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활동도 공익이다 시리즈1]
“마을에서 일 벌이는 여자, 오현정”
ᅳ도서관부터 ESG 네트워크까지, 그녀가 만드는 연결의 지도

“책을 좋아했어요. 술 마시는 대신, 책 읽는 놀이터 하나쯤은 있었으면 했죠.”
서울살이를 접고 화성으로 내려왔을 때, 그는 낯설고도 허전한 마을에 살기 시작
했다. 놀이터도, 사람도, 책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만들기로 했다. 작은 도
서관 ‘만세도서관’.
처음엔 ‘내 아이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는데, 정작 아이는 사춘기여서 오지 않았
다. 대신 동네 아이들이 왔다. 엄마들이 따라왔다. 그렇게 오현정의 마을살이는 시
작됐다.

“처음엔 아무도 안 왔어요. 프로그램을 준비해도... 그래서 책을 들고 나갔어요. 상
인들에게, 주민들에게, 길 위의 사람들에게.”
에코백 하나로 시작한 책배달은 책수레가 되었고, 이웃과의 대화가 되었고, 결국
엔 마을의 얼굴을 바꾸는 손길이 되었다. 벽화도 그렸다. 각국의 국기를 함께 그
리고, 쓰레기가 넘치던 길목에 맥문동을 심었다. “남의 나라 국기 아래엔 쓰레기
를 못 버릴 테니까요.” 농담 같지만, 깊은 배려가 깃든 전략이었다. 그렇게 쌓인 이야기는 마을을 바꾸고, 활동가들을 모았고, 네트워크가 되었다. 오
현정은 화성 마을만들기네트워크의 사무국장을 거쳐 운영위원장을 지냈고, 지금은
경기도 마을만들기네트워크의 상임대표로 활동 중이다.
“어떤 정권이 바뀌었고, 갑자기 마을공동체센터를 직영하겠다고 했어요. 그때 우
리 활동가들이 직접 시장실에 들어가 담판을 지었죠. 성명서에 주민들의 이름을
담아.”
시민이 행정을 견인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공모사업을 ‘포기’한 적도 있다. “사업비를 위해 하려던 일을 거꾸로 맞추
고 있는 나를 보게 되면, 우리는 방향을 잃어요. 그래서 기꺼이 포기했어요. 우리
가 갑이에요. 활동가들이요.”
그 말에선 단호함과 자유가 동시에 들렸다. 화성은 도농복합 도시다. 아파트 단지의 촘촘한 네트워크와 농촌의 오랜 단연차들
이 교차한다. 그는 이 복합성 안에서 마을마다의 고유한 결을 존중하며, 소외되지
않도록 손을 뻗는다. 그리고 지금, 그는 ESG 시민네트워크를 구상하고 있다. 행정과 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테이블에 앉는 구조다. “기업의 사회공헌과 시민단체의 실천이 연결되면, 활
동가에게도 인건비가 생기고, 시민기금도 자라나요. 우리가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어요.”

오현정의 활동엔 늘 ‘사람’이 있다. 상처도, 회복도, 시작도, 모두 사람에서 온다. 유방암 수술 이후, 활동을 쉬었을 때도 “동료들이 매일 집에 와서 밥을 먹여줬어
요. 그 덕에 금방 나았죠.”
번아웃이 오기도 한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곁에서 “같이 하자”고 말해주는 동
료가 있어 다시 일어난다. 마을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회의할 땐 다들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만, 끝나면 ‘밥 먹자’고 해요. 그게 마을이
에요.”
갈등을 모른 척하지 않고, 회의실에서 풀고, 안 되면 내려놓는다. “우리가 돈 벌려고 하는 일 아니잖아요. 안 하면 그만이죠.”
그가 꿈꾸는 건, 서로 돌보는 마을. “셰어하우스요. 각자 방은 있지만, 공유 부엌에서 함께 밥 먹고, 안 오면 ‘왜 안
와?’ 하고 연락해주는. 그런 곳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평생교육협동조합도 준비 중이다. 나이와 경력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배
4
움으로 성취를 느끼게 하는 곳. “시니어가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들이 마을을 배
우는 곳.”
작은 도서관에서 시작해, 평생교육대상 수상자이자 마을정책 기획자까지. 하지만 그는 말한다. “처음엔, 그냥 내가 놀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고민은 안 해도 돼요. 그냥 시작하
면 돼요. 실패하면 포기해도 돼요. 그걸로 충분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친 활동가들에게 말한다. “쉬어도 돼요. 마을은 혼자 지키는 게 아니에요. 내가 없어도 누군가는 지켜줄 거
예요. 이미 만들어놓았으니까, 그걸로 충분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