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아리셀 참사, 기업과 정부 그리고 지자체의 책임 필요
이경엽 활동가(다산인권센터 활동가)
특별하지 않는, 그저 평범했던 월요일이었던 6월 24일. 화성시에 위치한 리튬 배터리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화재로 23명이 세상을 떠났고 8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화재가 발생한 '아리셀'은 에스코넥의 자회사로 리튬 1차 전지를 만들던 곳입니다. 1차 전지는 일상에서 사용 되는 '건전지' 처럼 한번 사용하면 충전 할 수 없는 전지를 말합니다. 아리셀에서는 이런 1차 전지 중에서도 '리튬'이 주재료인 1차 전지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리튬'은 특정 상황이 되면 폭발 위험이 크기에 '위험물질'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안전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지 않는게 현실입니다.
참사는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다.
참사 발생 3개월 전 아리셀 공장 대상으로 소방활동 자료조사가 이뤄졌습니다. 소방활동 자료조사 결과 '연소 확대 요인'으로 '사업장 내 11개 동 건물 위치하며 (화재)상황 발생 시 급격한 연소로 인한 확대 우려 있음'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특히 '다수 인명피해 발생 우려 지역(층)'으로 이번 화재가 발생한 3동이 언급됐었습니다. 참사 발생 19일 전에는 화재안전컨설팅이 있었고, 불과 2일 전에는 소규모 화재가 발생 했었습니다.
남양119센터 ‘3월 28일자 소방활동자료조사 결과’ 자료(출처 : 노컷뉴스)
또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 16조에 따르면 리튬은 위험물로 '작업장 외 별도의 장소에 보관해야 하며 작업장 내부에는 필요한 양만 두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공개된 사고 직전 CCTV 기록을 보면 화재가 난 곳 바로 앞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3동 2층에는 리튬전지 3만 5000개를 보관 중이었습니다.
6월 24일 리튬 배터리 화재로 불이 난 작업장 내부 모습(출처 : 한겨레 21)
참사 피해를 회복 한다는 것
참사 희생자 23분 중 상당수가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한국으로 온 이주노동자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부고를 들은 가족들의 입국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참사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입국에 대한 절차를 간소화 하고 숙식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렇게 하나 둘 한국으로 입국했고 화성시청에서 운영하는 ‘모두누림센터’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참사 발생 2일이 지난 6월 26일 영정과 위패가 없는 분향소가 화성시청과 경기도청에 설치되었습니다. ‘모두누림센터’로 모인 유가족들과 언론에 정부와 지자체는 부상자의 치료를 지원하고 희생자 가족들의 숙식, 비자, 심리치료, 통역 등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원하겠다는 말과 다르게 화성시는 친족의 숙식은 7월 11일까지, 직계 가족의 숙식은 7월 31일 까지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중단 하겠다는 말과 동시에 언론은 화성시에서 얼마나 많은 지원이 있었고, 금전적으로 얼마가 들었는지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로 인해 유가족들을 폄하 하는 부정적 여론이 형성 되었습니다. 그러나 화성시가 추후 사측에 구상권을 청구해 그 비용을 받아내면 되는 문제로 유가족에게 세금을 투입하는게 아닙니다.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추모 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진상규명과 아리셀의 제대로 된 사과를 외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출처 : 연합뉴스)
참사 피해를 회복 한다는 것은 어려우면서 사실 간단한 ‘일’ 일 수 있습니다.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재발방지대책 마련’, ‘차별 없는 배보상’ 등 피해자의 편에서 참사를 바라보면 피해자의 권리 보장은 마냥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리셀 화재 참사에 ‘진상규명’을 얘기하면 “공장에서 불이 난 것이 전부 아니야?”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게 너무나 슬픈 현실입니다. 아리셀 공장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본국의 언어로 안전 교육이 이뤄졌는지, 리튬 화재시 대피 요령을 안내 했는지 등 밝혀져야 할 수많은 진실들이 ‘화재’라는 단어에 감춰져 있습니다.
참사 피해를 회복한다는 것은 ‘이 정도 해줬으면 됐지’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우선 피해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듣고 참사를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 편에 서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지금 현재 정부와 지자체가 어떻게 행동 했는지 스스로가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 하다 죽지 않는 사회를...
출근을 하는 노동자가 집을 나설 때 “다녀오겠습니다.”는 말을 하지 “살아서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 삶에서 ‘노동’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일하다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이런 한국 사회로 이주 노동자가 매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위험의 외주화 위험의 이주화...
위험한 일은 외주화 시키는 한국 사회가 이제는 위험한 일을 이주화 시키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에게 안전한 작업 환경을 제공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리셀 참사와 같은 참사가 반복 되지 않기 위한 대책 마련도 이뤄지고 있지 않으며, ‘고용허가제’의 문제와 불법파견 등 해결 하지 못한 일들이 산더미입니다.
이번 아리셀 참사는 가장 많은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사망한 첫 산재입니다. 하지만 기업은 제대로 된 사과도 가족들과의 교섭(7월 25일 기준)도 진행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정부도 ‘리튬 전용 소화기 배치’, ‘외국어 안전포스터 제작’와 같이 보여주기 식의 대책만 내놓고 있습니다.
기업이 지금 해야 할 것은 명확합니다. 개별 접촉을 통한 합의가 아닌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제대로 된 사과와 교섭에 응하는 것입니다. 지자체와 정부도 기업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책임’을 기업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됩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 지자체와 정부의 ‘책임’ 일 것 입니다.
끝으로 이 글이 나가는 8월이면 참사가 발생한지 2달이 가까이 됩니다. 교섭에 따라 상황도 바뀔 것이고, 진상조사도 검경 수사에 따라 많이 바뀔 것입니다. 물론 하나도 변한 것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가족이 보상금을 달라 떼쓴다.”, “기업의 잘못이지 정부와 지자체는 역할이 없다”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참사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도민들이 되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