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2030 여성이 있다면, 사람들은 ‘있는 집 딸’이라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 로스쿨생 중 압도적으로 가난해서 국가장학금으로 공부해 변호사 시험 합격증을 받은 사람이 있다.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이 “대포통장 사기 사건”이었고, 그 ‘진흙탕 바닥’이 인생의 길을 가르쳐 주었단다.
안산의 새내기 법조인, 정민지 변호사의 꿈과 포부를 들어보자.
Q 시간 내 줘서 고맙다. 자기소개부터 부탁한다.
나는 대한민국 30대 여성이고 한 달 전에 제15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까, 즐거운 상상 속에 지내고 있다. 목회자 부모의 세 자녀 중,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낀 외딸이다. 부모가 나를 고명딸이라며 떠받들어 키우지도 않았고, 오빠랑 연년생이라 쌍둥이처럼 자랐다. 그래서인지 태어난 순서로는 장녀가 아닌데, 현실에서는 ‘K-장녀’로 자랐다. 진짜 장녀들이랑 만나면 말이 되게 잘 통하더라. 나 또한 나를 항상 큰딸로 정체화한다.
Q 살면서 지금처럼 신나고 여유 있는 시기가 없었을 거 같다. 축하합니다.
맞다. 대한변협이 하는 합격자 연수를 들으면서, ‘의식적으로’ 천천히, 내가 가고 싶은 일자리를 찾아보려 한다. 안산시 공무원 3년 하고 2021년 로스쿨에 진학했으니, 지금 5년 만에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려 한다. 공무원은 대학 졸업하고 당장 돈을 벌어야 해서 시작했었지만, 이제는 돌고 돌아 내가 하고 싶은 거, 해야 하는 일, 살고 싶은 삶을 찾았다. 아무 데나 들어가서 대충 시작하기 싫어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찾고 있다. 굉장히 설레고 기대된다.
Q 안산시 9급 일반 행정직으로 3년 일하고 그만두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가정형편 상 취준생으로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어서, 졸업 전에 합격해 놓고 졸업과 함께 일했다. 공무원으로 일하며 내 길을 찾아볼 작정이었다. 민원 업무든 행정사무든 일은 잘 해냈지만 조직 문화가 힘들었다. “이제 공무원 됐으니, 시집만 잘 가면 된다”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다. 어린 여성이라고 친절, 애교, 미소 같은 태도 요구를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남자 상사랑 있을 땐 전문 직업인이 아니라 위안을 줘야 할 거 같은, 내가 너무 ‘대상화’되는 위치에 놓이더라. 그때마다 뻔뻔하게 받아칠 짬밥이랄까 요령이랄까, 그게 없어서 미치겠더라.
내 능력에 비해 너무 소박한 보상과 인정만 주어지는 현실에 회의감이 컸다. 누군가의 권력과 위계에 따르기보다 내 목소리를 내며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싶었다. 2019년 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다큐 영화
Q 청소년기부터 변호사를 꿈꾼 건 아니었나 보다.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하다.
초등학교 통지표에 ‘용모 단정하고 질서를 잘 지키나 의사 표현이 부족함’이라고 적힌 소심한 모범생이었는데, 신기하게 운동할 땐 날아다녔다. 아빠가 형제들이랑 차별 없이 축구, 야구, 배구, 농구에 자전거까지 다 가르쳐줬다. 우리집에서 유일한 사교육으로 수영, 태권도도 배웠다. 덕분에, 나는 운동선수가 될까 한 적도 있다. 몸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는 독보적인 아이였다. 그러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운동선수가 될 사람은 이미 여기 없어야 한다고 툭 던지는 말에 ‘나는 늦었구나’ 싶어 마음을 접고 공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교 비평준화 시절 안산 동산고에 진학했다. 입학하자마자 바닥을 치는 성적에 충격을 받았다. 가장 어려웠던 건 수학이었는데, 1년 내내 슬럼프였다. 1학년을 마친 후 어떻게든 수학을 정복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부모의 교육철학과 경제적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학원이나 과외 없이 공부했던 나에게 선택지는, ‘자기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하기’ 그것뿐이었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겨울방학 내내 수학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고2 첫 모의고사에서 수학을 반타작했다. 좌절감에 울고 있는 나에게 아빠는 “공부를 똑바로 안 한 거다”라며 비수를 꽂았다. 그 말에 오기가 생겼는지 나는 계속 밀고 나갔다. 지난한 자기 싸움 끝에 수학을 가장 잘하는 과목으로 만들며 정시로 서울의 한 사범대에 합격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는 공부 맛을 청소년기에 익힌 셈이다.
Q 대학 생활과 청소년기 공부는 달랐을 거 같다. 자기 길 찾기는 어땠나?
모범생으로만 살아서인지, 대학에서 스스로 길을 뚫는 게 무서웠다. 등록금은 국가 장학금으로 해결됐지만 용돈은 벌어 써야 했다. 안산에서 2시간 통학하며 공부하고 알바하느라 늘 시간이 부족했다. 4학년 앞두고, 진로도 안 잡히고, 학점도 별로고, 휴학하고 돈을 좀 벌며 길을 찾고자 했다. 마침, 월급 200만 원에 물류창고 알바 공고가 뜨더라.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엄마가 간암 수술 후 퇴사해 요양 중이었고, 아빠는 투잡을 뛰며 목회했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완벽한 결과를 내놓고 싶다는 강박에 쫓기고 있었다.
돈에 혹하고, 출입증 등록용이라는 말에 속아, 체크카드와 통장과 비밀번호를 넘겨주고 말았다. 이상하다 싶었을 땐 이미 내 통장이 보이스피싱 대포통장으로 쓰인 후더라. 나도 모르는 사람들 이름으로 수백만 원씩 돈이 들어왔다 빠진 기록을 다음 날 확인했다. 가해자 신분이 되어 버렸다. 빨간 줄이 그어질 대형 사고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 바닥을 경험했다. 이 사건으로 전혀 계획에 없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면서 내 인생의 방향이 급선회했다.
Q 대포통장 사건이, 정민지라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줬나?
그전까지는 보이스피싱 뉴스를 보면, 사람들이 조심성이 없어서 당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궁지에 몰려 휘말리고 보니, 내 뜻대로 안 되는 삶의 영역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요양 중이던 엄마가 내 소식을 듣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소통이 부재해서 일어난 문제”라고 하더라. 혼자 완벽하게 잘하고 결과만 “짜잔!~” 보여주려 하지 말고 못난 모습도 나눠야 함을 깨달았다. 통장이 정지되고, 경찰조사를 받고, 검찰에서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결정을 받기까지 반년을 보내며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인생 바닥에 던져질 때 현실을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그 바닥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Q 공무원을 그만두고 로스쿨에 도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나도 “로스쿨은 돈스쿨이지 내가 어떻게 가”라고 생각했었다. 3년 학비와 생활비 하면 억 단위가 든다. 나는 로스쿨생 중 압도적으로 가난했다. 소득 분위 장학금을 신청할 때 부모 재산이 들어가는데, 우리 부모는 수입과 재산이 바닥이었다. 엄마는 간암 수술 후 퇴사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공부하느라 고정 수입이 없었고, 아빠도 미자립 교회의 투잡 목사였다. 그런데 이 사정들이 역설적으로 완벽히 증명되면서 나는 3년 내내 전액 국가 장학금으로 공부했다. “엄마 아빠 가난한 김에 제대로 가난해서 고맙다.”라고 농담을 즐길 정도였다.
