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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웹진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노조하면 왜 남성 노동자를 떠올렸지?

    인터뷰가 계속될수록 내 안에 올라오는 질문이었다. 80년대 마산수출자유지역 여공으로 일하다 TC전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조위원장이 된 사람. 16개월의 옥고를 치른 후, 안산과 서울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장, 서울지부장을 역임한 사람. 고등학교 급식조리원들의 연장근로 수당 2.5배 쟁취하고, 서울 초등돌봄전담사 4시간 시간제 노동자들의 차별 시정 소송을 대법원 승소로 이끈 사람. 김정임 님은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한다.”라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여성 노동운동의 역사였다.

     
     / ⓒ인터뷰이 제공
     

    Q 역대급 폭염에 건강하게 활동하며 일하는 일상이 궁금하다.

    현재 요양보호사로 주 5일 일하고 있다. 요즘 퇴근길에 더워서 서점에 들른다. 책 보며 마음을 식히다가 선선할 때 집에 와서 저녁 먹고, 공원 산책하며 운동한다. 한 달에 한 번 수지 에니어그램 강사 모임에 참여하고, 줌(Zoom)을 통해 화상으로 스님과 책을 읽는다. 인사동에서 써클댄스도 추고 친구와 만나 노래방에서 목청껏 노래도 부른다. 8월에는 딸과 사위들 생일에 부모님 제사까지 집안 행사로 바쁘지만 아주 즐겁게 보내고 있다.

     

    Q 요양보호사로 좀 멀리 출퇴근한다고 들었다.

    영등포에서 마곡으로 출근한다. 돌보는 어르신은 69세 파킨슨병으로 요양 등급 2급이다. 출근하면 제일 먼저 식탁과 의자를 깨끗이 닦는다. 파킨슨병 환자는 거동이 불편해 음식을 자꾸 흘리기 때문이다. 나는 식사 수발하고, 목욕시키고, 빨래 청소 음식 조리까지 한다. 가끔 휠체어로 공원산책도 하고 같이 장도 보고, 수명산 도서관에서 큰 글자 유아용 책을 빌려와 읽어드리거나 색칠 공부, 누워서 하는 요가 동작도 함께 한다.

    왕복 출퇴근 시간만 2시간 넘지만, 서로가 잘 맞아 정성으로 마주하고 있다. 예전에 안산에서 서울로 경기도 전역으로 하루 4시간 출퇴근하며 활동하던 경험이 쌓여서 힘든 줄 모르고 한다. 한 달에 120~150만원 4대 보험 빼면 빠듯한데, 큰 빚 없이 자립해서 감사하다.

     

    Q 강사로 활동한다는 수지에니어그램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소개한다면?

    '수지에니어그램'180장의 카드를 가슴과 양팔에 붙였다가 떼어가며 내가 누구인지, 나답게 사는 게 뭔지 참 나를 찾는프로그램이다. 수산나(수지) 선생님이 대안학교 청소녀들을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 시작했는데 전국에 10개 센터와 해외에 2개센터를 두고 있다. 나는 9번 유형인데,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넓은 품과 조용한 힘이 있는 유형이다. 나를 제대로 알면 나다운 삶을 살게 된다. 2018년부터 지인들에게 성당, 학교, 상담실과 집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눔을 하였고 일하는여성아카데미 교육위원으로 강의해 왔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부담 없이 수지에니어그램을 하는 게 꿈이다.

     
     / ⓒ일하는여성 아카데미
     

    Q 청년 시절 마산수출자유지역 노동자로 들어갔고, 그 지역에서 노동 운동한 걸로 안다.

    나는 거제도 출신이고 15녀 중 셋째 딸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며 당연히 대학에 갈 줄 알고 모범생으로 공부했는데, 어머니가 강하게 반대했다. 남동생을 대학 보내야 한다는 이유였다. 울며 싸우다 결국 대학을 포기했다. 인문계 졸업하고 대학 안 가면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동네 친구를 따라 공장에 취업하러 마산으로 갔다.

    고등학교까지 시켜놨더니 왜 공장에 가냐.”

