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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스케치] 좋은이웃 & 캄보디아 친구들과 함께한 1박 2일 강릉 여행기 — 거대한 경계의 장막과 차가운 이질감의 벽을 넘어, 경기도 골목마다 다정한 환대와 연대의 푸른 숲을 일구어내는 감동의 여정

     타향의 외로움과 쉴 새 없는 단절의 소용돌이 뒤편에서, 굳건한 손길로 국경을 넘어 마음을 포개고 찬란한 연대의 내일을 빚어내는 눈부신 발자취

    저마다의 자리에서 묵묵히 경기도 구석구석의 이웃들과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던 수많은 좋은이웃들과 캄보디아 친구들, 그리고 공익활동가들.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우리가 함께 손을 잡고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진정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깊은 울림의 질문 앞에 섰다. 방관과 무관심의 장막을 깨부수고, 묵묵히 두 손을 모아 서로의 숨결을 보듬으며 촘촘한 연대의 그물망을 엮어 온 ‘좋은이웃 & 캄보디아 친구들과 함께한 1박 2일 강릉 여행기’ 현장의 눈부신 발자취를 깊이 들여다보다.

    "우리는 과연 ‘국적과 문화가 다른 이웃들이 겪는 소외와 낯섦은 개인이 알아서 견뎌내야 할 타국의 짐일 뿐,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손을 잡고 강릉의 바다로 떠나 따스한 가족이 될 수는 없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캄보디아 친구들, 그리고 공익활동가들이 손을 맞잡으며 저마다의 진심으로 평화와 상생의 품을 엮어내는 ‘국경을 넘어 꽃피우는 환대와 자치의 품’을 어떻게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풀뿌리 국제 연대 자치와 상호 존중적 문화 공존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경기도 전역에 지속 가능한 상생과 평화의 숲을 깊이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좋은이웃 & 캄보디아 친구들과 함께한 1박 2일 강릉 여행기’가 품은 3가지 핵심 과제와 비전

    1. 방관과 무관심의 장막을 허무는 ‘풀뿌리 문화 교류 및 자발적 환대 생태계 구축’

      • 이주민과 선주민이 서로를 낯선 이방인으로 여기며 거리를 두던 낡한 관행에서 벗어나, 경기도민과 캄보디아 친구들이 여행의 마당에서부터 직접 어우러지고 서로의 문화를 배우는 자발적 생태계 다지기.

      • "진정한 환대 자치의 완성은 거창한 다문화 지원 정책의 선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강릉의 푸른 바닷가 모래사장에 모여 앉아 서로의 손을 잡고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이웃이다'며 환하게 웃는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2. 고립을 넘어 온기를 잇는 ‘시민 참여형 국제 연대 감수성 및 공론장 강화’

      • 타향살이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문화적 장벽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지혜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 창출.

      • "혼자서 거대한 언어의 벽과 이국땅의 고립과 마주하면 숨이 차고 외롭지만, 경기도 도민들과 캄보디아 친구들이 손을 잡고 함께 여행을 떠나면 그 어떤 경계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3.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환대의 그물망으로 잇는 ‘상생 글로벌 네트워크’

      •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다양한 이웃 커뮤니티들과 세계 각국의 친구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모든 이의 존엄과 문화적 권리가 차별 없이 보장되는 상향식 민주주의와 시민 자치 실현.

      • "모든 도민과 이웃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공생의 무대" 완성.

    현장의 온기로 채워졌던 뜨거웠던 환호와 교감의 시간들

    도내 각지에서 모인 좋은이웃들과 캄보디아 친구들, 그리고 따스한 연대를 염원하는 수많은 도민이 한자리에 모여 1박 2일간 강릉의 바다를 누비며 뜨거운 우정을 나누고, 경기도를 진정한 '어떤 국적의 이웃도 외롭게 방치되지 않는 평화와 환대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았던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온기로 가득 채웠다.

    • 참가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처음엔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는데, 강릉의 탁 트인 바다를 함께 보며 파도 소리에 맞춰 웃고 캄보디아 친구들과 손을 맞잡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니 비로소 국경을 뛰어넘는 진짜 따뜻한 온기가 내 손끝에서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참가자들의 뭉클한 순간들.

