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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웹진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부천 보육교사의 비극과 ‘쉴 권리’

    젊은 20대 돌봄 노동자는 독감 확진 후에도 출근했다. 그리고 사망했다. 경기도 부천, 한 사립유치원 교사에게 벌어진 일이다. 그는 1월 27일 B형 독감 확진을 받고도 사흘간 근무한 후 1월 30일 오후 조퇴했다. 그 후 31일에 입원한 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2월 14일에 20대 돌봄 노동자는 사망했다. 사인은 B형 독감으로 인한 연쇄 구균 독성쇼크 증후군과 패혈성 쇼크로 알려졌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황당하고 원망스럽다. 밥 먹고 살려고 일하는 건데, 아픈 몸을 제때 돌보지 못하고 출근해야 하는 상황은 모순적이다. 일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걸까? 인간은 목적 그 자체여야 한다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파본 노동자라면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회사 업무에 차질이 생길 때, 회사에 눈치가 보였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출근을 못 한 만큼 소득이 감소할 것이라는 걱정, 나를 대신해 업무를 떠맡을 동료에 대한 미안함, 해고라는 두려움. 이 셋 중 하나 이상을 경험한다. 

    병가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의무 사항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업무와 관련없는 질병이나 부상은 무급으로 허용되나, 회사 규정에 따라 유급으로 처리할 수도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소득 감소에 따른 생계유지 어려움을 예상해 아픈 몸을 일으켜 회사로 출근한다. 카드값과 월세, 자녀 학원비, 부모 요양비 등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술이나 입원 등으로 출근조차 하지 못하면 소득 감소로 인한 타격은 고스란히 노동자 개인의 몫이 된다. 비상금 대출을 알아보거나 지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아프면 쉴 권리 보장 3법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5년 9월, 49개 시민사회노동단체가 모여 아프면 쉴 권리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을 출범했다. 공동행동의 주된 목적은 제대로 된 상병수당 제도화의 실현이다. 공동행동은 2024년 7월, 이수진 의원(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아프면 쉴 권리 보장 3법' 발의 기자회견을 했는데, 3법이라고 하면 「국민건강보험법」,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개정을 의미한다.

    개정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건강보험 가입자나 피부양자가 질병 또는 부상으로 소득에 손실이 있는 경우 상병급여를 지급하고, 지급액을 최저임금 이상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상병급여(또는 상병수당)란 업무 외 질병·부상으로 일을 못 할 때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2022년부터 시범 사업을 운영하였으며 2025년 하반기부터 정식으로 도입될 예정이었으나 2027년으로 연기되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질병휴가를 연간 60일 범위에서 유급으로 보장하고, 평균임금 해당 금액을 지급하도록 하되 국가가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근로자에게 질병휴가급여를 직접 지원하여 사용자의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국제노동기구(ILO)는 '사회보장 최저기준에 관한 조약'을 통해 유급질병휴가를 법률로 보장하도록 각 국가에 권고해왔으나 우리나라는 이를 보편적 공적 제도로 도입하지 않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은 업무상 재해 인정과 산재 요양급여 결정하기 전에 「국민건강보험법」상 상병급여를 노동자에게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산재 요양급여 결정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아프면 쉴 권리 보장 3법’은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노동자가 소득 감소라는 생계 위협을 겪지 않을 수 있도록 보호한다. 개정안을 읽으면서 필자에겐, “아프면 걱정하지 말고 쉬어라. 소득을 유지할 수 있게 하겠다.”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이수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2024년 11월 14일 상임위원회에 처음 법안이 소개되었고 소위원회로 넘어갔으나, 2026년 현재까지 계류 중이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쉬겠다” 말할 수 있는 환경부터 보장돼야

    공동행동 출범식에서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이 “우선 쉬겠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1고 말한 것처럼, ‘아프면 쉴 권리’는 월급 보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유급병가나 유급휴가가 있더라도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 인력이 없어, 나의 휴식이 곧 동료의 독박 노동으로 이어지는 환경에 놓인 노동자들이다. 인력 공백을 개별 노동자의 희생으로 메우는 구조는 노동자를 제때 쉴 수 없게 한다. 내가 휴식을 가질 때, 내 업무로 인해 옆자리 동료가 야근해야 하는 상황인 게 눈앞에 뻔히 펼쳐진다면 무리해서라도 출근하게 된다. 동료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전라북도 보육교사 근로환경 실태 및 지원방안 연구」(2018)2에 따르면 어린이집 내 휴가 사용에 대한 분위기는 자유롭지 않으며(63.9%) 그 이유로는 '동료가 힘들어진다'(34.9%)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이미 1인분의 업무를 하고 있는 동료에게 전가할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만약 모든 직원이 평소 70~90%의 업무량만 맡는다면 어떨까? 소프트웨어 개발과 프로젝트 매니저로 20년 넘는 경력을 가진 톰 디마르코는 그의 저서『SLACK』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100% 가동률을 목표로 하는 조직은 역설적으로 가장 비효율적인 조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직원이 1인분의 업무량을 갖고 있다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을 때 시스템이 마비되거나 동료들의 과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조직이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남은 자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돌봄 종사자는, 자신의 업무 공백으로 인해 동료뿐만 아니라 돌봄의 대상 또한 희생될 처지에 놓인다. 「경상남도 사회서비스 종사자 처우개선 연구-돌봄노동자를 중심으로」(2020)3를 살펴보면, 연차유급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기관 이용자들에 대한 서비스 공백에 대한 우려’(28.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보육교사 역시 “보육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15일간의 유급휴가를 여름과 방학기간에 몰아 쓸 수 있을 뿐 개인의 사정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려운 구조”가 견고하다는 것을 알 수있다. 

    이러한 노동 환경에서 노동자는 아프면 안 된다. 상상해 보자.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온몸이 아프다. 출근은커녕 몸도 일으키기 어렵다. 당신은 직장 상사에게 뭐라고 말할 것인가? “안녕하세요. 부장님. 제가 몸이 너무 아파서요. 죄송하지만 오늘 출근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다. 아픈 것은 잘못이 된다. 

    질병이나 부상이 있는 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비단 노동 환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쉽게 아픈 몸을 지워버린다. 건강하고 효율적인 몸만을 기본값으로 여기며, 그렇지 않을 때는 개인 관리의 부족으로 떠넘긴다. 건강은 선이고, 질병이나 부상은 악이 된다. 그러나, 질병은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노동 현장이 질병을 포용하기 위해선 사회가 먼저 질병이 있는 몸도 시민으로 인정하고 사회 정책과 제도를 수립하여야 한다. 그리하였을 때, 노동 현장에서도 안 아픈 상태로 복귀할 때까지만 유예해 주는 방식이 아닌 아픈 몸을 가친 채로도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B형 독감 판정 후에, 20대 교사가 부담 없이 원장과 동료에게 “독감에 걸렸습니다. 병가를 내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원장과 동료는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고 오세요”는 진심 어린 걱정과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지 않기를 소망한다.

    1 “‘아프면 쉴 권리 공동행동’ 출범... 상병수당 제도화 촉구”, <오마이뉴스>, 2025.09.10., (접속일: 2026.03.28.)
    2 이주연, 「전라북도 보육교사 근로환경 실태 및 지원방안 연구」, 정책연구 2018-11, 전북연구원, 2018,  여성정책연구소, 158쪽
    3 임채영, 염동문, 박해긍, 「경상남도 사회서비스 종사자 처우개선 연구∥-돌봄노동자 중심으로」, 연구보고서 2020-2, 경상남도사회서비스원, 81쪽

     


    아픈 몸은 죄가 아니다 : 부천 보육교사의 비극과 ‘쉴 권리’
    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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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31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두루미와 함께 머문 겨울, 공존을 배우는 시간

    올겨울 저는 연천 왕징면 북삼리에 있는 나룻배마을을 찾았습니다. 두루미가 머문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시간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연천의 겨울 논은 조용했습니다. 수확이 끝난 들판에는 사람의 발길도 드물고,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만 길게 남았습니다. 비어 있는 풍경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에 어느 순간 흰 점들이 하나둘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두루미였습니다. 멀리서 보면 정지한 풍경처럼 보이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다른 움직임이 보입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고, 천천히 발을 옮기고, 서로 간격을 유지한 채 논 위를 걷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람도 저절로 속도를 늦추게 됩니다.

    처음에는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싶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더 선명하게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누가 막은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그 자리에서 멈춰 서게 됐습니다. 두루미가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피는 순간, 사람도 함께 숨을 죽이게 됩니다. 아무도 “가까이 가지 마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 공간에는 이미 지켜야 할 거리와 태도가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두루미를 보는 일이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생태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더 가까이 보는 일이 아니라, 그 존재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머무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두루미는 사람의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소리, 빠른 걸음, 가까이 다가오는 발걸음 하나에도 날아오르거나 자리를 옮기고는 합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두루미들은 연천을 더 이상 안전한 장소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의 행동은 단순한 예절을 넘어 서식 환경을 지키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두루미 축제가 열리는 경기도 연천 나룻배마을

     

    지역의 생태를 보존한다는 것의 의미 

    연천 나룻배마을에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약 4개월 동안 두루미가 머물렀고, 올해는 약 1,000마리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 시기 동안 약 2,000명의 방문객도 이곳을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풍경은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관광지의 모습과는 조금 다릅니다. 사람들은 두루미를 ‘보러 온다’기보다, 조용히 기다리고 같은 공간 안에 잠시 머뭅니다. 누군가는 카메라를 들고 한참을 서 있고, 누군가는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없이 논을 바라봅니다. 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바람 소리와 두루미가 날아오를 때 스치는 깃털 소리만 공간을 채웁니다.

    이 풍경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두루미가 머물 수 있도록 논을 관리하고, 먹이를 준비하고, 사람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도록 살피는 손길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사는 아니지만, 이런 보이지 않는 돌봄이 생태 현장의 질서를 만듭니다. 성과를 내세우기 위한 일이라기보다, 잠시 이곳을 지나는 생명이 안전하게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 두는 일에 가깝습니다.

    이 지점에서 두루미가 머무는 겨울 논은 단순한 자연 풍경을 넘어섭니다. 이곳은 사람과 야생이 어떤 거리를 두고 함께 존재할 수 있는지 묻는 현장이 됩니다. 우리는 자연을 흔히 더 가까이 보고, 더 많이 기록하고, 더 선명하게 남기는 대상으로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오히려 덜 다가가는 태도, 오래 기다리는 태도, 조용히 물러서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보는 방식이 달라질 때 관계도 달라진다는 것을 이 겨울 논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생물다양성은 거창한 말처럼 들릴 때가 많지만, 현장에서는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생명이 이곳을 안전하다고 느끼고 다시 찾아오는가, 그 조건을 사람이 얼마나 해치지 않고 지켜낼 수 있는가의 문제처럼 보입니다. 두루미가 아무 곳에나 내려앉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마을이 아직 자연과 연결된 조건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그 조건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냅니다. 지역의 생태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용 방식과 태도 속에서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DMZ 접경지에서 겨울 철새 두루미를 만날 수 있다 


    두루미가 인간에게 남기고 간 질문 

    그래서 이곳에서의 경험은 두루미를 가까이서 본 기억보다, 조용히 기다렸던 시간으로 더 오래 남습니다. 조금 물러서 있었던 거리, 서로를 의식하며 조심했던 태도, 무엇인가를 하기보다 함부로 하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감각이 기억에 남습니다. 자연을 ‘이용하는 법’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던 셈입니다.