    내가 공장 간다니까 어머니는 울고불고 말리다가 쌀 한 되박을 싸서 보내주셨다. 마산 수출자유지역에 있는 일본계 전자 회사에 들어가 도장 날인 작업을 했다. 나중에는 임금과 환경이 훨씬 좋은 미국계 다국적 기업 ‘TC 전자로 이직해 본격적인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Q 공장 생활 중 삶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다고 했다. ‘아욱실리움 기숙사가톨릭여성회관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가톨릭고등학교에 다닌 인연으로 살레시오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아욱실리움 기숙사에 들어가 공장에 다녔다. 거긴 수녀님들과 함께 매일 새벽미사를 하였고, 1980년 광주 항쟁 비디오도 거기서 처음 볼 수 있었다. 가톨릭 여성회관에서 이경숙 선생님이 진행하는 여성교실강좌를 들었는데, 내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부모님으로부터 받아온 성차별,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로서 '공순이'라 불리며 받아온 차별이 사회 구조적 문제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알게 된 계기였다.

     

    Q 그러다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7~9월 전국적으로 분출한 노동자들의 노동쟁의와 민주화운동) 당시 하루가 다르게 옆 공장들은 노조를 만드는데 우리 회사만 노조가 없었다. 어느 날 과장이 나를 불렀고, 현장분위기가 시끌시끌하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자 조회대 앞에 모아 놓고, 조용히 시키라며 나한테 마이크를 주었다. 내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여러분 어떻게 할까요? 일할까요? 나갈까요?” 뜻밖에도 모두 나가자!”“나가자!”소리쳤다. 순식간에 1,500명이 넘는 여공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임금 인상하라!” “인간답게 살고 싶다!”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열었다.

    회사는 목요일부터 4일간 휴업을 선포했고 우리들은 분임장 60명이 모여 아욱실리움 기숙사에 모여 밤새워 노조를 결성하였다, 월요일 노조 결성보고를 홍보하러 갔다가 회사 간부들에게 잡혀가 빨갱이라는 욕을 먹고 노조 간부였던 친구 2명과 함께 대구새마을연수 보내졌다. 2주후 회사로 복귀하니 60여명을 모아 놓고 노조강제 해산을 하게 했다. 그리고 기술과와 설비과로 부서이동을 당하였다. 온갖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19885월 비밀리에 여성 동지들과 노조를 재창립했다.

     
      / ⓒ인터뷰이 제공
     

    Q 노조를 와해하려는 구사대의 폭력이 대단했을 텐데 어떻게 계속 싸울 수 있었나.

    노조를 재창립하자 회사는 남자 구사대(救社隊, 노동운동 파괴를 목적으로 회사측이 만든 노동자 조직) 300명을 동원해 무자비한 폭행을 저질렀다. 온몸이 멍들고 집단 구타를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 소식이 창원 지역 남성 노동자들에게 전해지면서 지역 전체의 투쟁으로 번졌고, 결국 회사로부터 노조 인정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위장 폐업을 시도했고, 우리는 기계 출고를 막으며 1년 가까이 공장 점거 투쟁을 해야 했다. 198912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공권력이 투입되어 전원 연행되었고, 나는 업무방해 및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1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마산교도소와 원주교도소 독방에서 꼬박 실형을 살고 19915월에 출소했다.

     

    Q 감옥 생활은 어땠나? 감옥에 가기 전과 후를 비교해 달라.

    내가 감옥에 가기 전 농성장에서 동지들과 농성장 사수팀과 재정팀으로 다양한 재정사업을 했다. 볼펜 판매 양말 판매 대학축제 때 김치전 판매도 하고, 서울 본사 대사관 부산 영사관등을 다녔다. 교도소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독서와 편지쓰기였다. 원주교도소 독방에 홀로 수감되어 너무 외롭고 힘들 때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 답장으로 마음을 나누었고, 출소하는 날 원주교도소 정문으로 그와 TC동지들이 대형 버스로 꽃다발과 두부를 들고 찾아왔다. 그도 나처럼 구속된 경험이 있어 노동자의 삶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던 것 같다. 그 후 1992년에 우리는 결혼했고 두 딸을 낳았다.

