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변화, 아이들의 삶에 닿다 - 스시히로미 이형락 대표의 일상 속 공익 실천
“그 아이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아이의 ‘첫 초밥’이 제가 만든 것이라면,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익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우리는 공익을 이야기할 때 종종 거창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현장이나 조직화된 캠페인, 혹은 이름이 알려진 활동가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면 공익은 어딘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조금 다른 곳에서 시작됩니다. 의정부의 한 초밥집, 그리고 그곳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는 한 사람의 실천입니다.
스시히로미를 운영하고 있는 이형락 대표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저는 그냥 초밥집 하는 사람입니다.”
짧은 말이지만, 그 안에는 삶의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가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음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준비하고 만들어 아이들에게 건네는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처음, 그냥 지나칠수 없었습니다.
이 활동은 특별한 계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개인적인 기억에서 출발했습니다.
“저도 어릴 때는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시골에서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서울에 와 보니까 다르더라고요.”
그는 장사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초밥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아이들’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아원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구조적인 이유로 지속적인 활동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지역아동센터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고, 그 선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계획보다 마음이 먼저였다는 점입니다. 한 번의 마음이 반복되면서 지금의 활동이 만들어졌습니다.

음식이 아니라 경험을 줍니다.
이형락 대표의 활동에서 눈에 띄는 점은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아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모자를 씌워주고, 직접 초밥을 만들어 보게 하며 ‘1일 요리사’ 상장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돈은 금방 사라집니다. 그런데 경험은 남습니다.”
현재는 여건상 체험을 줄이고 식사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남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해본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그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자기 것을 먹지 않고 할머니께 가져다드리겠다고 싸 가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그는 결핍이 아니라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런 아이를 보면 잘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익활동은 단순히 주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따뜻한 마음을 발견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3년 넘게 활동을 이어오는 이유를 묻자 그는 담담하게 답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초밥 한 접시는 하루, 이틀의 추억이 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웃는 모습은 제 마음속 오래도록 따뜻한 행복으로 남습니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자신에게 더 깊이 남는다고 합니다. 그는 이 감정을 '중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못 갔을 때 미안할 뿐입니다."
실제로 그는 봉사 일정을 먼저 정하고 나머지 일정을 맞추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공익활동이 삶의 일부가 된 것이 아니라, 삶의 기준이 된 모습입니다.

혼자 잘났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형락 대표는 자신의 활동을 개인의 선행으로 보지 않습니다.
“제가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가게 손님들이 함께하는 일입니다.”
손님들이 지불한 금액의 일부가 아이들에게 전달되고, 직원들과 함께 준비하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이 활동은 자연스럽게 공동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같이 하는 거지, 혼자 잘났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 말에는 공익이 개인이 아닌 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그에게 공익의 의미를 묻자 그는 간단하게 답했습니다.
“자기 만족입니다. 그게 아니면 못 합니다.”
공익은 의무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느껴야 이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의 말은 공익활동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자영업자 역시 공익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영업자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미 세금을 내고,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는 현실적인 조건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장사가 잘 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여유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공익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유지되지 않고, 현실과 구조가 함께해야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실천을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초밥 한 접시가 향하는 곳
아이들을 만나온 시간은 이형락 대표의 시선을 조금씩 넓혔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더 많아졌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특히 그는 최근 탈북민에 대한 고민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탈북민분들도 혼자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라도 도와보고 싶습니다.”
이 생각은 별도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온 나눔 속에서 자연스럽게 확장된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초밥을 만들어 주던 경험이 ‘누구를 더 도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그 시선이 더 넓은 사회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즉, 초밥 나눔은 하나의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을 향해 손을 뻗습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는가
이형락 대표는 거창한 변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매달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는가.”
공익은 어쩌면 거창한 일이 아니라, 오래 이어지는 작은 실천일지도 모릅니다. 초밥 한 접시가 세상을 바꾸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 접시가 누군가의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이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 아이의 첫 초밥이 제가 만든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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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1※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5월을 ‘가정의 달’이라들 한다.
가정이란 뭘까?
아내는 밖에서 일하고 남편이 두 아이 육아와 살림을 맡은 가정은 어떤 풍경일까?
‘집사람’ 아빠가 “엄마를 쉬게 하자”며 이웃 아빠들과 연대했다.
그림작가이자 안산 해양동 마을활동가, 학교 앞 교통안전지도를 하는 김인찬 자율순찰대 회장을 만나 보았다.

Q ‘자율순찰대’란 이름이 낯선 분들을 위해 소개 부탁드려요.
2021년부터 준비하고 2022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안산 그랑시티 자이 아파트 단지에서 자율순찰대를 구성하여 지금까지 활동 중인 김인찬입니다. 현재 해양동 주민자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단체의 운영진으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어요. 매일 아침이면 비가오나 눈이오나 학교 앞으로 나가 아이들의 안전한 등굣길을 위해 교통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Q 자율순찰대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자율방범대랑은 다른 거죠?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릴 수 있는데, 자율방범대는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지구대와 협력해 야간 순찰하는 관소속 단체예요. 반면 자율순찰대는 제가 이곳에 이사 오기 전 단체에서 아이를 키울 때 “엄마를 좀 쉬게 하자”는 순수한 취지에서 시작됐어요. 주말 낮에 아빠들이 애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모임이죠. 토요일에는 아빠들이 직접 짠 놀이 프로그램으로 가족 관계를 회복하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곳 새로 형성된 단체에선 아빠들과 평일 밤에 단지와 학교 주변을 돌며 활동을 하는 과정이 쌓이다 보니 ‘자율순찰대’의 형태를 띠게 된 겁니다. 이전 단체와 달리 지금 이곳 우리 단체는 예산이나 회비를 일절 받지 않는 자율 모임도 됐어요. 이전에 ‘회비’가 개입되면서 권력 싸움이 일어나는 걸 겪었거든요. 지금의 자율순찰대는 회비도 없고,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단체의 활동 경우 시의 보조지원을 받을 때도 보조금 전액을 주민들과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투명하게 사용하고 조직 구성도 수평적인 구조를 유지했어요.

Q 이전에 무슨 일을 하셨길래 육아에 그렇게 적극적일 수 있었을까요?
평생 그림 그리는 일을 해왔어요. 90년대에는 출판사 단행본 프로덕션에서 수작업 극화를 그렸고, 지금은 컴퓨터로 삽화와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가입니다. 옛날엔 종이 원고를 들고 합정동 출판사를 직접 찾아다녔는데, 수십 명의 출판사 직원이 원고 말풍선에 식자를 일일이 붙이던 풍경이 눈에 선하네요. 원고 한 장에 7~8천 원 받으며 고생도 많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해 다 컴퓨터 작업이 됐죠.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애들이 좋아하는 판타지 그림을 그려 유치원 봉사도 가고, 같이 놀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직접 만들었어요. 서울에서 35년을 살다 2009년에 아내 직장을 따라 안산 고잔동으로 이사 왔는데, 삭막한 서울과 달리 조용하고 녹지가 많아 참 좋더라고요.
