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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8일은 무슨 날일까요?
     
    노동자의 날, 근로자의 날, 메이데이…
    많은 사람들이 5월 1일을 ‘노동자들의 날’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4월 28일이 어떤 날이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날은 일터에서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다시는 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짐하는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입니다. 이 글은 4월 28일이 어떤 날인지, 한국에서는 이날을 어떻게 기억해왔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이날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한 인형 공장에서 시작된 추모의 날
     
     
    태국 방콕 장난감 공장 화재 사진 /출처: KBS
     
     
    1993년 5월, 태국 방콕 외곽의 케이더(Kader) 장난감 공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무려 188명의 노동자가 숨지고, 469명이 다쳤습니다. 그들은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인형을 만들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참사는 안전장치 부재와 기업의 탐욕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공장에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직원들의 목숨보다 비싼 인형의 도난을 막는다는 이유로 문을 잠그고 작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불이 난 순간 노동자들은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6년, 유엔 뉴욕 본부에서 열린 지속가능발전위원회 회의에서 국제자유노련(ICFTU)의 대표들이 이 사건을 추모하며 촛불을 들었습니다. “선진국 아이들의 장난감에는 개발도상국 노동자의 피와 죽음이 묻어 있다.” 이러한 각성이 국제 사회를 흔들었고, 이후 국제노동기구(ILO)는 4월 28일을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로 공식 지정했습니다. 현재 미국, 영국, 캐나다 등 19개국은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추모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전 세계 110개국 이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
     
     
    '4.28 산재사망 추모 건강한 노동, 안전한 사회 민주노총 투쟁 결의대회'에서 세운 안전화 탑 / 출처: 오마이뉴스
     
     
    한국에서 4월 28일은 민주노총과 노동조합 그리고 산재노동자 단체, 노동안전보건운동 단체 등 시민사회가 안전과 건강을 담은 한 해의 요구를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4월을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로 지정하며, 정부의 산재사망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살인기업'을 선정 및 발표하는 '살인기업 선정식'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전 세계적으로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을 시민사회에서 추모하고, 한국 사회가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는 일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행동들이었습니다.
     
    시민사회가 주도하여 진행되었던 4월 28일이, 올해부터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바로 작년 9월 국회 본회의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4.28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 법정 기념일이 된 것입니다. 개정안에는 제9조의 2(산업재해 근로자의 날)을 신설하였고, 이로 인해 매년 4월 28일을 '산업재해 근로자의 날'로 지정하고, 4월 28일부터 1주간을 추모주간으로 정했습니다.
     
     
    법정 기념일 그 이상의 의미가 되길
     
     
    23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 민주노총 결의대회 / 출처: 뉴시스
     
     
    산재사망 노동자를 추모하는 것은 법정 기념일이 되었지만, 여전히 매년 2,400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고, 부상과 질병으로 15만 명의 노동자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한국은 슬프게도 OECD 가입 국가 중 산재사망이 가장 많은 국가입니다. 특히 작년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아리셀 중대산업재해 참사'를 생각하면, 일터에서의 안전은 아직 먼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안전하지 않은 사회, 건강하지 않은 일터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공감대가 모여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일터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망사고를 통해, 여전히 우리 사회제도의 부족함을 알려줍니다.
     
     
    추모를 넘어서, 더 이상 죽지 않는 사회로
     
    4월 28일은 더 이상 몇몇 활동가들만의 기억이 아닙니다.
    국가가 인정한 공식적인 추모의 날이 되었고, 우리는 그 의미를 더 깊게 되새겨야 합니다. 산재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노동자를 추모하는 것, 그리고 다시는 그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를 바꾸는 것. 그 두 가지가 함께 갈 때, 4월 28일은 진정한 ‘기억의 날’이 될 수 있습니다.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사회.
    위험을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일터.
    추모를 넘어서,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가 4월 28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 4월 28일을 아시나요?
    라이언

    조회수 63

    202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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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3일 계엄이 선포되었던 날, 저는 방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그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순간, “세상에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소셜 미디어가 우리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전달하는 중요한 통로로 자리 잡았음을 실감했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일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지고, 그 정보는 곧바로 사람들을 행동으로 이끌어 냅니다. 오늘날의 소셜 미디어는 단지 친구들과 소식을 나누거나 재미있는 영상만을 공유하는 도구를 넘어, 사회적 변화의 핵심 도구로 자리 잡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의 변천사 : 정보의 주도권
     
    소셜 미디어가 어떻게 사회적 변화의 핵심 도구가 되었을까요?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 사용 초기에 주로 친구들과의 연락, 자신의 일상적인 이야기나 사진을 올리고, 소식을 나누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고,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는 공간으로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변화의 대표적 예로는 바로, 2016년부터 시작된 디지털 촛불 혁명(온라인에서 일어난 한국의 촛불집회)입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는 단순한 정치적 사건을 넘어서, 대규모 시민의 참여와 사회적 의견 형성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쳤고, 집회 현장 이미지를 공유하며 그 결과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이 광장에 모여 정치적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소셜 미디어는 그 당시, 사람들이 바쁜 일상을 살아내면서도 사회를 향한 나의 목소리를 내는 유일한 장이었고, 대중의 의사를 한데 모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저 역시 알고리즘 속의 많은 사람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이제 변화가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출처: 챗 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이와 비슷한 예로 #MeToo 운동도 있습니다. #MeToo 운동은 전 세계적인 소셜 미디어 캠페인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나누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나도 경험했다"라는 의미로 해시태그를 달고, 성폭력과 성희롱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어 서로의 목소리를 지지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전국 여성 단체가 미투 운동에 힘입어 “너희들의 시대는 끝났다”와 “우리는 너희들의 세계를 부술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3.8 샤우팅 운동’으로 확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넘어서 사회적, 정치적인 변화의 핵심적인 촉매제 역할을 했습니다.
     
     
    출처: 챗 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좋아요’가 만든 참여의 물결
     
    이런 사례들은 이제 그저 몇몇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제는 다양한 세대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20대와 30대의 표현적 참여가 매우 활발해졌는데, 대표적인 예로 ‘좋아요’, ‘댓글’, ‘공유하기’라는 단순한 행동이 정치적 참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는 시민사회와 사회적 변화에 대한 관심이 확장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정부나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뉴스나 TV에서만 들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시민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가 곧 사회 변화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의 한 연구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는 민주주의 참여를 확대시키고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의 정치적 참여를 촉진하는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합니다. 소셜 미디어는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젊은 세대의 정치적 참여를 촉진하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해시태그는 어떻게 저항이 되었나
     
    ‘#MeToo’처럼 해시태그를 이용한 캠페인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혁신적인 방법이 되었습니다. #BlackLivesMatter 운동은 2013년 미국에서 시작된 인종 차별 반대 운동으로, 당시 경찰의 폭력에 의해 사망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청년 트레이본 마틴의 사건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소셜 미디어에서 “BlackLivesMatter”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빠르게 퍼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인종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BlackLivesMatter 운동은 단순히 한 사건에 대한 반응을 넘어, 미국 사회 내 인종차별과 경찰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개선을 위한 활동으로 발전했습니다. 평화시위, 온라인 캠페인, 거리 행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되었으며, 결국 세계 각국에서 ‘인종차별’과 ‘사회적 정의’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습니다.
     
    운동이 확산되면서 미국 내에서 경찰의 폭력적인 행동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많은 이들이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동참하며 사회적 변화를 위해 힘을 모았습니다. 이 운동은 단순히 트레이본 마틴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지속된 미국 사회 내 인종차별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하기 위한 운동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출처 : 픽사베이 무료 이미지
     
     
    이처럼 소셜 미디어는 단순한 의견 교환의 장을 넘어, 사회적 변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소셜 미디어에서 시작된 캠페인이 인종차별과 경찰 폭력에 대한 논의를 촉발했고,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사람들이 ‘이건 아니다’라는 목소리를 높였을 때, 그 목소리가 실제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민주시민이 되기 위한 첫걸음, 클릭
     
    결국, 소셜 미디어는 시민으로서의 참여를 더욱 넓게 만들어주는 도구이자,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힘이 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디지털 촛불 혁명이나 #MeToo와 같은 혁신적인 사회적 운동을 통해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책임도 함께 커져가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는 ‘정보의 신뢰성’이라는 큰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요즘은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가 너무 쉽게 퍼지기 때문에, 우리가 소셜 미디어에서 얻은 정보는 항상 사실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회참여를 할 때는 반드시 ‘팩트체크’를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얻은 정보에 대해서는 그 맥락을 잘 이해하고, 여러 출처를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 분명히 필요합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누구나 소셜 미디어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그 정보가 진실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능력도 중요해졌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긍정적 사회적 변화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와 사실을 기반으로 한 비판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신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적 변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소셜 미디어는 우리의 손끝에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도구를 어떻게 쥐고, 어떻게 사용할지는 결국 우리의 몫입니다.
     
    진실을 향한 감각을 잃지 않고,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연대의 힘을 믿는 것.
    그것이 우리가 ‘좋아요’를 누르는 이유이자, 이 시대의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당신의 클릭은 정치적이다
    또봉

    조회수 96

    202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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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챗gpt 제작
     
    
    A씨는 수도권의 한 신축 빌라를 전세 2억 원에 계약했습니다. 계약 당시 공인중개사는 "집값이 상승 중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라고 했고, 집주인 역시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2년 후 만기가 되자,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이후 해당 주택이 경매로 넘어갔지만, 낙찰가는 1억 5천만 원에 불과했고, 선순위 근저당이 있어 A씨는 보증금 중 일부만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A씨는 대표적인 전세 사기 수법인 깡통전세 사기에 당한 것인데요.
     
    이처럼 전세 사기는 한국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으며, 특히 사회 경험이 적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20~30대 청년층이 주요 피해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높은 전세 보증금이 오가는 주택 시장에서 사기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피해 금액도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전세 사기의 주요 유형과 피해 사례, 피해자 연령대 및 피해 금액 현황, 그리고 이를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 전세 사기의 심각성과 사회적 문제
     
    1. 경제적 피해
    전세 사기는 단순한 금전적 손실을 넘어, 피해자의 삶 전체를 흔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전세 보증금은 서민들에게 있어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기를 당할 경우 재산을 한순간에 잃고 경제적으로 파산할 위험이 큽니다. 특히, 청년층과 신혼부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전세금을 모으기 위해 오랜 기간 저축을 하거나 대출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세 사기를 당하면 대출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장기간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게 됩니다.
     
    2. 주거 불안과 정신적 피해
    전세 사기의 또 다른 문제는 피해자들이 거주할 곳을 잃게 된다는 점입니다. 전세 사기를 당하면 갑자기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며, 새로운 거처를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피해자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보증금을 잃은 것뿐만 아니라, 주거지를 잃었다는 절망감과 법적 대응에 대한 부담이 겹쳐 심리적 고통이 가중됩니다.
     
    3. 부동산 시장 불신 증가
    전세 사기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세입자와 임대인 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부동산 시장 전체에 대한 불신이 커지게 됩니다. 세입자들은 임대인과의 계약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고, 전세 거래를 기피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이는 부동산 시장의 위축을 초래하며, 결국 임대 시장의 건전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 전세 사기 피해 현황
     
    1. 전세 사기 피해자 연령대
    전세 사기의 주요 피해자는 20~30대 청년층입니다.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이들은 상대적으로 부동산 계약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신축 빌라나 저렴한 전세 매물에 대한 유혹이 크기 때문에 사기에 취약한 편입니다. 2024년 기준 전세 사기 피해 연령대는 다음과 같습니다. 30대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20대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부부가 주된 피해자로, 이들은 전 재산이나 대출금으로 전세 계약을 맺었다가 보증금을 잃는 사례가 많습니다.1)
     
    2. 전세 사기 피해 금액
    전세 사기 피해 금액은 대체로 1억 원 초과~2억 원 이하의 구간에서 가장 많았습니다. 피해 금액 1억~2억 원이 전체 피해자의 34%를 차지하며, 이는 5,545명에 해당합니다. 전체 피해 금액에서 1억 원 초과~2억 원 이하가 42%로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습니다.2) 이는 청년층이 전세 자금 대출을 활용하여 계약을 체결한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전세 사기에 당하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됩니다.
     
    3. 전세 사기 피해자 수 증가
    전세 사기 피해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4년 9월 기준, 단속 기간 동안 적발된 전세 사기 피해자는 16,314명으로 확인되었습니다. 2024년 3월 기준, 피해자는 27,000명에 달하며, 점점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전세 사기의 피해 규모가 커지는 이유는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과 깡통전세 증가, 사기 조직의 조직적 개입 등이 꼽힙니다.
     