Q 로스쿨 학생들도 사교육(학원 인터넷 강의) 한다고 들었다.
변호사 시험 시장의 현실 이야기와 자기 주도적 공부 과정도 들려달라.
로스쿨은 변호사 시험(변시) 통과를 위한 ‘입시 학원’으로 전락했다고들 한다. 대부분 사법시험 출신이거나 학계에만 있던 교수들 강의에 대한 만족도가 학원보다는 낮았다. 대다수 학생이 수업 시간에 뒤에 앉아 대형 학원 인터넷 강의(인강)를 듣거나 학원 교재를 보는 게 현실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고집스럽게 교수님 강의와 책을 붙잡고 독학을 밀고 나갔다. 인강에 쓸 돈도 없거니와, 처음부터 하나하나 스스로 해나가는 공부가 나에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령이란 걸 모르니 법의 1부터 100까지가 다 중요해 보여서 공부 분량이 살인적일 수밖에 없다. 삼수 때까지도 “이 방법이 맞나?” 수없이 의심하며 두려움을 늘 끼고 공부했다. 독학 합격은 보편적인 레퍼런스가 없으니, 스스로 실험하고 시도하며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해야 했다. 시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도 완전히 자신할 수 없었는데,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Q 그 억눌린 멘탈을 어떻게 붙잡아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시험 점수가 안 나오면 흔들리다가도 “결국 내가 해야 끝나는 싸움”이라며 크게 울고 금방 일상으로 돌아왔다. 특히 부모님과 교회 공동체와 토론 모임에서 내 취약함과 어려움을 나눴다. 가족이 무조건적인 안전 기지였다. 그리고 삼수 중에도 매월 3개의 ‘페미니즘 토론 모임’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법조계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라, 공부하다 보면 ‘엥? 이게 말이 돼?’ 싶은 판례가 많더라. 그런 판례로 쌓인 스트레스를 토론 모임에서 “거지 같은 법리들이다!”라고 소리 지르고 날카로운 성평등의 칼을 벼렸다. 멀리 보는 자기주도적 공부였다.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아무래도 나의 엄마다. 내가 속한 여성단체 회원이고 내가 참여하는 토론 모임들의 모임장이기도 하다. 앞에서 말한 영화를 모녀가 같이 보고 토론했다. 엄마는 “너도 저런 길을 갈 수 있다”라며, 영화를 내 현실로 끌어와 주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책 읽고 질문하고 글 쓰는 사람이다., 작가요 활동가로 사는 여성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엄마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자원이다.
Q 수험생들에게, 꿈을 찾아 도전하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노하우가 있다면.
2030 여성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도 추천해 달라.
수험생들에겐 “내가 왜 이 힘든 길을 가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절대 놓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답 찾기 공부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겠다는 배짱을 가지길 바란다. 비혼 여성으로서 한국 사회를 보면 숨이 막힐 때가 많다. 여전히 ‘이성애적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고집하는 사회다. 2030 여성들이 쉽게 비혼을 선택하는 것 같지만, 그 깊은 고뇌를 사회가 모르는 거 같다. 소수자가 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엄청난 용기를 내는 거다. 가부장제 구조는 여성을 주체가 아니라 인구수를 채울 ‘애 낳는 도구’로 취급하는 거 같다, 젊은 여성들이 출산과 자아실현 중 하나를 강제 포기해야 하니 ‘여성 우울’을 겪는다. 국가는 다양한 생활동반자를 법적 가족으로 확장해야 한다. 비혼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해명하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재생산권을 보장해야 한다. 법조인이자 페미니스트로서 내 과제이자 살고 싶은 세상이다.
이 맥락에서 역사 속 금기를 깨고 주체적으로 길을 개척한 여성 서사를 생생하게 복원해 낸 역사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 《붉은 궁》,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추천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정민지 변호사의 미래 설계와 포부를 이야기해 달라.
실제 법조 생태계에서 기득권의 목소리를 더 키우는 데 법률 기술이 쓰이는 게 보이더라. 나는 침묵 당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이크로 일조하고 싶다. 좋은 동료들과 연대해서 누구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안전한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싶다.
그리고 부모님께 말하는 포부가 있다. 두 분은 젊은 날부터 사람들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약한 데로 가서 힘을 나누며 사느라 평생 가난하다. 내가 돈을 벌면 건물을 지어서, 한쪽에는 엄마가 집필하고 책을 공유하는 사랑방이자 ‘작가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다. 다른 한쪽에는 아빠가 돈 걱정 없이 소신을 펼치는 목회 공간을, 그 위에 내 ‘변호사 사무실’을 갖고 싶다. 지역에서 여성단체와 연대하는 변호사로 살 것이다.
나아가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갈 주체적인 실험으로서, 나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다정한 파트너를 만나 내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확장의 경험도 기꺼이 해보고 싶다. 5년 후, 10년 후 내가 이 포부대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세상이 꼭 검증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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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0※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인생의 절반을 살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지금까지는 가족을 위해, 직장을 위해 달려왔는데, 이제 남은 시간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은퇴를 앞두거나 이미 새로운 일상을 맞이한 중장년층에게 이 질문은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런 분들을 만나러 화성으로 향했습니다.
4월 한 달 동안 화성 중장년 행복 캠퍼스를 두 차례 직접 방문해 수업 현장을 취재했는데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보려 합니다. 캠퍼스가 어떤 곳인지, 어떤 프로그램들이 운영되는지, 그리고 제가 직접 들어가 본 향기로운 인생 향수 수업이 수강생들에게 어떤 의미인지까지 함께 나눠볼게요.