    내년에는 평일 방문도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더 많은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라기보다, 이곳의 시간을 조금 더 천천히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향이라고 합니다. 방문객 수는 약 5,000명 정도 예상한다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이곳을 어떤 태도로 만나고 돌아가느냐일 것입니다. 많이 보는 것보다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끝나면 두루미는 떠나고 마을은 다시 조용해집니다. 하지만 이곳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에게 나룻배마을은 이전과 같은 장소로 남지 않습니다. 두루미가 머물다 간 자리에는 질문이 남기 때문입니다.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줄여야 할까. 생태를 지킨다는 말은 얼마나 거창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답은 멀리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조금 덜 가까이 가는 일, 조금 더 기다리는 일, 조금 더 조용히 머무는 일. 공존은 특별한 선언보다 이런 작은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룻배마을의 겨울은 그렇게 두루미를 보는 시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 되고 있었습니다.
     


    두루미는 인간에게 자연을 이용하는 법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존재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두루미가 머무는 연천 나룻배마을, 공존의 온도를 높이다
    지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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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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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가 고령화 시대로 본격 진입함에 따라, 고령 운전자의 교통안전을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다룰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운전면허 자진 반납을 권고하는 방식에서 나아가, 고령자의 이동권 보장과 생계유지라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고려한 입체적인 정책 접근이 요구됩니다. 고령자 운전 사고는 단순한 운전 미숙이나 차량 고장 때문이 아니라, 나이에 따른 신체 기능 저하, 인지력 감소, 시력 약화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신체적 변화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률적인 연령 기준만으로 운전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직업 선택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으며, 특히 생계를 위해 운전을 지속해야 하는 고령 운전자에게는 직접적인 생계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나이만을 기준으로 삼기보다, 정확한 운전 능력 평가를 통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합니다. 이는 고령자의 안전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와 전 세대가 공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교통 환경 조성의 필수 조건이기도 합니다.
     
     
    ● 고령 운전자 사고의 현황과 특성
     
    1. 고령자 교통사고는 지속 증가
    최근 5년간 통계를 살펴보면, 고령 운전자가 유발한 교통사고는 34.7% 증가한 반면, 65세 미만 운전자의 사망자 수는 오히려 17.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수치는 고령 운전이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교통안전 리스크로 대두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에 의한 사고는 단순한 접촉 사고를 넘어 사망 등 중대한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비율이 높아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고령 운전자의 전체 사고 발생 비율은 다른 연령대보다 낮을 수 있으나, 사고 1건당 사망자 수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 고령화가 계속될수록 그 위험도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2. 사망자 위험도 높음
    75세 이상의 후기 고령 운전자는 같은 유형의 사고에서도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2~3배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특히 교차로, 횡단보도, 이면 도로처럼 복잡한 상황 판단과 빠른 반응이 필요한 도로 환경에서는 사고 발생률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확률도 현저히 높아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교차로에서 발생한 사고의 경우, 70~74세의 중기 고령자는 사망 위험이 약 1.7배,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는 무려 2.9배까지 증가했고, 횡단보도에서도 각각 1.8배, 3.3배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수치는 고령 운전자가 특정 도로 환경에서 겪는 위험성이 젊은 운전자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며, 이에 따라 도로 설계와 정책 차원의 정밀한 개선책 마련이 병행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3. 인지능력과 신체 기능 저하
    고령 운전자의 인지 기능 저하와 신체적 능력 약화는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주요 요인으로 꼽힙니다. 일반 운전자와 비교했을 때, 고령자의 평균 반응 시간은 약 17% 이상 느리며, 특히 도심 내 돌발 상황에서는 반응 속도가 두 배 이상 지연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속도로에서도 17.4% 정도 반응이 늦어지는 경향이 확인되어, 급작스러운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에 더해 시력 저하, 시야 축소, 청력 감소, 관절의 경직 및 근육의 유연성 저하 등은 운전 중 주변 상황 인식과 제어 능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신체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는 단순 통계 수치를 넘는 구조적이고 반복적인 위험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고의 단순 발생 건수보다 사고의 성격, 심각도, 발생 장소, 운전자의 건강 상태 등 다각적인 요소를 종합 분석하여, 보다 정밀하고 현실성 있는 맞춤형 정책 수립이 필요합니다.
     
     
    ● 해외의 고령 운전자 관리 제도
     
    1. 미국
    미국은 고령 운전자와 관련된 교통안전 문제를 다층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관리하는 대표적 국가입니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그리고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 도로안전재단, 민간 전문 기관 등이 협력 체계를 구성하여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고령 운전자에게는 면허 갱신 주기를 3년 이내로 단축하고, 갱신 시 인지 기능과 신체 능력을 평가하는 검사를 시행하며, 일부 주에서는 도로 주행 시험까지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주에서는 70세 이상 고령자가 면허를 갱신하려면 의료 진단과 추가적인 도로 주행 평가를 통과해야 합니다.
    아울러 NHTSA는 ‘2012~2017 고령운전자 전략 계획’을 수립하여, 고령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장기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는 도로 설계 기준을 고령 운전자의 특성에 맞게 개선하는 인프라 중심의 안전 강화 방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AARP 고령운전자 안전 교육 프로그램’이나 ‘플로리다 고령운전자 가이드’와 같은 교육 콘텐츠를 통해, 고령자가 자신의 운전 능력을 점검하고 반응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입니다. 이러한 제도는 고령자의 운전 지속 여부를 보다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판단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2. 영국
    영국에서는 고령 운전자 교통안전 정책이 중앙정부보다는 지방정부와 민간단체의 주도 아래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로는 ‘SAGE(Safer Driving with Age)’ 프로그램이 있으며, 이는 글로스터셔 지역 자치단체에서 시행 중입니다. 해당 프로그램은 고령자 전문 상담과 함께 심리 및 신체 기능 평가, 그리고 실제 도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주행 훈련이 결합된 종합 관리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교육 프로그램인 ‘Drive Confident Scheme’은 운전 능력 저하로 인해 자신감을 잃은 고령 운전자들이 다시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실습 중심의 교육과정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 이론 교육에 그치지 않고, 실제 운전 상황에 맞춘 반복 훈련을 통해 안전운전 습관 형성에 중점을 둡니다.
    아울러, 영국의 고급운전자 협회(Institute of Advanced Motorists)는 전문 교관이 동승하여 고령 운전자와 함께 실제 도로 주행을 진행하면서, 부주의하거나 잘못된 운전 습관을 직접 지도하고 개선하는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고령자의 실질적 운전 능력을 강화하는 데 효과적인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3. 프랑스
    프랑스는 고령 운전자 관리에 있어 의료 기반 평가를 중심으로 한 정책 접근이 두드러집니다. 전국적으로 통일된 ‘고령 운전자용 의료지침서’를 개발하여, 일반의, 가정의, 신경과 전문의 등 다양한 의료 전문가들이 고령자의 운전 지속 가능성을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활용하고 있습니다. 해당 지침서는 운전자의 시력, 반응 속도, 인지력, 약물 복용 상태 등 신체적·정신적 건강 전반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필요시 도로 주행 가능성까지 의료진과 전문가가 함께 결정하게 됩니다.
    또한, 프랑스는 고령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 중인 농촌 지역의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도로 설계 개선, 신호 체계 보완, 속도 제한 강화 등 물리적 인프라 측면에서도 제도적 보완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고령자의 운전 능력을 단순히 연령으로 판단하지 않고, 의료적 진단, 실제 주행 평가, 교육 프로그램 등을 결합한 통합 시스템을 통해 사고를 줄이고 고령자의 이동권을 함께 보장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 모델은 우리나라가 현실적으로 도입 가능한 참고 사례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 우리나라의 고령 운전자 교통안전 대책 현황
     
    1. 3년 주기 적성검사 제도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3년마다 운전면허를 갱신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치매안심센터의 인지기능선별검사(CIST)와 도로교통공단이 주관하는 교통안전교육을 이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가 고령자의 실제 운전 능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인지검사는 문답형 간이평가 수준에 머무르고, 교육도 이론 중심의 강의 방식에 그쳐, 실제 주행 상황에서 필요한 판단력이나 반응 능력, 돌발 상황 대처 능력 등을 평가하기엔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입니다.
     
    2. 면허 반납 제도
    정부와 지자체는 고령자의 자발적 운전면허 반납을 장려하기 위해, 일정 금액이 충전된 교통카드, 지역화폐, 현금 등을 인센티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제도에도 불구하고 전국 평균 면허 반납률은 2%대에 머물고 있으며, 실효성은 매우 낮은 상황입니다. 그 이유로는 면허 반납 이후 겪게 되는 이동의 불편함이 가장 크게 꼽힙니다. 특히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농촌 및 중소도시 지역에서는 차량이 사실상 필수 이동 수단이기 때문에, 반납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반납 혜택이 일회성에 그치고 보편적이지 않아, 고령자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유인이 부족한 것도 낮은 반납률의 원인 중 하나입니다.
     
    3. 지역별 위험도 차이
    우리나라의 고령 운전자 사고 발생은 지역에 따라 큰 편차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경북, 경남, 전남 등 일부 지방에서는 후기 고령자의 교통사고 치사율이 수도권보다 최대 2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도로의 물리적 환경, 교통 인프라 수준, 보행자 안전 설계, 지역 내 차량 보급률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특히 도시 외곽이나 고령화 속도가 빠른 지역의 경우, 고령 운전자 수가 급증하는 반면, 도로 설계나 관리 체계는 그에 비해 미비한 상황이라 사고 위험이 상대적으로 더 높게 나타납니다. 따라서 지역 맞춤형 교통안전 정책과 인프라 보완, 그리고 ‘고령운전자 안전운전 증진 운동본부’와 같은 지역 단위의 조직적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 고령 운전자 교통안전 개선을 위한 정책 제언
     
    1. 교통 인프라 개선 및 기술 활용
    고령 운전자의 시야 확보와 반응시간 보완을 위해 교통 표지판의 글자를 확대하고, 가로수 정비 및 전방 신호등 설치, 야간 가로등 강화 등 교통 환경 개선이 필요합니다. 특히 사고 다발 지역인 이면 도로와 군도에는 노인보호구역처럼 30km/h 이하 속도 제한을 제도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별도의 법령 정비와 단속 체계도 마련되어야 합니다. 차량 안전기술로는 차선이탈 경고 장치, 전방 추돌 방지 장치, 자율주행 보조 기능 등을 저소득 고령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도록 정부의 구매 보조금 및 장착 비용 지원이 절실합니다.
     
