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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웹진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노조하면 왜 남성 노동자를 떠올렸지?

    인터뷰가 계속될수록 내 안에 올라오는 질문이었다. 80년대 마산수출자유지역 여공으로 일하다 TC전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조위원장이 된 사람. 16개월의 옥고를 치른 후, 안산과 서울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장, 서울지부장을 역임한 사람. 고등학교 급식조리원들의 연장근로 수당 2.5배 쟁취하고, 서울 초등돌봄전담사 4시간 시간제 노동자들의 차별 시정 소송을 대법원 승소로 이끈 사람. 김정임 님은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한다.”라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여성 노동운동의 역사였다.

     
     / ⓒ인터뷰이 제공
     

    Q 역대급 폭염에 건강하게 활동하며 일하는 일상이 궁금하다.

    현재 요양보호사로 주 5일 일하고 있다. 요즘 퇴근길에 더워서 서점에 들른다. 책 보며 마음을 식히다가 선선할 때 집에 와서 저녁 먹고, 공원 산책하며 운동한다. 한 달에 한 번 수지 에니어그램 강사 모임에 참여하고, 줌(Zoom)을 통해 화상으로 스님과 책을 읽는다. 인사동에서 써클댄스도 추고 친구와 만나 노래방에서 목청껏 노래도 부른다. 8월에는 딸과 사위들 생일에 부모님 제사까지 집안 행사로 바쁘지만 아주 즐겁게 보내고 있다.

     

    Q 요양보호사로 좀 멀리 출퇴근한다고 들었다.

    영등포에서 마곡으로 출근한다. 돌보는 어르신은 69세 파킨슨병으로 요양 등급 2급이다. 출근하면 제일 먼저 식탁과 의자를 깨끗이 닦는다. 파킨슨병 환자는 거동이 불편해 음식을 자꾸 흘리기 때문이다. 나는 식사 수발하고, 목욕시키고, 빨래 청소 음식 조리까지 한다. 가끔 휠체어로 공원산책도 하고 같이 장도 보고, 수명산 도서관에서 큰 글자 유아용 책을 빌려와 읽어드리거나 색칠 공부, 누워서 하는 요가 동작도 함께 한다.

    왕복 출퇴근 시간만 2시간 넘지만, 서로가 잘 맞아 정성으로 마주하고 있다. 예전에 안산에서 서울로 경기도 전역으로 하루 4시간 출퇴근하며 활동하던 경험이 쌓여서 힘든 줄 모르고 한다. 한 달에 120~150만원 4대 보험 빼면 빠듯한데, 큰 빚 없이 자립해서 감사하다.

     

    Q 강사로 활동한다는 수지에니어그램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소개한다면?

    '수지에니어그램'180장의 카드를 가슴과 양팔에 붙였다가 떼어가며 내가 누구인지, 나답게 사는 게 뭔지 참 나를 찾는프로그램이다. 수산나(수지) 선생님이 대안학교 청소녀들을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 시작했는데 전국에 10개 센터와 해외에 2개센터를 두고 있다. 나는 9번 유형인데,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넓은 품과 조용한 힘이 있는 유형이다. 나를 제대로 알면 나다운 삶을 살게 된다. 2018년부터 지인들에게 성당, 학교, 상담실과 집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눔을 하였고 일하는여성아카데미 교육위원으로 강의해 왔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부담 없이 수지에니어그램을 하는 게 꿈이다.

     
     / ⓒ일하는여성 아카데미
     

    Q 청년 시절 마산수출자유지역 노동자로 들어갔고, 그 지역에서 노동 운동한 걸로 안다.

    나는 거제도 출신이고 15녀 중 셋째 딸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며 당연히 대학에 갈 줄 알고 모범생으로 공부했는데, 어머니가 강하게 반대했다. 남동생을 대학 보내야 한다는 이유였다. 울며 싸우다 결국 대학을 포기했다. 인문계 졸업하고 대학 안 가면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동네 친구를 따라 공장에 취업하러 마산으로 갔다.

    고등학교까지 시켜놨더니 왜 공장에 가냐.”

    내가 공장 간다니까 어머니는 울고불고 말리다가 쌀 한 되박을 싸서 보내주셨다. 마산 수출자유지역에 있는 일본계 전자 회사에 들어가 도장 날인 작업을 했다. 나중에는 임금과 환경이 훨씬 좋은 미국계 다국적 기업 ‘TC 전자로 이직해 본격적인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Q 공장 생활 중 삶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다고 했다. ‘아욱실리움 기숙사가톨릭여성회관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가톨릭고등학교에 다닌 인연으로 살레시오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아욱실리움 기숙사에 들어가 공장에 다녔다. 거긴 수녀님들과 함께 매일 새벽미사를 하였고, 1980년 광주 항쟁 비디오도 거기서 처음 볼 수 있었다. 가톨릭 여성회관에서 이경숙 선생님이 진행하는 여성교실강좌를 들었는데, 내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부모님으로부터 받아온 성차별,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로서 '공순이'라 불리며 받아온 차별이 사회 구조적 문제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알게 된 계기였다.

     

    Q 그러다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7~9월 전국적으로 분출한 노동자들의 노동쟁의와 민주화운동) 당시 하루가 다르게 옆 공장들은 노조를 만드는데 우리 회사만 노조가 없었다. 어느 날 과장이 나를 불렀고, 현장분위기가 시끌시끌하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자 조회대 앞에 모아 놓고, 조용히 시키라며 나한테 마이크를 주었다. 내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여러분 어떻게 할까요? 일할까요? 나갈까요?” 뜻밖에도 모두 나가자!”“나가자!”소리쳤다. 순식간에 1,500명이 넘는 여공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임금 인상하라!” “인간답게 살고 싶다!”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열었다.

    회사는 목요일부터 4일간 휴업을 선포했고 우리들은 분임장 60명이 모여 아욱실리움 기숙사에 모여 밤새워 노조를 결성하였다, 월요일 노조 결성보고를 홍보하러 갔다가 회사 간부들에게 잡혀가 빨갱이라는 욕을 먹고 노조 간부였던 친구 2명과 함께 대구새마을연수 보내졌다. 2주후 회사로 복귀하니 60여명을 모아 놓고 노조강제 해산을 하게 했다. 그리고 기술과와 설비과로 부서이동을 당하였다. 온갖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19885월 비밀리에 여성 동지들과 노조를 재창립했다.

     
      / ⓒ인터뷰이 제공
     

    Q 노조를 와해하려는 구사대의 폭력이 대단했을 텐데 어떻게 계속 싸울 수 있었나.

    노조를 재창립하자 회사는 남자 구사대(救社隊, 노동운동 파괴를 목적으로 회사측이 만든 노동자 조직) 300명을 동원해 무자비한 폭행을 저질렀다. 온몸이 멍들고 집단 구타를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 소식이 창원 지역 남성 노동자들에게 전해지면서 지역 전체의 투쟁으로 번졌고, 결국 회사로부터 노조 인정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위장 폐업을 시도했고, 우리는 기계 출고를 막으며 1년 가까이 공장 점거 투쟁을 해야 했다. 198912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공권력이 투입되어 전원 연행되었고, 나는 업무방해 및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1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마산교도소와 원주교도소 독방에서 꼬박 실형을 살고 19915월에 출소했다.

     

    Q 감옥 생활은 어땠나? 감옥에 가기 전과 후를 비교해 달라.

    내가 감옥에 가기 전 농성장에서 동지들과 농성장 사수팀과 재정팀으로 다양한 재정사업을 했다. 볼펜 판매 양말 판매 대학축제 때 김치전 판매도 하고, 서울 본사 대사관 부산 영사관등을 다녔다. 교도소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독서와 편지쓰기였다. 원주교도소 독방에 홀로 수감되어 너무 외롭고 힘들 때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 답장으로 마음을 나누었고, 출소하는 날 원주교도소 정문으로 그와 TC동지들이 대형 버스로 꽃다발과 두부를 들고 찾아왔다. 그도 나처럼 구속된 경험이 있어 노동자의 삶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던 것 같다. 그 후 1992년에 우리는 결혼했고 두 딸을 낳았다.

     

    Q 경남의 여성 노동 활동가가 어떻게 안산시민이 되었나?

    2003년 남편이 서울에서 일하게 되면서 나를 올라오라 했다. 나는 마산창원 여성노동자회에서 일하며 지역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안산여노 회장과 남편이 먼저 만나 아파트 전세를 얻으니 나도 아이들과 함께 이사와서 다음 날부터 안산여성노동자회로 출근했다. 여성 노동자복지센터와 고용평등상담실을 맡았다. 한부모자녀들과 체험학습 등, 실업계고등학교 노동법·최저임금 내 권리찾기 등 강의활동과 직장 내 성희롱예방교육 강사 활동을 하였다.

    특히 직장 내 갑질과 최저임금 위반으로 힘들어하던 청소 노동자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를 노동부 진정으로 처벌받게 하고, 출산·육아휴직 상담, 홈플러스 매대 노동자 상담으로 수많은 여성 노동자를 노조 조합원으로 연결했다. 한양대 안산캠퍼스 청소미화원 조합원들과는 풍물과 민요를 함께 배우고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 ⓒ인터뷰이 제공
     

    Q 그러다 안산을 넘어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장과 서울지부장이 된 건가.

    안산시흥지부, 부천지부. 영양사지회. 사서지회가 주춧돌이 되어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를 창립하였고 나는 안산여노 고용평등상담실 일과 안산시흥지부장를 겸하다 경기지부 조직국장이 되었다. 이후 경기지부장이 되었다. 안산 한양대 청소미화원 조직과 안산 지역 고등학교 급식조리원들의 처우개선 투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중식·석식으로 하루 4시간 넘게 연장근로를 하는데 학교는 2시간만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하였다. ‘연장근로근로기준법이 바뀌는 시점이었다. 조리원들은 억울해하며 어떻게 하면 일한 만큼 댓가를 받을 수 있는지 상담해 왔다. 공동교섭을 요구했으나 경기도 교육청은 사업주가 아니라며 교섭에 임할 수 없다고 했다.

    1년 가까이 고등학교를 돌며 교섭을 벌인 결과 연장근로 수당을 1.5배가 아닌 2.5배로 받는 단체협약을 타결해 냈다. 또한 서울지부장 시절에는 시간제 돌봄전담사들을 조직하여 4시간 시간제 초등돌봄전담사들의 차별 시정 투쟁을 시작하여 지노위 중노위 지법 고법 대법원까지 가서 차별 시정 판정을 받았고 그동안 차별 받았던 것을 보상받았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억울하면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급식 조리원들도 초등돌봄전담사들도 똘똘 뭉쳐 싸운 결과다. 유능한 김재진 노무사님과 공감 변호사님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연대해 준 덕분이다.

     
     / ⓒ인터뷰이 제공
     

    Q 안산여성노동자회에서의 활동과 연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

    안산여노에서 근무할 때 고용평등상담실 상담이 주 업무였다. 직장 내에서 여성노동자가 받는 성차별과 불합리한 차별에 대한 상담전화를 받고 무료 변호사를 선임하여 행위자인 상사가 처벌받고 억울한 노동자가 제 자리로 돌아갈 때 행복했다. 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이 삭감되니 퇴사했다. 그래도 한 달 한 번 뚜뚜(뚜벅뚜벅 걷기)’ 소모임 회원들과 함께 걷고 여행한다. 늘 일에 쫓기고 바빴지만, 페미니즘 토론토임 이프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줌이라 퇴근 후 할 수 있어 좋다. 무디어지기 쉬운 여성 노동과 성평등 이슈를 다양한 연령의 남녀가 함께 책과 영화로 토론한다.

     
     / ⓒ인터뷰이 제공
     

    Q 평생 여성 노동운동을 해왔고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해 싸워왔는데, 중년에 가장 저임금 돌봄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이런 여성의 노동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20대 때는 공장에서 산업역군이라며 착취당하고, 30~40대에는 IMF를 거치며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는데, 60이 된 지금도 최저임금 수준의 돌봄 노동자다. 그동안 대학원도 나오고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등 자격증을 땄지만 중년 여성노동은 여전히 단시간·저임금 비정규직이다. 급식, 청소, 돌봄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 노동임에도 적정임금도 정당한 대우도 거리가 멀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며 그렇게 싸웠는데 딸 세대마저 2년 계약직을 전전하는 걸 볼 땐 마음이 아팠다.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하는 걸 경험했는데, 세상은 여전히 쉽게 바뀌지 않는구나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요즘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평정심을 찾으려 한다.

     

    Q 현재 삶에 어려움, 또는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말해 달라.

    남편과의 관계가 숙제로 남아 있다. 동지적으로 잘 살 줄 알았는데 그는 지금 나 말고 다른 곳이 좋다고 멀리 떠나 산다. 내가 오래 가슴에 품어온 버킷리스트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10월에 1617일로 친구들과 함께 다녀오게 됐다. 그리고 곧 태어날 첫 손주 만날 날을 설레며 기다리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할 때 가장 당당하고 에너지 넘쳤던 것처럼, ‘수지 에니어그램이라는 좋은 도구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따뜻한 활동을 마음껏 펼치며 살아가고 싶다.