1. 화성 중장년 행복캠퍼스, 어떤 곳인가요?
화성 중장년 행복캠퍼스는 말 그대로 중장년층을 위한 전용 배움터입니다. 단순한 문화센터나 취미 교실과는 결이 다릅니다. 이곳은 은퇴 전후의 중장년이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성공적인 노후 생활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공간이에요.
캠퍼스가 내세우는 비전은 이렇습니다.
“중장년과 함께 건강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기 위해, 위기를 행복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
이 한 문장에 이곳의 철학이 담겨 있어요. 중장년기를 위기나 쇠퇴의 시간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출발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실제로 캠퍼스는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세 가지 전략적 추진 과제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생 2막의 새 출발, 둘째는 평생 배움, 셋째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원 인프라 구축입니다.

구체적인 사업 구조를 보면 더 명확하게 이해가 됩니다.
캠퍼스는 크게 네 가지 축으로 운영되는데요, 교육과정 → 동아리 활동 → 사회공헌팀 → 일자리 연계 및 인큐베이팅 순으로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교육으로 시작하지만, 배움이 끝나도 관계와 활동은 계속 이어지는 구조예요.
이 흐름 속에서 개인의 성장이 지역사회 기여로 자연스럽게 확장됩니다.
공간도 중장년 전용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동아리실과 휴게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서, 수업이 끝난 후에도 수강생들이 자유롭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활동을 이어갈 수 있어요.
재취업 및 창업 지원, 공유 사무실 운영, 코칭·심리 검사·집단 상담 등의 종합 상담 서비스도 함께 운영되고 있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의 운영 성과를 보면 이 캠퍼스가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정규 교육과정 31개를 운영했고, 인문·교육 특강과 야간 과정도 운영했습니다. 커뮤니티 동아리 활동은 19개 팀에서 94회, 사회공헌팀은 18개 팀에서 193회의 활동을 수행했어요. 이 숫자들은 단순한 실적이 아닙니다. 그 뒤에는 각자의 이유로 이곳 문을 두드린 수백 명의 중장년이 있습니다.
2. 2026년 상반기 17개 프로그램과 사회공헌 활동
2026년에는 경기도와 화성 특례시의 지원이 더욱 확대되면서 상반기에만 17개 교육과정이 개설되었습니다. 정원 262명으로 계획했지만 신청자가 넘쳐 317명으로 확정되었을 만큼 관심이 뜨거웠어요. 이 중 처음 참여하는 신규 수강생이 179명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습니다. 그만큼 새롭게 문을 두드리는 분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분들 한 명 한 명이 새로운 출발을 결심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17개 과정의 이름을 보면 그 다양함에 먼저 놀라게 됩니다.
행복 육아 영상, 웰라이프 플래너, 예비 부모를 위한 행복 지수, 행복한 옷·가구 만들기, AI로 말하는 직장인의 비밀, 아는 만큼 보이는 현대미술, 부스트 자격 과정, AI로 여는 디지털 추억 앨범, 코치 인증 자격 과정, 사주 명리, 시니어 브레인 음악 놀이 지도사(2급), 어반 스케치, 꽃차 소믈리에 양성 과정, 향기로운 인생 향수, 화성형 혁신 통합 돌봄 리더 양성 과정, 목조각 예술, 그리고 시민 전문가 소양 과정까지입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예술과 기술, 자격증과 취미가 고루 섞여 있어요.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든, 어떤 삶을 꿈꾸든 자신에게 맞는 문을 찾을 수 있는 구성입니다.
교육과정이 끝난 후에는 동아리 활동으로 이어집니다. 같은 과정을 함께 들은 수강생들이 자연스럽게 모임을 만들고, 캠퍼스에서는 활동비와 전용 공간을 지원해줍니다. 그리고 이 동아리 활동이 사회공헌팀으로 발전하는 구조예요. 취미에서 시작해 이웃을 돕는 활동가로 성장하는 과정, 그것이 이 캠퍼스가 설계한 흐름입니다.

2025년 기준으로 운영된 18개 사회공헌팀의 활동 분야는 정말 폭넓습니다. 돌봄 및 복지 분야에서는 화성형 혁신 통합 돌봄 리더 양성 과정 수료자들이 지역사회 돌봄 체계 강화를 위해 활동합니다. 생명 존중 분야에서는 생명지킴이(게이트키퍼) 교육을 수료한 분들이 화성시 자살예방센터와 협력해 이웃의 위험 신호를 파악하고 전문 서비스와 연결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시니어 교육 지도 분야에서는 시니어 브레인 음악 놀이 지도사, 꽃차 소믈리에, 웰라이프 플래너 등 전문 자격을 취득한 분들이 지역사회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및 AI 활용 분야에서는 AI로 여는 디지털 추억 앨범 수료자들이 디지털 역량을 활용한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고, 문화 예술 및 공예 분야에서는 어반 스케치, 목조각 예술, 향기로운 인생 향수 수료자들이 재능을 지역사회와 나눕니다. 특히 반려견 관련 공모사업인 '가치로운 비'처럼 독특한 사회공헌 모델이 발굴되어 운영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배움이 멈추는 게 아니라, 배운 것이 이웃에게 흘러가는 구조. 화성 중장년 행복캠퍼스가 추구하는 진짜 목표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3. "향기로운 인생 향수" 수업 현장 속으로
제가 직접 참여해 취재한 과정은 17개 중 향기로운 인생 향수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향수를 만드는 수업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천연 성분을 활용한 비누와 입욕제를 만들며 내 몸을 직접 돌보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기술이 나중에 사회공헌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취미 수업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었어요.

첫 번째 방문 – 입욕제 만들기
강의실 문을 여니 책상 위에 파란 그릇, 유리 비커, 작은 저울, 투명한 비닐봉지 가득 담긴 흰 가루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수강생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강사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었어요.
이날의 주제는 천연 입욕제, 흔히 배쓰봄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수업은 만들기 전에 입욕의 효능부터 짚어주는 것으로 시작됐어요. 반신욕은 15분, 족욕은 42도 이하의 물에 발을 담그며 15분이 적당합니다. 핵심은 뜨거운 온도 자체가 아니라 온도 차를 이용해 몸의 순환을 돕는 원리예요. 하부와 말단 부위를 따뜻하게 하면 따뜻한 기운이 위로 올라가 순환이 일어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꾸준히 반복하면 3주쯤 지나면서 등 쪽으로 온기가 퍼지는 걸 느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운동하기 어려운 분들에게 특히 권장하는 방법이고, 일주일에 두세 번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재료는 베이킹 소다, 구연산, 옥수수 전분을 기본으로, 호호바 오일, 글리세린·비타민E·히알루론산 혼합 보습제, 정수기 물이 들어갑니다. 여기에 한방 약재를 선택해 더할 수 있어요. 황금(黃芩)은 항균·미백 효능이, 정향(丁香)은 강력한 항균·살균력이, 감초(甘草)는 피부를 진정시키는 효능이 있습니다. 수강생들은 본인의 피부 상태와 목적에 맞는 약재를 직접 골랐어요. 자신을 위해, 또는 가족을 위해 고르는 그 선택 하나하나가 이미 배움의 과정이었습니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강의실 안에는 은은한 아로마 향이 퍼졌습니다. 페퍼민트, 라벤더, 레몬, 유칼립투스 등 각기 다른 향을 직접 맡아보고, 오늘 만들 입욕제에 넣을 향을 고르는 시간도 있었어요. 같은 재료라도 어떤 향을 고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의 제품이 완성된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내 취향이자 내 몸의 필요를 반영한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두 번째 방문 – MP 비누 만들기
두 번째 방문에서는 MP(Melt & Pour) 비누 만들기가 진행됐습니다. 비누 베이스를 녹여 색과 향, 기능성 성분을 더해 굳히는 방식으로, 비누 제조법 중 가장 접근성이 높은 방법입니다. 유치원생도 도전할 수 있다는 강사님의 말에 수강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어요.
이날 배운 재료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노란색의 핵심 성분인 토코트리에놀은 파의 씨눈에서 추출한 천연 항산화제로, 피부 재생과 여드름 케어에 효과적입니다. 화이트 비누 베이스에는 동백기름과 시어버터가 혼합되어 보습 효과가 뛰어나고, 파란색 계열에는 쪽(藍草)에서 추출한 인디고 색소가, 빨간색 계열에는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충(Cochineal)의 천연 색소가 활용됩니다. 자연에서 이렇게 다양한 색과 효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수업 중간에 강사님이 꺼낸 이야기가 강의실을 잠시 조용하게 만들었습니다. 조개는 몸속에 들어온 이물질로 진주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였어요. "우리도 삶에서 받은 상처를 어떤 보석으로 만들어갈 것인지 생각해 보세요." 비누를 만들면서 나온 말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누구에게나 다르게 가닿았을 것 같은 문장이었습니다. 인생을 오래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더 특별하게 울렸겠죠.
4. 수업 이후, 이들이 꿈꾸는 활동들
수강생들과 짧게 이야기를 나눠보니 등록 이유가 저마다 달랐습니다. 오래전부터 천연 제품에 관심이 있었던 분, 건강이 안 좋아진 뒤 내 몸을 직접 챙겨보고 싶어진 분, 은퇴 후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던 분, 자녀에게 직접 만든 것을 주고 싶었던 분까지요. 시작은 각자 달랐지만, 몇 주를 함께 배우다 보니 공통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제 건강을 위해 시작했는데, 이제는 요양원 어르신들께 직접 만든 비누를 드리고 싶어졌어요. 그게 진짜 사회공헌인 것 같아요."
"내가 이걸 배워서 가족한테 더 나아가 지역에 도움이 되는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제 꿈이에요."
앞으로 동아리를 결성해 정기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논의 중이라고 했어요. 개인의 관심으로 시작한 배움이 지역사회를 향한 나눔으로 확장되는 과정, 그것이 이 캠퍼스가 처음부터 그려온 그림이기도 합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강의실 게시판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 문구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함께 따뜻한 나눔으로 발전해 나가자!"