     

    Q 경남의 여성 노동 활동가가 어떻게 안산시민이 되었나?

    2003년 남편이 서울에서 일하게 되면서 나를 올라오라 했다. 나는 마산창원 여성노동자회에서 일하며 지역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안산여노 회장과 남편이 먼저 만나 아파트 전세를 얻으니 나도 아이들과 함께 이사와서 다음 날부터 안산여성노동자회로 출근했다. 여성 노동자복지센터와 고용평등상담실을 맡았다. 한부모자녀들과 체험학습 등, 실업계고등학교 노동법·최저임금 내 권리찾기 등 강의활동과 직장 내 성희롱예방교육 강사 활동을 하였다.

    특히 직장 내 갑질과 최저임금 위반으로 힘들어하던 청소 노동자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를 노동부 진정으로 처벌받게 하고, 출산·육아휴직 상담, 홈플러스 매대 노동자 상담으로 수많은 여성 노동자를 노조 조합원으로 연결했다. 한양대 안산캠퍼스 청소미화원 조합원들과는 풍물과 민요를 함께 배우고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 ⓒ인터뷰이 제공
     

    Q 그러다 안산을 넘어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장과 서울지부장이 된 건가.

    안산시흥지부, 부천지부. 영양사지회. 사서지회가 주춧돌이 되어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를 창립하였고 나는 안산여노 고용평등상담실 일과 안산시흥지부장를 겸하다 경기지부 조직국장이 되었다. 이후 경기지부장이 되었다. 안산 한양대 청소미화원 조직과 안산 지역 고등학교 급식조리원들의 처우개선 투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중식·석식으로 하루 4시간 넘게 연장근로를 하는데 학교는 2시간만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하였다. ‘연장근로근로기준법이 바뀌는 시점이었다. 조리원들은 억울해하며 어떻게 하면 일한 만큼 댓가를 받을 수 있는지 상담해 왔다. 공동교섭을 요구했으나 경기도 교육청은 사업주가 아니라며 교섭에 임할 수 없다고 했다.

    1년 가까이 고등학교를 돌며 교섭을 벌인 결과 연장근로 수당을 1.5배가 아닌 2.5배로 받는 단체협약을 타결해 냈다. 또한 서울지부장 시절에는 시간제 돌봄전담사들을 조직하여 4시간 시간제 초등돌봄전담사들의 차별 시정 투쟁을 시작하여 지노위 중노위 지법 고법 대법원까지 가서 차별 시정 판정을 받았고 그동안 차별 받았던 것을 보상받았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억울하면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급식 조리원들도 초등돌봄전담사들도 똘똘 뭉쳐 싸운 결과다. 유능한 김재진 노무사님과 공감 변호사님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연대해 준 덕분이다.

     
     / ⓒ인터뷰이 제공
     

    Q 안산여성노동자회에서의 활동과 연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

    안산여노에서 근무할 때 고용평등상담실 상담이 주 업무였다. 직장 내에서 여성노동자가 받는 성차별과 불합리한 차별에 대한 상담전화를 받고 무료 변호사를 선임하여 행위자인 상사가 처벌받고 억울한 노동자가 제 자리로 돌아갈 때 행복했다. 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이 삭감되니 퇴사했다. 그래도 한 달 한 번 뚜뚜(뚜벅뚜벅 걷기)’ 소모임 회원들과 함께 걷고 여행한다. 늘 일에 쫓기고 바빴지만, 페미니즘 토론토임 이프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줌이라 퇴근 후 할 수 있어 좋다. 무디어지기 쉬운 여성 노동과 성평등 이슈를 다양한 연령의 남녀가 함께 책과 영화로 토론한다.

     
     / ⓒ인터뷰이 제공
     

    Q 평생 여성 노동운동을 해왔고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해 싸워왔는데, 중년에 가장 저임금 돌봄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이런 여성의 노동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20대 때는 공장에서 산업역군이라며 착취당하고, 30~40대에는 IMF를 거치며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는데, 60이 된 지금도 최저임금 수준의 돌봄 노동자다. 그동안 대학원도 나오고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등 자격증을 땄지만 중년 여성노동은 여전히 단시간·저임금 비정규직이다. 급식, 청소, 돌봄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 노동임에도 적정임금도 정당한 대우도 거리가 멀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며 그렇게 싸웠는데 딸 세대마저 2년 계약직을 전전하는 걸 볼 땐 마음이 아팠다.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하는 걸 경험했는데, 세상은 여전히 쉽게 바뀌지 않는구나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요즘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평정심을 찾으려 한다.