    2. 운전 능력 검증 제도 개선
    기존의 인지검사와 이론 교육만으로는 고령자의 실제 운전 능력을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 가상현실(VR)을 포함한 실제 도로주행 기반 평가 시스템의 확대가 필요하며, 운전자의 능력에 따라 운전 시간, 노선, 지역 등을 제한하는 조건부 면허제도 도입이 요구됩니다. 프랑스처럼 의료진이 운전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전국 단위의 고령자 맞춤형 의료지침서를 도입하여 객관성과 일관성을 높이는 것도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3. 교육 및 자가 진단 기회 확대
    도로교통공단 또는 전문 교육기관을 통해 ‘운전 자신감 회복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음주 위험성을 체감할 수 있는 음주 가상 체험, 실제 법규 위반 사례 중심의 사례 기반 교육을 확대해야 합니다. 아울러 온라인 기반 자가 진단 시스템을 개발하여 고령자 스스로 자신의 운전 능력을 체크하고 반성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육 수강도 일정 연령 이상부터는 의무화하고, 교육 이수 여부를 면허 갱신에 반영해야 실효성이 담보될 수 있습니다.
     
    4. 지역 맞춤형 대응 체계 구축
    광역시·도 단위로 ‘고령운전자 교통안전센터’를 설립하여 지역 내 교통사고 다발지점에 대한 모니터링, 사고 유형 분석, 맞춤형 교육 제공 등을 추진해야 합니다. 시민참여형 교통안전 모니터링단 운영과 함께 지역 사회, 민간단체, 의료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민관 협력형 캠페인도 병행해야 합니다. 특히 재정이 부족한 지자체에는 중앙정부 차원의 재정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며, 교통 인프라 보완 예산, 교육 예산, 차량 안전장치 지원 예산 등이 포함되어야 지속 가능한 정책 실행이 가능합니다.
     
     
    고령 운전자의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사회적 과제입니다. 이는 고령자의 인지력과 신체 능력 저하로 인한 사고 위험성이라는 문제뿐 아니라, 여전히 많은 고령자가 일상생활과 생계를 위해 운전에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농촌 지역이나 소도시에서는 운전이 곧 생존 수단이기 때문에 단순히 면허 반납을 권고하거나 연령 기준으로 운전을 제한하는 방식은 실효성이 낮고, 오히려 노인의 사회적 고립과 생활불편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노인의 이동권과 생계유지, 그리고 교통안전이라는 상충할 수 있는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한 다층적이고 정교한 대책 마련이 필수적입니다. 선진국들의 조건부 면허제도, 의료 기반의 판단 시스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등의 사례를 참고하고, 국내 고령자의 사고 특성을 반영한 제도 정비, 교통 인프라 개선, 지역사회 기반의 예방 전략이 병행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고령자 교통안전 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노인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전 세대가 공존할 수 있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운전대를 놓지 못하는 노인들…당신의 부모일 수도 있습니다
    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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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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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길의 공기는 더 차가워졌습니다. 사람들의 어깨에는 하루의 무게가 내려앉아 있고, 도시는 저마다의 속도로 저녁을 향해 밀려갑니다. 같은 시각, 같은 길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일을 마무리하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루의 책장을 넘깁니다. 어떤 이는 산책길로 향하고, 어떤 이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단을 오른 뒤 비로소 숨을 내쉽니다.
     
    하지만 같은 저녁, 같은 도시 안에서도 누군가에게 이 시간은 하루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일의 시작이 됩니다. 이번 웹진은 바로 그 사람들, 우리가 도시에서 매일 만나지만 좀처럼 시선을 오래 두지 못하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 도시의 저녁이 끝나지 않는 사람들
    겨울 초입의 공기는 언제나 도시를 조금 더 느리게 만들지만, 그 느림 속에서 이상하게 더 바빠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몇 해 전부터 아파트 경비 인력 축소 논란과 과로 문제가 반복적으로 회자되었고, 그때마다 “이 도시의 밤을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러다 최근 비슷한 장면을 또다시 마주했습니다.
     
    첫눈 예보가 뜨던 어느 날, 지역 커뮤니티에는 밤샘 제설 준비에 대한 글이 연이어 올라왔습니다. “오늘 밤은 제설 때문에 대기입니다”, “구역이 넓어서 나눠 맡아야 한다네요” 같은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뒤에 이어질 긴 시간과 새벽의 추위가 함께 읽혔습니다.
     
     
    경비원 초소 내부. ⓒ연합뉴스 /
     
     
    이런 장면들이 겹쳐 보이기 시작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 우리가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은 누구의 손길로 유지되고 있을까?
     
    누군가는 도로 위의 눈을 먼저 치우고, 누군가는 엘리베이터를 점검하며 한밤중의 건물을 지킵니다. 도시가 당연하게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 ‘당연함’을 만드는 누군가의 시간과 노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남시, 연이은 강설에 밤샘 제설 작업 한파 속 공무원 1600명 투입 총력 대응 ⓒ경기타임스 /
     
     
    2. 보이지 않는 운영이 도시를 지탱한다
    경비 노동자의 업무는 단순히 ‘경비’가 아닙니다. 주차 관리, 쓰레기 분리 안내, 민원 응대까지 대부분의 단지에서 사실상 ‘종합 지원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겨울철 청소·제설 노동자는 어떨까요? 첫눈이 오면 우리는 설렘을 말하지만, 그 눈이 제대로 치워지지 않으면 도시 전체가 멈춥니다. 도로, 보행로, 지하철 출입구, 언덕길,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그 길에는 이미 새벽에 몇 차례 제설을 마친 누군가의 발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이들은 도시가 멈추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운영’을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정작 이들에게 돌아가는 건 제한된 휴게 공간, 외부 기온에 그대로 노출되는 작업 환경, 익숙함으로 채워진 업무 범위의 모호함이 대부분입니다. 문제는 개인의 태도가 아니라 구조의 지속 가능성에 있습니다. 노동 조건이 구조적으로 지속되지 않는다면, 도시 서비스 역시 지속될 수 없습니다.
     
     
    3. 경기도에서 보이는 변화의 조짐들
    다행히 곳곳에서 변화의 신호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크지 않아 보이지만 도시의 체질을 바꾸는 첫 단계들입니다.
     
    ① 청소노동자 휴게 공간 개선 - “진짜” 휴식이 가능한 공간
    경기도 여러 지자체에서는 난방기·냉방기 설치, 환기 시설 개선, 휴게실 접근성 확보(지하/창고형 휴게실 개선), 공용 쉼터 조성 등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실질적 회복 공간’으로 재구축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② 야간 제설·청소 노동안전 체계 개선 - “사람 중심의 제설”
    폭설 대비 야간 근무는 오랫동안 반복된 과제였지만, 최근에는 ‘인력 투입’ 중심에서 벗어나 근무 구조 자체를 바꾸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야간 제설 대비 ‘스마트 제설장비’ 도입, 기온·적설량 기반 AI 도로 센서 시범 도입 등 장비 개선·인력 로테이션·서비스 시간대 조절 등을 포함한 ‘모델 전환’ 논의입니다.
     
     
     
    ③ 아파트 경비·미화 노동자의 감정노동 완화 - “민원 가이드라인의 등장”
    경기도의 여러 아파트 단지에서는 경비·미화 노동자의 감정노동 보호를 위해 입주민 공지·가이드라인·운영 규칙 개편이 확산 중입니다.
    - “폭언·사적 지시 금지” 현수막 게시
    - 경비원 업무범위 명확화(택배·주차대행·개인 심부름 금지)
    - 감정노동 대응 매뉴얼 비치
    - 공동주택 관리지원센터의 분쟁 조정 신청 증가
    특히 수원·성남·고양 등 일부 지역에서는 입주민 커뮤니티가 직접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주민 차원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경기도에서도 작은 변화의 신호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눈에 잘 보이는 개선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시가 노동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신호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사례들은 규모는 작을지라도 ‘도시의 유지’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조금씩 방향을 바꿔가는 지점들입니다. 우리가 공존을 이야기하려면, 바로 이 작은 변화들을 더 자주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4. 문제는 이미 보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단 하나였습니다. 우리가 매일 만나지만 잘 보지 못했던 저녁의 단면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자는 제안입니다.
     
     
     
    출처 : 에디터 또봉
     
     
    경비 노동자에게 과도한 역할을 떠넘기지 않는 일,
    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이 말 그대로 ‘쉬는 공간’이 되게 하는 일,
    제설 인력의 장시간 폭주 구조를 줄이는 일,
    겨울철 운영 체계를 한철 대응이 아닌 연중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일.
     
    이런 변화는 거대한 개혁이 아니라 도시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새롭게 정비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도시를 ‘편리함’으로 평가하지만 그 편리함은 누군가의 새벽과 누군가의 야간을 겹쳐 만든 시간입니다. 이 사실을 한 번 더 기억하는 일, 바로 그 지점에서 더 나은 도시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겨울의 도시를 지탱하는 이들의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오늘보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게 이 도시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의 겨울노동-누가 우리의 연말을 지탱하는가
    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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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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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은 유난히 ‘남겨두는 일’을 많이 생각하게 하는 계절입니다. 사진첩을 넘기고, 한 해를 돌아보는 짧은 회고를 쓰고, 쓰던 다이어리를 정리하거나 새 다이어리를 펼쳐보기도 하죠. 일상을 잘 기록하는 사람도, 기록에 서툰 사람도, 이 시기만큼은 무언가를 남겨두기 위해 자연스럽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출처 : AI활용 일러스트 이미지 제작
     
     
    올해 저는 여러 현장에서 ‘기록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시민기록자 양성교육, 공익활동 사례발굴, 활동 현장 스케치까지 다양했지만, 그 현장들을 거치며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기록은 개인의 회고를 넘어서 활동의 의미를 붙잡아두는 일이라는 것. 흩어지기 쉬운 장면들을 붙들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일이 공익활동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저는 여러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 사라질 뻔한 순간들이 남는다는 것
     
    어떤 현장에서든, 기록은 늘 비슷한 순간을 데려옵니다. 당장은 사소해 보이는 장면이 시간이 지나면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하고, 한 사람의 말 한 줄이 다음 사람에게는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청년 활동가 네트워크 캠프를 스케치하던 날, 한 참여자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여기서 나온 얘기, 내일 되면 반은 잊힐 텐데 기록해두면 좋겠어요.”
    제가 “기록할게요”라고 답하자,
    다른 한 명은 “우리 활동이 남는다고 생각하니 힘이 나요”라며 웃었습니다.
     