화성 중장년 행복캠퍼스는 그 문장을 매일 조금씩 실현해가는 공간이었어요. 배움이 동아리로, 동아리가 사회공헌으로, 사회공헌이 일자리로 이어지는 이 선순환 구조가 중장년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고 있었습니다. 은퇴 이후가 막막하게 느껴지신다면, 혹은 뭔가 새롭게 시작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화성 중장년 행복캠퍼스의 17개 문 중 하나를 두드려보세요. 향기는 이미 그 안에서 시작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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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0※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변화, 아이들의 삶에 닿다 - 스시히로미 이형락 대표의 일상 속 공익 실천
“그 아이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아이의 ‘첫 초밥’이 제가 만든 것이라면,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익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우리는 공익을 이야기할 때 종종 거창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현장이나 조직화된 캠페인, 혹은 이름이 알려진 활동가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면 공익은 어딘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조금 다른 곳에서 시작됩니다. 의정부의 한 초밥집, 그리고 그곳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는 한 사람의 실천입니다.
스시히로미를 운영하고 있는 이형락 대표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저는 그냥 초밥집 하는 사람입니다.”
짧은 말이지만, 그 안에는 삶의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가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음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준비하고 만들어 아이들에게 건네는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처음, 그냥 지나칠수 없었습니다.
이 활동은 특별한 계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개인적인 기억에서 출발했습니다.
“저도 어릴 때는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시골에서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서울에 와 보니까 다르더라고요.”
그는 장사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초밥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아이들’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아원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구조적인 이유로 지속적인 활동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지역아동센터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고, 그 선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계획보다 마음이 먼저였다는 점입니다. 한 번의 마음이 반복되면서 지금의 활동이 만들어졌습니다.

음식이 아니라 경험을 줍니다.
이형락 대표의 활동에서 눈에 띄는 점은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아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모자를 씌워주고, 직접 초밥을 만들어 보게 하며 ‘1일 요리사’ 상장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돈은 금방 사라집니다. 그런데 경험은 남습니다.”
현재는 여건상 체험을 줄이고 식사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남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해본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그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자기 것을 먹지 않고 할머니께 가져다드리겠다고 싸 가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그는 결핍이 아니라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런 아이를 보면 잘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익활동은 단순히 주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따뜻한 마음을 발견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3년 넘게 활동을 이어오는 이유를 묻자 그는 담담하게 답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초밥 한 접시는 하루, 이틀의 추억이 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웃는 모습은 제 마음속 오래도록 따뜻한 행복으로 남습니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자신에게 더 깊이 남는다고 합니다. 그는 이 감정을 '중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못 갔을 때 미안할 뿐입니다."
실제로 그는 봉사 일정을 먼저 정하고 나머지 일정을 맞추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공익활동이 삶의 일부가 된 것이 아니라, 삶의 기준이 된 모습입니다.

혼자 잘났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형락 대표는 자신의 활동을 개인의 선행으로 보지 않습니다.
“제가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가게 손님들이 함께하는 일입니다.”
손님들이 지불한 금액의 일부가 아이들에게 전달되고, 직원들과 함께 준비하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이 활동은 자연스럽게 공동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같이 하는 거지, 혼자 잘났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 말에는 공익이 개인이 아닌 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그에게 공익의 의미를 묻자 그는 간단하게 답했습니다.
“자기 만족입니다. 그게 아니면 못 합니다.”
공익은 의무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느껴야 이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의 말은 공익활동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자영업자 역시 공익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영업자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미 세금을 내고,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는 현실적인 조건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장사가 잘 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여유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공익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유지되지 않고, 현실과 구조가 함께해야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실천을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초밥 한 접시가 향하는 곳
아이들을 만나온 시간은 이형락 대표의 시선을 조금씩 넓혔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더 많아졌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특히 그는 최근 탈북민에 대한 고민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탈북민분들도 혼자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라도 도와보고 싶습니다.”
이 생각은 별도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온 나눔 속에서 자연스럽게 확장된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초밥을 만들어 주던 경험이 ‘누구를 더 도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그 시선이 더 넓은 사회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즉, 초밥 나눔은 하나의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을 향해 손을 뻗습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는가
이형락 대표는 거창한 변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매달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는가.”
공익은 어쩌면 거창한 일이 아니라, 오래 이어지는 작은 실천일지도 모릅니다. 초밥 한 접시가 세상을 바꾸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 접시가 누군가의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이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 아이의 첫 초밥이 제가 만든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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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1※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평범한 일상이 권리가 되는 안산을 꿈꾸며
안산시 장애인권리보장 정책실현 시민대토론회를 다녀와서
2026년 4월 29일 |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

[ 토론회 순서 ]
좌 장 권달주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센터장)
발 제 안산시 장애인 정책의 현재와 대안
김병태 ((사)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안산시지부 지부장)
사례① 장애인 이동권은 삶이다 — 오성현 (상록수IL센터 동료상담가)
사례② 장애인 학습권 보장하라 — 임영채 (경기IL센터협의회 안산시지부 동료상담가)
사례③ 우리도 일하며 살고 싶어요 — 김문경 (상록수IL센터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 노동자)
사례④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멋에 산다 — 임현수 (전국장애인탈시설연대 경기지부장)
토론① 안산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역할 — 이재민
토론② 장애인 평생교육 — 김선영 (안산나무를심는장애인야학 교장)
토론③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 조례의 필요성 — 조은소리
토론④ 안산시 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과제 — 전유리
토론⑤ 발달장애인 지원 정책, 이동권의 행정 장벽 철폐와 주거 선택권의 확장 — 김정아
토론⑥ 장애인건강보건관리종합계획의 의의와 한계, 안산 지역에서의 실천 과제 — 팔도
종합토론 질의·응답

우리나라에서 휠체어가 다니기 가장 좋은 곳은 어디일까?
정답은 공항이다.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 때문에 공항 바닥은 반질반질하다. 턱도 없다. 경사로도 있다. 엘리베이터가 아주 넉넉하다. 모든 이동 동선이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이건 휠체어 타는 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캐리어를 끄는 비장애인이 불편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씁쓸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오래도록 이런 세계에서 살아왔다.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진 편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조건이 되는 세계. 그러나 그 '다른 누군가'는 처음부터 설계의 이유가 아니었던 세계.
4월 29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안산시 장애인권리보장 정책실현 시민대토론회'는 그 씁쓸함에 정면으로 맞서는 자리였다. 회의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얼굴에는 오래 참아온 사람들 특유의 조용한 단단함이 있었다.

