄마들이 내건 현수막
은 그래서 더 따끔하게 정곡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학생들도 벼락치기 안하는데 정부가 돼서 지금 뭐하는 거야! 빵점.”
하늘에 펄럭이는 깃발도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기후위기는 인권침해다!”
3주기를 맞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도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기후위기가 심해질수록 재난참사도 늘어납니다.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광장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삼성반도체 희생자들과 팔레스타인 긴급행동도 말했
습니다. “반노동 반환경 재벌특혜 반도체 법 OUT. 노동권과 기후정의 보장하라!”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 기후정의 없다!”
기후정의는 결국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책임질 정치의 일입니다. UN 연설이 말잔치가 안 되도록 정부가 기후시민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길 바
란다. 기후정의 행진에서 나온 기후시민의 6대 요구안을 들어보자. 1. 탈핵·탈화석연료, 공공 재생에너지 확대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실행하라. 2. 성장과 대기업 위한 반도체·AI 산업 육성 재검토, 생태계 파괴 사업 중단하라. 3. 모든 생명의 존엄과 기본권 보장, 사회 공공성 강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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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농업·농민의 지속가능성 보장, 먹거리 기본권 수립하라
5. 전쟁과 학살 종식, 방위산업 육성과 무기 수출 중단하라
6. 농업·농민의 지속가능성 보장, 먹거리 기본권 수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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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927기후정의 행진 광장은 삶에 이어져 있었습니다. 행진 대열에서 만난 검은 망
토를 입고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이동하던 거대한 인형을 잊
을 수 없더군요.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나르는 신화 속 뱃사공 카론입니다. 기후
재난과 생태 파괴로 죽어간 존재들과 사회적 참사로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퍼포먼
스였죠. 여성환경연대 간판 현수막의 질문도 잊히지 않더군요. “그런데 누가 기후
정책을 결정하나요?” 행진 트럭에 붙은 현수막은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이주
민, 모두의 존엄을 보장하라!”라고 외치고 있었고요.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탄소 감축 목표를 세웠다면서도 원전을 늘리고 공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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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는 손 놓고 있는 정부. 기업은 막대한 이윤을 챙기고 책임은 사회에 떠
넘기니, 피해는 노동자, 농민, 서민에게 전가되는 현실. 신공항 건설, 대규모 개발, 군비 확충에 몰두하는 현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4대강의 거짓말은 과거의 일
이기만 할까요?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6만여 명에 달한다죠. 미
국과 NATO가 국방비를 계속 늘리니 온실가스 배출량은 더 증가하겠죠. 이재명
정부는 방위산업을 세계 4위로 성장시키고 무기 수출을 확대하려네요. 무기 수출
은 생명에 가해잖아요. 신공항 건설은 군사력 확대 아닌가요? 반전과 군축이 기후
정의인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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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밤 한강 불꽃축제라니
기후정의송을 부른 몇 시간 후였습니다. “민주주의, 기후위기, 불평등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어.”라는 노래가 무색하게도 그 밤에 서울 하늘에 불꽃축제가 있었습
니다. 종로구 혜화동에 있던 저는 설마 전쟁이 났나 했어요. 대포 소리 총소리 같
은 굉음이 계속 들렸거든요. 60대인 제가 이 정도 공포로 느낀다면, 어린아이들과
노약자들은 어쩌죠? 고요히 잠자던 동물들은요? 아기들이 깨서 자지러지게 울고
잠들지 못하고 보채지 않았을까요?
누구 좋으라고 하는 불꽃축제일까요? 기후정의와 멀어도 너무 멀리 먼 길 아닌가
요? 불꽃용 화약을 제조하고 팔아 이득을 얻는 사람들 말고 괴로운 이들은 어쩌
죠? 인터넷에 “불꽃축제 폐지 서명과 요구안”이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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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요구합니다. 동물과 자연, 그리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
는 축제를 만들어 주세요. 생태와 건강을 고려한 지속 가능한 축제로 전환해 주세
요. 지자체와 기업이 책임 있는 문화 조성을 위해, 불꽃놀이를 포함한 축제에 대
한 환경영향평가와 실태조사를 의무화하는 조례를 제정해 주세요. 주요 행사에서
불꽃놀이를 전면 중단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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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0“얼쑤~~” 민요나 판소리를 부를 때 자주 쓰는 추임새다. 흥을 돋우고 소리꾼을
응원하며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마법의 소리다. 안산에는 한 20년 “얼쑤!”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광폭 시민 활동가 얼쑤 김미숙의 일문일답 추임새를 들어 보
자. “각자도생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로, 얼쑤!”

후원하고 활동하는 단체 목록을 세어보니 26개더라. 조금만 소개해 달라. 안산 YWCA의 평생회원이자 현재 대표다. 활동비를 받는 자리가 아닌 비상근 활
동가다. 4.16안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안산평화연대 공동대표, 안산 기후위기 비상
행동 공동대표기도 하다. 오라는 데 많고, 가야 할 데도 많다. 사랑하는 4.16합창
단 소프라노 단원, 시화호생명지킴이와 안산환경운동연합 활동가이자 강사이며
(사)안산공동체미디어 단원FM에서 환경 방송 ‘얼쑤의 얼쓰Earth’를 진행하고 있
다. 안산·시흥 지역 노동자들의 생활안정과 권익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사)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제회 ‘좋은이웃’의 생활안정팀에서 오래 활동하고 있다. 올해는 캄보
디아 노동자들과 만나 잔치 음식도 해 먹고 지지하는 만남을 6번 진행하는데, 8
월에는 여행도 간다. 양계장에서 일하는 한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는 한 달에 휴일
이 두 번뿐이다. 이동의 자유도 이웃과의 소통도 없다. 외부에서 병원균이 옮겨
와 닭이 조류독감에 감염될 수 있다는 이유다. 모임에서 뭐가 좋았냐 물으니, 올
때 전철도 타고 나무도 보고 자동차도 보고, 사람들과 얘기한 거라고 하더라. 단체 상관없이 제일 신경 쓰는 건 탈핵이다. YWCA가 2년마다 집중 과제를 선정
하는데 10년 넘게 ‘탈핵’이 있다. 우리 아이 초등학교 6학년 때 환경운동연합, 안
산YWCA 등이 버스 한 대로 월성 원전 이별 퍼포먼스에 갔다.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는 정말 무서웠다. 핵에너지가 안전하다 경제적이다 그러지만, 터지면 끝이다. 탈핵과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운동이 중요하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에서는
작년에 발전 수익으로 사회기여를 1억 원 했다. 발전 수익을 낼 수 있고,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 귀한 사례다. 여성단체 YWCA(이하 Y)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아이를 낳고 나니 환경이 망가진 게 보이더라. 내가 배워서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무언가 기여하고 싶었다. 당시에 돌도 안 된 아기의 사교육을 위해 선생님을
집으로 부르는 주변 사람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와 직접
재미있게 놀고 싶어 아이를 안고 도서관, 서점, 미술관을 다녔다. 아이 교육에
대해 좀 더 배우고 싶어 찾아간 게 YWC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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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권유받은 게 NIE(Newspaper In Education) 지도사였다. 당시 N.I.E.가 붐
이었다. 신문을 활용한 교육 자료로 아이들의 생각을 키우는 활동이다. 심화 과정
수료 요건이 60시간인가 80인가 봉사 후 보고서 제출이었다. 5살 딸아이를 데리
고 일주일에 한 번씩 N.I.E. 교육 봉사를 했다. 2년, 3년 계속하니 ‘검증된 강사’
소리 들으며 강의 요청을 받았다. 새로 문을 연 지역아동센터나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작은 도서관에서 봉사 수업을 하다 보니 입소문이 나고 점점 강사 경험이
쌓였다. ‘시화호생명지킴이’라는 단체도 찾아가 교육을 받고 지역에 봉사하게 되었
다. 지금 내 주업이 강사다. 독서 강사, N.I.E. 강사, 환경 강사 등으로 영역이 넓
어졌다. 아이 잘 키우려던 엄마가 광폭 시민 활동가가 된 어떤 전환점이 있었나?