    • 경기도형 글로벌 환대 자치 도시 확산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동네마다 이웃들과 이주민 친구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나라문화를 나누고 여행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우리동네 세계 사랑방'을 상설화하자", "시민들의 반짝이는 에너지를 모아 더 큰 환대의 망을 만드는 '경기 글로벌상생 연대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꾸리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가 마주한 문화의 벽과 언어의 파고가 때로는 높고 매섭다 할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우정의 물줄기가 모여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란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손길로 그려가는 경기도의 찬란한 내일

    세상을 바꾸고 진정한 시민 자치와 공생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힘은 차가운 출입국 통계 데이터나 거창한 정부의 다문화 행사 보고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 강릉의 바닷가와 경기도의 좁은 골목길에서 이웃들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우리의 정직한 환대와 다정한 연대로 경기도의 찬란한 공생 역사를 활짝 밝힌다"며 따스한 온기를 건네는 평범한 시민들과 좋은이웃들의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연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방관과 무관심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에 평화와 환대의 숲을 영원히 일구어가는 공익활동가들과 도민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도 곳곳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온기들이,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기도의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좋은이웃 & 캄보디아 친구들과 함께한 1박 2일 강릉 여행기
    윤작가

    조회수 1691

    2025-09-22
  • 좋은이웃 & 캄보디아 친구들과 함께한 1박 2일 강릉 여행기

    "출발합니다!"

    버스가 움직이자마자 터진 꺄르르 웃음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무려
    48명이 함께한 이번 여행, 출발부터 소풍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밀양, 전주, 여주, 아산, 인천, 시흥, 서울, 안산에서 모인 캄보디아 친구 중
    몇몇은 한국에서의 첫 여행이라며 설레는 눈빛을 반짝였다. 버스 안에서 한 명씩 돌아가며 간단한 자기소개를 나눴다. 팔테이랏, 시언
    시낫, 꽁스레이립... 쉽게 기억하기 힘든 이름들이었다. 그들에게도 우리 한
    국 이름이 똑같이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내 이름은 윤희웅입니다. 부르기 어렵죠? 그냥 미스터 윤이나 윤 씨라고
    불러 주세요.“ 

    첫 번째 시험대, 추어탕

    전망대 휴게소에서 멀리 보이는 강릉 시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쉼
    없이 터지는 까르르 웃음소리에 여고생 수학여행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점심으로 강릉에서 유명하다는 추어탕을 먹었다. 진행자는 추어탕이 미꾸라
    지 요리라는 말을 나중에야 했다. 선입견을 줄이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생
    각해 보면 우리는 의도하지 않아도 언제나 보이지 않는 선입견의 그림자
    속에서 상처받으며 살아간다. 옆자리에 앉은 나빈은 무 짠지와 열무김치로만 밥을 먹고 있었다. 추어탕
    한 그릇을 퍼주며 먹어보라고 권했지만, 살짝 맛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에도 나빈은 어느새 밥 한 공기를 깨끗이 비웠다.

    "여기요! 밥 한 공기하고 밑반찬 좀 더 주세요."

    내가 손을 들고 소리쳤다. 

    바다에서 하나 되다.

    강릉 순긋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조별 게임이 시작되었다. 꼬리잡기와 무궁
    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뛰다 보니, 어색했던 사이도
    어느새 친구가 되었다.

    "캄보디아에도 꼬리잡기와 비슷한 놀이가 있어요. 오랜만에 하니까 정말 재
    미있네요."

    이어진 물놀이는 한마디로 '난장판 즐거움'이었다. 수중 기마전에서 승리한
    팀은 챔피언이라도 된 듯 서로를 번쩍 안아 올렸다. 바닷물 속에서 비명과
    웃음소리가 섞여 터져 나왔고, 그 순간만큼은 국적도 나이도 모든 경계가 사라졌
    다. 