     / ⓒ인터뷰이 제공

     

     

    여공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장까지
    꿀벌

    조회수 326

    2026-08-13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공익(公益)’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 떠올리는 풍경이 있습니다. 세련된 회의실, 정갈하게 인쇄된 브로슈어, 혹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비장한 표정의 활동가들. 하지만 인간의 자잘한 발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싶은 저에게, 공익은 종종 엉뚱한 곳에서 낡은 슬리퍼를 신은 채 발견되곤 합니다. 이를테면, 안산의 어느 버스 정류장 앞, 조잡하게 쓰인 커트+염색 만원이라는 입간판 같은 곳에서 말이죠. 제가 발견한, 세상에서 가장 싸고 가장 향기로운 어느 미용실의 이야기를 만원의 공익으로 재구성했습니다.

     
     
     

    1. 만원이라는 비현실, 추억이라는 현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손바닥만 한 입간판에 씌어 있는 네 글자. ‘커트+염색 만원’. 처음엔 뭔가 잘못 읽은 줄 알았다. 2층을 올려다보니 '김량현 헤이클럽'이라는 간판이 창문에 붙어 있었다. 창문에도 커트+염색 만원문구가 크게 쓰여 있었다.

     

    요즘 세상에 만원의 가치는 어디쯤 와 있을까. 카페에 앉아 쌉싸름한 아메리카노 한 잔에 조각 케이크 하나를 더하면 가볍게 만원을 넘어선다. 내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는 비용은 동네 미용실에서도 어느덧 만 원권 지폐 한 장을 더 요구하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커트와 염색 합쳐서 만원이라니. 이건 자본주의의 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종의 유쾌한 도발이다.

     

    그 낡은 입간판을 보는 순간, 내 안의 오래된 서랍 하나가 삐걱거리며 열렸다. 고등학교 시절, 동인천 대한서림 사거리에 있던 미용 기술학교. 주말이면 미용을 배우는 학생들이 실습 겸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머리를 깎아줬다. 어머니에게 이발비를 받아 싼 맛으로 이발하고, 남은 돈으로 만화책을 봤던 얄팍한 추억이 살아났다. 때로는 고등학생인 나보다 어린 학원생이 손을 바들거리며 가위를 들었다. 가끔은 쥐가 파먹은 듯 삐죽거리는 머리를 보며 속상해하기도 했지만, 뒤에서 쓱 가위를 뺏어 들고 능숙하게 수습해 주던 선생님의 손길이 있어 안심했던 시간이었다. ‘커트+염색 만원이면 아마 그때와 비슷할 듯 속으로 웃음이 비죽 새어 나왔다.

     

    나는 그 비현실적인 가격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설령 머리를 망친다 한들 어떠랴. 내가 카메라 불빛을 받는 연예인도 아니고, 머리카락이란 결국 자라나기 마련인 유한한 세포 뭉치일 뿐인데. 호기심이라는 유치한 연료를 채우고, 나는 2층 계단을 올랐다.


     

    2. 미용실의 외피를 두른 기묘한 대피소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잠시 공간의 좌표를 잃었다. 그곳은 미용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순수한 창고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온전한 살림집도 아니었다. 미용 도구와 정체불명의 살림살이들이 기묘한 동거를 나누는 공간 한가운데, 낡은 미용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초현실적인 풍경에 압도되어 슬그머니 발을 빼려던 찰나, 사장님이 튀어나왔다.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그러나 눈빛만큼은 지독하게 해맑은 얼굴로.

    머리 깎으러 오셨어요?”

    , 아니에요. 지나가다 궁금해서다음에 올게요.”

    평일 오전이라 한산하지, 주말엔 장난 아닙니다. 아무도 없을 때 깎고 가세요.”

    그의 자연스러운 호객에는 묘한 자력이 있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덩그러니 놓인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의자 위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개 두 마리였다.

    미용실에 개가 있네요?”

    저 칸막이 뒤에 네 마리 더 있어요. 총 여섯 마리죠. 개 좋아하세요?”

    아니요겁이 많아서 동물은 다 무서워합니다.”

    내 고백에 사장님은 호탕하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요 녀석들은 손님만 오면 알아서 창가 지정석으로 가요. 안 짖어요.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자기들이 알아서 그러네. 신기하죠?”

    공간에 가득한 미약한 개 내음과 비염이 있는 내 코의 긴장감 속에서, 그렇게 기묘한 이발이 시작되었다.

     
     

     

    3. 안산에서 가장 싸고,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가위질 소리 사이로 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가격으로 운영이 돼요?”

    사장의 대답은 단순했다.

    저는 강아지 밥값만 벌면 돼요.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딱 필요한 만큼만 벌죠.”

    그는 이전에 본오동에서 미용실을 할 땐 커트와 염색에 6천 원을 받았다고 했다. 국회의원도 단골이었고, 직원도 둘이나 뒀던 잘나가는 원장님이었다. 혼자 이곳으로 옮겨오며 가격을 인상한 게 고작 만원이란다. 이야기 도중, 사장님이 갑자기 창문으로 돌진하더니 창밖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엄마! 그거 열무야? 맛있겠다! 나도 줄 거지? 땡큐! 그럼, 내일 9시에 와요, 파마하게! 나 지금 일하는 중이야!”

     

    돌아선 그의 얼굴엔 멋쩍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동네 어르신인데 파마할 때가 지났는데도 안 보이시길래, 언제 지나가나 창밖을 매일 살폈단다.

    여기로 이사 온 후부터는 혼자라 파마는 안 하는데, 80세 이상 할머니들만 아침 일찍 해드려요. 우리 가게는 80세 이상이면 파마든 커트든 염색이든 다 무료거든. 폐지 줍는 어르신들도 오시고어떤 날은 하루 종일 공짜 손님만 치러요.”

    그럼, 강아지 밥값은요?”

    내가 걱정스레 묻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대신 주말에 손님이 많아요. 평일엔 택시 기사님들이 오시고. 강아지 밥값은 충분합니다.”

     
     
     

    4.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의 무게

    염색약이 머리카락에 스며드는 긴 시간 동안, 나는 한 남자의 행복론을 들었다. 강아지들과 살다 보니 아무리 청소해도 개 냄새가 나고, 그게 미안해서 손님들에게 비싸게 돈을 못 받겠다는 남자. 어르신들을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서 가위를 쥔 손에 차마 돈을 쥐지 못하겠다는 남자. 저녁 6시에 문을 닫고 청소를 끝낸 뒤, 창밖을 보며 소주 한 잔을 기울일 때 세상 부러운 것이 없다는 남자. 머리가 끝났다. 거울 속 내 모습은 꽤 단정했고, 마음은 그보다 훨씬 더 묵직해져 있었다.

    고맙습니다. 여기 만 원이 참 부끄럽네요.”

    지갑을 열려는데 사장님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이왕이면 계좌이체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보통은 세금이나 탈세를 떠올리며 의아해할 타이밍이다. 하지만 그의 다음 대답은 내 세속적인 짐작을 기분 좋게 무너뜨렸다.

    다음에 오실 땐 현금 주시고요, 오늘 처음이잖아요.

    첫 손님은 계좌이체로 받으면 고마우신 손님 이름이 찍히니까. 이름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래요.”

    싸게 머리 깎은 내가 더 고마운데요.”

    아니에요. 나한테는 우리 애들 밥값 주시는 고마운 분입니다. 이름은 알고 있어야죠.”

     

    타인의 이름을 기억하겠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상거래를 넘어, 당신과 나 사이에 하나의 유대를 맺겠다는 선언이었다. 만 원짜리 한 장에 이름의 기억을 덤으로 주는 미용실이라니. 이 얼마나 위트있고, 다정한 경영 방식인가.

     

    5. 창밖의 소주 한 잔, 우리가 잊었던 공익

    그 후로 종종 나는 그 2층 창가를 바라본다. 어떤 날은 사장님이 홀로 창밖을 보며 쓸쓸히, 그러나 유연하게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고, 또 어떤 날은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시끌벅적하게 잔을 부딪치고 있다. 그 풍경을 보며 나는 공익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다시 쓴다. 공익은 멀리 있지 않다. 거창한 사회 운동이나 대단한 기부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버려진 유기견들을 거두어 제 식구로 키워내고, 지나가는 동네 노인의 안부를 창문 너머로 소리 높여 물으며,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의 머리를 대가 없이 다듬어주는 것. 그리고 나를 찾아온 낯선 손님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는 것.

     

    비염이 있는 나에게 그 미용실은 코끝이 간지러운, 그리 녹록지 않은 공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만간 그곳의 문을 다시 열 것 같다. 이미 그 남자의 따뜻한 가위질에 중독되어 버렸으니까. 행복이 만 원짜리 한 장으로 거래되는 그 이상한 미용실은, 오늘도 안산의 한구석에서 세상을 아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구원하고 있다.


    김량현 사장
     
     
    만원의 공익
    윤작가

    조회수 293

    2026-06-26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길을 따라온 게 아니라 휠체어와 함께 길을 만들며 여기까지 왔어요.”

    그의 이야기는 이 한 문장에서 시작한다. 늦게 시작한 공부와 일, 아이를 키우며 멈춰야 했던 시간, 그리고 다시 장애인 활동가로 살기까지, 그는 휠체어로 스스로 길을 내며 살아왔다.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총괄팀장이자 동료상담가 조은상 활동가를 소개한다.

     

    동료상담가라는 말이 생소한 분들을 위해 소개부터 부탁해요.

    저는 안산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IL’)에서 동료상담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장애인이라고 하면 도움과 서비스를 받는 사람을 상상하잖아요. 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의 정신은 장애인을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바라보는데요, 장애인 당사자가 또 다른 장애인 동료와 하는 상담이죠. 단순히 비슷한 처지끼리 하는 대화가 아니라, 기존의 전문가 중심 상담 모델로부터 해방된 고도의 정치·사회적 치유와 임파워먼트Empowerment 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정신과 의사나 사회복지사가 장애인을 진단과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상담이죠. 동료상담은 그런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로부터의 해방된 평등한 관계 모델이라 할 수 있어요. 장애인 스스로가 자기 삶의 전문가라고 선언하는 거죠. 자격증의 권위가 아니라 장애를 안고 살아온 생존의 역사자체가 상담의 강력한 도구죠. 상담의 목표 역시 상담가가 아니라 내담자 스스로 자기결정권으로 설정하고요.

     

    동료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가 대등한 관계로 진행해요. 한쪽이 가르치거나 답을 주는 게 아니라, “나도 그랬다는 공감을 서로 나누는 거죠. 이 모든 과정이 자립생활 모델과 결합해요. 내면의 힘을 길러서 결국 시설이나 집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살아가게 하는 힘. 더 나아가 개인의 변화를 넘어, 사회의 책임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동력이 되고요.

     

    ~ 자립생활센터(IL)가 어떤 곳인지도 소개해 주셔야겠어요.
    장애인복지관과 비교해 볼게요. 이전엔 서비스를 받거나 이용하러, 즉 이용자로서 장애인복지관을 드나들었어요. IL센터에서는 장애인이 행동의 주체가 돼요. 이용 시설이 아니라 장애인이 직접 일하고 활동하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움직이는 단체죠. 환경과 사회를 장애물이 없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사회 변혁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을 돕는 것을 넘어서 사회를 바꾸는 일이에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삶의 운동이자 삶의 일부예요.

    IL의 가장 기본 정신이 권리옹호, 자기결정권과 자기선택권인데요. 어디서 살지,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와 같은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부터 인생의 큰 항로까지,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고자 해요. 거기엔 실패할 권리도 포함돼 있고요. ‘장애인을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 장애인이 없어서는 안 된다라는 당사자주의고요. IL 센터 내부의 소장부터 주요 의사결정 인력까지 과반수 이상이 장애 당사자인 것도 그 때문이고요.

    장애가 있다고 사회와 격리된 시설에서 살아야 할까요? IL은 비장애인과 똑같이 지역사회 안에서 어우러져 사는 것을 지향해요. 물리적 건물만이 아니라 교육·노동·문화생활 등 모든 사회적 기회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죠. 장애인이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을 문제로 보는 사회적 장벽(Social Barrier)’이 문제라고 보는 겁니다. 이 운동의 핵심은 개인의 재활이나 극복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있는 거죠.

     

    어떻게 이런 엄청난 데에 발을 들이게 되었을까요?

