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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웹진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잘 나가던 은행원이 현모양처꿈을 안고 결혼했다. 남편의 잇따른 사업 실패와 채무, 도박으로 결혼생활은 18년 만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생계형 한부모 여성노동자는 닥치는대로 일했다. 식당 아줌마, 공장 노동자, 국민건강보험 전화상담사를 거쳐 지금도 비정규직 일자리로 먹고산다. “이혼 10년을 살아내니 내 삶에 눈이 뜨였다라 고백하는 이문옥 님을 소개한다.

    여성에게 일과 가정이란 무엇인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들어보자.

     

    Q 현재 행정복지센터 비정규직 직원이다. 맡은 일이 무엇인가?

    안산시의 7개월짜리 계약직 디딤돌일자리로 행정복지센터에서 일상생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독거 어르신들을 방문해 안부와 일상의 문제들을 돕고, 사무실에선 행정 보조도 한다. 3월부터 시작했으니 어느새 6개월째다. 안산에서 두 딸을 키우며 쉬지 않고 일해온 30년 차 일하는 엄마. 최근 몇 년은 계약직으로 일하고, 끝나면 또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일을 찾아서 일한다. 며칠 전 국세청 홈택스에 들어갔다가 체납관리단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해 뒀다.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일자리라 내 조건에 맞더라.

     
      / ⓒ인터뷰이 제공
     

    Q 1996년까진 일 잘하는 여성 은행원이었다. 좋은 보수의 일자리를 버리고 서울에서 안산으로 오게 된 계기는 결혼이었나?

    결혼을 앞두고 은행에서 퇴사해야 했다. 당시 내 월급이 200만 원이 넘었다. 여상 졸업하고 입사해서 2년 만에 주임 달고, 3년 만에 계장 달 만큼 진급도 빨랐다. 하지만 은행 일이라는 게 현금을 직접 다루고, 매일 마감 시간에 맞춰 정산하니까 항상 팽팽한 긴장 속에 살았다.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라는 중압감에 시달리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위장병으로 병원 가기 일쑤였다.

    <고용보험법>도 없던 시절이라 여성은 결혼하면 퇴사하는 게 규정이었다. 언니들 중엔 비밀리에 결혼하고 쉬쉬하며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8년 경력자로 과장 시험을 앞두고 결혼 날짜가 잡혔다. 그때는 현모양처가 되는 게 여자의 행복인 줄 알았다. 모아놓은 돈으로 신랑을 도왔다.

     
      / ⓒ인터뷰이 제공
     

    Q 낯선 안산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는데, 현모양처 할만하던가?

    주산 부기 타자 학원 선생 소개로 그의 동생을 만났다. 선생을 믿고 만났는데, 막상 보니 결혼 준비에 대책이 없더라. 5남매의 막내지만 집에서 도움이 없었다. 첫 단추부터 싸했지만 내가 참고 노력하면 되겠지!’ 하고 내 돈을 꿔주며 결혼했다. 안산에서 남편이 빵 배달 대리점을 시작했다. 100% 현금거래라 저녁마다 현금을 셀 땐 금방 돈을 벌 것처럼 보였다.

    총판으로 사업을 넓히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사업 자금이 부족하니까 내 돈 천만 원에, 8년 부은 국민연금 환급금까지 다 깨서 대줘야 했다. 하지만 그는 밤마다 도박과 게임에 빠져들더라. 현금이 줄고, 거래처 미수금이 쌓이는데, 확인해 보면 이미 돈을 당겨쓰고 날려버린 상태더라. 내 명의로 은행 대출, 보험약관 대출, 사채와 카드까지 메꾸다가 결국 마지막 벼랑에 몰리더라.

     

    Q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빚더미에 이혼이라니, 쉬운 결정 아니었을 거 같다.

    2012년부터 내가 이혼을 요구했지만 2014년에야 끝났다. 결정적인 계기는 우리 큰애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한부모 가정이며 저소득층 자녀장학금과 급식비 지원 안내문을 보냈다. 내가 딱 깨달았다. ‘, 내가 남편 울타리를 못 버리면 빚에 쫓기다가 아이들의 미래까지 망치겠구나.’ 서류상으로라도 깨끗하게 정리해야 애들 공부를 시키겠더라.

    남편은 서류 정리를 안 해주려 버텼다. 내가 법원에 가서 서류 사인만 해주면 우리 생활엔 아무 변화 없게 해주겠다”, 설득했다. 법원 상담관한테 이렇게 어려운 상황인데 처리해 주는 게 맞다라는 말을 듣고서야 서명하더라. 4주간의 숙려기간 후 서류가 정리되던 날, 서운함이나 슬픔은 1%도 없었다. ‘, 이제 드디어 이 지옥 같은 늪에서 벗어났구나!’ 엄청난 해방감만 느꼈다.

     
      / ⓒ인터뷰이 제공
     

    Q 애 둘 딸린 이혼녀로서 새출발할 때, 마음이 여유가 없었을 거 같다.

    애 둘 데리고 나와서 바로 동사무소에 찾아갔다. “내가 애 둘이랑 살길이 뭐냐?” 물었더니 LH 임대주택을 가르쳐 주더라. 바로 신청했는데 떨어졌다. 다른 조건은 다 똑같은데 청약저축이 없어서 가점을 못 받았다더라. 기가 막히고 서러워서 직원한테 그랬다. “청약저축에 넣을 돈 있었으면 애들 생활비에 다 보탰지, 이런 게 있는 줄 알고도 안 넣었겠냐.”

    그길로 은행으로 달려가 청약저축 제일 적게 넣는 금액이 얼마냐?” 물었다. 매달 2만 원씩 차곡차곡 부었다. 1년 남짓 지나 다시 LH 공고가 떴다. 아이 둘 손잡고 임대주택 후보지를 직접 둘러본 후, 교통과 편의시설이 좋은 중앙동으로 정했다. 마침내 당첨 통보를 받고 집 문을 열었을 때,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한부모로 기초생활수급 주거 급여 대상이 되었다.

     

    Q 한부모 여성 가장으로서 생계를 홀로 책임지며 걸어온 길에 박수를 보낸다. 노동자로서 해온 일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노동의 역사를 약술해 보자.

    홀로서기 본격 시작은 식당 아줌마였다. 아는 동생이 쌈밥집을 열며 도와달라 했다. 남들은 10분 만에 하는 쪽파 한 단을 나는 눈물 흘리며 2시간 다듬었다. 하루 12시간 노동하고 한달 150만 원, 눈물이 나더라. 1년 하니 온몸이 만신창이로 골병이 들었다.

    핸드폰 부품 공장에서 3년 가까이 일했다. 시급 4,860원을 받으며 주야간 잔업에 주말 특근까지, 어떨 땐 24시간 근무로 뼈가 부서져라 일했다. 일이 끊기면 용역 과장한테 주말 알바를 받아내고, 큰애까지 알바를 시켰다. 요양보호사 교육원을 거쳐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상담원을 하다, 비정규직 병원동행 매니저, 일상생활 매니저까지 이어 왔다.

     / ⓒ인터뷰이 제공
     

    Q 국민건강보험 상담 일은 어떻게 하게 됐나? 일하던 중, 100일 만에 1,000명의 조합원을 모아 노동조합을 세우고 역사를 쓴 비밀이 뭐였나?

    국민건강보험 상담원으로 들어가니, 간접고용 용역업체 구조가 참 야속했다. 1년마다 용역이 바뀌면 퇴직금을 정산해 버려서 경력이 다 끊기고, 화장실 갈 시간조차 제대로 없는 열악한 조건이었다. “용역업체 중간 착취 말고 공단에서 직접 고용해라. 우리도 인간답게 일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슴속에서 끓어올랐다.

    2019년에 뜻있는 동료들과 결의하고, 100일 동안 비밀 작전으로 조합원을 모았다. 10주 만에 1,000명의 조합원을 조직해 창립총회를 열었다. 대의원 선거로 내가 부위원장이 되었다.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지만 사측과의 충돌은 심했다. 조합원들의 단결과 투쟁으로 휴가와 생리휴가를 자유롭게 쓰고, 눈치 안 보고 화장실 갈 수 있는 기본권리를 쟁취해 냈다. 동료들이 나를 두고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조의 역사적 인물이라 불러줄 때, 보람을 느꼈다.

     

    Q 노조활동을 통해 안산여성노동자회로 연결된 건가? 여성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과 삶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을 거 같다.

    처음엔 노동조합자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일할 때 팩스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안내문이 들어왔길래, 강의 들으러 간 게 안산여성노동자회와의 첫 인연이었다. 교육 후 수강생들과 후속 모임으로 책 모임을 만들고,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며 토론한 게, 지금 10년 차 페미니즘 토론모임 이프의 시작이었다.

    여성노동자회 활동을 통해 세상과 노동을 보는 눈이 180도 달라졌다. “내가 겪는 부조리와 차별이 내 개인 탓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2023년부터 안산여성노동자회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여성들이 존엄하고 평등하게 일하는 세상을 위해 작은 힘을 보탠다.

    특히 안산여성노동자회 회원 소모임 '뚜뚜(뚜벅뚜벅 걷기)'의 모임지기로서 한달에 한번 회원들과 함께 뚜벅뚜벅 걷고 여행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

     / ⓒ인터뷰이 제공

     

    Q 한부모 여성 노동자로 살아오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전남편과의 관계는 깨끗이 정리됐다. 그러나 이혼 후 홀로서기로 힘들 때 일로 연결되어 오랫동안 마음 쓰던 인연이 있었다. 나는 그의 일을 봐주고 그는 경제적으로 나를 좀 도와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가 자기 맘대로 전화해서 내게 요구하고 자기 말만 하는 등 이기적인 태도를 보였다. 예전의 나라면 속 끓이며 끌려다녔을 텐데, 아주 단호하게 선을 긋고 관계를 정리했다.

    남의 기분이나 사정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의 주도권을 딱 쥐고 나니, 가슴이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시원하더라. 타인이나 부모, 자식이나 남편에게 의지하려 했던 마음을 완전히 털어내고, 내 힘으로 바로 서는 것이 진짜 해방이고 자립이라는 것을 배웠다.

     

    Q 박봉의 일용직·계약직 노동을 전전하면서도 마침내 여성노동운동에 헌신하기까지, 살아온 과정에 큰 박수를 보낸다. 문옥 님만의 노동과 삶의 철학이 있다면?

