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1일 안산에는 아주 특별한 생일잔치가 있었다. 풀뿌리 여성단체이
자 전국에 하나뿐인 ‘함께크는여성울림’의 창립 10주년을 축하하는 좌담회였
다. 안산 고잔동의 울림 교육장이 “세상을 향한 큰 울림 함께 걸어온 10년
이야기” 꽃으로 가득했다. 김혜정(우공) 전 대표와 조창아(짱아) 신임 대표의
육성으로 여성단체 ‘울림’을 들어보자
자기소개부터 부탁한다. 우공: 10년간 울림 활동가이자 2년의 전임 대표 자리를 벗어나서 회원으로
살기 시작한 지 2개월째인 우공이라고 한다. 아직 정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
어서 완전히 활동가의 탈을 벗지 못했지만 어쨌든 마음은 자유로운 개인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짱아: 나는 지난 2년간 울림의 이사였다가 올해 대표이사까지 맡게 돼 막중
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내가 대표를 맡기 전후로 내란 불법 계엄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에 덕분에 활동가로 갑자기 성장한 대표라고 소개하겠다. 울림이 뭐지? ‘함께크는여성울림’을 소개해 달라. 우공: 안산에만 있지만 회원이 다른 지역과 해외에도 있는 전국구 여성단체
다. 일상의 차별과 성 역할에 갇혀 살던 여성들이 모여 떠들고 설치고 자유롭
게 말하는 안전한 공간이자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지역의 작은 배움
터다. 이름 그대로 나만 잘 나가는 게 아니라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곳
이고 더 큰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다. 짱아: 온오프라인으로 모이는 13개의 회원 소모임이 활발하다. 성평등 가치를
담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운영, 지역사회의 인권 관련 현안, 세월호 참사 등
안산의 민주시민 단체와 연대 활동한다. 12.3 계엄의 밤 이후 123일 동안 ‘비상행동’과 함께 윤석열 파면을 끌어냈다. 올해 4월 울림 10주년 기념 자료
집을 펴내고 좌담회를 비롯한 기념 사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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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함께크는여성울림’의 창립 과정이 궁금하다. 우공: 여성단체 활동 경험이 있는 세 사람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2014년
부터 사회적 기업 등 여성 공동체 설립을 위한 공부를 했다. 지인들과 발기인
을 모으고 돈을 모아 2015년 2월에 안산에서 74명으로 창립총회를 하고 4월
에 법인설립을 완료했다. 돈이 없어서 페인트칠 벽지 등 실내장식을 회원들이
손으로 다 했다. 목재로 된 글자 하나까지 발로 뛰어 찾아서 ‘함께크는여성울
림’ 현판을 달았다. 당시 안산에 여성노동자회와 YWCA 두 여성단체가 있었다. 차별점이 뭔가?
우공: 여성노동자회는 일하는 여성들이 중심에 있고 YWCA는 기독교적 이념
에 기초해 평화운동, 청년운동을 함께하는 좀 더 포괄적인 여성공익 운동단체
다. 각각 엄청난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생활 중심형 여성단체”를 만
들고자 했다. 여성취업률이 꾸준히 늘어나고는 있지만 단시간 시간제 노동과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전업주부도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지역을 기반으로
사적 공간에 있는 여성들이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공적 활동과 연결되는 통
로가 필요했다. 한마디로 울림은 일상에 밀착된 여성운동 단체다. 지금은 회원이 얼마나 되나? 많이 들고났을 거 같다. 우공: 현재 200명쯤 된다. 한 해 보통 30명씩은 들어왔지만 나가는 사람도
많아 생각보다 증가 속도가 느렸다. 그리고 초창기에 “도와주세요”, 읍소해서
100명 채워준 이들이 시간이 가면서 떠나갔다. 사돈의 팔촌 회원들 빼면 한
50명으로 시작해 10주년에 200명까지 왔다. 상당수 회원들이 기존 회원의 소
개로 오니, 울림은 회원들이 함께 키운 단체가 맞다. 두 분 삶에 울림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는 울림의 장점을 자랑해 달라. 짱아: 가장 든든하고 신뢰하는 여성들의 집합체다. 울림을 빼면 나를 설명할
수 없을 거 같다. 울림 활동 7년을 통해 인간에 대한 신뢰가 커졌다. ‘성평등
한 민주사회 실현을 위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생활 중심형 여성운동’이라는
모토 그대로였다. “울림이 뭐 하는 곳인 줄도 모르고 좋은 사람 따라왔다가