    처음엔 아는 언니 따라왔죠. 사진 동아리 포커스휠에 나가면서도 별로 적극적인 회원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센터에서 동료상담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고 동료상담을 진행해본 게 첫 출발이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센터활동도 하게 되고 그러다가 집단동료상담 리더 교육을 받으면서 생각이 크게 바뀌었어요. 제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죠. 내가 불쌍하고 불행한장애인이 아니라, 사회적 차별과 구조적 모순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거죠. 장애인 동료상담가들이 당당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전에는 직업을 갖기 위해 자격증도 따고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면 센터 활동과 동료상담을 하면서 왜 자립생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는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금까지 센터에서 간사부터 팀장, 센터장까지 경험했고, 지금은 상록수IL센터 총괄팀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IL센터이지만 일에 집중하다 보면 가끔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갈등이 생길 때도 있어요. 그래서 현장의 동료들을 만나면서,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계속 스스로 돌아보게 돼요.

     

    공부를 늦게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장녀로 태어나 돌 무렵에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걷지 못하게 됐어요. 동생이 셋이었으니 넉넉지 않은 형편에 부모님은 저만 집중해서 돌보기 어려웠을 거예요. 입학할 나이가 됐지만 학교까지 이동하는 것도 어려웠고, 동생들을 희생시킬 순 없지 않냐는 말을 듣고 자랐어요. 그럴 때마다 부모님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아무 말 못 하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집에서 가정교사를 통해 조금씩 공부했지만 늘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책을 읽었어요.

    20대에 직업 훈련원에서 옷 만드는 기술을 배워 취업을 하고 보니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20대 후반에 검정고시를 시작했어요. 결혼하고 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힘들다는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느낌이 더 컸어요. 방송대 교육학과를 계속 장학금 받으며 졸업했어요.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했어요. 서로 과제를 알려주고 시험 정보를 나누면서 함께했던 경험이 컸어요. 그때 공부는 혼자보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는 것이라는 걸 느꼈어요.

     

    장애 여성으로서 전에 하신 일과 사회 생활을 들려주실 수 있어요?

    장애인이라고 하면 부모가 희생하거나 당사자가 희생하거나 그런 구조잖아요. 공부 기회를 놓치고 사회에 나갔기 때문에 저는 더 열심히 배우고 일했어요. 장애인기능대회가 있었는데 나가서 금메달을 땄어요. 이제 세계 대회를 나갈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연습했고 프라하 세계 장애인 기능대회 나갈 티켓도 땄어요. 그런데 저한테 기술 가르쳐준 선생님들이 그렇게까지 할 거 있냐고 반대하시더라고요. 처음부터 하지 말라고 하든지, 장애인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구나, 상처를 많이 받았죠. 튀지 않고 착한 장애인이길 원했던 것 같아요.

    제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도 그랬어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작업장이었는데, 수녀님들이 제 결혼을 걱정하고 반대했어요. 부모님도 심하게 반대해서 5년을 미루다 결혼했어요. 동료상담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비슷했어요. 장애 여성은 교육, 결혼, 출산, 일 등 여러 선택에서 뒤로 밀리고 편견의 대상이에요. 직장에 다닌다고 하면 놀라고, 집이 깨끗하다고 놀라고,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놀라요. 장애인은 돌봄을 받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해요. 저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 평범함이 오히려 특별한 일이 되는 느낌이 있어요.

     

    비장애인 여성도 두려워하는 결혼인데 참 씩씩하게 사셨어요. 아이 낳고 키우며, 또 워킹맘으로 살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30대 후반에 아이를 가졌을 때도 일을 쉬지 않았어요. 배가 불러서 운전하기 힘든데 사장님이 나와서 같이 밥이라도 먹자며 부르셨어요. 당시엔 생소했던 강아지 옷 만드는 일이었는데 일이 많아서 새벽 7시에 나가서 야근이 많았어요. 한번은 폭설이 내려 청계 터널에서 2시간을 갇혀 있었는데, 다음 날 보니 타이어가 터져 있더라고요. 저는 천주교 신자인데 아이랑 저랑 정말 주님이 살려주셨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결혼할 때도 그랬어요. 장애인이 어떻게 살 거냐, 아이는 어떻게 키울 거냐. 저도 아이는 낳지 말자 생각했었죠. 일을 계속하고 싶었고 양육에 자신도 없었죠. 어느 날 밤늦게 퇴근하면서, 일만 하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갖기로 했어요. 임신과 출산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이동도 어렵고 병원 가는 것도 힘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일을 할 수 없었어요. 맡길 곳이 없어서 제가 아이를 돌보게 되었어요.

     

    Q ‘착한 장애인이라는 기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가족 안에서 화목하게 살기 위해서는 많이 참아야 했어요. 장애인이기도 하고 여성이라는 점이 겹치면 어떨까요? 장애인 여성은 더 많이 참고 더 많이 양보한다는 기대가 있어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존엄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많아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자존감은 많이 낮아져 있었어요.

    잘 해야 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남들보다 사회생활도 그렇고 뭐든 다 늦었으니까 나는 더 빨리 잘해야 될 것 같은 그런 생각이었어요. 이걸 맏딸 콤플렉스라고 하죠? 부모님한테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고, 장애인이라 못한다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딱딱 다 잘 해내려고 했어요. 하지만 10IL활동을 하며 조금씩 달라졌어요.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서로 힘들게 하잖아요. 이제는 못 하는 건 못 한다고 말해요. 어머니에게도 이번에는 못 간다고 말하게 되었어요. 그럴 힘이 생겼죠.

     

    Q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아이를 키우다가 어느 순간 다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한 언니가 등록금을 내주며 공부를 꼭 하라고 말했어요.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버지도 응원해 주셨어요. 마흔이 넘어 다시 공부할 때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셨어요. 엄마가 보내준 김치 통 사이에 아버지가 학비에 보태라고 몰래 30만원이 든 봉투를 넣어두셨는데, 김칫국물에 젖은 그 봉투를 보고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지금도 나요.

     

    Q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나 삶의 전환점이 있었나요?

    2014년에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저를 많이 도와주던 언니도 돌아가시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였어요. 그 시기에 세월호 참사도 있었고요. 솔직히 우울함도 있었어요. 제가 사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 사건이 너무 크게 다가왔어요. 그냥 뉴스에 나오는 사건이 아니라 내 아이의 일처럼 느껴졌어요. 앞으로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이래도 되는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힘든 시기를 통과하며 지역에서 하는 집회나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됐어요. 큰 역할은 아니지만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연대하고 같이 있는 사람,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Q 장애인에게 일은 어떤 의미라고 보십니까?

    일은 삶을 바꾸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센터에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일자리에 참여하는 분이 내가 번 돈으로 가족들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사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라던 말을 잊을 수 없어요. 큰 변화라고 느꼈어요. 일하고 돈을 벌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게 장애인의 삶의 위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살게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중증 장애인에게 일자리는 단순한 수입 이상의 의미를 가져요. 사회의 구성원으로 지역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가 더 커요.

    그래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420일을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라 불러요. 시혜적 성격을 거부하고, 장애인 권리(이동권, 탈시설, 교육 등)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날이죠. 올해도 326일에 청와대 앞에서 ‘223.26 전국장애인대회 및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식을 열었어요. 최옥란 열사 기일에 열린 223.26 대회였죠. 효자동 복지센터 인근에서 출발해서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했고 집회하고 열사분들 추모제도 했어요. 각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전국에서 모여요.


    Q 앞으로의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지금까지 활동하고 또 아이를 기르면서 앞만 보고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앞으론 어떻게 살지? 이런 고민이 들었어요. 앞만 보고 가지 말고 소소하게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과 차도 마시고 서로를 지지하고 나누면서 사는 삶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요. IL센터의 활동가로 동료상담가로 목소리를 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면서 살아야죠.

    돌아보면 누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온 게 아니라 그때그때 부딪히며 길을 만들어 온 것 같아요. 앞으로도 큰 계획보다는 지금처럼 살 것 같아요. 필요한 자리에 가 있고 연대하며 살고 싶어요.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살았다 싶어요. 앞으로도 휠체어와 함께 제가 길을 만들며 살아갈 것 같아요.

     

     
     
    “휠체어와 함께 길을 만들며 여기까지 왔어요.”
    꿀벌

    조회수 249

    2026-04-15
  • 제 목 비영리 일자리로, 지역의 미래를 말하다. 첨부파일명 사진은 센터에서 찍은 사진으로 대체 바랍니다. 추가#: #AI, #공익활동, #청년 일자리, #좋은 일자리, #고용 유발, #경
    기도형

    안녕하세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4기 에디터 바람자전거입니다. 최근
    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AI로 재편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여러분
    들의 생각은 어떠세요? 뉴스를 봐도 AI, 내년도 준비 회의나 워크숍을 해
    도 AI가 빠지지 않습니다. 업무에서 만이 아니라 AI로 편지를 쓰고, 사주도
    보고, 상담도 하는 지금, 이러한 AI의 발전으로 가장 먼저 IT 기업의 일자
    리들이 줄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사라질 거
    라는 불안감이 사회적 스트레스가 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
    대적 상황에서 ‘비영리 일자리로 지역의 미래를 말하다’는 주제로 경기도- 시·군 센터 네트워크 협력포럼이 열렸습니다. 비영리 일자리 AI시대에 어떤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봤습니다.

    ‘비영리 일자리로 지역의 미래를 말하다’ 포럼은 경기도 비영리 일자리 활
    성화 정책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지역의 비영리 일자리 현실과 과제를 논
    의하는 자리입니다. 포럼은 경기도의 지역 특성상 1차 군포, 2차 평택 안
    성, 3차로 의정부로 나눠서 진행되었습니다. 필자는 2025년 11월 28일 금
    요일 오후2시, 평택대학교 제2피어선빌딩 2층 소강당에서 개최된 포럼에 참여했습
    니다.

    2차 포럼의 사회는 김낙빈 안성시 공익활동지원센터장, 발제는 이명신 비영
    리경영연구소 소장, 토론으로는 김혜련 평택안성흥사단 운영위원, 용솟음
    비상구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조철민 (사)시민 이사 3분과 현장에는 평택, 안성, 수원 등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활동가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비영리 일자리가 지역의 미래에 어떤 포지션으로 대안이 될 수 있는지 눈
    을 크게 뜨고 읽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1. 경기도 비영리 일자리 활성화 정책 연구 결과

    이명신 비영리경영연구소 소장이 발표한 연구는 2025년 6월부터 10월까지
    4개월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연구의 핵심은 비영리 일자리의 개념 정립, 생태계 진단, 규모 추계, 그리고 정책 제안입니다.

    01 02
    비영리 일자리 개념 정립
    사회적 가치 실현과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익 활동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자리로
    정의했습니다. 수입 개분을 목적으로 하
    지 않는 비영리 조직에서 수행하는 유급
    노동을 포함합니다.

    비영리 범위 설정
    전통적인 비영리 단체뿌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 영역까지 포함했습니다. 사회적 경
    제도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

    에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03 04
    현장 의견 수렴
    5그룹 18명이 참여한 인터뷰를 통해 현

    규모 추계 및 기여 효과 분석
    기업 통계 등록부와 산업 연관 통계표 자

    #2. 경기도 비영리 일자리 규모와 경제적 기여

    연구결과, 경기도의 비영리 부문은 상당한 규모와 경제적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63,482 670,000 117조
    비영리 사업체 수 종사자 수 사업체 매출
    경기도 전체 사업체의 약
    5%를 차지합니다. 경기도 전체 종사자의 13%에

    해당합니다. 비영리 부문이 창출하는 연간
    매출액입니다. 가장 놀라운 발견: 부가가치 기준 경기도 GRDP의 비영리가 차지하는 비중
    이 무료 14.35%에 이릅니다. 이는 미국의 GDP 대비 비영리 비중 5.4% 보
    다 훨씨 높은 수치입니다. 비영리는 생산 유발, 고용 유발,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상당합니다. 특히 고
    용 유발 효과는 전 산업 평균 1.1명 대비 6.1명으로 훨씬 높습니다. 비영리
    는 노동 집약적이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큽니다. #3. 비영리 일자리 정책의 현실: 텅 빈 지원

    연구 결과 비영리 일자리 정책의 현실은 한마디로 “텅 빔”이었습니다. 아무
    데도 주문할 데가 없습니다.
    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재정
    문제, 1인 사무국 체제의 어려움, 그럼에
    도 불구하고 느끼는 보람들이 공유되었
    습니다.

    료를 분석하여 경기도 비영리 일자리의
    규모와 경제적 기여도를 측정했습니다.

    중앙 정부 일자리 정책 경기도 일자리 정책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행안부, 중소벤처기업
    부등 다양한 부처의 일자리 정책이 있지만, 비
    영리는 원칙적으로 배제되거나 사실상 혜택을
    받기 어렵습니다. 특히 5인 미만의 풀뿌리 단체들은 아예 접근
    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중소기업 지원 정책과 소상공인 지원 정책은
    매우 풍부하지만, 비영리 단체가 활용할 수 있
    는 정책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메이비 라이트 잡(일자리 매칭)과 청년 복지
    포인트(연 최대 120만원)정도만 비영리 단체에
    서 가능합니다. ☞ 소상공인 지원 vs 비영리 지원: 소상공인에게는 배달 택배비 지원, 1인 소상공인 고용보험료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이 있지만, 비영리 민간단체는 우편 요금 정도만 지원받습니다. 요즘 누가
    우편을 보냅니까?