Q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쉽지 않은 구조잖아요.
집사람이 도로 포장하는 건설회사에 다니는데 경력이 30년이 넘은 베테랑 부장이에요. 능력자라 회사에서도 꼭 필요한 사람이고 저보다 수입도 훨씬 좋았죠. 솔직히 저는 그림 그리며 도와주는 처지라 수입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첫애 태어나면서 제가 집안일을 전담하기로 했죠. “당신이 밖에서 잘 버니까 내가 안살림을 할게” 한 거예요. 출산 휴가만 몇 달 쉬고 집사람이 출근하면서, 육아하고 살림하는 걸 제 역할로 받아들인 거죠.
Q 100% 독박육아를 직접 하셨다고요? 만만하지 않았을 거 같은데요?
집사람은 산후조리원도 안 갔어요. 제가 집안일은 몹시 서툴렀고 집에서 산바라지도 한다고 했지만, 매우 부족했죠. 집사람이 출근한 후엔 짜놓은 모유를 냉장고에서 꺼내서 데워 먹이고, 분유 타는 법부터 기저귀 가는 법까지 책으로 익혔어요. 제 일은 아무래도 뒤로 밀리는 거죠. 근데 이게 하루 이틀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애한테만 24시간 몰입하다 보니 어느 순간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워지더라고요. 신경이 예민해져서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고, 택배 아저씨가 벨 누르는 것도 싫어서 문을 안 열어준 적도 있어요. 고립되니 사람 보는 게 무서운 거죠. 지독하게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밖에서는 “남편이 애 봐주니 좋겠다”라고 칭찬했지만, 제 내막은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우울에 갇히더라고요.
Q 임신출산육아로 여성이 겪는 ‘산후우울증’을 남성으로서 경험하셨네요. 이게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니 게 보이네요. 어떻게 빠져나오셨나요?
네,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면 그럴 수 있는 거죠. 아이러니하게도 애가 걷기 시작하면서 탈출구를 찾았어요. 애 데리고 공원 나가서 놀게 하며 거기 비슷한 엄마들이 보이더라고요. 저 혼자 남자라 처음엔 어색했죠 물론. 차츰 육아하는 엄마들 수다떠는 거 듣고 섞여서 물어보고 애 이야기도 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교류가 시작된 거죠.
또 하나는 인터넷이었어요. 애들 잘 때 게시판에 글 남기고 소통하면서 숨구멍을 틔웠죠. 밖을 못 나가니까 바깥 환경을 촬영한 케이블 TV 코너 같은 거 열심히 보고 글을 올렸어요. 댓글 하나 달리나 기다리고, 안 달리면 서운해하면서요. 그렇게 손가락으로라도 세상과 연결되려 애쓴 시기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병적인 집착이었지만 그때는 그게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Q 아들 둘을 키우셨는데, 그 힘든 육아를 둘이나 할 결심을 하셨을까요?
원래 둘째 계획이 있었지만, 첫째를 키워보니 너무 힘들어서 4년이라는 터울을 두고 낳았어요. 둘째 때는 더 적극적으로 밖으로 나가 다른 부모들과 어울렸죠. 그런데 두 아이 성향이 참 달라요. 큰애는 무덤덤한 보통 남자애인데, 둘째는 섬세하고 여성성이 강해요.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아기자기하게 놀죠. 초등학교 땐 엄마 옷을 입고 나와 예쁘냐고 묻기도 했는데, 처음엔 덜컥 겁이 났어요. 사회가 보수적이니 군대 가서 적응 못 할까 봐 일부러 “남자가 그러면 안 된다”라며 화도 내고 갈등도 많았죠. 이제 중3이 된 아이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것도 결국 제 편견이었다는 걸요. 이제는 아이의 개성을 존중합니다.
Q 와~ 멋진 말씀이에요. 그렇게 사셨다면 참 보람 있게 느끼시겠어요.
결혼 후 남자도 집 안일 한다고 받아들인 점이 제 삶에서 가장 큰 보람이에요. 시작은 육아였지만 놀이터에서 만난 힘든 엄마들의 처지를 보며 “아빠들이 하루라도 애들을 맡아 엄마들을 쉬게 하자”라고 마음을 모았죠. 공식 단체도 아닌 아빠들 동호회처럼 시작해, 토요일 아침 8시면 애들을 싹 데리고 나갔어요. 용산전쟁기념관도 가고 병점 빙상장도 갔어요. 대부도 선감 학생수련원 1박 2일 여름캠프로 바지락을 캐며 아이들을 돌본 아버지들과 그 시간과 경험으로 이곳에선 자연스럽게 새로운 다른 아버지들과 구성한 마을을 살피는 자율순찰대로 이어진 겁니다.

Q 5월을 흔히 ‘가정의 달’이라고 하죠. 가정에 대해 말씀 좀 더 해주세요.
5월과 12월은 좋아하는 달이기도 해요. 가정의 가장이라면 우리 사회에선 왠지 돈 잘 벌고 강한 남자 같지만, 저는 그렇지 못해요.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좀 더 노력하고 싶은 욕심은 있었죠. 처음에는 내 아이, 내 가족만을 생각했는데 아파트 단지와 마을과 함께 행사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진행하면서 관심이 점점 확장됐어요.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우리 가족에게 소홀했던 부분이 많아 아쉽고 집사람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대한민국에서 남편 역할과 아빠 역할로 어려워하시는 분들에게 제가 배우고 아는 장점들을 공유하고 도움이 되고 싶어요. 저도 한쪽으로만 치우친 생각은 버리고 아이들을 다그치기보다 눈높이를 맞추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이제는 젊은 분들에게 제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역할을 넘겨주고, 가족을 조금 더 챙기고 싶습니다.
Q 말씀 듣다 보니 ‘집사람’이란 단어가 낯설어요. 집에서 육아하고 살림하는 사람은 선생님이었는데, 바깥일 하는 부인을 계속 ‘집사람’이라 하셔서요. 이상하지 않나요?