발제를 맡은 김병태 지부장이 첫 말을 꺼냈다. "장애인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헌법과 UN 장애인권리협약이 보장하는 당당한 권리의 주체입니다." 안산에 살아가는 3만 2천여 명의 장애인 시민들이 예산의 효율성이라는 벽 앞에서 더 이상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토론회는 그 선언을 네 개의 삶으로 증명해 보였다. 이동, 배움, 노동, 탈시설. 각각의 이야기는 달랐지만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왜 이것들이 아직도 권리가 아닌가.
로또가 된 외출
이동권 사례를 발표한 오성현 님의 말은 그 선언을 삶의 언어로 번역해주었다.
"어쩌다 시간에 맞게 딱 콜이 잡히는 날에는 정말 로또라도 맞은 것처럼 기분 좋은 날입니다."
하모니콜. 안산시의 특별교통수단이다. 관내 평균 대기시간 28분, 관외 38분. 출퇴근 시간대에는 최대 2시간을 기다린다. 하루 이용 횟수는 4번으로 제한되어 있다. 눈비가 오면 더 오래 기다린다. 오성현 님은 퇴근도 못 한 채 휠체어에서 잠이 든 날이 있다고 했다.
비장애인에게 이동은 그냥 나가는 것이다. 장애인에게 이동은 계획이고, 기다림이고, 운이다. 같은 도시에 살면서, 같은 시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는 이 말을 들으며 한 친구가 떠올랐다. 수어 교실에서 만난 전동휠체어를 탄 그 친구. 회사에 농인 동료가 생겨 수어를 배우러 온다고 했다. 저녁 7시 수업인데 그는 항상 5시, 6시에 와 있었다. 궁금해서 물었더니 오후 4시에 퇴근하자마자 하모니콜을 부른다고 했다. 퇴근 시간대에는 콜이 잘 안 잡힌다고. 저녁도 거른 채 빵 하나로 끼니를 때우며 일찍 오는 게 낫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갈 때는?
9시에는 콜이 더 안 잡힌다고 했다. 밤 11시에 콜이 잡혀서 집에 간 적도 있다고. 추운 겨울, 온기 하나 없는 복지관 입구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러면 일찍 가지, 라고 내가 말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어렵게 왔는데 수업은 다 듣고 가고 싶어요."
추석에는 혼자 전철을 타고 수원 스타필드에 다녀왔다고 했다. 처음으로 혼자 나들이를 한 것이다. 사람이 너무 많아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쳤다. 전동휠체어는 무거워서 아무도 들어줄 수 없다. 보도 턱에 막혀 집으로 돌아간 날도 많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발제에서는 차량 1대당 운전원 2.5명 확보와 일일 16시간 운행 전면 보장, 수도권 즉시콜 시스템 도입, 와상장애인 전용 특별교통수단 도입이 요구됐다. 또한 모든 버스정류장과 보도의 배리어프리 전수조사, 소규모 상업시설 경사로 설치 비용 전액 지원도 제안됐다. 이것들은 요청이 아니라 권리다. 공항 바닥이 반질반질한 것처럼, 당연해야 할 것들이다.

임영채 님이 조용하게 말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데, 우리에게 배움은 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안산에서 장애인이 교육받을 수 있는 공간은 '안산나무를심는장애인야학' 단 한 곳뿐이다. 장애 성인의 54.4%가 중졸 이하의 학력에 머물러 있다.
배움이 닫히면 지역사회로 나가는 문도 함께 닫힌다. 장애인 평생교육지원센터 신설과 문해교육 기본교육과정 지원, 이것은 교육부의 일이 아니라 안산시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다.
권리중심맞춤형공공일자리에서 일하는 김문경 님의 말은 달랐다. 이전 직장에서 그는 늘 눈치를 봐야 했다. 낮은 임금과 비장애인 중심의 환경 속에서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존엄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실현하는 중요한 기반입니다."
토론에서는 안산형 권리중심 맞춤형 공공일자리 조례 제정이 제안됐다. 최중증장애인 100명 고용, 12개월 근로계약, 3년 위탁 보장. 숫자들이지만 그 안에는 사람이 있다.
얼마 전, 수어 통역을 했던 농인 이야기가 생각났다. 공공일자리 주차요금 징수 업무에 농인이 지원했다. 주차장을 오가며 요금을 받는 일이다. 요즘은 카드로 결제하니 말이 필요 없다. 카드 받고, 계산하고, 인사하면 끝이다.
그런데 안 된다고 했다.
수어 통역을 통해 일단 해보고 문제가 생기면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무조건 안 된다고 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안 된다고 했다. 말이 안 들리면 일을 못 한다는, 설명되지 않는 논리. 농인은 말을 못 듣는 게 아니라 다르게 소통할 뿐인데.
공항 바닥이 반질반질한 건 설계의 문제다. 농인이 주차요금을 못 받는다는 건 상상력의 문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너무 많은 곳에서 상상하기를 멈추어 있다.

임현수 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그는 어릴 적 경기도 광주의 '향림원'이라는 시설에서 살았다. 2013년 2월의 어느 밤, 선생님이 장애인 동료들을 벽에 세우고 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역시 빗자루와 글루건 심으로 발바닥과 손바닥을 맞고 발이 부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2015년 다른 시설로 옮겨졌지만 폭력의 그림자는 그대로였다. 시설 밖으로 나가 살고 싶다고 말했을 때, 원장은 욕을 하며 탈시설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마침내 2024년 10월 2일, 그는 세상으로 나왔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제가 결정하고 제가 책임지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매일 느낍니다."
탈시설 5개년 로드맵, 지원주택 조례 제정,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자립생활센터 역량 강화. 이것들이 실현될 때, 임현수 님 같은 사람이 10년을 더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토론회 마지막, 지방선거 후보자가 물었다. 탈시설 비율이 몇 퍼센트냐고. 담당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시설에 있는 사람이 정확히 몇 명인지, 자립을 원하는 사람은 몇 명인지 통계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몇 퍼센트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숫자가 없다는 것은 존재를 세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지 않은 것은 보지 않은 것이다. 보지 않은 것은 없는 것으로 취급한 것이다.