    경기도 공익활동 활성화 정책 예산은 청년 공익활동가 통합 지원 체계 구
    축(3억 1천만원)과 비영리 스타트업 지원 사업(1억 3,600만원)을 합쳐 약
    4억 4,600만원 입니다. 반면 기회소득 정책(농업인, 체육인, 아동 돌봄, 장
    애인, 기후 행동 등)에는 수백억 원이 투입됩니다. #4. 경기도형 비영리 일자리 정책 제안

    연구진은 “기여적 정의를 위한 투자”라는 슬로건 아래 경기도형 비영리 일
    자리 정책을 제안했습니다. 기여적 정의를 위한 투자란 단순히 물질적 투자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비영리 공익 활동을 가치 있는 활동으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
    다. 일자리는 생존이고 자존감이면,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삶을 자리
    잡게 하는 매개체입니다.

    01 02 03
    비영리 일자리 기반
    조성

    비영리 일자리 창출
    및 지원

    지역 기반 거버넌스
    구축

    비영리 일자리의 개념과 범
    위를 명확히 하고, 사회적 인
    식을 개선하며,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합니다.

    청년 인턴제 확대, 상근 활동
    가 인건비 지원, 비영리 스타
    트업 지원, 일자리 플랫폼 구
    축 등을 통해 실질적인 일자
    리를 창출합니다.

    시군 단위 비영리 일자리 정
    책을 수립하고, 지역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지원 체계를
    만듭니다.

    3개년 예산 제안: 1단계 100억 원 2단계 100억 원, 3단계 100억 원, 총
    300억 원을 투입했을 때 경기도 GRDP에 기여하는 효과와 고용 창풀 효과
    를 분석했습니다. ☞ 해외 사례 참고: 일본과 폴란드의 세금 1% 기부 제도, 네이버후드 매칭 펀드(공익 활동에 쓰
    인 시간·재능·현물·현금에 정부가 보조금을 매칭), 비영리 일자리 플랫폼 등을 참고할 수 있습니
    다.

    연구자의 발제에 이어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생생한 토론이 이어
    졌는데요. 어떤 내용인지 3명의 토론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톤론1 : 비영리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로 이어지려면

    김혜련 평택안성홍사단 운영위원은 평택 지역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했습니
    다. 평택시민사회단체연대 담쟁이에는 24개 단체가 가입되어 있지만, 상근
    활동가가 있는 곳은 반상근까지 포함해도 약 7곳 정도입니다. 자체 활동 공

    간을 가진 곳은 더 적습니다.

    “활동가로 일하면서 사회 이슈에 민감해야 하고, 지역사회에 발 빠르게 대
    응해야 하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고용주인지 고용되는 노동
    자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김혜련 위원은 연차가 오래되면서 경력에 맞는 급여를 받지 못해 위탁 운
    영 기관으로 이동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비영리 일자리의 업무 역역
    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행정인지 마케팅인지 구분이 어렵고, 닥치는 일을
    모두 해야하며, 메뉴얼도 없습니다. 활동가의 입장에서 3가지 정책 제안을 하였습니다. 기업의 책임 코디네이터 정책 안정적 일자리
    삼성, 미군 기지 등 대기업이
    들어오면서 지역문제는 복잡해
    지는데, 왜 기업은 지역에 환
    원이 없을까? 기업도 일자리
    100명당 1인을 사회적으로 환
    원해 공익 일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1년 또는 반상근 청년 고용을
    만들 수밖에 없다면, 경기도
    차원의 코디네이터가 필요합니
    다. 공통분모를 만들어주고 사
    회적 공동체를 형성해주는 역
    할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안녕을 보장하면서 공
    공의 가치를 실현하는 청년 일
    자리가 지속되길 희망합니다. 과거처럼 개인의 희생이 당연
    한 시대는 지났습니다.

    토론 2: 공익과 생존사이, 지역 비영리 일자리의 현실

    용솟음 비상구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청년 활동가의 관점에서 생생한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비상구는 “어떻게 하면 평택에서 더 재미있게 청년들이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청년 공간을 만들고 공익 활동을 시작했지만, 수익을 얻어야 하는 상황이 계속 발생했습니다. 행사나 단기 프로그램 등
    외부 사업을 병행하면서 처음 설립 목적과 방향성이 흔들리는 순간을 경험
    했습니다.

    “공익을 위한 활동도 지속 가능한 기반이 있을 때 비로소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한 고민은 저희만의 고민이 아니라 지역에서 활
    동하는 많은 비영리 단체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구조적 과제입니다.”

    1년 사업 구조의 한계 업무 과중 생존 vs 공익
    공익활동은 장기적 관계 형성과
    꾸준한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지
    만, 대부분 1년 사업 구조에 묶
    여 있습니다. 활동이 자리 잡을
    때 사업이 종료되거나 인력이
    변경됩니다.

    프로그램 기획, 행정, 홍보, 회
    계, 정산까지 한 사람이 동시에
    떠안게 됩니다. 신규 단체일수
    록 어려움이 큽니다.

    공익 활동을 기획하는 시간보다
    운영비와 사업비 확보를 위한
    행정작업에 더 많은 시간이 듭
    니다. 살림 걱정을 먼저 해야
    합니다. 비영리 일자리는 단순히 고용을 늘리는 정책이 아니라 지역의 지속 가능성
    그 자체입니다. 공익을 위해 출발한 단체들이 생존 때문에 방향을 잃지 않
    도록,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이 오래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토론 3: 지역의 비영리 일자리, 어떤 과제가 필요한가

    조철민 (사)시민 이사는 사례와 제안을 중심으로 비영리 일자리의 과제를
    제시했습니다. 전국적으로 비영리 일자리 관련 사업은 많지 않습니다. 청년 일경험 지원
    사업(청년 인턴제), 공익 활동의 사회적 인정(직업 분류 코드 상향), 활동
    가 진로와 노동권 논의, 참여 수당 제도(광주광역시 광산구) 정도입니다. 경기도는 비영리 일자리 조례에 비영리 일자리 조항이 명시된 유일한 광역
    조례를 가지고 있으며, 청년 인턴 사업과 기회소득 정책 등을 선도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익 활동가를
    공공인재로 좋은 일자리로 만들기 시민 인식 전환
    미국이나 서구에서는 공무원, 정치인, 비영리 활동가를 묶어
    서 공공인재로 플레이밍합니다. 공공성을 만들어내는 역할에서
    비영리 활동가도 우리 사회가
    길러내야 할 인재입니다.

    비영리 일자리를 국제노동기
    구의 ‘디센트 잡(좋은 일자
    리)’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
    다. 정책적 차별을 없애고, 조직 문화를 개선하면, 젊은
    세대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일자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진로 진학 교육에 비영리는
    없습니다. 청소년부터 대학
    생, 경력 단절 여성, 은퇴자
    까지 비영리 일자리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는 노력이 필
    요합니다.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공익 활동이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데, 인식의 전환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
    리로부터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리하자면, 비영리 일자리, 지역의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비영리 일자리는 단순한 고용 정책이 아닙니다. 이것은 지역의 지속 가능성
    을 위한 투자이며,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지키는 기반입니다. 경기도 비영리 부분은 GRDP의 14.35%를 차지하며, 67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고용 유발 효과는 전 산업 평균보다 높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경제적 기여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텅 비어 있습니다. 정책적 지원
    은 미비하고, 사회적 인식은 낮으며, 활동가들은 생존과 공익사이에서 고민
    합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l 인식전환: 공익 활동가를 공공인재로 인정하고, 비영리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l 정책적 지원: 한정된 예산을 어디에 쓸지에 대한 의사결정이 필요합니
    다. 비영리에 대한 투자는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l 우리로부터 시작: 선배 활동가든 청년 활동가든, 우리 스스로가 먼저 주
    장하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l 지역 특성 반영: 시군마다 공익 활동 환경이 다릅니다. 지역 특성을 반
    영한 맞춤형 일자리 구조가 필요합니다.

    “ 모든 비영리 활동가에게 비영리 일자리 정책이 에어비엔비 같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를 꿈꿉니다.” - 이명신 비영리경영연구소 소장

    지역을 움직이는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활동가가 오래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들 때, 좋은 공익 활동도 장기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
    다. 공익을 위해 출발한 단체들이 생존 때문에 방향을 잃지 않도록, 현장에
    서 뛰는 사람들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며 오래 활
    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이것이 AI의 시대에 인간
    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비영리 일자리로, 지역의 미래를 말하다.
    바람자전거

    조회수 48

    2025-12-03
  • 여러분들도 민생회복 소비 쿠폰을 사용하셨나요? 정부는 총 13.9조 원의 지원금
    을 편성하여 전 국민에게 지급하였는데요.1) 1차 지급 기간인 7월 21일부터 9월
    12일까지 중 첫날 약 698만 명이 신청해 전체 대상자의 13.78%가 몰려 뜨거운
    반응을 보였습니다.2) 이후 주민들은 거주 지역 상권을 방문하여 시장 활성화에
    보탬이 되었는데요. 과연 지역경제를 회복하고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를 지원하겠
    다3)는 목표가 잘 수행됐는지 돌아보고 2차 지급과 관련한 놓치기 쉬운 정보들도
    알려드리겠습니다.

    ▶ 곡성읍 일원의 민생회복 소비 쿠폰 촉진 행사
    (출처: 곡성군청, 공공누리 제1유형)

    민생경제 위기

    올해 내수경제는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예로 1월 자영업자 수는 IMF 외환 위기
    였던 1997년(590만 명), 1998년(561만 명)과 글로벌 금융 위기였던 2008년(600만
    1) 18) 20) 23) 출처: 행정안전부 민생회복 소비쿠폰 홍보자료
    https://www.mois.go.kr/frt/sub/a06/b07/livelihoodCoupon_2/screen.do
    2) 출처: 김창훈, “'민생회복 소비쿠폰' 첫 날 698만 명 신청...1조2722억 지급”, 한국일보, 2025.07.22.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2208450004126
    3) 출처: 행정안전부 민생회복 소비쿠폰 홍보자료
    https://www.mois.go.kr/frt/sub/a06/b07/livelihoodCoupon_2/screen.do
    에디터 활동명 초스코스 이 름 정호연
    해시태그 #민생회복소비쿠폰 #소상공인

    #지역경제활성화

    제 출 일 2025년 8월 20일

    제 목 민생회복 소비쿠폰 어디까지 써봤니?
    첨부파일명 (없을 경우 생략)

    명), 2009년(574만 명)보다도 감소한 550만 명을 기록했습니다.4) 큰 규모의 기업
    상황은 나았을까요? 한국경제인 협회는 7월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2025년 하반기 기업 경영여건 조사’를 발표
    했습니다. 이번 조사에 응답한 152개 기업은 하반기 최대 경영 문제점으로 ‘내수
    부진·경기침체 지속’(25.7%)을 선택하였습니다.5)

    ▶ 비어 보이는 듯한 화양 전통시장 골목
    (출처: 서울특별시 광진구, 공공누리 제1유형)

    해당 지표들은 국민의 지갑이 견고하게 닫혀있어 민생경제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었는데요. 그 이유로는 여러 원인이 거론됐었습니다. 예로 최석원 이
    코노미스트는 “이자 부담, 더딘 외국인의 국내 소비와 내국인의 관광 수요 회복, 대통령 및 대행의 탄핵 정국 등의 정치적 불확실성” 등을 손꼽았습니다.6)

    민생회복 소비 쿠폰의 긍정적 효과

    그렇다면 민생회복 소비 쿠폰이 시행되며 나타난 영향은 어떨까요? 우선 긍정적
    인 효과를 세 가지로 추려보았습니다.

    1. 소상공인의 매출이 증가하고 소비심리가 반등하였습니다.

    4) 출처: 김승현, “내수 부진에... 자영업자 석달간 27만명 줄어”, 조선일보, 2025.03.11.
    https://www.chosun.com/economy/economy_general/2025/03/11/L2IHXUIB2JCKTHKYRWY6F3LLDQ/
    5) 출처: 오동욱, ‘ 기업들 하반기 최대 경영 리스크는 “내수 부진” ’, 경향신문, 2025.07.22.
    https://www.khan.co.kr/article/202507221545021/?utm_campaign=total_news&utm_medium
    6) 출처: 최석원, “[최석원 칼럼] 한국의 소비 부진, 무엇이 문제인가”, 오피니언뉴스, 2025.03.25.
    https://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4546

    지역 경제의 즉각적인 회복을 상당 부분 이뤄냈습니다. 대표적으로 8월 12일 소
    상공인 연합회가 발표한 민생회복 실태조사 현황에 따르면 소상공인 70.3%가 소
    비 쿠폰 정책에 대해 만족하는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7) 또한 한국신용 데이터는
    쿠폰 배포가 시작된 한 주 동안 전국 소상공인 사업장 38만 2207곳의 카드 매출
    을 분석한 결과 상인들의 평균 카드 매출액은 전 주에 비해 2.2% 상승했다고 밝
    혔는데요.8) 결과적으로 골목 상점이 살아나며 경제 회복의 청신호를 보여주고 있
    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내수 진작 및 경제성장률이 상승세를 기록할 것이라 예측됩니다. 대표적으로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민생회복 소비 쿠폰은 지역 소
    상공인 매장에서만 사용 가능하며, 소비 유도를 통해 지역 경제와 취약계층을 지
    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정책은 최대 0.32%p의 성장률 제고 효과를 낼 것으로
    예측되어, 내수 진작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높다.”라고 밝혔습니다.9) 나아가 7월
    소비자심리지수도 110.8을 기록해 6월보다 2.1p 오르며 네 달 연속 상승세를 기
    록하였는데요.10) 따라서 내수 안정과 경제성장률은 향후 호황을 기록할 것으로 기
    대됩니다.