4.16세월호 참사였다. 단체라고는 YWCA, YMCA, 시화호생명 지킴이, 환경운동연합 정도만 알다가 4.16 참사를 계기로 수많은 시민과 연결되었다. 안산에 연대하는 작은 시민단체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이상하게 여겼던 이 사회가 그래도 여기까지 굴러온 건 이분들 덕분이겠구나, 알겠더라. 시간이 되면 달려가 힘을 보태고, 행동하고 후원하게 됐다. 내 삶이
‘각자도생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로’ 전환했다. 우리 집이 단원고등학교 근처 빌라 101호다. 302호가 단원고 2학년 4반 고
박수현 군의 집이었다. 2002년 3월에 이사 와서 제일 처음 사귄 이웃이 수현이
엄마 영옥 언니였다. 언니는 “배추전 먹으러 와.” “떡볶이 했으니 올라와.”
하고많은 날 우리를 불러주거나 음식을 갖다주었다. “밥이 똑 떨어졌어, 밥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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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줄 수 있어?” “언니 달걀 좀 주세요.” 이게 우리 일상이었다. 수현이가 고2
때 우리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외동인 딸에게 수현이는 가장 가까운
오빠요, 놀이 상대였다. 수현이는 연년생인 누나의 가방을 들어주고, 밤이 늦으면
누나 마중을 나가는 동생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2014년 4월 16일, 집에서 컴퓨터로 N.I.E. 수업
자료를 만들다 인터넷 속보를 본 거다. 세월호와 단원고, 이걸 보는 순간
수학여행 간 수현이 생각이 나 바로 영옥 언니한테 전화했다. “걱정하지 마, 다
구했대. 그래도 다 젖었을 테니 깨끗한 옷 챙겨서 지금 형부랑 내려가는 중이야.”
그랬다. “너무 다행”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놀란 가슴에 배는 고픈데 먹고 싶은
게 없어 밥을 물에 말아 후루룩 먹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애들을 못 구했다는
거다. 세월호가 내 이웃의 일이자 내 일로 연루되었군요.

그날 아이가 학교에서 오길래 “수현이 오빠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대. 우리 같이
학교로 가볼까? 사람들이 모여 소식을 듣는 것 같아.” 말하며 단원고에 갔다. 4월
16일, 무사귀환을 간절히 바랐던 첫 번째 촛불 기도회로 4.16활동이 시작됐다. 멈
출 수가 없었다. 영옥 언니가 진상 규명이라든가 서명 활동을 계속하니 나는 뭐라
도 언니를 도와야 했고 돕고 싶었다. 참사 4일째, 남편과 아이랑 셋이 진도 체육
관에 갔다. 영옥 언니와 은희 언니와 유가족이 된 지인들을 보았다. 두 언니는 당
시 내 인생의 롤모델이었다. 울고 소리지르고 쓰러지고, 민간 잠수사가 어떻고, 왜
찍어, 카메라 뺏고, 막 드잡이하고, 그걸 다 보았다. 사복 경찰이 진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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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그분들만큼 큰 아픔, 슬픔에 빠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그 슬픔을 같이 겪었다. 너무 끔찍한 세월이었다. 영옥 언니가 진도에 계시면서, “뉴스에서 나오는 거 저거 다 거짓말이야”라며 진실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뜨거운 폰을 얼마나 눌러댔던지 오른쪽 집게손가락이 아파서 아직도 잘 못 쓴다.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거의 20년 가까이 지낸 지인하고 의절하는 일도 있었다. 참사 후 며칠 안 돼서 노란 리본 이미지를 카카오톡 프사로 쓰는데, 저작권에 걸
린다고 1인당 몇백만 원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 딸 학교 보내기 전에 노란
리본으로 머리를 묶어주고 뒤통수를 찍어서 그걸 지금까지 프사로 쓰고 있다. 못
바꾸겠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세월호 참사는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군요?

그렇다. 나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언니와 함께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다. 대학을 왜 가는지 몰랐다. 그런데 내가 대학에 갔더라면 더 일찍
진보적인 사상을 접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을 텐데, 모르고 살아 너무
안타깝더라. 나는 부당한 일을 보면 조용히 떠나는 식으로 살았다. 일만 하다 결
혼했고, 아이 낳고서야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는 거리를 둘 수 없는
내 일이었다. 우리 애는 수현이네 집에서 먹고 놀기 좋아했다. 오빠 놀아 줘, 하
면 수현이는 뭐 하고 놀까, 물어보며 다리에 미끄럼을 태워주는 오빠였다. 수현이
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유치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커서 오빠랑 결혼한다고 했다. 수현이가 부모님에게 무언가 사 달라고 하면 “넌 1층 장모님한테 가서 얘기해라”
놀림받을 정도였다. 그런 수현이가 우리 곁을 떠나 너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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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가 아이한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거 같은데 괜찮은지?
아이가 한동안 수현이를 입 밖에 못 내더라. 딸은 모태신앙이었는데 참사 후 하나
님은 없다 했다. 수현이 오빠가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거다. 중학교 2
학년 때 학교 수업 중에 자꾸 다른 책을 읽었다. 왜 그러느냐니까 “내일 죽을지도
모르잖아. 지금 안 읽으면 모르고 죽잖아.” 그랬다. 수현이 오빠를 며칠 만에 찾았
냐길래 일주일쯤이라 했더니, 배 안에서 하루만 살고 죽었으면 좋겠다더라. 살아
있었으면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럽고 무섭고 춥고 보고 싶고 그랬겠냐고. 딸아이는
여주로 고등학교를 갔는데, 택시 기사가 어디서 왔냐길래 안산이라 했더니, ‘세월
호!’ 이러면서 말 잘 듣는 애들은 가만히 있어서 다 죽고, 말 안 듣는 애들만 살
았다 하더란다. 애가 그 기사를 죽이고 싶었다고, 막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싶다
그랬다. 트라우마가 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애도하고 있더라.
시민 활동가로서 바쁜 중에 4.16 합창단 활동도 한다.

4.16합창단이 생길 때부터 마음이 갔는데 몇 년 전에야 결합했다. 친언니
‘만주벌판’도 단원이다. 좋은 목소리와 건강한 정신을 주신 엄마도 합창단 행사로
자주 본다. 아픔이 있는 곳에서 노래로 폭넓게 연대하니 참 좋다. 최근 전태일
의료 센터 건립을 위해 공연했다. 효순이 미선이 저금통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우리 딸이 재작년엔가 “엄마 생일 선물 뭐 해줄까?” 하다가 “엄마는 물건은 안
좋아하니까 엄마 이름으로 기부해 줄게.” 그러더니 효순이 미선이 평화공원 짓는
데 딸이 5만 원을 기부해 준 적 있다.
현재 가장 마음 쓰는 활동이나 고민도 좀 나누자.