하하하, 맞는 말씀이네요. 관습이 무섭네요. 어디 가서 솔직히 남자가 집사람이라 말하지 못하잖아요. 사실 제가 군대 특공대 출신이라 진짜 ‘남자 중의 남자’를 꿈꿨고 강한 남성성에 집착했더랬어요. 그런데 직접 살림을 해보니 제 안에 모성이자 부성 같은 여러 성격이 나오더라고요. 폭군 네로가 시를 썼듯 제 안에도 여러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주방에선 앞치마를, 밖에서는 밀리터리 복장을 하고 교통지도를 하고 있으니까요. 필요할 때 필요한 자아를 꺼내 쓰는 거지, 바깥사람 집사람 이분법 이상한 거 맞네요.

Q 그런 점에서 부인과의 파트너십이 궁금해요. 부인은 만족하셨나요?
가끔은 아내도 힘들어하죠. 직장 동료들이 남편 자랑이나 집 사는 걱정 할 때 아내는 공감하기 어려웠나 봐요. 회사에서 힘든 일 있을 때 저에게 화살이 돌아오기도 했고요. 처음엔 미안해서 서둘러 자리 잡으려 했지만, 지금은 서로의 상태를 인정하는 단계예요. 아내가 기다려준 덕분에 제가 더 능동적 활동과 아직도 서툰 살림을 할 수 있게 됐죠. 아내가 밖에서 당당하게 일할 수 있도록 안에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게 우리만의 파트너십입니다.
Q 기혼 여성의 고용중단처럼 선생님은 직업적 성공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요?
여성들의 고용중단과 닮은 점이 있긴 하죠. 벌이가 적은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저는 그림을 놓은 적은 없어서 계속하고 있어요. 대신 지역 활동가로서 얻는 보람이 큽니다. 안산의 역사와 환경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거든요. 여기가 원래 갯벌이었다는 사실도 신기하고, 산책하다 로드킬 당한 고라니를 보면 신고하고 센터에 연결하는 일도 제 업처럼 합니다. 동네에 발을 붙이고 산다는 건 이런 구석구석을 살피는 일이라고 믿어요.

Q 지역 활동가로 살도록 가치관에 영향을 준 게 뭘까요?
이북이 고향이신 아버지와 할머니의 영향이 커요. 아버지는 항상 통일전망대에서 북녘을 보며 눈물지으셨죠. 그런 환경 탓인지 탈북민이나 고려인 문제에 마음이 많이 쓰여요. 제 뿌리가 거기 있다 보니 소수자나 이방인들에게 포용적인 시선을 갖게 됐죠. 마을 활동하며 ‘권력’ 다툼도 보았기에 저는 회비 없는 자율 모임을 지향해요. 누가 저를 밀어내면 그냥 물러납니다. 햇볕이 외투를 벗기듯, 제가 지속 가능하게 그 자리에 있으면 욕심부리던 사람들은 떠나고 결국 제 역할이 돌아오더라고요. 저는 대장이 아니라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Q 매일 아침 아이들의 등굣길을 지키는 일, 단순해 보이지만 대단한 일이죠.
위험한 길에서 교장 선생님까지 나와 등굣길 교통지도 하시는 걸 보고 자원해 시작한 지 벌써 5년이네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아이를 위해 차를 끌고 와 불법 유턴을 하며 다른 아이들을 위협하는 부모님들을 봐요. 아이들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말이죠. 제가 서 있는 그 짧은 멈춤이 생명을 살린다는 사명감에, 그리고 아침마다 “고생 많으시다”라고 인사해 주시는 학부모님들과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며 매일 아침 길 위에 섭니다.


Q 그림작가 김인찬으로서, 그리고 마을 활동가로서 앞으로 꿈꾸는 모습은 무엇인가요?
거창한 건 없어요. 건강하게 이 활동들을 오래 하는 게 꿈이죠. 제가 없으면 없어질 모임이 아니라 작게라도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저는 육아와 살림을 통해 여성들의 노고를 뼈저리게 배웠고 공공성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수직적 권력이 아닌 수평적 관계 속에서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을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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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1
대남오물풍선 살포로 인한 위기와 그 해결책
이바다 대표(평화누리 상임대표)
지난 6월 26일 임진각은 한여름 퇴약볕이 내리쬐는 속에서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관광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중에는 외국에서 단체여행을 온 사람들에게 임진각을 소개하는 그룹도 눈에 띄었다. 설명을 듣는 외국인들은 ‘남북 분단의 현장’이 신기한 듯 귀 기울여 듣는 모습이었다.
오전 11시가 되자 30여명의 시민들이 망배단 계단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이날 ‘대북전단살포 즉각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위해 고양·파주 지역에서 온 시민단체와 종교단체 회원들이었다. 이 기자회견 모습에 외국 관광객들은 더 큰 호기심을 보였다.
그날 기자회견은 최근 북한 대남오물풍선 살포로 인한 한반도 정세의 불안과 접경지역 주민들의 고통을 알리고 그 해결을 촉구하고자 고양·파주 지역 24개 시민사회단체가 주관한 것이었다. 이 기자회견을 통해 시민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토대로 대북전단풍선과 대남오물풍선 살포의 상관관계와 그로 인해 촉발된 한반도 위기 그리고 접경지역 시민의 고통을 멈추기 위해 시민들이 제시하는 요구를 살펴보고자 한다.

임진각 망배단 기자회견 2024. 6. 26.
1. 북한 대남오물풍선 살포의 원인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을 주축으로 한 탈북민단체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북전단살포를 지속적으로 행해 왔다. 이로 인해 접경지역에서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지역 주민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으며 남북관계 악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쳐왔다. 그러던 중 2018년 체결된 9.19군사합의로 인해 남북간 첨예한 군사적 갈등, 특히 접경지역에서의 우발적 충돌 위험은 한동안 잦아들었으며 그에 따라 접경지역 주민들은 오랜만에 평온한 일상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5월 13일 박상학 대표는 “10일 밤 11시쯤 대형풍선 20개를 인천 강화도에서 북쪽으로 보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조선중앙통신에 발표한 담화에서 “ 남쪽 국경과 일부 중심지대에서 대한민국 쓰레기들이 날린 대형풍선이 발견됐다”며 “처참하고 기막힌 대가를 각오하라”며 강력 경고했다.
이 경고 이후 북한은 5월 28일부터 현재까지 12차례에 걸쳐 오물과 분뇨, 생활쓰레기를 담은 대형 오물풍선을 남쪽으로 살포해 오고 있다. 이로써 접경지역에서의 짧았던 평화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으며 9.19군사합의 폐기로 인해 접경지역내 군사활동 재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으로 군사적 긴장이 다시 고조되었다.
이렇듯 북한의 대남오물풍선이 살포돼 한동안 유지됐던 접경지역내 평화가 사라지게 된 직접적 원인은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라고 할 수 있다.