토론회를 끝까지 들어보며 작년에도 했던 말들이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아마, 내년에도 반복될 것이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는 말들이 구호로만 머무는 한.
하지만 멈출 수 없다. 왜냐하면 언젠가 이 질문들이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늘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더 행복하게 살 것인가'로.
공항 바닥이 반질반질한 건 캐리어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처음부터 휠체어를 위해 설계된 도시가 생겨날 것이다. 그 도시에서는 장애인 이동이 로또가 아닌 당연한 일상이 될 것이다. 농인이 주차요금을 받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거창한 미래가 아니다. 그냥 평범한 일상이다. 그 평범함이 모든 사람에게 권리가 되는 안산을, 나는 오늘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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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1※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ESG로 피어나는 생명의 터전
경기도 의왕 포일습지, 민관협력으로 맹꽁이의 귀환을 준비하다
식목일을 맞은 2026년 4월 3일 오후, 의왕시 포일동의 한 습지 일원이 이례적인 활기로 가득찼습니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현대로템㈜, 의왕시청 환경과, 한국환경보전원, 시민환경단체 ‘자연의 벗’ 관계자 분들이 참여했습니다.



식목일 참여자 사진
‘포일습지 자연환경복원 및 생물다양성 증진사업 겸 ESG 환경실천 행사'로 열린 이날 행사는 민간기업의 사회적 책임경영과 지자체의 환경복원정책이 맞닿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이번 사업은 현대로템이 추진하는 ESG 사회공헌 캠페인 ‘블루리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됐습니다. ‘블루리본’은 수소 에너지의 상징인 ‘블루’와 생태계 복원의 의미를 담은 ‘리본(Re-BORN)’을 결합한 개념으로, 미래 산업과 자연 환경의 공존을 지향하는 기업 철학이 반영된 프로젝트입니다. 단순한 환경 정화 활동을 넘어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고 생물 다양성을 회복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포일습지는 과거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던 공간이었으나, 도시 개발과 환경 변화로 인해 점차 기능이 약화되었습니다. 습지는 물을 저장하고 정화하는 역할뿐 아니라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로서 중요한 생태적 가치를 지니지만, 관리 부재와 오염으로 인해 점점 그 역할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지역사회와 기업, 환경단체가 협력하여 복원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본격적인 식목에 앞서 진행된 ‘에코플로깅’ 활동은 참여자들에게 환경 보호의 의미를 몸소 체험하게 했습니다. 습지 주변 곳곳에 방치된 폐기물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자연 회복의 시작이 ‘정화’ 라는걸 몸으로 알게 됩니다. 참여자들은 이후 직접 삽을 들고 나무를 심고, 흙을 고르고, 묘목의 뿌리를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한 뒤, 다시 단단히 다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생태 복원의 중요성을 체감했습니다.
현대로템은 이날 행사를 통해 포일습지를 지속가능한 환경 랜드마크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이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리와 지속적인 복원 활동을 통해 지역 생태계를 회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고, 기업이 지역사회와 협력해 환경 문제 해결에 나서는 ESG 경영의 좋은 사례로 평가될 것입니다.
의왕시는 지난 2025년 7월 9일 시청 소회의실에서 현대로템과 한국환경보전원과 '자연환경복원 및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의왕시는 행정적 지원을 뒷받침하고, 한국환경보전원은 전문적 자문을 지원하고, 자연의벗은 시민 참여 기반의 활동을 담당하며 각자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지역 주민에게 새로운 생태 교육의 장을 제공하고,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자연교실과 시민들에게는 휴식과 공존의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묘목이 자라 숲을 이루듯, 이번 복원 사업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를 더할 것이고, 사라진 습지에 다시 초록을 심는 일. 포일습지에서 시작된 이 작은 변화가 지속가능한 환경을 향한 더 큰 움직임으로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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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학명: Kaloula borealis)는 여름 장마기에 맞춰 번식하는 양서류로, 오염에 매우 민감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습지의 수질 오염이 심하면 알이 자라지 못하고, 농약이나 폐수의 영향으로 개체가 급감합니다. 따라서 맹꽁이가 서식하는 곳은 오염이 적고 생태균형이 잘 유지된 지역으로 평가됩니다 |
환경단체들은 맹꽁이를 일종의 ‘도시생태계 건강지표종’으로 분류합니다.
즉, 포일습지에 다시 맹꽁이가 돌아온다면 이는 단순히 한 종의 복원이 아니라, 그 생태계가 지닌 물·식물·곤충·조류 등 다양한 생명의 순환이 복원되었다는 상징입니다.
① ‘시민참여형 학습장’으로서의 생태학습장
포일습지는 단순한 서식지 복원이 아닌 ‘시민 참여형 학습장’으로 개발 중입니다. 의왕시는 관내 학교와 협력해 ‘맹꽁이 생태교실’, ‘도시생태 모니터링 체험’, ‘수질 변화 관찰 수업’ 등 체험형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 같은 교육활동은 자연보전의 세대 간 인식 차이를 줄이고, 장기적으로 지역 전체의 환경의식을 높이는 사회적 효과로 이어집니다.
② '시민참여형 관리모델’의 필요성
포일습지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맹꽁이 서식지 복원과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맹꽁이는 수질과 환경 변화에 민감해 습지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종입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생태복원은 조성보다 사후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습지는 수질·식생·기온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향후 시민참여를 넓히려면 일회성 행사보다 정기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의왕시 환경과가 주관하는 공공일자리 사업이나 ‘포일습지 지킴이단’, 가족 참여형 생태탐방, 학교 연계 관찰수업, 계절별 정화활동 같은 방식이 있으면 참여의 문턱이 낮아집니다. 여기에 생태DB나 스마트 모니터링이 더해지면, 시민의 참여가 기록과 데이터로 축적되어 더 신뢰도 높은 복원 관리가 가능합니다.
또한 복원 성과를 주민들에게 주기적으로 알리는 소통도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변화, 예를 들면 새로 자란 식생, 돌아온 곤충, 관찰된 양서류 같은 정보를 공유하면 ‘우리 동네 이야기’가 되고 나의 삶에 반영이 됩니다. 관심은 보여주는 방식에 따라 커지고, 참여는 보이는 성과가 있을 때 더 오래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시민의 관심이 단순한 응원을 넘어 생태 감시와 기록으로 이어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주민들이 수질 변화, 식생 변화, 생물 출현 여부를 함께 살피고 공유한다면 복원 사업의 지속성은 훨씬 높아질 수 있습니다. 포일습지는 그런 의미에서 시민이 생태 회복의 결과를 함께 확인하는 ‘열린 현장’으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시민기반 ESG 생태관리 모델은 투명성, 지역 사회를 향한 진정성, 그리고 협력을 통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주민 스스로가 환경복원의 주체가 되면서 기업의 공시 자료 너머에 있는 실제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시민들이 알 수 있고 이해관계자의 거버넌스를 통해 지역 사회의 필요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어서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끄는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생태DB(디지털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스마트 모니터링 체계의 단계적으로 도입도 지속가능한 생태계 보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겠습니다.
복원 이후의 과학적 관리와 습지의 사회·문화적 가치 확산
일반적으로 복원을 위한 관리로 3단계 관리시스템으로 운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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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초 모니터링 단계 — 수질, 식생변화, 생물 출현 종수 조사 (2) 안정화 단계 — 맹꽁이 번식 밀도 및 알 산란지 확인 (3) 지속 관리단계— 계절별 식생 순환 맞춤 |
한국환경보전원은 인공지능(AI) 기반의 생태음향 장비를 도입해 맹꽁이의 울음소리를 자동 인식·분석하는 ‘AI 음향 모니터링 시스템’을 검토 중입니다. 이러한 데이터 기반 관리가 도입되면, 생태변화를 계량적으로 기록하여 효율적 유지관리가 가능해진다고 합니다.
습지는 생물의 서식지이자 시민의 휴식처, 나아가 도시문화공간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지닙니다. 향후 습지 내 둘레길 및 생태전시 공간을 조성해 문화·교육·관광이 결합된 ESG 생태공원 형태로 발전시킨다면 이는 단순한 환경보전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 속에서 지속가능성을 체험하는 ‘생활 속 ESG’의 구체적인 모델이 됩니다.
포일습지는 지금 막 첫 단추를 끼운 단계입니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서 보여준 민관의 협력, 시민의 참여, 기업의 ESG 실천, 그리고 생명에 대한 존중은 이미 도시의 미래를 바꾸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습지의 물길은 느리게 흐르지만, 그 속에 자연의 회복력과 사람의 의지가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포일습지의 변화는 도시 한복판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회복 실험’이며, 나아가 우리 사회가 환경과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의 증거입니다.
