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이웃 & 캄보디아 친구들과 함께한 1박 2일 강릉 여행기
"출발합니다!"
버스가 움직이자마자 터진 꺄르르 웃음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무려
48명이 함께한 이번 여행, 출발부터 소풍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밀양, 전주, 여주, 아산, 인천, 시흥, 서울, 안산에서 모인 캄보디아 친구 중
몇몇은 한국에서의 첫 여행이라며 설레는 눈빛을 반짝였다. 버스 안에서 한 명씩 돌아가며 간단한 자기소개를 나눴다. 팔테이랏, 시언
시낫, 꽁스레이립... 쉽게 기억하기 힘든 이름들이었다. 그들에게도 우리 한
국 이름이 똑같이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내 이름은 윤희웅입니다. 부르기 어렵죠? 그냥 미스터 윤이나 윤 씨라고
불러 주세요.“

첫 번째 시험대, 추어탕
전망대 휴게소에서 멀리 보이는 강릉 시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쉼
없이 터지는 까르르 웃음소리에 여고생 수학여행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점심으로 강릉에서 유명하다는 추어탕을 먹었다. 진행자는 추어탕이 미꾸라
지 요리라는 말을 나중에야 했다. 선입견을 줄이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생
각해 보면 우리는 의도하지 않아도 언제나 보이지 않는 선입견의 그림자
속에서 상처받으며 살아간다. 옆자리에 앉은 나빈은 무 짠지와 열무김치로만 밥을 먹고 있었다. 추어탕
한 그릇을 퍼주며 먹어보라고 권했지만, 살짝 맛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에도 나빈은 어느새 밥 한 공기를 깨끗이 비웠다.
"여기요! 밥 한 공기하고 밑반찬 좀 더 주세요."
내가 손을 들고 소리쳤다.

바다에서 하나 되다.
강릉 순긋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조별 게임이 시작되었다. 꼬리잡기와 무궁
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뛰다 보니, 어색했던 사이도
어느새 친구가 되었다.
"캄보디아에도 꼬리잡기와 비슷한 놀이가 있어요. 오랜만에 하니까 정말 재
미있네요."
이어진 물놀이는 한마디로 '난장판 즐거움'이었다. 수중 기마전에서 승리한
팀은 챔피언이라도 된 듯 서로를 번쩍 안아 올렸다. 바닷물 속에서 비명과
웃음소리가 섞여 터져 나왔고, 그 순간만큼은 국적도 나이도 모든 경계가 사라졌
다.

해변 파티, 흥이 폭발한 밤
저녁을 먹고 시원한 커피를 한 잔씩 들고 해변으로 모였다. 안산에서 멀리
강릉까지 함께해준 민주노총 커피차였다. 역시 흥이 많은 캄보디아 친구들
이었다. 낮에 수줍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캄보디아 친구들
은 춤과 노래로 해변을 가득 채웠다. 특히 가수가 꿈이라는 시낫이 마이크를 잡자, 모두가 환호했다. 작은 체구
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가창력에 모든 사람이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담느라
정신없었다. 한국 대표도 질 수 없다며 마니또 청년 한 명이 '막걸리 한 잔'을 열창했다. 그러자 시낫을 비롯한 캄보디아 친구들이 원을 그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막춤을 추며 빙글빙글 돌았고, 때로는 한 명씩 중앙으로 나와 춤솜씨를 뽐냈다. 폭죽이 터지고 바닷바람이 불고, 웃음소리가 파도를 덮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를 바라보며 홀로 앉아 있는 친구에게 다가가 곁에 앉았다.
"바다 처음 봐요?"
"아니요. 캄보디아 고향에도 바다가 있어요. 여기와 비슷해요."
"그럼, 고향 생각이 나겠네요."
"생각나요."
그가 휴대폰에 저장된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다. 내 가족도 아닌데 사진을 보
는 나는 왜 눈물이 고이는 걸까.