2. 현 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방치
문재인 정부는 대북전단 내용이 “외설적 선전 및 가짜뉴스로 채워졌다”며 2020년 12월 대북전단금지법인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대북전단 살포 단체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상당기간 대북전단 살포는 중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23년 9월 26일 이 법에 대해 일부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판결은 대북전단 살포금지법의 입법 목적은 정당하지만 국가형벌권까지 동원했기에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됐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보수언론들과 소위 우파들은 이 위헌 판결을 편의적으로 해석해 대북전단살포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표현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이 결정을 계기로 탈북단체의 대북전단살포는 재개되었으며, 이에 윤석열 정부는 대북전단살포를 법으로 금지하거나 처벌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사태를 방치하고 있다.
3. 대북전단 내용과 문제점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단체들은 이 행위가 북한의 인권 개선과 민주화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북 전단의 내용을 보면 리설주에 대한 외설적 합성 사진과 자극적이고 저급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김정은에 대한 인신공격과 대안없이 북한 당국과 맞서 싸우라는 선동은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반감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한 풍선을 이용해 날려 보내는 대북전단은 실제로 북한 땅에 떨어질 확률이 높지 않다.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상 사계절 내내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편서풍 영향으로 풍선이 북쪽으로 향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4. 강대강 대응으로 군사적 대결 격화
7월 26일 현재까지 북한의 대남오물풍선 살포는 11차에 걸쳐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정부는 “9·19 군사합의” 폐기로 맞대응하고 있다. “9·19 군사합의”는 2018년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로, 지상·해상·공중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원인인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는 내용의 남북한 간의 합의이다. 이번 ‘9·19 군사합의’ 폐기로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된 바 있으며, 군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각종 군사훈련을 재개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접경지역에서의 우발적 도발에 의한 군사적 충돌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5. 한반도 정세 악화와 접경지역 시민의 삶 피페화
현재 북·러 관계의 심화와 미·중 갈등으로 인해 한반도 정세는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쪽 탈북단체 중심의 대북전단살포로 인한 북한 당국의 대남오염풍선 살포로 촉발되는 위기는 남북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증폭시켜 전쟁위협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더불어 접경지역 주민들에게는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생활권마저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6. 시민단체들의 제안
이날 기자회견에 담긴 시민들의 제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대북전단풍선 살포를 즉각 중단하라
풍선을 이용한 대북전단살포는 남북간의 불필요한 긴장을 조장하고, 한반도 평화에 악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접경지역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행위이다. 대북전단살포는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전쟁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일에 다름아님을 깨닫고 즉각 중단해야 한다.
(2)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보장하라
접경지역 주민들이 불안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정부와 경기도는 물론 관련 당국에서는 대북전단살포 행위를 철지히 단속하고, 주민들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히 풍선을 활용한 대북전단살포 행위는 ‘항공안전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확인된 만큼 수사당국은 신속한 수사로 관련법 위반 행위가 중단되도록 해야 한다.
(3) 평화적인 방법을 통한 남북대화를 재개하라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는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해결만이 최선의 방법이다. 대북전단살포와 같이 북측을 자극하는 방법보다는 남북 상호이해를 기반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
7. 신뢰구축이 최우선
대남오물풍선 살포를 막는 방법은 자명하고 간단하다. 그 직접적 원인이 된 대북전단살포를 즉각 중단시켜야 한다. 상대를 자극하고 갈등을 부추키는 방식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그 상황을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얄팍한 방책에 불과하며 그 결과는 공멸이다.
남북문제는 신뢰구축이 최우선이다. 대남오물풍선 문제 역시 남북한 신뢰구축 선상에서 되짚어봐야 하고, 그 점에 심각한 손상이 야기됐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해도 신뢰를 다시 쌓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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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기상청 날씨누리에 따르면 2023년 겨울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제법 추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12월에는 일시적인 찬 대륙고기압의 영향으로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눈이 내릴 때가 있겠으며, 저기압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도 공개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추운 겨울이 유독 더 춥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이탈주민입니다. 특히나 2023년은 전기·가스 요금이 대폭 인상되었기 때문에 난방 취약계층에 속하는 탈북민들의 한숨은 더욱 짙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이탈주민의 겨울이 유독 춥고 고된 이유는 무엇이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시행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이란?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에서 대한민국이나 다른 국가로 이주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북한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주하는 이탈주민은 주로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유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들은 종종 국경을 넘어 이동하거나 탈북자라고도 불립니다. 이러한 명칭은 1997년 1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이라는 의미인 '북한이탈주민'(줄여서 탈북민)이라는 명칭이 법적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명칭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2005년 정부는 여론조사 등 의견수렴을 거쳐 새로운 명칭인 '새터민'을 발표했으나, 이는 단순히 경제적 이유만으로 탈북한 이들만을 뜻하는 데다가 제3국에 체류 중인 북한주민을 한꺼번에 부를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탈북민 및 탈북단체가 많아 다시 법률적으로만 사용되던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다양한 이유로 북한을 떠나게 됩니다. 그 중에는 굶주림, 정치적 탄압, 인권 침해, 가부장제 등의 이유가 포함됩니다. 대한민국은 북한이탈주민을 탈북자로 인정하고, 이들에게 정치적 어셈일럼(Asylum)이나 탈북자보호정책 등을 통해 도움을 제공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중국을 경유하여 대한민국으로 도착하며, 도착 후에는 정부의 도움을 받아 적응하고 삶을 재개하는 데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이 직면하는 어려움과 도전은 여전히 많습니다. 이들은 종종 사회, 언어, 문화적으로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새로운 환경에서의 경제적 문제도 일반적입니다. 탈북자 문제는 남북한 간의 관계와 국제적인 정치적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는 문제 중 하나이며, 그들의 안전과 인권 보호는 계속해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의 경제적 어려움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가 발표한 학술지 '현대사회와 다문화'에 기고한 '전체인구와 결혼이민자와 비교한 탈북민의 사회통합 수준'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탈북민의 33%가 월가구소득 100만원 미만이라고 분석되었습니다. 