    비록 내가 매달 큰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사글세 걱정하며 사는 것도 아니다. 은행원 시절부터 몸에 밴 절제된 생활 습관이 있어서 헛돈을 쓰지 않으니까, 적은 수입으로도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가끔 생각한다. 은행 입사 동기 남자들은 퇴직하기까지 은행원인데 여직원은 왜 퇴사하게 했을까? 나는 왜 지금까지 계약직을 전전할까? 이게 바로 사회 구조적인 불평등이더라.

    그럼에도 내 손으로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해서 두 딸을 키워낸 건 내 자부심이다. 얼마 전 알고 지내던 70대 언니가 사기를 당해 힘들게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형편도 박봉이지만 푹푹 찌는 더운 날 시원한 음식이라도 한 그릇 사드시라고 10만 원을 송금했다. 내 가슴이 시키는 대로, 적지만 힘든 이웃에게 베풀 수 있게 마음이 넉넉해진 게 감사하고 뿌듯했다.

     

    Q 엄마로서, 딸들과의 관계도 궁금하다. 험난했던 노동과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란 두 딸에게 지금 전하고 싶은 마음은 무엇인가?

    두 딸은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보석이자 버팀목이다. 빚더미 속에서 이혼하고, 식당에서 공장에서 고생하는 걸 본 아이들이라선지 참 바르게 자라주었다. 한때 둘째 아이와 오해가 생기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졸업 무렵 둘이 떠난 대부도 여행을 잊을 수 없다. “엄마가 먹고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버텨온 시간을 전했을 때 아이가 엄마 고생 많이 했구나 몰랐어라며 이해해 주었다.

    아이들에겐 늘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지만, 당당하게 일하고 불의에 맞서 노조로 싸운 엄마를 본 게 아이들에게 어떤 역경이 와도 스스로 일어서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

     

    Q “이혼 후 10년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내 삶에 눈이 열렸다라고 했다. 여성의 삶에서 참 의미있는 말이다. 앞으로 꿈꾸는 삶과도 연결된 말로 들린다.

    결혼생활 후반 10년간 결혼의 문제를 처절히 인식했다. 이혼 후 홀로서기 10년을 버텨내며,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열렸다. 전에는 부모나 남편을 의지했고 아이들을 중심으로 살았다. ‘현모양처말고, ‘이문옥자체가 삶의 주인이 되었다. 그 누구를 의지하거나 매이지 않게 되었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고, 세상을 보는 눈이 점점 너그러워지고 연대하게 됐다.

    큰 욕심은 없다. 적십자 봉사회(고잔1 봉사회), 안산-유기농먹거리와 건강개선지원사업 반찬도시락 참여, 노란리본 희곡산책 낭독극에 참여하며, 프롭테라피와 줌바 댄스도 한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며 봉사하고 연대하며 살고 싶다. 내 힘으로 일해 내 삶을 책임지며, 이웃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 노동자 이문옥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것이다.

     

     

    현모양처는 잊어라, 내 이름은 한부모 여성노동자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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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13
  • ● 청년 우울증 증가 현황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청년기(19~39세) 우울증 환자는 2014년 약
    11만 명에서 2023년 36만 명 수준으로 증가해 10년 사이 225%라는 매우 가파른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통계적 변화가 아니라, 청년층의 정신건강이
    구조적·사회적 압박 속에서 점점 취약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특히 청년기 우울증이 2020년 이후 만성질환 1위를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
    통적으로 만성질환을 주도하던 고혈압·간질환 등을 제치고 정신질환이 1순위로 올
    라섰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가 큽니다. 세계적 추세를 보더라도 보통 우울증은 노년층에서 높게 나타나지만, 한국은 예
    외적으로 20~30대의 유병률이 70대와 유사한 수준을 나타내는 독특한 구조를 보
    이고 있습니다. 이는 청년들이 경제적 불안, 고용 불안정, 사회적 경쟁, SNS 비교
    압박 등 복합적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며 중장년층 못지않은 정신적 과부
    하를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다시 말해 청년층의 우울은 개인적 취약
    성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과 정책적 허점이 누적되며 전
    연령대 중 가장 민감한 그룹을 직접적으로 압박한 결과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처럼 청년 우울증 증가세는 단순한 건강 지표가 아니라, 청년 세대의 삶의 질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 청년 우울증의 구조적 원인

    청년 우울증은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취약성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아니라, 청년
    을 둘러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특히 사
    회 구조의 변화 속에서 청년층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고, 이
    러한 압박이 지속적으로 누적되며 정신건강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먼저 경제적 불안정은 청년 우울증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됩니다. 정규직 일자리
    는 줄어드는 반면 단기 계약직과 플랫폼 노동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청년들은 안

    정적인 소득과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 전세 사기, 급격한 월세 상승, 주거 안정성까지 겹치며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경험을 반복하
    게 됩니다. 주거는 인간의 기본권과 밀접한 요소인 만큼, 이 영역에서의 불안은
    곧 삶 전체가 위협받는 감각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취업난과 과도한 경쟁 문화는 청년들이 성장기부터 지속적으로 느껴온 압
    박을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 확대시키는 구조입니다. 청소년기 입시 경쟁, 대학
    입학 이후 스펙 경쟁, 졸업 직후 취업 경쟁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실패는 곧
    낙오로 간주된다는 공포가 형성됩니다. 이는 스스로를 과도하게 평가절하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회피하게 만드는 심리적 위축으로 연결됩니다. 더불어 SNS가 강화한 비교 압력도 중요한 요인입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노출되
    는 타인의 화려한 일상, 성공담, 자기 계발 콘텐츠는 실제보다 과장되거나 편집된
    경우가 많지만, 이를 접하는 청년들은 ‘나는 뒤처지고 있다’는 감정에 빠지기 쉽습
    니다. 이러한 비교는 자존감 저하와 자기혐오를 유발하며, 때로는 현실과 스스로
    간의 격차를 극단적으로 왜곡해서 받아들이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고립과 관계의 얕아짐도 우울감을 심화시키는 원인입니다. 비
    대면 문화의 확산과 디지털 의존도 증가로 관계의 깊이가 줄어들고, 청년들은 자
    신의 감정을 안정적으로 지탱해줄 지지망을 찾기 어렵습니다. 겉으로는 많은 사람
    들과 연결된 듯 보이지만 정작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상대는 사라졌고, 이로 인해
    외로움과 고립감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형성됩니다. 결국 청년 우울증은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사회 구조적 압력이 겹겹이
    쌓인 결과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주거·노동·디지털 환경 전반에서의
    정책적 접근이 필수적입니다. ●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의 심리학적 영향

    심리학에서는 외로움이 우울증의 가장 강력한 촉발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단순히 혼자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 연결돼
    있다는 감각이 약해지고 정서적 지지를 제공해 줄 타인이 없다고 느껴질 때 발생
    하는 깊은 심리적 허기와 같습니다. 특히 청년기는 인간관계가 빠르게 변하고, 정
    체성과 역할이 유동적으로 재구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외로움이 자리 잡으면 그
    영향이 더욱 크게 확대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청년들은 학창시절의 비교적 안정된
    관계망을 벗어난 뒤, 사회로 진입하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스스로 구축해야 합니

    다. 그러나 취업 준비, 경제적 불안, 반복되는 실패 경험 등 다양한 압박 속에서
    관계 형성은 점점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을 찾지 못하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사소한 문제에도 자기비난이 과도하게 커
    지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심리적 변화는 점차 ‘나는 혼자다’, ‘누구도 나를
    돕지 않는다’는 인식으로 굳어지며 고립감을 강화합니다. 또한 외로움은 스트레스
    상황을 크게 증폭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같은 어려움이라도 주변에 공유할 사람이
    있으면 감정의 충격이 완화되지만, 고립된 상태에서는 작은 실패도 삶 전체를 위
    협하는 사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런 확대 해석은 우울한 생각을 반복시키
    고, 사고의 폭을 극도로 좁히며 현실 판단력을 약화시키게 됩니다. 결국 외로움이
    지속되면 청년은 자신이 사회로부터 분리된 존재라고 느끼고, 이 감정이 장기화될
    수록 우울증 발병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집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외로움이 개
    인적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관계를 맺기 어렵게 만드는 노동 환경, 심리적 지지체계를 약화시키는 경쟁 중심 사회, 온라인 소통이 대면 교류를 대체
    하며 생긴 관계의 얕아짐 등이 구조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외로움은
    개인이 만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연결망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구조적 손상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의지뿐 아니라 공동체와 정책의
    개입이 함께 필요합니다. ● 개인의 경험이 드러내는 현실

    청년 우울증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로는, 어린 시절과 성인기에
    걸쳐 연속적인 상처를 겪은 한 30대 초반 창작자의 경험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폭력과 따돌림을 겪었고, 성인이 된 뒤에는 부모를 연달아 떠나보내
    는 극심한 상실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심리적 기반을 흔들어 놓는 강
    한 외상으로 작용했고, 결국 일상적인 대면조차 어려워지는 대인기피와 깊은 우울
    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한동안 자신이 예전처럼 생기 있고 빛나던 사람이 아니게
    된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반복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트라우마가 개인의 자존감과
    정체성에 얼마나 근본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우울증이 단순한
    기분 저하가 아니라 ‘존재의 변화’를 동반하는 질환임을 시사합니다. 또 다른 사례
    는 20대 후반 여성으로, 극심한 피로감과 무기력으로 인해 일상 기능을 수행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던 경험을 들려줍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책 한 줄을 읽는 것조
    차 버거워졌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기본적인 행동도 큰 노력이 필요해졌습니다.