    4. 전세 사기 피의자 가담 형태
    전세 사기는 개별적인 범죄가 아니라,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기범들은 역할을 나누어 계획적으로 움직이며, 피해자를 속입니다.
    전세 사기에 가담한 피의자들의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국토교통부 보도자료: 범정부 전세사기 특별단속 결과
     
    
    전세 사기는 단순한 개인 사기가 아니라 중개업자, 브로커, 허위 임대인 등이 조직적으로 결탁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들이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 전세 사기의 단계별 유형 및 피해 사례
     
    전세 사기는 계약 과정에서 여러 단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발생합니다. 이에 따라 전세 계약을 진행하는 모든 단계에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1. 집을 고르는 단계에서 발생하는 사기 유형
     
    (1) 깡통전세 사기
    깡통전세는 주택의 시세보다 전세 보증금이 더 높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임대인은 허위로 높은 감정가를 책정하여 높은 전세금을 책정한 뒤, 보증금을 받아 챙기고 잠적합니다. 이후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세입자는 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가 큽니다.
     
    (2) 허위 매물 사기
    중개업자가 존재하지 않는 매물을 광고하거나, 실제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한 후 계약 직전에 다른 매물로 유도하는 방식의 사기입니다.
     
    2. 임대인을 확인하는 단계에서 발생하는 사기 유형
     
    (1) 가짜 임대인과 계약
    임대인의 신분을 위조하여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입니다. 계약 이후 임대인이 사라지면 세입자는 보증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2) 신탁회사의 동의 없는 계약
    소유권이 신탁회사에 있는 주택의 경우, 신탁회사의 동의 없이 계약하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3. 계약서 작성 단계에서 발생하는 사기 유형
     
    (1) 월세를 전세로 둔갑
    월세로 계약해야 하는 집을 전세 계약으로 바꿔 중개하는 방식의 사기입니다.
     
    (2) 이중 계약
    이중 계약 사기는 임대인이 동일한 전세 주택에 대해 여러 명과 중복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계약을 맺은 세입자들은 자신이 정상적인 계약을 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같은 집에 여러 명의 세입자가 존재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결국, 집주인이 전세금을 들고 도망가거나 경매가 진행되면서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를 입게 됩니다.
     
    4. 계약 직후 발생하는 사기 유형
     
    (1) 계약 당일 임대인 변경 및 대출 실행
    일부 악덕 임대인은 세입자와 정상적으로 전세 계약을 체결한 후, 해당 주택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아 돈을 빼돌리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지릅니다. 이후 임대인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세입자는 보증금을 잃게 됩니다.
     
    (2) 기존 세입자가 거주 중인 상태에서의 계약
    이사 당일 가보니 이미 다른 세입자가 살고 있는 경우입니다.
     
     
    ● 전세 사기 예방 및 안전한 전세 계약 방법
     
    1. 등기부등본 및 국세 체납 여부 확인
    전세 계약을 체결하기 전, 반드시 해당 주택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해당 건물의 실제 소유주가 누구인지, 대출이 설정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해당 주택에 이미 많은 채무가 설정되어 있다면, 전세 계약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2. 전세보증보험 가입
    전세보증보험은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할 경우, 보증 기관이 이를 대신 보장해 주는 제도입니다. 전세 계약을 체결할 때 반드시 보증보험에 가입하면, 사기 피해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3. 믿을 수 있는 공인중개사를 통한 계약
    공인중개사를 통해 계약을 진행하면 사기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중개업소의 정식 등록 여부를 확인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업체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4. 계약서 작성 시 특약 명확히 하기
    전세 계약을 체결할 때는 계약서에 근저당 말소, 보증금 반환 조건 등을 명확히 기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계약 종료 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을 예방하고,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근저당이 설정된 주택의 경우, 계약서에 "임대인은 계약 기간 만료 전까지 해당 주택의 근저당을 모두 말소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라는 내용을 명시해야 합니다.
     
    또한, 말소 기한을 구체적으로 정하여 계약 종료 직전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계약 체결 당시 이미 높은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다면, 해당 주택을 계약하는 것을 신중히 고려해야 하며, 임대인에게 근저당 말소를 요구할 수 있도록 특약 사항을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전세 계약이 종료될 때, 보증금을 반환하는 시점과 절차를 계약서에 명확히 기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임대인은 계약 만료일 전까지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반환해야 하며, 반환이 지연될 경우 일정 기간 이후부터 지연 이자(연 12% 이상)를 지급해야 한다"라는 내용을 명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임대인이 보증금 반환을 위해 신규 세입자를 구해야 하는 경우, 보증금 반환을 신규 계약 체결 여부와 연계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을 포함해야 합니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을 경우, 세입자가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반환 기한을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전세 사기를 예방하기 위해 임대인이 근저당 말소 및 보증금 반환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위약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계약서에 기재해야 합니다. 세입자는 전세 계약을 체결한 후, 반드시 동사무소에서 확정일자를 받아야 하며, 계약서에 이를 기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계약 체결 시 전세보증보험(HUG, SGI 등)에 가입하는 것을 조건으로 명시하여, 임대인이 보증보험 가입을 거부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전세 사기 피해 발생 시 대처 방법
     
    1. 경찰 및 법적 대응
    전세 사기를 당했다면 가장 먼저 경찰서(112)에 신고하여 수사 절차를 진행해야 합니다. 보이스피싱이나 금융 사기와 달리, 전세 사기는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속한 수사가 필요합니다. 경찰에 신고하면 임대인의 사기 행위가 입증될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하며, 추가적인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경찰에 신고한 후에는 사건 접수 번호를 받아두고, 담당 수사관과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진행 상황을 체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및 정부 지원 활용
    전세 사기 피해를 입었다면, 정부 및 공공기관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지방자치단체(지자체)는 전세 사기 피해자를 위한 다양한 긴급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임시 거주지 제공, 법률 상담, 금융 지원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LH의 긴급 주거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국토교통부 및 LH 고객센터(1600-1004)에 문의하여 지원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각 지자체에서도 전세 사기 피해자를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 전세 사기 피해가 많이 발생함에 따라, 각 지역별 긴급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세 사기를 당했을 경우, 단순히 경찰 신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LH 및 정부의 지원을 적극 활용하여 거주지를 확보하고 법적 대응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해가 발생한 즉시 LH 고객센터(1600-1004) 또는 국토교통부 전세사기 피해 지원센터(국토부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 연락하여 도움 및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세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은 경찰, 검찰, 국토교통부 등 여러 기관에 신고를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증금을 돌려받기가 어렵고, 법적 대응에도 한계가 많습니다. 신고 후에도 피해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법적, 행정적, 금융적 문제들이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전세 사기를 저지른 임대인이나 공인중개사가 형사 처벌을 받더라도, 피해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기범이 처벌을 받아도 보증금 반환 의무가 자동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법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부족합니다. 형사 처벌은 임대인의 범죄 행위에 대한 것일 뿐, 피해자의 재산을 되찾아주는 과정이 아닌 데다가, 피해자는 별도로 민사 소송을 제기해야 하지만, 임대인이 재산을 숨긴 경우 실질적인 보상받기가 어렵습니다. 또, 전세 사기범들은 보증금을 가로챈 후 재산을 미리 처분하거나, 차명 계좌로 빼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세 사기 피해자는 경찰서나 검찰에 신고를 하지만, 사건 수사와 법적 절차가 지연되면서 수개월에서 수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해당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길 기다려야 하지만, 세입자의 보증금이 최우선 변제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세 사기는 개인의 재산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주거 불안정을 초래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입니다. 정부는 강력한 법적 조치를 마련해야 하며, 국민들도 철저한 사전 조사와 신중한 계약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특히 20~30대 청년층은 전세 계약 전 반드시 주택의 소유권 및 대출 여부를 확인하고, 보증보험 가입 등을 통해 피해를 예방해야 합니다. 사기범들이 점점 교묘한 수법을 사용하는 만큼, 계약 과정에서의 신중한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1) 국토교통부가 2024년 6월 2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보고한 전세사기 피해 지원 현황 자료
    2) 2025.3.10.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용갑 의원이 공개한 전세 사기 피해자 수 자료
     
     

     

    2030 울리는 전세 사기, 어떻게 대응하나요?
    주야

    조회수 222

    2025-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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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날의 아픔만을 떠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행동으로 옮기는 일입니다.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안전이 기본이 되는 사회, 믿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 기억 편지 낭독 중(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장애진 씨)
     
     
    출처: 4.16재단
     
     
    매년 4월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다양한 자리를 만듭니다. 2025416일은 세월호 참사 이후 열한 번째 맞는 416일이었습니다. 16일 오후 3시부터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이 열렸습니다.
     
    노란 옷을 입은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 노란 팔찌를 끼고 노란 리본 배지를 가슴에 단 많은 시민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또 참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고자 해양수산부 장관, 국회의장, 안산시장, 각 정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 및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의 참여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기억식 행사는 304명 희생자에 대한 묵념, 각 분야를 대표하는 분들의 추도사, 영상 상영과 뮤지컬 공연, 생존 학생의 편지 낭독, 4.16합창단의 합창 공연으로 이어졌는데요. 현장에 참석한 3,000여 명의 시민들을 비롯해 언론사의 생중계로 수많은 시민이 기억식을 지켜봤습니다.
     
     
    출처: 4.16재단
     
     
    기억식을 함께 준비한 4·16재단의 박승렬 이사장은 무대에 올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1년이 지나고 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사회적 참사와 자연 재난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 슬픔을 겪고 있습니다.”라며 생명의 소중함과 일상의 안전이 최우선시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모두 세월호 참사를 평생 잊지 않고 꼭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생명존중과 안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될 ‘4.16생명안전공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단원고 2학년 1김수진 학생의 아버지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참사 이후 11년이 지나도록 아직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는지 우리 가족들은 알고 있지 못합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이어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이 의무를 성실히 지키면서 국가를 믿고 의지하듯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책무임을 명심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4.16재단
     
     
    추도사에 이어 상영된 <10년의 세월, 그리고 다시 첫 시작>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참가자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는데요.
     
     
    절대 변할 수 없는,
    그래서 결국 그 무엇도 이겨내는
    엄마의 약속
     
    (중략)
     
    10년 하고도 다시 1년 이제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서야 아이들이 돌아올 보금자리의 첫 삽을 떴다.
    아이들이 우리 품으로 온전히 돌아오면 그때는 진짜 봄이 올까?
     
    진짜 진실이, 진짜 사죄가, 진짜 새 세상이 올까?
    10년 하고도 다시 1년 오늘도 다시 약속한다.
    꼭 밝히겠다고, 꼭 밝혀내고 말겠다고
     
    - 영상 <10년의 세월, 그리고 다시 첫 시작>
     
    [영상]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영상 <10년의 세월, 그리고 다시 첫 시작> / 출처: 4·16재단 
     
     
    참사 이후 10년이 넘도록 아이들이 왜 희생되어야만 했는지 그 진실을 밝히고자, 나아가 안전사회를 만들고 재난 참사 피해자의 권리를 지켜내고자 걸어온 세월호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었습니다. 반드시 약속을 지켜내겠다는 엄마들의 굳건한 의지가 숭고하게 느껴졌습니다.
     
     
    출처: 4.16재단
     
     
    영상을 다 같이 본 후 희생된 단원고 학생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공연 , 여기 있어요가 펼쳐졌습니다. 지난해 10주기 기억식 무대에서 시 낭송을 했던, 그리고 세월호 참사 10주기 프로젝트로 제작된 영화 <목화솜 피는 날>의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던 박원상 배우가 열연을 펼쳐, 참가한 시민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다음 순서로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인 장애진 씨가 무대에 올라 기억의 편지글을 낭독했는데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믿고 언젠가는 괜찮아지리라 생각했지만, 봄이 올 때마다 아직 마음 한편은 차가워지고 봄은 여전히 멀기만 합니다.”, 두 번 다시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그대들과 같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했지만, 또 다른 비극들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우리가 아직 멈춰서 있는 것은 아닌가 자책도 하게 됩니다. 그날의 봄은 멈춰있지만 언젠가는 영원히 따뜻한 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며 진심을 눌러쓴 편지글을 전했습니다.
     
    기억식의 마지막 순서는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과 시민들이 함께 만든 4.16합창단의 공연이었습니다. 4.16합창단의 노래는 기억하고 행동하는 모든 시민들의 마음을 울리는 빛나는 무대였습니다. 그리고 기억식이 진행되는 도중 오후 416, 1분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304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추모 사이렌이 안산시 전역에 울려 모두가 함께 마음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11주기를 맞은 416일에는 오후 3시 안산에서 열린 기억식 뿐만 아니라 오전 1030분에는 참사가 벌어진 해역에서 선상 추모식, 오전 11시에는 인천에 위치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광장에서 일반인 희생자 추모식, 오후 416분에는 서울에 위치한 세월호 기억 공간에서 시민 기억식을 진행해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영상]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식 본행사(full 영상) / 출처: 4·16재단 
     
     

     
     
     
    세월호 참사 11주기, “다시 봄이 온다”
    레지스타

    조회수 146

    202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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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어 통역사는 손으로 말하는 사람들과 입으로 말하는 사람들 사이의 다리가 된다. 한국수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과, 한국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청인 사이에서 그들은 단어와 표정, 침묵마저 언어로 바꾸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다리 위에 또 다른 다리가 존재한다면? 바로 ‘농(聾) 통역사’이다. 공식 명칭은 ‘청각장애인 통역사’이지만, 현장에서는 농 통역사라 불린다. 이들은 청인 통역사조차 채 다 담아내지 못하는 농인의 삶과 언어, 그 미묘한 숨결을 대신 읽고, 대신 전한다.
     