게다가 2021년 국민의힘 이명수(아산시 갑) 의원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3만3천788명(2021년 10월 18일 기준) 중 22.2%인 무려 7,509명이 중위소득 30~50% 이하에 해당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의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탈북민 사망사고 중 자살이나 사유 불명 사망사고는 2019년 18명에서 2020년 55명, 2021년 7월 기준으로는 48명으로 해마다 급증하는 원인이 경제적 어려움과 관련성이 있다고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의 자료를 살펴보았을 때 북한이탈주민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2018년 64.8%, 2019년에는 62.1%, 2020년에는 60.1%로 지속적으로 감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북한이탈주민은 다양한 경제적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적응과 생존에 대한 도전을 의미합니다. 북한이탈주민이 경험하는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 번째는 취업의 어려움입니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언어, 기술, 학력 등의 차이로 인해 취업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탈북자들은 종종 적절한 직업 기술이나 어학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이민하는 경우가 많아, 취업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사회화 및 재교육의 필요성입니다. 북한에서의 교육과 대한민국의 교육 체계 간의 차이로 인해, 탈북자들은 종종 재교육이 필요합니다. 이는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주거문제입니다. 주거비용이 높은 대한민국에서의 생활에 대한 부담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수도권 등 대도시에서의 주거 비용은 더욱 높기 때문에, 안정적인 주거를 구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사회적 경제적 격차입니다. 대한민국 사회와 북한 사회 간의 차이로 인해, 탈북자들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소외될 수 있습니다. 이는 통합과 적응을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변화에 대한 대응입니다. 북한이탈주민은 자유시장 경제와 다양한 생활 양식, 가치관의 변화에 대한 대응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는 문화적 충돌과 함께 경제적인 어려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이탈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NGO 및 국제기구들도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탈북자들이 직면하는 경제적 문제는 많은 주목을 받고 있으며,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수도권 북한이탈주민의 경제적 현황
2023년 11월 21일 인천시와 통일부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9월 말 기준 전국의 북한이탈주민 수는 3만 1,362명입니다. 이 중 경기도는 북한이탈주민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1만 1,042명이 살고 있습니다. 이어서 서울시는 6,473명, 인천시는 2,927명으로 전국에서 북한이탈주민 거주율은 3위에 달합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이탈주민 다수가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2,927명 중 기초수급대상자는 1,101명으로 무려 37.62%를 차지합니다. 북한이탈주민 3명 중 1명이 기초수급대상자에 속하는 셈입니다.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이탈주민법 제26조에 따라 최초 거주지 전입일 이후 5년간 수급권자 범위 관련하여 특혜대상자가 됩니다. 그 덕에 북한이탈주민은 의료급여, 생계급여 등을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동일법 제25조와 의료급여법 제3조제7호에 근거하여 북한이탈주민법의 적용을 받고 있는 사람과 그 가족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의료급여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람만이 의료급여를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원으로 북한이탈주민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거주지 보호기간 5년 이내에 중위소득 50% 이하 탈북민은 의료급여 수급자가 되지만 일반 시민의 경우 중위소득 40% 이하부터 의료급여를 받을 수 있어 탈북민의 수급 기준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기준이 낮기에 수급자 수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북한이탈주민의 장기적 정착을 위한 혜택보다는 복지에만 정책이 치중되어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를 어려운 상황입니다. 결국 시가 나서서 인식 개선 사업 및 탈북민 채용을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체별 북한이탈주민 지원 상황
인천시에서는 북한이탈주민 지원 정책으로 건강검진과 통일한마음체육대회, 제주도 문화체험 등을 지원합니다. 탈북이탈주민 중 여성 비율이 높은 것을 감안하여 여성가족재단 등과의 연결을 구상하고 있다고 계획을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또, 인천하나센터와 연계하여 탈북민 구직자의 취직을 돕는 등 취업지원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남북하나재단에서도 북한이탈주민 및 자녀를 위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바로 2023년 8월 18일부터 9월 8일까지 모집했던 ‘2023년 탈북민 및 탈북민 자녀 예체능 인재 성장지원금’ 또한 그러한 지원 중 하나입니다. 이는 예체능 분야를 전공하는 북한이탈주민과 그들 자녀의 꿈을 응원하기 위한 성장지원금으로, 인재 한 명당 200만원의 성장지원금을 2회에 걸쳐 분할 지원합니다. 지원대상은 ⓛ 북한이탈주민 또는 북한이탈주민 자녀(제3국, 남한출생 포함) ② 예체능 분야 성적 우수한 중·고등학생·전문학교·전문대·대학생(실기능력 보유자)입니다. 지원 대상자는 공정한 심사를 통해 선발됩니다. 재단에서 자격요건을 검토한 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 전공역량 및 발전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동점자 발생 시, 재단 장학금 수혜 여부와 가구소득 및 가점 등을 반영하여 순위를 확정하였다고 합니다.
또, 남북하나재단은 ‘탈북민 일체험 프로그램’을 2023년 6월 27일부터 11월 30일까지 모집한 바 있습니다. 만 18세 이상 탈북민으로 일체험 프로그램이 필요한 자가 지원대상이 되었으며, 프로그램 참여자로 선정되면 단시간근로자로 지위가 확정되어 급여를 받으며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일체험 프로그램 종료 후, 참여기업-참여자 간 실제 채용으로 연결될 경우 ‘단기연수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참여기업・참여자 모두에게 연수지원금을 3개월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남북하나재단은 앞으로도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지원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에서도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통일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는 2021년 4월부터 남북하나재단, 경기도일자리재단과 북한이탈주민 취·창업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협약내용에 따르면, 하나원과 하나재단·일자리재단은 탈북민들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지원이 매우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상호 협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통일부는 1인 세대 기준 북한이탈주민 정착기본금을 기존의 800만원에서 2023년 900만원으로 100만원 인상하고 위기가구 대상 긴급생계비 지원액을 확대한 바 있습니다. 긴급생계비 지원 상한액의 경우 기존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생애총액 한도의 경우 3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과제
여러 재단과 지방자치단체 등이 북한이탈주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는 많아 보입니다. 일단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복지에만 치중되어 있는 정책도 문제가 있습니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는 북한이탈주민의 구직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북한이탈주민을 고용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도 확대되어야 합니다. 이보다 더 앞서야 하는 것은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인식 개선입니다. 아직까지도 북한이탈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생각보다 ‘북한인’이라는 생각이 만연합니다. 이에 대한 전국민적 인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북한이탈주민이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위치에서 동등한 경제적 자립 능력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다면, 추운 겨울도 제법 버틸만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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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9
“2023년, 공익활동을 기록하다.”
3기 아카이브 에디터 발대식과 공익활동 시민기록자 양성교육 심화과정 1, 2강을 마친지 얼마 안 된 듯한데, 벌써 1분기를 마치고 2분기 3강이 시작되었다.
이번, 2분기 3강은 지난 1분기 아카이빙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된 정보들을 함께 공유하고, 기록활동가들의 네트워크 구축과 콘텐츠 제작 관련한 애로사항도 함께 나누며 새롭게 시작하는 2분기 활동을 위한 교육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의 발굴과 에디터의 역량을 강화하는 시간으로 “성남시공익활동지원센터” 에서 진행되었다.

