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광교산 자락의 야학에서 만난 1987년
1987년 6월을 떠올리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내게는 광교산 자락의 야학 교실, 퇴근 시간에 맞추어 하나둘 들어오던 학생들의 얼굴, 수업이 끝난 뒤 함께 먹던 떡볶이와 라면, 그리고 막걸리잔을 사이에 두고 나누던 어설프지만 진지했던 시국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나는 1987년 2월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되어 군에 입대한 처지였으니, 제대 후에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막연한 시절이었다. 시대는 무거웠고, 내 앞날도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후배의 소개로 수원 광교산 자락에 있던 제일야학(현재는 수원제일평생학교라는 이름으로 인계동에서 수업을 계속하고 있음)에서 교사로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야학 교사 활동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아니, 흥미롭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곳은 학교이면서 일터였고, 교실이면서 세상과 연결된 작은 창이었다. 수업은 저녁 6시에 시작했지만 그 시간에 맞추어 등교하는 학생은 절반 정도였다. 나머지는 수업 중간에 들어오거나, 때로는 수업이 다 끝난 뒤에야 모습을 보였다. 낮 동안 공장에서, 가게에서, 사무실에서 일하고 온 학생들이었다. 피곤한 얼굴로 들어와도 책상 앞에 앉으면 눈빛이 달라졌다. 늦었다고 나무랄 수는 없었다. 그들이 학교에 늦은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들에게 배움의 시간을 충분히 허락하지 않은 것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근처 분식집에 들렀다. 떡볶이를 먹고, 라면을 나누어 먹었다. 조금 나이가 많은 학생들과는 막걸리도 마셨다. 그 자리에서 시국 이야기를 했고, 좀 더 살기 좋은 미래를 이야기했고, 노동자의 삶과 노동의 가치, 노동조합 등에 대한 생각도 나누었다. 나는 그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내가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책에서 배운 민주주의가 아니라, 삶으로 겪는 불평등과 억울함 속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워가고 있었다.
2. 수원의 거리에서 마주친 야학 학생들
그해 6월, 거리는 생기를 찾은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6월항쟁은 한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된 전국적 시민항쟁이었다. 1987년 6월 10일을 기점으로 대통령직선제 개헌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이어졌고, 결국 6·29선언과 직선제 개헌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역사는 교과서의 몇 줄 문장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그 역사는 거리의 먼지와 최루탄 냄새, 흩어졌다 다시 모이던 발걸음, 낯선 사람과 눈을 맞추며 느꼈던 이상한 용기 속에 있다.
수원에서도 거리의 움직임을 활발했고 거리를 달리는 대학생과 시민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수업이 없는 날이면 지인들에게 들은 정보를 가지고 시위에 참여했다. 어느 날은 팔달문에서 시작한 시위가 수원역 방향으로 이어졌고, 어느 날은 중동파출소 앞에서 출발해 아주대 방향으로 행진이 이어졌다. 대학생들이 앞에 있었고, 시민들이 그들을 지켜주었다. 서로를 잘 알지 못했지만, 그날 거리에서는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독재를 끝내야 한다는 것, 국민이 주권자라는 것, 더는 침묵할 수 없다는 것. 그 마음만은 분명했다.
그런 거리에서 가끔 야학 학생들을 만났다. 처음 그들의 얼굴을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반가웠고 대견했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하던 민주주의가 교실 밖 거리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걱정도 되었다. 학생들의 수업은 어쩌나, 혹시 다치지는 않을까, 일터에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그래서 나는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꾸짖기도 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조금도 기가 죽지 않고 말했다. “선생님이 늘 말씀하셨던 민주시민의 역할을 하려고 나왔습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 말 앞에서 나는 선생이 아니었다. 우리는 함께 배우는 시민이었다. 교학상장이라는 말이 그날처럼 선명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내가 가르쳤다고 생각했던 말이 그들의 발걸음으로 되돌아와 나를 가르쳤다. 민주주의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며, 시민은 누가 임명해주는 자격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자리라는 것을 그들이 내게 알려주었다.