아무래도 YWCA 회장이라는 중책이 마음 쓰인다. 지금 회원 증모 기간인데, 이걸
내가 잘 못한다. 대신 남편이 평생회원에 가입하게 했고, 내년에 우리 딸 돈 벌면
평생회원 가입시키려 한다. Y는 기독청년여성회(Young Women Christian
Association)다. 나도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 신앙이 왜 필요한가, 계속 질문한다. 내가 나가는 교회와 한국 기독교회들이 정말 예수를 따르는지, 세
상의 빛과 소금인지, 우는 자와 같이 울고 웃을 때 함께 좋아해 주는가, 의심스러
웠다. 남편은 교회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내가 “왜 비판하지 않아?” 그러면 그는
좋은 것만 들려, 부분으로 기분 나빠할 필요 없다는 식이다. 답답함을 느끼지만,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잖나. 나는 일부 교회가 없어져도 된다고 본다. 교회 안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게 아니니까. 헌금도 교회 말고 사회로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인데, 남편은 다르다. 그가 우리 가정의 주 수입을 담당하니 내 뜻대로 할 수
없다. 내 수입은 사회로 12조 13조도 낸다. Y가 있어서 사회 정의나 연대의
갈증이 해소되고 내 신앙을 이어가는 거 같다. YWCA 활동가로서 정체성을 좋아하는군요?
그렇다. 7월 초 Y 신입 직원 교육이 있었다. 작년에 못 해서 올해 교육 대상이
꽤 많았다. 삼성이나 SK에 입사 지원할 때 그 회사에 대해 공부한다. 그런데 모
법인에 대해서는 모르고 오는 사람이 태반이다. 회장으로서 Y 100년 역사와 안산
Y 40년 역사를 강의하며, “YWCA를 알고 나면 내가 참 좋은 기관에서 일하고
있구나, 자부심을 느낄 거예요.”라고 말해 줬다. YWCA가 교회는 아니지만,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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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보다 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목소리와 행동을 계속해야 한다. YWCA 회장으로서 자부심 뿜뿜인데, 어려움은 없는지?
역사 인물 최용신 선생은 안산의 자랑이자 Y의 자랑이다. Y에서 공부하고 농촌
계몽 운동하셨는데, YMCA로 아는 사람들이 있더라. 내가 어느 단체에 가니 안산
YMCA에서 오신 얼쑤라고 소개하더라. ‘YWCA’라고 바로잡곤 한다. 최용신
기념관 관련 기사에도 몇 년에 한 번씩 YMCA라고 나온다. 재작년에도 메일로
항의했다. 시에서 발행한 책자도 스티커로 다 수정하게 한 적 있다. 남성이
디폴트인 사회라 여성단체를 더 드러낼 필요가 있다.
‘회장님’, ‘이사님’ 호칭 보다 ‘얼쑤’가 좋다. 사람들은 ‘얼쑤’ 말고 ‘회장 김미숙’을
쓰라 한다. 공적인 자리에서야 어쩔 수 없지만, 활동가로서는 ‘얼쑤’가 편하다. 지금까지의 내 활동을 보고 대단하다, 기왕이면 학위를 좀 업그레이드해서 더
많이 강의하고 돈도 더 받으라 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러면 지역에서 적은
돈만 줄 수 있는 데서 누가 활동하나.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지.” 더러는, 왜
그렇게 활동이 많냐, 정치할 거냐 한다. 정치하란 말은 10년 전부터 들었지만, 내
대답은 같다. 너무 열심히 하다 병나서 죽을 거라고. Y회장만으로도 ‘거룩한
부담감’이 큰데 더는 아니다. 그때그때 마음 가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위해, 내 할
만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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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9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한 말이다. 5.18민주화운동 이야기인
《소년이 온다》를 쓸 때 그와 함께 한 질문이라 했다. 그 책을 쓰는 동안만의
질문이었을까. 지난 5월 17일(토) 광주의 5.18전야제를 다녀오는 동안 내게도
살아 있는 질문이었다. 과거가 현재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현장을 보
았기 때문이다. 45년 전의 광주가 오늘 대한민국을 구하고 있었다. 총칼이 아
니라 노래와 시로, 춤과 연극으로 연대하는 민주주의 대축제였다. 부끄러운 고백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1980년 5월에 나는 대구에 사는
여고 2학년이었다. 당시 TV 화면에 나오는 광주는 ‘폭도’와 ‘빨갱이’의 도시
였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광주는 두려운 ‘벽’이었다. 독재와 냉전 시대 교육
에 길든 아이가 광주의 진실을 마주하기까지는 20년이 더 걸려야 했다. 제45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로 올해도 광주를 다녀오는 복을 누렸다. 개
인으로서가 아니라 4.16합창단으로서 ‘민주주의 대합창’ 공연에 서는 덕분이
었다. 구묘역 신묘역을 방문하고 5.18민중항쟁기념행사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전야제도 즐길 수 있었다. 올해는 18일 밤까지 1박 2일로 확대 진행된 전야
제를 하루만 보고 돌아온 게 아쉽다. 5.18 민주 광장, 동구 금남로 1~3가 차
없는 거리, 동구 중앙로 일대는 시민 참여 부스 물결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
곡’이 울려 퍼질 때마다 누구라도 목청껏 함께 부르는 축제였다. 다시 만난 소년, 아! 오월이여
17일(토) 오전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추모식부터 소개하고 싶다. 안
산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해 구묘역을 들르고 신묘역에 도착했을 땐 5·18민주
유공자유족회가 주최 주관하는 추모식은 끝나고 있었다. 식전 공연으로 놀이
패와 장애인예술단의 공연이 있었고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에 대한 전통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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례 의식을 마친 전통 한복을 입은 분들을 볼 수 있었다. 2부 순서인 국민의
례로 시작하는 추모식(10시 30분)은 내빈 소개, 추모사, 유가족 대표의 인사
가 있었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헌화와 분향이 있었다. 추모식에서 가장 소개하고 싶은 순서는 ‘다시 만난 소년, 아 오월이여!’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5·18민주화운동 추모시 낭송 퍼포먼스’였다. 광주시낭송협
회 사람들이 5·18 광주 추모시를 모아서 한 편 한 편 낭송하는 공연이었다. 오월 광주를 추모하되 시와 음악으로, 피로 쓴 민중항쟁의 역사가 노래와 시
로 살아나는 시간이었다. 이창병의 ‘망월동에서’ 첫 자락을 보자. “광주 금남로에서/ 이 나라 최후의
거리마다 쓰러진 넋들의 통곡은/ 우리들의 침묵 속에 깊이 가라앉아 있습니
다.” 고정희는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라고 읊었다. 김준태의 ‘오 광주
여! 우리나라 십자가여!’는 광주일보(구 전남일보) 1980년 6월 2일 자 조간 1
면에 실렸던 시다. 계엄 당국의 검열에 기자들이 사표로 저항한 그 시였다. 다시 만난 소년, 아! 오월이여/ 광주시낭송협회/ 추모식에서 낭송된 시 맛보기
길을 가다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허공중에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 것이다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꽃 떼들도 나비들도 흩어져버린 광주여. 호남이여.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너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도시
아아, 광주여 광주여 광주여 광주여.
‘민족의 십자가여’ /김준태
동호야!