시민기록자인 센터 3기 에디터는 지난 3월 3일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남부센터 대회의실에서 20명으로 구성되어 위촉장을 받고, 경기도 31개 시·군을 기반으로 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1분기의 공익웹진은 보다 다양한 내용의 현장취재를 통해 새로운 주제와 함께 소중한 경기도민의 삶의 현장을 깊이 알아 갈 수 있는 내용들이 소개되었다. 이는 경기도 31개 시·군 현장에서 시민들의 참여는 민주주의가 더욱 성숙하고 국가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용인에디터 지구별 / 수원에디터 주야, 심지, 라이언, 다름, 봉봉맘 / 화성에디터 소소, 알랜 밤하늘, 참비움 /
고양에디터 생강 / 평택에디터 바람자전거 / 의왕에디터 유유당, 럭비공 / 의정부에디터 라라 /
하남에디터 목소리해결사 / 성남에디터 해피런 / 시흥에디터 수수꽃다리 / 군포에디터 옐로 구피 / 남양주에디터 공익인간

출처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공익웹진
공익웹진 콘텐츠 현황은 1분기 35건, 총 5,000회가 넘는 조회수와 콘텐츠별 평균 조회수가 192건 이상으로 유익한 공익활동 이야기들을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1분기 에디터들의 활동 내용은 정말 다양하다. 라라 에디터의 “3기 아카이브 에디터 발대식” 현장스케치와 생강 에디터의 “선거는 바뀔 수 있을까?”로 시작한 공익웹진은 탈북민과 세계여성의날, 장애인, 학생인권, 한글학교, 기후정의파업, 노동조합, 민주화운동, 세월호참사, 자립준비청년, 더큰이웃 아시아, 비건과 제로웨이스트, 병원 안심동행서비스 등 평소 관심에서 벗어난 지역 소식을 통해 31개 시·군의 다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역의 한발 앞선 비전을 꿈꾸며 나아갈 수 있는 감사하고 소중한 콘텐츠가 되었다.
정기회의를 통해 지난 1분기를 돌아보며, 공익활동 에디터로써 활동에 더욱 열심히 참여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며 2분기 활동의 행복한 출발을 시작하였다.
2분기에 센터가 준비한 다양한 계획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경기도 시·군 공익활동의 심층취재이다.
* 경기도 시·군 센터 설립현황도 함께 알아보자.
2021년도 설립된 군포시공익활동지원센터, 구리시공익활동지원센터
2022년도 설립된 안성시공익활동지원센터, 평택시공익활동지원센터, 성남시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북부지부)
지역별 공익활동지원센터를 거점으로한 다양한 지역별 사회문제들과 현안들을 발굴하여 지역 간 그리고 시민들과의 소통의 역할 상호 협력자로서 지속가능한 경기에 초석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영리스타트업 분야, 기획사업, 현안대응 분야 등 지역별 공익단체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취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경기북부 공익의제 발굴단 사업으로 “경기북부 생태도시”를 인터뷰하는 등 공익단체와 더 가까이 다가갈 에디터들의 활동을 기대해 주시기 바란다.
에디터 정기회의 과정 중 “공익콘텐츠 진료소”를 통해 자신의 프로젝트 조감도를 점검하고 상호 간의 활동 목표를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소그룹 토의 시간도 가졌다.

사례발굴팀은 “정신건강, 참사, 사회이슈, 시민단체, 성소수자인원, 외국인협오, 외국인노동자”, 현장취재 1조는 “독립운동, 통일, 플로깅, 디지털역사, 문해, 마을공동체, 생태도시, 평택평화센터, 공익단체”, 마지막 현장취재 2조는 “비도시, 공공공간, 1인가구복지, 분단의길, 사진, 어린이해방선언, 공익활동활성화, 평화를 찾자” 까지 다양한 키워드들이 언급되었다. 2분기에 얼마나 다양하고 알찬 웹진들이 등장할지 매우 기대되는 회의였다.

이어 옥소폴리틱스 고승혁 대표의 시민기록자 양성교육 심화과정 3강 “뇌피셜로 혼자말하는 콘텐츠 너머로”가 시작되었다. 챗GPT와 옥소AI를 활용해서 상호작용 콘텐츠를 만들고, 오픈AI 플랫폼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까지 교육하였다.

고승혁 대표는 이제는 시대의 변화 속에 글보다는 이미지 속에 담겨진 핵심적인 메시지 전달이 현실적이라고 전했다.
지난 지면 신문의 구독자, 신문열독율의 추세를 비교해 보며, 90%의 열독율이 이제 10% 이하로 떨어지고, 10% 속에서도 지면을 보는 시간은 불과 3분 미만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10%도 관련된 소수 인원임을 감안한다면, 현실적으로 글을 읽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된다며 이제는 마음속 진정성을 잘 전달하는 것과 그리고 집중할 수 있는 감정과 감성을 “잘” 전달하는 방법을 찾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시민기록자”의 사명과 소신은 남다른 것 같다.
바로 공익활동을 기록하는 “시민기록자”의 임무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호기심과 충동에 의한 기록, 보여주기식의 기록으로 따라가서는 안 될 것이다. 현실적인 추세와 시민기록자로서의 균형은 보는 견해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중심은 진정성인 듯 하다. 나날이 발전하는 좋은 콘텐츠를 활용하여 진정성 있는 기록을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교육 외에도 센터는 에디터의 활동을 지원하는 전문가 무료 상담을 통해서 보다 내실있는 취재 활동가로 나아가도록 “공익활동 상담소”와 연계해 관련분야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어 에디터의 역량강화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앞으로 3기 아카이브 에디터 시민기록자 20명의 역량이 지속가능한 경기지역 공익활동에 더욱 큰 힘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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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5
안녕하세요, 2023년도 경기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아카이브 3기 에디터로 활동하게 된 박현선입니다. 저는 목소리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분들의 문제를 해결해드리는 보이스코치로 활동하고 있어서 에디터 활동명을 목소리 해결사로 정하였습니다.
저는 2022년 1월, 담다코리아라는 하남시 소재 비영리 임의단체를 저의 친한 친구들과 함께 시작하였습니다. 담다코리아는 저희가 계획해서 시작한 단체는 아닙니다. 우리 이제 이런 일을 시작하자! 하고 이렇게 계획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정말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어요.