    이처럼 기능이 급격히 저하된 상태는 우울증의 주요 징후 중 하나입니다. 그는 고
    립감이 심해질수록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사고가 강화되었고, 작은 문제도 돌이킬
    수 없는 위기로 느껴졌다고 회상합니다. 결국 전문 상담을 통해 자신의 사고 패턴
    이 부정적 방향으로 과도하게 왜곡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이를 교정해
    나가면서 점차 회복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 두 사례는 청년 우울증이 단순히 감정적인 슬픔을 넘어, 사고·행동·관계·기능
    전반을 침식하는 질병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개인이 혼자 감당하
    거나 의지로 버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외상 경험·사회적 고립·경제적 압박이
    누적되면서 나타나는 복합적 결과라는 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들의 경
    험은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는 가벼운 표현과는 전혀 다른, 삶의 기반을 뒤흔드
    는 중대한 문제임을 분명히 드러내며, 한국 사회가 청년 정신건강을 바라보는 방
    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 국가·사회 정책의 변화와 과제

    최근 정부는 청년 정신건강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여러 제도적 개선을 추진
    중입니다. 그중 대표적인 변화는 정신건강검진 주기를 기존 10년에서 2년으로 대
    폭 단축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보다 빠르게 정신질환을 발견하고 치료로 연결하
    려는 취지입니다. 특히 우울증뿐만 아니라 조현병, 조울증 등 주요 정신질환까지
    검진 항목에 포함시켜 조기 개입의 폭을 넓히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또
    한 청년층 특성을 반영한 전문 심리상담 서비스나 회복지원 프로그램 등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실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우선 공공 상담기관에 대한 낮은 신뢰도
    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됩니다. 과거 상담 경험에서 충분한 공감이나 실질적 도움
    을 받지 못했다고 느낀 청년들이 이후 다시 상담을 시도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입
    니다. 더불어 접근성의 한계도 존재합니다. 많은 청년들이 시간적 여유나 지리적
    거리, 개인정보 유출 우려 등으로 인해 공공 심리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거나 이용
    을 망설이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에 거주하는 경우 해당 시설 자체가 부족하거나
    접근이 어려운 문제가 빈번합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정책 홍보의 부재입
    니다. 상담 프로그램이나 지원 제도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년들
    이 그러한 서비스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홍보 방식이 일방
    적이거나 청년층이 주로 활용하는 채널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결

    국 정책은 문서상 존재할 수 있으나, 실제로 당사자들이 정보를 접하고 이용할 수
    없는 구조라면 실효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건강 관련 제도는 단
    순히 ‘있느냐’보다 ‘얼마나 쉽게, 신뢰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느냐’가 성패를 좌우
    합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단순한 제도 마련을 넘어, 정책에 대한 인식 제고, 신뢰
    회복, 현실적인 접근성 개선이 병행되어야 하며, 청년이 자신의 정신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실질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데 정책적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 청년이 활용할 수 있는 정신건강 관리 전략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청년이 스스로의 심리 상태를 인식하고 회복력을 기를 수
    있도록, 단계별 접근 방식을 제안합니다. 이 전략은 단기적인 위기 대응뿐만 아니
    라, 일상 속에서 지속 가능한 정신건강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1단계는
    ‘기본 생활 패턴 점검’입니다. 정신건강의 붕괴는 대개 수면장애, 불규칙한 식사, 신체 활동 부족 등 일상 리듬의 무너짐과 함께 시작됩니다. 이른바 ‘생리적 기반’ 이 흔들릴 때 감정 조절 능력 역시 급격히 떨어지게 되며, 이는 우울의 초기 징
    후로 작용합니다. 특히 햇빛 노출이 부족하거나 야간 활동이 많을 경우 세로토닌
    등의 기분 조절 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작용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2단계
    는 ‘정서 안정화 전략’입니다. 요가, 명상, 복식호흡과 같은 신체 기반 안정 기법
    은 교감신경의 과잉 흥분을 가라앉히고 불안 완화에 효과적입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인지 거리 두기’ 기법은, 반복되는 부정
    적 사고의 고리를 끊는 데 유용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실패자야"라는 자동적 사
    고를 "내가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로 전환하는 방식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돕습니다. 3단계는 ‘전문 치료 개입 시
    점’입니다. 만약 기능 저하가 2주 이상 지속되고, 수면이나 식욕, 집중력, 대인관
    계 유지가 어려워질 정도라면 즉시 전문가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정신과 진료
    는 단지 약물 처방에 국한되지 않으며, 인지행동치료(CBT), 대인관계치료(IPT), 트
    라우마 치유 상담 등 다양한 맞춤형 접근이 가능하며, 치료 반응도 일반적으로 빠
    른 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기 개입이며, 늦어질수록 회복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됩니다. ● 살아남는 것의 가치

    오늘날 청년들은 생애주기의 가장 역동적인 시기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
    상은 수많은 불확실성과 사회적 압박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와 미래 가능성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용 불안정, 주거 문제, 비대면 시
    대의 관계 단절, 그리고 SNS를 통한 비교 스트레스는 이들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지속적으로 훼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와 회복 경험자들
    은 공통적으로 강조합니다. 우울증은 의지력이나 성격 탓이 아닌 치료 가능한 질
    병이며, 혼자의 힘만으로 벗어나야 하는 고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청년들이 꾸준한 치료와 정서적 지지를 통해 다시 삶의 균형을 회복하고, 이전보
    다 더 탄탄한 자아를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죽지 않는 선택"은
    생존 자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고통 속에서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존
    재로서의 가능성을 믿고 지키려는, 절박하지만 가장 용기 있는 선언입니다. 청년 우울증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나 일시적 감정의 기복으로 치부될 수 없습
    니다. 이는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인권적 과제이자 복지 정책의 핵심 영역이
    며, 노동 구조 전반을 재설계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사회적 경고입니다. 그 해결은
    거창한 제도 이전에, 청년들의 고통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고, 함께 버텨낼 수 있도록 사회가 역할을 다해
    야 할 때입니다.

    나는 왜 무기력한가...정답은 ‘이것’에 있었다
    주야

    조회수 86

    2025-11-20
  • ● 슬립맥싱(Sleepmaxxing)이란 무엇인가

    슬립맥싱(Sleepmaxxing)은 '수면(sleep)'과 '극대화(maximizing)'의 합성어로, 단순
    히 오래 자는 것을 넘어서 '질 높은 수면'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수면을 소비하거나 낭비되는 시간이 아닌, 자기
    관리와 웰빙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기 시작한 흐름입니다. 피트니스에서 몸을 가꾸
    는 것처럼, 슬립맥싱은 뇌와 정신을 회복시키기 위한 수면을 전략적으로 ‘관리’하
    는 방식입니다. 예전에는 '성공하려면 잠을 줄여야 한다'는 말이 미덕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수
    면 부족이 오히려 생산성과 창의력을 저해하고 정신 건강을 해치는 요소로 재조
    명되고 있습니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자기 효능감, 정신적 안정, 장기적 건
    강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일종의 '자기
    계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슬립맥싱은 단순히 ‘많이 자는 것’이 아니라, 수면 시간뿐 아니라 수면 환경, 수면
    전 루틴, 수면 이후의 컨디션까지 포함한 ‘총체적 수면 관리’입니다. 이에 따라 스
    마트워치, 수면 추적기, 고기능 매트리스 등 수면을 돕는 다양한 테크 제품도 함
    께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슬립맥싱은 오늘날의 피로 사회 속에서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으며, 건강과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
    운 트렌드라 할 수 있습니다. ● 수면의 생리학적 기능

    수면은 단순히 피로를 푸는 생리적 반응을 넘어서,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복합
    적이고 정교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우리 몸은 수면 중에도 끊임없이 작동하며, 낮
    동안 쌓인 신체적·정신적 부담을 해소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우선, 수면은 뇌를 청소하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뇌에는 '글림프 시스템
    (glymphatic system)'이라 불리는 림프계 유사 체계가 존재하며, 이는 우리가 자

    는 동안 뇌척수액을 통해 독성 노폐물, 특히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베타 아밀로
    이드' 단백질을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낮에는 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깊은 수면을 통해서만 뇌 건강을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수면은 기억을 정리하고 강화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
    면은 크게 렘(REM) 수면과 비렘(NREM) 수면으로 구분되며, 각 단계마다 뇌는 서
    로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합니다. 비렘 수면 동안에는 하루 동안 입력된 사실
    기반 정보가 정리되어 장기기억으로 전환되고, 렘 수면에서는 감정적 경험이나 창
    의적인 연결 고리들이 강화됩니다. 이는 학습 능력과 감정 조절 능력을 증진시키
    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면역 체계 강화 또한 수면의 핵심적인 기능 중
    하나입니다. 숙면을 취하면 면역세포의 분화와 재생이 활발히 이뤄지며, 염증을
    억제하는 면역 반응도 활성화됩니다. 반대로 수면이 부족하면 감기나 독감 같은
    바이러스 감염에 쉽게 노출되고, 백신 효과도 저하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존
    재합니다. 마지막으로 수면은 신체 조직을 복원하고 회복시키는 시간입니다. 성장
    호르몬은 대부분 깊은 수면 단계에서 분비되며, 이는 근육 회복, 세포 재생, 심지
    어 상처 치유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격렬한 육체활동 후에는 양질의 수면
    이 운동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상을 예방하는 데에도 기여합니다. 이처럼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뇌와 몸이 자신을 재정비하고 회복하며 미
    래의 건강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생물학적 리셋'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면
    이 부족하거나 질이 나쁘면 이러한 기능들이 왜곡되며, 장기적으로는 전신 건강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슬립맥싱이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과
    학적으로도 필연적인 흐름이라는 점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 수면 부족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수면 부족은 단순히 피곤함을 느끼는 수준을 넘어, 신체와 정신 전반에 걸쳐 다양
    한 부정적인 영향을 유발하는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드러
    나는 증상은 집중력과 사고력의 저하입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전두엽 기능이 저하
    되어 주의력이 분산되고 반응 속도가 느려지며, 논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이는 일상 업무의 효율을 낮추고, 운전이나 기계 조작과 같은
    고위험 상황에서는 사고 발생률을 현저히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정서적 측면에서도 큰 타격을 입습니다. 수면 부족은 뇌의 편도체와 전전두
    엽 간 연결을 약화시키며, 이는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야기합니다. 실제로 수면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사소한 자극에도 과민반응을 보이거나 쉽게 분노하며, 우
    울증과 불안장애 같은 정신질환의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
    속적인 수면 결핍은 감정적 안정성을 해치고 대인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
    니다. 신체 건강 측면에서도 수면 부족은 만성 질환의 위험을 가중시킵니다. 충분한 수
    면은 인슐린 민감도를 조절하고 호르몬 균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지만, 수면이
    부족하면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하고 렙틴과 그렐린 등 식욕을 조절하는 호르몬에
    도 이상이 생겨 비만, 제2형 당뇨병, 고혈압 등의 질환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이
    외에도 수면 부족은 심혈관 질환, 뇌졸중, 대사 증후군 등 다양한 만성 질환과 직
    결됩니다. 면역력 저하도 수면 부족이 가져오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숙면은 면역세
    포의 활성화와 재생에 필수적인데, 수면이 부족하면 감기나 독감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에 쉽게 노출되고, 병에 걸렸을 때 회복 속도도 지연됩니다. 한 연구에 따르
    면, 하루 6시간 이하로 자는 사람들은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 때 감염될 확
    률이 4배 이상 높다는 결과도 존재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수면 부족은 뇌 신경
    세포의 손상과 퇴화를 야기하여 치매, 특히 알츠하이머병의 발병률을 높이는 요인
    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심각한 만성 수면 부족 상태는 생존율 자체를 낮
    출 수 있으며, 삶의 질 전반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수면 부족은 단순한
    생활 습관 문제가 아니라, 인체 전반의 기능을 파괴하고 심각한 건강 문제로 이어
    질 수 있는 심각한 사회적·의학적 문제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 슬립맥싱 실천 방법