배우게 되고 실천으로 연결됐다.” 이런 고백 많이 들었다. 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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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 회원 소모임을 자랑하고 싶다. 페미니즘모임, 4.16세월호참사기억모임, 걷기인증모임, 산행모임, 글쓰기및합평모임, 영어모임, 그림모임, 우쿨렐레모
임, 환경모임 등 여성의 관심사만큼이다 다양하다. 홈페이지제작모임, 코딩모
임 등 IT관련 관심도 늘고 있다. 정치 성향 상관없이 관심 분야로 모여 놀며
배우며 활동한다. 소모임에서 어울려 회의나 여성대회 등 큰 행사에 참여하기
도 하고 연대 집회로도 연결된다. 나도 처음 울림에 발을 들인 건 활동가들의
인성이 좋아 보여서였다.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별을 품은 사람
들’에서 세월호 기억확동을 하며 내적 외적으로 성장을 경험했다. 우공: 개성 넘치고 재능 있고 멋진 여성들이 울림의 자랑이다. 울림은 여성들
이 서로 연결되는 만남의 장이자 사랑방이다. 사람이 연결되면 거기에 재미난
이야기와 다양한 정보가 오가고 활동을 만들어내고 참여와 연대도 이루어진
다. 아쉬움은 내가 이슈 파이팅 활동에 많이 참여하지 못한 점이다. 연대체들
과 좀 더 적극적으로 했으면 울림도 나도 더 확장될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다. 이제 새 대표가 잘해줄 거라 믿는다. 각자 여성운동에 몸을 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우공: 나는 좀 늦게 발을 들인 편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세 딸 중 둘째로 남자가 없는 집에서 자라 그런지 여자라고 차별받은 경험은
많지 않았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에 몸담았지만, 당시 여성운동에는 별 매력을
못 느껴 안타깝게도 페미니즘 세계를 모르고 20대를 지나쳤다. 그런데 결혼
한 지 일주일도 안 돼 가부장의 세계에 들어왔다는 걸 바로 느끼게 되면서
성차별에 대한 감각이 살아났다. 아이 낳고 바로 일을 시작했는데 재미가 없
고 무의미해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더라. 직업상담사 자격을 따고 1년간 봉사했다. 경력 중단 여성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과 현실의 괴리가 컸고, 여성들과 상담하다 보니 직
장 내 성희롱과 가정폭력 얘기를 많이 듣게 되더라. 야, 여성에게는 취업보다
폭력 문제가 더 심각하구나, 깨닫고 관련 공부를 하게 됐다. 30대 후반 본격
적으로 여성운동 판에 들어간 게 안양여성의전화였다. 젠더폭력에 대응하는
상담도 중요하지만, 성차별 세상을 바꾸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싶어 사무국 일을 주로 했다. 그때 처음으로 안산에도 이런 단체가 있으면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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겠다 생각했고 결국 뜻 맞는 활동가들과 울림을 만들 수 있었다. 짱아: 2018년에 김혜정 사무국장을 만나게 되면서 울림에 가입했지만 별 활
동은 없었다. 순천에서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안산으로 돌아오면서 글쓰기 소
모임을 만들어서 울림 활동가들과 더 가까워졌다. 울림 3년 차에 이혼했다. 나 혼자 사는 집에 울림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와 차 마시고 밥 먹고 술도 마
시며 외로움을 덜어 주었다. 그러다 소모임 ‘별을 품은 사람들’에 들어가면서
이전에 피하던 세월호 참사에 대해 마주하게 됐다. 그때까진 내 슬픔이 가장
컸는데 생각의 전환이 오더라. 외로워서 슬프고 남편이 떠나서 슬프고, 그런
슬픔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지더라. 그러니까 내 슬픔에 매몰됐을 땐 해결
되지 않더니 다른 아픔에 동참하니까 내 슬픔이 작아지고 연대가 주는 위로
가 아주 크게 다가왔다. 도망치지 않고 슬픔의 한가운데에 서는 법을 배운 거
같다. 그러다 울림 이사 제안도 수락했고 대표이사 제의도 수락하지 않았나, 지금 생각하니 그렇다. 계엄 사태 한 달쯤 지났을 때 대표이사 투표가 있었다. 시국이 내가 빨리 대
답하게 했다. 우리 사회 어떡하지, 울림 어떡하지, 모두 내 문제로 다가왔다. 새로 시작한 생업을 하며 대표이사를 맡고 매주 광화문 집회에도 나갔다. 그
때 절박하게 느꼈다. 정치와 내 삶이 따로 있지 않구나. 내 삶을 뒤흔드는 게
정치구나, 내란 시기에 날마다 그런 각성을 했다. 내가 실천을 조금이라도 하
지 않으면 정말 우리나라 전체 이 선박이 좌초되는 건데, 내가 지금까지 사회
가 어떻게 돌아가든 내가 할 게 없다 생각하고 내버려뒀구나, 부끄러웠다. 개
인적인 상황 국가적인 상황 울림의 상황이 다 하나로 연결됐다. 울림의 신임 대표로서 취임 2개월의 소회가 궁금하다. 짱아: 2월 6일에 취임했지만, 작년 12월에 이미 대표이사 투표가 있었고 내