한옥에서의 긴 밤
숙소는 나도 처음인 강릉 선교장의 오래된 한옥이었다. 대청마루에 앉아
별을 올려다보니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여름밤을 보내던 기억이 스르르
떠올랐다. 캄보디아 친구들에게 한국 전통주의 맛을 보여주고 싶어 아껴두던 인삼주
를 강릉까지 들고 왔다. 역시 호불호가 갈렸다. "술이 아니라 약이에요!"라
는 내 말에 캄보디아 친구들은 한 잔, 두 잔 마시더니 마침내 "역시 약은
몸에 좋다!"며 웃어댔다. 우리는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한국 친구가 바닥에 놓인 안주들을 건너뛰어 돌아오자, 여기저기서
짧은 ‘어~’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캄보디아에서는 음식 위로 지나가면 안 되는 거죠?"
"네."
"우리도 그래요. 밥상 위에 음식이 있으니까, 밥상을 뛰어넘지는 않죠. 그런
데 오늘은 바닥이다 보니 생각 없이 넘었네요. 미안해요."
그 작은 순간, 문화의 차이가 또렷이 드러났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이런
차이를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하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사소한 일이라
치부하며 무심히 지나쳐 온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차이는 어색함이
아니라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음
을 배운다.
친구들의 진심 어린 이야기
반월동에서 살고 있는 유혜림은 "반월은 도시 같기도 하고 시골 같기도
해서 딱 좋다"며 10년째 그곳에서 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며칠 전 한 명
이 이사 와서 이제 캄보디아 사람이 3명이나 되었다며 기뻐했다. 동네 자랑
이 어찌나 진심이던지, 듣는 나도 반월이 괜히 좋아졌다. 소피에룬은 캄보디아에 두고 온 아이 사진을 꺼내 자랑하며 "잘 키우고
싶다"라는 진심을 전했다.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아버지의 마음은 국적과
상관없이 똑같았다. 내 아들과 나이와 이름이 같은 요셉은 "캄보디아에 오면 한국에서 번 돈
으로 지은 여관에서 공짜로 재워주겠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취기가 오르자
나를 아빠라고 불렀다. 나빈은 평소 일터에서 같은 나라 동료가 없어 말 한마디 못 하고 지냈는
데, 이번에는 모국어로 수다를 나누며 행복해했다.
12월에 돌아가는 띠나는 한국에서의 가장 좋은 기억으로 오늘을 꼽았다. 캠은 "한국에서 이렇게 많이 웃은 건 처음"이라며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췄다.
둘째 날의 따뜻한 마무리
아침에는 선교장을 산책하며 전통문화를 함께 느꼈다. 선교장 해설사는 외
국인들에게 한마디라도 더 쉽게 설명해 주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뜨거운 강
릉의 햇살도 그들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선교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추억을 사진에 담았다.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으로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그리고 여행의 클라이맥
스인 1박 2일 조별 성과 시상식과 또래 마니또들이 준비한 선물 시간이 기
다리고 있었다. 수건, 모자, 텀블러 같은 작은 선물이었지만,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을
얻은 듯 환했다.
여행을 마치며

이번 강릉 여행은 단순한 1박 2일이 아니었다. 캄보디아 친구들의 삶과 땀,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함께 나눈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들은 한국에서 모두가 피하는 일터에서, 젊은 사람 한 명 없는 농촌에서
묵묵히 일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그 가족을 위해
땀 흘리며 살아간다. 그 모습이 존경스럽고, 또 부럽기도 했다. 부디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은 오늘처럼 웃음이 가득하고 좋은 기억만 쌓이
길 바란다. 힘든 기억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돌아가는 날까지 건강하게, 꿈을 잃지
않고 지내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이번 여행이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
인 노동자가 정기적으로 만나 함께 웃고 어울리는 자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왜냐
하면 우리는 다 같은 노동자이니까. 마지막으로 이번 자리를 마련해주고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의 마
음을 전한다.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오늘의 웃음과 추억이 가능했
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외국인 노동자들 모두 항상 우리 곁의 좋은 이웃으
로 함께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