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픽사베이
* 위 동화는 '여우와 두루미'를 오마주한 글입니다.
옛날 옛날 평화로운 숲속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집을 짓고 살았어요.
그중 여우와 두루미는 유독 친하게 지내며 우정을 뽐내는 사이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여우는 두루미에게 찾아가 “내일 우리 집에 초대할게! 맛있는 음식을 준비할 테니 꼭 놀러와줘.”라고 말했어요. 그 말을 듣고 잔뜩 기분이 좋아진 두루미는 다음날 부푼 마음을 안고 여우의 집으로 출발했지요.
여우의 집에 도착하니 문 앞에서부터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어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여우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니 한껏 마음이 들떴지요.
“여우야. 나 왔어!”라고 가볍게 인사를 한 두루미는 서둘러 식탁에 앉았어요. 그리고 식탁에 놓인 음식을 보자마자 표정이 굳어버렸어요.
여우가 맛있게 끓인 스프를 평평한 접시에 담아놓았기 때문이에요. 두루미는 긴 부리가 있기 때문에 평평한 그릇에 놓여 진 음식은 절대 먹을 수 없었어요.
여우가 본인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느낀 두루미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지만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며칠 뒤 여우에게 “나도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 우리 집에 와줘.” 라며 초대장을 보냈지요. 역시나 신난 발걸음으로 두루미의 집에 들어와 식탁에 앉은 여우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음식이 입구가 긴 호리병에 담겨있었기 때문이에요. 두루미는 부리를 이용해 먹을 수 있었지만 여우는 한입도 먹을 수 없었어요. “아차!” 여우의 머릿속에 지난번 두루미를 초대했던 일이 생각났어요.
한참을 고민하던 여우는 이윽고 두루미에게 말을 건넸어요. “두루미야, 나한테 불편함이 없다고 너도 똑같을 거라 생각했던 내가 정말 부끄러워. 우리의 생김새가 이렇게 다른 것처럼 분명히 차이점이 있을 텐데 널 배려하지 못했어.”
두루미는 여우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어요. “내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남에겐 엄청나게 큰 장벽일 수 있어. 우리 앞으로 서로에게 더 관심을 갖고 존중하는 친구가 되자.”
비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그날 이후 여우와 두루미는 사이가 더 좋아졌어요.
어느 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숲속에서 함께 산책을 하고 있던 여우와 두루미는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는 하마를 발견했어요.
“어머! 하마야. 너 왜 휠체어를 타고 있어?” 두루미가 물었어요.
그러자 하마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미끄럼틀 위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쳤어.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분전환을 하고 싶어서 휠체어를 타고 나왔는데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가게가 아무 곳도 없어서 정말 속상해.” 라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어요.
“들어갈 수 있는 가게가 없다고? 우리 마을만 해도 가게가 100개는 있을 텐데?” 두루미는 하마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하마야, 그럼 우리랑 같이 찾아보자! 분명히 너도 갈 수 있는 가게가 있을 거야.”
영차영차! 하마가 탄 휠체어를 밀고 도착한 첫 번째 곳은 샌드위치 가게였어요.
“여기 샌드위치가 정말 맛있어! 우리 얼른 가보자~” 여우와 두루미는 신난 발걸음으로 가게에 들어갔지만 하마는 그럴 수 없었어요. 가게 문턱이 너무 높아 아무리 바퀴를 굴려도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 모습을 본 여우가 부리나케 달려 나와 열심히 휠체어를 밀어봤지만 하마의 무게까지 더해진 휠체어는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풀이 죽은 하마가 말했어요. “우리 다른 가게에 가자.”
두 번째로 도착한 곳은 떡볶이 가게였어요. “나 요즘 떡볶이가 엄청 먹고 싶었어!” 점점 배가 고파진 두루미가 말했어요. “그런데 입구가 어디지?” 입구를 찾던 두루미의 표정이 어두워졌어요. 떡볶이 가게는 2층인데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문턱도 넘기지 못한 휠체어를 들고 2층까지 올라가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어요. “우리 한번만 더 다른 가게를 찾아보자.”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냉면 가게였어요. “오래 걸었더니 땀이 나서 시원한 냉면을 먹으면 좋을 것 같아! 가게도 1층인데 입구에 경사로가 있어서 이곳에선 분명 밥을 먹을 수 있을 거야. 그렇지 하마야?”