     
    청년활동가 네트워크 캠프 프로그램 중 / 출처 : 에디터 또봉
     
     
    그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우리가 이어가는 활동은 대부분 과정 중심이고, 과정은 기록하지 않으면 증발합니다. 누군가의 문제의식, 한 문장 짜리 제안, 회의의 뉘앙스, 현장에서 느낀 온도 같은 것들. ‘남겨진다는 것’이 사람에게 어떤 힘이 되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기록이란, 어떤 멋진 글쓰기 기술보다도 ‘사라질 뻔한 일을 존재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습니다. 기록이 없었다면 금방 잊힐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페이지에 남는 순간, 활동은 더 이상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공동의 자산이 됩니다.
     
     
    2.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흐르게 할 것인가
     
    기록을 하다 보니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비워야 할지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현장의 이야기를 정리할 때도, 사진을 고를 때도, 어떤 문장을 앞에 둘지 고민하는 과정이 길었습니다. 지금은 사소해 보여도 나중에 빛날 장면은 무엇일까. 이 이야기가 공동의 기억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록은 ‘모든 것을 남기는 작업’이 아니라, 다음 사람이 다시 걸어갈 때 도움이 되는 길을 다듬어두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필요한 설명을 덜어내고 핵심만 남기는 이 과정에서 기록은 단순 정리를 넘어 ‘해석’이 되고, 그 해석이 쌓이면 활동의 역사가 됩니다. 올해 기록을 하며 배운 가장 큰 점은 이것이었습니다. 기록은 거창한 작업이 아니라, 작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단 하나였습니다.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기록은 결국 다음 사람을 향한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올해 깊이 체감했습니다.
     
     
    3. 공익활동에서 기록이 사라졌을 때
     
    공익활동은 대체로 과정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만나고, 논의하고,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긴 호흡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은 기록되지 않으면 쉽게 끊어집니다. 그 단절이 반복되면 결국 ‘처음부터 시작하는 활동’만 늘어가게 됩니다. 올해 저도 많은 횟수는 아니지만 여러 현장을 보면서, 기록이 남아 있을 때 어떤 변화가 가능한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어려웠던 지점들이 올해는 자연스럽게 개선되었다는 참가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고, 한 활동가의 문제의식이 다음 기수의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기록은 공익활동을 끊어지지 않는 흐름으로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문서 한 장, 사진 몇 장, 인터뷰 한 줄이 다음 사람에게는 소중한 지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청년활동가 네트워크 캠프 프로그램 중 / 출처 : 에디터 또봉
     
     
    4. 올해 만난 기록의 새로운 감각
     
    올해 여러 현장을 기록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시민기록컨퍼런스에서 마주한 전시형 아카이브였습니다. 종이 문서나 보고서로만 남아야 했던 기록들이 천 위에 인쇄된 이야기들, 설치물과 이미지의 구조로 확장되어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기록이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록된 문장들이 하나의 전시 구조 안에서 서로를 이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2025 시민기록 컨퍼런스 전시 서문 / 출처 : 에디터 또봉
     
     
    특히 전시 서문 앞에서 오래 멈춰 서 있었습니다. ‘실타래는 본디 풀기 위해 뭉친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서로 다른 사람들의 기록이 한 맥락으로 연결되어가는 과정을 조용히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 문장을 읽는 동안, 올해 내가 남긴 원고들도 그 실타래의 일부로 걸려 있다는 사실이 조금 낯설고 조금 기뻤습니다. 혼자 써 내려간 글이 누군가의 기록 옆에서 공존하고, 전시를 보러 온 사람이 그 글을 읽고 잠시 멈춰 설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로운 감정으로 다가왔습니다. 기록이라는 일이 누군가의 시간과 마음을 ‘없어지지 않게’ 만드는 일이라는걸, 전시장 안에서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2025 시민기록 컨퍼런스 전시 내용 중 / 출처 : 에디터 또봉
     
     
    또한 전시의 구성 자체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작가 은유의 강의에서 들었던 “글을 쓰면 적어도 내가 바뀐다. 내가 바뀌면 세상이 조금은 바뀐다.”라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전시는 개별 기록자들이 경험한 변화의 흔적을 한데 모아 보여주고 있었고, 그 덕분에 기록자의 변화가 공동체의 변화로 번져가는 흐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은 기록자라는 역할을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함께 연결되는 자리’로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기록이 문서를 넘어 이야기와 공간, 전시와 구조,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방식으로 확장된다는 것. 그것이 올해 내가 만난 기록의 가장 큰 변화이자 가능성이었습니다.
     
     
    5. 내년으로 건너가게 하는 기록의 힘
     
    12월이 되면 저는 늘 사진 정리를 합니다. 폴더 속 흐릿한 사진들을 지우고, 남길 사진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한 해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연결됩니다. 그러고 나면 자연스럽게 내년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떠오르곤 합니다. 기록은 결국 ‘다음 해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라는 걸 새삼 느끼는 순간들입니다. 기록이 쌓인다는 것은 단순히 저장이 아니라 준비입니다. 올해의 흐름을 정리해야 다음 해의 방향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에디터 활동을 통해 ‘기록자는 특별한 전문가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누군가’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작은 모임이라도, 한 장의 사진이라도, 짧은 인터뷰 한 줄이라도 기록되는 순간 그것은 사회적 의미를 갖고 공유할 수 있는 자원이 됩니다. 우리의 일상이, 누군가의 활동이, 지역의 공익 실험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일.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부족하지 않고, 더 많아져야 합니다.
     
     
    출처 : AI활용 일러스트 이미지 제작
     
     
    공익활동은 기록될 때 비로소 힘을 갖습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함께 걸어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기록 한 줄이 지역의 공익활동을 더 오래이어주고, 당신의 사진 한 장이 누군가에게는 다음 활동의 시작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년의 공익활동은, 당신의 기록으로 더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기록의 계절, 남겨두는 일에 대하여
    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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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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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또 하나의 읽기, 점자가 지닌 의미
     
    ‘점자의 날’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11월 4일은 바로 ‘점자의 날’이다. 우리가 매일 눈으로 읽고 쓰는 문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해 온 또 하나의 언어를 기억하는 날이다. 점자는 시각장애인에게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며 타인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통로의 역할을 한다. 점자를 통해 그들은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타인의 삶 역시 이해할 수 있다. 즉, 점자란 삶의 기록과도 같은 것이다.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책을 읽고, 길을 찾고, 물건을 구분하는 등 일상의 정보를 확인하는 모든 순간순간마다 조용히 그들의 곁을 지키고, 그들을 도와준다. 엘리베이터 버튼, 화장실 표지판, 안내문, 약품 설명서, 점자책에 이르기까지 점자는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공간과 물건 속에서 누군가의 하루를 책임지고 있다. 점자의 날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언어’, ‘들리지 않는 언어’의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날이다.
     
     
    2. 훈맹정음에서 오늘의 점자까지
     
    그러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점자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우리나라 점자의 시작에는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고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이 있다. 그는 1926년 ‘훈맹정음’을 창안해 시각장애인들이 우리말로 직접 배우고 직접 읽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때 당시에는 점자 교육을 위한 환경도, 교재도, 인식도 모두 열악한 상황이었으나, 그는 배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점자를 체계화하고 보급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이 쌓여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 점자의 기틀이 마련되었고, 점자의 날 역시 이 뜻깊은 출발을 기념하는 날로 이어져가고 있다. 한 사람의 노력과 헌신이 오늘날 수많은 사람의 일상과 삶의 가능성을 넓혀온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점자의 역사는 곧 배움과 소통을 향한 기다림의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3.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 있는 점자
     
    최근에는 일상에서 점자를 더욱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경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점자 명함 만들기, 점자 책갈피 제작 등과 같은 시민 참여형 체험 활동이 다수 진행되고, 카페나 식당에 점자 메뉴판을 비치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게 종종 보이고 있다. 또한 점자 디스플레이나 음성 안내 기기와 같은 기술 역시 손끝의 언어가 더 다양한 공간과 사람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점자의 날은 우리에게 거창한 실천을 요구하기보단, 서로 다른 방식의 읽기와 표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 번 더 기억하는 날이다. 일상에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엘리베이터 버튼의 작은 점들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지하철 바닥의 점자 안내판을 눈으로라도 한 번 따라가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이날을 기념하고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11월 4일, 듣는 언어와 만지는 언어가 함께 공존하는 사회를 떠올리며, 손끝으로 이어져 온 점자의 시간과 그 의미를 조용히 함께 기억해 보는 것은 어떨까?
    

     
    손끝으로 이어온 언어, ‘점자의 날’을 기억하며...
    코코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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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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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익활동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가 공익활동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자!
     
     
     
    이비스 앰배서더 수원 6층 세미나실 전경과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참가자들 / ⓒ에디터 직접 촬영
     
     
    단풍이 마지막 빛을 발하며 거리에 나뒹굴던 11월 11일, 수원 인계동의 이비스 앰배서더 호텔 6층 세미나실에는 바깥의 차가운 늦가을 공기와는 사뭇 다른, 뜨겁고 열정적인 기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날은 ‘2025년 경기도 민관협력 네트워크 연찬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이 행사는 경기도 공익활동 기본 계획 3기 수립을 위해 소통하고 고민을 나누며, 경기도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해 민·관이 함께 노력해야하는 의제들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였는데요. 「경기도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조례」에 의거해 수립되는 ‘제3기 경기도 공익활동 기본계획’이 책상 위 보고서가 아닌, 활동가들의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대지가 되길 바라는 간절함이 담긴 자리였습니다.
    기본 계획 수립을 위해서는 어느 한쪽의 노력만 있어서는 안 되겠죠. 이날 행사에는 3기 기본 계획 수립 연구를 맡은 조철민 위원을 비롯하여 경기도 시민사회 활성화 위원회 위원들, 경기도청 소통협치관실 공무원과 안양, 광명, 평택 등 시군 공익활동지원센터 관계자와 활동가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이날의 행사는 유명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장의 개회사로 시작되었습니다.
     
     
     
    경기도시민사회활성화위원회 이정아 위원장, 경기도소통협치관 김정훈 인사말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유명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장의 개회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 ⓒ에디터 직접 촬영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의 증진은 우리 사회의 공존과 지속 가능성을 견인하는 중요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공익활동의 증진을 위해 늘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런 분들이 모인 자리여서,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자리를 마련하면서도 마음이 참 많이 쓰였답니다. 저는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해서 앞으로 3년 동안의 행보에 대해 논의하고 힘을 모아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어서 이 자리의 중요 안건이기도 한 경기도 공익활동 기본 계획 수립과 관련한 의견도 전달했습니다.
     