    농 통역사는 모든 농인을 위한 통역자이다. 왜냐하면 모든 농인이 수어를 완전하게 구사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글로 대화하고, 어떤 이는 입 모양으로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오직 눈빛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농인의 언어는 하나로 묶을 수 없다. 유년기의 언어 환경, 교육, 가족, 그리고 농 사회와의 연결 여부에 따라 언어의 형태도, 깊이도 달라진다. 그래서 농 통역사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마음의 결을 어루만지는 소통의 안내자다.
     
    그런 길을 걷는 한 사람, 박수진. 그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안산농아인협회 간사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야기를 잃지 않은 한 명의 ‘나’다. 이 글은 장애에 대한 담론이 아니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고, 성장의 기록이며, ‘엄마’라는 말이 품고 있는 깊이에 대한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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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농아인협회 간사 박수진 / 출처: 박수진 님 제공
     
     
    
    나는 농아인입니다.
    나는 손으로 말하고, 눈으로 듣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입술로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내 삶을 고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 고요 속에서 너무나도 분명한 울림을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그 울림은 언제나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엄마’라는 이름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한 번도 혼자라고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군가의 동생이었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빠의 손 편지, 아빠의 눈물, 그리고 엄마의 수많은 메모. 말 대신 건네받은 글자들은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스며들었고, 내 삶을 꿰뚫는 선이 되었습니다.
     
    내가 두 살 무렵이었을 거예요. 말을 좀 늦게 배운다는 것 외에는 그저 귀엽고 예쁜 막내딸이었어요. 어느 평범한 날, 나는 거실에서 놀고 있었고, 그 뒤에서 컵이 떨어졌습니다. 집 안은 순간 정적이 흘렀고, 모두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어요.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죠.
     
    그날 이후, 부모님은 병원을 전전하며 검사를 받으셨고, 결국 의사의 입에서 ‘청각장애’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그 순간, 부모님은 눈앞이 깜깜했다고 해요. 저는 변한 게 없었지만, 세상이 저를 다르게 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두 살 박수진 님 / 출처: 박수진 님 제공
     
    
    내 고향은 부산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방파제에 갔던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어요. 바다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손이 내 쪽으로 뻗어왔고, 나는 그 손을 잡았어요. 아버지는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안으시고, 이마를 맞대며 웃으셨어요. 그리고 천천히 방파제 아래로 걸어 내려갔죠. 나는 아빠 품에 있어도 넘실거리는 파도가, 얼굴에 날리는 바닷물이 무서웠어요. 그 순간, 나는 입을 열어 처음으로 소리를 냈어요.
     
    “아빠.”
     
    아버지는 저의 목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어요.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앞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훗날 아버지에게 물었어요. 그날, 방파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아버지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네가 살아갈 앞날이 너무 걱정돼서… 바보처럼 같이 죽으러 간 거였다. 그런데 네가 '아빠'라고 불러서… 정신이 번쩍 들었지.”
     
    아버지는 어린 내게 세상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하셨어요. 그래서 병원에 보내 구화 훈련을 시켰습니다. 휴지를 입에 대고 불어 찢는 연습을 매일 같이했어요. 휴지가 찢어지지 않으면, 집에 돌아갈 수 없었죠. 나는 그 시간이 괴로웠고, 슬펐어요. 무언가를 말해야 했지만, 무슨 뜻인지 몰랐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흉내 내야만 했어요. 입술은 움직였지만, 마음은 굳게 닫혔어요.
     
    * 구화인
    모든 청각장애인이 농인은 아닙니다.
    유년기에 청각장애가 생긴 사람 중
    ①보청기·인공와우 등 청각 보조 장치를 사용하거나, 대화 상대방 입술의 움직임을 읽어서 상대방의 발화를 파악하고
    ②발성 훈련을 하여 음성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구화인이라고 합니다.
     
    구화인은 청능훈련·구화법·발성 훈련 등을 통해 한국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나는 생모의 손을 잡고 서울로 이사했어요. 이유는 몰랐지만, 오빠와 함께 낯선 도시에 전학을 가게 되었죠.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고, 수업 시간은 고통이었어요. 청인들과 함께하는 수업 시간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저는 바보처럼 앉아만 있어야 했죠. 하지만 쉬는 시간에는 달랐어요.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재미있게 놀았죠. 쉬는 시간만 기다리는 무의미한 학교생활,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적어 내라는 것에요. 저는 장래 희망이라는 단어의 뜻도 몰랐죠. 가만히 앉아 있는 저에게 선생님은 직접 저의 장래 희망을 적었어요.
     
    ‘왕자님과 결혼하기.’
     
    저도 모르는 저의 장래 희망은 왕자님과 결혼이 되었죠. 한글도 모르는 저는 멍청히 앉아서 쉬는 시간만을 기다리는 학교가 그래도 좋았어요. 나는 그저 조용히 앉아 있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뛰어놀고, 청소하고, 다시 조용히 앉아 있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공부는 못했지만, 청소는 누구보다 잘했죠. 그래서일까요? 선생님은 나를 안쓰럽게 여기셨고, 생모와 상의해 나를 농아학교로 전학 보냈어요.
     
     
    서울 농아학교 운동장에서 / 출처: 박수진 님 제공
    
    
    농아학교는 내게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나처럼 손으로 말하고, 눈으로 듣는 친구들이 이렇게 많다니! 처음으로 ‘같다’라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기숙사 생활도 즐거웠어요. 밤늦도록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수어로 수다를 떨었죠. 나도 평범한 아이였다는 것을 그곳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주말이면 집으로 갔어요. 보통 오빠가 데리러 왔죠. 어느 날 오빠가 저에게 묻더군요.
     
    “수진아, 돈 있니?”
     
    저는 많지 않지만, 학교에서 주는 용돈이 있었어요. 가끔 용돈을 모아서 오빠에게 주곤 했죠. 나에게 돈이 있냐고 물었던 그날, 오빠는 며칠을 굶은 상태였어요. 생모의 방임으로 오빠는 혼자 지내는 날이 많았어요. 저는 생모에게 부산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떼를 썼어요.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하면 보내주지 않겠죠. 그래서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꾀를 썼죠. 생모는 마지못해 오빠와 저를 부산에 다녀오라고 허락을 해줬죠.
    부산에서 만난 아빠는 우리를 보고 눈물을 흘렸어요. 그날 이후, 지루한 소송 끝에 오빠와 저는 아빠와 함께 살기로 했죠. 그때 제 나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어요. 그 당시 아빠는 대전에서 생활하고 있었어요. 대전 아빠 집에는 처음 보는 언니가 있었어요.
     
    “이제부터 언니가 아니라 엄마라고 불러.”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닫았어요. 나에게는 이미 생모가 있었으니까요. 그녀를 무시했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어요. 심지어 아빠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그 언니가 날 괴롭혀.”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생리가 터졌어요. 너무나 무서웠죠. 화장실에 숨어 울고 있는 저에게 언니는 달려왔어요. 회사에서 집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저를 구해주셨죠. 생리대 사용법부터 모든 것을 알려주신 언니는 그날부터 저에게 엄마가 되었답니다.
    
     
    중학생 박수진 가족 사진 / 출처: 박수진 님 제공
     
    
    아이를 낳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나는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엄마는 왜, 아이를 낳지 않았어?”
    엄마는 내 곁에 누워 잠든 아기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너희들을 본 순간 알았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하나님이 이미 두 명이나 아이를 주셨는데, 또 아이를 낳을 필요가 있을까?”
     
    제가 고등학생 무렵이었을까요? 버스 정류장에서 엄마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때, 곁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나에게 물었죠. “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니?” 제가 어눌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외국인인 줄 알았나 봐요? 엄마는 정색하며 아주머니에게 말했죠. “제 딸이에요.” 저는 분명 엄마의 입술에서 나오는 ‘제 딸이에요’라는 말을 읽었어요. 그때 저도 “우리 엄마예요.”라고 이야기해야 했는데 못 했어요. 죄송해요. 하지만 엄마의 ‘제 딸이에요’라는 말은 저에게 힘이 되었어요. 내가 엄마의 딸이구나. 그때부터 엄마는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나의 엄마 그리고 서울 엄마는 생모가 되었어요.
     
    엄마는 수많은 메모와 편지를 내게 남겨주셨습니다. 학교에 다녀오면 냉장고에 붙은 메모가 반겨주었고, 서랍 안에는 언제나 손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죠. 내가 힘들 때마다, 외로울 때마다, 엄마는 어떻게 알았는지 편지를 남겼어요. 그 글들은 내가 버리지 못한 사랑의 기록입니다.
     
     
    
    가족들이 남긴 메모와 편지 /  출처: 박수진 님 제공
     
     
    내가 생각이 짧아서 엄마가 수어를 배우겠다고 했을 때, 저는 싫다고 했죠. 엄마가 수어를 알면 간섭과 잔소리가 더 심해질까 봐 그랬어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철이 없었어요. 엄마와 수어를 함께 배웠다면 지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요. 그리고 엄마, 나는 한 번도 엄마가 나를 낳지 않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엄마는 언제나 나의 엄마였고, 엄마의 메모 한 장, 편지 한 줄이 나를 살아가게 했어요. 내가 흔들릴 때마다, 엄마의 글이 나를 붙잡아줬어요. 그러니까 저에게 미안해하지 말아요. 엄마,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20살 박수진 가족 사진 / 출처: 박수진 님 제공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를 처음 만난 건 아마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거예요. 그 시절 나는 엄마를 “언니”라고 불렀지요. 상봉 국민학교에 다니던 나는 종종 아빠 회사를 찾았고, 그때마다 엄마는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시원한 물도 건네주셨어요. 그런 순간들이 너무 좋아서, 나는 매번 엄마가 있는 그 공간을 향해 들떴던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곤 했어요. 그때의 나는 몰랐어요. 그 ‘언니’가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존재가 될 거라는걸.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내가 아빠와 함께 지내게 되면서 그 ‘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었을 때, 어린 마음에는 그 변화가 너무 낯설고 어색했어요. 좋아했던 만큼 당황스러웠고, 그만큼 거리를 두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몰라도, 엄마는 단 한 번도 내게서 멀어지지 않았어요. 언제나 다정했고, 꾸준했고, 따뜻했어요. 나를 기다려주고, 말없이 품어줬어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정말 자연스럽게 엄마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기억나요? 내가 흰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갔다가, 월경 자국이 묻은 줄도 모르고 당황하며 집에 돌아왔던 날. 그날 엄마는 회사 일을 잠시 미뤄두고 나를 향해 달려와 주셨어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다정하게, 월경에 관해 이야기해 주고, 나를 부드럽게 감싸안아 줬어요. 처음 겪는 몸의 변화에 놀란 나에게 엄마는, 생리보다 더 큰 따뜻함을 가르쳐 주셨죠.

     

    감기로 앓아누웠을 때도, 몸살로 말 한마디 못 할 때도, 엄마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어요. 병원도 함께 가고, 약도 챙겨주고, 말없이 손을 잡아줬어요. 내가 엄마 껌딱지처럼 들러붙었던 시절, 엄마는 아마 많이 피곤했을 거예요. 그런데도 엄마는 지친 내색 한번 없이 나를 안아줬어요. 그 모든 순간에, 지금이라도 늦게나마 말하고 싶어요. 정말 고맙고, 정말 미안해요.

     

    요즘 나는 다시 출근을 시작했어요. 아침마다 전쟁처럼 바쁜 하루가 시작되고, 나도 정신없이 준비하면서 준혁이와 하나까지 챙겨야 하니 숨 돌릴 틈이 없어요. 그런데 그런 어느 날, 문득 엄마가 떠올랐어요. 엄마도 예전에 출근 준비하며, 오빠와 나를 챙기고, 매일 아침 도시락까지 싸셨잖아요. 그 모든 걸 해내면서도 내 앞에서는 늘 웃어주셨던 엄마.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왜 나만 힘들다고 여겼을까요?

     

    요즘의 나는 많이 지쳐 있어요. 준혁이는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이고, 하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라 여전히 손이 많이 가요. 남편은 직장을 옮겨 정신이 없고, 나는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며 모든 것이 낯설고 버겁기만 해요. 그런데 그런 순간마다, 이상하게 엄마가 떠올라요. 엄마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고,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하는 용기가 생겨요. 그건 아마, 내 안에 엄마가 주신 힘이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겠죠.