마음의 결정은 아마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다음에 한 것 같다. 돌봄으로부터
자유로워서 가능했다. 그때 활동가들이 10주년 기념 자료집을 준비하고 쓰고
있었다. 그 작업을 도우면서 이 힘든 일을 왜 하느냐고 조심스레 문제를 제기
했다. 울림 10년 역사를 네 명의 활동가가 책으로 엮기엔 역부족이라 생각했
다. 그만큼 부담이 컸다. 그러나 자료집 초고를 읽다 보니 지난 10년의 사람
들과 역사를 다시 보게 됐다. 그 수고 덕에 내가 안정적으로 5대 대표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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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받을 수 있었다. 책임을 맡고 보니 전에 안 보이던 게 많이 보여서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보
냈다. 일단 대외적으로는 연대 활동에 대표가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활
동가 풀이 크지 않아서 지속적으로 나갈 사람이 적은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항상 시의적절하게 매듭할 거 매듭짓고 자료 정리 잘해준 활동가들이 새삼
고맙더라. 며칠 전 꿈을 꿀 정도였다. 내가 앞으로 2년간 일을 하고도 흩어놓
고 쓸려가게 만들지 않을지 걱정돼서였다. 생업과 울림 활동을 병행하며 일상
을 살아내려니 마음 관리도 잘하려 하고 있다. 파면 전전주에 한 회원이 처음으로 집회 참여를 한 후 들려준 소감이 생각난
다. 원래 “저는 광장 그런 데는 안 나가요.”라던 분인데 내가 지나는 말로 같
이 가자 그랬다. 울림은 누구도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분이 탄핵 광
장에 다녀온 후엔 “민주주의를 바라는 이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 함께한 시민
들의 모습에 감동했다. 역사의 현장에 있게 해 줘서 감사하다”라고 고백했다. 이게 함께하는 재미다. 창립 맴버로서 전임 대표직을 마치는 소감은 어떤가?
우공: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성평등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없다. 울림도
마찬가지다.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많다. 그래서 책임을 내려놓는 게 마냥 편
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나는 믿음이 있었다. 내가 물러나도 계속 함께 하는
활동가들이 있고 임원을 비롯해 적극적인 회원들이 있다. 또 새 대표가 엄청
적극적으로 해 나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언젠가 넘어야 하고 이제는 넘어
가는 걸 시도해 봐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적기였다. 내 선택이 옳았고 울림도
잘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창립 위원들이 돌아가며 대표를 해 왔는데 이제 다음 세대로 대표 이
전이 되고 임원진들이 바뀌고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10년을 탈
없이 잘 왔다. “울림이 있어 좋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보면 보람을 느낀다. 10주년 앞두고 몇 차례 비전 워크숍을 하며 우리 단체의 미래를 걱정하는 임
원들이 많아진 걸 보았다. 이사진 중심으로 역할 배분도 되고 공동 운영 마인
드도 생겼다. 조창아 대표가 사람을 포용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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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마음을 모아주고 있는 게 느껴진다. 성공적으로 잘 가고 있는 것 같
다. 향후 10년 울림의 비전과 과제가 있다면?
짱아: 탄핵 광장에 나온 2030 여성들에게서 감동과 자극을 많이 받았다. 그
분들과 연대하는 페미니스트 단체 울림으로 계속 성장하고 싶다. 근데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한다고 가다 보면 사람들을 놓칠 수 있더라. 오히려 사람
들과 하루하루 함께 걷다 보면 길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지금까지 그랬듯 함
께 이야기 나누고 함께 공부하고 글 쓰고 하는 그 자체가 울림의 존재 이유
가 되지 않을까. 앞으로의 도전과 과제는 교육과 홍보, 재정 확충, 세대 간
연대 등이 있다. 운영진과 회원들의 페미니스트 역량 강화도 과제겠다. 현재
로선 울림 자체가 내 꿈이다. 울림이 있다는 자체가 내 기쁨이다.