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학교’가 필요한 청년들
이정현 (사회적협동조합일하는학교 사무국장)
“한 달을 버티고 나면 연락할게요.”
J는 이렇게 말하고 더 이상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은둔하던 시간을 벗어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보려고 시도를 했지만, 몇 번이나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던 중이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서 실망감을 느꼈는지, 아니면 매번 새로운 일을 알아봐주는 나에게 죄책감을 느꼈는지, J는 이제 스스로 일을 찾아보겠다며 한 달을 버티고 나면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로 아직까지 J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
반복되는 은둔과 고립
D는 고립과 은둔을 벗어났다가 되돌아가기를 반복해온 남성 청년이다. 나는 D를 10대 후반 무렵에 만났고 이제 1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D는 경제적으로 빈곤한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기에는 심리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부모와 아동청소년기를 보냈다. 영리한 아이였지만 D는 존중받고 인정받는 경험을 가지기 어려웠고 주변 사람들과 불화했다. D는 점점 친구가 없어졌고 학교를 나가지 않게 되었고 점차 집에만 머물게 되었다.
다행히 D는 은둔이 너무 길어지기 전에 몇몇 나쁘지 않은 어른들을 만날 수 있었다. D는 대안학교를 다니기도 하고 몇 가지 직업교육에 참여하기도 했다. 몇 번은 취업을 해 수개월씩 일하기도 했다. 나는 D가 일을 구하고 적응하는 과정,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 일들을 했다.
하지만 D는 은둔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드디어 D가 은둔을 벗어났다고 마음을 놓을만하면 D는 일을 그만두고 다시 은둔상태로 빠져들었다. 한번 빠져들면 1년 넘게 집에서 온라인 게임만 하는 은둔 생활이 이어졌다.
한동안은 자꾸만 되풀이해서 은둔상태로 돌아가는 D가 답답했다. D가 너무 쉽게 포기하고 의지가 약하다고 생각하며 원망하기도 했다. D의 뿌리깊은 문제들을 극복할만한 정성이 부족하다며 나 스스로를 질책하기도 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반복되는 은둔 속에서도 D는 성장해왔다는 점이다. 은둔하는 기간이 짧아지고 은둔을 하더라도 가족과 심하게 갈등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이제는 은둔을 하더라도 밥을 거르거나 몸이 상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한동안 은둔을 하더라도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D는 은둔을 그 다음 시기의 사회생활 도전을 위한 회복과 충전의 시간으로 보내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들
L은 30대 초반의 여성 청년이다. 일을 하지 않고 무언가를 배우지도 않고 만나는 친구도 없는 고립은둔청년이다. 몸이 아픈 어머니와 단둘이 산다. 어머니는 몸이 아파서 집밖 활동을 할 수 없고, 다른 가족이 있었지만 모두 관계가 끊겼다. 몇 년째 일을 하지 않았고 최소한의 생계비는 정부지원을 받지만 어머니를 간병하고 가사 일을 하는 것은 L의 몫이다.
L이 청소년기부터 은둔을 했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친구들도 잘 만났고 몇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친절하고 성실한 L은 나름대로 사회생활에 잘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직장 안에서 심각한 폭력과 부당한 인격적 대우를 받았을 때 아무도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았고 L은 그 직장을 떠나야했다.
L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자신을 지켜주기보다 오히려 비난하는 가족과 주변사람들이었다. 그만큼 힘든 일은 흔한데 네가 의지가 약해 견디지 못한다고, 핑계 대지 말고 빨리 다시 일을 하라고 다그치기만 할 뿐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빨리 회복해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가벼운 조언들이었을 수 있겠지만, 마음이 무너져있는 L에게는 두려움과 절망감을 깊게 하는 말들이었다.
L은 다시 일을 해보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집 밖을 나가는 것조차 어려웠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어려웠다. 누가 또 자신에게 그런 폭력을 가할지,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고 인격을 보호받을 수 있을지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홀로 어머니를 간병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L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렇게 L은 은둔형 외톨이 청년이 되었다.
나는 몇 년 전 지역 사회복지기관의 소개로 L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 일하는학교의 진로탐색이나 취업준비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권유했다. 성실해보이는 L은 조금만 준비하면 적성을 맞는 일을 구해 잘 해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L도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답했지만 실제로는 오지 않았다.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L에게 때때로 안부를 물으며 관계를 이어갔고 프로그램 모집 때마다 L에게 연락해 참여를 권했다. L은 매번 생각해본다고 했지만 끝내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L은 다시 일을 해야한다는 마음과 그것을 해낼 수 없는 심리적 위기상태에서 갈등했던 것이다.
