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죄가 없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개악저지 경기도민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염은정
작년 스물셋 새내기 교사인 서이초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은 교육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뒤이은 다섯 명이나 되는 교사의 가슴 아픈 선택 또한 우리 모두에게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 그리고 교육부는 어째서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이 줄을 잇는지, 이들 죽음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노력 없이 이 모든 상황은 ‘교권이 추락’되어 발생된 것이라고 진단하고 그 이유로 일제히 ‘학생인권조례’를 지목했다. 즉 교권추락은 ‘학생인권조례’로 인한 학생인권이 과도하게 높아진 결과라는 것이었다.
동료 교사의 죽음에 슬퍼하고 분노한 교사들은 거리로 나와 교권보호를 위한 법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교사들의 요구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학교구성원 중 최약체인 학생에게 이 가슴 아픈 상황의 책임을 고스란히 전가시켰고 결국 ‘학생인권조례’를 개정 또는 폐지하라는 지시를 내리기에 이른다.
이 불편한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된 ‘학생인권조례’는 정부와 여당, 일부 언론 등에 의해 돌팔매질을 당해야 했다. 최고 권력에 의해 일순간에 무분별한 학생, 몰지각한 학부모로 몰린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주체성을 신장시켜 교육자치를 실현하자는 시대적 요구 따위는 말도 못한 채 잠재적 살인자라는 낙인 속에서 스스로도 위축되어 자기점검하기에 바빴던 시기였다.
1.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신장된 시민의식의 반영임과 동시에 시대적 요구에 대한 응답이다.
2010년 7월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난 일명 ‘오장풍 사건’은 학생인권 문제를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시킨 사건이었다. ‘오장풍’이라 함은 교사가 학생에게 장풍을 쏘아 날린 것처럼 보여 지게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이 사건 이후 학생에게 가해지는 무자비한 교사의 폭력 관련 영상이 보도되면서 학생인권에 대한 공론화가 시작되었으며 다음 해인 2011년 교사의 학생에 대한 신체 폭력이 금지되었다.
그리고 입시와 학벌주의 사회 속에서 학생다움과 순종을 강요받으며 체벌과 폭력으로 통제의 대상이 된 학생들의 인권이 학교교육과정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학생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과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학생인권조례’가 전국 최초로 경기도에서 제정되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오장풍 사건’과 같이 교사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신체 폭력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출석부로 사정없이 머리를 가격’하거나, ‘싸대기’, ‘빳따’ 등의 체벌이 전혀 문제되지 않았고, ‘엎드려뻗쳐’, ‘원산폭격(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뻗쳐 하는 자세)’, ‘책상 위에 무릎 굻기’, ‘치마 입은 여학생에게 물구나무서기’로 기합을 주는 신체 폭력 역시 학생을 교육과 계도를 위한 당연한 행위로 여겨졌다. 이에 버금가는 차별적이고 인신공격적인 언어폭력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머리길이, 양말과 스타킹 색깔, 심지어 속옷 색깔까지 강제하는 두발복장 검사와, 하루가 멀다 하고 책가방을 홀딱 까뒤집어야 하는 소지품 검사는 학생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어 훈육을 위한 교육의 일환이었다. 이밖에도 학생임원 출마 시 성적제한을 두는 등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이 실감나는 야만의 시대였다.
이와 같은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학교의 모습은 1950년대 초중등 교육지침이 시행된 후부터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기까지 한결같았다. 특히 1960년대 ~ 1980년대에는 군사정권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상이 교육현장에 그대로 투영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민주화시대를 거치면서 시민의식이 성장하고, 신장된 시민의식은 ‘오장풍 사건’을 계기로 제도적이고 근본적인 개선을 요구했다. 민주적 시민의식의 반영임과 동시에 시대적 요구에 대한 응답이 바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이었다.
2.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인권친화적 학교문화가 조성되는 초석이 마련되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학교 현장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체벌이 사라지고 인신공격적이고 차별적인 폭언 또한 많이 개선되었다. 여전히 단위학교 내 학생생활규정으로 학생인권이 침해될 우려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학교 내 학생인권보장은 상당부분 진전된 것이 사실이다.
학생인권이 존중되자 학교문화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존중받는 경험을 통해 학생인권조례의 효용감을 체득한 학생들은 나만이 아닌 타인의 인권 역시 존중해야 함을 인식하였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육주체 모두는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인권에 대한 인식과 역량을 키워가며 학교 구성원들 간의 소외나 차별이 발생되지 않는지 살피면서 민주적이고 인권친화적 학교로 진전시켰다.
2014년 논문 '학생의 인권보장 정도와 교권 존중과의 관련성'(구정화)에 따르면 광주 지역 초·중·고등학생 1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질문지 조사를 통해 인권보장 수준이 높은 환경에서 인권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일수록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교사의 권위 인정과 교육권 존중에 적극적이라는 결과를 확인했다. 학생들이 인권을 더 많이 누리거나 더 많이 알게 된다고 해서 교사의 권위를 무시하거나 교육권을 침해하지 않음을 증명한 것이다.