     

    Q 현재 삶에 어려움, 또는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말해 달라.

    남편과의 관계가 숙제로 남아 있다. 동지적으로 잘 살 줄 알았는데 그는 지금 나 말고 다른 곳이 좋다고 멀리 떠나 산다. 내가 오래 가슴에 품어온 버킷리스트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10월에 1617일로 친구들과 함께 다녀오게 됐다. 그리고 곧 태어날 첫 손주 만날 날을 설레며 기다리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할 때 가장 당당하고 에너지 넘쳤던 것처럼, ‘수지 에니어그램이라는 좋은 도구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따뜻한 활동을 마음껏 펼치며 살아가고 싶다.

     / ⓒ인터뷰이 제공

     

     

    여공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장까지
    꿀벌

    조회수 326

    2026-08-13
  • 5기 아카이브 에디터 꿀벌입니다. 동십자각에서 열린 117회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40회 한국여성대회’ 스케치로 첫 인사합니다. 3월 8일(토)
    11:30-17:00에 43개 시민난장부스에 사람들이 북적댔습니다. 서울고용노
    동청 앞에선 12시 반부터 한국여성노동자대회가 열렸고요. 14:20-16:00
    기념식은 안국역 야5당 집회팀이 합류해 깃발 퍼포먼스를 한 후 17:00부터
    는 윤석열 탄핵 범시민대행진으로 이어졌습니다. 자 함께 구경해 볼까요?

    이번 한국여성대회의 절정인 깃발 퍼포먼스부터 소개하겠습니다. 기념식이
    이소선 합창단 공연으로 마무리될 즈음 광장의 모든 깃발이 입장하는 순서
    였어요. 하늘을 가득 채우며 펄럭이는 깃발들이 끝도 없이 등장하는 거예
    요. 깃발들 속에 보라색 작은 깃발들이 보이나요? 한 깃대에 크고 작은 깃
    발이 두 개씩인데요. 비상계엄과 내란으로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페미니
    스트가 구한다며 나부낍니다. 세계 여성대회 구호 “더 빠르게 행동하자!”에
    호응하는 제40회 한국여성대회 슬로건 “페미니스트가 민주주의를 구한다”
    깃발입니다. 장엄한 깃발의 바다였습니다. 깃발 퍼포먼스는 함께하는 몸짓 “댄싱퀸”으로 이어진 후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윤석열 파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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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과 혐오를 넘어 평등으로” 범시민대행진으로 이어졌습니다. 3.8세계여성의날 기념 시민참여부스에서 난장을!