     

    엄마, 나를 그렇게 사랑해 줘서 고마워요. 내가 엄마에게 벽을 세울 때도, 뒤돌아설 때도, 엄마는 한결같이 다가와 줬어요. 그 사랑이 나를 사람으로 키우고, 지금의 엄마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나도 이젠, 엄마처럼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떠나시던 날, 내가 할머니 앞에서 약속했었죠.

     

    “할머니, 엄마는 제가 꼭 잘 챙길 테니까 걱정 마시고 편하게 쉬세요.”

     

    그 약속, 변하지 않을 거예요. 어떤 순간에도 나는 그 약속을 지킬 거예요.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아가는 동안 엄마는 내게 늘 멘토가 되어주었고,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어요. 준혁이 키우며 막막했던 때, 조언해 주고 힘이 되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우리 아빠요. 성격이 쉽지 않잖아요. 그런 아빠 옆에서 묵묵히 함께해 줘서, 아빠의 빈틈을 채워줘서, 정말 감사해요. 앞으로는 엄마께 더 자주 안부 전화도 드리고, 더 자주 웃게 해드릴게요. 말로만이 아닌 마음으로, 삶으로 효도할게요.

    2025. 04. 05.

    사랑합니다.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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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이며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조심스레 바라봅니다. 혹시라도 농아인을 향한 낯선 시선이 있었다면, 이 글을 통해 마음이 조금은 바뀌었기를 바랍니다. 농아인도 여러분과 다르지 않은 딸이고, 엄마이고, 아내입니다. 우리는 ‘소리 없이’ 살아가지만, 그 안에는 세상의 어떤 언어보다 깊고 진한 사랑이 있습니다. 제 글에서 그 사랑을 느끼셨나요?
    
     

     

     

    엄마의 메모가 들려주는 말 – 농 통역사 박수진의 이야기
    윤작가

    조회수 541

    202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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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4월 16일(수) 오늘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1년이 되는 날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그동안 우리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무엇이 변했을까? 세월호는 사람들의 기억에 희미해졌을까? 4월 12일(토), 광화문의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약속 시민대회’ 현장에 가서 확인해 보자.
     
     
    
    출처: 4.16연대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2025년 4월 12일, 기억·약속 시민대회장은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기억은 무엇이며 우리는 누구일까? 세상을 바꾸는 주체가 “기억하는 우리”라고? 과연 서십자각에서부터 광화문 앞까지 행사장엔 ‘기억하는 우리들’이 가득했다. 비가 오고 점점 바람이 세찬 날씨 속에도 기억하는 사람들 5천여 명이 다녀갔다(집회 측 추산).
     
    10년이 더 흘렀다고 세월호 참사를 잊는 게 아니라고 사람들은 보여주고 있었다. 윤석열 한 사람 파면으로 사회 대개혁이 보장되는 게 아님을 똑똑히 아는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생명 안전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갈까? 어떻게 사회 대개혁을 이룰까? 탄핵 집회장에 나갔던 그 깃발들이 펄럭였다.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슬로건은 ‘애도’와 ‘기억’과 ‘연대’의 힘이었다.
     
     
    출처: 4.16연대
     
     
    ‘기억하는 우리’ 중에 ‘세월호와 이태원 세대’가 돋보였다. 시민참여 마당 활동 속에도 자유 발언대 마이크에도, 우산 속에 듣고 박수 치는 청중에도 젊은이들이 많았다. 노래하고 춤추고 행사 진행하고 자원봉사하고, 모두 세월호와 이태원 세대 청년들이 했다. 아니, 세월호 참사는 나이와 세대를 통합해 이루는, 평범한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시민운동임을 볼 수 있었다.
     
     
    시민참여 마당, 놀며 체험하며 기억하며
     
    출처: 4.16연대
     
    시민들은 오후 2시부터 25개의 노란 ‘시민참여 마당’ 천막을 자유롭게 방문하며 즐길 수 있었다. 구경하고 체험하고 질문하고 대화하고 만들며 노는 공간이었다. 노란 리본을 만드는 사람, ‘기억 엽서’를 쓰고 ‘리본 리폼’을 하고 ‘기억의 벽’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사람. 노란 옷을 입은 4.16 가족협의회 부모님들의 공방과 기억 상점에서 기억 물품을 만들며 함께할 수 있었다.
     
    눈에 띄는 건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를 비롯한, ‘재난 참사 피해자 연대’라는 이름의 연대체였다. 사회적 참사는 결코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었다. 기간제교사노동조합원들은 “김초원 선생님~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배지를 나눠주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천막에서는 아이들이 세월호 책을 보고 있었다. ‘비건 감자튀김’ 푸드트럭은 이 광장의 다양성과 포용성의 상징처럼 보였다.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대한민국 재난 참사 연대기, 재난 참사 피해자 연대
    2023년 12월 16일 발족한 재난 참사 피해자 단체들의 연대체다. “누구도 우리처럼 오래, 우리만큼 깊이 고통받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마음으로 활동한다. 재난 참사 피해자 연대 소속 9개 단체는 다음과 같다.
    1) 2.18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2003. 2. 18): 대구 중앙로역 방화 화재로 최소 192명이 희생된 사건. 전동차 내장재, 1인 승무원제, 대구시와 대구지하철공사의 미흡한 초기 대처가 피해와 고통을 키웠다. 추모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2) 4.16 세월호 참사(2014. 4. 16): 인천발 제주행 여객선이 진도 해상에서 침몰, 국가의 구조 방임으로 단원고 학생 250명을 비롯한 승객 등 304명이 희생된 재난 참사이자 국가 폭력 사건.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생명 안전 공원 건립 등의 문제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3) 7.18 공주 사대부고 병영 체험학습 참사(구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2013. 7. 18): 학교 체험학습으로 참가한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공주 사대부고 2학년 5명이 희생된 참사. 학교의 관리 감독 미흡, 무자격 교관 운영, 태안군의 관리 감독 소홀, 복종의 문화 역시 참사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4) 가습기 살균제 참사: 1994년부터 17년 동안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로 수많은 시민이 심각한 건강 손해를 입은 한국 최초의 생화학 제품 재난. 2023년 12월 31일 현재 공식 사망자 1,843명, 피해 인정자 6,048명으로 현재도 매일 피해가 드러나는 중이며, 피해 인정 싸움이 진행 중이다.
    5) 광주 학동 참사(2021. 06. 09.): 학동 4구역 재개발을 위해 HDC현대산업개발의 하도급 업체가 철거를 진행 중 빌딩이 붕괴하면서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한 사건. 안전조치 미흡 무리한 철거 등이 주요 원인. 현재까지도 피해 보상과 추모 문제가 남아 있다.
    6)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1999. 06. 29.): 백화점이 무너져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부상한 사건. 단일 재난으로 최대 피해자 발생. 사주의 탐욕적 이윤 추구와 관계 공무원들의 결탁이 원인으로 지적되었으나 처벌은 미흡. 현재까지도 추모의 문제가 남아 있다.
    7)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2017. 03. 31.): 남대서양을 항해하던 철광석 운반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가 선사 폴라리스의 과실로 침몰해 22명이 희생된 사건. 원인 규명과 미수습자 수습이 해결되지 않았다.
    8)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참사(1999. 06. 30.): 유치원생 등 23명이 사망한 화재 사건. 모기향에 의한 발화로 결론지었지만, 유가족들은 누전과 관리 소홀, 비리 결탁 주장.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요구가 있다.
    9)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인천 학생 화재 참사, 1999. 10. 30.): 상가 화재로 청소년 등 57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친 사건. 불법영업과 공무원 간의 유착 비리가 원인을 제공했으나 피해자들(평균연령은 17세)의 호프집 출입에 대한 비난으로 2차 가해가 심각했다. 일부 피해자의 피해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출처: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영상]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 출처: 4.16연대
     
     
    [영상] 누가 이태원 참사 159번째 희생자를 만들었나 / 출처: 뉴스타파
     
    
    통합과 연대의 민주시민 발언대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2시 반부터 65분간 시민 10명이 자유발언대에 올랐다. 4.16 약속 지킴이 도봉 모임의 이경숙, 4.16 해외 연대의 유준조,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선물, 개인 시민 로라, 민주노총 노동안전 보건실장 최명선, A 학교 사안 공대위 교사 지혜복, 녹색연합 활동가 이다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박경석, 동물해방물결 소장 김도희, 전국 불안정노동 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김혜진. 가려졌던 목소리가 드러나는 자리이자 통합과 연대의 발언대였다.
     
    첫 발언자인 이경숙 님은 12.3 이후 첫 탄핵소추안이 부결되던 날 실망하고 집에 왔는데, 응원봉을 든 청년들은 그 추운 날 저녁에도 여의도를 지켰다는 걸 알게 돼서 부끄러웠다며 고백했다. “그때부터 각성한, 아니 계몽된 도봉 엄마들 카톡 방은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따듯한 차랑 주먹밥 만들어 학생들한테 주고 싶다. 그래, 좋아요, 주먹밥 만들까? 카톡 방에 있던 네 명 모두의 뜨거운 찬성으로 주먹밥 연대를 결의하였습니다.”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선물은 “모든 죽어간 이들에게 깊은 애도를 보내며” 세월호 세대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2014년 4월 16일, 고등학생 2학년이었던 저는 희생자의 대다수인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입니다. 같은 경험을 했는데 저는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죄스러웠습니다. 그때 사회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참사 피해자들과 함께 서겠다는 마음으로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세월호 참사 유가족 간담회에 참가했습니다.”
     
    동물해방물결의 김도희 활동가는 며칠 전 충북에서 조류인플루엔자로 살처분되는 닭들 “17만 9천 명(命)”을 소환했다. 더 이상 죽여서 지키는 사회에 익숙해져선 안 된다고. “지워진 생명을 다시 불러내는 일, 안전의 기준을 새롭게 다시 쓰는 일, 그리고 그 기준에 인간과 비인간, 모든 생명이 함께하는 일, 그 일을 하겠다”라고 다짐하며 호소했다.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과거를 되새기는 일이 아닙니다. 기억은 외침이 되어야 하고, 외침은 전환이 되어야 합니다.”
     
     
    세월호와 이태원 세대의 목소리
    본 행사는 비상 행동 활동가이자 군 인권센터 김형남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단원고 2학년 9반 고 진윤희 양의 어머니 가족협의회 김순길 사무처장은 “10년하고 1년, 기억·약속 시민대회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로 시작해 “가만히 있지 않겠다, 다짐하며 서로의 버팀목이 돼 온 시민들”에 대해 일일이 감사했다. “우리의 발걸음이 우리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로 지난해 12월 3일부터 이 광장에 응원봉을 들고나온 2030 세월호 이태원 세대라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청년들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라고.
     
     
    출처: 4.16연대
     
     
    발언대에는 박세희 4.16연대 공동대표, 송해진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호림 내란청산사회대개혁비상행동 공동의장, 남아름 영화 <애국 소녀> 감독이 차례로 올랐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재현 군의 어머니 송해진 님의 목소리는 봄비에 젖어 있었다. “소중한 자녀를 잃은 아픔을 안고, 세월호 부모님들이 지난 11년간 감내해 오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박근혜와 윤석열, 이 두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일어난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는 결코 우연한 사고가 아닌, 국민의 생명보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우선시한 결과라 지적했다. “두 정권 모두 참사 이후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비난과 혐오를 제어하지 않았고, 오히려 진상 규명과 책임 소재 파악을 방해했다"라는 사실을 말할 때 “비통한 마음”을 고백했다.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이태원 참사의 진실도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되어 공개되지 않고 봉인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지 2년 반이 되었음에도, 이태원 참사 특조위는 아직 진상조사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유가족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참사의 모든 진실을 밝히고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날까지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순 없지만, 우리는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 부디 우리 아이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이 긴 여정에 저희와 함께해 주십시오. 이 땅의 아이들이 안전한 일상을 누리며 각자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모든 재난 참사 피해자들과 연대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겠습니다.
    - 고 이재현 군 어머니 송해진 님 발언문 중
     
    16살 고등학생 고 이재현 군(2006. 4. 17.~ 2023. 12. 12.)은 이태원 참사의 159번째 희생자로 세상을 떠났다. 참사로 가장 가까운 친구 2명을 잃고 극심한 죄책감과 2차 가해로 고통받았다. “이태원에 놀러 간 게 잘못”이라는 말을 비롯해, 확인되지 않은 루머나 허위 정보 유포, '순수한 유가족다움' 강요, 노골적인 조롱·혐오 표현, 성희롱 및 욕설 등이었다. 정부는 2차 가해에 적절한 대처 대신 ‘상처를 딛고 일어나려는 본인의 노력과 의지가 문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세심한 참사 생존자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계속 지적하고 있지만 달라진 게 없다.
     
     
    남아름 님은 세월호 세대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애국 소녀>를 만든 감독이다. 자신을 4.16 청년 세대라고 소개하면서도, 세월호에 대한 부채감과 복잡한 감정에 도망치기 바빴던 20대를 다룬 고백이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그러나 세월호가 가르쳐 준 가장 큰 것은 ‘연대’하는 데에 어떤 ‘자격’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고, ‘참사’란 그저 지나칠 남의 일이 아니라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할 ‘우리’의 일이라는 것을 배웠기에 용기를 냈단다.
     
