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뛰는 친구의 발걸음과 뜨거운 태양, 귓가를 스치는 바람에 힘차게 뛰던 심장 소리를 기억하시나요? 놀이가 시간 낭비가 되어 버린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는 이제 아득해져버렸지만, 누구나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아로새겨져 있는 놀이의 추억이 있습니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외면 받고있는 놀이는 이제는 아이들에게마저 허락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친구와 함께 짓던 밝은 미소를, 힘차게 뛰며 느끼던 뜨거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의 기억을 마을에 돌려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놀이로 행복해지는 우리 마을을 꿈꾸는 ‘매화노리’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매화노리’는 2016년 매화종합사회복지관의 전래놀이지도사 양성과정에서 출발했습니다. 전래놀이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한 교육생들에 의해 지역주민들과 함께 군포시 내의 놀이문화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해 봉사단체인 매화노리가 창설되었죠. 매화노리는 곧 마을공동체를 지원하는 경기도와 군포시의 지원사업에 모두 선발되면서 점차 안정된 단체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놀이를 접하는 어린아이 뿐만 아니라, 놀이 지도사가 되어 단절된 경력을 이으려는 경력단절 여성에게도 힘이 되고 있습니다. 놀이가 지닌 힘은 어린아이게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마치 마법처럼, 어른에게도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사업을 시작하게 되고, 공익활동을 실천하게 된 것인지 직접 만나 깊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해봤습니다. 함께 만나보시죠!
*해당 내용은 실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매화종합사회복지관 전경]
매화종합사회복지관으로 들어가, 기다리고 있으니 곧 매화노리의 대표인 오주은 대표님과 매화노리의 운영을 함께 진행하고 있는 김보현 사회복지사님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중인 오주은 대표님 사진]
◆오주은 대표님: 저도 반갑습니다. 매화노리를 시작하게 된 아주 기본적인 생각은 ‘놀이를 알리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익이나 다른 수익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냥 군포시에 놀이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놀이’라고 하면, 목적 없이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놀이는 인성, 협동, 배려, 창의성과 같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줍니다. 놀이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얻을 수 있는데 놀이를 너무 무용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놀이의 진정한 가치를 알리자는 생각에 사업을 시작했어요. ‘군포시에 놀이를 전파하고, 놀이의 중요성을 알린다’라는 것이 저희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입니다.
◆오주은 대표님: 저희가 2016년도에 모여서 2017년부터 사업을 시작했어요. ‘사업’을 시작하게 된 주목적은 사실 나머지 회원들을 있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놀이를 지도하고, 놀이활동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재료 같은 것들도 있어야 했으니까요. 어찌 되었든 처음에는 재원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운 좋게도 2017년도에는 경기도와 군포시가 운영하는 공모 사업에 모두 선정되었죠. 그렇게 처음에는 수월하게 시작되는가 했는데 막상 찾아 다니면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특히 어려웠던 것은 배타적인 태도와 저희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들이었습니다. 마을에서 놀이를 알려드리고, 저희 단체를 알리는 활동을 했었는데, “우리는 화투나 칠라니까 다들 나가라.”라면서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 받기도 부지기수였어요. 의심도 많이 받고요. 놀이가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시선도 정말 큰 난관이었습니다.
[인터뷰 중인 김보현 사회복지사님]
●김보현 복지사님: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학교의 복지사님들을 설득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관모초, 산본초, 군포초, 금정초, 양정초의 학교 복지사님들을 설득해서 우리 놀이지도사 선생님들이 가서 학교 사회복지실에서 놀이 지도를 할 수 있도록 설득했어요.
●김보현 복지사님: 아니요, 방과 후 활동이랑은 완전 다른 수업입니다. 학교 사회 복지사의 재량으로 프로그램을 개설해서 아이들을 따로 모아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아이들 하교 후에 진행된다는 점은 같네요. 하교 후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평일에만 진행되고 주말에는 진행되지 않았었는데, 그런 주말 시간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공원으로 나가서 놀이 프로그램을 지도해보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바로 실천했고, 회목안 어린이 공원, 노루목 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진행했습니다. 저희가 이렇게 활동을 하니까 그런 저희를 본 어머님들의 관심을 끌게 되어서 활동 홍보가 많이 되었어요. 좋은 놀이, 재미있는 놀이가 아이들의 감성에 도움이 된다는 입소문이 엄마들 사이에 퍼져나가기 시작한 거죠. 그때부터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오해도 좀 벗을 수 있었고요. 아이들도 이제 저희의 단체복은 주황 조끼를 보면, ‘아, 몸으로 놀이를 하는 지도사 선생님들이구나’하고 알아보고 반겨주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언제 오냐’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매화노리 놀이터 활동 사진]
●김보현 복지사님: 내년 사업에 대해 이야기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임대 아파트가 사업의 첫걸음이 되었던 것은 어려운 환경에 있을수록 신경 쓰기 어려운 아이들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둡고, 쓸쓸한 환경에서 벗어나서 밝고 활기찬 놀이터에서 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싶었어요. 향후에는 이 산책로 사업을 좀 더 확장할 예정입니다. 저희는 몸으로 놀기 위해 바닥이 그림을 그려두고, 그걸 이용해서 놀이를 진행하는데요. 흙가락을 활용한 그림 그리기 활동도 더 활발하게 진행해볼 생각입니다. 오주은 대표님이 ‘유아 숲 자격증’이 있으시거든요.
◆오주은 대표님: 제가 유아 숲 자격증을 따면서 흙가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흙으로 만든 거라 친환경적이고 아이들에게도 안전하고, 색깔도 너무 예뻐서 놀이에 활용하기에 적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루목에서 이걸 활용한 놀이를 해볼 생각입니다.
