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역사에서 지워지고 부정당했던 그녀들을 기억하는 날!
(제10차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 – 수원행사)
며칠 전부터 폭우를 쏟아내던 하늘이 오늘 아침엔 흐리게나마 햇살이 삐져나온다. 습한 물기와 햇살이 만나 후덥지근한 공기를 만들어내는 8월 중순.
32년 전, 8월 14일도 오늘과 비슷한 날씨였겠다.
1992년 8월14일, 한복을 입고 이웃집 할머니처럼 친근하게 생긴 여성이 TV에 나와 눈물을 훔치며 때론 단호한 목소리로, 때론 머뭇거리며 충격적인 발언을 이어간다.
이 여성의 기자회견에 사람들은 뒷말로 전해지던 일본군‘위안부’라는 존재가 사실임을 알게 되었고, 이 여성의 용기에 힘을 얻어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못지않은 일본의 잔혹한 전쟁범죄 중 하나가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또한, 30년 넘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진실을 위해 일본 정부와의 싸움이 시작된 순간이기도 했다. 이 기자회견의 당사자는 일본군‘위안부’ 피해 당사자인 ‘김학순 할머니’였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을 무차별적으로 착취하던 일본은 조선을 현대화 시켜준다는 명목으로 철도를 깔고 항만을 만들고 탄광을 개발하며 조선의 물자와 인력을 전쟁터로 몰아넣었다. 강제징용, 징병, ‘위안부’ 모두 그들에 의해 삶이 파괴되고 유린당했던 조선의 청년들이었다.
해방 후,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됐지만 살아남은 남자들은 하나, 둘 고향을 찾아갔다. 신체의 일부분을 잃고 찾아가는 고향이지만 가족,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귀향을 축하하고 새 삶을 살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들은 살아남았어도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을까? 고향을 찾아갔어도 남자들처럼 살아 돌아왔다고 기뻐해 주었을까?
1945년 해방부터 1991년 8월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 때까지 살아남은 여성들은 한국 사회에서 두 번, 세 번 죽지 않기 위해 자신을 숨기며 살았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숨어 살아야 했던 세월이었다.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증언 이후, 남한에서는 240명의 할머니가 본명, 가명, 무명으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하셨고 북한에서는 219명의 할머니가 등록하셨다. 30년의 세월 동안 할머니들은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에서 전시 성폭력을 생산하는 전쟁을 없애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외치는 여성인권운동가로 변신을 하셨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녀들의 목소리를 듣고 공감하며 함께 행동하는 시민과 시민단체들이 있다.
김학순, 김복동, 강덕경, 안점순 등 세계 곳곳을 다니시며 서슬 퍼렇게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시던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열한 분만이 생존해계신 현재, 강제 연행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한 자발적 지원이었다는 일본 정부와 국내 우익들의 거짓말에 세상이 시끄럽다.
역사는 기억하는 당사자가 사라지면 누군가의 입맛에 맞게 오염되나 보다.
그래서 우리는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일본군‘위안부’의 실체를 고발한 8월14일을 세계일본군‘위안부’피해자 기림일이라고 부르며 전국을 넘어 세계에 설치되어 있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그녀들을 기억하고 오늘을 기록한다.
2022년 8월 14일 수원에서도 제10차 세계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행사가 경기아트센터 야외공연장에서 열렸다.
수원평화나비가 주관하고 수원평화나비인권강사단, 경기평화교육센터, 하늘소리문화예술학교, 수원YWCA, 수원청소년성인권센터, 청년·청소년NGO 안아주세요, 수원여성회가 함께 연대하여 각 단체가 기림일을 기념하는 특별부스를 운영하였으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 현수막에 적었다.
수원평화나비인권강사단 - 종이로 만드는 평화의 소녀상
경기평화교육센터 - 한반도 퍼즐, 평화의 버튼 만들기
하늘소리문화예술학교 – 평화나비 만들기
수원YWCA - MZ세대와 함께하는 평화나비
수원청소년성인권센터 – 구슬과 종이로 만드는 나비 브로치
청년.청소년 NGO 안아주세요 – 나비팔찌 만들기
또한 오후 5시에는 인문동아리 ‘오자매 날다!’와 자원봉사 학생들이 함께 노래 ‘바위처럼’에 맞춰 율동을 하며 본행사의 문을 열었다.
이어 풍물굿패 ‘삶터’의 大북 공연 ‘태고의 울림’을 시작으로 UPDREAM의 팝과 클래식 공연, 크로스오버 앙상블 탄타라의 뮤지컬 넘버의 향연, 극단 블록의 뮤지컬 ‘꿈꾸는 내일’이 순서대로 공연되었다.
삶터공연- 태고의 울림
아침에 흐렸던 날씨가 행사 초반이 지나면서 천둥, 번개가 동반된 비가 거세게 내리쳤다. 본부석 천막이 찢어지고, 현수막과 전시 사진들이 비에 젖어가는 악조건에도 공연은 계속되었다.
특히 극단 블록의 학생과 젊은 공연자들은 그 비를 다 맞으면서도 빗소리보다,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노래를 불러주었고 자원봉사 학생들도 비를 즐기며 더 크게 호응해주었다. 퍼붓는 비와 역대급 최악의 조건임에도 움직이는 청년들을 바라보니 가슴 한켠이 뛴다.
할머니와 동년배로 일본군‘위안부’의 존재를 알린 1세대 활동가들과 그 뒤를 이어 인권운동가가 되신 할머니들과 가열차게 싸워왔던 4~50대의 2세대 활동가들, 그리고 피해자가 모두 돌아가신 다음에도 그녀들을 잊지 않고 일본의 공식적 사죄를 이끌고 부조리함과 싸워나갈 N세대 젊은 미래의 시민들이 오버랩되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얼마 전 독일 미테구의 소녀상을 철거하라며 독일까지 찾아간 국내 극우세력들의 행동에 독일 시민들은 ‘역사를 제대로 알라.’라며 일침을 놓았다.
100년 전 시작되었던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요즘 들어 부쩍 심하게 일부의 사람들에게 부정당하고 왜곡되는 이유는 뭘까?
* 본 원고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가 작성한 원고로, 센터의 공식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