    슬립맥싱을 효과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일찍 자는 것’만으로는 부족합
    니다. 수면의 질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선 일상 속에서 전략적으로 수면
    습관을 설계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실천 방
    법은 일정한 수면 루틴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기
    상하는 패턴을 만들면 생체 리듬이 안정화되며, 뇌가 자연스럽게 ‘수면 모드’로 전
    환되는 시간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고, 수면의 깊이도 향상됩니다. 전자기기 사용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스마트
    폰, TV, 태블릿 등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는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해 수면을 방
    해하므로, 최소한 수면 1시간 전에는 모든 전자기기 사용을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대신 독서나 스트레칭, 명상과 같은 이완 활동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 수
    면 유도에 도움이 됩니다. 음식과 음료 조절도 슬립맥싱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카페인은 각성 효과가 강해 최소 4~6시간 전에는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습
    니다. 알코올 역시 일시적으로 졸음을 유도할 수는 있지만 수면의 깊이를 얕게 만
    들어 오히려 피로가 누적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수면 환경 역시 세심하
    게 신경 써야 합니다. 조명이 어둡고 소음이 없는 공간, 약 18도 내외의 시원한
    온도, 몸을 편안하게 감싸주는 매트리스와 침구는 수면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
    인입니다. 실내 공기의 질도 수면에 영향을 미치므로 가습기나 공기청정기를 활용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수면의 질을 가시적으로 파악하고 개선하
    기 위해 수면 추적 앱을 사용하는 것이 추천됩니다. 이러한 앱은 수면 시간, 깊
    이, 뒤척임 등을 기록하고 분석해 사용자 맞춤형 수면 개선 방안을 제시해줍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수면 습관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나에게 맞는 최적의 수면 조
    건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슬립맥싱은 결국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고 관리
    하는 과정이며, 그 핵심은 '습관의 일관성'과 '환경의 조율'에 있다고 할 수 있습
    니다. ● 슬립맥싱이 주는 사회적 함의

    슬립맥싱은 단순히 개인의 건강 관리 방법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사회 전반에
    걸쳐 의미 있는 변화를 촉진하는 문화적·산업적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
    선, 슬립맥싱은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성과 중심의 근로 문화를 근본적으로 흔들
    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더 오래, 더 많이 일하는 것'이 생산성의 상징으로 여겨
    졌다면, 이제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회복하고 집중하느냐'가 핵심 기준으로 떠오르
    고 있습니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시키
    는 능동적인 자원으로 재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기업 문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선진적인 글로벌 기업들은 직원들의 정신
    적·신체적 회복을 위한 복지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사내에 '수
    면실'을 설치하거나, '파워낮잠'을 공식 근무시간에 포함시키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기적으로 직원들의 피로를 해소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조
    직 전체의 창의력, 만족도, 이직률 감소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고 있습니다. 슬립맥싱 트렌드는 새로운 산업적 기회도 창출하고 있습니다. 고급 매트리스, 기
    능성 침구, 스마트 수면 디바이스, 멜라토닌 보충제, ASMR 콘텐츠 등 수면 관련

    상품의 시장 규모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으며, ‘수면 테크(Sleep Tech)’는 헬스테크
    산업의 핵심 분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수면 전문 컨설턴트나 수면 코
    치라는 새로운 직업군도 생겨나고 있어, 수면이 단순한 생리적 현상을 넘어 하나
    의 ‘라이프스타일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슬립맥싱은 단지
    잠을 잘 자는 법을 넘어서, 일과 삶의 균형, 조직 운영의 패러다임, 소비자의 건
    강 인식, 그리고 전 세계 산업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다층적인 트렌드입니다. 수면이 단순한 생존의 조건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중요한 자
    원으로 인식되고 있는 시대. 슬립맥싱은 건강한 삶을 넘어, 건강한 사회를 위한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 조언

    수면의 양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질’입니다. 하루 8시간을 잔다고 하더라도
    수면의 질이 낮다면 피로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다음 날 더 무기력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고 수면의 질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실천
    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이 중요합니다. 우선 낮잠은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 20분 이내의 짧은 낮잠은 피로를 회복시키는
    데 효과적이지만, 그 이상 자면 생체리듬이 교란되어 밤잠의 질을 해칠 수 있으므
    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낮잠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이지, 본 수면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운동도 수면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아침이나 이른 저녁
    에 가볍게 땀을 흘리는 유산소 운동은 체온과 호르몬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
    어 수면 유도를 돕습니다. 다만, 너무 늦은 시간에 격렬한 운동을 하면 오히려 각
    성 상태가 유지되어 수면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아로마테라피는 심신을 이완시키는 데 효과적입니다. 라벤더, 캐모마일, 일랑일랑
    같은 향은 뇌파를 안정시키고 불안을 감소시켜 수면 유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
    니다. 디퓨저나 아로마 오일을 이용해 수면 전에 방 안을 향으로 채우는 것도 좋
    은 방법입니다. 자기 전 명상이나 일기 쓰기도 매우 유익한 습관입니다. 하루 동
    안의 감정이나 생각을 정리하고, 감사한 일들을 기록하는 ‘감사 일기’는 뇌를 긍정
    적이고 안정된 상태로 전환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과정은 심리적 스트레스
    를 해소하고 긴장을 완화시켜 수면에 보다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게 합니다. 음식 조절도 중요합니다. 취침 2시간 전에는 식사를 마무리해야 하며, 너무 기름
    지거나 매운 음식은 위장에 부담을 주어 숙면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대신 바나

    나, 체리, 호두처럼 수면 유도에 도움을 주는 아미노산(트립토판 등)이나 멜라토닌
    이 풍부한 식품을 간단히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처럼 수면의 질을 높이는 방
    법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습관들에서 출발합니다. 꾸준한 실천이
    쌓일수록 몸은 점점 더 깊고 안정된 수면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 맺음말

    슬립맥싱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 ‘수면을 통해 삶을 재설계하는’ 깊이 있는 흐름
    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잠을 줄이면 성공한다'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제는 수면이야말로 창의력, 감정 안정, 생산성,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
    는 데 가장 강력한 도구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슬립맥싱은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
    고 돌보는 방식이며, 스스로의 삶을 보다 의식적으로 설계하는 실천이기도 합니
    다. 오늘 밤, 내 침실의 조명은 적절한가, 잠들기 전 습관은 괜찮은가, 내가 정말
    잘 자고 있는지를 점검해보시길 바랍니다. 아주 작은 변화 하나가 당신의 하루, 그리고 인생 전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건강한 수면이 곧 건강한 삶의 출발점입니
    다. ‘잘 자는 사람’이 결국 ‘잘 사는 사람’입니다.

    잠꾸러기들이 인생을 지배하는 시대가 왔다
    주야

    조회수 68

    2025-04-18
  • 엄마의 메모가 들려주는 말 – 농 통역사 박수진의 이야기

    수어 통역사는 손으로 말하는 사람들과 입으로 말하는 사람들 사이의 다
    리가 된다. 한국수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과, 한국어를 제1 언어
    로 사용하는 청인 사이에서 그들은 단어와 표정, 침묵마저 언어로 바꾸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다리 위에 또 다른 다리가 존재한다면? 바로 ‘농(聾) 통역사’
    이다. 공식 명칭은 ‘청각장애인 통역사’이지만, 현장에서는 농 통역사라
    불린다. 이들은 청인 통역사조차 채 다 담아내지 못하는 농인의 삶과 언어, 그 미묘한 숨결을 대신 읽고, 대신 전한다. 농 통역사는 모든 농인을 위한 통역자이다. 왜냐하면 모든 농인이 수어를
    완전하게 구사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글로 대화하고, 어떤 이
    는 입 모양으로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오직 눈빛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농인의 언어는 하나로 묶을 수 없다. 유년기의 언어 환경, 교육, 가족, 그리
    고 농 사회와의 연결 여부에 따라 언어의 형태도, 깊이도 달라진다. 그래서
    농 통역사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마음의 결을 어루만지는 소통의
    안내자다. 그런 길을 걷는 한 사람, 박수진. 그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안산농아인협
    회 간사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야기를 잃지 않은 한 명의 ‘나’다. 이
    글은 장애에 대한 담론이 아니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고, 성장의 기록이
    며, ‘엄마’라는 말이 품고 있는 깊이에 대한 증언이다.

    (안산 농아인 협회 간사 박수진)

    나는 농아인입니다. 나는 손으로 말하고, 눈으로 듣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입술로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내 삶을 고요하다고 생
    각하지만, 나는 그 고요 속에서 너무나도 분명한 울림을 들으며 살아왔습니
    다. 그 울림은 언제나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엄마’라
    는 이름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한 번도 혼자라고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군가
    의 동생이었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빠의 손 편지, 아빠
    의 눈물, 그리고 엄마의 수많은 메모. 말 대신 건네받은 글자들은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스며들었고, 내 삶을 꿰뚫는 선이 되었습니다. 내가 두 살 무렵이었을 거예요. 말을 좀 늦게 배운다는 것 외에는 그저 귀
    엽고 예쁜 막내딸이었어요. 어느 평범한 날, 나는 거실에서 놀고 있었고, 그
    뒤에서 컵이 떨어졌습니다. 집 안은 순간 정적이 흘렀고, 모두가 놀란 눈으
    로 나를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어요. 소리
    를 듣지 못했던 것이죠. 그날 이후, 부모님은 병원을 전전하며 검사를 받으셨고, 결국 의사의 입에
    서 ‘청각장애’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그 순간, 부모님은 눈앞이 깜깜했

    다고 해요. 저는 변한 게 없었지만, 세상이 저를 다르게 보기 시작한 건 그
    때부터였습니다.

    (두 살 박수진님)

    내 고향은 부산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방파제에 갔던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어요. 바다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손이 내 쪽으로 뻗어왔고, 나는 그 손을 잡았어요. 아버지는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안으시고, 이마를
    맞대며 웃으셨어요. 그리고 천천히 방파제 아래로 걸어 내려갔죠. 나는 아
    빠 품에 있어도 넘실거리는 파도가, 얼굴에 날리는 바닷물이 무서웠어요. 그 순간, 나는 입을 열어 처음으로 소리를 냈어요. “아빠.”