    “저는 한 과정이 계획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경기도 곳곳에서 살아 움직이고 그 살아 움직이는 것이 다시 우리들 삶의 변화로 연결되기 위한 긴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의견이 경기도의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명화 센터장님의 말처럼, 이날 자리는 지난 4년간 쉼 없이 달려온 경기도 공익활동의 성과를 자축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 앞에 멈춰 서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생존을 고민하는 치열한 성찰의 장이었습니다. 나아가 이날의 성과를, 다음을 위한 도약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자리였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2025년 경기도 민관협력 네트워크 연찬회에 참석하게 된 취지와 활동 의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내빈들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이를 방증하듯, 통상적인 관공서 행사와는 다른 내빈 소개가 눈에 띄었습니다. 본래라면, 인사말은 의례적으로 빠르게 지나갔을 테지만, 이날은 달랐습니다. 내빈들이 하나하나 돌아가면서 행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향후의 목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허정호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운영위원장 역시 이번 연찬회의 취지가 단순한 회의가 아닌, ‘같은 고민을 나누는 자리’임을 강조했습니다. 이 밖에도 자리에 참석한 이들의 참여 취지와 활동 의지를 들으면서 40여 명의 참석자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연대감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는 민관협력이란 문서상의 협약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눈 맞춤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2.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를 그리는 시간
     
    먼저, 기존 1기와 2기 계획을 점검하고 3기 계획안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경기도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을 위한 기본계획 이행 진단 및 발전 방안 연구’라는 이름 아래 조철민 (사)시민 이사의 발표로 진행되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서는 기존 정책을 돌아보고 이를 점검하는 시간이 필수겠죠!
     
     
    3기 계획안 수립 관련 발표를 진행하고 있는 조철민 (사) 시민 이사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1기의 지원 정책 계획은 초창기 지원 정책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연결’, ‘확산’, ‘역량강화’와 이를 추진하기 위한 기본적인 ‘기반’을 구축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2기는 2022년 조례 계정을 통해 ‘공익활동 촉진 및 지원’에서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으로 확장된 정책의 지평을 반영하기 위한 목표 아래 계획 수립이 진행되었습니다. 1기 기본계획 시기가 황무지에 센터를 세우고 조직을 만드는 '기반 조성'의 시기였다면, 2기는 그야말로 다양한 아이디어가 꽃피운 '실험의 시대'였다고 정리해 볼 수 있겠네요.
     
     
    3기 계획안 수립과 관련한 논의를 위해 설명을 경청하고 있는 참가자들 / ⓒ에디터 직접 촬영
     
     
    3기는 1기와 2기의 계획을 발판 삼아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정했습니다.
     
    “여러분 피자 좋아하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피자의 토핑이 피자의 장르를 정하므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피자의 기본은 도우에 있습니다. 저는 시민사회는 도우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라는 탄탄한 도우 위에 토핑이 들어가야 완성되는 것이죠. 문제는 아무도 이 도우를 가꾸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유일하게 도우를 신경 쓰는 기본 계획이 바로 저는 이 기본 계획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기본 계획에 대해서 논의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철민 이사는 참가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비유를 해가면서 기본 계획이 지닌 중요한 이유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우리가 궁극적인 목적에 집중하게 된 이유 역시 이런 ‘기본’과 ‘근본’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 대비하기에는 정책 역량이 한정적이죠. 그래서 3기의 비전·전략 체계를 세 가지로 압축했습니다. 첫 번째는 ‘지속가능한 지원’입니다. 이는 기존에 진행되던 지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잘 유지하는 지원입니다. 정책이나 정권이 바뀌면 기존에 잘 운영되고 있던 지원 사업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업을 단순히 정책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폐기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일입니다. 실제로 제가 참여했던 공익활동 단체의 한 영역이 지원 사업 중단으로 사라졌던 경험도 있었답니다. 이미 해당 공익사업을 진행하면서 노하우가 쌓였는데, 경험과 노하우가 쌓인 사업의 내용을 확장하거나 수정하지 않고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낭비가 아닐 수 없죠. 3기 계획안에서는 이 점을 인지하고 더 나은 사업을 만들어 나가는 효율적인 방법을 지향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유기적인 연결과 협력’입니다. 공익사업은 절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죠. 그런데 공익사업을 막상 시작하면 공익활동지원센터에 부담이 가중되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민-관이 서로 협력하고 비영리 단체와 기업체, 도민이 각자의 영역을 맡아 함께 할 수 있는 방식을 지향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공익활동 영향력 확산’입니다. 세 번째 과제는 앞선 두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조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시민사회는 무척이나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잘 보이지 않죠. 완성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실제로 지닌 가치보다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세 번째 과제는 그 영향력을 높여보자는 의도에서 설정된 것이랍니다.
     
     
     
    비전 전략 체계에 관한 설명을 듣고 열정적으로 질의하는 참가자들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저를 비롯한 참가자들은 조철민 이사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각자가 느꼈던 공익활동 현장은 어땠는지, 3기 계획안 수립에는 어떤 내용들이 더 들어가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3기 계획안의 핵심 과제를 비롯한 설명을 경청하였습니다. 이후, 참가자들은 설명을 들은 것에 대해 깊이 있는 질의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세심하고 현실적인 질문에 듣고 있는 저도 생각과 고민의 깊이가 심화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3. 오늘의 노력이 계획을 어느새 현실로 만든다.
     
     
    점심 식사 시간에도 모여서 공익활동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현장 / ⓒ에디터 직접 촬영
     
     
    도시락은 일반식과 비건식으로 준비되었습니다. 참가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도시락에서도 느껴져, 경기도 공익활동지원센터의 나아가는 방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맛있는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은 이후, 2부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2부 행사에서는 지역별 시민사회 활성화 관련 현황과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시민사회 활성화 관련 현황과 사례를 공유하고 있는 모습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공익활동지원센터가 경기도 각 지역에 나뉘어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현황을 공유하고 고민을 나누지 않는 이상 서로의 어려움을 알게 되기 쉽지 않습니다. 참가자들은 정책적 측면과 현실적 측면에서의 현황과 사업 사례를 공유한 내용을 듣고 서로 머리를 맞대어 개선안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이후에는 자유 토론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날 하루 동안 들었던 여러 현황과 사례, 정보, 계획 등과 관련하여 시민사회 활성화에 도움 될만한 협력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시간이었기에 참석자들의 열의도 뜨거웠습니다.
     
     
    자유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우리 경기도가 31개 시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직 개수 자체는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권역별로 센터가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떤 방향으로 논의를 시작해야 할까요?”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을 위한 다각적 측면의 논의를 이어가는 모습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부족한 인프라나 시설, 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부족한 예산과 효율적인 자원 활용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고,
     
     
     
    공익활동을 위한 현실적인 문제에 관한 논의를 이어 나갔던 참가자들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촬영
     
     
    “아까도 청년 신규 활동가 육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청년들이 무엇을 바라고 여기에 와서 공익활동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사회라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는데, 이제 전처럼 인건비 없이 공익이라는 이름에만 기대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간은 이런 문제를 잘 논의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해 보아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와 공익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아주 현실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를 토의의 장으로 끌어내기도 했습니다.
     
    “협치형 중간조직에 관한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혹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지는 않을까요? 이에 대한 안전장치는 고민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제언에 더해서 현황 공유 순서에 나왔던 사업 계획에 대한 날카로운 질의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도 허투루 듣지 않고 실질적인 조언과 질의를 하기 위해 애쓰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바로 시민사회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의 시작은 문제를 정확하게 아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지 못하고 현재 상태를 알지 못한다면 결코 문제 해결을 위한 시작을 할 수 없죠. 오늘의 자리는 우리의 현황을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었습니다.
     
     
    단체사진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시민사회 활성화도, 공익활동의 증진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늘 어려움이 따르죠. 하지만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희망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떠나는 이들의 곁에는 언제나 동료들이 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이 있기에 더욱 힘이 되었던 오늘 이 자리가 공익활동과 시민사회의 발전을 위한 마중물이 되길 바랍니다.
     

     
    [현장스케치] 오늘의 협력은 미래가 된다_경기도 민관협력 네트워크 연찬회
    옐로 구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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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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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미리캔버스 @kikokiko
     
     
    
    ● 특수학교 설립의 현실과 과제
     
    장애를 지닌 학생들에게 특화된 교육과 자립 역량을 키워주는 특수학교는 교육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설립 과정에서는 지역 주민의 반대와 정치적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수차례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의회의 심의 절차를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현행 제도는 구조적인 한계로 작용하여, 학부모들이 지속적으로 간절한 호소를 해야만 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 수는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내 25개 자치구 중 8곳은 아직까지 단 한 곳의 특수학교도 없는 실정입니다. 모든 아동이 평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정치적 걸림돌을 제거하고 법과 제도의 정비가 시급합니다. 특수학교 설립은 단순히 교육 시설을 확충하는 문제가 아니라, 장애 학생의 교육권이라는 기본권 실현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사안입니다. 서진학교의 사례에서 보듯, 특수학교는 지역사회와 상생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주민들의 인식 변화도 가능하다는 점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향후에는 지방의회의 동의 없이도 교육청의 인가만으로 특수학교 설립이 가능하도록 법률 개정이 이루어져야 하며, 동시에 특수교사 인력 확보와 학급당 학생 수 기준 준수 등 교육 환경의 질을 높이는 조치도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장애 학생이 지역사회 안에서 어떤 차별도 없이 교육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포용적 교육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 특수학교는 왜 부족한가
     
    장애 아동에게 개별 맞춤형 교육과 실생활에 필요한 기능 습득을 지원하는 특수학교는 매우 중요한 교육 인프라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특수학교가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며, 그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역 주민의 반대입니다. 특수학교 설립이 추진될 때마다 일부 주민들은 부동산 가격 하락이나 교통 혼잡을 우려하며 반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2016년 교육부가 의뢰한 조사에서는 특수학교가 위치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곳 사이의 부동산 시세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결과가 확인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서진학교가 개교한 이후 해당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지 않았고, 오히려 학생과 주민 간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지역사회와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두 번째 요인은 정치적 셈법입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특수학교 설립은 교육청의 승인 외에도 지방의회의 공유재산관리계획 심의 절차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역 정치인이 주민의 표심을 의식해 반대하거나 심의를 지연시키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서울 중랑구의 동진학교는 14년이 넘도록 문을 열지 못하고 있으며, 성동구의 성진학교 또한 주민설명회 이후 정치적 갈등에 휘말린 바 있습니다. 때로는 교육 시설로 지정된 부지를 다른 용도와 병합하는 방식으로 우회 제안을 하며 사실상 설립을 좌절시키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세 번째는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 부족입니다. 과거보다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장애인을 도움이 필요한 주체가 아닌 사회적 부담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이웃에 특수학교가 세워지는 것조차 꺼리는 님비(NIMBY) 반응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서진학교 사례처럼, 장애 학생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편견이 줄어드는 경우도 많아, 인식 전환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동의 수는 계속해서 늘고 있지만,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학교는 턱없이 부족하며, 서울시만 보더라도 25개 자치구 중 8곳은 아직 특수학교가 전무한 상태입니다. 이로 인해 특수학교 입학 경쟁률이 16 대 1을 넘는 등 장애 아동의 교육 선택권은 크게 제한받고 있습니다. 특수학교는 단순한 교육 공간이 아니라 장애 아동의 삶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에, 지역 주민의 인식 변화와 정치권의 책임 있는 자세, 그리고 제도의 실질적 개선이 함께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 정치권 개입이 만든 '무릎 꿇기'의 악순환
     