맹꽁이의 울음이 다시 퍼질 그날, 포일습지는 단순한 자연복원지가 아닌 ESG 실천의 상징이자 세대를 잇는 생태교육의 장이 되어 있을 것이며, 꾸준한 관심과 참여가 이어질 때 포일습지는 앞으로 시민이 자주 찾고, 배우고, 돌보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복원은 한 번의 조성으로 끝나지 않으며,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가 있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습지로 지역 주민, 학교, 봉사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관리 체계가 자리 잡을 때, 진정한 생태 회복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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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3※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길을 따라온 게 아니라 휠체어와 함께 길을 만들며 여기까지 왔어요.”
그의 이야기는 이 한 문장에서 시작한다. 늦게 시작한 공부와 일, 아이를 키우며 멈춰야 했던 시간, 그리고 다시 장애인 활동가로 살기까지, 그는 휠체어로 스스로 길을 내며 살아왔다.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총괄팀장이자 동료상담가 조은상 활동가를 소개한다.
= ‘동료상담가’라는 말이 생소한 분들을 위해 소개부터 부탁해요.
- 저는 안산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IL’)에서 동료상담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장애인이라고 하면 도움과 서비스를 ‘받는 사람’을 상상하잖아요. 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의 정신은 장애인을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바라보는데요, 장애인 당사자가 또 다른 장애인 동료와 하는 상담이죠. 단순히 ‘비슷한 처지끼리 하는 대화’가 아니라, 기존의 전문가 중심 상담 모델로부터 해방된 고도의 정치·사회적 치유와 임파워먼트Empowerment 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정신과 의사나 사회복지사가 장애인을 진단과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상담이죠. 동료상담은 그런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로부터의 해방된 평등한 관계 모델이라 할 수 있어요. 장애인 스스로가 자기 삶의 전문가라고 선언하는 거죠. 자격증의 권위가 아니라 장애를 안고 살아온 ‘생존의 역사’ 자체가 상담의 강력한 도구죠. 상담의 목표 역시 상담가가 아니라 내담자 스스로 ‘자기결정권’으로 설정하고요.
동료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가 대등한 관계로 진행해요. 한쪽이 가르치거나 답을 주는 게 아니라, “나도 그랬다”는 공감을 서로 나누는 거죠. 이 모든 과정이 자립생활 모델과 결합해요. 내면의 힘을 길러서 결국 시설이나 집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살아가게 하는 힘. 더 나아가 개인의 변화를 넘어, 사회의 책임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동력이 되고요.
= 와~ 자립생활센터가 어떤 곳인지도 소개해 주셔야겠어요.
장애인복지관과 비교해 볼게요. 이전엔 서비스를 받거나 이용하러, 즉 이용자로서 장애인복지관을 드나들었어요. IL센터에서는 장애인이 행동의 주체가 돼요. 이용 시설이 아니라 장애인이 직접 일하고 활동하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움직이는 단체죠. 환경과 사회를 장애물이 없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사회 변혁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을 돕는 것을 넘어서 사회를 바꾸는 일이에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삶의 운동이자 삶의 일부예요.
IL의 가장 기본 정신이 권리옹호, 자기결정권과 자기선택권인데요. 어디서 살지,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와 같은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부터 인생의 큰 항로까지,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고자 해요. 거기엔 실패할 권리도 포함돼 있고요. ‘장애인을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 장애인이 없어서는 안 된다’라는 당사자주의고요. 소장부터 내부의 주요 의사결정자들까지 센터 인력의 과반수가 장애 당사자인 것도 그 때문이고요.
장애가 있다고 사회와 격리된 시설에서 살아야 할까요? IL은 비장애인과 똑같이 지역사회 안에서 어우러져 사는 것을 지향해요. 물리적 건물만이 아니라 교육·노동·문화생활 등 모든 사회적 기회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죠. 장애인이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을 문제로 보는 사회적 장벽Social Barrier’이 문제라고 보는 겁니다. 이 운동의 핵심은 개인의 재활이나 극복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있는 거죠.
= 어쩌다 이렇게 엄청난 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을까요?
- 처음엔 아는 언니 따라왔죠. 사진 동아리 ‘포커스휠’에 나가면서도 별로 적극적인 회원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센터에서 동료상담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고 동료상담을 진행해본 게 첫 출발이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센터활동도 하게 되고 그러다가 집단동료상담 리더 교육을 받으면서 생각이 크게 바뀌었어요. 제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죠. 내가 ‘불쌍하고 불행한’ 장애인이 아니라, 사회적 차별과 구조적 모순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거죠. 장애인 동료상담가들이 당당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전에는 직업을 갖기 위해 자격증도 따고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면 센터 활동과 동료상담을 하면서 왜 자립생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는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금까지 센터에서 간사부터 팀장, 센터장까지 경험했고, 지금은 상록수IL센터 총괄팀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IL센터이지만 일에 집중하다 보면 가끔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갈등이 생길 때도 있어요. 그래서 현장의 동료들을 만나면서,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계속 스스로 돌아보게 돼요.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업무 회의 사진제공 조은상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사무실 책상 앞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IL센터 활동 동료상담 사진제공 조은상
= 공부를 늦게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장녀로 태어나 돌 무렵에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걷지 못하게 됐어요. 동생이 셋이었으니 넉넉지 않은 형편에 부모님은 저만 집중해서 돌보기 어려웠을 거예요. 입학할 나이가 됐지만 학교까지 이동하는 것도 어려웠고, 동생들을 희생시킬 순 없지 않냐는 말을 듣고 자랐어요. 그럴 때마다 부모님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아무 말 못 하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집에서 가정교사를 통해 조금씩 공부했지만 늘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책을 읽었어요.
20대에 직업 훈련원에서 옷 만드는 기술을 배워 취업을 하고 보니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20대 후반에 검정고시를 시작했어요. 결혼하고 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힘들다는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느낌이 더 컸어요. 방송대 교육학과를 계속 장학금 받으며 졸업했어요.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했어요. 서로 과제를 알려주고 시험 정보를 나누면서 함께했던 경험이 컸어요. 그때 공부는 혼자보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는 것이라는 걸 느꼈어요.
= 장애 여성으로서 전에 하신 일과 사회생활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어요?
- 장애인이라고 하면 부모가 희생하거나 당사자가 희생하거나 그런 구조잖아요. 공부 기회를 놓치고 사회에 나갔기 때문에 저는 더 열심히 배우고 일했어요. 장애인기능대회가 있었는데 나가서 금메달을 땄어요. 이제 세계 대회를 나갈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연습했고 프라하 세계 장애인 기능대회 나갈 티켓도 땄어요. 그런데 저한테 기술 가르쳐준 선생님들이 그렇게까지 할 거 있냐고 반대하시더라고요. 처음부터 하지 말라고 하든지, 장애인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구나, 상처를 많이 받았죠. 튀지 않고 착한 장애인이길 원했던 것 같아요.
제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도 그랬어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작업장이었는데, 수녀님들이 제 결혼을 걱정하고 반대했어요. 부모님도 심하게 반대해서 5년을 미루다 결혼했어요. 동료상담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비슷했어요. 장애 여성은 교육, 결혼, 출산, 일 등 여러 선택에서 뒤로 밀리고 편견의 대상이에요. 직장에 다닌다고 하면 놀라고, 집이 깨끗하다고 놀라고,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놀라요. 장애인은 돌봄을 받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해요. 저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 평범함이 오히려 특별한 일이 되는 느낌이 있어요.
= 비장애인 여성도 두려워하는 결혼인데 참 씩씩하게 사셨어요. 아이 낳고 키우며, 또 워킹맘으로 살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 30대 후반에 아이를 가졌을 때도 일을 쉬지 않았어요. 배가 불러서 운전하기 힘든데 사장님이 나와서 같이 밥이라도 먹자며 부르셨어요. 당시엔 생소했던 강아지 옷 만드는 일이었는데 일이 많아서 새벽 7시에 출근해서 야근까지 하는 날이 많았어요. 한번은 폭설이 내려 청계 터널에서 2시간을 갇혀 있었는데, 다음 날 보니 타이어가 터져 있더라고요. 저는 천주교 신자인데 아이랑 저랑 정말 주님이 살려주셨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결혼할 때도 그랬어요. 장애인이 어떻게 살 거냐, 아이는 어떻게 키울 거냐. 저도 아이는 낳지 말자 생각했었죠. 일을 계속하고 싶었고 양육에 자신도 없었죠. 어느 날 밤늦게 퇴근하면서, 일만 하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갖기로 했어요. 임신과 출산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이동도 어렵고 병원 가는 것도 힘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일을 할 수 없었어요. 맡길 곳이 없어서 제가 아이를 돌보게 되었어요.