    43개 시민참여 부스는 동십자각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길게 두 줄로 자리했
    습니다. 행사 안내 부스에서 “페미니스트가 민주주의를 구한다” 깃발을 받
    아 머리에 두건으로도 쓰고 깃발에도 묶었습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노회찬
    재단은 장미꽃 한 송이를 나누며 여성의 날을 축하했고요. 씩씩하게 긴 싸
    움을 버텨내는 동덕여대 학생들에게, 페미니스트 간호사들에게 응원을 보냈
    습니다. “교수님 저 페미예요”라 말하는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멋집니다. 모
    두의 결혼을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해 싸우
    고 페미니스트들과 연대합니다. “Abortion is human right” 맞습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부스 앞이 가장 유쾌한 난장이었어요. 뿌셔뿌셔
    과자 아시나요? 힘차게 뿌셔버리라고 한 봉지씩 주더군요. 활동가의 “사이
    버성폭력 뿌셔!”라는 구호에 맞춰 저는 과자를 든 오른손으로 높이 들고 오
    른쪽 무릎을 꺾어 올리며 힘차게 내리쳤죠. 제 손과 무릎 사이에 낀 뿌셔뿌
    셔 과자 봉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가루로 부서졌답니다. 함께 한 딸은 얼
    마나 세게 뿌셔버렸는지 봉지가 터지고 과자 입자가 쏟아졌지 뭡니까. 가장
    뿌셔버리고 싶은 가부장제와 여성혐오를 그렇게 뿌셔버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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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3.8 여성노동자대회: 차별없는 일터, 평등한 미래!
    해마다 그랬듯 한국여성대회 기념식에 앞서 12시 반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선 3.8여성노동자대회가 열렸습니다. 전국에서 1천여명 여성노동자들이 모
    여 차별없는 일터와 평등한 미래를 위해 발언하고 노래하는 자리죠. 여성의
    날은 1908년 뉴욕 루트커스 광장 여성노동자대회에서 시작되었잖아요. 작
    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노동자들을 추모하고 저임금·장시간 노동 등 노
    동환경 개선과 참정권을 요구하고 시위하던 117년 전과 오늘 한국의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전국 여성노동연대회의 소속 여성노동자들을 대표해 정연실 한국노총 상임
    부위원장, 최순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 권수정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대회사를 했습니다. 차별없는 일터, 평등한 미래 실현을 위한 5가지 의제로
    현장 발언이 있었습니다. 1 성평등 노동을 실현하는 정부, 2 돌봄중심사
    회로의 전환, 3 성별 임금 격차 없는 일터, 4 모두에게 평등한 일터, 5
    성폭력 없는 안전한 일터. 여성노동자들은 동덕여대의 채용성차별, 학교 비
    정규직의 최저임금과 성별임금격차, 돌봄문제, 고용평등상담실 폐지, 프리랜
    서 노동자 권익, 승진과 보상 차별(유리천장)도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차별없는 일터, 평등한 미래!” 5대 요구안을 발표했습니다. 하
    나, 정부는 성평등 노동 정책 수립하고 집행력 강화하라! 하나, 돌봄 공공
    성 강화하여 돌봄중심 사회로 전환하라! 하나, 성별임금격차 해소하라! 하
    나, 차별금지법 제정하고 모두에게 평등한 일터 만들어라! 하나, 성폭력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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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안전한 일터 만들어라! 그리곤 모두 동십자각까지 행진해서 기념식에
    참여했습니다.

    올해의 여성운동상, 성평등 디딤돌, 성평등 걸림돌
    한국여성대회의 꽃은 우리 사회의 성평등과 여성운동 발전에 공헌한 분들
    을 위한 시상식이었습니다. 올해의 여성운동상은 56년 만의 미투, ‘정당방

    -여성노동자대회 현장 발언 일부 소개-

    * 최저임금, 성별임금격차 현장 발언: 진경희(전국여성노조 서울지부 학교비정규직)
    교사와 공무원들은 매년 기본급이 올라가고 이에 따라 각종 수당들이 따라 올라가는데 학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10년, 20년, 30년을 근무해도 기본급이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있습
    니다.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일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보다 그 중요도와 가치
    면에서 뒤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생명과 연결되기 때문에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엄마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이렇게 임금을 차별하고
    저평가하는 것은 정말 치욕스럽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28년 동안 OECD에서 성별 임금 격차
    1위라는 오명의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 돌봄 현장 발언: 최영미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
    2014년 5,210원, 2024년 9,860원, 월급으로 210만원. 바로 10년을 열심히 일해 온 베테랑 돌
    봄노동자들의 월 급여입니다. 성과급? 교통비? 식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집에서 저 집으
    로 이동하다 식사 시간이 닥치면 밥을 먹을 장소도 마땅치 않습니다. 월급제가 아니다 보니
    고객 주문이 취소되면 그 시간만큼 급여가 깎입니다. 그런데도 누구를 막론하고 ‘좋은 서비
    스’, ‘질 높은 서비스’를 요구합니다. 밑바닥 임금을 받고 ‘아줌마’ 소리를 들어가며 어떻게 질
    높은 서비스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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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재심 개시결정으로 60년 만의 정의를 이끈 최말자님과 국내 최초로 여
    성혐오를 범행동기로 인정한 판례를 이끈 온지구 님이 받았죠. 성평등 디딤
    돌 수상자는 외국 먹튀 자본 착취와 성별화된 노동에 맞선 민주노총 박정
    혜 소현숙 님들,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판결 이끌어낸
    김용민 소성욱 부부와 변호인단 그리고 공교육 속에 구조화된 젠더폭력에
    맞선 지혜복 교사였습니다.