    특수학교 설립 과정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 중 하나는 장애 아동의 부모들이 지방의회나 정치인들 앞에서 학교 설립을 애원하며 무릎을 꿇는 모습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 내려놓아야 하는 이러한 현실 이면에는 지방의회 중심의 결정을 요구하는 현재의 법적 구조와 정치권의 소극적인 태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공립 특수학교를 신설하기 위해서는 교육청의 승인을 받은 뒤, 지방의회의 공유재산관리계획 심의를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민원이 발생하면 정치인들은 지역 유권자들의 반응을 의식해 적극적인 결단을 내리기보다는 책임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특수학교 설치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일반 고등학교도 필요하다”거나 “주민 의견을 추가로 수렴하겠다"라는 등의 이유로 심의 결정을 미루며, 사실상 추진을 중단시키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2017년 서진학교 설립 당시에도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으며 국민적 관심을 촉발시킨 끝에 겨우 학교 설립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지금, 성동구 성진학교 설립을 둘러싼 상황에서 다시금 학부모들이 같은 방식으로 호소해야 하는 현실은 구조적인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방증합니다. 특히 정치권이 지역 개발이나 재개발과 관련된 이해관계에 얽히면서, 특수학교 설립을 조건부로 추진하거나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성진학교 사례에서는 장애 아동의 교육 공간 확보가 목적이었음에도 일부 시의원들이 향후 대단위 아파트 입주를 이유로 일반 고등학교를 병설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이는 공간과 수요 측면에서 현실성이 낮은 방안이었으나, ‘주민 의견을 반영했다’는 외피를 씌워 본래의 설립 취지를 흐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더 나아가 정치권은 특수학교 신설 문제를 갈등 소지가 큰 사안으로 분류해 정당 차원에서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성진학교 안건을 심의할 당시, 어느 정당도 뚜렷한 당론을 내놓지 않았으며, 일부 의원들은 찬성이나 반대 여부조차 밝히지 않고 표결 보류를 제안하며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이는 교육 정책에 있어 정치권이 그 책임을 회피하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특수학교 신설이 학부모의 절박함과 대중 여론에만 의존하는 구조로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육은 권리이며, 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부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치인은 지역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향후에는 교육청의 인가만으로 특수학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정비하고, 정치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이 장애 학생과 가족이 더 이상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 특수교육 대상자 증가
     
    최근 몇 년간 특수교육 대상 학생 수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4년 특수교육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등록된 특수교육 대상자는 총 11만 5610명으로, 전년도 대비 약 5%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는 2019년 약 9만 명 수준에서 5년 만에 2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전체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흐름과는 반대로 특수교육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장애 아동 수의 증가에 기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자녀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사회적 부담이나 낙인 우려로 인해 진단을 회피하는 부모들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와 미디어의 긍정적 영향으로 조기 진단 및 교육을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같은 콘텐츠가 자폐성 장애를 자연스럽게 조명하면서,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일부 해소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실제로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발달장애 정밀검사 건수는 2013년 2만 건 수준에서 2022년에는 18만 건을 넘어서는 등 진단의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특수교육 대상자로 등록되는 아동도 자연스럽게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자폐성 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아동 수가 두드러지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폐성 장애 학생은 2020년 1만 3917명에서 올해 2만 2194명으로 약 59% 증가했으며, 지적장애 학생도 같은 기간 5만 693명에서 5만 7883명으로 증가하였습니다. 현재 전체 특수교육 대상자의 약 70%가 이 두 유형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특수교육 수요가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특수학교는 195개에 불과하며, 10년 전보다 29개가 늘어났지만 여전히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로 인해 특수학교 입학 경쟁률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으며, 일부 학부모들은 입학 면접에서 자녀가 인사를 했다는 이유로 탈락했다는 이야기까지 접하게 되면서, 자신의 자녀가 얼마나 중증의 장애를 갖고 있는지를 부각시켜야 하는 현실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육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장애의 중증도’를 기준으로 한 왜곡된 경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결국 특수교육 대상자의 증가는 단순한 통계적 현상이 아니라, 우리 교육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한 절박한 과제를 의미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수학교의 수적 확대뿐만 아니라, 특수학급의 질적 강화, 전문 교원 확충, 학부모에 대한 지원 체계 구축 등 다방면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며, 장애 학생들이 각자의 속도에 맞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포용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핵심적인 기반이 될 것입니다.
     
     
    ● 서진학교가 보여준 가능성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서진학교는 특수학교가 지역사회와 갈등 없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학교는 2014년 설립이 처음 추진되었지만, 주민 반대와 정치적 지연으로 6년 가까이 표류하다가, 2017년 학부모들의 ‘무릎 호소’ 이후 여론이 변화하며 결국 2020년에 개교하게 되었습니다. 서진학교는 단순히 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 공간을 넘어, 지역 주민과의 상생 모델을 실현한 상징적 공간이기도 합니다. 개교 당시만 해도 ‘소음 민원’ 등의 우려가 있었지만, 현재는 학생들과 주민이 함께 플로깅(산책하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에 참여하고, 학교 인근에 위치한 공공도서관도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되는 등 지역사회와의 협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서진학교는 초등 1학년부터 직업 교육까지 총 14년간 지속되는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갖추고 있으며, 교과 내용 역시 일상생활 중심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국어나 수학 대신 ‘머리 감기’, ‘빨래 널기’, ‘용모 단정하기’ 등의 실생활 교육이 중심입니다. 이는 자립을 위한 기초 능력을 기르는 데 집중하고자 하는 특수교육의 취지를 잘 반영한 것입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카페 실습에서는 실제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졸업생들이 취업에 성공하기도 했으며, 일부는 지역 내 스마트팜 등지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장년층 취업 연계 프로그램인 '강서50플러스센터'와의 협업을 통해 보조 인력을 확보하는 등 지역사회 전체가 특수교육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서진학교의 성공 사례는 단순히 시설 하나를 설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가 장애 학생을 포용하고,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본보기입니다. 이는 특수학교가 ‘우리 동네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지역을 풍요롭게 만드는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입증한 사례입니다. 이러한 사례는 앞으로의 특수학교 설립 논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서진학교가 만들어낸 변화를 참고한다면, 특수학교 설립은 주민 반발과 정치적 갈등의 대상이 아닌,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공의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 제도 개선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
     
    특수학교 설립 과정에서 반복되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지방의회 의결 없이 교육청 인가만으로 학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 법적 예외 조항을 도입해야 합니다. 또한, 특수교사 정원 충원, 교육 환경 개선, 지역사회와의 협력 강화가 병행돼야 합니다. 더불어 특수학교가 지역사회와 상생할 수 있도록 주민 편의시설과의 복합 개발을 추진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민들에게 실질적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거부감을 낮추고, 장애 학생과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통해 인식 개선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특수학교 입학 기준과 절차에 대한 투명성을 강화하고, 학부모에 대한 상담 및 정보 제공 체계를 확대해 중증화 경쟁과 같은 왜곡된 현상을 막아야 합니다.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보장하기 위해선 행정의 결단력과 정치권의 책임 있는 태도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특수교육은 일부 학생만의 문제가 아닌,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기본 토대입니다.
     
     
    ● 경기도의 특수학교 현황 및 특징
     
    경기도교육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3월 1일 기준 경기도 내 특수학교 설립 현황이 공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경기도 통계포털에서는 특수학교의 학교 유형별 집계 현황이 제공되어 있어 국립·공립·사립 특수학교의 분포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경기도 내에서는 초·중·고 및 유치원 특수학급이 비교적 많이 설치되어 있으며, 특수학교 수 자체는 증가 추세이나 전체 수요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예컨대 관내 일부 교육지원청 홈페이지에서는 “2025학년도 10 월 1일 자 특수학교(급) 현황” 공지를 통해 여전히 신설·확장이 필요한 학교가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경기도는 특수학교 설립뿐 아니라 특수학급 확대, 순회 및 복합 특수학급 운영, 장애학생 배치 및 지원 체계 강화 등 다양한 접근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특수학급이 설치되어 있고, 특수학교가 없는 지역에서는 일반학교 내 특수학급 또는 순회 특수교육 형태가 지원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제도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지역에서도 ‘특수학교 수는 늘어나지만 수요 증가 속도·지역 격차·시설·교사 확보 등’ 여러 과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는 수도권‑광역 지역임에도 여전히 ‘근거리 통학’이 어려운 장애학생이 존재하며, 특수학교 설립 과정에서의 주민 반발 및 의사결정 절차 지연 문제도 대체로 표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됩니다. 따라서 경기도 사례는 특수학교 설립이 단순히 양적으로 늘어나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지역 간 균형 배치, 특수교사 확보, 설립 절차 간소화, 주민 인식 개선 등이 함께 논의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앞으로 경기도가 장애학생에게 ‘가까이서 배울 수 있는 특수학교’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현안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수학교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문제가 아니라, 장애 학생이 존중받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권리를 실현하는 일입니다. 교육의 기회는 모든 아이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져야 하며, 이를 위한 물리적·제도적 기반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이제는 특수학교 설립을 '선심성 정책'이 아닌, 국가와 지역사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로 인식해야 할 때입니다.
    
     

     
    집값 떨어진다고요? 특수학교 설립에 붙은 가짜 뉴스
    주야

    조회수 1226

    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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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길의 온도는 어느새 겨울의 그림자를 데려오고 있습니다. 집 앞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하루를 비우는 이 시간이 저는 참 좋습니다.
    그런데 몇 주 전, 익숙한 저녁 풍경 사이에서 낯선 신경이 잠깐 스쳤습니다. 뒤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발소리에 이어 “지나갈게요”라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고, 저는 잠시 걸음을 조심스레 옆으로 옮겼습니다. 아무 일도 아니었지만, 그 순간 몸이 가볍게 긴장하는 감각이 남았습니다.
     
    며칠 뒤에는 그 반대 장면을 봤습니다. 휴대전화를 보며 걷던 이가 산책로 한가운데서 멈추는 바람에, 뒤따르던 러너가 속도를 잃고 당황스레 웃어넘기는 모습. 이유는 달랐지만, 두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서로를 방해하려 한 사람은 없었고, 그저 같은 공간을 조금 다른 속도로 지나가려 했을 뿐이었습니다.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팬데믹 이후 우리는 실내의 시간을 다시 바깥으로 옮겨왔습니다.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자기 안으로 숨어들던 시기에서, 다시금 사람들 속으로 조심스럽게 돌아온 것이죠. 달리기와 산책은 그 복귀의 방식을 달리 선택한 결과처럼 보입니다.
     