    3. 지역 상권과 소비자의 형평성에 맞게 쿠폰이 지급됐습니다. 제한된 사용처와 소득별 차등 지원 등 취약 대상의 형평성과 시급성에 맞는 지원
    책을 마련하였습니다. 예로 소득 수준에 따라 15만 원에서 최대 55만 원 차등 지
    급, 연 매출 30억 원 이하 매장 사용, 농어촌 인구감소 지역 5만 원 추가 지급
    등의 제한을 두었습니다.11) 따라서 전 대상층에서 골고루 소비와 매출이 이뤄질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7월 국내 카드 승인액(민생회복 소비 쿠폰 사용 추정)은 전
    년 동월에 비해 6.3% 증가해 올해 2월(6.8%)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였
    7) 출처: 홍효식,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 소상공인 70.3% 만족”, 뉴시스, 2025.08.12.
    https://www.newsis.com/view/NISI20250812_0020928182
    8) 출처: 김다솜, ‘소비쿠폰에 활력도는 내수시장..”경제성장률 1%대 회복 가능”’, DAILY POP, 2025.08.05.
    https://www.dailypop.kr/news/articleView.html?idxno=90129&
    9) 출처: 이정환, “민생회복 소비쿠폰, 한국 경제 위기 극복할 실질적 신호탄”,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5.07.11.
    https://www.korea.kr/news/contributePolicyView.do?newsId=148945842&
    10) 출처: 박상영, “국내 카드 승인액 6.3% 늘었다···‘소비쿠폰 효과’에 내수 회복 “긍정 신호””, 경향신문, 2025.08.14.
    https://www.khan.co.kr/article/202508141342001
    11) 출처: 행정안전부 민생회복 소비쿠폰 홍보자료
    https://www.mois.go.kr/frt/sub/a06/b07/livelihoodCoupon_2/screen.do

    습니다.12)

    ▶ 외식에 함께한 젊은 친구들


    (출처: Pixabay, 사진: mairaali1121)

    민생회복 소비 쿠폰의 부정적 효과

    반면 부정적인 우려도 낳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부작용을 세 가지로 추려보았습니
    다.

    1. 불법 거래의 사례가 적발되었습니다.

    7월 중고 거래 사이트에 15만 원의 쿠폰을 현금 13만 원에 할인해 판매한다는
    내용이 올라왔습니다. 또한 지원금 사용처에서 결제를 하고 싶지 않아 가맹점에서
    사용할 때마다 다시 계좌에 입금해달라는 글이 게시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행정
    안전부에서는 중고거래를 통한 소비 쿠폰 현금화가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행위
    에 해당되기에 최대 3년의 징역형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되는 등
    의 강력한 처벌을 경고하였습니다.13) 하지만 향후 이러한 범죄가 재발할 수 있다
    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2. 일회성 정책임과 예산 낭비라는 논란이 제기되었습니다.
    12) 출처: 박상영, “국내 카드 승인액 6.3% 늘었다···‘소비쿠폰 효과’에 내수 회복 “긍정 신호””, 경향신문, 2025.08.14.
    https://www.khan.co.kr/article/202508141342001
    13) 출처: 김혜진, ““소비쿠폰 ‘깡’하다가 ‘꽝’됩니다”...되팔기 걸리면 ‘최대 징역 3년’”, 매일경제, 2025.07.22.
    https://www.mk.co.kr/news/economy/11374224?

    일회성인 정책으로 장기적인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고 혈세 낭비라는 지적도 나왔
    습니다. 예로 총 550억 원의 예산 중 지역화폐 발행비 205억 원, 인건비 172억
    원, 하드웨어/소프트웨어 76억 등의 금액이 책정되며 국회 예산정책처에서는 매번
    지원 정책이 폐기되고 신설될 때마다 부담해야 하는 재정의 비효율성을 지적하였
    는데요.14) 이에 행정안전부에서는 최소한의 기본 비용 책정과 함께 이전 국민지원
    금에 활용된 정보자원들이 재활용되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15) 국회와 각 부처, 언론 간의 원활한 소통이 더욱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3. 역차별이라는 논란이 제기되었습니다.

    2차 소비 쿠폰은 소득 하위 90% 국민에게 개인 별 10만 원씩 추가 지급될 예정
    입니다. 하지만 이를 산정하는 기준에 대한 우려가 등장하였습니다. 예로 정부는
    국민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책정하는데 직장가입자는 소득만 반영해 다주택 자산
    가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또한 1인 가구는 보험료가 높고 맞벌이 가구도 부부
    개별 직장가입자로 등록돼 총 보험료가 외벌이보다 높게 측정되므로 불리할 수
    있습니다.16) 이에 행정안전부에서는 소득, 건강보험료 등의 관련 자료를 분석하며
    세부적인 기준은 9월 중 발표할 예정이라 하였으니 지켜봐야겠습니다.17)

    결론적으로 아직 사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섣불리 최종 효과를 판단하기 힘들
    수 있어 1차 지원의 마무리가 큰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다만 2차 지원
    은 앞서 확정되었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한 기본 정보와 에디터가 헷갈렸
    었던 주요 정보를 알려드리려 질문으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2차 민생회복 소비 쿠폰 꿀팁

    ※ 향후 내용은 달라질 수 있음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14) 출처: 문지웅, “소비쿠폰 행정비용 550억...예산 낭비 논란”, 매일경제, 2025.07.08.
    https://www.mk.co.kr/news/economy/11362812?
    15) 출처: 행정안전부 설명자료 「소비쿠폰 행정비용 550억...예산 낭비 논란」 (2025.7.9, 매일경제 보도 관련)
    https://www.mois.go.kr/frt/bbs/type001/commonSelectBoard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0009
    &nttId=118786
    16) 출처: 정유진, ‘“고가 아파트 있어도 지급?” 2차 소비쿠폰 기준 허점 뚫릴까’, 한경BUSINESS, 2025.08.17.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508174132b?
    17) 19) 출처: 행정안전부 설명자료 「2차 소비쿠폰 지급 기준은 4인 가구 月 1,280만 원 이하」 (2025.8.18, 조선일보
    보도 관련)
    https://www.mois.go.kr/frt/bbs/type001/commonSelectBoard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0009&nttId=119878
    &

    1. 지원 기간/대상/금액은 어떻게 될까요?

    ● 지원 기간: 2025.9.22. ~ 2025.10.31. 신청 및 지급18)
    ● 지원 대상: 소득, 건강보험료 등의 관련 자료를 종합해 「민생회복 소비 쿠폰
    범정부 TF」 합의 후 9월 공지 계획19)
    ● 지원 금액: 1차 + 10만 원 추가 지급(25만 원~ 50만 원)20)

    2. 지원금 이외 추가 혜택이 있을까요?

    카드 회사 추가 쿠폰 지급21), 간편결제서비스 제휴 이용22), (1차 선지급) 비수도
    권(3만 원)·농어촌 인구감소 지역(5만 원) 추가 지급23) 등이 이뤄집니다. 자세한
    사항은 각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면 됩니다.
    3. 해외 거주 중인 국민은 받을 수 없나요?

    국외에 거주하는 국민은 6월 18일 ~ 9월 12일 사이에 귀국하여 지자체 주민센터
    (행정복지센터) 출입국사실 확인 및 이의신청을 거쳐 민생회복 소비 쿠폰을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24)

    4. 가맹점인 가게를 찾기가 힘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민간 지도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에 들어가면 가게 앞에 민생회복 소비 쿠폰 사용
    가맹점의 표시가 뜨는 경우가 있습니다.25) 대부분 가게 앞에도 표시가 되어있어
    접근성이 좋습니다.

    21) 출처: 최혜승, ‘"소비쿠폰 빨리 쓰면 최대 5만원 더"... 카드사 25억 규모 이벤트’, 조선일보, 2025.07.28.
    https://www.chosun.com/economy/economy_general/2025/07/28/ZLKOLOT23NEAFH72YBGPFAEJOU/?
    22) 출처: 행정안전부, 「민생회복 소비쿠폰 업무협약식 개최」 보도자료, 2025.07.14., 공공누리 제1유형
    https://www.mois.go.kr/frt/bbs/type010/commonSelectBoard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0008&nttId=118873
    &
    24) 출처: 주 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민생회복 소비쿠폰 신청 안내(재외동포, 외국국적동포)」, 2025.7.18.
    https://www.mofa.go.kr/my-ko/brd/m_1923/view.do?seq=1346851&
    25) 출처: 행정안전부, 「민생회복 소비쿠폰 가맹점, 민간 지도 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도자료, 2025.7.29.
    https://www.mois.go.kr/frt/bbs/type010/commonSelectBoard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0008&nttId=119380

    ▶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표시된 소비 쿠폰 가맹점
    (출처: 행정안전부, 공공누리 제1유형)

    5. 배달 애플리케이션은 사용할 수 없나요?

    배달 기사와 직접 가맹점 자체 단말기를 사용해 결제하면 쿠폰 사용이 가능합니
    다.26) (배달 애플리케이션에 가맹점과 지원 방식이 안내되기도 함)

    6. 교통비, 통신비, 보험비 등 고정 생활비에는 사용할 수 없나요?

    조세·공공요금, 교통·통신 요금 등의 자동 이체 항목은 비소비성으로 분류돼 사용
    할 수가 없습니다. 대신 교통비의 예외는 있습니다. 개인·법인 택시는 차고지와
    소재지가 소비 쿠폰 사용 지역에 해당하고 연 매출액 30억 원 이하에서는 가능합
    니다. 버스·지하철은 선불/후불 교통 기능이 카드에 있으면 별도 계좌에서 충전되
    거나 카드 자동 이체에 해당하므로 사용 불가합니다.27)

    7. 내가 어떤 지원 대상에 속하는지 헷갈려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국민 비서 홈페이지(https://ips.go.kr)에서 민생회복 소비 쿠폰 알림서비스를 사전
    설정할 시 지급 금액, 신청 방법, 사용기한 등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모바일 애
    플리케이션에서도 가능합니다. (17개 회사)

    26) 27) 출처: 행정안전부, 「민생회복 소비쿠폰」 FAQ 페이지
    https://www.mois.go.kr/frt/sub/a06/b07/livelihoodCoupon_3/screen.do

    8

    자세한 기본 내용은 다음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링크: 행정안전부 민생회복 소비 쿠폰
    https://www.mois.go.kr/frt/sub/a06/b07/livelihoodCoupon_2/screen.do

    정권이 바뀌고 새로 시작된 민생지원 사업인 만큼 여론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앙 정부에서는 필수적으로 이를 수렴하여 향후 어떠한 방식과 목적으
    로 정책을 이끌어낼지 고민해야 할 텐데요. 2차 지원의 미래를 예측하는 건 미지
    수지만 되도록 긍정적인 효과가 선순환이 되어 다가오는 한가위를 풍성한 지역사
    회에서 보낼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어디까지 써봤니?
    초스코스

    조회수 84

    2025-08-20
  • 도종환 시인은 시 ‘화인’에서 4월을 이렇게 말한다. “이제 4월은 내게 옛날의
    4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도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란다. 2014년 4월 16일 그
    날 때문이다. 그게 어디 시인 한 사람만의 고백일까. 11년 전 4월 그날 이후
    삶이 바뀌었노라, 고백하는 한 사람을 소개한다. 4.16 합창단원이자 세월호
    시민 활동가 파주 시민 김서원(도로시) 님과의 일문일답이다. 