    해변 파티, 흥이 폭발한 밤

    저녁을 먹고 시원한 커피를 한 잔씩 들고 해변으로 모였다. 안산에서 멀리
    강릉까지 함께해준 민주노총 커피차였다. 역시 흥이 많은 캄보디아 친구들
    이었다. 낮에 수줍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캄보디아 친구들
    은 춤과 노래로 해변을 가득 채웠다. 특히 가수가 꿈이라는 시낫이 마이크를 잡자, 모두가 환호했다. 작은 체구
    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가창력에 모든 사람이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담느라
    정신없었다. 한국 대표도 질 수 없다며 마니또 청년 한 명이 '막걸리 한 잔'을 열창했다. 그러자 시낫을 비롯한 캄보디아 친구들이 원을 그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막춤을 추며 빙글빙글 돌았고, 때로는 한 명씩 중앙으로 나와 춤솜씨를 뽐냈다. 폭죽이 터지고 바닷바람이 불고, 웃음소리가 파도를 덮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를 바라보며 홀로 앉아 있는 친구에게 다가가 곁에 앉았다.

    "바다 처음 봐요?"
    "아니요. 캄보디아 고향에도 바다가 있어요. 여기와 비슷해요."
    "그럼, 고향 생각이 나겠네요."
    "생각나요."

    그가 휴대폰에 저장된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다. 내 가족도 아닌데 사진을 보
    는 나는 왜 눈물이 고이는 걸까. 

    한옥에서의 긴 밤

    숙소는 나도 처음인 강릉 선교장의 오래된 한옥이었다. 대청마루에 앉아
    별을 올려다보니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여름밤을 보내던 기억이 스르르
    떠올랐다. 캄보디아 친구들에게 한국 전통주의 맛을 보여주고 싶어 아껴두던 인삼주
    를 강릉까지 들고 왔다. 역시 호불호가 갈렸다. "술이 아니라 약이에요!"라
    는 내 말에 캄보디아 친구들은 한 잔, 두 잔 마시더니 마침내 "역시 약은
    몸에 좋다!"며 웃어댔다. 우리는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한국 친구가 바닥에 놓인 안주들을 건너뛰어 돌아오자, 여기저기서
    짧은 ‘어~’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캄보디아에서는 음식 위로 지나가면 안 되는 거죠?"
    "네."
    "우리도 그래요. 밥상 위에 음식이 있으니까, 밥상을 뛰어넘지는 않죠. 그런
    데 오늘은 바닥이다 보니 생각 없이 넘었네요. 미안해요."
    그 작은 순간, 문화의 차이가 또렷이 드러났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이런
    차이를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하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사소한 일이라
    치부하며 무심히 지나쳐 온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차이는 어색함이
    아니라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음
    을 배운다.

    친구들의 진심 어린 이야기

    반월동에서 살고 있는 유혜림은 "반월은 도시 같기도 하고 시골 같기도
    해서 딱 좋다"며 10년째 그곳에서 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며칠 전 한 명
    이 이사 와서 이제 캄보디아 사람이 3명이나 되었다며 기뻐했다. 동네 자랑
    이 어찌나 진심이던지, 듣는 나도 반월이 괜히 좋아졌다. 소피에룬은 캄보디아에 두고 온 아이 사진을 꺼내 자랑하며 "잘 키우고
    싶다"라는 진심을 전했다.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아버지의 마음은 국적과

    상관없이 똑같았다. 내 아들과 나이와 이름이 같은 요셉은 "캄보디아에 오면 한국에서 번 돈
    으로 지은 여관에서 공짜로 재워주겠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취기가 오르자
    나를 아빠라고 불렀다. 나빈은 평소 일터에서 같은 나라 동료가 없어 말 한마디 못 하고 지냈는
    데, 이번에는 모국어로 수다를 나누며 행복해했다.

    12월에 돌아가는 띠나는 한국에서의 가장 좋은 기억으로 오늘을 꼽았다. 캠은 "한국에서 이렇게 많이 웃은 건 처음"이라며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췄다.