    올해의 여성인권상 수상자 최말자님은 1964년 자신을 강간하려는 가해자에
    저항하다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상해를 입혔습니다.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는 검찰과 법원에 의해 ‘피의자’가 되어 6개월여 구속되어 수사와 재판을
    받고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습니다. 가해자는 고작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죠. 최말자 님은 60세가 넘어 방송대학에서 공부하며
    여성의 삶과 역사, 인권에 대한 수업을 듣게 됩니다. 미투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를 찾게 되고 2020년 5월 6일 사건
    발생 56년 만에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을 청구합니
    다. “내 사건을 바로잡아야 후배 여성들에게도 억울한 일이 없겠다”라며 투
    쟁한 결과 2024년 12월 18일, 대법원이 재심 청구를 기각한 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 환송했습니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은” 용기로 반성폭력 운동
    의 큰 이정표를 세운 최말자 님. 노란 한복 차림이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
    다. 온지구 님은 일명 진주 편의점 여성혐오 폭행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너는 페미니스트니까 맞아도 된다”라며 폭행을 하고 기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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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수고 난동을 부렸죠. 사건 직후 온지구 님은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머리가 짧았을 뿐인데 불운한 일에 휘말렸다고 생각했다는데요. 그런데 숏
    컷 인증 릴레이로 연대하는 사람들이 이어졌습니다. 서울에서 다른 지역에
    서 연대로 함께 하는 여성들을 통해 그는 이게 여성의 일임을 깨닫고 싸우
    기로 하는데요. 마침내 2024년 10월 15일 국내 최초로 “가해자의 범행 동
    기는 여성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라는 판시와 함께 ‘여성혐오’를 비난할
    만한 동기로 인정하는 판결을 이끌어낸 후 꾸준히 연대하고 있습니다.

    제40회 한국여성대회 <3.8여성선언>
    한국여성대회에서 다양한 여성들이 함께 3.8여성선언을 돌아가며 낭독했습
    니다. “우리들은 시대를 이어 페미니스트이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구할 것이
    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해 같은 문장으로 끝나는 글이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도 현재도 여성들은 가장 먼저 투쟁해 왔고 여성들의 연대는 시대와 세대
    를 이어 연결되어왔음을 천명했습니다. “여성과 소수자가 일상에서 차별과
    폭력을 당하지 않고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요구하며 여성
    선언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성별, 성적 지향, 연령, 지역, 국적, 인종, 장애 여부
    등의 조건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시민의 기본권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요
    구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모든 차별과 폭력, 부정의에 적극적으로 대항하
    며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기반을 구축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성평

    -기억하자 올해의 성평등 걸림돌들-

    * 여성혐오를 산업화하고 성차별 통념 강화하는 유뷰브 사이버렉카. * 화성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를 일으킨 대표이사 박순관. * 국가에 의한 여성착취 역사 부정하고 삭제하려는 박형덕 동두천 시장. * 두 번의 성폭력범죄에도 여전히 의정활동 중인 송활섭 시의원과 그의 제명안을 부결한 대
    전광역시의회 14명의 의원들. * 성평등 도서를 폐기하게 하고, 학생인권조례 폐지 추진한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 혐오와 차별, 분열 조장 정치에 앞장선 경상남도 창원특례시의회. * 반여성 반인권적 망언과 태도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사명을 무너뜨린 김용원 상임위원, 이충
    상 전 상임위원. *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 쳬계 제시 못하는 교육부.

    - 7 -

    등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사회에서 배제되고 차별받아 온 모든 소수자들과 손을
    잡고 더욱 넓게 연결될 것이며, 더욱 단단하게 연대할 것이다. 우리는 시대
    를 이어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구할 것이다.”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40회 한국여성대회 스케치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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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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