    아버지는 저의 목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어
    요.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앞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훗날 아버지
    에게 물었어요. 그날, 방파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아버지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네가 살아갈 앞날이 너무 걱정돼서... 바보처럼 같이 죽으러 간 거였다. 그런데 네가 '아빠'라고 불러서... 정신이 번쩍 들었지.”

    아버지는 어린 내게 세상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하셨어요. 그래서 병원

    에 보내 구화 훈련을 시켰습니다. 휴지를 입에 대고 불어 찢는 연습을 매일
    같이했어요. 휴지가 찢어지지 않으면, 집에 돌아갈 수 없었죠. 나는 그 시간
    이 괴로웠고, 슬펐어요. 무언가를 말해야 했지만, 무슨 뜻인지 몰랐고, 들리
    지 않는 소리를 흉내 내야만 했어요. 입술은 움직였지만, 마음은 굳게 닫혔
    어요.

    * 구화인
    모든 청각장애인이 농인은 아닙니다. 유년기에 청각장애가 생긴 사람 중
    1보청기·인공와우 등 청각 보조장치를 사용하거나, 대화 상대방 입술
    의 움직임을 읽어서 상대방의 발화를 파악하고
    2발성 훈련을 하여 음성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구화 인이라고
    합니다. 구화인은 청능훈련·구화법·발성 훈련 등을 통해 한국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나는 생모의 손을 잡고 서울로 이
    사했어요. 이유는 몰랐지만, 오빠와 함께 낯선 도시에 전학을 가게 되었죠.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고, 수업 시간은 고통이었어요. 청인들과
    함께하는 수업 시간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저는 바보처럼 앉아만 있어
    야 했죠. 하지만 쉬는 시간에는 달랐어요.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재미있게
    놀았죠. 쉬는 시간만 기다리는 무의미한 학교생활,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
    요.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적어 내라는 것에요. 저는 장래 희망이라는 단어
    의 뜻도 몰랐죠. 가만히 앉아 있는 저에게 선생님은 직접 저의 장래 희망을
    적었어요. ‘왕자님과 결혼하기.’

    저도 모르는 저의 장래 희망은 왕자님과 결혼이 되었죠. 한글도 모르는 저
    는 멍청히 앉아서 쉬는 시간만을 기다리는 학교가 그래도 좋았어요. 나는

    그저 조용히 앉아 있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뛰어놀고, 청소하고, 다시 조용히 앉아 있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공부는 못했지만, 청소는 누구
    보다 잘했죠. 그래서일까요. 선생님은 나를 안쓰럽게 여기셨고, 엄마와 상의
    해 나를 농아학교로 전학 보냈어요.

    (서울 농아학교 운동장에서)

    농아학교는 내게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나처럼 손으로 말하고, 눈으로
    듣는 친구들이 이렇게 많다니! 처음으로 ‘같다’라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기숙사 생활도 즐거웠어요. 밤늦도록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얼
    굴을 마주 보며 수어로 수다를 떨었죠. 나도 평범한 아이였다는 것을 그곳
    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주말이면 집으로 갔어요. 보통
    오빠가 데리러 왔죠. 어느 날 오빠가 저에게 묻더군요. “수진아, 돈 있니?”

    저는 많지 않지만, 학교에서 주는 용돈이 있었어요. 가끔 용돈을 모아서
    오빠에게 주곤 했죠. 나에게 돈이 있냐고 물었던 그날, 오빠는 며칠을 굶은

    상태였어요. 엄마의 방임으로 오빠는 혼자 지내는 날이 많았어요. 저는 엄
    마에게 부산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떼를 썼어요.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하면 보내주지 않겠죠. 그래서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꾀를 썼죠. 엄마는
    마지못해 오빠와 저를 부산에 다녀오라고 허락을 해줬죠. 부산에서 만난 아빠는 우리를 보고 눈물을 흘렸어요. 그날 이후, 지루한
    소송 끝에 오빠와 저는 아빠와 함께 살기로 했죠. 그때 제 나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어요. 그 당시 아빠는 대전에서 생활하고 있었어요. 대전 아빠 집
    에는 처음 보는 언니가 있었어요. “이제부터 언니가 아니라 엄마라고 불러.”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닫았어요. 나에게는 이미 엄마가 있었으니까요. 그녀를 무시했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어요. 심지어 아빠에게 거짓말을 했어
    요. “그 언니가 날 괴롭혀.”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생리가 터졌어요. 너무나 무서웠
    죠. 화장실에 숨어 울고 있는 저에게 언니는 달려왔어요. 회사에서 집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저를 구해주셨죠. 생리대 사용법부터 모든 것을 알려주신
    언니는 그날부터 저에게 엄마가 되었답니다.

    (중학생 박수진 가족 사진)

    아이를 낳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나는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어
    요. “엄마는 왜, 아이를 낳지 않았어?”
    엄마는 내 곁에 누워 잠든 아기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너희들을 본 순간 알았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하나님이
    이미 두 명이나 아이를 주셨는데, 또 아이를 낳을 필요가 있을까?”

    제가 고등학생 무렵이었을까요? 버스 정류장에서 엄마와 두런두런 이야기
    하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때, 곁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나에게 물
    었죠. “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니?” 제가 어눌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외국
    인인 줄 알았나 봐요? 엄마는 정색하며 아주머니에게 말했죠. “제 딸이에
    요.” 저는 분명 엄마의 입술에서 나오는 ‘제 딸이에요’라는 말을 읽었어
    요. 그때 저도 “우리 엄마예요.”라고 이야기해야 했는데 못 했어요. 죄송
    해요. 하지만 엄마의 ‘제 딸이에요’라는 말은 저에게 힘이 되었어요. 내
    가 엄마의 딸이구나. 그때부터 엄마는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나의 엄마 그
    리고 서울 엄마는 생모가 되었어요. 엄마는 수많은 메모와 편지를 내게 남겨주셨습니다. 학교에 다녀오면 냉장
    고에 붙은 메모가 반겨주었고, 서랍 안에는 언제나 손 편지가 기다리고 있
    었죠. 내가 힘들 때마다, 외로울 때마다, 엄마는 어떻게 알았는지 편지를 남
    겼어요. 그 글들은 내가 버리지 못한 사랑의 기록입니다.

    내가 생각이 짧아서 엄마가 수어를 배우겠다고 했을 때, 저는 싫다고 했
    죠. 엄마가 수어를 알면 간섭과 잔소리가 더 심해질까 봐 그랬어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철이 없었어요. 엄마와 수어를 함께 배웠다면 지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요. 그리고 엄마, 나는 한 번도 엄마가 나를
    낳지 않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엄마는 언제나 나의 엄마였고, 엄마
    의 메모 한 장, 편지 한 줄이 나를 살아가게 했어요. 내가 흔들릴 때마다, 엄마의 글이 나를 붙잡아줬어요. 그러니까 저에게 미안해하지 말아요. 엄마,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20살 박수진 가족사진)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를 처음 만난 건 아마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거예요. 그 시절
    나는 엄마를 “언니”라고 불렀지요. 상봉국민학교에 다니던 나는 종종 아
    빠 회사를 찾았고, 그때마다 엄마는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시원한 물도 건
    네주셨어요. 그런 순간들이 너무 좋아서, 나는 매번 엄마가 있는 그 공간을
    향해 들떴던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곤 했어요. 그때의 나는 몰랐어요. 그 ‘언니’가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존재가 될 거라는 걸.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내가 아빠와 함께 지내게 되면서 그 ‘언니’가 어
    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었을 때, 어린 마음에는 그 변화가 너무 낯설고
    어색했어요. 좋아했던 만큼 당황스러웠고, 그만큼 거리를 두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몰라도, 엄마는 단 한 번도 내게
    서 멀어지지 않았어요. 언제나 다정했고, 꾸준했고, 따뜻했어요. 나를 기다
    려주고, 말없이 품어줬어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정말 자연스럽게 엄마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기억나요? 내가 흰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갔다가, 월경 자국이 묻은 줄도 모
    르고 당황하며 집에 돌아왔던 날. 그날 엄마는 회사 일을 잠시 미뤄두고 나
    를 향해 달려와 주셨어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다정하게, 월경에 관해 이
    야기해 주고, 나를 부드럽게 감싸안아 줬어요. 처음 겪는 몸의 변화에 놀란
    나에게 엄마는, 생리보다 더 큰 따뜻함을 가르쳐주셨죠.

    감기로 앓아누웠을 때도, 몸살로 말 한마디 못 할 때도, 엄마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어요. 병원도 함께 가고, 약도 챙겨주고, 말없이 손을 잡아줬어요. 내가 엄마 껌딱지처럼 들러붙었던 시절, 엄마는 아마 많이 피곤했을 거예
    요. 그런데도 엄마는 지친 내색 한번 없이 나를 안아줬어요. 그 모든 순간
    에, 지금이라도 늦게나마 말하고 싶어요. 정말 고맙고, 정말 미안해요. 요즘 나는 다시 출근을 시작했어요. 아침마다 전쟁처럼 바쁜 하루가 시작
    되고, 나도 정신없이 준비하면서 준혁이와 하나까지 챙겨야 하니 숨 돌릴
    틈이 없어요. 그런데 그런 어느 날, 문득 엄마가 떠올랐어요. 엄마도 예전에
    출근 준비하며, 오빠와 나를 챙기고, 매일 아침 도시락까지 싸셨잖아요. 그
    모든 걸 해내면서도 내 앞에서는 늘 웃어주셨던 엄마. 그때는 왜 몰랐을까
    요. 왜 나만 힘들다고 여겼을까요. 요즘의 나는 많이 지쳐 있어요. 준혁이는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이고, 하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라 여전히 손이 많이 가요. 남편은 직장을 옮겨 정신
    이 없고, 나는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며 모든 것이 낯설고 버겁기만 해요. 그런데 그런 순간마다, 이상하게 엄마가 떠올라요. 엄마를 떠올리면 이상하
    게 마음이 놓이고,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하는 용기가 생겨요. 그건 아
    마, 내 안에 엄마가 주신 힘이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겠죠. 엄마, 나를 그렇게 사랑해 줘서 고마워요. 내가 엄마에게 벽을 세울 때도, 뒤돌아설 때도, 엄마는 한결같이 다가와 줬어요. 그 사랑이 나를 사람으로
    키우고, 지금의 엄마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나도 이젠, 엄마처럼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떠나시던 날, 내가 할머니
    앞에서 약속했었죠. “할머니, 엄마는 제가 꼭 잘 챙길 테니까 걱정 마시고 편하게 쉬세요.”