죽은 친구의 등허리를 껴안고 우정을 포개고 죽은 소년
억울한 주검을 나르던 열여섯에게 민주란 무엇이었을까
어젯밤 나누어 삼킨 주먹밥 한 덩어리
마지막 눈물처럼 가슴에 퍼부었겠지
주먹밥처럼 꼭 끌어안고
죽음도 떼어놓지 못한 밀도로
어린 친구들은 하늘에서도 주먹밥이 되었을까
-‘주먹밥의 밀도’ /전숙
네가 오리고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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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이 개처럼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하지
만 신문에는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45년 전 전남일보 기자들의 그 절규가
시로 다시 살아나는 시간이었다. “끝나지 않는 오월 다시 찾은 민주주의 당신
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80년 오월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날을 잊지 않겠습
니다.” 시와 노래로 하는 기억의 다짐이었다. 민주주의 대축제 대합창
3부로 구성된 민주주의 대축제 5·18전야제는 지정남 배우가 진행했다. 1부 ‘오월광주 환영대회’는 오월길맞이굿을 시작으로 금남로에 집결하는 수만 명
의 민주 평화 대행진 대열을 노래와 춤으로 환영하는 행사였다. 2부는 ‘민주
주의 축제’로 뮤지컬과 노래로 꾸며지고 3부는 ‘빛의 콘서트’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비롯한 노래밴드들의 무대였다. 전야제 중앙무대는 금남로 4가역
교차로에 설치되고 양방향으로 여러 개의 대형 스크린이 있었다. 내가 416합창단으로 참여하는 ‘민주주의 대합창’ 공연은 17일(토) 오후 3시반
에 시작했다. 5.18민주광장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였다. 서울 부산 안산 광주
등에서 온 7개 시민합창단이 개별 공연으로 두 곡씩 부른 후 대합창단으로
함께 두 곡을 불렀다. 광주는 광주였다. 7개 합창단 중 푸른솔합창단, 1987합
창단, 광주흥사단합창단 3개가 광주 소재 합창단이었다. 푸른솔합창단(광주): 2015년 6월 ‘합창’을 통해 민주 인권 평화로 상징되는 ‘광주정신’을 전달하
고, ‘광주공동체’의 희망을 노래하고자 창단했다. 2017년, 2018년 창작 뮤지컬 ‘빛의 결혼식-임
을 위한 행진곡’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615시민합창단(서울): 2009년 8.15행사 공연을 시작으로, 민족의 역사와 겨레의 삶에 수많은 아
픔을 안긴 분단장벽을 허물고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의 새 세상을 열어가기 위해 창단했다. 1987합창단(광주): 광주 전남의 1980년 5.18민중항쟁의 불꽃을 1987년 6월 항쟁의 횃불로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헌법을 쟁취한 그 뜻을 노래와 합창으로 계승하고자 2018년 창단했다. 광주흥사단합창단(광주): 1913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창립한 민족운동단체 흥사단. 독립운동, 대
한민국의 민주화, 청소년 계몽, 육성운동으로 2017년 3월 창단, 형화와 자유를 노래한다. 박종철합창단)부산):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와 6월 항쟁의 정신을 기리고, 시민문화운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2016년 8월 16일 창단했다. 416합창단(경기안산):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 일반 시민으로 2014년 창단됐다. 소외와 불의, 불평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에 함께 한다. 이소선합창단(서울):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의 영결식을 계기로 2011년 결성된 노동자 합
창단이다. 서울시로부터 2020년 전문예술단체로 지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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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대합창에서 불려진 노래 제목을 소개해 본다. 아, 민주정부/ 무궁화
/ 다시 만난 세계/ 타는 목마름으로/ 죽창가/ 깍지손 평화/ 그날이 오면/
죽순밭에서/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개벽/ 껍데기는
가라/ 인간의 노래/ 돌덩이/ 오월의 노래2/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전체 합창단이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주출전가’를 불렀다. 전야제 2부 순서를 연 뮤지컬 <봄의 겨울, 겨울의 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80년 봄과 2025년의 겨울이 중첩되는 판타지 스토리의 뮤지컬. 공연은 “계엄이 계엄이 계엄이 계엄이 계엄이 선포됐다.”를 반복해 부르면서
시작했다. 이어서 “2024년 12월 3일 도시를 통제하고 국회를 해산하고 수많
은 사람들을 붙잡아 가두겠다고 계엄령이 선포됐다.”라는 가사는 45년 광주
와 현재의 서울을 관통하는 ‘계엄’을 보여 주었다.
“응 엄마, 나? 여의도 가는 길.”
“응 여보. 걱정말게. 서울 다 와 부렀어. 아 어치게 가만히 있나. 국회 앞에
탱크가 처들어와부렀다는디!”
이어서 노래한다.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거리에는 탱크부대가. 상상해 본 적
없어. 이런 세상이 다시 올 거란 걸.”
그랬다. 45년 전의 그 계엄령 세상이 21세기에 다시 올 줄은 나도 상상하지
못했다. “추운 겨울이 더욱 추워질지도 모른다,”라고 노래하면 “안 돼! 우리
가 만든 나라”라고 화답했다. “어떻게 가만히 있어. 학교에서 배웠는데. 나도
다 알아. 이거 5·18 때랑 똑같은 거잖아. 우리도 광주 사람들처럼 나서야 되
는 거잖아.”라고 젊은 여성이 외치면 “어쩌면 다시 봄이 오지 않을지 모른다” 라고 노래했다. 현재와 과거를 노래와 춤으로 연결해 주었다. 1980년 오월이
2024년 12월이고, 광주의 영령이 오늘의 우리를 구했음을. 가수 이은미가 작곡가 김형석이 해석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광주에
서 사람들과 같이 부르고 싶었단다. ‘서른 즈음에’, ‘가슴이 뛴다’ 그리고 ‘애
인 있어요’를 열창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라서일까, 시종 가슴 뭉클하고 눈
물을 멈출 수 없었다. 작곡가 김종률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존경,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찬사 그리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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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아” 작곡했다고 했다. 5·18전야제 브로셔의 글을 옮겨 본다. 민주항쟁의 연원 오월광주로 연어처럼 몰려오는 민주시민들. 고향 집 부모의 마음으로 뜨겁게 환
영하는 오월 광주 공동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금남로에서 새로운 세계를 전망하다. 항쟁의 연원 5·18: 계엄의 밤, 장갑차 앞을 맨 몸으로 가로막은 시민들의 용기는 광주 시민군의 헌
신이었습니다. 남태령의 새벽, 고립된 농민들을 끝내 지켜낸 연대의 마음은 오월 어머니들의 사랑이
었습니다. 한남동의 눈보라를 맞으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던 낭만은 민주대성회의 횃불이었습니다. 승리의 약속 5·18: 오월의 기억으로 내란과 맞서 싸우고 있는 국민들이 민주주의 승리의 염원을
안고 광주로 달려올 것이며, 광주 공동체가 고향 집 부모의 마음으로 뜨겁게 환영할 것입니다. 서로에게 감사를 표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내란청산과 민주승리를 약속하는 축제를 펼칩니다. 미래의 표상 5·18: 5·18은 미래의 표상으로 승화할 것입니다.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민주국가, 국가
주권이 실현되는 자주국가는 오월 광주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입니다. 계급과 계층, 성별과 세대를
넘어 누구나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존중하는 대동세상을 오월 광주가 먼저 체험했던 미래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그리고 ‘5.18헌법’ 5·18전야제 시민참여 부스의 인상을 정리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올해도 45년
전 오월의 ‘주먹밥’이 있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와 사랑의 밥을 3개나
받아먹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모델이 된 독일 기자 한스 패터를 기리는
초록 택시와 운전자가 있었다. 그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어 제시하면 광주의
소주 ‘잎새주’ 샘플 한 병 받을 수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로 간 택시운전
사”라는 문구와 초록 택시가 라벨로 붙어 있는.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이라 불리는 광주인권상을 아는가? 5·18기념재단이
2000년부터 인권과 평화를 위해 기여한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수여하는 상이
다. 올해 수상자는 동남아시아에서 군사폭력과 인권침해에 맞서 생존자 보호, 진실 규명, 평화 구축 활동을 펼쳐온 인권 단체 ‘아시아 정의와 권리(Asia
Justice and Rights, AJAR)’다. 특별상은 필리핀 코르딜레라 지역에서 34년
간 예술을 통해 인권과 공동체 권리를 옹호해 온 ‘DKK문화동맹’이 받았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인 고 문재학 열사를 비롯한 민주
유공자들의 묘비를 찾아보자. 구묘역에도 신묘역에도 너무나 어리고 젊은 얼
굴들을 보라. “5·18정신 계승 민주유공자법 제정하라”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 유족·가족에 대한 교육지원, 취업지원, 의료지원, 대부, 양로지원, 양육지
원 및 그 밖의 지원”이나 “국가와 지자체는 각종 기념·추모 사업을 실시하고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시설물이나 교양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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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정신 헌법전문 수록”이라 적힌 부채를 보았다. 홍보 부스에서 “청원 참
여” 유인물이 배포되고 있었다. 5·18정신을 국가가 책임지고 헌법에 새겨야
한다는 요지였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광주의 희생과 단호한 투쟁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지켜졌다. 12·3 불법 계엄의 국민 승리가 바로 오월광주
의 승리”라며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통해 대한민국을 지켜온 힘이 국
민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새기겠다"라고 말했다. 5·18 정신을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현재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
하여....