    둘째 날의 따뜻한 마무리

    아침에는 선교장을 산책하며 전통문화를 함께 느꼈다. 선교장 해설사는 외
    국인들에게 한마디라도 더 쉽게 설명해 주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뜨거운 강
    릉의 햇살도 그들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선교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추억을 사진에 담았다.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으로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그리고 여행의 클라이맥
    스인 1박 2일 조별 성과 시상식과 또래 마니또들이 준비한 선물 시간이 기
    다리고 있었다. 수건, 모자, 텀블러 같은 작은 선물이었지만,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을
    얻은 듯 환했다.

    여행을 마치며 

    이번 강릉 여행은 단순한 1박 2일이 아니었다. 캄보디아 친구들의 삶과 땀,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함께 나눈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들은 한국에서 모두가 피하는 일터에서, 젊은 사람 한 명 없는 농촌에서
    묵묵히 일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그 가족을 위해
    땀 흘리며 살아간다. 그 모습이 존경스럽고, 또 부럽기도 했다. 부디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은 오늘처럼 웃음이 가득하고 좋은 기억만 쌓이
    길 바란다. 힘든 기억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돌아가는 날까지 건강하게, 꿈을 잃지
    않고 지내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이번 여행이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
    인 노동자가 정기적으로 만나 함께 웃고 어울리는 자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왜냐
    하면 우리는 다 같은 노동자이니까. 마지막으로 이번 자리를 마련해주고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의 마
    음을 전한다.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오늘의 웃음과 추억이 가능했
    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외국인 노동자들 모두 항상 우리 곁의 좋은 이웃으
    로 함께하겠다.

    좋은이웃 & 캄보디아 친구들과 함께한 1박 2일 강릉 여행기
    윤 작 가

    조회수 64

    2025-08-29
  • “얼쑤~~” 민요나 판소리를 부를 때 자주 쓰는 추임새다. 흥을 돋우고 소리꾼을
    응원하며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마법의 소리다. 안산에는 한 20년 “얼쑤!”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광폭 시민 활동가 얼쑤 김미숙의 일문일답 추임새를 들어 보
    자. “각자도생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로, 얼쑤!”

    후원하고 활동하는 단체 목록을 세어보니 26개더라. 조금만 소개해 달라. 안산 YWCA의 평생회원이자 현재 대표다. 활동비를 받는 자리가 아닌 비상근 활
    동가다. 4.16안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안산평화연대 공동대표, 안산 기후위기 비상
    행동 공동대표기도 하다. 오라는 데 많고, 가야 할 데도 많다. 사랑하는 4.16합창
    단 소프라노 단원, 시화호생명지킴이와 안산환경운동연합 활동가이자 강사이며
    (사)안산공동체미디어 단원FM에서 환경 방송 ‘얼쑤의 얼쓰Earth’를 진행하고 있
    다. 안산·시흥 지역 노동자들의 생활안정과 권익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사)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제회 ‘좋은이웃’의 생활안정팀에서 오래 활동하고 있다. 올해는 캄보
    디아 노동자들과 만나 잔치 음식도 해 먹고 지지하는 만남을 6번 진행하는데, 8
    월에는 여행도 간다. 양계장에서 일하는 한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는 한 달에 휴일
    이 두 번뿐이다. 이동의 자유도 이웃과의 소통도 없다. 외부에서 병원균이 옮겨
    와 닭이 조류독감에 감염될 수 있다는 이유다. 모임에서 뭐가 좋았냐 물으니, 올
    때 전철도 타고 나무도 보고 자동차도 보고, 사람들과 얘기한 거라고 하더라. 단체 상관없이 제일 신경 쓰는 건 탈핵이다. YWCA가 2년마다 집중 과제를 선정
    하는데 10년 넘게 ‘탈핵’이 있다. 우리 아이 초등학교 6학년 때 환경운동연합, 안
    산YWCA 등이 버스 한 대로 월성 원전 이별 퍼포먼스에 갔다.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는 정말 무서웠다. 핵에너지가 안전하다 경제적이다 그러지만, 터지면 끝이다. 탈핵과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운동이 중요하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에서는
    작년에 발전 수익으로 사회기여를 1억 원 했다. 발전 수익을 낼 수 있고,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 귀한 사례다. 여성단체 YWCA(이하 Y)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아이를 낳고 나니 환경이 망가진 게 보이더라. 내가 배워서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무언가 기여하고 싶었다. 당시에 돌도 안 된 아기의 사교육을 위해 선생님을
    집으로 부르는 주변 사람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와 직접
    재미있게 놀고 싶어 아이를 안고 도서관, 서점, 미술관을 다녔다. 아이 교육에
    대해 좀 더 배우고 싶어 찾아간 게 YWCA였다.