    그 약속, 변하지 않을 거예요. 어떤 순간에도 나는 그 약속을 지킬 거예요.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아가는 동안 엄마는 내게 늘 멘토가 되어주었고, 따
    뜻한 위로가 되어주었어요. 준혁이 키우며 막막했던 때, 조언해 주고 힘이
    되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우리 아빠요. 성격이 쉽지 않잖아요. 그런 아

    빠 옆에서 묵묵히 함께해줘서, 아빠의 빈틈을 채워줘서, 정말 감사해요. 앞
    으로는 엄마께 더 자주 안부 전화도 드리고, 더 자주 웃게 해드릴게요. 말
    로만이 아닌 마음으로, 삶으로 효도할게요.

    2025. 04. 05
    사랑합니다. 우리 엄마.

    덧붙이며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조심스레 바라봅니다. 혹시라도 농아인을 향한 낯선
    시선이 있었다면, 이 글을 통해 마음이 조금은 바뀌었기를 바랍니다. 농아
    인도 여러분과 다르지 않은 딸이고, 엄마이고, 아내입니다. 우리는 ‘소리
    없이’ 살아가지만, 그 안에는 세상의 어떤 언어보다 깊고 진한 사랑이 있
    습니다. 제 글에서 그 사랑을 느끼셨나요?

    엄마의 메모가 들려주는 말 – 농 통역사 박수진의 이야기
    윤작가

    조회수 70

    2025-04-12
  • 여성의 기본 인권, 월경권 — 거대한 침묵과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넘어, 경기도 골목마다 다정한 존중과 평등의 푸른 숲을 일구어내는 감동의 여정

    편견의 그늘과 쉴 새 없는 생리의 공백 뒤편에서, 여성의 당연한 존엄을 지키며 평등한 내일을 빚어내는 눈부신 발자취를 마주하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부끄러움과 은폐의 대상로 치부되며 씻을 수 없는 소외와 경제적 부담을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여성과 청소년들의 일상. 방관과 침묵의 장막을 깨부수고, 묵묵히 두 손을 모아 월경을 건강권이자 기본적 인권으로 바로 세우기 위해 나선 이들의 헌신 속에서 촘촘히 엮어 온 ‘여성의 기본 인권, 월경권’의 눈부신 발자취를 깊이 들여다보다.

    "우리는 과연 ‘월경은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사적인 문제일 뿐, 사회나 공공이 개입할 일이 아니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인권 활동가들, 그리고 공익활동가들이 손을 맞잡으며 저마다의 진심으로 평화와 상생의 품을 엮어내는 ‘월경권을 통해 존엄을 꽃피우는 인권 자치의 품’을 어떻게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풀뿌리 여성 인권 자치와 보편적 건강권 보장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경기도 전역에 지속 가능한 상생과 평등의 숲을 깊이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여성의 기본 인권, 월경권’이 품은 3가지 핵심 과제와 비전

    1. 방관과 침묵의 장막을 허무는 ‘풀뿌리 월경권 보장 및 자발적 안전 생태계 구축’

      • 월경을 숨겨야 할 비밀이나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하던 낡한 관행에서 벗어나, 경기도민과 공익활동가들이 동네 골목과 공공의 공간에서부터 직접 안전한 용품을 나누고 건강권을 챙기는 자발적 생태계 다지기.

      • "진정한 인권 자치의 완성은 거창한 복지 담론의 선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네 골목 작은 보건 사랑방에 모여 앉아 이웃들과 손을 잡고 청소년과 취약계층의 월경 용품 접근성을 꼼꼼히 살피며 따스한 온기를 전하는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2. 고립을 넘어 온기를 잇는 ‘시민 참여형 건강 감수성 및 연대 강화’

      • 월경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부담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지혜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 창출.

      • "혼자서 거대한 편견과 경제적 벽과 마주하면 막막하고 두렵지만, 경기도 도민들이 손을 잡고 함께 목소리를 높이면 그 어떤 차별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3.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평등의 그물망으로 잇는 ‘상생 월경권 네트워크’

      •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여성 커뮤니티들과 도민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모든 이의 신체적 존엄이 차별 없이 보장되는 상향식 민주주의와 인권 자치 실현.

      • "모든 도민과 여성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공생의 무대" 완성.

    현장의 온기로 채워졌던 뜨거웠던 토론과 교감의 시간들

    도내 각지에서 모인 여성 인권 활동가들과 평등한 경기도를 염원하는 수많은 도민이 한자리에 모여 월경권의 의미를 되새기고, 경기도를 진정한 '어떤 이도 배제되지 않는 평화와 인권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았던 공론장 및 연대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온기로 가득 채웠다.

    • 참가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학창 시절 당장 월경 용품이 없어 불안하고 서러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이웃들과 함께 '모든 여성이 안전하고 당당하게 월경할 권리를 누리자'며 손을 맞잡으니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진짜 따뜻한 온기가 내 가슴 깊은 곳에서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참가자들의 뭉클한 순간들.

    • 경기도형 인권 자치 도시 확산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동네마다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월경용품을 공유하고 건강 정보를 나누는 '우리동네 월경안심 사랑방'을 상설화하자", "시민들의 따뜻한 연대를 모아 더 큰 인권의 망을 만드는 '경기 월경권 연대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꾸리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가 마주한 편견의 파고와 제도적 벽이 때로는 높고 매섭다 할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환대의 손길들이 모여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란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여성의 기본 인권, 월경권을 소개합니다.
    주야

    조회수 4717

    2025-01-15
  • ‘모두를 위한 화장실(줄여서 ‘모장실’)’은 성별, 장애 유무, 나이, 신체적 조건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차별이나 배제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1인용 독립 공중화장실을 뜻합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공익웹진 등 시민사회 영역에서도 활발히 다뤄지고 있는 인권·배리어프리(Barrier-free) 의제 중 하나입니다.

    주요 특징 및 도입 배경

    • 배제 없는 공간: 기존의 공중화장실은 주로 비장애인, 성인, 그리고 남녀 성별이분법에 맞춰져 있어 누군가에게는 이용이 매우 불편하거나 불가능했습니다. 모장실은 이러한 경계를 허물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기본권을 누리게 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습니다.

    • 다양한 이용자 배려:

      • 장애인 및 노인: 성별이 다른 활동지원사와 함께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장애인이나, 휠체어 이용자,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이 접근하기 쉽습니다.

      • 영유아 동반자: 성별이 다른 보호자와 함께 온 아이, 기저귀 갈이대가 필요한 보호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성소수자 및 기타: 지정성별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이 다르거나 기존 남녀 화장실 이용 시 겪는 시선 압박을 덜어주며, 월경 등 특정한 생리적 필요를 겪는 이들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 구조적 형태: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다인용 형태가 아니라, 내부에 변기와 세면대, 안전바, 기저귀 갈이대 등이 모두 갖추어진 1인용 독립 공간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모장실)이 모징?
    심지

    조회수 5218

    2025-01-10
  • [기획] 월경을 월경이라 부르지 못 하고 — 거대한 침묵과 은폐의 장막을 넘어, 경기도 골목마다 다정한 이름과 인권의 푸른 숲을 일구어내는 감동의 여정

    편견의 도시와 쉴 새 없는 터부의 그늘 뒤편에서, 월경을 당당한 이름으로 부르며 존엄을 되찾는 눈부신 발자취를 마주하다

    오랜 세월 동안 부끄러운 것, 숨겨야 하는 것으로 취급되며 입에 올조차 꺼려졌던 차가운 사회적 통념 속에서.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임에도 '그날'이나 숨은 단어로 대체되어 온 월경의 권리를 바로 세우고, 모든 이가 건강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묵묵히 손을 잡고 걸어온 이들의 눈부신 발자취를 깊이 들여다보다.

    "우리는 과연 ‘월경은 그냥 혼자 숨어서 해결해야 하는 은밀한 일일 뿐’이라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여성 인권 활동가들, 그리고 공익활동가들이 손을 맞잡으며 저마다의 진심으로 평화와 상생의 품을 엮어내는 ‘월경을 월경이라 당당히 부르며 인권을 꽃피우는 자치의 품’을 어떻게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풀뿌리 여성 건강 자치와 인권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경기도 전역에 평등과 존중의 자치 숲을 깊이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월경을 월경이라 부르지 못 하고’가 품은 3가지 핵심 과제와 비전

    1. 방관과 침묵의 장막을 허무는 ‘풀뿌리 월경 인권 옹호 및 건강 생태계 구축’

      • 월경을 부정한 것으로 치부하거나 터부시하던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 경기도민과 공익활동가들이 동네 골목과 일상에서부터 월경을 자연스러운 권리로 인식하고 건강한 정보를 나누는 자발적 생태계 다지기.

      • "진정한 건강 자치의 완성은 거창한 보건 정책 선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네 골목 작은 공간에서 이웃들과 손을 맞잡고 월경용품을 나누며 편견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2. 고립을 넘어 온기를 잇는 ‘시민 참여형 건강 감수성 및 연대 강화’

      • 월경 빈곤이나 신체적 고통을 개인의 부주의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서로를 돌보는 지혜로운 공론장 창출.

      • "혼자서 월경의 고통과 사회적 시선을 감당하면 막막하고 두렵지만, 경기도 도민들이 손을 잡고 행동하면 그 어떤 편견의 벽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3.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존엄의 그물망으로 잇는 ‘상생 여성건강 네트워크’

      •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여성 단체들과 도민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모든 이의 건강권이 보장되는 상향식 민주주의와 인권 자치 실현.

      • "모든 도민과 이웃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공생의 무대" 완성.

    현장의 온기로 채워졌던 뜨거웠던 토론과 교감의 시간들

    도내 각지에서 모인 여성 인권 활동가들과 보건 실천가들, 그리고 평등한 세상을 염원하는 수많은 도민이 한자리에 모여 월경에 얽힌 차별과 침묵의 역사를 깨부수고, 경기도를 진정한 '모든 몸이 존중받는 건강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았던 공론장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온기로 가득 채웠다.

    • 참가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그동안 월경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눈치를 보며 숨겨야 했는데,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이웃들과 함께 당당하게 '월경'을 입에 올리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니 비로소 내 몸을 온전히 사랑하는 진짜 자유를 얻은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도민들의 뭉클한 순간들.