수록 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과 불의에 항거한 4.19와 5.18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
명에 입각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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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0손으로 노래하는 지구인들
언어의 경계를 넘는 연대와 감수성의 힘

2018년 5월, 안산의 작은 다문화도서관에서 조용한 만남이 시작됐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여섯 명의 이주민 여성들이 '수어'를 배우기 위해 모였습니다. 말이 아닌 손짓으로, 목소리가 아닌 표정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이 특별한 언어는
곧 그들의 삶을 바꾸는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지구인 수어합창단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활기차게 활동
중입니다. 처음에는 엄마들만의 모임이었지만, 곧 아이들이 합류하며 그 세계는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코스모스 활짝'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어
린이 수어 팀으로 성장했습니다. 손끝으로 노래하고, 표정으로 감정을 전하는 과
정은 단지 공연을 넘어서, 정체성과 자존감을 키우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만난 또 다른 '낯섦'과의 교감
합창단의 구성원 대부분은 제2 언어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이주민 여성들입니다. 한국에 오기 전, 그들은 자국에서 당당한 한 명의 시민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는 '이방인'이 되었고, 언어 장벽으로 인해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는 답
답함과 소외감을 경험했습니다. 식당에서 메뉴를 주문할 때, 아이의 학교 알림장
을 읽을 때, 병원에서 자신의 아픔을 설명할 때마다 느끼는 불안과 무력감은 그들
의 일상이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버스 타는 것조차 두려웠어요. 잘못 내리면 길을 잃을까
봐, 질문해도 못 알아들을까 봐...." 합창단의 한 회원은 회상합니다. 다른 회원은 "아이 학교에서 엄마들 모임이 있을 때마다 가기 싫었어요. 대화에
끼지 못하고, 때로는 다른 엄마들이 수군거리는 것 같아서...."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그들이 수어를 배우며 농인들과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소리의 언어' 안에서 느꼈던 소외감, 낯선 문화에 적응하며 겪는 불안은 농인의
세계와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감정은 닿아 있었고, 그 연대의
토대 위에 손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노래가 피어났습니다.
드디어 초청 무대에 오르다. 코로나 시기에도 합창단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온라인 수어 경연대회, 뮤직비디
오 제작, 찾아가는 수어 교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갔고, 2024년에는
경기도농문화제 수어 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수
상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서로 다른 세계가 손짓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인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4월 18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시흥시 초청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일
은 합창단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농인을 포함한 관객 앞에서 손으로 노래하
며, 이주민과 장애,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기 때
문입니다. 한 회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대에 섰을 때, 내가 더는 '외국인'이 아
니라 '전달자'가 된 느낌이었어요. 우리의 손짓이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습니다.
차별을 넘어, 다름을 존중하는 공동체로
이주민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편견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언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지적 능력을 의심받기도 하고,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이상
한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합니다. 직장에서는 동등한 노동에도 불구하고 더 적은
임금을 받거나, 승진에서 배제되는 일도 흔합니다.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무시당하
거나, 아이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픔도 겪습니다.
"한번은 마트에서 계산할 때 직원이 나를 보지 않고 한국인 남편에게만 말을 걸
더라고요. 마치 내가 없는 사람처럼요." 합창단의 한 회원이 털어놓습니다. 또 다른 회원은 "아이 학교 상담 때 선생님이 나에게는 말하지 않고 통역해 준
한국인 친구에게만 이야기했어요. 내가 엄마인데도...."라고 말합니다. 이런 경험들이 지구인 수어합창단 구성원들에게는 농인들의 감정을 더 깊이 이
해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차별과 소외의 경험이 오히려 더 강한 연대 의식을 만
들어낸 것입니다. 수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들은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공통된 경
험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성장하는 값진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손짓으로 키워낸 다음 세대의 감수성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며 지금은 함께하지 못하지만, 그 아이들이
보여주는 높아진 장애인 감수성과 또렷해진 자존감은 코스모스 활짝 합창단이 남
긴 가장 큰 선물입니다. 어떤 아이는 수어를 통해 친구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만들
었고, 어떤 아이는 "장애인 친구가 생겼어요"라며 밝게 말합니다. 이주민 가정의 아이들은 종종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릴 때 한국에 왔지만, 외모나 부모의 출신으로 인해 '한국인이 아닌' 취급을 받
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어 활동을 통해 이 아이들은 새로운 정체성과 자부심을 발
견했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이 약점이 아닌 강점이 될 수 있음을 몸소 체험
한 것입니다.
지구인 수어합창단은 단순한 예술 단체가 아닙니다. 이들의 활동은 공감 교육이
자, 문화 다양성과 장애 감수성을 일깨우는 살아 있는 실천입니다. 각종 수어 축
제와 행사에 참여하며 수어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무엇보다 '다름'을 존중하는 문
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2025년 1월 소년원에서의 봉사 공연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연대와 이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
니다. 이들이 손으로 노래하는 그 모습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진정한 소통이란 무엇인
가. 같은 언어를 쓴다고 다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다름을 이
해하고, 닿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지구인 수어합창단의 손짓은 오늘도 우리 사회
에 조용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말이 아닌 마음으로, 손끝으로 이어지
는 이 노래가 더 많은 사람의 가슴에 닿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손짓 속에는 차별
과 편견을 넘어, 더 포용적이고 따뜻한 세상을 향한 꿈이 담겨 있습니다. ------------------------------------------------------------------ 지구인 수어 합창단 전연 회장의 글

제가 한국에 처음 온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2013년 2월, 추운 겨울이었어요. 바람이 차갑고 마음도 외로웠습니다. 모든 소리가 낯설고, 모든 글자는 마치 암호
처럼 느껴졌어요. 한국어를 배우려고 외국인지원본부에 다녔지만, 마음속에는 말
로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다문화 작은 도서관’을
알게 됐어요. 지하 1층에 있는 그 도서관 문을 열었을 때, 전 세계 언어로 된 책
들이 저를 반겨줬어요. 특히 중국어 책이 많은 책장을 봤을 때, 저는 처음으로 이
곳이 조금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여기 자주 와요?”