안산의 리프트 택시 사진제공 조은상

상록수 센터에서 진행된 안산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 ‘착한 장애인’이라는 기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 가족 안에서 화목하게 살기 위해서는 많이 참아야 했어요. 장애인이기도 하고 여성이라는 점이 겹치면 어떨까요? 장애인 여성은 더 많이 참고 더 많이 양보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어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존엄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자존감은 많이 낮아져 있었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남들보다 사회생활도 그렇고 뭐든 다 늦었으니까 나는 더 빨리 잘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생각이었어요. 이걸 ‘맏딸 콤플렉스’라고 하죠? 부모님한테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고, 장애인이라 못한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딱딱 다 잘 해내려고 했어요. 하지만 10년 IL 활동을 하며 조금씩 달라졌어요.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서로 힘들게 하잖아요. 이제는 못 하는 건 못 한다고 말해요. 어머니에게도 이번에는 못 간다고 말하게 되었어요. 그럴 힘이 생겼죠.
=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아이를 키우다가 어느 순간 다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한 언니가 등록금을 내줄 테니 공부를 꼭 하라고 말했어요.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버지도 응원해 주셨어요. 마흔 넘어 다시 공부할 때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셨어요. 엄마가 보내준 김치 통 사이에 아버지가 학비에 보태라고 몰래 30만 원이 든 봉투를 넣어두셨는데, 김칫국물에 젖은 그 봉투를 보고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지금도 나요.
=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나 삶의 전환점이 있었나요?
- 2014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저를 많이 도와주던 언니도 돌아가시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였어요. 그 시기에 세월호 참사도 있었고요. 솔직히 우울함도 있었어요. 제가 사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 사건이 너무 크게 다가왔어요. 그냥 뉴스에 나오는 사건이 아니라 내 아이의 일처럼 느껴졌죠. 앞으로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이래도 되는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힘든 시기를 통과하며 지역에서 하는 집회나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됐어요. 큰 역할은 아니지만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연대하고 같이 있는 사람,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4.16시민대학 사진제공 조은상

세월호참사 10주기 4160인 합창에 참여하고 사진제공 조은상

안산시민연대 촛불문화제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 장애인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라고 보십니까?
- 일은 삶을 바꾸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센터에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일자리에 참여하는 분이 “내가 번 돈으로 가족들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사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라던 말을 잊을 수 없어요. 큰 변화라고 느꼈어요. 일하고 돈을 벌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게 장애인의 삶의 위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살게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중증 장애인에게 일자리는 단순한 수입 이상의 의미를 가져요. 사회의 구성원으로 지역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가 더 커요.
그래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라 불러요. 시혜적 성격을 거부하고, 이동권, 탈시설, 교육 등 장애인 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날이죠. 올해도 3월 26일에 청와대 앞에서 <22회 3.26 전국장애인대회 및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식>을 열었어요. 최옥란 열사 기일에 열린 22회 3.26 대회였죠. 효자동 복지센터 인근에서 출발해서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하고 집회와 열사들을 기리는 추모제도 진행했어요. 많은 활동가들이 각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전국에서 모여요.

3.26 전국장애인대회 사진제공 비마이너

장애인 권리 보장 다이인(die-in) 행동 사진제공 조은상

장애인 접근권 보장 기자회견 참여 중 발언 사진제공 조은상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삭발 투쟁 사진제공 조은상
= 앞으로의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 지금까지 활동하고 또 아이를 기르면서 앞만 보고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앞으론 어떻게 살지? 이런 고민이 들었어요. 앞만 보고 가지 말고 소소하게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과 차도 마시고 서로를 지지하고 나누면서 사는 삶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요. IL센터의 활동가로, 동료상담가로 목소리를 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면서 살아야죠.
돌아보면 누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온 게 아니라 그때그때 부딪히며 길을 만들어 온 것 같아요. 앞으로도 큰 계획보다는 지금처럼 살 것 같아요. 필요한 자리에 가 있고 연대하며 살고 싶어요.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살았다 싶어요. 앞으로도 휠체어와 함께 제가 길을 만들며 살아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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