    • 경기도형 여성 건강 자치 도시 확산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동네마다 주민들과 함께 월경의 가치와 건강한 정보를 나누는 '우리동네 당당한 월경 사랑방'을 상설화하자", "편견을 넘어 서로의 건강권을 지지하는 '경기 여성건강 연대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꾸리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가 마주한 오랜 편견의 벽과 침묵의 파고가 때로는 높고 매섭다 할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연대의 손길들이 모여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란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손길로 그려가는 경기도의 찬란한 내일

    세상을 바꾸고 진정한 건강 자치와 공생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힘은 차가운 사회적 통념이나 거창한 보건 복지 담론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 경기도의 좁은 골목길에서 이웃의 손을 먼저 잡고 "월경을 월경이라 부르며 서로의 건강과 존엄을 지켜주자"며 따스한 온기를 건네는 평범한 시민들과 인권 활동가들의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연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방관과 침묵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에 평화와 인권의 숲을 영원히 일구어가는 공익활동가들과 도민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도 곳곳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온기들이,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기도의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월경을 월경이라 부르지 못 하고
    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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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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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아카이브 에디터로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구성원들은 어떤 활동을 하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이런 고민을 매니저님과 나누던 중,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다 오신 구성원분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를 여러분께 알려드리기 위해서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소개해드릴 구성원은 이정희 성장지원팀장입니다. 인터뷰는 수원에 위치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공익나눔 소회의실에서 진행하였습니다.

     

     

     

    1. 전에 다니던 직장이 어떤 곳인지 소개하자면?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경기여성연대라는 여성단체에서 활동을 했었다. 1994년도 당시 가정폭력을 당한 여성을 구명하기 위해서 경기지역 여성들이 모이게 되었는데 가정폭력 피해여성은 폭행을 지속적으로 당하다가 남편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고 살인죄로 수사가 이루어지자 이에 대응하며 여성들이 결집하였고 구명운동을 했다. 사건이 정리 된 후 모인 여성들이 계속 이어서 활동을 하자는 뜻을 모아 경기여성연대를 발족하게 되었고, 현재 20년 넘게 활동 중이다.

     

     

     

    2. 경기여성연대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27살쯤 여성운동을 시작했다. 사실 원래 여성단체나 여성인권에 대해 잘 몰랐다가 자원봉사를 오래 하게 되면서 복지관에서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복지관이 여성단체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여성학을 접했다. 고향이 경상도였기 때문에 여성학을 접하고 나서 내 삶을 돌아보니 모든 차별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의 충격은 마치 프라이팬으로 뒷통수를 한 대 맞은듯한 느낌이었고 이후부터 분노가 일기 시작해서 나같은 여성들이 몰라서 당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때는 당연한 줄 알았던 가부장성, 사실 가부장성이 뭔지도 몰랐지만 예를 들면 집안일을 여자들만 하고 오빠와 남동생은 손도 대지 않는 문화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원래는 경남 마산에서 일을 하다가 수원으로 이사오게 되면서 경기여성연대에 들어왔는데, 연대의 활동 방향과 잘 맞아서 10년 넘게 일을 해왔다.

     

     

    3. 경기여성연대에서 일했을 당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이 있나요?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굉장히 많다. 그 중에서 크게 세 가지 정도가 기억에 남는데, 첫 번째는 경기도기지촌여성지원조례를 통과시킨일이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으나 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정부가 주한미군을 위해 성매매 행위를 조장하여 기지촌여성들이 인권침해를 당한것에 대해 2012년부터 관련단체들과 피해여성들의 인권회복과 피해보상에 대한 활동이 시작되었다. 여러 활동 중에 피해여성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집단소송과 지원조례 제정에 대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 했으며, 수 많은 기자회견과 토론회에서 피해 사실을 공론화 하며 기나긴 싸움 끝에 2020[경기도 기지촌 여성지원등에 관한 조례]가 통과되었다. 또한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는 [국가가 책임이 있다]는 고등법원 판결을 통해 피해여성들의 인권이 회복 되는 큰 결과를 거두기도 했다.
    사실 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겪었던 큰 아픔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진술해야 하는 과정에서는 정말 힘들어 하셨다. 그래도 모든 개인의 인권은 존중받아야 마땅한 것이니 힘내시라고 지지하면서 결국 승소하고 언론에도 많이 보도되어 피해여성들의 인권회복 및 사회 인식변화의 계기가 되었으며, 현재 평택에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까지 건립 되었다.

    두 번째로는 성평등의식 확산 운동을 많이 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성평등한 사회라고 하긴 어렵다. 사회생활, 정치, 경제, 문화 등 많은 분야에 차별이 있다. 그리고 경기도는 여성단체의 지속적인 요구로 [경기도성평등기본조례]로 개정되었다. 사실 성에는 양성만 있는 것이 아닌데 아직도 양성평등에 의한 정책들로 소수성들은 차별과 소외 받는 일들이 많다. 경기도 내 지역을 다니면서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 및 폭력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기자회견, 길거리캠페인, 1인피켓, 연극공연 등 참 많은 활동을 해왔다.

    세 번째로는 [경기도 여성청소년 보건위생물품 지원에 과한 조례]를 만든 일이었다. 원래는 취약계층 여성들만 생리대를 지원받았다. 그런데 신발 밑창으로 생리대를 대신한다는 기사가 나오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여성 인권을 대변한다고 하지만 이런 세부적인 부분을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생리대 보편 지급을 조례로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무상급식을 하듯이 생리대를 취약계층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지급이 되어야 한다는 토론회 등 조례 제정을 위한 활동을 했다. 그 결과 2020년 만11세이상~18세 이하의 여성청소년에게 보건위생물품을 지원할 수 있는 조례가 통과되었다. 또한 획일적으로 패드형 생리대만 지급되는 것이 아닌, 월경컵 등 여러 가지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했다. 여성의 건강과 환경까지 생각하는 중요한 문제이며, 무엇보다 월경에 대한 사회 인식개선이 되어야 한다. 내가 어릴 때만해도 생리대는 숨겨야 하는 물품으로 검은 봉지에 싸서 다녔는데 이제는 여성청소년들에게 안심하고 월경할 권리가 당연시 되어야 한다.

     

     

     

    4. 경기여성연대에서 일하면서 뿌듯함을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여러 활동을 하면서 순간 순간 뿌듯함을 느낄때는 참 많다. 그 중에서도 앞서 말했던 미군 위안부 관련해서 승소하고, 조례를 만든 순간에 가장 뿌듯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경기도성평등기본조례]로 개정한 활동들이 있다. 사실 정말 변화하기 어려운 일들을 조금씩 이루어내고 해낸 것이기에 매우 뿌듯했다.

     

     

     

    5. 앞서 말한 일들을 추진할 때 가장 장애물이 되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여성운동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운동을 하는 데에는 그만한 목적이 있다. 그런데 여성운동의 가장 큰 걸림돌은 사회 인식이다. 예를 들면 여성은 감정적이며, 논리적이지 않다. 또는 여성이 주장하는 것을 싫어하는 식이다. 그런 인식을 겪어가면서 여성운동을 해온다.

    그 다음으로는 실질적인 장애물은 인건비의 부족이다. 10년 가량 월급을 100만 원 정도 받고 일을 했다. 금액 보다는 하는 일의 가치가 더 높기 때문에 자부심으로 살았다. 여성들과 사회가 변화하는 모습을 봐왔으니 급여 같은 건 장애물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프로젝트 사업을 하기 위해서 사업비, 인건비가 지출되는데 보통 단체에서의 활동가는 1명 내지 2명이다. 이들이 인건비를 받으면서 정부를 상대로 큰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보통 이러한 비용은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을 하게 된다. 경기지역에 있는 여성단체는 4개가 있는데, 경기여성연대, 경기여성단체연합, 경기자주여성연대, 경기여성단체협의회이다. 이렇게 4개 단체가 네트워크를 이루어서 큰 사업을 대응하기도 하고, 여성 관련된 모든 사업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6. 그렇다면 시민의식을 개선할 방안을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공연이나 연극 한편을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개인적으로 문화 예술 분야를 좋아하기도 해서 연극이나 노래 공연을 지역을 돌아다니며 해왔다. ‘엄마는 지금 일하고 있다라는 연극을 만들어서 공연했는데, 엄마가 밖에 나가서 일하고 돌아오면 남편이 피곤하다며 양말을 던지면서 눕고, 육아도 엄마가 다 하는 내용이다. 전하고자 하는 것을 글이나 말로 하는 것보다 연극을 통해서 보여주니까 시각화되어서 더욱 전달이 잘된다. 연극을 보면서 몰입하여 우시는 분도 있었으며 특히 경기 외곽은 가부장적인 정서가 더욱 심하기에 공감을 하는 분들이 많다. 우리는 이 연극을 남성들에게 더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시청, 공무원, 군인을 대상으로 보여주려고 전화도 많이 돌렸다. 물론 보다가 중간에 나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도 여성운동 또는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활동은 하지 못하더라도 후원을 하는 등 꾸준한 관심을 가지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여성운동을 할 때 돈 때문에 활성화가 되지 못하는 부분이 아쉽다. 우리는 모든 여성들이 평등해질 때까지 우리는 계속 간다는 구호를 외치곤 한다. 같은 여성끼리 지원해주고 연대하는 힘이 필요하다.

     

     

    7.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일하면서 새로 생긴 목표가 있나요?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목표가 있어서 그 목표를 이루려고 이곳에 왔다. 경기 시민단체연대에서 운영위원장을 두 번 했었는데 시민단체가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들은 금전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렇게 일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세대는 교체될 것이고 윗세대는 학생운동과 민주화정신의 영향으로 열정페이로 일을 하지만 이후 청년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요구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시민단체가 안정적인 기반을 가지고 시민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고민을 해보니 하나의 센터를 만들어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지원비를 제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제일 어려운데 그 과정을 함께해서 도와주고 싶어서 온 것이고 그 목표는 그대로 가지고 있다. 프로젝트에 매몰되면 정말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 그런 어려움을 줄여주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 그들이 하고싶은 운동을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8. 앞으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나요?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일단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센터가 정말 중간지원조직으로써 해야 하는 일을 독립적이고 자율성 있게 하고 싶은데 아직 초반이라 그러지는 못한다. 기반이 다져져야 하는 시간과 기반이 필요한데 공약을 받고 시민단체들이 만든 센터라서 여러 의견들을 수렴하여야 한다.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지역의 활동가들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게 방향을 같이 고민하고, 같이 나누고 필요한 대로 유동적으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이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최종적인 목적지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뿌듯함을 느끼며 충분히 활동할만하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다. 시민사회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지속적인 사회가 될 수 없다.