시위가 마무리된 뒤 그들과 함께한 뒷풀이 자리는 어느 때보다 즐겁고 행복했다. 두려움을 이기고 함께 지내온 사람들 사이에는 묘한 공감이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가난했고, 불안했고, 앞날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우리가 역사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우리가 사는 이 도시의 거리도 민주주의의 무대가 될 수 있고, 야학의 학생들도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함께 확인했다.
3. 2024년 12월 3일, 민주주의는 다시 질문이 되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직선제를 얻었고, 선거를 치렀고, 지방자치를 부활시켰고, 여러 차례 평화적 정권교체를 경험했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되었고, 절차가 되었고, 일상의 언어가 되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완성되었을까?
2024년 12월 3일의 밤은 그 질문에 다시 답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했다.
그날의 충격은 단지 정치적 사건에 그치지 않았다. 많은 시민이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계엄, 군, 국회, 포고, 통제라는 단어들이 한밤중에 다시 등장했을 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결코 자동으로 유지되는 체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헌법이 있다고 헌정질서가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며, 선거가 있다고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그러나 그 밤과 그 이후의 광장에서 우리가 본 것은 두려움만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다시 모였다. 광장에는 촛불이 있었고, 응원봉이 있었다. 예전의 거리에서 손수건과 유인물과 결연한 다짐으로 어깨를 맞댄 스크럼이 있었다면, 2024년 이후의 광장에는 형형색색의 빛과 노래와 새로운 언어가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낯설게 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빛 속에서 1987년 거리의 시민들을 보았다.
응원봉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시대 시민들이 자기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표현하는 언어였다. 누군가는 분노를 품고 나왔고, 누군가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나왔고, 누군가는 친구와 함께, 가족과 함께, 혹은 혼자 광장에 섰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 올린 빛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헌법을 지키자는 것, 권력은 국민 위에 설 수 없다는 것,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시도 앞에서 시민이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
4. 달라진 광장, 달라지지 않은 시민의 민주의식
1987년의 거리와 2024년의 광장은 닮았고, 또 달랐다. 달라진 것은 많다. 1987년의 우리는 군사독재를 끝내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언론은 통제되었고, 집회는 탄압받았고, 거리에는 온통 최루탄 가스와 매케한 냄새가 짙었다. 정보는 사람을 통해 전해졌고, 약속 장소는 입에서 입으로 옮겨졌다. 위험은 더 직접적이었고, 국가는 시민 위에 훨씬 노골적인 폭력으로 군림했다.
2024년의 시민들은 스마트폰으로 소식을 확인했고, 온라인에서 서로를 불러냈고, 각자의 방식으로 광장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실시간 영상을 보며 분노했고, 누군가는 응원봉을 챙겨 나왔고, 누군가는 집에서 밤새 뉴스를 지켜보며 마음을 보탰다. 과거의 광장이 주로 학생과 노동자, 조직된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오늘의 광장은 훨씬 더 다양한 시민의 감각으로 채워졌다. 특히 청년과 여성 시민들이 보여준 주체성과 창조적 표현력은 한국 민주주의가 새로운 세대의 언어를 얻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권력은 여전히 시민의 감시를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는 여전히 위협받을 수 있다. 거짓과 선동은 여전히 사람들의 불안 속으로 파고든다. 극단의 언어는 상대를 경쟁자가 아니라 적으로 만들고, 혐오는 토론을 밀어낸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탱크와 총칼만은 아니다. 때로는 음모론이, 때로는 냉소가, 때로는 무관심이, 때로는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체념이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1987년의 거리는 2024년의 광장으로 어떻게 이어졌는가. 우리는 다음세대에게 민주주의를 제대로 전하고 있는가. 청년들이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나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동안, 기성세대는 그들에게 충분히 자리를 열어주었는가. 우리는 민주주의를 기념일의 언어로만 말하면서, 정작 일상의 권한과 책임은 나누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시민사회의 언어는 다음세대에게 닿고 있는가. 혹시 우리는 민주주의를 기억하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민주주의를 새롭게 만드는 일에는 둔감해진 것은 아닌가.