최근 일하는학교에서 고립청년 일상회복 프로그램 ‘괜찮은 하루’를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진로나 취업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단지 나 자신의 상태, 특성,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하루하루 가볍게 시작해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상 활동에 대해서만 다룬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 개기’, ‘하루에 30분 산책하기’, ‘하늘보고 사진 찍기’, ‘안 가본 음식점 가보기’ 등이 청년들이 스스로 정한 미션들이다.
취업에 대해 말하지 않아 부담이 없어서인지 L은 5년 만에 드디어 일하는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처음에는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안전함을 확인하면서 자기표현도 많아지고 다른 친구들에게 소소한 선물을 해주기도 한다.
밝고 친절하고 수다스러운 L의 모습을 보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아프다. 저렇게 잘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청년이, 그 동안은 왜 어두운 방안에만 머물러야 했을까. 좀 더 일찍, 안전한 공간과 안전한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었을까.
치유되지 않은 고통의 흔적, 회복과 성장의 시간이 필요한 청년들
내가 근무하는 일하는학교는 2013년에 설립된 위기청년 지원기관이다.
청년들의 자립을 돕는 활동을 하는 비영리 법인이다.
지난 10년간 이곳의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위기 상황, 고립 상황 청년들을 만나고 이들의 진로 탐색, 취업, 자립 과정을 돕는 활동을 해왔다.
많은 고립 은둔 청년들을 만나보면서 고립과 은둔이 특수한 사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감당할 수 없이 커다란 부정적 사건을 겪게 된다면 혹은 어떤 극복하기 어려운 부정적 환경과 상황들이 연달아 이어진다면 스스로 건강하다고 믿는 사람도 조금씩 조금씩 약해지고 의욕을 잃고 어느 순간 고립에 빠지거나 은둔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에서는 고립은둔청년들이 아주 특이한 성격을 타고난 기이한 사람이거나 정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인 것처럼 비춰지기도 하지만, 사실 고립과 은둔은 누구나 겪게 될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고립은둔청년들이 겪었던 ‘감당할 수 없이 커다란 사건’이나 ‘극복하기 어려운 부정적 환경’들은 주로 청소년기나 청년 초기에 일어난다.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하는 시기에, 사랑과 존중과 성취감을 경험하고 자신의 가능성과 사회에 대한 기대를 형성해야할 시기에 경험하게 되는 고통스런 사건이나 재난과 같은 환경은 삶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뒤바꿀 수 있다.
그런 고통과 재난을 현명하게, 근성있게 극복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것을 잘 극복해내지 못했다고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조금 더 시간과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기보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도 괜찮다는 스스로에 대한 존중과 관용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고립은둔청년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너무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하고, 타인에 앞서 자기 스스로를 비판하고 질책한다. 최근 언론에서 사회에 충격을 주는 범죄들과 고립은둔청년들을 연결짓는 경향이 있지만, 일부분의 이야기일 뿐이다. 내가 만나온 고립은둔청년들은 타인을 해치려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감과 도덕관념이 너무 강해서 스스로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훨씬 많았다. 무책임하고 섣부른 진단은 고립은둔 상태에서 애쓰고 있는 청년들에게 또 한번의 폭력이 될 수 있다.
청년에게는 프로그램이나 지원사업이 아닌, 따뜻한 학교가 필요하다.
최근 몇 년간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과 정책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자체별로 조례가 만들어지고 고립은둔청년을 지원하는 센터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심리상담을 지원하기도 하고 치료적·교육적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딘지 허전하고 불편하다. 공간을 설치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심리상담이나 활동비를 지원하는 것은 지원의 요소이며 최소한의 틀일 뿐이다. 그것들을 어떤 방향과 가치관을 가지고 구조화하고 지속해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현재의 방식은 고립은둔청년에게 몇 가지 도움이 될만한 단기적 프로그램이나 몇가지 요소를 던져두고, 그것들을 알아서 잘 활용해보라며 떠미는 것처럼 보인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지원들을 스스로 발견하고 연결하고 활용하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한 동안의 상담이 끝났을 때, 프로그램이 나와 잘 맞지 않았을 때. 다음 단계의 활동이나 다른 성격의 프로그램을 찾아야 하거나 나의 상황과 특성에 맞는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 가야할 때. 많은 고립은둔청년들은 이런 상황에서 생기는 고민들을 혼자 힘으로 풀어나가여 하는 상황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고립은둔청년들이 풀어나가야할 과제들은 위기개입/상담/복지/교육기획이 통합된 장기적 접근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학교’와 비슷하다.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신뢰관계 속에서 장기간 머무를 수 있고, 단계별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언제라도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청년 한사람 한사람의 성장과 변화나 기록되고 기억될 수 있는 곳,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단계의 프로그램이나 활동을 기획할 수 있는 곳.
최대한 많은 청년에게, 최대한 많은 회수의 지원을 하려하기보다 청년 한사람 한사람이 온전히 설 수 있도록 하는, ‘따뜻한 청년 학교’를 열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