     

     

     

     

    9.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나서 후회를 해본 적이 없다. 이 길을 잘 왔다고 생각한다. 이 일을 하면서 나 자신의 성장도 많이 했고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깨달음이 있었기에 이 활동에 대해서 후회는 없다. 내가 자식이 있었다면 엄마는 이런 활동을 하고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부심이 있다. 다른 시민활동가들도 이런 마음가짐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시민사회 활성화가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한 개개인이 모여서 일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다 아울러서 우리 사회가 크게 변했으면 좋겠다. 지금 내 역할은 조그맣지만 사회가 변화하는데 참여했다는 사실에 의미가 있다.

     

     

    본 에디터는 이정희 팀장님의 공익활동 경험을 인터뷰를 통해 전해 들으며 배울 수 있던 점이 아주 많았습니다. 경기여성연대에서도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도 위치와 상황에 관계없이 팀장님이 생각한 사회적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차근차근 만들어가시는 모습이 상당히 흥미롭고 인상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직접 발로 뛰었던 생생한 이야기와 실무자가 생각하는 앞으로 센터의 방향성을 듣고 센터의 에디터로 전달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인터뷰] 무슨 일을 하다 왔니? -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Tommy

    조회수 553

    2021-12-27
  • 안녕하세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HHDM Hyun입니다. 여러 글을 쓰던 중, 제게 하나의 요청사항이 들어왔습니다. 바로 청소년 참여기구, 청소년수련관의 이야기를 다뤄줄 수 있겠느냐는 요지입니다. 제가 쓰는 글은 대부분 청소년의 공익활동 사례를 소개하는 방향입니다. 이와 맞을 것으로 생각하여 오늘은 청소년수련관, 청소년 참여기구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당시에 해당 제보자가 제게 했던 말입니다.

     

    (경기도 부천시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에서 20214월 기준으로 812,158명입니다.)

     

    . 저는 외대부고로 진학하기 전에 제가 거주했었던 부천시의 청소년참여위원회 부위원장이었습니다! 우연히 학교 SNS에 홍보 포스터가 와서 청소년 정책에 대해 제 의견을 전달하고 직접 이행할 길이 이런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부천은 인구밀도가 높고 주거지역이 많아서 다른 지역보다 청소년수련시설이 고르게 분포해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현재의 교육정책이나 청소년 정책은 학교생활을 하는(자퇴하지 않은, 학교 밖 청소년들을 잘 고려하지 않습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창의성이 억제되고 성적에만 집중해야 하는 구조가 있습니다. 저는 방과 후에도 사교육에 시달리는 우리를 보며 어쩌면 우리가 문화 행사, 대회를 거부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가 바로 등수에만 집착하고, 성적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청소년 개개인의 흥미와 재능을 고려하지 않은 집단 주입식 교육이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결론은 이러합니다.

    청소년을 위한 정책이 고려되지 않아,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새로운 기회에 도전할 생각조차 하기 힘든 구조입니다. 이 때문에 관련 시설에 종사하시는 분들과 일부 청소년의 노력이 돈을 벌기 위한, 생기부를 채우기 위한 활동으로 여겨집니다.

    인지도 없는 정책을 펴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힘이 빠지고 고민만 느는 현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청소년 활동이 적극적으로 알려지고 적절하게 지원되어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게 활동에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지만 제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겠습니다!”

     

    . 맞습니다. 부천시에는 청소년수련시설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과 가까운 부천시 오정구의 경우,

    고리울청소년문화의 집 꾸마가 있고, ‘어울마당이라는 이름으로 청소년 문화 공간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산울림청소년수련관도 있으며 주로 부천시의 역곡중-고등학교, 도당중-고등학교, 원종고등학교 등 학교 인근에서 만나볼 수가 있습니다. 청소년시설의 수가 밀집한 것은 어느 정도 팩트입니다.

     

    교육이 주입식으로 진행된다는 것, 그리고 개개인의 창의성보다는 등수와 성적으로 진로가 판가름난다는 것도 팩트입니다. 현 교육 체제가 바뀌지 않는다면, 계속 청소년 참여기구 참여나 휴식보다는 학원을 선택하는 삶이 반복될 수밖에 없겠죠.

     

    대한민국의 취학률과 교육이수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른 국가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2016년을 기준으로 15~1987.0%, 20~2450.0%를 기록했는데, 이는 OECD 평균(85.0%, 42.0%)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9111686053752

     

    교육열이 상당히 뜨거우며 입시를 위해 모든 걸 고려할 정도로 청소년기는 입시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마저 듭니다.

     

     

    {부천시청소년참여위원회, 해당 사례는 어떤 것인가?}

     

    부천시청소년참여위원회(전 차세대위원회, 복사골 소재)는 보통 3월부터 1년 동안 활동하고, 20명 이내로 위원장, 부위원장 등의 직책을 두고 활동합니다. 청소년지도사, 재단과의 협력이 많아 청소년의 여러 활동을 지원합니다. 매주 토요일에 모여 정기회의를 진행하는 방식이며 활동 중에서 1년마다 발행하는 정책 제안서를 작성하거나 행사를 준비합니다.

     

    그중 부천시 청참위에서는 매년 5월 가정의 달마다 <청소년정책제안대회>를 주최하고 있습니다. 작성자는 2019년 당시에 부위원장으로서 위원장 형의 도움을 받아 리허설, 대회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복사골문화센터 공연홀에서 대기실과 전용 통로, 종류별 무대 스크린, 조명 스피커 제어 장비도 당시에 처음 접했었고, 제안 대회 진행에서도 10개 팀의 청소년 정책 제안이 나왔다고 합니다.

     

    (청소년 여가활동 활성화를 위한 공간 확대를 제안한 도담도담 팀의 <청소년카페무지개 신규 시설 확충>, 자유학기제 및 자유학년제를 청소년이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하여 청소년의 진로와 공부에 관한 갈등을 해결하자는 이황 팀의 <자유학년제> 등의 제안이 나왔음.)

     

    당시에 즐거웠다고 하며 대회 진행 전에는 포스터를 청소년시설 홍보 지도와 함께 학교를 보내는 활동도 했었습니다.

     

    https://gnews.gg.go.kr/news/news_detail.do?number=201905291130093072C083&s_code=C083

     

    또 다른 활동으로는 위원회에서 운영 비용을 지원해준 것으로 교육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는 법령을 보고, 수정-제안하는 방법’, ‘제안서 작성 방법’, ‘주장을 명확하게 하는 글쓰기 방법이었습니다.

    사적으로는 공무원 소속의 위원장 형으로부터 문서 작성 방법을 배웠는데, 이것 역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수련회도 활동 중 하나였습니다. 부천시에 있는 다른 2개의 청소년수련관 위원들과 함께 12일 동안 레크리케이션, 물총놀이, 보물찾기 등을 진행하면서 소중한 추억도 쌓았습니다.

     

     

    {그래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아쉬운 점들}

     

    작성자는 학교 SNS에 메시지가 온 것으로 청참위를 알게 되었고, 자기소개서, 면접을 본 후에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홍보의 부진함은 물론, 청소년에게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활동이 아닌지라 지원율이 적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1억 원을 청소년의 권리 증진에 사용(여성 생리대 자판기 설치, 청소년 수련시설에 공기청정기 설치를 진행함.)하는 청소년예산참여위원회’, 청참위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교육의회처럼 외부활동도 많이 진행했으나, 몇몇 활동에서는 아쉬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먼저, 지방청소년육성위원회, 부천시청에서 부천오정경찰서 김춘옥 과장, 부천시의외 김성용 의원, 인천가정법원 허미숙 판사 등 고위직 공무원과 함께 부천시에서 진행한 활동인데, 부천시청에 들어가 공식적인 행사로 참여했었습니다. 하지만 2차 회의가 열리지 않았으며 명목상 만나는 자리에 그쳤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꼈었습니다. 이를 통해 청소년이 스스로 필요한 정책을 이해하고, 개선하려고 노력을 할 수 있는 교육-홍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체감했었습니다.

     

    https://www.simin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626073

     

     

     

    청참위 위원 전원과 함께 부천시청을 견학하고, 부천시장과의 간담회 자리도 가졌었습니다. 그동안 부천시를 대표하는 청소년의 위치에 있었으나, 의무적으로 만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했습니다. 청소년의 권리 증진을 위한 실질적인 진보가 없었다는 점, 정기적인 만남이 불가하다는 점, 이 부분에서 아쉬움을 토로했었습니다.

     

    결국, 청소년 참여기구는 UN 등 국제기구의 권고로 청소년 정책참여에 대한 법적 근거가 생김으로써 예산을 받아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기본법] 12(청소년특별회의 개최)에서 국가는 범정부적 차원의 청소년 정책과제의 설정 추진 및 점검을 위하여 청소년분야의 전문가와 청소년이 참여하는 청소년특별회의(이하 "특별회의"라 한다)를 개최하여야 한다.”라고 보장되어 있으나, 청소년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과 만날 기회, 더 나아가서는 지속적으로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학업에는 많은 의무를 주면서도 청소년 정책이 고려되기 힘든 구조를 만들어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청참위에서는 많은 소통이 진행되었지만, 문제는 학생의 대부분은 목소리를 직접 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관심의 부재, 소통의 창구 제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적용했으나, 청소년 정책이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현실을 극복하려면 청소년이 적극 활동함으로써 인식 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것을, 부천시 청참위 사례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청소년이다.}

     

    흔히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시간은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살 수 없다.”라는 말인데, 한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청소년기 역시 인생에 있어 한 번만 겪게 됩니다. 그래서 그 순간이 소중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자라면,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가 자라면 청소년이 됩니다. 그리고 청소년이 자라나면 청년이 되고. 그 청년이 노인이 됩니다. 그래서 배우는 시기인 청소년 시기가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현재 입시라는 명목 아래에서 다양한 청소년의 활동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입시 결과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인프라의 폭까지 달라지니, 이러한 사례를 유튜브, 뉴스 등으로 접한 청소년 세대는 당연히 각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몇몇 청소년은 자신의 성장과 행복, 즐거움을 위해 청소년 활동에 뛰어듭니다. 제가 에디터 활동을 하며 소개한 청소년 동아리 활동도 그렇고, 오늘 소개한 청소년문화의집 등의 사례도 그렇습니다. 당장 교육제도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청소년의 모습은 응원해줘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청소년의 활동, 부천시 청소년 참여기구로 소개합니다!
    HHDM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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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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