    자기소개와 근황 인사 부탁한다
    파주에 있는 여성 위기 청소년 쉼터에서 밥하는 일을 한다. 24시간 생활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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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데 활동가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울타리가 되도록 맛있는 밥을 해 주는
    게 내 일이다. 청소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게 내 즐거움이다. 예산에 맞게
    좋은 재료 공급 시스템을 만들었다. 매주 월요일 퇴근 후 안산으로 4.16 합
    창단 연습하러 가고, 다양한 공연 활동도 한다. 윤석열 파면 결정 나오는 순간 제일 먼저 4.16가족들이 떠올랐다. 4.16 합창
    단에서 노래한 건 3년이지만 세월호 가족들 곁에 있는 건 11년째다. 세월호
    참사로 나는 정치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됐
    다. 정치에 무관심한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투표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고, 유언으로 남기고 싶을 정도다. 사람들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자기 인생을 나누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내
    삶도 그렇다. 그날이 나를 깨웠다.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며, 다른 삶을 살게
    해줬다. 남태령에 트랙터 몰고 온 농민들 얘기 중에 그곳에 세월호 아이들이
    와 있는 거란 말이 있었다. 맞다. 나도 합창단에서 노래할 때 항상 아이들이
    함께 있음을 느낀다. 20140416 참사 당일의 기억은?
    애들 키우고 닥치는 대로 일하고 아파트 평수랑 좋은 대학 보낼 생각하고 살
    았다. ‘애들은 왜 나를 따라주지 않나, 남편은 왜 이렇게 무식할까, 나는 왜
    이렇게 고생할까’라며 늘 화가 차 있었다. 노는 날도 놀 줄 모르고 신나는 생
    각은 죽어도 못 하는 일 중독자였다. 그런데 수학여행 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했다고? 갑자기 내 삶이 다 부질없어 보였다. 당일 제일 먼저 찾은 게 우리 애들이었다. 애들이 어디 있지? 아들하고 연락
    이 돼서, 배고프지, 라며 짜장면을 사줬다. 짜장면을 먹이는데 더 할 말이 없
    었다. 우리 애들은 교복 입고 이러고 다니는데 그 애들은 못 돌아왔잖아. 더
    얘기할 수가 없고 마음이 안 잡혔다.


    4.16 활동으로 연결되는 계기가 있었나?
    갈피를 못 잡다가 지역에서 진실 규명을 위해 서명받는 사람들이 있길래 참
    여하고 그 곁에 있게 됐다. 2015년 들어서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 모임을 한
    다는 말이 들렸다. ‘아, 그럼 내가 음식을 할 수 있겠다’ 싶어 김경환 목사님
    과 네댓이 안산으로 갔다. 가 보니 안산의 ‘치유 공간 이웃’이었다. 우리는 각각 작은 개다리소반에 밥
    상을 받았다. 정말 정성스럽게 차려진, 울컥 뜨거운 눈물이 나는 밥상이었다. 가족들에게 차려지는 밥상이라는 생각에 나는 계속 울면서 밥을 먹었다. 이영
    하 선생님이 그러더라. “이곳은 야전병원”이라고. 투쟁하고 다치고 지치면 잠
    깐 쉬어 가는 곳이라고. 그게 4.16 활동과의 연결이었다. 봉사자 엄마들이 《금요일엔 돌아오렴》(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창비, 2015) 책을 소리 내어 읽는 모임을 만들었다길래 함께 했다. 혼자서는 엄두
    를 못 내던 책을 같이 낭독하며 실컷 울었다. 점차 노란 리본을 만든다든가
    동네에서 세월호 특별법 서명대에도 섰다. 치유공간 이웃(이웃): 2014년 9월~2021년 2월까지 안산에 있었던 치유 공간. 정신과 의사 정혜신·심
    리기획자 이명수 부부가 제안하고 시민단체 활동가 이영하 전 대표(50)가 실무를 맡았다. 수많은 활
    동가와 봉사자들이 4.16 가족들이 안심하고 울고, 편하게 밥 먹고 쉴 수 있게 함께 했다. 별이 된 아
    이들의 생일 모임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책 《밥은 먹었어요?》(이영하, 걷는사람, 2022)와 영화
    <생일>(2019, 이종언 감독)에 이웃 이야기가 더 있다.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 모임과 밥 이야기
    첫 생일 상차림을 위해 연 계좌에 80만 원이 모였다. 양을 대중 못해 장 보
    고 나니 딱 만원 남더라. 이 정도로 돈이 든다면 내 카드 긁을 각오까지 했
    다. 그렇게 준비된 영만이 생일 모임에 단원고 아이들과 사람들이 엄청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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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인분이란 음식이 100명 먹고도 남아, 화수분이라며 싸 주었다. -다음 모임은 다음팀이 단톡방을 열어 준비했다. 별이 된 아이 이야기를 공유
    하고 좋아하는 메뉴로 준비했다. 나는 그런 팀을 조직하고 식재료를 연결하고
    음식도 만들었다. 수많은 봉사자들이 ‘함께하는 이웃’ 밴드에 모여들었다. 저
    명한 여성들인 ‘십자매회’를 비롯해 신부님, 선교사님 그리고 시민들의 후원
    과 봉사로, 매달 40만 원 정도로 생일 모임을 할 수 있었다. 2015년 겨울에는 가족들을 위해 김장을 했다. 고양파주 생협과 유기농 식당
    네트워크에서 재료를 댔다. 괴산 농부님들이 연결됐다. 몇백 포기 배추가 트
    럭으로 오고, 성당에서 기도하던 할머니들이 나와서 배추를 절이고 소금, 고
    춧가루, 깨 등을 아낌없이 가져오고, 뒷정리를 도왔다. 가족들께 보내고 쌍용
    차나 투쟁하는 분들에게도 보내고, 이웃에서 먹을 수 있었다. 단원고 2학년 6반 고(故) 이영만(1998.2.19.~2014.4,16.) 군은 형제 중 막내로 약하게 태어났지만 건
    강하게 자라 축구를 좋아하고 5km 마라톤에서 상을 받았다. ‘미소천사’로 밝고 순한 성격에 엄마와 학
    교와 친구들을 좋아하고 공부도 잘해 우주학자를 꿈꾸었다. 2023년 ‘이영만 연극상’이 제정됐다. 사진5, 6
    4.16 활동 이전에도 음식하기 좋아했나?
    나는 4녀 1남 중 막내딸인데, 아버지가 내 밑에 남동생이 난 후로 “서원이가
    제일 예쁘다”라는 얘기를 자주 하셔서 그렇게 알고 컸다. 어깨동무 잡지에서
    나는 요리 칼럼을 제일 먼저 읽는 아이였다. 신문도 잡지도 요리 쪽을 1번으
    로 봤다. 중학교 때 레시피를 보고 낯선 피자를 직접 만들어 봤다. 할라피뇨, 피망 등 없는 건 집에 있는 재료로 대체했다. 엄마가 정육점에서 살이 치렁치렁하게 큰 돼지고기 덩이를 사 온 적이 있는
    데 내가 신문에 나온 레시피를 보고 돈까스를 만들었다. 소금 후추만 쓰란 법
    있냐, 간마늘로도 재고, 양파로, 우리 아버지 좋아하시는 청양고추 양념으로
    도 재어 튀겼다. 온 식구가 얼마나 맛있게 먹겠어. 입 짧은 남동생과 아버지
    가 너무 좋아하니, 우리 엄마는 늘 내게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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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들은 나를 “요리 천재”라고 불렀다. 장사하고 늦게 돌아오는 엄마에게 내
    가 만든 음식으로 밥상을 차려 드리면 “서원이 때문에 내가 한숨 돌린다”라
    며 좋아하셨다. 엄마가 아침에 도시락을 10개 싸던 시절, 내가 만든 반찬 덕
    에 엄마 수고가 줄어드는 게 좋았다. 참사 이후의 달라진 삶 이야기
    돈도 안 벌고 안산과 파주를 오가며 생일상 차리는 일을 한 2년 했다. 아이
    디어로 생각하던 음식을 다 만들어 봤다. 그러나 절대 나 혼자 한 게 아니란
    걸 말하고 싶다. 연대의 힘을 배웠다. 같이 메뉴 짜며 마음을 나눈 유가족들
    과 십시일반 힘 보태 함께 한 활동가들이 있었다. 그런 중에 나는 이혼했다. 2015년 봄, 불교팀 주방에서는 고기 요리를 할 수
    없어서 우리 집으로 장을 봐서 모였다. 남편이 폭발해 소리쳤다. “세월호 참
    사 안 났으면 어찌 살았겠냐, 죽은 아이들 생일상 차리느라 가족들 밥은 안
    차려주냐?” 그는 상을 뒤엎고, 빌려온 큰 팬을 내 쪽으로 던졌다. 남편이 일
    베처럼 보였다. 그날 나는 온 가족을 모아 놓고 이혼을 선언했다. 살아온 날들을 부정해야 했고 다른 일은 눈에 들어오지 않던 때였다. 내 마음
    은 그를 용납할 수 없었다. 이혼이 정리되는 몇 달간 남편이 현관문 열고 들
    어오면 내 몸이 아프고 소화가 안 됐다. 딸이 나서서 이혼 서류를 갖다 줄
    정도였다. 그는 안 하겠다고 버텼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18년의 결혼 생
    활, 연애까지 25년의 관계가 그해 말 허무하게 끝났다. 사진7,7-1, 8,
    이혼 후에도 계속 활동가로
    내가 저질렀으니 더 절실하게 활동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시국에 민중총
    궐기 촛불집회가 매주 있었다. 생일 모임 후에 벙커 원 교회 친구들과 토요일
    에 청계천으로 갔다. 매주 집회 광장에서 뭘 해볼까 궁리하다 주먹밥을 만들
    어 팔기로 했다. 잘 안 팔리더라. 그래서 그냥 나눠줬더니 사람들이 돈을 던
    지고 가더라. 그 후 뭐든 나눔으로 했다.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 청와대 앞
    법외 노조, 비정규직 집회, 블랙리스트 예술인들. 노숙 농성하는 사람들이 많
    았다. 토요일 새벽에 밥을 해서 싸우는 분들에게 가서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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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진 것 까먹으며 살았다. 고기 안 사 먹고 애들 학원 안 보내고 보험 깨고
    적금 해지하고 연금 없어지고 전세가 월세로 줄었다. 불만 많던 아들이 생일
    모임에 참여해 보고 반항을 끝내더라. 세월호 당시 중2였던 딸도 생일 모임
    에 다녀간 후 엄마를 이해하더라. 박근혜 탄핵 후 지역에서 소수당 진보당에 입당했다. 4.16 활동할 때 제일
    묵묵히 함께한 그분들과 파주에서 4.16과 함께 노래하는 일을 시작했다. 음식
    만들던 사람들과 함께 공모사업으로 파주 4.16 합창단을 3년 하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안산 4.16 합창단까지 하게 됐다. 4년 정도 한 ‘동네
    부엌 천천히’에서 청소년 시설로 올해 직장을 옮겼다. 그동안 소진되는 느낌은 없었나?
    성과 위주의 인간이었는데 왜 없겠나. 파주 시민 합창단 3년 차 공연을 지역
    에 있는 5개 팀 연합으로 잘 올린 후였다. 장애인 가족팀이 40여 명이 참여
    해서 한 100명이 했다. 행복하게 끝나고 손뼉 치고 각계 인사들이 인사하고
    있는데, 김서원 때문에 불편한 일이 많다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페이스북
    에 관련 내용이 올라왔다. 한 번도 생각 못한 일이었다. 내 욕심대로 활동한
    적 없다고 자신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맡은
    일을 많이 정리하고 직장 일과 4.16 합창단만 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여기저
    기 삐끗대는 몸도 돌보며 자신에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사진9,9-1, 10
    4.16 참사 11주기를 맞는 소회는?
    11년간 할 만큼 활동하고 나니 속에 화가 많이 풀리고 너그러워졌다. 대규모
    음식을 몇 년 하다 보니 나는 음식 전문가가 돼 있었다. 이제 나는 몸도 마
    음도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성과 위주의 인간이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변했
    다. 밥하는 일과 파주랑 안산 4.16 합창단 활동이 날로 재미있다. 그런 중에 작년에 엑스 남편하고 재결합하고 혼인신고도 했다. “당신은 활동
    자유롭게 하고 내가 이제 당신한테 은혜 갚게 해 줘”라는 그의 말에 내 마음
    이 열린 거다. 밥이나 사나 했더니 그는 점점 밥을 해 주고 싶다더라.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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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하던 삶을 되찾은 셈이다. 가족밖에 모르는 성실한 남자였으니까. 바꿔 말
    하면 나에게도 완벽주의를 요구하고 자식과 남편만 바라보길 원했더랬다. 그
    집착과 강요와 구속이 내겐 화로 쌓였던 거다. 4.16 참사와 함께 깨졌던 관계가 4.16 활동 덕분에 다시 이어진 거다. 남편
    은 노년에 내 수발을 잘 들려고 자기 몸 관리 열심히 했다는 사람이다. 우리
    관계도 이전의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나이 든 연인이
    되었다. 내가 4.16 합창단 공연하고 늦게 오는 날 그는 세탁기 돌리고, 냉장
    고 채우고, 맥주 두 캔 먹을 안주 준비해 놓고, 나 데리러 나온다. 돌아보면
    이혼은 ‘신의 한 수’였다. 아니면 우리가 서로의 가치를 몰랐을 거다. 이후의 계획이나 꿈은?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 이젠 장사하는 곳에서 밥을 상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 소질이 없다. 내 엄마, 아버지에게 밥해줬던 재미, 우리 엄마가 늦
    게 들어왔을 때 내가 밥 퍼서 김치하고 줘도 “세상에, 서원이 덕분에 엄마가
    이렇게 밥을 맛있게 먹는구나.”라며 내 자존감을 키워준 밥이다. 밥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해 주는 일이 나는 즐겁다. 매일 출근할 때 일하
    러 가는 마음보다는 아이들을 키우러 가는 마음이다. 먹이고, 입히고, 안전하
    게 재우고, 내 밥을 먹고 애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더불어 4.16 가족
    곁에서 4.16 합창단을 오래 하는 게 꿈이다.