늘 자신에게 묻고, 가끔은 상대방에게 슬쩍슬쩍 던져보는 질문들이다.
5. 광장의 열기를 일상의 민주주의로 옮기는 일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는다. 언제나 미래를 향해 열려있고, 창조적 실천을 통해 만들어가는 미래진행형이다. 완성되었다고 믿는 순간, 민주주의는 약해진다. 민주주의는 늘 다시 배워야 하고, 되돌아보며 점검해보아야 하며, 다시 만들어야 가야 한다. 1987년의 성취가 오늘의 민주주의를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듯, 2024년 광장의 뜨거움도 내일의 민주주의를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광장의 에너지는 뜨겁지만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구호는 높지만 일상은 복잡하다. 분노는 사람을 모이게 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것은 결국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열정과 창의력이다.
여기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시작된다. 시민사회는 광장의 열기를 일상의 변화로 전환해야 한다. 거리에서 확인한 주권자의 힘을 지역의 공론장, 마을의 의제, 생활 속 공익활동으로 이어가야 한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시민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기가 오기 전에 민주주의의 근육을 키우는 일은 더 중요하다. 그 근육은 교육에서, 대화에서, 감시에서, 참여에서 자란다.
6. 기억을 살아 있는 언어로 바꾸는 시민사회
몇 가지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해본다. 첫째, 시민사회는 기억을 살아 있는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 6월항쟁을 기념하는 일은 과거를 박제하는 일이 아니다. “그때 우리는 위대했다”는 회고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1987년의 거리가 오늘의 청소년과 청년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말해야 한다. 야학 학생들이 “민주시민의 역할을 하려고 나왔다”고 말했던 것처럼, 오늘의 시민도 자기 삶의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역사 교과목의 한 단원이 아니라, 내가 일하는 곳과 사는 동네와 사용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매일 부딪히는 삶의 방식이고 습관이어야 한다.
둘째, 시민사회는 민주주의를 지역의 문제로 옮겨와야 한다. 민주주의는 중앙정치에만 있지 않다. 민주주의는 시청과 도청, 구청과 군청, 주민자치회와 학교운영위원회, 복지관과 공원, 마을버스 노선과 보행로, 청년 주거와 돌봄 정책 속에 있다.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묻는 일, 우리 동네 조례가 누구의 삶을 바꾸는지 살피는 일, 지역일꾼의 공천과 선거가 얼마나 공정한지 감시하는 일이 민주주의의 근육을 키우는 활동이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가장 가까운 얼굴이다. 지역에서 민주주의가 병들면 나라의 민주주의도 건강할 수 없다. 지역 정치가 폐쇄되고, 좋은 시민들이 정치의 문턱 앞에서 물러서고, 청년과 여성과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대표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선거제도 안에 갇힌다. 시민사회는 지역에서 좋은 후보를 키우고, 지방의회를 감시하고, 주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넓혀야 한다. 지방자치의 퇴보를 비판만 하지 말고 실천적인 대안을 마련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
셋째, 시민사회는 극단화에 맞서되 시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분명 극단의 언어가 커지고 있다. 혐오와 음모론, 폭력적 선동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헌정질서를 부정하거나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시도에는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 거짓은 거짓이라고 말해야 하고, 폭력은 폭력이라고 말해야 하며, 책임져야 할 세력에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시민사회는 왜 어떤 사람들이 극단적 주장에 흔들리는지도 살펴야 한다. 불안정한 삶, 고립, 불평등, 지역의 소외, 정치에 대한 불신은 극단주의가 자라는 토양이 된다. 그 토양을 그대로 둔 채 혐오의 언어만 비판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민주주의는 단호함과 포용을 함께 필요로 한다. 파괴적 선동에는 선을 긋되, 불안한 시민을 민주주의의 언어 안으로 다시 초대하는 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시민사회는 다음세대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아니 그들이 들어오는 문을 막지 말고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 청소년과 청년은 민주주의의 미래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결정할 권한을 얼마나 주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청년에게 참여하라고 말하면서, 이미 정해진 회의의 말석만 내어주지는 않았는가. 새로운 방식의 표현을 가볍게 여기거나, 낯선 정치 감각을 미숙함으로만 판단하지는 않았는가. 2024년의 광장은 다음세대가 민주주의를 모르는 세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알고 있었고, 다른 언어로 표현했으며, 다른 감각으로 광장을 만들었다.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민주주의를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우는 것이다. 1987년 내가 야학 학생들에게 배웠던 것처럼, 기성세대는 다음세대가 들고 나온 새로운 빛 앞에서 다시 배워야 한다. 민주주의의 계승은 기억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다. 권한을 나누는 것이다. 다음세대가 자기 시대의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도록 실패할 기회와 결정할 권한을 주는 것이다.