    러너들은 몸의 한계와 감정을 함께 넘나들며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산책객들은 속도를 낮추며 도시의 숨을 천천히 들이마십니다. 누군가에게는 회복이고, 누군가에게는 연결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생존 기술입니다. 같은 길이지만 서로 다른 이유로 이 길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어쩌면 도시가 오래 묵혀두었던 감각을 다시 꺼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둘 중 어느 것도 누군가를 위협하지 않는 건강한 일상이라는 점에서 이 변화는 매우 반갑습니다.
     
    다만 요즘 우리는 한 질문 앞에 마주 서 있습니다. 서로의 속도가 다를 때, 공원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까?
     
     
    여의도 공원에 설치된 러닝 시 주의 사항 안내판 / 출처 : 조선일보
     
     
    최근 여의도에서 러닝 크루를 대상으로 한 ‘러닝 크루 No 4’ 문구가 온라인을 타고 널리 퍼졌습니다.
    “박수·함성 금지”, “비켜요 금지”, “무리 지어 달리기 금지” 같은 문구는 언뜻 보면 과해 보이지만, 이 표지판이 생긴 이유는 단순합니다. 특정 집단을 향한 비난이 아니라, 급격히 성장한 생활 문화가 스스로 경계를 정리하는 과정. 도시가 새로운 리듬을 맞이할 때마다 한 번 거치는 흔한 통증이기도 합니다.
     
     
    러닝에티켓(런티켓) / 출처 : 서울시
     
    서울시가 러너들과 함께 ‘런티켓’ 캠페인을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금지 조항을 나열하기보다, 도시가 갖춰야 할 태도를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입니다. 규칙이 아니라 ‘문화’에 기대는 접근이라 더 유효해 보였습니다.
     
    이런 흐름은 경기도의 여러 생활 체육 모임에서도 이미 자연스럽게 퍼지고 있습니다. 출발 전 “오늘은 천천히”라고 말하며 주변을 살피는 모임, 붐비는 시간대를 피해 새벽이나 늦은 밤을 선택하는 크루, 혹은 산책로가 좁은 구간에서는 속도를 조절하는 개인 러너들. 이름 붙이지 않았을 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답을 찾고 있습니다.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물론, 배려와 감각만으로는 모든 상황을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속도의 차이가 반복되는 장소라면 그에 맞는 설계가 필요합니다. 어떤 공원은 보행 동선을 분리하고, 어떤 도시는 붐비는 시간대를 안내합니다. 지역 러닝 모임과 주민회가 함께 러닝 시간대를 조율하거나, 산책로 일부를 ‘정적 구역’으로 정하는 시도도 가능합니다. 단속과 규제보다 더 오래가는 방식은 늘 비슷합니다. 사용자들이 서로를 보며 규칙을 조율하고, 행정이 그 흐름을 뒤에서 받쳐주는 구조. 도시가 성숙해지는 과정은 결국 제도가 시민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합의가 제도를 앞질러가는 순간에서 시작됩니다.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사실 공존은 거대한 제도나 정책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이어폰을 잠시 빼고 주변을 살피는 일, 반려견이 놀라지 않도록 줄을 잡아주는 일, 누군가의 등 뒤를 지날 때 조용히 속도를 줄이는 일. 그 작은 몸짓들이 쌓이면 길은 자연스럽게 넓어지고, 서로의 속도는 위협이 아니라 다양성이 됩니다.
     
    공원은 누구의 것이 아니고, 동시에 모두의 것입니다. 어느 한쪽의 속도가 다른 이의 휴식을 잠식하지 않고, 느린 사람이 빠른 사람의 자유를 억누르지 않는 풍경. 그곳에 우리가 꿈꾸는 도시가 있습니다.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달리기와 산책은 서로의 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같은 공간을 다른 리듬으로 사용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태도이며, 우선권이 아니라 함께 머무는 방식입니다. 아마 이 배려의 연습이 계속된다면, 도시는 점점 더 편안한 저녁을 갖게 될 것입니다.
     
    길의 사용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다만 서로를 조금 더 선명하게 의식하고, 때로는 한 걸음 양보하는 일이 쌓일 때 그 길은 모두의 것이 됩니다. 우리가 연습하는 건 속도가 아니라 공존입니다. 그리고 그런 도시가 결국 가장 걷기 좋은 도시가 될 것입니다.
    
     

     
    같은 길, 다른 리듬-도시의 공존을 연습하는 일
    또봉

    조회수 688

    202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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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되는 세계, 변화와 도전의 시민사회.”
    어디선가 본 것 같고 들은 것 같은 말인가요?
    네, ‘2025년 공익활동페스타 세계시민대회’ 슬로건입니다. 그럼 이런 노래는 아실까요?
    “그대가 걸어온 길은 외롭고 힘겨웠지만 우리 함께 걸어가는 이 길은 이젠 외롭지 않아요…”
    네, 거기서 불린 노래 ‘함께’의 가사죠. 한달 전 일이라 시의성도 현장감도 모자라는 뒷북 소리가 될까 조심스럽지만, ‘기록’과 ‘약속’의 힘을 의지하려 합니다. 지난 9월 30일(화) 수원 컨벤션센터 4층에서 보고 듣고 만나며 경험한 ‘연결된 우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행사 웹자보 /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연결되는 세계, 변화와 도전의 시민사회”라는 슬로건처럼 국내외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만나고 연결되는 축제였습니다. 기조강연과 4개의 주제 세션에서 토론하며 공익활동의 주제를 찾아가는 탐구의 기회이자, 경기도의 공익단체와 활동가들, 그리고 시민이 교류하는 기회였습니다. 더불어 시민사회가 직면한 도전과 변화를 고민하고 연결과 협력을 모색하는 자리도 됐겠죠?
     
     
     
    '공익광장'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왼),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오)
     
     
    사회적 경제의 베이스 캠프 경기도, 기념식
    수원 컨벤션센터 4층 계단을 오르면 바로 앞에 ‘공익광장’이 방문객을 맞았습니다. 넓은 로비 천장엔 알록달록 풍선이 떠 있고 바닥엔 말랑말랑한 컬러 소파가 가득하죠. 세계시민대회를 알리는 현수막과 지역의 공익활동을 보여주는 사진을 둘러보며 방문객은 안내데스크로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넓은 창가엔 차탁과 의자 그리고 다과가 준비돼 있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죠. ‘공익광장’을 걸어 컨퍼런스 홀로 가는 길목에서 대형 현수막이 말을 걸었습니다.
     
    “2025년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깊은 연대로 더 넓은 협력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경기도 공익단체 이름들과 5기 아카이브 에디터 이름이 빼곡이 적힌 걸개였습니다. DMZ스테이, 느린이웃, (사)경기시민연구소울림, 경기평화교육센터, 그물코평화연구소, 구구컬리지, 생생아쿠아, 라운지플러스… 120여개 공익단체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5기 아카이브 에디터 21명의 이름도 있었으니 제 이름 ‘꿀벌’도 일별하고 갔겠죠?
     
    경기도가 사회적 경제의 베이스 캠프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컨퍼런스 홀에서 있었던 공익활동페스타 기념식에서 들었답니다. 여느 공식 행사처럼 국민의례, 내빈소개, 그리고 축사와 공익활동가들에 대한 시상식이 있었는데요. 고영인 부지사가 대독한 김동연 지사의 축사가 인상적이었어요, 경기도가 다양한 공익활동들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경제의 베이스 캠프’라고 했거든요. 지난 정부가 사회적 재정을 계속 삭감한 거 아시잖아요. 그럴 때 경기도는 도리어 예산을 늘리고 공익활동의 가치를 확산했다네요. 인상적인 한 대목만 옮겨보겠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공익활동 단체 간 협력을 공고히 하는 ‘1기업 1단체 공익 파트너십 캠페인’. 청년들 스스로 자신의 공익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공익해봄 프로젝트’를 비롯해 다양한 공익 활동의 토대를 다져왔습니다. 경기도는 또한 ‘사회적경제’의 베이스캠프이기도 합니다. 전국 최초로 도청에 ‘사회적경제국’을 신설했고, ‘경기도 사회적경제원’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정부가 사회적경제 예산을 감축할 때 경기도는 오히려 예산과 재정 지원을 확대했습니다. 기업과 기관이 협업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컬렉티브 임팩트’도 강화했습니다.”
     
     
     
    정윤경 경기도의회 부의장(왼), 고영인 경기도 경제부지사(오)의 축사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공익광장에 마련된 포토존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평화가 미래다”, 공익활동박람회
    기조강연장 건너편 공간에서는 ‘공익활동박람회’가 열렸습니다. 공익활동단체, 사회적경제조직, 비영리법인, 기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교류의 장이었습니다. 공익활동가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단체들로 구성된 부스가 방문자들을 기다리는 곳이죠. 공익활동단체 운영을 위한 전문가들의 현장 상담과 컨설팅과 홍보, 조합원 모집, 즉석 미팅도 이루어졌습니다. 공익활동가들은 좋은 정보를 얻고 공익 주체들간의 연대의 장이 되었습니다.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 비영리IT지원센터,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주) 더한다, (주) 리맨, (주)아이퀘스트,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찾아가는 공익활동 상담소"가 보입니다. 이중에 ‘동행’은 이름처럼 ‘공익활동가의 비빌 언덕’이 되어 동행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입니다. 전문직종에 협의회가 있고 사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사회보험이 있듯, 공익활동가들에게 제대로 된 사회 안전망이 되고자 한다는데요. 공익활동가들이 회원으로 조합비를 내고 연대하고 상호부조하는 곳이랄까요. 공익활동가들이 신뢰받는 사회를 만드는 게 동행의 꿈이요 공익활동가의 지속가능한 활동과 존중받는 삶을 위한 안전망을 만드는 게 사명이라고 하네요.
     
    복도에 책상 하나 놓고 홍보하는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보존운동’ 활동가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성병관리소 홍보 자료와 함께 크고 무거운 책 『동두천을 찾고, 잇다,』(36,000원)와 “평화가 미래다” 손수건(10,000원)을 팔고 있었습니다. 활동가님들과 인사하고 이야기한 후 “평화가 미래다”에 연대하는 맘으로 책과 손수건을 샀습니다. 이 무거운 책을 펴낸 ‘동두천역사문화연구회’는 2020년 5월에 설립된 작은 동아리라네요. 동두천에서 태어났거나 오래 살고 있는 5명의 동두천 사람들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고 공부하며 탐방한 결과물이랍니다.
     