     
    20살의 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또래가 세월호를 계기로 처음 광장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때 어른들은 저희 세대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세월호 세대’, 4.16 세대라 명명된 저희 또래는 “그러면 나는 어떤 어른이자 시민이 되어야 할까?”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풀리지 않은 질문을 20대 내내 품고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세월호가 청년 세대에게 던졌던 그 질문들이 우리를 2024년 계엄의 광장으로 불러들였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무장한 군인들이 총을 들고 우리를 위협하더라도,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세월호의 노란 리본은 우리를 엮어주는 연대의 끈이자 신뢰의 안전망이 되었고, 세월호는 우리가 다양한 색깔의 깃발과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서 춤출 수 있게 해 준 프리즘이었습니다. 20살의 세월호가, 30살의 계엄령을 막아주었습니다. 윤석열 탄핵 결정문에는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라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덧붙이고 싶습니다. 세월호 이후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고.
    - 남아름 님 발언문 중
     
     
    
    출처: 4.16연대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기억하는 사람들은 행사 영상에도 있었다. 현장에도 참가한 《저주 토끼》의 정보라 작가는 영상에서 세월호가 “시민운동의 문화를 바꾸었다”라고 정리했다. 11년 전 고3이던 세월호 세대 가수 ‘버둥’에 이어 나온 3인조 가수 ‘브로콜리 너마저’는 노래 ‘졸업’을 부르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이 노래를 만들면서 이 시기 지나면 이 노래 부를 기회 많이 없겠다고 생각했다”라고. 그런데 세상이 더 어렵고 복잡해지는 일들이 많다며 노래를 시작했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넌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청계 광장에서 집회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엄마의노란손수건분들이 거기서 서명 받으니까 저도 그냥 껴서 서명 받고. 그러다 장마잖아요, 7월이면. 서명지가 젖어요. 그러면 몸으로 가리고 이렇게 밑에 집어넣고 그랬었는데 지나가던 분이 편의점 앞에 파라솔 있잖아요. 그걸 사 오셨더라고요. 10만 원 줬대요. 그런 돌봄의 형태로 표현하는 분이 되게 많았고.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나도 애 키우는 엄마라서, 나도 아빠라서, 나도 선생님이라서, 그냥 지나가던 사람 아무나 가서 연대하고. 모두가 환영받고 모두가 평등하게 고생하고. 시민운동의 문화를 바꾼 굉장히 결정적인 계기가 세월호 부모님들의 활동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 현재의 광장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평등인 거 같아요, 평등. 안전.”
    - 정보라 작가
     
     
    출처: 416합창단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기억·약속 시민대회는 4.16 합창단의 노래와 함께 마무리됐다. 비가 잦아든 덕분에 합창단 순서 직전에 무대의 천막이 치워졌다. 노란 단복을 입은 30명의 목소리로 ‘돌덩이’와 ‘봄날’이 울려 퍼졌다. 마지막 노래 '화인'과 함께 “반드시 진상 규명” “끝까지 책임자 처벌” 등이 적힌 작은 현수막이 단원들 손에 손에 펼쳐졌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이제 4월은 내게 옛날의 4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약속 시민대회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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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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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도종환 시인은 시 화인에서 4월을 이렇게 말한다. “이제 4월은 내게 옛날의 4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도 지난 날의 바다가 아니란다. 2014416일 그날 때문이다. 그게 어디 시인 한 사람만의 고백일까. 11년 전 4월 그날 이후 삶이 바뀌었노라, 고백하는 한 사람을 소개한다. 4.16 합창단원이자 활동가 파주 시민 김서원(도로시) 님과의 일문일답이다.
     
     
    사진출처: 416합창단
     
     
    자기소개와 근황 인사 부탁한다
    파주에 있는 여성 위기 청소년 쉼터에서 밥하는 일을 한다. 24시간 생활시설인데 활동가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울타리가 되도록 맛있는 밥을 해 주는 게 내 일이다. 청소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게 내 즐거움이다. 예산에 맞게 좋은 재료 공급 시스템을 만들었다. 매주 월요일 퇴근 후 안산으로 4.16 합창단 연습하러 가고, 다양한 공연 활동도 한다.
     
    윤석열 파면 결정 나오는 순간 제일 먼저 4.16가족들이 떠올랐다. 4.16 합창단에서 노래한 건 3년이지만 세월호 가족들 곁에 있는 건 11년째다. 세월호 참사로 나는 정치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됐다. 정치에 무관심한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투표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유언으로 남기고 싶을 정도다.
     
    사람들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자기 인생을 나누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내 삶도 그렇다. 그날이 나를 깨웠다.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며, 다른 삶을 살게 해줬다. 남태령에 트랙터 몰고 온 농민들 얘기 중에 그곳에 세월호 아이들이 와 있는 거란 말이 있었다. 맞다. 나도 합창단에서 노래할 때 항상 아이들이 함께 있음을 느낀다.
     
     
    20140416 참사 당일의 기억은?
    애들 키우고 닥치는 대로 일하고 아파트 평수랑 좋은 대학 보낼 생각하고 살았다. ‘애들은 왜 나를 따라주지 않나, 남편은 왜 이렇게 무식할까, 나는 왜 이렇게 고생할까라며 늘 화가 차 있었다. 노는 날도 놀 줄 모르고 신나는 생각은 죽어도 못 하는 일 중독자였다. 그런데 수학여행 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했다고? 갑자기 내 삶이 다 부질없어 보였다.
     
    당일 제일 먼저 찾은 게 우리 애들이었다. 애들이 어디 있지? 아들하고 연락이 돼서, 배고프지, 라며 짜장면을 사줬다. 짜장면을 먹이는데 더 할 말이 없었다. 우리 애들은 교복 입고 이러고 다니는데 그 애들은 못 돌아왔잖아. 더 얘기할 수가 없고 마음이 안 잡혔다.
     
     
    생일 가족 포스터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4.16 활동으로 연결되는 계기가 있었나?
    갈피를 못 잡다가 지역에서 진실 규명을 위해 서명받는 사람들이 있길래 참여하고 그 곁에 있게 됐다. 2015년 들어서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 모임을 한다는 말이 들렸다. ‘, 그럼 내가 음식을 할 수 있겠다싶어 김경환 목사님과 네댓이 안산으로 갔다.
     
    가 보니 안산의 치유 공간 이웃이었다. 우리는 각각 작은 개다리소반에 밥상을 받았다. 정말 정성스럽게 차려진, 울컥 뜨거운 눈물이 나는 밥상이었다. 가족들에게 차려지는 밥상이라는 생각에 나는 계속 울면서 밥을 먹었다. 이영하 선생님이 그러더라. “이곳은 야전병원이라고. 투쟁하고 다치고 지치면 잠깐 쉬어 가는 곳이라고. 그게 4.16 활동과의 연결이었다.
     
    봉사자 엄마들이 금요일엔 돌아오렴(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창비, 2015) 책을 소리 내어 읽는 모임을 만들었다길래 함께 했다. 혼자서는 엄두를 못 내던 책을 같이 낭독하며 실컷 울었다. 점차 노란 리본을 만든다든가 동네에서 세월호 특별법 서명대에도 섰다.
     
     
    치유공간 이웃(이웃): 20149~20212월까지 안산에 있었던 치유 공간. 정신과 의사 정혜신·심리기획자 이명수 부부가 제안하고 시민단체 활동가 이영하 전 대표(50)가 실무를 맡았다. 수많은 활동가와 봉사자들이 4.16 가족들이 안심하고 울고, 편하게 밥 먹고 쉴 수 있게 함께 했다.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 모임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밥은 먹었어요?(이영하, 걷는사람, 2022)와 영화 <생일>(2019, 이종언 감독)에 이웃 이야기가 더 있다.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 모임과 밥 이야기
    첫 생일 상차림을 위해 연 계좌에 80만 원이 모였다. 양을 대중 못해 장 보고 나니 딱 만원 남더라. 이 정도로 돈이 든다면 내 카드 긁을 각오까지 했다. 그렇게 준비된 영만이 생일 모임에 단원고 아이들과 사람들이 엄청 왔다. 50인분이란 음식이 100명 먹고도 남아, 화수분이라며 싸 주었다.
     
    다음 모임은 다음팀이 단톡방을 열어 준비했다. 별이 된 아이 이야기를 공유하고 좋아하는 메뉴로 준비했다. 나는 그런 팀을 조직하고 식재료를 연결하고 음식도 만들었다. 수많은 봉사자들이 함께하는 이웃밴드에 모여들었다. 저명한 여성들인 십자매회를 비롯해 신부님, 선교사님 그리고 시민들의 후원과 봉사로, 매달 40만 원 정도로 생일 모임을 할 수 있었다.
     
    2015년 겨울에는 가족들을 위해 김장을 했다. 고양파주 생협과 유기농 식당 네트워크에서 재료를 댔다. 괴산 농부님들이 연결됐다. 몇백 포기 배추가 트럭으로 오고, 성당에서 기도하던 할머니들이 나와서 배추를 절이고 소금, 고춧가루, 깨 등을 아낌없이 가져오고, 뒷정리를 도왔다. 가족들께 보내고 쌍용차나 투쟁하는 분들에게도 보내고, 이웃에서 먹을 수 있었다.
     
     
    단원고 2학년 6반 고() 이영만(1998.2.19.~2014.4,16.) 은 형제 중 막내로 약하게 태어났지만 건강하게 자라 축구를 좋아하고 5km 마라톤에서 상을 받았다. ‘미소천사로 밝고 순한 성격에 엄마와 학교와 친구들을 좋아하고 공부도 잘해 우주공학자를 꿈꾸었다. 2023이영만 연극상이 제정됐다.
     
     
    4.16 활동 이전에도 음식하기 좋아했나?
    나는 41남 중 막내딸인데, 아버지가 내 밑에 남동생이 난 후로 서원이가 제일 예쁘다라는 얘기를 자주 하셔서 그렇게 알고 컸다. 어깨동무 잡지에서 나는 요리 칼럼을 제일 먼저 읽는 아이였다. 신문도 잡지도 요리 쪽을 1번으로 봤다. 중학교 때 레시피를 보고 낯선 피자를 직접 만들어 봤다. 할라피뇨, 피망 등 없는 건 집에 있는 재료로 대체했다.
     
    엄마가 정육점에서 살이 치렁치렁하게 큰 돼지고기 덩이를 사 온 적이 있는데 내가 신문에 나온 레시피를 보고 돈까스를 만들었다. 소금 후추만 쓰란 법 있냐, 간마늘로도 재고, 양파로, 우리 아버지 좋아하시는 청양고추 양념으로도 재어 튀겼다. 온 식구가 얼마나 맛있게 먹겠어. 입 짧은 남동생과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니, 우리 엄마는 늘 내게 고마워했다.
     
    언니들은 나를 요리 천재라고 불렀다. 장사하고 늦게 돌아오는 엄마에게 내가 만든 음식으로 밥상을 차려 드리면 서원이 때문에 내가 한숨 돌린다라며 좋아하셨다. 엄마가 아침에 도시락을 10개 싸던 시절, 내가 만든 반찬 덕에 엄마 수고가 줄어드는 게 좋았다.
     
     
    참사 이후의 달라진 삶 이야기
    돈도 안 벌고 안산과 파주를 오가며 생일상 차리는 일을 한 2년 했다. 아이디어로 생각하던 음식을 다 만들어 봤다. 그러나 절대 나 혼자 한 게 아니란 걸 말하고 싶다. 연대의 힘을 배웠다. 같이 메뉴 짜며 마음을 나눈 유가족들과 십시일반 힘 보태 함께 한 활동가들이 있었다.
     
    그런 중에 나는 이혼했다. 2015년 봄, 불교팀 주방에서는 고기 요리를 할 수 없어서 우리 집으로 장을 봐서 모였다. 남편이 폭발해 소리쳤다. “세월호 참사 안 났으면 어찌 살았겠냐, 죽은 아이들 생일상 차리느라 가족들 밥은 안 차려주냐?” 그는 상을 뒤엎고, 빌려온 큰 팬을 내 쪽으로 던졌다. 남편이 일베처럼 보였다. 그날 나는 온 가족을 모아 놓고 이혼을 선언했다.
     