3. 교권추락과 학생인권조례와의 인과관계 대한 객관적 견지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교권추락의 핵심 요인이 학생인권이라는 주장은 여전히 크고 이에 대한 진지하고 적극적인 논의 없이 사회적 결론이 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우리는 객관적 시각으로 교권추락과 학생인권보장과의 인과관계가 있는지 실질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최근 교육부가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공한 ‘2017년∼2021년 교권 침해 현황’ 자료와 ‘교육통계에 집계된 초중고 교원 수’를 활용해서 분석한 정의당 통계 자료에 의하면, 교권침해 발생 건수는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은 0.5건, 없는 지역이 0.54건으로 분석돼 오히려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지 않는 지역이 다소 높다는 집계 결과를 보여준다.
또한 교육부는 2022년 기준으로 교권침해 건수는 약 3000건이고 이 중 학생인권조례 있는 지역이 전체의 60% 건수 발생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고하면서도 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은 인구가 많은 지역이므로 인구비중으로 볼 때 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의 교권침해 사례가 적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들이 있다고 발표하였다.
인권조례의 유무에 따라 교권침해 발생 건수가 지역별로 어떠한가를 2019년과 2022년, 코로나 전후를 비교하며 살펴본 데이터는 다음과 같다.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서울과 경기의 경우, 서울은 8.8% 감소했고 경기는 20% 증가했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 중 인구가 비교적 많은 부산과 경남의 경우, 부산은 11% 감소한데 비해 경남은 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통계를 바탕으로 볼 때 교권침해와 인권조례의 유무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유의미하게 도출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이러한 연구결과와 데이터는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의 원인이 아니라는 객관적 근거이다. 따라서 일부 정치권의 정략적 프레임과 이에 경도된 인상비평적인 조사로 학생인권조례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각에서 탈피해야 한다. 동시에 오히려 학교현장에서 어떤 방법으로 교권과 학생인권 모두를 제대로 보장될 수 있을지에 대해 되물어야 함이 마땅하다.
4. 학생인권조례에는 이미 학생의 책무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의 책임과 의무를 방기한 채 학생인권을 과도하게 강조되어 교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유엔의 ‘아동 권리협약’에 아동이 지켜야 할 의무 조항이란 없다. 세계 인권선언문에도 ‘인권을 보장할 것이니 이러저러한 의무를 꼭 지켜야 한다’라는 조건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래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약이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 역시 인간이면 누구나 본래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음에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침해 받았던 학생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례인 것이다.
그럼에도 학생인권조례에는 제4조 ③항에서 ‘학생은 인권을 학습하고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며, 교장 등 타인을 존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명시함으로써 학생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인간이면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을 보장 받는데 이 이상의 어떠한 의무와 책임이 따라야 하는가?
5. 바람 앞에 촛불이 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1) 학생인권조례 개정과 폐지에 앞장서고 있는 경기도교육청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후보 당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공약으로 내 걸었고, 당선 이후 인수위 백서에서도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예고하였다.
여러 경로와 방법을 동원하며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모색하던 경기도교육감은 서이초 사건 이후 교육감 중 가장 먼저 사건의 원인을 ‘학생인권조례’로 규정하고 개정 또는 폐지하겠다고 밝혔고, 지난 해 9월 20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입법예고하고 도의회 해당 상임위인 교육기획위원회에 발의하였다.
그러나 이 안은 ‘입법예고기간 의견서 접수 내용으로 보아 교육 주체 간의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으로 보다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다는 사유로 2023년 11월 23일 도의회 교육기획위원회에서 보류 결정되었다. 그러나 경기도 교육감은 이에 그치지 않고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부칙에 담은 ‘경기도교육청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를 지난 5월 3일 다시 입법예고 하기에 이른다.
2)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개악저지 경기도민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경기도교육청의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이 입법예고 되자 경기도 내 학생, 교사, 학부모 단체를 비롯한 인권단체, 시민사회단체를 망라한 60여개 단체와 경기도민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개악저지 경기도민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2023년 10월 10일에 발족하고, ‘경기도교육청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를 새롭게 발의한 현재까지 공동대응하고 있다. 공대위의 활동은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포기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3)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개악저지 경기도민 공동대책위원회 활동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개악 저지를 위한 경기도민 기자회견
경기도민의 학생인권조례 폐지반대 인증샷 캠페인
경기도민의 학생인권조례 폐지반대 피켓팅
경기도민의 학생인권조례 폐지반대 토론회
6. 학생인권과 교권은 동시에 신장되어야 할 보편적 가치이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다시 말해 학생인권 보장으로 교권이 추락되고, 교권이 보장된다고 하여 학생인권이 추락하는 대립적 관계가 아닌 것이다. 학생도 인간이기에 인간이면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을 보장받아야 하고 또한 교사 역시 교사로서 보장받아야 할 교수학습권이 당연히 보호되어야 한다.
7.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죄가 없다!
정부 당국과 경기도교육감은 교사들 분노의 대상이 ‘학생인권조례’라는 거짓 선동으로 교육구성원들 간의 갈라치기를 중단하라.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진정한 교권추락과 교육공동체 해체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교육공동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리길 바란다.
존중 받은 아이들이 존중할 줄 아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한다.
인권의 기초 위에서 교육이 이루어질 때 교육은 비로소 교육다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