    - 3 -

    처음 권유받은 게 NIE(Newspaper In Education) 지도사였다. 당시 N.I.E.가 붐
    이었다. 신문을 활용한 교육 자료로 아이들의 생각을 키우는 활동이다. 심화 과정
    수료 요건이 60시간인가 80인가 봉사 후 보고서 제출이었다. 5살 딸아이를 데리
    고 일주일에 한 번씩 N.I.E. 교육 봉사를 했다. 2년, 3년 계속하니 ‘검증된 강사’
    소리 들으며 강의 요청을 받았다. 새로 문을 연 지역아동센터나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작은 도서관에서 봉사 수업을 하다 보니 입소문이 나고 점점 강사 경험이
    쌓였다. ‘시화호생명지킴이’라는 단체도 찾아가 교육을 받고 지역에 봉사하게 되었
    다. 지금 내 주업이 강사다. 독서 강사, N.I.E. 강사, 환경 강사 등으로 영역이 넓
    어졌다. 아이 잘 키우려던 엄마가 광폭 시민 활동가가 된 어떤 전환점이 있었나?

    4.16세월호 참사였다. 단체라고는 YWCA, YMCA, 시화호생명 지킴이, 환경운동연합 정도만 알다가 4.16 참사를 계기로 수많은 시민과 연결되었다. 안산에 연대하는 작은 시민단체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이상하게 여겼던 이 사회가 그래도 여기까지 굴러온 건 이분들 덕분이겠구나, 알겠더라. 시간이 되면 달려가 힘을 보태고, 행동하고 후원하게 됐다. 내 삶이
    ‘각자도생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로’ 전환했다. 우리 집이 단원고등학교 근처 빌라 101호다. 302호가 단원고 2학년 4반 고
    박수현 군의 집이었다. 2002년 3월에 이사 와서 제일 처음 사귄 이웃이 수현이
    엄마 영옥 언니였다. 언니는 “배추전 먹으러 와.” “떡볶이 했으니 올라와.”
    하고많은 날 우리를 불러주거나 음식을 갖다주었다. “밥이 똑 떨어졌어, 밥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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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 줄 수 있어?” “언니 달걀 좀 주세요.” 이게 우리 일상이었다. 수현이가 고2
    때 우리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외동인 딸에게 수현이는 가장 가까운
    오빠요, 놀이 상대였다. 수현이는 연년생인 누나의 가방을 들어주고, 밤이 늦으면
    누나 마중을 나가는 동생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2014년 4월 16일, 집에서 컴퓨터로 N.I.E. 수업
    자료를 만들다 인터넷 속보를 본 거다. 세월호와 단원고, 이걸 보는 순간
    수학여행 간 수현이 생각이 나 바로 영옥 언니한테 전화했다. “걱정하지 마, 다
    구했대. 그래도 다 젖었을 테니 깨끗한 옷 챙겨서 지금 형부랑 내려가는 중이야.”
    그랬다. “너무 다행”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놀란 가슴에 배는 고픈데 먹고 싶은
    게 없어 밥을 물에 말아 후루룩 먹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애들을 못 구했다는
    거다. 세월호가 내 이웃의 일이자 내 일로 연루되었군요.