    이제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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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1
  • 5기 아카이브 에디터 꿀벌입니다. 동십자각에서 열린 117회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40회 한국여성대회’ 스케치로 첫 인사합니다. 3월 8일(토)
    11:30-17:00에 43개 시민난장부스에 사람들이 북적댔습니다. 서울고용노
    동청 앞에선 12시 반부터 한국여성노동자대회가 열렸고요. 14:20-16:00
    기념식은 안국역 야5당 집회팀이 합류해 깃발 퍼포먼스를 한 후 17:00부터
    는 윤석열 탄핵 범시민대행진으로 이어졌습니다. 자 함께 구경해 볼까요?

    이번 한국여성대회의 절정인 깃발 퍼포먼스부터 소개하겠습니다. 기념식이
    이소선 합창단 공연으로 마무리될 즈음 광장의 모든 깃발이 입장하는 순서
    였어요. 하늘을 가득 채우며 펄럭이는 깃발들이 끝도 없이 등장하는 거예
    요. 깃발들 속에 보라색 작은 깃발들이 보이나요? 한 깃대에 크고 작은 깃
    발이 두 개씩인데요. 비상계엄과 내란으로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페미니
    스트가 구한다며 나부낍니다. 세계 여성대회 구호 “더 빠르게 행동하자!”에
    호응하는 제40회 한국여성대회 슬로건 “페미니스트가 민주주의를 구한다”
    깃발입니다. 장엄한 깃발의 바다였습니다. 깃발 퍼포먼스는 함께하는 몸짓 “댄싱퀸”으로 이어진 후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윤석열 파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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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과 혐오를 넘어 평등으로” 범시민대행진으로 이어졌습니다. 3.8세계여성의날 기념 시민참여부스에서 난장을!

    43개 시민참여 부스는 동십자각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길게 두 줄로 자리했
    습니다. 행사 안내 부스에서 “페미니스트가 민주주의를 구한다” 깃발을 받
    아 머리에 두건으로도 쓰고 깃발에도 묶었습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노회찬
    재단은 장미꽃 한 송이를 나누며 여성의 날을 축하했고요. 씩씩하게 긴 싸
    움을 버텨내는 동덕여대 학생들에게, 페미니스트 간호사들에게 응원을 보냈
    습니다. “교수님 저 페미예요”라 말하는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멋집니다. 모
    두의 결혼을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해 싸우
    고 페미니스트들과 연대합니다. “Abortion is human right” 맞습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부스 앞이 가장 유쾌한 난장이었어요. 뿌셔뿌셔
    과자 아시나요? 힘차게 뿌셔버리라고 한 봉지씩 주더군요. 활동가의 “사이
    버성폭력 뿌셔!”라는 구호에 맞춰 저는 과자를 든 오른손으로 높이 들고 오
    른쪽 무릎을 꺾어 올리며 힘차게 내리쳤죠. 제 손과 무릎 사이에 낀 뿌셔뿌
    셔 과자 봉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가루로 부서졌답니다. 함께 한 딸은 얼
    마나 세게 뿌셔버렸는지 봉지가 터지고 과자 입자가 쏟아졌지 뭡니까. 가장
    뿌셔버리고 싶은 가부장제와 여성혐오를 그렇게 뿌셔버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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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3.8 여성노동자대회: 차별없는 일터, 평등한 미래!
    해마다 그랬듯 한국여성대회 기념식에 앞서 12시 반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선 3.8여성노동자대회가 열렸습니다. 전국에서 1천여명 여성노동자들이 모
    여 차별없는 일터와 평등한 미래를 위해 발언하고 노래하는 자리죠. 여성의
    날은 1908년 뉴욕 루트커스 광장 여성노동자대회에서 시작되었잖아요. 작
    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노동자들을 추모하고 저임금·장시간 노동 등 노
    동환경 개선과 참정권을 요구하고 시위하던 117년 전과 오늘 한국의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전국 여성노동연대회의 소속 여성노동자들을 대표해 정연실 한국노총 상임
    부위원장, 최순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 권수정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대회사를 했습니다. 차별없는 일터, 평등한 미래 실현을 위한 5가지 의제로
    현장 발언이 있었습니다. 1 성평등 노동을 실현하는 정부, 2 돌봄중심사
    회로의 전환, 3 성별 임금 격차 없는 일터, 4 모두에게 평등한 일터, 5
    성폭력 없는 안전한 일터. 여성노동자들은 동덕여대의 채용성차별, 학교 비
    정규직의 최저임금과 성별임금격차, 돌봄문제, 고용평등상담실 폐지, 프리랜
    서 노동자 권익, 승진과 보상 차별(유리천장)도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차별없는 일터, 평등한 미래!” 5대 요구안을 발표했습니다. 하
    나, 정부는 성평등 노동 정책 수립하고 집행력 강화하라! 하나, 돌봄 공공
    성 강화하여 돌봄중심 사회로 전환하라! 하나, 성별임금격차 해소하라! 하
    나, 차별금지법 제정하고 모두에게 평등한 일터 만들어라! 하나, 성폭력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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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안전한 일터 만들어라! 그리곤 모두 동십자각까지 행진해서 기념식에
    참여했습니다.

    올해의 여성운동상, 성평등 디딤돌, 성평등 걸림돌
    한국여성대회의 꽃은 우리 사회의 성평등과 여성운동 발전에 공헌한 분들
    을 위한 시상식이었습니다. 올해의 여성운동상은 56년 만의 미투, ‘정당방

    -여성노동자대회 현장 발언 일부 소개-

    * 최저임금, 성별임금격차 현장 발언: 진경희(전국여성노조 서울지부 학교비정규직)
    교사와 공무원들은 매년 기본급이 올라가고 이에 따라 각종 수당들이 따라 올라가는데 학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10년, 20년, 30년을 근무해도 기본급이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있습
    니다.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일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보다 그 중요도와 가치
    면에서 뒤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생명과 연결되기 때문에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엄마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이렇게 임금을 차별하고
    저평가하는 것은 정말 치욕스럽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28년 동안 OECD에서 성별 임금 격차
    1위라는 오명의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 돌봄 현장 발언: 최영미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
    2014년 5,210원, 2024년 9,860원, 월급으로 210만원. 바로 10년을 열심히 일해 온 베테랑 돌
    봄노동자들의 월 급여입니다. 성과급? 교통비? 식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집에서 저 집으
    로 이동하다 식사 시간이 닥치면 밥을 먹을 장소도 마땅치 않습니다. 월급제가 아니다 보니
    고객 주문이 취소되면 그 시간만큼 급여가 깎입니다. 그런데도 누구를 막론하고 ‘좋은 서비
    스’, ‘질 높은 서비스’를 요구합니다. 밑바닥 임금을 받고 ‘아줌마’ 소리를 들어가며 어떻게 질
    높은 서비스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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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재심 개시결정으로 60년 만의 정의를 이끈 최말자님과 국내 최초로 여
    성혐오를 범행동기로 인정한 판례를 이끈 온지구 님이 받았죠. 성평등 디딤
    돌 수상자는 외국 먹튀 자본 착취와 성별화된 노동에 맞선 민주노총 박정
    혜 소현숙 님들,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판결 이끌어낸
    김용민 소성욱 부부와 변호인단 그리고 공교육 속에 구조화된 젠더폭력에
    맞선 지혜복 교사였습니다.

    올해의 여성인권상 수상자 최말자님은 1964년 자신을 강간하려는 가해자에
    저항하다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상해를 입혔습니다.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는 검찰과 법원에 의해 ‘피의자’가 되어 6개월여 구속되어 수사와 재판을
    받고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습니다. 가해자는 고작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죠. 최말자 님은 60세가 넘어 방송대학에서 공부하며
    여성의 삶과 역사, 인권에 대한 수업을 듣게 됩니다. 미투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를 찾게 되고 2020년 5월 6일 사건
    발생 56년 만에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을 청구합니
    다. “내 사건을 바로잡아야 후배 여성들에게도 억울한 일이 없겠다”라며 투
    쟁한 결과 2024년 12월 18일, 대법원이 재심 청구를 기각한 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 환송했습니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은” 용기로 반성폭력 운동
    의 큰 이정표를 세운 최말자 님. 노란 한복 차림이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
    다. 온지구 님은 일명 진주 편의점 여성혐오 폭행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너는 페미니스트니까 맞아도 된다”라며 폭행을 하고 기물을

    - 6 -

    부수고 난동을 부렸죠. 사건 직후 온지구 님은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머리가 짧았을 뿐인데 불운한 일에 휘말렸다고 생각했다는데요. 그런데 숏
    컷 인증 릴레이로 연대하는 사람들이 이어졌습니다. 서울에서 다른 지역에
    서 연대로 함께 하는 여성들을 통해 그는 이게 여성의 일임을 깨닫고 싸우
    기로 하는데요. 마침내 2024년 10월 15일 국내 최초로 “가해자의 범행 동
    기는 여성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라는 판시와 함께 ‘여성혐오’를 비난할
    만한 동기로 인정하는 판결을 이끌어낸 후 꾸준히 연대하고 있습니다.

    제40회 한국여성대회 <3.8여성선언>
    한국여성대회에서 다양한 여성들이 함께 3.8여성선언을 돌아가며 낭독했습
    니다. “우리들은 시대를 이어 페미니스트이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구할 것이
    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해 같은 문장으로 끝나는 글이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도 현재도 여성들은 가장 먼저 투쟁해 왔고 여성들의 연대는 시대와 세대
    를 이어 연결되어왔음을 천명했습니다. “여성과 소수자가 일상에서 차별과
    폭력을 당하지 않고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요구하며 여성
    선언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성별, 성적 지향, 연령, 지역, 국적, 인종, 장애 여부
    등의 조건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시민의 기본권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요
    구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모든 차별과 폭력, 부정의에 적극적으로 대항하
    며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기반을 구축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성평

    -기억하자 올해의 성평등 걸림돌들-

    * 여성혐오를 산업화하고 성차별 통념 강화하는 유뷰브 사이버렉카. * 화성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를 일으킨 대표이사 박순관. * 국가에 의한 여성착취 역사 부정하고 삭제하려는 박형덕 동두천 시장. * 두 번의 성폭력범죄에도 여전히 의정활동 중인 송활섭 시의원과 그의 제명안을 부결한 대
    전광역시의회 14명의 의원들. * 성평등 도서를 폐기하게 하고, 학생인권조례 폐지 추진한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 혐오와 차별, 분열 조장 정치에 앞장선 경상남도 창원특례시의회. * 반여성 반인권적 망언과 태도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사명을 무너뜨린 김용원 상임위원, 이충
    상 전 상임위원. *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 쳬계 제시 못하는 교육부.

    - 7 -

    등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사회에서 배제되고 차별받아 온 모든 소수자들과 손을
    잡고 더욱 넓게 연결될 것이며, 더욱 단단하게 연대할 것이다. 우리는 시대
    를 이어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구할 것이다.”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40회 한국여성대회 스케치
    꿀벌

    조회수 91

    2025-03-12
  • [기획] 한 달 교통비가 만원이라면? - 경기도의 청소년과 도민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이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다정한 교통 복지의 숲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공익웹진

    매달 지갑을 짓누르는 교통비의 무게, 그리고 이동할 권리

    매일 아침 학교로, 일터로, 혹은 지역 사회의 공익활동 현장으로 향하기 위해 지갑을 열 때마다 치솟는 대중교통 요금은 누구나 뼈저리게 느끼는 커다란 부담이다. 특히 멀리 떨어진 학교를 오가는 청소년들이나 변변한 소득 없이 발품을 팔아야 하는 청년, 그리고 이동의 제약 속에 살아가는 도민들에게 교통비는 단순한 지출을 넘어 세상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되곤 한다.

    "만약 한 달 교통비가 단돈 '만 원'이라면, 우리의 일상과 삶의 풍경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이동의 자유를 특권이 아닌 모든 도민의 보편적 권리로 바라보고, 경기도민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다정한 교통 정책의 궤적을 깊이 조명한다.