도서관에서 일하던 중국인 언니가 물었을 때, 저는 웃기만 했어요.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따뜻했습니다. 그 도서관은 저에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도서관에서 여러 프로
그램에 참여하게 됐고, 2018년 5월 29일, 한국 수어 수업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그 수업은 제 인생을 많이 바꿔줬
어요. 수업에는 저처럼 다른 나라에서 온 엄마들, 또 한국 엄마들도 있었어요. 모두 책
과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무언가 배우고 싶은 마음도 같았어요. 그리고
또 하나 공통점이 있었는데요, 바로 언어 때문에 어려움을 느꼈던 경험이었습니
다. 매일 저녁, 도서관에 아이들 손을 잡고 엄마들이 들어왔어요. 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달랐지만, 인사를 주고받는 손짓에는 차별이 없었어요. 손끝으로 “안녕하세
요”를 처음 배운 날, 저는 마음속으로 울었습니다. 말로는 잘 못해도, 손으로는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감동이었어요. 수어를 배우면서 저는 농인들과 제가 비슷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수 언어 바깥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소외되고 외로운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몇 달 뒤, 우리는 ‘지구인 수어 합창
단’을 만들어 대회에 나가게 되었어요. 2018년 10월 6일, 경기도 농문화제에서 우
리는 수어로 노래를 했습니다. 여섯 나라에서 온 엄마들이 한국 수어로 하나의 노
래를 표현한 거예요. 무대에 설 때는 많이 떨렸지만, 손으로 노래하기 시작하자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 순간, 저는 더 이상 외국인도, 이방인도 아니었어요. 그냥
감정을 전하는 사람, 그 자체였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관객들이 손박수를 보내줄 때, 저는 눈물이 났어요. 정말 처음으
로 이 땅에서 ‘나도 이곳의 일부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11월에는 안산 수어
제에서 아이들과 같이 무대에 올라 대상을 받았어요. 아이들의 얼굴에 자랑스러움
이 가득했고, 저도 정말 기뻤습니다. 이주민 아이들은 종종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런데 수어를 통해 아이들은 ‘다름’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특별한 것이라는 걸 배웠어요. 아이들의 눈빛이 부드러워졌고, 친구들을 더 따뜻
하게 대하게 되었어요. 여섯 나라에서 온 엄마들과 함께한 이 경험은 정말 특별했습니다. 수어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언어였고, 누구도 먼저 잘하지 않았어요. 그저 같은 지구인으로, 손끝의 언어로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했어요. 우리는 ‘우리’와 ‘함께’라는 말을 손끝
으로 배웠습니다. 지구인 수어 합창단은 올해도 계속됩니다. 다른 피부, 다른 언어
를 가진 우리가 손짓으로 사랑을 전합니다. 말이 없다고 해서 마음이 없진 않다는
것,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깊은 소통은,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걸요.
2025.05.08. 지구인 수어 합창단 회장 전연
조회수 66
2025-05-09손으로 노래하는 지구인들
언어의 경계를 넘는 연대와 감수성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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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안산의 작은 다문화도서관에서 조용한 만남이 시작됐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여섯 명의 이주민 여성들이 '수어'를 배우기 위해 모였습니다. 말이 아닌 손짓으로, 목소리가 아닌 표정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이 특별한 언어는
곧 그들의 삶을 바꾸는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지구인 수어합창단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활기차게 활동
중입니다. 처음에는 엄마들만의 모임이었지만, 곧 아이들이 합류하며 그 세계는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코스모스 활짝'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어
린이 수어 팀으로 성장했습니다. 손끝으로 노래하고, 표정으로 감정을 전하는 과
정은 단지 공연을 넘어서, 정체성과 자존감을 키우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만난 또 다른 '낯섦'과의 교감
합창단의 구성원 대부분은 제2 언어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이주민 여성들입니다. 한국에 오기 전, 그들은 자국에서 당당한 한 명의 시민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는 '이방인'이 되었고, 언어 장벽으로 인해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는 답
답함과 소외감을 경험했습니다. 식당에서 메뉴를 주문할 때, 아이의 학교 알림장
을 읽을 때, 병원에서 자신의 아픔을 설명할 때마다 느끼는 불안과 무력감은 그들
의 일상이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버스 타는 것조차 두려웠어요. 잘못 내리면 길을 잃을까
봐, 질문해도 못 알아들을까 봐...." 합창단의 한 회원은 회상합니다. 다른 회원은 "아이 학교에서 엄마들 모임이 있을 때마다 가기 싫었어요. 대화에
끼지 못하고, 때로는 다른 엄마들이 수군거리는 것 같아서...."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그들이 수어를 배우며 농인들과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소리의 언어' 안에서 느꼈던 소외감, 낯선 문화에 적응하며 겪는 불안은 농인의
세계와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감정은 닿아 있었고, 그 연대의
토대 위에 손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노래가 피어났습니다.
드디어 초청 무대에 오르다. 코로나 시기에도 합창단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온라인 수어 경연대회, 뮤직비디
오 제작, 찾아가는 수어 교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갔고, 2024년에는
경기도농문화제 수어 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수
상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서로 다른 세계가 손짓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인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4월 18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시흥시 초청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일
은 합창단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농인을 포함한 관객 앞에서 손으로 노래하
며, 이주민과 장애,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기 때
문입니다. 한 회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대에 섰을 때, 내가 더는 '외국인'이 아
니라 '전달자'가 된 느낌이었어요. 우리의 손짓이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습니다.
차별을 넘어, 다름을 존중하는 공동체로
이주민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편견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언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지적 능력을 의심받기도 하고,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이상
한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합니다. 직장에서는 동등한 노동에도 불구하고 더 적은
임금을 받거나, 승진에서 배제되는 일도 흔합니다.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무시당하
거나, 아이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픔도 겪습니다.
"한번은 마트에서 계산할 때 직원이 나를 보지 않고 한국인 남편에게만 말을 걸
더라고요. 마치 내가 없는 사람처럼요." 합창단의 한 회원이 털어놓습니다. 또 다른 회원은 "아이 학교 상담 때 선생님이 나에게는 말하지 않고 통역해 준
한국인 친구에게만 이야기했어요. 내가 엄마인데도...."라고 말합니다. 이런 경험들이 지구인 수어합창단 구성원들에게는 농인들의 감정을 더 깊이 이
해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차별과 소외의 경험이 오히려 더 강한 연대 의식을 만
들어낸 것입니다. 수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들은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공통된 경
험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성장하는 값진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손짓으로 키워낸 다음 세대의 감수성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며 지금은 함께하지 못하지만, 그 아이들이
보여주는 높아진 장애인 감수성과 또렷해진 자존감은 코스모스 활짝 합창단이 남
긴 가장 큰 선물입니다. 어떤 아이는 수어를 통해 친구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만들
었고, 어떤 아이는 "장애인 친구가 생겼어요"라며 밝게 말합니다. 이주민 가정의 아이들은 종종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릴 때 한국에 왔지만, 외모나 부모의 출신으로 인해 '한국인이 아닌' 취급을 받
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어 활동을 통해 이 아이들은 새로운 정체성과 자부심을 발
견했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이 약점이 아닌 강점이 될 수 있음을 몸소 체험
한 것입니다.
지구인 수어합창단은 단순한 예술 단체가 아닙니다. 이들의 활동은 공감 교육이
자, 문화 다양성과 장애 감수성을 일깨우는 살아 있는 실천입니다. 각종 수어 축
제와 행사에 참여하며 수어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무엇보다 '다름'을 존중하는 문
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2025년 1월 소년원에서의 봉사 공연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연대와 이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
니다. 이들이 손으로 노래하는 그 모습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진정한 소통이란 무엇인
가. 같은 언어를 쓴다고 다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다름을 이
해하고, 닿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지구인 수어합창단의 손짓은 오늘도 우리 사회
에 조용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말이 아닌 마음으로, 손끝으로 이어지
는 이 노래가 더 많은 사람의 가슴에 닿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손짓 속에는 차별
과 편견을 넘어, 더 포용적이고 따뜻한 세상을 향한 꿈이 담겨 있습니다. ------------------------------------------------------------------ 지구인 수어 합창단 전연 회장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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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국에 처음 온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2013년 2월, 추운 겨울이었어요. 바람이 차갑고 마음도 외로웠습니다. 모든 소리가 낯설고, 모든 글자는 마치 암호
처럼 느껴졌어요. 한국어를 배우려고 외국인지원본부에 다녔지만, 마음속에는 말
로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다문화 작은 도서관’을
알게 됐어요. 지하 1층에 있는 그 도서관 문을 열었을 때, 전 세계 언어로 된 책
들이 저를 반겨줬어요. 특히 중국어 책이 많은 책장을 봤을 때, 저는 처음으로 이
곳이 조금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여기 자주 와요?”