    그날 아이가 학교에서 오길래 “수현이 오빠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대. 우리 같이
    학교로 가볼까? 사람들이 모여 소식을 듣는 것 같아.” 말하며 단원고에 갔다. 4월
    16일, 무사귀환을 간절히 바랐던 첫 번째 촛불 기도회로 4.16활동이 시작됐다. 멈
    출 수가 없었다. 영옥 언니가 진상 규명이라든가 서명 활동을 계속하니 나는 뭐라
    도 언니를 도와야 했고 돕고 싶었다. 참사 4일째, 남편과 아이랑 셋이 진도 체육
    관에 갔다. 영옥 언니와 은희 언니와 유가족이 된 지인들을 보았다. 두 언니는 당
    시 내 인생의 롤모델이었다. 울고 소리지르고 쓰러지고, 민간 잠수사가 어떻고, 왜
    찍어, 카메라 뺏고, 막 드잡이하고, 그걸 다 보았다. 사복 경찰이 진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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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히 그분들만큼 큰 아픔, 슬픔에 빠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그 슬픔을 같이 겪었다. 너무 끔찍한 세월이었다. 영옥 언니가 진도에 계시면서, “뉴스에서 나오는 거 저거 다 거짓말이야”라며 진실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뜨거운 폰을 얼마나 눌러댔던지 오른쪽 집게손가락이 아파서 아직도 잘 못 쓴다.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거의 20년 가까이 지낸 지인하고 의절하는 일도 있었다. 참사 후 며칠 안 돼서 노란 리본 이미지를 카카오톡 프사로 쓰는데, 저작권에 걸
    린다고 1인당 몇백만 원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 딸 학교 보내기 전에 노란
    리본으로 머리를 묶어주고 뒤통수를 찍어서 그걸 지금까지 프사로 쓰고 있다. 못
    바꾸겠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세월호 참사는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군요?

    그렇다. 나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언니와 함께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다. 대학을 왜 가는지 몰랐다. 그런데 내가 대학에 갔더라면 더 일찍
    진보적인 사상을 접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을 텐데, 모르고 살아 너무
    안타깝더라. 나는 부당한 일을 보면 조용히 떠나는 식으로 살았다. 일만 하다 결
    혼했고, 아이 낳고서야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는 거리를 둘 수 없는
    내 일이었다. 우리 애는 수현이네 집에서 먹고 놀기 좋아했다. 오빠 놀아 줘, 하
    면 수현이는 뭐 하고 놀까, 물어보며 다리에 미끄럼을 태워주는 오빠였다. 수현이
    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유치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커서 오빠랑 결혼한다고 했다. 수현이가 부모님에게 무언가 사 달라고 하면 “넌 1층 장모님한테 가서 얘기해라”
    놀림받을 정도였다. 그런 수현이가 우리 곁을 떠나 너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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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사가 아이한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거 같은데 괜찮은지?

    아이가 한동안 수현이를 입 밖에 못 내더라. 딸은 모태신앙이었는데 참사 후 하나
    님은 없다 했다. 수현이 오빠가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거다. 중학교 2
    학년 때 학교 수업 중에 자꾸 다른 책을 읽었다. 왜 그러느냐니까 “내일 죽을지도
    모르잖아. 지금 안 읽으면 모르고 죽잖아.” 그랬다. 수현이 오빠를 며칠 만에 찾았
    냐길래 일주일쯤이라 했더니, 배 안에서 하루만 살고 죽었으면 좋겠다더라. 살아
    있었으면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럽고 무섭고 춥고 보고 싶고 그랬겠냐고. 딸아이는
    여주로 고등학교를 갔는데, 택시 기사가 어디서 왔냐길래 안산이라 했더니, ‘세월
    호!’ 이러면서 말 잘 듣는 애들은 가만히 있어서 다 죽고, 말 안 듣는 애들만 살
    았다 하더란다. 애가 그 기사를 죽이고 싶었다고, 막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싶다
    그랬다. 트라우마가 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애도하고 있더라.

    시민 활동가로서 바쁜 중에 4.16 합창단 활동도 한다.

    4.16합창단이 생길 때부터 마음이 갔는데 몇 년 전에야 결합했다. 친언니
    ‘만주벌판’도 단원이다. 좋은 목소리와 건강한 정신을 주신 엄마도 합창단 행사로
    자주 본다. 아픔이 있는 곳에서 노래로 폭넓게 연대하니 참 좋다. 최근 전태일
    의료 센터 건립을 위해 공연했다. 효순이 미선이 저금통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우리 딸이 재작년엔가 “엄마 생일 선물 뭐 해줄까?” 하다가 “엄마는 물건은 안
    좋아하니까 엄마 이름으로 기부해 줄게.” 그러더니 효순이 미선이 평화공원 짓는
    데 딸이 5만 원을 기부해 준 적 있다.