하마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대답했어요. “정말 미안하지만 난 이곳에서도 식사를 할 수 없어. 난 평소에 물을 많이 먹는 편이라 식사 중에 화장실을 꼭 가야하는데 이 가게엔 장애인용 화장실이 없는 걸. 우리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자신 있게 가게를 찾아주겠다 말했던 여우와 두루미는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던 곳들이 누군가는 좌절을 느끼는 곳이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마을에 있는 모든 가게의 문은 활짝 열려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누군가에겐 그 문은 절대 열 수 없는 장벽이었을 테니까요.
두루미가 여우의 손을 잡고 말했어요. “여우야. 누구나 살아가면서 여러 이유로 휠체어를 타게 돼. 갑작스러운 사고를 겪거나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상황일수도 있지. 중요한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누구든 불편함 없이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게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 지난번 우리가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본인만 사용할 수 있는 접시에 음식을 내놓았을 때 서로에게 느꼈던 상처를 기억하지?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자. 뭐가 있을까?”
여우의 머릿속에 오늘 하루 동안 방문했던 가게들이 떠올랐어요. 우선 우리 마을에 있는 가게들이 다양한 이유로 가지고 있는 장벽들을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마을에 있는 가게들을 조금 더 방문해보자”
그날 이후로 여우와 두루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마을의 가게들을 방문했어요. 휠체어를 타고도 이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마을 지도에 기록하며, 간혹 가게 주인을 만나면 누군가 겪고 있을 어려움에 대해서 전달하기도 했죠. 그렇게 100곳의 가게를 방문한 후 지도를 확인해 보니 우리 마을에서 휠체어를 타고도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단 1곳이었어요. “생각보다 정말 심각했구나. 하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일주일 후 마을의 한 가운데에 있는 느티나무에 커다란 지도가 걸렸어요. 여우와 두루미가 가게들을 직접 방문하며 만든 그 지도였어요. 지도를 보고 놀란 건 하마뿐만이 아니었어요. 앉고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쳐 테이블 좌석이 있는 가게만 찾아다녀야 했던 코끼리 할아버지와 아직 너무 어려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삐약이들을 데리고 다녀야 하는 꼬꼬엄마도 입을 다물지 못했지요.
“우리가 느끼던 어려움들을 이렇게 알아주고 널리 알려줘서 정말 고마워.”
그러던 와중 누군가 힘껏 소리쳤어요. “저 지도와 함께 장애물 없는 가게가 늘어나길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전달해봅시다! 마을 관리소와 가게 주인들에게요. 분명 우리의 진심이 통할거에요.” 모두가 환호하며 박수쳤어요. “그래. 분명 그렇게 될 거야.”
며칠 후 마을 관리소로부터 편지가 도착했어요.
“우리 마을 사람들이 누군가 느낄 어려움에 깊이 공감해주는 모습에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마을의 가게 주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러한 장벽들을 없애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차근차근 가게 입구에 경사로부터 설치하기로 했으니 앞으로도 관심을 갖고 계속 지켜봐주세요.”
“하마야 이것 봐! 이제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어디라도 다 갈 수 있게 될 거야.”
하마는 여우와 두루미를 꼭 안았어요.
“정말 고마워. 너희에게 상대를 배려하는 법을 배웠어. 앞으로 나도 꼭 그런 친구가 될게. 경사로가 설치되면 우리 함께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으러 같이 가자.”
▲경기도 무장애가게 현황 @출처 : Phase.1 2024년 1분기 경기도편 윌체어 데이터 랩 무장애환경 데이터 분석 보고서 / 24.3.30.
윌체어(WILLCHAIR)는 교통약자 맞춤 가게 정보를 제공하는 무료 플랫폼 앱 서비스 입니다. 2021년에 시작해 현재 부산과 경남, 그리고 서울 등 수도권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윌체어 조준섭 대표는 "입구에 턱이 있는지 없는지, 내부에 휠체어가 들어가서 돌릴 공간은 충분히 있는지 없는지, 장애인 화장실·주차장은 있는지 없는지, 이런 정보들이 중요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정보는 내가 한번 만들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플랫폼 앱서비스를 만들어 배리어프리를 실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배리어프리는 "장애인 및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게 물리적인 장애물, 심리적인 벽 등을 제거하자는 운동 및 정책"을 말합니다. 앞으로도 무장애환경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인 실천과 노력들이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