도서관에서 일하던 중국인 언니가 물었을 때, 저는 웃기만 했어요.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따뜻했습니다. 그 도서관은 저에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도서관에서 여러 프로
그램에 참여하게 됐고, 2018년 5월 29일, 한국 수어 수업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그 수업은 제 인생을 많이 바꿔줬
어요. 수업에는 저처럼 다른 나라에서 온 엄마들, 또 한국 엄마들도 있었어요. 모두 책
과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무언가 배우고 싶은 마음도 같았어요. 그리고
또 하나 공통점이 있었는데요, 바로 언어 때문에 어려움을 느꼈던 경험이었습니
다. 매일 저녁, 도서관에 아이들 손을 잡고 엄마들이 들어왔어요. 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달랐지만, 인사를 주고받는 손짓에는 차별이 없었어요. 손끝으로 “안녕하세
요”를 처음 배운 날, 저는 마음속으로 울었습니다. 말로는 잘 못해도, 손으로는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감동이었어요. 수어를 배우면서 저는 농인들과 제가 비슷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수 언어 바깥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소외되고 외로운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몇 달 뒤, 우리는 ‘지구인 수어 합창
단’을 만들어 대회에 나가게 되었어요. 2018년 10월 6일, 경기도 농문화제에서 우
리는 수어로 노래를 했습니다. 여섯 나라에서 온 엄마들이 한국 수어로 하나의 노
래를 표현한 거예요. 무대에 설 때는 많이 떨렸지만, 손으로 노래하기 시작하자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 순간, 저는 더 이상 외국인도, 이방인도 아니었어요. 그냥
감정을 전하는 사람, 그 자체였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관객들이 손박수를 보내줄 때, 저는 눈물이 났어요. 정말 처음으
로 이 땅에서 ‘나도 이곳의 일부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11월에는 안산 수어
제에서 아이들과 같이 무대에 올라 대상을 받았어요. 아이들의 얼굴에 자랑스러움
이 가득했고, 저도 정말 기뻤습니다. 이주민 아이들은 종종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런데 수어를 통해 아이들은 ‘다름’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특별한 것이라는 걸 배웠어요. 아이들의 눈빛이 부드러워졌고, 친구들을 더 따뜻
하게 대하게 되었어요. 여섯 나라에서 온 엄마들과 함께한 이 경험은 정말 특별했습니다. 수어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언어였고, 누구도 먼저 잘하지 않았어요. 그저 같은 지구인으로, 손끝의 언어로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했어요. 우리는 ‘우리’와 ‘함께’라는 말을 손끝
으로 배웠습니다. 지구인 수어 합창단은 올해도 계속됩니다. 다른 피부, 다른 언어
를 가진 우리가 손짓으로 사랑을 전합니다. 말이 없다고 해서 마음이 없진 않다는
것,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깊은 소통은,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걸요.
2025.05.08. 지구인 수어 합창단 회장 전연
조회수 74
2025-05-09“세월호참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날의 아픔만을 떠올리는 것이 아닙
니다.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행동으로 옮기는 일입니다.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안전이 기본이 되는 사회, 믿고 살아갈 수 있는 나
라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 기억 편지 낭독 중(세월호참사 생존 학생 장애진 씨)

매년 4월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다양한 자리를 만듭니다. 2025년 4월 16일은 세월호참사 이후 열한 번
째 맞는 4월 16일이었습니다. 16일 오후 3시부터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세월
호참사 11주기 기억식’이 열렸습니다. 노란 옷을 입은 세월호참사 피해 가족들, 노란 팔찌를 끼고 노란 리본 배지를
가슴에 단 많은 시민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또 참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고자 해양수산부 장관, 국회의장, 안산시장, 각 정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 및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의 참여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기억식 행사는 304명 희생자에 대한 묵념, 각 분야를 대표하는 분들의 추도
사, 영상 상영과 뮤지컬 공연, 생존 학생의 편지 낭독, 4.16합창단의 합창 공
연으로 이어졌는데요. 현장에 참석한 3,000여 명의 시민들을 비롯해 언론사
의 생중계로 수많은 시민이 기억식을 지켜봤습니다. 사


기억식을 함께 준비한 4·16재단의 박승렬 이사장은 무대에 올라 “세월호참사
가 일어난 지 11년이 지나고 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사회적 참사와 자연 재
난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 슬픔을 겪고 있습니다.”라며 “생명의 소중함과
일상의 안전이 최우선시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모두 세월호참사를
평생 잊지 않고 꼭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생명존중과 안
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될 ‘4.16생명안전공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참사 피해 가족들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단원고 2학년 1반 故 김수진
학생의 아버지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참사 이후
11년이 지나도록 아직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
켜주지 못했는지 우리 가족들은 알고 있지 못합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이어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
는 참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이 의무를 성실히 지키면서 국가를 믿고
의지하듯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책무임을
명심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추도사에 이어 상영된 <10년의 세월, 그리고 다시 첫 시작>이라는 제목의 영
상은 참가자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는데요. 절대 변할 수 없는, 그래서 결국 그 무엇도 이겨내는
엄마의 약속
(중략)
10년 하고도 다시 1년 이제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서야 아이들이 돌아올 보금자리의 첫 삽을 떴다. 아이들이 우리 품으로 온전히 돌아오면 그때는 진짜 봄이 올까?
진짜 진실이, 진짜 사죄가, 진짜 새 세상이 올까?
10년 하고도 다시 1년 오늘도 다시 약속한다. 꼭 밝히겠다고, 꼭 밝혀내고 말겠다고
- 영상 <10년의 세월, 그리고 다시 첫 시작> 중
참사 이후 10년이 넘도록 아이들이 왜 희생되어야만 했는지 그 진실을 밝히
고자, 나아가 안전사회를 만들고 재난 참사 피해자의 권리를 지켜내고자 걸어
온 세월호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었습니다. 반드시 약속을 지켜내
겠다는 엄마들의 굳건한 의지가 숭고하게 느껴졌습니다.

영상을 다 같이 본 후 희생된 단원고 학생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공연 ‘나, 여기 있어요’가 펼쳐졌습니다. 지난해 10주기 기억식 무대에서 시
낭송을 했던, 그리고 세월호참사 10주기 프로젝트로 제작된 영화 <목화솜 피
※ 파일명 : (제출월일)제목_이름(활동명) / 사진파일 별도첨부
※ 경기천년바탕 Regular, 글자크기 13p(본문), 줄 간격 160%, 상하여백 15, 좌우여백 25, 머리말·꼬리말 15, 300단어 기준 양식에 벗어난
자료를 받았을 시 기준에 따라 수정하여 원고료 지급범위를 정함. ※ 1매에 27행을 기준으로 30%(8행)미만 작성된 매수는 지급매수로 산정하지 않으며 이미지는 홈페이지 업로드 크기와 별도로 센터
양식 기준 최대 10행으로 취급
는 날>의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던 박원상 배우가 열연을 펼쳐, 참가한 시
민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다음 순서로 세월호참사 생존 학생인 장애진 씨가 무대에 올라 기억의 편지
글을 낭독했는데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세월호참사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
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믿고 언젠가는 괜찮아지리라 생각했지만, 봄이 올 때
마다 아직 마음 한편은 차가워지고 봄은 여전히 멀기만 합니다.”, “두 번 다
시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그대들과 같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
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했지만, 또 다른 비극들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우
리가 아직 멈춰서 있는 것은 아닌가 자책도 하게 됩니다. 그날의 봄은 멈춰있
지만 언젠가는 영원히 따뜻한 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며 진심을 눌
러쓴 편지글을 전했습니다. 기억식의 마지막 순서는 세월호참사 피해 가족들과 시민들이 함께 만든 4.16
합창단의 공연이었습니다. 4.16합창단의 노래는 기억하고 행동하는 모든 시민
들의 마음을 울리는 빛나는 무대였습니다. 그리고 기억식이 진행되는 도중 오
후 4시 16분, 1분간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304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추모 사이렌이 안산시 전역에 울려 모두가 함께 마음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세월호참사 11주기를 맞은 4월 16일에는 오후 3시 안산에서 열린 기억식 뿐
만 아니라 오전 10시 30분에는 참사가 벌어진 해역에서 ’선상 추모식‘이, 오
전 11시에는 인천에 위치한 세월호일반인희생자 추모관 광장에서 ’일반인 희
생자 추모식‘이, 오후 4시 16분에는 서울에 위치한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시
민 기억식‘을 진행해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아카이브 자료
에디터 활동명 또봉 이 름 강진원
해시태그 #어린이 #놀이권 #보호권 제 출 일 2025년 4월 24일
제 목 놀이터엔 왜 아이가 없을까?