    현재 가장 마음 쓰는 활동이나 고민도 좀 나누자.

    아무래도 YWCA 회장이라는 중책이 마음 쓰인다. 지금 회원 증모 기간인데, 이걸
    내가 잘 못한다. 대신 남편이 평생회원에 가입하게 했고, 내년에 우리 딸 돈 벌면
    평생회원 가입시키려 한다. Y는 기독청년여성회(Young Women Christian
    Association)다. 나도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 신앙이 왜 필요한가, 계속 질문한다. 내가 나가는 교회와 한국 기독교회들이 정말 예수를 따르는지, 세
    상의 빛과 소금인지, 우는 자와 같이 울고 웃을 때 함께 좋아해 주는가, 의심스러
    웠다. 남편은 교회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내가 “왜 비판하지 않아?” 그러면 그는
    좋은 것만 들려, 부분으로 기분 나빠할 필요 없다는 식이다. 답답함을 느끼지만,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잖나. 나는 일부 교회가 없어져도 된다고 본다. 교회 안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게 아니니까. 헌금도 교회 말고 사회로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인데, 남편은 다르다. 그가 우리 가정의 주 수입을 담당하니 내 뜻대로 할 수
    없다. 내 수입은 사회로 12조 13조도 낸다. Y가 있어서 사회 정의나 연대의
    갈증이 해소되고 내 신앙을 이어가는 거 같다. YWCA 활동가로서 정체성을 좋아하는군요?

    그렇다. 7월 초 Y 신입 직원 교육이 있었다. 작년에 못 해서 올해 교육 대상이
    꽤 많았다. 삼성이나 SK에 입사 지원할 때 그 회사에 대해 공부한다. 그런데 모
    법인에 대해서는 모르고 오는 사람이 태반이다. 회장으로서 Y 100년 역사와 안산
    Y 40년 역사를 강의하며, “YWCA를 알고 나면 내가 참 좋은 기관에서 일하고
    있구나, 자부심을 느낄 거예요.”라고 말해 줬다. YWCA가 교회는 아니지만,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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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보다 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목소리와 행동을 계속해야 한다. YWCA 회장으로서 자부심 뿜뿜인데, 어려움은 없는지?

    역사 인물 최용신 선생은 안산의 자랑이자 Y의 자랑이다. Y에서 공부하고 농촌
    계몽 운동하셨는데, YMCA로 아는 사람들이 있더라. 내가 어느 단체에 가니 안산
    YMCA에서 오신 얼쑤라고 소개하더라. ‘YWCA’라고 바로잡곤 한다. 최용신
    기념관 관련 기사에도 몇 년에 한 번씩 YMCA라고 나온다. 재작년에도 메일로
    항의했다. 시에서 발행한 책자도 스티커로 다 수정하게 한 적 있다. 남성이
    디폴트인 사회라 여성단체를 더 드러낼 필요가 있다.

    ‘회장님’, ‘이사님’ 호칭 보다 ‘얼쑤’가 좋다. 사람들은 ‘얼쑤’ 말고 ‘회장 김미숙’을
    쓰라 한다. 공적인 자리에서야 어쩔 수 없지만, 활동가로서는 ‘얼쑤’가 편하다. 지금까지의 내 활동을 보고 대단하다, 기왕이면 학위를 좀 업그레이드해서 더
    많이 강의하고 돈도 더 받으라 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러면 지역에서 적은
    돈만 줄 수 있는 데서 누가 활동하나.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지.” 더러는, 왜
    그렇게 활동이 많냐, 정치할 거냐 한다. 정치하란 말은 10년 전부터 들었지만, 내
    대답은 같다. 너무 열심히 하다 병나서 죽을 거라고. Y회장만으로도 ‘거룩한
    부담감’이 큰데 더는 아니다. 그때그때 마음 가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위해, 내 할
    만큼만 한다.

    “회장님”보다 활동가 “얼쑤~”가 좋아요!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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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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