담다코리아의 운영위원진은 저의 중학교 동창들입니다. 10대 때부터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이이죠. 어렸을 때는 마음먹으면 십분 안에 만날 수 있는 가까운 사이였지만 성인이 되면서 마포, 김포, 안산, 하남 등 이렇게 지역이 크게 갈려서 자주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결혼 후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일 년에 한, 두 차례 겨우 만날 정도로 멀어졌지만, 마음만은 가까운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코로나 시국에 전혀 만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2021년 여름에 온라인으로 만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저희가 온라인 모임을 하던 때에 제가 굉장히 아끼는 북한에서 온 동생의 아버님께서 북한에서 소천 하셨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저의 친구들과 저는 그 친구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하였어요. 그렇게 탈북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한 것이 담다코리아의 첫 번째 사업이었습니다. 저희가 마음먹고 계획해서 단체를 만든 것이 아닌 것 맞죠? 정말 멋지게도 장학금을 받게 되어 있었던 하영이가 자신보다 더 힘든 탈북민 친구에게 기꺼이 양보해주어서 그 시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다른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그 큰 경험을 한 우리는 이제 무엇이든 작은 실천부터 한반도 통일을 위한 일을 하자라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가까운 탈북민 동생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을 시작했어요.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 남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만나서 좋은 일도 하고 대화도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며 시작했습니다. 남한 사람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고 불편함을 느낀다면 이곳에서 사는 것이 너무나도 힘든 일이잖아요. 사회적 고립감을 담다코리아를 통해 해소하고 새로운 힘과 용기를 받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원이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분들이 잘 정착하시면 통일 준비는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거든요.
담다코리아의 첫 번째 쓰레기담기(이하 쓰담) 장소로 남산 안중근 기념관 주변으로 정했습니다. 남산을 찾는 시민들이 안중근 기념관은 가지 않는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컸거든요. 저희는 기념관 앞에서 멋있게 사진을 찍고 안중근 기념관 견학을 시작으로 쓰담 봉사를 시작했어요.
<1차 쓰담 사진 안중근 기념관+남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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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코의 첫 번째 쓰담 장소로 안중근 기념관을 정한 이유는, 남북의 가장 가까운 공통의 역사가 독립운동사이기 때문입니다. 6.25 전쟁 이후 70년이 넘도록 분단되어 있지만, 우리는 원래 한민족이었음을 기억할 수 있는 너무나도 중요한 역사이기 때문에 독립운동가의 발자국을 따라 쓰레기를 줍기로 했어요. 쓰레기를 줍는 단순한 환경보호 차원을 넘어 다가올 통일을 위한 작은 실천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안중근 기념관을 견학한 후 당시의 시대상에 대해 탈북민들과 함께 대화하며 남산공원의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안중근 루트를 참여했던 담코들의 후기를 전해드립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할 때부터 몸에 전율을 느낄 정도로 많은 감정이 있었습니다. 기념관의 자료들을 하나하나 읽을 때 이런 분들이 목숨 바쳐 이 땅을 되찾아주셔서 나 또한 평화로운 오늘을 살 수 있음을 다시 느끼게 되었어요.”
북에서 오신 분들은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등 아주 유명한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은 알고 있지만 자세히는 모르고 있었어요. 반쪽짜리 역사로 묻혀버리기에는 우리에게 정말 큰 산 같은 분들입니다. 담코의 쓰담활동을 통해 한반도 공통의 역사를 되짚어봄으로 우리는 원래 하나였다는 것을 확인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1차 안중근 루트를 시작으로 쓰담2차는 서대문형무소를 견학한 후 청와대 인근에 쓰레기를 주으러 갔어요. 청와대를 시민에 막 공개하던 시기라 인근에 쓰레기가 넘친다는 뉴스를 보고 갔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은 씁쓸하게도 늘 쓰레기가 많아요. 담코는 다른 사람이 버린 쓰레기를 주워 담음으로 깨끗한 통일한반도를 준비합니다.
<2차 쓰담: 서대문형무소+청와대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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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쓰담은 날씨가 정말 좋았던 가을날 잠원한강공원에서 진행 후 따스한 가을볕 아래에서 피크닉을 했어요. 담코둥이 준경이가 북에서 온 현우 형과 얼마나 대화를 잘하든지 대견했습니다. 한반도의 미래를 짊어질 다음 세대에 남북의 경계를 만들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쓰레기를 주우며 햇볕 아래에서 건강하게 땀도 흘리고 탈북민과 대화도 하고 1석 3조 쓰담입니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고 식기류도 모두 챙겨온 멋진 엄마들입니다.
<3차 쓰담: 잠원한강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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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쓰담은 서울역 앞에 멋있게 서 계시는 독립운동가 강우규 루트로 진행했습니다. 출발 전 강우규 의사에 대한 퀴즈를 풀고 그 분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쓰레기를 담으러 갔습니다. 현재 서울역 앞은 공사로 길이 막혀있는데요, 아쉽게도 동상 앞을 지나가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강우규 의사님에 대해 모르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감사했던 것은 2019년도에 처음 강우규 의사님에 대해 조사하면서 서울역 광장을 갔을 때에 비해 그 지역이 많이 깨끗해진 것입니다. 당시에는 강우규 의사 동상에 오물과 쓰레기, 냄새가 지독하여 정말 마음이 아팠거든요. 이제는 시에서 관리하시는지 그 때에 비해서는 아주 더럽지 않았어요. 그러나 서울역을 조금 벗어나 골목골목 버려져 있는 쓰레기와 담배꽁초를 보니 한숨이 나왔습니다. 종로는 독립운동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나 3.1운동 집결지 등 곳곳에 관련 표지석 등이 있지만 유심히 보는 시민들을 찾기는 어려웠어요. 담배꽁초나 오물로 뒤덮여 있는 것을 볼 때는 참 마음이 아픕니다.
담코 운영위원진은 아이들을 양육하는 어머니들이에요. 7세 아동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있어요. 제 주변 탈북민 동생들도 오기 때문에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게 돼요. 그래서 사실 사전 준비에 품이 많이 드는데요, 모임을 하면 할수록 더욱 충실히 준비하게 됩니다.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보며 환경을 보호하는 실천과 동시에 북에서 오신 분들과 함께 통일한반도의 미래를 준비하는 이 모임이 정말 즐겁거든요. 쓰담 이후에 여운이 굉장히 많이 남습니다. 4월은 이회영 루트(명동)로 5월은 부춘화 루트(제주)로 갑니다. 남북 공통의 역사인 독립운동사를 통해 과거를 되돌아보며 이미 와있는 통일인 탈북민분들과 함께 통일한반도를 준비하는 담다코리아에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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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9
오늘날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것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정치적 갈등라고 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빈부격차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인간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로봇과 컴퓨터 인공 지능, 4차 산업 혁명을 필두로 하는 기술적 발전이 인류의 사회에 위협이 된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보다도 가장 긴급하게 다루어야 할, 천천히 사회의 내부를 갉아먹는 치명적이고 심각한 독의 이름은 ‘편견’이다.
