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반려동물 양육 여부를 묻는 질문이 2020년 새롭게 추가된 사실을 아시나요?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그만큼 급증한 것인데요,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그 비율이 무려 25.4%에 달한다고 합니다. 즉, 넷 중 한 사람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셈이지요. 하긴, 저 역시 유기묘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네요. 동물은 장난감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애완동물을 대신하여 등장한 단어 ‘반려동물’이 어느덧 우리 사회에 완전히 자리 잡은 느낌입니다.
출처 : 호스피스코리아 홈페이지
그렇다면 ‘펫로스’라는 단어는 들어보셨나요? 펫로스(pet loss)란 반려동물의 영구적인 상실을 뜻합니다. 동물의 수명이 대체로 인간보다 짧으니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면 펫로스를 경험할 확률이 높습니다. 사랑하는 동물의 죽음이 몰고 오는 엄청난 충격으로 보호자는 상실감, 우울, 불안 등 심리적 문제를 겪게 되는데 이를 ‘펫로스 증후군’이라 합니다.(줄여서 펫로스라고도 함)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어느 분야에서 적극 나서야 할지 함께 모여 답을 찾자며 토론회를 마련한 단체가 있습니다. 생의 존엄한 마무리를 돕는 비영리민간단체 ‘호스피스코리아’가 뜻밖에도 펫로스 증후군 극복에 앞장섰다니 무척 흥미롭지요?
출처: 호스피스코리아
토론회를 한 달여 앞둔 9월 중순, 성남 분당에 위치한 호스피스코리아를 방문하여 이복희 상임이사께 사업의 진행 상황을 들어보았습니다.
Q. 단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저희 단체는 2007년 시작된 <보바스 호스피스후원회>가 그 전신입니다. 2015년 비영리민간단체 <호스피스코리아>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2018년에는 사단법인을 설립하여 호스피스를 통한 인간 존엄의 실현을 더욱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Q. 단체의 주요 사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말기암 환자와 그 가족을 돌보는 일은 물론이고, 호스피스 전문인력의 양성과 프로그램 개발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서 인식개선을 위한 홍보 및 상담서비스도 제공합니다.
Q. 이번 지원사업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A. 최근 들어 반려동물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펫로스 증후군의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사람 대상의 호스피스 기관인 저희와 언뜻 거리가 있을 수도 있으나 여러 전문가들과 다학제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현안대응 지원사업을 신청했습니다.
Q. 토론회의 준비 상황이 궁금합니다.
A. 동물복지, 심리상담, 호스피스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섭외하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세 차례 기획회의와 줌 방식의 자문회의를 거쳤습니다. 반려동물 양육자 및 상실 경험자들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실시했는데 600명 넘는 응답이 단시간에 완료되어 저희도 놀랐습니다. 시간이 충분했다면 설문의 강도를 좀 더 높일 수도 있었을 텐데 하반기 지원사업이라 그 점이 아쉽습니다.
Q. 센터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A. 지원사업 초기 단계에서 단체를 선정하고 끝낼 게 아니라 중간평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해 보면 어떨까요? 진행이 잘되고 있는 단체에는 일종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식이지요. 저희처럼 열심히 하는 단체에게는 격려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10월 27일 <반려동물 보호자의 펫로스 증후군 극복을 위한 방안>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성남시의회 세미나실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에게서 펫로스 증후군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성남시의회 박종각 의원,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송원찬 센터장 등 내빈들의 축사 후 이복희 상임이사의 경과보고가 이어졌습니다.
다음으로 설문조사 분석결과를 중심으로 한 주제발표가 있었습니다. 발표자 김성호 교수(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는 다큐멘터리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을 직접 기획하고 출연하는 등 동물복지 전문가로 널리 알려졌지요. 이번 토론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분입니다. 온·오프라인으로 취합한 629명의 응답이니만큼 섣부른 일반화는 곤란하다는 전제하에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응답자의 85% 이상이 미리부터 반려동물과의 사별을 걱정하는 것에 비해 사별을 위한 어떠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펫로스는 노령동물이 아닌 경우가 절반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상황일수록 펫로스 증후군의 고통은 더 클 텐데요, 약삭빠른 펫산업에 휘둘리지 않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잘 떠나보낼 방안이 요구됩니다. 반려동물 호스피스라는 새로운 영역이 동물을 위해서도 보호자를 위해서도 필요해 보입니다. 노인이 노령동물을 돌보는 ‘노노케어’도 주목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어 4명의 토론자가 나섰습니다. 동백 성루카병원 호스피스완화의학과 김호성 과장은 병원(hosital)의 어원이 ‘환대’임을 환기시키면서 환자의 삶의 질이 공동체 안에서 올라간다고 전했습니다. 육체적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기억 속에서 부활 되고 남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죽음을 듣자니 숙연해졌습니다. 사람은 호스피스에서 안락사로, 동물은 반대로 안락사에서 호스피스로 시대적인 관심이 교차되는 오늘날의 변화가 의미심장하더군요.
두 번째 토론자인 펫로스심리상담센터 ‘안녕’의 조지훈 소장은 사별로 고통받는 보호자의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했습니다. 독서치료, 편지쓰기 등 상실감과 죄책감을 경감시키는 애도과업*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려동물이 늘어나는 만큼 버려지는 반려동물도 함께 늘어나는 요즘, 끝까지 돌본 13%의 보호자만이 오히려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다는 아이러니가 참 마음 아픕니다.
* 애도과업 – 애도의 네가지 과제
- 과제 1 : 상실의 현실을 수용하기
- 과제 2 : 애도의 고통을 헤쳐나가기
- 과제 3 : 고인이 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 과제 4 : 고인의 자리를 정서적으로 재정립하고 삶을 이어 나가기
세 번째 토론자로 나선 ‘펫빌리지’ 이경미 대표는 반려인들의 모임을 이끄는 반려동물 돌봄전문가입니다.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상실 경험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자조모임이 펫로스 극복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피력했습니다.
마지막 토론자인 환경보건시민센터 김영환 연구위원은 환경단체 활동가로서 원헬스(one-health)라는 새로운 건강 패러다임을 소개했습니다. 즉 사람과 동물과 환경은 하나이며, 동물이 안전해야 사람도 안전하다는 개념입니다. 코로나19, 구제역 살처분, 일본 미나마타병 등이 사람과 동물의 연결을 보여주는 대표적 원헬스 사건들입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로 피해를 입은 동물들의 존재를 저는 이날에야 처음 알았네요.
‘펫로스 상조휴가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요즘 MZ세대들의 인식이라고 합니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개념이 변하고 있고, 동물권에 대한 인식도 점점 달라집니다. 사람과 동물의 관계가 재정의되는 시대. 동물권 잡지 「물결」의 필자 한승희는 동물을 ‘마리’로 부르지 말고 사람도 동물도 모두 차별 없이 '목숨 명(命)'으로 세자고 하네요.
호스피스코리아가 개최한 펫로스 토론회의 가장 큰 미덕은 하나의 문제 해결을 위해 5인 5색의 전문가들이 연결되었다는 것입니다. 동물의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동물 때문에 아픈 사람도, 그리고 아픈 동물 혹은 별이 된 동물까지도 모두 이렇게 연결되면 좋겠습니다. 아니, 이미 우리는 연결되어 있음을 단지 알아차리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