    살아온 날들을 부정해야 했고 다른 일은 눈에 들어오지 않던 때였다. 내 마음은 그를 용납할 수 없었다. 이혼이 정리되는 몇 달간 남편이 현관문 열고 들어오면 내 몸이 아프고 소화가 안 됐다. 딸이 나서서 이혼 서류를 갖다 줄 정도였다. 그는 안 하겠다고 버텼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18년의 결혼 생활, 연애까지 25년의 관계가 그해 말 허무하게 끝났다.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이혼 후에도 계속 활동가로
    내가 저질렀으니 더 절실하게 활동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시국에 민중총궐기 촛불집회가 매주 있었다. 생일 모임 후에 벙커 원 교회 친구들과 토요일에 청계천으로 갔다. 매주 집회 광장에서 뭘 해볼까 궁리하다 주먹밥을 만들어 팔기로 했다. 잘 안 팔리더라. 그래서 그냥 나눠줬더니 사람들이 돈을 던지고 가더라. 그 후 뭐든 나눔으로 했다.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 청와대 앞 법외 노조, 비정규직 집회, 블랙리스트 예술인들. 노숙 농성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토요일 새벽에 밥을 해서 싸우는 분들에게 가서 나누었다.
     
    가진 것 까먹으며 살았다. 고기 안 사 먹고 애들 학원 안 보내고 보험 깨고 적금 해지하고 연금 없어지고 전세가 월세로 줄었다. 불만 많던 아들이 생일 모임에 참여해 보고 반항을 끝내더라. 세월호 당시 중2였던 딸도 생일 모임에 다녀간 후 엄마를 이해하더라.
     
    박근혜 탄핵 후 지역에서 소수당 진보당에 입당했다. 4.16 활동할 때 제일 묵묵히 함께한 그분들과 파주에서 4.16과 함께 노래하는 일을 시작했다. 음식 만들던 사람들과 함께 공모사업으로 파주 4.16 합창단을 3년 하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안산 4.16 합창단까지 하게 됐다. 4년 정도 한 동네 부엌 천천히에서 청소년 시설로 올해 직장을 옮겼다.
     
     
    그동안 소진되는 느낌은 없었나?
    성과 위주의 인간이었는데 왜 없겠나. 파주 시민 합창단 3년 차 공연을 지역에 있는 5개 팀 연합으로 잘 올린 후였다. 장애인 가족팀이 40여 명이 참여해서 한 100명이 했다. 행복하게 끝나고 손뼉 치고 각계 인사들이 인사하고 있는데, 김서원 때문에 불편한 일이 많다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페이스북에 관련 내용이 올라왔다. 한 번도 생각 못한 일이었다. 내 욕심대로 활동한 적 없다고 자신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맡은 일을 많이 정리하고 직장 일과 4.16 합창단만 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여기저기 삐끗대는 몸도 돌보며 자신에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4.16 참사 11주기를 맞는 소회는?
    11년간 할 만큼 활동하고 나니 속에 화가 많이 풀리고 너그러워졌다. 대규모 음식을 몇 년 하다 보니 나는 음식 전문가가 돼 있었다. 이제 나는 몸도 마음도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성과 위주의 인간이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변했다. 밥하는 일과 파주랑 안산 4.16 합창단 활동이 날로 재미있다.
     
    그런 중에 작년에 엑스 남편하고 재결합하고 혼인신고도 했다. “당신은 활동 자유롭게 하고 내가 이제 당신한테 은혜 갚게 해 줘라는 그의 말에 내 마음이 열린 거다. 밥이나 사나 했더니 그는 점점 밥을 해 주고 싶다더라. 그는 원하던 삶을 되찾은 셈이다. 가족밖에 모르는 성실한 남자였으니까. 바꿔 말하면 나에게도 완벽주의를 요구하고 자식과 남편만 바라보길 원했더랬다. 그 집착과 강요와 구속이 내겐 화로 쌓였던 거다.
     
    4.16 참사와 함께 깨졌던 관계가 4.16 활동 덕분에 다시 이어진 거다. 남편은 노년에 내 수발을 잘 들려고 자기 몸 관리 열심히 했다는 사람이다. 우리 관계도 이전의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나이 든 연인이 되었다. 내가 4.16 합창단 공연하고 늦게 오는 날 그는 세탁기 돌리고, 냉장고 채우고, 맥주 두 캔 먹을 안주 준비해 놓고, 나 데리러 나온다. 돌아보면 이혼은 신의 한 수였다. 아니면 우리가 서로의 가치를 몰랐을 거다.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이후의 계획이나 꿈은?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 이젠 장사하는 곳에서 밥을 상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 소질이 없다. 내 엄마, 아버지에게 밥해줬던 재미, 우리 엄마가 늦게 들어왔을 때 내가 밥 퍼서 김치하고 줘도 세상에, 서원이 덕분에 엄마가 이렇게 밥을 맛있게 먹는구나.”라며 내 자존감을 키워준 밥이다. 밥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해 주는 일이 나는 즐겁다. 매일 출근할 때 일하러 가는 마음보다는 아이들을 키우러 가는 마음이다. 먹이고, 입히고, 안전하게 재우고, 내 밥을 먹고 애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더불어 4.16 가족 곁에서 4.16 합창단을 오래 하는 게 꿈이다.
     
     

     
     
     
    이제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꿀벌

    조회수 448

    2025-04-11
  • 사진출처: 기획재정부
     
     
    보이스피싱 범죄는 날로 진화하며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검찰, 경찰 등 공공기관을 사칭한 사기 수법이 증가하면서 국민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보이스피싱 서류 진짜인지 알려줘 콜센터’, 일명 찐센터를 운영하며,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을 위한 대응 체계를 마련하였습니다. 찐센터는 국민들이 수사기관에서 발송한 것으로 보이는 서류나 전화의 진위를 즉각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입니다. 본 글에서는 찐센터의 개념, 주요 기능, 이용 방법, 보이스피싱 범죄의 문제점 및 예방책에 대해 상세히 다루겠습니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문제점
     
    1. 금전적 피해 발생
    보이스피싱 범죄는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금전적 피해를 입히는 심각한 범죄입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검찰, 경찰, 금융기관 등을 사칭하여 피해자로부터 금전을 편취하는 방식으로 범죄를 저지릅니다. 대표적인 수법으로는 검찰을 사칭해 "당신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되었다"라고 속이며 예금을 안전한 계좌로 이체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또한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해 "대출이 승인되었으니 보증금을 송금해야 한다"라거나 "기존 대출을 상환해야 한다"라는 등의 거짓 정보로 피해자의 돈을 빼앗습니다.
     
    이러한 사기 수법은 주로 신속한 결정을 요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범죄 조직은 피해자가 의심할 시간을 갖지 못하도록 협박하거나, 수사기관을 사칭해 불안감을 조성하여 빠르게 돈을 송금하도록 만듭니다. 특히, 노인층이나 금융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러한 협박에 쉽게 속아 송금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이스피싱에 당한 피해자는 대부분 송금한 돈을 되찾기가 어렵습니다. 사기범들은 피해자가 돈을 보낸 직후 이를 여러 계좌로 분산시키거나 해외로 송금하여 추적을 어렵게 만듭니다. 금융기관에서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짧기 때문에, 피해를 입은 후 빠르게 조치하지 않으면 돈을 돌려받기 어렵습니다.
     
    또한, 보이스피싱을 통해 대출을 유도하는 경우 피해자는 원치 않는 부채를 떠안게 되며, 이로 인해 심각한 경제적 부담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보이스피싱은 단순한 사기가 아니라 개인의 재산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범죄입니다. 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의심스러운 전화나 메시지를 받았을 때 즉시 확인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심리적 피해와 2차 피해
    보이스피싱 범죄는 단순한 금전적 피해를 넘어, 피해자에게 심각한 심리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손실을 입은 피해자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자책감에 시달리며, 이는 정신적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자신의 실수로 인해 가족의 재산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으며, 일부 피해자는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 등의 정신적 질환을 겪기도 합니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사실을 숨기려고 합니다. 사기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창피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특히 가족들에게 피해 사실이 알려졌을 때 비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피해자가 혼자 문제를 감당하게 만들며, 결국 더욱 심각한 심리적 고립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당한 경제적 손실은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노후자금을 모두 잃어버린 노인, 결혼자금을 사기당한 신혼부부, 학자금 대출을 빼앗긴 대학생 등 피해 사례는 다양합니다. 보이스피싱은 단순한 금융 사기가 아니라 개인의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범죄입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2차 피해입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개인 정보가 유출된 상태이기 때문에, 또 다른 사기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기범들은 피해자의 정보를 다른 범죄 조직과 공유하며, 이후 추가적인 금융사기나 협박 전화를 걸어 추가적인 피해를 유도합니다. 또한, 피해자가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이 유출될 경우, 사회적으로 신뢰를 잃게 되어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보이스피싱은 단순한 금전적 피해를 넘어, 피해자의 정신 건강과 삶 전반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칩니다.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상담과 지원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사회적 신뢰 저하
    보이스피싱 범죄가 증가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고 있습니다. 검찰이나 경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사례가 많아지면서, 실제 수사기관에서 걸려오는 전화조차 믿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법 집행 기관의 업무 수행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수사기관에서는 중요한 범죄 수사나 행정 절차를 위해 국민들에게 전화를 걸어 협조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스피싱이 만연해진 현재 상황에서는, 이러한 전화조차도 의심을 받게 됩니다. 수사기관의 정당한 요청이 보이스피싱으로 오해받아 국민들이 협조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면, 법 집행의 효율성이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의 전화 상담도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은행 직원이 고객에게 금융상품 가입이나 대출 상담을 위해 전화를 걸어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이스피싱으로 의심하며 응답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정당한 금융 서비스가 위축되고, 금융기관과 고객 간의 신뢰 관계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으로 인해 사회적 불신이 심화되면, 국가 기관과 금융기관이 수행하는 중요한 업무에 차질이 생길 뿐만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피해를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수사기관이 국민의 신고를 신속하게 처리하기 어려워질 수 있으며, 금융기관의 보안 정책이 강화되면서 고객들이 더 많은 불편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보이스피싱 범죄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신뢰 체계를 흔드는 심각한 범죄입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금융기관이 협력하여 국민들에게 보이스피싱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식적인 확인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민들도 의심스러운 전화를 받았을 때 곧바로 찐센터와 같은 공식적인 기관을 통해 확인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찐센터란 무엇인가?
     
    찐센터는 서울중앙지검이 운영하는 보이스피싱 진위 확인 서비스였으나 최근 대검찰청으로 이관되었습니다. 찐센터는 국민들이 검찰을 사칭한 서류나 전화에 속지 않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최근 검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증가하였는데,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허위 공문서나 가짜 구속영장에 속아 금전적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이스피싱 사기 수법을 막기 위해 검찰이 직접 나서서 보이스피싱 여부를 확인해주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찐센터가 도입되었습니다.
    찐센터를 운영하는 가장 큰 목적은 국민들이 보이스피싱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찐센터를 통해 검찰 사칭 서류의 진위를 즉시 확인함으로써 피해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특히, 노인이나 금융 사기에 취약한 계층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으며, 실시간 상담을 통해 빠른 대응이 가능합니다.
     
    찐센터의 주요 기능
     
    1. 보이스피싱 서류 및 전화 진위 확인
    찐센터에서는 검찰, 경찰, 금융기관 등을 사칭한 문서나 전화의 진위를 신속히 확인해줍니다. 국민들이 의심스러운 서류를 사진으로 찍어 찐센터로 보내면, 해당 문서가 실제 검찰에서 발송한 것이 맞는지 확인한 후 답변을 제공합니다.
     
    2. 의심 전화번호 조회 서비스
    보이스피싱 조직은 검찰청, 경찰청, 금융감독원 등의 대표번호를 사칭하여 전화를 걸기도 합니다. 찐센터에서는 국민들이 받은 전화번호가 실제 수사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번호인지 확인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허위 전화번호에 속아 피해를 입는 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3. 실시간 보이스피싱 상담 지원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실시간 지원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국민들이 찐센터에 연락하면 수사관이 직접 응대하여 해당 상황이 보이스피싱인지 판단해주고, 대처 방법을 안내해 줍니다.
     