편견은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편견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는 혐오 또한 증가하고 있다. 혐오와 편견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어떠한 집단에 대해 편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증오가 만들어지고 곧 증오는 혐오로 변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북미에서 발생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코로나를 이유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보면 왜 편견이 쉽사리 혐오로 이어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 통계청은 2020년 전국 경찰에 신고 된 증오 범죄 중 아시아인을 노린 범죄가 269건으로 2019년의 67건보다 더 높게 증가하였다고 밝혔으며, 뉴욕의 60대 아시아 여성은 자신의 아파트로 들어가던 중 인종 차별 욕설을 듣고 머리를 가격 당하고 수백 번에 걸친 폭행을 당했다.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
코로나 상황 속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이 그녀에게는 폭행이라는 혐오로 돌아온 것이다. 대한민국 또한 편견과 혐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최근에 대한민국의 한 청년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다. 동성애자라는 편견을 가진 사람이 표출한 혐오의 방식이 폭행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편견이라는 이름의 독이 우리 사회에 점점 퍼지고 있다, 따라서 편견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필요성이 있다.
편견이란 무엇인가. 편견이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뜻한다. 우리 사회는 과연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아니다. 2019년 국가통계포털KOSIS 설문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다문화 가정은 100만으로 사회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들이 편견에서 자유로울까?
조사 결과는 생각보다 흥미로운 내용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당시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주위에서 차별 받은 경험이 있는지 설문을 했을 때 일 년에 1~2회 정도 당했다고 응답한 유형(50.8%)이 가장 많았으며 뒤이어 2~3개월에 1~2회(17.6%), 한 달에 1~2회(7%), 일주일에 1~2회 이상(3.9%)이라고 답했다. 과연 같은 민족이 아닌 자들에게만 편견 속에서 차별을 가하는 것일까.
2022월 3월 7일 갱신된 국가통계포털 설문 조사에 따르면 같은 민족인 북한 이탈 주민에 대한 편견도 심각한 수준이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북한 이탈 주민이 남한 생활에 불만족하는 주된 이유 중 1순위로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남한 사회의 차별/편견 때문이라고 답한 비율은 무려 전체 16.5%였으며 1, 2순위로 똑같은 내용을 선택한 비율은 26.1%나 되었다.
서론에서 보았듯, 편견은 쉽게 혐오로 더 나아갈 수 있다. 한 사람의 편견이 만들어낸 수많은 폭행과 같은 난폭한 행위들이 이를 증명한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편견으로 둘러싸여 있다. 분명히 같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과 다르다고 말하며 그들을 본인들과 구별 짓는다.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이 60대 아시아 여성에 대한 폭력을 만들어냈고,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은 동성애자에게 주먹을 휘두르게 하였다. 게다가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이, 북한 이탈 주민에 대한 편견이 그들에 대한 차별을 만들어내었듯, 편견은 차별과 혐오를 만들어낸다.
그들이 왜 폭행을 당해야 했는가, 그들이 왜 차별을 당해야 했는가? 그들이 주먹을 맞을 이유는 없었다. 다른 민족이라고, 타 문화권에서 온 자들이라고 차별을 당할 이유가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독약처럼 천천히 스며들어오는 편견을, 다른 이들에 대한 폭행과 차별을 정당화시키는 이 편견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러한 사태들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우리 사회를 갈라놓는 편견을 지우기 위해 우리는 사람을 집단으로 바라보지 말고 개인으로 그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 우리가 편견에 휩싸이는가? 그것은 사람들을 우리가 상상해낸 집단의 이미지와 동일화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문화 가정이기 때문에 이럴 것이며, 그들이 탈북민이기 때문에 이럴 것이며, 그들의 출신지가 어디이기 때문에 이럴 것이다. 아니면 그들의 성별이, 그들의 직업이, 그들의 지위가, 그들의 학벌이 이러므로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빠지며 무의식중에 편견이라는 이름의 색안경을 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글을 쓰는 본인도 편견에 사로잡혀 다른 이들을 증오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대학생이었을 때의 일인데, 대학교 신입생에게 있는 조별 과제가 나에게 여간 큰 곤혹이 아닐 수가 없었다. 당시 교수님께서는 매주 있었던 조별 과제를 조원들과 함께 해결하라고 주셨는데, 같은 학번이지만 나이가 많았던 다른 조원들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참여조차 하지 않으며 내가 하는 조별과제를 고맙다는 말없이 가져가서 제출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조별 과제를 혼자서 진행하던 나에게는 편견이 하나 생기기 시작하였다. 바로 같은 학번이지만 동갑이 아닌, 그러니까 20세의 나이로 대학 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은 게으르고 할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편견이었다. 또한 조별 과제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마음마저 자리 잡히고 있었다.
그렇게 조별 과제를 진행하던 중에 대학 글쓰기 과목까지 조별 과제가 만들어졌고 조원 중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같이하게 되었다. 내가 지니고 있던 편견 때문에 나는 처음 만난 그를 그리 좋게 바라보지 않았다. 그 역시도 과제를 대충 진행하지는 않을까, 혹은 또 나 혼자만 조별 과제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서 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생각들을 무의식중에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조별 과제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면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었고 가히 낭중지추라고 할 만큼 그 능력을 있는 힘껏 조별 과제에서 보여주었으며 부족함이 많고 과문하였던 나에게까지 큰 영향을 주었다. 나는 그를 그로서 본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집단으로만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틀렸음을 그는 증명했고 편견을 어떻게 해결하여야 하는지를 그가 나에게 보여주었다.
위에서 나타나듯,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이 편견을 없앨 수 있는 작은 방향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집단으로 바라보지 않고 개인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을 그들이 속한 집단의 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을 때, 다문화 가 정의 A가 아닌 그저 A라는 사람, 북한 이탈 주민 B씨가 아닌 그저 B씨로 바라볼 때 우리 사회가 편견이라는 독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있는 편견이라는 독약은 결국 혐오가 될 것이며 다른 이들에게 상처 입히기만을 반복할 것이다. 사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집단의 모습으로만 보면서 그들에 대한 편견으로 증오와 혐오를 반복한다면 이 수레바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절대로 나누어지지 않고 우리 모두는 편견이 만들어내는 피해자가 될 것이고 가해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점점 사회 안으로 스며드는 독약을 없애기 위해서,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이들을 그들이 속한 집단으로 보기 이전에 개인으로 봐야 할 것이다. 결국 개인과 개인으로 서로 바라볼 때, 우리는 편견을 깨뜨릴 수 있으며 편견이 가져올 폭력과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 본 원고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가 작성한 원고로, 센터의 공식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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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