[놀이의 재료가 되는 흙가락]
◆오주은 대표님: 사실 그간은 코로나로 인해서 활동에 제약이 많았습니다. 키트를 제작하거나 보드게임을 만들어서 QR코드로 보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지도했었습니다. 놀이는 대면 활동이 주가 되는 활동이어서 어려움도 많았고 답답한 면도 많았습니다. 노루목에도 원래 매주 갔었는데, 5인 이상 집합 금지, 어쩔 수 없는 아이들끼리의 접촉 때문에 민원이 많아서 지난 2년간 활동을 하지 못했거든요.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노루목 놀이터가 공사 중이라 주몽 놀이터와 매화 노리길에서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 중입니다.
●김보현 복지사님: 사업비 마련은 말 그대로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주민참여예산을 신청해 놓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2021년에는 저희가 임대 아파트에서 시작한 ‘놀이 산책로 만들기’를 보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있는 관계자가 도움을 주어서 가야와 주몽에 있는 복지관과 연결되어 함께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덕분에 저희가 상을 받기도 했어요.
[LH와의 협업을 통해 받은 상패]
향후에도 LH와 지속적으로 협업할 계획입니다. 매화노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협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여러 공공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중입니다.
◆오주은 대표님: 지금 말씀하신 게 사실이죠. 이 일을 시작하면서 집안에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 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수익이 전혀 나지 않으니까 제가 돈을 따로 벌어서 이 사업에 넣어야 했어요. 그래서 빵집에서 3년간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이어서 자발적으로 시작한 공익활동이었지만 개인적인 삶에서 힘든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래도 가족들이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 이루어내고 싶어 하는 일에 관심 가져주고 또 지지해주었어요. 그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난관을 마주해도 그 덕분에 다시 힘을 내게 되기도 했어요. 확실히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제 뜻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면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오주은 대표님: 공익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많지만, 가장 최근에 인상 깊었던 일이 있습니다. 주몽 놀이터에는 정자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 정자에서 마을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바람에 낮이고 밤이고 아무도 이용할 수 없는 죽어가는 놀이터가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저희가 처음 그 놀이터를 찾아가서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할 때, 충돌과 다툼이 많았어요. 저희는 그 공간을 본연의 놀이 공간으로 되돌리려고 하고, 원래 계시던 분들은 또 원래 놀이터를 사용하던 대로 사용하시려고 했고요. 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우리가 목표한 대로 매주 찾아갔어요. 그랬더니 네 번째 찾아갔을 때 쯤에는 ‘이번 주에도 할 거야?’하고 물으시더니 슥 자리를 피해주시는 거예요! 정말이지. 그때만큼 보람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김보현 복지사님: 맞아요! 그때 저희 서로 끌어안고, ‘됐어!!!’ 이랬거든요. 아이들이 마음 편히 놀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저희의 노력이 통한 것 같아서 좀 뭉클하기까지 했어요. 그 결과 주몽 놀이터에서는 매주 화요일에 놀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고, 매번 10명~12명의 아이들이 놀이에 계속 참여하고 있어요.
◆오주은 대표님: 저희는 정말 ‘놀이의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저마저도 초등학교에서 뛰어 놀았던 것은 2학년 무렵이 마지막인 것 같아요. 그 이후에는 학원에 모든 시간을 빼앗겼죠. 그렇게 사라져버린 놀이문화를 지키고 싶었어요. 저는 꼭 ‘놀러 오세요!’라고 말하고 싶네요. 여러분 놀러 오세요!!
●김보현 복지사님: 저는 이 말로 마무리하면 딱 좋을 것 같아요. “저희 매화노리에 한 번도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 꼭 놀러 오세요!
[오주은 대표님과 김보현 복지사님 – 입고 계신 주황색 조끼가 단체복]
혹자는 그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문화가 공익활동이 돼?’. 사실 이런 편견은 흔한 편입니다. 공익활동일수록, 오히려 일반 사업보다 즉각적인 효과, 눈에 보이는 결과를 기대하게 되기도 합니다. 공익활동도 일종의 사업 혹은 프로젝트이니 그 효과와 효용성을 입증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공익활동이 공공의 이익을 취지와 목표로 두지만, 취지만 좋거나 목표만 좋은 활동은 공익활동으로서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놀이문화는 어떻게 공익활동의 목표가 될 수 있었던 걸까요?
저는 오주은 대표님이 보람 있었던 일로 언급하신 주몽 놀이터의 사례가 중요한 힌트라고 생각했습니다. 문화는 결코 혼자 만들어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마을에 사는 모두가 협조해서 그런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바뀐 문화로 인해 죽어 버린 놀이터는 물론이고, 그 놀이터를 중심으로 마을도 점차 환한 곳으로 바뀌어 나가겠죠. 문화는 그 마을 전체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지고, 마을 전체를 더 나은 곳으로 바뀌도록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매화노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놀이와 놀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마을 사람들과 마을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 환경은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어두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밝은 희망을 선물해주기도 합니다. 골목길에서 뛰어놀며 하늘을 바라보던 우리가, 고개 숙인 채로 빌딩 숲 사이를 지나게 되었더하더라도 우리의 마음 깊은 저 어딘가에 살고있는 동심이 힘든 삶의 자그마한 위로가 되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놀이문화를 정착시키려는 매화노리가 지향하는 바도 ‘아이’만을 향해 있지 않습니다. 아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 그리고 아이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시작점이 ‘놀이’에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죠. 매화노리가 꿈꾸는 마을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마을보다 조금 더 안전하고, 밝고, 따스한 공간입니다. 사람들의 밝은 미소, 힘차게 뛰며 느끼던 뜨거운 햇살, 시원한 바람의 기억을 갖고 자라날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크는 것을 보며 더 나은 마을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매화노리의 발걸음을 응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