    찐센터 이용 방법
     
    1. 찐센터 연락처 및 운영 시간
    찐센터는 국민들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됩니다. 언제든지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찐센터에 연락하여 신속한 확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찐센터의 공식 전화번호는 **010-3570-8242**이며, 문자나 전화로 상담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2. 서류 진위 확인 절차
    보이스피싱 조직은 검찰이나 경찰을 사칭하여 가짜 구속영장, 공문서 등을 보내 피해자를 속이는 수법을 사용합니다. 만약 검찰이나 경찰 명의의 서류를 받았다면, 먼저 해당 문서를 사진으로 촬영해야 합니다. 이후 찐센터 전화번호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 문서의 진위 확인을 요청하면 됩니다. 찐센터의 담당 수사관이 해당 문서를 확인한 뒤, 이것이 실제 수사기관에서 발송한 문서인지 아니면 보이스피싱 조직이 위조한 서류인지 판별하여 답변을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에 속지 않고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3. 보이스피싱 전화 확인 방법
    수사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공식 전화번호를 변조하여 전화를 걸거나, 검찰청·경찰청 등의 기관명을 내세워 신뢰를 얻으려 합니다. 만약 검찰이나 경찰에서 걸려온 전화가 의심스럽다면, 먼저 해당 전화번호를 기록해야 합니다. 이후 찐센터에 전화번호의 진위 확인을 요청하면, 담당자가 해당 번호가 실제 검찰·경찰·금융감독원 등의 공식 전화번호인지 확인한 후 답변을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은 사기 전화를 신속하게 식별하고 피해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한 수칙
     
    1. 수사기관이 금전을 요구하는 경우 100% 사기
    검찰, 경찰, 금융감독원 등 공식적인 국가 기관에서는 절대 개인에게 전화를 걸어 계좌 이체를 요구하거나, 특정 계좌로 돈을 송금하라고 지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은 이러한 기관을 사칭하여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고, 마치 수사 중인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겁을 주고 협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귀하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되어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안전한 계좌로 돈을 이체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말하며 금전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100% 사기이므로 절대 응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수사기관을 사칭한 전화가 걸려오면, 즉시 전화를 끊고 찐센터에 문의하여 해당 연락이 보이스피싱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피해자가 겁을 먹고 빠르게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침착하게 대응하고 본인이 직접 검찰청이나 경찰청의 공식 번호로 연락하여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2. 의심스러운 링크 및 앱 설치 금지
    보이스피싱 조직은 검찰청, 경찰청, 금융기관 등을 사칭한 가짜 웹사이트 링크를 발송하거나, 피해자가 특정 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하여 피해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앱에는 악성코드가 포함되어 있어, 설치하는 순간 피해자의 휴대폰이 원격 조종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이러한 악성 앱을 통해 피해자의 문자메시지를 가로채거나, 금융거래 정보를 탈취하며, 심지어 원격으로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기도 합니다. 특히, "검찰청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라거나 "금융감독원의 보안 앱을 깔아야 한다"라는 등의 요구는 모두 사기이므로 절대 응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로 전달된 의심스러운 링크는 클릭하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만약 실수로 클릭했다면, 즉시 인터넷 연결을 차단하고 찐센터나 경찰청에 문의하여 추가 조치를 받아야 합니다. 스마트폰의 보안 강화를 위해 공식 앱스토어(구글 플레이스토어, 애플 앱스토어) 외의 경로에서 앱을 다운로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며, 금융기관이나 수사기관과 관련된 내용은 반드시 공식 홈페이지에서 직접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3. 낯선 전화번호는 반드시 확인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은 발신 번호 변조 기술을 사용하여 검찰청, 경찰청, 금융감독원 등의 공식 전화번호로 위장한 전화를 걸기도 합니다. 따라서 전화를 받았을 때 상대방이 검찰이나 경찰을 사칭하더라도, 먼저 해당 기관의 공식 대표번호를 직접 찾아 연락해보는 것이 안전한 방법입니다. 수사기관에서 전화가 왔다고 주장하는 경우, 상대방이 제시하는 정보를 무조건 믿기보다 직접 검찰청이나 경찰청의 공식 대표번호를 찾아 전화하여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낯선 번호로 온 전화를 받았을 때, 상대방이 금전적 요구를 하거나 개인정보를 묻는다면 일단 전화를 끊고 찐센터에 문의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특히, "당신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라거나 "검찰 조사가 필요하니 신분증 정보를 알려달라"라는 식의 요구는 모두 사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민들은 이러한 전화가 오면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공식 채널을 통해 확인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찐센터 전화번호 및 쉽게 외우는 방법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하고 검찰 사칭 사기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찐센터 전화번호를 기억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찐센터의 공식 전화번호는 010-3570-8242입니다.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 번호로 즉시 연락하면 수사관이 직접 보이스피싱 여부를 확인해 줍니다. 찐센터 전화번호를 쉽게 기억하는 방법은 숫자를 의미와 연결하여 외우는 것입니다. "삼오칠공, 팔이사이"라고 읽으면, "진짜()와 가짜(사기)를 가려주는 사이"라는 의미로 기억하기 좋습니다. 숫자를 단순한 나열로 외우기보다 의미 있는 문장으로 연결하면 기억에 오래 남고, 긴급한 순간에도 빠르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며, 순간의 판단 실수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찐센터 전화번호를 미리 기억해 두고,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는 순간 즉시 연락하여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찐센터의 성과 및 향후 계획
     
    찐센터는 운영 이후 많은 국민들에게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으며, 검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범죄를 차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찐센터를 통해 보이스피싱 의심 서류나 전화번호를 즉각 확인할 수 있어, 국민들이 불필요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찐센터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보이스피싱 조직이 검찰을 사칭하는 수법이 점점 줄어드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찐센터는 더욱 많은 국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며,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여 더욱 신속하고 정확한 진위 확인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입니다. 또한, 금융기관 및 이동통신사와 협력하여 보이스피싱 차단 시스템을 강화하고, 피해 예방을 위한 교육 및 홍보 활동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보이스피싱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범죄이므로, 국민들은 찐센터를 적극 활용하여 피해를 예방하고, 의심스러운 상황에서는 즉시 상담을 받아 피해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빠른 대처와 정확한 정보만이 보이스피싱 범죄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검찰 사칭? 가짜 서류? 찐센터로 한 방에 확인하자!
    주야

    조회수 385

    202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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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Z세대. 각종 이슈의 중심에 서 있어 다양한 수식어가 붙은 세대다 보니 때론 청년들조차도 젊은이에 대하여 다소 모르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따라서 스스로에 대하여 알아가는 시간, 특히 우리를 위한 공론장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는 청플이라는 청년 활동가 네트워크를 형성해 청년들의 목소리를 퍼뜨리고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는데요. 이웃 청춘들의 소식을 듣기 위해 청플 2차 회의를 다녀왔습니다!
     
    참고) 청플 2기 발대식/1차 회의 by 에디터 다름
     
     
    왼 : 청플2기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는 회의모습, 오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정선미 운영총괄실장님의 인사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이번 회의는 14명의 위원이 참여하였는데요. 두 번째 모임인 만큼 본격적으로 청플 활동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한 자리를 가졌습니다. 또한 최대한 많은 위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는 형태로 진행하였습니다. 안건으로는 총 4가지의 내용이 올라왔는데요. 1. 위원별 현황 공유 2. 청년 활동가 간담회 논의 3. 12일 네트워크 캠프 논의 4. 차기 회의 및 정례회의 일정 조율
     
    주요 안건만 추려 요약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 위원별 현황
    청플2기 정구현 위원의 발언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 지역·주제별 정보 및 현안 공유  
    각 위원의 활동 지역·주제별로 정보와 주요 현안들을 공유하였는데요. 정구현 위원은 의정부의 임금 체불 현황과 미흡한 기관의 대처에 대한 아쉬움을 설명하였습니다.  김정현 위원장은 현금 사용 선택권과 과도한 디지털 전환 행정에 대한 문제점, 통과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과 관련해 영장 없는 구금이 가능한 외국인 보호소 운영에 대한 의제를 공유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파주 용주골 성 노동자 강제 철거와 성 노동자의 인권에 관하여 발언하였습니다.
     
    ► 위원별 네트워크 공유
    위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기관이나 단체에서 소개하고 싶은 자료를 공유하였습니다. 이종경 위원은 이천청년정책발전소와 지역 청년들의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한 노력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김정현 위원장은 경기도미래세대재단의 '2025 경기 청년 연구 랩업' 사업과 경기도와 이클레이의 '세계 지방정부 기후총회' 사례를 언급하며 지역사회와 환경 문제에 대해 고민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김보라 위원은 센터의 '공익해봄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공익활동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시도에 참여를 독려하였습니다.
     
     
    2. 청년 활동가 간담회
    청플2기 김정현 위원장 발언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청플 위원별 네트워크를 심층 분석하기 위한 목적의 간담회 방식에 대해 토의하였는데요. 이와 관련해 여러 위원이 의견을 냈습니다. 예로 최승환 위원은 공익 활동의 실태에 대해 기존 활동가들과 얘기하고 기업과의 협업 방식 등 새로운 활동 방식을 탐구해 보는 시간을 제안하였습니다. 서한솔 위원은 다양한 영역(홈리스트라우마기후 등)의 활동가를 만나고 동부/서부권의 참여도 장려하자고 주장하였습니다. 최재엽 위원은 공익 활동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작가/교수진과 소통하고 난 후 네트워크 캠프를 통해 더욱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고 제안하였습니다.
     
    토론 끝에 최종적으로 간담회는 523일 진행하며 위원별 3분 자기소개와 여러 청플을 위한 제안을 다루고 모임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자고 결정하였습니다.
     
     
    3. 12일 네트워크 캠프
     
    12일 네트워크 캠프는 의견을 더 추려 529일 정례회의 때 더 많은 논의를 이어가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4. 담당자 인터뷰
     
    청플을 담당하는 정책협력팀 강민진 대리와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였는데요. 2년차 청플 담당자로서 사업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것 같았습니다.
     
    Q. 2차 회의를 마치고 느낀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은 무엇일까요?
    2차 회의는 첫 공식 과정인 1차 간담회를 구상하는 자리였기에 위원들의 고민과 아이디어가 살아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좋았던 점은 위원들 사이의 함께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주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 의미 있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논의 시간이 길어져 향후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의사결정 구조도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Q. 청플 2기 과정에서 제일 신경 쓴 점과 바라는 성과는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공익 활동을 하는 청년들이 서로 그물처럼 엮이고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단기 성과보다는 서로 지지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관계 형성과 지속성을 중요시하였습니다. 바라는 성과는 위원들이 서로를 통해 소속감을 느끼고 공익 활동의 의미를 재발견하거나 확장해 나가는 경험을 얻는 것입니다.
     
    Q. 올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는 청년층의 관심을 이끄는 데 주목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러기 위해서 청플 과정 중 비활동인 청년을 모집하기 위한 현장 활동도 계획돼 있을까요?
    청년 공익해봄은 일반 청년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공익 활동을 처음 경험해 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입문형 사업입니다. ‘청플은 다음 단계에서 공익을 업으로 삼고 있는 실제 청년 활동가들의 연결과 공동 의제 발굴에 중점을 둔 구조입니다.
    공익활동 페스타는 일반 시민이 공익 활동을 생활 속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구성된 시민 참여형 확산 프로그램입니다. 이러한 단계적 흐름과 함께 청플 내부 논의를 통해 공동 의제를 기반으로 현장 활동을 구상할 예정입니다.
     
    Q. 청년과 공익은 서로 어떤 의미일까요? 둘을 연결하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 중 기억에 남는 것과 느낀 보람 및 아쉬움도 말씀해 주세요.
    청년은 변화의 주체이고 공익은 그 변화가 향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단어는 서로에게 동력이자 명분이 되는 관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청년과 현장, 센터가 삼각형 구조로 협력할 수 있도록 중간 다리 역할을 많이 해 온 것 같습니다. 보람은 청년들이 자신도 몰랐던 공익 활동의 언어를 발견할 때였고 아쉬움은 이 활동들이 일회성이 되지 않도록 지속 가능한 구조화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Q. 청년의 공익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지역사회의 인식과 지원에 있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가장 필요한 건 청년을 도움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공익의 주체로 인식하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사회가 청년의 공익 활동을 단지 행사성 소모가 아닌 지역 문제 해결의 하나로 바라보고 신뢰를 보내는 인식 변화가 필요합니다. 또한 센터에서도 대관사업, 에디터 사업 등 다양한 기반 형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청플 2기에서 나온 의제를 정책화하기 위한 노력이 계획돼 있을까요?
    아직은 위원들이 자율적으로 논의하고 협의하여 무엇이든 만들어 갈 수 있는 열린 구조입니다. 향후 의제와 프로젝트가 만들어진다면 정책화나 제도 연계도 자연스럽게 검토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5. 위원장 인터뷰
     
    다음은 김정현 위원장 인터뷰인데요. 주로 도시권과 노동권 증진을 위한 활동에 힘써왔습니다. 현재 성남시 청년정책협의체 소통분과 부분 과장과 경기도 청년참여기구 주거분과(3), 참여 권리분과(4) 위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Q. 두 번째 회의를 마치고 나서 느낀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이 있을까요?
    위원들의 생각이 다양하고 여러 가지 합의점을 만들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만 여러 좋은 생각을 전부 다 추진할 수 없는 게 아쉬웠습니다. 이를 최대한 실행할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Q. 계획된 청플 과정에서 제일 기대되는 점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활동가의 생애와 목표를 듣고 함께 고민하는 게 제일 기대됩니다. 이를 통해 지역 활동가의 역량을 강화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의 공익성이 확대되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의 청플 과정에서 신설됐으면 하는 내용이 있을까요?
    기존 시민 단체에 없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국내·외의 사안과 시대 흐름을 꾸준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점을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익히면 장기적인 활동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Q. 위원장의 행보를 보니 노동권과 도시권을 위해 주로 노력해 왔는데요. 향후 구체적으로 어떠한 공익 활동을 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또한 이를 위해 청플과 어떻게 협력할 예정인지 궁금합니다.
    다양한 사회 의제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특히 노동권 및 도시권 활동과 연계해서 사회 공공성 및 민주적 통제를 확장하고, 다양성을 보장하는 활동을 지속할 계획입니다. 거주민, 노동자, 장애인 등 다양한 주민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진정으로 도래하는 데 함께할 생각입니다. 청년층이기에 청년 대중 및 활동가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청플이 원하는 방향이 공익성에 부합할 수 있게 지원할 생각입니다.
     
