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안점순!’ 인권운동가 ‘안점순!’을 아시나요?
수원시 팔달구 올림픽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수원지역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선생의 동상이 서 있다. 그는 수원지역에서 교육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삼일학교’를 공동으로 설립하고 교장을 맡으며 후학을 길러냈다. 하지만 일제의 감시와 억압으로 재산을 정리하여 만주로 이주하여 독립군을 길러내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걸음을 돌려 오른쪽을 바라보면 또 하나의 동상을 발견할 수 있다. 거칠게 잘린 단발머리와 두 주먹을 꼭 쥔 채 맨발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동상. 우리는 그 동상을 ‘평화의 소녀상’이라고 부른다.
독립운동가와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의 동상이 같은 공간에 다른 느낌으로 공존하고 있으며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 두 개의 동상에는 식민지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당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빼앗긴 나라를 찾겠다며 독립 만세를 외치고 재산과 목숨을 담보로 독립운동가로 불리며 이 땅을 떠났고, 누구는 어린 나이에 일본군‘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머나먼 땅에 버려졌다.
해방 후 징병. 징용으로 일제의 전쟁터로 끌려갔던 남자들과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환대를 받으며 해방된 조국에 희망을 품고 들어왔지만 소위 일본군‘위안부’라 불리던 소녀들은 유령처럼 기척 없이 이 땅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30년이 지나도록 깊게 베인 마음과 몸의 상처를 꼭꼭 숨기며 살아왔다.
1991년 8월 14일 일본 정부와 우리 사회에서도 그 실체를 부인하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이 내가 일본군‘위안부’피해자의 산증인이라며 최초로 나서자 용기를 얻은 생존자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남한 사회에서만 약 240명의 피해자들이 30년간 홀로 삭히고 있던 끔찍한 기억들을 소환하여 일제의 만행과 거짓말, 한국 정부의 무관심에 대해 시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 중 한 명이 안점순이다.
안점순은 1928년 서울 마포에서 출생했으며 14살이란 어린 나이에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갔다. 평양, 텐진, 내몽고 등 알 수 없는 곳을 3년이나 전전하다 해방이 된 후 가까스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피폐해진 정신과 만신창이가 된 몸은 그녀를 석 달 동안이나 고열에 시달리게 했다.
그 후 트라우마와 싸우며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던 그녀는 2003년 피해자 신고를 하고도 10년이 지난 후에야 ‘순이’가 아닌 ‘안점순’이라는 본명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그 후 수원에 정착하게 되면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단체인 ‘수원평화나비’와 함께 활발히 활동하였다.
수원평화나비는 ‘일본군성노예제’를 세상에 알리고 다시는 이와 같은 인권유린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첫 번째 활동으로 수원시에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해 관내 시민단체들과 시민들이 결성한 단체이다.
이 활동에 공감한 많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2014년 5월3일 수원시 올림픽 공원 내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였으며, 수원시민들은 더 나아가 세계에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모금 활동을 이어갔고 그 결과 2017년 3월 8일 ‘제109회 세계여성의 날’에 맞추어 유럽 최초로 독일 레겐스부르크 파비용 네팔공원에 ‘순이’라는 이름의 ‘평화의 소녀상’을 두 번째로 건립되었다.
이러한 활동의 중심에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안점순’이 아닌 ‘인권운동가 안점순’이 중심에 있었다. 당시 89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왕복 약 24시간의 비행과 8박 9일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홀로코스트 못지않게 잔인하게 가해진 일본군‘위안부’의 존재를 알렸다.
그리고 과거 역사적 피해 사실에 대한 증언뿐 아니라 현재에도 벌어지고 있는 전시 성폭력에 대한 인권유린과 그 심각성을 전세계에 알림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그녀의 활약으로 독일은 역사 교과서에 ‘일본군성노예제’에 대한 내용을 싣게 되었으며, 자료사진으로 ‘순이’ 제막식에 참석한 그녀의 모습을 실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녀의 모습과 목소리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2018년 3월 30일 90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녀의 삶도 마감되었다.
“다음 생에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의 질문에 부자도 지식인도 유명인도 아닌 “다시 여자로 태어나서 살아보고 싶어요.”라는 소박한 소망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전쟁, 여성, 인권, 평화 등 우리에게 진한 울림을 던지고 떠난 ‘안점순’을 수원시민들은 계속 기억하고 잊지 않고 있다. 매월 첫 번째 수요일 정오가 되면 사람들은 ‘소녀상’에 모여 ‘바위처럼’이라는 노래와 율동을 시작으로 ‘일본군성노예제’를 알리는 수요문화제를 2017년부터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또한, 올해는 그녀의 4주기를 맞아 ‘수원평화나비’가 주관하고 ‘수원시도시공사가족여성회관’, 소녀상 작가인 ‘김서경. 김운성’ 작가의 협찬으로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는 최초의 개인기념관인 ‘기억의 방(2021년/수원시도시공사가족여성회관 내)’과 2층 갤러리에서 3월8일부터 4월8일까지 전시된다.
이번 특별전시회에는 ‘안점순’뿐 만 아니라 또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였던 ‘그녀’들의 기록과 언어가 함께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