7. 다시, 제일야학의 학생들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 제일야학의 학생들을 떠올린다. 늦은 시간에 교실로 들어오던 학생들, 수업이 끝난 뒤 분식집에 모여 앉던 학생들,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민주시민의 역할을 하려고 나왔다”고 말하던 학생들. 그들은 내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함께 배우고 서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이었다. 선생과 학생의 자리가 고정되어 있지 않듯, 민주주의는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은 고정되어 있지 않는 상호 학습과 실천의 과정이다. 때로는 젊은 세대가 오래된 세대를 가르치고, 거리의 시민이 제도를 가르치며, 광장의 빛이 정치의 어둠을 가르친다.
1987년의 거리와 2024년의 광장 사이에는 긴 시간이 놓여 있다. 그 사이 한국 민주주의는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고, 멈칫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후퇴의 위험 앞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시민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다시 나타났다.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노래를 부르고, 다른 도구를 들었지만, 시민은 다시 광장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어가야 할 것은 과거의 형식이니 기억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주의의 방식과 감각이다.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느끼는 감각, 권력이 국민 위에 설 수 없다고 말하는 감각, 나와 다른 사람의 권리도 함께 지켜야 한다는 감각, 내 삶의 문제를 공동의 의제로 바꾸는 감각. 그 감각이 세대를 건너 이어질 때 민주주의는 살아 있다. 그리고 그 감각을 새로운 환경에 맞게 표출하는 창조적인 방식이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8.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기에 희망이다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는다. 이 말은 절망의 문장이 아니다. 오히려 희망의 문장이다.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참여할 수 있다.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세대가 새롭게 만들 수 있다.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민주주의가 완성된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면, 우리는 오늘도 그 안에서 일하고, 배우고, 다투고, 고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1987년의 거리는 내게 시민이 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2024년의 광장은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다시 지키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이제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그 배움을 어디로 가져갈 것인가. 광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시민들이 다시 외로운 개인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시민사회는 곁에 있어야 한다. 분노가 냉소로 식지 않도록, 참여가 일상의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기억이 다음세대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도록, 지역 곳곳에 민주주의의 작은 교실과 공론장과 실천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거대한 순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야학의 교실에도 있었고, 수원의 거리에도 있었고, 2024년의 광장에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가 사는 동네, 일터, 학교, 온라인 공간, 시민단체의 작은 회의실 안에 있다. 그곳에서 민주주의는 오늘도 묻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무엇을 이어갈 것인가. 그리고 다음세대와 함께 어떤 민주주의를 새로 만들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일, 그것이 6월항쟁을 기념하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라고 믿는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미래 진행형이다. 그 사실을 놓치는 순간 우리는 고단하게 다시 거리로 나가야 한다. 아니 어느 날에는 그 거리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