    『동두천을 찾고, 잇다,』가 소개하는 ‘성병관리소’를 옮겨 적어 봅니다.
    “1971년부터 추진된 ”기지촌 대책사업- 기지촌정화사업“의 일환으로 1973년 기지촌성매매여성들의 성병을 관리하기 위해 세운 기관이 있던 건물이다. ‘양주군성병관리소’로 동두천 상봉암2리인 소요산에 6천766㎡ 부지에 2층 규모로 세워졌다. 흔히 ‘낙검자수용소’, ‘몽키하우스’, ‘언덕위의 하얀 집’으로 불리웠다. 1996년 3월 폐쇄되었고 현재 건물만 남아 있다.” (22쪽)
     
     
     
    공익활동박람회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다양한 센터 및 네트워크 소개 전시(왼),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보존운동을 위한 후원물품 판매 부스(오)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왼), 에디터(오)
     
     
    “연결되는 세계, 변화와 도전의 시민사회”, 기조강연
    이번 세계시민대회의 주제는 기조강연을 통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국립타이완대학교 사회학과 허밍슈 교수가 “대만의 최근 시민운동 : 블루버드액션에서 the great recall 까지(Taiwan's Recent Citizen Movements : From the Bluebird Action to the Great Recall)”를, 이어서 “한국 시민사회의 변화와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도전들”이라는 제목으로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서복경 교수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모든 강연에는 수어통역이 있었습니다. 허밍슈 교수의 영어 강연은 통역기를 통해 동시통역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허밍슈 교수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시민사회의 변화를 짚으며 대만, 홍콩 등 아시아 시민사회의 흐름과 비교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야기한 후 이런 결론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대만의 시민사회 운동은 민주주의 발전과 긴밀히 연결되어 왔다. 야생백합운동(Wild Lily Movement)은 반독재 투쟁의 상징이 됐고, 해바라기운동(Sunflower Movement)은 권위주의의 확장에 저항했다. 밀크티연대(#MilkTeaAlliance)로 국제적 민주주의 위기에 적극 대응했다.
    한편, 학생 중심이던 시민사회 주체가 여성과 K-팝 팬 같은 집단으로 확장되고 있다.”
     
    서복경 교수는 국내의 내란과 탄핵 집회의 양상을 중심으로 분석한 후 연결과 협력, 통합을 위한 과제로 “광장과 일상을 잇자’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광장에 대한 통계가 전부가 아니라며 한국사회가 나야가야 할 구체적인 시민운동의 방향과 활동 과제를 이렇게 제시했습니다.
     
    “2050년 이후 급격한 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저출생 추세의 반전 가능성이 낮은 만큼 인구 감소 사회에 적응하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을 위해 평생교육과 기술 습득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초고령사회에 대응할 지역 의료·요양·돌봄 체계와 교통·주거 등 사회 전반의 고령 친화적 재설계가 요구된다. 또한 고령화로 인해 소수자로 전환되는 아동·청소년·청년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세대 간 공존을 위한 사회적 기획이 필수적이다.”
     
     
     
    국립타이완대학교 사회학과 허밍슈 교수(왼),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서복경 교수(오)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공익활동가 싱어송라이터 퍼플민이 노래하다
    기조강연 후 그 자리에 도시락 점심이 제공되더니 무대에서 한 사람이 노래를 하더군요. 특별공연이라네요. 수수한 셔츠 차림의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참 맑았습니다. 공익활동가들을 지지하고 위로하는 가사가 들렸어요.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공익활동 행사에서 본 듯해서 저는 눈과 귀를 뗄 수 없었습니다. 3곡을 부르고 자리를 뜨는 그분을 알고 싶어서 후다닥 따라갔죠. 인사하고 다짜고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연결되는 세계, 변화와 도전의 시민사회”, 그런 연결이자 특별한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싱어송라이터 퍼플민 이도영 님과의 일문일답입니다.
     
    Q. 노래를 3곡 불렀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음향 장치도 별로 같던데, 목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은 알겠는데 다른 2곡은 잘 몰라서 죄송하다.
    ‘우리 가는 길’과 ‘함께’를 불렀다. 같은 노랫말인데 ‘우리 가는 길’은 발라드 버전이고 ‘함께’는 행진 버전이다. 그 두 곡을 우리 집 식탁에서 1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만들었다. ‘우리 가는 길’ 노랫말을 써서 곡을 붙이고 보니 마음에 들었다. ‘이거 행진 버전도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행진 버전으로 또 곡을 썼다. 그렇게 같은 노랫말에 두 노래가 함께 만들어졌다.
     
    Q. 노래 두 곡을 어떻게 한 시간 동안 만들 수 있나. 노랫말은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2018년 서지현 검사를 시작으로 미투가 있을 때였다. 성폭력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마음,‘위드유 With you’의 마음으로 노랫말을 썼다. 이후에 불러보니 두 노래가 연대의 자리에 다 잘 어울리더라. 연대 활동 나갈 때마다 부르는 애창곡이 됐다. 오늘도 이렇게 시민사회 공익활동가들이 함께하는 자리에 어울리는 곡으로 선곡했다. 이런 자리에 ‘우리 가는 길’하고 ‘함께’가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부른 건데, 괜찮았나?
     
    Q. 물론이다. 노래에 이끌려 말 걸게 됐다.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시간 내 주심에 감사한다. 이런 자리에서 만났으니, 노래하는 활동가? 이게 꿈이었는지, 소개 좀 해 달라.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음악 듣기를 좋아했다. 13살 여름에 엄청 충격적인 일을 겪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왔다. 그전에는 책 읽기와 공부를 좋아했는데 책도 못 읽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도 잘 안 들리는 등 집중력이 떨어지는 병이었다. 근데 음악은 다르더라. 학습 장애에 난독증인데 음악은 들렸다. 그래서 음악에 미치다시피 빠져 살게 되었다. 평생 음악만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때부터 꿈이 음악인이었지만 그시절엔 집안 형편이 어려운 내가 실현할 수 없는 꿈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인문학 전공으로 뒤늦게 대학에 진학했는데 음악에 대한 꿈은 접어지지 않더라. 대학 노래 동아리라도 들어가야지 했는데 대통령이 전두환인 시대였다. 노래 부르고 있을 때가 아닌 거라. 언더서클에서 학생운동하며 음악인으로 사는 꿈은 접었다. 대학 졸업 이후에도 계속 음악은 듣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지만 음악과 상관없는 직업으로 살았다.
     
     
     
    공익활동 페스타 퍼플민 특별공연(왼), 퍼플민 인터뷰 사진(오)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Q.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게 살다 보면 일치하기 쉽지 않은데, 참 좋겠다. 무슨 일을 하며 살다 어떻게 이런 노래하는 활동가가 되었는지 말해 달라.
    학원에서 고등학생 입시 강사하며 시민단체 활동을 했다. 서울 살다가 고양시로 이사했는데 대학 때 학생운동 같이 한 선배가 고양시민회 사무국장이더라. 회원이 됐는데 당시 이런저런 사정으로 내가 경제적 가장으로 살던 시기인지라 전업활동가는 못하고 적극적 후원회원으로 살았다. 그시절 나의 꿈은 하루라도 빨리 전업 시민사회활동가로 사는 거였다.
     
    경제적 가장 역할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즈음에 고양 여성민우회에서 진행하는 성폭력 예방 상담원 양성 과정에 참여하게 되면서 고양여성민우회 회원이 됐다. 비상근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2021년 1월 총회에서 고양여성민우회 대표로 선출되어 4년간 상임대표로 활동했다.
     
    민우회 활동 시작 시점보다 조금은 전에 친하게 지내던 동네 음악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했는데, 밴드활동은 멤버들 사정으로 중단되었지만 내가 창작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이후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게 되었다.
     
    와~ 유능하다. 싱어송라이터라니 정말 멋지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음악을 워낙 많이 듣다 보니 멜로디도 쓸 수 있더라. 어릴 때부터 글 쓰기를 많이 해서 노랫말은 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작곡을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알게 되니까 멜로디가 막 떠오르고 일주일에 한 곡씩 쓰고 그랬다. 나도 스스로한테 놀랐다. 작곡하는 사람이 제일 신기했는데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거다.
     
    노래를 만들고 나니 부르고 싶더라. 그래서 ‘퍼플민’이라는 노래팀을 민우회 안에서 사람을 모아서 만들었다. 고양여성민우회 송년회에서 처음으로 내가 만든 노래를 불렀고 주변인들이 음원으로 발표하면 좋겠다고 해서 이후 다섯 곡의 음원을 발표하고 고양 지역을 중심을 싱어송라이터로 활동을 지속하게 되었다.
     
    Q. 퍼플민은 같은 사람들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나?
    구성원은 바뀌며 이어져 왔다. 음악적으로 서로 잘 맞아야지 그냥 친하다고 같이 노래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그게 가장 힘들다. 공연은 상황에 따라서 혼자도 하고 같이도 하는 식이다.
     
     
     
    퍼플민 앨범 및 유튜브 계정 / 출처: 퍼플민
     
     
    Q. 퍼플민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노래는 어디서 들을 수 있는지 알려 달라.
    멜론과 지니 등 음원 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고, 네이버에 퍼플민을 치면 노래 정보가 나온다. 유튜브 채널도 있다. 퍼플민 유튜브에 공연 영상도 올리고 좋아하는 커버곡도 한 달에 한 곡 정도 올리고 있다.

     

     
    공익활동 페스타 퍼즐 세레모니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지속-공존-지역-연결, 지속가능한 공익활동 생태계로
    이제 다시 컨프런스홀로 가 볼까요? 오후 5시부터는 페스타의 마지막 순서인 폐회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4개의 세션에서 오간 이야기를 서로 발표하며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도 청년활동가 네트워크 청플2기 최승환 위원은 세션2가 “공익활동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수다회”였다며, “공익단체의 조직문화와 재정문제 등 공통의 어려움들을 나누는 유익한 자리”였다고 보고했습니다.
    이어서 허밍슈 교수와 일본의 한창희 센터장의 소감 발표가 있었고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유명화 센터장이 마무리 인사했습니다.
    “특히 대만과 일본과 태국의 연사를 초대해 한국 사회와 아시아의 생생한 경험을 듣고, 도전할 과제를 논의하는 장이었습니다. 지속, 공존, 지역, 연결로 지속가능한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를 만들고 우리의 현안을 씩씩하게 해결해 갑시다.”
     
    마지막 순서는 네 개의 핵심 키워드를 대표자들이 하나씩 들고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무대 앞 퍼즐판에 맞추는 세레모니였는데요. 모두의 박수 속에 이번 세계시민대회의 정신이 “지속, 공존, 지역, 연결”로 둥글게 완성되었습니다.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 각자의 자리에서 이어온 공익활동이 다시 서로를 만나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이 현장 전체를 따뜻하게 감쌌습니다. 그렇게 2025 세계시민페스타는 서로의 이야기가 모여 만들어낸 울림 속에서,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막을 내렸습니다.
    
     

     

     

    [현장스케치] 2025 공익활동 페스타 “그대가 걸어온 길은 외롭고 힘겨웠지만”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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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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