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진실을 함께 찾아갑니다.
- 황무지 -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다.
- T.S 엘리엇 -
매화로 시작해 개나리, 진달래를 거쳐 화려한 벚꽃이 만개하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4월의 봄. 길고 긴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에 우리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1948년 4월 3일,
1960년 4월 19일,
2014년 4월 16일,
1948년 4월에 일어난 제주 4.3 사건은 남로당을 처단한다는 이유로 7년 간이나 제주도민을 학살한 사건이다. 성인 남자는 말할 것도 없고 등에 업힌 갓난아기도 총에 맞아 희생되었다.
1960년 4. 19혁명은 이승만이 장기집권을 하기 위해 선거부정(3.15)이 벌어지면서 학생과 시민이 중심 세력이 되어 일으킨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졌다. 4.19 혁명의 촉발은 당시 최류탄이 박힌 고등학생 김주열 시신이 발견되면서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인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304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세월호에는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타고 있어서 청소년들의 희생이 컸다.
<비설(飛雪)- 희생자 변병생(호적명:변병옥) 모녀의 기념조각>
출처 : 4.3 평화공원 홈페이지
- 참여작가 : 강문석, 고길천, 이원우, 정용성
- 설치년도 : 2002년
1949년 1월 6일 봉개동 지역에 2연대의 토벌작전이 펼쳐지면서 군인들에게 쫓겨 두 살 난 젖먹이 딸을 등에 업은 채 피신 도중 총에 맞아 희생된 당시 봉개동 주민 변병생 모녀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기념조각이다.
<4.19 혁명 당시 수원초등학생들의 연좌시위>
출처 : 4.19혁명기념 도서관 홈페이지
<세월호 참사 8주기 선상 추모식>
출처 : 4.16 재단 홈페이지
모든 죽음이 안타깝고 슬프지만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죽음은 부모에게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국가 책임에 의한 죽음이 희생자와 유족들을 추모하고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며 그들을 더욱 아프게 한다.
4월 5일은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매달 첫 번째 수요일마다 열리는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원수요문화제’ 가 있었다.
매번 수원시의 여러 시민단체가 주관이 되어 행사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번 제72회 수요문화제는 수원 YWCA와 수원시민단체협의회가 공동으로 주관하였으며, 특별한 분들이 함께 참여해 주셨다.
2022년 10.29일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비가 쏟아지는 행사장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공감해주셨다.
세월호 참사 9주기가 돌아오는 봄, ‘이태원 참사’라는 국가 부재의 사건을 겪은 또 다른 유가족들이 비 오는 날 거리로 나왔다. 159명의 억울한 죽음이 생겨난 이유와 국가의 책임에 대해 국가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4.3사건 피해자, 4.19혁명 피해자, 세월호 참사 피해자 등 여러 사건의 피해자가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건 당시 은폐하고 왜곡된 사실에 대한 진실을 규명할 것, 이와 관련된 책임자를 처벌할 것,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인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어 재발을 방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부끄럽고 슬픈 역사로 기억되는 ‘이태원 참사’.
우리는 그날의 진실을 밝혀내야 하지만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운 역사, 숨겨왔던 역사를 공식적으로 기록하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사회에 알리며 희생자들과 유가족의 명예를 찾아줘야 한다.
그리고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의 진실을 기억하지 않고 망각한다면 우리 사회의 정의는 뿌리부터 흔들린다고 생각한다.
이번 수요문화제에서 발언해주신 유가족의 말씀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 나를 돌아보게 한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지만 난, 내가 겪지 않았던 일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고 행동해왔나?
(발언해 주신 이태원 참사 유가족 발언 중에서 발췌함)
안녕하십니까. 10.29일 이태원 참사로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잃은 000 아빠 000입니다.
오늘은 참사가 일어난 지 159일째입니다. 지난 5개월 여간 국정조사와 특수본 수사에서 제대로 밝히지 못한 그 날의 진실은 아직도 저희 유가족들을 아프게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34조 6항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 상식적이고 간단한 조항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지 저는 159일 전에는 몰랐습니다. 제가 헌법 조항을 이렇게 되새길 줄 몰랐습니다.
참사 이후 저는 수많은 재난과 참사의 피해자분들을 만났습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 000아버님, 아내 분과 7살 난 따님을 참사로 잃으셨습니다. 제 딸 00이 하나만 해도 이렇게 힘든데 아내 분과 딸, 그분의 전부였을텐데 머리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20년 전 그때는 미처 헤아리지 못한 그분의 아픔을 제가 겪어보고서야 알게 되어 눈물이 났습니다.
여기 평화의 소녀상 앞에 서니 다시 한번 ‘위안부’ 할머니들께서 겪으셨을 만행과 지금껏 제대로 위로해 주지 못한 대한민국의 모든 정부에 대해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중략)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피해자인 할머님들과
강제징용 생존 어르신분들, 그리고 모든 재해재난 피해자 여러분들에게
미처 여러분의 마음을 늦게 알게 되어 죄송합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