    ‘한 달 교통비 만원’이라는 상상이 품은 3가지 핵심 가치와 비전

    1. 경제적 부담의 장벽을 허물고 보장하는 진정한 ‘이동의 권리’

      • 소득과 주거 지역의 격차로 인해 누군가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불합리한 구조를 깨고, 모든 도민이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이동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 실현.

      • "교통은 생존이자 곧 삶의 기본 조건"이라는 공공의 책임 확립.

    2. 청소년과 청년들의 경제적 숨통을 틔워주는 든든한 일상의 디딤돌

      •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교통비를 획기적으로 낮춤으로써,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학업과 자립, 그리고 문화·공익활동에 더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기회 제공.

      • "미래를 살아갈 세대들의 날개에 힘을 실어주는" 따뜻한 정책적 환대.

    3. 탄소 배출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녹색 교통으로 나아가는 마중물

      • 승용차 중심의 이동에서 벗어나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임으로써, 기후위기 시대에 발맞추어 경기도 전역의 탄소 배출을 줄이고 친환경 생태계를 구축하는 초록빛 전환.

      • "내가 타는 대중교통 한 편이 곧 지구를 살리는 다정한 발걸음"이라는 자부심.

    현장의 온기로 채워졌던 뜨거웠던 목소리와 교감의 시간들

    도내 교통 취약계층과 청년, 활동가들이 모여 이동권의 현실을 나누고 대안을 모색했던 소통의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실효성 있는 정책을 바라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 채웠다.

    • 이동의 어려움을 겪는 도민들의 진솔한 일상 나눔 세션: "아르바이트비의 상당 부분이 교통비로 나가서 멀리 있는 활동 현장에 가고 싶어도 엄두를 못 낼 때가 많았습니다. 교통비 부담이 줄어든다면 정말 마음껏 세상을 누비고 싶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도민들의 뭉클한 순간들.

    • 경기도형 교통 복지 확대를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청소년과 청년뿐만 아니라 대중교통 소외 지역의 어르신들까지 아우르는 파격적인 '만원 교통 패스'를 도입하자", "지자체와 도민이 함께 만드는 친환경 이동 수단 네트워크를 꾸리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의 지갑이 가볍고 이동의 길이 멀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을 잇는 다정한 교통 복지의 손길이 닿는다면 모든 도민이 차별 없이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이 반드시 올 것"이라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손길로 그려가는 경기도의 찬란한 내일

    세상을 바꾸고 진정한 복지 공동체의 완성을 이루는 위대한 힘은 책상 위에서 계산되는 효율성의 지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겪는 이동의 서러움을 먼저 헤아리고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평범한 이들의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연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모든 도민의 발걸음에 날개를 달아주고 경기도 구석구석에 평등한 이동의 숲을 일구어가는 공익활동가들과 도민들. 경기도 곳곳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연대의 온기들이,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기도의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한 달 교통비가 만원이라면?
    생강

    조회수 7411

    2023-06-28
  • 작성자 학생지원팀 조회수 336 등록일 2022.06.08

    경기도에서 [대학생 공익활동 활성화]사업 참여자를 다음과 같이 모집합니다.

    1. 신청기간: 2022.6.2.(목)~ 6.24.(금) 18:00

    2. 신청 대상: 공익활동 프르고램 참여 희망 경기도내 대학 및 대학생 동아리

    3. 사업비: 130백만원

    4. 주요내용: 5대 핵심가치(복치, 교육, 환경, 건강, 예술) 사회공익활동 추진

    붙임 1. 사업설명 및 운영 지침 1부.

    2. 포스터 1부. 끝.

    2022 대학생 공익활동 활성화 사업 참여 대학(생) 모집
    라라

    조회수 5199

    2022-05-11
  • 여러분은 내가 사는 동네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갖고 계신가요? 동네에 큰 애정을 가지고 나의 삶의 터전, 나의 동네를 되살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마을기업 우리동네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우리가치떡을 취재하고 왔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소개하기에 앞서, 마을기업이 무엇인지부터 소개해야겠죠? ‘마을기업은 행정안전부의 사회적경제 정책 중 하나로, 지역주민이 지역자원을 활용한 수익사업을 통해 공동의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여 지역공동체 이익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설립·운영하는 마을 단위 기업입니다. ( 참고자료 2022년 마을기업 모집 )

     

    마을기업이 될 수 있는 대상은 마을기업에 대한 전문 및 인문 교육을 이수하고 도내 소재한 법인인 동시에, 마을 4대요건 공동체성,공공성,지역성,기업성을 충족하는 사업 계획이 있는 기업입니다. 신규 마을기업으로 선정되면 5천만원, 예비 마을기업으로 선정되면 1~2천만원의 사업비와 컨설팅, 홍보 등의 상당한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을기업에는 주민이 주체적으로 지역의 취약계층을 돌보는 커뮤니티케어형,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는 도시재생형 등이 있습니다. 이번 기사에서 제가 소개하고자하는 마을기업의 유형은 후자입니다. 참고로 도시재생형 마을기업은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에서 출발했답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있는 수원과는 다소 먼 경기도 북부 지역, 의정부시의 도시재생형 마을기업 우리동네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우리가치떡은 의정부 경전철 흥선역에서 도보 6분 거리에 위치해있습니다.

     

     

    우리가치떡살기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설립한 마을기업인 우리동네협동조합이 운영합니다.

     

     

     

     

    경기미를 사용하여 우리 쌀 소비를 늘리고 바른 먹거리 정착을 위해 힘쓰고 있는 우리가치떡은 의정부시의 대표 마을기업입니다. 떡집 외관만을 보아도 마을기업임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붙어있습니다.

     

     

    넉넉한 내부 공간은 마을 주민들, 마을 공동체의 화합 및 소통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마을소모임, 주민모임을 하고 사회적 경제 견학을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손님들이 편하게 떡을 구경할 수 있도록 매대에 당일 생산한 떡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떡순이인 저는 결국 윤기나는 떡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결국 감자떡을 주워들어 바로 계산했어요.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인지 너무나 맛있었답니다.

    우리가치떡 사무국장님과의 인터뷰는 약 30분정도 진행됐습니다.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마을기업과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어떠한 공익활동을 하는지 등 여러 유익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참고로 우리가치떡 사무국장님은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자문위원이시기도 합니다. 저희와도 연관있는 가게라 더욱 애정이 가는 곳이었습니다.

     

    [인터뷰]

    Q. 우리동네협동조합과 마을기업에 대해 소개부탁드립니다.

    먼저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기업체를 만들어 경제활동을 통한 수익금으로 지역 공헌사업과 공익활동을 하는 집단동업을 말합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일반 기업과 달리 협동조합은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이 큰 차이점입니다. 주민들이 직접 조직을 만들어서 오래된 주택단지와 마을을 정부의 지원을 하에 직접 계획하여 수리, 환경미화, 개발 등을 실행하는 걸 도시재생이라고 해요. 정부가 뉴타운 싹쓸이 개발방식으로 지역을 개발하다가 주민들의 저항과 여러 한계 상황에 부딪혀 도시재생사업으로 많이 전환했어요. 우리가 위치한 흥선마을도 약 3년 전 도시재생 대상지로 선정이 되었고, 그렇기에 도시재생형 마을기업으로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20151월에 설립된 우리동네협동조합은 사회적 경제라는 넓은 의미에서의 경제적 공익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안전하고 바른 먹거리를 정착시켜 친환경 로컬푸드를 활성화하고 지역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골목경제를 활성화하고 마을소통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며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흥선마을의 도시재생을 지원하는 마을기업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네요.

     

    Q. 마을기업으로서 어떤 도시재생 사업을 하셨나요?

    우리동네협동조합은 크게 세 분야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치떡카페를 운영합니다. ’우리가치떡은 기본적으로 연천의 무농약쌀 등 지역 친환경 로컬푸드 생산물로 떡을 만듭니다. 무농약 농업 농민들과 상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둘째, 마을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합니다. 도시재생 흥선마을 커뮤니티를 포함하여 마을축제, 마을 골목장터 등을 운영합니다. 또한,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교육 문화사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셋째, 먹거리 공헌사업을 합니다. 우리 지역의 취약계층과 공익활동가분들께 먹거리를 지원합니다. 마을장독대 사업, 무상급식과 친환경급식 도입 및 전파에도 참여하는 등 경기 북부지역에서 먹거리 사업을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먹거리 네트워크를 운영해서 공익활동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업이 우리의 핵심적인 도시재생사업이자 공익활동입니다.

     

    Q. 마을기업의 좋은 점과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이 있으신가요?

    마을기업이 되면 공신력이 생기고 국가가 예산을 지원해준다는 큰 장점이 있어요. 다만 활발하게 활동하는 마을기업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창업에 대한 지원 및 교육은 많지만 그 후 유지하고 살리는 방안에 대한 지원은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든요. 또한,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 등의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 역시 아쉽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제3의 경제인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협동조합 육성을 위해서는 인프라·인력이 체계적으로 필요함에도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관심이 많이 부족합니다. 대부분의 지원 프로그램은 항상 창업교육이 대부분이기에 이미 만들어진 기업을 유지하고 살리는 방안에 대한 지원은 매우 부족합니다. 가시적 성과나 숫자에 집중하는 것 대신 사회적 경제를 살릴 의지가 필요해보여요.

     

    Q. 마을기업이 되기 위한 조건이 있을까요?

    마을기업으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계획서를 내야합니다. 조직이 기업을 운영해서 마을 주민의 일자리 혹은 다른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지, 그 지역의 고유한 자원으로 주민과 함께 마을의 공적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가 마을기업 선정의 판단기준입니다. 한마디로 지역공동체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창출하는, 마을에 가치를 만드는 공헌 활동이 필요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경기도민은 출퇴근시간이 엄청나요. 그렇기에 내가 사는 곳에 큰 관심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일자리를 스스로 창출해서 더 많은 주민들이 마을 내에서 일하도록 하는 게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에요. 그래서 저는 마을기업의 핵심이 그 지역 특산물을 이용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을기업이 활성화되면 중앙집중화된 경제가 해소될 수 있어요. 또한, 마을기업은 그 지역의 문제를 가장 빨리 알아챌 수 있습니다. 학교가 문을 닫자 취약계층의 끼니 문제가 발생했을 때 흥선마을 먹거리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로컬매장의 음식으로 만든 식사를 신속하게 지원이 가능했던 것처럼요. 이러한 과정은 마을 내에서 자원연계가 되는, 중앙정부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살고있는 마을을 들여다보고 그곳의 경제활동의 주체가 되는 게 주민자치이자 지방자치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는 지역의 마을기업과 협동조합의 공익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세요. 감사합니다.

     

     

    [마을기업 신청하기]

    마을기업은 매년 후반기(10) 즈음부터 다음 해의 마을기업 신청을 받기 시작하여 여러 심사를 거친 후 2월 즈음 최종 선정합니다.

     

     

    마을기업의 신청 대상은 설립 전 교육을 이수하고 신청 접수일 기준 도내에 소재지를 둔 법인입니다. 총 예비, 1회차(신규), 2회차(재지정), 3회차(고도화), 재기, 청년 총 5종류의 마을기업을 선정합니다. 1회차, 2회차 마을기업이 되기 위해서 각각 입문(7시간), 전문(4시간) 교육을 2년 이내로 필수적으로 이수해야합니다. 또한, 예비 마을기업은 2년 이내에 입문(7시간) 교육을 이수한 경우, 3회차는 1년 이내에 전문(4시간) 교육을 이수한 경우 가점 3점을 받습니다. 입문(7시간) 교육과 전문(4시간) 교육은 도 심사 전에 이루어지니 놓치지 않게 주의하세요! 또한, 사업계획이 공동체성, 공공성, 지역성, 기업성이라는 마을기업의 4대 기본원칙을 충족하는지도 심사 대상이니 사업계획서 작성 시 유의하셔야합니다. 마을기업이 되면 최대 5천만원의 예산 지원과 컨설팅, 홍보 등의 경영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됩니다. 올해의 마을기업 신청은 이미 마감이지만 올해 말에 2023년 마을기업을 공모할 것이니 그때 잊지말고 신청해주세요!

     

    내가 사는 지역을 되살리는 마을기업. 마을기업이 품고있는 가치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 글을 읽은 바로 지금, 내가 사는 지역에는 어떠한 마을기업이 있는지 검색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여러 사람의 관심이 모여 마을기업이 활성화되고, 그러한 마을기업이 모여 더욱 살기 좋은 동네가 됩니다. 참고로 도시재생사업이 끝난 이후에도 도시재생이 지속될 수 있도록 마을관리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이어나간다고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 꾸준히 지속되기 위해서는 주민의 관심이 필수적입니다. 동네 마을기업을 방문해서 지역 특산품을 이용한 상품을 만나보는 것. 이번 주말의 활동으로 완전 추천합니다! 매우 알찬 주말의 활동이 될 것이라 확신하며 이번 글을 마치겠습니다.

     

     

     

    동네에서 일하며 동네를 살리는 마을기업-우리동네협동조합 취재
    라라

    조회수 509

    202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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