    Q. 현실적으로 청년의 입지나 청년을 위한 공론장이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이와 관련해서 센터와 지역사회, 넓게는 정부에 부탁하고 싶은 점이 있을까요?
    절대적인 공론장도 부족하긴 하지만, 있다 하더라도 단기성 활동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지역 현황에 대한 목소리가 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도록 노력하고 센터는 그들의 대리자로서 적극적으로 행정에 알리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중앙정부도 이러한 권력을 나누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고 나눠주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Q. 현재 혹은 예비 공익 활동가 청년들에게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를 알린다면 어떠한 내용을 얘기하고 싶은가요? 또한 같은 청년 활동가로서 격려의 한 마디 부탁합니다.
    센터는 든든한 뒷배이기에 언제든 소통할 수 있는 곳입니다. 혼자 고민하면 좋은 타개책을 마련하기 힘들기에 함께 논의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지역의 청년 활동가께서 힘들게 마음고생하지 마시고 언제든지 센터에 손을 내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Q. 청년 활동가로서 기쁨과 슬픔이 있을까요? 이와 관련해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나 청플 과정에서 도움받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쁨은 무언가 의미 있는 사회 변화를 끌어낸다는 점이 항상 뿌듯하고 삶의 만족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편입니다. 반면 아무래도 기존의 관성을 벗어나다 보니 저의 주장이 기본적으로 맞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되거나 지나친 것으로 규정되는 순간에는 슬플 때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공익 활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센터와 청플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심적이나 활동 방향에 있어 도움이 많이 됩니다.
     
     
    6. 부위원장 인터뷰
     
    다음은 조한나 부위원장 인터뷰입니다. 평소 지역 발전과 청년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요. 현재 청년망고 협동조합 이사와 주식회사 무어든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Q. 두 번째 회의를 마치고 나서 느낀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이 있을까요?
    위원분들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셨고 다양한 의견이 오간 점은 정말 좋았습니다. 다만 회의에 참석한 인원이 많다 보니 회의 시간이 다소 짧게 느껴져 아쉬웠습니다.
     
    Q. 계획된 청플 과정에서 제일 기대되는 점은 무엇일까요?
    각자의 위치에서 공익 활동 중인 위원들과의 네트워킹이 가장 기대됩니다. 서로의 고민과 경험을 나누며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청플 과정에서 신설됐으면 하는 내용이 있을까요?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 해 동안 간담회와 12일 캠프 같은 활동들이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부위원장의 행보를 보니 북부 지역 발전과 청년, 나아가 디자인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요. 향후 구체적으로 어떠한 공익 활동을 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또한 이를 위해 청플과 어떻게 협력할 예정인지 궁금합니다.
    청년들의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해 문화 활동이나 일자리 창출과 같은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싶습니다. 청플을 통해 지역에서 함께 활동할 20대 청년 활동가들을 만나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Q. 현실적으로 청년의 입지나 청년을 위한 공론장이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센터와 지역사회, 넓게는 정부에 부탁하고 싶은 점이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청년이 지역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단순한 행사 참여를 넘어 청년의 정책 제안이 실제로 반영되는 구조가 있었으면 합니다. 지역사회는 청년을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만 보지 않고 함께하는 주체로 인정해 주길 바랍니다.
     
    Q. 현재 혹은 예비 공익 활동가 청년들에게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를 알린다면 어떠한 내용을 얘기하고 싶은가요? 또한 같은 청년 활동가로서 격려의 한 마디 부탁합니다.
    공익 활동을 고민하는 청년이라면 꼭 한 번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를 찾아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센터에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분들이 함께하고 있어서 막막한 시작에 함께해 주거나 지속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제공해 줄 거예요.
    혼자 버티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지만 사실 우리는 함께할 때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든 청년 활동가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Q. 청년 활동가로서 기쁨과 슬픔이 있을까요? 이와 관련해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나 청플 과정에서 도움받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청년 활동가로서 가장 큰 기쁨은 내가 하는 작은 활동으로 변화가 조금씩 보일 때입니다. 반면 그 과정에서 스스로 미래가 불확실하게 느껴질 때는 막막하기도 해서 슬퍼요. 그럴 때 센터나 청플 같은 존재는 정말 소중합니다. “나만 이렇게 고민하는 게 아니구나.” “함께 길을 찾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큰 위로가 됩니다.
     
     
    강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정호승 시인의 시처럼, 청플이 만들어 낸 청년들의 목소리는 여러 갈래의 조그만 물이 되어 거대한 바다로 나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어느 바다로 밀려들어 갈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물은 흐르고 있으니 언젠가 닿을 테니까요. 앞으로의 청플이 만들어 갈 꿈들이 힘차게 굽이쳐 부조리한 세상을 깎는 침식 작용을 하길 바라며 웹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장스케치] 나는 청년 2기, MZ의 본때를 보여준다!
    초스코스

    조회수 381

    202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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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참여와 마을공동체의 연대 그리고 마을기본법
     
    최근 몇 년간 주민참여 마을공동체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주민들의 목소리가 지역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민참여 제안과 마을공동체의 연대가 어떻게 우리 지역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업들과 기반을 마련할 마을기본법안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출처: 경기도 소통협치관
     
     
    1980년대 브라질의 군부 독재가 붕괴된 이후,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빈부격차 및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이에 1989년 브라질 리오그란데두술주의 주도인 포르투알레그레시에서 주민들이 직접 예산편성과정에 참여하는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세계 최초로 시작되었습니다.1)
     
    대한민국은 20037, 행정자치부(_행정안전부)"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을 통해 주민참여형 예산편성제도 권장과 2004325, 광주광역시 북구에서 국내 최초로 "주민참여예산제 운영조례"가 제정되었습니다.
    주민참여예산제도는 2011년 법적 의무화 이후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가제도 도입을 위한 조례 제정 및 운영, 시행되었지만 실질적인 확산은 2006년부터 2008년 사이에 이루어졌으며(지자체별 시행 속도 차이가 있음), 행정자치부가 2006년에 '주민참여예산제도 표준 조례안'을 제시하면서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제정하고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연초(2~3)부터 공모를 시작해 상반기 내(4~6)에 접수를 마감하며, 이후 심사를 거쳐 연말에 예산 반영 여부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주민참여 예산 사업의 주요 유형은 지역단위로 시정참여형, 구정참여형, 동단위사업 있으며, 일방제안형과 주민자치회 연계형이 있습니다. 이외에 교육 및 홍보, 환경개선, 문화 및 체육, 복지 및 안전, 설문조사 및 의견수렴형 사업이 있습니다.
     
    주민참여 예산 사업의 주요 성과로는 대규모 인프라 구축이나 도시재생 프로젝트, 주민 편의를 증진, 동네 내 쓰레기 처리 개선이나 작은 쉼터 조성, 도로 개선, 지역 문화 프로그램, 공동체 활동, 방과 후 교실, 안전한 통학로, 체육 시설 확충, 하천 복원, 에너지 절약 프로그램, 취약계층 지원, 안전시설 설치, 주민 토론회를 통한 예산 반영 등이 있습니다.2)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주민참여예산제도가 구체화되면서 주민들이 직접 예산편성과 배분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여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에서 마을공동체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3)
     
    우리나라는 1970년대에 새마을운동을 통해 마을공동체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새마을운동은 농촌 지역의 빈곤 해소와 생활환경 개선을 목표로 하며,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을 강조했습니다그리고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하면서 주민들이 지역 문제 해결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2000년대부터 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마을만들기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여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과 사업이 추진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19876월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시민들이 일상생활을 건강하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1990년대 지방자치제도가 마련되어 주민들과 지역 리더, 시민활동가들이 지역공동체 회복을 위해 자발적 노력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1990년대 말 도시 지역 아파트에서의 마을만들기 활동 확산으로 지하공간을 활용한 도서관 또는 사랑방 만들기, 임대아파트에서의 다양한 공동체 활동 등이 나타났습니다1999년 도시 지역 주민자치센터 시범 실시 후 2006년경에는 전국 거의 모든 읍면동에 주민자치센터가 설치되었습니다2000년대 후반 민간 차원의 마을만들기 네트워크 형성과 마을만들기 관련 활동가들이 합류하며 네트워크가 확장되었습니다2010년 이후 중앙 및 지방정부의 마을공동체 관련 정책사업이 가속화되어 주민참여예산제와 도시재생 사업 등이 마을만들기와 연계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공동체 운동은 민관 협력의 성공 사례를 다수 제공하며, 지역사회 문제 해결과 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했습니다. 주요 사례로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주민자치회, 경기도 주민자치회 시범사업, 강원도 새농어촌운동, 인천시 동천마을네트워크, 마을관리 협동조합 모델, 강원도 사회적기업지원센터, 충남·제주도 읍면동 협치체계 구축, 균형 발전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한 투자협약, 미얀마 농촌공동체 개발사업 등이 있습니다.
     
    상술한 주민참여와 마을공동체로 시작해서 국가까지 단계별로 계획을 세워 활성화 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요?
     
    202535, 수요일 오후 2.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국회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를 가지고 마을기본법 발의 포럼이 진행되었습니다.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마을공동체 활성화 기본법안이란?>
    마을공동체 활성화 기본법안은 2016년에 처음 발의되었습니다. 이후 21대 국회에서도 세 차례 발의되었으며, 20209월에는 이해식 의원 등 41명이 법안을 상정했었습니다. 그러나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은 잇따라 임기만료로 폐기되었습니다.
    2025227, 박정현 국회의원 등 31명이 '마을공동체 활성화 기본법안'을 다시 발의했습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으로 목적은 마을공동체 활동을 통해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마을공동체 활동 기반조성과 육성 및 지원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합니다.
    법안의 기본원칙은 주민들의 주도와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마을공동체는 다양성, 독립성, 책임성을 갖추어 활동하며,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공동의 지역사회 문제해결 등 공익성을 지니며, 민주적으로 운영되도록 합니다.
    마을공동체계획은 5년마다 수립·시행하도록 하며, 기초자치단체에서부터 상향식으로 마을계획을 수립하고, ··구 및 시·도에 마을공동체지역위원회를 두고, 행정안전부에 중앙위원회를 두도록 합니다.
    지원 사항은 마을공동체 전문인력 양성 및 지원, 종합정보시스템 구축·운영, 마을공동체 기금 설치운영과 민간기금 설립·운영, 마을공동체 활성화의 날 지정 등을 포함합니다.

    해당 내용은 정부입법지원센터(https://www.lawmaking.go.kr/)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포럼의 첫 번째 발제는 서복경 대표(더가능연구소)왜 지금 마을에 주목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시작해, 두 번째 전대욱 연구위원(한국지방행정연구원)마을기본법 제정 필요성과 주요 내용으로 이어졌습니다. 세 번째 장수찬 명예교수(목원대학교)마을 및 주민활동 관련 통합 정책 환경 조성과 국회협력방안이라는 주제로 발제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후 박정현 국회의원은 상반기 내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하겠다라며 의지를 표명하였습니다.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그리고 이어진 각 지방 마을공동체 대표들은 마을공동체 활성화 기본법의 목적과 기본원칙 소개, 5년마다 마을공동체계획 수립·시행 및 상향식 계획 수립 방식 강조 및 시··, ·, 중앙정부 차원의 마을공동체위원회 설치 제안, 마을공동체 전문인력 양성, 종합정보시스템 구축, 기금 설치 등 지원 방안 논의, 국유·공유 재산의 수의계약 사용 및 사용료 감면 가능성 언급과 2016년부터 지속된 마을기본법 제정 노력과 이번 발의의 의의를 강조하였습니다.
     
    주민참여는 지역 주민들이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여 자신의 욕구와 의견을 정책과 계획에 반영하도록 하는 활동입니다.
     
    마을공동체는 주민들이 함께 마을 환경을 개선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활동입니다.
     
    마을공동체와 주민참여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마을공동체가 형성될 수 없고, 마을공동체라는 플랫폼 없이는 주민들의 의견이 체계적으로 모이고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주민참여와 마을공동체는 지역사회 발전의 핵심 요소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마을기본법은 법적·제도적 기반을 제공합니다. 이 세 가지는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며,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끝으로, 필자는 이번 포럼을 통해 개인적으로 '우리 마을 디지털 허브' 혹은 전국 디지털 허브를 구축하여 마을의 모든 정보와 소통이 이루어지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고 주민들은 이곳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투표로 참여하는 소통의 공간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각주>
    2) 출처: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https://ggmaeul.or.kr/)
    3) 출처: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https://ggmaeul.or.kr/)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를 향한 여정
    럭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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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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