첨부파일명 (없을 경우 생략)
아직도 가끔 힘이 드는 날이면 정글짐 꼭대기에 올라 모래바람을 휘몰아치던, 구
름사다리 너머로 세상을 내려다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합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 동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네모난 철봉과 미끄럼틀, 모
래 대신 깔린 고무매트, CCTV 아래 놓인 그네... 어쩌면 이건 ‘아이들을 위한 공
간’이 아니라 ‘어른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만든 공간’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곤 했습
니다. 사라진 놀이권, 아이들은 도시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사진 1 (출처 : 에디터 직접촬영)
“뛰면 혼나는 세상, 누구를 위한 놀이터인가요?”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5년 4월 기준 우리나라의 관리대상 놀이터는 총 83,810
개입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53.7%가 주택단지 내에 있으며, 이는 많은 놀이터
가 해당 단지 주민만 이용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도시공원 내 놀이터는
전체의 14.5%로, 아파트 외 거주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출처 : 행정안전부. (2025). 『전국 어린이놀이시설 안
전관리시스템(2024년 4월 기준)』. https://www.cpf.go.kr/cpf/ko/nori/0001/index.jsp)
공원은 또 다른 인간의 동반자인 반려견 산책로로 바뀌고, 방과 후 시간은 학원으
로 향하는 아이들의 스케줄에 밀려 놀이 시간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저출생으로
아이 수가 줄어들었다는 말은 자주 들리지만, 그렇다고 놀이공간까지 줄어드는 것
이 당연한 일일까요?
사진 2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놀이가 사라진 아이들, 성장에도 틈이 생긴다
놀이는 단순한 시간이 아닌 감정 조절, 사회성, 창의성을 키우는 아이들의 필수
활동입니다. WHO와 유니세프는 놀이를 아동의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유
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에서도 “모든 아동은 적절하고 균등하게 여가와 놀이를 누
릴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놀이를 ‘사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초등 입학
전부터 시작되는 사교육, 방과 후 시간을 채우는 학원 스케줄, 그리고 놀이를 위
한 공간은 점점 유료화되고 있습니다. 더하여, 관리 주체가 불분명한 놀이터는 민원이나 안전의 이유로 통제되는 놀이시
설도 많습니다. 미끄럼틀에서 넘어졌다고 민원이 들어오면 그 시설을 없애는 경우
나 공원에서 ‘아이들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놀이터를 폐쇄한 사례도 흔치 않
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안전’을 이유로 아이들의 모험과 자율은 통제되고, 놀이
터는 규칙 속의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아이들은 자유의사에 따라 놀이를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기
쁨과 행복 같은 감정을 체험합니다. 이 자유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만큼, 이를 박
탈당하면 무력감에 빠지고 맙니다.” 라고 말합니다. (출처: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61006051800805)
놀이에 대한 어른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놀이가 단지 여유가 아닌 권리로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
다.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바로 이 ‘놀이의 자유’입니다. 사라진 놀이권을 되찾기 위한 노력들 – 국내외 사례로 본 실천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실제 지역사회에서는 어떤 실천이 이루어
지고 있을까요? 제도적 한계를 넘어 아이들의 놀이권을 회복하고자 했던 국내외
의 시도들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살펴봅시다.
[경기도] 놀이활동가 파견사업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은 2022년부터 경기도 내 아동 돌봄시설과 놀이공간에 놀이활
동가를 파견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이 사업은 전문 놀이활동가가 각 기
관에 상주하거나 정기적으로 방문해 아동의 발달 단계에 맞는 놀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정서적 안정감을 회복하고
놀이를 통해 또래와의 상호작용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었으며, 기관 내 돌봄
교사의 부담을 줄이고 놀이의 질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위축된 아동의 놀이 경험을 회복하는 데 기여한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
았습니다. (출처: 경기도여성가족재단, 2022)
사진 3 (출처 : 경기도여성가족재단 홈페이지)
[전북 완주군] 이동형 플레이버스
완주군은 교통이 불편하거나 놀이터가 없는 농촌 마을을 중심으로 ‘이동형 플레이
버스’를 운영하였습니다. 전문 놀이강사가 장착된 차량을 타고 마을을 순회하며
놀이 프로그램을 제공해 아이들이 매주 규칙적인 놀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
습니다. 이 사업은 놀이권 사각지대 해소와 더불어 지역 공동체 회복에도 기여했
습니다. (출처: 완주군청 아동청소년과, 2022)
[독일 프라이부르크] 자연 그대로의 놀이터 조성
독일 프라이부르크시는 기존의 인공적인 시설물 대신 자연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자연 놀이터’를 조성했습니다. 이곳에서는 흙, 나무, 돌 등을 활용해 아이들이 자
유롭게 탐색하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위험 요소도 최소
화하지 않고 아이 스스로 통제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부모들의 높
은 만족도와 지역 아동의 정서 안정에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
니다. (출처: Freiburg City Council, 2021)
사진 4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놀이터는 단지 미끄럼틀이 아닙니다. 그곳은 아이들이 사회를 배우고 자신을 시험
해보는 실험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공간을 줄이고, 통제하고 있습니다. 아이
들이 다시 놀이터로 돌아오게 하려면, 단지 공간만이 아닌 ‘놀이할 권리’ 자체를
돌려주어야 합니다. 놀이권은 단순한 문화가 아닌, 아이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자 사회가 지켜야 할 약속입니다. 어른들의 작은 변화가 아이들의 큰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놀이터 옆 벤치에 앉기
보다, 아이 옆에서 한 번쯤 그네를 밀어주는 사회, 그게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첫걸음 아닐까요?
[참고자료]
경기도여성가족재단. (2024). 『아동 놀 권리 보장을 위한 연구』. https://www.gwff.kr/storage/board/privacy/2024/11/11/PRIVACY_ATTACH_17313
04910929.pdf
경기데이터드림. (2024). 『어린이 놀이시설 현황』. https://data.gg.go.kr/portal/data/service/selectServicePage.do?infId=I6Y5W00421
151P0RPW7Y12521845&infSeq=1
행정안전부. (2025). 『전국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시스템(2024년 4월 기준)』. https://www.cpf.go.kr/cpf/ko/nori/0001/index.jsp
연합뉴스. (2016). 『놀이의 박탈이 만드는 감정의 상처』.
https://www.yna.co.kr/view/AKR20161006051800805
조회수 76
2025-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